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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8 베카리아의 사형반대론 검토 3
  2. 2009.11.05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6

2008년 봄학기에 수강한 <문학 속의 법> 강의에서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에 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이 잡글은 2008년 4월 30일 발표 초안을 보강한 글에다가 2009년 2월 1일 수정한 것입니다.

사형제란 소재는 대부분 존폐론을 대비시키고 관련 현황 및 통계를 정리해 자신의 생각을 부연하는 식으로 접근합니다. 좀 더 색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지만 딱히 묘안은 없었네요. 그래서 법경제학에서 논하는 실증적 연구를 좀 찾아봤는데 별무신통입니다.

발표를 준비하며 찾아본 자료를 짜깁기한 터라 완결성이 떨어집니다. 제 멋대로 편집한 결과물을 공유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올립니다. 제법 시일이 지났지만 본문 내용은 크게 다듬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래 5장으로 구성된 글입니다만 5장은 생략하고 별도의 글을 만들 계획입니다.


1. 베카리아와 『범죄와 형벌』

  1738년에 태어난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는 이탈리아의 계몽사상가로서 근대 형법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1764년 베카리아가 26세에 쓴 『범죄와 형벌』이라는 책에서 사형제 폐지를 최초로 주장한 사상가로 이름을 남긴다. 사형제 폐지 움직임이 그 이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처럼 체계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역설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베카리아를 맨 앞자리에 두는 것은 온당하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1829년에 발표한 『사형수 최후의 날』이라는 소설 서문에서 “66년 전 베카리아가 만든 틈새를 최선을 다해 넓힐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듯이 베카리아의 논설은 그 뒤로 이어진 사형 폐지론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당시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대체로 사형에 반대했다. 그런데 이네들이 사형을 반대하는 근거는 도덕이나 신학적 논리에 기대기보다 사회계약론과 형벌의 유용성 또는 범죄의 예방가능성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베카리아의 목소리를 좀 들어보도록 하자(이하 Cesare Beccaria 저, 한인섭 역, 『범죄와 형벌』, 박영사, 2006. 인용).


  형벌의 목적은 오직 범죄자가 시민들에게 새로운 해악을 입힐 가능성을 방지하고, 타인들이 유사한 행위를 할 가능성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형벌 및 그 집행의 수단은 범죄와 형벌 간의 비례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정신에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인상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수형자의 신체에는 가장 적은 고통을 주어야 한다(49쪽).


  베카리아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관점에서 형벌을 바라본다. “쾌락과 고통은 감각을 부여받은 존재에 있어 행동의 유일한 동인(動因)(30쪽)”이라고 생각해 인간 행위의 원동력을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로 보고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 형법을 구현할 것을 주문했다. 베카리아는 “범죄자가 형벌을 통해 받은 해악이 범죄로부터 얻는 이익을 넘어서는 정도(108쪽)”의 형벌이면 충분하다고 논술했다. 범죄만이 사회적 악이 아니라 비례성을 잃은 처벌도 사회의 악임을 지적하는 탁견을 선보인다. 죄질에 견주어 처벌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울 경우 범죄 예방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형제를 당위론적 측면에서 간단히 주장하기보다는 한결같은 논지 위에서 사형이 범죄 예방에 실효성이 떨어짐을 논증하고 있다.
 

  아울러 사회계약설을 토대로 해서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권능을 타인에게 기꺼이 양도할 자가 세상에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인간이 사회계약을 맺는 이유는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인데 생명에 대한 권리마저 위임한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생명은 인간의 이익 가운데 가장 큰 이익이므로 자신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를 사회에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연장선상에서 “경미한 범죄에 있어 피해자가 용서함으로써 가해자가 처벌을 면하는 경우(128쪽)”를 고찰한다. 그는 이 자애롭고 인도적인 행위가 공공선에 반할 수 있음을 꼬집는다. “피해자인 한 시민은 그 권리 가운데 그 개인의 몫만큼은 포기할 수 있지만, 타인들의 몫에 속하는 부분을 무효로 할 수 없(128쪽)”다는 언설에서 형벌권은 한 개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계약의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한다는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50조 등 위헌소원에서 사형제도를 7대 2로 합헌으로 판시했다(헌재 전원재판부 1996.11.28. 95헌바1). 다수의견은 생명권을 법률로 제한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위배될 소지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고 중대한 공공이익을 침해한 경우에 국가는 어떠한 생명 또는 법익을 우선하여 보호할 것인가의 규준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절대적 가치를 지닌 생명에 대한 법적 평가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다수의견에 반대한 소수의견도 있다. 베카리아는 생명권은 절대적 기본권으로서 제한할 수 없다는 소수의견에 찬동했을 것이다.


2. ‘사형에 대하여’ 내용과 그 비판

  인간의 정신에 무엇보다 큰 효과를 끼치는 것은 형벌의 강도(强度)가 아니라 그 지속도(持續度)이다. 우리의 감수성은 강력하지만 일시적인 충동보다는 비록 미약하더라도 반복된 인상에 의해 훨씬 쉽게, 영속적으로 자극 받기 때문이다(113쪽).


  종신노역형은 수형자보다 구경꾼에게 더 큰 공포를 안겨준다. 구경꾼은 수형자가 당하는 불행한 순간 순간의 고통의 합산을 고려하지만, 수형자는 눈앞의 순간의 비참함에 사로잡혀 미래를 생각할 여력이 없다(117쪽).


  격정적인 분노와 전쟁의 필요성이 사람들에게 유혈을 가르쳤다면, 인간의 행동을 순화시켜야 할 법률이 잔혹한 본보기를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 사법적 살인은 신중하게 그리고 격식을 갖추고 집행되는 까닭에 훨씬 더 유해한 것이다(119쪽).


  베카리아는 사형은 혹독함은 갖추고 있지만 지속성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사형이 한순간에 강렬한 인상을 주더라도 망각의 힘을 이길 수 없다고 봤다. 흔히 하는 말로 사형 집행 장면을 보면 사형에 반대하게 되고 흉악한 범죄 광경을 목격하면 사형에 찬성하게 된다고 하지만 베카리아는 이와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한 셈이다. 여하간 종신노역형이 처벌의 지속성과 범죄의 예방에 더 보탬이 된다는 주장은 그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베카리아의 유지를 이어가겠다고 서술한 위고의 『사형수 최후의 날』에서는 이와 관련한 대목이 나온다. 주인공인 사형수는 도형장(徒刑場)에서 고생하는 죄수들을 보며 목에 도형수의 쇠고리를 차느니 기요틴의 칼날에 목을 맡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형이 임박해오자 낙인이 찍히는 종신 도형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도형수, 그것은 아직 살아서 걷고, 오고 가며, 태양을 본다”라며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임으로써 사형의 비인간성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베카리아 역시 사회계약설이나 범죄 예방의 효율성만으로 사형제를 접근하지는 않았다. 사법적 살인은 상당한 연구와 격식을 갖추고 집행되는 까닭에 전쟁보다 더 유해하다며 규탄한다. 정의의 이름으로 동류(同類)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인류의 자존감을 해칠 것을 걱정했다. 인권 감수성의 훼손을 염려한 듯하다. 이러한 베카리아의 언명에 대한 논박도 만만치 않다. 칸트는 “형법은 정언명령이다(Das Strafgesetz ist ein kategorischer Imperativ)”라고 단언한다. 칸트는 형벌은 오직 범죄자의 책임에 대한 절대적 응보로서의 의미만을 지닐 뿐이지 형벌을 통해 일반인의 범죄 예방효과를 꾀하는 등과 같은 다른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목적에 종사하는 수단으로 다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칸트는 살인자도 자유의사의 행위자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살해했듯이 그를 같은 방법으로 대접하는 것이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길이라는 취지다.


  칸트는 응보의 권리만이 형벌의 질과 양을 명시할 수 있으므로 사람을 죽이면 자기도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봤다. 고통은 많아도 종신형에 복역하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형벌은 베카리아처럼 범죄자의 동의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을 받을 만한 행위를 하려는 의지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고 위에서 “섬에 사는 사람들이 그 섬을 버리고 흩어지기로 결의한 경우에 감옥에 남은 마지막 살인자를 처형하고 떠나야 한다”라는 발언이 나왔다. 칸트가 하늘이 무너져도 세우려고 했던 정의는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자에게는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다. 오늘날 낡은 이론으로 치부되는 응보형이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는 일차원적인 복수 감정을 넘어서는 일리가 있다. 존 그리샴(John Grisham)의 『타임 투 킬』에는 공권력이 자신이 행할 보복을 대신해주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직접 보복에 나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사형(私刑)이 난무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마냥 무시하기 힘들다.


  헤겔은 “사형집행은 국가와 질서 유지 차원에서가 아니라 윤리적 질서의 절대성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인간이 올바른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 행위가 옳은 것이기 때문이지 형벌이 무서워서는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개와 같은 자율성이 없는 존재로 봐서는 곤란하다며 통박했다. 헤겔은 칸트와는 달리 한 인간이 사형을 받는데는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베키라아의 견해에 일단 동조한다. 하지만 헤겔은 베카리아의 국가 개념을 부인했다. 헤겔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자유가 함께 실현되는 공동체를 이상적인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공동체를 헤겔은 “인륜(Sittlichkeit)”이라고 표현한다. 헤겔은 인륜의 실현하는 도구로서의 국가는 개인의 의사와는 별개로 그 자체의 독자적인 근거 내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가 개인의 상위에 있는 전체주의 국가관에 입장에서 국가의 질서유지를 위해 사형이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앞서 살펴본 헌재의 사형제 합헌 다수의견에서 규준을 제시하는 국가라는 표현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또한 헤겔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변증법을 통해 사형제를 옹호했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범죄자는 다른 이성적 존재를 파괴하는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금 부정하는 것이 바로 변증법적 구조다. 즉 법은 정명제(These), 범죄는 반명제(Antithese), 형벌을 부과해 새로운 법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합명제(Synthese)라고 봤다. 그는 형벌의 남용을 우려해 등가적 응보를 고안했고 이에 따라 살인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 불가피하게 된다. 이성적 국가라든가 절대정신은 사회계약과 마찬가지로 관념적인 개념이다. 둘 다 인간의 존엄성을 논하면서도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어 흥미롭다.


  베카리아는 범죄를 저지를지 여부는 모두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고 봤다. 실증주의 범죄이론에 따르면 범죄가 자유의지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들과 결합하여 발생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진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E. Durkheim)은  범죄의 원인이 개인의 이기적인 행위나 내재적 결함에 있기보다는 사회적 분업이 발달하면서 생기는 무규범 상태(anomie) 등 사회적 환경과 구조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의 법의학자 롬브로소(C. Lombroso)는 생래적 범죄인설을 주창하며 태생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의 존재를 가정했다. 범죄자에게는 일정한 신체적 특정이 있으며 선천적인 범죄적 소질이 발현되어 필연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견재는 요즘 논의되는 사이코패스와 잇닿는다. 묻지마 범죄를 저질러도 별다른 죄책감이 없는 반사회적 성격의 사이코패스는 사형을 비롯한 형벌 제도 전반에 대한 고민을 품게 한다. 비슷한 고민을 했던 롬브로소는 사형으로 유해한 종을 멸종시켰기 때문에 인류가 행복을 누린다고 주장했다. 관련 탐구의 귀추가 주목된다.


3. 처벌의 강도와 지속도, 그리고 확률

  베카리아는 사형을 논하며 형벌의 강도보다 지속도가 더 큰 범죄 억지효과를 낳는다고 봤다. 이와 더불어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형벌의 잔혹성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에 있다(106쪽)”라고 목청을 높인다. 형벌이 비록 온건하더라도 확실하기만 하다면 충분한 억제효과를 발휘하며 “형벌이 잔혹해질수록 범죄자는 그 처벌을 피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107쪽)”라고 역설한다. 법경제학에서는 처벌의 강도와 지속도의 관계에 대한 연구보다는 처벌의 확률과 강도가 범죄의 빈도에 미치는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대체로 경제학자들은 처벌의 확률과 강도가 범죄의 빈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사회학자들은 합법적 분야의 취업시 소득수준, 반사회적 성향 정도와 같이 처벌의 확률과 강도를 제외한 기타 변수들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본다. 양자택일의 문제라기보다는 복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베카리아가 그런 주장을 내놓을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인권이나 생명권에 대한 저변이 넓어진 시대적 분위기도 한 몫을 담당했으리라 추정된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가 비교적 낮았던 이전 시대에는 사형의 강도가 지금보다는 세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형의 종류를 다양화하여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십자가형이나 능지처참 같은 좀 더 잔혹한 사형을 부과함으로써 처벌의 강도를 높이려고 했다. 그러나 베카리아가 살던 시대에는 사형의 강도가 이전보다는 크게 계산되었기에 사형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할 사유의 여백이 생겼다. 여담이지만 서양의 중세에는 처벌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강도 높은 처벌을 하기로 했다. 중세에는 독살자를 가려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처벌을 강화해 기름으로 삶는 형벌에 처했다고 한다. 19세기 미국 서부에서는 말 도둑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고 19세기 이전의 영국에서는 조직화된 경찰력이 없어서 처벌 확률이 낮기 때문에 그리 중하지 않은 범죄에도 사형이 남발되었다(Richard A. Posner 저, 정기화 역, 『법경제학 (상)』, 자유기업원, 2003. 참조).


  1968년 베커(G. Becker)는 처벌확률에 반응하는 탄력성이 처벌강도에 반응하는 탄력성보다 크다는 것을 증명하고 처벌의 강도를 높이고 확률을 낮추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1980년 위트(A. Witte)의 연구 결과를 보면 과거에 높은 처벌의 강도와 처벌의 확률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사회복귀 후 상대적으로 새로운 범죄를 덜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한 범죄의 경우에는 범죄를 줄이는 데 처벌의 강도가 처벌의 확률보다 더 영향력이 크고, 반면에 경한 범죄의 경우에는 처벌의 확률이 처벌의 강도보다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범죄유형을 종합해 보면 처벌의 확률, 즉 처벌의 확실성이 처벌의 강도보다 범죄 억지력이 있다고 나왔다. 1983년 마이어(S. Myers)의 연구에서는 처벌의 확실성보다 처벌의 강도가 범죄 억지력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1991년에 발표한 그로거(J. Grogger)의 연구는 처벌의 확실성은 범죄억지에 명확히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으나, 처벌의 강도는 그 영향력이 대단히 미미하여 통계적 유의성도 없음을 보이고 있다. 학계에 지배적인 합의는 없으나 최근에 처벌의 강도보다 처벌의 확실성을 보다 강조하는 연구 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추세다(박세일, 『법경제학』, 박영사, 2000. 407~413쪽 참조).


  베카리아가 강조한 처벌의 지속도라는 개념은 포스너(R. Posner)에게 공박 당할 소지가 있다. 포스너는 범죄자의 시간 할인율이 상당하다면 추가된 수감 기간은 그만큼의 고통을 가져다주지 못함을 간단한 계산으로 보여줬다. 할인율이 5%일 경우 10년의 형량은 1년 형량의 7.7배이고, 20년 형량은 12.5배 정도의 기간으로 느껴진다. 할인율이 10%로 늘어나면 10년 형량은 6.1배, 20년 형량은 8.5배에 그친다. 이 때문에 그는 범죄자의 시간 할인율이 상당히 높다면 사형은 극도의 중죄에 대해 불가피한 처벌 방법이 될 것이라고 봤다. 그의 말대로 범죄자의 현재시간 선호도 혹은 현재소득 선호도가 높아서 10년 징역과 20년 징역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경우 범죄 억지효과를 높이지도 못할뿐더러 국가적으로는 큰 처벌비용만 지출한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측정하기 까다로운 시간 할인율이나 현재시간 선호도를 놓고 사형의 필요성을 논하기는 여러모로 무리가 많지만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건 분명하다. 베카리아는 경제분석에 처음으로 수학을 이용한 저술로도 유명한데 이러한 시간 개념을 인지했기 때문에 형벌을 받는 자보다는 보는 사람에게 더욱 공포심을 심어준다고 설파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일반 국민이 사형과 종신형(혹은 무기징역)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따져볼 가치가 있다.


4. 사형의 범죄 억지효과에 대한 논쟁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형의 범죄 억지효과를 놓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진다. 기본적으로는 사람들이 형무소 생활에 비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있다. 만약 죽음을 형무소 생활보다 가혹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때는 사형이 살인의 기회비용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러한 가정이 성립할 때 비로소 사형이 억지효과를 지닌다. 사형과 살인율 사이의 경험적, 실증적 연구가 적잖았다. 사형제가 살인에 대한 억지효과를 지니는지 여부에 대한 많은 경험적 연구는 서로 다른 결과를 보여 준다. 억지효과를 지지하는 분석에서부터 억지효과는커녕 베카리아의 주장처럼 사형제로 말미암아 오히려 범죄가 더 흉포해진다는 추론도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최근 신뢰나 협력 같은 사회자본의 긍정적 효과를 조명한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회자본이 경제발전의 독립변수인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 결과는 모호하다. 사회자본이 경제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발전으로 인하여 사회자본이 형성될 여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사회자본은 경제발전의 상호변수이거나 심지어 종속변수일 가능성도 있다.


  사형제와 범죄 억지효과를 탐구할 때도 이런 애매함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셀린(T. Sellin)은 사형의 존재가 살인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범죄 억지효과를 가진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셀린은 사형제도가 있는 주와 있지 않은 주의 살인율, 사형제도가 있는 주와 있지 않은 주의 경찰관 살인율, 그리고 사형이 폐지되었거나 부활된 관할의 살인율을 각각 비교했다. 이 결과 사형제도가 있는 주의 평균 살인율이 없는 주의 살인율보다 높았으며 사형이 경찰관의 살인율을 낮게 하는 상관성도 없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형제의 폐지와 부활에서도 부활이 살인율 감소와 일관되게 연관성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셀린의 연구 설계가 정치하고 세련되지는 못했으나 사형 반대론자에게는 광범위하게 수용된 경향이 있다. 이 밖에 멕케(D. Mckee)와 세즈노비츠(M. Sesnowitz)이 구성한 살인과 형사사법체계의 상호작용모델에서도 범죄 억지가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기브스(T. Gibbs)는 처벌의 확실성과 가혹성이 살인율과 역으로 관계하는데 이 중 처벌의 확실성이 처벌의 가혹성보다 살인율에 아주 강하게 관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티틀(C. Tittle)은 처벌의 확실성과 범죄간의 관계가 역관계에 있고, 처벌의 가혹성과 범죄간의 관계에는 정관계에 있음을 발견했다(살인은 예외). 기브스와 티틀은 사형의 억지효과를 검증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처벌의 범죄 억지가설을 지지하고 있다. 에리히(I. Ehrlich)의 분석에 따르면 검거?체포확률, 체포에 의한 유죄결정확률, 유죄결정에 의한 집행의 확률 순으로 억지변수와 역관계가 나타났다. 살인율과 이 세 가지 변수간의 관계는 통계적 유의미성을 지녔으며 사형 또한 살인에 억지효과를 지닌다는 결론이었다. 억지효과를 수치로 제시한 경우도 있는데 울핀(K Wolpin)은 사형 한 단위의 집행이 네 단위만큼의 살인수를 줄이게 된다고 보았으며, 융커(J. Yunker)는 한 명에 대한 사형집행이 156명의 살인을 억지 시킨다고 발표하기도 했다(이상안, 『범죄경제학』, 박영사, 1999. 150~165쪽 참조).


  이러한 백가쟁명 백화제방(百家爭鳴 百花齊放)의 분석 대신 직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통계 결과도 다채롭다. 캐나다는 살인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기 직전인 1975년의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이 3.09명이었는데, 2001년에는 1.78명으로 줄어들었다. 1975년에 비해서 43% 감소한 셈이다. 한편 영국은 1965년 사형제를 폐지했는데 이후 20년 동안 살인 범죄가 60% 증가했다. 더욱이 이 기간 동안 우발적 살인과 계획적 살인의 비율이 72:28에서 59:41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형의 위험이 없어져서 치밀한 계산 하에 자행되는 살인이 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 때문에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에서 흉악 범죄가 증가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치안 상태가 양호했기 때문이지 사형제 폐지가 독립변수가 되어 범죄율을 낮춘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도출된다. 하지만 대체로 사형제도와 살인율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이 많은 듯싶다. 유엔이 실시한 1988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사형제를 폐지하더라도 범죄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추측은 근거가 없는 것이며, 사형제도가 종신형에 비하여 살인 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여 년간 미국의 사형 존치주와 폐지주 사이의 살인범죄율 비교 결과 사형 존치주의 인구 10만 명당 평균 살인범죄율은 5.3명으로 폐지주의 2.8명에 비해 높았다.


  이 밖에도 사형이 종신형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기존의 인식을 비판하며 사형을 종신형으로 바꾸면 상당 액수의 세금을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법경제학의 분석틀을 이용해 사형제를 헤집어보려는 시도는 안개 속을 거니는 기분을 자아낸다. 마치 산발적으로 보도되는 의학 관련 기사들의 종합하면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게 되는 혼란상과 비슷하다. 다만 사형제가 윤리적, 법리적 문제로만 접근하기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부딪치는 문제임을 짐작케 해준다. 앞으로 법경제학 등의 실증적 연구가 정교해져서 억제효과에 대해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형 존치론과 폐지론은 몇 가지 통계 수치로 결판날 사안은 아니다. 사형제는 상대적 찬반보다 절대적 찬반의 비율이 여느 사회적 다툼보다 크다는 점도 사안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사형의 위하효과가 너무 작다고 해도 존치론자들의 정의에 대한 열망을 쉽게 눅이지는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형의 억제효과가 무척 크다고 해도 폐지론자들의 인류애를 헝클어뜨리기는 힘들다. 양측의 화해할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는 사회적 합의를 더디게 만든다. - [無棄]

Posted by 익구
: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일기 2009. 11. 5. 03:07 |

주로 가으내 진행되는 자기소개서 집필은 신추문예(新秋文藝)에 빗댈 만하다. 그만큼 문학성(?)이 만개하는 글이다. 허풍이 폭넓게 허용되기는 하지만 혼자서 몰래 읽어야 할 법한 공상과학소설을 남에게 내는 민망한 기분은 나 혼자만의 감상은 아닐 게다. 그래 놓고도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며 아쉬워할 때는 이따금 황당하다. 지난달에 대학원 진학을 위해 자소서 한 부를 탈고하면서 여러모로 괴로웠다. 하지만 내 자신에게 이런저런 물음을 던지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공자가 존경했다는 거백옥은 예순이 될 때까지 육십 번을 변해 오십 구년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한다. 꼭 자기소개서 방식이 아니더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종종 만들어서 지난날의 잘잘못을 조회해보면 좋겠다. 미국에서는 인생 목표를 구체적으로 글을 써서 소지한 사람이 나중에 살펴보니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진정한 성공이라고 보기에 성급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내 꿈을 몇 줄 글로 압축해서 써둔다면 자신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좀 더 또렷하게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내 과거로 눈길을 돌려보니 아쉬운 지점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세속적으로 인정받는 증서들을 좀 모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가령 컴퓨터 자격증이나 중국어 급수를 획득하는 식의 몸짓 말이다. 이른바 스펙을 쌓으려는 정성이 다른 사람에게 으스대기 위한, 남을 이기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도 말이다. 아무리 출중한 심사위원이라도 나의 내면을 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일 테고 일차적으로는 그런 유의 공인된 능력을 평가할 수밖에 없으리라.


장자는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 있음을 말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발이 닿는 쓸모 있는 땅만 남겨놓고 그 둘레를 다 파서 없앤다면 딛고 있는 땅이 쓸모없어지고 만다는 비유를 들었다. 내 배부른 소리들과 투덜대던 기억 모두가 나를 채워왔던 일들이다. 나 같이 미욱한 인간을 지탱하는데도 이렇게 많은 것들이 들어가다니 그저 두려울 따름이다. 그래도 자기소개서를 쓰는 순간만큼은 그 두려움이 곧잘 넋두리로 변모한다. 쓸모없어 보였던 나의 행동들이 앞으로 내가 발을 좀 더 내딛을 수 있도록 넓혀둔 터전이라고 넉넉하게 여기기가 쉽지만은 않다.


답답한 마음에 5년쯤, 아니 한 1~2년쯤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하지만 “어쩌면 모든 사람의 길은 십 년, 아니 이십 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 한들, 지금의 그 길로 다시 갈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라는 황주리 선생님의 <마흔 살의 자화상> 한 구절을 접하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필연적인 귀결을 옹호하지는 않더라도 현재 머무는 내 자리에 감사하는 계기로 삼았다. 첫길을 찾아나서는 일만큼이나 지금 거니는 길을 긍정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모양이다. 절차에 일부 하자가 있지만 유효하다는 말은 자기소개서 쓸 때나 통용된다. 한 개인에게는 제 삶을 무효로 할 권한이 없는지도 모른다.


(미취업이 아닌) 비취업자로 지내는 날이 하루하루 더해지면서 내 본업(?)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져서 곤혹스럽다. 그간 내 생활에 응용해온 3M의 15% 원칙을 더 이상 적용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3M이 근무시간의 15%를 자신의 업무와는 무관한 관심 분야에 투자하도록 독려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양산하다 보니 포스트잇도 개발하게 되었다는 사례를 슬며시 따라해 왔는데 지금은 그 15%를 산정할 수 없지 뭔가.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님의 연재물 제목처럼 도무지 내 ‘바깥’을 더듬기가 힘들다. 이미 변두리로 나와 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대다수의 자기소개서는 자신이 울타리 안에 성실히 머물렀음을 호소하는 편이다.


207년 삼고초려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할 때 제갈공명이 출사한 나이는 27세로 딱 내 또래였다. 당시 기준으로 볼 때 공명이 젊은 날에 활약했다고 보기는 힘들 듯싶다. 삼국시대에서 젊은 날 대성한 사람으로 26세에 사망한 손권의 형 손책이나 24세에 요절한 천재 철학자 왕필 등이 있다. 물론 이런 분들만 있는 건 아니고 위나라 장수 등애가 촉한을 정벌했을 때 연세가 68세였는데 내게 위안을 주는 인물이다. 대기만성이란 말은 게으른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인 셈이다.


『삼국지연의』의 공명은 “큰 꿈을 누가 먼저 깨닫는가/ 일평생 내 스스로 알고 있다네/ 초당에 봄잠이 넉넉한데/ 창밖에 해는 아직도 더디 가는구나(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라고 멋있게 시 한편 읊으면서 세상에 나온다. 이만하면 꽤 멋진 자기소개서다. 유비를 따라나선 자신이 세상의 먼지에 뒤덮일 것을 자조하면서도 포부를 실현하려고 일어서는 모습이 애틋하다. 설령 공명만큼의 재주가 없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파에 찌들면서 어떤 식으로든 자기 분야에서 유능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거드럭거릴 틈을 주지 않고, 무용함은 죄악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이 없어진다(無恒産無恒心)”라는 맹자의 말씀처럼 젊은이들의 항산(살아갈 수 있는 생업)을 마련하기 위해 각계각층이 뜻을 모으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단지 항산이 모자라서 생기는 문제만은 아닌 듯싶다. 항산과 항심의 선후관계가 뒤집어질 이유는 없더라도 항심에 대한 관심도 종요롭다. 항산은 결국 항심으로 이어지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형사법의 고전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그의 나이 27세(한국 나이)에 출간한 책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당분간은 작가의 처녀작이 언제 나왔는지 찾아보는 걸 자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역시 자신의 고민을 치열하게 녹여낸 한 편의 자기소개서다. 사색의 이력을 이렇게 아담하고 간명한 소책자로 엮어낼 수 있다니 참 부럽다. 닮고 싶은 사람을 좇아가려고 애쓰는 것과 그냥 비교하고 괴로워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난다. 굳이 비교를 하려거든 남보다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자기를 대상으로 삼아야겠다.


나는 며칠 내로 자기소개서 한 부를 완성해야 한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있지만 사흘은커녕 한 달이 지나도록 눈을 비빌 만한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늘어난 게 있다면 나를 좀 더 분칠하는 기예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내 항산이 조금 모자라도 내가 품은 항심이 제법 빼어나다는 점을 담아내고 싶다. 그래야만 분식(粉飾) 자기소개서를 면할 수 있으리라. 그 덕분에 배움의 기회를 얻어서 내 가슴이 뛰는 공부,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겠다며 뻐기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아직 자기소개서에서 해방되지 못한 친구들, 모두 힘냅시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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