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응원단의 슬픈 코미디를 기억하자

대구 여름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들어간 환영 현수막을 걷어 가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 현수막 한쪽에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는 사진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응원단원들은 현수막을 떼어내면서 장군님의 사진을 어떻게 비에 젖게 할 수 있느냐, 장군님 사진을 가로수에 낮게 걸어놓을 수 있느냐며 항의했다고 한다. 또 일부는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번 해프닝은 무척이나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사담 후세인이 감동 먹고, 조지 부시가 침을 흘릴 폭압적 전체주의 사회의 극치를 보는 듯했다. 이런 이들과 통일을 논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껴지기까지 하다.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하고, 상대주의를 들먹이고 싶어도 보편적 상식의 한계를 훌쩍 넘어버린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할말을 잃게 한다. 인간의 내면적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섬뜩한 광경 앞에서 역설적으로 자유의 소중함과 개인의 존엄성이 부각되고 있다.


또한 불만인 것은 북한의 전략개념의 부재이다. 북한 응원단의 돌출행동은 결국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북한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 남한 국민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는 최근의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갖은 비판 속에서도 여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햇볕정책 추진세력들에게도 큰 부담을 지우게 하고 있다. 퍼주기라고 구박받으면서도 대북 경제지원을 지속하고, 욕 먹어가면서 자기네들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자꾸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북한의 태도는 기본적인 상도덕을 망각한 것이다.


북한 응원단의 이번 행동은 극우 단체들의 짜증나는 반북시위만큼이나 기분 나쁘다. 일부 단체의 반북시위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며 우리 정부에게 무리한 수준의 사과를 요구하고, 북한 선수단을 환영하고 응원하는 현수막인데도 트집을 잡고 격한 행동을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거의 찾기 힘든 독선적이고 자기본위의 행동이다. 남을 존중할 줄 모르면서 자기들은 대우해달라고 핵장난으로 협박하는 북한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북한은 자신들이 짝사랑을 계속 받을 만큼 그리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콧등이 시리도록 슬픈 코미디다. 북한응원단의 이 눈물겨운 충성극에 평양의 김정일 일당들이 흐뭇해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참담하기까지 하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간다는 것을 믿지만 그 과정이 아직은 요원하고, 그 사이에 희생되는 북한 인민, 남한 국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또한 북한을 저주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을 닮은 전체주의, 군사주의 사회를 꿈꾸는 극우세력의 궐기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씁쓸함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평화통일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에 우리의 숙명이다.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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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구청년 2003.08.30 02:0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다시 읽어보니 이번 사설은 너무 감정이 과잉이 심한 것 같다. 자유주의적 가치를 내면화 하려고 무던 애를 쓰는 내가... 전체주의의 극단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불편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조선왕조 뺨치는 북한왕국에 대한 서글픔이 나를 짓누른다.

  2. mannerist 2003.08.30 07:57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런 생각을 했었어. '비지터'라는 프랑스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벼락맞고 현대에 떨어진 중세 기사와 그 시종이 좌충우돌하며 지내는 이야긴데 기사(장 르노)는 전혀 적응 못해 버벅대지만 시종은 얄미울 정도로 빠르게 적응해서 잘 살지. 꼭 난 그 기사를 보는 것 같았어. 아직은 이해해 주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저렇게 평생을 살아온 애들인데. 참고로 북한 국어사전의 아버지 항목을 찾으면 이런 뜻풀이가 있단다. "우리 조선 민족의 영도자이시며 무한한 사랑으로 인민의 나아갈 방향과 앞날을 밝혀주시는 분을 친근히 일컫는 말"이던가?

  3. 익구청년 2003.08.30 08:5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다름을 도저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 같네요.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도 무지 버거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랍니다.^^; 결국 저의 색안경이 북한의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쥐꼬리만한 자부심이 아직도 제 머릿속을 돌아다니고 있네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들이 울 때 저는 비웃기보다는 다른 의미에서 같이 울고 싶었다는 것... 설령 그것이 악어의 눈물의 성분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해도요.^^;

  4. 린킨박 2003.09.02 00:17 Address Modify/Delete Reply

    에효...

    좀 더 지켜보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