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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5.16 WTO를 처음 익히던 시절 2
  2. 2003.10.04 농산물 시장 개방을 고민하며 2

WTO를 처음 익히던 시절

경제 2006. 5. 16. 01:47 |

2003년 2학기에 들었던 통상정책 중간고사 서술평 문제를 대비한 답안정리다. 그 때는 즐겁게 배우고 앞으로도 관심을 갖자고 해놓고서 그간 신경을 못 썼다. 한미 FTA가 화두로 떠오른 요즘 WTO를 처음 익히던 그 시절을 추억한다.

 

<WTO협정의 구성내용 및 GATT와 대비한 WTO의 주된 특징을 설명하라>

2차 세계대전 후 세계무역 체제는 다자간 무역협상기구인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제 아래서 운영되어 왔다. WTO(세계무역기구)는 전후 약 50년 간 세계무역을 주도 해왔던 GATT체제의 발전적 해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WTO는 기본적으로 전신인 GATT의 기존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국제교역환경의 변화에 따라 부상한 새로운 교역과제를 포괄하고 회원국들의 무역관련 법, 제도, 관행 등의 명료성을 제고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세계교역을 증진시키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최종의정서에 회원국들이 서명함으로써 정식 체제를 갖추게 된 WTO 협정은 이 최종의정서의 부속서로서 많은 세부협정들을 포함하고 있다. WTO 협정문은 회원국들의 무역관련 활동에 대한 공통의 제도적 틀을 제공하는 WTO 설립협정과 분야별 제도적 틀을 제공하는 부속서들인 다시 17개의 다자간 무역협정(MTA)과 4개의 복수간 무역협정(PTA)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자간 무역협정은 WTO 협정의 일부로서 모든 회원국에게 적용되며, WTO 설립협정의 부속서 1에서 3까지 규정되어 있다. 부속서 1은 다시 그 성격에 따라 3개로 나뉘어 부속서 1A는 상품무역에 관련된 협정으로서 GATT 1994, WTO로 복귀하는 협정, 도쿄라운드 MTN 협정 중 다자화된 분야, UR 협상을 통해 새로 도입된 협정 등으로 구분된다. GATT 1994는 GATT 1947과 UR 협상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각서와 부속 협정에 의해 개정된 것을 말한다. WTO로 복귀하는 협정으로는 농산물 협정과 섬유 협정을 들 수 있다. 이는 GATT 규정의 폭넓은 예외조치를 인정받은 이 두 분야를 UR 협상의 주요의제로 삼아 WTO 체제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도쿄라운드 MTN 협정 중의 일부를 다자화시킨 것으로는 수입허가절차, 관세평가, 보조금 및 상계관세, 반덤핑, 기술장벽 등 5개 분야를 말한다. UR 협상을 통해 새로 도입된 협정으로는 위생 및 검역조치, 무역관련 투자조치, 선적전 검사, 원산지 규정, 긴급수입제한조치 등이 있다.


부속서 1B는 서비스무역에 관한 협정(GATS)이며, 부속서 1C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정하고 있다. 부속서 3에는 분쟁해결규칙 및 절차에 관한 협정(DSU)를 담고 있어 GATT 체제에서 명확한 분쟁해결 절차가 없던 것을 보완하고 그 권위를 대폭 확충, 강화했다. 부속서 3에는 무역정책검토제도(TPRM)가 있어 각 회원국의 무역정책과 관련제도 및 관행을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복수간 무역협정을 정하고 있는 부속서 4에는 민간항공기 교역, 정부조달 협정 등이 있는데 이에 속하는 협정들은 이를 수락한 회원국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WTO 협정과는 별도로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GATT와  WTO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주요 차이점을 대비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GATT는 임시적 성격의 국제협정으로 국제기구로서의 법인격을 갖추지 못한 임시 사무국의 성격을 가진 불완전한 체제였다. 이러한 이유는 ITO의 성립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WTO는 항구적이고 법인격을 갖춘 국제기구이다. 모든 회원국은 WTO 규정을 비준하는 법적 절차를 거침으로써 WTO는 법인격을 갖춘 실체로서 그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둘째, GATT가 관세인하에만 주력했다면 WTO는 관세인하 외에 특정 분야에 대한 무관세화와 고관세 품목의 관세완화 등 다양하고 큰 폭의 관세인하를 진행시킨다. 또한 WTO에서는 GATT에서 선언적 규범정립에 그친 수량규제 같은 비관세장벽 철폐를 강력히 추진한다.


셋째, 관할범위에서 GATT는 상품무역에 한정하고 있지만, WTO는 농산물과 섬유는 물론 무역관련 투자, 서비스, 지적재산까지 포함하는 매우 포괄적인 관할범위를 갖고 있다. 이는 세계의 경제 및 무역환경의 급변에 맞춰 새로운 이들 분야들의 거래에 관한 국가 간의 질서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넷째, WTO는 분쟁해결방식도 과거보다 훨씬 신속하고 강력하게 되었다. GATT에서는 무역분쟁에 대한 권고안만 제시했지만 WTO에서는 분쟁해결을 위한 협정이 제정되고, 상설 분쟁해결기구(DSB)와 상소기구를 설치해놓고 있다. 또한 분쟁해결의 단계적 절차와 이행기간이 명료화하였으며, GATT에서의 합의제와는 달리 역총의제를 통해 DSB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또한 WTO에서는 교차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분쟁기구의 결정사항이 용이하게 집행되도록 하고 있다.


WTO의 목표인 자유무역과 다자통상체제는 명목상으로 약소국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며 실제로 미국은 자국에게 유리한 분야를 의제로 채택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여러 요직에 자국의 인물들을 앉혀 놓기도 하는 등 강대국들의 입김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WTO가 GATT보다 더 강력하게 무역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라면 보다 강력한 위상을 가진 국제기구로서 개도국에 대한 무역 강대국의 일방적인 무역제재조치 같은 횡포를 제지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기구로서 거듭나서 모든 회원국들의 권익을 도모하는 데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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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한 채 폐막되었다. 지난 회의는 농산물 시장 개방 반대를 외치며 자결한 故 이경해씨의 안타까운 사연에다가 이제 더 이상 버틸 여지가 없는 농산물 시장 개방의 임박에 대한 위기감을 남겼다.


우리 농업 문제만 생각하면 밀려오는 답답함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이제 고민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점점 거세지는 개방 압력에 우리 농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DDA(도하개발어젠다) 농업협상이 제5차 WTO 각료회의에서 논의된 의장 초안을 토대로 타결될 경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농업부문의 총소득은 15조원에서 9조원으로 감소하고, 자연감소분을 제외하고도 농업취업자 25~5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농민의 이익과 국익을 대립시키면서 농산물 시장 개방이 비록 농가에는 치명타이겠지만 국가 전체로는 이익이라는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 모든 책임이 농민에게 있는 것처럼 집단 따돌림을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처사다. 지금까지의 농업 정책들은 죄다 국가 경쟁력 강화와 도시민들의 생활안전을 위한 것이었지 진정 농민의 처지에서 이루어진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경제발전에는 저임금을 받고 묵묵히 일해 준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고들 하는데, 그 바탕에는 농민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경제개발기에 농촌 젊은이를 도시로 끌어들여 공장노동자로 만든 다음 저임금을 이용한 수출주도 정책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 이른바 한국형 경제성장의 모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는 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을 썼고, 농민들은 가뜩이나 줄어드는 노동력을 가지고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해 기계를 사고 비료와 농약을 많이 뿌려 다수확 품종을 선택했다. 그 결과 수확량은 늘어났지만 과도한 생산비 증가로 인해 농민들의 빚은 자꾸 늘어만 갔다. (물론 부수적으로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도 크다)


이제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인해 그나마 돈도 안되는 농사마저 완전히 때려 쳐야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한 농민 지도자의 안타까운 죽음도 무역자유화의 대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리라. 故 이경해씨는 지난 1990년 11월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이 진행 중인 제네바에서 할복을 기도했다가 치료를 받고 귀국하면서 “냉혹한 현실에서 개방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다. 한쪽 목소리만 높여서는 결국 국가 전체가 손해라는 것을 알았다”는 독백을 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끝내 목숨을 걸고 저항한 것은 거스르기 힘든 시대적 대세 앞의 절박한 호소였다는 점에서 더욱 숙연해진다.


왜 그는 그러한 극단적인 길을 택했던 것인가. 그만큼 우리 농업의 현실이 참담하다는 방증이다. 현재 농민들이 쌀 농사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47%에 달한다고 한다. 이 주된 돈벌이마저 농산물 시장 전면 개방으로 흔들리게 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UR) 때 일본, 필리핀과 더불어 10년 간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게 되어 한숨을 돌렸지만 이제 그 시한은 어느덧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어떤 대책을 마련했나를 돌아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1994년 이후 지난해까지 농업 부문에는 71조8000억원의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농업 구조조정을 위해 쏟아 부은 돈이 이렇게 큰데도 아직도 농업 현실이 이 모양이냐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정부가 농업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구조개선 사업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단기적인 부채탕감책이나 소득 보전 등으로 소진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도 한다. 10여 년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액이 1995~2004년의 10년 간 총 1조6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바 있다. 아주 기초적인 산수감각만 있으면 시장개방을 막고 대응하느라 든 비용보다 활짝 열었을 때의 비용이 훨씬 적게 들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피해보상을 후하게 해주고도 수십조가 남는 대박 장사가 아닌가.^^;


놓친 대박(?)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어느 농림부 통상정책관의 솔직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수입국은 지는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전제하고, 0:5로 질 게임을 0:4로 지기 위해 노력한다며 어려운 처지를 호소했다. 지난 회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아도 확실히 이기기는 힘든 경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씁쓸한 기분이 든다. 될 수 있는 한 작은 점수 차이로 지려는 경기를 보는 마음은 무척이나 착잡하다. 하지만 좀 더 큰 틀에서 생각해보면 지는 경기를 한 것은 아니다.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이라는 경기장에서 우리는 꽤 쏠쏠한 재미를 얻어왔다.


우리나라만큼 자유무역체제의 은혜를 입은 나라도 찾기 어렵다고들 한다. 썩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지난날의 헐벗고 굶주리던 것을 확실히 벗어 던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가입하며 제법 멋을 내고 있는 것도 수출해서 부를 축적한 덕분이다. 앞으로도 경제성장에서 가장 큰 부분은 수출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WTO와 같은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다자통상협상은 우리에게 남는 장사다. 합리적 경제주체간의 협상은 상호간에 주고받는 공생관계를 지향하는 것이지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기생관계로는 성립할 수 없다. 10년 전의 개도국 타령을 또 한 번 우려먹는다면 무슨 염치로 우리 상품을 세계에 팔 것인지가 걱정이다.


100년 이상부터 산업화가 착착 진행되어 농업구조조정을 순차적으로 할 수 있어 그 충격을 완화했던 선진국들과는 달리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한 우리는 그런 완충 작용을 노릴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이를 이유로 조정기간 내지 유예기간을 더 얻어내려고 안간힘을 써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자기 본위의 생각일 뿐,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는 투정으로 비춰질 수 있다. 조금 억지 비유를 들자면 병아리에서 닭이 되는 시간이 엄청 짧았으니 달걀은 좀 뜸들이고 내어주겠다는 꼴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정과 투정이 모여 치열하게 싸우고 타협하고 그러는 것이 협상의 본질이 아닌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미국의 승리를 의심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처럼 농산물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 시기를 늦추는 것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한 쪽으로는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개방에 대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분주하게 대책을 모색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개운치 않은 것은 바로 식량이 무기로 쓰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곡물자급도가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주곡인 쌀만 100% 자급하고도 남아 재고가 늘고 있을 뿐, 대부분의 다른 곡물의 자급도는 5%도 안 되는 심한 불균형 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적으로 식량무기론은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왔다. 역설적이게도 식량을 무기로 삼는 일은 너무나 비윤리적이어서 오히려 그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식량 수출국인 북미와 호주, 유럽 등지의 안정되고 높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들에서 식량을 무기로 삼으리라는 상상을 할 수 없다는 소박한 믿음에서였다. 물론 남의 선의(善意)에 제 목숨을 걸어두는 것은 살얼음판을 걷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이 밖에도 세계의 농업시장은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은 ‘구매자 시장’이라는 논거를 들 수 있다. 또한 농업은 공업보다 기반을 복구하기가 훨씬 쉽고 간단해서 버려진 논밭은 한두 해 안에 그럭저럭 복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생각들은 복거일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을 밝힌다)


물론 그래도 영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다. 도서관에서 아무리 손쉽게 빌릴 수 있는 책이라도 내 방안의 책꽂이에 꽂힌 책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심리적 차이감 내지는 불안감이라면야 오죽 좋겠냐만은.^^; 또한 역사상 식량을 무기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은 카터 대통령 시절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빌미로 금수조치(禁輸措置, embargo)를 시행한다. 식량사정이 나빠서 미국으로부터 대규모로 식량구입을 하던 소련에게 타격을 입히겠다는 계획이었으나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이 시기 소련은 아르헨티나와 캐나다로부터 곡물수입이 크게 늘어나서 오히려 전체 곡물수입규모가 증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식량이 정치적인 이유로 무기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그 실효성을 거두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두 가지 광경을 동시에 보여준다.


비록 소련의 경우에는 성과가 미비했지만 미국은 인도, 칠레의 경우 식량원조의 중단이나 원조방식의 변경을 통해 미국이 수원국에 대해 의도하고자 했던 것을 달성했다. 인도에서는 미국의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도록 했고, 칠레에서는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켰다고 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경남대 사회학 교수인 김종덕의 논문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식량의 정치적 이용’을 참고했다. 이 논문은 그의 저서 [농업사회학] 2부 7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농산물 수입자유화는 분명 식량 수입국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식량 수출국의 식량의 정치적 이용가능성과 세계 식량생산의 불확실성이 만의 하나 존재한다면 그러한 비상사태를 대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 보험료를 내고서 평생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보험료가 아까운 것이 아니라 사고 안 난 것을 감사해야 하듯이 만약을 대비한 지출을 아까워하기보다 식량대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예의 주시해야 한다. 아무리 개방이 되더라도 우리 농업을 적정 수준 개발하고 보존하는 것이 진정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 논의 70%는 밭이나 다른 용도로 바꿀 수 없는 규제대상이다. 개방에 대비해 용도 변경이 금지된 땅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대책을 추진하더라도 무작정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즉각 쌀 생산이 가능하도록 논의 형태를 유지할 부분을 합리적으로 산정하려는 노력 같은 것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산업에도 포트폴리오 개념을 도입하여 위험도를 낮춰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농산물 시장 개방을 고민하면서 미국계 카길과 같은 곡물메이저들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곡물메이저란 곡물의 저장, 수송, 수출입 등을 취급하는 세계적인 상사로 취급량과 독점도가 높은 기업을 뜻한다고 한다. 곡물메이저들은 세계 농산물 작황을 수시로 파악해, 흉작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해당 곡물을 매점하고 가격을 올리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한국은 1980년대 냉해로 인한 벼농사 대흉작으로 미국 코넬 사로부터 t당 200달러이던 쌀을 550달러에 사들인 경험이 있다. 이들은 언제든지 수출금지, 가격담합 등으로 우리의 목을 옥죄어 올 수도 있다. 세계 곡물 시장에서 WTO 등 국제기구의 규범에 따라 유지되리라 철썩같이 믿는 것도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우리 농산물 시장을 놓고 군침을 뚝뚝 흘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곡물메이저들 앞에서 함부로 우리 식량의 자급문제를 자유무역주의에만 맡길 수 없음이 분명해진다. 비단 곡물메이저뿐만 아니라, 순수한 경제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여력을 비축해두어야 한다. 실제 세계의 식량 수급 상황은 자꾸 나빠지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중국․인도․인도네시아․러시아․동유럽 등 식량을 자급했던 인구 과밀 국가들이 식량 수입국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심상찮은 이상기후도 마냥 안심할 수 없다. 농산물 시장 개방을 무작정 반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행위이지만, 우리가 농업을 팽개칠 때에도 곡물메이저들이 지금처럼 싼값에 농산물을 공급한다고 믿는 것도 안이한 행동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경제무대에 우리의 이익 도모를 위해 WTO에 적극 동참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농업을 쉽사리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농민단체들의 정도를 넘어선 압력행사는 부당하다. 그러나 농산물 시장 개방이 농민들에게 크나큰 피해를 입힐 것이 자명한 만큼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균형적인 국토 개발이라는 대의에도 부합하는 것이며, 지난  날의 희생과 노고에 대한 부족한 보은이기도 하다.


현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 더 냉혹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그 차가운 현실에 따스함으로 맞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농민과 우리 농업에 대한 그간의 무심함을 반성하고 애정의 손길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의 크나큰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경제발전을 반성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농업의 구조적인 모순과 정부의 무능한 농정으로 말미암아 늘 힘들고 어려웠던 우리네 농민들이 이제 생존의 위협을 호소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 쌀로 지은 밥이 내 식탁에 오를지라도 우리 농민들이 입는 손해를 분담하는 데 인색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농민들이 너무 큰 목소리를 낸다며 곱지 않게 여겼던 나의 편협함을 반성한다. 여전히 농산물 시장 개방에 찬성하지만, 그 찬성하는 마음은 예전 같지 않음도 고백한다. 이전의 찬성이 농업이라는 독소를 제거해 나라전체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자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의 찬성은 여간 조심스럽고 걱정이 태산같아 대응책에 절치부심 하는 모습이다. 과거의 확신에 찬 신념이 한참이나 누그러졌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버틸만큼 버텼다는 생각이 든다면 과감히 새로운 승부수를 던져봄직도 하다. 위기는 ‘위대한 기회’의 준말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늘진 농민이 아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듣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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