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최초의 국무위원 국회 인사청문회 진통 끝에 마무리되었다. 통과의례, 요식절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거세지만 일단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앞으로 대통령의 인사권을 얼마나 제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섬세한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국민연금 미납 등은 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것으로 청와대 검증과정에서 놓친 부분을 국회에서 찾아낸 성과도 적잖았다. 다만 장관 내정자가 청문회를 거친 뒤 최종 임명되기까지 너무 오랜 기간 업무 공백을 빚는 점은 조속히 보완해야할 것이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에 대한 검증은 혹독했지만 상대적으로 정책과 전문성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여야는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기세 싸움으로 일관해야 했다. 시종일관 제 편을 들지 않고는 못 배길 살벌한 분위기였다. 유시민 청문회에서 대체로 질문이 답변보다 길었는데,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인고의 방어도 눈물겨웠지만 한나라당의 똑같은 시비 또 걸기도 안쓰러웠다. 아무리 양측이 정쟁만 주고받았다고 해도 한나라당은 국무위원 인준 여부를 국회에서 결정하도록 국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에 신중해야 한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헌법적 문제가 결부되어 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유시민 내정자의 태도 변화가 화제였다. 겸허한 자세로 대부분의 질책에 수긍하며 몸을 낮춘 그의 모습이 조금 당혹스러웠다. 한신(韓信)이 기어서 남의 바지가랑이 밑으로 지나갔다는 과하지욕(袴下之辱)의 고사가 떠오른다. 굴욕을 참아 그가 품은 뜻을 펼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예의 총기와 재기가 흐려진 듯 보여서 아쉽다. 이제 정말 그가 "나는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없을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인물을 국무위원으로 보내는 대신 자유롭고 재기발랄했던 스승을 잃은 것만 같다. 여하간 유 내정자의 고초를 통해 국무위원 되기의 엄중함을 많이들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


유시민 내정자는 청문회를 마치며 도종환의 시「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낭독했다.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라는 구절에 가슴이 아렸다. 노무현 후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이래로 많은 오해를 받고 숱한 낙담을 겪었을 유 내정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가 시니컬해졌다면 절망에 익숙해져 염세주의의 바닷물을 들이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왕따를 당해 괴로울 때 나마저 손쉬운 손가락질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편애를 확인한다. 어떻게 나마저...


유 내정자가 참여정부와 우리당을 위해 형극을 마다하지 않은 걸 기억한다. 그런데 이제 그가 맡을 국민연금 개혁은 욕먹을 일이 태산 같다. 그 저주와 증오를 어떻게 견뎌낼지 걱정이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을 그와 함께 얼마나 비를 맞아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엄살을 좀 부려봤지만 그가 초심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그를 지지하겠다. 살아있는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기란 이렇게 어렵다.^^ - [小鮮]


나는 범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비치듯, 이탈리아의 피렌체가 아테네의 문화를 받아 빛났듯이, 남의 광영을 힘입어 영광을 맛보는 것을 반사적 광영이라고 한다.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이 반사적 광영이 없다면 사는 기쁨은 절반이나 감소될 것이다.

- 피천득. 2002. 『인연』. 해냄. 199쪽. 반사적 광영反射的 光榮 中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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