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결과를 재검증 중인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중간 조사활동 결과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고의적으로 조작되었음이 드러났다. 2개 줄기세포주에서 얻어진 결과를 11개로 부풀린 것이다. 황 교수팀은 매매난자 및 소속 연구원 난자의 사용 과정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실책이 불거지기 무섭게 논문 조작이 발견됨으로써 과학자로서의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전국을 거대한 논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이번 사태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논문 조작이다. 이미 황 교수가 논문 철회 의사를 밝힌 마당에 원천기술 보유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 거대한 논란이 이제 일단락 되어 가면서 지난 한달 간의 격론 속에 내 자신이 어떤 생각들을 품었는지 돌아봤다. 평소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오지랖 넓게 왈가왈부를 즐기다 보니 주위에서 이번 사건의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생명과학분야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도 없던 터라 내 의견을 밝히기를 꺼렸다. 다만 PD수첩팀에게 쏟아진 무차별적인 폭격에 대해 문제의식 아니 정확히는 공포감을 느꼈을 뿐이다. 사상의 자유시장이 무참하게 짓밟힐 때 용기보다는 침묵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 와중에 PD수첩의 취재윤리 위반과 함께 MBC의 사과문 발표를 보며 대세가 기운 것이 아닌가하며 섣불리 판단했다. 난리가 벌어진 새벽에 [PD수첩과 과유불급]이라는 제목으로 부랴부랴 잡글을 썼으니 말이다. PD수첩의 공과를 냉철히 판단하자며 거대한 비난의 예봉을 꺾어보려 무던 애를 썼지만 내심 걱정도 많았다. 괜히 PD수첩을 편드는 걸로 오해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워낙 사안이 엄중하다 보니 PD수첩의 실수가 너무 뼈아프고 무겁게 보였다는 다소간의 변명도 둘러대 본다. 오십보 백보를 따지며 "나는 달랐다"라고 우쭐대기보다는 "나 또한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겸허하게 인정한다. 시린 진실보다는 달콤한 희망에 현혹되었고, 진지한 물음보다는 기계적 균형 속에 안락했다.


2.
지난 5월초 고대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황우석 교수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전문적인 내용까지 죄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분야에 애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가슴 시리게 깨우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의 형형한 눈빛을 보며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에 설레었다. 강연이 있은 며칠 뒤에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로 사이언스 표지논문이 되었다는 낭보를 들었다. 내 성공처럼 기뻐했다. 수의대라는 비주류학과에 순수 국내파 박사가 이룬 쾌거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6두품의 서러움 운운하거나, 주류 의학계의 음모론을 주창하는 이들에게 심정적으로나마 끌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리 논란이 벌어졌을 때까지만 해도 황 교수님은 솔직히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이를 두고 “진짜배기 학자를 만난 신선함이 기껍다”라고 호평했다. 하지만 얼마 뒤 황 교수님이 “인위적 실수”를 언급하실 때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예전에 썼던 칭찬을 슬쩍 지우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누가 알아채겠냐는 생각에 “진짜배기...” 구절 대신 “앞으로도 각종 의구심들에 성실하게 대응해주시길 바란다”는 글귀를 집어넣었다가 다시 원상복귀시켰다. 그 때 당시의 내 생각을 감추는 것은 부질없고 비겁한 짓이라고 판단했다. 무책임은 무능과 무지만큼이나 무서운 죄악이다.


사실 진실공방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이쯤 되면 서로 비기는 게 상책이라는 소망을 가졌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황 교수팀의 조작은 광범위했고 과욕은 넘쳐났다. 우리 사회가 황빠와 황까로 나뉘어 극심한 대립을 겪었지만 심지어 황까조차도 논문 전반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을 것이다. 황 교수님이 조국을 사랑하셨던 만큼 우리 국민들도 조국을 사랑했다. 나는 얼마 전까지 PD수첩팀에게 관용을 요구했듯이 황 교수팀에게도 관용을 베풀기를 청한다. 황 교수팀은 논문 조작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받되 PD수첩팀에 쏟아졌던 멸시와 조롱까지 받지는 않기 바란다. PD수첩 사태에서 얻은 교훈을 당장 써먹어 보자. 지은 죄만큼의 벌을 내리는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과유불급(過猶不及)을 과유불급으로 맞서지 말았으면 한다. 그 대신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루하루 정성을 쏟고 있는 많은 연구자들에게도 애정과 관심을 가지는 쪽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3.
문득 일본이 세계적인 망신살을 뻗쳤던 2000년 11월 마이니치신문의 보도를 떠올렸다. 60만년 전 구석기 유물을 발굴해 일본인의 민족적 자부심을 고양시킨 일본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의 신화가 발굴지에 미리 석기를 파묻은 조작극이었음이 드러났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옳거니 하면서 일본인들의 추악한 역사왜곡을 질타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당분간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참담한 학문풍토를 질타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에게 뱉었던 욕지기를 고스란히 돌려 받을 각오도 해야겠다. 아무쪼록 이 참담한 사건도 우리 역사로 잘 기억되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이 서글픈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불가에서는 역행보살(逆行菩薩)이란 말을 쓴다. 남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일부러 못된 짓을 하는 이로 화현(化現)한 보살이라는 뜻이다. 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들이 오히려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라 여기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그윽하고 넉넉한 이야기다. 타고난 악당은 없고 저마다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미움과 증오가 밀려올 때 스스로를 반성하며 내 자신 속의 역행보살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어야겠다. 그리고 남이 저지른 실책에 너그러워지고 연민을 가질 수 있기 바란다. 어쩌면 우리들의 역행보살이었을지 모르는 과학영웅의 몰락이 못내 씁쓸하다. 신실한 불자로 유명했던 황 교수님에게 어느 헌책방에서 성경책 표지에 써놓은 “양심은 신보다 위대하다”라는 구절을 조금 바꿔서 말씀드리고 싶다. “진실은 부처보다 위대하다”고.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내가 더 사랑하는 것은 진리다. 나는 내 나라가 진실과 정직과 연민을 더 애호하길 바란다. 나 또한 소수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나만이 진실이라고 우쭐거리지 않기를 다짐한다. 광신과 성역 앞에 떨고 있지만 말기를. - [憂弱]


추신 - 고종석 선생님은 원로 국문학자 김윤식의 표절 문제를 제기한 평론가 이명원이 겪은 수난을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의 구접스러움은 표절 자체에 있다기보다 표절을 대하는 방식에 스며 있는 ‘아름다운’ 인연의 그물에 있다(고종석, 「‘표절’을 대하는 태도」, 시사저널842호(2005/12/02).)”고 탄식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논문 조작 자체보다 논문 조작을 대하는 방식이 우리 사회의 성숙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조작의 유혹과 표절의 매력은 늘 아찔하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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