한가위 연휴를 하루 앞두고 주임님의 배려로 평소보다 일찍 구청을 나섰다.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고구려 고분벽화 도록이 도착했다는 서울역사박물관 뮤지엄샵으로 향했다. 얼마 전 야나기 무네요시 민화 특별전을 보고 난 후 찾은 뮤지엄샵에서 꽤 괜찮은 고구려 고분벽화 도록을 발견했으나 재고가 다 떨어지고 없었다. 아쉬운 대로 견본품이라도 사려다가 또 들어온다는 이야기에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 때 점원이 나를 알아보고는 말을 건네 왔다.


점원: 저번에 그 분이시죠? 꼭 필요하신 건가봐요?
익구: 아 예... 이런 도록은 시중에서 구하기가 힘드니까요.
점원: 혹시 관련 학과세요?
익구: 아니요. 그냥 취미생활이에요.^^;


교보문고에서 할인판매하는 세계문화유산 화보집 냉큼 구매해서 싱글벙글하는 나를 보고 관련 학과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이틀 사이에 똑같은 질문의 연속이다. 혹자는 내 취미생활이 너무 방대하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잉여(剩餘)도 없이 제 밥벌이만 챙기는 삶은 얼마나 퍽퍽한가. 전부 다 제 전공만 파고드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잉여를 낭비쯤으로 취급할 수도 있지만 나는 여유와 운치로도 해석하고 싶다. 점원의 의아스러운 표정을 뒤로하고 가뿐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서다가 이게 남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행동인가 자문해봤다. 만약에 토익 공부를 이렇게 했다면 이상하게 취급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시 문화적 소수파가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아닐까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다.


나는 내가 인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했으면 좋겠다. 원체 비문학적(?)인지라 문학작품을 손에서 멀어진지 오래지만 역사와 철학 쪽만은 남부끄럽거나 남부럽지 않게 공부하고 싶다. 요즘 들어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분야가 너무 많다. 처음에 궁궐에서 비롯된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문화유산 감상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청자, 불화, 석탑 등 고미술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또한 자유주의 사상을 비롯한 경제철학 쪽도 섭렵할 계획이다. 늘 멀리 바라만 보는 칸트 철학도 수박 겉핥기나마 도전하고 싶다. 만날 조금씩 갉아먹다가 끝나는 논어와 맹자도 제대로 씹어 먹어볼 때다. 향가와 고려가요도 궁리하고 몇 수 외워서 늘 품고 지내야겠다. 읽고 싶은 책, 빌려봐야겠다 싶은 책들의 목록이 자꾸 쌓이지만 게으른 몸뚱이가 얼마나 따라줄지 의문이다.


이렇게 유식찬란(有識燦爛)해지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이 경영학도라는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욱 멋지고 기품 있는 경영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문화경제학, 문화경영이라는 근사한 레토릭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문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영, 경제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문화를 향유하는 삶이라고 본다. 도대체 네 정체는 뭐냐는 물음이 적잖지만 이 혼란스럽고 산만한 모습 자체가 나란 녀석임을 쑥스럽게 고백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가 있음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무슨 일을 하게 되던 간에 은근하고 탄탄한 인문적 사유를 딛고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부와 권력을 마다할 사람 없지만 그런 것들에만 함몰된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우선 위기지학(爲己之學)이며 그 후에 얻는 부와 권력은 외려 내가 바라는 바다.


논어에서 "옛날의 공부하던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공부하더니, 오늘날의 공부하는 사람은 남을 위해 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라는 구절이 나온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은 자기를 위해, 자아실현을 목표로 하는 배움이다. 종국에는 그렇게 배운 것을 사회에서 써먹는 데까지 나아가야겠지만 시작은 어디까지나 인격 도야와 자기 수양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위인지학(爲人之學)은 남을 위한 학문, 남에게 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배움이다. 물론 남의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지적 허영과 세속적 공명(空名)을 마냥 나무라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처사다. 또한 학문이 출세와 치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분개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위기지학을 추구하다보면 지혜를 얻기보다는 스스로를 높이는데 열중하고, 시대의 아픔을 살피기도 전에 앞에 나서는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돌 틈에서 솟아나는 싸늘한 샘물은 때로는 외롭다. 눈밭에 고개 드는 새파란 팟종은 때로는 힘겹다. 그러나 그렇기에 맑고 매울 수 있는 것이리라(허영자의 시 [무제]를 거의 그대로 베껴왔다). 내 지적 편력은 거칠고 엉성하지만 그것이 내 의지와 자유의 소산이라면 한계마저도 눈부시다. 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져야할지도 모른다. 내 자신에 대한 투자가 헛되지 않기 위해 괜찮은 수익률을 보이려고 애써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늘상 정색하고 달려드는 것은 금물이다. 치열하되 재미나게 살아야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