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상에서 후배와 수다를 떨다가 술자리에서의 진지한 대화 시도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주제와 관련도 있는 데다 횡설수설의 궤적도 살필 겸 약간 인용해봤다.

익구 :
분단 상황이 얼마나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저력을 갈아먹고 역량을 훼손하는지 참 슬픈 일이야.
지력도 소모되고, 재력도 더 들고, 인권도 침해되고
여하간 이 분단체제를 무탈하게 극복해내는 거
우리 세대에서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짜 우리 다음 세대에 이게 반복되면 진짜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듯...

B군 :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것저것 보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분단 해결이 점점 멀게 느껴져요. ;

익구 :
동북아에서 신냉전이 도래할지도 모르는 국제정세도 불안한 만큼 스스로 능력을 키우면서도 확고부동한 평화통일의 원칙을 지켜내는 수밖에...
키득키득 이게 다 김정일 일당 때문이야. 막 이러고
개인적으로 북한 내부의 급변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나 그런 식의 통일은 동독의 붕괴보다 더 치명적이고 위험하다는 점에서 함부로 공언할 일은 아니지...

B군 :
급변에 중국이 개입하게 되면 특히 그럴 것 같구요.

익구 :
그러나 나라가 망하려면 속절없이 망하는 게 고금의 상례니 신라가 항복하고,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국치를 맞았듯이 그렇게 스스로 몰락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봐.

B군 :
스스로 몰락한 다음에도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서요. 중국은 북한과 경제적-군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몰락 이후에 북한에 진입하려고 시도할 것 같아요.

익구 :
중국이 한반도 북부로 다시 막 밀려들어온다. 덜덜덜
역시 역사는 반복되는가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아마 다시 중국이 개입한다면 희극이 되길 바라야겠다. 키득키득
암튼 이런 주제로 오프라인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은근히 재미날텐데...
우리도 술자리에서 이런 식의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필요가 있어.

B군 :
예전부터 이야기되던 '대학생 다운 술자리 화제'인 것 같네요. 단순한 일반화인지는 모르겠지만 ^^;;

익구 :
아 예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가
뭐 당장 대학 새내기에게 그런 걸 권하는 건 무리고...
산전수전 겪은 대학 2년차 이상의 사람들은 그런 걸 함 추진해볼 필요가 있지.
귀한 시간 내서 다들 만났으니 기왕이면 좀 더 가치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고.

B군 :
좋죠.

익구 :
근데 나도 말은 이렇게 하고 쉽지는 않다니까.
초동을 끊는 게 완전 압박

B군 :
일단 술이 들어가면 또 힘들지요.

익구 :
뭐 근데 일단 또 함 성사시키면 대박인 경우도 있으니까.


술자리에서 조금 진지하고 다소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 술맛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건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화해와 타협의 술자리는 차이나 갈등을 녹이며 대동단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대개의 통상적이고 평범한 술자리에서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할 수도 있고, 이슈에 대한 찬반을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다. 내 또래의 술자리는 그게 잘 안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여럿이 모이는 대학 행사 뒤풀이의 경우에는 서로 인사 나누고 근황 묻고 약간의 상담을 나누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더군다나 술을 더 마시네 못 마시네 이런 식의 실랑이라도 벌어지면 거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이야기를 할 여지를 많이 줄여버린다.^^;


지난 주말 자취하는 친구 녀석의 집에 가서 족발과 바나나킥, 새우깡과 소주를 놓고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스크린쿼터를 반대하는 영화인들이 FTA 반대를 주장하는 게 언짢다고 했다. 나는 농민과 영화인이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약자와 소수파가 연대하는 건 반가워하고 권장할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친구는 스크린쿼터에 그리 관심도 없을 장동건이나 이준기 같은 유명 배우가 1인 시위 등으로 이목을 끄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는 그네들이 설령 스크린쿼터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 않더라도 유명하지 않은 배우, 이름 모를 영화 관계자들을 위해 사회적 발언을 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반박했다. 미국 민주당의 케리가 갑부지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보다 많이 내는 정당의 대통령 후보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예를 들어가며 사회적 연대를 자꾸 차포 떼듯이, 양파껍질 벗기듯이 축소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기껏해야 보수적인 나이지만 개혁이나 진보를 말하고 실현하는 사람들도 보란 듯이 성공해서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사회가 좀 더 건실하고 역동적일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밖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적잖이 의견 접근을 이루기도 하고 끝끝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기도 했다. 안주 삼아 나눴던 이야기들이 훌륭했는지 취하지도 않고 어찌나 맑은 기운이 맴돌던지.


이른 아침 한적한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서 앞으로 이런 술자리는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올해 초에 세웠던 목표 중에 하나가 내가 먼저 나서서 잡는 약속, 내 주도로 성사시키는 모임을 꾸리지 않는 것이었다. 조금 차분하게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확보하고 지인들과 교류 나누는 재미를 적정하게 통제하면서 좀 더 유익한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려는 거창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다짐을 굳건하게 지키지는 못했다. 내가 먼저 연락해서 놀아달라고 조르고, 날을 잡은 게 하나둘 쌓이면서 나중에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밤의 대화처럼 유쾌한 모임이라면 좀 더 가져줘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바빠지기 전에 그나마 좀 여유로울 때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자리를 가져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올 여름 내수 경기 진작을 위해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과 더불어 잊지 못할 자리도 좀 가져보고 싶다. 나란 녀석이 좀 뜸해지고 떠나있게 될 때, 조금 더 뇌리에 남아 있고 조금 천천히 잊혀지게 하고 싶다. 탁 까놓고 말해 내가 누군가에게 실존하고 각인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소중한 시간 내서 한 자리에 만났다면 그에 상응하는 짭짤한 수익을 서로에게 안겨다 줄 수 있는 노력을 해야겠다. 이런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당장은 어색해도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며 깊이를 더해 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나는 내 둘레를 진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소리를 적잖이 듣는다. 그 재능(?) 마음껏 발현해보자. 가벼움이 대세인 세태에 내 진지 모드가 안 통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주눅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지극한 정성은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자세로 하찮은 나란 녀석을 보듬어주는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보련다. 역설적이지만 약간의 긴장이 사람 사이를 좀 더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거 같다. 진지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 [小鮮]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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