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어느 모임에서 김동원 감독의 영화 [송환]을 보고 쓴 후기이다. 영화를 마치고 나눈 대화를 통해 많은 생각거리를 얻었다. 스스럼없이 반북주의자(?)를 자처하는 나이지만 남북문제는 참 어렵다.^^;)

김동원 감독의 영화 [송환]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으로 칭함)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오르는 저란 녀석의 부박함에 말입니다.^^; 또한 영화 내내 계속되는 폭력에 대한 증언에서 인간 자유의지를 단죄할 권리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봤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는 이제 영화처럼 폭력을 통해 특정 의사를 강제하지는 못할 만큼 성숙했습니다. 작년 12월 북파공작특수임무동지회 소속 일부 회원이 경기 파주 보광사 경내에 있는 비전향 장기수 묘역을 훼손시키는 사건이 벌어지기는 했지만요.^^; 이네들의 불관용을 지적할 만큼 우리 사회가 넉넉해졌음을 실감합니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한 송환을 보면서 폭력과 광기의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폭압과 희생의 제의를 걱정하지 않을 만한 사회로 가고 있다는 안도감도 듭니다. 납북을 인정하지 못하는 장기수들이나 장기수 송환을 촉구하는 집회에 빨갱이들이라고 손가락질하던 분이나 모두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꼴 보기 싫은 것을 바로 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지만요. 영화 말미에 납북자 가족들이 장기수 송환 차량을 막아서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조금 비약인지 모르겠으나 피해자간의 대립을 통한 분할통치(divide and rule)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든 묘역 훼손 사건에서 남북 분단의 희생자인 북파공작원이 장기수의 고통은 헤아리지 못하는 비극이 수구기득권층의 분할통치전략에 부합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가져봤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상대방의 잘못을 이유로 들어 자신의 똑같은 잘못을 정당화시키는 냉전적 사고틀에 갇혀 살았다. 이것을 과감히 벗어 던질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바로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능가하는 '대한민국의 힘'이 아닐까 싶다.
- 유시민. 2000. 『WHY NOT?』. 개마고원. 248쪽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단상」 中


유시민 의원의 말씀대로 대한민국의 힘이 발현되어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상전향제도와 준법서약서 제도는 폐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실체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체제가 국군포로나 납북자를 용납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우리는 이 문제를 묵혀두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인권, 인도주의 측면은 엄격한 상호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사료됩니다. 부러 상호주의라는 용어를 쓰기는 했지만 이것은 미송환 장기수와 국군포로 혹은 납북자와의 일대일 교환 같은 완전한 등가교환을 추구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가령 적어도 북한 당국에 실체 인정과 실태 조사를 요구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솔직히 이 정도의 인도주의적 요구조차 체제 유지에 위해가 될까 걱정하는 사회라면 어차피 그 체제는 존재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북송을 희망하는 미송환 장기수를 대한민국 땅에 붙잡아둘 실익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자명한 만큼 얼른 보내드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봅니다. 북송된 장기수들이 훈장을 차고 인민의 영웅대접 받는 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대한민국의 비인도적 처사를 더 이상 비난할 수는 없을 터이니 그리 손해보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장기수들의 북송이 선심 쓰듯이 할 사안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합니다. 과연 조건 없는 북송이 북한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지키며 통일의 초석을 놓는 것인지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현대아산 김윤규 부회장의 퇴진을 둘러싼 현대아산과 북한의 갈등을 보며 기본적인 상도덕조차 준수하지 않는 상대와 무슨 사업과 지원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송환 장기수들은 기꺼이 보내겠으나 북한측의 태도와는 관계없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후속대책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문제의 주도권은 북한에 있다고 생각하고 손놓고 있을 만큼 한가로운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수분들이 그렇듯이 이분들도 대부분 고령입니다. 더군다나 시간을 끌면 끌수록 냉전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아킬레스건으로 두고두고 괴로움을 겪을 뿐입니다.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방해가 될까봐 이 문제를 후순위로 조정해서는 곤란합니다. 국익이란 명분으로 북한 땅에서 신음하는 대한민국인의 고난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비판해마지않는 국가주의자, 전체주의자와 얼마나 섬세한 차이가 나는 걸까요? 국익을 위한 이라크 파병이란 말에 언짢아했던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남북화해를 위해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덮어두는데 반대해야하는 게 일관된 처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담이지만 칸트는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에서 영구 평화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고 설파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확산과, 민주주의의 심화가 그것입니다. 슬프게도 북한은 이 두 조건 모두를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네요.^^; 북한은 오히려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가 주창한 국가의 안정을 위해 언제나 외부의 적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영원한 전쟁(perpetual war)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역시 극과 극은 통하나봅니다.^^ 북한의 습관성 몽니는 여러모로 불편하고, 이러다가 “영구적 평화”는커녕 “영원한 전쟁”에 함몰되어 있는 한반도는 “항구적 분단”이 고착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이념대결의 시대가 갔다고 화해협력의 시대가 무조건적으로 꽃피는 것은 아닙니다. 투철한 반공교육의 압박을 피하고 자란 젊은 세대들이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 덜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애호감이 더해졌다고 보기도 힘드니까요. 그렇기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속된 남북 화해무드를 잘 이어나가야 하겠습니다.


[송환]을 보며 남북관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꺼내볼 수 있어서 무척 유익했습니다. 아울러 전체주의의 끔찍함도 새삼 깨우쳤습니다. 일평생 전향하지 않고도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세상, 아니 궁극적으로는 전향과 비전향의 잣대보다는 다양한 개성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끝으로 한반도 땅에서 자유의지를 제 목숨처럼 여겼던 많은 민주영령들에게 존숭의 뜻을 표합니다. 쉽사리 망각하지 말고 함부로 무심하지 않기를! - [憂弱]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