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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9 '조세법연구방법론'을 읽고

이창희, “조세법연구방법론”, 『서울대학교 법학』 제46권 제2호(통권 제135호),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2005, pp. 1~35를 읽고


  논문의 저자는 조세법의 연구방법론을 법해석론과 입법론으로 구분한다. 비교적 간명한 구분으로 이해하기 쉽다. 현행 조세법의 해석학에 매몰되지 말고 입법론까지 탐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수긍이 간다. 조세법 분야 역시 법제도 자체나 그 시행상의 효과와 문제점의 분석, 새로운 개선책 제시 등과 같은 입법적 문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조세를 정책수단으로서 활용하는 추세와 맞물려 입법과정에서부터 법률가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함은 적절한 제안이라 생각한다.


세법의 해석론

  저자는 세법이 형법의 해석에서 허용되는 정도의 확대해석을 금한다고 풀이할 길은 없다고 주장한다(14면). 세법에서 확대해석이나 유추적용을 허용할 수 없다는 논거로 판례와 학설이 들고 있는 조세법률주의를 여러 각도에서 비판한다. 세법에서는 오로지 엄격해석만이 인정된다는 식의 조세법률주의란 독일이나 미국에서는 없다는 논거를 든다. 세법에서 엄격해석만이 가능하다는 명제를 부인하는 저자의 논변에 비교적 수긍이 가지만 그 논거를 비교법적 고찰 외에도 다양하게 들 수 있겠다. 가령 한국의 경제발전 정도나 오늘날 행정의 사회국가적 요청 등에 따라 엄격해석만으로는 세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등의 논거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정당한 해석의 범위 안에서는 납세자에게 불리한 확대해석도 가능하다고 본다(16면). 확대해석 자체가 아니라 정당한 해석의 범위 안에 있는가 만이 문제될 뿐이라고 말한다. 세법은 침익적 행정이기 때문에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 강하다. 따라서 목적론적 해석이 허용되더라도 법문언의 내재적 의미 안에서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세법상 허용되는 해석에 의해서도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경우 납세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하기보다는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납세자의 이익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입법과정에부터 납세자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입법부의 ‘사전적’ 해석은 사법부의 ‘사후적’ 해석보다 갈등비용을 낮출 여지가 크다.


세법의 사법심사

  저자는 불확정한 개념으로 보이더라도 그 의미내용을 특정한 판결이 쌓여 있으면 이는 이미 불확정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불명확한 법률의 내용을 장차 판결로 구체화해나갈 수 있는가는 헌법재판소의 권한 범위 밖(27면)이라고 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에 따르면 대법원을 비롯한 일반법원의 판례는 불확정개념을 구체화하는 기능을 수행하지만 헌재는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저자는 어떤 세법이 효율적인가에 관한 입법부나 행정부의 정책적 판단은 사법심사의 대상으로서 사실판단이라고 본다. 사실판단의 문제는 법관의 고유영역에 속한다고 보면서도 헌재의 역할에 부정적인 것은 헌재 결정의 파급효가 가장 심대한데 비해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다소 의아한 헌재 결정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세법의 위임사항이 행정입법에 정확히 반영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헌법 위반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며, 헌재 역시 입법재량에 대한 통제를 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2010년 개정된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법재판에 대한 중장기적이고 집중적인 연구 수행과 헌법연구관 및 사무처 공무원 등의 교육을 위하여 헌재 산하에 헌법재판연구원을 설립하는 등 헌재의 전문성을 제고하려는 노력도 있는 만큼 사실판단의 문제에서 헌재를 배제하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효율성의 심사는 법관의 권한에 속한다고 보는 것은 법관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나온 결론이다. 저자는 법관 스스로의 사실판단에 확신이 없는 경우라면 법원은 당연히 효율에 관한 사법적 판단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1면). 전문성이 없는 법관이 입법부나 행정부의 판단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는 결국 조세문제에 대한 판단에서 전문성이 중요한 척도임을 의미한다. 조세분야에서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점은 동감한다. 하지만 전문성이 있는 법관에게 강한 사법재량을 부여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법철학자 허버트 하트는 법관이 사법재량을 행사를 통해 규칙 창설적, 입법적 행위에 종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저자의 주장은 이와 유사하다. 그러나 법관은 선출된 기관이 아니며, 조세입법 역시 여느 입법처럼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타협하고 조정한 산물로서 존중해야 한다. 전문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관이 재량을 행사해 법률을 수정하거나 창설해서는 안 된다.


세법의 입법론

  저자는 과세요건법정주의와 과세요건명확주의가 갈등하는 관계에 놓여 있음을 지적한다(23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말미암아 국회와 행정부는 가능한 한 모든 내용을 구체적으로 법률에 담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세요건법정주의를 따르다 보니 과세요건이 점점 더 불명확해지고 말았다는 비판은 음미할 만하다. 물론 법문의 분량이 많더라도 체계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의미가 분명한 알기 쉬운 세법이라면 분량이 좀 늘어난다고 해서 무조건 문제는 아니다. 향후에는 법률만으로 과세요건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위임입법은 그에 대한 실무상 지침에 주안점을 두는 식으로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조세입법 역시 국회의 권한이다. 하지만 세법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특성으로 인해 행정부가 조세입법을 주도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경제현상에 대응하는 효율적이고 공평한 과세를 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사항은 입법부가 제정하는 법률보다 탄력성이 있는 행정입법에 위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앞으로는 조세입법에서 법률과 시행령의 관계에 대한 검토 못지않게 정부입법이 의원입법을 앞서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17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이 정부입법을 처음으로 앞지르는 등 입법부의 활동이 양적으로 증가했음은 분명하다. 이제는 양뿐만 아니라 세법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도 입법부의 활동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행정국가화 경향에 따라 행정부의 조세전문성이 강화되는 추세이며,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행정부가 조세문제에 있어서 사실판단을 내릴 권한이 가장 막강해진다. 이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위협할 우려가 있으므로 입법부와 사법부가 조세전문성을 확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법부에 의한 통제는 사후적 구제절차라는 측면에서 입법부의 적극적인 통제가 요청된다. 즉 납세자의 기본권을 사전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조세입법 과정에서 절차적 통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산재한 입법지원기구를 통합하여 조직의 능률성을 높이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직능대표로서의 성격이 강한 비례대표 선출에서도 조세전문가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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