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권 강제하는 50% 규정 문제 있다
잡록 2007. 11. 20. 01:31 |[독자투고] 선거권 강제하는 50% 규정 문제 있다
- 고대신문 1496호 2004년 12월 06일(월)
지난 38대 총학생회 선거는 학내 구성원간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일에서 3일로 투표일을 공식적으로 늘린 것도 모자라 월요일 하루 오후 6시까지 연장투표를 하고서 그것도 모자라 밤 11시까지 연장투표를 한 것은 선거시행세칙 상의 50% 투표율 규정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선거권에는 투표를 할 자유와 투표를 안 할 자유가 있는 것이 상식이다. 50% 투표율 규정이 그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선거권 행사를 강요하는 의미로 전락한 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명확해졌다. 상당수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가 50% 투표율 규정을 고수하고 있긴 하지만 일부 대학들은 그런 규정 없이 개표를 하고 있으니 반드시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또한 사회에서 이뤄지는 선출투표에서 투표율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형식적 대표성을 갖춰야겠다는 강박관념이 “투표 권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연장투표가 실시됨으로써 제 시간에 맞게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은 자신의 의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제 때 참여한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학생회 선거에 무관심한 사람이 연장투표를 하는 선관위원들이 안쓰러워서나, 집요한 투표 권유에 마지못해 투표를 할 때 이는 회원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수렴하려는 선거제도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것이다.
현행 50% 투표율 규정은 투표하지 않을 자유를 제약하고 회원의 선거권 행사를 강제된 의무로 만드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정치적 동원이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것을 두 번 세 번 권할 때 그것이 동원이 된다. 의도했던 행위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해도, 그 행위로 유도하려는 시도가 적정 수준을 넘어가면 동원으로 볼 수 있다. 선의가 충만해서 권유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그것을 동원으로 볼 수 있다.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들의 자유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는 것이 맞다면, 참여한 사람들 간의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통해 다수표를 획득한 사람이 일정 기간 권한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는 의회 민주주의의 원칙을 신뢰한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끝으로 일각에서 제기된 선거무효(무산) 운동이 대의 민주주의제 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대리인 비용 자체를 치르기 거부하는 것으로 발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간 학우들의 바람과는 달리 나갔던 학생회 조직에 대한 견제를 넘어 승복 자체를 거부하지 말았으면 한다.
치열한 논쟁과 많은 진통 끝에 38대 총학생회장단이 꾸려졌다. 우리 모두 어렵게 세워진 총학생회에 애정 어린 관심을 보내주자. 또한 앞으로 학우들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는 학생회가 될 수 있도록 한해 동안 많은 학내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하자.
최익구(경영02)
<덧붙이는 말>
3년 전에 고대신문에 투고했던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나는 게재가 거부당한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린 모양이다. 고대신문 홈페이지에 기사검색을 해서 나온 결과를 긁어왔다(명백한 오타만 수정했다). 편집이 좀 됐을지는 모르나 문장이 참 거칠다.ㅡ.ㅜ 2005년 39대 총학생회 선거가 투표율을 채우지 못해 무산되고 다음해에 재선거를 치렀다. 2003년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율이 50%에 미달해 2004년 3월에 재선거를 치르는 난리를 보며 우리 학교에서도 이런 날이 머잖아 벌어질 것을 염려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랐다. 2005년 11월 39대 총학생회 선거 때 제 때 투표한 유권자들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그 이후에 나온 논의들은 실망스러웠다. 2006년 40대 총학생회 선거 때부터는 졸업예정자의 경우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만 투표율에 반영하는 식으로 개정해버렸다. 졸업예정자는 투표율이 낮으니 일단 빼놓고 투표하는 사람만 정족수에 산입하겠다는 이상한 논리다. 이를 통해 실질 투표율은 50%가 안 되도 개표 가능한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졸업예정자의 한 표는 비졸업예정자(?)의 표에 비해 투표율을 더 높이는 효과를 가져다주는 코미디를 앞으로도 계속할지는 잘 모르겠다. 50%라는 형식적 대표성을 확보하겠다며 졸업을 앞둔 사람들을 투표율 높이는데 이용하는 태도는 그리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다.
나는 투표율이 50%에 모자라서 연장투표를 하는 현상의 문제보다 원칙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 50% 투표율 규정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회원의 선거권 행사를 강요하는 의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내 기본 문제의식이다.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 때나 지금이나 설득력 있지는 않지만 아마 내가 틀리지는 않을 거 같다. 처음 주장할 때는 정말 외로웠지만 점점 귀 기울여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서 반갑다. 올해는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