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기 1부

문화 2003. 8. 1. 03:52 |
(2003년 7월 21일부터 6박 7일의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익구가 허접한 여행기를 써봤다)

21일 밤기차로 출발해서 27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싣기까지 6박 7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여행은 어쩌면 집의 소중함을 느끼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밖으로 나다니는 것에 엄청난 에너지 소진을 느끼는 녀석에게는 이번 여행은 참으로 각별한 감회에 휘감기게 한다. 아직도 여독이 덜 풀렸는지 자꾸만 늘어지는 나른한 몸을 추스르며 조촐한 여행기를 열어본다.



일주일간의 여행이 시작되는 7월 21일에는 마냥 늑장을 부렸다. 밤 11시 40분 기차다보니 낮잠에 흠뻑 취해 있다가 주섬주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약속시간인 4시를 훌쩍 넘겨 5시가 더 넘어서야 약속장소인 학교에 겨우 도착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며 조금은 축축한 날씨가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함께 떠날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이래저래 시간을 때우다가 9시 즈음에서 출발지인 서울역으로 향했다. 호남선을 타는 것은 처음이라서 약간 설레는 마음을 가져보려고 했으나 역시나 그다지 설레지는 않는다. 재미난 것은 무궁화호를 탄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고등학교 엠티 간답시고 통일호 입석에 시달리다가 안락한 무궁화호에 몸을 실을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피식 웃어 보였다. 새로운 여정에 대한 설렘보다는 보다 편안한 기찻길에 대한 만족이 지배하는 나를 애써 부정하지 말자.



11시 40분이 되어 목표행 무궁화호 열차가 출발하였다. 심야 기차라 제법 운치를 느껴보려고 했으나 차창에 비추는 야경은 그리 멋있지 않았다. 나름대로 멋을 내려고 책을 펴들었으나 조명이 너무 어두워 서문만 눈에 힘주고 읽다가 집어넣고 스르르 잠을 청했다. 대전 근방을 달리고 있을 때 눈을 잠깐 떠보니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잠시 창 밖을 응시해봤으나 선로 밖의 풍경은 어둡기만 했을 뿐,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어서 시흥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또 졸음에 호응했다. 어느덧 충청도를 지나 전라도로 접어들었다. 그제서야 내가 호남선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열차 안의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열차에서 호남사람들이 꽤나 있음을 느꼈다.



친가, 외가가 모두 영남이고 비록 5개월 살다가 서울로 올라오기는 했지만 나도 엄연히 대구가 고향이다. 솔직히 호남사람들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접하지는 못했다. 애써 부정하지만 나도 조금은 호남에 대한 편견에 물들어 있다는 반증일까. 갑자기 무슨 적진에 뛰어든 사람마냥 경계심이 마구 발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생김새를 관찰하며 뭔가 트집을 잡을 것이 있나 승냥이처럼 눈을 돌려대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괜한 긴장을 품고 있는 눈에 힘을 빼고 창 밖을 국면전환용으로 돌아봐야 했다. 그간 내게는 없다고 믿고 있는 영남인으로서의 프레임이 사실은 없던 것이 아니라 애써 감춰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호남지방에 발을 디딘 적이 없었다. 지역주의 타파를 입으로 외치고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하며 정서적으로 半호남인이라고 여기던 내가 보였던 경계의 눈초리는 처음 달리는 호남선의 공기만큼이나 낯설었다. 전라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질타하던 나는 내 실존의 떨림 앞에 무척이나 놀랐다. 역이 몇 개 지나쳤지만 개운치 못한 기분이 계속되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즐거운 여행길에 이게 웬 낭패란 말인가. 궁하면 통한다고 약삭빠른 잔머리가 다행스레 작동해주었다. 결국 미묘한 낯설음과 찌푸림에 관대하지 못할 정도로 호남에 대한 애정이 두텁다는 해설을 늘어놓았다. 지역차별의 굴레와 부당한 인식 앞에서 半호남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유효하다는 다짐까지 하는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이 날의 다짐은 분명 무언가 부재 하는 것을 메우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잠결에 괜스레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나니 잠이 확 달아나서 좀처럼 눈을 붙이기가 힘들었다. 결국 아무런 생각 없이 차창을 바라보며 어둠을 벗하는 수밖에 없었다. 22일 새벽 5시 15분에 종착역인 목포역에 당도했다. 아침 9시 제주도로 가는 배를 기다리기까지 무척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북적이는 여객선 터미널의 습한 기운에 한창 시달리고 있을 때 다행히도 승선 시간이 되었다. 무척이나 큰배에 올라타 제주도를 향한 바닷바람을 맘껏 쏘이니 무척 유쾌했다. 배의 속도와 바닷바람이 합쳐지면서 무척이나 강한 바람에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지만 갑판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 들였다. 그러나 바람은 무척 세차게 불었고 비까지 조금 쏟아져서 재빨리 사진 몇 장을 찍고는 3등 객실로 돌아왔다. 배 멀미는 없었지만 배의 흔들림에 책을 읽기는 불편해서 머리맡에 두고 몸을 누이니 기차에서 말끔히 없애지 못한 졸음 녀석이 찾아왔다. 차멀미, 배멀미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런 것은 없다. 다만 졸음이 그 자리를 대체할 뿐이다.^^



오후 1시 30분이 되어 제주도항에 도착했다. 한나절을 소비하며 달려온 제주도에 발을 디디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비행기를 타는 것과의 손익계산이었다.^^; 왕복하면 거의 하루 꼴이 되는 제주도 길은 조금 비싸지만 시간을 현격히 줄일 수 있는 하늘길을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남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주판을 굴려댔다. 제주도항에서는 제주 하이킹 직원분이 나와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참 잊고 있었다. 제주도를 온 목적이 자전거 하이킹이었다는 것을. 자전거라고는 초등학교 시절 잠깐 타본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에 몸서리치기 시작했다. 뜨아아~ 여기서 한 명의 친구가 더 합세해서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일행이 되어 페달을 밟으러 제주 하이킹 본부로 향했다.



여기서 함께 온 친구들을 소개해야겠다. 세일. 그는 대학 새내기시절 2학기가 되어서 알게 된 친구다. 내 기억으로는 세일이가 먼저 반갑게 아는 척을 해주면서 가까워지게 되었다. 본인은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자책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소수의 친구들에게 진정으로 잘 대해줄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친구다. 원혁. 그는 세일이와 단짝으로 같이 다니다보니 세일이를 알게 된 뒤 함께 알게 되었다. 과묵하지만 그 뒤에 감쳐진 촌철살인의 능력이 대단하다. 세일이와 더불어 성실함으로 나를 감복시킨다. 병채. 그는 1학년 2학기를 휴학하고 뉴요커로 살다 왔다고 한다. 뭐 그 덕분에 아직도 대학 새내기 시절을 만끽하는 행복한 친구다. 세일, 원혁이랑 마찬가지로 어눌한 편이지만 무척이나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자존심도 강한 친구다. 병승. 원혁이 친구로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된 친구다. 다른 네 명과는 달리 무척 쾌활하고 이야기도 잘 풀어내는 친구다. 이 친구의 말들에 맞장구 치는 것만 해도 숨이 찰 정도로 여행기간 내내 활력을 불어넣어 준 친구다.^^



이렇게 네 친구와 나를 더해 다섯 남자들이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위해 뭉쳤다. 솔직히 난 자전거로 제주도 완주하려는 목표가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고 발을 동동 굴렀다. 짐짓 태연한 척 했으나 걱정이 태산같았다. 일단 두발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지부터가 문제 아닌가. 지금도 그렇지만 예체능 분야에는 천부적 무소질로 일관했던 나는 특히 운동 분야에서 그 특질이 두드러졌다. 내가 게으름을 예찬하고 집구석의 사색을 옹호하는 것은 운동을 싫어하고 몸을 움직이며 떨구는 땀방울에 대한 혐오감에 기인한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초등학교 시절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를 힘겹게 타다가 정말 어렵게 보조 바퀴를 떼고 두발 자전거를 타려고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이제 겨우 두발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즈음 자전거를 도난 당하는 바람에 그 후로는 자전거를 발에 대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 앞에 놓여진 두발 자전거의 압력이 나를 짓눌렀다. 뭐 그래도 한 번 타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거라며 격려해주는 친구들을 위해서도 이를 악물고 자전거에 올랐다. 몇몇 오르고 내리기를 씨름하다 페달에 발이 긁혀 생채기가 났다.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은 않고 얼른 자전거를 운전해야겠다는 일념에 휩싸였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친구들이 내 짐을 나눠서 들어주었다. 어찌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사람은 자기가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수준에서는 별다른 감정이 일어나지 않지만, 거기서 나아가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는 미안한 감정이 마구 솟아오르는 것 같다. 제 무능을 합리화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넘어 타인의 선행을 입을 때는 변명하기가 난처해지는 것은 그래도 낯짝 있는 인간의 도리다.



내 자전거를 더없이 가벼워졌지만 내 마음은 좀 더 무거워졌다. 자전거도 잘 못타는 주제에 짐을 왕창 챙겨온 내가 얄미웠다. 이런 미안함, 고마움을 달래기 위해 자전거 페달과 좀 더 익숙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덕분에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가 보였다. 물론 좀만 언덕이 있다거나 좁은 길이 나올 때면 자전거를 멈추는 바람에 일행의 속도를 자꾸만 떨어뜨렸다. 대학 새내기시절 현대기업경영 생산관리 파트에서 나왔던 명제가 나를 포함한 친구들의 머릿속에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가장 늦은 것은 전체 속도를 좌우한다” [더 골](The Goal)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행군폭을 최소화하면서 행군의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는 대열 앞에 있는 이들이 가장 늦은 녀석보다 속도를 더 내지 못하도록 하는 해법을 제시한다. 좀 더 응용하면 원자재 투입시기와 병목자원을 연결시키는 신호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각설하고.



어쨌든 그 개념들을 떠올린 친구들이 합심해 나를 선두에 두고 행렬을 줄이려는 숱한 노력을 하지만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임을 꽤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여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여정의 7할 이상을 내가 꼴찌로 달렸으니까.^^; 친구들에게는 추월의 쾌감을, 개인적으로는 절대고독의 시간을 가지게 하는 기회가 되었으니 그럭저럭 윈윈(win-win)전략이었다고 자부한다.^^ 몇 차례 오르막과 내리막을 접하면서 어느 순간 내가 그래도 자전거맹(盲)을 벗어버렸구나를 느끼게 된 계기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인식의 차이를 감지한 순간이다. 처음에는 가속이 붙는 내리막이 위험하기도 해서 브레이크에 손을 대고 긴장하며 가는 터라 싫었다. 그러나 몇 번 지나다보니 페달을 더 밟아도 영 신통치 않게 올라가는 오르막이 더 싫어지고 내리막을 기다리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견한다면 불경하다는 소리를 좀 듣겠다만...



일주도로에서 해안도로로 나가니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졌고 거기서 자전거에 완전히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평소 운동을 등한시하던 내 몸뚱이는 여기저기 피로감을 호소했다. 애완견 야니를 데리고 산책 다니는 것마저 없었다면 진작에 나가 떨어졌으리라.^^; 해안도로는 짠기운이 느껴지는 바닷바람이 선선히 불어왔다. 처음에는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도 눈길 한 번 주지 못했지만 자전거에 익숙해지면서 주위 풍경을 힐끔거리며 감상했다. 바다를 보면서도 달려가 발이라도 담그고픈 욕망이 거의 일지 않은 딱 그만큼을 나는 늙어버렸는지 모르겠다. 결국 이번 여행에서 지나친 숱한 해수욕장에서 발 한 번 담그지 않고 그저 파도만 감상하고 돌아왔다.^^;



오후에 출발한 길이라 벌써 어둑해지려고 하고 있어서 우리는 초조한 마음이었다. 서두르는 친구들의 바퀴 굴러가는 것을 따라잡지 못하던 나는 꽤나 뒤쳐지게 되었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급하게 달리다가 결국 옆의 풀밭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속도를 냈다고 해봤자 워낙 저속이었다 보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던 다른 하이킹 여행객들의 안부를 묻는 것을 접하니 얼른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왼쪽 발의 뜨거운 기운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 수밖에.



밤 9시가 되어서 한림읍 협재해수욕장 근처에 병승이가 아는 선배 집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뭐 다들 오랜 자전거와의 실랑이에 지쳤겠지만 나는 특히나 녹초가 되었다. 점심도 안 먹고 달린 터라 선배 집에서 만들어주신 국수 맛은 달콤했다. 저녁을 먹고 선배형과 병승이의 담소를 듣는 것으로 한참을 보냈다. 특히 술을 매개로 한 이야기들은 재미난 이야기의 단골소재이다. 기발한 술버릇 대목에서는 피곤에 찌든 표정들을 잊고 파안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대학 친구들과 비단 술자리가 아니라도 재미나게 보낸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반성되었다. 캠퍼스의 낭만이 사라진지 오래라 지만, 대학살이 알콩달콩 재미나게 보내는 이야기들 들으며 침만 흘려대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한바탕의 이야기마당도 파하고 잠자리를 정리하면서 세일이와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정말 도저히 완주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상황을 보고 둘이 빠져서 관광이나 하자는 것으로 대략 의견일치를 보았다. 세일에는 만약에 하는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무척이나 심각하고 딴에는 생존의(?) 절박함에서 우러나와 다른 여행 시나리오의 나래를 펼쳤다. 나 같은 자전거 초심자가 그래도 적어도 평균 이상인 자전거 실력의 친구들과 자전거 완주를 도모한다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라며 도덕의식을 들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일단 두 발 뻗고 쉬고 보자. 그러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리며 속삭여봤다.



‘그래, 모두 내일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서 생각하기로 하자. 그러면 견딜 수도 있을거야.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


--- 자전거를 벗삼아 떠난 제주도 여행기 2부를 기대하시라...^^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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