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세를 위하여!

사회 2006. 1. 27. 01:30 |
익구닷컴 방명록에 "생일이 빨라 학교에 일찍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올려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고심 끝에 독자맞춤형 줄기잡글(?)을 써보기로 했다. 이 글을 전국의 19.5세들에게 바친다.^-^


2005년 10. 26 재선거 때 2004년 6월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만 19세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만 18세에게 국방, 납세, 근로의 의무는 지도록 하면서 선거권은 이에 못 미쳐 다소 아쉽다. 2004년 중앙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세계 167개국 중 143개국이 만 18세 이상 선거권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좀 더 적극적인 하향 조정을 해봄직 했다. 미국의 독립혁명 당시 영국이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은 미국인들이 납부할 수 없다는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ve)"라는 원칙을 상기해보자. "권리 없이 의무 없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무만큼의 권리는 누려야 하지 않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하면 통상 성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고등학교가 청소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 나이는 만 18세다. 그러나 선거 연령 인하가 쟁점으로 등장하자 여야는 만 18세 인하와 만 20세 고수를 놓고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중간점인 만 19세로 절충하게 된다. 선거 연령 인하의 모티브가 된 민법개정안 성년 규정이 정치판 눈치를 보다가 만 19세라는 어정쩡한 기준을 내어놓았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특히 한나라당이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대승적 자세로 해결에 임하지 않아 밉살맞다. 앞으로도 현실과 법 사이의 괴리를 호소하는 볼멘 소리가 적잖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2001년 4월 국회를 통과한 청소년보호법 개정법률안에 따르면 청소년보호법 2조 1항에서 <"청소년"이라 함은 만 19세 미만의 자를 말한다. 다만, 만 19세에 도달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자를 제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단서 조항에서 연(年) 나이의 개념이 등장한다. 연 나이는 생일로부터 다음해 1월 1일을 지난 횟수만큼 나이로 인정해주는 새로운 나이 개념이다. 생년월일을 모두 감안하는 만 나이와는 달리 연 나이는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뺀 나이로 태어날 때부터 한 살인 한국식 나이에서 1을 뺀 개념이다. 예를 들어 83년 7월생인 나는 2006년 1월 현재 한국식 나이로 24세, 1월 1일이 지났으니 연 나이로 23세, 생일은 아직 지나지 않았으니 만 나이로 22세가 되는 셈이다.


연 나이의 도입은 만 19세 미만과 만 18세 미만으로 혼재되어 있던 청소년 관련 법률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청소년 보호와 관련해 각종 법안마다 다르게 규정되어 있는 성년 규정이 연 19세 미만으로 조정되었지만 여전히 논란의 불씨는 살아있다. 2005년 12월 청소년위원회는 국회에서 심의 중인 영화 및 게임 등에 대한 법률의 청소년 연령 기준을 청소년보호법에 따른 연 19세로 통일할 것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및 법제사법위원회에 전달했다. 문광위 소위 심의 과정에서 만 18세로 하향 조정한 것을 당초 정부안대로 해달라는 요구다. 문화관련 법령만 만 18세인데서 오는 법체계적 불일치를 해소하고 청소년보호정책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제법 호소력 있다.


민법상 성년은 만 19세이며, 청소년보호법상 성년은 연 19세인데다 문화관련 법령은 만 18세여서 엄청난 혼선을 빚고 있는 만큼 법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개정은 불가피하다. 영화가 술이나 담배와 같은 청소년 유해물과 다른 문화매체라는 주장, 단속과 규제를 용이하게 하려고 기준을 통일하는 것이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항변에 동감하기 힘들다. 술, 담배와 영화는 선호의 문제지 우열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문화예술의 열외성(列外性)을 주장하는 논리는 위험하다. 물론 그렇다고 문화 향수권 대상을 줄이는 것이 마냥 바람직하다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이 일련의 논란들이 만 18세를 관철시키지 못한 후유증인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문화관련 법령만 예외로 하기보다는 민법, 청소년보호법 전반의 성인 규정이 하향 조정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문화향유권만 특출나게 소중한 건 아니다.


연 나이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경계선에 있는 빠른 연령대 사람들, 한국식 나이 기준 19.5세들의 고초다. 매년 새해마다 반복되는 19.5세 경계인들이 겪는 곤란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5세들이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점이다. 청소년보호법이 개정되기 전에 만 19세 규정이 적용될 때는 그 폐해가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만 19세에게 술을 파는 불법 업소가 오히려 흥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Bad money drives out good)하는 현상, 즉 범법자가 준법자보다 유리해지는 경우가 횡행했으리라. 연 19세 규정으로 인해 그나마 범법자 대량 양산을 줄인 것은 다행이지만 19.5세들이 겪는 소외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범법을 저지르는 동지(?)들이 대폭 줄었으니 또 얼마나 외로울까!


19.5세들은 소수자가 된 것도 서러운데 교통비등은 성인비용을 내며 청소년 할인혜택을 못 받는다. 연 19세 규정에 따르면 법적으로 엄연히 청소년인데도 말이다. 권한을 주는 건 더디면서 혜택을 앗아가는 건 재빠른 것처럼 약오르는 일이 어디 있던가. 2006년 한해 동안 빠른 88년생들은 얼마나 많이 법을 어겨야 할지 상상하면 아찔하다. 자기 자신이 이런저런 술자리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느낌은 무척 구접스러우리라. 문득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새내기 시절을 보내던 2002년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한답시고 모였을 때가 떠오른다. 입장 가능한 술집을 찾아 전전긍긍할 때 84년생 친구들이 괜히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종국에는 짜증을 내던 기억이 선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술 한잔 나눌 자리를 위해 거리를 헤맬 19.5세들이 안쓰럽다.


이 문제에 있어서 해법이 새로울 건 없다. 이건 실천의 문제다. 빠른 생년의 취학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그 연배의 동기들과는 똑같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맞다. 빠른 연령대의 취학 능력을 인정한 마당에 그들이 성년으로서 누릴 권리를 한해씩이나 늦추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제 연 19세 규정의 사각지대에서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 19.5세에게는 예외적으로 연 19세 규정을 적용하지 말고 만 18세에 도달하는 해의 3월 1일 정도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만 하다. 19.5세에게는 특별히 만 18세 규정을 적용하는 방안도 있겠으나 과도한 특혜로 여겨질 수 있는 만큼 조금 양보해서 3월 1일로 일괄 조정하자는 것이다. 대학생의 경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2월에 열리니 범법의 유혹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연 나이 개념상 87년 12월생과 88년 1월생이 1년이나 차이 나는 오류를 시정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다만 19.5세는 어디까지나 제도권 교육이나 적어도 그 동등 수준의 학력 개념을 염두에 둔 개념이다. 이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극소수의 청소년들은 열패감을 가질 만도 하다. 이런 문제까지 깔끔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성인 규정과 청소년 기준을 만 18세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어렵다면 19.5세의 자유와 권리의 제재를 덜어주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양자간에 자유와 권리가 현저히 차이 나는 문제에서는 기왕이면 그 자유와 권리가 큰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기 일쑤이지만 범법이 넘쳐 흐른 다음에 퍼덕거리는 건 민망한 일이다. 연 19세의 입법취지에 19.5세도 포함하는 것이 도리다. 이제 19.5세에게 멍에를 벗게 해주자. - [憂弱]


※ 미네르바의 올빼미란 지혜는 세상사의 변화가 가라앉아 그 세계를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때 비로소 발견 가능하다는 헤겔의 말이다. 대다수 학문이 이미 일어난 경험을 이론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실정을 빗댄 경구다. 진리와 진실에 대한 이성적 인식은 한 시대가 끝날 무렵에나 가능하다는 체념을 하거나, 불의가 휩쓸고 지나간 이후에 정의 실현이 뒷북처럼 나타나는 현상을 투덜거릴 때 많이 쓰인다. 굳이 이런 설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다섯 해 전쯤 처음 이 근사한 표현을 접하고 나서 뜻을 알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던 옛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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