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1주기를 차분하게 보냈다. 한 달 전에 헌법총론 예습을 위해 탄핵심판 헌재결정을 읽다가 IPTV를 이용해 1년 전 영상을 다시 찾아본 관계로 너무 일찍 추모를 시작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통령(노무현) 탄핵소추의결서를 보면 국가의 지도자에 대한 예의는커녕 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글을 함께 써 내려갔거나 동조했던 이들이 지금은 국민을 향해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리던 22일 밤 자정을 전후해서 내 착잡한 마음을 나눠줄 분들에게 무작정 문자를 보냈다. 늦은 시간에 연락을 드린 무례함을 용서하고 답문을 보내주신 분들이 적잖아서 송구스러웠다. 어느 한 분은 내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문자를 보내자 “부끄럽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고쳐야 할 듯”이라는 답문이 왔는데 가슴이 짠했다.


작년 이맘때를 돌아보니 둘레 사람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슬픔을 나누자는 뜻이었기도 하지만 내가 걱정되었다는 분들도 있었다. 서거 속보가 막 전해지던 때에 전화기를 꺼두었던 터라 남들보다 늦게 소식을 접했다. “하 이게 뭐니”라는 문자의 뜻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기분이 참 무거웠다. 물음표까지 생략한 “우냐”라는 문자에 답문을 어떻게 보냈는지 헛갈리지만 아직은 안 운다고 보냈던 것 같기도 하다.


2009년 5월 24일 선배님께서 낮술을 사주셨는데 선배의 물기 어린 눈을 보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덕수궁 돌담길에 이르렀을 때 선배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훌쩍거렸다. 선배는 내가 우는 걸 보고 울었다고 회고하셨는데 아마 선배의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너무 기력을 소진했던지 줄을 기다리다가 결국 분향을 하지 못했고 며칠 뒤에 조계사에 가서 간신히 문상을 했다.


2009년 5월 25일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친구로부터 “지금을 원하나 태릉입구로 튀어감?”라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고 화랑대역 근처에 사는 친구까지 포함해 세 사람이 모였고 한참을 걷다 중화역 근처 감자탕집으로 향했다. 당시에 나눴던 대화를 좀 더 기억해내고 싶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별 말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집 앞까지 찾아와준 그 친구 덕분에 큰 위로를 얻었다. 다시금 고맙다.


그 때 당시 여러 추모 칼럼이 있었지만 지금 언뜻 떠오르는 건 육상효 선생님이 한국일보에 기고하신 <그는 우리에게 누구였을까>라는 글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담담히 서술하는 글인데 나도 그 당시에 이런저런 말을 토해냈을 텐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09년 5월 29일 영결식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에 따르면 “잘 가요”라는 말을 넋두리처럼 많이 했다고 한다. “(그 시절이) 나쁘지 않았어”라는 말도 적잖이 했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님은 내가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혹자는 정치인 노무현보다 인간 노무현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정치인 노무현도 좋아했다. 물론 그에게 완벽함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을 때 했어야만 하는 일, 할 수 있었던 일, 하면 좋았던 일 가운데 몇 가지를 해내지 못했다. 공인으로서 마땅히 비판받을 점이다. 그래서 때때로 실망하고 서운했지만 그런 감정보다 한두 뼘쯤은 더 좋아하고 아꼈던 분이었다.


덧없는 세월은 흘러 또 다시 선거의 계절이라지만 노무현에게 아쉬웠던 점을 메우면서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잡아끌 분을 가까운 시일 내에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멍멍하다. ‘또 다른 노무현’이나 ‘더 나은 노무현’이 등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체념 때문에 지금까지도 마음이 아픈 모양이다. 대한민국에 인재가 없지는 않을 테니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일꾼들을 키우고 응원해야겠다.


집단으로서의 유권자는 영원한 면책특권을 누린다. 그 면책특권은 민주주의의 과실이다. 나는 민심이 무조건 위대하다는 명제에 동감한다. 김제동님께서 시사IN 인터뷰에서 “사람은 틀릴 수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틀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신 말씀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민심은 천심이라고 할 때 그것은 맹목적 다수결주의가 아닐 것이다. 변하는 민심처럼 시대정신도, 그 사회의 지배적 조류도 바뀌게 마련이라면 오늘날 일시적 다수파가 된 분들이 잠시 맡은 제한된 권한을 삼가며 쓰는 자세를 갖추시길 바란다.


『회남자(淮南子)』가 출전인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는 고사성어 가운데 이야기의 전체 내용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 편이다. 새옹지마는 부푼 희망을 노래하기보다는 차분한 평상심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지고 전해지는 것 같다. 새옹지마와 비슷한 표현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을 꼽기도 하는데 나는 뜻빛깔이 좀 차이가 난다고 본다. 새옹지마는 오히려 삶의 변화무쌍함을 논한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한 듯싶다.


변화무쌍은 무상(無常)이란 말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포개지지는 않는다. 무상에는 늘 변한다는 뜻과 더불어 덧없다는 뜻도 있으니까 말이다. 여하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새기자면 삶이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깨닫고,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지방선거가 지방정치 독점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거나 정의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새옹지마의 이치라고 해도 좋겠다. 변방으로부터 노무현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이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길 고대한다. - [無棄]


변방 어르신의 태연자약함을 좀 배우겠다는 뜻에서 새옹지마 번역문을 첨부한다. 직역 위주로 번역을 손질한 탓에 문장이 어색하니 너그러이 헤아려주시길...


재앙과 복이 바뀌어서 서로 생겨나는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다.
夫禍福之轉而相生, 其變難見也.


변방가에 가까이 사는 사람 가운데 점을 잘 치는 자가 있었는데,
近塞上之人, 有善術者,


그 말이 까닭 없이 도망가서 오랑캐 땅에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위로했다.
馬無故亡而入胡. 人皆弔之.


그 노인이 말하길, “이것이 어째서 복이 될 수 없겠는가?”
其父曰, “此何遽不爲福乎?”


여러 달이 지나서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를 거느리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축하했다.
居數月, 其馬將胡駿馬而歸. 人皆賀之.


그 노인이 말하길, “이것이 어째서 화가 될 수 없겠는가?”
其父曰, “此何遽不能爲禍乎?”


집에 좋은 말이 많아지자 그 아들이 말타기를 좋아하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위로했다.
家富良馬, 其子好騎, 墮而折其脾. 人皆弔之.


그 노인이 말하길, “이것이 어째서 복이 될 수 없겠는가?”
其父曰, “此何遽不能爲福乎?”


1년이 지나서 오랑캐들이 변방에 크게 쳐들어 와서 건장한 청년들이 활시위를 당겨서 전쟁터에 갔다.
居一年, 胡人大入塞, 丁壯者, 引弦而戰,


변방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은 자가 열에 아홉이었다.
近塞之人, 死者十九.


이 사람은 홀로 절름발이라는 이유 때문에 부자(父子)가 서로 보존할 수 있었다.
此獨以跛之故, 父子相保.


그러므로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변화는 다함이 없어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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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본준 2011.01.23 03:43 Address Modify/Delete Reply

    위의 글을 저에 생각에 견주어 세심히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글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 (공대졸업하고 직장생활 17년째 42세 중년의 청년 정신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해 두죠)이지만
    그것에 관계없이 정도를 가야한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해두죠

    정권과 권력을 쥔 사람들이 보인 행태는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겠죠

    모두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인신의 틀 안에서의
    최선일뿐~~~

    천심(민심)에게 묻지 않는다면
    그들의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영국 속담인가를 빌려서 말하면

    1. 미친 개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는 사람들 ?)
    2. 걷잡을 수 없는 홍수 (당할 수 없어 피하는 것이 상책인 사람들, 전쟁 중의 군사들?)
    3. 스스로 지혜롭다고 믿는 사람들 (정치인, 학자, 언론인, 경제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 중에
    서 다채로운 사회 경험이 부재한 상태에서 책을 열심히 보아서
    아전인수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인품과 인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

    을 경계하고 스스로도 이러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라 하였으니
    오로지 경계할 일입니다

    노무현 선생의 일이야 무어라 말로 형언할 길이 없지요

    왜 주변의 사람들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였는지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이 없는 것을

    노 선생은 어릴 적 독하게 공부하여 그 막장을 벗어났으나
    한 때의 쾌락을 뒤로 하고
    다시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백의종군과 남이 가지 않는 길로 달려 가셨으며
    그것이 백성의 마음을 얻어
    대권을 얻었던 것입니다

    많은 서민의 마음이야
    어찌 그러한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까요 ?

    그는 권좌를 내려오는 길에 대해서는
    경험이 전무하였고
    또한 슬기롭지도 못하였으며
    그 거센 역풍과 역공에 대해서도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측면이 큽니다

    권좌에 있을 때는
    거센 홍수와 미친 개들이 공격을 피하지 못하였고
    권자에서 내려와서는
    제3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을
    가볍게 받아 넘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인정해 주지 그랬어요

    그래도 누가 그것을 탓하겠어요

    세상은 한없이 혼탁하고

    다산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루 말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옛 어른들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18년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울분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와 슬기가 있었는데

    그것을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충무공의 사례는 또 어떤가요 ?

    탁상공론과 당쟁의 회오리에 걸려서

    죄없는 죄인이 되었지만

    끝내 하늘이 도와 (민심은 절대 그를 버리지 않았으므로)

    민족을 구원하는 성인의 경지에 오르셨잖아요

    공인의 생명이야

    만인의 것인것을

    그것을 스스로 버리셨다니

    해도 해도 너무 잘못하신 것입니다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리 우격다짐으로 적는 것이니

    반대편의 이리떼 승냥이떼야

    원래 말귀가 막힌 자들이니

    무어라 하리요

    오호 통재어라 !

    앞으로는 이에 대한 사례 연구라도 해야지

    앞으로는 그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한 법이라도 생겨야 하는 것은 아닐지

    국가의 운영 시스템을
    선진화한는 쪽으로
    누가 바꿀 수 있을까요 ?

    결국은 또 한번
    민심이 움직여야 할 때가 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달리
    방법이 정녕 없기에~~~ ~~~~~

  2. 구본준 2011.01.23 03:44 Address Modify/Delete Reply

    위에서 인신은 인식으로 바꿉니다

  3. 구본준 2011.01.23 03:47 Address Modify/Delete Reply

    권좌에 있을 때는
    거센 홍수와 미친 개들이(의로 고침) 공격을 (효과적으로) 피하지 못하였고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에게 패한 김대중 후보는 눈물을 흘리며 정계은퇴를 합니다. 김영삼의 환호보다 김대중의 침통이 어느 초등학생의 눈에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그러다가 1995년 7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님은 정계복귀를 선언합니다. 그 후로 내내 야당 분열과 정계은퇴 번복이라는 비판에 시달렸지만 제 초등학교 6학년 생일날 다시 돌아온 그분을 저는 덜 미워했습니다. 제 생일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때 만들어졌던 새정치국민회의라는 정당도 넉넉한 시선으로 바라봤었죠.


1996년 4·11 총선 때 김 전 대통령님은 전국구 14번의 배수진을 쳤으나 국민회의는 79석을 얻는데 그쳐 그 자신마저 낙선했습니다. 그때 저는 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허전했지요. 이런저런 인연이 얽혀서 중학교 2학년 때인 1997년 대선 때 저는 개표 방송을 밤늦게까지 보면서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응원했습니다. 제 생애 최초의 정치적 의사 표시는 무척 엉뚱했지만 그래도 제 고향 대구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 지역주의의 문제를 이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참여정부 들어 온건 보수 세력(혹은 개혁적 자유주의 진영)이 노무현과 김대중을 두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저 또한 어느 한 편에 기울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 갈등을 다 메우기도 전에 두 분을 모두 잃어 서글픕니다. 갈라선 이들이 민주주의라는 구호 아래 다시 모여야 할지는 차차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병행을 추구하셨던 고인의 가르침을 새겨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님까지 보내려니 가슴이 아프네요. 그래도 제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했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했고, 기댈만한 꿈에 투자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죽은 뒤에 받는 복덕[冥福]을 믿지 않는 저로서는 치열하게 살았던 당신들의 삶이 살아 계실 때 상당 부분 보상받았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아, 한 시대를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네요.


니체는 말하기를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심연(深淵)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이 당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황금을 얻고자 싸운 사람은 황금에 먹히지 않도록, 권력에 집착한 사람은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범인 잡는 데 종사한 사람은 자기 마음이 범인 닮아서 사악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가 명심할 것은 공산당과 싸운다면서 공산당의 수법을 닮아가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할 일이다.
- 김대중, 『김대중 옥중서신』, 한울, 2000, 348쪽.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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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동욱 2009.08.19 01:40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시수의 글과 무엇이 다를까 궁금하여 들어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익구 2009.08.19 13:57 Address Modify/Delete

      글을 쓸 기운이 없어서 그냥 얼기설기 늘어놓았지. 아시수에 올릴 때는 한 문단 추가했어. 우리 고등학생 시절 쉬는 시간에 잠깐 켰던 티비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남북정상회담 하러 평양에 가시는 장면이나,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발표도 함께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

  2. atopos 2009.08.21 12:1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잘읽었습니다. 갈등을 메우지 못하고 가셔서 ... 라는 말이 사무치네요.

    • 익구 2009.08.24 09:55 Address Modify/Delete

      써놓고 보니 갈등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네요. 열린우리당과 옛 민주당 지지층 사이의 서먹서먹함을 전통적 야당 지지층의 분열이라고 칭하는 게 적절한지도 모르겠고요. 지금은 그저 곡진하게 애도할 때이지만요.

  3. 온건보수세력이라함은... 2009.08.28 01:2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주체사상파를 386이란 이름으로 받들고 -386은 주사파들이 만든 신문 내일신문('94년)에서 만든 어거지낱말임.-

    김정일에 어거지로 퍼주며 역시 어거지로 간첩을 국회의원선거에 내보내 적극 밀어준 세력을 말하는 것 같은 데 어느 미친놈에게서 헛소리만 들어서 이들을 온건보수세력이라고 거짓표현을 하는지...


    개도 웃고가겠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4. 온건보수세력이라함은... 2009.08.28 01:22 Address Modify/Delete Reply

    김대중이 한민통이라는 반한단체 즉 조총련산하단체를 주도한 사실은 인정, 아니 알고 있나?

  5. 온건보수세력이라함은... 2009.08.28 01:2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전라도사람들도 그리 애도 안하더라...

    이익으로 뭉쳤었었던 관계이므로.....

    전라도분들, 처음에는 김대중이 빨갱이라며 함께 욕했었다.

    그리고 노사모세뇌공중방송에서 김대중이가 한민통주도했었던 중요 팩트는 생략하고 죽을고비 넘겼다느니 쉰소리해댔지....


    이게 무슨 방송언론이라고?

    전두환이래에 권력의 나발꾼들이 지난좌익정권에 충성한다고 컵불사태일으킨 것이 아닌가!!!!!!!!

    • 익구 2009.08.28 14:57 Address Modify/Delete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정치적 좌표에서 어디에 두는가는 정치학을 배우는 분들 사이에서도 통일된 의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의 견해만 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국민의 정부는 차치하고라도 한국적 맥락에서 참여정부를 개혁정부로 부르지 않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제1야당 둘레 사람들이 스스로를 민주개혁세력이라고 칭하는 것이 딱 맞는 표현 같지는 않아서 온건 보수라든가 개혁적(혹은 중도) 자유주의라고 부르는 편입니다. 이러한 용어의 혼란은 제1야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당이 표방하는 정치적 노선도 고개가 갸우뚱 하게 만들지만 존중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대표자들이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자신들이 내건 가치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는 줄로 압니다. 이제 역사의 몫이 되었네요. 한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구하지 않는다는 말을 곱씹으며 그 분이 마땅한 자리에 계셨다고 평가합니다.

  6. 플레이아드 2009.09.13 01:53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안녕 익구, 이런 글에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막말에 가까운 표현을 써가며 댓글을 달아놓은 사람이 있다는 현실이 참 안타깝구나. 이것도 이상이려나.

    • 익구 2009.09.18 18:59 Address Modify/Delete

      뭐 그것보다는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분들이 ‘다름’을 견디지 못하고 막말보다 더 치졸한 수법을 동원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해서 서글플 따름...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를 애도하는 마음에서 ‘대통령님’이라는 잉여적 표현을 썼습니다. 너그러이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1.
지난 일주일 동안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를 가슴 깊이 슬퍼했다. 나는 국민장이 치러지는 일주일은 애도만 하고 싶었다. 그냥 일주일의 기간만 온전히 비통해할 시간을 넉넉히 확보한 것이 내가 우울증을 앓지 않고 견뎌낸 비결이었다. 정치적 구호는 내세우지 말고 그냥 애도만 하라는 자칭 비판언론들은 국민장 기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내내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정치 공세쯤으로 폄하할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애도만 하고 있을 마음이 전혀 없다. 비정치적인 삶을 권하는 정치적 술수에 맞서 이 비극이 발생한 원인을 제거할 방도를 모색할 것이다.


일주일의 애도 기간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분들을 이따금 만났을 때도 그 조급증이 야속했을지언정 그 내용은 경청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상갓집에서 수학문제를 풀 수는 없는 노릇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슬픔을 다독이고 나면 역사가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응시할 테니 내 무지몽매함을 너무 탓하지 않기로 했다. 혹자는 뜬금없이 넘치는 애도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애이불상(哀而不傷)하는 수준에서 슬퍼한다면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며칠만이라도 그냥 애달파하고 화내는 풍경을 지켜볼 여유를 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원한이 덜 쌓이고 응어리가 조금은 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와 친분이 없는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건 그저 아름답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라는 비극에 일말의 책임이 있을 자들이 사과 한마디 없는 상황에서 고인의 유지를 빙자해서 화해니 통합이니 늘어놓는 건 참 기만적인 일이다. 관용은 피해자의 ‘의무’가 아니라 ‘권리’가 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노 대통령님과 그 둘레 사람들 몇 명이 아니다. 추모객을 향해 관용을 권하는 건 너무 이르고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라 박절하게 들렸다. 추모 기간마저 상식과 예의를 잃어버린 졸렬한 정부 여당의 행태에 원한을 품는다면 그건 그네들이 스스로 불러일으킨 셈이다. 설령 그것이 넘치는 의견이라고 해도 그런 여론을 겸허히 수렴하는 것이 지금 정권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의 자세일 것이다.


노 대통령님의 서거로 말미암은 사회적 분열이나 갈등을 염려한다면 그 감정의 골을 메울 행위자는 어디까지나 정부 여당의 힘센 분들이다. 자신을 그 자리에 올려준 국민들에게 악감정을 품지 말라거나 원한을 표출하지 말라고 외칠 권한은 그들에게는 없다. 정부가 못하는 일을 대신해주겠다면서 몇몇 언론들이 관용 장사에 나서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어떤 언론들은 자신의 허물이 없었는지 돌아보는 용기를 보여줬지만 관용을 내세우는 언론들은 노 대통령님에게 비난을 넘어 저주를 퍼붓던 지난날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용서를 청하는 집단이 없는데 무슨 화해를 한단 말인가.


2.
노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책임론에 시달리는 검찰은 수사는 정당했다고 강변했다. 검찰이 스스로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허무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을 망각한 처사다. 살아 있는 권력이라는 천신일 회장의 구속영장마저 기각되면서 검찰의 항변은 더욱 빛을 바랬다. 천 회장이 반드시 구속이 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부실하고 조급한 수사를 했다는 방증으로 이해해야 한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이번 사건 수사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존중해 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라는 사퇴의 변을 남겼다. 그나마 국민에게 사죄한 기품에 고개를 숙이지만 이번 일은 책임은 검찰총장이 모두 지고 갈 사안은 아니다.


노 대통령님의 시신이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되는 상황을 생중계할 때 한 시민이 “이명박 ××× 복수할 거야 이 ×××야”라고 외치는 장면이 TV 생중계로 나갔다.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할 때 행사장은 물론 행사장 밖의 시민들이 야유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입에 달면서도 줄곧 괴상하게 실천했던 청와대가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란 쉽지 않을 듯싶다. 저분들에게 용서나 사죄를 구걸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1991년 4월 헌법재판소는 사죄광고 제도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믿지 않는 자에게 본심과 다르게 깊이 사과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므로 인간 양심의 왜곡과 굴절이자 이중인격 형성의 강요라고 정의하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89헌마160). 반성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결정이다.


헌재의 결정으로 비추어 볼 때 유독 방송사에만 강요하고 있는 ‘시청자에 대한 사과’ 조치는 위헌일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도 있고, 헌재의 결정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찰이 부족해 약자인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소홀히 만든다는 비판도 들린다. 여하간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의 자유는 선하고 올바른 판단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덜 선하고 덜 올바른 내심마저 보장하는 것이 양심의 자유의 고갱이다. 양심에 거슬려 사과를 못하겠다는 사람에게 양심을 탑재하라며 구박한다면 헌법정신과 어긋나는 행동이다. 물론 사인과 공인은 차이가 있다. 굳이 사과를 받아야 한다면 사적 영역보다는 공적 영역을 향해야 요구해야 한다. 공인들의 양심이 덜 소중하다는 건 아니지만 명예나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나 정서를 모두 부인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2004년 탄핵 정국 당시 “잘못이 있어 사과하라면 사과할 수 있지만 잘못이 뭔지 모르겠는데 시끄러우니까 사과하고 넘어가자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던 노 대통령님은 결국 탄핵소추까지 당했다. 정부의 사과 표명은 그네들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게 기본원칙이라고 믿는다. 끝끝내 사과를 거부하는 자세를 칭찬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잘못이 없다고 믿거나 잘못이 뭔지 모르는 분들에게 사과를 청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과에 미련이 남는 것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존중하면서 얻어낼 것이 그 정도뿐이기 때문이다.


3.
노 대통령님이 서거하시기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나는 때 아닌 산수놀이에 빠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신영철 대법관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자정 노력을 지켜보는 것이 순리이겠으나 그와 더불어 입법부가 우회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고충을 이해하고 반겼다. 이것이 삼권 분립의 대의에 부합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탄핵소추안 발의조차 여의치 않아 보여서 서글펐다.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친박연대 3명의 의원직 상실로 재적의원 수가 296명으로 줄어든 지금 99명이 동의해야 하는 셈이다.


민주당 84석과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3석, 진보신당 1석이 모두 동참해도 한참 모자란다. 친박연대 5석과 호남 무소속 4석이 동조해야만 간신히 발의할 수 있는 실정이다.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의 일부의 호응을 기대하려는 계산 자체가 너무 씁쓸했다. 소수 야당들이 사안에 따라 힘을 모으는 일이야 나쁠 것은 없지만 이렇게 구차하게 애를 써야 한다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의심스러운 현행 선거구제의 탓인지 몰라도 저 거대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들이 부재하다는 형국이 너무 아슬아슬하다. 그렇다고 여당의 절제나 양식을 기다리기도 어렵다. 신 대법관을 감싸고도는 한나라당의 태도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바라는 충정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더 참담했다.


지난 일주일 내내 물기 어린 눈으로 보냈지만 금요일 영결식 장을 나서던 운구차를 보며 살아생전 먼발치에서나마 본 적도 없는 그 분을 보내려니 또 눈물이 났다. 아마도 이 눈물들은 내 자신을 위한 눈물이었을 것이다. 눈물을 닦고 다시금 산수놀이를 하려니 화가 치밀었다. 상중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내 뜻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어 보여서다 모두들 미래를 말하는데 나는 지난 2004년 총선 당시로 퇴행하고 말았다. 단순히 열린우리당의 의회권력 쟁취에 집착한다고 비판받던 그 시기 즈음으로 돌아가 버렸다. 집권이나 승리 이후는 고심하지 않고 집권과 승리 자체를 열망할까봐 부끄럽다.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던 분들이 요즘도 같은 생각인지 궁금하다. 물론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반대하면서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 행위는 얼마든지 양립 가능하다. ‘다 똑같은 놈들’ 정도로 여기시고 노무현도 했는데 이명박이라고 못할 것이 없다는 판단이셨는지, 아니면 어쨌든 국민 다수의 뜻이니 차마 민주주의 후퇴 운운할 수는 없어서 그런 말씀들을 하신 건지 묻고 싶다. 나는 지금 지난날 노무현에게 과도한 책임을 물었다고 투덜거리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만큼 이명박의 난정을 바로잡을 세력의 수가 너무 적어 보이는 안타까움을 토로할 따름이다. 이명박을 제어할 수 있는 가장 큰 행위자가 박근혜인 현실이 기가 막혀서다.


4.
서거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관계로 지금이야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지지율을 나란히 하고 있지만 조정기간이 도래할 것이 분명하다. 만약 그 조정기간을 거쳐도 한나라당 지지율의 팔할 이상을 유지한다면 2010년 지방선거에서부터 2012년 총선과 대선까지 이어질 선거에서 한나라당과 한바탕 겨뤄볼만 한 상황이 조성된다. 물론 미지의 카드이자 희망의 카드인 진보정당이 제자리를 지켜주고 계시지만 지방선거와 총선거에서의 선전은 기대해도 대선까지 도모한다는 건 진보정당 지지자 본인들도 믿지 않으실 게다.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가지 않고 명줄이 늘어난 제1야당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사표론 따위의 논쟁이 다시 나올까봐 걱정이다.


노 대통령님의 서거가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의 분열을 치유하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내 소견으로는 열린우리당 지지층과 옛 민주당 지지층이라고 표현해야 더 적절하다. 자기들이 선출한 후보를 흔들면서 국민을 농락했던 분당 전의 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열린우리당은 지지했던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어지러운 창당놀음의 당연한 결과로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결국 민주당 간판을 걸었지만 과연 이네들이 화학적 결합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민주당은 친노 세력을 껴안겠다는 속셈이지만 누구의 앙금이 더 남았든 감정의 골이 커 보인다.


뉴민주당 플랜을 추진하며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거리두기에 열중하던 민주당이 너무 표변하는 모습이 볼썽사납지만 두고 볼 참이다. 참여정부의 긍정적 유산을 건져 올리는 작업을 하겠다며 분주하지만 한나라당과 또렷이 차별화할 묘책을 찾아낼 결기를 보여줄지 미지수다. 한편으로는 친노 세력의 신당 이야기도 들리지만 지역적 기반이 없는 신당이라면 자유선진당 만큼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공산이 크다. 수도권이야 본래 어려운 싸움이고, 영남은 거의 가능성이 없으니 생환 확률이 별로 높지 않으므로 친노 신당의 미래는 바보 노무현의 험난한 좌절을 되풀이하고 막을 내리기 십상이다.


개인적 차원이 아닌 한 정당 전체가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드는 경우는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했던 꼬마 민주당 정도가 기억나는데 거대 여당을 눈앞에 두고 이 모험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민주당과 2등 경쟁에 함몰될 신당이라면 신중해야 한다. 굳이 신당이 아니더라도 친노파의 존속은 유권자들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열린우리당에 몸담았던 분들이나 친노파가 잘났다고 옹호하려는 뜻이 아니다. 당장 진보정당으로 달려가기를 머뭇거리는 상당수 국민이 정치 냉소자가 되어 버리는 현상을 막고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을 안도할 따름이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여기는 분들은 반동의 징후라 하시겠지만 이 체제가 재생산되는 사태야말로 반동이다.


5.
노 대통령님이 퇴임하실 때 참여정부를 두고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라는 견해에 동감했다. 그가 대한민국에 어떤 부정적 유산을 남겼는지도 차차 밝혀지겠지만, 긍정적 유산 또한 드러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핑계를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때 비로소 참여정부를 차분하게 평가할 토대가 마련되리라 내다봤다. 하지만 노무현을 제물로 한 희생제의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미뤄두고 진행된 과정은 너무 야만적이었다. 우리들은 그 매질이 우리 스스로의 품위를 깎아내리는 일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욕보여서 이룩할 법치주의라면 너무 초라하다. 온 사회가 공인의 윤리적 책임, 법적 책임에 대해 성토를 했던 그 마음은 잘 간직해보자.


노 대통령님께서는 대통령 재임시절에 당신을 진보라고 표현하신 적이 많았고 생애 마지막까지도 진보주의를 궁리하셨다고 전한다. 한국적 맥락에서는 노무현이 얼마든지 진보로 분류될 여지가 있음을 인정한다. 진보와 보수의 중간 개념인 개혁세력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노 대통령님께서 한국 보수주의의 한 극점을 보여주신 분이라 좋아했다. 추모 열기를 ‘인간’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에 국한하기도 하지만 나는 ‘정치인’ 노무현은 한국 보수주의의 업그레이드를 이뤄낸 인물로 평가하고 싶다. 스스로를 보수라고 칭하는 분들이 노무현을 그렇게 매몰차게 대했다니 참 곤혹스럽다.


노무현에게 아쉬웠던 점을 메우면서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잡아끌 분을 가까운 시일 내에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멍멍하다. 갖은 미움을 받았으나 현실 정치인 가운데 노무현만큼 대중성과 진솔성, 원칙과 가치를 제시한 교양 있는 지도자는 너무 드물었다. 그 대중성은 굳건하지 못했고, 진솔성은 계산된 것이었으며, 원칙은 분열적이었고, 가치는 흐릿했다는 험담이 대개 온당하다고 수긍하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이 추모 열기는 그와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배어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노무현’이나 ‘더 나은 노무현’이 등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체념이랄까.


그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권좌에서 쌓은 허물을 내려와서 천천히 갚아나가길 바랐다. 내가 사랑했던 나의 일꾼이자 나의 대표가 세월의 손길을 마주잡고 가는 광경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해 가슴이 저민다. 그의 지지자든 반대자든 그 분을 서서히 잊어감으로써 얻을 평화를 모두가 잃어버렸다. 이래저래 실망하고 서운했지만 그런 감정보다 한두 뼘쯤은 더 좋아하고 아꼈던 분에게 작별을 고한다. 죽은 뒤에 받는 복덕[冥福]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치열하게 살았던 당신의 삶이 살아 계실 때 상당 부분 보상받았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다. 바보 노무현, 고마웠습니다. - [無棄]


추신 - 노제 때 잠깐 개방됐다 다시 봉쇄됐던 서울광장의 차벽이 4일 새벽 철수했다고 한다. 아예 광장 주변에 성벽을 세우고 쪽문을 내는 게 좋을 듯싶다. 주인인 시민이 쓸 광장을 머슴인 자들이 멋대로 막았다 열었다 하는 꼴을 더는 보기 싫어서다. 며칠 전 헌법재판소가 옥외집회 개최 때 경찰에 미리 신고토록 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일정한 신고절차만 밟으면 일반적ㆍ원칙적으로 옥외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므로, 사전 신고제도는 헌법상 사전허가 금지에 반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헌재의 결정에 아쉬운 점이 있지만 합헌의 논거로 들었던 내용이나마 지켜지는 나라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법과 원칙은 이 정권의 입맛으로 가름하는 게 아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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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동욱 2009.06.04 23:52 Address Modify/Delete Reply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또한 잊혀질 것이다.

    • 익구 2009.06.05 08:33 Address Modify/Delete

      시간은 우리 편일까, 시간마저 편을 가르다니 이 옹졸함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