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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17 아찔한 소개팅을 위하여 6

나는 케이블TV를 스타크래프트 게임 중계와 <거침없이 하이킥> 재방송을 챙겨보는 정도로 활용한다. 1월 3일 늦은 밤에 우연히 Mnet의 <아찔한 소개팅(이하 아찔소)>이란 프로그램을 접했다. 문득 내가 생애 첫 소개팅을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상대 여성분도 처음이라서 둘 다 완전 어색한 마음에 네 시간동안 한자리에서 수다만 떨었다. 침묵의 공백을 만들면 안되겠다는 강박관념에 오만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몇 년 만에 확산된 중국어 열풍, 회계학에 대한 고충, 자기 학과공부에 대한 투덜거림, 재미난 마케팅 사례 소개, 한자와 한문 학습, 당시(唐詩)와 송시(宋詩), 여대와 공학의 차이, 중국 여행 이야기, 한국 고미술의 보편성과 특수성, 동양화 감상법, 향후 진로 고민, 문학과 비문학 독서, 대학 선후배 관계의 미묘함, 한국 고전문학 기억해내기, 각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기, 문헌정보학과 도서관 서가배치 등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아찔소는 소개팅이 이렇게 역동적(!)일 수도 있구나 일깨워 줬다. 하긴 모두가 나처럼 입으로만 소개팅하고, MBC의 <공부의 제왕> 같은 프로그램만 있다면 삶이 얼마나 밋밋하겠는가.^^;


아찔소를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몇 번 스쳐본 적이 있기는 하다. 다만 이번에는 좀 유심히 지켜본 듯싶다. 아찔소는 킹카 혹은 퀀가를 두고 여러 도전자가 서바이벌 형식으로 데이트를 즐긴다는 얼개다. NBC TV에서 방영한 <For Love or Money>란 프로그램에서 사랑이냐 돈이냐를 선택하는 형식을 빌렸다. 애정과 금전이라는 영원한 주제를 극화해 호기심을 모은다. 아찔소도 그렇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는 상당 부분 미국 것을 본떠 만들었다. 미국 리얼리티쇼의 자극적인 구조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독신 남녀가 자신과 맞는 속궁합 상대를 구하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노골적인 성 상품화, 인간 상품화가 만개한다. 내가 본 방송은 스키장을 배경으로 스노보드 국가대표 경력이 있는 킹카에 여자 도전자들이 나섰다. 아찔소는 출연자들의 실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리얼리티를 통해 적잖은 인기를 얻었다. 취중진담을 듣고 싶어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취해도 쉽게 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페이크 다큐’가 얻은 인기도 그럴 듯한 엿보기에 대한 욕망의 표출이다.


집에서는 ComedyTV가 나오지 않아서 <애완남 키우기-나는 펫>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지는 못했다. 연하남이 능력 있는 연상녀 집에서 반려동물 같은 활약을 하는 장면을 담는다는 이 프로그램의 설정은 듣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다. 계약 동거와 다를 바 없는 소재가 방송될 만큼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리얼리티쇼가 한국에서 수용 가능한 극한을 보는 듯싶다. 케이블TV의 선정성 논란은 피할 수 없지만 지상파와 케이블TV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는 건 또렷하다. 심의라는 정의의 밧줄로 못된 상상력을 옥죄려는 시도를 삼가야 한다. 무턱대고 천박하다고 투덜거리기 전에 케이블TV의 자체 제작 노력을 칭찬하고 북돋울 필요가 있다. ‘케이블 자체제작 드라마’의 줄임말인 ‘자드’라는 새로운 말까지 나왔는데 일단은 긍정적이다. 선정성으로만 승부하는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겠지만 역량이 쌓이다 보면 볼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 우리 사회의 다채로움에 이바지하리라 기대한다. 깊이를 경쟁하다 보면 넓음도 경쟁할 테니 말이다. 틈새시장 개척은 소비자를 행복한 고민에 빠뜨린다. 아직 실망하기에는 좀 이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봤던 아찔소 스키장편에서 여성 도전자에게 집단적으로 눈을 던져놓고, ‘눈 맞아야 얼마나 아프겠어요’라고 말하는 킹카의 태도는 아슬아슬했다. 커플 선정이 끝나고 선택받지 못한 여성 도전자들이 뒷담화를 하는 시간에 “남자면 요즘 평균 키는 180이다”라느니, “너 운동했다면서 몸이 왜 그래?”하는 발언들도 뜨끔했다. 출연자들이 서로를 품평하는 대목에서 어느 고깃덩어리가 탐스러운가 살펴보는 정육점 손님 같은 인상을 받았다. 처음 만나는 남녀가 노천탕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서는 무척 화끈거렸다. 킹카는 노천탕에 가서 몸매도 보고 몸도 녹이면서 편하게 데이트하고 싶다며 천연덕스레 여겼다. 제작진이 운동선수인 킹카의 우람한 근육질과 미녀들의 늘씬한 비키니 차림을 내보내 눈을 홀리는 효과를 노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 다음 회를 시청하니 점입가경이었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퀸카는 남성 도전자에게 생뚱맞게 미스터코리아 대회를 출전하기를 요구했다. 한 도전자는 민망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자진 포기하기도 했다. 그는 뒷담화 시간에 “넌 내가 보기에는 변태과(科)인 거 같다”라고 쏘아 붙였다. 여하간 삼각팬티만 입은 두 도전자가 전문적인 훈련을 한 선수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열심히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엉겁결에 미스터코리아 대회에 참가한 도전자 두 분 다 몸매가 준수하다 보니 의도적인 코스 선정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퀸카는 한 도전자의 등에 컬러크림을 바르며 짜릿함을 느꼈고, 다른 도전자는 삼각팬티를 입기 위해 허벅지의 털을 깎기도 했다. 퀸카는 “복부에 지방이 약간 있는 거 같고요”라며 평가했는데 좀 마뜩잖았다. 결국 지방을 지적 받은 도전자는 퀸카와 몇 마디 섞지도 못하고 탈락했다. “퀸카 교양 좀 가져라”라는 탈락한 도전자의 일갈에 동감했다. 당최 그게 지방이면 나는 비곗덩어리란 말인가. 다시금 정육점을 연상했던 나의 비유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따지고 보니 킹카나 퀸카들의 황당한 요구라든가 도전자들의 굴욕과 험담의 상당수는 짜여졌다는 심증을 굳혔다. 위선 권하는 사회에 대한 반발로 위악을 뽐내는 형국인지도 모른다. 위선이 리얼리티가 아니듯 위악 또한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있겠지만. 검색해보니 아찔소에는 위악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했다. 어느 정도 정해진 설정인가 보다. 드라마 등장인물을 구박하는 재미에 보는 사람이 있듯이, 매너 없는 출연자들의 행동을 투덜거리는 흥취도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어느 편에서는 킹카가 여성들의 뱃살을 측정해 가장 두꺼운 여성을 탈락시키고, 도전자들을 성형외과로 데려가 견적을 뽑는 살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여성 도전자들에게는 비난을 퍼부으며 못되게 굴다가 킹카 앞에서는 갖은 교태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한 출연자에게는 아찔소 악녀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그녀의 악녀 행동이 어디까지가 진실이냐며 공방이 벌어졌다니 너무 삭막하다. 진실을 최대한 밝혀야 하는 사안이 있는가 하면, 명백하게 만들 실익이 없는 것도 있다. 아찔소는 후자다. 우르르 달려가서 악플을 남기는 건 그리 갸륵한 행동은 아니다.


대학교 새내기 때 주철환 PD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감명 깊었던 말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립싱크하는 가수들을 뭘 그렇게 나무랄 필요가 있냐는 항변이었다. 가창력으로 승부해서 오랜 세월 인기를 얻을 사람도 있고, 반반한 외모나 현란한 율동으로 인기를 모을 사람도 있으니 자기 기준만을 내세우지 말자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이처럼 리얼리티쇼에 대한 가파른 기준을 들이대려는 분들에게도 이런 호소가 좀 통했으면 좋겠다. 말 나온 김에 리얼리티쇼에 대한 두 가지 비판을 검토해보자. 환상을 조장한다? 기실 정말 우리네 현실을 보려면 뉴스도 있고, 한숨 자아내는 시사다큐멘터리도 얼마든지 있다. 시청자들이 리얼리티쇼에게 기대하는 건 적어도 그런 사실성은 아니다. 조작된 실제이지만 거기서 영감을 얻고 의욕을 찾거나 한바탕 분풀이하려는 속셈이 더 크다. “인간은(혹은 남자는/여자는) 다 그렇지 뭐”라는 허무주의를 유포한다? 리얼리티쇼가 출연자들의 톡톡 튀는 개성을 보여주려고 애를 쓰고는 있다. 만화경처럼 여러 빛깔의 사람을 보여주려는 기획 의도가 오히려 전일적 가치를 부추긴다면 서글프다. 이 점을 두고두고 경계하는 게 방송으로서의 최소한의 정치적 올바름일 테다.


별 것도 아닌데 법석이라는 핀잔이 들려온다.^^; 외모 중심주의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정형화된 남성성, 여성성의 강요를 마주칠 때마다 불편하다. 내가 못났기 때문이라는 점이 일차적인 이유임을 부인하지 않지만, 아름다움은 획일적이지 않음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좀 더 솔직해지자는 마광수 선생님의 외침이 떠오른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도 결국 외모에 반한다는 얘기 아닌가요?”라는 반문에 맞서기는 힘들다. 멋지고 예쁜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 역시 사람 사는 낙이긴 하다. 작가나 교수들의 지성미에 사로잡히듯이 얼짱과 몸짱의 육체미에 반하는 행위도 마냥 미워할 일은 아니다. 마 선생님의 유미적 쾌락주의는 예술의 본질이라고 일컬어지는 카타르시스를 정화가 아니라 대리배설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예술적인 대리배설만 가지고는 욕망을 채우지 못하는 시대가 될까봐 두렵다. 절제하기 위해서라도 점점 더 관음증의 창을 열어 놓아야 하는 묘한 이율배반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그런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하고 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채우려는 안쓰러운 몸짓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양한 대리배설이 창안되길 바란다. 다양성이야말로 리얼리티쇼가 첫 번째로 갖춰야 할 덕목이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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