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1.21 김윤식 유생을 위한 변명 2
  2. 2008.06.26 논어를 창조적으로 읽기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16화에서 『대학』의 첫 구절을 가지고 시험문제를 푸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간 대학원에서 큰 배움의 의미를 별로 생각하지 못한 것 같은데 이런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생각이나마 끼적거려봅니다.
이 잡글을 언제나 저를 과대평가해주는 벗 홍군(http://sttora2.net)에게 헌정합니다.


<성균관 스캔들> 16화에서 이선준과 김윤식(김윤희)는 황감제(黃柑製)의 장원을 겨룹니다. 정조대왕은 “이 나라 관원의 백성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파자를 통해 밝히라. 단 파자의 원조는 예기 42편의 주희 해석본을 따른다”라는 문제를 출제합니다. 사실 장원전 문제로서는 난도가 현격히 떨어집니다. 『대학』 첫 구절에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에 본문의 첫 장만 보면 알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가장 기초이기 때문에 가장 어려울 수는 있지만요. 아니면 너무 앞부분이라 시험이 안 나올 것 같아서 공부를 게을리 할 수도 있겠고요.^^;


선준은 “사대부는 백성을 교화하고, 새롭게 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뜻으로 신민(新民)이라 답했고, 윤식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를 싫어한다”라고 하며 친민(親民)이라 답했습니다. 주희 해석본을 따른다는 문제의 단서조항 때문에 선준이 장원을 차지합니다(이 단서조항은 정답 시비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지요). 드라마가 유가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었던 개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부연설명이 부족해서 아쉬웠습니다. 마치 윤식이 공부를 덜해서 오답을 낸 것처럼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극중 인물인 정약용 선생이 그 뜻 역시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첨언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대학』 첫 문장에 나오는 경문(經文)인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에서 親民을 놓고 주희 선생과 왕수인 선생은 격돌합니다. 『예기』에 포함되어 있던 『대학』의 원문에는 親民으로 되어 있으나 주희 선생는 『대학』에 주석을 달면서 자신의 스승인 정이(程頤) 선생을 이어 받아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뜻의 新民이라 고쳐 풀었습니다. 경문을 해석해 놓은 『대학』 전문(傳文)의 구절들이 모두 親이 아닌 新으로 나와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주희 선생은 “신민이란 말은 전문을 살펴보면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新民云字 以傳文考之 則有據)”라고 말씀하십니다. 親과 新은 한 글자 차이지만 그 내용이 크게 달라집니다. 주희 선생은 “新은 옛 것을 바꾸는 것을 말하며, 스스로 명덕을 밝힌 후에는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쳐서 그들로 하여금 옛날에 물든 더러움을 제거하도록 하는 것이다(新者, 革其舊之謂也 言旣自明其明德 又當推以及人 使之亦有以去其舊染之汚也)”라고 풀이합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은 물론 백성을 뜻합니다. 新民은 사대부가 백성 위에서 일방적으로 교화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상하 신분 관계를 엄격히 하는 효과를 유발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경북대 중문과 이세동 교수는 “위대한 지도자는 단순히 백성을 사랑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백성을 도덕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적극적 실천을 강조”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왕수인 선생은 親民을 그대로 쓸 것을 주장합니다. 백성을 친근하게 한다는 뜻의 親民은 사대부와 백성이 같은 자리에 놓이게 됩니다.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며 이를 통해 교화뿐만 아니라 서로의 개성을 온전하게 길러주는 양육의 의미를 함께 보듬습니다. 양명의 심즉리설(心卽理說)과 치양지론(致良知論)이 외재적 규범이나 권위에 종속되지 않고 개인의 주체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과 상통합니다.


양명의 『전습록』에서는 “親民이라고 말하면 가르친다는 의미와 양육한다는 의미를 겸하게 되지만, 新民이라고 한다면 한 쪽에 치우친 감이 있다(說親民便是兼敎養意 說新民便覺偏了)”라며 新民이 ‘가르친다’에 경도되었음을 지적합니다. 또 “오직 밝은 덕을 밝히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親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곧 도가와 불가와 비슷하게 된다(只說明明德 而不說親民 便似老佛)”라고 강조하며 백성의 현실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유가의 특질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유가적 현실주의는 백성의 곤고함을 살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그의 견해에 동감합니다.


정인보 선생은 『양명학연론』에서 주희는 마음 밖에서 구하는 것이고, 왕수인은 마음속에서 찾아가는 것이라고 대별합니다. 주희처럼 해석하면 마음을 밝히는 일이 따로 있고 백성을 가르치는 일이 따로 있지만, 왕수인처럼 해석하면 백성을 친애함이 지극하지 않고서는 마음을 밝히는 일도 이루지 못하는 셈이라고 역설합니다. 두 분의 입장 차이를 나름대로 잘 짚어주고 있습니다.


이황 선생은 <전습록논변>에서 新民이 맞는다고 주장합니다. 즉 “新民은 자기가 배운 것을 미루어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그 덕을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가 모두 ‘학문과 교육(學)’의 뜻으로 일관되게 연결되어 있으니, 백성들을 ‘기르고(養), 친근히 한다(親)’는 뜻과는 처음부터 상관이 없다(在新民者 言推己學以及民 使之亦新其德也 二者皆帶學字意 作一串說 與養之親之之意 初不相涉)”라고 반박합니다. 퇴계가 이를 통해 백성을 수동적인 교화의 객체로 국한함으로써 신분 질서를 옹호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물론 앞서 살펴본 이세동 교수의 풀이를 좇으면 꼭 그렇게 볼 수만도 없겠지만요.


정제두 선생은 <대학설>에서 親民을 지지하면서 『대학』의 텍스트를 고찰해볼 때 親의 뜻으로 볼 수 있고, 新의 뜻이 아주 약간 등장하지만 근본과 말단의 형세일 뿐이라며 퇴계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립니다. 이에 반해 한원진 선생은 <경의기문록(經義記聞錄)>에서 新은 敎를, 親은 養이라고 보고 이 두 가지 사이의 경중을 논하면서, “敎는 養을 수반할 수 있지만, 養은 敎를 반드시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則敎者必能養 而養者未必敎也)”라며 결론적으로 퇴계의 손을 들어줍니다.


정약용 선생은 <대학공의>에서 親民을 수용하면서도 “親과 新의 두 글자는 형상이 이미 서로 가깝고 뜻이 서로 통하니, 친애하는 것이 새롭게 하는 것이다(則新新二字 形旣相近 義有相通 親之者新之也)”라며 두 해석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양명이 대학 공부를 한 사람의 마음이 온 세상 사람들을 품는 경지에 오르는 것을 親民으로 이해했다면, 다산은 백성들끼리 서로 화목하며 친애하는 것을 親民으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다산은 “백성이 서로 친애하면 백성은 곧 새롭게 되는 것이니, 어찌 꼭 한 획도 변함이 없어야만 이에 문장의 앞뒤가 서로 맞게 된다는 것인가(百姓相親 其民乃新 豈必一畫無變 乃爲照應乎)”라고 말씀합니다. 저도 역시 親民과 新民이 이렇게 대립해야 하는지 헛갈립니다. 親民 없는 新民은 맹목적이고, 新民 없는 親民은 공허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 親民과 新民을 따질 실익은 지도자가 백성과 너무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담담한 가르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 유학자인 이토 준사이가 新民을 지지한 것에 반해, 오규 소라이는 親民을 주창하는데 그 이유가 다소 이색적입니다. 즉 <대학해>에서 정이가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나라를 바꾸는 일인데, 『대학』은 수성하는 군주가 받드는 일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殊不知新民者革命之事 而大學者守成之君所奉也)”라며 정이가 新民으로 바꾼 것을 비판합니다. 新民은 혁명의 뜻이므로 지도자가 친애하는 모범을 보여서 수성을 꾀하도록 한 『대학』은 親民으로 봐야한다는 독창적인 견해입니다. 親民이 보수적이고 新民이 진보적인 함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조대왕은 『홍재전서』 <경사강의(經史講義)>에서 이 문제에 대한 고심을 보여줍니다. “대개 정이와 주희가 경문을 바꾸어 고치고 단연코 의심하지 않은 것은 그 이유가 두 가지이다. 하나는 親民이라고 하는 것은 글 뜻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치가 없고 新民이라고 해야 논리가 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新民이라고 하는 것은 전문을 가지고 살펴보건대 근거가 있고 親民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蓋程朱之改易經文。斷然不疑者。其說有二。一則曰親民云者。以文義推之則無理。而彼乃曰有理。一則曰新民云者。以傳文考之則有據。而彼乃曰無據)”라고 주자학파의 논거를 요약합니다. 그러면서도 주자학파의 논거인 전문에 등장하는 新民은 모두 스스로 새로워진다는 뜻이지, 지도자에 의해 새롭게 된다는 뜻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대학』 전문 제2장을 살펴보아야 이해가 되는 내용이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구일신(苟日新)의 新은 스스로 새로워지는 新이요, 작신민(作新民)의 新은 백성이 스스로 새로워지는 것이요, 기명유신(其命維新)의 新은 천명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세 문장에서 말한 新은 모두 新民의 新이 아닌데 어디에 그것이 新民을 해석한 뜻이 있는가? 전문 중에서 경문에 나오는 新자의 바른 해석을 지적한다면 마땅히 어느 곳에서 볼 수 있겠는가?
苟日新之新。自新之新也。作新民之新。民之自新也。其命維新之新。天命之新也。三節所言之新。皆非新民之新。則烏在其釋新民之義也。若就一章之中。指摘其經文新字之正解。則當於何處見得耶。
- 『홍재전서』 제70권 경사강의(經史講義) 7 대학(大學) 4 


이처럼 정조대왕이나 다산이 親民에 우호적인 생각을 품었더라도 실제 시험의 답은 드라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양명의 주장은 중국이나 일본에 견주어 조선에서 가장 심하게 이단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윤식이 오답 처리된 까닭입니다. 양명학이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던 조선 지성계의 편협함이 새삼 아쉽습니다. 주자학파와 양명학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저는 그래도 이 둘의 다름에 더 관심이 갑니다.


양명학은 주자학의 관념론적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직관을 긍정하고 실천을 중시했습니다. 둘레의 현실에 무심하지 않았던, 천하의 인심을 자신의 마음처럼 여겼던 양명의 정신을 곱씹습니다. ‘새롭게 만드는 사람’과 ‘새롭게 바뀌는 사람’의 구별이 없어지는 세상은 민주주의의 이념과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과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윤식 유생님~ 떨어져서 하는 말인데, 정말 잘했어요! - [無棄]


<참고 문헌>
금장태, 『도와 덕』, 이끌리오, 2004, 192-199쪽.
김기현, 『대학 - 진보의 동아시아적 의미』, 사계절, 2002, 100-114쪽.
김미영 역, 『대학·중용』, 홍익출판사, 2005, 36-38쪽.
김학주 역, 『신완역 전습록』, 명문당, 2005.
정인재, 한정길 역, 『전습록 1~2』, 청계, 2001.
홍원식, 이상호 역, 『양명학연론』, 한국국학진흥원, 2002, 55-56쪽.
김세진, 「「전습록논변」을 통해서 본 양명심학과 퇴계리학」, 제2회 강화 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한국양명학회, 2005.10), 405-436쪽.
안병걸, 「정조 어제조문의 경학관 -『경사강의』, 대학조문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1), 395-424쪽.
임옥균, 「주자와 일본 고학파의 『대학』 해석」, 『동양철학연구』(동양철학연구회, 2010.2), 303-334쪽.
황갑연, 최진덕, 「조선성리학자의 양명학 비판 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제3회 하곡학 국제학술대회(한국양명학회, 2006.11), 229-251쪽.


이 글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변명’ 시리즈 - “최도영을 위한 변명”(http://ikgu.com/entry/최도영을-위한-변명)

Posted by 익구
:

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君子去仁 惡乎成名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누리지 않는다. 가난함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벗어나지 않는다.
군자가 인을 떠나면 어디에서 이름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사이에도 인은 어김이 없으니 황급한 순간에도 반드시 인을 행하고, 곤경에 처한 순간에도 반드시 인을 행한다.”
- 『論語』 里仁편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구절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크게 보면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 대강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가난함과 천함 이것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벗어날 수 없다면) 떠나지 않는다.

 

2) 가난함과 천함 이것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닐지라도 애써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2)의 해석이 전통적인 해석이지만 선뜻 의미가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1)의 해석도 음미할 만하다. 박기봉 선생님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을 제외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1)의 해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호기심이 생겨 도서관에서 논어 관련 주석서들을 이것저것 뒤적여봤다. 내가 이것저것 찾아본 번역들을 짜깁기하고 멋대로 편집한 것이라 드러내놓기 민망하지만 스쳐 가는 생각거리로 삼아주시길 바라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올린다.


전통적인 해석인 2)의 핵심 논거로 작용했던 주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은 빈천이 아니지만 억지로 그 상황을 벗어나지 않는다, 즉 빈천을 편안히 여기는 태도라고 풀이했다. 군자가 부귀를 자세히 살피고 빈천을 편안히 여김을 이와 같이 한다고 보았다. 하안(何晏)과 형병(邢昺)은 “운수가 막힐 때와 태평할 때가 있으니 군자가 도를 실천할지라도 도리어 빈천한 경우가 있다. 이는 도로써 얻은 것은 아니다. 비록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억지로 벗어나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時有否泰 故君子履道而反貧賤 此則不以其道而得之 雖是人之所惡 不可違而去之)”라고 했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호산 박문호가 不以其道得之 앞에 雖(비록)의 뜻이 있다고 본 것도 이와 상통한다.


다시 말해 정당하게 주어진 빈천이 아닐지라도 애써 떠나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은 착하고 어질게 살았는데 사회가 타락하고 정치가 어지러워서 군자가 빈천하게 되었다고 해도 구태여 그 빈천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당한 빈천이라면 태연하게 안주하라, 안빈낙도(安貧樂道)하라고 충고하는 글귀가 된다. 맹자가 대장부를 설명하며 “가난하고 천하더라도 자기의 뜻을 옮기지 않는다(貧賤不能移)”라고 했던 구절을 비롯해서 유가의 경전에서 곧잘 접하게 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길을 의연하게 걸어나가는데 부귀나 빈천 따위의 외부적인 요소에 휘둘리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정약용은 왕충(王充)과 견해를 같이 해 1)의 해석에 가깝게 풀이했다. “진실로 이와 같이 본다면 군자는 끝내 빈천을 버리는 날이 없을 것이다. 한번 빈천을 얻어 오직 이를 버리지 않는 것으로 법을 삼을 뿐, 도리인지 도리가 아닌지를 전혀 묻지 않는다면 어찌 군자다운 시중(時中)의 의(義)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직 그 정당한 도리로 얻지 않았기에 그것을 버리지 않았을 따름이다”라며 하안의 주석을 반박했다. 결국 이러한 논리로 “빈천은 비록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벗어나지 못하면 그것에서 떠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즉 정약용의 관점은 2)와는 달리 정당한 방법으로 벗어날 수 없는 한 벗어나지 않는 것일 뿐 정당한 방법을 도모한다면 빈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좀 더 의역하자면 부귀처럼 바라는 것일 때는 온당하게 머무를 만한 가를 살피고, 빈천처럼 싫어하는 것일 때는 마땅하게 벗어날 방도를 궁리하라는 뜻이 될 듯싶다. 不以其道得之의 得之에서 去가 생략된 것으로 보아 得去之로 해석했다. 得은 빈천에서 떠나는 방법을 얻는 것을 일컫는 셈이다. 양백준(楊佰峻)도 빈천은 사람들이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得은 부적절하고 不以其道得之의 得之를 去之로 바꾸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1)과 2)의 해석 모두 그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딱히 이것이 맞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한문 번역에서 정답을 내놓으라고 투정부린다면 우스운 일이다. 한쪽은 인간다운 길을 찾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빈천에 억울해 하지말고 가야할 길을 가라고 주문하고, 다른 쪽에서는 빈천을 벗어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를 염두에 두라고 다독인다. 사실 서로 강조하는 바가 살짝 다를 뿐 결국 지향하는 바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자세한 논어 번역서를 읽다 보면 이렇게 해석상 이견이 있는 구절이 적잖음을 발견하게 되어 당혹스러워진다. 전통적 주석과 별개의 견해가 오늘날 제시되기도 한다.


신영복 선생님은 빈천은 탈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써 추구할 만한 가치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적극적으로 빈천을 추구하는 삶도 존재할 수 있다고 본 셈이다. 요즘 회자되는 ‘간소한 삶’의 개념과 잇닿는다. 이렇게 보면 其道得之는 도로써 얻은 빈천이 되고 不以其道得之한 도로써 얻지 않은 빈천이 되어 떠나지 말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전통적 해석은 정당하지 못한 빈천, 부당한 빈천을 자기 잘못에 기인한 것뿐만 아니라 불의한 세상 때문에 뜻하지 않게 손해를 본 것도 감내해야 한다(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는 식으로 정의한다면, 신영복 선생님은 부당한 빈천은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한정해서 본다는 차이가 있다. 


전통적 해석의 경우에 군자는 빈천은 외물(外物)이기 때문에 거기에 너무 마음을 쏟지 말고 도를 추구하라, 인을 행하라는 식의 가르침이라면 신 선생님은 부당한 빈천이 불합리한 사회구조나 어질지 못한 사람의 간계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인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저질러서 얻게 된 것으로 본 듯하다. 신 선생님도 반드시 이렇게 봐야 한다고 역설하시기보다는 이건 어떠냐고 제안하시는 정도인 것 같다. 이 부분도 놓치지 말고 생각해보자고 화두를 던져주신 것으로 읽었다.


이남호 선생님은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 서문에서 “내가 읽은 보르헤스 소설은 이미 보르헤스의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쓴 소설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선생님께서는 문학평론가이시기 때문에 엉뚱한 해석마저 힘있게 들린다.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유명한 명제를 좀 패러디 해 권위 또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문학평론가라는 아우라를 접하고서 거기에 얽매이지 않기가 힘들다. 주자의 광휘에 맞서길 꺼렸던 조선의 유학자도 비슷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문학작품의 의미는 텍스트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자의 의도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독자의 해석 속에 있다”라는 이 선생님의 말씀은 한문 고전을 읽을 때는 얼마만큼 적용될지 고심스럽다. 문학은 오독이 창조적 독서의 일환일 수 있지만, 아니 오독이라는 것이 성립하는지가 의심스럽다. 한문 고전을 한국어로 번역해 읽을 때 오역 시비가 있다면 그것을 풍요로운 해석이라고 치켜세울 수 있는 것인지, 다른 성질의 문제인지 헛갈린다.

 

가령 『논어』는 孔子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고 그 책을 읽어온 모든 사람들의 공동저술이다. 『논어』에 새로운 주석을 단 사람은 『논어』를 새로 쓴 사람인 것이다. 그리하여 공자가 쓴 『논어』는 빈약한 내용의 책이었지만, 현재 내가 읽는 『논어』는 매우 풍부한 내용을 지닌 책이 되었다.


- 이남호,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 민음사, 1995, 144쪽


내 얕은 『논어』 읽기는 발설자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과연 공자와 제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그네들이 살던 시대 배경은 무엇이고 어떤 해법을 내놓고 있느냐는 식으로만 접근했다. 텍스트에는 실체적 진실이 있어야 하고 그것의 근처를 더듬는 것이 학생의 본분인 것으로 믿어왔다. 교조적 지위를 누렸던 주희의 해석과 다른 해석을 부러 찾으려는 노력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발언록을 온전히 복원하는 것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실익도 없다. 어쩌면 고전의 해석도 실체적 진실이 있다기보다는 결국 합의되고 구성되는 것인지 모른다.


용기를 내서 고전을 집어들고 있다보면 내 자신은 그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라는 절망감이 엄습하기 일쑤다. 눈을 지그시 감고 사색하기보다는 어느 어깨가 더 탐스러운지 물색하느라 눈알을 바지런히 굴렸던 것 같다. 그저 거인의 쩍 벌어진 어깨 위에 올라서 호가호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나 스스로를 반성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할 때 知新은 배운 것을 자신의 삶에서 재해석하고 다른 일에도 확장시켜 가는 과정이다. 이런 세세한 구절 풀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실천하느냐이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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