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고연전은 다가왔다. 새내기를 중심으로 한 설렘이 느껴진다. 그러나 점차 높아지는 고연전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고연전과 고연제의 용어혼란을 막기 위해 부연 설명을 하자면... 고연전은 5개의 경기를 말하는 것이고, 고연제는 이 경기를 포함해서 고연전이 있는 주중에 벌어지는 문화제, 방송제 등의 모든 행사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고연제에서 고연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고연전으로만 논의의 범위를 축소시켜 살펴보겠다). 고연전을 비판하는 목소리, 고연대의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외침이 시간이 갈수록 점차 커지고 있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고연전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경기가 끝나고 이루어지는 술판과 기차놀이 등으로 말미암아 시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지나치다는 입장이 있다. 둘째로 학벌체제를 공고히 하고 양교생들의 엘리트 의식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이다. 셋째로 남성중심적이고, 비장애중심적인 집단적 대학문화를 반복 재생산한다는 외침이다.


우선 첫 번째 비판은 고연전을 좋아하는 대다수의 고대인들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고, 개선하려는 노력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두 번째 비판에서는 입장이 크게 갈리는 듯하다. 과연 고연전이 엘리트 의식을 고취하는데 일조 하는지의 여부가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설사 학벌의식, 우월의식을 고대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다른 이들이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면 이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교 친선행사에 불과한 것에 타교생이 콤플렉스를 느낄 것도 없고, 또한 우리도 타교생에게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것도 아닌데, 이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연 고연전을 학벌이 나쁜 여러 대학에 대한 노골적인 집단 우월감의 표시라고 해석해야하는지의 논의를 평행선을 달릴 소지가 많다. 한 쪽에서는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된다며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렇게 생각지도 않는데 괜히 오버하고 난리라며 열을 내는 광경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인지, 단순한 애교심일 뿐인지 어느 쪽의 입장을 선뜻 들어주기 힘들다. 안티 측에서는 고연전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내세우는 애교심이라는 것이 과연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한국사회의 권력을 학벌 좋은 학교가 나눠 가지는 상황에서 순수한 애교심이 성립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지 측에서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에 순수한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또한 그렇게 순수성을 따지는 이들의 순수성도 의심스럽다는 역공을 펼친다. 이토록 치열한 학벌주의 논쟁은 일면 소모적으로 보이지만, 성찰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학벌주의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를 비판하지 않고, 애꿎은 고연전을 물고늘어지느냐는 반발도 있지만, 본디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고 비판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믿는다면, 그 항변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분명 이는 서울대 공화국인 이 땅의 현실과는 별도로 진행되어야할 논쟁이다.


세 번째 비판인 고대문화에 대한 비판은 팽팽하게 입장이 갈리는 두 번째 비판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역시 찬반이 맞서지만, 찬성 입장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두 번째 논점과는 달리 해결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고대의 집단적 문화는 여느 대학들보다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새터에서부터 시작되는 ‘고대인 만들기’는 FM, 사발식, 응원 등으로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된다. ‘고대스러움’의 부정적 속성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음에도 고대 문화는 큰 틀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사발식에서 사용되는 ‘막걸리 찬가’에서 저속하고 여성비하적인 소절을 바꾸려는 노력이 한참이나 걸렸다는 것만 보아도 새로운 고대 문화를 창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알 수 있다). 군대의 관등성명과 별반 차이 없는 FM도 그렇지만, 지나친 응원도 문제다. 응원을 할 때 힘찬 움직임을 추구하며, 목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만 상대방에 기죽지 않고 멋진 응원이라고 여기는 것은 남성중심적이고 비장애중심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그러나 응원에 열광하는 것이 반드시 남성중심적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여자는 목소리 크게 내면 안되고, 큰 동작으로 뛰면 안되는 것인가?), 고연전이나 응원이 기본적으로 비장애중심적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중심적이고 비장애중심적이라는 혐의를 상당수 벗겨내더라도, 고연전을 위시한 고대 문화가 문제시되는 것은 무엇보다 그 집단주의 때문이다. 선배가 시키는데 FM을 안하는 새내기를 상상하기 힘들고, 이런저런 행사 때 응원을 안하고 뒤로 빠지기도 여간 쉽지 않다. FM, 응원 등을 하기 싫은 이에게도 무언의 압력으로 인해 마지못해서라도 고대 문화, 그 집단주의의 대열에 줄을 서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면은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른바 고대 문화로 지칭되던 것들이 상당수 그 힘을 잃어 가는 조짐이 보인다(일부 단과대에서 고대 문화를 잘 재생산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는 계속된 비판과 지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고대의 그 굳건해 보이던 집단주의 문화도 개인주의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일상적 자유확립’을 위해 개인의 취향에 따른 자유로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직은 요원하지만 그 과정은 비교적 낙관적이다.


안티 고연전 운동은 아무 생각 없이 즐기던 행사에 대해 곱씹는 계기가 되고, 부정적인 면을 고쳐나가는 데 소중한 도움이 되었다. 정리해보자면 고연전에 대한 세 가지 비판 중에서 첫 번째는 이미 이론의 여지없이 찬반 양측이 정도에 차이만 있을 뿐, 큰 틀에서 동감하고 있으며, 두 번째는 찬반이 가장 팽팽하게 맞서고 있으며, 세 번째는 찬반이 맞서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비판 찬성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다. 결국 고연전 논쟁의 핵심은 ‘학벌주의’라는 죄목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고대와 연대가 묘한 공생관계로 학벌주의를 재생산하고 있느냐를 입증하는 것이 고연전에 대한 관점을 정립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끝으로 안티 고연전을 둘러싼 활발한 논쟁이야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너무 과열되지 않기를 바란다. 안티 고연전 측의 고연전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와 자학, 고대에 대한 부당한 매도가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고연전을 지지하는 측의 불성실한 태도가 더 비판받아야 한다. 고연전을 공론의 장에서 구워삶는 것은 좋지만, 서로가 가진 학교에 대한 따뜻한 애정까지 의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 고연전도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경기 승리로 인한 잠깐의 기쁨보다는 학교 교육의 질과 학생 개개인의 자아실현 여부로 승부를 걸고 싶다. 그것이 비단 연대 뿐만이 아닌 다른 어떤 대학이든 말이다.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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