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주의는 야만이다』는 동생이 서평 과제가 어렵다고 긴급구호를 요청하길래 엉겁결에 읽게 된 책이다. 그 통렬한 문제의식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해법은 조금 다른 식으로 내봤다. 책을 열심히 읽지는 않은 터라 내용 파악에 미진한 부분이 있을까 두렵다)


IMF 사태가 터졌을 때 일 열심히 하고 세금 꼬박 내던 서민과 중산층에게 돌려진 화살은 엄청났다. 마치 이 모든 것이 국민들의 안이한 생활태도 때문인 것처럼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아우성이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의 과실은 대체 어디로 가고 다시 허리띠나 졸라매라는 채찍질만 돌아온 것인가. 『가족주의는 야만이다』는 이러한 의구심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글쓴이는 경제침체 이후 심심지 않게 등장하는 박정희 향수는 파시즘의 소산이라고 주장한다. 개발독재 시대에 가족이 국가 동원의 단위로 이용되면서 사회의 부재,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가 은폐된 것이다. "가족을 정(情)의 수사학으로 포장하면서 국가의 존재를 은폐시키는 것이야말로 파시즘"으로서 "사디즘적인 사회에서는 개인이 마조히즘화되고 개인의 정신은 왜곡"된다고 본다. 글쓴이는 가국(家國) 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이 국가가 공적인 영역에서 해야 할 일들을 다 떠맡고 있는 체제"를 말한다.


글쓴이는 시종일관 가족=국가라는 도식을 비판한다. 이어서 나라의 위기가 나의 위기로 여기며 스스로 국가에 기꺼이 봉사하는 마조히즘적 국민에서 벗어나라고 주장한다. 내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개인이나 가족단위가 떠맡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농산물 시장 개방의 경우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농가에서 기를 쓰고 반대하는 이유는 개방으로 인한 이익이 자신들의 손해를 보상하는 데 쓰일 것이라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어느 정도 책임져야할 부의 재분배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농산물 시장 개방의 예에서처럼 국가의 기능 중에 대표적인 것이 가치 분배일 것이다. 가치의 생산이나 창출은 개인과 기업의 역할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가치 분배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홍세화는 나눔과 분배가 같은 말인데도 상반된 반응이 나타나는 이유가 "나눔은 사적 영역으로서 시혜나 기부의 의미를 갖는다면, 분배는 공적 영역으로서 조세정의 등 제도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홍세화. "나눔과 분배, 그리고 공공성." 한겨레신문. 2005. 8. 24. 참조). 양극화와 빈곤 문제를 개인의 선의에 호소하는 나눔이라는 구호가 내걸리는 것은 국가의 책임 방기라고 비판해야 한다. 글쓴이가 예로 든 수재의연금과 금모으기 운동이 기만적인 이유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글쓴이는 국가와 사회를 구분하면서 국가와 가족 사이에 시민사회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사회-국가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관계를 지향하자는 주장하기에는 국가와 사회, 가족 간의 경계가 다소 애매한 감이 있다. 조금 수정해보면 국민 개개인의 이익을 존중하고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 '국가', 민주적 시민의식을 함양하고 연대성을 키우는 '시민사회', 그리고 궁극적 소수로서 자유롭게 욕망하는 '개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글쓴이는 가족이라는 존재를 무척 중요시하지만 가족관념이 많이 희박해진 현대 사회에서 가족은 시민사회와 상당부분 포개질 공산이 크다. 즉 가족과 시민사회의 기능이 상호작용하면서 둘 사이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대신 가족의 자리에 개인을 놓는다면 국가욕망으로부터 탈주하기도 한결 수월할 것이다. 고종석이 제시했듯이 "모두가 궁극적 소수 곧 개인인 세상", "집단이라는 추상에서 개인이라는 구체로 눈높이가 낮아진 세상(고종석. 2002. 『서얼단상』. 개마고원. 148~149쪽)"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글쓴이는 "가족은 신성하지만 가족주의는 불온하다"면서 '가족'과 '가족주의'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두부 자르듯이 나누기 힘들어 보이며 가족이 가족주의, 국가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반드시 국가의 세뇌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을 중시하는 사고에도 이미 국가주의의 싹이 트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국가의 책무를 소홀히 하고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글쓴이의 지적은 타당하지만 가족보다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울러 국가주의와 가족이기주의에만 논의를 집중한 나머지 우리 사회에서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지역주의나 학벌주의 같은 집단주의에 대한 검토가 부실한 편이다.


결국 글쓴이에게서 사익을 국익으로 포장하는 권력자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일사불란한 국론통일 욕구는 여전히 강하다.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공공성을 확보한 시민사회의 영역이 보다 넓어지고, 자기 자신을 함부로 희생하지 않고 자중자애하는 성숙한 개인들이 보다 많아져야 한다. 국가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 개성과 자유라는 칼과 공동체와 연대라는 방패로 맞서야 한다. 자유의 대가는 영원한 불침번이기에.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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