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에 썼던 <정동영과 617만 표>라는 잡글인데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전주 덕진 국회의원 재선거 무소속 출마 선언을 접하고 글 후반부에 바뀐 사정을 반영했습니다.
낭떠러지에 매달렸을 때 손을 놓을 수 있어야 대장부다(縣崖撒手丈夫兒, 현애살수장부아)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패배했을 때 정동영 당의장이 사퇴 회견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아무런 미련 없이 깨끗하게 물러나겠다는 비유다. 나는 이 회견을 접하며 그가 이 말의 정신을 새긴다면 다시 돌아오더라도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정동영씨는 7·26 재보선 정국에서 서울 성북을 출마를 권유받기도 했지만 고사했다. 혹자는 질 것이 뻔한 선거에서 몸을 사렸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 때의 삼감이 크게 험담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7년 정동영씨는 원내 제1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정동영 후보의 재능이 아무리 커다란들 그가 대선 과정에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대선 참패 후에 정동영 후보와 그 둘레 사람들이 자책하는 모습을 도무지 볼 수 없었다. 이명박 후보에게 530만 표 차이로 졌지만 그에게 소중한 한 표를 건넨 617만 명의 지지자가 존재했다. 그들을 향해 진솔하게 사죄할 기회를 놓친 듯싶어 안타깝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독특한 관행 가운데 하나가 패자의 승복 연설(concession speech)이다. 패자의 연설이 먼저 있고 나서 비로소 승자가 연설하는 재미난 문화다. 1860년 링컨에게 패배한 스티븐 더글러스가 “당파심이 애국심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Partisan feeling must yield to patriotism)”라고 말한 것을 시초로 1896년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때부터는 패배를 인정하는 전보를 보냈고, 1952년 스티븐슨 때부터는 TV 방영이 관례로 굳어졌다고 한다.
박빙의 승부와 법정 공방을 벌였던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는 고통스런 패배를 기품 있는 승복으로 승화시킨 명문을 직접 작성했다. 가슴 아픈 패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갈등을 치유하자고 읊조리는 패자들의 연설은 승자의 환희보다 좀 더 기억에 남는다. 지고 난 다음날 아침이 괴로울 때 고어의 연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때마다 우리에게도 이런 대표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기 일쑤다.
이듬해 펼쳐진 총선에서 정동영씨가 또 다시 쓴잔을 들이킨 것도 실패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처럼 난 자리일 때 애틋함을 남기지 못했다면 대중 정치인으로서 큰 실책이다. 국민들은 정동영씨가 머물던 소중함을 깨달을 여유가 없었고, 그의 빈자리를 크게 느낄 짬도 없었다. 절벽 위를 오르려는 안간힘만 느꼈다면 실례일까.
고어는 “나는 연방대법원 결정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인다. 앞으로 미국인의 단합과 민주주의의 역량 강화를 위해 양보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결승선에 도달하기 전에는 무수한 논쟁이 오가지만 일단 결과가 나오면 승자나 패자나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화합의 정신”이며, “나를 지지해준 많은 분들이 실망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나도 실망했다. 하지만 우리의 실망감은 조국에 대한 애정으로 극복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전투가 끝난 지금 문득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아무리 패배의 상처가 쓰라리더라도 패배 역시 승리만큼이나 인간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영광을 가져오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no matter how hard the loss, defeat might serve as well as victory to shape the soul and let the glory out)”라는 대목에 이르면 가슴이 짠하다. 이명박 후보를 차마 찍지 못했던 유권자들 중에 가장 큰 수의 지지를 받았던 정동영 후보가 상심에 빠진 유권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정동영씨가 오는 4·29 재보선에서 전주 덕진 재선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끝내 정동영씨의 공천을 거부함으로써 제1야당의 품위를 가까스로 건사했다.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려는 선거 구도를 유지하면서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민주당으로서는 밑천이 동난 정동영이라는 카드를 조기에 버림으로써 차기 대선을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하는 전화위복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정동영씨에게 명운을 걸어야 하는 정당이라면 사실 수권정당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정동영씨가 그저 금배지가 욕심이 나서 부랴부랴 뛰어든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선택이 사려 깊지 못했음은 또렷하다. 충분히 예측 가능했을 당내 분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파하겠다는 그의 의지 앞에 어안이 벙벙하다. 자신을 대선 후보로 올려주었던 정당을 박차고 나가면서 그 정당에 곧 돌아오겠다고 읊조리는 광경은 황당하다. 그가 금배지를 손에 쥐기도 전에 금빛은 바랬다. 녹이 슬었다. 호남당을 극복하려는 민주당의 안간힘에 전주 유권자들이 적잖이 화답한다면 이 난장판 속에서도 얻는 바가 있으리라.
정동영씨가 몸 담았던 정당이 비교적 힘이 셌을 때도 그는 한나라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하물며 지금처럼 힘의 세기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그가 원내에 진입한들 무슨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특유의 비장한 어조로 호소하지만 별 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자신의 귀환을 환영하는 열렬한 지지자들이 지지자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한다면 비극이다. 당신만큼 아파했을 617만 명의 사표를 두 번 죽이는 셈이다.
지난 4월 8일 치러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범야권이 음으로 양으로 지지한 김상곤 후보가 당선됐다. 교육감은 정당 공천과는 관계없지만 향후 선거에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앞으로의 각종 선거도 이런 단일화 및 선거연합을 통하지 않고서는 거대 여당을 이기기 난망할 것이다. 그런 판단 아래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범야권은 모두 다 절반의 패배주의를 생활화할 필요가 있다. 현 정치 지형을 엄정히 성찰하고 시운에 따라 힘을 합치고 양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나마 몸집이 큰 행위자인 민주당은 어떤 식으로는 내홍을 수습해야 한다.
정동영씨의 그릇이 그만큼인 것을 너무 애석해할 필요는 없다. 재보선의 눈이 온통 정동영씨에게 쏠린 것은 비생산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선보였던 가혹하고 어지러운 통치를 심판하려는 여론이 묻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동영씨에게 보내는 과도한 관심을 거둘 때다. 그저 똑똑하고 말솜씨 좋은 아저씨가 고향에서 인기를 누리는 정다운 모습 정도로 받아들이자. 명망 있는 야당 지도자가 그 전국적 위치를 벗어던지고 지역의 일꾼으로 헌신하겠다니 어찌 아니 아름다운가. 이제 그만 그를 보내주자. 굿바이 정동영! - [無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