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력'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4.26 공자와 번지와의 문답
  2. 2007.11.06 도덕성이 능력이다4
이번 학기 교양으로 듣는 <유가적 사유와 논어> 과제물로 냈던 것을 부분 수정해서 올립니다. 지당하신 말씀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시절이 수상하긴 한가 봅니다.


<원문>
樊遲請學稼 子曰 吾不如老農 請學爲圃 曰 吾不如老圃 樊遲出 子曰 小人哉 樊須也
上 好禮則民莫敢不敬 上 好義則民莫敢不服 上 好信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則四方之民 襁負其子而至矣 焉用稼
- 『논어』 <자로편>


<국역>
   번지가 농사짓는 일을 배우기를 청했는데 공자께서는 “나는 노련한 농사꾼만 못하다”라고 하셨다. 채소밭을 가꾸는 일을 배우기를 청했는데, “나는 노련하게 채소밭을 가꾸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하셨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소인이로다, 번수여!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믿음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성실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대저 이와 같으면 온 세상의 백성들이 그 자식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 찾아오게 되니, 어찌 곡식 심는 일에 힘쓸 수 있겠는가?”


<견해>
   정약용 선생은 공자가 번지의 질문을 물리친 것은 예의를 앞세우고 음식과 재물을 뒤로한다(先禮義 後食貨)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목민심서』에서도 “뭇사람을 통솔하는 방법은 위엄과 신뢰뿐이다. 위엄은 청렴함에서 나오고, 신뢰는 자기 마음을 다하는 데에서 말미암는다. 자기 마음을 다하면서도 능히 청렴할 수 있어야 이에 뭇사람을 따르게 할 수 있다(馭衆之道 威信而已 威生於廉 信生於忠 忠而能廉 斯可以服衆矣)”라고 논하며 공자의 유지를 받들고 있다(吏典6條 馭衆). 주희는 禮, 義, 信은 대인(大人)의 일이라고 했다. 여기서의 대인은 위정자를 말한다. 주희는 공자가 언급한 소인(小人)을 세민(細民), 즉 서민이라고 봤다.


   이 문장에서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역할에 따른 사회적 분업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공자는 농사일과 같은 기술과 기능을 하찮게 여긴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설파했을 따름이다. 공자의 사상은 사회 변화의 주체를 선비 계급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일종의 엘리트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 변화의 방향은 엘리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고 긍정적 함의를 읽어봄직 하다. 후대에 이 뜻이 왜곡되어 노동을 천시하고, 백성에 대한 사랑 없이 군림만 하려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위정자가 자신의 직분에 충실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이익을 안겨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번지가 농사일을 물은 것을 두고 농가학파(農家學派)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농가는 농경을 권장하여 의식을 풍족하게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데, 임금도 백성과 함께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공자는 위정자가 직접 농사짓는 일에 관여하는 것보다는 도덕정치를 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일이라고 봤다. 번지의 질문을 다르게 보면 유학이 탁상공론(卓上空論)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물질적 이해에 대한 고려를 너무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현실적 고민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학문은 실용적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공자는 실용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예가 아니라 그 기예가 온전히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나 구조를 다지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공자가 농사짓기와 같은 보여주기 식의 정치를 비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인 위인지학(爲人之學)을 배척하고 자아실현을 목표로 하는 배움인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중시했다. 같은 맥락에서 공자는 남의 기림을 받는데 급급해 이미지 고양에만 힘쓰는 것을 비판했다. 얼마 전 총선에서도 시장이나 농촌 현장에서 서민들의 애환을 듣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목욕탕에서 유세를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오늘날의 선거문화에서 이런 모습은 불가피한 점이 있으나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넘어서 진정으로 국리민복을 위한 활동을 하라는 공자의 질정은 경청할 만하다. 예를 좋아하고, 의를 좋아하며, 신뢰를 좋아하는 기품 있는 정치인이 나타난다면 국민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고,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며, 진실한 마음가짐을 품게 할 수 있다.


   맹자도 “대인의 일이 있고, 소인의 일이 있다(有大人之事 有小人之事)”라고 말하며 정신 노동을 하는 노심자(勞心者)와 육체 노동을 하는 노력자(勞力者)로 구분했다(文公上 4). 번지의 경우와 비슷하게 진상(陳相)이라는 자가 농가인 허행(許行)에게 감화되어 맹자에게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 중에 나온 구절이다. 맹자는 자기가 쓰고 먹는 물건을 모두 직접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필요한 것을 교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다른 기술자들의 일을 겸할 수 없듯이, 정치나 교육 등 마음을 쓰는 일도 다른 일과 겸할 수 없음을 논증했다.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에 입각해서 사람은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양심을 밝혀서 실천하면 군자가 되고 육체적 욕구를 충족하는데 주력하면 소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공자의 사고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한서(漢書)』에 병길전(丙吉傳)에 나오는 문우천(問牛喘)의 고사는 공자의 가르침을 체화한 사례다. 승상이 된 병길이 어느 날 외출하다가 백성들이 떼지어 싸우는 무리들과 마주쳤으나 그냥 지나쳤다. 조금 더 가서 더위를 먹어 헐떡이는 소를 보고는 크게 걱정을 했다. 따르던 사람이 의아하게 여기자 병길은 백성들이 서로 살상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담당 관리의 소관이며 재상은 연말에 그들의 고과를 통해 상벌을 시행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어 삼공(三公)은 음양의 조화를 담당하고 있으므로 계절의 기운이 절도를 잃을 조짐이 있으니 직분상 마땅히 큰 재앙이 닥칠까 염려해야 할 바라고 설명한다. 즉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대체(大體)를 살펴 조정하는 능력임을 깨닫게 해준다.


   결국 공자와 번지와의 문답에서 자신을 다스린 후에 남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유추해낼 수 있다. 유가에서는 개인의 도덕적, 학문적 자기완성 정도에 따라 정치활동의 범위가 점차 확대된다고 봤다. 수기는 치인에 선행한다. 『대학』의 8조목인 격물치지성의정심(格物致知誠意正心)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순차적인 점진주의다. 개인의 윤리적 각성을 시발점으로 하여 그 점차적 확산을 꾀해야 한다는 유가의 사유다. 혹자는 정치가의 도덕적 수양에 몰두한 나머지 치인보다 수기에 치중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유가는 수기적 행위에 치열하면 할수록 그것은 동시에 치인적 행위에도 치열한 것이 된다고 인식했다. 도덕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현실적 정치능력을 보유하게 된다고 본 셈이다. 다시 말해 도덕성이 곧 능력이라는 것이다.


   요즘 도덕성과 능력은 별개의 문제라는 이분법이 힘을 얻고 있다. 공자가 언급한 好禮, 好義, 好信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탈도덕 현상을 수기치인의 현대적 복원으로 극복해야 한다. 도덕과 능력을 유기적으로 통합한 도덕력(道德力)은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 이론에도 부합한다. 도덕성과 능력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하지만 윤리적 기업에 투자하면 투자수익률이 더 높다는 해외의 실증 연구가 종종 나온다. 국내에서도 윤리헌장 제정과 더불어 전담 부서를 설치해 윤리경영을 적극 실천한 기업의 주가상승률이 그렇지 못한 기업에 비해 높았다는 분석이 있다. 윤리경영이 기업성과를 크게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보아 윤리경영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시장가치를 높인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업에서도 윤리경영이 강조되는 경향에 비추어 볼 때도 공자의 입장은 유효하다. 전문지식에 그치지 않고 인문학적 성찰을 갖춘 국가 지도자가 절실히 요구된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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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이 능력이다4

경제 2007.11.06 03:56 |

<도덕성이 능력이다>는 총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순서대로 읽으셔야 하지만 따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A는 Amorality의 약자로서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지도자를 지칭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대선 끝날 때까지 틈틈이 수정할 계획이니 퍼가지 말아주세요.^0^


4. 사회자본과 수기치인


정치학에서 사회자본의 개념을 대중화시킨 퍼트남(Robert D. Putnam)은 “사회자본을 상호간의 이익증진을 위한 조정과 협조를 용이하게 하는 네트워크(network), 규범(norms), 사회적 신뢰(trust)와 같은 사회조직의 특성”으로 정의한다. 이탈리아의 남과 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동일한 민주정치와 지방자치제도 아래에서 운영되어 왔음에도 사회 문화의 발전 수준의 차이가 컸다. 퍼트남은 선진국 수준에 다다른 북부에 비해 낙후성에 머무른 남부와의 차이를 축적된 사회자본의 격차로 설명한다. 수평적 질서에 기초한 신뢰와 협력을 중시하는 시민정신이 발달한 북부에 비해 남부는 수직적 질서에 따른 질서와 명령, 복종과 불신이 자리잡았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신뢰와 사회자본을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했다. 그는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주장한다.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이고 분업과 협동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고신뢰 사회일수록 번영하게 된다는 논리다.


최근 사회자본의 긍정적 효과를 조명한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개념 정의가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상호협력을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이루지만 사회자본을 구성하는 항목들에 대한 학자들의 설명은 통일성이 없다. 2000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 경영경제학회에서 사회적 자본의 4대 구성요소로 신뢰성(trust), 진실성(integrity), 단결성(solidarity), 개방성(openness)을 꼽았다. 다소 애매하게 번역된 진실성은 원칙을 준수하는 의지 및 능력을 뜻한다. 이렇게 대체로 합의된 개념을 깨우치더라도 사회자본이 경제발전의 독립변수인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모호하다는 문제가 남는다. 사회자본이 경제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발전으로 인하여 사회자본이 형성될 여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산업혁명 시기를 고찰해보면 부의 축적과 자본주의 발달이 시민사회 활성화와 사회자본 축적을 낳았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다. 사회자본은 경제발전의 상호변수이거나 심지어 종속변수일 가능성도 있다(허철행·허용훈, “한국 사회자본 형성의 한계와 전망”, 『한국행정논집』 제19권 제1호, 한국정부학회, 2007, pp. 151~170).


이런 험담에도 불구하고 물적자본, 인적자본과 더불어 사회자본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저출산과 투자부진으로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의 한계에 봉착한 한국에서는 사회자본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사회자본은 한번 형성되면 장기간 지속되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꾸준한 관심을 요구한다. 더군다나 한국 민주주의 공고화라는 틀에서 정치문화의 중요성은 증대되고 있다. 사회자본의 형성은 정치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사회자본은 서구의 맥락에서 지나친 개인주의의 폐단을 극복하고 공동체적 관심을 환기하느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한국의 사회자본은 서구의 정치문화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연고주의나 정실주의의 잔재를 안고 있는 한국은 투명하고 정의로운 공적 영역을 만드는 과제를 우선해야 한다. 한국은 과도한 개인주의를 우려하기 이전에 지나친 권위주의, 국가주의를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낮은 신뢰도에 허덕이는 국회, 정당, 정부에 대한 제도개혁을 모색할 때다. 다양한 계층의 국회 진출에 바탕을 둔 대표성의 확충, 정당의 책임성 강화로 말미암은 정당일체감 고양, 정부 정책의 일관성 확보와 대민 응답성 제고 등의 방안들이 있으리라.


이쯤에서 A의 존재를 고찰해보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쯤 되는 직선 대표라면 빼어난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공동체의 이해 갈등 조정이다. 이를 좀 더 원활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가운데 하나가 윤리성이다. 지도자의 도덕성도 사회자본인 셈이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좀 더 승복하도록 유도한다. 보다 근본적인 물음은 능력이라는 게 앞서 살펴본 사회자본의 개념의 난립과 마찬가지로 명확히 측정 가능하기 힘들다. 능력의 실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능력이 발효되는 데 시차가 있다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또 다른 기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 대표적인 게 바로 도덕성이다. ‘탈도덕 현상’의 심각한 부작용으로 예상되는 건 ‘비지지자 신뢰도’다. A가 다수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행사할 때 비지지자 집단이 강한 불신을 나타낸다면 정책 추진력이 반감될 가능성이 높다. 복수의 A가 난무하는 상황이 되면 정치 냉소주의는 심화되고 그들만의 민주주의가 고착화되는 절망적인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나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자신을 다스린 후에 남을 다스린다)을 전략적으로 차용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다른 표현으로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고도 부른다. 서구의 리더십은 윤리성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한국은 종래의 리더십 이론을 버리고 서구의 능률적인 기술자(technician)에 천착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지도자의 도덕성을 중시하는 정신은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이었다. 유학에서는 개인의 도덕적 학문적 자기완성의 정도에 따라 정치활동의 범위가 점차 확대된다고 봤다. 유학의 입장에서 볼 때 논리적으로도 수기는 치인에 선행한다. 『대학』의 8조목인 격물치지성의정심(格物致知誠意正心)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순차적인 점진주의다. 개인의 윤리적 각성을 시발점으로 하여 그 점차적 확산을 꾀해야 한다는 유가의 가르침이다. 혹자는 정치가의 도덕적 수양에 몰두한 나머지 치인보다 수기에 치중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유교 내지는 주자학은 수기적 행위에 치열하면 할수록 그것은 동시에 치인적 행위에도 치열한 것이 된다고 인식했다. 도덕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현실적 정치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다시 말해 도덕성이 곧 능력이라는 것이다(안외순, “『동호문답(東湖問答)』에 나타난 율곡 이이의 초기 정치사상”, 『유교사상연구』 제28집, 한국유교학회, 2007, pp. 125~154). 


수기치인의 현대적 복원으로 ‘탈도덕 현상’을 누그러뜨려 볼만하다. ‘탈도덕 현상’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도덕과 능력의 유기적 통합으로 ‘도덕력(道德力)’을 창출해야 한다.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현실 속에 추동하는 ‘도덕력’이야말로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오늘날의 사회자본 패러다임에도 부합하는 개념이 아닐까 한다(완전 자화자찬^^;). 『논어』에서 “제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제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한다 하더라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고 했다. 또 “진실로 제 자신이 바르다면 정치에 종사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제 자신을 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어찌 남을 바로잡겠는가(苟正其身矣 於從政乎何有 不能正其身 如正人何)?”라는 말씀도 있다. 일전에 김진표, 김병준 두 분의 교육부총리의 자녀가 외국어고에 다닌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외고는 평준화 교육의 근간을 흔든다며 야멸친 언사를 늘어놓던 분들이 자녀는 외고에 보낸 행태를 위선이라 여기고 서운한 감정을 느낀 국민이 많았다. “지금 집을 사면 낭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셨던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작 자신은 강남 아파트를 구입한 것으로 밝혀져 빈축을 샀다.


『맹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맹자의 제자 진대(陳代)가 스승에게 제후를 만나도록 권했다. 자존심 좀 굽히고 찾아가는 건 한 자를 굽히는 작은 일이지만 왕도의 사업을 이룩하는 건 여덟 자를 펴는 큰 일이라는 구실을 내세웠다. 맹자는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펴는 이해타산적인 생각을 한다면, 두 자도 굽히고, 석 자도 굽히다가 종국에는 여덟 자를 굽혀 한 자를 펴는 것도 이롭다는 명분으로 자행하게 될 것이라고 대꾸한다. 벼슬이 탐나 양심을 속이고 예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맹자의 논리를 강고한 도덕주의를 대변한다. 내가 주창한 ‘도덕력’은 이렇게 가파른 경지를 원하지 않는다. 현행 법을 준수하면서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펼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도덕력’이 좀 더 실천적인 관념이 되려면 입신양명하려는 개인의 욕구와 공익의 실현을 조화롭게 추구하기 위한 방안을 보강해야 한다. 여하간 맹자는 이 대목에서 “자기를 굽히는 사람이 남을 곧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枉己者 未有能直人者也)”라고 촌철살인을 날린다. 공명을 위해 정도를 굽혀 남에게 굴종하는 자세를 칭하나 의역을 해서 “자기가 올바르지 않다면 다른 사람을 정직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해석해 봄직하다. ‘도덕력’의 고갱이는 남 탓이 아닌 자기 탓을 먼저 하는 자책(自責)의 일상화인 듯싶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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