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홍성욱, 2002, 들녘)을 읽고

정보화 시대가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거세다. 하지만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한 변화의 흔적은 짙다. 컴퓨터 자판을 통해 글을 써서 교류하는 전자우편, 채팅, 커뮤니티 활동이 자연스러워졌다.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을 인터넷 헌책방에서 가까스로 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은 가속화될 정보기술의 발전 속에서 어떤 삶의 양식을 품어야 할지를 다각도로 고찰하고 있다.


글쓴이는 진행 중인 변화를 "네트워크 혁명"으로 명명한다. 오늘날 변화의 원동력은 정보통신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파생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변화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의 혁명적 변화다(19쪽)"라고 선언한다. 결국 네트워크 혁명의 요체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기술적 혁신만큼이나 인문학적 사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엄청난 변화의 물결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은 인문학적 성찰과 반성의 힘이라는 것이다.


글쓴이는 쏟아지는 정보를 잘 골라내고 창조적으로 재결합하는 사람에 대해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찾은 정보를 거르고, 이 중 괜찮은 정보와 그렇지 못한 정보를 골라내며, 이를 조합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50쪽)"이라며 암묵적 지식을 체화한 사람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이를 위한 대학 교육 시스템을 개편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글쓴이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실용성이라는 잣대에 인문학은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이런 아쉬움 때문에 인문학적 기초를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인문학 지식에 대한 관심이 테크놀로지쪽으로 전이되었다고 해서 마냥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시집 한 권과 MP3 음악 모음 사이에 위계서열을 매기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글쓴이의 인문학 강조는 정보기술에만 매몰된 테크니션을 경계하라는 수준에서 받아들이면 될 듯 하다. 비단 인문학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순수학문 혹은 기초학문에서도 실력을 배양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글쓴이는 온라인을 통한 사회적 연결망을 주시한다. "전통적인 사회운동이 약화되는 반면 네트워크를 통한 새로운 사회운동이 부상(23쪽)"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글쓴이는 다양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 공동체의 힘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가상 공동체의 관계는 느슨한 경우가 많고, 오프라인의 뒷받침이 없으면 지속성을 가지기도 힘들다. 지난 2002 대선 때 인터넷이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말이 회자되었지만 인터넷과 종이신문이라는 대립항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 인터넷만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을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 혹자들은 인터넷이 인간의 감성적인 면에 호소함으로써 단시간에 파급력을 넓혀나가는 것을 우려한다. 가령 2004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탄핵표결 장면이 빠르게 전파되면서 많은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던 것도 그러한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상의 활동이 반드시 격정적이고,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문자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활자매체 대신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영상매체들이 득세한다해서 진지한 사고를 못한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보다는 상호조화를 통해 좀 더 명료한 지식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미 네트워크 혁명의 편리성과 유용성을 거부하고 살 수 없는 시대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재미난 정보들만 좇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만큼 진보했지만 거기서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트워크 혁명을 통해 "글로벌 문화의 잡종적 혼재 양식"인 "글로컬리제이션(134쪽)"을 지향해야한다. 정보화 사회는 힘의 논리가 아닌 문화와 지식의 다양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들 하는데 이는 네트워크 혁명과 무관하지 않다. 중급지식의 범람으로 고급지식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처럼 독창적이고 참신한 문화역량을 갖추는 것도 절실한 과제이다.


섞임과 스밈을 마다치 않고 열린 자세로 숙고해낸 균형감각만이 어떠한 변혁에도 흔들림 없이 인간다운 삶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상호연관과 상호의존이 일상화되면 "이타적 개인주의"까지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 극단적 대립보다는 화해와 협력의 자세가 널리 퍼지게 만들 수 있으리라. 네트워크 혁명은 결국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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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반전할까요 2006.01.17 19:15 Address Modify/Delete Reply

    디지털화된 정보들은 0과 1이라는 단순한 구성답게 이동이 자유롭지만 소거되기도 쉽습니다. 따라서 인터넷은 디지털정보의 거대한 집합소이지요. 시공의 제약이 무의미한 만큼 정보는 거대한 유동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보는 인식이 가능할때야 말로 비로소 그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정보의 홍수속에서 인식의 축복을 얻는 것은 일부에 불과 합니다. 따라서 즉각적인 인식이 가능하도록 정보는 스스로 말초적이 되려고 하겠지요. 작금의 인터넷문화자체가 즉각적이고 비논리적인 성격으로 기울어 있는 것은 이런 것에 기초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무분별한 정보의 범람은 오히려 필요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부작용을 부릅니다. 해외의 'wikipedia'나 우리나라의 '지식in'같은 경우는 네트워크 구성원(저는 네티즌이라는 말을 거부합니다.)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지만 실상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글자의 나열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접근성을 이유로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부르짖지만 일각에서는 정보의 쓰레기장으로 일컫는 이유는 여기에 있겠지요.
    반면에 미디어에 대한 사람들의 상호관계적인 자세는 인터넷이 낳은 가장 큰 수확입니다.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불합리들은 실상 '정보의 비대칭'에 근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비대칭을 극복해줄 채널로써 인터넷이 자리매김하게 되어 개개인은 '능동적인 구성원'으로써 자신을 다듬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익구님의 이 홈페이지만 봐도 자명한 사실이겠지요.

    여담이지만, 아직까지는 네트워크의 접근에 대한 여러가지 한계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웹상에서 평범한 개인이 컨텐츠를 구축하기는 어렵습니다. 컴퓨터라는 물건 자체도 여전히 불친절하지요. 이것은 네트워크가 현실과는 다른 공간처럼 인식이 되는데 한 몫을 담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서 저는 도래할 유비쿼터스혁명에 대해 기대를 걸어봅니다.

    잡상이 길었습니다. 익구님의 이번 노작에서 또 많은 것을 얻어갑니다.

  2. 새우범생 2006.01.20 12:53 Address Modify/Delete Reply

    네트워크 혁명이 상호연관과 상호의존을 긍정적으로 강화시켜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이 편리하다고 직접 뒤적거리며 찾아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는 게으름도 피우지 말아야겠고요.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적 사유 혹은 감수성이 가미된다면 우리 삶이 보다 윤택해지리라 봅니다. 무엇보다도 아마추어리즘으로서의 글쓰기가 확산돼 누구나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작문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는 앞으로 좀 더 고심해보고 싶은 문제네요.

    정보라는 바다에 불가사리가 넘쳐나고 썩은 해조류가 둥둥 떠다니면 좀 어떻겠습니까. 진주를 품은 조개도 있고, 은빛 나는 물고기 떼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다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될 정도로 수질오염이 되서는 안 되겠지요. 그만한 자정능력은 어느 정도 있지 않나 다소 낙관적인 견해입니다. 아니, 믿음이겠군요.^^;

    여담이지만 저는 유비쿼터스도 양날의 칼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조심해서 추진해야겠다는 소심한 생각입니다. 인간의 귀차니즘이 생활의 진보를 가져다주고 있지만 귀찮음이 덜어진 곳에 권태라는 녀석이 찾아올지도 모르고요.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 사는 저로서는 그 달콤함에 쉽사리 헤어나오지는 못하겠지만요. 여하간 제 조악한 글에 이런 감개무량한 댓글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