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누나가 제안하신 긴급 설문 조사 "이번 출교 조치 정당하다고 보십니까?"에 답을 고르기가 쉽지 않아 고심하다가 얼떨결에 잡글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경영飛반 커뮤니티에 동시 게재합니다.


<고려대학교 출교 조치 유감(有感)>
"언짢은 마음"이라는 뜻의 유감(遺憾)이 아닌 그냥 "느끼는 바가 있음"을 뜻하는 유감(有感)입니다.^^;


4월 19일 학교 당국은 교수 억류 사건으로 징계 대상에 오른 학생 19명 가운데 7명에게 출교(黜校) 조치를 내렸습니다. 출교란 퇴학(혹은 제적)과 달리 징계해지 사유가 발생하더라도 재입학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징계입니다. 출교를 당하면 영구적으로 학적이 삭제되어 재입학과 편입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출교 징계를 내린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감금하고 스승은 제자를 학교에서 영구추방하는 모양이 민망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생소한 출교 조치가 과연 필요한가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일단 학생상벌에 관한 시행세칙을 존중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태의 발단은 병설 보건전문대를 보건과학대로 승격해 고대로 편입시키는 과정이 매끄럽지는 못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통합 결과 06학번 보건과학대 새내기 300여명은 고려대생이 됐으나 2~3학년 1,200여명은 여전히 보건전문대 학적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4월 안암배움터 총학생회 재선거에서 일부 후보진영이 보건전문대 2~3학년도 총학생회 선거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학교측은 학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투표권 여부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일부 학생들은 지난 5일 보직 교수님을 억류한 채 농성을 벌였습니다.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총학생회 재선거를 실시하면서 가장 중대한 선거권자 획정을 너무 소홀히 했습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칙 4조 1항은 "정회원은 안암배움터 재학생 전원"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 만큼 보건전문대 2~3학년에게 투표권을 주는 문제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합니다.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의 06학번부터 투표권을 가지는 것이 총학생회칙 규정에도 맞다는 수많은 학우들의 지적이 잇따르자 재선거가 종료된 후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열어 보건전문대 투표 유효 여부를 정한 것은 한 편의 코미디였습니다. 관련 당사자들은 충분히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여하간 작년 5월 이건희 명예박사 수여식 사태 이후 다시금 학내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스스로 살을 도려내는 비장한 각오로 징계를 결정했다"는 학교측의 항변을 상당수 학우들은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대미문의 출교 조치가 너무 가혹하고 비교육적이라 비판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세인에 입에 그다지 화목하지 못한 모습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 학교측으로서도 여러모로 부담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학교측의 대응에 아쉬운 점도 적잖습니다. 천려일실(千慮一失)이며, 천려일득(千慮一得)이라고 했습니다. 학교측이 학생들의 요구 중에 수긍할 만한 것은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모습을 그다지 보여주지 못한 점도 균형감각을 잃은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도 일방적이었지만, 학교측도 만만치 않게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교수 억류 사건은 "목적이 옳다고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지루하면서도 위대한 명제를 끌어와서 간단히 정리해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중징계가 능사였냐는 물음 앞에서는 무척 곤혹스러워집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작년에 곤욕을 치르면서도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며 젊은이들의 열정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혹자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마뜩잖게 여겼지만 삼성측의 그러한 아량이 문제 확산을 막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사안이 다소 다르지만 스승이 제자를 매몰차게 내치는 모습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 같습니다. 제자의 잘못을 자신의 허물로 삼는 참스승의 모습을 거론하고도 싶고, 그러기에는 제자의 잘못이 막중해서 안타깝고... 참 난감합니다.


징계의 적절성 여부를 놓고 두 가지 기준을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어떻게 했는가와, 지금 현재 다른 대상에게는 어떻게 하는 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4년 본관점거 투쟁 때도 17명의 징계대상자 명단 발표가 있었고, 2005년 이건희 명예박사 학위수여식 사태나 지난 2월 입학처 점거 사태에도 징계 이야기가 나왔으나 그 후 미미하게 처리되거나 철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조치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징계 수위가 출교 7명, 유기정학(1개월) 5명, 견책(1주일) 7명으로 편차가 큰데 그리 명확한 설명이 없습니다. 물론 징계수위는 차이가 나게 마련이지만 출교와 견책 사이는 너무나 가파른 차이가 있어서 말입니다.


본관 점거를 했던 학생들의 불관용적 자세를 저도 관용하지 않습니다. 그네들에 대한 징계에 상당히 명분이 있다고 보며 거개 동감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그간 유명무실하던 징계 조치를 갑자기 엄히 적용할 만큼 패륜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교수님들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제 일개인은 끝끝내 이번 사안에 한해서만이라도 출교를 거두는 것이 좋겠다고 입장 정리를 했습니다. 앞으로 징계 국면에서 상대적 아니 절대적으로 약자인 학생들의 처지를 고려할 때 징계를 통한 학생 계도는 조심하면서도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간 다소 무원칙적이었던 징계 처리가 자리를 잡아야겠습니다. 좀 더 체계적이고 투명한 징계 절차가 확립되고 징계 수위가 예측가능할 정도로 공신력을 가지길 바랍니다.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에서 진시황이 자국 신하들이 아닌 빈객들을 추방하려 하자, 초나라 출신의 이사가 그 부당함을 간하며 했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처럼 크게 될 수 있고, 강과 바다는 작은 냇물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처럼 깊게 될 수 있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는 말입니다. 이에 진시황은 축객령(逐客令)을 철회하고 오히려 이사를 중용함으로써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룩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간 일련의 학내 갈등 속에 서로에 대한 열린 마음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고향을 한없이 사랑합니다. 그 사랑은 편협하거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너그럽고 섬세하며 온유해야겠지요. - [小鮮]


추신 - 이번에도 참사 수준의 횡설수설인 것을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이번 사안에 대해 확언을 하기가 힘들고 어려웠어요.ㅜ.ㅜ
Posted by 익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기준 2006.04.25 00:04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참정연 새참회원 기준입니다.
    글을 읽어보니 상황에 맞는 올바른 기준이 있어서 학생들이 징계를 받았다기 보다는
    학교측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권위의 어느 선이 침범당했다고 생각해서
    괘씸죄로 학생들을 보복했다고 보여집니다.

    만약 학교가 일관된 처벌규칙으로 학생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교내에서 일어나는 학생의 교내점거, 교직원 감금, 혹은 폭행이나 기타 구속행위의 책임을 규정해야 할 겁니다.
    또한 학생들이 그런 불법행위를 하지 않고도 교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도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고려대학교는 그런 시스템의 정비없이 두리뭉실하게 흘러가고 있군요.

  2. 小鮮 2006.04.25 00:24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 누추한 곳까지 들러주시다니요.^^; 징계 기준이 두루뭉술하다는 점은 동감합니다. 하지만 징계 대상이 되는 행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도 민망한 일입니다. 가령 본관 점거 몇 일 이상, 학교기물 파손 얼마 이상, 교수에 대한 과도한 항의의 정도 등을 일일이 명시하기 어려운 점이 적잖죠. 그래서 전례 같은 것들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출교 같은 최고 징계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전례 없이 강한 징계를 지지하는 학우들의 의견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네요. 학생의 도를 넘어선 행동이라는 질타가 거세거든요. 더군다나 교수 억류 사태를 일으킨 학생들의 요구안도 많은 동감을 얻지 못하는 형국이라서요.

    솔직히 제 자신도 그네들이 구박받는 소수파에 천애의 약자가 되었다고 해도 연민의 정 이상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제 모자란 성정 탓이겠지만... 저뿐만 아니라 상당수 학우들이 그리 대단한 것을 기대했다기보다 그저 한줌의 반성을 기대했었는데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