戀人多望愛難成

잡록 2006. 2. 21. 02:15 |
자줏빛 바윗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라.



나는 헌화가(獻花歌)의 3행의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는 조건절과 4행의 꽃을 바친다는 은유적 표현을 맛깔스럽게 여긴다. 내가 헌화가를 좋아하는 까닭은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도 이렇게 낭만적이고 천진난만한 삶을 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절벽 위의 꽃을 꺾어다 바칠 수 있는 열정보다 대단하지만 그보다 더 부러운 것은 노래 하나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짙은 여운을 남기는 풍취다. 내가 애틋하게 간직하고 있던 헌화가를 써먹을 날이 오리라 믿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헌화가(獻花歌)의 마음을 그리며 내가 선물했던 헌화가 패러디는 다음과 같다.


번잡한 세상사에
읽던 책 쓰던 글 미루게 하시고
나를 아니 맵살스러워하신다면
술잔 따라 나누오리라.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세상의 통상관념을 지그시 무시해가며 알콩달콩 지내고 있다. 내가 편애하는 것들이 시나브로 늘어가서 두렵고, 죄다 책임질 수 있다며 호방하게 웃어 넘길 배짱은 없다. 다만 선한 인연을 위해 내 자신을 절차탁마하고 싶다. 연인은 주자의 권학시(勸學詩)를 패러디 해 내게 권애시(勸愛詩)를 선보였다.


戀人多望愛難成(연인다망애난성)
靑春不來拜別悔(청춘불래배별회)
珍重交際相悅愛(진중교제상열애)
於焉之間詣而立(어언지간예이립)

연인은 바라는 게 많고 사랑은 이루기 어려우니
젊음은 다시 오지 않고 헤어지면 후회하게 된다.
소중히 여기며 사귀고 서로 아끼고 즐거이 사랑하면
어느새 이립의 때가 오게 될 것이다.


도입부 모티브는 주자의 우성(偶成)이라는 칠언절구에서 따왔다. 내가 중학교 한문시간에 배운 뒤 즐겨 읊는 한시인지라 연인께서 패러디 대상으로 선정해준 셈이다. 내가 헌화가 패러디할 때는 내가 좋아서 한 건데 이번에도 내가 좋아하는 시를 선물로 받았으니 망극한 일이다. 우성(偶成)은 우연히 짓는다는 뜻으로 즉흥시를 말한다. 3, 4행의 미려한 구절을 우연히 지었다고 하니 그 겸손이 오히려 얄밉다.^^; 연인이 곱게 써 보내준 시는 힘써서 지었다라는 뜻으로 면성(勉成)이라고 불러봄직 하다. 참고로 주자의 권학시는 다음과 같다.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계전오엽이추성)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연못가의 봄 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소리를 내는구나.


연인은 내 소소한 일상을 궁금해하지만 사실 이런 것도 얼마든지 자질구레한 일상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게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최고위원이 신중하고 점잖은 행보 때문에 "김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왜이리 부러운지 모르겠다.^^; 가벼워서 어디로 날라 가야할지 모르는 세태에 진중한 교제를 꿈꾸는 건 아름다운 사치다. 戀人多望愛難成(연인다망애난성)... 참 명문이다.^^ - [小鮮]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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