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구닷컴 정리 안내

익구 2014. 2. 12. 15:20 |

제 누추한 홈페이지 익구닷컴은 20037월 개설 이후에 10년 이상 꾸준히 유지해왔습니다만,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이래 거의 관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2013년 하반기부터는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liberal.gu)으로 틈틈이 소통하고 있으니 이쪽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오류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성실히 고쳐나가는 방편으로 삼고자 하였기 때문에 2003년 이래로 제가 했던 잡생각들이 거의 온전히 보관되고 있습니다. 인생의 한때에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돌아보며 오늘날의 제 자신을 다잡는 삶는 꿈꾸었습니다.

 

 

매번 옳은 생각, 바람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드물고, 누구나 틀릴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어느 시점의 생각 하나만을 발췌하여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식의 온라인 신상 털기는 삼가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과 실패의 기억이 그 사람을 단정 짓는 징표로만 활용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본래는 제 지인들을 위한 공개된 일기장에서 출발된 것이었기 때문에 너무 사사로운 기록들을 많이 남긴 듯싶습니다. 이제 익구닷컴의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하면서 새단장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잡글들의 상당수를 정리할 예정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SNS는 옛날의 죽간(竹簡)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춘추를 집대성했다고 전하는 공자께서도 당연히 죽간을 쓰셨죠. 동양 정신의 고갱이로 평가 받는 춘추필법은 붓으로 기록함으로써 나쁜 것을 단죄하는 필주(筆誅)를 핵심으로 하는데 SNS도 그런 역할을 일정 부분 담당하는 듯싶습니다. SNS에서의 필주가 남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라 세상의 아픔을 덜어내는 수술칼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왕림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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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를 편애한다

문화 2013. 8. 4. 03:54 |

(2005년 3월 28일에 처음 썼고, 2012년 10월 20일에 손질했으며, 2013년 8월 4일 전면 수정을 한 잡글입니다. 결국 8년에 걸친 횡설수설이 되었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어요.ㅜㅜ)

 

 

1. 묘호, 시호, 능호가 없는 광해

광해는 땅을 가진 이들에게만 조세를 부과하고,

제 백성을 살리려 명과 맞선

단 하나의 조선의 왕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마지막 장면에 삽입된 문구다. 조선 제15대 임금 광해군은 종묘에 들어가지 못하여 묘호(廟號), 시호(諡號)를 받지 못하고, 능호(陵號)도 없이 왕자 신분으로 취급되었다. 아마 이 영화의 제목 역시 광해군이 아닌 ‘광해’라고 표기함으로써 왕자가 아닌 왕으로 대접하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나는 광해군에게 사사로이 묘호나 시호, 능호를 올리고 싶다는 유혹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탓에 어떤 분들은 광해의 光을 따서 광종(光宗)이라 부르기도 하고, 선혜법(宣惠法)에서 연유한 탓인지 혜종(惠宗)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둘 다 괜찮은 묘호라고 생각한다. 나는 성종(聖宗)도 생각해봤다. 이민홍 선생님의 풀이에 따르면 聖은 선정을 펴고 부세를 경감시키며 빈객을 예법에 맞게 잘 대접했던 지도자라는 의미의 시자(諡字)라고 한다. 본래 묘호가 다소 미화하는 성격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뭐든 좋을 듯싶다(능양군이 仁祖라고 묘호를 받은 것을 상기하자). 비교적 까다로운 시호법과는 달리 좀 더 자유롭게 짓는 경향이 있는 능호는 지릉(智陵)이 어떨까 싶다. 대체적으로 높이 평가 받는 균형외교에 대한 지혜를 기리는 뜻에서 말이다.

 

 

임진왜란을 맞아 구차하게 도망이나 다니다가 여차하면 명나라 영토로 갈 궁리나 했으면서, 분조(分朝)를 통해 전장을 지휘했던 세자 광해군을 시기하여 후계 구도를 불안정하게 했던 선조는 영 신통치 않다. 또한 쿠데타를 통해 용상을 차지해놓고는 병자호란에서 굴욕을 당하고, 소현세자 부부를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조는 용렬한 암군이었다(이하 왕자 시절 봉작인 능양군(綾陽君)이라고 칭한다). 변변치 못한 임금들이 나라를 다시 세웠다는 의미에서 조(祖)자를 참람하게 쓰는데 광해군이 앞뒤 임금들에 비해 이렇게 크게 모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끝내 복권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마음에서 일단 이 잡글에서는 그냥 대왕으로 칭하겠다.

 

 

2013. 4. 13.에 답사한 대왕의 능

 

 

2. “땅을 가진 이들에게만 조세를 부과하고”

영화에서는 대왕이 대동법을 시행한 것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오항녕 선생님을 위시한 여러 학자들이 대동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오 선생님은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너머북스, 2012)에서 광해군과 핵심 대북세력이 대동법에 반대했다고 주장한다. 대동법이 경기도에 시행된 지 1년도 안 되어 혁파 여부가 논의되었을 때 대왕은 마지못해 대동법을 존속시켰다. 대동법을 임시방편적인 조치로 여긴 발언도 보인다.

 

 

왕이 이르기를,

“선혜청 제도는 오래도록 시행할 만한 것인가? 또 하나씩 고쳐가는 일이 어떻겠는가. 전결(田結)을 기준하여 미곡으로 내게 하는 일을 영원히 시행하게 할 수는 없을 듯하다(宣惠廳, 乃久行之事乎? 且一一更張, 於事何如? 田結出米, 恐不得久遠行之也).”

광해군일기 정초본(정족산본) 35권, 2년(1610 경술 / 명 만력(萬曆) 38년) 11월 18일(기미) 2번째 기사

 

 

대왕이 대동법 확대 시행에 소극적이었고, 대동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은 상당 부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대규모 궁궐 영건 공사와 수취 제도 개혁을 통한 민생 안정을 함께 성취하기가 어려웠다고 본다. 대동법이라는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분명히 의의가 있지만 굉장히 제한적으로 실시했다는 점에서 아래의 비판을 살펴봐야 한다.

 

 

광해군대의 선혜법은 경기에서만 실시되었다. 또 처음부터 전국적으로 실시하려는 의도도 없었다. 일부 논자들의 확대 실시 요구는 산발적이었고, 당위적 차원에 머물렀다. 무엇보다 광해군이 이 법의 확대에 반대했다. 오늘날, 대동법 실시는 광해군의 업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광해군은 대동법에 대해서 시종일관 부정적이었다.

- 이정철, 『대동법』, 역사비평사, 2010, 278쪽.

 

 

대동법을 방납인들이 다들 원수처럼 생각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방납의 폐단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계층의 극렬한 저항과 대왕 자신의 인식 부족으로 대동법이 반쪽짜리가 되었다. 다만, 광해군 즉위년(1608)에서 숙종 34년(1708년)에 이르기까지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데는 100년이 걸렸던 것을 보면 대왕 시절에 대동법을 전면 시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과하다. 뒤를 이은 능양군 시절에도 강원도 지방에 실시하였을 뿐 대동법 확대는 지지부진하였고, 본격적으로 대동법이 정착되는 시기는 효종 대부터이다. 대왕은 즉위 초기에 대동법을 크게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도 역사적 기여를 했다. 그만큼 대동법은 발상의 전환을 요하는 혁신적인 조치였다.

 

 

3. “제 백성을 살리려 명과 맞선”

임진왜란 때 남원의 의병장이었던 조경남 선생의 『난중잡록』을 보면 당시 명나라 병사가 게워낸 음식을 서로 먹기 위해 굶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었다고 하는데 상상만 해도 참으로 참담하다. 심지어 『선조실록』에는 “길바닥에 굶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베어 먹어 완전히 살이 붙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혹은 산 사람을 도살하여 장(腸)과 위(胃), 뇌의 골도 함께 씹어 먹는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참화를 겪었으니 조선왕조가 이때 망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적잖이 들린다. 여하간 나라가 망하지 않은 덕분에(?) 세자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게 된다.

 

 

나는 대왕이 세자 시절 27개월 간 전국을 누비며 전쟁을 체험한 것이 그의 외교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배기찬 전 청와대 안보실 동북아비서관은 대왕의 외교 노선을 투항주의라고 비판한다. 군대를 정비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고 여차하면 후금에게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물론 배 전 비서관은 능양군과 서인 정권의 모험주의가 투항주의보다 훨씬 나쁜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말이다.

 

 

왕족이면서 전쟁터를 직접 체험한 몇 안 되는 인물이었던 대왕이 전쟁에 대한 공포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최대한 피해야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강박관념이 있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면에서는 왜군보다 수탈이 심했던 명군의 폐해나 명나라 조정의 내정 간섭을 겪은 대왕으로서는 명에 대한 악감정도 품었음직하다. 여하간 대왕에게서는 조선의 임금들에게서 듣기 힘든 말들이 쏟아진다.

 

 

“오랑캐로 인한 환란이 천지가 생긴 이래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는가. 주나라 태왕·문왕의 성덕(聖德)과 한 고조, 당 태종의 웅무(雄武)로서도 다 때에 따라 적당하게 처리할 방도를 썼으니, 이는 실로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며 당시에 기롱하는 의논이 있었다는 말은 들지 못하였다. 따라서 나라가 이에 의지하여 오래도록 평온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은 어떤 괴이한 작자들이 시의에 맞게 변통할 줄은 모르고 한갓 썩어빠진 논의만을 하여 우리나라의 일을 망치려 하고 있다. 그런데도 비변사의 여러 신하들은 이 융통성 없고 오활한 의논이 가당치 않다는 것은 살피지 않고 다 입을 다물고 수수방관하여 우물거리고 있으니,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야 하는 신하로서 어찌 이와 같을 수 있단 말인가.”

- 광해군일기 정초본(정족산본) 172권, 13년(1621 신유 / 명 천계(天啓) 1년) 12월 5일(임신) 3번째 기사

 

 

“우리 나라의 병력이 과연 요양(遼陽)의 병력만 하겠는가. 답서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반드시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면서 한갓 한때의 사악한 논의만을 무서워하니 종사를 어디에 두려고 하는 것인가. 이것은 그저 자기의 몸만을 사랑하고 나라의 위망은 돌아보지 않는 태도이다. 또한 위에서 기미책(羈縻策)을 굳이 고집하도록 하려는 계책은 곧 뒷날 임금에게 모든 죄를 돌리려는 뜻이다. 옛날에 대신이 과연 이렇게 하였던가. 이제 만일 관문을 폐쇄하고 사신을 거절한다면 준절한 논의를 편 사람이 먼저 내려가서 적을 방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늘내일 하다가는 다만 나라만 망하고 말 것이다. 비변사의 여러 당상관의 의견을 모아 오늘 중으로 빨리 좋은 쪽으로 잘 처리하도록 하라.”

- 광해군일기 정초본(정족산본) 172권, 13년(1621 신유 / 명 천계(天啓) 1년) 12월 26일(계사) 2번째 기사

 

 

이런 발언들에 대한 재음미가 최근 들어 대왕의 국제정세 인식과 균형외교가 조명을 받아 외교적 치적은 인정받는 것 같다. 광해군 말년에 대왕은 명나라 황제의 칙서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면서도 후금에는 역관을 보냈다. 신료들은 그런 광해군의 왕명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며 수시로 파업을 일삼았다. 어찌됐든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을 도왔던 명에 대한 의리는 함부로 파기할 수 없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사대부들의 생각은 참으로 완고했다.

 

 

사대부들의 마음을 잃었던 것은 대왕이 실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존명의리(尊明義理) 이데올로기에 맞서기에는 소수파 정권의 대왕으로서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다. 가령 정통성이 넘쳐흐르는 숙종 같은 왕이 대왕의 외교노선을 추구했다면 한층 더 추동력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에서는 숙종은 존명의리 이데올로기를 심화시키기 위해 창덕궁 깊숙한 곳에 명나라의 은혜를 기리는 대보단(大報壇)일 지은 인물이지만 말이다.

 

 

이권우 선생은 프레시안에서 개최한 도서 좌담회에서 “내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외치가 가능할까요?”라고 반문하였다. 물론 내치와 외치가 상호 조화를 이루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에서는 내치가 볼만했던 경우와 외치에 치적을 남긴 경우가 분리되는 경우가 적잖은 듯싶다. 더욱이 전후 복구가 한창인 시점에서 외세의 침략을 관리하는 것 역시 내치의 일환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대왕이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이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더 악화시켰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여론 주도층인 사대부들이 사대주의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서 왕과 신하가 손발이 맞지 않았던 것을 온전히 대왕의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대왕의 외교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고 본다.

 

 

대왕의 실각 이후 능양군과 쿠데타 세력은 대왕의 외교정책을 강력히 비난하기는 했지만, 이미 후금을 오랑캐라고 매도하며 적대할 단계가 아니었고 제 나름의 유화책을 마련한 흔적도 보인다. 국제 정세는 오히려 대왕 시절보다 더욱 후금(청)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능양군은 더욱 섬세한 균형외교를 꾀하거나 방어전쟁을 준비하였어야 했다. 전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능양군과 쿠데타 세력의 대응은 참담한 수준이었고, 임진왜란보다 더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고초를 겪었다. 청의 침략전쟁을 일차적으로 비판하한 뒤에는 능양군과 쿠데타 세력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4. 대왕의 실책에 대한 고찰

물론 대왕이 강홍립에게 “정세를 잘 살펴 행동하라(觀形向背)”고 명했던 것이 내치에도 발휘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왕이 마냥 내치에 무능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흔히 회자되는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한 폐모살제(廢母殺弟)는 조선 왕가의 피비린내 나는 변고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후계자 책봉에 관련해 선조의 미온적이었던 태도, 임진왜란 당시 원조를 빌미로 조선의 왕위 계승에 대해서도 딴죽을 걸던 명나라의 자세도 상당 부분 대왕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게다가 대왕의 폐위 후 대왕을 죽일 것을 끊임없이 요구한 인목대비는 모자관계라기보다는 정치적 라이벌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조선사에서 계비가 아들이나 며느리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가 이따금 있다. 인목왕후는 대왕보다 9세 연하고, 정조의 할머니인 정순왕후는 정조보다 7세 연하다. 아무리 종법(宗法) 질서가 중한 시절이어서 오늘날과는 나이 관념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민망한 일이다. 선조가 적장자를 갈구했던 나머지 후계자 선정에 대한 분명한 교통정리를 하지 못한 바람에 대왕은 정통성의 한계에 시달렸고 콩가루 집안이 된 듯싶어 안타깝다.

 

 

대왕이 대북파와 코드 정치를 했다고 비판도 일면 수긍할 만하다. 결과적으로 이에 불만을 품은 서인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니 말이다. 그러나 탕평책을 부르짖었던 영․정조 시대에도 노론 벽파가 주도적 위치에서 정사를 좌지우지했듯이 당쟁이 있던 대부분의 시기에 코드 인사는 그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대왕의 인재풀이 협소했던 측면이 부각되기는 하지만 폐위될 만큼 인사를 망쳤다고 보기는 조심스럽다. 대북파는 인조 쿠데타 이후 서인의 극심한 탄압으로 완전히 정계에서 제거되어 버렸다. 이는 남인이 잠깐의 집권기를 제외하고는 만년 야당에 허구한 날 옥사를 치렀으면서도 명맥이 이어진 것과 다른 점이다. 서인의 쿠데타가 얼마나 정통성이 허약했는지를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실정의 이유로 궁궐 영건에 집착한 것이 많이 거론된다. 그러나 선조의 무능으로 궁궐이 잿더미가 된 것을 다음 왕이 서둘러 재건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의 사고로는 궁궐 중수와 창건이 국가의 위신을 세우는 사업이었음도 부인하기 힘들다. 다만, 왕권강화를 한답시고 무리해서 필요 이상으로 궁궐을 지으려 한 것은 아쉽다.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누구보다 더 잘 알 분이 저지른 실책이라 더욱 따갑다.

 

 

대왕 재위 중에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 경덕궁(경희궁), 인경궁, 자수궁에 대한 공사가 계속되었다. 대왕은 창덕궁을 지으며 즉위하여, 인경궁을 짓다가 폐위된 셈이다. 광해군 대 지어진 건축물 중 현존하는 궁궐 건축으로는 창덕궁 내 돈화문, 선정전, 창경궁 내 홍화문, 명정문, 명정전, 경희궁 내 흥화문, 숭정전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창덕궁 선정전은 인경궁 광정전을 옮겨 지은 것인데 광해군 대 건축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광해군의 궁궐 영건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고 판단한다.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건축기술이 상당 부분 퇴보한 시점에서 대왕이 직접 궁궐 중건을 챙김으로써 건축 기술을 다시금 가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넉넉하게 평가할 만하다. 가령 중국에서만 사용하던 황기와를 사용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고, 전란 중에 단절된 청기와 제작기술의 복원에도 힘써서 인경궁의 주요 전각에는 청기와를 씌웠다. 그런데 그 후 청기와는 다시 전승되지 못하고 다시금 단절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측면에 비추어 볼 때, 대왕의 무리한 토목공사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건축기술의 복원에 대한 업적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우리 궁궐 전각들의 상당수가 대왕의 공인 것을 감안하면 후손들 입장에서는 고맙게 생각할 여지가 적잖다.

 

 

5. 패자의 역사

능양군 이종(李倧)의 쿠데타 이후 대왕의 북인 세력이 사실상 절멸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대왕이 조선시대 내내 혼군(渾君)이니 폐주(廢主)라고 불리며 종묘에 모셔지지도 않을 만큼 무도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왕위에 있던 시간보다 더 오랜 기간을 유배지를 전전하며 아들과 며느리, 부인을 앞서 보내야할 만큼 죄악이 깊다고 보지는 않는다. 적어도 평균은 되는 임금이었다. 참고로 대왕은 영조, 태조, 고종 다음으로 장수한 임금이다.

 

 

패자에게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라이벌에게 옹색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패자와 라이벌을 존중하며 좋은 점을 배우는 것은 어색한 만큼 의미 있는 작업이다. 승자의 양지만을 좇기보다 과거의 패자에게서 가슴 시린 영감을 얻고, 현재의 라이벌에게서 새로운 안목을 배워보자. 패자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라이벌의 장점마저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대왕의 외교에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평화와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기민한 전략을 세우고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함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이 국익을 지키는 것인지에 대한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또한 소수파가 집행권을 어떻게 섬세하게 행사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도 남겨준다. 대왕이 던진 화두를 소중히 궁리하면서 그에 대한 부당한 평가절하도 걷어낼 필요가 있다. 하늘은 편애하지 않지만 나는 그를 조금 편애하고 싶다. 어질지 못한 것은 내 평생의 부끄러움이나 모질지 못한 것은 내 아름다운 약점인지도 모르겠다. - [無棄]

 

 

<참고문헌>

오항녕,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너머북스, 2012.

이정철, 『대동법』, 역사비평사, 2010.

한명기, 『광해군』, 역사비평사, 2000.

계승범, 「광해군대 말엽(1621~1622) 외교노선 논쟁의 실제와 그 성격」, 『역사학보』 제193집, 역사학회, 2007, 1-37쪽

손신영, 「光海君代 官闕營建 再考」, 『건축역사연구』 33호,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09, 267-292쪽

오수창, 「오해 속 병자호란, 시대적 한계 앞의 인조」, 『내일을 여는 역사』 26호, 내일을 여는 역사, 2006. 12, 33-45쪽

오종록, 「광해군 시대의 교훈」, 『내일을 여는 역사』 제5호, 내일을 여는 역사, 2001, 103-114쪽

지두환, 「宣組.光海君代 大同法 論議」, 『한국학논총』 제19집,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7, 51-71쪽

한명기, 「광해군(光海君)-외교의 ‘빛’과 내정의 ‘그림자’-」, 『한국사 시민강좌』 제31집, 일조각, 2002. 8, 62-78쪽

홍석주, 박언곤, 「光海君 代의 宮闕 營建에 관한 연구」, 『건축역사연구』 제8권 4호(통권 2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1999, 25-38쪽

 

 

 

 

조선에서 후궁을 왕후로 추존한 사례는 광해군이 유일하다(현덕왕후는 문종이 세자였을 때 후궁이었지만 이미 문종의 유일한 부인이었기 때문에 엄연히 정비가 따로 존재했던 공빈 김씨와는 사정이 다르다). 광해군은 생모인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恭聖王后)로 추존하고 그녀의 무덤을 성릉(成陵)으로 격상하였고, 말년에 어머니의 무덤 발치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능양군의 쿠데타로 대왕이 폐위되자 공성왕후는 공빈 김씨로, 성릉은 성묘로 격하되었다. 왕릉급으로 조성된 석물을 철거하라는 명이 내려졌으나 다행히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공성왕후의 화려한 성릉과 대왕의 초라한 능과의 부조화가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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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일기 2013. 3. 13. 05:37 |

2013년 2월 22일,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지난 3년 동안 이런저런 번개 모임에 함께 해준 저 하늘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참 애틋했다. 앞으로 세월의 무게를 맞들며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길 희망한다. 늘 투정부렸지만 실상 내 깜냥에 견주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많았고, 일러준 것보다 본받은 것이 많았다.

 

 

이 공간, 이 시간을 공유하는 분들과의 각별한 인연은 내가 누리기에 넘치는 호사였다. 이 기쁜 순간이 더 빛나도록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싶었지만, 이미 충분히 복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못 다 갚은 마음의 빚은 천천히 갚아나가겠다.

 

 

우리 학교의 주인으로 살고 싶었고, 좀 더 나은 학교를 후배님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제3대-제4대 학생회장과 3학년 자치회 대표를 역임하며, 법전원 3년 중에 2년 반을 직선 대표로서 활동할 수 있어 참으로 영광스러웠다. ‘士爲知己者死’라는 봉건 시대의 문구 하나를 가슴 한 구석에 새기며 지냈던 순간들을 추억으로 간직한다.

 

 

입학 당시에 재학생 카페에다 인사를 남기면서 언급했던 고사가 다시 떠오른다. 『삼국사기』 온달열전에서 평강공주가 온달을 찾아갔을 때 온달의 어머니는 아들이 비루하고, 집이 가난해서 귀인이 살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온달은 평강공주의 짝이 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대며 완곡히 만류한 셈이다.

 

 

그 때 평강공주는 “옛 사람의 말에 ‘한 말의 곡식이라도 방아 찧을 수 있으며, 한 자의 베라도 옷을 지을 수 있다’라고 했으니 진실로 마음만 같다면 어찌 반드시 부귀한 다음에라야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한다. 이로써 한국 역사서에 기록된 유일한 왕족-평민 커플이 탄생한다.

 

 

‘한 말의 곡식’이나 ‘한 자의 베’에 비유할 만한 재주조차 갖추지 못했던 나를 벗으로, 동생으로, 손윗사람으로 삼아준, 평강공주와 같은 넉넉한 마음을 지니신 분들에게 가슴 깊이 고맙다는 말씀 올린다. 학교를 떠나서도 늘 배우고, 온달처럼 성장하는 사람이 되도록 애쓰겠다.

 

 

끝으로 법학관 모의법정에서 개최된 ‘2012학년도 학위취득 축하 및 시상식’에서 원장님의 축사에 대한 졸업생 답사(答辭) 원고를 싣는다. 원장님보다는 짧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일부분을 줄이고 재배치하느라 답사가 좀 꼬였지만, 당일 날 새벽에 부랴부랴 작성한 것만으로 감지덕지이다(손발이 오글거려서 생각이 잘 안 났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2회 졸업생 동기 여러분, 다시금 축하합니다!!!

 

 

 

 

<제2회 졸업생 답사(答辭)>

 

존경하는 교수님과 부모님, 그리고 사랑하는 동기와 후배 여러분!

 

 

먼저 저희들의 또 다른 시작을 축복하여 주시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교수님, 부모님, 가족, 재학생 여러분들께 졸업생을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빛나지 않는 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써주신 교학과, 학생지도센터, 대외협력센터, 도서관에 계신 선생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 식당노동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밥 챙겨 먹을 시간이 부족할 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주신 3층 파리바게트 관계자 여러분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다 모시지는 못했지만 천만 서울특별시민 여러분, 특히 감사드립니다. 서울시민들의 세금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참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믿어 주셨기 때문에 저희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주고, 즐거운 꿈을 꾸도록 해준 곳입니다. 제2회 졸업생 동기 여러분, 우리가 법조인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우리 학교를 아끼고 사랑합시다. 서울시립대 법전원은 작지만 훌륭한 학교입니다. 우리가 좀 더 크고, 더 멋진 학교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교의 발전을 위해 정성을 보탭시다.

 

 

제가 입학했을 무렵 저의 자습실 책상에는 “높은 사람 되기는 쉬워도 좋은 사람 되기는 어렵다(爲貴人易 爲好人難)”라는 문구를 붙여놓았습니다. 조선 후기 도암(陶菴) 이재(李縡) 선생이 과거에 급제하셨을 때 그의 어머니가 일러준 말씀이라고 합니다. 아마 여기 계신 모든 부모님과 교수님들께서 저희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여럿이 함께 즐길 줄 아는 사람, 여민동락(與民同樂)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만 명’만을 위한 법이 아닌, ‘만인’을 위한 법을 함께 궁리했습니다. 앞으로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대한민국 헌법정신에서 소외받거나 버림받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법학전문대학원의 취지를 지키고, 법조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법전원 제도의 정착과 도약을 위해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국민에게 열려있고 쉽고 낮은 법조인이 되는 길을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수님, 그동안의 귀한 가르침 정말 감사드립니다. 속 썩였던 모자란 제자들이지만 학교를 떠나서도 늘 배우고, 조금씩 나아지는 사람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앞으로도 인생의 스승님으로 모시며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졸업이 후배님들에게는 새롭게 가슴이 뛰는 설렘이고, 기회이길 소망합니다.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행복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사랑합니다.

 

 

2013년 2월 22일 졸업생 대표 최익구

 

 

추신1.

답사에서 졸업식 당시에 여러 의미에서 화제가 되었던 노회찬 선생님과 유시민 선생님 두 분에 대한 오마주가 한 마디씩 들어가 있다. 시간을 단축하느라 실제 답사에서는 두 문장 모두 생략되어 살짝 아쉽다.

 

 

추신2.

졸업식 당일 오후 4시 30분부터 시작한 뒤풀이에 함께 해주신 승목 형(1차~4차), 창기 형(1차~4차), 혜림 누나(1차~4차), 유철(1차~5차), 상훈(2차~5차), 희보 형(3차), 자호 형(3차), 승완 형(3차), 준홍 형(3차~4차), 현영(3차~4차), 해종 형(4차), 융겸(5차) 덕분에 졸업식이 더욱 빛났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놀아주시와요.

 

 

추신3.

졸업을 맞이하여 인용했던 시 한 구절을 남겨 둔다.

 

<贈汪倫> - 이백(李白) 

이백이 배를 타고 막 떠나려는데                               李白乘舟將欲行

갑자기 언덕 위에 발 구르며 부르는 노랫소리 들리네    忽聞岸上踏歌聲

도화담의 물 깊이가 천 자라고 하지만                        桃花潭水深千尺

왕륜이 나를 보내는 정에는 미치지 못하는 구나           不及汪倫送我情

Posted by 익구
:

(고종석 스승님의 신작 소설 『해피 패밀리의 출간을 기다리며,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서평으로 올린 글을 뒤늦게 옮겨 옵니다)

 

『독고준』을 읽다. 소설은 독고준의 일기와 그에 대한 감상이 주된 내용이라 고종석 선생님의 전작인 『히스토리아』나 『발자국』의 기록정신을 연상해봄직하다. 소설 속 일기의 선별은 앞의 두 책보다 좀 더 자의적(!)이다. 그 덕분에 회색인의 심미안을 엿볼 수 있다(독고준의 펜을 빌린 저자의 눈길이겠지만). 독고준의 일기는 1960년 4.19 혁명부터 2007년 대통령 선거까지 반백년의 기록이다. 독고준의 손자뻘인 나로서는 아무래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사이의 일기에 손이 머문다. 고려 시대 같은 아주 먼 과거보다 1970년대처럼 조금 지난 이야기가 오히려 더 멀게 느껴지다니 재미난 일이다. 한국 현대사 인물들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 탓만은 아닐 듯하고, 개관사정(蓋棺事定)을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모양이다. 


독고준의 따님인 독고원은 아버지의 견해에 동조하거나 첨언하다가도 이따금 불편해한다. 어쩌면 저자의 복합적인 생각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이 있으면 저런 생각이 있게 마련이라는 담담한 상식을 말이다. 소설적 허구는 참신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존의 문제의식을 극적으로 포장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 소설은 후자의 성격이 좀 더 강하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헛갈리는 것이 매력이다. 창의성과 과장성은 사회의 다수파(가 만든 법과 규범)의 시각과 어긋나기도 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분 중에 회색인이 많은 이유일 테다.  


독고준의 단정(斷定)하지 않는 단정(端正)함을 배우고 싶다. 시중(市中)에서 시중(時中)을 잡아보고 싶다. 나는 사람의 (노력을 포함한) 재주가 불공평하다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사람 가치의 우열을 따지는 건 매우 어렵고 조심스런 문제다. ‘독고준을 넘어서는’이란 목표도 좋지만 ‘독고준과 다른’ 매력을 만들어보는 것도 꽤 도전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설령 차별화(?)에 실패한다고 해도 나쁠 건 없다. 세상에는 지식 도매상보다는 지식 소매상이 많고, 지식 소매상보다는 지식 유통상이, 그보다는 지식 소비자가 더 많기 마련이다. 꽤 괜찮은 유통상이나 소비자가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무게가 많이 낮아질 거 같지는 않다.  


나는 삶은 한 번 뿐이라고 믿는다. 일전에 고 선생님께서 언급하시기도 하셨던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라는 명제를 지지한다. 그래서 한 번 밖에 없는 생을 가능한 한 옳고 아름답게, 착하고 재미나게 살고 싶다. 안연은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는 자라면 또한 그와 같아질 것이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말씀하셨다. 순임금이나 자신이나 모두 똑같은 사람인데 한 사람은 성인이 되고, 안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자책의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이 위대한 문장을 변용해본다. 


 “독고준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회의하는 자라면 또한 그와 달라질 것이다.”
 
2010. 8. 19. 木

Posted by 익구
:

(2009년 3월에 쓴 글을 대폭 수정하였습니다)

 

1.

2008년 10월의 어느 술자리에서 미팅, 소개팅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호기심 어린 마음에 듣고 있던 내가 한마디를 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남녀 간에는 소개팅을 주선하면 실수라고 하던데 거기에 동감한다”라고 말했더니 좌중이 폭소했다(나처럼 재미없는 사람이 이렇게 남을 웃긴 일도 드물다).

 

 

내가 언급한 이야기의 출전은 이진 선생님의 『나는 미국이 딱 절반만 좋다』(북&월드, 2001)라는 책에 나오는 일화다. 저자는 공화당파 남자와 민주당파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나서 두 사람 모두에게 항의 전화를 받은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글쓴이는 양 당의 지지자들이 온몸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사례를 나열하며 미국의 정치 문화를 실감나게 전한다.

 

 

나는 다대다로 만나는 미팅 자리에서까지는 따지지 못하더라도, 일대일로 만나는 소개팅에서는 지지정당을 물을 수 있다는 개인적인 소견을 밝혔다. 본래 정치적 가치관이라고 말하려다가 무슨 사상 검증하는 냄새가 나서 지지정당이라고 고쳐 말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한 까닭은 일대일로 만나는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정당의 지지자를 내게 소개시켜주면 상대방에게도 실례고 주선자와도 서먹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

업무상으로 만나는 관계에서야 공적 영역에 대한 견해를 크게 드러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친구나 애인 같은 사사로운 만남에서마저 공적 영역에 대한 토론을 꺼리는 풍토는 좀 누그러뜨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개팅 전에 상대방에 대해 알고 싶은 정보 가운데 하나가 지지정당(혹은 사회적 정견)이라고 했더니 놀랍고 어색하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나는 사사로운 소개팅 자리 같은 사적인 영역에서도 사회적 정견을 마음대로 나누지 못하는 한국의 문화가 너무 치우쳤다고 본다. 공적 영역에 대한 대화가 막혀 있다 보니 이야기의 소재는 사적 영역으로 집중된다. 자연스레 외모나 취미생활 및 생활습관 같은 지극히 개인적 영역에서 맴돈다. 좀 더 나가더라도 연예인에 대한 소식이나 예능프로그램을 포함한 문화적 이슈 정도로 확장되는 경우가 많은 듯싶다.

 

 

이런 문제의식을 김별아 선생님께서 <대통령에게 쌍꺼풀을 허하라>(한겨레, 2005. 3. 13)라는 칼럼에서 잘 짚어주신바 있다. 공적인 영역을 엄격하게 감시하고, 사적인 영역은 감시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종종 거꾸로 되어서 공적 영역에 대한 토론은 억압되고, 사적 영역에 대한 간섭이나 참견이 넘쳐흐르는 것 같다.

 

 

3.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을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한국의 문화는 ‘비정치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발현된다. 그런데 이러한 강박관념이 주류적 정치세력의 과점 사태에 일조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일반화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비정치적이길 권하는 사회가 결국 오늘날 지배적인 세력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는 현상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

 

 

어쩌면 비정치적이라는 정언명제(?)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분들이 가장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이 든다. 여담이지만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에만 기대는 안철수 후보 캠프와 그 지지자들의 반정치주의적인 행보가 우려스러운 까닭이기도 하다. 기존 정당들이 그 나름대로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옥석을 가릴 일이지 낡은 정치라고 무조건 매도하고 타자화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다.

 

 

비정치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청년들이 남았다. 사회에 대해 가장 투덜거릴 법한 젊은이들이 세속적 기준을 맞추는데 허덕이느라 체제순응형 인간이 되어버린다면 마냥 달가운 일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중도나 중립을 내세우며 단순히 양극단의 산술평균에 천착하는 분과는 소개팅을 해도 재미가 없을 듯싶다. 이 땅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갈지 어설프게나마 의견을 나누고, 정책이나 가치 논쟁을 벌일 용기나 정성이 있는 분들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다양성을 애호하면서도 자신의 당파성을 감추지 않는 성숙한 민주 시민과 연애하고 싶다는 바람은 이 얼마나 소박한가?^^;

 

 

4.

2011년 7월, 피서 삼아 하루를 꼬박 들여 다카무라 가오루의 『마크스의 산』을 읽었는데 그다지 큰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지금이야 재출간되어 쉽게 구해 읽을 수 있지만 절판된 시절에는 장르문학 애호가들이 헌책방을 뒤지게 만든 책이었던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개인의 취향이 버물리는 세상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고 뜬금없이 다짐하는 계기가 된 독서였다. 이런 사적 영역의 취향과 공적 영역에 대한 생각은 접근 방식에 다소 차이가 날 듯싶다. ‘개인의 취향’은 가급적이면 존중하는 게 옳다. 그러나 ‘개인의 생각’은 인정하되 토론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사회적 정견이라고 분류하는 것도 직관적인 판단, 단순한 이끌림에 해당하는 경우가 적잖다. 양자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시 한 번 평가하고 스스로 다시 궁리하여 보다 나은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유효한지 여부다. 가령 “나는 당신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당신이 불교도인 것에 반대한다”, “나는 당신이 초등학생을 무서워하는 것에 반대한다”와 같은 발언들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와 같은 개인의 취향에 함부로 찬반 투표를 던질 수 없다. 적어도 머뭇거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양식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 출판계가 추리소설 번역에 매달리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교계의 불교문화유산 관리 방식에 이견이 있다”, “나는 초등학생들이 치르는 시험 제도를 조정해야 한다고 본다”라는 식으로 생각을 교류하는 행위는 애인 사이든, 친구 사이든, 선후배 사이든, 사제 사이든 간에 얼마든지 장려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중도니 상생이니 통합이니 하면서 토론과 갈등이 필요한 지점을 적당히 넘어가려 하지 않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5.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003년에 펴낸 자서전 『Living History』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보인다. 힐러리는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화당을 지지했다. 1964년 힐러리의 선생님은 대통령 후보 모의 토론회 시간에 힐러리에게 민주당 출신 존슨 대통령 역을 맡겼다. 힐러리는 도서관에서 민주당 강령과 백악관 성명 등을 읽으며 민주당에 대한 오해를 풀었고 종국에는 민주당원이 된다. 힐러리는 자기 스스로가 반대자가 되어 가려진 일면을 보았다. 그에 비추어 나는 너무 편협한 짓을 벌이는 듯싶다. 물론 애정과 정견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힐러리의 어머니는 비밀스런 민주당 지지파였다고 한다.

 

 

소개팅의 의미를 너무 무겁게 여겨서 이런 횡설수설을 늘어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간 내게 소개팅을 제안해주셨던 많은 분들의 후의에 보답하는 길은 솔직한 모습으로 임하는 것일 따름이다. 혹시 소개팅 자리에서 배우고픈 정치적 반대자를 만날지도 모른다. 내가 첫눈에 반할 ‘다른 생각’들이 대한민국에는 넘쳐날 게다. 그럼에도 내가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하길 바라는 마음은 바꿀 생각이 없듯이, 소개팅 여성도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응답하라 1997> 6화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온전히 나를 버리는 일이다. 나답지 않은 짓을 하게 만드는 힘, 사랑이다”라고 역설했지만, 사랑을 쉬운 길로만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도 있으리라.

 

 

“저는 이명박 지지자는 아니지만...”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저는 야당 지지자는 아니지만...” “저는 친미파는 아니지만...” “저는 진보주의자는 아니지만...” “저는 군 면제는 아니지만...” “저는 재벌옹호론자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말을 입에 달아야만 안심이 되고 비로소 색안경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한국 사회는 아직도 불행하다.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문화를 퍼뜨리기, 내가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다. 기왕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나갈 수 있으면 더욱 행복하겠다.^^ - [無棄]

 

 

<추신>

이 글을 보신 분들이 저를 까다로운 녀석으로 보실까봐 두렵습니다.ㅜ.ㅜ 사실 제가 소개팅 자리를 자주 못 나가는 까닭은 위 글과 같은 이유도 있겠지만 독대를 즐기지 않는 취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다는 무의식이 작용해서 대여섯 명 정도 모이는 자리를 가장 즐기는 게 습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둘만으로도 알콩달콩 충만하게 보낼 수 있는 관계, 그래서 사랑이 위대한지도 모르겠습니다. 2013년 초부터는 소개팅 자리를 사양하지 말고 나가봐야겠습니다. 앞으로도 소개팅 제안 많이 해주시와요^^;

 

 

Posted by 익구
:

<들어가며>
2012년 1학기 행정법사례연구 수업의 발표 초안을 부분적으로 수정해서 올립니다. 그간 행정소송법 개정안 가운데 원고적격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만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조홍식 교수님을 비롯한 신중론을 접하고 보니 좀 더 조심스러운 입장이 되었습니다. 조 교수님은 실정법과 그 해석의 대부분이 도덕적 조정문제를 해결하는 규칙이라는 전제 하에, 그 ‘조정 규칙’을 제정하는 권위는 입법부ㆍ행정부ㆍ사법부의 민주적 정통성의 크기만큼 비례적으로 할당되어야 한다는 비례입헌주의(proportional constitutionalism)를 주장하십니다. 저는 이 견해가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는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입법부와 행정부의 책무를 다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가 더 크다고 평가합니다. 앞으로 좀 더 고민하고 싶은 화두입니다.

 

 

비례입헌주의의 요체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기관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되, “‘조정문제’에 관한 한 민주적 정통성의 크기만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소결론을 종합해 내린 결론입니다. 즉 법적 문제의 대다수는 가치판단의 문제라는 점, 가치판단의 문제는 객관적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국가구성원 사이의 도덕적 불확정성을 극복하지 않으면 국가가 통합될 수도, 존속할 수도 없다는 점, 그러므로 조정문제는 어떤 방향으로든 해결책(‘매듭’)의 마련이 중요하다는 점, 민주주의는 조정문제의 매듭을 민주적 정통성이 큰 정치부문에 맡긴다는 점, 사법부는 정치과정에서 결정되지 않은 나머지 조정문제를 결정하여야 한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조홍식, 「환경법의 해석과 자유민주주의」, 『서울대학교 法學』, 제51권 제1호,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2010, 262쪽

 

 

사법부는 어디까지나 사후적인 권리구제만 할 수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사전적인 권리구제 수단으로서의 입법부와 행정부의 각성이 더욱 요구됩니다. 더욱이 선출된 권력인 국회와 대통령은 그 정치적 책임이 법원에 견주어 더 크기 때문이죠. 입법 과정과 정치적 타협, 집행 과정 다음에 사법 과정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국민에게 입법-행정-사법의 삼세판의 권리보호를 하는 것이 환경소송을 비롯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미 그렇게 하라고 다 규정해놓고 있으니 정성스럽게 실천하는 문제만 남은 셈이지만요.

 

 

환경행정소송의 원고적격
-대법원 2010. 4. 15. 선고 2007두16127 판결-

 

 

Ⅰ. 판례개요

1. 사실관계

 

2005. 7. 19. 피고 보조참가인을 비롯한 28개 신청업체들은 피고(상고인 겸 피상고인, 김해시장)에게 이 사건 신청지를 대상부지로 하는 공장설립승인신청을 하였다.


2005. 11. 3. 피고는 낙동강유역환경청장에게 사전환경성검토협의를 요청하였다.


2005. 11. 28.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오염물질 확산에 의한 영향 검토 및 이 사건 신청지에 공장이 설립됨으로써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부산광역시와 양산시의 동의에 관한 보완요청을 하였다.


2005. 12. 9. 피고는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이 제기한 문제에 관하여 제대로 보완하지 아니한 채 다시 사전환경성검토협의를 요청하였다.


2006. 1. 5.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① 이 사건 신청지로부터 약 2.4㎞ 떨어진 곳에 물금취수장이, 약 2.7㎞ 떨어진 곳에 양산취수장과 정수시설이 건설 중이어서 공장입지로서 적절하지 않고, ② 2005. 6. 4. 시행된 김해시의 공장건축가능지역 지정에 관한 조례 제5조 제2항에 위배되며, ③ 낙동강원수를 상수원수로 이용하고 있는 부산광역시, 양산시가 안정적인 상수원수 확보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는 등의 사유로 이 사건 신청지를 대상부지로 하는 공장설립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회신하였다.


2006. 1. 10. 피고는 다시 낙동강유역환경청장에게 사전환경성검토재협의를 요청하였다.


2006. 2. 7.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부동의한다고 통보하였다.


2006. 4. 27. 피고는 그 협의내용을 반영하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같은 날 신청업체들의 공장설립승인신청을 승인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


2006. 4. 29.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피고의 협의내용 미반영 통보에 대하여 협의내용을 이행할 것을 요청하였다.


2006. 6. 12.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경상남도지사에게 이 사건 처분의 취소 또는 정지조치를 요청하였다.


2006. 6. 9. 원고들은 “피고가 2006. 6. 5. 별지 기재 신청업체들에 대하여 한 공장설립승인처분을 취소한다.”라는 판결을 구하는 공장설립승인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부산광역시가 원고들의 승소를 위해 참가하였다.

 

※ 원고들의 지위
양산물금택지개발사업지구 내인 양산시에 거주하고 있는 원고 2인은 현재 밀양댐에서 취수한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으나, 양산취수장과 정수장의 급수가 개시되면 그곳에서 취수한 물을 식수로 공급받기로 계획되어 있고, 위 원고들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은 대부분 부산광역시에 거주하면서 물금취수장에서 취수한 물을 식수로 공급받고 있다.

 


2. 소송경과

 

제1심 판결(창원지방법원 2006. 11. 2. 선고 2006구합1225 판결)
원고들에게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소를 모두 각하하였다.

 

환송전 판결(부산고등법원 2007. 6. 29. 선고 2006누5540 판결)
양산시에 거주하는 원고 2인에 대한 항소를 인용하고, 나머지 원고들의 항소는 기각하였다.

 

이 사건 처분에 김해시 공장건축가능지역 지정에 관한 조례가 적용된다고 보고 해당 조례 제5조 제2항 제6호에 위배되어 위법하다고 판단한 고등법원의 판단은 대법원에서 이 사건 조례의 적용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사건 각 공장은 그 부지면적(2이상의 공장을 함께 건축하는 경우로서 그 면적의 합계)이 148,245㎡로서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71조 제1항 제19호 [별표20] 제2호 차목 소정의 부지면적이 1만㎡ 이상인 공장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조례는 이 사건 처분에 대하여 적용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환송 판결(대법원 2010. 4. 15. 선고 2007두16127 판결)
나머지 원고들의 원고 적격도 인정되나, 김해시 공장건축가능지역 지정에 관한 조례는 이 사건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송전 판결을 전부 파기ㆍ환송하였다.

 

원심 판결(부산고등법원 2011. 8. 17. 선고 2010누1910 판결)
양산취수장 및 물금취수장에서 취수된 물을 수돗물로 공급받는 원고들로서는 이 사건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에 의하여 개별적ㆍ구체적ㆍ직접적으로 보호되는 환경상 이익, 즉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침해되거나 침해될 우려가 있는 주민으로서 원고적격이 인정받을 수 있으나,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고 보아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2. 2. 23. 선고 2011두21805 판결)
법령 적용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고 재량권 일탈ㆍ남용의 위법이 없다는 이유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였다.

 


3. 대상판결 요지

 

행정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자로서 그 처분에 의하여 자신의 환경상 이익이 침해받거나 침해받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제3자는, 자신의 환경상 이익이 그 처분의 근거 법규 또는 관련 법규에 의하여 개별적·직접적·구체적으로 보호되는 이익, 즉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임을 입증하여야 원고적격이 인정되고, 다만 그 행정처분의 근거 법규 또는 관련 법규에 그 처분으로써 이루어지는 행위 등 사업으로 인하여 환경상 침해를 받으리라고 예상되는 영향권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영향권 내의 주민들에 대하여는 당해 처분으로 인하여 직접적이고 중대한 환경피해를 입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고, 이와 같은 환경상의 이익은 주민 개개인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보호되는 직접적·구체적 이익으로서 그들에 대하여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환경상 이익에 대한 침해 또는 침해 우려가 있는 것으로 사실상 추정되어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으로 인정됨으로써 원고적격이 인정되며, 그 영향권 밖의 주민들은 당해 처분으로 인하여 그 처분 전과 비교하여 수인한도를 넘는 환경피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는 자신의 환경상 이익에 대한 침해 또는 침해 우려가 있음을 증명하여야만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으로 인정되어 원고적격이 인정된다(대법원 2006. 3. 16. 선고 2006두33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6. 12. 22. 선고 2006두14001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원고적격에 관한 기존의 원론적인 태도를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 수돗물을 공급받아 이를 마시거나 이용하는 부산광역시, 양산시 주민들로서는 이 사건 처분 근거 및 관련 법규가 환경상 이익의 침해를 받지 않은 채 깨끗한 수돗물을 마시거나 이용할 수 있는 자신들의 생활환경상의 개별적 이익을 직접적ㆍ구체적으로 보호하고 있음을 증명하여 원고적격을 인정받을 수 있음을 긍정하였다.

 

 

나아가 (원심에서 원고적격을 인정받지 못한) 나머지 원고들의 거주지역이 물금취수장으로부터 다소 떨어진 부산광역시 또는 양산시이기는 하나, 수돗물은 수도관 등 급수시설에 의해 공급되는 것이어서 수돗물을 공급받는 주민들이 가지게 되는 수돗물의 수질악화 등으로 인한 환경상 이익의 침해나 침해 우려는 그 거주 지역에 불구하고 그 수돗물을 공급하는 취수시설이 입게 되는 수질오염 등의 피해나 피해 우려와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다고 할 것이라 보았다. 따라서 물금취수장에서 취수된 물을 수돗물로 공급받는 나머지 원고들로서는 이 사건 공장설립승인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에 의하여 개별적ㆍ구체적ㆍ직접적으로 보호되는 환경상 이익, 즉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침해되거나 침해될 우려가 있는 주민으로서 원고적격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Ⅱ. 평석
1. 쟁점정리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김해시장의 부당한 공장설립승인처분에 대하여 김해시민이 아닌 부산과 양산시민으로 구성된 원고들이 그 효력을 다툴 법률상의 이익이 있는지에 관한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판단해야 할 내용은 이 사건의 처분이 부산광역시나 경상남도 양산시 주민인 원고들의 깨끗하고 원활하게 수돗물을 이용할 권리를 침해하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지의 여부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환경침해의 경우 피해의 광역성, 피해의 중대성으로 인해 행정처분의 상대방이 아닌 인근 주민(제3자)의 원고적격을 확대할 필요성 및 이를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이 밖에도 원고들은 처분의 직접 근거가 되는 법규뿐만 아니라 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규가 원용하고 있는 법규도 처분의 근거법규로 인정하고 있는 법원의 태도를 고려하여 관련 법률 및 조례를 근거로 한 이 사건 처분의 위법성과 관련한 주장(가령 피고가 고의로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했다는 주장)들을 제기하였으나 검토를 생략하겠다.

 
2. 관련 판례의 흐름

(김향기, 「행정소송의 원고적격에 관한 연구- 환경행정소송에서 제3자의 원고적격을 중심으로-」, 『환경법연구』 제31권 2호, 한국환경법학회, 2009, 226-236쪽을 참조하여 정리)


(1) 연탄공장 건축허가 취소청구 사건(대법원 1975. 5. 13. 선고 73누96ㆍ97)
이 판결은 도시계획법에 의한 주거지역에서 행정청이 연탄공장건축허가처분을 하자 위 연탄공장으로부터 불과 70㎝ 거리에 사는 주민이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단이다.

대법원은 구 도시계획법 및 구 건축법이 도시계획구역 안에서의 주거지역에서 거주의 안녕과 건전한 생활환경의 보호를 해치는 모든 건축이 금지되는 것은 구 도시계획법 및 구 건축법이 추구하는 공공복리의 증진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주거지역 내에 거주하는 사람의 ‘주거의 안녕과 생활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데도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보았다.

주거지역내에 거주하는 사람이 받는 위와 같은 보호이익은 단순한 반사적 이익이나 사실상의 이익이 아니라 바로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이익이라고 할 것이어서, 주거지역 내에 거주하는 역내 건물 소유자는 비록 당해 행정처분의 상대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행정처분으로 말미암아 위와 같은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이익을 침해받고 있다면 원고적격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은 제3자의 원고적격, 환경소송의 원고적격의 법리 형성에 기초가 되었으며, 법률해석에 의하여 법률상 이익의 개념을 확대한 표현을 사용한 최초의 판결이라 할 수 있다.

 

 

(2) 청담공원 내 골프연습장 설치금지가처분신청 사건(대법원 1995. 5. 23. 자 94마2218 결정)
이 결정은 도시공원법상 근린공원으로 지정된 공원에 골프연습장의 설치가 인가됨에 따라 인근주민들이 골프연습장의 건설이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기본권으로서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공작물설치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사건으로, 헌법상의 환경권만으로는 국민에게 직접으로 구체적인 사법상의 권리를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없음을 밝힌 최초의 판례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가 원고적격의 요건인 법률상 이익이 될 수 있다는데 소극적인 입장이다. 이에 반하여 헌법재판소는 기본권을 법률상 이익으로 인정하거나 고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헌법재판소 1998. 4. 30. 97헌마141 결정, 헌법재판소 1989. 9. 4. 88헌마22 결정, 헌법재판소 2008. 7. 31. 2006헌마711 결정).

 

 

(3) 화장장 설치를 위한 상수원보호구역변경처분 취소청구 사건(대법원 1995. 9. 26. 선고 94누14544 판결)
이 판결은 처분의 직접의 근거 법률뿐만 아니라 관련법과 그 시행령의 취지 해석을 근거로 하여 원고적격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종래 판결의 중요한 변화로 이해될 수 있다.

 

 

(4) 용화집단시설지구 공원사업시행허가처분 취소청구 사건(대법원 1998. 4. 24. 선고 97누3286 판결)
이 판결은 당해 처분의 직접적인 근거법령인 실체법령뿐만 아니라 절차법인 환경영향평가법령상의 환경상 이익을 법률상 이익으로 인정하고, 환경영향평가대상지역 안의 주민에게 원고적격을 인정할 수 있음을 인정한 최초의 판례이다.

 

 

(5) 남대천 양수발전소건설사업승인처분 취소청구 사건(대법원 1998. 9. 22. 선고 97누19571 판결)
이 판결은 환경영향평가대상지역 밖의 주민ㆍ일반 국민ㆍ산악인ㆍ사진가ㆍ학자ㆍ환경보호단체 등의 환경상 이익이나 전원개발사업구역 밖의 주민 등의 재산상 이익에 대하여는 이 사건 처분의 근거 법률에 이를 그들의 개별적ㆍ직접적ㆍ구체적 이익으로 보호하려는 내용 및 취지를 가지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므로, 이들에게는 원고적격을 부인한 사례이다.

 

 

(6) 쓰레기소각장 입지지역결정고시 취소청구 사건(대법원 2005. 3. 11. 선고 2003두13489 판결)
이 판결은 원고적격의 인정여부는 법 및 법시행령의 제반 규정의 취지, 목적과 폐기물처리시설 설치로 인하여 침해되는 이익의 내용, 성질, 태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 판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직접적이고 중대한 환경상의 침해를 받으리라고 예상되는 직접영향권 내에 있는 주민과 간접영향권 내에 있는 주민들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환경상의 이익에 대한 침해 또는 침해우려가 있는 것으로 사실상 추정하여 원고적격을 인정하나, 직ㆍ간접적 영향권 밖의 주민은 환경이익의 침해 또는 침해우려가 있음을 입증해야 원고적격이 인정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7) 새만금간척사업 시행인가처분 취소청구 사건(대법원 2006. 3. 16. 선고 2006두330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결은 환경영향평가대상지역 안의 주민에게만 원고적격을 인정하고 그 대상지역 밖의 주민은 수인한도를 넘는 환경피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한다는 종래의 판결을 확인하면서, 환경영향평가대상지역을 판단하는 주체를 사업자가 아닌 법원으로 보았고, 헌법 제35조 제1항의 헌법상의 환경권과 환경정책기본법 제6조의 일반적 규정만으로는 원고적격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8) 공장설립승인처분 취소청구 사건(대법원 2006. 12. 22. 선고 2006두14001 판결)
이 판결은 환경영향평가대상지역 여부가 아니라 사전환경성검토대상지역의 여부에 따라 원고적격의 인정여부를 판단하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또한 사전환경성검토대상지역에 포함될 개연성이 충분히 보이는 주민에게 원고적격을 인정하여 사전환경성검토대상지역의 여부를 법원이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9) 광업권설정허가처분 취소청구 사건(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두7577 판결)
이 판결은 당해 처분뿐만 아니라 그 후속절차로 인한 피해를 포함하여 환경상 피해와 더불어 재산상의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에도 법률상 이익을 인정하고 있으며, 토지와 건축물의 소유자ㆍ점유자 또는 이해관계인 및 주민도 그 환경상 이익의 침해나 침해우려를 증명함으로써 원고적격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여, 원고적격의 범위를 좀 더 넓힌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3. 대상판결의 검토

 

(1) 환경행정소송과 원고적격의 의의
환경행정상 법률관계는 기본적으로 행정청, 사업자, 인근주민의 삼각관계로 설명하기도 한다. 행정청이 사업자에 대하여 내려진 인ㆍ허가처분에 의하여 인근주민의 환경상의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에 이를 사업자와 인근주민간의 사법상의 분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오히려 행정청의 처분에 대한 항고소송의 제기를 통하여 환경침해를 막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권리구제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사업자에 대한 환경침해적 내용의 행정청의 인ㆍ허가에 대해 인근주민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핵심적인 논의과제가 된다.

 

 

환경행정소송에서의 원고적격도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원고적격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환경소송에서의 원고적격이란 환경분쟁에 있어서 행정청에 대하여 구체적인 행정소송의 제기를 전제로 하여 원고로서 소송을 수행하여 본안판결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말한다(김용섭 외, 『판례교재 행정법』, 법문사, 2011, 519-520쪽).

 

 

원고적격의 문제는 행정소송제도의 본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행정소송에서 개인은 자신의 사적인 이익 내지는 권리의 구제를 받기 위하여 소를 제기하여 행정을 공격하는 것이고 행정은 이러한 전체 국민의 공적 이익 즉 공익이라는 측면에서 방어하게 된다. 행정소송의 목적이 ’권리구제‘에 있다면 권리구제가 필요한 자에게 원고적격이 인정되어야 하지만, 행정소송의 존재이유가 ’적법성의 통제‘에 있다면 이해관계를 갖게 되는 국민 일반이 원고적격이 인정된다(김동건, 「환경소송에서의 주민의 원고적격」, 『환경법연구』 제28권 3호, 한국환경법학회, 2006, 103쪽).

 

 

(2) 환경 피해의 영향권을 확장하는 해석
대상판결은 처분의 근거법률 및 관계법령에서 개별적인 사익보호 목적과 취지라는 연결고리를 보다 합목적적으로 확장하였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수돗물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환경상 이익의 침해나 침해 우려가 동일하기 때문에 거주지역 등과 관련한 지역성 관련 기준은 상당히 완화되어 적용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환경이라는 매체의 특성이 갖는 피해의 광역성ㆍ누적성ㆍ잠복성 등을 고려하여 환경오염과 그에 따른 피해의 관계를 특정 지역 내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환경피해의 영향권을 보다 폭넓게 인정할 수 있는 전향적인 해석방향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판결의 논리는 향후 수질뿐 아니라, 이와 유사하게 피해의 광역성이 인정될 수 있는 대기 및 소음ㆍ진동과 같이 광범한 영역에 피해가 야기될 수 있는 영역까지도 충분히 확장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원고적격의 판단 요인은 보다 유연하게 해석될 수 있다면, 앞으로는 원고적격의 인정 기준이 환경영향평가대상지역과 같은 기존의 한정된 지역성에서부터 점차 탈피하여, 보다 실질적인 피해의 존재 또는 예상 여부에 대한 기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대상지역이라는 지역성에 따른 기존의 획일적 구분은 오히려 그 밖에 거주하는 주민의 환경권을 무시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준서, 「‘낙동강 취수장 판결’로 살펴본 환경행정소송상의 원고적격 확대의 문제」, 『한양법학』 제31집, 한양법학회, 2010, 77-79쪽).

 

 

(3) 영향권 밖의 주민들의 입증책임 문제
대상판결은 수돗물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환경영향평가지역 밖의 주민의 경우에는 환경상 이익에 대한 침해 또는 침해 우려가 있음을 증명하여야만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으로 인정되어 원고적격이 인정된다는 기존 판례의 태도를 반복하고 있다.

 

 

원고적격 단계에서 원고의 주관적 권리구제의 문제를 완전히 포섭하고 본안판단에서는 단지 처분의 객관적 위법성만을 심리하는 구조에 비추어보면 원고적격 단계에서 자신의 권리 침해 또는 침해의 우려가 완전히 증명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개별법령 규정에서 도출할 수 없는 법률적 이익을 증명책임의 전환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환경법 분야의 증명책임의 곤란 등으로 원고적격의 부인에 이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소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는 비판, 소송자료는 대부분 기술적, 전문적인 자료이고 환경전문가가 아닌 원고가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기 어렵다는 비판, 환경오염물질의 위험성에 관한 대부분의 자료는 행정청이나 배출시설의 사업자에게 편중되어 있으므로 개인인 원고가 이와 같은 자료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여 원고의 증명의 정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비판 등이 있다.

 

 

행정소송에서 변론주의가 원칙이고 직권탐지주의는 변론주의를 보충하는 정도로 보는 판례(대법원 1986.6.24. 선고 85누321 판결)의 입장에서도 행정소송에서는 직권탐지주의가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민사소송보다는 넓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판례의 태도에 따르더라도 원고가 수집한 소송자료만으로는 원고적격 유무를 판단하기에 부족할 때 법원이 직권으로 소송자료를 수집하여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환경행정소송에서 원고적격의 경우 공익성이 강하므로 반드시 변론주의에만 기댈 수는 없기 때문이다.

 


4. 판례의 의미와 전망

 

원고적격의 문제는 소송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소송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본안의 판단까지 갈 수 없도록 막는 것은 국민의 권리구제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행정법상 권리구제는 반드시 행정쟁송을 통해 승소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송법상 기각과 각하가 준별되는 만큼 행정청을 상대로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권리구제에 어느 정도 이바지하는 바가 있으며, 현대 행정에서 원고적격이 모호한 경우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본안판단까지 해서 이익의 침해 여부를 따져야 할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본안전판단에서 미리 이익 침해가 있느냐 없느냐를 다 확정하게 되면 본안판단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장경원, 「환경행정소송(環境行政訴訟)과 제3자의 원고적격(原告適格) -대법원 2010. 4. 15. 선고 2007두16127 판결을 중심으로」, 『환경법연구』 제33권 2호, 한국환경법학회, 2010, 374쪽). 특히 이익 침해가 즉시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환경분쟁에서는 더욱 필요성이 있다.

 

 

대법원의 잇따른 원고적격의 확대 움직임은 개인의 권리구제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법원과 법무부의 행정소송법 개정안에서 원고적격의 개정 논의가 이뤄지기도 하였다. 다만, 원고적격의 무분별한 확대 주장은 적어도 권력분립의 원칙에 비추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도 있다. 특히 원고적격의 확대 논의가 자칫 ‘사법의 정치화’로 귀결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주장도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법부가 이런 환경권의 침해 문제에서 그 침해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결국 사법부가 판결을 통해서 이런 가치관을 조정하는 결정을 한다는 것인데, 사법부가 이런 결정을 할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대표적인 예다. 국가의 특정 행위가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도 완벽할 수 없고 무엇보다 해당 국가의 행위와 관련해서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한 보편적인 결론을 도출하기가 매우 어렵다. 게다가 환경분쟁은 특정한 개인의 권리침해 문제가 아니라 환경보호라는 공익과 경제발전 등을 이유로 하는 환경이용이라는 공익의 갈등문제이기 때문에 환경분쟁에 대한 결정은 곧 국가의사의 결정과 연결되는 문제이다(김종보ㆍ김배원, 「환경권의 헌법적 의미와 실현방법」, 『법학연구』 제53권 제1호, 부산대학교 법학연구소, 2012, 50-51쪽). 환경과 관련한 국가적 의사결정은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국회가 우선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의회민주주의에 부합하는 방식이라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할 것이다.

 

 

결국 환경적 가치를 위해 원고적격을 확대할 필요성과 사법부의 통제에 내재한 권력분립적 한계를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환경분쟁이 사법부까지 다다르기 전에 입법부와 행정부는 환경과 관련한 절차적 통제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입법부의 섬세한 입법과 정치권의 원만한 타협, 행정부의 공정한 집행을 통해 사전적인 권리구제를 하는 길을 넓혀야 한다.

 


<보론>

 

현행의 소송제도는 자유주의ㆍ개인주의에 사상적 토대를 두고 있으므로 자연보호라는 객관적이고 공익적인 목적을 위하여 제정된 환경법과는 조화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요컨대 쾌적한 자연환경이나 생태계를 유지함으로써 누리는 이익(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태계의 이익을 포함한다)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인간만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마련된 수단인 현행 소송제도로 해결하기에는 많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객관적이고 공익적인 성격을 가지는 환경법 영역에서는 이 법이 추구하는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 그에 타당한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설계경ㆍ정회근, 「自然의 原告適格에 관한 小考」, 『토지공법연구』 제44집, 한국토지공법학회, 2009, 173쪽).

 

 

(1) 공공신탁이론
어떠한 자원은 일반국민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므로 특정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 내지는 사적 사유권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특정 자원은 인간에게 부여한 선물이어서 특정 개인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하여 보존되어야 하고, 그 사용은 그 자체가 공공적 성격을 가지므로 특정 개인의 사적 이용에 제공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2) 자연의 권리론
자연에는 자연 고유의 가치가 있으며 동ㆍ식물을 포함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해야 하고, 그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개인이나 단체가 이들을 대신하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자연의 권리 이론에 근거한 소송사건에서 대법원은 현행법의 해석상 도롱뇽의 당사자능력을 인정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6. 6. 2. 선고 2004마1148, 1149판결).

 

 

(3) 단체소송론(환경단체활용론)
전문성이 없는 개인에 대하여 환경단체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단체 회원의 이익이 침해되어 소송을 제기하거나(이기적 단체소송), 환경보호, 자연보호, 기념물보호 등과 같이 일반적인 공공이익을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타적 단체소송)으로 나뉜다. 환경분쟁을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역량적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환경단체의 역할에 주목한다.

 

 

<나가며>

사안에서 대부분의 원고들이 부산광역시에 거주하고, 부산광역시도 원고 측에 보조참가하였습니다. 공장이 설립되는 위치와 가까운 양산시 일대의 주민들보다 위치상 떨어져 있는 부산시 일대의 주민들이 환경소송에 적극적이었다는 역설적인 사실은 적잖은 시사점을 줍니다. 낙후 지역의 지역개발 욕구와 이미 상대적으로 개발의 이익을 누리는 인근 주민들의 환경보전 욕구를 조정해야할 일이 앞으로 많이 벌어질 것을 암시하는 듯하네요. 환경을 지키면서도 경제적 이유 등으로 환경보다 개발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지역의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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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생각

사회 2012. 8. 5. 07:09 |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은 대만의 공식 국호이다. 여당인 중국국민당은 중화민국을 공식 국호로 존중하는 반면에 야당인 민주진보당은 사실상의 국호인 타이완(Taiwan)에 애정을 품는 편이다. 국공내전에서 패해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국민당 세력과 대만 토착인이 주축인 민진당 세력의 차이를 나타내는 지점이다. 2000~2008년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이 총통으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타이완을 공식 국호로 삼아 타이완 명의의 유엔 가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이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하는 의미가 컸다.

 

중화민국은 1949년부터 1971년까지 유엔 회원국이다가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회원국 지위를 잃었다. 중화민국은 눈물겹게 유엔 재가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민진당 정권이 타이완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국가의 신규 가입 형식을 꾀한 것마저도 무산되었다. 명백한 주권국가인 중화민국의 유엔 가입이 좌절되는 건 국제사회의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3월에는 총통선거와 함께 민진당이 발의한 타이완 명의의 유엔 가입안과 국민당이 발의한 중화민국 명의의 유엔 복귀안을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투표자수가 과반수에 미달하여 두 안건이 모두 부결되기도 하였다.

 

2012년 1월에 치러진 제13대 대만 총통선거에서 대다수의 대만 기업인들이 성명 등을 통해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대만인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비행기로 고향으로 몰려간 것도 박빙이라고 예상되던 선거 판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천수이볜 집권 시기에 대만의 독립을 둘러싸고 중국과 마찰이 잦았던 탓에 대만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자는 대만 경제계의 주장이 일반 국민들에게도 공감대를 얻어 마잉주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내세운 대만의 장래는 대만인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한다는 ‘대만 컨센서스(臺灣共識)’에 대한 지지도 만만치 않음이 확인되었다. 천수이볜이 대만과 중국이 각각 한 개의 국가라는 뜻의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을 주창하여 양국이 긴장관계를 불러일으킨 바 있기 때문에 차이잉원 후보는 다소 수위를 조절한 느낌이다. 중국과의 경제적 교류를 확대하는 것에 동감하면서도 대만의 자주와 민주주의를 건사하고자 하는 대만 국민의 복합적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은 줄곧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분으로 보고 하나의 성(省)쯤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패주한 국민당 역시 다른 의미에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본토 수복의 가능성이 희박해진 시점인 1992년, 국민당 정권은 홍콩에서 공산당 대표를 만나 92컨센서스(九二共識)을 합의한다.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해석은 중국과 대만 각자에 맡기고 각자의 명칭을 사용하는 ‘하나의 중국, 두 개의 해석(one China, two interpretation)’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당 입장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정치적 통일은 뒤로 미루는 명분을 챙기면서, 경제적 통합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실리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을 벌였던 반공주의자였던 국민당 세력이 오늘날 친중 노선을 내달리는 것은 고도의 통일전술일까, 이데올로기의 허망함일까.

 

냉엄한 국제사회에서는 ‘하나의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의 뜻에 따라 해석되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다시금 확인되었지만 국제행사에서는 중화민국이나 타이완 대신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로 나라이름을 표기해야 한다. 실지(失地)를 수복하지 못한 중화민국의 타이베이 정부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국민당 정권의 ‘하나의 중국’ 기조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와 국가(國歌)를 사용할 수 없다. 올림픽 개막을 축하해 런던 시내에 걸렸던 청천백일기가 사흘 만에 철거된 것도 중국의 입김 탓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서 대만 스포츠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도 시상식에서 대만올림픽위원회 깃발이 올라가고 국제올림픽위원회(國旗歌)가 울려 퍼졌다. 이번 올림픽에서 대만의 선전을 응원하면서도 서글픈 광경이 재연되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

 

올해는 한ㆍ중 수교 20년이면서 한ㆍ대만 단교 20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은 1948년에 국교를 맺었으나 1992년 노태우 정부는 북방외교의 일환으로 중국과 전격적으로 수교하면서 단교했다.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대만의 단교에 따른 조치로 서울 명동 대사관 및 부산 영사관의 중화민국 국기와 현판을 한ㆍ중 수교 발표 후 72시간 내에 철거할 것을 통보하는 것으로 양국의 공식 관계를 끝이 났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관철하는 중국과 수교를 하기 위해 대만과의 단교는 불가피한 조건이었지만 한때 ‘자유중국’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이 나라를 매몰차게 버려야 했던 것은 씁쓸한 일이다.

 

장제스(蔣介石)는 우리의 독립에 적잖은 지원과 격려를 해줬고, 유엔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우리의 입장을 많이 대변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한 나라, 한국전쟁 당시 파병해준 나라와의 단교는 아무리 정중하게 이뤄졌더라도 대만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대만의 태권도 선수 양수쥔(楊淑君)이 반칙패를 당하자 중국 선수의 우승을 위해 한국 심판이 개입했다는 허위사실이 유포되면서 대만 내 반한 감정이 고조된 적이 있다.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이렇게 번진 것을 보면 그간 우리가 대만을 홀대한 영향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양국의 경제교역 규모도 큰 만큼 국익과 실리 차원에서도 교류를 좀 더 넓혀나가길 희망한다.

 

1600년대 이래로 늘 스페인, 네덜란드, 일본 등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대만인들의 독립 의지에 심정적으로 동감하지만, 국호만큼은 타이완보다는 중화민국을 편애한다.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중화민국의 역사를 아끼기 때문이다. 중화민국의 면적은 36,191㎢, 중화인민공화국의 면적은 9,596,961㎢로 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의 0.0038%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작은 땅에서 표현의 자유, 인권의 신장, 평화적 정권교체 등이 이뤄지면서 중국과는 다른 발전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양안 관계는 변형된 중화주의라고 할 만한 중국적 예외주의에 대항하는 가치관의 다툼이기 때문에 풀기 어려운 문제인 듯싶다.

 

중화민국을 고찰할수록 우리나라에 시사 하는 바가 참 많다. 가령 정치적 접근과 경제적 교류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남북관계에서도 응용할 점이 적잖다. 대만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예속은 결국 정치적 예속을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도 충분히 수긍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사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이 아님을 중화민국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 언젠가 중화민국이 중국의 구심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를 상당 부분 수정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아시아 민주주의의 자존심을 우리가 이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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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절전 정책에 따라 공립학교에 다니는 저는 한낮에는 30분 간격으로 냉방이 꺼지는 소소한 고통을 참지 못하는 제 초라함을 한탄하게 됩니다. 맥주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저이지만 이따금 김이 서린 맥주잔이 아른거렸지요. 대학원 졸업시험이 코앞에 닥쳐 왔지만 올림픽 정신 수준으로 참가에 의의만 두게 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만, 수험생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술자리를 멀리하다 보니 잡글로 대신 술 생각을 달래렵니다. 

 

일전에 어느 술자리에서 “술은 영양가가 없지만 영양의 보고(寶庫)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06년 9월경 서울 중구 보건소 자료를 기초로 인터넷 자료를 종합해 술의 칼로리를 좀 살펴보았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회계학에 젬병이었던 저이지만 회계학원리 맨 앞부분에 나오던 회계일반원칙(Generally Accepted Accounting Principles: GAAP)은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그 가운데 “효익과 비용간이 균형”이란 것이 나옵니다.

 

정보의 제공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이용자가 정보를 제공받음으로써 얻는 효익이 더 커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100%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보실 만 할 겁니다. 잔류적 수준(residual level) 아래로 오류를 줄이기는 무척 힘들어서 들어간 자원에 비해 성과는 미미하기 마련이니까요.

 

여하간 충분히 알리바이를 마련해두었으니 재미삼아 참조하시리라 믿고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조사별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고요, 술잔에 얼마나 따르느냐에 따라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시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소주 1잔 90kcal(50cc)
병맥주 1잔 95kcal(200c)
생맥주 1잔 185kcal(500cc)
캔맥주 1병 150kcal
고량주 1잔 140kcal(50cc)
산사춘, 백세주 1잔 50kcal(50cc)
청하 1잔 65kcal(50cc)
적포도주 1잔 125kcal(150cc)
백포도주 1잔 140kcal(150cc)
막걸리 1잔 110kcal(200cc)
위스키 1잔 110kcal(40cc)
샴페인 1잔 65kcal(150cc)
폭탄주 1잔(맥주+양주) 200kcal

 

초미의 관심사인 소주의 경우 한 잔이 70kcal라고도 하고, 90kcal라는 수치도 있습니다. 최근에 도수가 약해졌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칼로리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소주 한 잔을 얼마나 채우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소주잔을 가득 따르지 않으면 70kcal쯤 되는 관계로 소주 1병은 540kcal 정도 되는 듯싶습니다. 여하간 회계학적 보수주의(The principle of conservatism)를 좇아서 90kcal라고 정했습니다.

 

밥 한 공기 열량은 보통 300kcal 내외이며, 삼겹살 1점과 소주 1잔이 140kcal 정도여서 삼겹살 2점과 소주 2잔이 약 300kcal로 밥 한 공기의 열량을 낸다고 합니다. 성인 하루 권장섭취열량은 여성이 2000kcal, 남성이 2500kcal 정도입니다. 기온과 열량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성인 남성의 경우 보통 영상 30도에서 3000kcal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면 열 발산이 많아져 5000kcal까지 필요로 한다고 하네요.

 

흔히 알코올을 ‘텅 빈 칼로리(empty calorie)’라 하는데 이는 단백질이나 비타민, 무기질 등 다른 영양소를 별로 함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칼로리를 증폭시키는 각종 안주들로 보충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음주에도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을 찾아봐야겠어요.^^;

 

술 마신 다음날 배가 고픈 느낌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는 과음으로 인한 일시적인 저혈당 증세 때문이라고 합니다. 알코올이 포도당 합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혈당수치가 낮아지면서 끼니를 거른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술로 인한 저혈당은 정상인에서는 일시적 증상이므로 정상적인 식사를 하면 곧 회복되지만 그 때 또 폭식을 하면 과도한 열량 섭취의 압박은 물론 피로해진 위에도 부담을 주니 유의하세요.

 

술이 칼로리는 좀 적고, 영양가는 좀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래저래 좀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랑스런 벗을 어찌 내칠 수가 있을까요. 진수의 『삼국지』 오서(吳書)에는 제갈량의 조카 제갈각(諸葛恪)이 당시 오나라 승상 육손에서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습니다. 거기에 “그 사람의 약점 때문에 그의 장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不以人所短棄其所長也)”라는 아름다운 말로 제 술벗들에게 양해를 구할 따름입니다.

 

이 구절은 비단 술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술 칼로리를 계산하다가 뜬금없이 다짐을 합니다. 당장 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며 사람이든, 신념이든, 원칙이든, 제 인연이 닿았던 것을 함부로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요. 제게 열량과 자양분이 되어주시는 여러분들 내내 건승하세요.^-^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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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를 줄이는 법(?)

2012. 1. 21. 18:51 |

2011년 2학기 사회보장법 과제로 ‘과로’에 대한 자유로운 글쓰기가 있었다. 고민 끝에 내 오랜 화두인 ‘노력에 대한 보상’이 과로를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공정한 평가는 엄정한 상대평가만으로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1.
  과로를 줄이는 해법 가운데 하나로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과로를 줄이자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쓰라니[努力]’!!! 일견 모순되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능력주의 보상 체계에 대한 보완책으로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만연한 과로 현상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주의의 보상 체계는 뛰어난 ‘능력’은 대부분 빼어난 ‘성과’로 드러나기 마련이므로 그 성과에 대해 보상함을 골자로 한다. 유능과 성공 사이의 상관관계는 대체로 인정된다. 그런데 ‘능력’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성질의 힘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능력이 노력에 의해 계발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한계가 있음을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동감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한계가 과도하게 커서 능력과 노력이 합치하는 정도가 너무 작다면 능력주의 사회의 대원칙은 흔들리게 된다. 개념의 혼란을 막기 위해 ‘능력(재능)’은 후천적인 ‘노력’과 선천적인 ‘재주’로 나눌 수 있다고 개념 정의하겠다.


  능력이 노력보다는 재주에 의해 좌우된다면 능력주의 사회는 선천적인 요소가 크게 기능하는 셈이다. 노동소득조차도 이런데 재산소득으로 눈을 돌리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재산소득은 부모로부터의 상속이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재주와 상속의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 바로 노력이며, 이것이 넘치면 과로가 된다. 과로가 대개 열심히 노력하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드워킨의 표현대로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주어진 ‘재주에 둔감해지는(endowment-insensitive)’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주에 둔감해진 만큼 노력에 민감해지기를 제안한다.


2.
  사회 전체적으로 과로를 줄이는 아이디어로 능력과 필요의 대립 구조에서 노력의 가치를 도두볼 것을 제안한다. 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에서 타고난 능력보다는 필요와 노력에 따른 지불의 원칙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능력과 필요 사이의 간극을 노력으로 메워야 한다고 보고 “그들의 능력이 어떠하든 간에 그들의 능력의 상한선 가까이까지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돈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언명했다. 싱어는 필요에 따른 분배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에 따른 유인을 추가했다.


  그의 논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적용해보자. 갑의 잠재적인 능력이 100이고, 을의 잠재적인 능력이 50이라고 가정한다. 갑은 60%만 노력하더라도 을이 100%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남긴다. 싱어가 구체적인 예시를 들지 않아서 단정하기 어렵지만 자기 능력의 상한선까지 오른 을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해줘야 함은 분명하다. 또한 을이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마저 뛰어넘는 120%의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갑과 같은 60의 성과를 낸다면 갑보다 더 큰 칭찬을 건네야 할 것이다.


  능력을 노력과 재주의 합이라고 볼 때 노력을 어떻게 측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두 요소의 총합인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조차 마련하기 힘든 판국에 그 능력을 노력과 재주로 가름해서 그 둘의 비율을 따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갑-을의 예처럼 보상 체계가 수립된다면 갑은 자신의 재주를 감추려는 전략을 취할 유혹에 빠진다. 갑은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을 정도라고 꾸미고 60%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종전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력에 따른 유인이 너무 커진다면 이처럼 재주를 감춰서 노력이라고 분칠하고 잠재적인 능력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소홀하게 된다. 갑이 60%의 노력보다는 70%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이끌어서 사회적인 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하다고 할 때 재주 숨김 현상은 줄여야 한다.


3.
  결국 우리는 재주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노력은 이러한 인정과 더불어 고려할 요소다. 능력 있는 사람의 성과에 미치지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노력한 사람에게 현재 수준보다는 높은 수준의 보상을 주도록 설계해야 한다. 다만 재원이 한정되어 있다고 가정할 때, 노력한 사람에게 돌아갈 재원은 필요에 따른 분배의 몫을 유지한 채 유능한 사람에게 주던 보상에서 일부를 끌어와야 한다. 이를 통해 보상의 차이가 성과의 차이보다 현격히 차이나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가 현행 능력주의 보상 체계의 상층부에 위치한 유능한 사람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도 아니다. 엄격한 능력주의는 자칫 잘못하면 1등이나 2등에게만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노력을 통해 중상위권에 다다른 사람을 위한 보상 체계에 신경을 쓰게 되면 10등, 20등을 하더라도 상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유능한 사람이라고 해도 매번 1등이나 2등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10등, 20등까지도 충분한 보상을 하는 시스템이 사회적 보험 역할로 작용하는 것을 마냥 반대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를 통해 전반적인 과로 수준이나 과잉 경쟁의 강도를 낮추기를 기대한다.


4. 
  후천적인 노력의 가치를 재조명했더라도 의문점이 생긴다. 정의하기에 따라 노력도 상당 부분 선천적인 재주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노력이라는 재능이 오로지 후천적으로 계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사가 아닌 우연적인 이유로 노력을 싫어하는 성품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반박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 속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재주보다는 노력이 우연성이 좀 덜하고, 보통 사람도 습득할 수 있는 재능이라는 점에 주목할 따름이다.


  노력의 적극적 재조명으로 말미암아 상위 1%가 아닌 상위 10%, 20%까지 보상 체계의 접근성이 높아진다면 재주가 모자란 사람과 노력이 부족한 사람도 도전할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1등에 도전하기는 힘들어도 10등, 20등은 도전해볼 만하다고 용기를 북돋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과로 유발요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종류의 경쟁을 설계하고, 노력에 대한 보상이 정착한다면, 적어도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은 적당한 강도의 경쟁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5.
  국제중이나 자율형 사립고 입시는 추첨을 마지막 전형으로 채택했다. 추첨제는 정부가 수월성 교육을 목표로 하는 학교를 도입하면서 사교육비 증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고육지책으로 등장했다. 사교육을 조장하지 않겠다는 점을 부각하는데 급급했을 뿐 추첨을 결단한 것에 대한 철학적 고려가 부족한 듯싶다. 의미 부여를 하자면 시험이나 경시대회 성적으로 1배수를 뽑는 것을 지양함으로써 경쟁의 압력을 완화하고 불필요한 과로를 절감하려는 목적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나는 추첨제의 부분적인 도입이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를 수립하는데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추첨제를 1%에 대한 보상에서 10%, 20%에 대한 보상으로 늘리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노력을 해서 이룬 성과에 따른 정당한 차별이라는 대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추첨제를 적용하는 것도 과로를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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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을 위한 사회보장

2012. 1. 21. 18:51 |

2011년 2학기 사회보장법 과제로 제출했던 보고서를 손질해서 올립니다. 본래는 인터뷰 과제였으나 인터뷰 내용은 모두 삭제하고 재편집했습니다. 인터뷰를 도와주셔서 영감을 떠올리게 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Ⅰ. 탐구의 배경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는 젊은이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어른을 부양해야 하는 만큼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하고 포기할 사람이 없다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제 소수의 승자만이 안전한 생활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잠재성과 소질을 계발하도록 노력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사회, 개개인을 존귀하게 여기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야말로 ‘개인보장’에서 나아가 ‘사회보장’을 지향하는 이유이다. 이런 맥락에서 청년층이 시혜적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의 주체로 보아야 한다. ‘청년층을 위한 사회보장’을 궁리하면서 실업급여와 대학 등록금 문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대안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구직급여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수급자격자의 문제

실업자 중에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의 비율인 실업급여 수혜율은 2010년 실업자 수는 920천명, 평균 실업급여 수혜자는 360천명으로 실업자 10명 중 약 4명이 실업급여를 수급하고 있으며, 연간 수혜율은 2004년 20.1%, 2006년 26.8%, 2008년 35.4%, 2009년 42.6%로 꾸준히 증가하다 2010년 39.1%로 낮아졌다(한국고용정보원, 『2010년 고용보험통계연보』, 2011, 46쪽). 실제 실업급여 혜택을 받는 사람이 적음을 알 수 있다.


2010년 3월 기준 종사상 지위별 실업급여 현황을 보면 상용직 근로자의 수급률이 37%인 반면, 임시직과 일용직은 각각 7.2%, 2.3%로 크게 떨어진다. 이는 상용직의 보험 미가입률이 9.0%인데 비해 임시직과 상용직은 46.9%, 61.6%에 이르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사업체 규모별로는 10인 이상 사업장의 가입률이 60%를 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25.3%에 불과하다. 고용형태 상으로 정규직(가입률 67.2%)과 비정규직(42.1%)의 차이도 문제지만 영세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들도 비정규직과 별 다를 바 없는 처지다(프레시안, "저임금·임시직 노동자에게 실업급여는 '그림의 떡'", 2011. 4. 7.).


2009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지만 보험료 부담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고(45.0%),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 등 이직사유를 충족시키지 못하고(22.9%), 고용보험에 가입하더라고 180일 이상을 일해야 하는 피보험 단위기간을 충족(11.1%)시키지 못한 관계로 실직한 임금근로자 중 실업급여 혜택을 받은 사람은 11.3%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세 가지 대표적인 사유는 고용보험의 허점으로서 어떻게 보완해나갈 것인지 사회적인 관심을 모아야 한다.


이런 문제 제기가 지속되자 18대 국회 들어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법안들이 제출되었다. 수급대상 확대, 청년 구직자로 대표되는 신규 실업자에 대한 배려, 구직급여 비자격자로 분류되는 자발적 이직자에 대한 요건 완화, 피보험 단위기간 완화, 구직급여액의 증액과 지급기간 연장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청년층의 사회보장과 관련한 문제는 법률상 보장되는 권리가 충분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향후 입법론의 역할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고용보험 가입률 통계를 나이대별로 보면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29.3% 이래 2010년 21.4%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구직급여와 국한해서 살펴보자면 수급대상자를 넓히려는 다양한 문제제기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고용보험 개정에 대한 그간의 입장 가운데 하나가 반영되어 2012. 1. 22. 시행하는 고용보험법(법률 제10895호, 2011. 7.21, 일부개정)은 자영업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개선하기 위하여 자영업자도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근로자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50인 미만 근로자를 사용하는 자영업자가 희망하는 경우, 본인을 피보험자로 하여 고용보험의 실업급여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정규직 임금근로자를 이념형으로 구성한 현행 법제의 수급대상 확대의 기점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수급대상이나 수급요건의 문제를 제기하며 고용보험을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에 준하는 전국민적 사회안전망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경우 실업보험, 노동보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실업급여를 유지하되 공공부조의 성격을 가미한 실업부조제도를 통해 실업급여의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주장 등이 제시되고 있다. 전국민 고용보험을 주장하는 경우에도 저소득층이나 근로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보험료 감면을 언급하고 있는 만큼 사실상 양자는 실질이 유사하다. 어떤 방식이 되었든 자기 책임, 자기 부담의 원칙이 지배적인 현행 제도로는 다양한 고용 형태와 개별적인 사정들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 고용보험제도가 헌법상 생존권과 근로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좀 더 적극적인 입법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 실현에 이바지하길 촉구한다.


 2. 이직사유의 문제

고용보험법 제2조 제2호는 “이직(離職)”이란 피보험자와 사업주 사이의 고용관계가 끝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직장을 옮기거나 직업을 바꾼다는 뜻의 이직(移職)과 혼동되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여하간 고용보험법 제58조 제2호는 자기 사정으로 이직한 피보험자로서 전직 또는 자영업을 하기 위하여 이직한 경우 등을 급여 제한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직사유의 허위기재 및 진술은 부정수급행위의 유형에 해당한다. “수급자격이 제한되지 아니하는 정당한 이직 사유”로 고용보험법 시행규칙 제101조 제2항 별표2가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수급자의 구체적인 사정을 감안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한다.


2010년 자발적인 이직사유는 기타 개인사정이 44.3%, 전직, 자영업이 11.4%, 결혼, 출산 등이 1.6%, 징계해고 0.1%로 도합 57.5%였고, 비자발적 상실자는 41.9%였다(한국고용정보원, 『2010년 고용보험통계연보』, 2011, 34쪽). 10명 중 6명 정도가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고, 가입자가 실업자가 될 경우 10명 중 6명이 이직사유로 인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자발적인 이직사유에 대한 제한은 구직급여가 사회보험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실업의 예방과 고용의 촉진을 하겠다는 고용보험법의 목적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이직사유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보호해줄 필요가 있다. 형식적으로는 비자발적 이직이지만 실질적으로 자발적인 이직인 경우는 비일비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령 야근이 많다는 이유로 비자발적 이직으로 분류되었더라도 오래 전부터 이직할 계획이 있는 사례처럼 평가하기 곤란한 경우가 적잖다. 이직사유 허위기재에 따른 부정수급을 단속하기 위해 막대한 행정비용을 투입하는 것도 효율적이지 못하다.


이직사유와 관련해 사업주의 의무 불이행도 문제가 된다. 병역특례의 경우 사업주와 사이가 좋으면 비자발적 이직사유로 인한 피보험자격 상실로 처리해주고, 사이가 좋지 않으면 자발적 이직사유로 처리해버리는 일도 존재한다고 한다. 중소 사업장에서는 온정주의 탓에 비자발적 이직사유로 처리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직사유의 엄격한 제한은 고용촉진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고용보험의 재정을 보전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상당수 외국은 자발적 이직자라 하더라도 3~4개월의 유예기간을 두되, 엄격한 구직 활동과 직업훈련을 전제로 실업급여를 제한적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가령 영국 1~12주, 일본 3개월, 스위스 6~12주, 독일 12주, 프랑스 4개월, 덴마크 5주 등이 그 예다(천웅소, 「<고용보험법> 개정: 고용보험 확대 및 구직촉진수당 도입」, 『월간 복지동향』 제155호, 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 2011. 9, 10쪽). 우리도 일정 유예기간을 두고 지급하거나, 비자발적 이직자보다는 낮은 수준의 구직급여를 지급하는 방식 등으로 자발적 이직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3. 수급액과 수급기간의 문제

구직급여의 수급액이 적고 수급기간이 단기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용 유연화가 심화되는 추세와 연동하여 실업급여가 확대되지 않은 문제가 누적된 것으로 보인다. 윤진호 인하대 교수가 덴마크와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과 소득안정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수준을 비교·분석한 결과 한국과 덴마크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소득안정성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지수는 큰 차이가 난다는 연구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 소득안정성을 살펴보면 덴마크(78%)와 달리 한국의 실업급여 수급자의 소득대체율은 43%에 그치며 평균 수급기간도 4개월에 불과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실업급여 지출액의 비중도 0.24%로 덴마크(2.66%)의 10분의 1 수준이다(한겨레, “한국 고용엔 ‘유연성’만 있고 ‘안정성’은 없다”, 2009. 9. 1.). 실업은 쉽고 취업은 어려운 구조에서 구직급여의 수급액이나 수급기간의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고용보험은 고용노동부장관이 관장하면서도(고용보험법 제3조), 국가의 부담분이 전체 기금운영비의 0.11%에 불과한 것은 국가의 법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OECD의 2011년 고용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2009년 기준)은 비교대상 31개국 중 꼴찌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의 실업 후 5년 간 평균 소득대체율은 6.6%로 OECD 평균(29.9%)의 1/4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용보험 확대 및 실업부조 도입 연대회의, 「OECD, 2011년 고용전망 보고서에 대한 논평」, 2011. 9. 16.). 이와 더불어 수급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수급기간마저도 짧다는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이처럼 현행 고용보험 제도는 수급요건을 엄격히 함으로써 사회보장이 필요한 모든 국민에게 위험을 경감시켜주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 보편성 측면에서 취약하다. 또한 이렇게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실업급여의 액수나 기간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수준으로 보장된다고 보기는 힘들어 적절성 측면에서도 취약하다. 보편성과 적절성을 갖추지 못한 고용보험 제도의 대대적인 개정이 요청된다.

 

Ⅲ. ‘적직(適職)을 선택할 자유’의 보장하는 고용보험

고용보험법은 단순히 구직 활동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적성 및 능력에 상응하는 직업을 수행하는 상태를 보호”하는 쪽으로 설계해야 한다(전광석, 『한국사회보장법론』, 2010, 452쪽). 즉 실업 예방, 고용 촉진, 실업자의 생활안정, 구직 활동 촉진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에만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일생에서 적합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방편으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헌법에서 말하는 ‘근로’는 ‘인간의 존엄에 걸맞은 일정 수준 이상의 조건이 구비된 근로’이어야 할 것이고 동시에 ‘근로자의 능력과 의사에 부합하는 근로’일 것이 요구된다고 하면서 ‘적직(適職)’이라는 개념에 동감한다(노호창, 「헌법상 근로권의 내용과 성격에 대한 재해석」, 『노동법연구』 제30호, 서울대학교 노동법연구회, 2011, 133쪽).


청년층이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활발하게 구직 활동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권장할 일이다. 청년층의 이직률이 높은 것은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현상으로 청년층이 왕성하게 직업을 탐색하는 행태에 기인한다. 특히 생애 첫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에게는 적직을 선택할 자유를 보장할 필요성이 크다. 적직에 대한 사회제도적 지원은 다양한 종류의 능력이 존중받고, 청년층이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고용보험법이 ‘방황할 시간’ 같은 여유를 용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종신고용이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한다는 개념이라면 평생고용은 직장을 몇 번 옮기더라도 일할 나이까지는 계속 밥벌이를 해나갈 수 있다는 개념이다.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시대가 지났더라도 평생고용을 달성하는 사회는 만들어 내야한다. 평생고용을 위해서는 청년층에게 적직을 선택할 기회를 부여하고, 생애주기에 걸쳐 다양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적직을 선택하기 위하여 일정 기간 ‘자발적으로 이직할 권리’를 인정할 것을 주장한다. 현행 고용보험법의 틀을 유지하더라도 생애 첫 직장을 찾는 청년층에게 한시적인 특권(!)을 부여해줄 필요가 있으며, 적합한/적정한 직장을 찾기 위한 투자를 장려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고용 촉진이 될 것이다.


 

Ⅳ. 대학 등록금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사회보장으로서의 등록금

사실 적직을 선택하는 제약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상당수의 청년들이 대학 재학 중에 진 학자금 빚 등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한 빨리 소득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조급하게 취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 직장을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출발함으로써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층 고용 문제는 대학 등록금과 밀접하게 연관 지어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학진학률이 80%가 넘고 대학생이 300여만 명인 한국 사회에서 청년층에 대한 사회보장을 설계할 때는 대학 등록금과 연계하여 고려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의미의 반값 등록금은 국가의 부담을 늘리면서도 학생 관련 예산이나 시설 예산이 급격한 감소를 맞지 않거나, 부수적으로 학생이나 학교의 이해관계인들에 대한 부담은 늘리지 않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2011년 11월 13일 서울시립대학교가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행정사무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립대 재학생 10,118명중 2,575명이 학자금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학부생 2,123명, 대학원생 452명). 이는 2009년 대비 4.9%(314명)로 상승한 것이다. 국공립대학교 중에서도 등록금이 저렴한 서울시립대학교의 경우에도 학생 4명 중 1명 이상이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있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이 사회문제로 대두할 수밖에 없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시민일보, “서울시립대생, 10명중 3명 학자금 대출”, 2011. 11. 14.).


대학 등록금의 인상률이 높았던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개인이 부담하는데 한계가 봉착했기 때문에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등록금 문제는 협의의 사회보장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머잖아 사회보장의 영역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을 통한 재분배 기능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대학 등록금의 인하는 사회보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학생의 대다수를 차지할 20대 초중반의 청년층에게 국가가 해줄 수 있는 대표적인 정책과제로 설정해볼만 하다.


 2. 등록금 이슈를 넘어

고용보험이 20대 후반의 문제라면, 대학 등록금은 20대 초중반의 문제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실업급여도 무한정 늘릴 수 없듯이, 등록금도 무한정 낮출 수는 없다고 본다. 고용보험 같은 사회보험조차 제 기능을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반값이나 무상이라는 구호는 다소 공허하게 들리며 사회보장의 확대 단계에서 비약이 느껴지기도 한다. 반값 등록금이나 무상 교육에 대한 담론들은 공적 부조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만큼 재정 투입의 우선순위에 대한 면밀한 고려가 필요하다.


대학 등록금 인하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려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20%의 고졸자를 생각해야 한다. 대학 진학자보다 일찍 취업전선에 뛰어든 고졸자를 위해 구직 활동 지원을 마련하는 것이 한 예다. 또한 고학력화로 인해 대졸자뿐만 아니라 석․박사 학위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는 점도 또 다른 검토 대상이다. 대학생의 생활과 실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책들이 개발되고 있는 반면 대학원생의 생활이나 실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결력과 교섭력이 약한 대학원생의 경우 등록금 문제의 사각지대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에 의하면 석․박사 학위 취득자 규모가 2000년 53천 명에서 2005년 77천 명, 2009년 86천 명으로 지난 9년간 약 60% 이상 증가하였고, 학부 졸업생 대비 석사 졸업생의 비율도 1990년 11.9%, 2000년 22.0%, 2005년 25.5%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일반대학원 졸업생의 정규직 취업률이 62.8%(2006)→61.0%(2007)→60.5%(2008)→54.0%(2009)으로 매년 감소 추세에 있으며, 일반대학원 졸업생의 전체 취업률도 81.9%(2006)→81.7%(2007)→81.6%(2008)→79.9%(2009)로 매년 꾸준히 감소 추세에 있다. 반면에, 일반대학원 졸업생의 비정규직 취업률은 14.8%(2006)→15.8%(2007)→16.8%(2008)→21.5%(2009)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박상현․송창용, 「석박사 고급인력의 취업실태 분석 및 정책과제」, 『한국고용정보원 연구보고서』 2010. 3. 11, 1쪽).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수익자 부담 원칙이 강화되는 것은 수긍할 수 있지만, 등록금 인상 억제나 장학금 확충을 위해 고등교육법 제7조 제1항 소정의 국가의 재정 부담을 늘리는 것 또한 교육의 공공성과 평생교육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대학생, 대학원생에게는 등록금 인하나 인상률 억제만큼 훌륭한 사회보장을 찾기 어려운 만큼 복잡하게 생각할 여지도 없다고 하겠다. 다만, 등록금 부담 경감의 혜택을 일정 기간만 지급하여 5학년으로 대표되는 만년 대학생의 문제를 예방할 필요도 있다.


2011년 11월 경기도교육청과 경기도의회가 고등학교 의무교육에 대한 논의가 오갔듯이 청년층 사회보장과 관련해서는 고등학교 의무교육까지 병행해서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 교육을 사회보장의 영역으로 포섭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의무교육은 간과할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반값 등록금에 매몰되기 보다는 “고등학교 의무교육-고졸자 취업 추가 지원-대학 등록금 부담 경감-대학원(전업학생 위주) 지원방안 모색”이라는 일련의 틀에서 접근하는 것이 좀 더 합의 가능한 대안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Ⅴ. 두 가지 제안 - 청년수당과 등록금 부담 경감

청년층에게 고용과 관련해서 세 번 정도의 청년수당을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정책화 단계에서는 시기와 횟수를 적절하게 조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고졸자가 구직 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열악한 지위를 감안하여 교육훈련을 지원하거나 급여의 횟수를 추가로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그간 교육과학기술부 등에서 미취업 대학 졸업생 지원 프로그램으로 채용지원과 교육훈련 지원 사업이 시행된 바가 있으나 체감 효과가 크지 않았다. 차라리 현금 급여를 통해 국가의 보장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어 수급한 청년층에게 적직을 선택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심어주고, 좀 더 의욕적으로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적절하다.


청년수당으로 명명하기는 했지만 독창적인 개념은 아니고 고용보험기금이나 별도의 재정을 통해서 세 번째 직장을 잡을 때까지는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구직급여나 구직촉진수당 등을 수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자는 정도의 내용이다. 첫 직장을 잡을 때나 이직을 할 때 경제적 사정에 쫓기지 않고 직업 탐색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부여함으로써 적직을 선택할 자유를 간접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취업과 이직의 공포를 경감해줌으로써 청년층이 좀 더 숙고하여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탐색할 기회를 열어준다면 오히려 이직을 줄일 수도 있고, 직업 만족도는 높일 수 있다.


기존 실업급여 체계와의 충돌이 우려된다면 현재는 구직급여의 수급대상이 아닌 첫 번째 직장을 얻을 때까지의 기간과 비자발적 이직으로 인한 실업에 대한 급여수준을 현행 구직급여보다 낮은 수준으로 지급하는 방안으로 디자인하면 될 것이다. 청년수당은 실업급여 확장이나 실업부조 도입을 통해 적직을 위한 구직 활동을 단념하지 않도록 유도하여 실망 실업자 등의 비경제활동인구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세 가지 사유를 개선하여 청년층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에게 고용안전망을 두텁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우선 타협 가능하고 단기적으로 시급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청년수당이라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보았다.


청년층의 사회보장과 관련해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고, 결국 일정 부분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만 실현 가능한 주장들이 대부분이다. 복지국가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재분재의 역설(paradox of redistribution)’이라는 가설이 시사점을 준다. 이는 가난한 계층에게 선별적으로 복지를 시행할수록 재분배효과가 나빠지고, 중산층을 포함하여 보편적으로 복지를 시행할수록 재분배 효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중산층을 포함한 보편 복지를 시행하면 중산층이 증세에 찬성하여 복지 규모가 늘어나고, 선별 복지를 시행하면 중산층이 증세에 반대하여 복지 규모가 작아지기 때문에 이런 역설이 발생한다고 한다(강남훈, 「반값 등록금과 대학개혁」, 『내일을 여는 역사』 제44호 2011. 9, 95쪽). 한국 정치 현실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가설을 응용하자면 청년층은 담세능력이 낮으므로 주된 납세자 계층이 증세에 동의하려면 복지의 혜택이 가급적 고르게 전달되어야 설득력을 높일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청년층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대학생 집단이 반값 등록금의 가치를 다양한 방식의 사회보장으로 구현하는데 얼마나 관심을 보여줄 지가 관건이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 고등학생이며, 졸업반 때는 취업을 준비해야 하며, 대학원으로 진학할 수도 있는 만큼 위험부담을 분산하는데 인색하지는 않을 것이라 낙관적으로 예상해본다.


구직 활동을 하는 청년에게는 청년수당을, 학교 진학을 한 청년에게는 등록금 부담 경감이라는 두 가지 사회보장만으로도 청년층의 위험부담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국가는 고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단계별로 적정한 보장을 안분함으로써 수혜자의 범위를 꾸준히 유지하도록 하여 각계각층의 국민의 여론을 형성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비용 추계를 통한 재원 조달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 청년층의 사회보장과 관련해 유력한 대안들은 이미 많이 제시된 만큼 이제는 구체적인 실천에 옮겨야 할 때다..

 

Ⅵ. 입법 수요에 대응하는 사회보장

청년층을 조망한 사회보장 가운데 청년수당과 등록금 문제만을 살펴보았는데도 복잡한 변수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미시경제학 용어를 빌리자면 일반균형분석(general equilibrium analysis)의 관점에서 어느 한 사회보장제도의 개편으로 인해 다른 영역의 사회보장에 미칠 파급효과와 상호작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이 앞으로 좀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기조가 국민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때인 만큼 정책결정자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다양한 계층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를 하려는 태도를 연마하면 좋겠다.


사회보장법 영역에 대한 입법 수요는 폭증하고 있고 여느 법령에 비해 빈번하게 제․개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열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보장법에 대한 광범위한 입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비교법적인 고찰이나 최신 통계 수치, 국민 여론의 동향에 대한 자료의 축적이 필수적이다. 사회보장을 둘러싼 사안이 터질 때마다 각자의 ‘해석’이나 ‘의견’만을 내세워 갈등을 증폭하기 전에 차분히 ‘사실’을 축적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 [無棄]


Posted by 익구
:

행정소송법 개정안 검토

2011. 12. 21. 18:49 |

대법원, 법무부의 행정소송법 개정안 가운데 원고적격과 대상적격의 확대에 대해서만 공부한 잡글입니다.

 Ⅰ. 원고적격 확대에 대한 탐구

  1. 판례의 원고적격 확대 경향

  대법원의 개정안에 따르면 현재의 판례는 원고적격에 관한 현행법상의 ‘법률상 이익’을 “당해 처분의 근거법규에 의하여 보호되고 있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이라고 해석해 국민이 권익구제를 받을 수 있는 폭이 너무 좁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고 판례의 태도를 정리하고 있다. 대법원은 새만금사업 등과 관련한 판례에서 근거 법규뿐만 아니라 관련 법규에 보호되는 이익도 원고적격에 포함하고, 지리적인 영향권 밖의 주민들도 환경상 이익에 대한 침해나 침해 우려를 입증하면 원고적격이 인정된다고 보아 항고소송의 원고적격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대법원 개정안의 판례 해설과는 다소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행정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라 하더라도 당해 행정처분으로 인하여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을 침해당한 경우에는 그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그 당부의 판단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할 것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라 함은 당해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에 의하여 보호되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이 있는 경우를 말하고, 공익보호의 결과로 국민 일반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일반적·간접적·추상적 이익이 생기는 경우에는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있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6.3.16. 선고 2006두330 전원합의체 판결).


  이 때문에 판례의 해석을 통해 원고적격을 확대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법무부 개정안 논의에서 원고적격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많았음에도 현행 규정을 유지한 것도 이런 견해의 연장선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 개정안은 결과적으로 원고적격 확대의 방법론에 있어서 판례를 통한 점진적 확대 쪽을 선호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객관소송적 기능을 하는 단체소송과 같은 공익소송이나 정보공개청구소송과 같은 유형에 대한 원고적격이 개별 입법에 의하여 도입되는 방식을 원고적격에 대한 일반적 규정의 개정을 통해 판례의 해석을 기다리는 방식보다 선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있다(이희정, 「行政訴訟法 改正(案) 중『原告適格』에 관하여」, 『고시계』 제52권 제12호 (통권 610호), 고시계사, 2007. 11, 33면).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우회적이어서 국민의 권리구제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려는 행정소송법 개정 의도와는 부합하지 않으며, 행정청의 부담이 가중될 것을 우려해 원고적격의 점진적 확대를 고안한 것이라 판단된다.


  2. 원고적격 확대 입법의 필요성

  판례가 개별적 사안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검토함으로써 원고적격을 확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법률상 이익’이 ‘권리’보다는 넓은 개념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리 해석의 원칙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행정재판실무상 ‘당해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에 의하여 보호되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을 갖추는 것이 까다롭다는 지적도 적잖았다. 판례의 태도는 원고적격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 이에 대판 비판이 계속 제기되었고, 입법론이 추진된 것임을 상기할 때 법원의 해석을 통한 원고적격 확대에 기대기보다는 입법을 통해 해결함이 바람직하다.


  대법원 개정안의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이 있는 경우에 항고소송의 원고적격을 인정할 경우 처분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힘든 명예ㆍ신용회복, 헌법상 기본권 등 일반적 법규에 의하여 간접적으로 보호되는 정당한 이익이 있는 경우 등에도 원고적격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어 국민의 권리구제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법적으로’라는 문구를 붙인 것도 사실상 이익이나 반사적 이익이 포함되지 않음을 명확히 했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방점은 ‘정당한 이익’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법원 개정안은 주관소송과 객관소송이 절충된 항고소송의 성격과 현행 행정소송법 해석의 다수 견해인 법률상 보호이익설보다 원고적격을 확대하려는 취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보호가치 이익설(소송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구제설)’에 가까운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고적격의 문제는 소송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소송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본안의 판단까지 갈 수 없도록 막는 것은 국민의 권리구제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행정법상 권리구제는 반드시 행정쟁송을 통해 승소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송법상 기각과 각하가 준별되는 만큼 행정청을 상대로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권리구제에 어느 정도 이바지하는 바가 있으며, 현대 행정에서 원고적격이 모호한 경우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본안판단까지 해서 이익의 침해 여부를 따져야 할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본안전판단에서 미리 이익 침해가 있느냐 없느냐를 다 확정하게 되면 본안판단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장경원, 「환경행정소송(環境行政訴訟)과 제3자의 원고적격(原告適格) -대법원 2010. 4. 15. 선고 2007두16127 판결을 중심으로」, 『환경법연구』 제33권 2호, 한국환경법학회, 2010, 374면).


  이런 맥락에서 대법원 개정안은 원고적격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본안판단까지 가서 이익의 침해를 판단할 기회를 넓혔다는 점에서 타당하다. 다만, 정당한 이익 개념은 법률상 이익보다는 넓은 개념으로서 어디까지 확대된 것인지에 대한 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현행 판례 이론의 ‘개별적·직접적·구체적’이라는 기준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원고적격 확대의 입법 취지는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행정청(피고)의 이익으로’ 해석하던 관행을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국민(원고)의 이익으로’ 해석하는 전환점을 마련해줄 것이다.


Ⅱ. 대상적격 확대에 대한 탐구

  1. 새로운 행정행위 개념의 적절성 검토

  대법원의 개정안에 따르면 현행법의 ‘처분’은 “행정청의 공법상 행위로서 국민의 법률상 지위에 직접적인 법률적 변동을 일으키는 행위”라고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국민의 법률상 지위에 직접적으로 ‘사실상’의 영향을 미치는 공권력행사에 대하여는 항고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난점을 해소하기 위해 협의의 처분인 강학상 행정행위뿐만 아니라 사실행위, 법규명령을 항고소송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대법원 개정안 해설에는 권력적 사실행위만을 열거하고 있지만, 비권력적 사실행위의 상당수도 포함된다고 해석해야 법 개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판례는 처분적 조례나 처분적 고시 같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권력적 사실행위나 대부분의 처분적 행정입법에 대하여 처분성을 부인해왔다. 대상적격 확대 문제도 원고적격 확대와 마찬가지로 기존 법문의 해석을 통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 법무부 개정안도 현행 조문을 유지함으로써 이런 입장에 서있는 것을 보인다. 하지만 현행 행정소송법 제2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못하다.


  대법원 개정안은 다양한 행정작용을 항고소송의 대상으로 포착하기 위해 현행 ‘처분’ 개념 대신 ‘행정행위’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행정청이 행하는 법적․사실적 행위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라는 개념 정의는 강학상 행정행위 개념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용어로서 학계의 많은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실체법상 행정행위와 소송법상 행정행위 개념이 분리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행위등’이라는 용어를 관철하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 용어 정의에 있어서는 좀 더 정제된 표현이 요구된다. 차라리 ‘행정행위, 사실행위, 법규명령 등’이라고 풀어서 서술하는 것이 어떨까 싶기도 하다.


 2. 법규명령에 대한 항고소송의 문제

  특히 현행 조문에서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이라는 요건을 삭제함으로서 ‘행정행위등’에 집행행위 외에도 입법행위도 포함하도록 한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즉 행정입법인 ‘명령등’에 대한 항고소송을 인정한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 개정안 해설은 집행행위에 대한 항고소송의 제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법규명령 등에 대한 권리구제 폭을 넓혔다고 평가한다. 이에 따르면 법규명령 그 자체로서 직접 국민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처분법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행정행위등에 포섭되는 법규명령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법규명령에 대한 항고소송을 인정하면 법규명령에 대한 헌법소원은 불가능하게 된다는 견해도 있지만, 대법원 개정안에 따라 헌법소원의 대상은 줄어들더라도 권리구제의 공백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항고소송보다 객관소송 성격이 강한 헌법소원의 영역이 일정 부분 남아 있으며, 헌법소원에서는 항고소송에서 보다 청구인적격(직접성, 현재성)과 권리보호의 이익이 보다 넓게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박균성, 「處分과 命令에 대한 抗告訴訟」, 『고시계』 제52권 제11호 (통권609호), 고시계사, 2007. 10, 22면). 항고소송과 헌법소원의 상충 문제 때문에 어느 기관이 법규명령에 대한 심사에 적합하냐는 논의도 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서 배제하는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입법하여 위헌 논란을 비롯한 부수적인 논쟁들을 정리하기를 희망한다.


  법규명령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하고 나서 다시 원고적격이나 소의 이익 등을 통해 다툼을 차단한다면 행정소송제도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홍준형, 「행정소송법 개정의 내용과 방향」, 『월간 법제』 2005년 10월호, 법제처, 2005. 10.). 이와 더불어 행정입법의 제․개정 과정에서 절차적인 통제를 통해 사전적인 권리구제가 좀 더 강화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법규명령에 대해서도 의무이행소송이 가능한 것은 입법 형성의 자유를 훼손할 여지가 있으며 권력분립에 반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별도의 소송 형태를 고안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대법원 개정안이 ‘명령등의 취소소송의 특례’를 신설하여 법규명령의 특수성을 감안한 자세를 의무이행소송에서도 견지할 필요가 있다.


Ⅲ. 결어

  대법원 개정안의 원고적격 확대는 용어상의 다툼이 있겠으나 대체적인 취지에 동감하며 복잡다기한 행정현실을 반영한 타당한 입법이라고 생각한다. 대상적격을 확대하기 위해 소송법상 행정행위 개념을 창설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사실행위를 포함한 것은 적절한 입법이며 특히 실질을 반영해 행정지도와 같은 비권력적 사실행위에 대해서도 다툴 수 있도록 한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법규명령을 행정소송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는 의견의 대립이 심하고 부수적인 문제가 결부된 만큼, 장기간 계류 중인 행정소송법 개정의 통과를 위해 현시점에서는 보류하거나 적어도 의무이행소송에서는 제외할 것을 제안한다. 행정행위(협의의 처분)와 사실행위라는 ‘한 지붕 두 가족’으로도 국민의 권리구제는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본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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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37조 제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한수웅, 「헌법 제37조 제2항의 過剩禁止原則의 意味와 適用範圍」, 『저스티스』 통권 제95호, 한국법학원, 2006, 5~28쪽
을 읽고

 

  논문의 저자는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을 자유권과 본질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하는 참정권, 청구권적 기본권, 사회적 기본권 등에도 그 적용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헌법 이전에 존재하는 보호범위를 가지는 기본권만이 제한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과잉금지원칙은 특정한 보호범위를 가진 기본권인 자유권에 적용된다는 견해이다(15쪽).


  특정한 보호범위가 없이 법률에 의하여 비로소 구체적 내용이 형성되는 기본권의 경우는 입법자가 입법형성권을 제대로 행사했는지의 문제, 입법자에 의한 구체적인 형성이 헌법상 부여된 형성권의 범위를 일탈하였는지에 대한 심사의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16쪽). 제37조 제2항의 일반적 법률유보조항과 기본권 형성적 법률유보의 독자적인 법률유보조항의 차이에 주안점을 두는 저자의 견해는 기본권 침해에 대한 좀 더 실천적인 심사기준을 제시해준다.


  개별 기본권의 특성에 맞춘 고찰이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을 조세에 관한 입법의 영역으로 확장해보겠다. 헌법 제38조에서 규정하는 납세의 의무는 국가의 존속과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를 충당하는 목적 외에도 각종 정책수단으로서 이용된다. 납세의 의무에서 기초한 조세의 부과와 징수는 원칙적으로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세법률주의에 위반한 과세권 남용이 발생하는 경우 합리적 이유의 유무를 따지는 자의금지원칙으로 기본권 침해를 심사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정책수단으로서의 조세는 처음부터 정당화할 이유가 요청된다. 정당화할 이유가 결여된다면 기본권의 침해 여부를 다툴 수 있음은 분명하다. 이런 경우의 조세입법에서도 과잉금지원칙을 적용한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가 문제된다.


  헌법 제23조 제1항이 규정하는 재산권은 다른 자유권과는 달리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한계뿐만 아니라 내용까지도 법률로 정하도록 한 취지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입법형성의 자유를 비교적 넓게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신적 자유나 신체적 자유에 비해 경제적 자유에 대한 입법을 할 때 과잉금지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이유이다.


  저자의 논지를 유추적용해볼 때 정책수단으로서의 조세의 경우에도 과잉금지원칙을 적용해 침해의 최소성이나 법익의 균형성까지 심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입법자 스스로가 입법과정에서 과잉금지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권장할 만하다. 과잉금지를 할 의무는 가장 먼저 입법부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입법 형성권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입법과정의 감시와 통제 같은 사전적 통제를 좀 더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국세기본법과 관련한 결정에서 “국회의 입법활동에 있어서 재산권 기타 경제적 활동의 자유규제는 다른 정신적 자유규제의 경우에 비하여 보다 넓은 입법재량권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재산권이라 할지라도 그 본질적인 내용이 침해될 수 없음은 물론 과잉금지원칙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도 아님은 앞에서 살펴본 바이다”라고 판시하며 과잉금지원칙의 위배 여부를 검토했다(헌재 1990.9.3, 89헌가95 결정). 또한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한 결정에서 다수의견은 종합부동산세법의 세대별 합산과세 규정에 대하여 입법목적의 정당성은 인정하면서도 차별취급의 적합성, 필요성 및 법익의 균형성 등 과잉금지원칙 위배를 이유로 위헌결정을 내렸다(헌재 2008.11.13. 2006헌바112등 결정).


  그러나 과잉금지원칙이 재산권과 관련한 위헌심사의 기준으로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나 수단의 최소침해성은 매우 엄격한 심사기준이다. 헌법이 입법자에게 부여한 입법재량을 오로지 최소한의 침해가 있는 수단으로 선택하게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며, 사법부의 통제가 빈번해짐에 따라 입법에 부여한 재량을 사법부가 헌법적 요청을 넘어서서 제약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 최소침해성은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사안에 따라 ‘비례적으로(!)’ 완화한 잣대를 제시할 실익이 있다. 이런 입장에서 제37조 제2항의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라는 문언을 반드시 “최소한으로”라고 해석하기보다는 경우에 따라 “상당히 필요한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다.


  이와 같이 이중기준 이론 등에 입각해 완화한 과잉금지원칙을 주장하는 견해에서는 채택한 수단이 입법목적과 ‘실질적으로 연관되는’(substantially related) 정도의 기준을 제시한다(이명웅, 「비례의 원칙의 2단계 심사론」, 『헌법논총』 제15집, 헌법재판소, 2004, 509-544쪽 참조). 엄격한 의미에서의 피해의 최소성과 단순히 자의성 여부만을 따지는 자의금지원칙 사이의 중간영역을 개척하려는 시도는 좀 더 현실적이고 다양한 사법심사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찬동한다.


  헌재는 상업광고 규제에 관한 심사에서 “‘피해의 최소성’ 원칙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달리 덜 제약적인 수단이 없을 것인지 혹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제한인지를 심사하기 보다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의 것인지’를 심사하는 정도로 완화되는 것이 상당하다(헌재 2005.10.27, 2003헌가3 결정)”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사회경제적 입법에 대해서 완화한 심사기준을 적용하는 고민은 앞으로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과잉금지원칙을 무조건 확대 적용하는 것은 입법 형성의 자유를 둔 취지를 몰각시킴으로써 기본권 실현을 오히려 요원하게 만든다. 따라서 기본권 실현을 위한 입법에 있어서는 중대한 제한인 경우와 보통의(통상적인) 제한인 경우를 나누어 심사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행 헌법의 해석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언론의 자유의 내용 그 자체에 대한 규제는 엄격한 심사척도를 적용해야 한다. 반면 언론의 자유의 내용 이외의 사항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는 완화된 심사척도에 의하더라도 무방하다고 할 것이다. 언론의 자유의 내용이라고 보기 힘든 언론 독과점을 막기 위한 언론기업 경영의 자유에 대한 합헌성 심사는 완화한 과잉금지원칙으로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미흡한 점은 입법부가 보완하도록 하는 것이 권력분립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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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魯肅)과 민주당

사회 2011. 4. 30. 03:20 |

중국 삼국시대의 노숙(魯肅)은 강동의 인재 가운데 원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던 돋보이는 영걸이었다. 229년 손권이 제위에 오르면서 노숙은 일찍이 자신이 제위에 오를 것이라 말했다면서 그의 형세를 보는 안목을 칭찬했다. 노숙은 손권을 처음 만났을 때 “한실은 다시 일어날 수 없고 조조는 쉽게 제거될 수 없다(漢室不可復興 曹操不可卒除)”라는 정세 파악 위에 유표의 형주를 빼앗고 장강 상류에 있는 익주를 점령할 것을 진언한다. 장강 유역을 차지해 제왕이라 일컬으며 천하 통일을 꾀해야 한다는 웅대한 책략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표가 죽었을 때도 노숙은 유비-조조 연합이 성립할 가능성을 계산하고 이를 막기 위해 손권-유비 연합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결국 그는 적벽대전의 숨은 주역으로 활약했다. 유비 세력과의 동맹을 성사해 조조 세력을 견제하는데 진력한 것은 오늘날 한국 야당들의 연합정치를 연상하게 만든다. 민주당을 이익을 위해서라도 한 뼘의 땅도 없는 집단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분은 찾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진수의 『삼국지』 오서(吳書) 여몽전을 보면 손권이 노숙을 평하며 “한 가지 단점이 두 가지 장점을 손상하기 부족했다(不足以損其二長也)”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첫 번째 장점은 정사의 핵심과 제왕의 공업을 언급한 것이고, 두 번째 장점은 조조가 형주를 손에 넣고 강동으로 남하하려 할 때 결연히 조조와 맞설 것을 주장한 것이다. 한 가지 단점은 유비에게 땅을 빌려줘서 형주를 차지하게 만든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단점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적벽대전 이후 형주의 영유권을 놓고 손권과 유비가 대립각을 세울 때도 노숙은 정족지세(鼎族之勢)를 위해서는 유비에게 양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주유는 이런 양보에 반대했고, 양측의 세력을 비교할 때 손권이 형주를 탈환할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였다. 그럼에도 노숙은 자기들의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지 않고 냉철하게 순망치한(脣亡齒寒)을 계산했다.
 

당시 손권은 강동의 6개 군과 10만 명의 병사가 있었다면, 유비는 1개 군에 2만 명의 병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나마 유표의 장남 유기의 1만 명을 합산한 숫자이고,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관우의 수군인 1만 명이 유비 진영 군세의 전부였다. 4․27 재보선에서 승리한 제1야당이 자신들의 우위를 얼마나 절제할지 두고 볼 일이다. 지금의 민주당과 작은 야당들 사이는 손권과 유비의 세력 차이보다 더 크기 때문에 절제하기는 쉽지 않을 듯싶다.


노숙의 뒤를 이은 여몽은 유비와의 우호 관계를 정리할 것을 추진한다. 조조의 영토인 서주를 공략할 지를 고민하는 손권에게 관우가 있는 형주를 취할 것을 건의하기도 한다. 결국 촉과 오는 관우의 죽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양국의 국력을 상당 부분 소모하게 되었다. 물론 국력이 약했던 촉한이 먼저 망하고, 오는 삼국 중에서 가장 오래 존속했다. 조조와의 일전보다는 형주 경략을 통해 국력을 확충하려 했던 여몽의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숙이 기획했던 대로 오-촉 연대가 좀 더 굳건했다면 오나라는 좀 더 큰 꿈을 꿀 수 있지 않았을까? 천하통일이라는 게 말은 쉽지만 민초의 피와 땀으로 이룩하는 것이니 1800년 뒤의 사람이 함부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다. 앞으로의 야권 연대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내어 놓아야 하면서도 가장 얻을 것이 많을 제1야당을 오나라로 억지로 비유해보자. 민주당에 노숙과 같은 마음이 좀 더 늘었으면 좋겠다.


여하간 손권은 평가를 이어가며 “주공(周公)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갖추기를 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단점을 잊고 장점을 귀하게 여기면서 늘 등우(鄧禹)에 견주려고 했다(周公不求備於一人 故孤忘其短而貴其長 常以比方鄧禹也)”라고 말한다(등우는 후한(後漢)의 광무제를 도운 명신이다). 야권에서는 툭하면 인물난을 호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당 지지자들은 서로의 약점에 천착하기보다 강점을 도두보려는 노력을 나눌 필요가 있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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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16화에서 『대학』의 첫 구절을 가지고 시험문제를 푸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간 대학원에서 큰 배움의 의미를 별로 생각하지 못한 것 같은데 이런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생각이나마 끼적거려봅니다.
이 잡글을 언제나 저를 과대평가해주는 벗 홍군(http://sttora2.net)에게 헌정합니다.


<성균관 스캔들> 16화에서 이선준과 김윤식(김윤희)는 황감제(黃柑製)의 장원을 겨룹니다. 정조대왕은 “이 나라 관원의 백성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파자를 통해 밝히라. 단 파자의 원조는 예기 42편의 주희 해석본을 따른다”라는 문제를 출제합니다. 사실 장원전 문제로서는 난도가 현격히 떨어집니다. 『대학』 첫 구절에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에 본문의 첫 장만 보면 알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가장 기초이기 때문에 가장 어려울 수는 있지만요. 아니면 너무 앞부분이라 시험이 안 나올 것 같아서 공부를 게을리 할 수도 있겠고요.^^;


선준은 “사대부는 백성을 교화하고, 새롭게 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뜻으로 신민(新民)이라 답했고, 윤식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를 싫어한다”라고 하며 친민(親民)이라 답했습니다. 주희 해석본을 따른다는 문제의 단서조항 때문에 선준이 장원을 차지합니다(이 단서조항은 정답 시비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지요). 드라마가 유가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었던 개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부연설명이 부족해서 아쉬웠습니다. 마치 윤식이 공부를 덜해서 오답을 낸 것처럼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극중 인물인 정약용 선생이 그 뜻 역시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첨언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대학』 첫 문장에 나오는 경문(經文)인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에서 親民을 놓고 주희 선생과 왕수인 선생은 격돌합니다. 『예기』에 포함되어 있던 『대학』의 원문에는 親民으로 되어 있으나 주희 선생는 『대학』에 주석을 달면서 자신의 스승인 정이(程頤) 선생을 이어 받아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뜻의 新民이라 고쳐 풀었습니다. 경문을 해석해 놓은 『대학』 전문(傳文)의 구절들이 모두 親이 아닌 新으로 나와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주희 선생은 “신민이란 말은 전문을 살펴보면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新民云字 以傳文考之 則有據)”라고 말씀하십니다. 親과 新은 한 글자 차이지만 그 내용이 크게 달라집니다. 주희 선생은 “新은 옛 것을 바꾸는 것을 말하며, 스스로 명덕을 밝힌 후에는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쳐서 그들로 하여금 옛날에 물든 더러움을 제거하도록 하는 것이다(新者, 革其舊之謂也 言旣自明其明德 又當推以及人 使之亦有以去其舊染之汚也)”라고 풀이합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은 물론 백성을 뜻합니다. 新民은 사대부가 백성 위에서 일방적으로 교화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상하 신분 관계를 엄격히 하는 효과를 유발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경북대 중문과 이세동 교수는 “위대한 지도자는 단순히 백성을 사랑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백성을 도덕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적극적 실천을 강조”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왕수인 선생은 親民을 그대로 쓸 것을 주장합니다. 백성을 친근하게 한다는 뜻의 親民은 사대부와 백성이 같은 자리에 놓이게 됩니다.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며 이를 통해 교화뿐만 아니라 서로의 개성을 온전하게 길러주는 양육의 의미를 함께 보듬습니다. 양명의 심즉리설(心卽理說)과 치양지론(致良知論)이 외재적 규범이나 권위에 종속되지 않고 개인의 주체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과 상통합니다.


양명의 『전습록』에서는 “親民이라고 말하면 가르친다는 의미와 양육한다는 의미를 겸하게 되지만, 新民이라고 한다면 한 쪽에 치우친 감이 있다(說親民便是兼敎養意 說新民便覺偏了)”라며 新民이 ‘가르친다’에 경도되었음을 지적합니다. 또 “오직 밝은 덕을 밝히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親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곧 도가와 불가와 비슷하게 된다(只說明明德 而不說親民 便似老佛)”라고 강조하며 백성의 현실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유가의 특질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유가적 현실주의는 백성의 곤고함을 살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그의 견해에 동감합니다.


정인보 선생은 『양명학연론』에서 주희는 마음 밖에서 구하는 것이고, 왕수인은 마음속에서 찾아가는 것이라고 대별합니다. 주희처럼 해석하면 마음을 밝히는 일이 따로 있고 백성을 가르치는 일이 따로 있지만, 왕수인처럼 해석하면 백성을 친애함이 지극하지 않고서는 마음을 밝히는 일도 이루지 못하는 셈이라고 역설합니다. 두 분의 입장 차이를 나름대로 잘 짚어주고 있습니다.


이황 선생은 <전습록논변>에서 新民이 맞는다고 주장합니다. 즉 “新民은 자기가 배운 것을 미루어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그 덕을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가 모두 ‘학문과 교육(學)’의 뜻으로 일관되게 연결되어 있으니, 백성들을 ‘기르고(養), 친근히 한다(親)’는 뜻과는 처음부터 상관이 없다(在新民者 言推己學以及民 使之亦新其德也 二者皆帶學字意 作一串說 與養之親之之意 初不相涉)”라고 반박합니다. 퇴계가 이를 통해 백성을 수동적인 교화의 객체로 국한함으로써 신분 질서를 옹호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물론 앞서 살펴본 이세동 교수의 풀이를 좇으면 꼭 그렇게 볼 수만도 없겠지만요.


정제두 선생은 <대학설>에서 親民을 지지하면서 『대학』의 텍스트를 고찰해볼 때 親의 뜻으로 볼 수 있고, 新의 뜻이 아주 약간 등장하지만 근본과 말단의 형세일 뿐이라며 퇴계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립니다. 이에 반해 한원진 선생은 <경의기문록(經義記聞錄)>에서 新은 敎를, 親은 養이라고 보고 이 두 가지 사이의 경중을 논하면서, “敎는 養을 수반할 수 있지만, 養은 敎를 반드시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則敎者必能養 而養者未必敎也)”라며 결론적으로 퇴계의 손을 들어줍니다.


정약용 선생은 <대학공의>에서 親民을 수용하면서도 “親과 新의 두 글자는 형상이 이미 서로 가깝고 뜻이 서로 통하니, 친애하는 것이 새롭게 하는 것이다(則新新二字 形旣相近 義有相通 親之者新之也)”라며 두 해석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양명이 대학 공부를 한 사람의 마음이 온 세상 사람들을 품는 경지에 오르는 것을 親民으로 이해했다면, 다산은 백성들끼리 서로 화목하며 친애하는 것을 親民으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다산은 “백성이 서로 친애하면 백성은 곧 새롭게 되는 것이니, 어찌 꼭 한 획도 변함이 없어야만 이에 문장의 앞뒤가 서로 맞게 된다는 것인가(百姓相親 其民乃新 豈必一畫無變 乃爲照應乎)”라고 말씀합니다. 저도 역시 親民과 新民이 이렇게 대립해야 하는지 헛갈립니다. 親民 없는 新民은 맹목적이고, 新民 없는 親民은 공허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 親民과 新民을 따질 실익은 지도자가 백성과 너무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담담한 가르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 유학자인 이토 준사이가 新民을 지지한 것에 반해, 오규 소라이는 親民을 주창하는데 그 이유가 다소 이색적입니다. 즉 <대학해>에서 정이가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나라를 바꾸는 일인데, 『대학』은 수성하는 군주가 받드는 일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殊不知新民者革命之事 而大學者守成之君所奉也)”라며 정이가 新民으로 바꾼 것을 비판합니다. 新民은 혁명의 뜻이므로 지도자가 친애하는 모범을 보여서 수성을 꾀하도록 한 『대학』은 親民으로 봐야한다는 독창적인 견해입니다. 親民이 보수적이고 新民이 진보적인 함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조대왕은 『홍재전서』 <경사강의(經史講義)>에서 이 문제에 대한 고심을 보여줍니다. “대개 정이와 주희가 경문을 바꾸어 고치고 단연코 의심하지 않은 것은 그 이유가 두 가지이다. 하나는 親民이라고 하는 것은 글 뜻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치가 없고 新民이라고 해야 논리가 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新民이라고 하는 것은 전문을 가지고 살펴보건대 근거가 있고 親民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蓋程朱之改易經文。斷然不疑者。其說有二。一則曰親民云者。以文義推之則無理。而彼乃曰有理。一則曰新民云者。以傳文考之則有據。而彼乃曰無據)”라고 주자학파의 논거를 요약합니다. 그러면서도 주자학파의 논거인 전문에 등장하는 新民은 모두 스스로 새로워진다는 뜻이지, 지도자에 의해 새롭게 된다는 뜻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대학』 전문 제2장을 살펴보아야 이해가 되는 내용이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구일신(苟日新)의 新은 스스로 새로워지는 新이요, 작신민(作新民)의 新은 백성이 스스로 새로워지는 것이요, 기명유신(其命維新)의 新은 천명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세 문장에서 말한 新은 모두 新民의 新이 아닌데 어디에 그것이 新民을 해석한 뜻이 있는가? 전문 중에서 경문에 나오는 新자의 바른 해석을 지적한다면 마땅히 어느 곳에서 볼 수 있겠는가?
苟日新之新。自新之新也。作新民之新。民之自新也。其命維新之新。天命之新也。三節所言之新。皆非新民之新。則烏在其釋新民之義也。若就一章之中。指摘其經文新字之正解。則當於何處見得耶。
- 『홍재전서』 제70권 경사강의(經史講義) 7 대학(大學) 4 


이처럼 정조대왕이나 다산이 親民에 우호적인 생각을 품었더라도 실제 시험의 답은 드라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양명의 주장은 중국이나 일본에 견주어 조선에서 가장 심하게 이단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윤식이 오답 처리된 까닭입니다. 양명학이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던 조선 지성계의 편협함이 새삼 아쉽습니다. 주자학파와 양명학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저는 그래도 이 둘의 다름에 더 관심이 갑니다.


양명학은 주자학의 관념론적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직관을 긍정하고 실천을 중시했습니다. 둘레의 현실에 무심하지 않았던, 천하의 인심을 자신의 마음처럼 여겼던 양명의 정신을 곱씹습니다. ‘새롭게 만드는 사람’과 ‘새롭게 바뀌는 사람’의 구별이 없어지는 세상은 민주주의의 이념과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과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윤식 유생님~ 떨어져서 하는 말인데, 정말 잘했어요! - [無棄]


<참고 문헌>
금장태, 『도와 덕』, 이끌리오, 2004, 192-199쪽.
김기현, 『대학 - 진보의 동아시아적 의미』, 사계절, 2002, 100-114쪽.
김미영 역, 『대학·중용』, 홍익출판사, 2005, 36-38쪽.
김학주 역, 『신완역 전습록』, 명문당, 2005.
정인재, 한정길 역, 『전습록 1~2』, 청계, 2001.
홍원식, 이상호 역, 『양명학연론』, 한국국학진흥원, 2002, 55-56쪽.
김세진, 「「전습록논변」을 통해서 본 양명심학과 퇴계리학」, 제2회 강화 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한국양명학회, 2005.10), 405-436쪽.
안병걸, 「정조 어제조문의 경학관 -『경사강의』, 대학조문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1), 395-424쪽.
임옥균, 「주자와 일본 고학파의 『대학』 해석」, 『동양철학연구』(동양철학연구회, 2010.2), 303-334쪽.
황갑연, 최진덕, 「조선성리학자의 양명학 비판 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제3회 하곡학 국제학술대회(한국양명학회, 2006.11), 229-251쪽.


이 글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변명’ 시리즈 - “최도영을 위한 변명”(http://ikgu.com/entry/최도영을-위한-변명)

Posted by 익구
:

이창희, “조세법연구방법론”, 『서울대학교 법학』 제46권 제2호(통권 제135호),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2005, pp. 1~35를 읽고


  논문의 저자는 조세법의 연구방법론을 법해석론과 입법론으로 구분한다. 비교적 간명한 구분으로 이해하기 쉽다. 현행 조세법의 해석학에 매몰되지 말고 입법론까지 탐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수긍이 간다. 조세법 분야 역시 법제도 자체나 그 시행상의 효과와 문제점의 분석, 새로운 개선책 제시 등과 같은 입법적 문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조세를 정책수단으로서 활용하는 추세와 맞물려 입법과정에서부터 법률가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함은 적절한 제안이라 생각한다.


세법의 해석론

  저자는 세법이 형법의 해석에서 허용되는 정도의 확대해석을 금한다고 풀이할 길은 없다고 주장한다(14면). 세법에서 확대해석이나 유추적용을 허용할 수 없다는 논거로 판례와 학설이 들고 있는 조세법률주의를 여러 각도에서 비판한다. 세법에서는 오로지 엄격해석만이 인정된다는 식의 조세법률주의란 독일이나 미국에서는 없다는 논거를 든다. 세법에서 엄격해석만이 가능하다는 명제를 부인하는 저자의 논변에 비교적 수긍이 가지만 그 논거를 비교법적 고찰 외에도 다양하게 들 수 있겠다. 가령 한국의 경제발전 정도나 오늘날 행정의 사회국가적 요청 등에 따라 엄격해석만으로는 세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등의 논거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정당한 해석의 범위 안에서는 납세자에게 불리한 확대해석도 가능하다고 본다(16면). 확대해석 자체가 아니라 정당한 해석의 범위 안에 있는가 만이 문제될 뿐이라고 말한다. 세법은 침익적 행정이기 때문에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 강하다. 따라서 목적론적 해석이 허용되더라도 법문언의 내재적 의미 안에서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세법상 허용되는 해석에 의해서도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경우 납세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하기보다는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납세자의 이익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입법과정에부터 납세자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입법부의 ‘사전적’ 해석은 사법부의 ‘사후적’ 해석보다 갈등비용을 낮출 여지가 크다.


세법의 사법심사

  저자는 불확정한 개념으로 보이더라도 그 의미내용을 특정한 판결이 쌓여 있으면 이는 이미 불확정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불명확한 법률의 내용을 장차 판결로 구체화해나갈 수 있는가는 헌법재판소의 권한 범위 밖(27면)이라고 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에 따르면 대법원을 비롯한 일반법원의 판례는 불확정개념을 구체화하는 기능을 수행하지만 헌재는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저자는 어떤 세법이 효율적인가에 관한 입법부나 행정부의 정책적 판단은 사법심사의 대상으로서 사실판단이라고 본다. 사실판단의 문제는 법관의 고유영역에 속한다고 보면서도 헌재의 역할에 부정적인 것은 헌재 결정의 파급효가 가장 심대한데 비해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다소 의아한 헌재 결정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세법의 위임사항이 행정입법에 정확히 반영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헌법 위반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며, 헌재 역시 입법재량에 대한 통제를 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2010년 개정된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법재판에 대한 중장기적이고 집중적인 연구 수행과 헌법연구관 및 사무처 공무원 등의 교육을 위하여 헌재 산하에 헌법재판연구원을 설립하는 등 헌재의 전문성을 제고하려는 노력도 있는 만큼 사실판단의 문제에서 헌재를 배제하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효율성의 심사는 법관의 권한에 속한다고 보는 것은 법관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나온 결론이다. 저자는 법관 스스로의 사실판단에 확신이 없는 경우라면 법원은 당연히 효율에 관한 사법적 판단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1면). 전문성이 없는 법관이 입법부나 행정부의 판단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는 결국 조세문제에 대한 판단에서 전문성이 중요한 척도임을 의미한다. 조세분야에서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점은 동감한다. 하지만 전문성이 있는 법관에게 강한 사법재량을 부여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법철학자 허버트 하트는 법관이 사법재량을 행사를 통해 규칙 창설적, 입법적 행위에 종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저자의 주장은 이와 유사하다. 그러나 법관은 선출된 기관이 아니며, 조세입법 역시 여느 입법처럼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타협하고 조정한 산물로서 존중해야 한다. 전문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관이 재량을 행사해 법률을 수정하거나 창설해서는 안 된다.


세법의 입법론

  저자는 과세요건법정주의와 과세요건명확주의가 갈등하는 관계에 놓여 있음을 지적한다(23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말미암아 국회와 행정부는 가능한 한 모든 내용을 구체적으로 법률에 담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세요건법정주의를 따르다 보니 과세요건이 점점 더 불명확해지고 말았다는 비판은 음미할 만하다. 물론 법문의 분량이 많더라도 체계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의미가 분명한 알기 쉬운 세법이라면 분량이 좀 늘어난다고 해서 무조건 문제는 아니다. 향후에는 법률만으로 과세요건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위임입법은 그에 대한 실무상 지침에 주안점을 두는 식으로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조세입법 역시 국회의 권한이다. 하지만 세법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특성으로 인해 행정부가 조세입법을 주도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경제현상에 대응하는 효율적이고 공평한 과세를 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사항은 입법부가 제정하는 법률보다 탄력성이 있는 행정입법에 위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앞으로는 조세입법에서 법률과 시행령의 관계에 대한 검토 못지않게 정부입법이 의원입법을 앞서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17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이 정부입법을 처음으로 앞지르는 등 입법부의 활동이 양적으로 증가했음은 분명하다. 이제는 양뿐만 아니라 세법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도 입법부의 활동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행정국가화 경향에 따라 행정부의 조세전문성이 강화되는 추세이며,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행정부가 조세문제에 있어서 사실판단을 내릴 권한이 가장 막강해진다. 이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위협할 우려가 있으므로 입법부와 사법부가 조세전문성을 확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법부에 의한 통제는 사후적 구제절차라는 측면에서 입법부의 적극적인 통제가 요청된다. 즉 납세자의 기본권을 사전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조세입법 과정에서 절차적 통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산재한 입법지원기구를 통합하여 조직의 능률성을 높이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직능대표로서의 성격이 강한 비례대표 선출에서도 조세전문가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 [無棄]

Posted by 익구
:

<황후花>, 콩 가는 소리

문화 2010. 9. 26. 06:38 |

2010년 10월을 끝으로 MBC 주말의 명화가 41년 만에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9월 25일 오전 1시에 MBC 주말의 명화로 본 <황후花>가 제가 본 마지막 주말의 명화가 될 듯합니다. 2008년 2월경에 설 연휴 특집영화로 보고 난 뒤에 썼던 잡글을 조금 손질해서 올려봅니다. 주말의 명화를 기다리며 설렜던 마음을 추억합니다.


<황후花>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주걸륜이 부른 국화대(菊花臺)라는 노래가 참 좋다. 가사도 많고 시간도 길어서인지 티비에서 틀어줄 때는 통째로 들어내 하마터면 모르고 넘어갈 뻔했다. DVD나 IPTV 등을 이용해 관람하시는 분들은 놓치지 말고 챙겨 들으셨으면 좋겠다. 복수를 모티브로 한 <황후花>와 이야기나 전개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한 영화인 <야연>의 엔딩곡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지만 중국 영화에서 이따금 등장하는 이런 곡들은 스토리의 애잔함을 깊어지게 한다. 마치 한시를 연상시키는 노래를 삽입함으로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다르다는 문화적 자부심을 드러내겠다는 속셈이 엿보인다. 눈 가리고 아웅 일지언정 OST 차별화에 쏟는 정성이 나쁘지만은 않다. 한국 영화도 배울 필요가 있다면 야박한 요구일까.


<황후花>의 원제는 <滿城盡帶黃金甲>이다. 황소(黃巢)의 시구로 온 성안이 황금갑옷에 점령당한 모습을 묘사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혹자들이 말했듯이 인해전술이 번뜩이는 부부싸움이라고 간단히 정리해도 무방하다. 황제 주윤발의 절대권력에 대한 혐오감을 잔뜩 고조시켜 놓고는 허무하게 꺾어버린다. 콩가루 집안이니까 그 놈이 그 놈이라며 투덜거리다가도 황제에게 구박을 더 건네도록 상황을 꾸민다. 정략결혼을 해서 사랑하지 않는 황후 공리를 서서히 독살하려 하는 것도 모자라 지난날 사랑했던 연인을 두 번이나 배신하는 파렴치한 황제를 변호하고픈 마음을 가시게 한다. <야연>에서 황후 장자이가 건넨 독배를 마다하지 않는 황제와는 확실히 다른 인간이다(장쯔이로 많이 부르지만 통일성을 위해 한국어 발음을 부러 썼다). 영화는 시종일관 권력이 사람을 무섭게 만든다는 식의 흔한 핑계를 둘러대지 않도록 유도한다. 개인적으로는 위장 보약으로 사람을 서서히 죽여 가는 방식이 너무 쩨쩨하게 여겨졌다. 사람을 간질여서 죽이는 게 이런 고통일까?


장예모 변절론을 설파하는 분들은 그의 영화 이력을 고찰하며 안타까워한다. ‘까불지 마라’로 요약되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바람을 은밀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영화 자체로만 본다면 그런 의도를 읽기는 힘들다. 전작인 <영웅>에서처럼 진시황의 천하통일이 무고한 생민을 살리는 길이라며 낯뜨겁게 제국주의를 찬미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황후花>는 적어도 그보다는 덜 노골적이다. 그 당시의 유치함을 보강해 이번에는 좀 더 세련함을 추구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 영화에서 중화주의와 국가주의를 선전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 의심의 눈초리가 마땅할 정도로 장예모의 궤적에는 아쉬운 구석이 적잖지만. 그가 그렇게 살기로 했다면 그 자체로는 존중할 일이다. 물론 배우와 감독에게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서는 곤란하다. 배우가 변신에 성공하면 대개는 칭찬 받을 일이지만, 감독이 표변하면 산뜻함을 느끼는 팬도 있고, 서운함에 돌아서는 팬도 있게 마련이다. 감독이나 작가가 학자처럼 변화의 근거를 제시해야할 의무는 없겠으나 상당한 책임감은 품어야 한다. 작품 세계의 다양성과 일이관지(一以貫之)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중양절의 기념해 황후와 황제가 함께 써 내려간 글자는 忠孝禮義!  영화는 이 네 글자 모두를 보란 듯이 어긴다. 대다수 관객이 기대했을 반란의 성공은 끝내 일어나지 않는다. 그나마 반전이라고 할 만한, 그러나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셋째 아들 원성의 몸부림은 차라리 재롱이었다. 황금 갑옷의 군대를 이끌고 궁궐을 범하던 둘째 아들 원걸을 응원했던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으리라.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이라면 긴 환멸이 견딜 만하도록 잠시나마 통쾌함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심보다(2007 대선의 민심이 그랬을까?). 설령 공리가 파안대소를 했더라도 그다지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리라. 그저 주윤발의 입에서 권력무상을 술회하는 장면을 보고야 말겠다는 소박한(?) 마음뿐이다. 권선징악마저 사치스러워질 때 사람 사는 세상이 얼마나 비참할 수 있는지를 가슴 저미게 알려준다. 절대선이 사라진 시대에 사는 우리는 가상세계에서나마 절대악을 만나서 극단적인 상대주의 혹은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둑을 쌓는다.


황제는 모반을 태연하게 진압한다. 이왕 밉상을 보이기로 작정한 김에 인간성의 바닥을 치다 못해 아예 운하를 판다. 황제는 생포한 원걸에게 황후를 위해(?) 독을 탄 보약 시중을 하면 용서하겠다는 더러운 거래를 제안하고, 원걸은 자결로 항거한다. 영화는 “죄를 짓고 얻은 권력이, 선한 목적으로 사용된 적은 없다”라고 꼬집은 역사가 타기투스의 외침을 끄덕이게 만든다. 인간은 (착하게) 변할 수 있다는 개과천선의 믿음을 송두리째 헝클어뜨린다. 영화 내내 콩 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은지라 적잖은 평자들이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냐며 비판한다. 하지만 복합적인 인간이 아니라 절대악에 가까운 인물을 그려낸 것이 마냥 무익하지만은 않다. 압도적인 미움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북돋는 효과가 있다고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진심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황제의 냉혹함이 황후가 전처 소생의 첫째 아들과 통정하게끔 만들었음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황후는 공격을 했지만 결국 방어에 지나지 않았다. 황제의 패악질에 정당성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황제의 행태를 중국 공산당에 포개어 생각한다면 당사자들이 발끈할 일이다(장예모-공산당 결탁설은 너무 넘친다). 오히려 권력의 집중은 골육상쟁에 흩뿌릴 피의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린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싶다. 어차피 감독의 손을 떠난 영화는 관객이 주무르는 게 순리다. <황후花>는 단조로운 구성과 허망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창조적 재해석을 할 여지를 남겨주는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황제에 대한 비호감을 절대권력에 대한 경계로 치환하고프다. 도덕적 자원이 부족한 권력에 어떤 유지비용이 드는 가도 잘 보여주고 있다.


여담이지만 영화가 시작할 때 公元 九二八年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만큼 영화의 배경은 서기 928년이다. 이에 따르면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의 후당(後唐) 명종(明宗) 이사원이 주윤발의 모델이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이사원의 치세는 볼만한 점이 있었다는 평가에 비추어볼 때 주윤발의 악독한 이미지와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 다만 후계자 서열에서 유리했던 둘째 아들이 반역죄로 죽임을 당했다는 건 영화와 어느 정도 상통한다. 이사원의 뒤를 이은 건 셋째 아들 이종후였다. 영화에서는 주윤발이 과대(銙帶)로 팼던 셋째 아들이 죽지 않고 그의 뒤를 이었다고 하면 어찌어찌 맞아떨어지기는 하지만 억지스런 노력이다. 공리가 열연했던 양나라(後粱) 공주 출신의 황후가 가공의 인물이니 영화는 어디까지나 허구의 인물들이다.


이사원은 후당을 세운 장종(莊宗) 이존욱의 수양아들이다. 당시에 절도사들은 수양아들을 두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존욱은 반란군이 수양아들 이사원을 옹립함으로써 죽임을 당한다. 이사원은 반란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방기했다. 이존욱이 885년생이고 이사원이 867년생이니 자식이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이상한 광경이기도 하다. 이사원의 선정도 부질없이 후당은 4대 13년 만에 멸망했다. <대장금>이나 <왕의 남자>가 사서의 몇 줄에서 출발한 것처럼 <황후花>도 당대의 시대상에서 영감을 얻었음은 또렷하다. 영화는 콩가루들이 요란하게 흩날리던 오대십국의 다반사 한 조각(황실의  치정)을 묘사하는데 그쳤다. 당대에 민초들이 겪었을 고초는 안 봐도 선하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묵공>은 <황후花>의 대체재일까, 보완재일까? - [無棄]


<군소리>
구슬픈 노래를 선사해준 주걸륜에게 보답할 길이 없을까 해서 그가 출연한 <이니셜D>를 찾아본 나도 좀 야릇하긴 하다. <황후花>처럼 뻔한 결말에다 밋밋하기는 마찬가지지만 한바탕 속도감을 즐기다 보면 속풀이 효과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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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 답사기

문화 2010. 8. 30. 04:58 |

이번 여름은 서울 바깥나들이를 별로 하지 못했습니다. 답사라고 할 만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화유산에 대한 짧은 감상을 늘어놓겠습니다.


1. 보은 법주사의 쌍사자 석등(7월 11일)


법주사 하면 목탑인 팔상전(捌相殿)을 가장 눈여겨보기 마련입니다. 지난 답사에서는 팔상전 뒤편에 있는 국보 제5호 쌍사자 석등이 가장 인상에 남았습니다. 우리네 돌조각이 대부분 그렇지만 사자는 온화함을 넘어 귀엽고 앙증맞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원성왕릉으로 추정하는 경주의 괘릉(掛陵) 앞의 돌사자들은 무서운 눈으로 째려보기보다는 씩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진정한 권위나 오래가는 아름다움은 결코 공포나 폭력으로 조성할 수 없는 것일까요.


한국인에게는 오래 전부터 양순함과 익살맞음이라는 정서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제멋대로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날 예의 넉넉함과 푸근함을 자꾸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고요. 요즘 방영 중인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에서 “착한 사람이 이기는 세상”을 희구하는 닭살이 돋는 대사가 나오는데 천년이 넘도록 석등을 들고 있는 사자들이 바라던 바였는지도 모르겠다고 또 멋대로 상상했습니다.


사자가 한 마리는 입을 다물고 있고, 한 마리는 입을 벌리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안내를 해주신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은 교(敎)를,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은 선(禪)을 표상한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시작과 끝의 순환을 의미한다는 등의 다른 해석도 있던데 꿈보다 해몽이겠으나 꽤 그럴 듯하게 들려서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습니다. 초기 불교에서는 불보살 이외의 자가 성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뒤에 이르러 일반 중생도 후천적인 수행을 통해 불성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퍼졌습니다. 그러던 것이 종국에는 일체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미망에 가려져 있을 뿐 그것을 떨쳐버리면 성불한다고 말하게 되죠. 이 석등이 세워졌을 시기에는 어떤 생각이 퍼져 있었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돈오(頓悟)는 인간은 본래 깨달은 존재라는 본각(本覺) 사상에 기반을 둡니다. 따라서 수행할 때 깨달음을 기대하는 태도를 대오(待悟)라 칭하며 경계합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헤아리고 따지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이라 하여 덧없게 여기죠. 선종의 법맥을 잇는 후계자는 육조 혜능(慧能)이었지만, 저는 신수(神秀)의 게송인 “틈틈이 부지런히 닦고 털어서 먼지가 끼지 않도록 하라(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라는 성찰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교와 선을 통한 점진적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점오(漸悟)야말로 저에게 어울리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고생스럽게 공부해야만 깨달음을 얻는 ‘곤이지지(困而知之)’라는 유가의 용어를 억지로 빌려서래도요.


제 잡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입을 다문 이판(理判)과 입을 벌린 사판(事判)을 연상해봤습니다. 한 개인이나 어느 사회가 지속하려면 무게중심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판과 사판 사이의 균형이 긴요한 과제라고 여겨져서요.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는 고 김대중 대통령님의 말씀과도 잇닿는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사판의 시대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사판을 연마하면서도 이판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뭐 이판사판으로 지내는 제가 할 소리인가 싶지만요.^^; 
 

입 벌리고 있는 사자와 입 다물고 있는 사자(7월 11일 촬영)

잠깐 언급했던 경주 괘릉의 돌사자(2월 13일 촬영)

2. 철원의 승일교(8월 25일)

철원은 38선보다는 북쪽에 있고, 휴전선보다는 남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초기까지는 북한의 땅이었지만 한국전쟁 이후에는 남한의 땅이 된 것이죠. 여담이지만 ‘남한’ 대신 ‘대한민국’이나 ‘한국’이라는 표현이 나을까 싶다가도 ‘북한’을 언급할 때는 ‘남한’이라고 말하는 것이 분단을 인식하고 통일을 지향하는데 좀 더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이라고 표기하려면 북한의 국호를 온전히 불러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 같아서요. 남북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아서 정식 국호를 안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는 비판도 수긍할 만합니다. 어찌 보면 북한이나 남조선은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니까요.


본래는 철원으로 래프팅을 갈 계획이었는데 비가 많이 내려서 래프팅은 취소되고 숙소 근처를 산책했습니다. 그 덕분에 철원의 지형학적 위치를 설명해주는 문화유산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한탄강 위에 호젓하기 터 잡은 승일교가 그것입니다. 승일교는 이승만의 승(承)과 김일성의 일(日)을 합쳤다는 설과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고 박승일(朴昇日) 대령을 기리고자 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승일교 초입에 붙은 석판에는 후자의 설명을 기록하면서 ‘북괴’라는 표현을 쓰는데 참 오랜만에 접하는 단어였습니다.


다리의 제작을 두고도 설이 갈려서 안내판에 두 가지 설명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건 북한이 다리의 절반 정도를 만들고, 한국전쟁 이후에 남한이 완성해서 남북이 반반씩 만든 다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다리가 좌우대칭이 좀 안 맞는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받았는데 실제로 양쪽의 무지개(홍예) 모양이 좀 다르다고 합니다. 작은 공법의 차이보다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남북 사이에 커져가는 마음의 거리겠지요. 래프팅 명소로 더 유명해진 곳에서 승일교는 통일을 기원하며 서있습니다.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너와 내가 닦고 낸 긴 길
형제들 손잡고 줄지어 서고
철조망도 못 막아
지뢰밭도 또 못 막아

휴전선 그 반은 네가 허물고
나머지 반은 내가 허물고
이 다리 반쪽을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을 내가 만들었듯
- 신경림, ‘승일교 타령’ 中


승일교는 등록문화재 제26호입니다. 등록문화재 제도는 1876년 개항 이후 한국전쟁에 이르는 동안 만들어진 근대문화유산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2001년 7월 도입했습니다. 그동안은 일제 잔재라는 오명과 개발 광풍 속에서 멸실되기 일쑤였다면, 등록문화재 제도는 오늘이 쌓여 역사가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곱씹게 해줍니다. 등록문화재 제도가 정착된다면 일상의 흔적들에 대한 기록과 보존도 한층 강화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특히 등록문화재에는 성당이나 교회도 적잖이 지정되어서 불교 문화유산에 편중된 우리네 문화유산의 지평을 좀 더 넓혀주는 긍정적 효과도 있습니다.


3. 비무장지대의 태봉국 도성(8월 25일)

‘궁예도성’은 좋은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궁예도성은 궁예를 폄하했던 고려, 조선시대의 지리서나 일제 강점기의 지도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최근 철원군은 “역사적으로 국가가 건국됐거나 천도(遷都)를 했던 경우 도성에 국왕 개인의 이름이 붙여진 사례는 없다”라는 지적을 받아들여 궁예도성을 태봉국도성으로 개칭했습니다. 승일공원에 세워진 관광안내지도에도 태봉국 도성이라고 표기되어 있더군요. 승자에게 치우친 기록을 조금 교정하겠다는 애틋한 마음씨가 고마웠습니다.


하나의 사물을 표현하는 데 단 하나의 정확한 표현이 있다는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은 무시무시한 말씀입니다. 꼭 이런 이론이 아니더라도 태봉국 도성이 좀 더 올바른 표현인 것은 또렷합니다. 이름은 되찾았지만 태봉국 도성은 여전히 가볼 수 없는 곳입니다. 비무장지대(DMZ)에 남아있어 아직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이 태봉국 도성을 함께 조사하는 모습을 희망해봅니다. 개성 일대의 고려왕릉들도 보존이 제대로 되지 못해 황폐해져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자본주의의 안목(?)으로라도 투자할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아참~ 승일교 근처에 자리잡은 ‘궁예도성’은 음식점 이름이나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간 분들과 영화 ‘인셉션’에 나오는 아리아드네 이야기에서 미노타우로스까지 화제가 이어졌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노타우로스는 소머리를 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묘사됩니다. 문득 궁예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삼국사기』에서 미노타우로스 정도로 못된 인물로 그려집니다. 궁예의 포악한 성격을 나타내는 구절이 적잖고 비참한 최후 역시 박절하게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 전승되는 이야기는 궁예가 극악무도한 인물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궁예와 관련한 지명이 오늘날 많이 전해지는 까닭도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였던 궁예에 대한 연민이 전해지는 탓이겠지요.


신화학자 정재서 선생님은 신화 읽기의 편식 현상이 상상력의 빈곤과 편견을 낳는다며 풍부하고 균형 잡힌 상상력을 위해 그리스 로마 신화와 동양신화는 물론 다른 신화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양의 미노타우로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소머리를 한 염제(炎帝) 신농(神農)이 있습니다. 신농은 농업의 신이자 불의 신이며 복희(伏羲), 황제(黃帝)와 더불어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삼황으로 꼽힙니다. 신농은 황제와의 전쟁에서 패해 중국 주변에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등장하기도 하고, 월남의 개국신화에서 시조신으로 나타난다고 하네요. 신농은 동이족 계열의 신화로 보는데 신농의 후계자가 바로 잘 알려진 치우(蚩尤)입니다. 신농은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이나 독초와 약초를 구별하는 법 등을 가르쳐 준 어진 신입니다. 궁예는 미륵불을 자처했다고 하니 신농 같은 자애로움을 지향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패배자에게 돌아온 것은 미노타우로스라는 멍에였네요.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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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등이 생각

잡록 2010. 8. 30. 04:04 |

꼽등이는 며칠 전에 알게 된 곤충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곱등이’였는데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에 ‘꼽등이’라고 나오기에 이 표기를 따른다. 머리부터 배로 이어지는 등 쪽이 곱사등이처럼 굽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다. 귀뚜라미와 비슷하지만 더듬이가 길고 뒷다리가 길어서 잘 뛰는 편이다. 적잖은 분들이 꼽등이를 혐오하는 이유도 이 친구가 예상치 못한 점프력을 보여주기 때문인 듯하다. 나도 그래서 메뚜기과를 데면데면하게 여기는 편이다. 어쩌면 내가 가공할 점프력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곤충 따위는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종(種)차별주의(speciesism)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의 트라우마 때문일수도 있겠다.^^;


꼽등이는 시각과 청각이 약하고, 날개가 없어 귀뚜라미처럼 울지도 못한다고 한다. 나는 곤충계의 헬렌 켈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둘레 사람들에게 거의 동감을 얻지 못했다. 헬렌 켈러를 언급하니까 EBS 지식채널 ⓔ에서 헬렌 켈러가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의 대명사로만 알려졌을 뿐, 그가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았던 사실은 대개 은폐되었음을 지적하는 <미국의 우상>편이 떠오른다. 헬렌 켈러의 삶을 발췌해서 간직하려는 그들은 헬렌 켈러를 그의 삶과는 정반대로 소비한다.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던 그를 개인의 초인적 노력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라는 자조론, 자력갱생의 미덕으로만 이용하려 했으니까 말이다. 헬렌 켈러 선생님은 낙관주의자의 사표셨는데 꼽등이도 세상의 비난을 의연하고 꿋꿋하게 해쳐나가길 바랄 따름이다.


꼽등이가 해충이라고 하는데 어떤 악행을 저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더니 이런저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벌레 중에 피나게 무는 것은 거머리와 꼽등이 뿐이라든가, 꼽등이의 입과 항문 주변에 세균이 많은 비위생적 녀석이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는 등의 이유는 무척 설득력 있었다. 음습한 곳에 사는 야행성 곤충이 한 둘이 아니지만, 초식성이 아니라 쓰레기 부식질이나 죽은 곤충 등도 먹는 (대부분은 동물성 먹이를 먹는) 잡식성이라는 사실이 꼽등이에 대한 비호감을 부채질한다.


꼽등이의 다양한 별칭 중에 ‘소악마’라는 것도 있었다. 고종석 선생님의 신작 소설 『독고준』에서는 “호모사피엔스가 가장 싫어하는 종은 호모사피엔스일 것이다. 인간은 악마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그러니까 우리들 자신이 악마이므로”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넘치는 혐인(嫌人)도 경계하고 싶지만, 인간이 발전하거나 진화하는 게 맞는다면 우리 내부의 악마성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을 더해가는 세상보다는 미움을 덜어가는 세상이 좀 더 현실적인 목표 같기 때문이다. 꼽등이에 대한 사랑을 더하기는 어렵지만 미움을 더는 것은 약간의 정성이면 가능하다.


시인 김명수 선생님은 ‘꼽등이’라는 시에서 “귀뚜라미처럼 울지도 못하는 꼽등이가/ 수염이 너무 길고/ 뒷다리도 너무 가늘다고 여겨졌다”라고 쓰셨다. 메뚜기나 귀뚜라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혹시 꼽등이를 만나게 된다면 시인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다정한 눈길을 건네 보고 싶다. 꼽등이를 해충이라 부르는 이유가 인간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황소개구리나 베스처럼 자연계의 시각으로 본 것인지 아직도 헛갈리기 때문이다. 이 흉한 몰골의 벌레보다 인간은 얼마나 더 아름답고 덜 추악한 것일까? 이따금 자신이 없다.


내가 거니는 대학원 건물에 종종 출몰한다고 하니 곧 만나게 된다면 그 괴이한 형상을 마주치고 나면 내가 앞장서서 악플을 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전에 나쁜 벌레가 있으니 좋은 벌레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살육을 저지르는 인간이 이런저런 미물(微物)을 성토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 아닐까 의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꼽등이의 존재를 알게 해주신 혜림누나, 꼽등이 못지않은 무서운 풍채로 유명한 그리마와 연가시와 같은 곤충 영상을 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은영누나, 현영에게 다시금 고마움을 표한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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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의 길 소감문(1)

2010. 6. 30. 23:33 |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개설한 <특강 법률가의 길>은 법률가의 길에 관하여 귀감이 될 만한 인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시간입니다. 모든 강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소감문을 제 때 제출한 것도 뿌듯한 일이지만, 더 놀라운 점은 오전 강의임에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P/F 과목이라 대부분의 학우들이 비중을 덜 두었던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목일수록 더욱 열성을 다하는 비효율적(?) 학생인 저로서는 이 수업시간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소감문에다 너무 많은 장밋빛 공약을 써 놓아 다시 읽으니 민망하기도 합니다. 선현들은 말이 행동보다 지나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는데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강연자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강연 내용을 비판하는 대목이 거의 없다는 건 이 소감문이 반쪽짜리임을 의미합니다. 적잖은 부분이 제가 예전에 했던 말을 반복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로스쿨에서의 첫 학기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이 소감문을 일부 손질해서 올립니다. 한 학기 동안 만나 뵀던 여러 스승님들의 삶에서 제가 얼마나 배웠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구현하도록 애쓰는지를 지켜봐주십시오.


<3월 8일 김영란 대법관님>

  판사가 어떻게 창의적으로 재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 오셨다는 김영란 대법관님의 말씀은 내게 죽비소리였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라는 수식어를 떠나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에 그분이 계셔서 감사하다. 특강 중간에 인용하시는 영화나 문학작품, 심지어 만화책에 이르는 다양한 지적 탐구 정신은 창의적 관점을 쌓기 위해 본받을 점이었다. 

  김 대법관님은 “실정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혜택을 받는 대상을 넓혀가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역설하셨다. 형식적 법치주의에서 실제적 법치주의로 나아갈 것을 주창하시며 그 과정에서 법학전문대학원 학생의 역할을 당부하셨다. 로스쿨 제도는 불문법 국가의 이념과 관습이 결부되었기 때문에 성문법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접목해낼지가 관건이라는 말씀에 공감한다. 조문 해석에서 출발하는 성문법 국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로스쿨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에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다.

  김 대법관님은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의 경험을 회고하며 반대 관점에서 생각하는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성찰하셨다. 문득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일화가 떠올랐다. 힐러리의 고교 선생님은 공화당 지지자인 힐러리에게 대통령 후보 모의 토론회 시간에 힐러리에게 민주당 출신 존슨 대통령 역을 맡겼다. 힐러리는 민주당 강령과 백악관 성명 등을 읽으며 민주당에 대한 오해를 풀었고 종국에는 민주당원이 되었다. 힐러리는 자기 스스로가 반대자가 되어 가려진 일면을 보았다. 자기가 틀렸음을 고민하고,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 말로 법률가의 기본자세가 아닐까 싶다. 대법관님께서 “결론은 옳았을지 몰라도 상처 받은 사람들의 서운함을 배려할 수 있지 않았을까?”를 늘 고민하시는 모습과 잇닿는다.

  김 대법관님은 시종일관 입법의 중요성을 설파하셨다. 입법 단계에서부터 법률가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법률가들이 정책의 입안과 집행에서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나도 궁극적으로는 좋은 법을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입법이 법률 제정 실무자들에게 국한된 기술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입법의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이지만 정치학이나 행정학, 정책학과 연계한 통합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개척할 여지가 많은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만드는 법’, ‘지킬수록 이득이라고 여겨지는 법’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싶다. 

  강의 말미에는 판사들이 국가 대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는가를 검토하셨다. 선출되지 않아서 간접적인 정당성에 그치는 판사들이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하는지에 대한 고찰인 셈이다. 김 대법관님은 사법부는 직접 민주주의에서 소외된 소수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다원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사법부의 역할에 동감한다. 김 대법관님은 입법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지만 다수파 기관인 입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함도 지적하셨다. 소수자와 약자를 위해 용기 있는 판결을 내릴 때가 비다수파 기관으로서의 존재 의의가 빛난다. 인용하신 “다수자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다수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라는 워렌 미 연방대법원장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김 대법관님이 임명 제청된 지난 2004년 당시에 파격적인 인사라는 이유로 설왕설래가 오고간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대법원이 대표성 확충이라는 목표에만 매몰되어 각계각층의 출신을 안배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좀 더 넓어진 대법관 구성원을 갖춰서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이바지하길 희망한다. 좀 더 많은 제2, 제3의 김영란 대법관님을 만나 뵙고 싶다.


<3월 15일 김진태 검사장님>

  서울북부지검 김진태 검사장님은 삶에 정해진 답(定答)이 없음을 강조하셨다. 끊임없이 ‘왜’의 관점에서 사고하여 창의성을 기를 것을 주문하셨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Poetic Justice)』라는 저서에서 시인과 판사가 하나가 되는 세상이라야 공적 영역에서 정의가 세워진다고 주장하고, 타인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과 연민 없이는 법의 집행이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학은 개인의 연민을 사회적 연대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문학은 시대와의 불화를 겪으며 개인의 상상력을 공공의 상상력으로 탈바꿈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꼭 문학에 한정될 필요는 없을 듯싶다. 김 검사장님께서 언급하신 재판 사례들 역시 공공의 상상력을 키우는 훌륭한 소재들이 된다. 법학을 공부하면서 개인의 상상력을 공공의 상상력으로 확장해 내가 이루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설계해야겠다.

  김 검사장님께서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은 자기완결적이며 무한책임을 지며, 외부의 책임 추궁 장치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고 역설하셨다. 프로라고 칭할 만한 분들을 살펴보면 일상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도저한 근면함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산 정약용이 책상다리로 앉아 바닥에 닿은 복사뼈 자리에 구멍이 세 번 뚫렸다는 고사를 떠올리다 보면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至誠無息)”라는 『중용』 구절과 만난다. 누구나 사흘쯤은 성인군자 행세를 할 수 있다. 닷새 정도는 공부를 하다가 지쳐 단잠에 빠질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사흘과 닷새를 보름으로, 달포로 늘려나가는데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수학하는 동안 망양지탄(亡羊之歎)을 그치고 “나는 이것을 제일 잘한다”라고 외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싶다.

  그런데 프로가 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뉴질랜드의 탐험가 에드먼드 힐러리는 “나는 기술적으로는 프로가 되고 싶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아마추어이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다. 프로가 맡은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재주라면 아마추어는 순수함이나 겸손함을 가리키는 뜻으로 많이 풀이한다. 전문 분야의 솜씨에 국한되지 않는 통섭하는 능력이라든가, 인간미와 동떨어지지 않는 기예라고 봐도 괜찮다. 빼어난 기능인이 되기도 어렵지만 이를 넘어서려는 다짐도 필요하다. 김 검사장님이 바람직한 법조인이라는 화두를 제시하시면서 열거하신 덕목들은 결국 기술적인 면과 아마추어적인 면을 모두 아우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프로이면서도 아마추어인 법조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강의안 말미에 나오는 홀로 있을 때도 몸가짐을 삼간다는 ‘신독(愼獨)’이라는 문구에 눈길이 간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내밀한 행동이 한결같다는 것만 해도 참 어려운 일인데,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더 잘하려는 마음가짐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신독하면 오규원 선생의 「죽고 난 뒤의 팬티」라는 시가 떠오른다. 교통사고를 몇 번 겪고 나니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시다.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에 신경 쓰는 사람은 도무지 대충 살 수가 없다. 팬티로 눈동자를 굴리는 마음은 혼자 있을 때 경계하는 마음과 통한다. 나도 세월의 무게 때문에 때가 묻을 대로 묻어 남는 건 팬티 한 장의 깨끗함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첫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겠다. 법조인이라면 품어야 할 명예이자 자존심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에 착한 법조인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선량함은 법조인의 덕목이라기보다는 모든 직업인의 윤리에 지나지 않을 테니 그 바람을 자주 접하는 건 민망한 일이다. 법률가는 규범의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김진태 검사장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3월 22일 민형기 헌법재판관님>

  민형기 헌법재판소 재판관님께서는 우리들을 구법조인과 대비되는 신법조인이라고 지칭하셨다. 법학전문대학원 체제의 불확실성은 결국 시간이 해결될 문제이므로 이에 신경 쓰지 말고 미래의 주역으로서의 역할과 자세를 궁리하는 원론적 고찰이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대학 시절에 자신의 꿈을 글로 기록해서 간직하고 있다고 답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졸업 후에 살펴보니 전자가 후자보다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조사 결과가 떠올랐다. 물론 경제적인 부만을 측정했기 때문에 진정한 삶의 성공이라고 보기에는 성급하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몇 줄 글로 압축해서 써둔다면 자신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좀 더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싶다. 

  법조인이 처한 여러 환경적 요인 가운데 전문집단을 경원시하게 된 사회 분위기에 대한 언급이 흥미로웠다. 보통 사람도 전문지식을 공유하거나 전문분야에 참여할 기회가 늘어났기 때문에 법조 직역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강화된 추세다. 이제는 법조인의 권위를 강조하기보다는 신뢰를 구축하고 수요자 중심의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씀에 동감한다. 갑(甲)의 사고에서 벗어나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은 갑이 아닌 지금 시기부터 연마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맹자는 “사람은 모름지기 스스로를 업신여긴 뒤에 남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다(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라고 설파하셨다. 법조인이 전문가로서 그 역할을 존중받으려면 스스로에 대한 가치 부여가 필요하다. 이 일환으로 민 재판관님은 소명적 전문성을 강조하셨다. 오늘날 법조인이나 지망생들이 소명성을 버리고 전문가가 아닌 직업인이 되려 한다고 비판하신 대목이 인상 깊었다.

  민 재판관님은 사법시험 면접에서 술집을 함께 찾던 친구들이 무단횡단을 할 때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던지셨다고 한다. 민 재판관님은 당신께서도 친구들을 모두 이끌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범답안을 매번 실천할 자신이 없다고 하시면서 횡단보도를 안 건너고 갈 수 있는 술집을 제안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2006년 3월 학부 엠티에서 후발대로 간 나는 청량리역에서 기차표가 모자라서 무임승차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내가 일행에게 다음 기차를 기다리든가 아예 엠티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시외버스를 타고 엠티 장소로 향했다. 나는 선배의 권위를 이용해 후배들을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끌고 다닌 셈이다. 지난날의 나는 모범답안을 거의 지켰지만 방식이 세련되지 못해 마냥 뿌듯하지는 않았다. 규범을 어떻게 준수하고, 또 준수하도록 유도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더 이어가야겠다.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뒤뜰에서 천연기념물 8호 ‘재동의 백송(白松)’을 만날 수 있다. 이 백송은 밑동부터 V자로 갈라진 모습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모습을 형상화하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나눠진 줄기는 하늘에서 무성한 잎을 맺어 다시 만난다. 결국 뿌리는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헌법정신이라는 뿌리 위에서 이따금 갈등할 수도 있겠지만 종국에는 힘을 합쳐야 함을 백송은 담담히 술회한다. 이 정갈한 노거수(老巨樹)처럼 헌재를 비롯한 전 법조가 우리 사회에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한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려면 좀 더 열려있고 쉽고 낮은 자세가 요구된다. 민 재판관님께서는 그런 맥락에서 쉬운 사회현상도 법률용어로 환원하려는 행태를 꼬집으셨다. 아직 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현재의 모습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향후 의뢰인이나 시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거울로 삼아야겠다.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는 것이 성숙된 양심이고, 한 사람의 품위를 나타내는 시금석이다.


<3월 29일 구상진 교수님(1)>

  구상진 교수님은 강연 모두에서 문민정부 이후 의원입법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씀하셨다. 의정사를 고찰하며 입법에 대한 실권이 입법부에 없었던 시절을 돌아보니 감회가 깊었다. 실제로 17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이 정부입법을 처음으로 앞지르는 등 입법부의 활동이 양적으로 증가했음은 또렷하다. 다만 늘어난 양만큼 질도 높아졌다는 분석은 아직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앞으로 국회의원을 평가할 때 대표발의안 횟수 같은 식의 정량적 개념에 치중하기보다는 얼마나 당대에 필요한 법을 고민했는지를 정성적인 측면으로도 접근하는 활동이 함께 수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입법 현실은 사적인 성격이 강한 보좌진 등의 인재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얼마 전 출범한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할 공적인 조직으로서 기대가 크다. 사안이 터질 때마다 각자의 ‘해석’이나 ‘의견’만을 내세워 갈등을 증폭하기 전에 차분히 ‘사실’을 축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 교수님은 법제사를 언급하시며 법조 집안의 내력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역설하셨다. 켈젠 선생이 한국을 독일의 알려지지 않은 손자라고 지칭하셨을 정도로 한국의 법제는 일본을 계수했다. 그 이전에는 중국의 영향력이 컸다. 일전에 고려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현재천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현 교수님께서는 한국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역사적 의제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생존하고 번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중국 대륙을 차지했던 북방 유목민족들이 하나둘 중국화(中國化)하는 와중에도 한국은 아름다운 예외였다. 

  한국이 독자적인 문화권을 일정 부분 건사할 수 있었던 근본 동력을 개방성이라는 요인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개방성이 반드시 독창성을 담보하지 않고, 우리가 모든 면에서 개방적이지도 않았다. 가령 양명학이 중국이나 일본에서보다 이단으로 여겨진 사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대목의 고민을 이어가는 까닭은 대한민국이 복수의 문명권이 협력과 경쟁을 하는 좀 더 이상적인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특수성을 뽐내면서도 보편성을 잃지 않는 한국적 가치나 국가 브랜드의 모색은 편협한 민족주의로 가두기에는 그 품이 너르다. 로스쿨 제도도 그런 거시적 안목에서의 시도라고 보면 좋을 듯싶다. 

  나는 시험보다 교육에 주안점을 둔 것에 법학전문대학원의 대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험이 고급화될수록 교육과 상충관계가 된다. 모든 가치기준이 수험적합성에 맞춰지면서 법과대학의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된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닌 다방면의 교육으로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로스쿨을 도입한 만큼 변호사시험은 의사국가고시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의사국가고시의 합격률은 2010년 92.9%, 2009년 93.6%였다. 높은 합격률에도 별다른 시비가 없는 것은 의대 교육과정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쟁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시험과 교육의 적절한 배합의 문제로 요약된다. 

  시험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교육을 향한 노력도 평가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구상진 교수님께서 설파하신 학교 수업의 중요성에 동감했다. 수험생이 시험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라면 학생은 교육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 아닐까 막연히 나눠본다. 물론 수험생과 학생이 크게 배치되는 개념은 아니다. 좋은 학생이 훌륭한 수험생도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취지다. 내가 학생에 방점을 찍는 이유는 앞으로 대비해야 할 각종 시험들에 소홀하겠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수험 공부만으로 채우기 힘든 배움의 기쁨을 좀 더 찾아보겠다는 정도의 뜻이다.


<4월 5일 구상진 교수님(2)>
 
  구상진 교수님께서는 법은 정신적 체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배우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법은 가치의 기준이어서 우리 정신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의 정신 속에 있는 것을 남과 공유하기 위한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이 요청된다. 나에게 주관이 있듯이 상대방도 그 분 나름의 주관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상호주관성은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더욱 필요한 덕목이다. 법조인으로서 간주관성을 체화하기 위해서는 인간다움에 대한 믿음과 열린 자세, 그리고 창조적 상상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구 교수님은 법의 진화과정을 설명하시면서 집단적 신분관계에서 개인의 의사결정 선택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역설하셨다. 다만 이러한 인간의 의사에 대한 강조가 오만한 마음의 발로가 아닌지 반성하고, 과거의 신분사회보다 더한 신분사회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고 첨언하셨다. 구 교수님은 시종일관 지엽적인 판례 암기나 수험기술적인 접근이 아닌 핵심 원리와 법적 사고를 세울 것을 주문하셨다. 이런 노력을 통해 법의 진화에 이바지하기를 다짐한다. 

  법의 진화는 결국 법의 출처(出處)를 따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법이 나아갈 자리와 물러날 자리를 분간하는 혜안을 키워가는 길을 뜻한다. 법은 모든 인간의 자유와 독립에 신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행정국가화 경향은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고를 상당 부분 수정했다. 좀 더 실질적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입법정책에 대한 요청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럴 때일수록 법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판별하는 지혜가 더욱 요청된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일정 부분 직업학교의 성격을 띠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정적 의미의 기능인(technician)에 그쳐서는 안 된다. 로스쿨 졸업생이 입법 자문이나 법제 컨설팅 등에도 많이 진출할 것을 감안해 이런 부분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가야 한다.

 또한 법은 공동체 내에서 집행되어야 하는 규범임을 강조하셨다. 전혀 집행되지 않는 법은 법이 아님은 자명하다. 법은 현실로 집행될 수 있어야 하고, 현실이 법에 피드백 되어 규범력을 높여야 한다. 근래에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통상적으로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구별해서 생각한다.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면 법의 지배보다는 법에 의한 지배가 될 공산이 크다. 법의 지배는 평평해야 한다.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게 기울어진 ‘편향된 법치’는 형용모순이다.

  자기에 대한 기준과 남에 대한 기준을 달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하다(待人春風 持己秋霜)”라는 채근담 구절을 많은 이들이 좌우명으로 삼는 것을 보았다. 자기와 타인에게 동등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나에게 더 촘촘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나처럼 천학비재한 사람도 자기보다 빼어난 사람을 왈가왈부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 민주주의의 혜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권리는 절제해서 행사할수록 더 빛난다. 

  물론 비판하는 대상보다 반드시 뛰어나야만 비판의 자격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더욱이 공적 영역에 있는 인물을 비판하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엄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법적 사표가 될 만한 모범이 되라는 구상진 교수님의 가르침을 생활신조로 삼는다면 남의 잘못을 손뼉 치며 지적하는 건 삼가야겠다. 더욱이 법률가는 남을 책망하는 일을 맡기도 해야 한다. 그럴 경우 스스로를 먼저 책망하는 자세가 있어야만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남 탓보다 자기 탓이 바지런한 사람을 좀 더 신뢰하기 마련이다.


<4월 12일 이재후 변호사님>

  이재후 김앤장 대표변호사님은 법관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실을 어떻게 판단하고 인정할 것인가를 꼽으셨다. 법률의 적용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이다. 학기 초에 우리 학교 최은희 교수님께서 사실심인 하급심 판결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다 배운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사실관계 파악은 법해석학을 연마하는데 있어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실무에서는 사실관계를 따지는 능력이 가장 먼저 필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당사자가 가져다주는 사실만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그냥 단순히 법률만 아는 것이라는 지적이 매서웠다.

  이 변호사님은 기존 변호사와는 다른 접근을 선택하셨다. 거의 100%가 송무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에 재판정이 아닌 투자자를 찾아가 기업법무와 국제법무의 영역을 개척하셨던 용기가 인상 깊었다. 이 변호사님은 다양한 법률 수요를 충족하고 전문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로스쿨의 역할을 역설하셨다. 앞으로 전문화가 가속화되면 변호사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워 힘을 모아야 할 사건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 변호사님은 어느 인터뷰에서 인재 영입을 위해서 “삼고초려가 아니라 십고초려도 할 각오가 돼 있다”라고 하셨는데 로스쿨에서도 다양한 인재가 육성되어 활약하길 희망하며 나도 일조하도록 애쓰겠다.

  이 변호사님은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변호사의 기본이라고 다시금 강조하시면서도 변호사의 자질을 몇 가지 더 열거하셨다. 법률 적용을 위한 리서치 실력, 짧게 요약 정리하여 핵심을 도출하는 글쓰기 기술, 설득하는 능력, 의뢰인을 획득하고 관리하는 방법 등이다. 어느 하나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찌 보면 마케팅과 연관되는 내용이어서 경영학자 윤석철 교수님께서 마음(feeling)관리의 중요성을 언급하신 대목이 떠올랐다. 윤 교수님은 ”마음속 상처는 육체의 상처보다 더 크고, 상처받은 고객이나 종업원의 마음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한다”라고 설파하셨다. 사실에 대한 균형적 감각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설득하고자 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그 이전에 지극한 정성이면 감인(感人)이다.

  이 변호사님은 앞으로 법치주의가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법률수요는 증가할 것이라고 예견하셨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가 될수록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법의 역할이 커질 것임은 자명하다. 일전에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님은 금융이 선진화되려면 법치가 바로 서야 한다는 주장을 하셨다. 금융은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산업으로서 우리나라 금융산업에 엄정한 법치의 관행이 확립되어야 하는데 법이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된다면 금융산업의 성장잠재력을 저해한다는 말씀이다. 비단 법치금융만 확립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법치의 준수가 요청된다. 법 앞의 평등은 법의 내용이 모두에게 평등할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법의 집행도 모두에게 평등할 것을 요구한다. 

  김앤장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 모델로 통한다. 혹자는 법률을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김앤장의 성과가 공익보다 사익만 추구한 결과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김앤장의 영향력이 입법부나 사법부의 권능까지도 넘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들린다. 나는 김앤장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이런 고언도 새겨들으시리라 믿는다. 독선은 누구에게나 해롭다고 배웠다. 이 변호사님의 강연을 들으며 미래의 법조인은 전문성을 갖추되 특권의식을 버려야 함을 절감했다.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법조인에게 응당 보장되는 ‘권력’이란 없다. 소명적 책임감을 맡은 이에게 부여한 제한된 ‘권한’이 있을 따름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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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의 길 소감문(2)

2010. 6. 30. 23:32 |

<4월 26일 양경승 교수님>

  양경승 사법연수원 교수님께서는 한 순간도 즐겁지 않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공부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고 책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읽었는지가 관건이라고 역설하셨다. 이를 위해서 공부할 때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시간도 자유롭게 운용하라고 귀띔해주셨다. 다만 이해를 못했는데도 진도만 나가서는 곤란하고 이해가 안 되면 꼭 물어서 해결하라는 묵직한 단서 조항을 다셨다. 이와 더불어 복잡한 개념들을 파악하기 위해 도표화시키고, 주제별로 묶고, 목차를 많이 보는 등의 여러 공부 방법에 대해 아낌없이 조언해주셨다. 

  양 교수님께서 공부는 요령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까닭은 아마도 시험 통과를 위한 수험 공부에만 매몰되는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법학을 주업으로 삼더라도 부업을 찾으라고 하신 이유도 결국 좀 더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아니 그 이전에 법학을 더 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모든 공부가 다 그렇듯이 법학도 넓게 배우지 않으면 깊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양 교수님은 아직도 내가 즐겁게 할 마음이 있으면 성실하게 하고 그렇지 않은데도 매달리면 집착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일전에 김우창 선생님은 <자기가 선택하는 삶>이라는 칼럼에서 우리 사회가 젊은 시절이 없다고 탄식하셨다. 내면적 의미의 추구와 외면적 가치에의 순응 사이에서 고민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도 자기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삶을 성찰할 여유가 없다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한, 자아실현을 도모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남을 이기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에 몰두하기 십상이다. 정조대왕은 “끝끝내 지키는 사람이 위기지학을 하게 된다(『일득록』)”라고 말씀하시며 총명함이 발현하는 ‘속도’보다 총명함을 유지하는 ‘지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설파하셨다. 배움이 지속가능하려면 책을 펼치는 순간만큼은 가슴이 뛰어야 한다. 인격 도야와 자기 수양에 바탕을 두지 않고 세속적 공명(空名)에만 집착한다면 내 배움이 누추해질 것 같다.

  나는 ‘시험보다는 교육’이라는 법학전문대학원의 표어에 끌렸다. 그런데 그 교육이라는 것도 결국 잘게 나눠진 시험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내가 로스쿨에 진학한 까닭은 행복하게 공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의 저자가 독일의 쿠벤 김나지움의 교장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흥미롭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통해 사고의 깊이와 인성이 고양되지 않은 지식인을 키우는 교육을 가장 경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곱씹을 만한 이야기다. 고령화 시대에는 젊은이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어른을 부양해야 한다. 이제 극소수의 승자만이 대접받는 시대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잠재성과 소질을 계발하도록 노력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인간을 생각하는 경쟁이 가능할까 막막하기는 하지만 경쟁이 심하더라도 그 안에서 보람을 찾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교육 현장 등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안을 계속 궁리하고 싶다.

  양 교수님께서 중시하신 즐거움은 나 혼자만의 즐거움에서 그칠 수 없다. 연못가에서 새와 짐승을 바라보며 즐기던 양혜왕이 맹자에게 현자도 이런 놀이를 즐기느냐고 물었다. 맹자는 “현자라야 이런 것을 즐겨한다(賢者而後樂此)”라고 답한다. 현자는 여럿이 함께 즐거워할 줄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래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공직자의 자세쯤으로 좁게 해석하기보다는 모든 배우는 이의 덕목으로 삼아봄직하다.


<5월 3일 한이봉 변호사님>

  법무법인 태평양의 한이봉 변호사님께서 국제거래에 있어서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 열강을 해주셨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기업의 M&A나 해외진출이 활성화되는 상황에 따른 변호사의 활동 영역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사내 변호사, M&A Vehicle 도입, 국내기업의 해외기업 인수, 국제적 반독점(Anti-Trust) 감시 활동, 법 준수 감사(Compliance Audit), 해외부패관행법(FCPA) 같은 새로운 활동 무대에 대해 관심을 기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자칫 소홀하기 쉬운 금융 기법에 대한 이해를 통해 경제 흐름을 읽는 노력을 이어가야겠다. 때에 맞춘다는 시중(時中)의 의미를 가슴에 새긴다. 끊임없는 변화에 맞춰가면서도 균형을 잡아봐야겠다.

  우리가 보통 의료 서비스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 의료 기술 자체의 문제보다는 긴 대기 시간 끝에 짧고 불친절한 진료를 받고 마는 경우에 대한 불만인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개선하는 것은 의료 시장 개방 여부와는 관계가 없는 문제다. 의료 시장 개방에 대비해 국제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는 첫걸음은 고객의 사소한 불만을 해결하는 것이다. 불만 고객의 클레임을 잘 해소하면 오히려 충성도(loyalty)가 높은 핵심 고객이 된다는 것은 마케팅의 상식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률 시장 개방 문제도 접근해 봄직하다. 아마도 대형 로펌들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서비스 정신의 구현에 있을 것이다.

  한 변호사님께서 언급해주신 변호사의 역할 가운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려고 애쓰고, 사후관리까지 챙기라는 말씀에 느끼는 바가 많았다. 이와 더불어 거래구조를 검토할 수 있는 혜안을 갖추는 것은 만만한 과제가 아닐 것이다. 한 변호사님은 책뿐만 아니라 일을 하면서 배웠던 본인의 경험을 술회하시면서 실습을 통한 체화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이를 통해 문제 해결자(Social Provider), 위기 관리자(Risk Manager)로서 가치 창출에 기여할 것을 오늘날의 변호사는 요구받고 있다는 가르침이 무겁다. “배움이라는 것은 장차 그것으로써 행하려고 하는 바이다(學者 將以行之也)”라고 정이천(鄭伊川) 선생은 말씀했다. 단순히 알고 있다는 수준을 넘어 시험 답안지에 정리해내고, 남에게 설명해줄 수 있고, 실제 업무에서 활용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정성을 들여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지 새삼 아득하다.

  국제거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고사 하나가 떠올랐다. 화담 서경덕 선생이 한 젊은이를 만났다. 눈이 멀었다가 갑자기 앞이 보였는데 자기 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화담 선생은 그 젊은이에게 눈을 감으라고 충고한다. 눈감은 젊은이가 예전처럼 지팡이를 짚어가며 집을 잘 찾아갔음은 물론이다. 이 고사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서 외부의 문물을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다시 너의 눈을 감아라(還閉汝眼)”라는 일갈은 개안의 미덕에만 열중하던 내게 폐안의 가치를 품게 해주었다. 자신의 잣대를 먼저 세워야 제 것으로 삼을 만한 것을 가려내는 안목이 길러지게 마련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세계화의 너울에 맞선다면 좀 더 슬기롭게 넘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변호사님은 강의 말미에 현재 할 수 있는 일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경쟁력을 찾으라고 조언해주셨다. 자기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일보다 120% 정도 높은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움직임과 행동을 혼동하지 말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곱씹는다. 나는 등 떠밀려서 움직이고 있는가? 자기가 선택한 걸음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나는 앞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가? 그저 차려주기를 바라는 식객에 지나지 않는가? 목표 세우기는 내 자신이 주인이 되겠다는 매운 의지를 벼리는 일이다.


<5월 10일 구상진 교수님(3)>

  아무런 의심 없이 영미법이라는 말을 많이 써왔다. 구상진 교수님께서는 미국의 건국 초기에는 영국보다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영국법을 계수할 상황이 아니었음을 짚어주셨다. 다만 선례구속의 원칙 같은 영미법의 공통된 원칙 등에서 영국법의 전통이 미국에 스며든 것을 엿볼 수 있다. 법학은 개념에서 시작해서 개념에서 끝나는 학문이라고 들었다. 섬세한 개념 정의를 하는 실력을 좀 더 연마해야겠다.

  구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신 이항녕 선생님의 풍토 법학은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었다. 시간, 공간, 사람이 합성된 종합체인 풍토라는 것은 상당 부분 동양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역사적, 구체적 특성이 법 내용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입법 과정에서부터 염두에 두어야 할 사안이다. 우리가 법이라고 지칭하면서 상정하는 공통된 원리에도 역사적인 특수한 제약이 있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 

  이항녕 선생님이 설파하셨던 풍토는 민족보다 넓은 개념이라고 한다. 이항녕 선생님의 법철학 저서를 살펴보니 세계사의 시원은 정신과 물질의 불가분적 결합체인 풍토적 자연이라고 한다. 자연적 조건을 무시하고 정신적 조건만을 중시하는 인종설과 자연의 물질적 조건만 강조하는 환경설은 각 일면의 진리는 있으나 전적으로 찬성할 수가 없다는 견해에 동감한다. “풍토적 배경 없는 법은 생활성이 없는 것이요, 생활성이 없는 것은 법이 아니다”라는 구절에서 보이는 ‘생활성’이라는 개념은 앞으로 법을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곱씹어야 할 대목인 듯싶다. 

  북송 시대 사마광은 황하 유역의 서북 지역 출신이었고 왕안석은 양쯔강을 중심으로 한 동남 지역을 대표했다고 한다. 주도권을 쥐고 있던 서북 지역이 전통주의를 주장했다면 신흥세력인 동남 지역은 신법(新法)으로 쇄신할 것을 주장했다. 이 사실을 접하고 지식인의 철학이나 정견이 온전히 그 개인의 것은 아니겠다고 생각했다. 시공간의 제약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요소(要素)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생각에 시공간과 인간이라는 요소를 눅여낼 때 그 사상이 좀 더 탄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와 환경을 톺아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법학도로서 살아야겠다. 

  구 교수님께서는 지금 당장은 역부족이라고 느끼더라도 최상급의 법조인을 많이 만나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스스로 이류나 삼류로 자리매김하지 말고 어떤 분야이든 일류가 되라고 충언을 해주셨다. 정신이 없으면 우발적으로 성취할 수 없다는 말씀에 그간 나태해졌던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수험생보다는 학생으로 살고 싶다고 자주 말해 왔다. 수험생과 학생을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수험생이 시험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라면 학생은 교육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 아닐까 막연히 추측하고 있다. 이 보금자리에서 훌륭한 스승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는 학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역부족이라는 말씀을 접하니 공자의 제자 염구가 “선생님의 도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에 부칩니다(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라고 고충을 토로한 대목이 떠오른다. 공자는 “능력이 부족한 자는 도중에 그만두게 마련인데 지금 너는 미리 금을 긋고 있구나(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라고 꾸중한다. 즉 중간까지는 가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계를 긋고 멈추는 자포자기한 상태를 질타한 말씀이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남들의 모습을 보고 지레 겁먹어 몸을 움츠리고 발을 뺄 궁리만 했던 건 아닐까 부끄럽다. 법학 공부는 획(畫)을 긋지 않겠다고 새삼 다짐한다.


<5월 17일 권남혁 변호사님>

  법무법인 로고스의 권남혁 고문변호사님은 어렵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이라고 역설하셨다. 힘들고 우울할 때 생각을 바꿔서 완전히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것을 조언하셨다. 100%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100% 긍정적인 현상이 전개된다는 말씀에 가슴이 설렜다. 강의 말미에도 행복에는 조건이 없으며 어떤 경우에도 행복할 수 있어야 진정한 행복이라고 귀띔해주셨다.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니 가장 먼저 라이프니츠가 생각난다. 라이프니츠는 신이 이 세상을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것으로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직도 넘쳐나는 악은 무엇이란 말인가?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반론한다. 그러한 악이 있기에 세상은 선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만일 악이 없다면 선한 것은 결코 선한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을 위해 있는 것이며, 불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을 위해 있다는 논변이다. 

  그는 비록 부분적인 악이 있다 할지라도 전체 속에서는 선한 것이며 무한한 신의 눈에는 결코 악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결국 악함이나 추함이나 불완전함 모두 우주의 질서를 위해 필요한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그의 견해를 ‘철학적 낙천주의’라고 하는데 언제 들어도 시원한 느낌이다. 내가 낙관주의자를 자처하고 다니는 건 사소한 현상에만 분노하다가 정작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지엽적인 것에 호들갑을 떠는 내 자신을 반성하며, 좀 더 길고 넓게 보고 대응하자는 마음에서 나온 구호다. “군자는 평생토록 지니는 근심은 있어도 일시적인 걱정은 없다(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라고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루아침의 걱정이라는 것은 이런저런 외부적인 조건을 의미할 것이다. 이에 반해 평생의 근심은 내면적인 고뇌이다. 내가 근심하는 것은 무엇인가?

  권 변호사님은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느냐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요약하셨다. 절차가 결론보다 중요할 수 있으며 절차를 중시할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존 롤즈가 설파한 반성적 균형(reflective equilibrium)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외부의 비판을 검토해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이라며 마냥 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시 한 번 평가하고 스스로 다시 궁리하여 보다 나은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중용(中庸)과 비슷한 개념이다. 결국 조금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자신의 직관적 판단이나 개인적 선호에서 시작하여 끊임없이 숙고하면서 적절한 상태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다. 여기서 반성적 균형 상태는 단순한 산술평균이 아니며, 숙고한 반성의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절차에 대해 좀 더 세심한 관심을 모아야 할 때이다.

  권 변호사님은 여기에다가 다수의 지지를 받은 사람 말고 소수의 이익도 보호해야 한다는 요건도 역설하셨다. 다수와 소수가 변동 가능한 것이 건전한 민주주의 사회일 것이다. 특정한 각성만을 강요하고 칭찬하는 건 한 사회의 구성과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그 불가피성을 이유로 남발될 때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겠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고양될수록 다채로운 각성이 만개할 텐데 나와 다른 견해를 경청하는 자세를 갖춰야겠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 제2장에서 이미 설득력 있게 논증했듯이 단 한 사람의 의견이라도 제약한다면 의롭지 못할 뿐더러 이롭지 못하기까지 하다. 교정의 대상이 아닌 교류의 대상으로서의 각성이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확신한다. 나도 그 풍요로움에 모래 한 알만큼이라도 보태길 희망한다.


<5월 24일 이만덕 변호사님>

  이만덕 인터로 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의 씀씀이에 대한 경계의 말씀으로 강연을 시작하셨다. 월 100만 원 정도를 받는 사법연수원생과 달리 로스쿨생은 특별한 수입이 없을뿐더러 만만치 않은 학비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도 절반쯤은 변호사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재정 운용이 헤퍼질 수 있음을 지적하셨다. 빚은 늘어나기는 쉽고 갚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님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사례를 많이 언급해주셨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운동 경기장을 즐겨 찾던 어느 변호사는 지금은 로펌에서 모셔가려는 인재가 되었다고 한다. 드라마 명대사를 즐겨 외우던 어떤 변호사는 작가들과 인연을 맺고 그네들의 자문 변호사로 활약한다. 사내 변호사를 하다가 중국 유학을 간 변호사는 학부 때의 중국어 전공을 살려 중국에 진출한 회사의 상근 부회장에 올랐다. 기존의 소송 업무와는 다른 길이 많으며 서비스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겼다. 아파트 하자소송에서 쌍방대리를 못하기 때문에 대형 로펌은 주로 원고보다 피고의 위치에 서게 되므로 개업 변호사나 중소 로펌은 원고 측의 대리를 할 수 있는 등의 여러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했다. 

  루쉰(魯迅)은 단편 「고향」에서 희망을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땅 위의 길에 비유했다. 누군가 먼저 간 땅 위를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고 걷다 보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경우가 있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토스카니니(Toscanini)는 본래 첼로 연주자였다고 한다. 그는 심한 근시였기 때문에 연주 시간에 제대로 악보를 볼 수 없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악보를 외웠다. 어느 날 연주회를 앞두고 지휘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벌어져 단원들 중에서 지휘를 맡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토스카니니는 악보를 모두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이 지휘자로서의 시발점이었다. 이처럼 자신이 딛고 있는 자리에서 충실한 삶을 살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이 변호사님은 로스쿨 생활에서 도움이 될 만한 태도를 설파하셨다. 먼저 옆에 있는 동기들을 경쟁자로만 생각하지 말고 동업자라고 넓게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그리고 너무 법리적으로 매몰되어 사고의 경직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셨다. 경제 위기 때문에 아파트 전매가 어려워져서 계약금을 날릴 위험에 처한 사안에서 조정 신청을 이끌어 내 계약금의 일부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이 변호사님의 경험담이 흥미로웠다. 또한 의뢰인이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잘 들어주는 자세를 갖추고 의뢰인이 의지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될 것을 주문하셨다. 이 변호사님은 경찰 입회를 많이 하시면서 경찰서 조사를 어려워하는 형사사건 당사자들에게 신뢰를 쌓았다는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셨다. 비슷한 맥락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통해 현장에서 새로운 의뢰인을 만날 수도 있음을 강조하셨다. 로스쿨 시대가 배출하고자 하는 변호사 상을 잘 정리해주신 듯싶다.

  이 변호사님은 사건 선임이 문제이지 사건 처리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역설하셨다. 새로운 사건이 주어지면 책, 동료, 선배를 통해 공부하면 된다는 것이다. 학교 공부가 현장에서의 활용과 다를 수가 있고, 배운 것이 바뀌는 경우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세상 모든 공부는 무상(無常)함을 빗겨나갈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이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깨닫고,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행복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풀이해본다.


<6월 1일 김현 변호사님>

  김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님은 강연 모두에 법률시장 개방의 개념을 명확히 설명해주셨다. 김 회장님은 영국 로펌이 전세계 법률시장을 장악한 것은 고객에 대한 완벽한 서비스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고 서비스 정신만이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국내 로펌이 갖춰야 할 요건이라고 역설하셨다. 세계화 담론이 요란하지만 진정한 세계시민이란 자기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한국 변호사는 한국 고객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21세기가 다중심성의 사회가 되었다고 보기는 조심스럽지만 역사상 세계는 어느 하나의 가치와 문화로 통일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보편성의 영역과 특수성의 영역이 저마다 충실하게 확장되는 형국이다. 법률시장 개방에 응수하는 우리의 자세도 보편적인 기준을 충족하려고 애쓰면서도 특수성에 대한 고민도 이어가야 한다.

  법률시장 개방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언급되는 독일의 경우에서 곱씹어볼 점이 많았다. 독일은 상위 10대 로펌 중 순수 독일 로펌은 2개만 남았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이면서 변호사의 공공적 (profession) 측면을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있었으나 사업가적(business) 측면이 중요시 되는 영미 로펌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시장이 잠식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시간당 청구(time charge)방식이 채택되면서 변호사 비용이 상승했고 변호사 간의 수입격차가 벌어졌다고 한다. 법률시장 개방은 국민의 법률서비스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데 주안점이 있지 반드시 법률서비스 부담을 낮추는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 듯싶다. 법률시장의 개방을 통해 사회 구성원이 좀 더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므로 더 행복해진 사람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다. 우리 변호사법 제1조에서 규정하듯이 한국 역시 독일 못지않게 변호사의 공익적 측면을 강조한다. 사적 측면을 보강하면서도 공적 측면에 대한 기여를 견지하는 변호사상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김 회장님께서는 국제화 시대에 국내 변호사들이 대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대형화 전략보다 더 방점을 두고 추구해야할 목표라는 말씀에 동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는 회원 변호사들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전공별 커뮤니티를 운영한다고 귀띔해주셨다. 이를 보며 이제 우리 사회는 평생에 걸친 지적 훈련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실감했다. 김 회장님은 해상법 국내 2호 박사이시다. 국내에서 해상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로펌의 대표변호사이기도 하시다. 김 회장님은 한 분야를 열심히 파고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확산되어 전공분야가 넓어진다고 말씀하셨다. 가령 해상과 금융, 해상과 건설이 연계되어 이해되는 것이다. 

  김 회장님께서는 지금 당장 전공분야를 정하고 전공 법과목을 많이 들을 것을 조언해주셨다. 개인적으로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천연기념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반년 전에 헌법재판소 경내에 있는 백송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사고의 틀이 넓어진 경험이 있다. 어떤 문화유산에서 인공미를 느낄 때 그 소재까지 헤아린다면 좀 더 복합적인 감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화유산의 모태가 되는 자연유산을 도두보는 혜안을 갖추는 셈이다. “옛날 문화재의 개념이 점이었다면 이제 점에서 면으로, 면에서 공간으로 확대”된다는 이인규 문화재위원장님의 말씀도 비슷한 맥락이다. 문화유산 감상이 넓어질수록 깊어지듯이 세상 모든 공부가 마찬가지다. 짐 콜린스의 『Built to Last』에서는 비전 기업들은 이상과 이익의 중간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이상과 높은 이익을 동시에 추구했다고 평가했다. 아마도 비전을 가진 변호사의 길도 이와 같으리라.


이 과목의 마지막 과제물은 미래의 법률가로서의 삶을 설계하는 <나는 이렇게 산다>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들의 잔치가 벌어졌지요. 인격 없는 지식이나 지식 없는 인격이 아니라 인격 있는 지식, 지식 있는 인격처럼 지성과 덕성을 결합해 앎과 삶의 숙명적인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 제가 그리는 삶의 모습인데 얼마나 실천에 옮길 수 있을는지요. 여하간 마지막 과제물의 도입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설마 이 잡글들을 다 읽으신 분이야 없겠지만 한 꼭지라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꾸벅

“저는 삶은 한 번 뿐이라고 믿습니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라는 명제를 지지합니다. 그래서 한 번 밖에 없는 생을 가능한 한 옳고 아름답게, 착하고 재미나게 살고자 합니다. 안연은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는 자라면 또한 그와 같아질 것이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임금이나 자신이나 모두 똑같은 사람인데 한 사람은 성인이 되고, 안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자책의 뜻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이 위대한 문장은 “터럭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율곡 이이 선생의 자경문에도 계승됩니다. 저 또한 그 호기로움을 본받아 목표로 삼습니다.“

Posted by 익구
:

학생과 수험생

잡록 2010. 5. 5. 21:36 |

나는 시험보다 교육에 주안점을 둔 것에 법학전문대학원의 대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험이 고급화될수록 교육과 상충관계가 된다. 모든 가치기준이 수험적합성에 맞춰지면서 법과대학의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된 경험을 반추해보면 알 수 있다. 시험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교육을 향한 노력도 평가하겠다는 명분을 늘 기억해야 한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닌 다방면의 교육으로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로스쿨을 도입한 만큼 변호사시험은 의사국가고시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의사국가고시의 합격률은 2010년 92.9%, 2009년 93.6%였다. 높은 합격률에도 별다른 시비가 없는 것은 의대 교육과정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종류의 경쟁을 설계해야 한다. 물론 경쟁이 늘어난다고 해서 경쟁의 강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경쟁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시험과 교육의 적절한 배합의 문제로 요약할 수 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하간 나는 ‘시험보다는 교육’이라는 법학전문대학원의 표어에 끌렸다. 그런데 그 교육이라는 것도 결국 잘게 나눠진 시험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내가 로스쿨에 진학한 까닭은 행복하게 공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수험생보다는 학생으로 살고 싶다. 수험생과 학생을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수험생이 시험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라면 학생은 교육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 아닐까 막연히 추측한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의 저자가 독일의 쿠벤 김나지움의 교장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흥미롭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통해 사고의 깊이와 인성이 고양되지 않은 지식인을 키우는 교육을 가장 경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곱씹을 만한 언설이다.


고령화 시대에는 젊은이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어른을 부양해야 한다. 이제 극소수의 승자만이 대접받는 시대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잠재성과 소질을 계발하도록 노력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인간을 생각하는 경쟁이 가능할까 막막하기는 하지만 경쟁이 심하더라도 그 안에서 보람을 찾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교육 현장 등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안을 계속 궁리하고 싶다.


일전에 김우창 선생님은 <자기가 선택하는 삶>이라는 칼럼에서 우리 사회가 젊은 시절이 없다고 탄식하셨다. 내면적 의미의 추구와 외면적 가치에의 순응 사이에서 고민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도 자기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삶을 성찰할 여유가 없다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한, 자아실현을 도모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남을 이기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에 몰두하기 십상이다. 배움이 지속가능하려면 책을 펼치는 순간만큼은 가슴이 뛰어야 한다.


학생이 인격 도야와 자기 수양에 바탕을 두고 공부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나 혼자만의 즐거움에서 그칠 수 없다. 연못가에서 새와 짐승을 바라보며 즐기던 양혜왕이 맹자에게 현자도 이런 놀이를 즐기느냐고 물었다.


맹자는 “현자라야 이런 것을 즐겨한다(賢者而後樂此)”라고 답한다. 현자는 여럿이 함께 즐거워할 줄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래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공직자의 자세쯤으로 좁게 해석하기보다는 모든 배우는 이의 덕목으로 삼아봄직하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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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하기의 어려움

2010. 4. 22. 02:50 |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기 카페에 올린 글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1.
지난 20일에 방영된 문화방송의 PD수첩에서 보도된 검사의 스폰서 파문을 접했다. 이번 법조비리 파문의 진실이 어디까지 밝혀질지 모르겠으나 틈틈이 관심을 건네봐야겠다. 근래에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우렁차다. 통상적으로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구별한다고 배웠다.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면 법의 지배보다는 법에 의한 지배가 될 공산이 크다. 법의 지배는 평평해야 한다.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게 기울어진 ‘편향된 법치’는 형용모순이다. 나는 또 부질없이 기대를 해본다.


어느 검사님이나 빼어난 재주를 지니신 분이실 텐데 태산이 무색하게 책을 읽은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라면 삶이 좀 허망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다. 이번 일을 목도하며 미래의 법조인은 인권감수성을 포함하는 전문성을 갖추되 특권의식은 버려야 함을 절감했다.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는 법조인에게 응당 보장되는 ‘권력’이란 없다. 소명적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를 잠시 맡아준 이에게 부여된 제한된 ‘권한’이 있을 따름이다. 더욱이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검찰청법 제4조)가 아닌가.


보통 사람도 전문지식을 공유하거나 전문분야에 참여할 기회가 늘어났기 때문에 법조 직역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강화된 추세다. 전문집단을 경원시하는 현상은 일장일단이 있지만 어느 직종에 종사하든 자신의 권위는 스스로에 대한 가치 부여를 통해 세워야 함을 알 수 있다. “다수자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다수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라는 워렌 미 연방대법원장의 말씀을 상기한다. 비단 법원에만 국한되지 않고 법을 배우는 이들이 품어야 할 화두가 아닐까 싶다.


2.
『점필재집』의 한 대목이다. 어느날 김종직 선생이 아버지 김숙자 선생께 병조판서 안숭선이 남의 뇌물을 받아 의금부에 체포되었다고 아뢴다. 아버지는 “안공이 뇌물을 받은 일은 비루하지만 죄의 정상(情狀)이 아직 명백하지도 않고, 그는 군자이고 재상인데 너 같은 젊은이가 무슨 연유로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탓하는가?”라며 타이른다. 내가 나보다 훌륭한 어른들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꺼내 보는 이야기인데, 단순히 봉건 윤리로 투덜대기에는 곱씹을 점이 있는 듯하다.


나처럼 천학비재한 녀석도 자기보다 빼어난 사람을 왈가왈부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 민주주의의 혜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권리는 절제해서 행사할수록 더 빛난다. 물론 비판하는 대상보다 반드시 뛰어나야만 비판의 자격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더욱이 공적 영역에 있는 인물을 비판하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엄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자기를 굽히고서 남을 곧게 하는 경우는 드문 듯싶다.


정도전 선생은 『경제문감』에서 암행어사는 남을 꾸짖는 사람이므로 “오직 스스로를 책망하기 어렵게 여기지 않아야 남을 책망하여 능히 그 임무를 다할 수 있다(惟其不難於責己 則施於責人 能稱其任矣)”라고 역설했다. 법률가 역시 남을 책망하는 일을 맡기도 해야 할 테니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본다. 스스로를 먼저 책망하는 자세가 있어야만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책(自責)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남 탓보다 자기 탓이 바지런한 사람을 좀 더 신뢰하기 마련이다.


3.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하다(待人春風 持己秋霜)”라는 『채근담』 구절을 많은 이들이 좌우명으로 삼는 것을 보았다. 자기에 대한 기준과 남에 대한 기준이 같아서 자기와 타인에게 동등한 잣대를 들이대기란 어렵다. 하물며 자신에게 더 촘촘한 쳇구멍을 제시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인 것 같다. 적어도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자리에 계신 분들이라면 자신의 쳇구멍이 너무 성긴 것은 아닌지 살필 일이다.


뒤숭숭한 소식이 날아오니 홀로 있을 때도 몸가짐을 삼간다는 ‘신독(愼獨)’이라는 문구에 눈길이 간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내밀한 행동이 한결같기도 난망한 일인데,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더 잘하려는 마음가짐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신독하면 오규원 선생의 「죽고 난 뒤의 팬티」라는 시가 떠오른다. 교통사고를 몇 번 겪고 나니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시다.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에 신경 쓰는 사람은 도무지 대충 살 수가 없다. 팬티로 눈동자를 굴리는 마음은 혼자 있을 때 경계하는 마음과 통한다. 나도 세월의 무게라는 핑계를 대며 때가 묻을 대로 묻어 남는 건 팬티 한 장의 깨끗함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첫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겠다. 우리 사회에 착한 법조인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선량함은 법조인의 덕목이라기보다는 모든 직업인의 윤리에 지나지 않을 테니 그런 바람을 자주 접하는 건 민망한 일이다.


내가 중간고사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더욱 스스러운 일이다. 쿨럭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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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티의 추억

잡록 2010. 3. 23. 23:39 |

2004년 11월 5일~6일 현대성우리조트
2005년 4월 1일~2일 강촌
2006년 3월 31일~4월 1일 대성리
2007년 3월 23일~24일 우이동
2008년 4월 4일~5일 우이동
2009년 3월 20~21일 우이동


대학교에서 반 활동을 시작하고부터 참석한 총엠티이다. 2005년부터는 총엠티가 1회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해마다 빠짐없이 참석했다. 나도 매번 시간이 나지는 않았을 텐데 이렇게 쫓아다닌 것을 보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대학원 입학 전에 동기 분들과 함께 갔던 엠티에서도 엠티비를 수납하고, 답사를 가고, 장을 보는 일을 거들었으니 엠티와의 인연이 질긴 듯싶다. 내가 즐기는 일이라고는 고작 술을 나누며 담소 나누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05년 엠티 때는 후발대로 온 04학번들을 제치고 아예 선발대로 먼저 도착해서 좌중을 놀라게 했다. 선배들은 보통 체면을 세우느라 일부러 늦게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배는 늦게 갈 권리가 있지만 우리 민법 제2조 제2항이 규정하고 있듯이 그 권리는 남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갓 선배가 된 친구들에게 괜히 늦지 말고 제때 가서 새내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곡진하게 부탁하는 게 주제넘은 참견이 아닐까 내 발밑이 늘 불안하다. 같이 노력하자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여주시길 희망한다.


06년 엠티 때는 후배들과 함께 후발대를 가게 되었는데 청량리역에서 기차표가 모자라서 무임승차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내가 다음 기차를 기다리든가 아예 엠티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시외버스를 타고 엠티 장소로 향했다. 나는 선배의 권위를 이용해 후배들을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끌고 다닌 셈이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을 덜 어기는 게 민주시민의 덕목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내가 좀 넘쳤던 것은 아닐까 늘 헛갈린다.


3월 22일 월요일에 민형기 헌법재판소 재판관님의 특강을 들었다. 민 재판관님은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술집을 함께 찾던 친구들이 무단횡단을 할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하셨다. 물론 모범답안은 친구들을 모두 이끌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다. 민 재판관님은 당신께서도 그 모범답안이 자신 없다고 하시면서 횡단보도를 안 건너고 갈 수 있는 술집을 제안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지난날의 나는 모범답안을 거의 지켰다. 그런데도 마냥 뿌듯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규범을 어떻게 준수하느냐는 참 어려운 문제다.


07년 엠티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우이동을 향했다. 나는 우이동이 적잖은 단점이 있으나 선배들이 뒤늦게라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도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이동행을 주창했다. 이때부터 우이동 엠티가 시작되었고 나는 지금도 모종의 책임의식을 느낀다. 사온 고기가 많았던지 밤새 삼겹살을 구웠는데 그 불판의 용사들이 그립다. 개중에는 어느덧 복학생 아저씨(?)가 된 친구들도 있다. 약한 불 때문에 한 시간 가까이 아침 라면을 끓이던 인내의 달인들도 아마 더 멋진 사람이 되었으리라.


08년 엠티가 열리던 날에는 금융론 과제를 하느라 금산분리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4학년이던 나의 마지막 경영대 전공이어서 애정을 쏟은 과목이었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고 말았다. 근처에서 머물던 04, 05학번들을 규합해 택시 세 대에 나눠 타고 위풍당당하게 후발대를 꾸렸던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졸업생으로서 참석한 09년 엠티는 집에다가 야식을 좀 먹고 온다고 말씀드리고 참석했다. 실제로 야식을 먹긴 먹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지만 야식을 조금 멀리서 조금 길게 먹은 셈이다.^^;


이번 금요일에 어김없이 학부 총엠티 기간이 돌아왔다. 문득 지난 엠티의 추억들을 돌아보니 가슴이 짠하다. 내가 몸 담았던 과반은 규모가 비교적 큰 조직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편이다. 삼월에는 북적이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반보다 더 즐겁고 보람된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가게 된다. 나는 내 자신이, 그리고 내 둘레 친구들이 마음을 재까닥 옮기기보다는 하나둘 떠나가고 난 빈 자리를 늦게까지 어루만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번 금요일 밤에는 우이동을 거닐 듯하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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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학기에 수강한 <문학 속의 법> 강의에서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에 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이 잡글은 2008년 4월 30일 발표 초안을 보강한 글에다가 2009년 2월 1일 수정한 것입니다.

사형제란 소재는 대부분 존폐론을 대비시키고 관련 현황 및 통계를 정리해 자신의 생각을 부연하는 식으로 접근합니다. 좀 더 색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지만 딱히 묘안은 없었네요. 그래서 법경제학에서 논하는 실증적 연구를 좀 찾아봤는데 별무신통입니다.

발표를 준비하며 찾아본 자료를 짜깁기한 터라 완결성이 떨어집니다. 제 멋대로 편집한 결과물을 공유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올립니다. 제법 시일이 지났지만 본문 내용은 크게 다듬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래 5장으로 구성된 글입니다만 5장은 생략하고 별도의 글을 만들 계획입니다.


1. 베카리아와 『범죄와 형벌』

  1738년에 태어난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는 이탈리아의 계몽사상가로서 근대 형법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1764년 베카리아가 26세에 쓴 『범죄와 형벌』이라는 책에서 사형제 폐지를 최초로 주장한 사상가로 이름을 남긴다. 사형제 폐지 움직임이 그 이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처럼 체계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역설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베카리아를 맨 앞자리에 두는 것은 온당하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1829년에 발표한 『사형수 최후의 날』이라는 소설 서문에서 “66년 전 베카리아가 만든 틈새를 최선을 다해 넓힐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듯이 베카리아의 논설은 그 뒤로 이어진 사형 폐지론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당시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대체로 사형에 반대했다. 그런데 이네들이 사형을 반대하는 근거는 도덕이나 신학적 논리에 기대기보다 사회계약론과 형벌의 유용성 또는 범죄의 예방가능성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베카리아의 목소리를 좀 들어보도록 하자(이하 Cesare Beccaria 저, 한인섭 역, 『범죄와 형벌』, 박영사, 2006. 인용).


  형벌의 목적은 오직 범죄자가 시민들에게 새로운 해악을 입힐 가능성을 방지하고, 타인들이 유사한 행위를 할 가능성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형벌 및 그 집행의 수단은 범죄와 형벌 간의 비례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정신에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인상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수형자의 신체에는 가장 적은 고통을 주어야 한다(49쪽).


  베카리아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관점에서 형벌을 바라본다. “쾌락과 고통은 감각을 부여받은 존재에 있어 행동의 유일한 동인(動因)(30쪽)”이라고 생각해 인간 행위의 원동력을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로 보고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 형법을 구현할 것을 주문했다. 베카리아는 “범죄자가 형벌을 통해 받은 해악이 범죄로부터 얻는 이익을 넘어서는 정도(108쪽)”의 형벌이면 충분하다고 논술했다. 범죄만이 사회적 악이 아니라 비례성을 잃은 처벌도 사회의 악임을 지적하는 탁견을 선보인다. 죄질에 견주어 처벌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울 경우 범죄 예방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형제를 당위론적 측면에서 간단히 주장하기보다는 한결같은 논지 위에서 사형이 범죄 예방에 실효성이 떨어짐을 논증하고 있다.
 

  아울러 사회계약설을 토대로 해서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권능을 타인에게 기꺼이 양도할 자가 세상에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인간이 사회계약을 맺는 이유는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인데 생명에 대한 권리마저 위임한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생명은 인간의 이익 가운데 가장 큰 이익이므로 자신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를 사회에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연장선상에서 “경미한 범죄에 있어 피해자가 용서함으로써 가해자가 처벌을 면하는 경우(128쪽)”를 고찰한다. 그는 이 자애롭고 인도적인 행위가 공공선에 반할 수 있음을 꼬집는다. “피해자인 한 시민은 그 권리 가운데 그 개인의 몫만큼은 포기할 수 있지만, 타인들의 몫에 속하는 부분을 무효로 할 수 없(128쪽)”다는 언설에서 형벌권은 한 개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계약의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한다는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50조 등 위헌소원에서 사형제도를 7대 2로 합헌으로 판시했다(헌재 전원재판부 1996.11.28. 95헌바1). 다수의견은 생명권을 법률로 제한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위배될 소지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고 중대한 공공이익을 침해한 경우에 국가는 어떠한 생명 또는 법익을 우선하여 보호할 것인가의 규준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절대적 가치를 지닌 생명에 대한 법적 평가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다수의견에 반대한 소수의견도 있다. 베카리아는 생명권은 절대적 기본권으로서 제한할 수 없다는 소수의견에 찬동했을 것이다.


2. ‘사형에 대하여’ 내용과 그 비판

  인간의 정신에 무엇보다 큰 효과를 끼치는 것은 형벌의 강도(强度)가 아니라 그 지속도(持續度)이다. 우리의 감수성은 강력하지만 일시적인 충동보다는 비록 미약하더라도 반복된 인상에 의해 훨씬 쉽게, 영속적으로 자극 받기 때문이다(113쪽).


  종신노역형은 수형자보다 구경꾼에게 더 큰 공포를 안겨준다. 구경꾼은 수형자가 당하는 불행한 순간 순간의 고통의 합산을 고려하지만, 수형자는 눈앞의 순간의 비참함에 사로잡혀 미래를 생각할 여력이 없다(117쪽).


  격정적인 분노와 전쟁의 필요성이 사람들에게 유혈을 가르쳤다면, 인간의 행동을 순화시켜야 할 법률이 잔혹한 본보기를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 사법적 살인은 신중하게 그리고 격식을 갖추고 집행되는 까닭에 훨씬 더 유해한 것이다(119쪽).


  베카리아는 사형은 혹독함은 갖추고 있지만 지속성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사형이 한순간에 강렬한 인상을 주더라도 망각의 힘을 이길 수 없다고 봤다. 흔히 하는 말로 사형 집행 장면을 보면 사형에 반대하게 되고 흉악한 범죄 광경을 목격하면 사형에 찬성하게 된다고 하지만 베카리아는 이와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한 셈이다. 여하간 종신노역형이 처벌의 지속성과 범죄의 예방에 더 보탬이 된다는 주장은 그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베카리아의 유지를 이어가겠다고 서술한 위고의 『사형수 최후의 날』에서는 이와 관련한 대목이 나온다. 주인공인 사형수는 도형장(徒刑場)에서 고생하는 죄수들을 보며 목에 도형수의 쇠고리를 차느니 기요틴의 칼날에 목을 맡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형이 임박해오자 낙인이 찍히는 종신 도형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도형수, 그것은 아직 살아서 걷고, 오고 가며, 태양을 본다”라며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임으로써 사형의 비인간성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베카리아 역시 사회계약설이나 범죄 예방의 효율성만으로 사형제를 접근하지는 않았다. 사법적 살인은 상당한 연구와 격식을 갖추고 집행되는 까닭에 전쟁보다 더 유해하다며 규탄한다. 정의의 이름으로 동류(同類)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인류의 자존감을 해칠 것을 걱정했다. 인권 감수성의 훼손을 염려한 듯하다. 이러한 베카리아의 언명에 대한 논박도 만만치 않다. 칸트는 “형법은 정언명령이다(Das Strafgesetz ist ein kategorischer Imperativ)”라고 단언한다. 칸트는 형벌은 오직 범죄자의 책임에 대한 절대적 응보로서의 의미만을 지닐 뿐이지 형벌을 통해 일반인의 범죄 예방효과를 꾀하는 등과 같은 다른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목적에 종사하는 수단으로 다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칸트는 살인자도 자유의사의 행위자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살해했듯이 그를 같은 방법으로 대접하는 것이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길이라는 취지다.


  칸트는 응보의 권리만이 형벌의 질과 양을 명시할 수 있으므로 사람을 죽이면 자기도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봤다. 고통은 많아도 종신형에 복역하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형벌은 베카리아처럼 범죄자의 동의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을 받을 만한 행위를 하려는 의지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고 위에서 “섬에 사는 사람들이 그 섬을 버리고 흩어지기로 결의한 경우에 감옥에 남은 마지막 살인자를 처형하고 떠나야 한다”라는 발언이 나왔다. 칸트가 하늘이 무너져도 세우려고 했던 정의는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자에게는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다. 오늘날 낡은 이론으로 치부되는 응보형이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는 일차원적인 복수 감정을 넘어서는 일리가 있다. 존 그리샴(John Grisham)의 『타임 투 킬』에는 공권력이 자신이 행할 보복을 대신해주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직접 보복에 나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사형(私刑)이 난무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마냥 무시하기 힘들다.


  헤겔은 “사형집행은 국가와 질서 유지 차원에서가 아니라 윤리적 질서의 절대성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인간이 올바른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 행위가 옳은 것이기 때문이지 형벌이 무서워서는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개와 같은 자율성이 없는 존재로 봐서는 곤란하다며 통박했다. 헤겔은 칸트와는 달리 한 인간이 사형을 받는데는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베키라아의 견해에 일단 동조한다. 하지만 헤겔은 베카리아의 국가 개념을 부인했다. 헤겔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자유가 함께 실현되는 공동체를 이상적인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공동체를 헤겔은 “인륜(Sittlichkeit)”이라고 표현한다. 헤겔은 인륜의 실현하는 도구로서의 국가는 개인의 의사와는 별개로 그 자체의 독자적인 근거 내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가 개인의 상위에 있는 전체주의 국가관에 입장에서 국가의 질서유지를 위해 사형이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앞서 살펴본 헌재의 사형제 합헌 다수의견에서 규준을 제시하는 국가라는 표현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또한 헤겔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변증법을 통해 사형제를 옹호했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범죄자는 다른 이성적 존재를 파괴하는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금 부정하는 것이 바로 변증법적 구조다. 즉 법은 정명제(These), 범죄는 반명제(Antithese), 형벌을 부과해 새로운 법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합명제(Synthese)라고 봤다. 그는 형벌의 남용을 우려해 등가적 응보를 고안했고 이에 따라 살인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 불가피하게 된다. 이성적 국가라든가 절대정신은 사회계약과 마찬가지로 관념적인 개념이다. 둘 다 인간의 존엄성을 논하면서도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어 흥미롭다.


  베카리아는 범죄를 저지를지 여부는 모두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고 봤다. 실증주의 범죄이론에 따르면 범죄가 자유의지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들과 결합하여 발생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진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E. Durkheim)은  범죄의 원인이 개인의 이기적인 행위나 내재적 결함에 있기보다는 사회적 분업이 발달하면서 생기는 무규범 상태(anomie) 등 사회적 환경과 구조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의 법의학자 롬브로소(C. Lombroso)는 생래적 범죄인설을 주창하며 태생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의 존재를 가정했다. 범죄자에게는 일정한 신체적 특정이 있으며 선천적인 범죄적 소질이 발현되어 필연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견재는 요즘 논의되는 사이코패스와 잇닿는다. 묻지마 범죄를 저질러도 별다른 죄책감이 없는 반사회적 성격의 사이코패스는 사형을 비롯한 형벌 제도 전반에 대한 고민을 품게 한다. 비슷한 고민을 했던 롬브로소는 사형으로 유해한 종을 멸종시켰기 때문에 인류가 행복을 누린다고 주장했다. 관련 탐구의 귀추가 주목된다.


3. 처벌의 강도와 지속도, 그리고 확률

  베카리아는 사형을 논하며 형벌의 강도보다 지속도가 더 큰 범죄 억지효과를 낳는다고 봤다. 이와 더불어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형벌의 잔혹성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에 있다(106쪽)”라고 목청을 높인다. 형벌이 비록 온건하더라도 확실하기만 하다면 충분한 억제효과를 발휘하며 “형벌이 잔혹해질수록 범죄자는 그 처벌을 피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107쪽)”라고 역설한다. 법경제학에서는 처벌의 강도와 지속도의 관계에 대한 연구보다는 처벌의 확률과 강도가 범죄의 빈도에 미치는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대체로 경제학자들은 처벌의 확률과 강도가 범죄의 빈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사회학자들은 합법적 분야의 취업시 소득수준, 반사회적 성향 정도와 같이 처벌의 확률과 강도를 제외한 기타 변수들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본다. 양자택일의 문제라기보다는 복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베카리아가 그런 주장을 내놓을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인권이나 생명권에 대한 저변이 넓어진 시대적 분위기도 한 몫을 담당했으리라 추정된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가 비교적 낮았던 이전 시대에는 사형의 강도가 지금보다는 세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형의 종류를 다양화하여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십자가형이나 능지처참 같은 좀 더 잔혹한 사형을 부과함으로써 처벌의 강도를 높이려고 했다. 그러나 베카리아가 살던 시대에는 사형의 강도가 이전보다는 크게 계산되었기에 사형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할 사유의 여백이 생겼다. 여담이지만 서양의 중세에는 처벌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강도 높은 처벌을 하기로 했다. 중세에는 독살자를 가려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처벌을 강화해 기름으로 삶는 형벌에 처했다고 한다. 19세기 미국 서부에서는 말 도둑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고 19세기 이전의 영국에서는 조직화된 경찰력이 없어서 처벌 확률이 낮기 때문에 그리 중하지 않은 범죄에도 사형이 남발되었다(Richard A. Posner 저, 정기화 역, 『법경제학 (상)』, 자유기업원, 2003. 참조).


  1968년 베커(G. Becker)는 처벌확률에 반응하는 탄력성이 처벌강도에 반응하는 탄력성보다 크다는 것을 증명하고 처벌의 강도를 높이고 확률을 낮추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1980년 위트(A. Witte)의 연구 결과를 보면 과거에 높은 처벌의 강도와 처벌의 확률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사회복귀 후 상대적으로 새로운 범죄를 덜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한 범죄의 경우에는 범죄를 줄이는 데 처벌의 강도가 처벌의 확률보다 더 영향력이 크고, 반면에 경한 범죄의 경우에는 처벌의 확률이 처벌의 강도보다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범죄유형을 종합해 보면 처벌의 확률, 즉 처벌의 확실성이 처벌의 강도보다 범죄 억지력이 있다고 나왔다. 1983년 마이어(S. Myers)의 연구에서는 처벌의 확실성보다 처벌의 강도가 범죄 억지력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1991년에 발표한 그로거(J. Grogger)의 연구는 처벌의 확실성은 범죄억지에 명확히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으나, 처벌의 강도는 그 영향력이 대단히 미미하여 통계적 유의성도 없음을 보이고 있다. 학계에 지배적인 합의는 없으나 최근에 처벌의 강도보다 처벌의 확실성을 보다 강조하는 연구 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추세다(박세일, 『법경제학』, 박영사, 2000. 407~413쪽 참조).


  베카리아가 강조한 처벌의 지속도라는 개념은 포스너(R. Posner)에게 공박 당할 소지가 있다. 포스너는 범죄자의 시간 할인율이 상당하다면 추가된 수감 기간은 그만큼의 고통을 가져다주지 못함을 간단한 계산으로 보여줬다. 할인율이 5%일 경우 10년의 형량은 1년 형량의 7.7배이고, 20년 형량은 12.5배 정도의 기간으로 느껴진다. 할인율이 10%로 늘어나면 10년 형량은 6.1배, 20년 형량은 8.5배에 그친다. 이 때문에 그는 범죄자의 시간 할인율이 상당히 높다면 사형은 극도의 중죄에 대해 불가피한 처벌 방법이 될 것이라고 봤다. 그의 말대로 범죄자의 현재시간 선호도 혹은 현재소득 선호도가 높아서 10년 징역과 20년 징역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경우 범죄 억지효과를 높이지도 못할뿐더러 국가적으로는 큰 처벌비용만 지출한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측정하기 까다로운 시간 할인율이나 현재시간 선호도를 놓고 사형의 필요성을 논하기는 여러모로 무리가 많지만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건 분명하다. 베카리아는 경제분석에 처음으로 수학을 이용한 저술로도 유명한데 이러한 시간 개념을 인지했기 때문에 형벌을 받는 자보다는 보는 사람에게 더욱 공포심을 심어준다고 설파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일반 국민이 사형과 종신형(혹은 무기징역)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따져볼 가치가 있다.


4. 사형의 범죄 억지효과에 대한 논쟁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형의 범죄 억지효과를 놓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진다. 기본적으로는 사람들이 형무소 생활에 비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있다. 만약 죽음을 형무소 생활보다 가혹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때는 사형이 살인의 기회비용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러한 가정이 성립할 때 비로소 사형이 억지효과를 지닌다. 사형과 살인율 사이의 경험적, 실증적 연구가 적잖았다. 사형제가 살인에 대한 억지효과를 지니는지 여부에 대한 많은 경험적 연구는 서로 다른 결과를 보여 준다. 억지효과를 지지하는 분석에서부터 억지효과는커녕 베카리아의 주장처럼 사형제로 말미암아 오히려 범죄가 더 흉포해진다는 추론도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최근 신뢰나 협력 같은 사회자본의 긍정적 효과를 조명한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회자본이 경제발전의 독립변수인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 결과는 모호하다. 사회자본이 경제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발전으로 인하여 사회자본이 형성될 여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사회자본은 경제발전의 상호변수이거나 심지어 종속변수일 가능성도 있다.


  사형제와 범죄 억지효과를 탐구할 때도 이런 애매함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셀린(T. Sellin)은 사형의 존재가 살인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범죄 억지효과를 가진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셀린은 사형제도가 있는 주와 있지 않은 주의 살인율, 사형제도가 있는 주와 있지 않은 주의 경찰관 살인율, 그리고 사형이 폐지되었거나 부활된 관할의 살인율을 각각 비교했다. 이 결과 사형제도가 있는 주의 평균 살인율이 없는 주의 살인율보다 높았으며 사형이 경찰관의 살인율을 낮게 하는 상관성도 없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형제의 폐지와 부활에서도 부활이 살인율 감소와 일관되게 연관성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셀린의 연구 설계가 정치하고 세련되지는 못했으나 사형 반대론자에게는 광범위하게 수용된 경향이 있다. 이 밖에 멕케(D. Mckee)와 세즈노비츠(M. Sesnowitz)이 구성한 살인과 형사사법체계의 상호작용모델에서도 범죄 억지가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기브스(T. Gibbs)는 처벌의 확실성과 가혹성이 살인율과 역으로 관계하는데 이 중 처벌의 확실성이 처벌의 가혹성보다 살인율에 아주 강하게 관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티틀(C. Tittle)은 처벌의 확실성과 범죄간의 관계가 역관계에 있고, 처벌의 가혹성과 범죄간의 관계에는 정관계에 있음을 발견했다(살인은 예외). 기브스와 티틀은 사형의 억지효과를 검증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처벌의 범죄 억지가설을 지지하고 있다. 에리히(I. Ehrlich)의 분석에 따르면 검거?체포확률, 체포에 의한 유죄결정확률, 유죄결정에 의한 집행의 확률 순으로 억지변수와 역관계가 나타났다. 살인율과 이 세 가지 변수간의 관계는 통계적 유의미성을 지녔으며 사형 또한 살인에 억지효과를 지닌다는 결론이었다. 억지효과를 수치로 제시한 경우도 있는데 울핀(K Wolpin)은 사형 한 단위의 집행이 네 단위만큼의 살인수를 줄이게 된다고 보았으며, 융커(J. Yunker)는 한 명에 대한 사형집행이 156명의 살인을 억지 시킨다고 발표하기도 했다(이상안, 『범죄경제학』, 박영사, 1999. 150~165쪽 참조).


  이러한 백가쟁명 백화제방(百家爭鳴 百花齊放)의 분석 대신 직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통계 결과도 다채롭다. 캐나다는 살인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기 직전인 1975년의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이 3.09명이었는데, 2001년에는 1.78명으로 줄어들었다. 1975년에 비해서 43% 감소한 셈이다. 한편 영국은 1965년 사형제를 폐지했는데 이후 20년 동안 살인 범죄가 60% 증가했다. 더욱이 이 기간 동안 우발적 살인과 계획적 살인의 비율이 72:28에서 59:41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형의 위험이 없어져서 치밀한 계산 하에 자행되는 살인이 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 때문에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에서 흉악 범죄가 증가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치안 상태가 양호했기 때문이지 사형제 폐지가 독립변수가 되어 범죄율을 낮춘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도출된다. 하지만 대체로 사형제도와 살인율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이 많은 듯싶다. 유엔이 실시한 1988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사형제를 폐지하더라도 범죄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추측은 근거가 없는 것이며, 사형제도가 종신형에 비하여 살인 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여 년간 미국의 사형 존치주와 폐지주 사이의 살인범죄율 비교 결과 사형 존치주의 인구 10만 명당 평균 살인범죄율은 5.3명으로 폐지주의 2.8명에 비해 높았다.


  이 밖에도 사형이 종신형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기존의 인식을 비판하며 사형을 종신형으로 바꾸면 상당 액수의 세금을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법경제학의 분석틀을 이용해 사형제를 헤집어보려는 시도는 안개 속을 거니는 기분을 자아낸다. 마치 산발적으로 보도되는 의학 관련 기사들의 종합하면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게 되는 혼란상과 비슷하다. 다만 사형제가 윤리적, 법리적 문제로만 접근하기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부딪치는 문제임을 짐작케 해준다. 앞으로 법경제학 등의 실증적 연구가 정교해져서 억제효과에 대해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형 존치론과 폐지론은 몇 가지 통계 수치로 결판날 사안은 아니다. 사형제는 상대적 찬반보다 절대적 찬반의 비율이 여느 사회적 다툼보다 크다는 점도 사안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사형의 위하효과가 너무 작다고 해도 존치론자들의 정의에 대한 열망을 쉽게 눅이지는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형의 억제효과가 무척 크다고 해도 폐지론자들의 인류애를 헝클어뜨리기는 힘들다. 양측의 화해할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는 사회적 합의를 더디게 만든다. - [無棄]

Posted by 익구
:
졸업생이 대학도서관 쓰려면 100만원 기부하라? (기사 클릭)

이태윤님께서 오마이뉴스에 대학 졸업생 대출 제도 관련 기사를 기고하셨습니다. 나눠 읽고 싶어서 링크를 겁니다. 기사 말미에 저도 인터뷰이로서 잠깐 등장합니다.^^; 이태윤님께서 주신 질문에 대한 서면 인터뷰 답변을 작성하면서 일전에 제 블로그에 올린 <졸업생에게도 도서 대출을!>이란 잡글을 상당부분 재인용했습니다. 제 의견이 크게 바뀐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정보 갈무리해주신 이태윤님께 다시금 감사합니다.^^


1. 졸업생이신데 필요한 책들은 어떻게 구해 보시나요?

제가 졸업한 학교는 열람실 이용과 자료 열람 및 복제 등은 허용하지만 자료 대출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도서관 홈페이지 상에서 ‘대출불가 사용자’로 분류되는 것을 보고 졸업을 실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도서 대출 예약제를 실시하는 학교이다 보니 이용도가 높은 도서의 경우 예약이 불가한 졸업생은 거의 열람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정말 보고 싶은 책의 경우에는 후배들이 대출한 책을 얻어서 보기도 했습니다. 도서관 열람시간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열람 중에 누군가 대출해가면 독서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부득이 후배들에게 부탁해 책을 좀 나눠보기도 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죄다 빌려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새책이나 헌책을 사게 됩니다. 실제로 졸업한 이후에 평소보다 책을 더 많이 구매한 것 같기도 합니다. 설령 중고도서 시장이 활성화된다고 해도 한계가 있겠지요. 모든 종류의 책이 헌책으로 나와도 그것을 다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취업을 준비하거나 대학원 등의 진학을 준비하는 졸업생들은 봐야 할 책은 많으면서도 별다른 수입이 없으니 개인의 구매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올 3월부터 대학원에 진학하는데 입학하는 학교 역시 현재는 졸업생 대출을 허용하지 않는 학교이다 보니 벌써부터 살짝 걱정입니다.^^;


2. 많은 대학이 졸업생 대출 예치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따라 금액 차이가 큰데요. 본인의 경우 얼마까지 예치금으로 납부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기사에 나오는 표를 참고해주세요)

저는 책을 많이 빌려보려고 하는 편이기 때문에 비교적 높은 수준의 예치금을 치룰 의향이 있습니다. 예치금이 가장 높은 수준의 학교가 30만 원 정도이던데 그 정도까지도 별 다른 거부감이 없습니다. 예치금이 아닌 연회비를 내야하는 학교의 경우 10만 원 정도면 높은 수준이던데 그것도 납부할 의사가 있습니다. 최고 수준의 예치금과 최고 수준의 연회비를 모두 내야한다고 해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부득이하게 운영하는 예치금이나 연회비 제도는 상징적인 수준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기에 따라 돈으로 차별하는 인상을 풍겨서 섣불리 주장하기는 어렵지만 도서 대출 이용도에 따라 지불하고자 하는 액수가 다를 테니 조금 차등화 하는 방향도 고려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예치금만 납입하면 2권을 대출해주고, 예치금에다 연회비까지 납부하면 3권까지 대출해주는 식의 차등 말입니다. 오죽 답답하다 보니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졸업생에게 도서관 이용 방식을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료실 열람은 기본적으로 허용하되, 도서 대출과 열람실 이용 가운데 선택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열람실 이용보다는 도서 대출이 긴요한 저 같은 처지의 사람이 적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재학생들에게 갈지 모르는 피해를 축소하는 방법의 하나로 고안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의 세세한 조치가 학교에서 실시하기에 비교육적인 처사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자 하는 이에게 아예 기회를 제약하는 것이 더욱 비교육적인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도서 열람과 도서 대출은 엄연히 다른 수준의 조치입니다. 저 또한 장기적으로는 졸업생에게도 도서 대출의 제약이 없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학교마다 처한 사정에 따라 당장 한정된 자원을 대폭적으로 늘릴 수 없다면 이런 식의 제약을 두고, 점차 줄여나가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3. 예치금이 아닌 대학발전기금을 내고 책을 빌린다면 사용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기사에 나오는 표를 참고해주세요)

위의 질문에서 답변 드렸듯이 가능한 한 높은 수준까지 지불할 의사가 있습니다. 도서관 대출 이용을 위한 납부인만큼 도서 구입비로 한정해서 사용하는 도서구입기금 같은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좀 더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지만 대학발전기금이도 크게 시비 걸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대학발전기금으로 100만 원씩이나 납부해야 하는 경우가 있던데 졸업생 대출이 긴요한 처지에 있는 분들의 평균적인 지출 여력을 헤아려볼 때 다소 과도한 감은 있습니다.


대학발전기금이라는 명목 대신 동문회비라는 명목의 돈을 납부하면 책을 빌려주는 경우도 있는데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평생회원 자격의 동문회비를 한꺼번에 납부하도록 해서 일시불을 요구하는 경우는 1년 남짓한 기간 동안만 졸업생 대출을 이용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부적절한 제도인 듯합니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동문회 차원에서 졸업생 대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모습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장기간에 걸쳐 졸업생 대출 이용을 할 의지가 있는 분들에게는 큰 금액을 일시불로 납부하게 하더라도, 단기간에 걸쳐 졸업생 대출 이용을 하려고 하는 분들에게는 예치금이나 연회비 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졸업생 대출이 불가능한 처지이다 보니 예치금, 연회비, 대학발전기금이라도 내고 대출이 가능한 학교가 모두 부러울 따름이지만 이미 졸업생 대출을 허용하는 학교에서도 좀 더 세분화된 정책을 마련하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합니다.


4. 졸업생에게 대출을 허락하지 않는 학교에서는 재학생에게 피해가 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학교 측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실제로 졸업생들이 졸업생 대출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나서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혹시라도 재학생들의 도서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다면 책을 빌려보는 마음이 그리 즐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학교 측에 도서관과 관련한 자원을 확충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겠지만 그것은 점진적인 과제이지 단시일 내로 해결될 성격이 아닙니다. 보고 싶은 책을 제때 못 보는 불편함은 누구에게나 크겠지만 재학생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동감합니다. 그래서 졸업생들이 예치금 등의 금전적인 지출을 감수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대학도서관에서는 보통 국내 단행본의 경우 한 종류의 책을 두 권 정도 구매합니다. 요즘에는 대학들이 등록금을 함부로 올리지 못하는 분위기다 보니 도서관 예산 역시 동결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한 권만 구매하는 경우도 적잖은데 대다수 학교도 비슷한 사정인 것 같습니다. 2008년 이후에 대학도서관들이 국내 단행본 구입에 소극적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여하간 한두 권의 책을 여러 학생이 돌려봐야 하는데 여기에 졸업생이 동참하고, 연체 문제까지 발생하게 되면 재학생들의 피해가 더욱 가중될 염려가 있습니다.


어떤 대학들은 지역 주민에게도 도서관을 개방한다고 들었지만 대학 당국이 우선 졸업생들에게 도서 대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셨으면 합니다. 대학도서관이 갖춰야 할 공공성 이전에 자기 몫의 사사로움을 다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재학생에 비해 더 적은 권수를 더 짧게 빌려주고, 연체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다면 마냥 불가한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재학생 입장에서는 당장은 조금 불편한 점이 늘어날지 모르지만 재학생들도 언젠가는 졸업생이 되는 만큼, 이런저런 제약조건을 붙여 졸업생 대출을 허용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5. 동네 도서관(시립, 구립)이 있는데 굳이 대학도서관을 이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졸업한 이후에 동네에 있는 공공도서관을 이용할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은 장서를 보유하는 양상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개인적인 독서 취향 때문에 공공도서관보다는 대학도서관에 필요한 책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전공서적이나 학술서적은 대학도서관 사정이 낫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찾지 못했지만 장서수나 시설 면에서 공공도서관을 능가하는 대학도서관이 많을 것입니다. 대학도서관은 공공도서관에 견주어 절대적인 숫자는 적지만 장서수는 훨씬 많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도서관 관련 통계를 신문기사 검색을 통해 산발적으로 접했는데 앞으로는 도서관 관련 통계가 체계적이고 주기적으로 관리되길 바랍니다.


여하간 대학도서관이 공공도서관에 비해 장서수는 많지만 이용객수는 적다는 조사 결과도 본 기억이 납니다. 물론 대학도서관은 그야말로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니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학도서관 개방 목소리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개방의 시발점은 졸업생 대출 확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악한 공공도서관 상황 때문에 주민들에게 대학도서관 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을 당장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면 학교 구성원이었던 이들을 먼저 보듬어야 하지 않을까요?


6. 졸업생 도서 대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저는 궁극적으로 졸업생이 아무런 제약 없이 도서 대출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앞으로 대학을 평가할 때 졸업생 대출 여부 같은 도서관 관련 규정에 대한 평가도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제가 졸업생 대출이 허용되지 않는 불편함을 토로하지만 심지어 휴학생에게도 도서 대출이 까다로운 학교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상당수 대학의 재정 운용에서 도서관 예산이 후순위로 밀려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모아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끝으로 졸업생 대출을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을 책값이나 좀 아끼려는 심보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대출을 요구하는 분들은 도서관이 도서관다워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도서관이 본연의 기능을 잃고 독서실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많이 접했습니다.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 곳이면서도 빌려주는 곳입니다. 대학도서관이 책을 빌려주는 일에 너무 인색하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 책을 빌려보지 못한다면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입니다. 저는 ‘도서 복지’라는 말을 꺼내보고 싶습니다. 졸업생 대출 허용을 비롯한 도서 복지는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국민의 문화생활에 이바지하는데 큰 보탬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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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에 썼던 잡글을 보완했습니다. 교육 현실과 접목해본 4장이 추가되면서 오히려 더 횡설수설한 느낌입니다.ㅡ.ㅜ


1.
가모우 히로시의 『떴다! 럭키맨』(원제: とっても!ラッキーマン)이라는 만화책은 럭키맨과 그 둘레 영웅들이 우주의 평화를 해치는 무리들을 처치하는 단순한 줄거리다. 등장인물 가운데 내가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 이는 바로 노력맨이다. 그는 그야말로 근성과 끈기의 화신이다. 노력맨은 운이 좋아 패배를 모르는 럭키맨이나 승리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승리맨처럼 승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여러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 우정맨이나 뛰어난 예지력을 발휘하는 천재맨처럼 효율적인 전투를 치르는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가장 약골로 취급되는 슈퍼스타맨이 지닌 불사신에 가까운 빠른 재생력도 없는 노력맨은 오로지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승부한다. 우리는 노력맨이 되기를 권장하고 강요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연 노력맨이 되면 우리는 행복할까?


얼마 전에 초등학생들도 국제중학교 진학을 대비해서 스펙 쌓기가 열풍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치열한 자기계발은 권할 만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치켜세우는 자기계발이 실용이라는 미명 아래 협소한 분야라서 안타깝다. 젊은 세대들의 스펙 쌓기를 보면서 우려하는 목소리에는 경청할 점이 많다. 청년들이 스펙에 열중하느라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이 된다는 비판은 곱씹을 만하다. 이태 전에 리영희 선생님의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읽다 가슴이 짠했던 적이 있다. 젊은이들의 보수화에 대한 물음에 선생님은 젊은이들의 보수화는 우리가 바라던 바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자유분방해졌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불감증이 일상화되고 취업에만 몰두한다면 우리 세대 스스로가 반성할 지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정명(正名)을 위해서 보수화라는 말보다는 맹목화나 획일화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자기비하 같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엄격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


스펙 권하는 사회에 대한 우려가 적잖지만 조금씩 능력사회로 향하는 발걸음 자체는 나쁘게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능력주의 사회는 실력이 학력만큼이나 평가받고,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지적 훈련이 존중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런저런 연줄로 말미암아 능력의 가치가 왜곡되지 않는 사회, 열심히 살면 정말로 성공하는 사회여야만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상하는 능력주의의 보상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다양한 종류의 능력이 존중받기를 바란다. 프로게이머가 활약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더 밝아졌듯이 말이다.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흠모하고, 좀 더 윤택한 삶을 누리기 위해 땀 흘림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개성들이 몇 가지 안 되는 목표에 함몰되는 건 진정한 능력주의 사회라고 하기에는 좀 아쉽다. 사는데 좀 더 요긴하게 쓰이는 기예나 재능이야 앞으로도 존재하겠지만 거기서 그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선망 받는 지위가 분산될수록 특정 지위를 향한 무한 경쟁의 강도가 줄어들어 재능의 낭비를 막는다.


능력주의의 보상체계는 뛰어난 능력은 대부분 빼어난 성과로 드러나기 마련이므로 그 성과에 대해 보상함을 골자로 한다. 유능과 성공 사이의 상관관계는 대체로 인정된다. 그런데 ‘능력’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성질의 힘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사람의 능력이 서로 다르다는 건 상식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노력에 의해 계발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한계가 있음도 직관적으로 파악 가능하다. 만약 그 한계가 제법 커서 능력과 노력이 포개지는 정도가 너무 작다면 능력주의 사회의 대원칙은 흔들리게 된다. 개념의 혼란을 막기 위해 ‘능력’은 후천적인 ‘노력’과 선천적인 ‘재주’로 나눌 수 있다고 정의하겠다. 능력을 선천적인 것으로 보아 후천적인 노력과 대비시키는 경우도 많지만 여기서는 그런 의미의 능력은 재주라는 단어로 대신한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재능’은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고 말하고 있으니 ‘능력’과 비슷한 뜻으로 보이니 섞어 쓰겠다.


능력이 노력보다는 재주에 의해 좌우된다면 능력주의 사회는 선천적인 요소가 크게 기능하는 셈이다. 노동소득조차도 이런데 재산소득으로 눈을 돌리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재산소득은 부모로부터의 상속이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재주와 상속의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 바로 노력이다. 노력맨으로 변신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함은 재주와 상속의 덕택을 입지 못한 이들의 유일한 선택지인 셈이다. 그런데 이 노력이 교육을 통해 계발된다고 하면 그 교육에 들어가는 재화를 마련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천정부지로 올라 사회 문제가 된 대학 등록금이 대표적 사례다. 교육비를 재주와 상속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벌어야 한다면 그 시간만큼 공부를 못해 학습 진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 여가를 충분히 즐기지 못해 행복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 노력이 재주와 상속을 따라잡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
재주를 천부적인 운이라고 본다면 재주가 사회적 가치의 분배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은 부당하게 여겨진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능력주의의 분배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데 그칠 공산이 크다. 롤즈는 이런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몸과 재주가 개인의 소유라고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으므로 사회의 자산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을 분배받는 것에 반대하며 재주란 노력 없이 거저 얻은 것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보았다. 우연히 좋은 부모를 만나고 천부적인 재주를 갖게 된 것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해서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삼을 수 없다는 논변은 설득력 있다. 자신에게서 비롯된 몫만을 분배의 기준으로 내세우려는 정신을 곱씹어보자.


이에 반해 노직은 재주가 모자란 사람들은 재주를 소유한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이익을 얻음을 강조한다. 재주 넘치고 부지런한 재간둥이가 우리 곁에 있음으로써 우리가 더 넉넉하게 살 수 있다는 항변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일부 사람들이 재주나 노력으로 더 많은 재화를 얻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잃게 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고 설파한다. 개인의 재능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익을 주기 때문에 재간둥이의 정당한 몫에 손을 벌리지 말라고 일갈한다. 그의 지적대로 재주도 모자라고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재간둥이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사회를 설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드워킨의 표현대로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주어진 재주에 둔감해지도록(endowment-insensitive) 애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주에 둔감해진 만큼 노력에 민감해지기를 제안한다.


재간둥이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면 정의로운 분배이므로 그 이상의 분배를 꾀한다면 재간둥이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다는 언설에는 맹점이 있다. 침해는 직접적이거나 의도적이고 명시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이익만을 추구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경우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희소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의 손해가 막대할 때 이 손해가 경쟁의 승리자의 탓은 아니더라도 그 원인으로 작용했음은 분명하다. 차병직 선생님이 『상식의 힘』에서 역설하신 대로 “진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기는 일이 가능”하며 “경쟁에서 뒤진 사람의 무능이나 나태함조차도, 그것이 이긴 사람의 영예나 쾌감에 기여하는 바는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노력으로 인한 성과물조차도 온전히 자신의 것일 수 없는데 재주로 이룬 업적이 매우 많은 공을 탐내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


더군다나 유능함만을 절대적인 분배 기준으로 활용하면서 유능하지 못한 계층의 생활을 외면한다면 합리적 이기주의의 관점에서도 노직 류의 견해가 그리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노직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므로 무능한 이들도 혜택을 누릴 것으로 전망했지만 소득 격차로 말미암은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면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개인의 자존감이 흔들릴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소수의 재간둥이들은 자신의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공적이거나 사적인 경호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그런데 이 비용은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실업의 상승과 폭력 범죄의 증가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며 미국에서 1%의 실업 상승이 6.7%의 살인 및 3.4%의 폭력 범죄, 그리고 2.4%의 재산 범죄 증가를 야기한다는 머바와 파울스의 연구를 인용한다. 인간은 이기성 만큼이나 이타성을 지니므로 꼭 이런 수치를 들먹이며 윽박지를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마르크스는 능력이 아닌 필요에 따른 분배를 주창하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비록 능력을 몰아낸 자리에 필요를 올리려는 시도가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그의 논의는 사회적 필수재 혹은 기본재를 충족해야 한다는 합의를 도출하는데 기여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는 기회의 평등이 결과의 평등보다 현실적인 지향점이라는데 대체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능력에 따른 차등 분배의 원칙과 더불어 필요 충족의 원칙이 혼합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결국 생산에 이바지한 정도를 따지되 보상 수준은 그 공헌도의 차이보다는 더 적게 둠으로써 양자를 조화롭게 추구하려고 한다. 필요의 수준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삶의 질까지 확보하는 식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이는 시혜적 평등의 의미가 아니라 한 사회에 공유하고 합의하는 인간다운 삶의 최소 수준이 되어야 한다.


3.
재주라는 우연성이 능력주의 사회의 기둥을 부식함은 충분히 살펴보았다. 물론 재주가 꼭 우연적이고 선천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견도 보인다. 홍성욱 선생님 등이 엮으신 『뉴턴과 아인슈타인』이란 책에서는 천재 과학자들의 연구과정을 고찰하며 천부적인 재주가 창조적인 업적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천재성뿐만 아니라 노력으로 다져진 비판적 사고, 집중력, 끈기 등의 다양한 자질이 어우러졌기 때문에 재간둥이 가운데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단지 탁월한 재주만이 아니라 부단한 연구 끝에 성취했다는 건 얼마든지 수긍할 만하다. 이 책에서는 우리 모두가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면 이전보다 더 창조적으로 변모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줄 따름이다. 재주라는 빙산이 생각보다는 거대하지는 않다고 항변하는 대목이 이 책의 미덕이다. 슬프게도 그래도 그 빙산은 꽤 크다.


나는 오래 전부터 능력과 필요의 대립 구조에서 노력의 가치를 도두보기를 말해왔다. 그런데 이미 선수를 쓰신 분이 계셨다.ㅡ.ㅜ 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에서 타고난 능력보다는 필요와 노력에 따른 지불의 원칙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능력과 필요 사이의 간극을 노력으로 메워야 한다고 보고 “그들의 능력이 어떠하든 간에 그들의 능력의 상한선 가까이까지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돈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언명했다. 싱어는 필요에 따른 분배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에 따른 유인을 보탰다. 그의 논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적용해보자. 갑의 잠재적인 능력이 100이고, 을의 잠재적인 능력이 50이라고 가정한다. 갑은 60%만 노력하더라도 을이 100%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남긴다. 싱어가 구체적인 예시를 들지 않아서 단정하기 어렵지만 자기 능력의 상한선까지 오른 을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해줘야 함은 분명하다. 또한 을이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마저 뛰어넘는 120%의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갑과 같은 60의 성과를 낸다면 갑보다 더 칭찬을 건네야 할 것이다.


능력을 노력과 재주의 합이라고 볼 때 노력을 어떻게 측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두 요소의 총합인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조차 마련하기 힘든 판국에 그 능력을 노력과 재주로 가름해서 그 둘의 비율을 따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본 예처럼 보상체계가 수립된다면 갑은 자신의 재주를 감추려는 전략을 취할 유혹에 빠진다. 갑은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을이라고 꾸미고 60%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종전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력에 따른 유인이 너무 커진다면 이처럼 재주를 감춰서 노력이라고 분칠하고 잠재적인 능력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소홀하게 된다. 갑이 60%의 노력보다는 70%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이끌어서 사회적인 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하다고 할 때 재주 숨김 현상은 줄여야 한다.


결국 우리는 재주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 노력은 그 다음으로 고려할 요소다. 능력 있는 사람의 성과에 미치지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노력한 사람에게 현재 수준보다는 높은 수준의 보상을 주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다만 노력한 사람에게 줄 보상을 늘릴 재원은 필요에 따른 분배의 몫을 건드리지 말고 유능한 사람에게 주던 보상에서 일부 끌어와야 한다. 이를 통해 보상의 차이가 성과의 차이보다 현격히 차이나지 않도록 조정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현행 능력주의 보상체계의 상층부에 있는 유능한 사람에게 반드시 불리하지만도 않다. 엄격한 능력주의는 자칫 잘못하면 1등이나 2등에게만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노력을 통해 상위권에 다다른 사람을 위한 보상에 신경을 쓰게 되면 10등을 하더라도 상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유능한 사람이라고 해도 매번 1등이나 2등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10등까지도 충분한 보상을 하는 시스템의 사회적 보험 역할을 마냥 나쁘게 볼 일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후천적인 노력의 가치를 재조명했더라도 의문점이 생긴다. 노력도 상당 부분 선천적인 재주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노력이라는 재능이 오로지 후천적으로 계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사가 아닌 우연적인 이유로 노력을 싫어하는 성품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반박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 속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재주보다는 노력이 우연성이 좀 덜하고, 보통 사람도 습득할 수 있는 재능이라는 점에 주목할 따름이다. 또한 노력의 적극적 재조명으로 말미암아 상위 1%가 아닌 상위 10%까지 보상체계의 접근성이 높아진다면 재주가 모자란 사람과 노력이 부족한 사람도 도전할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1등에 도전하기는 힘들어도 10등은 도전해볼 만하다고 용기를 북돋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재주와 대비되는 노력에 대한 사회적 의식의 환기를 기대한다. 불공평을 완화하는 기제로서 노력에 대한 보상에 주목하자.


4.
2009년 개교한 국제중은 1단계 서류심사, 2단계 면접을 거쳐 3배수를 선발한 뒤 추첨으로 학생을 뽑았다. 2010년에 개교하는 자율형 사립고는 내신 성적 50% 내에 들어야 지원이 가능하고, 2배수를 뽑은 뒤에 추첨으로 선발한다.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에만 익숙하던 우리네 입시 풍토에서 추첨제의 도입은 참신하면서도 어색했다. 실제로 대다수 언론이 국제중이나 자율고의 추첨 장면을 보도하면서 추첨의 비교육적인 측면을 꼬집었다. 시험은 노력으로 만회할 수 있지만 운 때문에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한다면 승복할 수 있겠느냐는 항변은 설득력 있다. 그러나 시험이나 경시대회 성적으로 1배수를 뽑는 것을 지양함으로써 경쟁의 압력을 완화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은 바람직하다. 전남대는 2009년 도전 장학생을 신설해서 학업성적 위주로 장학금을 선발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자기계발 활동 등을 통해 발전가능성이 있는 학생에게 도전 장학금을 줬다. 이 역시 성적순을 극복하는 파격적인 시도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주장에 적잖이 동감한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이 단지 1등부터 꼴등까지 서열화한 성적을 나누는 것이라면 마냥 교육적일 것 같지 않다. 노력으로 만회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시험공부가 자본에 따른 경쟁이 되어간다는 비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자녀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특목고 입시를 준비시킬 여유가 있는 부모의 자본도 우연적인 요소이고 비교육적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소수점을 가지고 다투는 입시경쟁의 폐해가 얼마나 극심한지 겪었다. 더욱이 시험 위주의 선발제도는 투입(input) 위주의 경쟁에만 몰두하는 문제를 낳았다. 한국의 대학들이 우수한 신입생을 유치하는 데만 온 정신을 쏟고 유능한 졸업생을 배출하려는 산출(output) 경쟁을 등한시한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고교 교육의 다양화라는 미명 아래 고등학교마저 엄격한 능력주의에 매몰된 투입 경쟁을 이제는 줄여야 한다.


외국어고등학교 입시 개편에도 추첨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추첨제를 채택한 학교들과 형평에 맞는다. 외고는 어학 영재 양성이라는 특수목적고의 설립 취지를 거의 살리지 못했다. 다만 외고가 고교 평준화 정책의 보완책으로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는데 기여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수월성은 결국 대학 입학의 수월성으로 귀결됐다. 결국 외고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기보다는 우수한 인재를 선점하는데 더 특화된 모습을 보였다. 대학들도 이에 호응해 내신 반영률을 낮춰 외고생들의 내신 부담을 덜어주는 등 각종 특혜를 제공했다. 2010학년도 서울 경기지역 외고 입시는 구술면접이 폐지되고 영어 듣기평가가 약화되는 대신에 학교 내신 성적의 비중이 강화됐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대책이었지만 풍선 효과로 말미암아 내신 합격선이 상승하는 효과를 낳았다. 내신 강화의 부작용은 추첨제의 도입으로 해소할 수 있다. 가령 내신 20~30% 정도를 지원 자격으로 하고, 영어 듣기평가나 구술면접을 합격, 불합격(Pass or Fail)을 정하는 요소로 활용해 일정 배수를 선발한 뒤 추첨을 하는 방식을 도입할 만하다.


추첨제는 정부가 수월성 교육을 목표로 하는 학교를 도입하면서 사교육비 증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고육지책으로 등장했다. 사교육을 조장하지 않겠다는 점을 부각하는데 급급했을 뿐 추첨을 결단한 것에 대한 철학적 고려가 부족했다. 나는 추첨제의 부분적인 도입이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를 수립하는데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추첨제를 1%에 대한 보상에서 10%에 대한 보상으로 늘리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별이 빚어져서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헌법상의 권리가 자꾸 침해되는 현상을 막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노력을 해서 일군 성과에 따른 정당한 차별이라는 대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추첨제를 적용하는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인생의 한 시기에 펼쳤던 경쟁의 결과가 그 사람의 평생을 규정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추첨제는 특정 학교의 우월적 지위를 상당부분 누그러뜨리고 교육을 통한 산출 경쟁에 좀 더 주안점을 두도록 유도한다. 고령화 시대에는 젊은이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어른을 부양해야 한다. 이제 극소수의 승자만이 대접받는 시대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잠재성과 소질을 계발하도록 노력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종류의 경쟁을 설계해야 한다. 물론 경쟁이 늘어난다고 해서 경쟁의 강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법학전문대학원의 경우 학점 경쟁도 심하면서 변호사시험 준비도 병행해야 해서 고충이 크다고 한다. 시험이 고급화될수록 교육과 상충관계가 된다. 모든 가치기준이 수험적합성에 맞춰지면서 법과대학의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닌 다방면의 교육으로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로스쿨을 도입한 만큼 변호사시험은 의사국가고시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의사국가고시의 합격률은 2010년 92.9%, 2009년 93.6%였다. 이렇게 높은 합격률에도 별다른 시비가 없는 것은 의대 교육과정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경쟁의 강도에 대한 고민은 시험과 교육의 적절한 배합의 문제로 요약된다. 시험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교육을 향한 노력도 평가해야 한다. - [無棄]


추신 - 다른 영웅들이 적의 공격을 민첩하게 피할 때, 노력맨은 빠른 속도로 벽돌을 쌓아 노력 보호막을 만든다. 이 졸문은 그 우직함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 노력맨이 되는 건 상찬할 일이지만 노력 그 자체가 목적이 되도록 하지는 말자.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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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에 대한 탐구를 늘 하려고 애씁니다. 이따금 저란 녀석을 소개할 일이 있을 때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을 늘어놓는 것이 참 어렵더군요. 그러던 참에 제 지인들이 저를 두고 평한 이모저모를 나열해보는 것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익구에 대한 말말밀> 연재물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유치원부터 대학 시절까지 학교 안과 밖에서 들었던 오만가지 이야기 중에 몇 개 추려본 헛짓이 어느덧 5탄을 선보입니다. 좀 더 옥음을 모으면 한꺼번에 정리할 날도 있겠지요. 주로 좋은 말들로만 정리한 것이니 진실은 이렇지 않다는 것을 감안해주세요.

3월부터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기로 입학하게 된 것을 기념하며 오랜만에 정리해봤습니다. 명백한 오타를 수정한 것을 제외하면 원래 발언 그대로 옮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시대는 뒤죽박죽 섞여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형은 전생에 아마 사림(士林) ㅋㅋㅋ
- 04학번 후배의 문자

형님은 200년 전에 집현전 대제학이셨을 거 같아요.
- 07학번 후배의 댓글

익구는 글을 짧게 못 쓰는 병이 있어.
- 대학 동기의 정확한 지적!

머리에 쥐나게 하지 마
- 내가 쓴 세밑 인사를 두고 고등학교 동창의 핀잔

비관습적이기도 하지 ㅡ.ㅡ
- 내가 비사교적으로 살아온 것 같다며 한탄할 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의 추가 설명

형... 익구닷컴에서 글 좀 참조하여,,,레포트 좀 쓸게요 ㅎㅎㅎㅎ
- 05학번 후배의 쪽지, 그 과제가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않았음

이런 말하기 뭣하지만... 정말로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세요 =ㅁ=;;
- 언어의 마술사님과의 대화 중

그런데 정말로 익구형과 대화하면 되게 생각이 많아져요.^^
- 06학번(07학번?) 후배와의 대화 중

항상 철학적 분위기를, 학구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너에게 감사하다. 앞으로도 네 순수하고 고뇌하는 모습 잃지 말아라.
- 고등학교 동창의 생일 축하 편지

거추장스럽다는 듯 언급하신 규범주의나 도덕주의는 익구, 그 자체의 모습인걸요?
- atopos님의 댓글

누구와도 먼 사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내성적이기는 하지만 내성적인 것과는 별개의 느낌이네요.
- 연애편지님의 댓글

내가 볼 때는 더 이상 들 ‘철’이 없는 것 같은데
- 철드는 것이 소망이라는 내 말에 고등학교 동창의 격려(?)

니가 철이 덜 들면 누가 드니-_-
- 격려(?) 두 번째

너의 시비라면 얼마든지 기분 좋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음. ㅋ
- 대학 동기

넌 참 써먹을 데가 많을 거 같아
- 나에 대한 과찬이 취미(?)인 고등학교 동창

수다맨은 아닌데, 수다스러운 남자.
뭔가 심오한 이야기를 만화책 줄거리 이야기하듯 이야기 하는 남자.
- 대학 동기

익구 같은 사람이 법 공부 열심히 해서 우리 다음 세대는 좀 더 좋은 세상을 봤으면 좋겠다~
- 대학원 진학을 축하하며 고등학교 동창이 해준 덕담

형 좋아하시는 일 찾으실 거예요 ㅋㅋ 형을 사람들이 안 내버려둘걸요...
- 05학번 후배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 훈련소에서 내게 보내온 편지에도 논어의 한 구절을 ‘한자로’ 써서 보냈던 녀석.
우리 나이 대에 걸맞지 않은 압도적인 독서량과 풍부한 지식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물론 읽기 버거운 건 있다.)
- 대학 동기가 자신의 블로그에 익구닷컴을 소개해주면서 쓴 글

익구는 정말 살아 있는 reference 야. 훗훗훗
이런 저런 생각하는 거나 말투도 그렇고 진짜 틈이 안보이네
최익구도 알고 보면 똘끼 대마왕!
- 만나 뵐 때마다 즐거운 경선누나

조신하게 지내는 건 너에겐 이룰 수 없는 꿈같은 걸?
- 대학 동기
 
익구야~ 이민가지 마
- 고등학교 동창, 2007년 대선 직후 나눈 새해 인사

형은 절대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 헛소문을 들은 09학번 후배

익구 진짜 강의 하나 차려라 구민회관 같은데 강좌 하나 차리면 잘 되겠어
- 밤새 대화를 나눈 고등학교 동창이 뜬금없이 건넨 말

형님은 항상 얼굴에 웃음이 꽃펴있어서 세상을 되게 즐겁게 사시는 거 같아요
- 08학번 후배
 
하여간 말이 길어 ㅋㅋㅋ 잘 지내는 것 같구나 ㅎㅎ
- 나의 말 많음을 염려하는 00학번 선배님

진짜 이름 잘 외우시네요,,, 형은 딱 정치인 스타일
- 04학번 후배

전 나중에 신문 칼럼에서 익구형 이름을 읽게 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작정입니다.
- 05학번 후배

익구형님. 이번엔 얼마나 금주를 하실 건가요 ㅋㅋ 
- 금주에 대한 고견을 청했을 때 07학번 후배
 
넌 충분히 바른생활 사나이다 ㅋㅋ 그만 자제해라 ㅎㅎ
- 희영누나

불쌍한 (익구의) 간장(肝臟)님
- 나의 과음을 염려한 고등학교 동창

네가 인문학 했으면 잘했을 거 같다 이런 생각
- 고등학교 동창
 
형은 꼭 공직에 나가셔서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하셔야 해요. 정치든 공무원이든... 기업 쪽으로 가셔도 훌륭한 오너가 되실 듯
- 지인지감(知人之鑑)을 좀 더 연마해야할 듯한 04학번 후배

익구 같은 분이 회사나 학자가 되기보다는 우리나라 행정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문자

10년 뒤에도 어제처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네.
-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를 접하고 침통했을 때 만나 뵈었던 97학번 선배님

고등학생은 아니죠?
- 2009년 11월 21일 대학원 면접을 앞두고 간단히 점심을 먹으려고 들른 식당 주인 아주머니께서 하신 말씀, 그 때 당시 학부 면접이 같은 날 있어서 아마 그런 오해를 하신 모양임

근데 난 너랑 대화하면 어려운 문제가 더 어렵게 느껴져
익구 쉽게 말하는 법이나 문제를 단순화하는 법을 연습해 보는 것은 어때
풍부한 어휘나 너의 필력은 잘 알겠지만 결국 커뮤니케이션이자나
정확한 정보 전달 만큼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이해를 이끌어 내는 거니까
- 나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건넨 고등학교 동창

항상 궁금한 건데 넌 왜 경영학과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ㅎㅎ
경영학과 내에서 너의 입지를 궁금해 하는 것보다도
너 개인적 의지와 학문적 욕구 같은 걸 짐작해봤을 때 궁금한 거라서.
- 대학 동기, 자주 듣는 질문이었으나 경영학과 무사졸업을 그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음

익구의 글은 유명논객이 썼다고 해도 믿을 만큼 훌륭하지만 저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젊은이의 글은 통찰, 균형감각 같은 미덕보다는 늙은이들을 자극할 만한 치밀한 분별, 신선한 발상 등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시비를 건 건 제가 익구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고 봐 주시길.
- young님의 댓글

최익구-가만 생각해보면 인터넷을 가장 건전하게 사용하는 녀석이다.
진지하다 어렵다 그럼에도 긍정적이다
난 생각한다. 녀석은 무슨 재미로 살까?
- 고등학교 동창

익구 이놈한테는 글을 쓰기가 너무 조심스러워. 분명 맞춤법/띄어쓰기 등 틀린 글자가 마치 워드에서처럼 빨간 줄이 자동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지.
- 00학번 선배님

“자기를 다스릴 때는 가을기운을 띠고, 세상을 살아갈 때에는 봄기운을 띠어야 한다(律己宜帶秋氣, 處世宜帶春氣)” 내가 늘 그렇게 해야 겠다고 품고 사는 생각을 미리 실천해나가는 익구형. 익구형의 성격을 좋아하고 익구형의 글을 좋아하고 익구형의 생각을 좋아하고 익구형을 좋아한다.
- 04학번 후배와 게시판 글을 주고받다가

지금 네 정도의 성향도 극렬 좌파라 오해받는, 명문대 경영학도들의 무관심과 기계론적 사고방식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너의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너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게 아니길, 이정도도 오해받는데 더 반대편으로 기울면 어떻게 하지 소심해 하는 게 아니길 바란다.
- 고등학교 mannerist님의 정감어린 말씀

한번쯤 ‘인용을 하나도 쓰지 말고’ 글을 써 보는건 어떨까? 당신 글을 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게 주장은 명확하지만 그에 따르는 근거로 제시하는 ‘옛 성현들의 말씀 인용’은 모호한 경우더라구. 역으로, 익구공의 글에서 인용을 싹 들어내고 어떤 야마가 남나 한번 따져보길. 당신만큼 ‘옛 성현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우와 이 양반 만만찮게 글도 쓰고 멋도 부리는구나’라고 놀라겠지만, 글에서 야마 뽑는 재주, 그리고 더 나아가 글쓴이의 심리 상태까지 읽어내는 사람들에게 호사스런 취미가 쫌 지나친 양반이구나. 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니까.
- mannerist님의 또 다른 충고

익구형님과의 밤을 잊은 대화. 때로는 학자같은 면모를 보이시다가도 때로는 정치가 같은. 뭐랄까 가공할 만한 식견을 지닌 달변가라고 해야할까. 역시나 오늘도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평소 관심만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아무런 생각도 해보지 않고 있던 주제에 대한 화두도 던져주시고.
(중략)
나도 꽤나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익구형은 남달랐다.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 같은 측면 뿐만 아니라 흥미를 가진 분야에 대한 남다른 시선. 역시 학생으로서 모델로 삼고 싶은 선배 중 한분이다. 많이 배워야지 흐흐흐 이런 분 알게 된것도 분명 행운이니깐
- 06학번 후배와 밤새 대화 나누고 난 뒤 후배가 쓴 대화 후기(?)에서 발췌


부록으로는 고등학생 시절 짝을 했었던 석민이가 저에 대해 평한 글을 퍼온 것입니다. 친구가 재담을 통해 웃자고 과장광고를 한 것일 뿐이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달 동안 지켜본 익구씨의 모습...]
- 2001.05.01 작성, 출처 -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동호회 ‘我是誰’

난 2달 남짓한 시간을 최형(본명:최익구 18세)과 함께 짝궁이란 명목으로 생활을 같이했다.
7시20분에 만남, 계속 동거동락, 11시에 헤어짐 다시 7시간 후에 만남...
부모님보다도 더 오래 생활을 한 나로서는 최형의 몸가짐과 행동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먼저 그의 단아한 자태...
한 마리의 봉황을 보는 듯 하다. 가지런한 손가짐...
바른 몸가짐... 곧은 걸음걸이...

두 번째... 수려한 말솜씨...
그의 수식어구에는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세 번째... 해박한 지식...
철학, 종교, 법, 사회, 문화, 한문, 문학...
우리반, 과, 학교에서는 적어도 최형을 따라올 인재는 없는 거 같다.

네번째...온화한 인품...
절대 거절이란 것을 모르는 부처, 공자, 예수 같은 마음~~~

다섯 번째... 철저한 준비 정신...
솔직히 우리 반에서 쉬는 시간에 다음시간 예습, 준비를 하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최형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

여섯 번째...겸손함~~~!!!

아마 이 글을 읽고서... 분명 꼬리에다가...
"아닙니다 정형... 제가 뭘요..."라고 쓸 것이다.

내가 더 쓸수도 있지만... 최형의 심기가 불편할까봐...
그리고~~~

요새 최형 보고 변태라고 하는 불순분자들이 있는데...
절대 아님... 절대... never...
그럼....모두 안녕~~~

최형 사랑해영~~~!!!

담혜선생팬클럽 모집
신청:석민동자에게...


물론 이 글에 날라 들어온 돌들이 한 두 개가 아닙니다.^^;

“...휴... 최익구 안티싸이트는 벌써 활동중 입니다.”
“난 안티 최익구이다... 그는 거절을 안다...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그러지마 익구도 가끔 착할 때도 있어.”
“정석민... 널 보니깐 과거 2년 동안 속고 지내왔던 나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의 과거를 보는 거 같군... 너도 곧 깨닫게 될 것이야...”

Posted by 익구
:

칼 포퍼의 ‘세계 3’에 대한 논문들을 엮은 『객관적 지식』이라는 책이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관계로 여러 선생님들의 글을 참조해 이해해보았습니다.


일전에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라는 포퍼의 저서가 출간된 적이 있다. 포퍼는 유기체를 목적추구적이라기보다는 문제해결적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는 문제나 문제상황이 감각기관의 인식보다 선행한다고 보며, 우리의 감각기관은 문제들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이나 동물의 목적이 특정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생물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통한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부터 발전한 것으로 보는 셈이다.


가령 어떤 동물이 물을 마시려고 풀숲을 뚫고 갔다고 할 때, 다른 동물은 앞선 동물의 발자국을 따라 좀 더 쉽게 물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보면 최초의 동물이 특별히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길이 넓혀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계획하지 않은 귀결이다. 포퍼는 언어나 제도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포퍼는 문제를 과학 더 나아가 우리 삶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행착오의 방법을 “문제(Problem 1)→잠정적 이론(Tentative Theory)→오류 제거(Error Elimination)→새로운 문제(Problem 2)”로 도식화한다.


오류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비판적인 토론과 경험적인 테스트가 수행되어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 2는 문제 1보다 좀 더 진리에 가까운 객관적인 지식이 된다는 논리다. 이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성장한다고 이해하면 될 듯싶다.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절대적 가치로서의 유토피아를 추구하면 닫힌 사회로 가게 된다며 비판한 내용을 상기해보면 좋겠다. 그의 사회철학인 ‘점진적 사회공학’의 요체는 결국 삶이 문제해결의 연속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해결에 적합한 사회는 결국 자유롭게 비판하고 토론하는 열린 사회라는 데까지 이어진다.


객관적 지식의 성장을 주창하는 포퍼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 세계 이론’을 제시한다. 포퍼는 물질의 세계인 ‘세계 1’, 그리고 주관적 마음(정신, 의식)의 세계인 ‘세계 2’와 구별되는 ‘세계 3’을 고안한다. 객관적 사상의 세계, 마음의 산물이면서도 그 인식주체와 독립해 존재하는 세계 3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상, 언어, 윤리, 제도, 과학, 예술 등을 설명한다. 세계 1은 시공간에 있는 물질의 세계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세계 2와 세계 3의 구별에 좀 더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이 이론의 특성상 세계 1의 정의는 물리적 속성이라는 측면이 부각되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사실 포퍼 자신도 세계를 반드시 세 가지로 분류해야만 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는 않는다. 스스로도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 편의상의 문제라고 보고 예술작품은 세계 4에 속하는 것으로 봐도 괜찮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 1, 세계 2, 세계 3이 시간의 순서대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물리적 세계가 가장 분명하게 실재한다고 보는 것은 딱히 더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다. 포퍼는 의식의 출현은 생명현상에서 진화한 현상이라고 설파한다.


다시 말해 모든 유기체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계 1의 생명체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활동이 세계 2를 낳게 된다. 세계 1이 세계 2를 출현시켰지만 세계 2가 출현한 다음에는 자신을 출현시킨 세계 1에도 작용하여 변화시키는 모습을 두고 세계 2가 세계 1과 상호작용한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관계는 세계 2와 세계 3에도 적용되어 세계 3이 세계 2에서 출현하지만 독립적인 성격을 지닌 영역을 구축하며 세계 2와 상호작용한다. 포퍼는 세계 3이 세계 2를 매개로 하여 세계 1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가령 세계 3에 속하는 설계도나 각종 이론들이 세계 2에 속하는 건축가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해보자. 건축가는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땅을 얼마나 파고, 벽돌을 얼마나 쌓을지를 정해서 세계 1인 건축물을 만든다. 이처럼 세계 3은 ‘세계 2에 의한 산물의 세계’로 정의해볼 수 있다. 건축가가 참조한 세계 3의 이론은 결국 세계 2의 영역에서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포퍼는 세계 3과 우리 자신이 상호 작용해서 객관적인 지식의 성장을 낳는 것은 동식물의 진화 같은 생물학적인 성장과 유사하다고 역설한다.


포퍼는 우리가 창안했지만 우리가 통제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세계 3에 대한 예시로 자연수를 언급한다. 자연수는 인간의 창안물이지만 그 자신의 자율적인 문제를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예로 소수(素數)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소수의 존재는 인간의 의식인 세계 2에는 존재하지 않고 세계 3에 존재하다가 발견된 것이다. 소수가 수학자들에게 발견된 이후에는 세계 2와 세계 3 모두에 존재하게 되었다. 덧셈이나 곱셈은 인간이 발명했지만 교환법칙, 결합법칙, 분배법칙은 의도하지 않은 발견인 것도 비슷한 사례다.


세계 3은 그 기원에 있어서는 인간의 산물이지만 일단 이론이 존재하게 되면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생명을 갖기 시작한다. 이론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귀결을 산출하며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낸다.
One may say that World 3 is man-made only in its origin, and that once theories exist, they begin to have a life of their own : they produce previously invisible consequences, they produce new problems.
- K. R. Popper and J. C. Eccles, The Self and Its Brain(1977)


인간 정신의 산물들의 세계인 세계 3이 일단 존재하게 되면 그것을 생산해낸 인간과 분리된다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세계 3은 세계 2에서 파생되었으되 예기하지 못한 논리적 귀결들과 문제들로 구성되는 자율적 영역이라는 것이 포퍼 주장의 핵심이다. 이런 양태를 예기치 않게 불시에 나타난다는 뜻에서 창발적 진화론(emergent evolution)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의도치 않은 귀결, 인식주체를 벗어난 독자적인 발전과 전개는 세계 3의 자율성을 논증한다.


정리하자면 주관적인 인식의 세계인 세계 2에서 객관적인 인식의 세계인 세계 3으로 나아가는 인식의 진화론에 대한 논증이야말로 포퍼가 애지중지했던 객관적 지식의 존재에 대한 논거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산출한 지식이나 이론 역시 오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간의 지식은 비판에 열려있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인 면모를 지닌다. 포퍼는 세계 2와 세계 3을 구별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객관적 의미에서의 지식은 인식하는 자가 없는 인식이다. 그것은 인식 주체가 없는 지식이다.
Knowledge in the objective is knowledge without a knower: it is knowledge without a knowing subject.
- K. R. Popper, Objective Knowledge : An Evolutionary Approach(1972)


세계 2와 세계 3의 구별은 획기적이다. 이에 따르면 어떤 이론이나 지식을 말하는 사람과 그가 내놓은 이론, 지식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객관적 지식은 어떤 사람의 행태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포퍼는 말에 대한 비판과 사람에 대한 비판을 구분해야한다고 설파한다. 비판과 토론에서 누가 주장했는가보다 어떤 주장을 했느냐에 주안점을 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인 것이다. 이 전환은 어떤 ‘사람’과 그 사람의 ‘주장’을 동일시하지 않는 혜안을 선물해준다.


자신의 그른 점을 지적하는데 자신을 싫어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미성숙하다. 건설적인 토론을 인신공격으로 제멋대로 오해하고 물타기를 하는 사람은 비겁하다. 주장 자체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인간 됨됨이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사람=그 사람의 말과 글‘이라는 등식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포퍼는 과학의 객관성은 과학자 개인이 객관성을 갖추려는 시도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친구와 원수 사이의 협동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객관성은 자기 혼자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 속에서 섞이고 스미면서 만들어진다.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견을 나누고, 비판을 가한다.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주의주장을 없애는 길은 그 주의주장의 제창자와 추종자를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주의주장 자체의 허실을 가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어떤 주장과 그 주장을 한 사람을 동일시해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주장을 묵살했다. 포퍼는 잘못을 통해서 배우려는 자세와 남을 함부로 단죄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먼저 점검하는 태도를 주문한다.


예송논쟁이 한창일 때 서인인 송시열에 대항했던 남인 논객 윤휴가 숙종 6년(1680) 억지 죄명을 뒤집어쓰고 사약을 마시기 직전에 “조정이 어찌하여 선비를 죽인단 말인가(朝廷奈何殺儒者云)?”라고 외친 것은 의미심장하다. 당쟁이 당초 취지에서 틀어져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했던 참담함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추구하려는 이상이나 신념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아도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도입될 때 세계 천주교 역사에 유례없는 극심한 박해가 자행되었다. 공서파(攻西派)의 강경 대응 주문에 정조는 “사교(邪敎:천주교)는 자기자멸할 것이며 정학(正學:유학)의 진흥에 의해 막을 수 있다”라고 탄압에 반대했다.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한 개명군주의 바람과는 달리 정조 사후에 천주교도에 대한 혹독한 탄압이 이어졌다. 그러나 교조화된 성리학의 답답함을 서학으로 풀게 된 이상 수천의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선교사에 의한 전파보다 현지인들의 자발적인 수용이 강한 한국 천주교 보급은 사대부의 무능한 통치에 신물이 난 백성들의 저항이었다.


홍경래가 최후로 버틴 정주성이 관군에 함락되면서 2천9백83명이 사로잡혔을 때 열 살 이하의 남자 224명과 여자 842명을 제외한 1917명을 모두 처형했다는 끔찍한 기록이 떠오른다. 지역 차별을 반성하지 않고 피로써 잘못을 감추려했던 역사의 비극이다. 어디 그뿐인가. 장보고에게 비수를 꽂는다고 신라 골품제의 비효율성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만적을 강물에 던진다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육신을 거열형에 처한다고 해서 수양대군의 찬탈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봉준을 죽여도 사람을 하늘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이 식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없애 그 사람의 이론과 사상을 손쉽게 정리하는 야만을 저지르기 힘든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사람을 쳐내는 광경을 목격한다. 김제동, 진중권, 정연주, 이동걸, 황지우, 신태섭 등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명박 정권의 코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석연치 않은 모양새로 일터에서 쫓겨난 분들을 열거하려니 화가 난다. 비판을 감내하지 못하고 다양성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다.


세 세계 이론은 그 사람이 내놓은 지식과 인식, 내뱉은 말과 글을 비판함으로써 보다 자유롭고 열린 세상을 만든다. 세계 3은 덜 폭력적인 문화적 진화를 바라는 희망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가수 김민기는 “내가 만든 노래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났고, 노래란 향유하는 사람들 나름의 창조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자신의 노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무덤덤하다고 밝혔다. 이 말처럼 세계 3 속에서 끊임없이 수정되는 지식들을 모두 자신의 소유인양 착각하지 않는 겸손함을 가져야겠다.


세계 3이란 아이디어는 치열하게 토론하고 정직하게 경쟁하되 겸허하게 수용하고 깨끗하게 승복하라는 깨달음을 준다. 사람을 원망하기는 쉽지만 그 사람의 생각을 반박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드는 일이다. 세계 2와 세계 3을 분간할 수 있다면 우리네 삶은 한결 넉넉하고 너그러워질 것이다. 포퍼의 명언으로 맺는다. “내가 틀릴 수 있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 그리고 노력하면 우리는 진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I may be wrong and you may be right, and by an effort, we may get nearer to the truth).” - [無棄]

Posted by 익구
:

문화재청의 2009년 하반기 문화유산 답사기 공모전의 주제는 ‘천연기념물과 명승’이었습니다. 기대하지도 못한 큰 상을 받게 되어 그저 민망합니다. 글자수 제한과 시간 제약 때문에 문장을 급하게 줄이느라 생긴 어색한 표현과 오타를 일부 수정해서 올립니다.


1. 끝내 기도하다

천연기념물 8호 ‘재동의 백송(白松)’을 만나러 서울 북촌을 거닌다.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 뒤뜰의 백송을 마주한다. 백송에 다가가기 전에 내가 노력한 것 이상을 얻길 바라는 기도 따위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하얀 빛깔에서 빚어내는 신령함에 넋을 잃고 내 탐욕을 늘어놓았다. 나를 위한 기도가 조금 덜 추하도록 애써야겠다.


2. 소나무를 사랑하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를 조사하면 늘 소나무가 1위를 차지했다. 2005년에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을 제정하기도 했는데 소나무라는 특정 수종을 지키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한 보기 드문 일이다. 한국인의 정서 속에 소나무는 가장 애틋한 인연을 맺은 나무인 셈이다. 옛날에는 아이가 태어날 때 소나무 가지를 끼워 금줄을 쳤다. 이 아이는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자랐으며 소나무를 땔감으로 삼은 밥을 먹었다. 소나무 껍질로 구황을 하기도 했다. 세상을 떠날 때도 소나무로 짠 관에 들어가 솔숲에 묻혔다. 이처럼 일평생 베풀기만 하는 소나무에 대한 고마움으로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를 의인화해서 벗으로 삼았다. 속리산의 정이품송은 벼슬을 얻었고, 경북 예천의 석송령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장학금도 주고 세금도 낸다. 자연을 이용하는데 급급한 오늘의 세태와는 사뭇 다른 자세다. 전북 전주의 삼천동 곰솔은 누군가 독극물을 투여했는데 천연기념물 지정으로 말미암은 불편함에 대한 앙심으로 추정한다니 씁쓸하다.


물론 소나무는 단순히 실용성에서 그치지 않고 고유의 매력이 넘친다. 그 매력이 생활 속의 친숙함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일찍이 공자는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라고 하셨다. 어려울 때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난다는 뜻처럼 소나무 하면 굳은 절조의 상징이라는 이미지가 앞선다. 성삼문은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이 되겠다고 읊었고, 이개는 현릉(顯陵)의 송백이 꿈속에 푸르다고 노래하며 두 사육신은 죽음을 맞았다. 더우면 활짝 피었다가 추우면 말라 버리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하지만 이를 거슬러서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한결같은 소나무의 모습을 닮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옛사람들의 마음자리를 흠모한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시세의 흐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늦게까지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에게 더 애착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면 소나무 감상이 차가운 이성의 눈매로만 다할 수 없음을 알겠다.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할 때 이상적은 추사를 위해 서책을 수집해 보냈다. 양반 지인들이 자신을 멀리할 때 역관인 제자가 남아 제 곁을 지켜준 것에서 느낀 바가 있었으리라. 스승은 권세와 이익에게 달려가지 않고 자신을 찾아와 준 제자에게 세한도(歲寒圖)와 발문으로 극진한 감사를 표한다. 세한도에 나오는 아름드리 소나무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고요하면서 굳건하다. 이상적 같은 이가 좀 더 많아진다면 우리 세상이 좀 더 나아질 것이다. 시서화(詩書畫)로 다양하게 변주된 소나무의 미덕은 우리가 후손들에게도 물려주어야 할 정신적 자산이며 외국에 우리의 이미지를 알리는 훌륭한 기호다. 일전에 경복궁 근정전을 보수할 때 대형 국산 소나무가 없어서 북미산 소나무를 가져다 쓴 일이 있지만 앞으로는 좀 더 나아지길 희망한다.


3. 무심해서 아름답다

백송은 나무껍질이 벗겨지면서 흰빛을 띄기 때문에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현존하는 백송은 거의 다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구해다 심었으리라 추측한다. 사대부들이 모여 살던 서울에서 백송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재동의 백송 역시 고종 때는 개화파의 선구자 박규수의 집이었다. 박규수의 사랑채에 모여 백송을 완상하며 우국지정을 토로했을 젊은 꿈 앞에 부끄럽다. 이처럼 백송은 중국과의 교류의 증거이면서 양반 가문의 증표이다. 백송은 옮겨심기가 까다로워서 이역만리에서 끝내 운명한 백송이 무척 많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다. 흔히 볼 수 없는 소나무이다 보니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은 서울에는 6그루, 전국에는 12그루가 있었으나 아쉽게도 지금은 서울에 2그루, 전국에 5그루만 남았다.


재동의 백송은 600여년 된 나무로 한국에서는 가장 큰 백송이다. 근처에 자리 잡은 천연기념물 9호 수송동 백송은 조계사 대웅전 옆에 옹색하게 지내느라 생장의 어려움을 겪는 반면에 재동의 백송은 비교적 너른 터에 고즈넉이 자태를 뽐낸다. 백송의 수피는 연한 녹색이다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흰색이 짙어진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흰 얼룩이 커진다고 해야겠다. 흥선대원군이 백송의 껍질이 유난히 희게 변하는 것을 길조로 삼아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끝낼 수 있음을 확신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회청색에서 회백색으로 변해가는 과정 모두가 분청사기의 투박한 느낌을 빼다 박았다. 문일평은 ‘白松의 美’라는 글에서 “아무리 진목이훼(珍木里卉)가 있어도 모르는 이에게는 그것이 범수상초(凡樹常草)와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탄식했다. 평소 자주 지나치던 백송의 가치를 뒤늦게 깨닫고 쓴 글이다. 푸른 솔잎과 하얀 무늬가 햇살을 받아 빚어내는 색채 대비를 이제라도 만끽해서 다행이다.


백송의 나이대로라면 단종 1년에 벌어졌던 계유정난의 참상도 목도했을 것이다. 김종서의 집이 있던 재동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은 피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재를 뿌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마을 이름이 ‘잿골’로 바뀌었고 오늘날 재동의 유래라고 한다. 번식력이 약한 백송은 혼자 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홀로 이 광경을 바라봤을 백송은 인간세상의 훼예포폄과 흥망성쇠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이 나이를 먹었다. 국가권력의 정통성이 유린되었던 터에 헌법재판소가 자리 잡아 의미심장하다. 계유정난이 발생한 지 338년만인 정조 15년에 단종의 능에 단종의 충신들을 제향 함으로써 역사 바로잡기가 마무리됐다. 역사는 결국 올곧게 산 자의 편인지 모르나 이렇게 만날 뒷북만 쳐서는 안 될 일이다. 헌정 질서를 수호하는 헌재의 책무가 무엇인지 또렷해진다.


4. 넓어질수록 깊어진다

문화유산 답사라고 하면 궁궐과 사찰, 박물관과 미술관만 떠올리기 일쑤다. 천연기념물과 명승 제도는 문화유산에 대한 사고의 틀을 넓힐 것을 요구한다. 외부의 자연뿐만 아니라 내부의 자연마저도 가만두지 못해 안달인 삶을 사는 우리에게 천연기념물의 존재는 전환점을 마련해줄 수 있다. ‘생태맹(生態盲)’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신비함과 풍성함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우리의 사고와 의식으로부터 자연이 사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천연기념물과 명승에 대한 문화적 가치를 부여할수록 생태맹을 좀 더 극복할 수 있으리라. 이는 생물다양성을 국가 경쟁력의 지표나 국가 브랜드의 척도로 활용하고 있는 추세에 걸맞다. 자연의 다양성은 문화의 다양성으로 직결된다. 한국이 석탑의 나라가 된 이유는 석공의 솜씨가 빼어난 점과 더불어 쉽게 구할 수 있는 화강암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문화유산에서 인공미를 느낄 때 그 소재까지 헤아린다면 좀 더 복합적인 감상을 할 수 있다. 문화유산의 모태가 되는 자연유산을 도두보는 혜안을 갖추는 셈이다.


안드레아스 베버는 『자연이 경제다』에서 자연을 지키는 게 경제적이라고 역설한다. 무조건 자연보호를 해야 한다는 윤리의식에 호소하기보다는 생태자본의 효율성과 화폐가치를 평가해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이 흥미롭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경제적으로 오래간다”라는 명제를 통해 자연과 경제가 양자택일이 아닌 양립할 수 있는 가치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연을 자기 자본금으로 여기며 제 것으로 안다. 자연스레 어떻게 하면 이 자본금을 굴려서 이익을 남길까를 궁리하게 된다. 하지만 이 땅이 우리들의 자손에게 빌린 것이라면 자연은 우리의 부채이다. 어린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할 빚이란 말이다. 이곡의 ‘차마설(借馬說)’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내 소유물은 결국 빌린 것일 따름이다. 문화재 대신에 문화유산이라는 말을 쓰기를 주장하면서 소유물을 연상시키는 ‘재산(property)’이란 표현보다는 ‘유산(heritage)’이 적절하다는 목소리도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 등재된 조선왕릉을 비롯해 8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세계유산에 대한 인지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자연유산에 대한 관심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는 현재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하나에 불과한 세계자연유산을 2012년까지 3곳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문화유산에 치우쳤던 행정이 자연유산에 눈을 돌린다는 반가운 신호다. 당초에 제주도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삼으려 할 때 지역주민의 반대가 적잖았다고 한다. 다행히 관광 명소로 부각되면서 긍정적 인식의 확산에 기여했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유산 지정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손사래를 치는 일이 많다. 앞으로 정부는 국민의 권리의식에 높아지는 상황에 발맞춰 섬세한 보상과 촘촘한 계획으로 주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2009년 5월 자연유산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문화재위원회장이 탄생한 것도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 “옛날 문화재의 개념이 점이었다면 이제 점에서 면으로, 면에서 공간으로 확대”된다는 이인규 문화재위원장의 말씀에 공감한다. 개별 전각에 후원 조경의 원리가 융합해서 오늘날 창덕궁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문화유산 감상은 넓어질수록 깊어진다.


5. 항심을 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거드럭거릴 틈을 주지 않고, 무용함은 죄악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현재 상황이 단지 항산(恒産)이 모자라서 생기는 문제만은 아닌 듯싶다. 항산과 항심(恒心)의 선후관계가 뒤집어질 이유는 없더라도 항심에 대한 관심도 종요롭다. 항산은 결국 항심으로 이어지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백송을 응시하며 항심을 품는다. 조금 천천히 가면 넉넉히 볼 수 있음을, 조금 비우고 살면 웅숭깊어질 수 있음을 깨우친다. 솔향기에 취한 것도 아닌데 세한(歲寒)에 얼굴이 발그레하다.



장자는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 있음을 말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발이 닿는 쓸모 있는 땅만 남겨놓고 그 둘레를 다 파서 없앤다면 딛고 있는 땅이 쓸모없어지고 만다는 비유를 들었다. 상품화할 수 있는 문화만을 숭상하는 오늘날 곱씹어볼 대목이다. 백송이야 경제적 잣대를 통과하겠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산천초목들도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백송은 밑동부터 V자로 갈라진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모습을 형상화하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나눠진 줄기는 하늘에서 무성한 잎을 맺어 다시 만난다. 결국 뿌리는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말해준다. 자세히 보면 지지대를 알록달록 칠해 놓은 것을 발견하는데 백송의 빛깔을 돋보이게 하는 배려 같아 정겹다.


헌법정신이라는 뿌리 위에서 이따금 갈등할 수도 있겠지만 종국에는 힘을 합쳐야 함을 백송은 담담히 술회한다. 이 정갈한 노거수(老巨樹)처럼 헌재가 우리 사회에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한다.


김홍도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에는 “바다 용왕이 계신 곳에서도 나는 옆으로 걷는다(海龍王處也橫行)”라는 화제(畫題)가 적혀있다. 헌재를 비롯해서 공직자들은 살아있는 권력에 무심할수록 권위를 인정받을 게다. 백룡의 등 위에서 사는 새들도 그런 마음일까.


조계사 대웅전에 있는 수송동의 백송이다. 재동의 백송과 비교해서 답사하면 좋다. 대웅전 쪽으로 뻗은 가지만 살아남아 있는 모양새가 이채롭다. 재동의 백송처럼 아득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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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를 위한 기도

일기 2009. 12. 10. 21:32 |

2008년 10월에 썼던 잡글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이 글을 쓸 때의 비장한 결심은 온데 간데 없고 1년이 지나고 봐도 그 때의 심정과 비슷해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영화의 줄거리를 대강 들었다. 우리말에서 ‘밥숟가락을 놓다’가 죽음을 일컫듯이 미국에서는 ‘양동이를 걷어차다(Kick the Bucket)’라는 표현이 죽음을 뜻한다고 한다. 여하간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노인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내용이다. 대학 시절의 카터(모건 프리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기, 백만장자가 되기 따위의 목록을 적었지만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 같은 소박한 바람을 적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내가 품었던 꿈도 야무졌다. 학보사 편집장 되기, 책 1,000권 읽고 유식 찬란해지기, 평생 함께 할 지인 50명 만들기 같은 거창한 목표로 그득했다. 졸업이 임박해서는 버킷리스트를 흉내 낸 학사모리스트를 만들어보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많이 단출해진 목록을 손에 쥔 순간에도 유종의 미를 빙자한 요행수를 앞세웠다. ‘그래도 이거 하나쯤은 성사되겠지’하는 열망 말이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나의 권리인양 행세했다.  


고종석 선생님은 <미친 사랑의 기도>라는 칼럼에서 자식이 수능시험을 잘 치르길 비는 어머니의 기도가 추하다고 쓰셨다. “그들 가운데 자식이 애쓴 만큼만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어머니는 거의 없을 것”이며, “그들 대부분은 자식에게 ‘덤의 운’이 따르기를 기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도 내 실력을 다 발휘하고, 상대방도 제 실력을 다 발휘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기도할 자신이 도무지 없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천착하는 한국 사회에서 겨루기를 거듭할수록 그런 자신감이 자꾸 줄어든다.


수능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때 거의 모든 수험생과 관계자들은 ‘덤의 운’을 빌 수밖에 없다. 단 하나의 평가로 배분하는 자원의 차이가 현저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내신, 논술, 경시대회, 봉사활동 등을 반영하려는 교육 현장의 시도는 ‘덤의 운’을 빌려는 유인을 줄인다. 매번 운수에 기댈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학생들의 고통을 자아내는 부작용을 낳았다. 획일적인 대학 서열화라는 또 다른 절대적인 기준이 온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분야에 ‘덤의 운’을 빌어야 하는 기도의 남발 사태로 귀결되고 말았다. ‘덤의 운’이라도 빌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어놓은 구조를 고찰해야 한다. 취업 포털 커리어가 2008년 상반기 인턴십을 진행한 32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인턴사원 평균 경쟁률이 54대 1로 집계됐다. 2009년 상반기에 42개 기업을 조사해보니 49 대 1로 조금 하락했는데 이는 정규 신입사원 대신 인턴사원을 뽑아서 모집인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떨어질 위험(Risk)이라고 해야 할지 그마저도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고 해야 할지 헛갈린다. 이런 별 따기라면 ‘덤의 운’을 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편익을 내고 싶다는 바람은 모든 수험생과 지원자의 꿈일 게다. 어떤 시험이든 찍은 문제는 남들보다 더 맞히길 바라고, 무슨 면접이든 아는 질문이 나오길 희망할 게다. 그것이 아름답지는 못할지언정 차마 비루하다고 손가락질하기 힘들다. 나 또한 내 분수보다 큰 것을 누리기를 바랐고, 실제보다 높은 명성을 탐했다. 더 나아가 내 둘레에 나와 친한 사람들의 ‘덤의 운’을 빌면서 생색내는 일도 다반사였다. 둘레 사람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조르면서 잘 되면 베푼다고 유혹하기도 했다.


다만 ‘덤의 운’을 바라는 정도를 자꾸 줄여나가고 싶다. 운의 자리에 재주를 채워 넣는 것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건 자기가 하는 일에 가슴 뛰는 사람이 되고, 자기가 딛고 있는 곳에 정성을 쏟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를 위한 기도가 조금 덜 추하고 조금 덜 역겨워지도록 노력해야겠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추구했던 과정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이 순간이 내 삶의 공백을 넘어 여백쯤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평평함에 누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대학원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스스로를 다잡지만 어느 순간 ‘너는 이미 합격해 있다’를 주문처럼 외우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기도의 무기력함을 잘 안다며 짐짓 의연한 척한다. 하지만 이런 태연함보다는 만약을 대비한 백수리스트를 좀 추려보는 게 좀 더 생산적인 일일 게다. 나를 위한 기도가 대개 무기력하듯이 나와 무관한 것들을 위한 기원도 무기력하다. 내 이익과 관계없이 아주 좋은 의도에서라도 ‘덤의 운’을 바라는 것은 삼가야겠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덤의 운’을 넘보는 것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좋은 습관의 축적’과 잇닿는다. 시의 적절한 절제는 습관으로 삼아 마땅하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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