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1주기를 차분하게 보냈다. 한 달 전에 헌법총론 예습을 위해 탄핵심판 헌재결정을 읽다가 IPTV를 이용해 1년 전 영상을 다시 찾아본 관계로 너무 일찍 추모를 시작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통령(노무현) 탄핵소추의결서를 보면 국가의 지도자에 대한 예의는커녕 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글을 함께 써 내려갔거나 동조했던 이들이 지금은 국민을 향해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리던 22일 밤 자정을 전후해서 내 착잡한 마음을 나눠줄 분들에게 무작정 문자를 보냈다. 늦은 시간에 연락을 드린 무례함을 용서하고 답문을 보내주신 분들이 적잖아서 송구스러웠다. 어느 한 분은 내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문자를 보내자 “부끄럽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고쳐야 할 듯”이라는 답문이 왔는데 가슴이 짠했다.


작년 이맘때를 돌아보니 둘레 사람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슬픔을 나누자는 뜻이었기도 하지만 내가 걱정되었다는 분들도 있었다. 서거 속보가 막 전해지던 때에 전화기를 꺼두었던 터라 남들보다 늦게 소식을 접했다. “하 이게 뭐니”라는 문자의 뜻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기분이 참 무거웠다. 물음표까지 생략한 “우냐”라는 문자에 답문을 어떻게 보냈는지 헛갈리지만 아직은 안 운다고 보냈던 것 같기도 하다.


2009년 5월 24일 선배님께서 낮술을 사주셨는데 선배의 물기 어린 눈을 보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덕수궁 돌담길에 이르렀을 때 선배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훌쩍거렸다. 선배는 내가 우는 걸 보고 울었다고 회고하셨는데 아마 선배의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너무 기력을 소진했던지 줄을 기다리다가 결국 분향을 하지 못했고 며칠 뒤에 조계사에 가서 간신히 문상을 했다.


2009년 5월 25일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친구로부터 “지금을 원하나 태릉입구로 튀어감?”라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고 화랑대역 근처에 사는 친구까지 포함해 세 사람이 모였고 한참을 걷다 중화역 근처 감자탕집으로 향했다. 당시에 나눴던 대화를 좀 더 기억해내고 싶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별 말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집 앞까지 찾아와준 그 친구 덕분에 큰 위로를 얻었다. 다시금 고맙다.


그 때 당시 여러 추모 칼럼이 있었지만 지금 언뜻 떠오르는 건 육상효 선생님이 한국일보에 기고하신 <그는 우리에게 누구였을까>라는 글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담담히 서술하는 글인데 나도 그 당시에 이런저런 말을 토해냈을 텐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09년 5월 29일 영결식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에 따르면 “잘 가요”라는 말을 넋두리처럼 많이 했다고 한다. “(그 시절이) 나쁘지 않았어”라는 말도 적잖이 했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님은 내가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혹자는 정치인 노무현보다 인간 노무현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정치인 노무현도 좋아했다. 물론 그에게 완벽함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을 때 했어야만 하는 일, 할 수 있었던 일, 하면 좋았던 일 가운데 몇 가지를 해내지 못했다. 공인으로서 마땅히 비판받을 점이다. 그래서 때때로 실망하고 서운했지만 그런 감정보다 한두 뼘쯤은 더 좋아하고 아꼈던 분이었다.


덧없는 세월은 흘러 또 다시 선거의 계절이라지만 노무현에게 아쉬웠던 점을 메우면서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잡아끌 분을 가까운 시일 내에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멍멍하다. ‘또 다른 노무현’이나 ‘더 나은 노무현’이 등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체념 때문에 지금까지도 마음이 아픈 모양이다. 대한민국에 인재가 없지는 않을 테니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일꾼들을 키우고 응원해야겠다.


집단으로서의 유권자는 영원한 면책특권을 누린다. 그 면책특권은 민주주의의 과실이다. 나는 민심이 무조건 위대하다는 명제에 동감한다. 김제동님께서 시사IN 인터뷰에서 “사람은 틀릴 수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틀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신 말씀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민심은 천심이라고 할 때 그것은 맹목적 다수결주의가 아닐 것이다. 변하는 민심처럼 시대정신도, 그 사회의 지배적 조류도 바뀌게 마련이라면 오늘날 일시적 다수파가 된 분들이 잠시 맡은 제한된 권한을 삼가며 쓰는 자세를 갖추시길 바란다.


『회남자(淮南子)』가 출전인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는 고사성어 가운데 이야기의 전체 내용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 편이다. 새옹지마는 부푼 희망을 노래하기보다는 차분한 평상심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지고 전해지는 것 같다. 새옹지마와 비슷한 표현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을 꼽기도 하는데 나는 뜻빛깔이 좀 차이가 난다고 본다. 새옹지마는 오히려 삶의 변화무쌍함을 논한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한 듯싶다.


변화무쌍은 무상(無常)이란 말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포개지지는 않는다. 무상에는 늘 변한다는 뜻과 더불어 덧없다는 뜻도 있으니까 말이다. 여하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새기자면 삶이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깨닫고,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지방선거가 지방정치 독점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거나 정의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새옹지마의 이치라고 해도 좋겠다. 변방으로부터 노무현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이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길 고대한다. - [無棄]


변방 어르신의 태연자약함을 좀 배우겠다는 뜻에서 새옹지마 번역문을 첨부한다. 직역 위주로 번역을 손질한 탓에 문장이 어색하니 너그러이 헤아려주시길...


재앙과 복이 바뀌어서 서로 생겨나는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다.
夫禍福之轉而相生, 其變難見也.


변방가에 가까이 사는 사람 가운데 점을 잘 치는 자가 있었는데,
近塞上之人, 有善術者,


그 말이 까닭 없이 도망가서 오랑캐 땅에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위로했다.
馬無故亡而入胡. 人皆弔之.


그 노인이 말하길, “이것이 어째서 복이 될 수 없겠는가?”
其父曰, “此何遽不爲福乎?”


여러 달이 지나서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를 거느리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축하했다.
居數月, 其馬將胡駿馬而歸. 人皆賀之.


그 노인이 말하길, “이것이 어째서 화가 될 수 없겠는가?”
其父曰, “此何遽不能爲禍乎?”


집에 좋은 말이 많아지자 그 아들이 말타기를 좋아하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위로했다.
家富良馬, 其子好騎, 墮而折其脾. 人皆弔之.


그 노인이 말하길, “이것이 어째서 복이 될 수 없겠는가?”
其父曰, “此何遽不能爲福乎?”


1년이 지나서 오랑캐들이 변방에 크게 쳐들어 와서 건장한 청년들이 활시위를 당겨서 전쟁터에 갔다.
居一年, 胡人大入塞, 丁壯者, 引弦而戰,


변방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은 자가 열에 아홉이었다.
近塞之人, 死者十九.


이 사람은 홀로 절름발이라는 이유 때문에 부자(父子)가 서로 보존할 수 있었다.
此獨以跛之故, 父子相保.


그러므로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변화는 다함이 없어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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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본준 2011.01.23 03:4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위의 글을 저에 생각에 견주어 세심히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글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 (공대졸업하고 직장생활 17년째 42세 중년의 청년 정신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해 두죠)이지만
    그것에 관계없이 정도를 가야한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해두죠

    정권과 권력을 쥔 사람들이 보인 행태는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겠죠

    모두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인신의 틀 안에서의
    최선일뿐~~~

    천심(민심)에게 묻지 않는다면
    그들의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영국 속담인가를 빌려서 말하면

    1. 미친 개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는 사람들 ?)
    2. 걷잡을 수 없는 홍수 (당할 수 없어 피하는 것이 상책인 사람들, 전쟁 중의 군사들?)
    3. 스스로 지혜롭다고 믿는 사람들 (정치인, 학자, 언론인, 경제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 중에
    서 다채로운 사회 경험이 부재한 상태에서 책을 열심히 보아서
    아전인수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인품과 인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

    을 경계하고 스스로도 이러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라 하였으니
    오로지 경계할 일입니다

    노무현 선생의 일이야 무어라 말로 형언할 길이 없지요

    왜 주변의 사람들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였는지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이 없는 것을

    노 선생은 어릴 적 독하게 공부하여 그 막장을 벗어났으나
    한 때의 쾌락을 뒤로 하고
    다시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백의종군과 남이 가지 않는 길로 달려 가셨으며
    그것이 백성의 마음을 얻어
    대권을 얻었던 것입니다

    많은 서민의 마음이야
    어찌 그러한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까요 ?

    그는 권좌를 내려오는 길에 대해서는
    경험이 전무하였고
    또한 슬기롭지도 못하였으며
    그 거센 역풍과 역공에 대해서도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측면이 큽니다

    권좌에 있을 때는
    거센 홍수와 미친 개들이 공격을 피하지 못하였고
    권자에서 내려와서는
    제3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을
    가볍게 받아 넘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인정해 주지 그랬어요

    그래도 누가 그것을 탓하겠어요

    세상은 한없이 혼탁하고

    다산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루 말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옛 어른들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18년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울분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와 슬기가 있었는데

    그것을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충무공의 사례는 또 어떤가요 ?

    탁상공론과 당쟁의 회오리에 걸려서

    죄없는 죄인이 되었지만

    끝내 하늘이 도와 (민심은 절대 그를 버리지 않았으므로)

    민족을 구원하는 성인의 경지에 오르셨잖아요

    공인의 생명이야

    만인의 것인것을

    그것을 스스로 버리셨다니

    해도 해도 너무 잘못하신 것입니다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리 우격다짐으로 적는 것이니

    반대편의 이리떼 승냥이떼야

    원래 말귀가 막힌 자들이니

    무어라 하리요

    오호 통재어라 !

    앞으로는 이에 대한 사례 연구라도 해야지

    앞으로는 그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한 법이라도 생겨야 하는 것은 아닐지

    국가의 운영 시스템을
    선진화한는 쪽으로
    누가 바꿀 수 있을까요 ?

    결국은 또 한번
    민심이 움직여야 할 때가 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달리
    방법이 정녕 없기에~~~ ~~~~~

  2. 구본준 2011.01.23 03:4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위에서 인신은 인식으로 바꿉니다

  3. 구본준 2011.01.23 03:4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권좌에 있을 때는
    거센 홍수와 미친 개들이(의로 고침) 공격을 (효과적으로) 피하지 못하였고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에게 패한 김대중 후보는 눈물을 흘리며 정계은퇴를 합니다. 김영삼의 환호보다 김대중의 침통이 어느 초등학생의 눈에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그러다가 1995년 7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님은 정계복귀를 선언합니다. 그 후로 내내 야당 분열과 정계은퇴 번복이라는 비판에 시달렸지만 제 초등학교 6학년 생일날 다시 돌아온 그분을 저는 덜 미워했습니다. 제 생일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때 만들어졌던 새정치국민회의라는 정당도 넉넉한 시선으로 바라봤었죠.


1996년 4·11 총선 때 김 전 대통령님은 전국구 14번의 배수진을 쳤으나 국민회의는 79석을 얻는데 그쳐 그 자신마저 낙선했습니다. 그때 저는 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허전했지요. 이런저런 인연이 얽혀서 중학교 2학년 때인 1997년 대선 때 저는 개표 방송을 밤늦게까지 보면서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응원했습니다. 제 생애 최초의 정치적 의사 표시는 무척 엉뚱했지만 그래도 제 고향 대구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 지역주의의 문제를 이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참여정부 들어 온건 보수 세력(혹은 개혁적 자유주의 진영)이 노무현과 김대중을 두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저 또한 어느 한 편에 기울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 갈등을 다 메우기도 전에 두 분을 모두 잃어 서글픕니다. 갈라선 이들이 민주주의라는 구호 아래 다시 모여야 할지는 차차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병행을 추구하셨던 고인의 가르침을 새겨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님까지 보내려니 가슴이 아프네요. 그래도 제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했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했고, 기댈만한 꿈에 투자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죽은 뒤에 받는 복덕[冥福]을 믿지 않는 저로서는 치열하게 살았던 당신들의 삶이 살아 계실 때 상당 부분 보상받았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아, 한 시대를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네요.


니체는 말하기를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심연(深淵)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이 당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황금을 얻고자 싸운 사람은 황금에 먹히지 않도록, 권력에 집착한 사람은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범인 잡는 데 종사한 사람은 자기 마음이 범인 닮아서 사악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가 명심할 것은 공산당과 싸운다면서 공산당의 수법을 닮아가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할 일이다.
- 김대중, 『김대중 옥중서신』, 한울, 2000, 348쪽.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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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동욱 2009.08.19 01:4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시수의 글과 무엇이 다를까 궁금하여 들어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익구 2009.08.19 13:5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글을 쓸 기운이 없어서 그냥 얼기설기 늘어놓았지. 아시수에 올릴 때는 한 문단 추가했어. 우리 고등학생 시절 쉬는 시간에 잠깐 켰던 티비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남북정상회담 하러 평양에 가시는 장면이나,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발표도 함께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

  2. atopos 2009.08.21 12:1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잘읽었습니다. 갈등을 메우지 못하고 가셔서 ... 라는 말이 사무치네요.

    • 익구 2009.08.24 09:5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써놓고 보니 갈등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네요. 열린우리당과 옛 민주당 지지층 사이의 서먹서먹함을 전통적 야당 지지층의 분열이라고 칭하는 게 적절한지도 모르겠고요. 지금은 그저 곡진하게 애도할 때이지만요.

  3. 온건보수세력이라함은... 2009.08.28 01:2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주체사상파를 386이란 이름으로 받들고 -386은 주사파들이 만든 신문 내일신문('94년)에서 만든 어거지낱말임.-

    김정일에 어거지로 퍼주며 역시 어거지로 간첩을 국회의원선거에 내보내 적극 밀어준 세력을 말하는 것 같은 데 어느 미친놈에게서 헛소리만 들어서 이들을 온건보수세력이라고 거짓표현을 하는지...


    개도 웃고가겠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4. 온건보수세력이라함은... 2009.08.28 01:2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김대중이 한민통이라는 반한단체 즉 조총련산하단체를 주도한 사실은 인정, 아니 알고 있나?

  5. 온건보수세력이라함은... 2009.08.28 01:2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전라도사람들도 그리 애도 안하더라...

    이익으로 뭉쳤었었던 관계이므로.....

    전라도분들, 처음에는 김대중이 빨갱이라며 함께 욕했었다.

    그리고 노사모세뇌공중방송에서 김대중이가 한민통주도했었던 중요 팩트는 생략하고 죽을고비 넘겼다느니 쉰소리해댔지....


    이게 무슨 방송언론이라고?

    전두환이래에 권력의 나발꾼들이 지난좌익정권에 충성한다고 컵불사태일으킨 것이 아닌가!!!!!!!!

    • 익구 2009.08.28 14:5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정치적 좌표에서 어디에 두는가는 정치학을 배우는 분들 사이에서도 통일된 의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의 견해만 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국민의 정부는 차치하고라도 한국적 맥락에서 참여정부를 개혁정부로 부르지 않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제1야당 둘레 사람들이 스스로를 민주개혁세력이라고 칭하는 것이 딱 맞는 표현 같지는 않아서 온건 보수라든가 개혁적(혹은 중도) 자유주의라고 부르는 편입니다. 이러한 용어의 혼란은 제1야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당이 표방하는 정치적 노선도 고개가 갸우뚱 하게 만들지만 존중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대표자들이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자신들이 내건 가치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는 줄로 압니다. 이제 역사의 몫이 되었네요. 한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구하지 않는다는 말을 곱씹으며 그 분이 마땅한 자리에 계셨다고 평가합니다.

  6. 플레이아드 2009.09.13 01:5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안녕 익구, 이런 글에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막말에 가까운 표현을 써가며 댓글을 달아놓은 사람이 있다는 현실이 참 안타깝구나. 이것도 이상이려나.

    • 익구 2009.09.18 18:5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뭐 그것보다는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분들이 ‘다름’을 견디지 못하고 막말보다 더 치졸한 수법을 동원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해서 서글플 따름...

노무현 이후

사회 2009.04.23 02:59 |

(지난 4월 8일에 썼던 ‘친노 이후를 고민할 때’라는 잡글을 조금 수정 보완했습니다. 한 시절 저의 대표자이자 일꾼이었던 노무현 대통령님이 처참한 모습의 패장이 되어 용서를 빌고 있습니다. 침통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을 버려주기를 호소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다가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라고 썼다.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그를 서서히 잊어감으로써 얻는 평화를 잃었다. 열린우리당이 맥없이 무너진 후에 참여정부의 계승은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기에 참여정부의 지지자들은 노무현 개인을 향한 편애에 의지한 측면이 컸고 이번 사건에 더욱 허탈감을 느낄 듯싶다. 국민을 향한 그의 사죄가 진솔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으면 좋겠다. 노 전 대통령에게 보장된 법적 방어권은 허위사실을 막는 선에서 보장돼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자기 잘못을 외면하거나, 남에게 전가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마지막 기품을 건사하길 기원한다. ‘바보 노무현’의 잔영이나마 더듬고 싶다.


노무현의 재임 시절 그의 작은 성취마저 용납하지 못하던 이들이 자못 근엄한 표정으로 깨끗한 정치를 들먹인다. 개중에는 지난 대선 때 도덕보다는 능력이라고 목청을 높이던 분들이 적잖을 게다. 그런 말씀을 하는 사람들은 노무현은 무능한데다 부패하기까지 했으니 더 구박받아야 한다고 항변하겠지만 그 말을 하는 스스로도 얼마나 믿을지 궁금하다. 설령 노무현에게 험담을 할 만큼 떳떳하지 못한 자들이라도 노무현을 향해 얼마든지 돌을 던질 수 있다. 그것이 권력을 가진 자들이 마땅히 져야할 짐이기 때문이다. 측근과 가족의 허물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의 허물이기도 하다. 그 허물에게 쏟아지는 꾸지람을 담담히 감내해야 한다. 참여정부 민정 기능의 부실은 너무 뼈아픈 실책이다.


현 정권 인사를 향한 수사 강도와 견주어 볼 때 균형이 맞지 않다는 볼멘소리는 마음으로 삭혀야 한다. 물론 이 정부 들어 검찰의 신뢰는 많이 실추된 상태다. 아무쪼록 여야를 가리지 말고 공정하게 수사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으면 그만이다. 일각에서는 편파, 표적, 기획수사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검찰은 이런 우려의 시선이 존재함을 헤아려야 한다. 지은 죄 만큼의 벌을 골고루 내리지 못하는 것은 또 하나의 죄를 짓는 셈이다. 검찰이 할 일은 죄 만큼의 벌을 공평하게 부과하는 것이다. 물러난 권력에는 예리한 칼날을 휘두르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는 칼집이나 만지작거리는 시늉을 한다면 지금의 비극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피의사실을 무차별적으로 공표하면서 과거 정부의 흠집을 대서특필하는 데만 온 정신이 팔린 몇몇 언론들도 이 비극에 동참하지 말길 부탁한다.


이번 사안은 부정한 돈을 받은 이들이 각자의 책임을 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듯싶다. 정치적 실체로서 존재하던 ‘참여정부 계승세력’ 혹은 ‘친노 세력’라고 불리던 자들이 몰락한 후의 한국 정치의 지형도를 그려볼 때가 다가옴이 느껴진다. 친노파라 불리는 이들은 참여정부가 표상했던 정신을 창조적으로 이어가기보다는 노 대통령과의 연줄로 권세를 누린 사람들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담담하게 참여정부와 명운을 함께 하려는 몸짓이 있었다면 이렇게 마냥 동네북이 되는 신세는 면했을지도 모른다. 친노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줬던 국민들의 정성을 생각했다면 오늘날의 참담한 꼴을 당하지 않았으리라. 누구를 탓하기 전에 자기 머리부터 칠 일이다.


정권 차원의 음모가 있든 없든 간에 이번 일로 말미암아 참여정부를 지지했던 국민들의 가슴에는 멍이 들었다. 정권 차원의 부패까지는 못 되고 몇몇 측근들의 난행이라고 해도 그렇다. 한나라당을 향해 도덕적 권위를 내세운 이들이 그 상대적 우위를 반납하고 나면 너무 초라하다. 친노 세력은 차떼기를 하고도 떵떵거릴 수 있는 저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깨끗한 정치는 참여정부의 핵심 가치 가운데 하나였다. 그 가치를 내걸고 목에 힘주던 이들이라면 좀 더 사려 깊은 처신을 했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4·19혁명 49주년 기념식에서 “선진화는 절대로 부정부패와 함께 갈 수 없다”라는 기념사를 남기는 빌미를 제공하다니 치욕스럽다. 저들이 유능을 참칭하더니 이제 청렴마저 훔쳐가려고 한다. 물론 유능이나 청렴은 특정인이 독점할 수 있는 덕목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때 최고의 권세를 누리던 노 전 대통령을 가엾기 여긴다는 건 민망한 일이지만 자나 깨나 노무현의 실패만을 꿈꾸던 이들의 열망을 깨트리지 못해 애석하다. 친노파와 명랑하게 이별할 준비를 하다가도 개혁세력의 한 축이 무너진 자리를 대체할 행위자가 당장 채워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친노의 중심인 영남 개혁세력은 한국 정치에서 소중한 존재다. 도매금으로 넘기기보다는 어지간하면 존속시켜야 할 실체다. 친노 세력에게 권력을 쥐어주었던 국민에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서 우아하게 떠날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다.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세력에 맞설 최후의 보루 몇 개쯤은 지켜내길 바란다. 별다른 충원 세력도 없는데 징검다리부터 치우려니 마음이 스산하다. 이 과정에서 퇴행적 지역주의가 독버섯처럼 돋아날 조짐이 보인다.


만약 친노가 붕괴하고 나면 유권자들은 하나의 선택지를 잃어버린다. 진보정당으로 달려가기를 머뭇거리는 상당수 국민들이 정치 냉소자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현 정치 구도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대변할 정당이 없다고 여겨 적극적 기권층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사분오열된 야권이 거대 여당을 이길 생각은 포기하고 그에 버금가려는, 즉 2등이나 하는 경쟁에 함몰된다면 끔찍하다. 야권에게 필요한 건 ‘절반의 패배주의’다. 지금 이 상태로는 필패한다는 생각을 늘 품어야 한다. 현 정치 지형을 엄정히 성찰하고 시운에 따라 힘을 합치고 양보하면서 지지 않기 위한 모든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간신히 으뜸이 될 수 있다.


이 뒤숭숭한 와중에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를 훼철하는 작업에 더욱 열을 올릴 공산이 크다. 자기네는 유능한데다 깨끗하다는 허황된 자부심을 품고 말이다. 융단폭격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노무현 시대지만 그 잿더미 속에서도 긍정적 유산을 몇 개 건져 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긍정적 유산을 부수려는 시도를 얼마나 저지할 수 있을까. 도둑고양이처럼 엄습한 친노와의 작별은 곤혹스럽다. 때 이른 친노의 퇴장은 한국 정치에 암운을 드리운다. “굿바이 노무현!”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모든 것을 노무현 탓으로 돌려 그만 수렁에 던지고 나면 우리는 희망의 싹을 발견할 수 있는 걸까? 아닐 것 같다. - [無棄]


여담 - 노무현의 첫 번째 고백이 나왔던 시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끝내 몸통이었다니>라는 제목의 4월 8일자 세계일보 사설은 노무현에 대한 저주라고 이를 만하다. 나는 세계일보의 독자는 아니지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적 지면을 이렇게 함부로 써도 되는 것인지 치가 떨리고 분통이 터진다(이 사설의 첫 구절을 그대로 따왔다). 나는 그저 이 사설의 구절들을 기억했다가 앞으로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터질 때 세계일보 사설이 뭐라고 쓸지 비교해볼 따름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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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정윤 2009.04.10 08:2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그래도 이 글을 읽고 나니 마음이 좀 진정이 되네.
    잘 지낸다는 것도 알겠고.

    • 익구 2009.04.11 03:1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저를 대표할 만한 집단을 만나지 못할 거 같아 살짝 우울합니다. 온건 보수 노선이나 개혁적 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수요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다면 한국 정치는 더 앙상해지겠죠.

  2. 악당천하 2009.05.04 15:0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네이버 블로그에 같은 날 신문사별 사설을 종합해둔 게 있어
    뒤늦게나마 찬찬히 읽어봤네요. 슬픈 일입니다.

    • 익구 2009.05.07 04:2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형사소송법의 원칙들이 여기저기 무너졌다는 게 슬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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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대통령 취임식(사진 출처 - 노무현 홈페이지http://www.knowhow.or.kr)


떠나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가엾게 여긴다는 건 황당한 일이다. 나는 그의 출세를 부러워할지언정 그에게 연민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최고의 권력을 누렸고, 퇴임한 후에도 월 1500만원의 연금과 경호원 및 비서관 등을 국가에서 지원 받는다. 이러한 예우는 그를 국가의 지도자로 삼았던 국민들의 품위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성공한 전직 대통령의 모범으로 꼽히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본받으라고 여러 사람들이 충언하고 있다. 이 말에는 정치적 행보를 하지 말아달라는 주문도 적잖이 녹아들어 있다. 집짓기 운동으로 유명한 카터 전 대통령이 비정치적 행위만 했는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정치와 비정치를 가르는 기준은 애매하게 마련이다. 국가의 분배 구조에는 침묵하고, 자선 활동만 권장하는 식이라면 매우 기만적이다.


노 대통령의 임기 말을 조명한 MBC 스페셜 <대한민국 대통령> 2부에서 희망돼지 저금통 앞에서 목이 메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짠했다. 그는 옛 지지자들에게 미안함을 표할 기회를 너무 많이 놓쳤다. 그가 악의에 차서 지지자들을 배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 차례 팽개쳐진 지지자들 가운데 끝끝내 그의 선의를 믿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 그네들 자신의 존엄성을 건사하고픈 심리 때문이라고 깎아 내리기 망설여진다. 적어도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고 외치지 않았던 분들에게 중독자나 광신도라고 헐뜯는 건 예의가 아니다. 노무현으로 상징된 가치의 소멸을 안타까워하는 측면이 있다. 열린우리당이 맥없이 무너진 후에 참여정부의 계승은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기에 노무현 개인을 향한 편애에 의지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이 그저 대통령이 되어준 것을 고맙게 여기는 지지자들도 있겠지만, 애증이 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그를 보내는 지지자들이 더 많으리라.


고종석 선생님은 노 대통령을 개혁세력 전체를 분열과 절망의 나락에 빠뜨린 트로이 목마라고 비판했다. 노무현이 싫다는 분들이 달려간 곳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라는 사실에 비추어 그런 비유가 나왔다. 그러나 중도 보수 혹은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은 목마를 성안에 들여서 망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모욕하고 나서 스스로 붕괴했다. 호남의 지역주의에 기대 연명했던 옛 민주당의 구접스러운 행각이나 올바른 패배를 마다해 정당 민주주의의 퇴행에 일조했던 옛 열린우리당 탈당파의 팔락거림은 노무현 탓으로 감추기에는 그 그림자가 너무 짙다. 아울러 노무현의 실패가 오늘날 넘실대는 도덕과 능력이 별개라는 낭만적(?) 사고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엄밀히 따져야 한다. 노무현이 우리 사회의 윤리적 감수성을 헝클어뜨린 분노를 고작 이런 식으로 표출한다면 정직한 절망 외에는 손쓸 방도가 없다.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놓고 재평가가 이뤄질 거라는 견해에 동감한다. 그가 대한민국에 어떤 부정적 유산을 남겼는지도 차차 밝혀지겠지만 이제 노무현 때문이라는 핑계는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게 되었다. 노무현을 두고 벌였던 희생제의는 이쯤에서 그치고 노무현을 넘어설 정치 지도자를 찾는 노력을 해보자. 노무현에게 아쉬웠던 점을 메우면서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잡아끌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갖은 미움을 받았으나 현실 정치인 가운데 노무현만큼 대중성과 진솔성, 원칙과 가치를 제시한 교양 있는 지도자는 너무 드물다. 그 대중성은 굳건하지 못했고, 진솔성은 계산된 것이었으며, 원칙은 분열적이었고, 가치는 흐릿하다는 험담이 대개 온당하다고 수긍하더라도 말이다. 참여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해 민심을 잃었다는 주장이 많다. 노무현을 반겼던 서민에게 환멸을 불러일으켰던 뼈아픈 실책이다. 노무현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인정하기 싫은 분들도 이 점에 대해 겸허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일부 언론이 뒤틀린 해석도 모자라 신성한 사실마저 구부러뜨려 왔음은 또렷하다. 최근 일부 언론이 이명박과 그 둘레 사람들에게 너그러운 모습은 섬뜩하다. 앞으로도 이중 잣대가 춤춘다면 언론의 신뢰도는 다시금 흔들릴 게다(참여정부가 사실을 어그러뜨린 사례도 무수히 많다). 그네들이 장악한 기록을 넘어선 균형 잡힌 평가가 다만 시간이 지나면 가능할지 궁금하다. 편향된 사료를 남겨놓고 역사의 평가를 운운하는 건 비겁한 짓이다. 그 평가는 결국 노무현 정부의 긍정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형식이 아니라 후임 정부의 실정에 견주어 부각될 상대적 돋보임에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당대에도 객관적인 성과 측정과 공정한 평가를 내렸는지를 살펴야 한다. 참여정부가 남긴 대통령기록물이 역대 정부에 비해 월등히 많은 까닭도 있는 그대로의 평가에 대한 욕망이 발현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려 공민왕은 재위 기간 동안 『서경』 「무일(無逸)」편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무일」편에 대한 강의를 들었으며, 이를 써서 신하들에게 나눠주거나 정무실에 걸어두도록 했다. 「무일」편은 주공(周公)이 조카인 성왕(成王)에게 남긴 정치적 조언이다. 주공은 군왕의 지위를 특권이 아닌 의무로 보아야 한다며 안일하지 말 것을 설파한다. 「무일」편은 왕의 근면 성실한 노력을 주로 강조하고 있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箕子)의 충고를 청하는 「홍범(洪範)」편은 군왕의 의사소통 능력에 주안점을 둔다는 의견이 있다(김영수, 『건국의 정치』, 이학사, 2006, 208~231쪽 참조). 군왕이 망국의 유신에게 국정을 묻는 자세가 인상 깊었기 때문인 모양이다. 기자는 무왕에게 ‘그대의 나라’라고 하지 않고, ‘그대의 왕가(王家)’라고 칭하며 주나라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은 듯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부지런함과 의사소통은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보기 힘들다. 우리네 지도자들은 마땅히 두 가지 덕목을 품어야 한다. 윤택(尹澤)은 공민왕에게 「무일」편을 강의하면서 “전하께서도 성왕이 능히 주공의 가르침을 듣는 모습을 본받으셔서 엄숙하고 공손하여 삼가고 두려워하시면 사직의 복이 됩니다(願殿下 法成王 能聽周公之訓 嚴恭抑畏 社稷之福)”라고 말한다(『고려사절요』 공민왕 6년(1357) 5월). 주공의 언설만큼이나 그 대화가 이루어지는 맥락을 배워야 한다는 강설이다. 다시 말해 기자의 말에 귀 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주공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갖추길 바랐다. 「무일」편 끄트머리에는 주공이 훌륭했던 이전 왕들의 행실을 평가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들은 백성이 자신을 원망하고 욕할 때 스스로 마음가짐을 조심하여 ‘그 허물이 나의 허물이다’라고 말하며, 노여워하지 않았음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 탓에 서툴렀기에 그네들이 상처를 받는 것 이상으로 국민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목민심서』의 마지막 편은 ‘관직에서 물러남(解官)’이다. 벼슬에서 물러날 때의 자세를 서술한 내용인데 제6조는 ‘사랑을 남김(遺愛)’이다. 다산 정약용은 수령이 임지를 떠난 뒤에도 백성들로부터 기림을 받는 선정의 이상향이라 생각했다. 이미 떠난 뒤에도 사모하여 심은 나무조차 사람들의 아낌을 받는 것은 감당(甘棠)의 유풍(遺風)이라는 구절이 있다. 감당의 유풍은 『시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백성들을 위해 일하다 팥배나무 밑에서 쉬어간 지도자를 경애하여 그 나무조차 건드리지 않았다는 고사다. 노무현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노무현이 임기 중에도 실현하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을 보듬는 일을 퇴임 후에 해내기를 기대하는 건 무모하다. 그는 강은 똑바로 흐르지 않지만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고별사를 남겼다. 그가 염원하는 바다가 단지 힘센 벗들과의 어깨동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좀처럼 미워하지 못했던 내가 드리는 마지막 덕담이다.


노무현을 만나고, 그의 시련에 같이 아파했던 지난날이 애틋하다. 그와 함께 내 젊음도, 고집도 저물었다. 내가 미련한 젊음 대신 유능한 점잖음을 택하고, 우직한 고집 대신 표변하는 영특함을 예찬할까 두렵다. 내 자신에게 얼마나 저항할 수 있을까. - [無棄]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일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입니다.

- 1988년 노무현 의원의 국회 대정부 질의 中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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