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잘났다는 인걸들이 몰려 있는 정치판에서, 배울 만큼 배웠다는 수재가 그득한 정치판에서조차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우가 많다. 진중권 선생은 글쟁이로서의 좌우명으로 프리드리히 쉴러의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하는 얘기를 해야 한다"는 말을 꼽았다. 사람과 함께 하기를 좋아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품은 사람이라면 이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곡학아세(曲學阿世)가 별 거 아니다. 아군에게 듣기 좋은 유리한 말들만 골라서 하는데서 시작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이적행위는 아닌지 염려하고, 그간 나를 입맛에 맞게 여기던 사람들이 떠나가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할 때 곡학아세의 유혹이 스며든다.


나는 적어도 대중의 환호에 얽매여 나를 버리지 않을 자신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내가 만약 거대한 조직에 투신하게 되었을 때 조직의 논리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나만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을지 점점 확신이 사그라진다. 그간 내 편에 넉넉하고 저들에게는 깐깐하게 대한 적도 제법 있었으며, 내 탓을 남 탓으로 교묘하게 치환하는 기지에 스스로 흐뭇해하기도 했다. 눈앞의 세속적 성취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내 편을 거스르기는 뼈를 깎는 아픔이다. 진리를 독점하라는 유혹은 늘 아찔하고, 광기의 국물은 늘 달콤하다.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우직하게 원칙으로 돌아갈 때 결국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은 얼마나 흐릿한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지더라도 아름다운 패배일 수 있다"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말은 큰 울림을 준다. 지켜야할 것을 지키는 굳건함, 남아 있어야 할 때 남아 있는 진득함,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수 있는 산뜻함을 고루 갖추는 것은 자신의 원칙을 얼마만큼 애호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어차피 늘상 승전고만을 울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기왕 지는 거라면 아름다운 패배가 되는 게 좋지 않을까. "스스로 반성해서 정직하다면 천만인이 가로막더라도 나는 갈 것이다(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는 맹자의 말씀은 아름다운 승리보다는 아름다운 패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나는 물론 최대한 이기는 싸움을 하고 싶다. 온전히 내 자신으로 승부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우아해져야겠다. - [小鮮]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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