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122
내가 동양 고전에 달통하다는 추정은 나에 대한 오랜 오해 가운데 하나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잘 모르는 다른 과 친구에게서도 익구는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느니 하는 뜬소문이 돌았다. 아마도 내 나이 또래는 으레 “사서삼경=동양 고전”이라는 등식을 품고 있었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지만 내가 처음 읽은 동양 고전은 <도덕경>이었고, 그 다음이 <채근담>, <명심보감>, <장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논어>는 한 번 통독한 이래 번번이 정독에 실패하고 있다. 내가 끔찍하게 아끼는 <맹자>는 짬짬이 발췌독을 하지만 완역본을 꼼꼼히 독파한 적은 솔직히 없다.

하지만 나에 관한 오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확증으로 바뀌고 있어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고전 명구를 좋아해서 이리저리 찾아보고 곧잘 인용하는 탓에 그런 심증을 굳히게 만든 내 책임이 크다. 하지만 고전 완역본을 다 독파해야지만 그 고전에 대해 말하는 건 지나치게 엄격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몇몇 경전 번역에 편중하여 아직도 제대로 완역되지 않은 고전들이 많음은 덤으로 지적해본다. 특히 우리 한문 고전의 경우 더욱 더디다. 어지간한 우리 고전들이 다 번역되려면 지금 속도로 따져 10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런저런 제약조건을 덮어 두고 제자백가를 중심으로 탐독해보기로 했다. 중간에 그만 두지 않도록 빠른 호흡으로 읽는 원칙을 견지해야겠다. 훗날을 대비한 초벌구이인 셈이다.

중국 최초의 시인으로 불리는 굴원이 지은 어부사(漁父辭)는 내가 무척 아끼는 시가다. 독야청청을 버리지 못하는 견결하고 고고한 마음자리를 흠모하기도 하거니와 사람 사는 세상은 늘 비슷하구나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옛사람들의 문제의식 중 상당수는 오늘날도 여전히 끙끙 앓아가며 고민해야 하는 화두다. 단순히 말해 어부사에서 보이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대립항이 그 예다. 뭇사람이 술에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는 “중취독성(衆醉獨醒)” 구절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갑갑하다. 동양 고전 읽기가 두려운 까닭은 읽은 만큼 실천이 따르지 못할까 저어되기 때문이다. 홀로 깨어 있고, 나아가 함께 깨어 있을 수 있기를.


070123
이계안 의원님이 23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그는 ‘정치적 「렉서스(LEXUS)」를 꿈꾸며’라는 탈당의 변에서 “열린우리당이 추구하는 목표와 강령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죽어야 한다고 믿습니다”라며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결단이라 밝혔다. 이 의원님만큼 ‘잘사는 나라’, ‘따뜻한 사회’라는 우리당 정강정책을 많이 읊조린 분도 없다. 개혁이니 민생이니 하는 구호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세부적인 정당 목표를 자주 언급하는 게 정당 정치의 기본이라면, 이 의원님은 탄탄한 기본기를 자랑하는 분이다.

그런데 “국민들께 「잘사는 나라, 따뜻한 사회」라는 훌륭한 상품을 팔 수 있으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라고 말씀하시니 당혹스럽다. 양질의 상품이지만 포장에 문제가 있어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는 식의 논리를 정당 정치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설령 그 논리에 수긍하더라도 그 특단의 조치는 국민이 내리는 것이 더 맞다. 지도자들이 비장한 결심을 통한 위로부터의 개혁이 사실 시시한 것이었음을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도무지 정감이 안 간다면 개인적인 편견일까?

이 의원님을 잃은 건 여당으로서는 큰 손실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몇몇의 탈당보다는 우리당을 거쳐갔던 60여만 명에 달하는 당원들을 더 아프게 받아 들여야 한다. 문득 2005년 4월 우리당 전당대회에서 당의장 후보 유시민 의원님의 연설 한 토막이 떠오른다. “우리의 후보를 위해서는 돈과 몸과 시간을 주는 당원이 있는 정당”이라는 우리당의 창당 초심을 무겁게 여겼더라면 지금의 몰골은 아니었으리라.

이 살벌하고 유치한 생존의 시대에 “인간은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던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우직함이 그립다.


070124
중국 정사인 25사(史) 가운데 유일하게 완역에 가깝게 번역된 진수의 삼국지(신원문화사 刊)는 현재 절판이다. 가까운 시일에 배송지 주석 등을 망라하고 원문까지 수록된 삼국지가 완역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을 품어본다. 이 땅에 삼국지를 읽느라 밤을 새고, 삼국지 게임에 매료되어 끼니를 거른 사람들이 많은데 견주어 삼국지 번역은 초라한 실정이다. 다행히 신동준님이 역주한 자치통감 삼국시대편이 있어 반갑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은 북송시대 정치가이자 사학자인 사마광(司馬光)이 지은 편년체 역사서다. 전국시대부터 송나라 이전까지 1,362년 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294권이나 되는 방대한 저작이다. 자치통감은 조선시대 문과는 물론 무과의 시험과목에도 포함되었다고 하니 오늘날 행정학 내지 행정법의 위상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가치관을 좌지우지했던 자치통감 완역을 위해 중앙대 사학과 권중달 교수님이 애쓰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8권까지 나온 자치통감은 펴낸 곳이 매번 바뀌었다. 수익성이 낮아 선뜻 출판하는 곳이 없어 정년퇴직금을 털어서 아예 출판사를 차렸다니 고맙고도 죄송스럽다. 2009년까지 31권으로 완간하시겠다는 계획이 꼭 성공하실 바란다.

번역자가 직접 출판사를 만드는 기막힌 현실이지만 나는 이런 미련한 분들이 좀 더 많이 나와서 그 덕을 봤으면 좋겠다. 기껏해야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책 한 권 사주는 일이니 나처럼 미련한 독자들도 좀 더 늘었으면 더욱 좋겠다. 여담이지만 남송시대 학자 여조겸(呂祖謙)이 엮은 동래박의(東萊博義)가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반들이 꼭두새벽인 오경(五更)부터 일어나 “동래박의를 얼음 위에서 박 밀듯 왼다”는 박지원의 양반전에 나오는 책 말이다. 동래박의는 춘추좌씨전에 대하여 논평하고 주석한 역사평론집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준비 교본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옛사람들의 벼락치기용 참고서를 읽고 싶다는 벼락치기 예찬자의 욕심이다.^^;


070125
중학교 시절 나는 역사부도를 들여다보기를 좋아했다. 특히 역사부도는 초등학교 때와 달리 상세해서 내 마음을 빼앗았다. 초등학교 역사부도에서 당나라 영토는 오늘날 중국 영토와 거의 똑같이 그려 놓았는데 중학교 때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을 알고 매우 분개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어린애들 보는 교재라고는 해도 사실에 부합하게 그려서 국가의 흥망성쇠와 영토의 변경 같은 걸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았으리라. 물론 요즘 교과서들은 잘 나오리라 믿는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 나는 삼국지 4, 5 게임에 넋을 놓았다. 중국 역사상 삼국시대는 그다지 역사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평가하면서도 삼국지 소설과 매력은 거부하기 힘들었다. 제갈공명에 흠뻑 빠진 나는 중국을 가게 되면 공명선생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를 찾기로 결심했다. 사실 무후사는 한소열묘(漢昭烈廟), 즉 유비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유비묘 곁에 공명선생을 추념하기 위해 무후사를 세웠고, 나중에는 무후사가 더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정호갑 기자가 쓴 “민심은 제갈량·관우·유심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기사 제목에 많이 동감했다.

진수는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서 공명선생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탬이 된 자는 비록 원수일지라도 반드시 상을 주었고, 법을 어기고 게으른 자는 비록 가까운 사람이라도 반드시 벌을 주었다(盡忠益時者雖讎必賞, 犯法怠慢者雖親必罰)”, “선행이 작다 하여 상을 주지 않은 적이 없었고, 악행이 작다 하여 처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善無微而不賞, 惡無纖而不貶)”. 숱한 난관과 역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원칙을 지켜나갔던 그를 흠모한다. 그 의연한 모습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하다.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謀事在人 成事在天)”라고 탄식할지언정 뚜벅뚜벅 최선을 다하는 게 사람의 몫이다.


070126
동양고전 책을 사기 위해 헌책방을 다녀왔다. 신촌의 숨어있는 책의 고전 파트는 낡은 책이 대부분이라 기왕이면 보기 좋은 디자인을 원하는 선뜻 손이 가는 책이 별로 없었다. 양질의 도서를 잘 갖추기로 유명한 곳이라 괜찮은 책은 금세 팔려가지 싶다. 한자 원문 주해가 비교적 잘 되어있는 격몽요결, 생소한 해동소학 두 권을 집어 들었다. 해동소학은 조선판 소학인데 이 책을 만나서 우연히 마주친 지기(知己)마냥 기뻤다.

외대역 신고서점의 고전 파트는 우리네 고전 편식 풍토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사서와 노자, 장자, 명심보감, 채근담 정도의 비슷한 책들만 잔뜩 꽂혀 있었다. 고전을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열심히 보는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책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고 구석에 박아 두느라 더 많이 바래고 찢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헌책이지만 두고두고 볼 고전은 좀 깨끗한 책이 좋겠다 싶어 다시 꽂아둔 책이 많다.

셈을 치르기 위해 기다리다가 서점 초입에서 <십팔사략(十八史略)>을 발견하고 충동구매했다. 아직 마땅한 완역본이 안 보여서 조금 기다려보기로 하던 참인데 책 말미의 야율초재 부분이 마음에 들어 사버렸다. 원나라의 명재상 야율초재는 “하나의 이익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의 해로움을 제거하는 것만 못하고,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은 지금의 수고로움을 더는 것보다 못하다(興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는 구절의 원전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2,000원을 내고 사왔다.

때 되면 도지는 도서 충동구매는 내 고질병이지만 이 한 구절을 곱씹는다면 2,000원 정도는 금방 본전일 게다. 내 아름다운 약점을 너무 나무라지 말기를.^^;


070127
책사냥 마지막 행선지인 코엑스 반디앤루니스는 서가 간격이 넉넉해서 앉아서 책을 고르는 맛이 있었다. 광화문 교보문고 동양고전 서가가 바로 옆에 점술서들이 많은 관계로 번잡한 것과 달리 한적해서 좋았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서점만 알던 내게 교보문고는 큰 문화적 충격을 안겨줬다. 옛 정이 두터워 오프라인 서점은 광화문 교보문고부터 찾지만 가끔씩 외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본래 서점에서 필사를 잘 안 하는 편이다. 깨알 같이 적더라도 몇 자 적지도 못할 바에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 필요한 부분 몇 장 복사하면 훨씬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오늘따라 꼭 적어가고픈 구절을 발견했다. 필사라는 것이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가운데 그 구절을 눈으로 읽고, 손으로 기억하고, 마음으로 음미하는 효용이 있음을 깨달았다.

성호 이익 선생의 성호사설에서 ‘착한 사람은 박복한가(善人福薄)’이라는 글은 일마다 세속에서 숭상하는 것과 상반되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착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 묻어나는 글이다. 착한 사람이 고생하는 것을 정신적으로 극복해내라는 말 밖에 해줄 수밖에 없는 성호 선생의 안타까움에 동감했다.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는 유물론적인 인간중심의 철학을 강조해 수많은 당대의 기독교인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신이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창조된 존재로 “인간이 신의 아들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아들”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내 종교관에 많은 영향을 끼친 그 분의 저서를 실제로 접하니 반가웠다.

그러나 선비의 힘쓸 것은 여섯 가지 참는 데에 있다. 주림을 참아야 하고, 추위를 참아야 하며, 수고로움을 참아야 하고, 몸이 곤궁함을 참아야 하고, 노여움을 참아야 하며, 부러워짐을 참아야 한다. 참아서 이것을 편안히 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위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 이익, 『성호사설』(솔출판사, 1997), pp. 277~278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자를 가만 놓아두고 살아 있는 자들만을 걱정하자! 우리가 더 나은 삶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실제로 만들려 할 때,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힘을 합쳐 만들려 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이룩할 수 있다. 또한 적어도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 온 극도의, 천인공노할, 가슴을 찢는 불의와 해악의 상태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만들고 작용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의 사랑을 유일하고 참된 종교로서의 인간의 사랑으로 대치해야 한다. 신에 대한 믿음을 인간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힘에 대한 믿음으로 대치해야 한다. 그것은 인류의 문명이 인류를 벗어나 있거나 초월해 있는 존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자신에 의존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것은 인간의 유일한 악마는 인간, 다시 말하면 조야하고 미신에 사로잡힌, 이기적이고 약한 인간이고 동시에 인간의 유일한 신도 인간 자신이라는 믿음이다.

- 포이어바흐,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한길사, 2006), pp. 400~401


070128
고종석(48)에게는 열성독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가 있다. 2004년 문을 열어 270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고종석 팬 카페(cafe.daum.net/kjsfreedom)’는 인문서 저자로서 그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인문서 저자의 팬 카페는 손으로 꼽을 수 있다.
- 출판칼럼니스트 최성일님의 한겨레신문 2007년 1월 26일자 기사 中

출판칼럼니스트 최성일님의 고종석 선생님 인터뷰로 말미암아 내가 운영자로 있는 고종석 팬카페 방문자수와 회원 가입이 급증했다. 그간 몇몇 분들 위주로 조촐하게 돌아가던 우리 카페에 활기가 돌아서 매우 기껍다. 사흘 만에 수십 분이 가입해 회원수 300명을 훌쩍 넘겼다. 아마 내가 언론의 힘을 체험한 첫 사례가 될 듯싶다.

정치인들은 언론에 자신의 부고 기사 빼고는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바람직하다고 여긴다는 농담이 있다. 그저 내가 관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신문지상에 알려진 것도 괜히 가슴 뛰고 신경 쓰이는데 만약 이름 석자가 여기저기 실린다면 어떨까? 유명세(有名稅)라고도 하지만 남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면 그 이목의 눈치를 보느라 개인의 자유가 제약받는 경우가 많다. 이 상충관계(trade off)를 잘 조율해냄도 공인의 실력이다.

선현들이 남의 기림을 바라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문인 위인지학(爲人之學)보다 자신의 인격과 덕행을 닦는 학문인 위기지학(爲己之學)을 강조한 뜻을 새긴다. 나는 내 자신을 위한 공부를 잘 해나가고 있는가?

Posted by 익구
:
070115
故 박종철 열사의 20주기다. 박종철 열사가 죽는 순간까지 보호하려 했던 박종운씨가 한나라당에 입당해 부천오정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대경실색했다. 박씨는 “나를 변절자라며 매도하지만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반시장적 반민주적 처사들을 극복하는 것과 북한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종철이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는 386이라는 레테르를 뽐내며 그렇게 동원되고 소비되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물론 민주화 운동을 훈장으로 금배지를 탐했던 사람은 헤아리기 힘들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숱한 인사들이 권세를 얻고 명예를 누렸다. 박씨는 운 없게도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했으니 마음 고생도 심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의 진심을 못 받아들이겠다. 박씨의 출세를 시기해서도 아니고 치열한 자기성찰을 폄하해서도 아니다. 다만 고통 속에 죽어간 한 다정한 정신이 너무 억울하고 분통하기 때문이다.

도피생활로 고초를 겪고 있는 선배를 걱정하며 목도리를 벗어주고 1만 원을 손에 쥐여 줬던 박종철 열사를 떠올린다면 정말 그러면 안 된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그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차마 못할 일을 하지 않는 그침의 미덕이리라. 다른 건 몰라도 때 되면 비장한 표정으로 박종철을 추념한다고 팔고 다니지 말기를 박씨에게 정중히 요청한다.

실천하는 지성을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나는 고작 애먼 사람만 험담했다. 왜 이리 아픈가. 왜 이리 추운가.


070116
2006년 11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영어의 경제학>이라는 보고서에는 “한국은 공교육을 제외한 영어 관련 사교육 투자 비용만 한 해 1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 학생수가 1193만5000여명이고 이들이 매달 10만원씩 연간 120만원을 학원 수강, 개인 교습 등 사교육에 지출하고 있다고 추산하면 14조 3,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여기다가 토익, 토플 등 영어시험 응시로 한 해 7,000억원 이상을 쓰다 보니 15조가 얼추 나온다. 2004~2005년 세계 토플 응시인원 가운데 18.5%가 한국인이었다.

“영어구사 수준은 만족스럽지 못해 '고비용 저효율' 현상이 심각하다”라는 진단을 들으니 고비용 저효율에 일조하고 있는 내 자신이 민망해졌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訓民正音)과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국보 제142호 동국정운(東國正韻)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의 책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조선의 한자음을 중국의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 표준음을 정하는 목적으로 편찬했다고 한다. 애민정신의 표상인 한글 창제에서 엿볼 수 있는 모화사상의 편린이다. 오늘날 영어 열풍도 강대국이 되지 못한 이 땅의 서글픈 역사의 재연인지도 모르겠다.

턱없이 높은 영어 능력을 요구하는 세태에 대한 불만을 좀 다독여본다. “고귀한 인물은 쉽게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씀을 음미한다. “실패와 몰락에 대해서 책망할 사람은 나 자신 이외는 없다. 내가 내 자신의 최대 적이며, 내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었다”는 나폴레옹의 금언을 되새긴다. 문제의식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철저하게 내 탓을 하자.


070117
삼청동길 근처에서 고종석 팬카페 신년 모임이 번개처럼 열렸다. 새벽까지 적포도주를 많이 마셨다. 파스퇴르는 “포도주는 모든 술 가운데서 건강에 가장 유익한 술이다”라고 예찬하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적정량을 마실 때의 이야기일 게다. 물론 파스퇴르는 포도주는 많이 마셔도 다른 술보다 그 해악이 덜하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백포도주에 대해 찾아보고 청포도로 만든다고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청포도 말고 껍질을 벗긴 적포도를 이용해서도 만듦을 발견했다. 포도알을 으깨면 청포도와 적포도 상관없이 투명한 즙이 나온다고 한다. 이처럼 과즙만을 발효시켜 씨와 껍질을 함께 발표시켜 붉은 색소를 추출하는 적포도주와는 다른 풍미를 낸다. 추가로 차게 먹는 포도주인줄 알았던 아이스 와인(ice wine)은 언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말한다는 것도 새로 익혔다. 포도가 얼면서 당도가 높아지게 된다. 어쩐지 언젠가 먹어봤던 아이스 와인은 서늘함보다는 달콤함이 강했다.^^;

내가 우파 편식을 막기 위해 부러 진보적 인사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듯이, 동양 편식을 막기 위해 포도주를 배워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포도주를 즐기기에 내 미각은 참 둔하지만.^^; 대화 가운데 프랑스어, 독일어, 기사련, 빈, 깐느와 같은 유럽 관련 소재가 많았는데 내 귀찮음을 다스려 언젠가는 유럽을 좀 둘러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고종석 선생님도 무척 반기신 문화관광부가 2011년까지 세계 100곳에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을 건립에 가장 마음이 갔다. 중국의 공자학원,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 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 일본의 일본어 학습거점과 같은 문화와 언어를 전파하는 학교를 세계각지에 만들겠다는 포부가 기껍다. 그간 외국인의 한국어 습득은 한국학을 전공하는 등의 지식층을 위주로 이루어졌다면, 세종학당은 현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 기대가 크다.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참 풍성했다.


070118

아침에 온 주원형의 문자에 재까닥 답문을 보냈다. 점심에는 몇 주째 벼르던 토요일 저녁의 고기부페 회동 참석인원을 확정했다. 오후에 걸려온 종로구청 동년배의 업무 문의전화에 성심껏 답해줬다. 해질 무렵에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학교를 찾아가서 군대 가는 후배 얼굴을 보기로 했다. 퇴근길에 들른 헌책방에서 옆 사무실 동생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기열전 2, 3권을 샀다.

오전에 “곰곰이 뜯어보면 경상도 사나이라는 말은 삶에서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한다는 생각이다. 다정하지 않아도, 잘 해 주지 않아도, 무뚝뚝해도, 엄해도 “나, 경상도 사나이야” 한 마디면 모든 게 용인된다는 뉘앙스다(최지향. “‘경상도 사나이’면 다냐.” 한국일보. 2005. 05. 12.)”는 글을 읽고 무의식적으로 다정한 행동을 많이 한 거 같다.

정계에서 소문난 마당발 가운데 한 분인 김상현 전 의원은 얼굴과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1만 명이라고도 하고, 아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정리하다 보니 3만 명이 넘었다는 등의 놀라운 이야기가 전한다. 그가 아끼던 측근의 배신을 접했을 때 “그 사람은 자리든 돈이든 내게 기대한 게 있어서 왔는데 충족시켜줄 수 없게 됐으니 내가 그 사람을 배신한 것”이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의미심장하다(김두우. “누가 배신자인가.” 중앙일보. 2006. 08. 20. 참조).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발이 넓은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다. 하지만 발을 넓히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손 잘 비비기를 할 자신이 없어서 그림의 떡으로만 두고 봤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거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거스르기란 참 힘들다. 용기를 내어 거스른다고 해도 내 자신에 쏟아질 그 실망의 눈초리를 감내하는 건 따갑다. 난 무뚝뚝함을 애호하지만 좀 더 살갑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핑계 같지만 내가 보기보다 속정이 깊다.^^;


070119
05학번 후배 정석이의 환송회 자리에 다녀왔다. 저녁만 먹고 나온다는 것이 눈치 없게 자리를 너무 오래 지켰다. 후배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빼앗아 민망했다. 집에 오는 길에 이제는 너무 식상해져버린 의형제라는 말을 생각해봤다.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도원결의에 대한 집착 탓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언젠가 의형제를 맺고 싶다.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주몽의 의형제였던 오이, 마리, 협보 역시 도원결의 못잖은 우애를 나눴으리라 믿는다.

불신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라지만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을 그리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 식의 이중생활을 처세 방편으로 삼을 요량은 아니다. 공사의 구분을 엄격히 하되 사적인 영역에서는 가능하면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북돋워줌을 지향한다. 볕들 때나 그늘질 때 한결같이 내 빈곳을 채워줄 사람 찾는 마음을 세속적인 꿍꿍이로 보기에 우리는 너무 외롭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함석헌 선생님의 시구는 내 마음의 가시다. 일생동안 내 곁에 몇 명의 사람을 둘 수 있을까? 섬광처럼 의형제 하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에게 머뭇거리지 않을 자존감을 키우고 싶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날도 있을 게다.


070120
청원, 승현(섭), 승현(정)과 고기 뷔페 까르네 스테이션에서 저녁을 먹었다. 작년 2월 수원화성을 답사하고 나서 수원갈비의 엄청난 가격에 경악하며 눈물을 머금고 갈비탕을 먹었다. 갈비탕을 달게 먹긴 했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워서 머잖아 돈 많이 벌어서 이 갈비를 보란 듯이 뜯어주자며 맺은 갈비 서약(?) 이후 고기에 대한 내 애정은 좀 더 짙어진 거 같다. 섭은 괜찮은 고기 뷔페라며 까르네 스테이션을 권유했고 수원갈비의 상흔을 다독이기 위해 회동을 갖기로 결의했다.

그렇게 많은 곡절을 안고 찾은 고기 뷔페에서 원 없이 먹고 마셨다. 소주, 맥주는 물론 포도주와 양주까지 무한대로 마실 수 있어서 흥취는 극에 달했다. 양주와 포도주를 모두 한 번씩 맛봤지만 내 미각은 너무 무뎠다. 맛 메모라도 좀 해서 다음에 시행착오를 좀 줄일 수 있게 하고 싶었는데 뷔페에서 메모를 부지런히 하고 있는 사람을 좋게 볼 사람은 거의 없을 거 같아서 그만 뒀다.^^; 고기도 이것저것 많이 구웠지만 소 양지삼겹과 소 부채살이 특히 달콤했다. 백김치와 무쌈을 번갈아 싸먹으니 세상사 시름이 스르르 녹아 내리는 듯하다.

1985년 유시민 선생님의 항소이유서에는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예쁜 여학생과 고고 미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는 구절이 나온다. 한 끼 잘 먹어놓고 갑자기 비장한 표정으로 돌변하겠다는 게 아니다.

친구들과 청계천을 산보하면서 밥 벌이 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밥 값하는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다. 수입원도 없는 학생에게 22,000원짜리 뷔페는 부담스럽지만, 한 해에 한 두 번쯤은 이런 호사를 누리면서 재충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070121
KBS 드라마 <대조영>에서 고구려가 멸망했다. 고구려의 멸망 이유를 보통 내부의 적 때문이라고 정리한다. 연개소문 아들들의 골육상잔은 고구려-수당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여념이 없었어야 할 고구려를 더욱 암담하게 만들었다. 나당 연합전선을 상대하기에 무척 벅찬 지경이 이르렀고 결국 당시 최고 권력자 연남건으로부터 군사 일을 위임받은 승려 신성(信誠)이 성문을 열어 주고 만다.

평양성이 포위되자 보장태왕은 남건의 아우 남산을 시켜 당나라 군대에게 백기 투항을 했지만, 남건은 여전히 성문을 닫아 걸고 막아 지켰다. 당에 협력한 매국노 연남생이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에 봉해진 것은 물론 성문을 연 신성이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항복의 흰 기를 들고 항복의 뜻을 전한 남산이 사재소경(司宰少卿)이란 벼슬을 받았다. 끝까지 저항한 남건만이 검주(黔州)로 귀양을 떠났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일지언정 성문을 사수했던 남건에게 애틋한 시선을 건네는 것은 단지 그가 고구려 패망의 책임을 진 거의 유일한 지도층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패권국가의 오만에 맞서 싸웠던 고구려의 호기로움을 곱씹으면 평양성 성문은 스스로 열어 젖히기보다는 적들에게 부수어지는 편이 나았다. 그것이 화려했던 문명을 꽃피운 이들 다운 최후였을 것이다. 반달리즘(Vandalism)에 사로잡힌 당나라가 철저히 파괴해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 버린 고구려 문명이 새삼 아쉽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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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08
스토아학파(Stoicism)는 세계는 대우주, 인간은 소우주에 비유했다. 개인을 세계의 축소판으로 본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우주 이성이 깃들여 있으며, 본질상 인간 이성과 우주 이성은 같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보편타당한 법률인 자연법 사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법은 실정법(實定法)에 대비되는 법 개념으로 민족·사회·시대를 초월해 영구불변의 보편타당성을 지니는 법을 말한다. 인간의 이런저런 문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연적 성질에 바탕을 둔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뀌지 않는 법이라는 뜻이다. 스토아학파는 자연법이야말로 ‘올바른 이성’에 맞는 완전히 평등한 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스토아학파를 알기 한참 전에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개인 소국가론’을 만들어 썼다. 말 그대로 개개인은 하나의 작은 국가라는 인식론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읽었던 도덕경의 소국과민(小國寡民,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을 알게 되면서 구체화했다. 고등학교 때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접하고 2000여 년 전에 선수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여하간 요즘도 관계 맺음을 ‘외교’라고 지칭하고, 나의 다짐을 ‘정책’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옛날의 습관이 이어져 내려와서다.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윤준호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젊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공화국”이어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까닭은 내가 ‘내각총사퇴’를 결심했기 때문이다. 20대 전반과 후반밖에 없다는 내 개인적인 신념(?)에 비추어 나는 20대 후반이 되었다. 이 때가 되도록 딱히 이뤄놓은 게 없다는 게 둘레 또래 친구들의 한탄이기도 하지만 나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하다. 나의 무능과 태만을 반성하는 의미로 내각총사퇴라는 표현을 써봤다. 현실 정치에서는 내각총사퇴라는 말이 정략의 도구로서 함부로 발설되는 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쓰는 이 말에는 내 자신을 벼리겠다는 서늘한 결의만 있을 뿐이다.

이래서 내 친구들이 나를 보고 “혼자서도 잘 논다”라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070109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창한 진지전은 매운 기운이 서린 말이다. 통상 진지전 개념은 서구 자본주의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기동전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 현상에 대응해 내놓은 새로운 전략이라고 본다. 지배계급의 막강한 헤게모니에 맞서기 위해서 지적, 문화적 참호를 파고 장기전에 대비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서글픔이 살짝 배어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강고함에 절망하지 않고 그 체제 안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말한 진지라는 것이 그저 아픈 다리를 서로 기대는 안식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지전은 함부로 좌절하지 않겠다는 끈기의 언어이며, 비탄에 잠겨 있지 않겠다는 긍정의 언어다. 일상의 바지런함으로 자발적 복종의 악순환을 막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중용』 26장에는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至誠無息)”는 구절이 있다. 누구나 사흘쯤은 성인군자 행세를 할 수 있다. 닷새 정도는 공부를 하다가 지쳐 단잠에 빠질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사흘과 닷새를 보름으로, 달포로 늘려나가는데 있다. 눈치 보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정성이 하늘까지는 몰라도 사람은 감동시킬 수 있기를.


070110
9일 노무현 대통령님이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발표했다. 각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개헌을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는 응답이 많다.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는 노 대통령이 개헌을 정략적인 승부수로 던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인 셈이다. 그래서 원론적으로 찬성하나 시기적으로 반대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문득 대인 논증(argumentum ad hominem)이 떠올랐다. 이는 논증 그 자체가 아니라 논증을 제시하는 사람에 대한 논증을 말한다. 논리학에서는 오류의 하나로 보고 있다. “사람에 반대하는 논증”은 어떤 명제가 특정한 사람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유로 그르다고 판단하는 논증을 일컫는다. 주장의 논거를 살피기보다는 그 주장의 발설자에 따라 타당성이 결정되는 오류다. 이처럼 주장한 사람의 환경적 요인을 문제 삼는 것을 특정해서 “정황적 대인논증 오류”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대통령님께서 진정성과 선의를 강변해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부산에서 또 다시 낙선한 노무현 후보는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현 정치지형에 순응하고 체념하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밭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제 몫의 일을 찾아 끊임없이 궁리하고 부딪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회의 또한 대통령님이 감내해야할 업보이자 책무다.


070111
동아일보는 2004년 4월 29일자 ‘개헌 우선순위 아니다’는 사설에서 개헌 시기를 2006년 후반기나 2007년 초로 꼽았는데 정작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주장하고 나서자 2007년 1월 10일자 사설에서 “왜 지금 개헌이냐”며 민생을 걱정했다. 개헌 논의의 맥락에 바뀌었다는 지적을 수용하더라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상관관계를 헤집으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트집거리를 찾기 위해 필요할 때는 텍스트 비판을, 아쉬울 때는 컨텍스트 비판을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언론의 말 바꾸기는 하도 겪어서 놀라운 일도 아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사주들이 탈세 혐의로 구속되자 사설에서 일제히 무죄추정원칙과 불구속수사 확대를 주장하다가 강정구 교수 사건 때는 입장이 돌변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일전에 진중권 선생님이 통박하신 바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이들의 말을 내가 얼마나 참을성 있게 귀 기울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개체와 실존이 전체와 보편이라는 미명 하에 뭉뚱그려져 이해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었다. 그는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주체적 결단을 강조하며 “주체성이 진리다”라고 설파했다. 겉으로는 불평부당을 외치면서 파당성을 주입하고 있는 이들에 맞서 내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을지 두렵다. “정신을 꼿꼿하게 곧추세우고 있는 한 인간은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님의 말씀을 꺼내 본다.

내 실력과 열려있음이 그 분들의 저주와 냉소를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생산적 논쟁을 피하고 사상의 자유시장을 봉쇄하려는 비겁한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


070112

경영飛반 웹진 신입부원 멘토-멘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월 한 달 동안 과제를 내주고 간단한 강평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내가 낸 두 번째 과제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시사논쟁 이슈에 대해 A4 1장 내외의 글을 써보는 것이다. 언젠가 웹진에서 좋은 책 골라서 소개하거나, 사회적 논쟁거리를 분석하는 기사가 실릴지도 모르니 미리 연습해보자는 의도에서 내봤다.

나는 서평을 쓸 때 “인상깊었다”식의 개인의 인상에 근거를 둔 주관적 비평인 인상비평보다는 글쓴이의 주장과 논리체계를 파악하고 시사점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해볼 것을 요구했다. 시사논쟁의 경우도 찬반양론을 정리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이 좀 더 기운 입장을 편들어볼 것을 주문했다. 나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 생각을 얼마나 녹여낼 수 있느냐가 이번 과제의 핵심 포인트가 될 거 같다고 말했다.

단순한 사실 나열도 아니면서 일방적인 감정 토로도 아닌, 읽을만한 글을 쓰기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나도 잘 못하는 것을 내 멘티에게 하라고 던져준 못된 멘토다. 손석춘 한겨레 기획위원님의 “기름진 글과 기름 묻은 글의 차이”라는 글 제목을 되새겼다. 내가 기름 묻은 글을 쓸 자신은 없다. 내가 원하는 글은 담백한, 아니 솔직히 조금의 윤기는 흐르는 글이다. 나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지 않고, 천박한 인식을 먼저 부끄러워할 줄 알며, 화풀이 저주를 함부로 내뱉지 않기 위해 진력을 다해야겠다.


070113

금요일 저녁의 안암역 근처 참살이길은 붐볐다. 02학번, 03학번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03학번 후배들이랑 친해질 기회를 많이 놓친 아쉬움 때문인지 03학번들과는 좀 더 교류 나누고 싶다. 사기 관안열전(管晏列傳)에는 제나라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관중은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였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라고 소중한 벗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사마천은 세상 사람들이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아를 더 우러러봤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한비자 십과(十過)편을 보면 제나라 환공이 관중의 후임자를 물색하며 “포숙아는 어떻겠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관중은 불가하다고 답하며 그 까닭을 설명한다. “포숙아는 사람됨이 지나치게 곧고 고집이 세며 일 처리에 있어서 너무 과격한 면이 있습니다. 강직하면 백성들에게 포악할 우려가 있고, 고집이 세면 백성의 마음을 잃게 되며, 과격하면 아랫사람들이 등용되기를 꺼릴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두려워하는 바가 없으니 패왕의 보좌역은 아닙니다(鮑叔牙爲人, 剛愎而上悍. 剛則犯民以暴, 愎則不得民心, 悍則下不爲用. 其心不懼, 非覇者之佐也).”

과연 포숙아는 관중에게 섭섭했을까? 관중이 포숙아의 원칙주의를 염려해서 진언을 한 것이라고는 하나 포숙아가 관중에게 베푼 후의를 생각하면 차마 못할 말 같다. 하지만 포숙아의 성품이라면 자신의 결점을 짚어주고 나라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을 천거하려는 관중의 선의를 인정했을 듯싶다. 포숙아와 관중을 본받아 모자란 녀석과 선연(善緣)을 맺어준 고마운 분들이 나를 추억하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 애쓰고 싶다.


070114

나의 2대조 최충 할아버지와 나는 생년이 999년 차이가 난다. 최충 할아버지는 고려시대에 손꼽히는 문무겸전의 행정가셨다. 1170년 정중부 등의 무신란 때 할아버지의 문집이 소실되어 지금 전하는 건 시 몇 수와 단편적인 행적이 전부다. 최자 할아버지의 보한집(補閑集)에 최충 할아버지가 두 아드님에게 경계하며 했던 말씀이 전한다.

“선비가 세력을 이용해 출세하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어렵고, 학문과 덕행으로 영달하여야 비로소 경사가 있다. 나는 다행히 문행으로써 드러나 밝고, 청렴함과 삼가함으로써 세상을 마치게 되었다(士以勢力進 鮮克有終 以文行達 乃爾有慶 吾幸以文行顯哲以淸愼終于世).”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기고만장할지 모르는 자식을 훈계하는 쓴 소리가 천년 뒤의 후손에게도 큰 가르침을 준다.

1996년 1월 14일 오늘 나는 “험난하기는 해도 인생은 사회에 적응하는 게 아니고 만들어 낸다는 것이 내 철학이야”라고 일기장에 썼다. 이 헌걸찬 한 구절을 기리며 매해 1월 14일은 개인적인 기념일로 삼고 있다. 뭔가 거창한 걸 시작하기 좋은 날인 만큼 나는 최충 할아버지의 시호인 문헌(文獻)을 따서 ‘문헌공 프로젝트’라고 이름지어봤다. 그나마 내가 비교우위를 갖는 유일한 소질인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를 이렇게 에둘러 말했다. 이제 날라리 고시생의 생활을 접고 모범 고시생이 거듭 나야겠다. 그간 너무 많이 놀았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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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01
30일부터 아프기 시작하던 것이 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다. 새해 첫날까지 액땜을 하였으니 올해는 정말 좋은 일이 많을 모양이다. 두 해에 걸쳐 앓았으니 그보다 더한 경사가 있지 않겠는가? 내 일개인을 넘어 둘레의 고마운 분들의 액땜까지 했겠거니 그렇게 믿고 싶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을 떠나기 앞서 그의 모든 재산을 병사 가족에게 나누어주자 측근 한 명이 “왕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출발하시려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알렉산더는 “단 하나, ‘희망’이라는 이름의 보물을 가질 뿐이다”고 답했다고 한다. 내 희망이, 내 성실성이, 내 도량이 더 커지도록 노력해야겠다.


070102
사흘 째 약을 먹었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서 동네 의원을 찾았다. 어지간하면 병원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나 같은 사람은 간호사나 의사분께서 미워하실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내심을 알 리가 없는 의사선생님께서는 따뜻하게 진찰해주셨다. 컴퓨터를 이용해 처방전을 만드는 모습이 재미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감기->고열->알약A, 감기->코막힘->시럽B 이런 식으로 범주화된 곳에서 필요한 약을 척척 골라내시는 듯했다. 의사들의 전매특허였던 휘갈겨 쓰기 대신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되니까 훨씬 친근해 보인다. 앞으로 병원을 좀 덜 꺼릴 듯싶다. 내가 싫어한 건 주사기보다 병원을 감도는 묵직한 공기였던 모양이다. 하긴 엉덩이에 주사 맞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몽테뉴는 “부귀, 영화, 학식, 미덕, 명예, 사랑도 건강이 없으면 퇴색되고 사라져버린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건강을 버려 가며 그 가운데 하나라도 건사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도 하다. 보왕삼매론에는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念身不求無病 身無病則貪欲易生)”고 말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소설 동의보감에는 “병도 긴 눈으로 보면 하나의 수양(修養)이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런저런 역경과 마찬가지로 아플 때도 사람의 진가가 나오는 것 같다.

“술은 마시지 말아요”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자꾸 귓전에서 울리는 것을 보니 어쩌면 내가 병원을 멀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무시무시한 금주령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070103
06년 5.31 지방선거 때 서울 중구청장 선거에서 얼마나 보기 드문 장면이 펼쳐졌는지 알만한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크로스 포지션이라고 놀렸는데 어느 보도에서는 ‘후보 스와핑’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나라당 소속이던 전장하 전 서울시의회 사무처장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자 열린우리당 소속이던 정동일 전 시의원은 한나라당에 전격 입당해버렸다.

전장하님은 고 성낙합 당시 구청장과의 공천 경쟁을 피해 한나라당을 떠났고, 정동일님은 전장하님과의 경쟁에 부담을 느껴 열린우리당을 나왔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정당정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낯 뜨거운 일이다. 지방일꾼들에게 정당정치 가치를 너무 중시하는 건 지나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다.

서울 중구청이 3일 구민 눈높이에서 투명하고 친근한 구정을 펼치기 위해 구청 본관 3층에 위치한 구청장실을 1층으로 이전했다. 구청장 집무실과 비서실, 직소민원실이 1층에 위치하게 된다. 구청장실 1층 이전은 정동일 구청장의 선거 공약 가운데 하나였던 만큼 새해에 맞춰 이전을 하게 되었다. 중구는 이에 앞서 관내 15개 동사무소의 동장실도 모두 1층으로 옮겼다고 한다.

구청장실 접근성이 높아진 만큼 낮은 사람에게 더 낮아지는 구청 문턱이 되었으면 좋겠다. 중구청장님께서 작년에 거두셨던 그리 개운치 못한 승리를 이렇게 좋은 정책으로 하나 둘 메워나가실 바란다. 구청장실 개소식 연하장 수백 장 만드는 걸 도운 녀석의 충언이니 너무 섭섭하게 듣지 마시기를.^-^


070104
국방부가 입법예고한 ‘군인복무기본법’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군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구타나 가혹행위 및 언어폭력 등 사적(私的) 제재를 받지 않도록 명시했다. 또 지휘계통상 상관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거나 편제상 직책을 수행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병 상호간에 어떠한 명령이나 지시, 간섭을 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무엇이 사적 명령이고 무엇이 공적 명령인지 경계가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 법안을 서로 다르게 해석해서 발생할 전투력 약화의 우려를 덜기 위해 세부적인 실무규범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군 복무 환경을 끊임없이 개선하더라도 군대는 민간사회만큼 안락하게 지낼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그 현격한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너무 적었고 더뎠다는 점을 관계자들이 겸허히 인정했으면 좋겠다. 왜 우리 젊은이들이 영어점수만 따면 카투사 지원에 몰리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본권과 사생활을 철저히 보장하는 미국군의 질서를 선망하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부문이 미국 기준 못 맞춰 안달인 나라에서 왜 군대 구조는 미국식을 보고 배우지 못하는가.^^; 왜 대한민국 국군이 미군을 보며 군침을 흘려야 한단 말인가.

병역자원이라는 용어를 자연스럽게 쓰듯이 일개 병사는 군사전략의 주요 자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던, 어떤 외적환경에도 이용되지 않는 최종 목적이라고 외쳤던 칸트의 말씀이 사무친다. 적어도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만큼은 부끄러워하고 아파해야 한다.


070105
꾀 많은 토끼는 굴이 세 개 있어 위험에 대비한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는 맹상군의 식객이던 풍환이 강조한 이야기다. 외골수로 치닫기 일쑤인 내게는 매우 유효적절한 충고다. 일어날 법한 상황을 여러 가지 산정해놓고 그에 대비한 대안을 마련하는 사고실험이 내게는 너무 부족하다. 통상관례에 따르는 내 고루한 습속과 더불어, 닥치면 부랴부랴 해결하는 대증적 처방을 남발하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내 자신은 이렇게 살면서 사회 문제에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강구하려니 좀 멋쩍다.^^;

미국 경제학자 마코위츠는 현대 투자이론의 기본을 이루는 포트폴리오이론을 최초로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자산을 단순히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계수가 낮은 자산을 서로 결합하여 투자하는 것이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비결이라고 설파했다. 상관계수란 두 변수 사이의 상관관계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상관계수 -1에서 1 사이의 값을 갖는데 양수면 두 변수가 정의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음수면 두 변수가 부의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0일 경우는 유의미한 선형(線形)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마코위츠는 분산투자의 효율성을 이론적으로 규명함으로써 1990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의 이론을 응용하면 주식, 채권, 부동산으로 분산투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유럽 등 지역분산,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 통화분산 등도 포트폴리오의 대상이 된다. 여하간 이 분산투자 이론을 내 삶에 적용해보려니 측정의 어려움이 적잖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교류하는 사람과 나와의 상관계수, 내가 읽는 책들 간의 상관계수 등은 명확하지도 않을뿐더러 억지로 계산하는 게 더 미련한 짓이다.

다만 내 개인적인 관습에만 너무 얽매이지 말자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야겠다. 나와 상관계수가 높은 소중한 인연의 그물에 걸려 공사의 구분을 못하는 것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070106
2002년 대선 정국은 참 역동적이었다. 특히 집권당이던 민주당의 어지러운 행각들은 후세 사람들이 사극 소재로 써먹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오래 기억해야할 것은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소속 의원들의 현란한 추태다. 그 가운데 백미는 역시 김원길 전 의원이다.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다가 정작 후보단일화가 성사되자 한나라당으로 향한 그의 변심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면 독일의 히틀러보다 더 심한 나치 독재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던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다.

집권여당의 요직을 두루 맡고, 국민의 정부에서 국무위원까지 한 사람이 정치 도의를 어디까지 저버릴 수 있는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한나라당 입당을 밝히는 기자회견장에서 환하게 웃던 모습은 내가 2002년을 통 털어 가장 잊고 싶지 않는 사진이다. 김 전 의원을 따라가지 않고 사표를 던졌던 윤후덕 보좌관과 최종환 비서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제 밥줄을 끊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그네들은 우직하게 정당정치를 지켰다.

여권의 정계개편 논의가 어지러운 가운데 염동연 의원이 선도 탈당의 기수가 되기로 한 모양이다. “교섭단체(20명) 구성이 되든, 안되든 나가서(탈당해서) 기다리는 게 떳떳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씀은 시원해서 좋다. 어쩌면 제 2의 후단협을 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누가 국민을 더 두려워하는지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길. “가는 길이 다르면 서로 더불어 일을 꾀하지 않는다(道不同 不相爲謀)”는 공자의 말씀이 그립다. 그간 공통점이라고는 오로지 권력에 대한 집념 밖에 없던 이들이 단물이 떨어지니 갈라서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래서 이익만을 위한 사귐이 추하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070107
일반적인 법대 강의 과정에서 행정법은 3학년 이상에서 배운다. 그도 그럴 것이 1, 2학년 때는 헌법, 민법, 형법 등 법학의 기초를 습득하는데 투자해야하기 때문이다. 기초 법학의 소양도 없이 덜컥 행정법을 배우려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언젠가 소설가 김훈 선생님이 법학을 공부하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게 생각나서 좀 버티고는 있다만.^^;

모든 법학이 그렇게 주장하듯이 행정법도 그 나름의 논리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아직도 생성되고 있을 정도로 어지러운 학문이기도 하다. 통일된 법전이 없기 때문에 이것저것 짜깁기한 ‘모자이크’적 성격이 강하다. 이 복잡다단한 행정법을 어떻게 체계화해서 익히느냐가 관건이다. 조악한 문장들을 헤집어 가며 조금씩 익혀보자. 행정법 공부는 내가 넘어야 할 큰산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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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2.25~06.12.31)

일기 2006. 12. 31. 22:31 |

061225
나는 이런저런 글을 쓸 때 맞춤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정확한 한국어가 아름다운 한국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믿음 때문이다. 물론 그 정확성의 기준은 선뜻 제시하기 힘든지라 명백한 비문이나 오류를 고치는 데 그치지만. 한글 문서를 사용하면 오타의 상당 부분을 손쉽게 고칠 수 있다. ‘걸맞는’에 빨간 줄이 그어지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걸 맞는’이라고 띄어쓰기를 했다. 빨간 줄이 없어지니까 맞게 썼다고 생각하고 넘어 갔다. 한참이 지나 한 후배가 띄어쓰기의 의문을 제기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좀 어색해 찾아봤다.

찾아보니 ‘걸맞다’는 형용사이므로 ‘걸맞은’으로 써야 맞다. 동사의 어간에 관형사형 어미가 붙을 때는 시제가 현재이면 ‘-는’(가는 벗, 먹는 꿀), 과거이면 ‘-은(ㄴ)’(간 벗, 먹은 꿀)을 쓴다. 그런데 형용사의 어간에는 현재와 과거 시제의 구별 없이 항상 ‘-은(ㄴ)’만 붙는데, 어간의 받침이 있으면 ‘-은’, 없으면 ‘-ㄴ’이 붙는다.

형용사 ‘기쁘다’‘예쁘다’는 받침이 없으니까 ‘기쁘는 일’‘예쁘는 아이’라고 쓰지 않고 ‘기쁜 일’‘예쁜 아이’라고 쓰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따라서 ‘걸맞다’도 ‘걸맞은’이 되고, ‘알맞다’ 역시 형용사이기 때문에 ‘알맞은’으로 쓴다는 것도 같이 알아두면 좋을 듯싶다. 후배 덕분에 그간 틀리게 알고 있던 표현을 고칠 수 있었다. 이런 사소한 잘못이나마 지적해주는 지인들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061226
군 원로들이 노무현 대통령님의 지난 21일 평통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군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가르쳐 훌륭한 민주시민으로 만들어 내는 국민교육의 도장임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태연스럽게 하다니 정말 당혹스럽다. 군대에서 훌륭한 민주시민을 만들어 낸다고 자랑스레 말씀하시다니 아마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와 그 분들의 민주주의는 많이 다를 듯싶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군 복무기간을 단축시키려는 시도에 대하여 우리는 강력하게 반대한다”는데 국민의 병역 부담을 합리적으로 덜어줄 생각은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성명에 참여한 군 인사 가운데 노재현 전 국방장관의 이름을 발견하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가 누구인가. 전두환이 12·12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맞서 싸우기는커녕 한미연합사 지하벙커로 피신한 사람 아닌가. 평생 자숙하며 살아도 모자란 위인이 목청을 높이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아무리 관용이 좋다지만 우리 사회가 고작 이런 인물이 뻔뻔스럽게 활개를 칠만큼 일말의 양심조차 부재한 곳인가. 이 분들은 애국은 당신네들만의 전유물인 줄로 아신다. 신성함은 오로지 자신들을 치장하는 수식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그저 대자연이 알아서 해결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061227
광호형 덕분에 사베인-옥슬리 법안(Sarbanes-Oxley Act)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미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엔론 회계 부정 사태 이후에도 회계부정과 경영자비리가 잇따르자 회계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02년 제정돼 현재 시행중인 법이다. 폴 사베인 상원 은행위원장과 마이클 옥슬리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 주도로 마련된 이 기업회계개혁법은 내부통제시스템 도입, 경영인증시스템 구축을 통해 모든 단계별 기업활동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관리, 감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최고 경영자(CEO) 및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재무보고서에 서명하도록 규정한 302조와 감사인이 내부통제프로세스에 대해 인증, 날인하도록 한 404조가 핵심 조항이다(“[IT키워드]사베인 옥슬리 법안(Sarbanes Oxley Act).” 전자신문. 2004. 10. 28. 참조). 

이 법안은 경영자들은 실적보고서에 거짓이 드러나면 성과급을 반납해야 하고 자사주식 거래를 보다 신속하게 보고해야 하는 등 더욱 엄격한 회계책임을 골자로 한다. 뉴욕증시에 상장됐거나 진출을 추진 중인 외국 기업들은 이 법안이 엄청난 비용 상승의 유발한다며 볼멘소리를 내왔다. 기업들의 회계 보고를 강화하도록 하는 한편 외부 인사의 회계 감시를 의무화하는 404조가 외국기업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기업 이사회가 스스로 회계투명성을 위해 회계 시스템을 점검해 문제가 있다면 회사 비용을 들여 시정해야 함을 의무사항으로 정해놓음으로써 미국기업은 물론 외국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13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 내부통제시스템의 효율성 평가를 외부 회계사에게 맡기도록 한 규정을 폐지해 기업의 감사가 독자적으로 평가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SEC가 404조에 대한 논란에 입장 정리를 한 셈이다. 사베인-옥슬리 법안의 개정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 정도 완화 조치에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추가적인 규제 완화 조치가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규제 강화, 유지, 완화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건 선진 민주주의 사회의 일상사다. 필요한 규제는 유지, 강화하면서 효용이 다한 규제는 재빨리 덜어주는 게 위정자들의 할 일이다. 규제는 원칙이 중요하지만 관성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061228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를 읽고 갈무리 해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몇 년 전 화제를 모았던 크루그먼의 세계화에 대한 논설이 역시나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다른 부분도 눈길이 가는 곳이 많았다. 좋은 에세이를 아직 꼼꼼히 독해할 내공이 없어서 건성으로 읽은 게 좀 민망하다.

여하간 크루그먼은 1996년 6월 <슬레이트>지에 기고한 「Downsizing Downsizing」(31~36쪽)라는 글에서 “보수가 좋은 미국 노동자들이 중산층에서 밀려나 다운사이징될 상황에 처해 있다”는 당시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의 주장을 정서 만족용 소설(emotionally satisfying fictions)이라고 구박한다.

요점은 라이시 스타일의-통계보다는 뒷이야기에, 진지한 분석보다는 구호에 의존하는-경제학은 미국이란 큰 나라의 다양성과 방대한 규모를 정당하게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난다. 낯선 이가 아동을 유괴하고, 수학자가 테러리스트가 되며, 회사 중역이 햄버거 장사로 전락하기도 한다.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전체 맥락과 맞아 떨어질 것인가? (책 34쪽)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몇 개의 특수한 사례를 들어 전체가 그 사례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추론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성을 결여한 자료를 근거로 도출한 사실을 일반화하면 그릇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찬반이 첨예한 사안일수록 균형을 잃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례만을 골라잡고 싶은 유혹이 커진다. 그러나 봄이 아무리 기다려진다고 해서 한 마리의 제비가 당장 봄을 불러 올 수는 없다. 물론 우리네 언론들은 종종 봄을 만들기도 하지만.^^;

무릇 지성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저지르기 쉬우면서 고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상을 대충 살피지 않겠다는 지적 성실성으로 무장하는 것이 믿는 것을 보지 않고, 보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힘이 된다. 침소봉대하지 않고, 호들갑 떨지도 않으면서 본질을 꿰뚫으려는 혜안에 도전해보고 싶다.


061229
KBS 드라마 황진이가 28일 종영했다. 대학로에서 즐거운 모임을 갖느라 마지막 방송을 챙겨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정통 사극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그리 눈길을 보내지 않은 드라마였다. 기사로나마 종영 스케치를 살펴보니 주말에 재방송을 보고 싶어졌다. 황진이와 부용이 여악행수 자리를 다투는 장면이 무척 감명 깊게 표현되었다. 드라마 신돈이 새삼 아쉬운 대목이다.

패배를 자인하는 부용에게 여악행수 자리가 돌아가는데 그 이유가 압권이다. “조선 최고의 춤꾼은 그냥 춤을 추면서 살면 그 뿐이다. 하지만 여악 행수는 달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춤에 박수를 보내고, 격려할 줄 아는 자, 경쟁에 위치에 놓여 있으나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야하는 것도 행수의 몫”이라는 행수 매향의 해설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의 재주를 인정하고 북돋워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황진이는 여성에다 천출이었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 이름도 나와 있지 않다. 소수파의 표상을 다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한계에 결연히 맞섰던 그 호기로움을 배워야겠다. 숨쉬기조차 답답했을 억압에 좌절하지 않고 제 길을 의연하게 개척한 수많은 황진이들에게 경애를 표한다. 그네들의 신명나는 춤이 계속되길 바란다.


061230
한해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막판에 앓았다. 감기 기운에 술병까지 겹쳐 총체적인 몸살이 나고 말았다. 대학로에서 고등학교 동창들과 송년회가 있었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갔지만 결국 얼마 못 있다 자리를 나서야했다. 정말 더 앉아있고 싶었지만 초췌한 모습으로 자리만 지키는 게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집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내가 본 처음처럼만 열댓 병이었는데 나는 딱 두 잔밖에 못 마셔서 안타까웠다.^^;

집에 돌아와서 계속 누워 있다가 새벽에 영화 <연인>을 봤다. 듣던 대로 영상미도 뛰어났고 반전도 흥미진진했다. 서로의 대의를 저버리고 바람처럼 살기를 원했던 주인공들의 애틋함이 돋보였다. 주인공들이 장기판의 졸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보며 이들이 사소취대(捨小取大)하지 못했다고 꾸짖을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 “매염방을 추모하며(In memory of Anita Mui)”라는 문구가 자꾸 떠올라서 연유를 찾아봤다. 엔딩 크레딧에 종종 추모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기 일쑤인데 매염방이라는 묘한 매력의 이름에 마음이 끌렸나 보다.

홍콩의 유명 배우 메이옌팡(梅艶芳)은 본래 <연인>에서 비도문의 두목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암 투병 중임에도 영화 촬영에 나섰던 그는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제작진은 매염방을 애도하며 그녀의 배역을 삿갓을 눌러써 얼굴을 보이지 않게 했다고 한다. 혹자들은 <연인>의 스토리 구성이 흐트러진 것은 매염방의 급작스런 죽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매염방의 출연을 격려한 장이모우 감독, 주연 유덕화의 진한 우정까지 알고 나니 영화의 여운이 배가된다. 고등학교 동창회는 차가 끊겨 택시를 나눠 타고 귀가를 해야할 만큼 성황리에 마친 모양이다. 흔치 않은 기회를 놓쳐서 아쉽지만 머잖아 또 좋은 자리가 있으리라 믿는다. 사실 내가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고 해서 즐거움을 더 보탰을 거 같지는 않지만.^^; 나는 내 성장통을 함께 해준 이 친구들에게 유익한 벗이 되고 싶다.

처음처럼 그렇게 영원히 함께하길!


061231
197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호주 출신의 작가 패트릭 화이트는 『행복한 계곡』이라는 소설에서 “인간은 자신이 겪은 고통의 분량만큼 진보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는 괴테의 『파우스트』 구절도 떠오른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은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내 허물을 고치는 일, 가슴 뛰는 일로 다사다난하다면 한 해를 알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거 같다. 내 미력을 다해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고 희망의 무게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근하정해(謹賀丁亥)! 새해에는 내수 경제가 좀 더 살아나기를!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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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2.18~06.12.24)

일기 2006. 12. 24. 23:35 |
061218
서울 중구 관내의 동대를 관할하는 대대장님이 이임하면서 국방동원정보체계에 짤막한 작별인사를 올렸다. 삭막한 공문 수발만 하던 곳에서 사람 냄새나는 글을 읽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구청에 종종 들르셨기 때문에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게 되었다. 대대장님은 My Way의 가사를 인용하셨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알고 있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가사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포크 가수 윤태규님의 노래였다.

아주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다 볼 것 없네

정말 높이 올랐다 느꼈었는데
내려 볼 곳 없네

길 하니까 고 유재하님의 <가리워진 길>이 떠올랐다. “보일 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을 헤맬 때 힘이 되어줄 벗을 찾는 절창이다. 김남주 시인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에서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라는 구절은 또 얼마나 다정다감한가.

돌아볼 만큼 변변한 것도 이루지 못했으면서, 내려볼 만큼 오르지도 못했으면서 나는 왜 그리 교만하고 나태했을까. 그렇다고 누군가의 길을 터준 것도 아니고 넘어진 벗을 일으켜 세우는데도 인색했다. 이래서야 시내트라의 노랫말처럼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았다(I did it my way)”고 좋아할 수 있을까.


061219
우석형님께서 “광호들은 광호가 연수끝나면 한번 모이자~ 그때 홍익이들도 불러서 광호가 술먹이는거 구경하고파”라는 글을 쓰셨기에 표현이 재미나서 여러 번 곱씹었다. 00학번 형들을 지칭하는 “광호들”과 02학번 무리를 지칭하는 “홍익이들”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면서도 정감이 갔다.

“-들”이라는 의존명사는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나열할 때, 그 열거한 사물 모두를 가리키거나, 그 밖에 같은 종류의 사물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대부분의 보통명사와 인칭대명사, 지시대명사에 어울린다. 하지만 고유명사에는 언뜻 맞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고유명사는 말 그대로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을 일컫기 때문이다. 가령 “서울들”, “한강들”, “숭례문들”이라고 썼다가는 구박받기 십상이다. “경복궁들”이라고 하면 창덕궁, 창경궁이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

하지만 사람 이름 뒤에 쓰니 의미가 크게 나쁘지 않다. 허구한 날 “02학번”들이라고 쓰는 것이 식상할 때 가끔 써봄직하다. 물론 이건 어지간해서는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쓰는 게 예법에 맞을 거 같다. 가령 말단 공무원이 국무위원을 가리킨답시고 “한명숙님들”이라고 말한다면 불경스럽게 비칠 것이다. 아직 언중에게 낯선 표현이라서 그렇다. 여하간 우석형님 덕분에 한국어의 용례가 좀 더 넓어진 거 같다. 종종 써먹어 봐야겠다.


061220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2006년 하반기 문화유산 사진 및 답사기 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그다지 잘 쓴 글은 아니었지만 작은 상이나마 받게 되어 기쁘다. 어렸을 때부터 잡글 쓰기를 즐겼던 나는 글쓰기로 받는 상처럼 기쁜 게 없다. 나는 글짓기 대회에 응모할 때 입선 말석이나마 차지하기를 내심 기대한다. 하지만 내 글솜씨는 아직 부족해서 그 꿈을 좀처럼 잘 이루지 못한다. 이번에는 입선보다 조금 높은 가작이니 기대 이상의 성과다. 다음에는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우수상 이상을 노려봐야겠다.

<동궐(東闕)을 꿈꾸다>는 창덕궁 자유관람을 다녀와서 쓴 답사기다. 나는 이 글 말미에 동궐로의 복원을 주장했다.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전락할 때 왕이 거처하던 창덕궁과 구별하기 위해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담장이 놓이게 되었다. 이제 창덕궁과 창경궁을 갈라놓은 그 담장을 걷어내고 온전한 동궐로 재탄생한다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더 드높이리라 믿는다. 광화문 복원이 완료되면 20년 간의 경복궁 복원 계획이 일단락되는 만큼 그 다음에는 동궐로 눈을 돌려봤으면 좋겠다. 동궐을 다 둘러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거 같다.


061221
“대부분의 경우 낙관은 삶에 대한 무책임과 무지의 속편함이다”라는 mannerist님의 말씀에 가슴이 뜨끔했다. “정말 끔찍한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률론적 논거보다 내가 더 강하게 기대고 있는 것은 인간 이성과 감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품을 수밖에 없는 어떤 믿음 때문이다. 인간에게 반드시 있으리라 믿고 싶은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같은 것 말이다.

내가 낙관주의자를 자처하고 다니는 건 사소한 현상에만 분노하면서 정작 본질은 놓치지 말자는 다짐의 일환이기도 하다. 지엽적인 것에 호들갑을 잘 떠는 내 자신을 구박하며, 좀 더 길고 넓게 보고 대응하자는 꿍꿍이에서 나온 레토릭이다. 쓸데없이 비탄에 잘 잠기는 내 고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의도적 노력의 산물로 그런 용어를 부러 차용했다. 내 낙관주의가 책임성을 확보하고 무지를 부끄러워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겠다.

장자에 나오는 목계(木鷄)의 자세를 배우기로 했다. 싸움닭을 훈련시키라는 왕명을 받은 기성자는 왕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미룬다. 40일째 되는 날 왕이 또 묻자 기성자는 그제야 “이제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울어도 아무런 태도의 변화가 없으니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로 만든 닭처럼 보입니다. 그 덕이 온전해졌습니다(幾矣. 鷄雖有鳴者, 已無變矣. 望之似木鷄矣. 其德全矣)”라고 말한다. 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목계는 “재능이 있어도 무심(無心)으로 살아 사람들을 감화시키기 때문”에 이기는 법이 없다고 설명하신다.

실천에는 게으르지만 지키지도 못할 목표를 만드는 데는 재빠른 나는 새해 표어를 “의연하게 또 의연하게”로 잠정 결정했다. 아마 매우 유효적절한 목표가 되지 않을까 자화자찬하고 있다.^^; 제 기운만 믿고 성내지 않는 나무닭과 같이, 그림자에게 달려들지 않는 나무닭과 같이, 눈을 흘기며 조소를 보내지 않는 나무닭과 같이 세밑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의연하게 또 의연하게!


061222
며칠 전 사학법 재개정을 주장하며 목사 수십 명이 단체 삭발식을 감행해 화제다. 나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이근복 목사님께서 이에 반대하며 “예수께서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찾아온 성탄절을 앞두고 교회가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참회가 참 고맙다. 정말 다른 때도 아니고 성탄절 즈음해서 좀 너무한다 싶다.

조선 말기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와 더불어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 8,000여명의 순교는 오늘날 가톨릭이 손꼽히는 종교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주기철 목사님의 신사 참배 거부하며 순교하신 것 역시 개신교가 남부끄럽지 않는 힘이 되고 있다. 순교의 각오로 사학법 재개정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하겠다는 목사님들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까닭은 단지 내 성격이 모나서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종교지도자들에게 있으리라 믿어지는 그 무엇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이 방면으로 좀 찾아보고 읽어봤지만 나는 현행 사학법이 신앙과 선교의 자유를 얼마나 심대하게 침해하는지 그 연관관계를 도저히 밝혀내지 못하겠다. 현행 사학법 시행령은 개방형 이사의 자격과 추천방법을 학교 정관에 위임하고 있는 만큼 개방형 이사의 자격을 학교를 운영하는 종교재단의 종교인으로 정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선교활동이 어려워진다고 분개하시니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사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절대 약자인 학생들을 상대로 선교의 자유를 들먹거리는 것 자체가 좀 민망한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나는 이 헌법 애호가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첨언하자면 저는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비추어 종교인에 대한 근로소득세 부과를 오래 전부터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득세법은 면세 대상자에 대한 열거주의를 택하고 있다. 여기에 종교인은 따로 규정이 없다. 마찬가지로 규정이 없는 작가나 예술가들은 모두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 국교가 있는 외국인의 종교인들도 소득세는 내고 있는 걸로 아는데 헌법에 복수종교와 정교분리를 규정한 나라에서 종교인들의 과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납득하기 힘들다. 명백하게 헌법과 소득세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일말의 반성은 없으면서 개정 사학법이 위헌이라며 목청을 높이시는 분들이 많이 안타깝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또 험한 말들을 쏟아 냈구나 반성하며 <평화의 기도>를 암송한다.

미움이 있는 곳에 평화를,
무례함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기를,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기를,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 성 프란체스코, <평화의 기도> 中


061223
결국 술자리에서 그 분의 흉을 보고 말았다. 나는 국민일보 백화종 주필의 칼럼 <의절 할 수도 없는 사이라면>라는 칼럼을 떠올리며 의절(義絶)이란 섬뜩한 용어까지 꺼냈다. 그 분은 바로 김근태 의원님이다. 내가 감히 김근태 의원님에게 섭섭한 내색을 한다는 건 참 무례하고 어이없는 일이다. 나에게 김근태 의원님은 정치인 이상의 정치인이었으며, 지도자들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지난 수 년 간 그가 좀 더 존경을 받고, 좀 더 사랑 받기를 갈망했던 나로서는 매우 고통스런 마음이다. 그러나 나는 비판을 거둘 수 없다. 그가 다름 아니라 김근태이기 때문이다.


061224
미국에서는 몇 해 전부터 성탄절을 앞둔 인사말이 종래의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에서 ‘해피 홀리데이(Happy Holidays)’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종교를 가진 많은 민족들로 구성된 미국에서 특정 종교의 교주 이름을 사용하는 인사말을 피하려고 하는 미국인들의 노력에 공감한다. 미국처럼 개신교가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에서도 이런 자성이 일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그런 시도조차 안 하는 거 같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미적거리는 열린우리당 비대위원들을 상대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 종교가 등을 돌리게 만들어 놓고 집권한 적이 있는가”라고 경고했다. 송 교수님은 그런 경고를 날리기 전에 민주주의가 발달한 어느 나라에서 종교가 세속권력을 탐하는지 부터 연구해서 발표해주시길 바란다. 여하간 성탄절 연휴에 가장 낮은 이들과 벗했던 예수님의 그 마음가짐을 흠모하고 배우고 싶다. 한 편으로 단재 선생의 탄식도 잊지 말아야겠다. 모두들 Happy Holidays!!!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利害) 이전에 진리를 생각하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主義)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主義)가 되지 않고 주의(主義)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主義)를 위한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적 특색이다.  
- 단재 신채호, <浪客의 新年漫筆> 中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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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2.11~06.12.17)

일기 2006. 12. 18. 00:20 |
061211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박상훈 부장판사)는 2003학년도 수능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를 한 사실이 뒤늦게 적발돼 올해 초 수능 성적 무효통지를 받은 ㄱ씨가 낸 행정처분 무효확인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형벌과 행정처분은 주체와 효력, 목적을 달리한다”며 “수능성적을 무효로 하는 행위는 구 고등교육법에 따른 하나의 완결된 최종적인 공권력의 행사이자 준법률적 행정행위”라고 밝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부정행위 수험생이 합격한 후 장기간 세월이 흘렀다거나 대학입학 이후 우수한 성적을 나타내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구제된다면 경쟁의 원리가 심각하게 왜곡될 뿐 아니라 부정행위가 만연될 우려가 크다”고 판시하는 대목이다. 어려운 경제사정을 고려해 기업인들의 부정을 선처해주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경쟁의 원리”가 만만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황금률이 아니길 바란다.

ㄱ씨는 항소를 하겠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다른 판결이 나올 거 같지는 않다. ㄱ씨가 수시전형으로 합격했다고 하지만 수능이 최소자격요건으로 반영 되었다면 면책되기는 어려울 거 같다. 여하간 국법은 누구나 경외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니 오히려 사회경제적 상류층이 좀 더 두려워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상류층의 품위 유지를 이유로 하나둘 법망을 빠져나간다면 법의 권위는 추락한다.

16대 국회의원 시절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 업자들로부터 1억 8천7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복역중인 ‘영화인 강신성일 구명을 위한 탄원서’ 서명운동을 고깝게 보는 내가 나쁜 놈일까. 왜 이 땅의 관용은 위에서만 맴돌까.


061212
청부중민(淸富重民)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봤다. 박세일 교수님의 부민덕국(富民德國, 부유한 국민이 사는 덕 있는 나라)에서 영감을 얻었다. 시혜적 평등이 아닌 합법적 분배의 대상인 청부(淸富)와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잘 살게 될 수록 인간다움을 고양할 수 있는 중민(重民)의 결합을 지향하겠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잘 살면서 따뜻하기까지 한 나라의 다른 표현이다.

본래 부국안민(富國安民)이라고 쓰던 것을 청부안민(淸富安民)으로 바꾸어 쓰다가 중민(重民)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다시 바꿨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다(天下無棄人)”는 내 모토와 맞아 떨어지는 느낌도 있고 말이다. 삼봉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서 “위정자들의 모든 행위는 백성을 위하고(爲民), 백성을 사랑하고(愛民), 백성을 소중하게 여기며(重民), 백성을 편안하게(安民)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서술하는 대목에 그 용례가 보인다.

비록 모자란 머리지만 청부중민(淸富重民)에 바탕을 둔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을 모색해보자.


061213
꼭 1년 전 오늘 나는 익구닷컴에 <사립학교법 통과를 환영한다>라는 글을 썼다. 그런데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사법개혁안과 함께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무기력한 집권여당이 또 다시 원칙을 저버린다면 이 땅의 공공성은 재차 시련을 맞이할 것이다.

한국해양대 김용일 교수님은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학교법인 이사장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자의 학교장 임명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 제54조의 제3항”이 개정 사학법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신다. 집권여당이 “설립자나 법인 측에서 더 '치명적'이라고 여긴 친인척 학교장 임명금지 등에서 이미 "자발적인 양보"”한 셈이라는 말씀이 이채롭다.

김 교수님 지적대로 개방형 이사제의 숫자에만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개정 사학법의 본래 취지인 교육 공공성과 사학 민주화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듯싶다. 첨언하자면 종교계 사학관계자 분들은 이번 만큼은 자숙하시길 바란다. 한 해 전에도 말했지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 눈물을 흘리시고,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 콧등이 시큰해지실 일이 없기를.


061214
불교뉴라이트연합이 출범한다고 한다. 하시는 말씀들을 들어보니 “불교정신을 기반으로 국가 정체성과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2000만 불자의 역량을 총결집할 것”이라며 “호국불교의 정신을 되살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선진 대한민국의 건설과 평화통일에 일조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모르겠으나 부처님을 팔아먹는 행위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불교하면 무소유의 정신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스님께서 친히 시장경제를 사수하시겠다니 그 정성에 마음이 짠해진다. 다만 시장경제가 먼저 뿌리 내려야할 곳은 따로 있다. 불교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을 독점하려는 불교계의 과도한 주장부터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불교문화재 보존수리에 들어간 혈세는 당연한 것인가? 호국불교를 언급하기 전에 세금정산부터 철저히 하자. 자기 소유에만 애틋한 불자만큼 볼썽사나운 것도 없다.


061215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님이 쓰신 <헐어 짓는 광화문>라는 경향신문 칼럼을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내가 오독하지 않았나 염려스러워서다. 김 교수님은 벨기에 겐트 시의 시청 건물이나 이스탄불의 소피아 사원의 예를 들어 역사 원리주의, 정통주의에 대한 강박증을 비판하셨다. 김 교수님은 참여정부가 “과거사 바로 잡기로 그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확립”하는데 열중했으며, “섬세한 조절을 통한 현실 개조의 노력보다는 명분에서 나오는 추상적 거대 계획을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 스타일을 집약하여 보여주는 것이 최근의 역사와 건축을 아우르는 광화문 복원 계획”이라는 말씀에서 고개가 갸우뚱거린다. “복원된 광화문이 이 정부의 정치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집약한 마지막 기념비가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로 맺는 칼럼을 읽고 좀 혼란스러웠다. 내가 듣기로 총 244억원이 투입되는 광화문 복원사업은 1990년에 20년 계획으로 시작된 경복궁 복원사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업이다. 일제가 원체 철저히 훼손해서 20년 동안 복원해도 본 모습의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여정부가 모종의 정치적 술수를 부려 광화문 복원에 나선 것이 아니라 당초 짜여진 계획대로 시행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광화문 복원에 의문이 있으시면 문화재 당국에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20년 동안의 복원 프로젝트의 허실을 지적해주셔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갑자기 대정부 비판을 하셔서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홍찬식 동아일보 논설위원님은 <광화문 복원>이란 칼럼 말미에 “이 시대를 대표할 ‘새 광화문’을 지을 역량이 정부에 있을까”라며 황당한 결말을 맺고 있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이라면 내 오독이 너무 심한 걸까. 물론 광화문 자체보다는 광화문에 매달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현판에 더 관심이 큰 것으로 보이는 홍 논설위원님의 글과 김 교수님의 글을 비교하는 건 너무 지나치다. 하지만 광화문 복원과 참여정부의 정치 스타일을 연계시킨 건 상관관계가 떨어진다는 것이 개인적 소견이다. 인기 없는 정부라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 믿는다지만 적어도 지식인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말해야하지 않을까.

여하간 나는 3년 뒤 콘크리트를 벗고 국내산 육송(陸松)으로 새로 지어질 새 광화문을 환영한다. ‘광화(光化)’는 서경의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에서 따왔다고 한다. 빛이 사방을 덮고 가르침이 만방에 미친다는 본래 뜻처럼 이 땅의 오욕을 딛고 다시금 문화적 찬란함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부디 잘 만들어져서 김 교수님과 홍 논설위원님 등의 의구심도 말끔히 해소해드리길 바란다. 아 정말 점점 이러다가 문화재청에 취직할지도 모르겠다.^^;


061216
나는 왜 영어를 이리 못할까? 아니 왜 잘 하려는 의지도 크지 않고,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대해 당시 어린이가 구사할 수 있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찬탄한 이후 나는 언어에 있어서는 국수주의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 정규 교과목으로 영어가 등장하자 나는 보란 듯이 공부를 게을리 했다. 영어 공부를 안 하고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대한민국 교육체계상 어찌어찌 근근히 따라가기는 했지만 늘 떠밀리는 공부만 했던 거 같다.

어쩌면 영어공용화 논의에 내가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도 그 논리적 근거를 따지기 이전에 생존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계화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한다. 영어를 공용화 수준에 가깝게 잘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든 세상은 내가 바라는 바람직한 세계화의 모습은 아니다. 티베트족이 중국어가 아닌 티베트어를 잘 간직해나가는 것, 캐나다의 퀘벡주가 프랑스어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가 아닐까? 아 정말 배부른 소리다.^^; 그래도 세계화가 표준화에서 그쳐야지 획일화까지 나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최근 영어 공부를 하면서 내 무식함이 가장 크게 만개하고 있는 영역을 헤집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학 입학한지 5년이 지나서야 토익 점수에 신경 쓰기 시작한 내 무신경에 스스로 놀랄 정도다. 나는 무슨 배짱으로 토익을 무시하고, 영어를 멀리하며 살았던 것일까. 물론 나는 그 대신 무언가를 배웠고 익혔다. 하지만 이런 것과는 무관하게 내가 평균 수준 이상의 토익 점수를 따지 못한다면 내 인생 자체가 불성실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될 공산이 크다. 토익 점수가 나를 말하는 지표가 될 수는 없겠지만 나란 녀석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둘 필요가 있겠다.


061217
동생과 함께 토익 시험을 치렀다. 지난달 토익 시험에 이어 3주만에 보는 시험이라 많은 준비를 하지는 못했다. 너무 단기간에 점수 올리기를 집착하다 지난달에는 시간 안배에 실패해서 독해 지문 하나를 거의 읽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내년에도 매회 꾸준히 응시해서 주어진 시간에 내 모자란 지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담대함을 길러야겠다.

동생에게 시험을 잘 마쳤냐고 넌지시 물으니 시간이 모자라지 않았다며 당당했다. 토익 시험 처녀 응시자의 풍채(?)가 아니어서 놀랐다. Part 1, 2에서 나오는 Directions 시간에 그걸 따라서 듣고 읽는 여유까지 부린 동생을 구박하며 앞으로는 그 시간을 아껴 다른 문제를 풀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는 매정한 내 모습이 미웠다.^^;

통화바스켓 제도를 흉내내서 앞으로 동생 토익 점수와 내 점수를 합산해서 내보는 것도 재미날 거 같다. 통화바스켓은 자국과 교역비중이 큰 복수국가의 통화를 선택하여 통화군(basket)을 구성하고, 바스켓을 구성하는 통화들의 가치가 변동할 경우 각각 교역가중치에 따라 자국통화의 환율에 이를 반영하는 환율 제도를 말한다.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가기 전의 과도기적인 환율 제도로 우리나라도 1980~1990년에 복수 통화바스켓 제도를 시행했었다.

나는 이 복잡한 환율 제도를 차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구성통화의 꾸러미 개념을 빌려 둘을 합산하는 것을 목표 삼고 싶다. 이번 시험에서 나랑 동생의 토익 점수가 합쳐서 1200점을 넘어봤으면 좋겠다. 중장기적 목표로 익구-윤미 토익 바스켓의 총점은 1600점(가령 820점과 780점)이다. 원수 같은 영어지만 이걸 핑계로 동생과의 우애를 다지면서 분명한 목표를 향해 서로 격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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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2.04~06.12.10)

일기 2006. 12. 10. 22:52 |
061204
제34회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 1급에 합격했다. 가채점을 좀 엄격하게 해서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넉넉하게 합격선을 넘었다. 2002년 5월, 2006년 6월에 이어 삼수 끝에 딴 자격증이라 기쁨이 더 크다. “한자는 호모 사피엔스 문화의 한 극점”이라며 격려해주신 고종석 선생님 덕분에 막판에 힘내서 벼락치기 할 수 있었다. 방심하는 사이에 2급을 날름 따버려서 내가 1급 시험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청원이에게도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2000년 11월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에 도전한 이래 6년 만에 그 대미를 장식했다. 맨 처음 한자자격증을 소개해주셨던 양성준 선생님을 언제 찾아뵙고 소식을 전해야겠다.

사실 쟁쟁한 자격증에 비해 내가 딴 것은 그리 대단하지도 않고, 쓸모 있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실용성이 별로 없어도, 남이 안 알아줘도 마냥 즐겁다. 고3 수험시절이 한창인 2001년 5월에 2급 시험에 도전했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분야가 아닌가. 작은 성취를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기반으로 더 큰 공부를 할 수 있어야겠다. 내 한자공부의 본래 지향점이었던 동양고전 읽기도 서둘지 말고 쉬지 말고 해봐야겠다.


061205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님이 “언론에서 ‘발목 잡는다’고 표현한 야당 간부들을 찾아가 손목을 잡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간청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사법개혁안 지연처리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시는 기사를 읽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3000여건에 달하는 신기록 행진 중이라는데 그 가운데 사법개혁안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발목 잡았지만 나는 손목 잡았다”라는 기사제목을 참 잘 지은 거 같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지도자들의 추태가 식상한 요즘 묵묵히 맡은 소임에 충실한 분들이 있어 참 고맙다.

어제 강인형님, 광호형님, 재연이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정석이가 노무현 대통령님이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이야기를 잠깐 했다. “패장은 말이 없다”는 내 요즘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통합신당 논의를 “결국 舊민주당으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정의 표류가 반복되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자는 제안이나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도, 표결을 통해 결론을 내주지도 않는” 야당을 질타하는 내용은 발설자가 대통령님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품어봄직한 화두다. 첨언하자면 정치 관련해서 장문의 편지를 쓴 정성으로 연금개혁이나 종합부동산세 같은 갈등적인 민생이슈에 대한 편지를 써보시는 것도 좋을 듯싶다.

다만 편지에 국정 최종책임자로서의 무한책임감이 잘 읽히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대통령님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만 남 탓을 하기 전에 자기 탓을 먼저 하는 것을 빼먹는 바람에 편지의 설득력이 반감됐다. 부디 대통령님께서 상대방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에만 재능을 쓰지 않으시길 바란다. 아울러 대통령님께서 내가 먼저 손목 잡겠다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조악한 정치공학에 빠져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는 여당 지도부보다는 대통령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보기도 좋을 거 같다. “군자는 헤어지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아니하며, 충신은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의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君子交絶不出惡聲, 忠臣去國不潔其名)”라는 사기(史記) 구절이 사무치게 그리운 나날들이다.

참이슬을 과다 복용했더니 오전 내내 숙취에 시달렸다. 숙취 방지용 처음처럼을 좀 확보했어야 하는데 실수다.^^;


061206
영국의 정치가인 필립 체스터필드는 지식을 회중시계에 비유했다.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에서 지식은 회중시계처럼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두고 굳이 꺼내 보이면서 자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시간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 때만 대답하면 된다. 시간의 파수꾼이 아니니까 누가 묻지도 않는데 시간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지만 누가 시간을 묻거든 그 때는 정확하게 대답해 주어라. 이 때는 다만 네 시계가 정확해야한다”는 조건도 붙였으니 체스터필드는 꽤 치밀한 분인 거 같다.

나는 그간 우리의 부싯돌은 부딪힐수록 빛이 난다는 볼테르의 말씀을 빌린 ‘지식 부싯돌론’, 퍼낼수록 샘솟는 우물에 빗대어 ‘지식 우물론’ 등을 주장했다. 그런데 점점 체스터필드의 ‘지식 회중시계론’이 맞는 거 같다. 상대방은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은데 너무 내 이야기만 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되짚어본다. 나는 더 겸손해진 걸까? 더 겁이 많아진 걸까?


061207
나는 고건 전 국무총리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분이 도대체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도통 또렷하게 밝히지 않으니 애써 찾지 않고서야 알 길이 없다. 혹자는 고건님의 행보는 정당정치가 뿌리 내리지 못하고 인물중심으로만 돌아가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고건님이 당적을 가지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적이 있고, 정무직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셨으니 그 지적은 지나친 감이 있다. 하기야 거대 양당의 유력 대권주자 지지율이 열 배 차이가 넘는 나라에서 무슨 정당정치를 기대하겠냐 싶다.

우리나라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정당일체감이 거의 없다. 일부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는 정당일체감의 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권자가 특정 정당에 대해 갖는 정서적 일체감이 적으니 지역주의적 투표가 여전히 큰 변수로 부각되는 것이다. 또한 소수 정치 엘리트들이 이합집산하며 정계개편을 하는 것도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당일체감이 어느 정도 뿌리 내렸다면 당원이나 지지자가 무서워서라도 감히 그렇게 못할 것이다. 자신이 아끼는 정당의 영광과 치욕을 함께 하려는 지지자들이 좀 더 늘어난다면 철새 정치인도 줄고 책임정치 실현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고 전 총리님은 정치색이 엷고, 무색무취하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집권여당이 제 당원을 배신하고, 제 금배지를 지키겠다며 정치공학 꼼수를 부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고 전 총리님은 전문 행정가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했을 뿐이라고 해명하지만 그렇다면 이제라도 자신이 꾸릴 정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당이라는 시스템이 뒷받침 되어 있다면 그 정당의 정강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고 전 총리님은 그런 면이 부족하다.

고 전 총리님을 예측 가능한 안정적 리더십으로 추켜세우는 분들도 있지만 고 전 총리님은 지금 시점에서는 너무 예측 불가능해서 문제다. 정당정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 전 총리님만 바라보고 있다는 게 딱하다. 혹시 있을 고건 신당이 철새 정치인들을 모아 건실한 ‘원내정당’을 이룰 가능성은 요원하다. 그렇다고 ‘대중정당’이라도 건설하자니 고 전 총리님은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는 게 고 전 총리님의 일차 과제가 될 것이다.


061208
드라마 <황진이>에서 백무가 기생들의 춤을 끝까지 안 보려는 벽계수 일행의 술상을 뒤엎는 장면을 우연히 봤다. “신분이 천하다 하여 가진 재주도 천하다 보는가? 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외침이 인상 깊었다. 하층민으로 서글픈 삶을 살았던 이들의 기록이 미미한 건 비단 우리 역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몸은 천민이었을지언정 정신은 양반 못지 않았을 기생들의 애환보다는 매춘이 먼저 떠오르게 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게오르그 짐멜은 『돈의 철학』에서 “인간을 단순히 목적으로 취급하라는 칸트의 도덕명령은 매춘의 경우 두 당사자에 의해 완전히 부정된다. 아마 매춘은 인간관계 중에서 관련 당사자들을 모두 수단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시켜 버리는 인간관계의 가장 전형적인 본보기”라고 말한다. 황진이 같은 기품 있는 기생들은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지 않을까 싶다.

한 푼의 외화라도 더 벌겠다며 기생관광을 묵인했던 지난날의 아픈 과거들이 떠오른다. “성매매로 인해 이룬 경제라면, 그런 경제는 망해도 좋겠다”는 김선주님의 일갈대로 성매매로 흥한 경제라면 성매매로 망할 것이 뻔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수출액이 3천억 달러가 넘었다는 자부심은 이런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061209
옛사람의 사귐에 대한 글을 묶은 『거문고 줄 꽂아놓고』라는 책을 즐겁게 봤다. 성호 이익 선생이 「사귐을 논함論交」이라는 글에서 소개한 옛날 월(越)나라 민요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어떤 조건이나 지위보다는 사람 그 자체를 사귀는 걸 노래한 시 같다. 나는 이 시를 홍익이에게 생일선물로 전하며 좀 더 친구 노릇을 잘할 것을 기약했다.

君乘車我戴笠 그대는 수레 타고 내가 삿갓 썼거든
他日相逢下車揖 수레에서 내려와 인사를 해주시게
君擔簦我跨馬 그대가 우산 메고 내가 말을 탔거든
他日相逢爲君下 기꺼이 그대 위해 말에서 내리겠네

* 3연 簦(竹+登) 우산 (등)

책 206쪽에 나오는 이야기를 좀 옮기자면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벗 사귐에 차이가 컸다고 한다. 정약전은 여항의 술꾼들과 가까이 지냈지만 정약용은 주로 깔끔한 엘리트들과 어울렸다. 1801년 신유사옥(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이 일어나 형제의 처지가 위태로워졌을 때 형의 벗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정약전 형제를 잘 대해준다. 아우인 다산은 “이 점이 바로 내가 형님께 못 미치는 점!”이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나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래저래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밀기도 했다. 수레에서 내리고 말에서 내린다고 진심을 알아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정성이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061210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공했던 프랑스의 해군장교 주베르는 “이 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고 탄식했다. 물론 말만 그렇게 해놓고 외규장각에 소장된 의궤 등 189종 340여 책을 약탈하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말이다.

주말에 행정법 동영상 강의를 몰아서 듣느라 읽으려던 책을 못 읽었다. “독서는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다”는 게 내 철석같은 신조지만 자꾸만 책읽기를 후순위를 미루게 되어 씁쓸하다. 모자람을 채울 게 많은 녀석이라 읽고 싶은 책만 읽으며 살지는 못하리라. 그래도 책을 덜 읽으면 마음이 가난해진다고 믿는 고지식한 녀석으로 남고 싶다.
Posted by 익구
:
061127
27일부터 종합부동산세 징수 절차 시작된다. 과세기준이 대폭 강화된 종부세 통지문이 부과 대상자들에게 일제히 발송된다. 지난해보다 대상자가 5배 늘어나고 세금 액수도 3배 가까이 불어났으며 앞으로 더 오를 전망이다(올해에는 공시가격의 70%인 과세표준이 내년 80%, 2008년 90%, 2009년에는 100%로 높아진다). 세금 올리는 거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 조세저항은 인지상정이다. 이미 고가 아파트 일대 주민들이 법개정 청원을 제기하고, 위헌소송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강남권에 아파트 한 채를 장기보유하고 있는 직장인과 수입이 없는 은퇴생활자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더군다나 주택 1채만을 가진 분들에게 과도한 세금 부담이라는 볼멘소리도 충분히 수긍 가능하다. 미실현 소득인 부동산에 대한 과세가 과도하다는 항변은 무시하기 힘든 논리다.

그러나 세금이 예측 가능한 수준을 넘어 오른 것보다 집값이 더 예측을 뛰어 넘어 올랐다. 종부세 강화 첫 해인 올해의 경우 급등한 실제 자산 가치에 비해 부담액이 엄청나 보이지는 않는다. 국세청 분석에 따르면 올해 보유 주택 때문에 종부세를 물게 된 개인 납세자는 23만7천명으로 전국 세대(1천777만 세대)의 1.3%에 불과하며 주택을 갖고 있는 세대(971만명)의 2.4%에 그친다고 한다. 종부세가 부담스러운 분들은 종부세를 잘 낼 테니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있어봤으면 좋겠다는 많은 이들의 한탄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불만이 단지 가진 자들을 시기하는 경제발전의 적이라고 본다면 너무 가혹하다. 최근 불어난 불로소득의 규모를 생각하면 세금이 과중하다는 호소에 눈을 흘기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어느 부동산정보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아파트 103만 416가구 중 시세가 6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28만 3,368가구로 27.50%에 달한다고 한다. 서초구와 강남구가 각각 86.59%, 86.54%에 달했지만 강북구와 금천구, 은평구는 6억원 초과 아파트가 아예 없었고, 내가 사는 중랑구는 고작 0.64%다. 종부세 대상은 시세가 아닌 공시지가로 하는 만큼 시세가 6억원이 넘는다고 곧바로 종부세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앞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시가의 80%로 잡으면 현재 시가가 9억원이 넘어선 아파트들은 내년에 새로 종부세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이 땅에는 세금이 너무 높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세금을 낼 처지가 못 돼 힘겹게 살고 있다. 비록 사회적 대타협까지는 이뤄내지 못했지만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판단되는 만큼 강화된 종부세가 시행되기도 전에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얼마 남지 않은 참여정부 책임 하에서는 정책 일관성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부동산 세제 현실화와 조세형평성 제고를 잘 실천해나가길 바란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나는 내가 이 다음에 돈을 벌면 종부세를 내보고 싶다.^^; 자선을 베푸는 부자보다 법을 지키는 부자가 더 위대하다. 부는 시혜적 평등이 아니라 합법적 분배의 대상일 뿐이다. 그것이 청부(淸富)다.


061128
27일 청와대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 103일 만에 지명을 철회했다. 헌정 사상 첫 여성 헌법재판소장의 탄생은 조금 미뤄지게 됐다. 전 헌재소장 후보자님은 보도자료를 통해 “후보자의 자질에 관한 평가나 관련 헌법 및 법률 규정에 관한 견해는 국회의원 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국회는 표결절차를 통해 다수결의 법리에 의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드 인사는 안 된다며 막무가내식으로 국회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절제의 미덕(?)을 선보인 한나라당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이번 지명 철회를 가지고 “사석(捨石) 치운 것 갖고 여권은 너무 생색내지 말라”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이 정당에 건네지는 국민들의 과도한 기대가 무참하다. 아무리 선출된 권력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을 이렇게 욕보이고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하기야 돌 눈에는 돌만 보일 테니.

“다른 국회의원들은 물리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수수방관하면서 동의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고 정쟁만을 계속하고 있는 바, 문제가 어렵다고 풀지 않고 출제철회를 바라며 임명동의안 처리를 장기간 미루어 두는 것 역시 국회가 헌법과 헌법재판소를 경시하는 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전 후보자님의 말씀에 동감한다. 집권여당과 군소야당도 별다른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절차상의 하자가 적잖았지만 그를 보정하기 위한 노력도 제법 있었다. 전 후보자님이 흠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는 않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였던 거 같다. 처리 절차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이렇게 무산되는 건 너무 지나치다.

듣자니 한나라당 윤리위원회가 피감기관에서 골프를 쳐 물의를 빚은 김학송, 송영선, 공성진 의원 등과 광주 해방구 발언을 한 김용갑 의원에 대한 징계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한다. “죄 없는 자여.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떠오른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그들은 이제 또 어떤 사냥감을 향해 마녀라고 소리칠까.


061129
올해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면접관이 응시생을 상대로 사실상 사상검증을 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처음 실시된 제도인 ‘심층면접’은 3차 면접에서 국가관 등 윤리의식에서 ‘부적격 의심자’로 판명 받은 이들을 상대로 따로 면접을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면접위원 재량을 존중하는 만큼 주적(主敵)이나 북핵 문제 등을 물을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부적격 의심자로 판명된 사례나 수험생들의 증언에 비추어 볼 때 면접시험을 통해 면접위원의 견해와 다른 발언을 하기 힘든 분위기였다고 한다. 면접위원들이 특정 답변을 요구하는 듯한 모양새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많은 국민들이 그나마 사법부라도 불편부당한 판결을 내려 국민의 권리 구제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판결을 숱하게 보았지만 그래도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사회의 공정성을 지켜내는 보루로서의 권위는 막강하다. 사법부의 편식(?) 의혹은 그래서 더 우려스럽다. 그래도 심층면접 탈락자 등 8명은 내년에 3차 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한 차례 더 주어진다니 다행이다. 내가 날림으로 준비하는 행정고시의 경우 면접에서 탈락하면 다시 기회를 주지 않으니 더 잔혹하다. 면접 강화 자체는 환영할 일이지만 이런 식의 면접이라면 솔직히 답변하기가 참 망설여질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사시 면접대상자라고 사고실험을 했을 때,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에 대해 물어왔다고 하자. 나는 내 소신대로 폐지를 스스럼없이 주장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내가 그토록 애호하는 ‘사상의 자유시장’에 대한 신념을 떳떳하게 밝힐 자신이 없다. 법이 한 개인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권능이 있는지 여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상상만 해도 자존감이 마구 헝클어진다. 이런 나를 한심하게 여겨도 좋다. 하지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란 인간의 구차한 한계도 아프지만 밝히는 게 예의다.

어쩌면 이번 사시 면접 파동은 우리 사회가 겪을 변화의 한 단초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압도적 보수 우경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암묵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앞으로 입 좀 다물고 살아야겠다. 내 생각을 말하기가 두렵다.


061130
가수 양희은님이 데뷔 35주년을 기념해 신보를 발매했다. 양희은님은 71년 데뷔곡 아침이슬을 회고하며 “노래는 ‘서정’이지 ‘참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 노래를 만든 사람도 이 노래를 부른 나도 아침이슬이 데모 주제가로 사용될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노래는 가수의 것도, 저작권을 받는 사람의 것도 아닌 되불러 주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양희은님의 말씀이 고맙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존재’의 방식이란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속박당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소유를 갈망하지 않고 해석의 자유를 인정하는 양희은님의 자세가 멋지다. 신곡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도 참 좋다.


061201
중국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탁오(卓吾) 이지(李贄)는 성교소인(聖敎小引)이라는 글에서 “쉰 살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지나지 않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이다. 왜 짖느냐고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라고 말한다. 제 그림자를 보고 놀라 짖는 것조차 따라 짖는 개였음을 고백하는 마음은 얼마나 따가웠을까. 나도 개처럼 살아온 지난날을 반성하고 각성한 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삶이 더 실패하기 전에 자기수정을 해보자는 의미로 반성문을 써봤다. <노예의 삶을 반성합니다>라는 글에서 나는 스스로 “역사의 패자”라고 칭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역사의 패자로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김규항 선생님의 ‘우리의 도량이 저들의 도량보다 적다면 세상을 바꾸려는 우리의 꿈은 이루기 어렵다’라는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나의 반성이 더 크고 깊기를 바란다. 니체는 석양에 빛나는 호수를 보고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듯이 나는 썩지 않기 위해 좀 더 아파해야겠다.


061202
문화재위원회가 세 차례 불허 결정을 내렸던 서울시청사 신축이 조만간 통과될 모양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님께서 “신청사는 어차피 짓도록 결정된 것이고,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하신 만큼 디자인만 조금 수정하면 통과될 예정이라지만 과연 지금의 고압적이고 우악스러운 모습을 얼마나 탈피할지는 미지수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재건축을 불허하는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는 지적을 수용하더라도 황룡사 구층목탑보다 더 큰 건물이 시청 자리에 들어서는 건 그리 달가운 소리는 아니다. 문득 자금성 앞에 펼쳐진 널따란 광장이 부럽다. 우리는 어떤 아름다움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까?


061203
성삼제 교육인적자원부 지방교육재정담당관님을 본받고 싶다. 성 담당광님은 2001년 일본 후쇼샤 역사교과서 사태 이후 교육부의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 실무반장을 역임하시며 일연 스님의 저서를 통해 고조선 역사를 접했다. 작년에 펴낸 『고조선 사라진 역사』라는 책은 정부 업무를 맡으며 꼼꼼히 기록해둔 정성의 산물이다. 특히 7장의 <일본은 '삼국유사'를 변조했나>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성 담당관님은 일제의 조선 강점 이전인 1904년 발행한 동경제국대학학장판(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서 석유환인(昔有桓因)이 아닌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는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다. 이를 통해 환인(桓因)이라는 불교식 용어를 써서 단군신화가 창작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고 있는 일연 스님의 누명을 벗기는데 일조한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는 석유환국(昔有桓國)과 “옛날에 환인이 있었다”는 석유환인(昔有桓因)은 글자 하나 차이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고조선 이전의 환국이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환인이라는 신화속 인물만 남게 되는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낳는다.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은 밝혀서 널리 알려야겠다는 성 담당관님의 노력이 참 고맙다. 당장의 태스크포스팀 업무에 그치지 않고 우리 역사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말쑥한 책을 펴낸 성삼제 담당관님을 존경한다. 땅 투기에 혈안이 된 공무원도 많지만 이런 공무원도 있기에 우리가 또 부질없이 기대를 품어보는 건 아닐까. 그런데 꽤 오래 전부터 국회에 설치했다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무슨 일을 해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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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1.20~06.11.26)

일기 2006. 11. 27. 02:20 |
061120
얼마 전 익구닷컴 이벤트로 “익구가 궁금하다-50문 50답”을 쓰면서 당분간 이런 식의 긴 글은 당분간 쓰지 않기로 내 자신과 금석맹약했다. 그런데 열린마음님이 당신의 미니홈피에다 1000문 1000답 올려놓으신 걸 보니 또 유혹이 손짓한다.^^; 자신에게 던지는 1000가지 물음이라니 질문마다 한 줄씩 띄어쓰고, 한 문제에 한 줄씩 단답형으로 답해도 A4 50장이 넘는 대작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분명 길게 잡설을 늘어놓을 테니 100장을 넘기는 것도 순식간이다. 나는 글도 잘 못 쓰면서 글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옹고집에다가 생산성까지 낮아서 변변치 않은 글 쓰는데도 한참을 붙잡고 있다. 해야할 공부는 많은데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을 너무 늘어놓는 거 같아 늘 후회스럽지만 일단 일기는 꾸준히 써보고 싶다.

오늘이 100번째 일기다.^^


061121
2학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졸업예정자”의 경우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경우만 투표율에 반영하는 것으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을 개정한 것을 놓고 학생들의 반발이 심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50% 투표율에 대한 현실적인 재조정을 위해 도입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졸업예정자가 취업 준비에 바쁘다고 해도 그것이 총학 선거에 배제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보다 많은 학우들의 투표 참여를 위해 편법 연장투표를 해왔던 그간의 관행에 대한 반성도 없이 일방적인 투표권 제한은 너무 무책임한 처사다.

중선관위측은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만 투표율에 반영하는 대학들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하는데 문제의 화근(?)인 50% 투표율 규정이 없는 대학들의 사례는 애써 외면한 거 같아 아쉽다. 졸업예정자를 투표율 산정에서 제외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졸업예정자 가운데 투표에 참여한 이들은 과대 대표되어 1인 1표 원칙을 거스르게 된다는 데 있다. 잠깐 계산을 해보면 투표에 참여한 졸업예정자의 한 표는 비졸업예정자(?)의 표에 비해 투표율을 더 높이는 효과를 가져다 줌을 알 수 있다. 50%라는 형식적 대표성을 확보하겠다며 졸업을 앞둔 선배님을 투표율 높이는데 이용하는 태도는 그리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할 게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나는 학생회 살림을 꾸리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진지한 사색과 깨끗한 실천을 품는 이들이라고 믿고 흠모해왔다. 여전히 지적이며 유능한 이 분들의 황당한 행태가 민망하다. 어빙 제니스가 설파한 ‘집단사고(group think)’가 떠오른다.


061122
열린우리당이 결국 기간당원제를 폐지했다. 이로써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이라는 원대한 꿈이 막을 내렸다. 종이당원, 당비대납 등의 문제를 야기했던 기간당원제도의 문제를 보완하겠다면서 기초당원제로 바꾸고 기초당원의 자격요건을 완화했다. 전체 당원의 15% 범위내에서 당원협의회가 특별히 공로를 인정한 자에게 기초당원 자격을 주도록 만들었다. 기간당원들 덕분에 명줄을 유지하던 정당이 당의 기간(基幹)을 스스로 허물었다. 주인이 사라진 정당에 대리인들만 설치는 모습이 안쓰럽다. 어쩌면 이렇게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을까?

우리당에 정작 필요한 것은 “기초당원”이 아닌 당원에 대한 “기초적 예의”다. 나의 대리인들에게 견결한 지조와 거창한 대의명분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선장은 배가 난파되었을 때 자신의 배를 떠나는 최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람시의 말씀은 그야말로 우이독경이다. 정계개편에 골몰하는 이들에게 사즉생(死卽生)을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생즉사(生卽死)라는 험담은 좀 건네고 싶다. 자식의 종아리를 치는 부모의 마음에는 그보다 몇 배 굵은 몽둥이가 내려쳐 진다. 나는 그 몽둥이를 마다할 길이 없겠구나. ‘동원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로 살려고 한 내가 감내해야할 짐이다.

故 열린우리당의 명복을 빈다. 지는 꽃잎처럼 희망은 그렇게 가는구나.


061123
어제는 웹진 신입생환영회가 있었다. 역시 참이슬 과다 복용은 처음처럼에 비해 숙취가 심하다. 내 개인적인 편애가 입맛에 이어 숙취 강도도 변해버린 거 같다. 나는 앞으로도 처음처럼 시장점유율 상승에 좀 더 주력해야겠다.

문화재청 설문조사에 응하고 받은 창덕궁 자유관람권을 쓰기 위해 모처럼 하루 휴가를 내고 현식이와 함께 종로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우리는 참 많이 먹고 참 많이 걸었다. 새 단장한 조계사는 예전의 옹색함을 많이 극복한 거 같다. 역시 일주문을 새로 지은 게 이제야 좀 절터 같은 느낌이다. 조계사 불교용품점에서 새로 장만한 휴대전화가 걸 은으로 된 금강저는 중앙에 손잡이가 있고 양쪽에 창 모양으로 장신된 불교의식구다. 저(杵)는 본래 인도의 무기의 하나인데, 금강저는 밀교에서 인간 번뇌를 부숴 버리는 보리심(菩提心)의 상징이라고 한다. 여하간 까만 휴대전화기에 하얗게 매달린 금강저가 참 어울린다. 잘 샀다.

해장국이 아닌 해장궁(?)이라니 이런 호사가 있을까. 창덕궁을 안내원의 지도 아래 짜여진 동선과 시간제한 없이 제 멋대로 둘러보니 가슴이 터질 거 같았다. 더군다나 단풍도 절정이고 낙엽도 밟는 재미도 쏠쏠했다. 자유관람의 경우 어른은 15,000원이라서 좀 부담이 되지만 문화재청 1년 예산이 3,600억원 정도밖에 안 되는 만큼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공짜표 말고 직접 표를 사서 가봐야겠다. 자주 드나들면서도 변변치 못한 사진만 찍으니 사진을 좀 찍을 줄 아는 분을 섭외하면 더 좋을 거 같다.

2004년 10월 1일 종묘, 창덕궁 답사부터 시작된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청자, 불화, 불상, 석탑 같은 고미술 전반으로 확장되더니 이제 문화산업이나 문화정책까지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게 요즘은 아예 국가정책, 행정체계 전반까지로 확대되버렸다. 그래서 종묘와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이기 이전에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앞으로 문화유산 답사를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러다가 덜컥 문화재청에 취직하겠다고 그럴까봐 걱정이다.^^; 이번 답사에서는 청심정(淸心亭)을 처음 찾아갔는데 정자는 매우 조그맣고 특징이 없지만 청심정 앞에 돌로 만든 조그만 연못인 빙옥지(氷玉池)와 청심정을 향해 앉아있는 귀여운 거북이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돌조각은 무섭게 만든다고 해도 어찌나 살기가 안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건축물 사진 찍기를 즐기는 나와 단풍 등의 풍경을 찍기를 즐기는 현식이가 하나의 사진기를 놓고 티격태격했지만 무척 뿌듯한 하루였다. 부디 나와 답사를 처음 나서본 현식이가 만족했으면 좋겠다. 내 탈진 답사모드는 아무에게나 권하지 않는 호의의 상징이니까.^^


061124
탄핵 악연으로 유명한 천정배 열린우리당 전 원내대표와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가 사돈을 맺는다는 걸 저는 좀 탐탁지 않게 여겼다. 너그러운 척 해가며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추켜세우지는 못하겠다. 한국 지배계급의 근친성이나 동종교배 같은 부정적 뜻빛깔의 단어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 계급의식에 철저한 사회 상층부와 달리 왜 보통사람들은 작은 걸로 갈라지고 싸워야 하는 건지 좀 서글펐다. 최병렬님과 천정배님의 자제분들이 사랑을 나누게 된 것도 사실 그 활동영역이 겹치기 때문일 테니 말이다. 우리 사회 유리 천장(Glass ceiling)의 한 단면을 보는 거 같다. 김규항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정말 계급적이라서 지배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다고 이 결혼이 잘못된 거라고 주장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자제분들의 백년가약은 가슴 깊이 축하할 일이다. 다만 천정배님의 경우 스스로 주도해서 만들었던 집권여당의 상황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배반의 장미를 흩뿌리며 언론 노출 횟수나 늘리고 있는 게 좀 얄밉긴 하다. 목표가 낳은 3대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분의 처신치고는 그리 가지런하지 못한 거 같다는 개인적인 소견이다. 이 와중에 개인적인 경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스스로 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 가지고 시비나 걸고 나 참 못됐다.^^; 하지만 천정배님의 원칙과 소신을 신뢰했던 내가 요즘 느끼고 있는 배신감은 감출 수도 없고, 감춰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후보까지 꿈꾸는 사람이 그만한 양식과 절제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결격 사유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에 내가 내세우는 사회 지도층의 “개인 윤리의 각성”이 과연 유효적절한 해결책인가를 놓고 고등학교 선배님과 한바탕 논쟁을 벌였다. 나는 논리도 모자라면서 고집을 부렸다. 앞으로 좀 더 그래볼 생각이지만 말이다. “각성은 그 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달성”이라는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님의 말씀에 많이 동감한다. 나 또한 시스템적 측면도 많이 생각해봤다. 가령 부정부패의 리스크를 현저히 높여 그 편익을 거의 상쇄시키도록 만드는 기술적 측면도 많이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의식 개혁이 좀 더 효과적일 거 같다. 왜냐하면 사회 엘리트들은 법과 제도로만 통제하기에는 너무 영민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런 식의 “도덕적 설득”은 비용도 별로 들지 않기 때문에 가장 경제적이기도 하다. 이건 정책학 등에서 나오는 이야기인 만큼 제 독단의 생각은 아니다.

엊그제 나눴던 대화 말미에 유민이가 제안한 역지사지가 떠오른다. 만약 “오빠가 그런 자리에 있다면 지금 구박하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라는 가정형 질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나는 그 분들보다 훨씬 더 자신이 없다. 다만 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 나머지 네 손가락을 제 자신을 향하도록 해볼 생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내가 남기는 글들도 미래의 차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운 말보다는 시시한 실천으로 응수해봐야겠다. 믿을 사람 없다고 한탄하기 보다 내가 먼저 믿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봐야겠다.


061125
지난 9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설립 60주년 기념해 문과대 건물 뒤편에 조지훈 선생님의 시비가 세워졌다. 시비에 새겨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는 4.19 혁명 보름 뒤인 1960년 5월 3일자 고대신문에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라는 부제와 함께 실렸다고 한다. 서울 남산 산책로 초입에는 조지훈의 시비 앞에서 `파초우(芭蕉雨)’ 시비가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국시 가운데 하나인 ‘승무’ 시비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다. 아직까지 없다면 내가 만들어 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좀 찾아보니 2004년에 경기도 화성시 용주사에서 승무 시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조지훈 선생님의 『시의 원리』라는 책에서 “열아홉살 적 어느 가을날, 화성 용주사에서 승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와 어느 이름 모를 승려의 승무를 보고는 밤 늦도록 용주사 뒷 마당 감나무 아래에서 넋없이 서 있었다”며 “당시 승무의 불가사의한 선율을 20살 되던 다음해 여름에 비로소 시로 지을 수 있었다”고 승무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고인은 시인에 머무르지 않고 민속학과 역사학을 넘나들며 국학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선생님이 48세로 요절하신 게 안타깝다. 내가 스물 넷이니 딱 그 절반인데 겁부터 난다.

자유당 말기 극도로 부패한 정치현실 속에서 친일파들이 과거에 대한 뉘우침 없이 정치일선에서 득세하고 사회 지도층들이 변절을 일삼는 세태를 통렬히 꾸짖는 <지조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난다. 이 새벽에 지조론을 톺아보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글 말미의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는 구절에 졸음이 확 달아난다. 요 근래 지조론을 권하고 싶은 나의 대리인들이 많다는 게 답답하다. 지조론은 아주 가끔씩만 꺼내 읽고 싶다. 너무 자주 읽으면 마음이 아리다.

정말 우리 사회에 배반의 장미는 도처에 만개해있다. “브루투스, 너마저...”가 아니라 “내 그럴 줄 알았다”, “너도 별 수 없구나”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박원순 변호사님은 어느 대학 강연회에서 오늘날 뭇매를 맞고 있는 386세대의 헌신을 재평가하며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만한 사람들이 되더라”고 말씀하셨다. 민주주의와 진보개혁을 장신구로 삼던 이들의 잇따른 변절은 인간에 대한 기대를 마구 헝클어뜨린다. 그러나 남 험담하기 전에 우선 내 자신에게 무시무시한 질문을 먼저 던져보자.

내 치부를 드러내는데 좀 더 민첩할 수 있을까. 내가 그리는 세상의 한계를 스스럼없이 밝힐 수 있을까. 자아도취에 빠져 구체적 실천 대신 추상적 놀음에 열중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 자임(自任)하는 바를 함부로 포기하지 않을 의지가 있는가.

그나저나 승무와 지조론이 한 사람에게서 나온 작품이라니 딱 그만큼은 세상이 불공평한 거 같다.^^;


061126
내가 흠모하는 광호형님의 생일이다. 형과 정식으로 인사 나눈 건 두 해가 조금 못 되지만 (아마도 내가 먼저였겠지만) 서로 친해지고픈 의지가 있었던 거 같다. 앞으로 더 그윽한 교류를 나눌 수 있는 후배가 되고 싶다. 만으로 25세가 된다며 슬퍼하시는 형께 황인숙 시인님 이야기를 해드렸다. 황인숙 선생님은 10대 때 스무 살 넘은 자신의 삶을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른, 마흔을 넘긴 요즘은 어차피 끔찍한 나이에 이르렀으니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이시란다(『인숙만필』 발문 참조). 나는 그렇게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한 살씩 먹어 가면 될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스물다섯이 넘도록 살게 운명지워진 그대들이여, 모두들 나만큼이라도 의지가지가 생기기를 빈다”는 황 선생님의 산문 한 구절이 떠오른다. 스물 다섯이 넘도록 살면 계속 살라는 뜻인가?^^;

생일을 축하드리려는데 이 표현이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들어 좀 찾아봤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표준 화법에서는 ‘축하드리다’를 어색한 조어로 보고 있다고 한다. ‘축하’라는 말이 자신이 고맙게 느끼고 축하하는 일이라서 ‘드리다’라는 말과 어울려 쓸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축하합니다’와 ‘축하드립니다’가 공대(恭待, 상대에게 높임말을 함)에서 차이를 두고 쓰이는 것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언중들이 널리 쓰고 있어 이 표현을 잘못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부담 없이 써야겠다. 여하간 글은 말을 다 표현할 수 없고, 말은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書不盡言 言不盡意)고도 하지만 형께 참 고맙다. 못 다 표현한 감사는 내 소소한 실천으로 갚아야겠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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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1.13~06.11.19)

일기 2006. 11. 20. 00:30 |
061113
집 앞에서 오래간만에 성희와 미현이를 만났다. 작년까지는 동네 모임도 종종 가지고 했었는데 몇몇 친구가 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그간 통 못 보던 친구들이었다. 셋이서 수다를 떨다 보니 미현이는 인문계생들의 알 수 없는 이야기라며 손사래를 쳤고, 나와 성희는 견해차를 적잖이 드러나며 재미난 언쟁을 벌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 요즘 지론인 요식업계 소비(더 정확히는 주세 납부)를 통한 내수경기 진작에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내 케인즈학파적 시각에 성희는 그렇게 총수요에 천착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응수했다. 그렇다고 성희가 통화주의자 같지는 않고 그 대신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적 가치관 자체를 문제삼는 것으로 보였다.

잠깐 사이에 오만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성희는 농담 삼아(진담일지도) 내가 국가주의에 민족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타박했다. 아무래도 국부 증진을 주창한 게 그렇게 비춰진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에 내가 신봉하는 서구식 자유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유가 공동체주의 등을 좀 끌어다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긴 했다. 천민 자본주의의 횡행과 시장만능주의의 쾌속질주에 적당한 제동을 거는데 유교적 방식이 유용하게 쓰일 거 같다. 그토록 극복하고 싶었던 유교적 관습과의 화쟁(和諍)을 통해 장점을 가려 쓰는 데 인색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나는 내가 민족주의자라는 소리에 일면 수긍했다. 내 민족주의는 북한을 아우르지 않으니 좀 더 자세히는 대한민국주의자쯤 되려나. 아무리 못난 나라라고 해도 제 나라가 잘 되길 바라고, 내 나라에 보탬이 되고픈 마음을 품는 거 자체는 그리 나무랄 일이 아닐 것이다. 뭐 그 정도가 지나쳐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부조리와 모순 해결에 머뭇거릴 수도 있겠다만. 나는 궁극적 소수로서의 개인이라는 명제에 거개 동감하면서도 세계시민주의에는 고개를 젓는다. 인류의 감수성이 거기까지 다다르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거 같다. 특히 우리의 경우 지역감정도 해결하지 못해 허덕이는 판에 더 일러 무엇하겠는가. 우리에게는 건전한 민족주의가 좀 더 많이 필요하다. 민족주의 자체가 악이라고 한다면 세상 모든 주의주장은 거의 다 악일 게다.

잠깐 대화였지만 성희에게 많이 배워야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대학생활 내내 사회과학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가 나의 수박 겉핥기식 잡설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언제 만나 서로의 썰(?)들을 풀어 보면 무척 재미날 거 같다. 친구의 내공 앞에 괄목상대를 하는 건 가슴 뛰는 일이다.


061114
우군에게

아이 참 유한계급, 고학력 룸펜 이런 말들은 좀 아껴서 하는 게 어떻겠니. 일개 학생에 지나지 않는 우리가 그런 허울까지 뒤집어 써야할 거 같지는 않다. 그건 너무 지나친 자조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자기 경계로 삼는다고 해도 말이지. 솔직히 나는 유한계급이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기를 늘 꿈꾸지만 그게 내가 유한계급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될 거 같지는 않다. 그 욕망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걸 줄이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일 뿐 사회적 강제나 주변 눈치 때문에 그것이 교정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각설하고.

국가주의는 국가폭력이나 광신적 애국주의 등의 부정적 함의가 많이 남아 있으니 차치하고라도 과연 한반도에서 민족주의를 손쉽게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느냐의 문제의식은 좀 있어. 하긴 여하간 단일민족(물론 믿지 않지만)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경우 민족주의는 주로 남북관계 등에서 쓰이고, 국가주의는 국익 논쟁 같은데 쓰이는 거 같다만 둘을 엄격히 가르는 것도 실익이 적을 수는 있겠다.

여하간 내가 말한 민족주의는 거창한 것이라기보다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추진하는 우리 고전 번역 사업이라든가, 한국사를 읽고 공유한다든가 이런데 치중되어 있음을 밝힌다. 좀 더 정확하고 아름다운 모국어를 구사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도 내 민족주의적 근성(?)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기다가 대한민국의 의사결정이 분단체제 때문에 많이 제약된다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도 추가할 수 있겠지만 내게는 이 부분은 좀 부차적이라서 말이지. 민족주의의 집단주의적 속성을 나도 익히 알고 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개인의 삶이 온전히 제 자신의 것이라고 보기 힘든 거 같다. 자유주의밖에 몰랐던 내가 공동체주의 주장에도 귀 기울이는 징조라고 생각해주렴.^^;

너는 내가 국가적 해법에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했어. 무척 타당한 지적이야. 하지만 나는 현시점의 과제가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생각해. 가령 노사간의 대타협, 사회 복지 수준을 둘러싼 대타협, 연금 개혁을 위한 대타협 이런 것들 말이지. 그래서 갈등비용과 거래비용을 줄이고, 예측가능한 사회를 구축하는 게 선진 민주주의 수립 혹은 민주주의의 공고화라고 여기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념과 정책에 따른 정당정치를 흠모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지.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백가쟁명 백화제방도 좋지만 최소한의 합의를 일구어내는 게 요긴하다고 생각해. 개인적으로는 그 사회적 타협의 내용에 자유주의적 요소가 많이 포함되었으면 좋겠고 말이지. 치열하게 토론하되 깔끔하게 승복하는 문화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우리 사회의 압도적 보수 우경화의 물결 때문에 소수파의 견해가 거의 반영되지 않을 우려가 있지만 그 우려는 또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보고 말이지.

나 또한 우리 사회처럼 행복마저 “유니폼”이 되는 사회가 곤혹스럽다. 고정적이고 획일화된 아름다움을 극복하는 건 내가 고등학교 철부지 시절부터 세웠던 꿈이고 말이지.^^; 개개인이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며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 건지 참 어려운 문제다. 나는 ‘차이’가 폭압적 ‘차별’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할 뿐 그 밖에는 개입하지 않는 매우 소극적 입장인 거 같다만. 일찍이 고종석 선생님은 “변방을 넓혀 중앙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지. 네 말에서 그걸 읽었어. 어쩌면 “모두가 궁극적 소수 곧 개인인 세상”을 말하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어떤 주의주장의 신봉자 이전의 개인, 어떤 학연혈연지연 이전의 개인 이런 것들 말이지. 물론 그런 다채로운 정체성이 만개하는 세상이 좋다, 아니 옳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드리워진 집단의 표지를 손쉽게 벗겨내지는 못할 거 같다. 조금 과장 섞어 말하면 내가 민주노동당 지지자를 복선 없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듯이, 네가 경영학도의 언동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횡설수설의 제왕은 바로 내가 아니겠니.^^; 정제되지 않은 헛소리지만 일단 생각나는 대로 늘어놓아 봤어. 네 숱한 지적대로 나도 미끈한 말보다는 시시한 실천을 좀 더 모색해볼게. 아마 네게 좀 더 많은 구박과 자극을 받아야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대화가 차이점을 더 드러낼지 오히려 더 좁힐지는 모르겠지만 나 또한 “to be continued!”를 외칠 친구가 있어서 기쁘다.^-^


061115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님이 13일 성명을 통해 “한나라당이 ‘부자비호정당’이라는 소리를 듣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대책이 서민이 아닌 부자들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며 부동산 대책에 대한 적극적인 견해를 밝힌 것은 신선하다. 종합부동산세가 “과세대상이 전체 가구의 2%를 약간 넘는 정도이므로 지금 조정이 시급한 것이 아니다”고 말하고, “한나라당의 주택정책은 무주택자와 1가구 1주택자를 대변하는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외치는 게 이채롭다.

“보수당이란 게 원래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분배보다는 성장위주의 정책을 펴며 중산층 이상의 국민에 정책을 맞추는 당인데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고 싶다면 당을 바꾸거나 신당을 만드세요”는 어느 누리꾼의 지적도 통쾌하지만 손 전 지사님의 그런 발언은 일단 반길만한 일이다. 득표지향적인 catch-all party의 장점은 이렇게 균형감각을 발휘하려고 한다는 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기간 진보와 보수의 정당정치가 발전한 서구사회에서는 중앙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는 거 같다. 우리는 매우 작은 차이를 침소봉대하는 보수 양당이 티격태격하며 이념과 정책에 따른 고정 지지계층이 있다기보다는 지역주의에 좌지우지 되는 경향이 높다.

지난 7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우세지역에서 승리한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보수 성향 민주당원을 뜻하는 ‘네오뎀(neo-Dem)’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판에는 유사 네오뎀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특히 열린우리당에는 한나라당 성향 우리당원, 민주당 성향 우리당원이 넘쳐나는 것 같다. 네오뎀은 제 지지자들의 의견을 수렴할줄 안다는 미덕이 있지만 우리당 내 유사 네오뎀들은 제 안위에 더 관심이 많은 거 같다. 1968년 미국독립당을 창당했던 조지 월러스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는 1달러는커녕 25센트 정도의 차이도 없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 25센트 차이가 참 부럽다. 우리네 거대 양당은 10센트의 차이를 선거 때 2달러로 불리는 몹쓸 버릇만 가득하다.^^; 이념과 정책에 따른 정당정치를 구현한다는 것이 반드시 10센트의 차이가 50센트로 벌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은 차이도 내실 있게 경쟁한다면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061116
60여만 명이 결전을 치른 수능 날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99년 11월 17일 내가 쓴 일기를 보니 수험생 형, 누나들의 건투를 빌며 내가 올린 진언(?)에는 “학창시절의 그 마음, 꿈과 이상을 사회에서 헌신짝처럼 내던지지 말고 지켜나가고 소중히 하기를” 운운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때 멋 모르고 올렸던 그 말이 이제는 고스란히 내 차지가 되었다.^^; 여하간 한 무더기의 싱싱한 가능성들이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하려고 하고 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는 하지만 뒷사람에게 자꾸 따라 잡히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5년 전 사상 초유의 점수 대폭락 사태를 빚었던 충격의 2002 수능이 떠오른다. 이제 제법 시일이 흘러서 그 때를 별다른 통각 없이도 곱씹어 볼 수 있다. 또렷한 기억은 아니지만 나도 원점수가 30~40점 정도 떨어졌는데 깊은 내공(?)을 자랑하던 언어영역이 100점에서 0.2점 모자란 건 충격적인 사실이었다(당시에는 120점 만점). 100점도 되지 않는 점수로도 상위 3%로 1등급을 받을 수 있었으니 당시 시험 난이도가 얼마나 매서웠는지를 알 수 있다. 언어영역에서 원점수 기준 120점 만점을 받은 수험생이 한 명도 없었고 118점이 최고점이었다는 궁색한 변명을 해본다. 언어의 제왕(?) 소리를 종종 들었던 녀석으로서 110점 정도는 욕심을 냈어야 했는데 여러모로 아쉽다. 다시 보라고 하면 절대 그 점수 못 맞겠지만.^^; 모의고사 두 번 중에 한 번은 72점 만점을 받던 사회탐구 영역은 67점으로 무려 5점이나 감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위 1%가 나왔다.

여하간 나는 이미 수시모집으로 대학교를 조건부 합격한 상태여서 종합등급 2등급 이상만 획득하면 최종 합격이라 부담이 훨씬 덜했는데도 역시 수능은 수능이었다. 사실 나는 모의고사에서 특별히 우수한 편은 아니었다. 모든 걸 잘해야 하는 현행 수능체제에서 나는 수리영역과 과학탐구영역에서 이런저런 누수가 많았다. 내가 정작 좋아하는 국어와 사회 공부를 제쳐놓고 늘상 수학과 과학 공부에 매달렸던 건 서글픈 일이다. 우스운 건 난 아직도 매우 적게 공부한 국어와 사회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2002 대입부터 전격 확대된 수시모집 제도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지금 이 학교, 이 학과에 있지 못하고 새로운 삶을 꾸려나갔을 게다. 제도가 어수선할 때 강한 내 면모가 드러난다고나 할까.^^;

수능 점수가 예측 가능한 수준을 넘게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2002 수능부터 총점기준 누가성적분포표(전국 석차)를 공개하지 않게 되자 고3 교실은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알면서도 98년 입시 개혁안 때 이미 공언된 총점제 폐지 등의 틀을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혔고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았다. 물론 내가 정시모집에서 제 위치를 명확히 몰라 애끊는 심정까지 겪어보지 못했기에 내 주장의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총점석차에 의한 대학 서열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굽히지 않았고 참 많이 상처도 받았던 거 같다. 여하간 요즘은 선택과목도 다양해지고 영역별 점수 반영이 활발해져서 나 때보다는 많이 안정화된 거 같다. 이렇게 정책이 자리 잡는 건 좋은 일이지만 안착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더군다나 교육정책 같은 민감한 사항에서는 더욱 세심해야 한다.

여하간 수험생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수능 시험장에서 기도하는 절실한 마음으로 산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061117
차기 총장 예비선거에서 부적격자로 지목돼 탈락한 어윤대 고려대 총장님에 대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교수들이 변화를 싫어하고 안정만을 추구하는 측면이 있다”는 어 총장님의 인터뷰에 교수의회에서 권고문을 내고 교수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삼갈 것을 권고하기까지 했다. 중간에 와전된 내용들도 적잖겠지만 이제 결과가 나온 이상 관련 당사자들이 깨끗하게 승복하는 게 도리다. 어 총장님이 연임에 실패했다고 해서 교육 효율성 제고와 교수사회 혁신 과제가 통째로 폐기되는 건 아닐 것이며, 연임에 성공했다고 해서 학교를 기업과 동일선상에 놓고 보는 사고방식의 단점이 줄어드는 건 아닐 것이다. 어 총장님 스스로 50%의 리스크를 안고 도전한 연임이라고 하신 만큼,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경영학도의 자세를 보여주시길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의 지적대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CEO라는 말이 가치중립적으로 쓰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CEO가 “모든 조직의 책임자들이 반드시 구현해야 할 지고지선의 가치이자 전범(典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과문한 내가 듣기에 완벽한 리더십 모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CEO형 지도자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면 무게중심이 그 쪽으로 쏠리는 것을 부러 백안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CEO를 기업식 경영방식을 구사하는 리더십으로 좁게 정의하더라도 구체적 실천방안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는 만큼 섬세하게 접근해봐야겠다. 경영, 경제 전공자나 기업에 몸 담았던 이들이 너도 나도 CEO형 지도자를 자처하는 게 민망해서 하는 소리다. 내가 경영학도인 만큼 좀 위악적으로 말해보자면 우수마발이 CEO를 외치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가 너무 획일적이다 보니 리더십마저 유행에 민감한 게 아닐까 싶다.^^;

끝으로 어윤대 총장님 그간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유종의 미 거두시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061118
선배님들과의 번개 모임 장소가 변경되어 2년 만에 강남역을 향했다. 내가 뭐 강남을 부러 꺼리는 건 아니지만 인연이 많이 닿지 않는 건 사실이다. 삼성역 코엑스몰 정도를 한 해에 두 어 번 가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강남을 좀처럼 찾아가지 않는다. 그만큼 네게는 많이 낯선 동네다. 나는 최근 내수경기 진작을 위한 술 소비 등 소비 확대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그 활동 반경을 강북 동부의 중랑구, 노원구, 도봉구, 성북구, 동대문구, 성동구, 광진구, 강북구 등 8개구와 인접한 중구, 종로구 정도 잡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오면서 내가 강북 주민으로 산지도 10년이 넘었고 학교도 계속 그 반경을 넘지 않았으니 나도 모르게 강북을 편애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강남역 근처에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와중에도 귀갓길을 걱정해야 하듯이 강남은 내게 아직은 심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가깝지 않는 곳이다. 11시 20분쯤 먼저 자리를 나오면서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역지사지를 생각했다. 보통 학교 근처에서 대학 모임을 가지면 나는 집이 가깝다며 부담 없이 놀았던 적이 많았는데 남쪽 동네에 사시는 분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그간 너무 잊고 있었다. 아무리 유쾌한 모임이었다고 해도 전철도 끊긴 시간 붐비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건 꽤 고역이다. 번번이 엄청난 택시비를 감당할 여력이 학생에게 있을 리도 없다. 그런걸 내색하지 않고 마다하지 않고 모임 때면 자리를 빛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일요일 아침에 일정이 있어 부득이 자리를 떨치고 나왔지만 다음에는 강남 어딘가에서도 밤을 지새우며 놀아봐야겠다. 그렇게 한 번 정(?)을 통하면 앞으로 나의 남행이 마냥 거북하지만은 아닐 게다.

처음 뵙게 되어 기뻤던 우석형님, 납세자가 계산하자는 멋진 제안을 하셨던 인호형님께 각별히 감사 드리며, 졸지에 막내가 되어 몸둘 바를 몰랐던 나를 비롯한 홍익, 정석이에게도 고맙다. 무엇보다도 다음에는 준희형님과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다.


061119
2006년 6월 영월댐(일명 동강댐) 건설이 백지화됐다. 생태계의 보고를 지키겠다는 환경적 가치가 설득력을 얻은 이례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환경단체 등의 보고에 따르면 댐 건설 계획 백지화 이후 동강은 오히려 더 오염되었다고 한다. 동강 러시가 벌어져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와 오물로 1급수 청정 하천이었던 동강의 물이 2급수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산을 깎아내고 도로를 내며 관광 자원화에만 열중했고, 천혜의 비경이라는 찬사가 무색하게 많이 훼손된 모양이다.

최근까지도 댐 건설론자들은 동강댐 등 당초 계획되었던 댐들이 건설되어야 집중 호우 때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남한강 수계에는 북한강 수계와는 달리 다목적댐이 충주댐 하나밖에 없어 물을 가둬둘 댐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경청할만하다. 하지만 동강댐 등이 홍수 조절 효과가 없고, 경제성까지 별로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환경 문제에 대해 크게 아는 바는 없지만 앞으로 이런 식의 갈등은 재현될 소지가 많다. 일전의 천성산 터널공사 논란도 이와 비슷한 갈등이 표출되었다. 이슈가 터지면 치열하게 논쟁하다가 가까스로 봉합되면 문제의식이 소진되어 후속조치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날마다 터지는 사건사고에 눈이 휘둥그레지기 일쑤고, 먹고살기 바쁜 보통 사람들에게 그만한 책임감을 강요하는 건 지나친 처사지만 말이다.

2004년 문화재청 국정감사 때 열린우리당 이광철 의원님이 내놓은 고려왕릉 보존관리 실태조사 보고서는 방치된 고려왕릉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올 봄에 실제 몇 군데 답사를 다녀오니 여전히 황량하고 적막한 곳이었다. 특히 고양시 공양왕릉의 경우 2001년 크게 훼손되어 도굴 된 게 아니냐며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도굴 의혹 기사가 쏟아진 이후 관련 기사를 뒤적여 봤지만 추후에 어떤 결론이 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문화유산 관리의 허술함보다 더 서글픈 것은 그 때 그 때 잠깐 관심을 갖다가 잊어버리는 우리들의 냄비근성이 아닐까 싶다.

“동강의 비극”은 정책 종결에 따른 사후조치 미흡이 어떤 참상을 가져다 주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동강댐을 포기하면서 지키려고 했던 가치들을 유지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도 해야할 때가 있는 법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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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1.06~06.11.12)

일기 2006. 11. 13. 02:13 |

061106
종종 국회의원들이 보내는 전자우편을 받는다. 아마 몇몇 사이트에 남겨진 회원정보를 통해 보내는 거 같은데 몇몇 의원님들 건 수신거부를 해버리지만 어지간하면 몇 번 오다 말겠지 싶어 그냥 둔다. 다만 이계안 의원님의 편지는 반갑게 받는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까지만 보내다 말 것을 지금까지 틈틈이 보내주는 정성이 대단하다. 이 의원님은 지난 5.31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강금실 후보님과 이기기 힘든 싸움을 벌였다. 오로지 강 후보님께 이목이 쏠려 있을 때도 “여전히 우리당은 나의 당이다”며 끝내 섭섭함을 내색하지 않는 모습에 나는 이 분이 진국이구나 생각했다. 물론 정치인에게 희망을 투자한다는 게 수익성이 낮다는 건 숱한 경험으로 입증되고 있지만 투자하지 않으면 희망이 커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실용적인 인생을 살고 싶지만 덧없는 게 또 인생이니 어쩌겠는가.

솔직히 이계안 의원님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이 의원님의 경선 고집이 서울시장 선거 진행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당의 원칙은 좀 우직하게 지킬 필요가 있었다. 사실 이 원칙이 흔들려서 후보 경선이 흥행에 참패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보기 드문 아름다운 패배와 멋진 승복이었다. 여하간 이 의원님이 <君子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보낸 엽서에서 그가 인용한 문구는 “君子는 求諸己요, 小人은 求諸人이라(군자는 잘못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그것을 다른 사람한테서 찾는다)”과 “군자는 欲訥於言而敏於行이니라(군자는 말은 더듬거리지만 행동은 민첩하고자 한다)”였다. 여기저기 주판알 굴리는 소리가 들릴 때 차분하게 제 허물을 돌아보는 모습이 얼마나 그리운가.

이계안 의원님 칭찬하는 와중에 모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하겠다며 의원직을 사퇴했다가 재보선에서 다시 의원 배지를 단 모씨가 떠올랐다. 그 분은 전 의원에서 머무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분은 내 투정(!)을 받아도 싸다. 아무쪼록 군자가 되고 싶다는 이 의원님의 바람이 머잖아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그가 쓰레기통 속에서 피어난 장미꽃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가 고통 속에서 진주를 품으리라 믿는다. 그에게 아름다운 승리와 멋진 수락도 함께 하기를.


061107
어제 휴가 나온 수현이와 청원이, 그리고 시험 공부를 해야하는 현식이와 함께 회기역에서 조촐한 회동을 가졌다. 수현이가 올해 송년회를 거하게 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현이가 일일이 전화를 돌려서라도 한 60명쯤 모아보자고 말했고, 나는 더 회의적으로 응했다. 수현이가 내기를 걸자고 했고, 나는 한사코 만류했다. “그냥 얼굴이나 보고 싶다”는 수현이의 소박한 바람을 나는 “그건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과거의 추억을 만나는 것에 불과하다”고 구박(?)했다. 내가 못됐다. 너무 야박하게 말했다.

나는 2002년 11월 24일 당시 동창들 온라인 클럽에다가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동문회 창설을 제안합니다’는 글을 올려 동창회 논의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동창회의 성격과 구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나는 논의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나 말고 다른 친구가 이 제안을 하고 논의를 시작했다면 더 많은 친구들이 믿고 동창회 건설에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을까라는 자괴심에 빠지기도 했다. 2003년 1월 말을 지나면 동창회 논의는 물 건너간다고 생각했던 나는 중국어과 진로를 위한 사이버 투표를 제안해 조속한 결정을 강구했다. 중국어과 친구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친구들의 뜻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망설여졌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1월말이 지나면서 논의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다행히 2003년 11월 가까스로 중어과 엠티를 성사시켰고 그 곳에서 동창회 논의를 2시간여에 걸쳐 시종일관 열띤 토론을 했다. 전원의무가입인가, 희망참여가입인가를 놓고 표결에 붙였고 내 평소 지론이었던 희망참여가입이 많은 표를 얻어 결정되었다. 싸이월드로 새로 옮기는 동창회 커뮤니티에 가입한 친구들을 회원으로 상정하자고 해 사실상 희망참여가입의 명분만 유지했을 뿐 전원의무가입과 크게 다를 바 없긴 했다. 내가 분열주의자 소리를 감수하고도 희망자의 참여를 강조한 것은 모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인연은 운명이 아니라 정성이며, 노력이다. 그 정성과 노력은 몇몇 개인에게 과중하게 지워져서는 안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조직화가 필요하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방책이라고 좀 더 힘주어 강조했어야 했다. 여하간 이 엠티 이후 동창회 논의의 후속 조치들이 너무 미비했다.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동창회 - 아시수”라는 명칭만 확정했을 뿐 임원진 혹은 운영진의 구성이나 동창회비 납부 문제는 결국 매듭짓지 못했다. 특히 동창회비 문제는 오래된 사이라고 해도 돈 문제로는 의 상하기 십상이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나는 재정적 끈(!)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지만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은 실패했다. 몇몇 친구들은 시기상조론을 폈지만 내가 보기에 고등학교 졸업 전후로 마무리할 일이 늦어진 것이다.

나는 동창회 논의를 하면서 직접 민주주의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절절이 체험했다.^^; 내가 열렬한 의회 민주주의 옹호자가 된 것도 이 때의 경험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나 친구들이나 논쟁에 띄어둔 사람들 대부분이 타협점을 찾기 힘들었다. 그만큼 우리는 철없고 어렸다. 내년 초를 기점으로 거의 모든 남학우들이 군 제대를 하고 나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남은 친구들의 수가 적다고 투덜거리지 말자.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옛 정을 버리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다.


061108
사람의 일생에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다. 가령 관운장의 오관육참(五關六斬)이나 유현덕의 삼고초려, 제갈공명의 출사표는 그네들의 일생에 걸쳐 가장 눈부신 순간이었다. 문제는 이 섬광처럼 스쳐가는 순간을 얼마나 평생에 걸쳐 꾸준히 유지하는 가다. 순간의 호기로움으로 아름다운 말을 늘어놓고, 짧게나마 그 실행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건 약간의 정성만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전생애를 걸쳐 제가 품었던 아름다움을 건사하는 건 지극한 수고로움이 따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과정에서 떨어져 나갔던가.

정치인 정동영은 그리 쟁쟁한 민주투사라고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1978년 MBC 기자 면접시험에서 보여준 행동은 눈부셨다. 사장은 “현 시국을 어떻게 보는지 말하시오”라고 물었고 그는 고심 끝에 “유신은 망하고 말 겁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요 근래 취업 면접을 준비하시는 선배님들을 뵙고 있지만 이게 정말 얼마나 어려운 결단인지 금세 알 수 있다(더군다나 요즘 같은 취업난에서야 더욱 그럴 게다).


정동영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 시대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당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끝이 안 보이는 유신독재의 그늘에서 그 멸망을 통쾌하게 말하는 용기는 아름답다. 이런 이들이 점차 늘어나서 오늘날 이만한 사회라도 이룬 거 같다. 정동영이 그 때의 눈부심을 지켜내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기로 하자. 그러나 오늘날 누군가는 지역주의는 망하고 말 겁니다라고 외치고, 국가경제 발전과 더불어 개인의 삶의 질 향상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외칠 수 있어야 할 텐데. 내 자신이 못하는 일을 내 대리인이라도 해주길 바란다면 지나친 탐욕일까.


061109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청장 후보 공천을 대가로 ‘명품 8종 선물 세트’를 받아 공직선거법 위반 및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박성범 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할 모양이다.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700만원에 추징금 12만원을 선고했다. “물품을 받아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의 경우 현행법상 과태료에 처하도록 돼 있어 선거법으로는 형사처벌할 수 없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배임수재죄만 인정했다. 피차 선수들인데, 뇌물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 모두 이러한 공직선거법의 맹점을 알고 있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의 이런 가정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사과드린다.

사실상 선거법 위반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재판부가 엄격한 법리적 판단을 내린 것 자체는 시비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공직선거법 허점에 대한 개정 논의를 게을리 한 국회에 더 많은 책임을 돌리고 싶다. 그런데 “물품 공여자의 적극적인 공세에 밀려 물품을 받은 점 등을 감안해 형을 감경한다”니 조금 납득하기 어렵다. 민감한 시기에 건네는 선물이 어떤 의미인지 피차 아는 판에 그런 정상참작까지 하는 정성(?)이 갸륵하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너그러움은 생계형 범죄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왕 떨구는 법의 눈물이라면 낮은 곳에 먼저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매관매직 사건도 이렇게 묻혀간다. 돌아온 최연희, 돌아온 김덕룡에 이어 돌아온 박성범도 추하다. 우리가 그들을 잊는다면 또 그들은 앞으로도 주욱 우리를 대표(!)하려 할 것이다.


061110
3년간 쓰던 휴대 전화 기기를 변경했다. 나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도 책을 봐가며 공부한 녀석이라 새로운 휴대 전화기의 기능에 익숙해지기 위해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따라해 봤다. 새 휴대 전화는 음악도 많이 넣어서 듣고, 인터넷도 하고, TV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일단 나는 전화 주고받고, 문자 오고갈 수 있으면 되는지라 그 기능만 익혔다. 컴맹에 가까운 내가 컴퓨터를 인터넷으로 글을 읽고 쓰고, 한글 문서나 활용하는 정도로밖에 쓰지 않는 것처럼 나는 문명의 이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틈만 나면 문명 예찬을 늘어놓는 나이지만 정작 내 자신은 문명에서 살짝 빗겨서 있기도 하다. 하기야 첨단기술과 유행만이 문명이라고 할 건 없겠지만. 고즈넉한 궁궐도 문명이지 않는가.

전화번호부를 옮기는 문제에 마주쳤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전에 쓰던 것에서 새 것으로 단숨에 자료를 옮겨준다고 한다. 미련의 화신(!)인 나는 이번에도 고심에 빠졌다. 520개에 달하는 전화번호를 수작업으로 옮기자니 여간 막막한 게 아니다. 하지만 이래저래 알게 된 전화번호를 이참에 날씬하게 정리하는 것도 필요할 듯싶다. 있던 것을 지우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입력하는 게 더 모양새도 좋고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200개 쯤은 입력해야 할 텐데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하나씩 새로 입력하면서 그 전화번호 주인공과의 추억을 곱씹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새 전화기에 연락처를 입력하지 않는 분들과도 애틋한 작별을 나누고 말이다.

아! 나의 미련 곰탱이 기질이 또 발동하려고 하고 있다.^^;


061111
어제 저녁부터 오늘 새벽까지 즐거운 자리를 가졌다. 97학번 선배님부터 05학번까지 모였으니 최근 들어 가장 학번 분산(Variance)이 높은 모임이었다. 어렵사리 자리에 함께 해주신 초고학번 선배님들과 많은 이야기 나누지 못해서 아쉽다. 당초 계획했던 모임에서 규모가 많이 커져서 제안자였던 내가 적잖이 긴장했지만 다행히 잘 마친 거 같다. 선배님들께 자꾸 빚져서 이거 나중에 어떻게 후배들에게 다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모임을 주도하거나 제안하지 않기로 약속해놓고 번번이 어기다가 이번에는 결정타를 날려 버렸다. 나와의 약속을 어긴 보람이 있지만 그것이 면책이 되거나 하는 건 아니다.

 

후배사랑으로 열변을 토하셔서 좌중을 감동시켜주시고 학번 분산 신기록에 지대한 공을 세워주신 상준형님, 인사 못 드렸지만 먼발치서 아우라나마 만끽했던 충언형님, 결국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 와주신 인호형님, 내 얼굴을 10초간 바라 봐주시고 선후배 간의 관계에 대한 많은 조언을 해주신 문철형님, 나를 92학번이라고 불러 주시며 당혹의 도가니로 몰고 가주신 승하형님, 상추쌈도 친히 싸주시고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던 신우형님, 이 모임의 영감을 제공해주신 선후배 관계의 모범 가운데 모범 광호형님,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나의 초중고대(!) 선배님 정훈형님, 한층 훤칠해진 모습으로 내게 외모관리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신 국주형님, 내 연락을 너무나 반겨주신 행시동의 다크호스 주원형님, 인사 드리기도 전에 이미 내 존재를 알고 계셨던 규현형님, “뻔한 게 좋아!”라며 늘 보는 얼굴을 좋아하시는 변함 없는 카리스마 을광형님 모두 고맙고 또 고마웠다. 정말 선배님의 뒤를 어떻게 쫓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좀 더 친해지기 위해 안달하는 02 동기들 하늬형, 정환형, 단비누나, 홍익, 정석, 패창, 보경, 재한, 재연, 수정... 우리 학번이 제일 많이 왔다. 푸하하~ 헌조형을 비롯해 역시나 친해지기 위한 물밑 교섭 중인 03학번 지호, 은수, 석원, 성환 모두 고생 많았어요. 04, 05의 대표 자격으로 어려운 자리 함께 해준 용철이와 상언이에게는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당분간 근신하는 시늉이라도 해야할 거 같은데 다음주 초에 준용형님을 모시고 고등학교 동문 모임을 기획하려고 하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전화기를 바꿀 것이 아니라 없애버려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흑흑


061112
행정행위에는 재량행위와 기속행위가 있다. 재량행위는 행정결정에 있어 행정청에게 선택의 자유가 인정되는 행정행위를 말한다. 반면에 기속행위는 행정행위의 요건 및 법적 결과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법을 집행함에 있어 행정청에게 어떠한 선택의 자유도 인정되지 않고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행정행위를 말한다. 법제처는 2005년부터 ‘재량행위 투명화’를 중점사업로 정해 모호한 법조문 정비에 착수했다. 법조문에서 ‘상당한 이유’, ‘정당한 사유’, ‘현저한 공익적 기준’ 등 애매한 표현으로 규정될 경우 행정청에 의해 재량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되고, 나아가 행정부패 소지가 발생하게 된다는 문제의식의 산물이다.

 

재량행위의 기준을 명확히 하거나 아예 기속행위로 전환함으로써 국민의 권익을 확충할 여지는 많다. 이를 통해 행정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면 국민의 권리 실현에 보탬이 될 것이다. 가령 건축허가의 경우 재산권 행사와 관련이 있는 관계로 원칙상 기속행위로 본다(강학상 허가의 경우 이와 같이 기속행위로 보는 경우가 많다). 건축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면 행정청의 별도의 가치판단 같은 거 없이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건축허가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환경 등 공익을 고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경우에 일정 부분 재량행위가 되는데 이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면 환경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행정의 예측가능성도 떨어져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된다.

 

경제안정정책을 둘러싼 케인즈학파와 통화주의자의 대립도 이와 유사하다. 케인즈학파가 적극적이고 재량적인 정책의 측면이 강한 미세조정 정책을 지지했다면, 통화주의자들은 소극적이고 준칙에 따른 정책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준칙은 기속행위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일례로 통화주의자의 거두 프리드만은 k% 준칙이란 통화정책을 제안했다. 이는 정부가 화폐 공급량을 매년 일정한 배율로 증가시켜 나갈 것이라고 공표하고 경제상황의 변동에 관계없이 이를 지켜나가는 정책을 말한다. 이를 통해 민간 경제주체들의 예측가능성을 높여 장기계획을 수립하는 데 보탬이 된다는 주장이다.

 

11월 들어서 공부를 미뤄두고 너무 노는데 치중했다. 스스로 재량을 줄이고 준칙을 좀 늘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다. 내 생활의 상당부분을 기속행위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학교는 두 번만 간다는 쿼터를 정한다고 하자. 나는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가는 것이니 만큼 학교 출입을 줄이면 노는 시간도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쩨쩨하게는 일주일간 쓰는 전화와 문자 횟수 상한선을 정하고, 일일 인터넷 활용시간을 제한하는 등을 검토해볼 수 있겠다. 반드시 무언가 줄이는 것말고도 하루에 영어 공부 최소 1시간은 하기처럼 무언가를 일정 수준 이상 수행하는 쪽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내 욕심을 채우려면 일정부분 기속행위와 준칙의 힘을 빌어야 할 거 같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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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30
지난 토요일 추미애 전 의원님의 파워인터뷰를 시청했다. 일전에 고종석 선생님은 그를 “그는 기존 지지자들을 내침으로써 새 지지자를 얻겠다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정치공학에 가담하지 않은 원칙주의자로 남았고, 그 결과 민주화 시동 이후 가장 뻔뻔한 정권으로부터 비껴 서 있게 됐다”고 평했다. 추 전 의원님 스스로도 “특정 지역의 뺨을 때려서 다른 지역의 표를 얻겠다는 발상이 정의롭지 않다”며 자신이 권력 따라 나가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추 전 의원님이 마냥 그리 떳떳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부산신당으로 몰아세우며 현란한 호남지역주의 언사를 늘어놓았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추 전 의원님이 비록 권력의 달콤함에는 멀어져 있었을지는 몰라도 구민주당 말기의 그 역겨웠던 부패와 한계에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민주당의 몰골이 그 시기 때보다 별반 나아진 거 같아 보이지 않는다. 기왕 민주당원으로 남겠다고 선언한 이상 통합 운운하기 전에 제 식구들의 흐트러진 행태부터 바로 잡는데 진력해줬으면 좋겠다.

장영달 열린우리당 의원님이 “열린우리당의 출범이 원죄라고 생각하는 창당 인사가 있다면 차라리 탈당하고 정계에서 은퇴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일갈한 데 동감한다. “우리당의 위기는 17대 총선 이후 정부와 당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국민의 신임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된 것이지 열린우리당의 출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분당에서 비롯된 것이 결코 아니다”는 주장이 참 반갑다. 사실 분당의 리스크가 아주 없었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제3당을 감수한 국회의원 47명의 자기희생적 결단은 국민들에게 적잖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가진 게 적어도 희망이 충만했던 지난날과 견주어 오늘날 여권에서 나오는 통합 논의는 얼마나 너저분한가. 자기희생적 감동은 보이지 않고 그토록 결별하려고 애쓴 지역주의와 결합하는 모습이 얼마나 슬픈가. 추 전 의원님을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내지 못하고 다시금 반동의 격랑에 휩쓸리게 한 게 열린우리당이 역사적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람이 매서울 때 비로소 꼿꼿한 풀을 알아보게 된다(疾風知勁草)”고 했다. 과연 다시금 등장한 리트머스 시험지에 내 대리인들은 어떤 색깔을 보여줄까?


061031
몇 달 전 백낙청 교수님의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최장집 교수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읽고 내 사상의 지평이 넓어진 듯한 착각에 빠진 적이 있었다. 고작 책 두 권을 읽고 유식해졌다고 자화자찬에 빠질 정도로 두 분의 글은 매혹적이었고 배울 점이 많았다. 혹자들은 두 진보진영 지성 간의 논쟁이라고 싸움 구경을 유도하기도 했으나 사실 그 정도의 불꽃은 튀지 않은 거 같다. 최 교수님이 문제 분석에 탁견을 보이셨다면 백 교수님은 대안 제시에 설득력을 더했다. 문제 파악과 해법 모색을 각기 다른 분의 손을 들어주다니 내 지적 분열(?)이 우습다.^^;

통일문제와 계급문제를 어떻게 분리하고 어디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지 아직 감이 잘 안 오기 때문에 그런 두루뭉술한 양시론을 펼치는지 모르겠다. 일전에 박현채 선생님께서는 1980년대 변혁운동의 두 가지 이론적 경향을 두고 "PD적 입장에 서지 않은 NL의 비계급성은 허구이며 PD 역시 민족해방의 과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시기도 한 만큼 나의 어정쩡한 태도도 마냥 구박받을 일을 아닐 게다.^^; 아직 공부가 부족하니 이런 직관적 판단이 아닌 좀 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논리를 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최 교수님은 NL(민족해방)-PD(민중민주)의 두 구성요소가 분리되고 PD적 문제의식이 약화 또는 소진된 것을 문제로 지적하신다. 이 대목에서 신자유주의가 절제 없이 창궐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또한 “NL은 PD적 요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하나의 민족주의로 전락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하시며 민족주의적 정서로 민중 문제를 무마하는 걸 경계하신다. 반면 백낙청 교수님은 BD(부르주아민주주의)라는 제3자를 제시하신다. NL, PD, BD의 3자 결합을 통한 변혁적 중도주의가 그것이다. 물론 민족통일을 중시하는 자주파인 NL, 노동자 농민의 권익을 중시하는 평등파인 PD, 개량주의 시민운동 및 온건개혁세력인 BD가 매끄럽게 융합하는 건 무척 까다로운 과제다. 신자유주의의 가속화에 대한 NL, PD와 BD는 적잖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고, 남북관계의 경색에 관해 NL과 PD, BD는 저마다 상이한 행보를 보이는 듯하다.

BD는 하나의 단일한 세력으로 보기 힘들 만큼 다채로워 정리하기가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자칭 개혁정당이라는 열린우리당의 현란한 잡탕 퍼레이드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 일단 논의를 미루고 NL과 PD에 대해 살펴보자. 학생운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나이지만 1990년대 들어 동구권 몰락과 궤를 같이해 PD계열이 쇠락하고 민족, 통일문제로 파고든 NL계열이 학생운동을 주도하게 되었음을 대강 알고 있다. NL계열이 시대정신의 일부를 부여잡은 건 환영할 일이다. 그네들의 전략적 유연성도 한 몫 했을 게다. 하지만 NL계열의 그늘은 그 빛만큼이나 짙다.

이번 북핵 사태와 관련해서 민주노동당 내에서 NL과 PD 진영 간 내홍을 살펴봤을 때 NL계열은 조금 험하게 말해 감상적인 민족주의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아무리 민노당이 정파연합정당이라고 하지만 이쯤 되면 좀 지나친 거 같다. NL계열이 진보가 되는 인플레이션이 있다는 게 한국 정치 낙후성의 한 사례일 듯싶다. NL과 PD가 아름답게 결별하기에는 상황이 엄혹하다는 것도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런 측면을 가열차게 비판하던 사회당이 번번이 제도권 진출에 실패한 것이 이 대목에서 아쉽다. 진보정당을 민주노동당이 과대 대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야 기존 보수정당들의 이합집산과 철새 행진이 더 짜증스럽지만.

최근 공안정국이 형성되어 매카시즘이 횡행하고 있지만, 나는 남 욕하기를 그치고 차분히 BD계열의 단점을 곱씹어 봐야겠다. BD의 강점을 일부 정치 자영업자들이 휘두르게 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3자 결합 이전에 BD 스스로 자신을 추스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구기득권에 포획된 압도적 보수화의 물결에 맞서기 위해서는 저마다 제 약점을 고쳐나가려는 혁신이 필요하다.


061101
아침부터 “좌익이 판치는 세상”, “다시는 재야를 뽑지 말아야...”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무실에서야 귀머거리 겸 벙어리로 지내기로 철칙을 세운 터라 그러려니 늘 듣던 소리지만 오늘따라 살짝 귀에 거슬렸다. 몇몇 어른들이 공부도 안한 운동권을 질책할 때 나는 공부를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을 가늠해본다. 386세대의 오만과 독선을 지적할 때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불의와 너그럽던 세태와 결별하려 했던 이들을 후하게 평가한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놓으라는 게 대중의 마음이라고 야속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권좌에 오른 386들은 마땅히 그런 요구에 부응할 책무가 있다. 관자에는 “반드시 백성을 먼저 부유하게 만들고 나서 이를 다스린다(必先富民, 硏後治之)”는 구절이 나온다. 국민이 스스로 자꾸 궁핍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정부나 국회는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모델과는 다른 방식으로 국민들이 호의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전에 백낙청 교수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라고 지적하셨다.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민주화세력도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이 신선하다. 산업화세력의 경제발전 방식은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살린 민주화세력이 크게 공헌했다는 견해에 상당 부분 동감한다. 실상 박정희의 절제를 기대하는 것보다 민주화세력의 견제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었음을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실물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은 여간 수고로운 게 아니지만 386세대가 이 부분만 좀 더 보강한다면 시대정신을 다시금 부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여하간 좌익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이렇게 행복하게 잘만 사는 나로서는 어르신들도 조금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는 외람된 생각을 품어봤다. 박정희에 보여준 너그러움의 절반을 386세대로 표상되는 민주화 세력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것은 은연중에 그네들에게 진 빚을 보답하는 작은 정성이기도 하다. 향수 속에 빠져 살기보다는 오늘날 만개한 가능성에 희망을 투자해주시는 게 더 밝고 재미날 것이다. 또 그것이 남이 아닌 자신의 머리로 궁리하는 길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얼마나 내 머리를 써서 살고 있는 걸까?


061102
본래 이번 한 주는 한자공부에 올인하고자 했다. 올인이 단순히 시간을 많이 투하한다는 의미라면 나는 올인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효율성(Efficiency)과 효과성(Effectiveness)을 포함한다면 좀 복잡해진다. 효율성이란 투입에 대한 산출의 비율을 말한다. 1시간 공부해서 200자 외우는 것보다 300자 외우는 게 더 효율적이다. 효과성이란 미리 설정해 놓은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느냐는 것이다. 산출물이 목표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다주는지를 파악하는 개념이다. 간단히 목표 달성률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효율성과 효과성이 함께 발현되면야 좋겠지만, 효율적으로 정책을 수행했음에도 효과가 낮은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가령 혼잡통행료 징수로 늘 막히던 A도로가 한산해졌다고 가정하자. 세수 증대도 되니 일견 효율성이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차들이 우회하여 B도로에 교통량이 집중된다면 교통량의 적절한 분산이라는 정책 목표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해 효과성은 낮을 수 있는 것이다.

여하간 내 한자 공부는 효율성이 너무 낮다. 시험 유형에 최적화하여 공부를 해도 모자랄 판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심화학습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취미생활 겸해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해도 기왕 시작한 거 자격증 획득을 주목표로 해야 하는데 합격가능성이 흐릿해서 그런지 오히려 샛길로 빠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국의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이 도입한 X-효율성 이론에 따르면 조직 운영의 효율성이나 개인의 열성이 경제적 성과의 차이에 더 크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흥이 나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면 X-효율성이 높고, 억지로 눈치 보며 일하면 X-비효율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라도 수험 공부의 취지를 벗어나 시험에 안 나올 부분에 천착한다면 X-효율성의 요건을 가지고도 X-비효율성을 발생시키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가령 고사성어 공부를 하는데 호기심을 못 이기고 고사성어의 출전을 찾아 헤매는 내 행태가 바로 기형적인(?) X-비효율성이다. 물론 효율성은 떨어져도 한자 공부의 깊이와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효과성은 제법 신장했다고 변명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목표가 한자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아닌 합격에 있다면 효과성도 ‘영 아니올시다’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한자 공부 이외의 영역에도 손을 뻗친다는 데 있다.^^; 가령 博而不精(박이부정)이라는 한자성어를 접했다고 하자. 여러 방면으로 널리 아나 정통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독서에 있어서 정독(精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양주동 선생님의 수필 『면학의 서』에는 다독(多讀)이냐 정독(精讀)을 논하며 “'박이정(博而精)' 석 자를 표어(標語)로 삼아야 하겠다”는 대목이 나온다. “'박(博)'과 '정(精)'은 차라리 변증법적(辨證法的)으로 통일되어야 할 것―아니, 우리는 양자(兩者)의 개념(槪念)을 궁극적(窮極的)으로 초극(超克)하여야 할 것”이라는 대목에 맞장구를 치다가 양주동 선생님의 다른 수필을 찾아보며 양주동 문체의 맛에 흠뻑 빠져버린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수필 가운데 인상 깊었던 김소운 선생님의 『피딴문답』을 찾아본다. 썩지도 않고 병아리가 되지도 않고 피딴으로 화생(化生)함의 교훈을 다시금 곱씹다가 정신이 번쩍 든다. 博而不精을 익히다가 30분이 지나버렸다. 맙소사!


061103
11월 3일은 1929년 광주지역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전국의 학생들이 독립운동을 한 지 77년이 되는 날이다. 올해부터는 ‘학생의 날’에서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명칭도 바뀌고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이로써 학생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밝히고, 제대로 기념할 수 있어서 반갑다. 문득 고등학교 교지편집부 시절 학교 축제 기간에 학생의 날의 의의 등을 묻는 앙케트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만 해도 유명무실한 날에 불과했는데 올해 명칭 변경과 국가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이 날의 정신을 되새기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3월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님이 발의한 학생인권법 개정안에는 체벌 금지, 두발 자유화 법제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법안을 면밀히 검토해보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의 권익을 보다 향상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별 학교와 선생님들의 재량을 줄이는 게 마냥 옳은 일은 아니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동감하는 수준의 내용이라면 법제화를 통해 학생들의 권익 보호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요즘 아침 전철을 타면 머리가 긴 중고등학생을 많이 볼 수 있다. 모범생 원리주의자(?)였던 나는 학창시절 내내 거의 2주에 한번 꼴로 머리를 잘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동안 단 한번도 지각을 안 하고, 단 한번도 두발검사에 걸리지 않는 게 모범생 원리주의자로서의 내 화려한(?) 이력이다. 다만 어이없게도 평소에 안하던 손톱 검사를 하는 바람에 허를 찔려서 용의 검사 무적발 신화는 깨졌지만 말이다.^^; 여하간 나는 지금도 머리 기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조금 길렀다 싶어도 싹둑싹둑 잘라버린다. 나처럼 머리 모습에는 무심한 녀석에게 머리를 기르라고 강요한다면 그것도 참 고역일 게다. 여하간 두발 자유화를 실시하는 학교가 늘어간다는 건 우리 사회의 미시적 진보의 하나로 받아들여도 좋을 거 같다. 개인의 자유 영역이 늘어나는 것이 진보의 요체가 아닌가. 머리카락 길이와 학업성취도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별로 있지도 않았지만 시도한다고 해도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혹시 두발 자유화로 인해 외모만 신경 쓰다가 학업을 소홀히 할까 염려하기 전에 자유에 대한 책임의식을 키우지 못한 우리 교육의 초라한 몰골을 돌아봐야 한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고 했으니 제발 강제 이발만은 하지 말자.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의 주고객(?)은 아니지만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더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학생, 시시한 실천을 게을리 하지 않는 학생이 되기를 다짐해본다.


061104
한국어문회에서 주관하는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을 쳤다. 이번에는 시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무던 애를 썼다. 가채점 결과 35개~40개 정도 틀린 걸로 예상된다. 200문제 가운데 80% 이상을 득점해야 하는 만큼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내 목표(?)였던 161개 맞아 합격하기에 거의 근접하긴 했다.^^; 이번에도 화려한 오답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胡蝶(호접)을 “호랑나비”로 풀이했는데 그냥 나비라고 써야 하는 건지 솔직히 몰랐다. “나비 접”자에 이미 나비의 뜻이 다 들어 있어서 무언가 수식어를 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장자의 호접몽이 호랑나비가 아닌 그냥 나비였다는 걸 잘 알면서 헛갈렸다. 푸하하~ 내가 채점위원이라면 안쓰러워하며 가위표를 할 거 같다.^^; 엎어진 수레바퀴라는 뜻으로, 앞서 가던 사람이 실패한 자취를 이르는 말인 복철(覆轍)은 앞사람의 교훈으로 풀이했다. 실패라는 말을 안 써서 틀렸다고 해도 변명할 거리는 없다. 매우 적은 분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호리(毫釐)는 정말 처음 보는 단어라 그냥 비워두려다가 작은 곳을 다스림이라는 나도 믿지 않는 답을 써넣었다.^^;

한자어 쓰기 문제는 내 나름대로 가장 정성을 들인 분야라 생각보다 틀린 게 적었다. 疏忽(소홀), 期數(기수), 煩雜(번잡) 정도만 확실히 틀렸고, 태반은 아직 가부를 모르겠다. “이 한자들의 태반은 신조 한자어의 약어이다”라는 부분인데 반수 이상이라는 뜻의 “태반(太半)”과 거의 절반이라는 뜻의 “태반(殆半)” 가운데 나는 전자인 太半을 썼는데 문맥을 볼 때 크게 틀린 거 같지는 않지만 어문회 시험은 문제와 답안을 공개하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어려운 문제가 많은 동음이의어 문제는 잔실수가 많았다. 公募(공모), 장사(壯士), 葬事(장사) 같이 아깝게 틀린 문제가 많았다. 한자어 쓰기 문제는 연습을 많이 했다 보니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응용할 생각은 안 하고 머리가 하얘지는 부작용이 나오지 뭔가.^^; 유의어 쓰기 문제도 역시 신유형의 향연이었는데 “銓( )”이라는 문제에서 “저울질할 전”이라는 단어 때문에 저울의 뜻을 가진 “秤”이라고 썼는데 “저울대 형”인 “衡”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입시 전형 등에서 쓰이는 전형은 됨됨이나 재능 따위를 가려 뽑는다는 뜻이니 이 정답에 기꺼이 승복한다. 彌縫策(미봉책)의 유의어인 姑息策(고식책)은 “姑”가 도무지 생각이 안나 “枯”라고 썼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고식지계에 대한 시험문제가 나왔을 때 틀린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도 또 틀렸다.^^; 姑에 시어미라는 뜻 말고 잠시, 조금동안이라는 뜻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정말 난생 처음 보는 단어가 있었는데 거동궤 서동문(車同軌 書同文)이 그것이다. 여러 지방의 수레의 너비를 같게 하고 글은 같은 글자를 쓰게 한다는 뜻으로, 천하가 통일된 상태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좋은 거 배운 거 같다. 사자성어 문제에는 예측 못한 어려운 성어들이 많이 나왔다. 목불식정(目不識丁)과 비슷한 뜻으로 어(魚) 자와 노(魯) 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어로불변(魚魯不辨)은 시험 시간 내내 떠오르지 않다가 시험을 마치고 근처 헌책방을 향하는 길에서 떠올랐다. 역시 산책은 두뇌 향상에 도움이 된다.^^; 소를 마주 대하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깊은 이치를 말해 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므로 아무 소용이 없다는 “대우탄금(對牛彈琴)”은 나중에 악용(?)할 소지가 있어서 너무 담아두고 있지는 말아야겠다.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이 눈이 녹으면 없어진다는 뜻으로 인생의 자취가 눈 녹듯이 사라져 무상함을 일컫는“설니홍조(雪泥鴻爪)”는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아쉽다. 초로(草露)와 같은 인생을 이렇게도 근사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다. 여하간 이런저런 오답들이 있었지만 이 참에 많이 배웠으니 설령 159개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다. 물론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시험 마치고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 다녀왔다가 청원이 등을 만나러 노원으로 향했다. 청원이가 하도 청해서 심야영화로 타짜를 봤다. 평경장의 명연기에 매료되었고 이제 내가 좋아하는 배우에 백윤식이라는 이름도 써넣어야 할 거 같다. 타짜가 말하고자 하는 건 결국 설니홍조(雪泥鴻爪)가 아니었을까.


061105
토요일 밤에 심야영화를 본 관계로 노원역부터 집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물귀신 작전으로 청원이를 하계역까지 함께 걷게 했다. 범여권의 정계개편 이야기가 좀 나왔는데 나는 행정학의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인 정치 행정 이원화 등에 대한 이야기로 한참을 에둘러 갔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간 뒤에 나는 여권내 통합신당파의 논리는 동서 구도 부활이 아니겠냐며 조심스레 말했다. 오늘자 프레시안에서 임경구 기자님은 “'DJ의 호남'과 '盧의 영남'이 충돌할 때”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영남 중심주의'와 '호남 우선주의' 간의 뿌리 깊은 반목을 진단했다. 나도 결국 생후 5개월 간 살았던 대구의 지세(?)에 눌려 영남 중심주의자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열린우리당의 창당 정신은 그만큼 아름다웠다. 우리당의 원내 1당은 단순히 탄핵 역풍에 그치기보다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극복을 내건 그네들의 희망에 적잖은 유권자가 꿈을 투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당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졸지에 이상과 명분에 집착하는 고루한 집단이 되어버렸지만 3년 만에 자신들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허무는 모습은 그리 떳떳하지 못하다. 한번쯤은 당 간판을 걸고 대선이나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정치 도의는커녕 홍익이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경영학도의 제1원칙 중의 하나”인 high risk, high return을 감내하지 못하고 칭얼거리는 꼴이다. 과연 “꼬마 우리당”으로 남아 마지막까지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달게 받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하기야 주인들 수준이 변변치 못한데 대리인들이 빼어나길 바라는 것도 너무 지나친 욕심일수도 있겠다.

노원역에서 집까지 걸으면 보통 걸음으로 50분 정도 걸리는 듯싶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을 실행하기 좋게 그냥 큰길가로 직진만 하면 된다. 다음날 일정 부담이 없다면 종종 이렇게 걸어다녀 봐야겠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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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0.23~06.10.29)

일기 2006. 10. 29. 21:07 |

061023
누리꾼들의 댓글은 날이 갈수록 저열해지는 거 같다. 일전에 나온 통계에 의하면 소수의 악플러들이 댓글을 도배한다고도 하지만 이쯤 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도 너무 심하다. 그래도 드물게나마 재치 있고 논리적인 댓글들이 있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있지만 말이다. 인터넷의 넓어진 저변이 고작 감정의 배설로만 점철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네 지식인들이나 지각 있는 학생들이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인터넷을 선용하도록 견인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양질의 지식을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더 늘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악플 비슷하게 험한 글을 쓴 적이 한 번 있었다(아마 내가 잊어버린 게 몇 번 더 있었을 게다). 최연희 의원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 떠오른다. 2004년에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이 한창일 때 당시 법사위원장이던 최연희는 끈질기게 의사진행을 지연시켰다. 나는 그의 직무유기에 무척 분개했던 모양이다. 최연희라는 인간이 얼마나 시시한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성추행 사건에서 드러났지만 그런 사람의 노력(?)으로 국보법이 좀 더 연명할 수 있게 된 건 화나는 일이다.

나는 최연희씨의 홈페이지에 국보법 폐지를 결코 막지 못하리라고 썼다. 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만이 북한의 폭압정권을 궁극적으로 이기는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아무리 의사봉을 희롱하더라도 인권국가로 가기 위한 흐름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사의 흐름은 일개인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구박했다. 그러자 아래에는 욕설이 섞인 댓글이 달렸다. 그 때는 시국도 시국이었고, 내 뜨거운 성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런 말을 내뱉었다. “누가 누굴 보고 개라고 그러는 건지... 고작 이런 수준의 아해들과 싸워야하니 도저히 질 수가 없구나” 한참 지나고 보니 좀 지나친 말을 한 게 아닌가 싶다. 2년 가까이 지난 옛일을 굳이 떠올리는 건 나 또한 그런 말을 하면서 마음이 편치 못했기 때문일 게다.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악플을 떠올리며 그 거칠음을 반성하면서도 그 때의 정신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나는 함부로 질 수도 없다.


061024
주간한국 [역사 속 여성이야기]란 연재물을 인터넷을 통해 죄다 찾아 읽었다. 처음 알게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 장애를 딛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줄여나갔던 헬렌 켈러, 낮은 사람보다 더 낮은 자세로 가난한 사람 가운데 더 가난한 사람을 찾았던 마더 테레사, 남성 중심의 그리스 사회에 이름을 남김으로써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힘의 원천이 된 대시인 사포, 한나라의 착취에 고통 받던 베트남 사람들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분연히 떨치기 일어나 투쟁한 쯩자매(徵姉妹), 탁월한 인재 등용과 기민한 외교전략으로 삼국통일의 초석을 닦은 선덕여왕, 나치즘의 광기에 저항했던 백장미단 활동을 통해 독일인의 마지막 양심이 된 소피 숄, 제 몸을 버려가며 어렵사리 성사시킨 연구를 조건 없이 개방한 마리 퀴리,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의 황태자비로서 존엄을 잃지 않았던 이방자 여사, 일개인의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했던 호방했던 정치가 클레오파트라 등의 이름들이 찬란하다.

이 밖에도 마가렛 생어, 송경령, 신사임당, 하쳅수트, 예카테리나, 엘리자베스 1세, 메리 스튜어트, 에바 페론, 아가사 크리스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나혜석,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등의 영욕이 스쳐 지나간다. 이 가운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여성은 레이디 고다이버다. 11세기 중엽 잉글랜드 중부의 중공업 도시 코벤트리 주민들은 영주 레오프리크 백작의 가렴주구에 시달렸다. 백작의 아내 고다이버가 남편에게 주민들의 세금을 줄여달라고 거듭 요청하자 남편은 당신이 대낮에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를 한 바퀴 돈다면 세금을 줄여주겠다고 제안한다. 정숙한 백작 부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고다이버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살신성인에 감동한 주민들은 그녀가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채 백마에 올라 마을을 돌 때까지 아무도 거리에 나와 이를 구경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양복재단사 톰이 마을 사람들의 합의를 어기고 커튼을 슬쩍 들추어 엿보려다가 눈이 멀었다는 “엿보는 톰(peeping Tom)”이라는 권선징악적 이야기가 전한다. 이 때 고다이버의 나이 열 여섯이었다고 하는데 유관순 열사나 잔다르크가 연상된다. 이처럼 관습과 상식을 깨는 행동을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고 일컫는데 유능하고 선량한 여성의 고다이버이즘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마더 테레사는 “우리가 하는 일은 넓은 바다의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바닷물은 그 한 방울만큼 모자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처럼 출중한 여성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소진시키지 말고 한 움큼씩 더 발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세상에서 남성이 조금 불편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불편함은 여성들이 누릴 편익에 비하면 적을 게 확실하다. 아! 고다이버! 매력적인 여성이여!


061025
지난 9월 처음처럼 전국 소주시장 점유율이 11.4%, 서울 시장 점유율 21.3%, 수도권 시장 점유율 18.3%을 기록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내 단기 목표인 수도권 시장 20%와 전국 시장 12%의 고지가 보인다. 이런저런 술자리에서 내가 부러 처음처럼을 시킨 게 100병은 될 터이니 나도 적잖은 기여를 한 게 아닌가 자화자찬하고 있다. 참이슬 99병이 나올 때 山소주 1병을 의연하게 비웠던 나였던지라 오히려 처음처럼의 지평이 넓어지니 예전 같이 스릴을 만끽하며 시킬 일은 없어졌다. 개인적으로 처음처럼 맛이 좋다고 말하지만 내가 섬세한 미각을 가진 것도 아니고 실상 거기서 거기고, 결국 심리적 요인이 크다. 처음에는 독점은 소비자 후생을 깎아먹는다는 경제원론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처음처럼 판촉(?)에 열을 올렸는데 요즘은 거의 처음처럼 전도사가 되 버린 듯하다.

문득 <시사저널> 사태가 떠올랐다. 금창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지난 6월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잡지가 나온 뒤 기사가 빠진 것을 알게 된 이윤삼 국장은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내자 금 사장은 이를 즉시 수리했고 뒤이은 기자들의 항의에 무더기 징계로 대응했다. 기자가 고작 27명에 지나지 않는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이번 사태로 경징계 이상을 받은 기자가 무려 17명에 이른다고 한다. 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든, 경영진이 알아서 긴 것이든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언론”이라는 모토를 가진 <시사저널>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사건이다. 아! 시사저널마저 자유를 포기한다면 이 땅은 그만큼 어두워질 게다.

왈쩌(M. Walzer)는 경제 영역의 고유 가치인 부는 경제 영역에, 정치 영역의 고유 가치인 권력은 정치 영역에 머물 때 사회적 평등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즉 하나의 가치가 그 영역 안에서 머무를 때 다원적 평등이라는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왈쩌가 가장 우려한 것은 경제 영역에 머물러야 할 돈이 다른 영역을 장악하는 현상이다. 양식 있는 저널리즘이 자본에 포섭되는 광경을 보는 건 그래서 더 아프다. 왈쩌는 사회적 가치가 독점되는 현상을 전제(tyranny)라고 부르며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자꾸만 늘어가는 이 땅에서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우리네 천민 자본주의는 그칠 줄 몰라서 탈이다.

나는 처음처럼을 지지하듯 시사저널 편집국을 지지한다. 독점은 대개의 경우 악이다. 앞으로도 사회적 가치의 ‘부당한’ 혹은  ‘압도적’  독점에 반대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061026
10.25 재보선에서 전패한 열린우리당이 재창당을 운운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의 “무슨 殘黨잔당 비슷한 분위기”라는 말도 아프지 않다. 당최 한국 정당사에 집권여당이 이렇게 국민들에게 버림받은 사례가 있을까. 아니 세계 다른 나라에서 이런 사례가 있을까 싶다. 불과 3년 전 “100년 동안 집권할 정당을 만들자”고 외치던 이들이 실패를 자인하고 있다. 그간 입만 열면 반성한다고 했으니 더 이상 반성거리를 찾기도 힘들겠다. 기껏 내어놓는 해결책이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오만가지 잡탕 연대다. 딴에는 민주개혁통합이니 중도실용통합이니 평화번영세력이니 하지만 결국 지금 누리고 있는 권력의 달콤함을 연장하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정당정치를 개혁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당이 이념과 정책을 포기하고 다시금 구태로 투항하는 모습이 씁쓸하다.

혹시 열린우리당 관계자들과 참여정부 인사들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이 하는 일은 다 싫다, 설령 좋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이 대신 했으면 좋겠다는 인식이 퍼진 것은 죄 이상의 벌을 받는 것이라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상층부에서 당신네들이 누렸을 자유와 혜택을 생각하면 그 리스크는 마땅히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작금의 마녀사냥이 마냥 옳다는 것은 아니다. 정서적 반발도 유권자의 권리지만 그것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카타르시스만 생산한다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그다지 보탬이 될 거 같지 않다. 때 되면 이합집산을 일삼는 낙후된 한국 정당정치를 목도하는 건 여러모로 짜증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마냥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이 사회의 주인들은 자신의 대리인을 고를 때 좀 더 냉철한 이성의 체와 섬세한 윤리의 체를 이용해야 한다. 민주공화국 수준은 국민 수준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진중권 선생님은 “우리 사회의 희망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야 원칙을 지키며,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는 그 사람들에게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희망의 질만큼이나 양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의 승리지상주의는 수권정당에게는 필요악이다. 이는 자신들이 품은 희망을 실현할 힘을 일정 기간 부여받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원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최소한의 의리와 명분도 없이 그간 품었던 희망마저 헝클어뜨리는 형국이다. 열린우리당의 퇴장이 어떤 식이 될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그들이 내걸었던 헌걸 찬 창당 초심에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 정당에 꿈을 투자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적어도 옛 지지자들이나마 열린우리당의 조종(弔鐘)이 마음 짠해지게 만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3년 전 열린우리당의 등장을 그 누구보다 반겼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드리는 마지막 고언이다.

머잖아 어떤 배반과 반동이 횡행할지 몰라도 가슴 한 구석에 훈훈한 추억이 남는다면 좀 더 잘 버텨낼 수 있을 텐데.


061027
훈석이에게

간만에 찾아간 네 블로그에서 지난 지방선거 끝나고 쓴 글을 발견했다. 너는 한나라당이 “국내 유일의 보수정당”이 되었다고 정리했어. 열린우리당은 “포지셔닝 실패”로 말미암아 “60%에 해당하는 보수표를 전부 한나라에 넘겨 주었다”고 평했고. 나는 포지셔닝의 패착이라는 진단에 거개 동감한다. 사실 열린우리당이 내건 정치개혁이나 지역주의 타파 같은 구호에서 특별히 어떤 이념적 함의를 읽기는 힘드니까. 다만 4대 개혁입법 등을 통해 개혁적 색채를 생색이나마 내려고 부단 애썼음을 알 수 있지. 그나마 가장 빼어난 보수정당이 될만했던 우리당은 의회권력을 쟁취하고서도 오락가락 행보를 선보이며 숱한 이들의 실망을 자아냈어. 나는 지금 우리당의 실덕을 변명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나라당에게 보수정당이라는 칭호를 선사해도 될 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이 땅에 보수를 참칭하는 세력의 상당수가 기실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세련된 논리를 개발하는데 열중해왔다면, 한나라당의 수준은 아직 거기서 머무르고 있지 않을까. 제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키는’ 보수에 이 정당은 얼마나 모자란가. 또한 한나라당의 철벽(?) 지지율의 상당수가 내부 혁신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지역주의 정서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도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 2002년, 2006년 지방선거 광역의원 정당 비례대표 득표율을 살펴보면 한나라당은 2002년 52.1%, 2006년 53.8% 득표로 1.7%P 증가에 그쳤다고 해. 2006년 우리당과 민주당의 득표율을 합치면 2002년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이 얻은 29.1%보다 2.4%P 높은 31.5%가 되고.

뭐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지금 한나라당이 누리는 위세가 우리당과 민주당이 분할로 인한 어부지리임은 간단한 산수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거 같다. 다만 이렇게 충분히 예측 가능한 분당의 리스크를 감수하는 용기를 가지고 우리당 창당에 나선 인물들이 창당 초심을 지켜내지 못한 건 안타까운 일이지. 나는 이 대목에서 퇴행적 지역연합이 다시 꿈틀거릴까봐 불안하다. 다시금 지역에 기반한 정치가 횡행할 때 우리당이 꾸었던 아름다운 꿈이 무참하게 사그라지는 걸 보는 건 참 아플 거 같다. 우리당의 지도자들이 제 지지자들보다 끈기가 부족했다는 게 심원한 비극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어.^^;

나는 마지막으로 이 땅의 주인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하지만 고문기술자 정 아무개를 70% 이상의 지지율로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놓고도 민망함을 모르는 유권자들이 늘어갈 때, 부인의 공천헌금 수수가 드러나자 의원직 사퇴를 운운하던 김 아무개가 슬그머니 국정감사에 참여하고 있는 걸 너그럽게 넘어가는 유권자들이 늘어갈 때 국민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욕하는 정치꾼들에게 다시금 모욕을 당할 게 틀림없다. 한참을 에둘러서 말했지만 “국내 유일의 보수정당”이라는 네 표현은 좀 지나쳤다. 보수라는 칭호는 그렇게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거 같다. 언제쯤 진짜 보수에게 나라살림을 맡겨놓고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을까. 유학생활 건승을 빈다.


061028
열린우리당의 황혼에 대한 분석이 어지럽게 나오고 있는 요 며칠간 그간 부러 외면하던 보수와 진보에 대한 담론들을 찾아 읽어봤다. 훈석이와의 온라인 상에서의 논쟁을 통해 나는 “보수적 유권자”의 상당수는 수구기득권에 포섭된,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지배계급의 이익에 찬동하는 이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우겼다. 나는 친구보다 보수라는 개념을 조금 더 엄격히 적용했다. 이 땅의 자칭 보수들은 공동체의식이나 사회적 책임 의식도 박약하고, 자유와 인권에 대한 애호도 철저하지 못하다. 더군다나 일본 우익처럼 군사적 자주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자기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남에 대한 험담이나 늘어놓으며 약자에게 매서운 주먹을 휘두르는 이들에게 “보수”라는 칭호를 선사해도 될지 주저된다. 나는 한나라당에게 보수라는 칭호를 주기를 주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유권자들에게 보수라는 칭호를 빼앗기기가 싫다고 말했다. 나는 친구가 “보수”라는 말을 조금 아끼고 누군가에게 건넬 때 머뭇거렸으면 좋겠다고 투정 부렸다.

역사는 그래도 조금씩 진보한다고 믿는 사람에게 종종 찾아오는 역사의 돌아감은 고통스럽다. 결국에는 좀 더 인간적인 사회, 좀 더 인간성이 고양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을 믿지만 그 에둘러서 가는 시기를 감내하기는 여간 따갑다. 그것은 사람의 삶이 단 한번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평생 씨만 뿌리고 수확의 즐거움은 거두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해야 한다면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아무리 점진적인 개혁이 좋지만 적어도 한 시대에게 파종의 의무만 부여하는 사회는 옳지 않다. 그런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 자라는 진보는 그리 튼실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시대정신은 파종의 의무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부패하나 유능한 보수, 깨끗하나 무능한 진보’라는 말은 어폐가 심하다. 우리 사회는 부패하면서 무능하기까지 한 보수에게 시달려 왔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보다는 인간의 경험과 지혜가 축적된 역사에서 배우려는 보수는 점진적인 방법론으로 말미암아 덜 개혁적으로 비춰지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보수주의는 변해서 안 될 것을 지키면서 필요한 변화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그 속도가 조금 느릴지 모르겠으나 갈등비용을 상쇄해나간다는 점에서 더 현실적합적인 개혁이 될 여지도 충만하다. 박호성 서강대 교수님 말씀대로 개혁은 진보적 개혁과 보수적 개혁으로 나눌 수 있다. 보수적 개혁정권인 참여정부나 이를 물어뜯는 세력 모두 그다지 보수 개혁에 유능하지 못했다.

진보가 제시한 어젠다에 반대하기 급급한 보수, 시장만능 외에는 다른 대안을 부지런히 검토하지 않는 보수, 평등이란 요소를 자본주의적 토대에 결합시키려는 가능성을 모색하지 않는 보수,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처한 제약을 생각하고 그네들의 자유를 신장시킬 방안을 고심하지 않는 보수라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수구기득권 세력과 유사 파시즘 세력이 보수를 참칭하며 활보하는 걸 헤프게 받아들이는 보수는 제 고매한 이상을 내던진 굴종에 지나지 않는다.

어제 칭다오맥주와 이과두주를 먹길 잘했다. 덕분에 스트레스가 좀 풀린 거 같다.^^;


061029
한국어문회에서 주관한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 시험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지난 7월 고배를 마시며 한 번만 더 도전해보겠다고 했는데 벌써 덜컥 시험이 다가왔다. 공부량이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배울 거리도 적잖은지라 집중하지 못했다. 시험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그건 바로 벼락치기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남은 닷새가 지나면 당분간 한자 공부를 할 짬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한자를 벼락치기한다는 게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예의는 다하는 것, 그것이 나다운 것일 게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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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0.16~06.10.22)

일기 2006. 10. 22. 22:19 |

061016
소은, 재호와 함께 연정이의 졸업전시회를 다녀왔다. 동양화에 대한 나의 고정된 틀이 깨어지는 문화적 충격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사군자에다가 수묵담채화의 향연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동서양의 통합을 체험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연정이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재료 같은 것들이 동양화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화가 대세인 서양화에 비해 동양화 특유의 맛 같은 게 느껴졌다.

나는 고흐의 자화상을 수묵으로 다시 그려낸 서민정님의 [고흐 씨?]를 잘 만든 작품 같다며 추켜세웠다. 또한 같은 작가의 작품인 악수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악수공화국]에서 “악수는 얼마나 긍정적이고 따뜻한가. 또 얼마나 비굴하고 너저분한가. 그래서 악수를 잘하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가”라는 도록에 실린 설명이 와 닿았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김해림님의 [일상-흐름]은 동양화의 색감이 아찔하게 다가왔다. 덜 무섭게 그리기 위해 애쓰셨다고는 하지만 송승희님의 [할 수만 있다면]은 제 심장을 덜어내 보이는 장면에서 절실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로를 재창조한 김동훈님의 [Neo_天象列次分野地圖Ⅱ]는 내 취향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들의 주인공 연정이의 작품은 “나”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나만 생각하고 끊임없이 채우고 싶지만 너와 함께 더불어 비우고 살아가고자 한다”는 작품 설명이 한참을 입에서 맴돈다. 장지 위에 채색한 탈춤 추는 사람, 순지 위에 수묵담채한 탈춤 추는 사람, 작은 탈들을 이어 붙여 다양한 표정을 연출한 작품까지 세 점의 작품을 한참을 감상했다. 탈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지만 나는 거기서 환희를 읽었다. 현대 미술하면 멜랑콜리와 데카당스가 언뜻 연상되지만 나는 이 젊은 가능성들이 좀 더 희망과 낙관을 말했으면 좋겠다. 여하간 연정이가 졸업전시회 준비한다고 바쁘다고 했을 때 너무 바쁜 척한다고 투덜거렸던 내 자신이 민망해졌다. 대학 4년간 이렇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 참 복된 일이다. 물론 이렇게 작품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물이 나와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친구의 정성어린 전시회를 보며 내 자신이 더 초라해져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너무 칭찬만 한 거 같아 부러 험담을 하자면 문인화 같은데서 볼 수 있는 시서화(詩書畵)가 겸비된 작품을 만나기가 힘들어서 살짝 아쉬웠다(어쩌면 그건 기본으로 갖추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특별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드물기 때문에 조금 더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고리타분한 걸 고집하는 답답한 사람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가. 나오면서 방명록에 최순우 선생님 선집 제목인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를 썼다. 내 나름의 안목과 잣대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것에는 마음을 아낌없이 내어놓을 줄 아는 여유도 있고, 추한 것을 미워하되 그 배경을 헤집는 여유도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채로운 동양화의 빛깔을 통해 내 미적 지평을 넓혀주신 고려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전공 졸업자 여러분들께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061017
어제 연정이 졸업전시회 끝나고 처음으로 가본 무아의 회국수는 달콤했다. 차나 한 잔 하자고 했지만 나는 부득이 함께 하지 못했다. 광호형님, 을광형님께서 뜻을 모으시고 나와 지현이가 껴서 경선, 종관이 입대 환송회를 조촐하게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약속이 겹치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하지만 놀기 좋은 날은 대개 엇비슷하기 마련이라 취사선택을 하거나 겹치기 출연을 하거나 할 수밖에 없다. 책임지지 못할 사람 욕심 때문에 한 모임에 충실하기 보다는 두 모임에 겹치기 출연을 한 경우가 조금 더 많았던 거 같다. 어떤 모임을 조금 일찍 나서는 대신, 혹은 조금 늦는 대신 앉아 있는 동안 알차고 재미나게 담소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하간 시험기간과 관계 없는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해서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술자리에서 으레 등장하는 진솔한 이야기는 사람 사이의 유대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나는 평소에도 글과 말을 통해 내 속내를 제법 많이 밝히는 편이라 특별히 더 드러낼 이야기가 없기 일쑤다. 혹여 내가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 녀석이라고 비춰진다면 내 표현력의 부족과 더불어 투명해질수록 탁해지는 아이러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령 내 대외홍보용 장래희망이 “국무회의 구성원”이라든가 하는 걸 나는 부러 숨긴 적이 없는데 말이다. 나는 내 둘레 사람들이 나를 대강 관찰한다면 어느 정도 언행이 예측 가능할 수 있게 자리매김하고 싶다. 날마다 성장하면서도 늘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탐욕인지도 모르겠다.

4차로 중앙광장을 향하는 길에 정환형과 재연이를 간만에 만나 잠깐 자리를 함께 가졌다. 새벽 2시까지 이어진 자리에 나는 함께 한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못한 거 같지만, 함께 한 사람들은 나를 기쁘게 해줬다. 광호형님이 말씀하신대로 정말 머지않은 훗날 동창회 형식을 빌려서라도 이 인연을 유지해나가고 싶다. 그 때 내가 미력이나마 도울 게 있는지도 찾아봐야겠다. 내 술버릇 가운데 하나는 모임을 가진 사람들이 귀가를 잘했는지 확인하는 거다. 요즘은 문자가 잘 안 보내지는 관계로 한 사람 한 사람 전화를 걸어 내 무사 귀가를 알리고 무사 귀가를 기원했다.

2차 천하객잔에서 마셨던 공부가주(孔府家酒)는 도수는 얼마 안 되었지만 후폭풍은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조신하게 지내는 건 너에겐 이룰 수 없는 꿈같은 걸?”이라는 소은이 문자가 뜨끔했다. 그나저나 종관이 환송 섞어주에 금붕어를 넣겠다는 계획을 말려야 할지 먼발치서 발만 동동 구를지 고민이다. 작년 8월경 나는 섞어주가 너무 갑자기 사라질까봐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석 달간은 유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는데 섞어주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역시 관성을 깨는 게 무너진 관성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 횡설수설을 보면 현식이가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논다고 구박할 듯싶다.


061018

나의 모교 서울외국어고등학교가 종교 집회를 개최해 학생들을 참석시키는 등 미션스쿨(개신교계 학교)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지난 9월 서울외고는 전일제 CA 활동 대신, 1, 2학년 학생들을 모두 강당에 불러들여 서울 S교회 김 모 목사의 종교집회에 참석토록 했다. 여기서 학생들을 위해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겠다면서 ‘사탄’ ‘미신’ ‘무교’ 등의 문구가 써진 송판을 격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강연 중간 중간에 하나님께 기도를 하라며 예배를 강요하기도 했단다. 김 모 교장이 “이 강연은 대 서울외고가 미션스쿨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라고 발언했다니 점입가경이다. 뿐만 아니라 연초 기간제 교사 초빙 공고 때는 신앙경력을 기재하라는 교사 채용 지원서 양식을 만들었다고 하니 이래저래 강한 의구심이 든다.

서울외고는 1994년 개교한 이래 이제 13년에 지나지 않은 짧은 역사지만 적잖은 이들이 거쳐 갔고 많은 추억과 가르침을 안고 사회로 나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짠한 그리움일 서울외고를 제 멋대로 바꾸려는 이들이 밉다. 지난 12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개정 사학법을 따를 경우 설립 취지에 맞는 종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개연성이 커진다는 측면에서 헌법 제20조 제1, 2항의 종교의 자유 등을 위배하여 위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정 사학법과 서울외고 사태 가운데 무엇이 더 위헌의 소지가 클까? 그 답은 비교적 또렷하다. 가장 낮은 이들과 벗했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기는 이들이 누구인가. 절대 약자인 학생들을 상대로 저열한 종교 장사를 벌이는 이들이 누구인가. 이런 강압으로 자신의 어린 양이 느는 것을 반기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차라리 대한민국 헌법을 더 애호하겠다. 서울외고 미션스쿨 전환을 반대한다.


061019
경영B반 웹진에 객원기자로 활동하며 한글 자음 ㄱㄴㄷ을 열쇠말(키워드)로 하는 시 감상 연재물을 총 14부작, 10개월만에 탈고했다. 얼렁뚱땅 시읽기 마지막 글을 올리니 글빚을 갚느라 노심초사했던 지난 기억들이 떠오른다. 처음의 호기로움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그런 시시한 글들만 쓰고 말았지만 내 졸고를 버리지 않고 이렇게 끝을 보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성과물이 하잘 것 없어도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애틋한 법이니까. 열 줄 짜리 글이라 순식간에 쓸 거 같아도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고 갈고 닦았다. 많이 걸릴 때는 서너 시간동안 작업하기도 했는데, 그런 시간 들이고서도 고작 이런 글밖에 못 쓰는 게 민망하다.^^;

가을가뭄 때문에 제대로 단풍도 들지 못하고 말라버린 나뭇잎 마냥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재주가 부족해 더 좋은 글을 쓰지 못해 미안하다. 윤동주 시인은 「쉽게 쓰여진 시」에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지만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시를 너무 쉽게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허술한 글에 화사한 옷을 입혀준 레이아웃팀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WE飛ZINE 여러분은 내 희망의 원천이며, 오래도록 함께 걷고 싶은 동반자다. 황금들판 같은 우리네 인연 오래도록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이제 객원기자 딱지를 떼고 정식기자 시켜달라고 졸라봐야겠다.


061020

섞어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어제 환송회 자리에서 다들 즐거우셨죠? 저도 간만에 처음처럼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어요. 제 나름대로 준비해본 야심 찬 아이템이었던 붕어빵과 더불어 들어간 새우젓, 브로콜리 등으로 말미암아 섞어주가 거의 해물샐러드 수준이 되었던 거 같아요. 아마 또 다시 섞어주가 존폐의 논란에 쌓이겠구나 싶습니다. 작년 8월경 저는 섞어주가 너무 갑자기 사라질까봐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석 달간은 유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는데 격세지감이 밀려오네요.^^;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개인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자리를 빠져 나온 거 같아 죄송스럽지만 이게 다 조금 덜 놀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음을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집에 와서 제 디카를 확인해보니 엄청난 양의 사진이 있더군요. 용철이가 부지런히 도촬한 건데 정말 이 사진을 공개해야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다들 도촬에 대한 대비가 별로 되어 있지 못한 모습이었어요. 저작권자인 용철이와 상의해서 선별하던지 해야겠습니다. 쿨럭

이역만리 미국에서 섞어주에 파워에이드를 꼭 좀 넣어달라고 제안해주신 혜진누나, 저만 보면 술을 주고 싶어하시는 헌조형, 이제야 정식으로 인사 나누고 친해질 날만 남은 지호, 후배 환송회를 위해 귀한 외박을 써가며 굳이 새우젓을 들고 와 섞어주 바다 버전에 일조한 성구, 환송회 극초반에 바람처럼 사라져서 아쉬웠던 영걸, 간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나서 반가웠던 패창, 결국 술을 약간 마셔버린 기민, 돈 걷느라 고생한 지수와 준웅, 섞어주를 고운 손을 넣어 휘젓던 준수, 제 잡설을 듣느라 고생했을 용휘, 그리고 저와 함께 처음처럼 술동무가 되어주신 많은 분들, 무엇보다도 짜디짠 섞어주에도 생존해준 종관이까지... 모두 고마웠습니다.^-^

-  종관이 환송회 다녀와서 쓴 <섞어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어제>  中


061021

나는 북핵을 저지하기 위한 비협상전략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북핵 불용(不容) 원칙에 위배될 경우 어떠한 형식의 남북 교류도 전면 중단하는 방안을 법제화하는 것을 검토하자는 거다. 이러한 비협상전략은 햇볕정책과 얼마든지 조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래야만 햇볕정책의 실효성을 더 확보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06학번 후배 하나가 어떠한 협상도 거부하게 된다면 이는 햇볕 정책과도 상충관계를 이룬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좀 더 정교한 논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이재석님의 지적대로 북한을 비난하는 게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아무런 효용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반북적(?) 발언은 좀 자제해야겠다.^^;

여하간 모든 정치인들이 몸 사리고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을 때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나 김대중 전대통령님 같은 분들이 소신 있는 행보를 하는 건 기꺼운 일이다. 특히 현실 정치적 관점에서 손해볼 여지가 많아 보이는 일에 투신하는 김근태님의 행보는 이채롭다. 이런 정치인이 있다는 게 반가우면서 한 편으로는 너무 적다는 게 슬프다. 김근태님이 개성공단 방문했다가 식당에서 춤은 춘 게 화제다. 점심 식사자리에서 북한측의 거듭된 요청으로 율동을 좀 한 거 가지고 광란의 춤판 운운하는 게 섬뜩하다. 얼마 전 음주가무를 즐기다 여기자를 성추행한 모씨나 술좌석에서 오징어로 경비원 뺨을 때리거나 술병을 집어던지던 모당 의원들이 떠오르고 이런 걸로 시비를 거는 한국 정치의 낙후성을 새삼 탄식하게 된다.

그나저나 송영선, 공성진 의원이 내년쯤에 해병대를 원산에 상륙시키자는 발언을 했다고 하는데 전쟁을 농담 삼아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러모로 불안하다. 두 사람은 국정감사 피감기관인 해병대 사령부에서 평일에 골프를 쳐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보니 발언의 진솔함이 많이 떨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평화통일이 우리의 목표라면 그 수단도 마땅히 평화적이어야 한다. 조금씩이나마 남북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낮춰 가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남북 간 평화적 군축을 실행해 나가는 것이 여전히 유효한, 앞으로도 추진해야할 통일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핵 같은 중차대한 사안에서는 타협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게 내 소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차 강조했듯이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지를 줄일뿐더러 국제적으로도 시비 걸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가슴으로 애국질을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태에 차가운 머리로 애국을 궁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061022

4년 반만에 토익시험을 봤다. 나는 대학 새내기 시절 토익 시험을 두 번 접수했는데 두 번 다 전날 술을 마셨다. 한 번은 결국 못 갔고, 다른 한 번도 그리 맑은 모습으로 시험을 치르지는 못했다. 그 후 내 공부도 부족했고, 인연이 닿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뤘다. 이제 더 이상 미루기 힘들어서 토익 시험을 당분간 계속 볼 듯싶다. 행시 1차 시험 응시 요건은 700점, 대학 졸업 요건은 780점이니 당분간 그 점수를 넘기 위해 애쓸 참이다. 나는 영어 공부를 그리 많이 하고 싶지 않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최소 기준만 채우고 다른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최소 영어 공부에 밀도가 있다면 그리 나쁘게 볼 일도 아니다.^^;

오후에 뉴스 검색을 하니 최규하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나온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기간이 8개월로 짧았음에도 그 기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1979년 12.12 사태와 이듬해 벌어진 광주 5.18 민주항쟁의 진상에 끝끝내 함구했다. 어느 책제목대로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라고 묻고 싶다. 최규하 일개인의 청렴함과 영민함은 준엄한 역사의 과오에 빛이 바랬다. 그는 비굴했고 시대정신을 외면했다. 그 자신의 문약함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그는 국가 최고권력자로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조금이라도 진전시키는 과업을 수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부지런했던 인물에게 험담을 늘어놓는 건 민망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는 나 같은 이의 볼멘 소리를 들어도 그리 섭섭해하지는 못할 거 같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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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0.09~06.10.15)

일기 2006. 10. 16. 02:23 |

061009
북한이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건 희망이 아닌 절망일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김정일 일당의 영속적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몰상식과 파렴치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오기로 느껴진다. 아울러 그간 북한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민족 공조는 허울뿐인 거짓이었음이 또렷해졌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김정일 일당의 행패로 말미암아 대북 포용정책이 철저히 실패했다는 반응이 봇물 터지듯 나올까봐 걱정스럽다. 당분간 남북한 냉전세력들의 추잡한 상부상조를 보는 것도 고역일 게다.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재미에 사는 이들의 몽니는 북한 인민을 내 나라 사람처럼 아끼고 보듬으려 한 이들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가 될 것이다. 대뇌피질을 상실한 전쟁광들은 대한민국이 그간 갈고 닦은 진정한 힘을 이제 똑똑히 보길 바란다. 이 사태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풀어내는 가는 우리 사회의 역량에 달려 있다. 지나친 호들갑은 금물이다.


061010
어제 북핵 실험 때문에 한글날에 너무 험악한 말을 내뱉은 거 같아 하루 종일 후회스러웠다. 차분한 대응을 하자면서 정작 내 자신이 그다지 침착하지 못했다. 여하간 어제(9일)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가 공군 전산특기병으로 입대하셨다. 개인적으로 프로토스 팬인지라 임 선수에게 죽어 나간 숱한 프로토스 유저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많이 본 연유로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가 최연성 선수와의 스타리그 결승전 때 석패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릴 때 나는 그의 눈물이 헤픈 행동이었다고 얄미운 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가 오영종 선수와의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석패했을 때 환하게 웃으며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 때 나는 내 옹졸함에 고개를 떨궜다. 수명이 짧은 이스포츠 세계에서 만 7년째 버텨온 것은 그가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영민한 인물임을 말해준다. 병역특례를 주자는 여론에 기대어 볼만한데도 그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임요환 같은 인물이 병역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멋지다. 그러나 임 선수가 총 대신 마우스를 계속 잡을 수 있는, 징병제가 사라진 나라가 훨씬 더 멋질 것이다. 아무쪼록 요환형님이 늘 건승하시길 바란다.


061011
옆 사무실의 상근병 동생이 전역을 했다. 나는 축하를 하면서도 아직 10개월이나 남은 나의 군역을 헤아리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문득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꺼워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 됨을 기뻐함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진짜배기 축하는 참 어렵다. 남의 성공을 축하하기 이전에 나의 안일과 나태를 질책하기 바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나태에 대한 벌로서는, 자기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 이외에 타인의 성공이 있다”는 소설가 르나르의 말에 공감한다. 

정신의학자 아들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열등하게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To be a human being means to feel oneself inferior)”고 주장한다. 내가 곧잘 쓰는 표현인 ‘조바심은 나의 힘’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인 것 같다. 자기반성이 아무리 따갑더라도 지인의 경사를 가슴 깊이 반길 일이다. 운 좋게도 축하 받는 입장이 될 때에는 진심 어린 축하를 받지 못할까 염려해야겠다. 우리가 남의 잘됨을 내 일처럼 기뻐하는 건 단순히 성과 자체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의 신실함과, 이에 비추어 기대하는 더 나은 모습에서 찬사를 보낸다.


061012
신자유주의에 대한 탐구를 좀 더 하고 싶어졌다. 나는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자유주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니 순서를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탐구라고 거창히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대세적 분위기에 대한 차분한 검토 정도라고 칭하면 될 듯 하다. 적어도 “냉전적 수구세력의 집권을 저지하자”거나 “좌파들의 농단에서 나라를 구하자”라는 구호보다는 세금을 얼마나 더 걷고, FTA는 어떻게 할 것이냐 같은 논의가 좀 더 유익할 거 같다. 신자유주의를 마냥 증오하는 건 너무 단순해서 재미가 없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신자유주의도 여러 겹일 테니 말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데도 살기가 더 팍팍해지는 것에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처지에 놓인 최소수혜자들이 최소한의 고통을 겪는 수준에서 신자유주의적 기법과 양식을 체화하는 것이 이 난국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여러 겹이듯 그 대응 방안도 여러 겹일 테니 함부로 속단하지는 말자.


061013
게임이론은 사람이나 기업의 상호작용을 해석하려는 데서 시작된 학문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행동에 상대방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적인 선택을 수학적으로 분석한다. 게임이론에 관심은 많은데 조금만 깊이 들어가려고 하면 알쏭달쏭 수학 세상이 펼쳐져서 나를 안타깝게 만든다. 게임이론이 언뜻 보면 비정해 보여도 인간사의 냉혹함을 가능한 한 반영해 이론의 현실적합성을 높였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게임이론을 현실 상황에 적용시켜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아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머스 셸링은 납치범과의 극단적인 협상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는 공약(Commitment)을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더욱 좁게 만들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헌법에는 비행기 납치범과 협상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공약은 상대방의 선택 폭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스라엘의 비협상정책은 비행기 납치로부터 기대되는 이득을 제거함으로써 납치 실익을 0에 가깝게 만들어 버린다.

정부가 스스로 재량을 0으로 수축시킴(행정법 용어를 따왔다)으로써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방안을 남북관계에도 적용해보자. 북핵 불용(不容) 원칙에 위배될 경우 어떠한 형식의 남북 교류도 전면 중단하는 방안을 법제화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 한반도 생민들을 볼모 삼으려는 시도에는 사정 판단, 정상 참작의 여지없이 법대로 처리해버리는 셈이다. 이러한 비협상전략은 햇볕정책과 얼마든지 조화될 수 있다. 북한의 핵개발이 대한민국의 ‘결정적 이익(vital interest)’을 심대하게 침해할 때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 햇볕정책을 훼손할 것 같지는 않다.

그나저나 요 며칠 모기가 부쩍 늘어서 다섯 마리는 잡은 거 같다. 미물을 살생하는 데도 가끔은 마음이 아픈데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장사를 하려는 자들이 너무 얄밉다.


061014

승현(섭), 승현(정), 현식이와 간만에 만나 담소를 나눴다. 나는 이번 주에 공부한 거시경제학 상식들을 꺼내 놓으면서 우리나라 실업률이 상당부분 과소 계상되어 있음을 역설했다. 고용시장이 불안정한 건 우리 사회의 큰 짐이 될 공산이 크다.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사회는 힘들더라도 평생고용을 달성하는 사회는 만들어 내야하지 않을까 싶다. 두 단어는 거의 비슷한 뜻이지만 종신고용이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한다는 개념이라면 평생고용은 직장을 몇 번 옮기더라도 일할 나이까지는 계속 밥벌이를 해나갈 수 있다는 개념이다. 여하간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는 남들이 힘들게 포장까지 다 해놓은 사탕을 얄밉게 홀라당 까먹는 사회 지도층을 통박했다.

승현(정)은 보다 더 적절한 밤의 비유를 들어줬다. 밤송이를 애써 까놓고, 심지어 깎아놓기까지 했는데 슬쩍 챙기는 사람이라니 모두들 정말 밉살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레몬시장(lemon market)이나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처럼 경제학 용어 가운데 재미난 비유가 많은데 “밤알 빼먹는 사람(chestnut thief)”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놓고 자화자찬에 빠졌다. chestnut thief가 생산성이 낮은 태만한 노동자라는 가리키기보다는 무능한 정치인 같은 사회 지도층을 주 타깃으로 한다. 좀 더 문제의식을 확장해서 chestnut thief가 사회후생에 어떠한 손실을 입히는지에 대한 좀 더 체계화된 정리를 해보면 재미날 거 같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억상실증은 밤알 빼먹는 사람에게 너그러워서 그네들이 또 밤을 빼앗게 만든다.


061015

김경수, 박대근 교수님이 지은 거시경제학 책을 일주일에 걸쳐서 통독했다.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고, 복잡한 수식들은 적당히 건너 띄었지만 그래도 거시경제학의 기초를 훑어봐서 뿌듯하다. 거시경제학은 소비자와 기업의 경제활동, 물가, 금리, 대외수지 및 환율 및 각종 경제정책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흔히 경제학을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고 부르지만 본래 그 별명이 붙여진 배경과는 다른 이유로 경제학 공부를 하는 내내 조금은 우울했다. 복잡한 수식을 맞닥뜨릴 때나, 참신하고 아름다운 이론들을 접할 때면 내 모자란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동전의 양면과 같은 알쏭달쏭한 이야기가 현란하게 펼쳐지고 케인즈학파와 고전학파의 건곤일척도 흥미롭다. 얼마나 더 많은 공부를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거시경제학은 두고두고 내 지적 원천으로 벗삼고 싶다. 내가 보기에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안정성의 부족이다. 멀쩡한 직장인이 실직을 하는 순간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가파른 생활수준,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1/3이 넘는 기형적 경제활동 구조가 그 예다. 나와 생년이 꼭 100년 차이가 나는 경제학의 태두 케인즈에게서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확충하는 방안을 많이 얻을 것 같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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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02
“고연전 땐 오시죠?”라는 말에 결국 고연전 둘째 날에 참석해 다음날 아침까지 열심히 놀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는 길에 유혹에 약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니, 좀 더 좋게 말해서 소중한 인연의 권유에 약하다고나 할까. 고연전 뒤풀이 때 너무 넘치게 논 것이 마음에 걸려 당분간 조신하게 지내려고 했더니 며칠 뒤 “올꺼지?”라는 문자에 마음의 빗장이 열려 늦게나마 회식 자리를 향했다. 그러고 보면 “올 거지?”, “안 오고 뭐해?”라는 말처럼 사람을 불러내는 문구도 없는 거 같다. 나의 참석이 기정사실화 되었다는 느낌이 그리 불쾌하지 않다. 내 자유의사가 침해받았다는 생각보다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압도한다.

황인숙 선생님은 “자기가 타인의 주의를 끄는 사람인 줄 아는 것도 오해의 첩경”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그 오해가 있어 사는 게 덜 팍팍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오실 거죠?”, “왜 이제야 오고 난리야?”라는 말을 많이 해왔다. 이제 흔들리지 말자고 결심했지만 작심삼일이 되어 후배가 “저 군대 가는데 환송회 때 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살가운 전화 통화에 넘어가 버렸다. 이렇게 직접 전화까지 준 후배의 정성을 외면하기에 내가 너무 모질지 못했다. 나는 그 정성에 보답하느라 열심히 마셨고, 다음날 아침에 살짝 후회했다. 그래도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어 참 고맙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 사양도 해봐야겠다.


061003
개천절에 태어난 용철이 생일을 어떻게 축하할까 고민하다가 “하늘이 열린 날 태어난 용철아 너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길 바란다 생일 축하해^-^”라는 문자를 보냈다. 보내놓고 잘 쓴 거 같아 자화자찬했다. 나는 문자를 분량 제한(80byte)이 걸릴 때까지 꽉꽉 채워서 보내는 편이다. 달랑 한 글자를 보내는 것과 요금이 같은 이상 최대한으로 보내는 게 경제적이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길게 문자 보내는 비용이 있겠지만 편익이 더 앞서는 거 같다. 예전 연인과는 멀티메일을 몇 통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야 그게 즐거웠지만 역시 긴 말은 전자우편이나 메신저를 사용하고, 문자는 액정화면 하나에 꽉 찰 정도로만 주고받는 게 좋다. 문자는 딱 그 정도 양을 감내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일본의 하이쿠가 보여주듯이 짧은 문자도 알차게 보내면 문학 부럽지 않다. 모든 말글에는 혼이 깃들어 있으니까. 다만 80byte는 살짝 부족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0byte 정도만 되었으면 좋겠다.


061004
경영飛반 웹진 10월호 교환학생판에 대한 교열을 간단히 봤다. “근데 보면 대체적으로 기본적 매너가 좋아”는 “근데 언뜻 봐도 대체로 기본 매너가 좋아”로 고치고, “개인적인 조사도 많이 해보셨으면”은 “개인적으로도 많이 찾아보셨으면”으로 고쳤다. 나는 교열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기초적인 오자와 문맥만을 살폈는데도 무척 까다로운 녀석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렸다. 내가 상급자가 되면 결재서류의 오타를 살피는 무시무시한 상관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교열 맡은 사람이 조금 꼼꼼한 것은 그리 흉이 아니다. 수십 개를 고쳤더라도 놓친 한 두 개의 오타나 비문을 발견한 이들에게는 성의를 다하지 않은 글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일전에 “당시 반대표를 맞고 있던”을 교열에서 누락시켜서 지적 받았을 때 내 소임을 다하지 못한 거 같아 부끄러웠다. 우스운 건 내가 맡은 짧은 연재물은 정작 교열이 소홀해서 매천 황현 선생의 절명시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다(難作人間識字人)”을 “難作人間識者人”이라고 써놓고는 한참 뒤에야 발견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정말 경험적 진실이다.^^;

교열을 잠시나마 해보니 틀리는 걸 또 틀림을 알 수 있다. “-것”은 띄어쓰는 것이지만 붙여 쓰는 경우가 너무 많다. 사이시옷이 어려운지라 뒤풀이를 뒷풀이로 자주 틀리는데 누차 지적해도 자꾸 틀린다. 맞춤법은 원리원칙을 익히기보다는 다양한 용례를 접해서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다. 맞춤법 오답 노트까지 만들라는 게 아니라 의식은 하고 쓰자는 말이다. 시간을 내서 문장을 다듬는 법에 관한 책을 한두 권 읽고 좀 더 교열 내공을 쌓아보고 싶지만 이제 뒷사람에게 맡겨야겠다.^^; 새로 뽑는 후배 가운데 이 악역을 맡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061005
아침 일찍 귀성길에 나섰다. 나는 차만 타면 잠에 빠지는 습성이 있는지라 어차피 잘 거 밤새 놀다가 가기로 했다. 메신저로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이것저것 둘러보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문화유산 답사를 다닌 후로 풍경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황금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즐거웠다. 대구 외가를 들렀다가 경주 안강읍 친가로 향했다. 제사를 치르지 않는 터라 특별히 준비할 것은 많지 않았지만 나는 명절 음식 준비를 거의 돕지 않았다. 뭐라도 거들 게 있었겠지만 그냥 애견 야니를 음식 곁에 가지 못하도록 돌보는 일만 했다. 이 녀석이 어찌나 칭얼거리는지 거의 인내심 함양 수준의 정성을 요했지만 말이다. 김언수 교수님의 손자병법 강독서인 『전략』 1권을 틈틈이 읽었다. 주위가 어수선해서 손자병법의 세세한 내용까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곁다리로 나온 명언 두 개가 마음에 들었다.

니체의 “If you know ‘why’ to live, you can endure almost any ‘how’.” “왜” 사는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출전을 찾을 수 없지만 아마 독일어로 왜(Warum)가 명확하다면 어떻게(Wie)는 극복해낼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씀일 것이다. 김 교수님은 개개인의 미션(mission)을 이해하고 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당신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helping others)”이라고 말씀하셨다. 내 미션은 이 세상에 한 뼘의 자유라도 넓히는 “more liberal”이라고 정의해봤다. 사실 자유, 정의, 진리 모두 독점 불가능하고 골고루 배분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하나만 화력을 집중하는 게 미션의 달성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거 같아서다. 하기야 자유, 정의, 진리가 엄격히 분리되지는 않을 거 같기도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Fools say that they learn by experience. I prefer to profit by others' experience.” 바보들은 직접 경험을 하고서야 배우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배운다. 내가 누차 강조하는 간접 경험의 힘! 그러나 나는 점점 젊었을 때 직접 경험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지니는 지도 깨닫고 있다.

조명도 미비하고 두 군데서 서로 다른 TV 채널이 어지러워서 더 이상의 독서는 무리였다. 윤정 누나를 졸라 사촌들과 모두 근처 번화가(?)로 나와서 통닭에 맥주 한잔을 나눴다. 간만에 먹는 통닭이 참 달았다. 돌아오는 길에 강인형님의 한가위 잘 보내라는 문자를 받았고 나는 어린애처럼 자랑했다. 비록 휴학 네 학기 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 대인관계가 와해되지 않았음을 자랑하고 싶었다니 좀 우습기는 하지만. 구름이 달 사이로 빨리 지나갔다.


061006
언제부터인가 큰집에 제사를 지내러 가지 않았다. 내가 가야할 필요성도 못 느끼겠거니와 제사 말미에 여자들이 절 네 번 연속으로 하는 장면이 어린 시절 내게 큰 충격을 주었나 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도 하지만 제사 의식은 내게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여하간 이건 핑계고 내 귀차니즘이 가장 큰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찾아오는 손님들과 간단히 인사 나누고 틈틈이 야니를 산책시키고, TV 채널을 어지럽게 돌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늦은 오후에 다시 외가댁으로 향했다. 다리를 다치셔서 깁스를 하고 계신 외할머니를 뵈니 마음이 아팠다. 집안 어르신들이 내내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만큼 착각은 없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참 어렵다.

우연히 문학작품을 영상으로 재해석한 KBS1 ‘HD TV문학관’을 보게 되었다. 김동리의 ‘등신불’이었는데 잠깐 보다가 게임TV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묘한 흡입력이 빠져들었다. 중일전쟁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탈출한 재일유학생 ‘나’가 1000년 전 자기 몸을 불살라 열반하면서 등신불이 된 ‘만적선사’에 관한 전설을 접하는 이야기다. 단순한 구조고 뻔히 예측 가능한 결말이지만 배우의 연기력 덕분이었는지 빼어난 영상미 덕분이었는지 넋 놓고 봤다. 중국 현지 촬영이 많았는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낙산대불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등신불은 단편 소설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길게 풀어 나가는 것을 보니 이야기에 살을 붙인 거 같은데 나중에 원작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안고수비(眼高手卑)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눈은 높으나 재주가 낮다는 뜻이다.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어제 내 미션으로 정의한 more liberal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기 위한 결심인 셈이다. 등신불의 여운 때문이었는지 보름달에 맺은 언약 때문이었는지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부엌에 불을 켜고 『전략』 2권을 읽었다. 김언수 교수님은 마케팅에서 나오는 push와 pull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용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내가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면, 내가 적극적으로 가는 방법이 있고(push), 혹은 상대방이 나에게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만드는 수(pull)가 있”는데 최소한의 push와 최대한의 pull로 제자들을 이끌겠다는 다짐이 인상적이었다. 무척 설득력 있는 비유다. 경영학적 개념 가운데 이렇게 실생활에 응용해볼 수 있는 게 적잖은데 좀 더 열심히 배워둘 걸 그랬다.


061007
일찍 나선 덕분에 그리 막히지 않고 집에 올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거의 잠만 잤지만.^^;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김동리의 단편집이 있었다. 역시나 하는 생각에 읽어보니 어제 본 TV문학관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원작에는 없는 허구의 인물인 이복 여동생 여옥이 없다는 게 놀라웠다. 만적 선사의 소신공양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한 여옥에 대한 애틋한 연모의 정은 각색의 힘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나도 세상사의 고뇌 가운데 상당부분은 이성간의 관계에 비롯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 나쁜 행실을 하다가 미쳐버린 어머니가 아들의 소신공양을 계기로 정신을 차린다는 대목도 원작에는 없다. 사실 원작의 완결성을 깨는 대목이 어머니의 악행만 기록되고 추후의 행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 점에 있어서는 TV문학관이 더 밀도가 높은 결말을 보여준다. 물론 내 완벽증의 소산인지는 모르겠지만.

TV문학관은 마지막에 주인공 내가 “자네 바른손 식지를 들어 보게”라는 원혜 스님의 말씀을 “만적 선사처럼 온 몸을 다 바치는 대공양(大供養)뿐 아니라 비록 손가락 하나나마 신심으로 맹세하여 부처님께 공양한 나 또한 이미 누구 못지 않은 진실한 불제자인 것은 아닐는지”라고 생각한다. “만적의 소신공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엉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원작과 견주어 적극적인 해석이다. 문학적으로는 원작이 뛰어나겠지만 주인공의 자족적(?) 해석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고등학교 문학자습서 등에서는 만적의 소신공양과 주인공의 혈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소신공양은 이타적, 대승적 행위며, 혈서는 이기적, 소승적 행위로 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부처님의 은혜에 대한 구원을 꾀한다는 공통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주인공이 願免殺生 歸依佛恩(원컨대 살생을 면하게 하옵시고 부처님의 은혜 속에 귀의코자 하나이다)라고 혈서를 쓴 정성은 소중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테레사 수녀님의 시가 계속 떠올랐다.

[한번에 한사람] - 마더 테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061008
한가위의 대미를 영화 연애술사로 장식했다. 거시경제학 예습을 좀 하겠다는 연휴 계획을 거의 실천하지 못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레트를 보낸 스칼렛이 스스로를 위로하며 던지는 마지막 대사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라고 번역한 것은 정말 얄미울 정도로 멋진 재창조다. 이 명구의 실제 원작은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Tomorrow is another day)”였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살짝 실망했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렸다. 예나 지금이나 미련한 나는 이 대사를 듣기 위해 그 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말이다. 여하간 내일은 명절의 기운을 훌훌 털고 다시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쉴 만큼 쉬었고, 놀만큼 놀았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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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25
젊은 시절 부대를 이탈해 18년간 도피생활을 하다 뒤늦게 자수해 20년 만에 군 복무를 마친 한 늙은 군인의 사연이 화제다. 이〇환 씨는 탈영 18년 만인 지난 7월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에 자수했다. 탈영병의 경우 만 40살이 넘으면 재판을 받아 보충역에 편입되지만 이 씨는 해당되지 않아 만 39살인 이 씨는 5개월이 모자라 탈영 당시 계급인 상병으로 복귀했다. 이 씨는 3군사령부 심의를 거쳐 약 1달간 재복무 끝에 지난 8일 상병으로 조기 전역했다. 늙은 사병을 위해 ‘현역복무 부적합’을 건의한 군부대측의 자애로움을 칭찬하려니 서글퍼졌다. 군사법원법상 탈영병에 대한 공소시효는 7년이다. 국방부는 탈영병에 대한 처벌 근거를 두려고 3년마다 복귀명령을 내려서 공소시효가 지나더라도 군 형법 제47조 ‘명령위반’을 근거로 탈영병들을 처벌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군법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공소시효를 연장시키는 편법을 쓰면서까지 탈영병을 거두려는 의지가 단호해 보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법의 지엄함은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설마 군법도 사병에게는 매섭고 간부에게는 부드럽지 않으리라 믿는다. 문득 전국민을 상대로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고도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전두환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요즘 유행하는 행정대집행은 전 씨 자택이 시급하지 않을까.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문 위의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사진으로만 봤으니 눈을 감고 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설령 눈을 감고 있다고 해도 실눈을 뜨고 있는 게 아닌가 헷갈리니 눈을 가리는 띠를 두르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공평무사함을 더 강조하는 게 무슨 쓸모가 있겠냐 만은.

처벌 위주의 법 집행이 만능은 아니지만 불법에 ‘선택적’으로 너그러운 것만큼 볼썽 사나운 것도 없다. 어느 책의 제목대로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그 눈물이 가진 것이 몸 뿐이라 몸으로 때우고 있는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면 더욱 좋겠다. 여하간 이〇환 씨의 건투를 빈다.


060926
예비군 향방작계 훈련 지원을 위해 야근을 했다. 교육장인 근처 중학교까지 이런저런 물품을 나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구청 강당에서 훈련이 있었으면 대기 시간에 책이라도 보는 건데 운동장에 나와 있으니 책도 보지 못하고 산보하며 일감을 기다렸다. 덕분에(?) 훈련을 위해 지원 오신 어느 동대장님과 어느 예비역과의 언쟁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동대장이 사단장이 순시할지도 모르니 자세를 똑바로 하고 시청각자료를 볼 것을 요구하자 그 예비역은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런 훈련을 하는 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것은 훈련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자꾸 강조하는 것이 탐탁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예비군의 발언이 거개 옳다고 생각했다. 동대장의 반박은 그리 설득력 있지 않았다. 일방적인 당위의 나열에 불과했고 좋은 게 좋은 거 수준에 그쳤다. 더군다나 더 이상의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예비군이 모든 논의를 중지하고 교육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언쟁을 그치지 않았다. 물론 동대장은 나이 지긋한 어른이지만 예비역을 고객으로 생각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의 훈계는 좀 넘쳤다. 초등학교 시절 장학사가 온다고 하면 나무로 된 교실바닥을 왁스칠하느라 소동을 피웠던 그 때의 사고방식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수많은 사람이 앉았다 나간 자리는 조금 헝클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혹여 높은 분들이 올까봐 다시금 줄을 맞추고 있는 내 자신이 좀 우스웠다.

그래도 이날 훈련 교관으로 온 중대장님은 참 인상 깊었다. 미안하다고 살갑게 말하며 부탁을 하고, 고생한다며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물론 그 중대장님이 외부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하고 자신이 거느리는 사람들에게는 엄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리 나쁜 양식은 아니지만 그 간격이 너무 넓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군 간부들이 사병들을 좀 더 애호했으면 좋겠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맡아 쓰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면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순리다. 묵자가 말했던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절대적 사랑인 ‘겸애(兼愛)’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적절한 수준의 ‘별애(別愛)’를 바라는 게 지나친 요구이며 간섭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두운 밤이라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분명 후덕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이런 군인이 좀 더 많이 그리고 빨리 늘어났으면 좋겠다. 국방력이 강화되고 있는 소리가 들리게.

이날 훈련을 위해 인근 동대에서 지원을 온 어느 상근병은 스물 한 살이었는데 그 ‘어림’이 부러웠다. 나는 내 젊음을 알차게 쓰지도 못하면서 남의 어림을 탐내는 못난 녀석이다. 여하간 예비군들의 짜증 섞인 투정과 함께 훈련을 무탈하게 마쳤다. 허겁지겁 물품들을 나르니 온 몸이 흠뻑 젖었다. 새벽 1시에 집에 돌아와 달콤한 포도 한 송이를 먹으니 피로가 풀린다. 반듯반듯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좀 우울한 하루였다.


060927
나와 바라보는 바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 내년 대선에 대한 체념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정책적 차이가 없다면서 대연정을 제의하였을 때 나도 크게 놀랐고 무척 상처받았다. 어렵게 일궈놓은 한국 정당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헝클어 놓았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이 변명할 구석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참여정부와 집권여당의 실정에 이제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을 내동댕이치고, 정치, 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응수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다. 한 사람, 한 시대정신에게서 실망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세속 초월(?)의 이유로 삼기에는 궁색하다.

나는 부러 체념과 환멸을 나타내는 분들이 엄살을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들이 “잘 살면서 따뜻하기까지 한 나라”에 대한 꿈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청부안민(淸富安民)의 꿈은 독점불가능하지 않는가. 또한 그들이 공박하는 노 대통령보다 더 흐트러진 언행을 일삼는 이들의 손에 국사를 죄다 도맡는 것을 배 아파서 못 보시리라 생각한다. 온건 보수 노선, 개혁적 자유주의 노선이 통째로 폐기될 까닭이 없다. 케인즈를 빌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할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낙관적인 견해일까. 나는 아직 젊은 데 벌써 내가 지향하는 바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려니 섭섭해서 하는 말이다. 이런 걸 미련이라고 하는 걸까? 헛된 집착인가.


060928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경향신문 창간 60주년 특집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에게 책임 지는 방법은 새로운 정책을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노정부는 갈등적인 이슈에 더 이상 손대지 말고 비갈등적인 이슈만 건드려야”하며, “합의가 충분히 돼 있고, 일상적으로 가게 돼 있는 국가, 내지 정부의 관리 수준의 것”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님 지적대로 “대통령이 신뢰 못 받는 상황에서 추진하니까 국민의 반대가 더 많아지고 있”다. 노무현이 미워서 그가 하는 일이 죄다 싫은 사람들이 집권 초기에 비해 많이 늘었다. 참여정부가 갈등이 큰 사회적 현안을 해결할 동력을 상실했음은 비교적 또렷해 보인다. 부단한 현상 유지마저 버거워 보인다.

얼마 되지 않은 기회였지만 사태를 호전시킬 계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결국 허송세월 해버렸다. 최 교수님은 “민주화를 지지했던 광범한 사회세력이 사실상 정치적 탄핵을 받은 정부와 함께 몰락해서는 안 된다”며 노 대통령과의 결별을 주장하신다. 어지간한 잘못은 참여정부에게 전가하며 신자유주의 반대와 정당체제 구축 같은 원론적인 대안들만 제시하시는 최 교수님의 한계가 엿보이지만 그 쓴소리를 죄다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여하간 묵직한 희망을 안고 출발했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줄곧 지지자들을 배신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 냉소의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혹 냉소를 품더라도 그 냉소는 짧을수록 좋다. 노 대통령이 얼마나 더 초라해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가 소나기를 맞으며 물러갈 때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행동이 옳아서가 아니라 드물기 때문이다.


060929
어제는 광호형님이 주최하신 04학번 이상 고학번 모임(05학번이 참석했지만), 오늘은 경영 飛반 웹진 회식에 다녀왔다. 둘 다 9시가 넘어서 찾아간 거라 여러모로 아쉬웠지만 공부한다면서 이틀 연속 술자리에 참석한 것도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역시 너무 사무치게 즐거웠다. 정말 앞으로는 이런 모임에 나갈 때 더 밀도 있게 혼신의 힘을 다해 만끽해야겠다. 이틀 연속으로 나온 이야기가 선후배간의 관계가 많이 소원해졌다는 것이다. 앞사람이 뒷사람을 핀잔하는 거야 늘 있는 일이지만 날이 갈수록 조바심도 나고 아쉽기도 하다. 내가 반 활동을 진작부터 했다면 이 문제에 좀 더 천착했을 텐데 이방인 처지를 면하는데 급급해서 미처 돌보지 못했다.

나는 왜 소규모라 선후배 관계도 돈독하고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동아리나 학회 대신 반 활동에 집중한 까닭은 무엇일까. 무정형의 어수선함과 다양성의 복잡다단이 좋았다. 오만사람이 모여 티격태격하면서 가까웠다 멀어졌다 하는 가운데 인연을 가꾸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재미를 후배들에게 강권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나보다 더 영민한 후배들은 제 나름대로의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후배의 가치판단을 대신해줘야겠다는 건 실현불가능한 과욕이다. “사람의 걱정은 다른 사람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데 있다(人之患在好爲人師)”는 맹자의 말씀으로 경계해야겠다. 좋은 선배 되기가 침 힘들다. 세상에는 별 거 아닌 거 같아 보이는 일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엄청난 공력이 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다.


060930
이틀 전 읽었던 최장집 교수님의 경향신문 인터뷰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들을 챙겨 봤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진보의 위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위기의 책임을 참여정부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핵심을 비껴가 버렸”다고 주장했다. 나는 김 처장의 말에 상당 부분 동감했지만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특정 정권을 평가할 때 말이나 레토릭 보다는 구체적 레코드를(기록) 통해 평가해야”한다는 최 교수님의 말씀을 가슴 아프게 새기고 싶기 때문이다.

다만 더 이상 일을 벌이지 말라는 최 교수님의 말씀은 좀 넘쳤다고 지적해야겠다. 국민의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국정을 포기하라는 논리는 인기가 많다는 핑계로 마녀사냥을 즐기는 어느 신문이 활약할 논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하간 내가 보기에 기품 있는 보수주의자 정도의 논리를 설파하시는 최 교수님이 진보 진영의 거두로 불리는 건 좀 민망한 일이다. 일찍이 강준만 선생님이 지적하신 ‘이념의 인플레이션’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최 교수님도 자신에게 지워진 그 레토릭을 차분히 검토해보셨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김 처장의 글 가운데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설은 특별히 인용한다.

요즘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를 어떤 사물을 악마화 · 물신화시키는 주술로 사용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정책을 비판하고 환원한다면 세계화와 개방의 높은 파고를 대응하려는 이 세상의 모든 정책과 정부도 신자유주의가 되고 말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구체성을 담기 힘든 철학적 개념이자 포괄적인 원칙입니다. 개별 사안마다 복합적·중층적인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늘날의 정부 정책을 신자유주의라는 단 하나의 추상적인 잣대만으로 평가, 재단하고 그것으로 진보지식인들을 자처한다면 이는 지적인 나태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런지요.

앞으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우리 실정에 맞게 소화해내려는 노력이 반드시 反신자유주의라는 구호 아래 표출될 필요는 없다. 물론‘신자유주의-反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구분은 ‘민주-反민주’보다 좀 더 현실을 반영하고 좀 더 적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사회통합이나 연대의 가치도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편이라고 쉽게 나눌 수 있을까. 결국 이 문제도 광범위한 중간영역을 높고 쟁투를 벌여야 할 거 같다. 다만 최 교수님의 지적대로 레토릭보다는 레코드로 선의의 경쟁을 나눴으면 좋겠다.


061001
미시경제학 공부를 하다가 일반균형분석(general equilibrium analysis)이라는 화두를 얻은 건 뜻밖의 행운이다. 단기간의 부분균형분석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간을 포함해서 서로 연관된 모든 시장들을 함께 분석하는 일반균형분석의 아이디어를 이제야 깨닫다니 내 무식을 고백하는 거 같아 부끄럽다. 한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른 시장의 균형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가정하는 부분균형분석은 복잡한 경제현실을 단순화함으로써 특정 시장에서 균형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용이하게 분석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각 시장 사이에는 연관성이 존재할 수 있으며, 한 시장의 변화가 다른 시장의 균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분석 기법 모두 저마다의 가치와 유용성이 있지만 내게는 일반균형분석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제도를 고쳐나가는 시각이 좀 더 필요할 거 같다. 지금 당면한 현상 너머의 파급효과와 상호작용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그것이 좀 더 사회적 후생을 증진시키는 일일 것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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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18
영국의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1830∼94)의 노래(Song)라는 시는 참 슬프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죽으면/ 나를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When I a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 for me)”로 시작하는 이 시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고종석 선생님은 “‘노래’는 그 자체가 어여쁘고 구슬픈 유언”이라고 하셨다. 나는 특히 1연, 2연의 후렴구 부분이 짠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으면 나를 기억하시고, And if thou wilt, remember,
잊고 싶으면 잊어버리세요. And if thou wilt, forget.

아마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할 거예요. Haply I may remember,
아니, 어쩌면 당신을 잊을지도 모릅니다. An haply may forget.


우리는 각골난망(刻骨難忘)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을 너무 쉽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늘 마음에 두겠다며 호언장담하던 게 얼마나 허망하고 허술한지를 알겠다. 하지만 그래도 내 자신이 누군가에 오래도록 곁에 두고픈 동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움에 사무치고 외로움에 절망할 때 하잘 것 없는 저란 녀석의 손을 잡아주었던 아름다운 마음들을 떠올리고 싶다. 나란 녀석과 교류 나눴던 순간이 쥐꼬리만큼이라도 유익하고 재미났다면 한꺼번에 잊지는 말기를 청하고 싶다. 인연의 끈이 닳을 대로 닳았을 때 다시 이을 수 있도록 아주 놓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를 잊고 싶으면 마음껏 잊게 해주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 함께 한 순간에 충실했다면 헛된 집착을 할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또 얼마나 맍은 것을 잊고, 버려야 할까.


060919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2005년 11월 발의한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 폐지법률안’이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이영순 의원은 “재향군인회는 정치활동뿐 아니라 '대한민국 안보'를 들먹이며 사상공세를 벌이고 있다. 노골적으로 친미사대성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친일에서 친미로 옷을 갈아입고 반공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왔다”고 주장했다. “재향군인회법 폐지는 재향군인회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자체적인 정관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고 다른 비영리 민간단체처럼 활동하면서 필요한 예산은 국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법으로 국고를 보조하도록 규정된 특혜를 없애자는 것”이라는 이영순 의원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감한다.

재향군인회가 공법상 특수법인의 지위를 부여받기에는 그간의 역할이 너무 시시했다. 극소수 군장성 출신 중심의 비민주적인 운영도 민망한데 일반 사병 출신 회원들의 의견 수렴은 별로 없이 이런저런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도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더군다나 극우파들과 짝짜꿍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면서 “호국정신의 함양 및 고취(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 제4조의2)”를 하겠다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제 자유시장경제가 살아 숨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재향군인회는 특권적 지위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다. 비판의 자유는 재향군인회 상층부에게만 소중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애국과 우국도 제발 독점하지 마시라. 국가안보는 협박과 호들갑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060920
고대 인촌기념관에 있는 일민국제관계연구원에 엄상윤 선생님을 찾아뵈러 갔다. 대학에서 만난 숱한 스승들 가운데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눈 선생님이다. 저녁에 대학원 강의가 있으셔서 간단히 저녁 먹고 담소를 나누다가 왔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받기만 한 거 같아서 민망하다. 머잖아 내가 돈을 버는 날에는 꼭 선생님께 식사 대접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는 선생님께 정치학원론, 국제정치의 이해라는 강의를 배우면서 공부하는 훈련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시일이 지나면서 많이 흐려지기는 했지만 그 고갱이는 오래도록 간직하겠다. 내가 무식하다는 소리를 면한다면 상당 부분 선생님 덕이다. 모든 스승들이 그렇겠지만 선생님께서도 당신의 제자가 큰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 내가 그 바람에 부응하는 제자가 되고 싶다. 나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마른 녀석이니까.^^;


060921
이덕일 선생님의 『조선선비 살해사건』에는 최영과 정몽주의 실수를 지적하는 대목이 나온다. 최영이 팔도도통사로 요동정벌군을 계속 지휘했더라면 요동정벌을 해볼 수 있었고, 회군도 막았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그는 우왕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우왕 곁에 남았고 고려의 멸망을 초래했다. 적어도 이성계와 조민수가 회군을 요청했을 때 회군을 수락할 것이 아니었으면 최영이 서둘러 현장에서 이성계와 조민수를 통제하고 군대를 지휘했어야 한다.

최영의 실패가 직접 나서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면 정몽주의 실패는 너무 나선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성계가 낙마해서 몸져누웠을 때 이성계 일파를 귀양 보내며 정국 장악의 실낱같은 희망을 보였다. 하지만 위독하다던 이성계가 개경으로 돌아오자 문병을 핑계로 다녀오는 길에 이방원이 보낸 자객의 쇠도리깨를 받는다. 그런 정세 파악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시점에서 혈혈단신으로 찾아가는 여유를 부려서는 곤란했다.

여하간 두 위인의 엇갈린 실책으로 말미암아 고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두 분의 패배를 보며 스스로 직접 나설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분별하는 게 만만치 않은 난제임을 알겠다. 그러나 만약에 최영과 정몽주가 제대로 된 선택을 했다손 하더라도 내부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안 부재에 시달리던 고려는 가까운 시일에 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웅 몇 명이 인력으로 막기에는 고려의 말기는 너무 구접스러웠다. 그런데 나라가 쓰러질 때까지 탐욕을 즐기던 권문세족들은 조선왕조가 개창되고 나서 응분의 대가를 치렀을까. 그게 궁금하다.


060922
하얗고 고운 피부를 가진 남자를 만났다. 고운 남자는 희소성이 높다는 경제학적 이유(?)를 떠올리는 와중에도 눈길이 자꾸 갔다.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했지만 왠지 여성스러운 느낌까지 풍겼다. 그 남자의 언행은 자주 쭈뼛쭈뼛할 거 같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팔목이 나만큼이나 가는 남자를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남성피부는 여성피부에 비해 피부가 약 30% 가량 더 두껍고, 모공이 크기 때문에 그 만큼 피지 분지가 활발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노폐물이 많아 피부가 쉽게 더러워지는데 과음, 흡연까지 합세하니 피부가 수분을 잃고 거칠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배우 이준기로 인한 예쁜 남자 신드롬을 못마땅하게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꽃미남, 얼짱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물론 획일적이기보다 좀 더 다양한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붙인다. 프티 부르주아적 소리를 늘어놓고 있지만 예쁘다는 좋은 말이 어느 한 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가치가 되는 건 어찌되었건 반가운 일이다. 좀 더 많은 예쁜 남자, 강한 여자가 양성평등을 좀 더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품어본다.

뉴욕타임스가 2004년의 10대 신조어 중 하나로 선정한 말로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 미적 감각을 추구하는 남성을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라고 한다. 반대로 사회적 성공과 고소득을 추구하는 씩씩한 여성은 콘트라섹슈얼(Contrasexual)이라 일컫는다. “자신감 같은 긍정적 남성의 면모를 갖추고, 기존 남성에게는 없는 감성 부족 같은 약점을 극복한 사람”이라는 뜻의 위버섹슈얼(Ubersexual)이라는 말도 들린다. 심리학자 융(Jung)은 모든 인간은 그 정신 속에 자신과 반대되는 성적 요소, 즉 남성은 아니마(여성적 영혼)를, 그리고 여성은 아니무스(남성적 영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융이 말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극단적이면서도 서로 조화하고자 한다. 육체는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있지만, 인간성의 본질은 원래 양성적이라는 것이다. 인격의 성숙을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라는 사회적 역할에 집착하기보다 내면의 인격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 이론의 핵심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시대에 양성성을 갖춘 인간상이 추구된다면 외모에 대한 집착도 상당부분 진정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외모에 무심해서 날로 거칠어지는 피부를 방치하고 있는 내 자신에 좀 미안해졌다. 매트로섹슈얼에 대항하는 말로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 시간과 돈을 투자할 의지와 관심이 없는 레트로섹슈얼(retrosexual)이라는 말은 나를 두고 한 말이다. 내 견고한 내면지상주의(?)를 좀 거두고 외면의 아름다움도 무시하지 말아보자. 세안과 면도만이라도 좀 더 신경 써서 해봐야겠다. 아참 기름종이를 사용해보는 건 어떨까?^^;


060923
2006년 정기 고연전을 다녀왔다. 전날까지만 해도 경기장은 가지 않거나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나서 작년에 발라놓고 온 꿀(?)을 찾아 벌처럼 날아들었다. 휴가 나온 군인 친구들을 만나는 게 특히 반가웠고, 그간 못 보고 지내던 사람들과 살가운 인사 나누는 재미가 쏠쏠했다. 경영대 다섯 개 반을 돌아다니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 인사 나누려다가 그만 뒀다. 서서히 잊혀지는데 방해가 될 거 같았다. 이제 내게도 언제든 찾아와 머물 곳이 생겼다니 감동의 도가니다.

안암역 참살이길로 와서 선배님들께서 술집 여기저기에서 후배들에게 무료로 음식과 주류를 제공하는 “나비처럼 돌아와 범처럼 쏜다” 행사에 참여하려고 보니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나는 『시경』에서 “공짜밥을 먹지 않는다(不素餐兮)”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결국 02, 03, 04학번이 따로 모여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훌쩍 지나가 버린 세월에 대한 한탄이 간간이 나오기는 했지만 무척 유쾌한 자리였다. 내 대학생활이 평범하지는 못했는지 친하게 지내는 동기들이 많지 않은 게 늘 아쉬웠는데 02학번 동기들과도 환담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냥 그 자리에 끼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모두들 의기충천하여 기차놀이도 했는데 학교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인사 한 번 하고 맥주 네 병을 얻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배반이 낭자하던 그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처럼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자정 즈음 들어갔던 뒤풀이 장소에서는 놀랍게도 처음처럼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동난 것은 아닐 테고 아직도 존재한다는 참이슬만 가져다 놓는 얄미운 술집이었던 것이다. 분개한 나머지 나는 독점이 싫다는 지론을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말했다. 무리한 사업다각화 및 차입경영으로 부도 난 진로기업에 대한 험담도 늘어놓았다(자기자본비율이 2.69%에 불과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이제 새로운 주인을 만나 새출발을 하겠지만 참이슬에 포개지는 진로의 이미지는 지우기 힘들다. 아름다운 말만 늘어놔도 모자란 자리에서 쓸데없이 남을 구박하는 발언을 한 거 같아 후회스럽다.^^;

작년 고연전 뒤풀이 때 패배의 쓴잔을 연거푸 들이켰다가 지갑과 디카를 분실했던 아찔한 추억이 있는지라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냥 전철 막차 타고 오려던 계획은 금세 사라지고 아침 6시가 넘어서까지 놀고 먹어버렸다. 스스로 민망한 마음에 그냥 좀 이따가 다같이 자리 파하자는 후배들의 권유를 애써 뿌리치고 도망치듯 집에 왔다. 생각해보니 해장국 한 그릇 먹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올해도 즐거운 고연전이었다. 아니 점점 더 재미있어서 부담스러울 정도다. 1대 0으로 앞서던 축구 경기 종료 1분 전에 터진 동점골이 못내 아쉬웠지만 경기장의 반쪽이 누렸을 짜릿함을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060924
박강님, 봄봄님 부부 댁에 집들이를 다녀왔다. 사실 오후 4시 30분까지 고연전 뒤풀이 숙취에 시달리느라 거의 못 갈 뻔 했으나 다행히 정신이 맑아져서 조금 늦게나마 출발했다. 가보니 박청희님과 조르바님이 와 계셨고 다섯이서 맛난 저녁을 먹었다. lee856님이 불참하셔서 못내 아쉬웠다. 결혼식 비디오를 봤는데 나와 조르바님이 축가하는 장면은 참 겸연쩍었다.^^; 다시는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했다. 숙취 해소를 위해 술은 안 먹겠다고 결심했지만 역시나 탐스러운 와인과 설중매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다. 백포도주는 포도를 까서 만들었다는 주장과 청포도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대립했는데 찾아보니 둘 다 맞다. 그냥 포도는 껍질을 까고, 청포도는 껍질째로 쓴단다. 내가 좀 덜 가난하거나, 덜 충동구매 했다면 남는 돈으로 와인을 즐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국 개신교의 다양한 분파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한국 개신교계의 주류가 장로회에서 갈라져 나온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가 갈라진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예장과는 무척 다른 양태를 가지고 있어서 재미났다. 불교에서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법화종, 화엄종, 열반종 같은 종파가 어지럽게 나뉘듯이 개신교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나는 정부조직개편안에서 문화관광부를 문화체육관광부로 바꾸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박청희님은 문화관광부의 공식 명칭은 문화부인데, 문광부로 많이 쓰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문화체육관광부를 줄여서 문체광부로 부를 수는 없을 테고 아마도 본래 이름인 문화부로 불리게 될 거 같다.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군에 끼지도 못하던 시절에 노무현의 가치를 대중매체에서 최초로 말한 이가 고종석 선생님이라는 박강님의 분석이 흥미진진했다. 되돌아보니 그런 것도 같다. 그랬던 고 선생님이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환멸을 느끼신다니 슬픈 일이다. 제 지지자들에게서 버림 받는 정치인처럼 처량한 것도 없다지만, 자신의 꿈을 투자했던 인물에게서 실망을 느끼는 지지자도 서럽기는 매한가지다.

청원이가 휴가 나왔다가 들어가기 전날이라 좀 더 앉아있지 못하고 태릉입구역으로 향했다. 홍제역에서 집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리는 긴 거리라 왕복하며 고종석 선생님의 새로 나온 시평집을 절반은 읽었다. 나는 내 문장 하나하나가 고 선생님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전에 열린마음님이 이야기하셨듯이 나도 고 선생님의 오마주(hommage)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청원이를 만나 서로가 준비하는 시험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벌어먹고 살기의 어려움에 장탄식을 늘어놓기도 했다. 내가 별 탈 없이 밥 벌어먹고 산다면 다섯 가운데 하나는 청원이의 공으로 돌려야 될지도 모른다. 어느덧 그만큼 내게 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금세 배가 꺼지고 허기가 진다. 산해진미를 먹어 놓고서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분식집에서 라볶이와 참치김밥을 먹었다. 단잠을 잘 수 있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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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11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지난 9월 5일 유럽 순방을 앞두고 유럽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양한 고전을 인용하며 박학다식을 과시했다. 영국 더 타임스 기자가 “잠자기 전에 주로 읽는 책은 무엇인가. 책을 덮은 뒤 잠 못 이루게 하는 고민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인용해 답변하겠다”며 중국 고전 명구들을 내리 인용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이소(離騷)’가 인상적이었다. “긴 한숨으로 눈물을 가리며, 백성의 수많은 고통을 슬퍼한다(長太息以掩涕兮, 哀民生之多艱)”라며 애민정신을 넌지시 내비치는 모습에서 중국의 거대한 문화적 힘을 느꼈다면 지나친 호들갑일까. 그는 일전에 “배움의 길은 까마득하고 멀지만, 나는 장차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찾아내리라(路曼曼其修遠兮, 吾將上下而求索)”라는 이소 구절을 인용해 중국의 잠재적 힘을 과시한 바 있다.

2005년초 열린우리당 임채정 당시 당의장은 굴원의 ‘어부사(漁夫辭)’에서 유명한 구절인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을 인용해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하는 실용노선을 강조한바 있다. 물론 그런 유연한 자세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아쉽다.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어 쓰고,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함을 읊조리는 사람도 몇 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라고 말한다고 해서 굴원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 않은가.

염결성을 강조한 나머지 비타협적이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라는 게 아니다. 다만 국민들에게는 봄바람처럼 자애로우면서, 스스로에게는 가을서리처럼 까다롭기를 바랄 뿐이다. 남 위에 있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남을 대표하고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060912
신라 제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김춘추-외교의 승부사』(박순교 著, 푸른역사 刊)란 책의 서평을 읽다가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생각해봤다. 삼국 가운데 거의 모든 게 뒤쳐졌던 신라가 결국 삼국을 통일한 것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광활한 만주벌판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장탄식을 늘어놓기 일쑤다. 일전에 소설가 이문열 선생은 계간 역사교양지 <한국사 시민강좌> 32호에 기고한 글에서 18세기 이후에나 형성된 민족개념을 신라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삼국통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민족주의적 관점이었다. 이민족인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게 신라를 비난하는 이유”라고 말하며, “1300년 전 신라에게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로 민족적 동질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영어를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사람을 무식하다고 나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도 국민국가라는 근대적 개념으로 고대사를 재단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기에 이문열의 주장은 수긍할 점이 많다. 그런데 글 끄트머리에 고구려 중심사관이 “뭔가 정치적으로 의심쩍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논의에 스스로 먹칠을 한다. 그의 논리를 조금 거칠게 말해보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분개하는 이들은 북한의 꼭두각시놀음에 당하고 있다는 것이 되기도 한다. 민망하다. 좋은 문제 제기가 그 때문에 엉망이 되버렸다. 하기야 굳이 이문열이 아니더라도 신라의 삼국통일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역사가들이 하고 넘쳤으니 하나쯤 빠져도 무방하겠다만서도.

비록 삼국이 민족공동체 같은 관념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삼국간의 이질감이 수나라나 당나라 같은 중원 국가들에 대한 이질감에 비해 더 적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중국에 비해 낮은 이질감, 낮은 수준의 친밀감 정도로는 서로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후발주자인 신라가 당나라와의 연합에 성공해 대역전극을 이룬 것은 그 나름의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무열왕은 고조선 멸망 이후 800여 년 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과 분열을 종식한 공이 있다. 더군다나 백제처럼 충신의 간언을 멀리하지 않았고, 고구려처럼 핵심 지도부가 내분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러나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지적대로 “고구려 영토의 회복의지라든지 북방으로의 진출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외세의 힘을 빌지 않고, 고구려 계승의지를 통해 북방진출 의지를 누차 피력했던 고려의 통일에 견주어 신라의 통일이 많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신라라는 거름에 힘입어 고려라는 거목이 자랄 수 있었다. 뒷사람이 보기에 앞사람이 한 행적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 하기는 쉽지만 당대를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신라에 대한 미움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그네들이 성공하게 된 원동력 가운데 배울 점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역사에서 억울한 패배는 많지만, 거저 이루는 승리는 없기에.


060913
차선의 이론은 만족되지 못하는 효율성 조건의 수를 세어 이를 후생 평가의 근거로 삼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만족되지 못하는 조건의 수와 사회후생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극단적인 경우 한 조건만 만족되지 못한 상황보다 다섯 개의 조건 모두가 만족되지 못한 상황에서의 사회후생이 더 높을 수 있다. 이 이론은 효율성을 위해 만족되어야 하는 여러 조건 중 가장 사소한 것 하나만 만족되지 못한 상태가 반드시 차선의 상태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 이준구, 『새열린경제학』, 2001, 다산출판사, 339쪽

립시(R. Lipsey)와 랭카스터(K. Lancaster)가 주창한 차선의 이론(second best theory)은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선택하라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완전한 사회에서 무엇이 차선인가”를 묻는 심도 있는 질문이다. 차선이론에 따르면 점진적 사회개혁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비합리적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고 해도 예기치 않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막으면 저기서 새나간다는 것이다. 부분적인 개편안이 반드시 더 놓은 사회후생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은 경청할 만 하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상수(常數)에 가깝다.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완전하지 못한 사회를 조금 덜 나쁘게 만들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영원히 추진될 것이다. 상충관계에 있는 효율성과 공평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면서 사회후생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실현가능한 대안을 찾아보는 수밖에. 우리는 부지런히 최악에서 차악을 골라내고, 최선을 못한다면 차선이라도 일구어야 한다.


060914
익구닷컴에 "알쏭달쏭 남북한 국방비"라는 글을 쓰다. 북한 관련 통계는 너무 불분명하다. 세상에 저렇게 폐쇄적이고 제 멋대로인 나라와 통일을 해야하는 대한민국의 운명이 너무 가련하다. 분단 비용으로 눈에 보이는 군사적 지출 외에도 분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어가는 협상 비용,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민족사적 과제 등을 꼽는다. 그런데 나는 분단 문제를 고민하는 지력(知力) 비용도 막대하다고 생각한다. 북한 문제 고민할 시간에 다른 공부를 했다면 얼마나 생산적일까!


060915
내 영혼의 스승 고종석 선생님의 신간이 나왔다. <한국일보>, <시사저널>, <씨네21> 등의 매체에 실은 글 중에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글들을 솎아낸” 다음 골라 모은 것이라고 한다. 책 제목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에서 말하는 신성동맹(神聖同盟)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직후인 1815년 9월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군주들이 파리에서 맺은 반동적 기독교 동맹을 지칭한다. 4국동맹(러시아ㆍ오스트리아ㆍ프로이센ㆍ영국사이의 동맹)과 더불어 성립한 빈체제는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을 탄압한 보수 반동 체제를 일컫는다.

선생님은 이 제목의 칼럼에서 반동정치세력과 반동언론권력 간의 신성동맹과 이념적, 정책적 차이가 있다고 여기는 참여정부와 집권여당의 착각을 질타하신다. “언어는 온건할수록 좋고, 실천은 어기찰수록 좋다”며 신성동맹의 눈치를 보느라 최소한의 개혁도 지지부진한 집권자들의 안일을 지적하신다. 선생님은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실망을 참 여러번 토로하셨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내 생각이 그 사이에 크게 변했다. 그러나 변한 것은 내 입장이 아니라 그의 입장일 것이다’고 책머리에 적고 있다니 슬픈 일이다.

신간에 묶여진 대부분의 칼럼을 그 때 그 때 챙겨 읽은 나이지만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로 이 책을 사서 읽고 가슴이 짠해질 예정이다. 다음 주 일요일로 예정된 고종석 팬카페 분들과의 모임에서 이 책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고 선생님의 쓴소리가 너무 과도하다고 핀잔을 늘어놓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자마자 선생님께 투정 섞인 전자우편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이 강고하고 굳건한 집단주의자들의 획일주의적 수구동맹에 투항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두렵다. 자신이 넘치는 말보다는 배운 대로 살겠다는 누추한 실천이 필요하다.


060916
KBS 파워 인터뷰에서 한비야 선생님이 나오셨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면 부끄러운 생각이 앞서게 마련이지만 한비야 누님(이렇게 부르고 싶다)은 내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신이 나게 해주셨다. 누님은 “만만한 사람이 열정과 노력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아니겠냐며 겸양하셨지만 정말 이 시대의 역할 모델이 될만한 스승이다.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겠어요”라는 씩씩한 목소리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 “우리들이 가진 생각의 틀 밖으로 나가보자”는 제안이 정말 와 닿는 사람, “언제 마지막으로 가슴 뛰는 일을 해보셨어요?”라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꾸짖음을 주는 사람, “百見이 不如一行이예요”라는 말이 천금처럼 들리게 하는 사람... 멋있는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누님이 역설하시는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정글의 법칙이 아닌 강자가 약자를 돌보는 사랑과 은혜의 법칙”에 나도 동참하고 싶다.

문화평론가 김갑수 선생님은 “관계없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게 낯선 한국인”이라며 아무 관계없는 민족, 다른 지역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냐는 질문을 던지셨다. 비야 누님은 1950년부터 1990년까지 도움을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언급하시며 “그 때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요?”라며 반문하셨다. “돈이 남아서 우리를 도운 건 아닐 거예요”라며 우리가 이제 도울 때라고 말씀하셨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게 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도 하던데 베푸는 데 조금 더 넉넉해져도 좋겠다.

그가 책에서 쓰기도 했지만 소말리아 국경에서 만난 한 케냐인 안과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누님이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이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라고 물었을 때 그 의사 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자신의 재주가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자는 등의 말은 나도 참 많이 하고 다녔는데 나는 그리 실천하지 못했고 그 의사 선생님은 실천하고 있었다.^^;

비야 누님은 여자치고도 작은 발 사이즈인 225mm라고 한다. 어른 신발이 없어서 아동용 신발을 사 신어야 한다고 한다. 그 작은 발로 세 바퀴 반을 돌고, 국토를 종단했다. 팔목 가는 게 콤플렉스인 나이지만 내 작은 손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을 거 같다. 함부로 포기하지 말자. 그러고 보니 비야 누님이 어느 강연회에서 손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이 있던데 나도 꼭 실천하고 싶다.

나는 이 손이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으로 쓰였으면 좋겠다. 상처를 어루만줘 주는 손으로 썼으면 좋겠다. 나는 적어도 이 손이 약자의 뒤통수를 치는 손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옳지 못한 돈을 세는 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지구 세 바퀴 반 돌고 내린 결론 ‘세상은 좁다’”, 이코노믹리뷰, 2006. 02. 24


060917
평교수로 복귀한 서울대 정운찬 교수님의 첫 강의는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지난 9월 1일 경제학연습2의 첫 강의 시간을 스케치한 기사를 읽다가 화들짝 놀랐다. 정운찬 교수님은 경제학과 학생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자신의 학창 시절 일화를 소개하셨다.

누가 자신에게 어느 대학을 다니냐고 물으면 경제학과를 다닌다고 답했고 재차 물으면 ‘상대’ 경제학과를 다닌다고 했으며 그래도 학교를 물으면 “당연히 서울대지 다른 대학을 다닐 데가 있느냐.”고 답했다는 것이다. 경제학과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는 이야기라지만 마지막 말씀은 좀 지나쳤다. 물론 자신의 후배들에게 격려하는 말씀으로 하신 것이니 웃으며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적 명망을 얻고 있는 정 교수님이신 만큼 자신의 말에 실릴 무게를 인식하셨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지난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고대 나오고도 기자가 될 수 있냐는 요지의 발언을 해서 서울대 중심주의라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당시 그 발언이 100%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일국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의 발언치고는 너무 천박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님이나 이 후보님의 농담 어린 말씀들은 서울대가 아닌 다른 대학을 다니는 나로서는 참 무서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도 애교심이 넘쳐서 오버를 한 적이 참 많다. 자신의 지적 고향이 그립고 애틋한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나쳐 남에게 역겨움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지 점검해봐야겠다. 자신의 것을 사랑하는 데도 절제가 필요한 모양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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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04
약자와 소수자는 곧잘 혼용되기도 하지만, 수적으로는 다수이면서도 의회대표성 등 대표성에서 소외되어 그 의사가 잘 대변되지 못하는 ‘약자’와 수적으로도 소수인 ‘소수자’로 구분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 사회의 여성과 장애인들은 각각 ‘약자’와 ‘소수자’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률가들은 원래 이 약자나 소수자와 친해야 한다.

우선 입법, 사법, 행정부의 삼부 중 주로 법률가들로 이루어진 사법부의 존립이유가 바로 이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보호에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입법부나 행정부와 같이 그 구성과 존립이 다수국민의 지지 획득 여부에 달려있는 기관을 다수파기관이라 부른다. 입법부의 국회의원이나 행정부의 대통령은 선거에서 재선되기 위해 항상 다수국민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신경써야 한다. 그러나 사법부는 삼부 중 유일하게 ‘선거’를 치르지 않고 ‘임명’되는 비다수파기관이다. 따라서 다수국민의 의사에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오히려 다수국민의 목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잘 조직화되지도 대표되지도 못하는 약자의 이익을 판결을 통해 획기적으로 구현해 나갈 수 있는 태생적 장점을 가진다.(하략)

-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학과), [목요일언]약자 및 소수자의 법률가, 법률신문 2006.09.01

청와대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을 내정하면서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적임자”라고 설명한 것에 8월 17일자 중앙일보 사설은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되 우리 사회 다수의 편에 서는 균형감각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간 우리 법원이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거 같다. 여전히 정치인, 기업인들에게는 관대하고 흐릿하면서도 낮은 계층에 있는 사람에게는 엄격하고 또렷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품을 수 있는 강점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발현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앞으로 강자와 약자의 구도보다는 승자와 패자의 구도가 좀 더 진일보된 사회라고 생각한다. 강약보다 승패로 가름하는 세상은 조금은 더 기회적 평등이 확충되고, 결과적 불평등도 절제되는 세상이다.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한다고 앵무새처럼 외치기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승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패자에게는 부활전의 여지를 남겨 두는 넉넉함을 갖춰야 한다. 약자가 패자가 되고, 패자가 다시 약자가 되는 악순환을 끊어내는 건 패자 문제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어려운 문제지만 이런 고민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그나마 덜 아프게 맞이할 수 있는 방책이 아닐까 싶다.


060905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는 지식인 700여명의 공동선언이 9월 5일 오전에 발표되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해 사회적 현안에 대해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놀라운 일 이전에 민망한 일이다. 물론 지식인들의 공동선언이 1960년 4월25일에는 서울대 교수회관에 모인 각 대학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펼침막을 앞세워야 할 의무는 없다. 그리고 지식인들의 선언이 반드시 진보나 개혁의 목소리일 필요도 없다. 보수적인 교수 사회의 풍토에 걸맞게 보수적 목소리가 더 많이 표출되는 것이 확률적으로도 자연스런 일이다. 그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부러 백안시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요근래 자칭 원로들이 이런저런 사회적 이슈에 개입하는 모습은 대개 아름답지 못했다. 최근에 전작권 환수를 가열차게 반대하던 군 원로들의 면면이 그리 떳떳하지 못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제 누군가에게 절실한 가르침을 주던 스승들마저 그 지적 권위와 도덕적 매력을 조금 덜어내려는 모습이 안타깝다(개인적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스승들도 있어서 이 선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혹 수백 명의 지식인들 가운데 기자회견 주도자의 친분 때문에 별 다른 고민 없이 자신의 이름을 내어준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식인은 자신의 이름을 여기저기 함부로 팔아서는 곤란하다. 과거의 언행들은 지식인들에게 영원한 차꼬가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안보 문제를 정치 문제화하고 있다는 우려에 충분히 동감한다. 그러나 전작권 문제가 너무 정치화되어 버렸다면 지식인들이 나서서 섬세한 논의를 주도해야하는 게 아닐까.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 행사 추진을 통해 대북전쟁 억지력의 확실한 근간인 한미연합사 체제를 해체하는 것은 안보 악화와 함께 미국과 일본에 대한 군사적 종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적어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나와 남북 간의 평화체제 구축의지를 분명히 할 때”가 좋다는 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그걸 해내가는 방안을 궁리하고 있지 않은가. 분단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민족사적 과제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짝 답답하다.

지식인이 지식인이라고 존경받는 이유는 그 압도적 지적 능력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와 더불어 삶의 태도도 지식인을 재는 중요한 잣대다. 슬프게도 우리는 그 잣대를 좀 적용하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지식인들이 너무 많았다. 전작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실 정도의 열성으로 그 옛날 후안무치하던 일당들에게 죽비소리를 내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근자에 수백 명의 지식인들이 비장한 결심으로 선언문을 낭독했던 적이 없었는데 왜 유독 전작권 문제에 이 분들의 안테나가 격렬하게 반응했을까.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산적한 현안들을 그 영특한 안테나로 잘 감지해주시기 바란다. 지식인의 권위는 스스로 세우는 것이니 말이다.

율곡 선생이 선조에게 바친 응지논사소(應旨論事疏) 한 구절을 음미해본다. 선비는 밉살맞지만 그 충정은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우리네 지식인들의 입바른 소리에 귀가 따갑고 입맛이 쓰더라도 내 삶은 보다 윤택해질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상정(常情)으로 말하자면, 선비란 자는 진실로 얄미운 자입니다. 다스림을 논하라면 멀리 당(唐), 우(虞)의 고사(요순시대)를 인용하고, 임금에게 간하라면 어려운 일로 책임을 추궁하며, 벼슬로 얽어매도 머무르지 않고, 총애를 하여도 즐기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뜻대로만 행하고자 하니 본래 쓰기 어려운 자들입니다. 또 그들 가운데에는 혹은 과격한 자도 있고 혹은 세상일에 어두운 자도 있고 또 명성을 좇는 자들도 그 대열 속에 섞여 있으니, 어찌 임금들이 미워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夫以世俗常情言之。則儒者。固可惡也。論治則遠引唐虞。諫君則責以難事。縻之不留。寵之不樂。惟在於欲行其志焉。固是難用。而其閒或有過激者。或有迂闊者。亦有好名者或廁乎其列。豈非世主之所可惡者乎
-『栗谷先生全書』 卷之六, 應旨論事疏


060906
실례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오죽 감동 받았으면 같은 내무실 동기들에게 익구형의 편지를 돌려 읽게 했겠습니까.^^; 다들 진심으로 감동하며 형이 써주신 『맹자』의 글귀를 가슴 속에 새기고는 훈련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제 막 이등병이 된 후배에게서 편지가 왔다. 정말 내 편지를 돌려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편지를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팽개치지 않고 아껴줘서 고맙다. 간만에 육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의 『맹자』 한 구절을 다음과 같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그의 몸을 수고롭게 하며 그의 배를 굶주리게 만들고, 그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뜻대로 되지 않게 흔들고 어지럽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분발하게 만들고 참을성을 기르게 해 지금까지 할 수 없던 일도 해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시련을 통해 심성을 단련시킨다(動心忍性)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다. 이건 누구보다도 내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행정법 책을 뒤적이다가 내 무식에 섬뜩해서 정신이 번쩍 들 때 그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고, 굶주리고, 궁핍하고, 흔들리고 어지럽힐지 모르겠으나 조금씩 나아진다는 믿음은 버리지 말자.


060907
어제 공인회계사(CPA) 합격자 발표가 났다. 아는 후배 하나가 붙었다며 환희에 찬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2차 시험에 합격해도 3차 면접이 있는지 알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CPA는 면접이 없는 관계로 최종 합격발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달콤한 축하 인사를 건넬 걸 그랬다.^^;

고시 공부는 공휴일궤(功虧一簣)라는 말을 늘 의식해야 하는 거 같다.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산을 높이 쌓지 못했다는 뜻으로, 힘들게 벌인 일을 마지막까지 견지하지 못해서 실패했다는 말이다. 『서경』에 "높이가 아홉 길이나 되는 산을 쌓다가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다 쌓지 못하고 실패했다(爲山九仞 功虧一簣)"라는 말이나, 『논어』에서 "비유하자면 산을 쌓는데 한 삼태기가 모자라 이루지 못했다(譬如爲山, 未成一簣)"라는 구절이 늘 고시생을 괴롭고 두렵게 만든다.

그래도 아홉 길이나 되는 성과물이라도 남겼으면 위안이라도 삼아볼 수 있겠지만 맹자는 더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신다. "뜻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마치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우물을 아홉 길이나 팠어도 샘에 이르지 못하고 그만두면 그것은 우물을 버리는 일이다(有爲者辟若掘井, 掘井而不及泉, 猶爲棄井也)"라니 조금 지나친 말씀 같다. 우물에 대한 비유보다는 산에 대한 비유가 좀 더 인간적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극초보 고시생 생활을 하다 보니 조바심이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되지 않고 너무 증폭된다. 간단한 정보 검색을 해봐도 공부할 양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이걸 다 언제 익혀 자유자재로 구사할까 염려스럽다. 나는 세속과 떨어지기 힘든 인간이라 고시 생활이 다소 불리하다고 자평하고 있다. 우등생은 아니었고 그저 제 때 수업이나 챙겨듣는 모범생에 불과한 내 한계가 얼마나 드러날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논술식 서술형 문제는 그래도 내가 자신 있어 하는 분야다. 통합력, 분석력, 정리력을 동원한 글쓰기를 배워보고 싶다.

더군다나 CPA처럼 내가 자신 없는 과목들만 있는 것도 아니며, 사법고시처럼 시험과목이 많은 것도 아니며, 외무고시나 입법고시처럼 사람을 무지 조금 뽑아 머리털을 쥐어 뜯게 하는 시험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것은 학문을 할 자신과 역량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문의 꿈을 포기한 마당에 제 아무리 까다로운 시험이라고 하더라도 못 이겨낼 건 없으리라.


* 簣 - (竹+貴)

060908
최형사(이하 최): 문목사... 당신은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소. 당신은 왜 이렇게까지 힘든 길을 걸어가는 것이오.
문목사(이하 문): 허허... 별거 있나? 올바르게 살려는 것이지...
최: ......
문: 내가 아는 것... 내가 올바르다고 믿고 있는 것. 그것을 실천하려는 것이지.
최: ......
문: 이 땅에서 태어나서, 그저... 내 아는 만큼 올바르게 살려는 것이지.
최: 그저... 착하게 살면 되는 거 아니겠소... 그게 올바른 게 아니오... 당신이 목사면... 목사답게... 착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니겠소...
문: 허허... 착하게 사는 거 좋지... 그런데... 착하게 사는 거랑... 올바르게 사는 거랑은 다른 것 같아... 남들이 하자는대로... 그게 틀린 것 같아도... 그저 반대하지 않고... 하자는 대로 하면 착하다는 말을 듣게 되지...
착하게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쉽네... 올바르게 사는 것이 어렵지...


강풀의 만화 『26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이럴 때만 감성지수(EQ)가 이럴 때만 높아지는 거 같아서 민망하다. 문익환 목사님은 착하게 사는 게 쉽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한참을 고개를 끄덕인다. 아울러 "올바르게 사는 것을 애초에 그 가능성마저 빼앗겨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고 외치던 곽진배의 울분에 찬 목소리도 많은 공감이 간다. 올바르게 살 여지를 좀 더 늘려나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1999년 3월 14일 민주화 운동가 계훈제 선생님의 부고를 TV뉴스를 통해 보고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저렇게 야위고 가냘퍼 보이는 사람이 이런 개명천지에도 투병과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니 너무 안타까웠다. 정치적 시비나 이념적 차이를 떠나 일평생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의 그 처연함과 쓸쓸함에 많이 상심했었다. 계훈제 선생님의 만년은 내게 늘 따가운 서글픔이다.

나는 내가 호인(好人) 소리 듣기 위해 무던 애써왔던 거 같다. 남들이 좋아하는 대로 맞춰 오지는 않았지만 기왕이면 선량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자는 거다. 그저 착하게만 사는 건 너무 쉽고 재미없다. 그 옛날부터 내가 많이 들어왔던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별명에 걸맞기 위해서는 좀 더 어렵지만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할 거 같다.


060909
9월 9일 토요일에 한자교육진흥회에서 주관한 한자자격시험 1급 시험을 치렀다. 지난 7월에 장렬하게 떨어진 한국어문회의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 시험 대신 본 시험이다. 기본적으로 평이한 시험이라 무난하게 합격하지 않을까 싶다. 이 여세를 몰아 어문회 1급 시험도 도전해야할지 고민 중이다. 당장 다음 주부터 올해 마지막 시험 접수를 시작하는데 말이다. 또 한자 공부에 몰두해버리면 당최 영어 공부는 언제 하느냔 말이다. 자꾸 영어 공부를 등한시하다 보니 내 목표인 "사회에서 요구하는 영어 최소수준을 살짝 넘기기"마저도 버거운데 말이다.^^;

여하간 오늘 본 시험 가운데 틀린 한자들을 복습해보면 다음과 같다. 血壓(혈압), 試寫會(시사회), 迂回(우회), 聚落(취락), 手帖(수첩), 隱蔽(은폐), 駐屯(주둔), 貯藏(저장), 普及(보급), 經驗(경험), 制約(제약), 電光石火(전광석화), 가르칠 誨(회), 시작할 肇(조), 비단 綺(기), 천둥소리 霆(정), 발끈할 勃(발), 여울 湍(단)... 회계학 문제풀이가 귀찮아서 눈으로만 풀면 막상 시험장에서는 손이 움직이지 않듯이, 한자 공부 또한 눈으로만 보면 독음이나 뜻 문제난 곧잘 맞추지만 쓰기 문제에서는 잔실수가 많다. 가령 수첩, 주둔, 저장, 경험, 제약, 전광석화 같이 내가 익히 알고 있거나 꽤 알고 지내던 단어들도 막상 시험장에서는 헛갈려서 엉뚱한 걸 써놓게 된다. 머리로는 아는데 손이 기억을 못한 것이다. 역시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도 해야 하나 보다. 아! 써보기 싫어서 눈으로만 훑어보고 마는 내 게으름이여!


060910
일전에 유홍준 선생이 백제의 문화를 잘 나타낸 말로 손꼽았던 삼국사기의 구절이 떠오른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 15년 기사에 “봄 정월에 궁실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았으며,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十五年 春正月 作新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는 말이 나온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을 삶의 자세로 삼아봐도 좋겠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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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28
칸트를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는 데이비드 흄에 대해 조금 찾아봤다. 흄은 지각으로 증명되거나 반증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합리론자나 경험론자들이 서로 공유하던 ‘신이 상수(常數)로 존재한다는 믿음’과 ‘과학의 대한 전폭적인 신뢰’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우리는 결코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과관계란 얻을 수가 없다는 주장은 오늘날 되새겨도 파격적이다. 흄의 회의주의는 절대성과 필연성을 세련되게 공박함으로써 우리 삶의 자유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할 수 있으리라. 흄이 가변적인 정념(감정)에는 그 섬세한 회의의 체를 동원하지 않음으로써 절대시해버리는 우를 범했다고 비판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러셀이 “흄 이후 형이상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가장 고민했던 것은 어찌하면 그를 반박하느냐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듯이 그의 주장은 치밀하고 엄정한 것으로 보인다(굳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내가 흄의 저작을 읽어본 것이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해본 것이다). 각자 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치열하게 다투다가 끝에는 “나는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니, 대부분이다. 우리가 탄탄했다고 생각했던 합리적 판단도 사실은 조금 더 포장한 믿음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니 섬뜩하다. 흄이 남긴 “철학자가 되어라. 그러나 철학 가운데서도 여전히 인간이어라!”는 말이 감명 깊다. 불완전한 인간이 품는 진리나 지식 또한 불완전함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러한 인간을 연민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인간 인식의 한계를 곱씹게 만들어 준 흄에게 앞으로도 좀 더 많은 가르침을 받아야겠다. 흄이 물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그가 무신론자라고 그가 요청한 도움을 거절했다고 한다. 물에 빠져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그 절대 고독감 속에서도 굽히지 않았던 그 정신을 흠모한다.


060829
* 이영환 교수님의 미시경제학 책을 헌책으로 주문하고 나서 받아보니 연필로 밑줄이 무진장 많았다. 나는 2시간 동안 지우개로 조심스레 지워서 거의 새책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 정성으로 이 책을 보자고 결심하기는 했지만 조금 민망하다. 내 감출 수 없는 결벽증을 긍정적으로 발현해서 염결성과 치밀함으로 가꿔야겠다.

* 반성은 하고 싶지만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아요. 주로 자기가 결정을 하면은,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결정을 하면은 후회하지 않고 반성을 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저도 그렇게 살고 싶고, 많은 분들이 정말 자기가 결정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젊으신 분들은.

이금희의 파워인터뷰에서 배우 장진영이 한 말이다. 나는 얼마나 내 스스로 결정하고 있을까?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 나의 2세 할아버지 문헌공 최충께서는 1005년(목종 8년) 甲科(文科)에 장원급제하셨다. 984년에 나신 최충 할아버지와 내가 999년의 시차가 나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2004년경에 먹고 살 방편을 마련했어야 했지만 지금도 헤매고 있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060830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였던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와 작가인 레이몬드 헐(Ramond Hull)이 1969년 공저한 책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에서 “조직체에서 모든 종업원들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상급자는 자신이 무능력해지는 단계까지 올랐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이는 위계조직 메커니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특히나 연공서열 같은 계층제(hierarchy)가 강한 관료 조직에서 이런 현상이 빈번하다. 책 말미에 글쓴이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올라가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높을수록, 많을수록 좋다는 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큰 희생을 치르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그러나 어디 그것이 말처럼 쉬운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 위를 향해 오르는 사람이 차분히 성찰하고 관조하는 시간을 확보하기란 여간 힘들다. 그러나 제 깜냥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과분한 자리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민망할 때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을 찬찬히 돌아보며 음미해보는 게 좋겠다. 나는 유능해지고 유식해지기 위해 애쓰면서도 내 자신의 무능을 겸허히 인정할 수 있는 용기도 품어야겠다. 자기보다 덜 무능하고 더 유능한 사람이 내 자리를 꿰차게 될 때 후생가외(後生可畏)라며 기꺼운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사람, 멋지다.


060831
나의 6세조 최윤의 할아버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을 지으신 것으로 유명하다(혼자 지으신 건 아니고 17인 공저였다^^;). 상정고금예문은 최윤의 등 17명이 왕명으로 고금의 예의를 수집, 고증하여 50권으로 펴낸 국가의 전례서(典禮書)이다. 쉽게 말해 법령집, 규정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상정(詳定)은 골라 뽑았다는 뜻이니 가려 뽑은 예법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명언명구 수집을 즐기는 건 어쩌면 조상님의 상정(詳定)하는 자세를 이어받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것저것 주워 모으고 정리를 잘 안 해두다 보니 좀 두서가 없고 체계가 없는 게 흠이다. 여하간 나만의 상정고금옥문(詳定古今玉文)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될 거 같다. 내 버릴 수 없는 습관이기에.


060901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에서 주인공 꼬마가 돈을 잃어버린 뒤
“내 돈을 주운 사람은 얼마나 운이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곤고로운 사건을 겪을 때라도
이런 정도의 넉넉함을 갖춘 낙관주의자가 되고 싶다.
사실 고민하고 인상 쓰고 비감에 젖어 살기에는
시간은 열심히 달리고 있고, 인생이 너무 짧다.
설령 내가 조금 손해본 것 같아 참을 수 없을 때
누군가가 이익을 봤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를.


060902
찬구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상갓집 일을 좀 도와주려 둔촌동 보훈병원을 다녀왔다. 문상객들이 나가면 자리를 치우는 걸 했는데 먹고 논 것에 비하면 별로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거 같다. 현식이와 나는 밥값을 못한 거 같다며 한탄했다. 찬구 아버님은 삼남이셨고 위로 누님이 두 분 계시다고 한다. 그런 관계로 찬구 아버님과 더불어 누님의 사위 즉 고모부들이 상주를 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다가 그런 광경을 목도하니 좀 민망했다. 뭐 어차피 한 가족 간에 그걸 따지기가 민망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두 누님들도 상주 완장을 차고 있는 게 보다 더 공평한 일이 아닌가 싶다. 아들 없는 집의 장례식 때 사위가 상주를 하는 관행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왜 그리 견고할지 알 것 같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경조휴가를 주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연월차 휴가에서 공제하는 청원휴가로 대체하는 관행은 이제 좀 줄었는지 모르겠다. 군인 친구의 말로는 외조부, 외조모의 사망은 규정상 청원, 위로 휴가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조금 헷갈린다. 친조부모나 외조부모나 민법상 직계존속으로 같은 지위라고 알고 있는데 말이다. 병역법시행령 제59조 행정관서요원의 휴가 규정에는 “본인 또는 배우자의 조부모, 증조부모, 외조부모, 외증조부모 또는 형제·자매가 사망한 때”에는 3일 이내의 휴가를 준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현역병의 경우 휴가 체계가 명문화된 것을 찾지 못했다. 일선 지휘관의 재량에 많이 맡겨진다고 하던데 마땅히 친조부모와 외조부모 사망시 대우가 동등해야 할 것이다. 이건 재량의 영역이 아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과연 양성 차별 문제가 여성에게 남성의 자리를 좀 떼어주는 의무할당제 같은 식으로 꾸려지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법적, 제도적 노력을 그칠 수는 없지만 남성 중심주의적 문화를 건드리려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늘어나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예종』이라는 책에서 여성이 사회적 차별을 받는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유익하지 못하며 사회 전체적으로도 손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여자도 군대 가라 식의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남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피해를 줄여주고,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수모를 덜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이처럼 오랜 관습과 관성의 문제에서는 제도만큼이나 조금씩 조금씩 의식이 바뀌는 것도 절실하다. 문화적 해법은 오히려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여자로, 남자로 살기보다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낙관한다.


060903
“2년 동안 서로 다른 주제에 관해 쓴 150여개의 칼럼에서 저는 할 수 있는 말을 거의 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슴속에 가득 고여 절로 흘러 넘쳐 나오는 좋은 글을 쓰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저는 찰랑찰랑 바닥이 보이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억지로 퍼내고 짜낸 못난 글을 독자 여러분께 보여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 글 쓰기를 잠시 멈춰야 할 때가 온 듯합니다.”
- 유시민, [가슴을 채워 다시오겠습니다] - 동아일보 2000. 6. 27

유시민 선생은 저수지에 물이 차서 저절로 넘치는 것처럼 자연스레 쓰이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밑천이 바닥나더라도 한 번 더 우려먹으면서 억지로 쥐어 짜내기 일쑤다. 내 생각의 발전이 없어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한 게 그 얼마더냐. 좋은 글이란 하고 싶은 말을 참을 수 없어서 내뱉어서 큰 울림을 주는 글이다. 그것이 무언가 배운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구에서건, 사람 사이에 부대끼다 불현듯 떠오른 따끈한 생각이든, 과거 어느 날의 아픈 기억으로 말미암은 서늘한 깨달음이든... 머리보다 마음이, 마음보다 손이 먼저 가는 글에서 우리는 많은 감명을 받는 것 같다. 그간 이런저런 잡글을 많이 써온 나는 얼마나 살뜰한 글들을 써왔을까. 자꾸만 커져가는 지적 허영심에 모자란 우물을 메마를 때까지 퍼 올린 것만 같다. 앞으로 당분간은 긴 글 쓸 호사를 누리기 힘들 거 같다. 그 전에 좀 더 노작들을 완성해두고 싶었는데 기획만 하다가, 생각만 다듬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야윈 가슴과 가벼운 머리를 채워야겠다. Input을 늘리고 Output은 가다듬을 시기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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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21
그 사람이 지은 죄 이상의 벌을 내리는 것은 또 하나의 죄를 짓는 것이다.
과도한 벌이 내려지는 경우는 대개 그 사람이 만만한 소수자이거나, 별 볼일 없는 비주류일 경우일 때가 많다.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 개인주의의 원칙이라면 보상과 문책이 누구에게나 공정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공만큼의 상을, 죄만큼의 벌을!


060822
대한상공회의소에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님을 모시고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마음(Feeling) 관리’를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한 동영상을 봤다. 휴학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PPT강의도 참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윤 교수님은 “기업이 곧 사람”이란 말이 있듯이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사결정, 종업원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축적되는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자본권력을 누리는 몇몇 대기업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적잖았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님의 말씀대로 “삼성의 공화국인가 공화국 속의 삼성인가”에 대한 성찰이 요긴하다. 윤 교수님께서 강의 말미에 강조하셨던 비트겐슈타인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돈다. 말조심해야겠다.

“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


-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


060823
현식장 폐쇄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모였다. 처음처럼을 많이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새벽에 현식이와 내가 익구닷컴에 쓴 "공인(公人)이라면"면 글을 놓고 제도 개혁과 의식 개혁에 관한 문제로 수다를 떨었다. 나는 시스템 개혁의 중요성에 동감하면서도 마음의 문제, 인심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고 우겼다. 공인들의 행동반경을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제도의 구비도 긴요하지만 공인의식을 갖추는 것 또한 의식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반문했다.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이 경제활동의 원동력임을 강조했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이기심도 가지면서 한편으로 자비심을 품는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닐까. 자기가 좋으면서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은 반드시 이기심만으로 구현되는 건 아닐 것이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장인정신은 이기심이라는 동인으로 묶기에는 그 품이 넓다. 복잡다단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제도 개혁을 얼마든지 꾀할 수 있다.


060824
철구 입대 환송회에 스리슬쩍 참석했다. 후배들 몇 명을 모아놓고 일장연설(?) 비슷한 걸 늘어놓았더니 집에 오늘 길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도 잘 해내지 못했던 일을 후배들이 더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들이니 그리 민망해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후생가외를 느끼는 건 두려우면서도 가슴 뛰는 일이다. 나를 뛰어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후배들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면 그 또한 슬픈 일이다. 나는 내 후배들이 내 어줍잖은 잔소리도 잘 가공해서 듣고 그 좋은 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사람이 하찮다고 그 사람의 말과 글까지 무시하지 않고 경청할 수 있는 후배들의 형형한 눈빛을 바라보는 건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060825
경북 영주 답사를 다녀왔다. 소수서원과 부석사를 둘러봤는데 한나절 코스로 훌륭한 것 같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유명하다. 사액서원이란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 받고 면세,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한다. 명성에 비해 규모는 무척 소박하다. 특히 서원의 원장과 교수가 기거하던 스승의 집무실인 직방재와 일신재, 유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인 학구재와 지락재가 매우 가까이 붙어 있었다. 학구재와 지락재가 스승의 그림자를 피해 뒷물림하여 지어진 점은 재미났지만 그래도 서로 조금 불편했을 거 같고 그 불편함도 수양의 방편으로 삼았을 것을 생각하니 옛사람의 교육열도 대단했구나 웃음이 나온다.

부석사는 너무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에 집착한 나머지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거 같다. 무량수전 주위만 맴돌고 그럴듯한 기념사진 남기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주위 풍광을 보고 다른 건물들과의 조화를 보거나 하는 식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국보 제45호인 소조여래좌상은 우람한 풍모가 매혹적이었다. 국보 제17호 무량수전 앞 석등도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라는 찬사에 걸맞게 돋을새김 된 보살상이 기품 있었다. 국보 제46호인 조사당 벽화를 좀 보고 싶었는데 실물은 보지 못했다. 무량수전 안에 복사본을 걸어두었고, 국보 제19호 조사당의 원래 벽화 자리에는 새 불화를 그려놓았는데 그림 솜씨가 엉망인지 색채 배합이 어색한지 그리 정감이 가지 않았다. 조사당 벽화를 떼어서 따로 유물보관동에 옮겼다고 하는데 일반에 공개를 안 하는지 아니면 다른 전각들을 신경 쓰지 않아서 보는 걸 놓친 것인지 헷갈린다. 여하간 조선의 폐불 정책으로 말미암아 사장된 고려불화들이 적잖을 생각을 하니 배가 아팠다.

아직 더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은데 차차 짬을 내서 둘러보기로 하자. 문화유산 완상은 속 좁은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평생 취미 아닌가.^-^


060826
지난 3월 행정고시 공부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시작하더라도 반년의 말미를 둬서 9월 말까지는 대책 없이 자유와 유흥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나는 반년의 여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읽고 싶은 책들을 미리 읽어두자고 했으나 수험 서적들을 들춰보았고,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어 자꾸 머뭇거렸다. 결국 반년의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슬금슬금 이것저것 뒤적거리고 있다. 내 나름대로 금석맹약을 했지만 결국 막판에 지켜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조금 일찍 덜 놀고 더 공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점도 많다.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도 잘 지키지 못하는 내가 과연 얼마나 더 유식해지고 유능해져서 그것을 써먹을 수 있을지 민망하다. 앞으로 내 자신과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여하간 이제껏 나를 이끈 힘 가운데 조바심이 적지 않았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고 애써보자.


060827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시칠리아 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 왕 디오니시우스의 신하 가운데 다모클레스(Damocles)라는 사람이 있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왕을 부러워하던 다모클레스가 안쓰러웠던지 디오니시우스는 그에게 임금의 자리에 앉아보라고 권한다. 얼씨구나 싶어 왕좌에 오른 다모클레스가 문득 천장을 올려다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카락 하나로 묶인 칼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권력의 자리가 밖에서 보는 것처럼 마냥 화려하고 안락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1961. 9. 25. UN 총회에서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핵무기를 "인류에게는 다모클레스의 칼"이라고 말하며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함으로써 유명해졌다고 한다. 다모클레스의 칼은 인간세의 불확실성을 표상하고 있다. 다모클레스의 칼이 성공을 자만하는 순간 툭 떨어진다는 비유처럼 조금 이루었구나 싶을 때 밀려오는 유혹을 뿌리치기는 여간 어렵다. 칼이 여차하면 툭 떨어져서 부정부패를 함부로 저지르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 구축도 긴요하겠지만 늘 머리 위에 혹은 마음 속에 나를 향하고 있는 칼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성찰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도 개인에게는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각성된 개인의 힘을 믿는다. 내 머리 위의 다모클레스의 칼은 튼튼하게 잘 매달려 있을까?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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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오랜 숙원이었던 일기 쓰기에 도전합니다. 일단 무조건 매일 쓰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그 날 못 쓰면 다음 날, 다다음 날이라도, 아니면 예전에 썼던 글 조각을 인용하더라도 날마다 한 가지 생각씩을 하고 살았음을 기록하려 합니다. 일주일 단위로 등재할 예정입니다. 제 게으름이 두려울 뿐입니다.^^;


060814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기록문화 유산을 자랑한다. 조선시대 임금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작성한 ‘승정원일기’ 3,245책의 글자수는 2억4,125만여자에 달한다. 중국 명나라 294년의 역사를 기록한 명실록의 글자수가 1,600여만자인 점과 비교하면 그 방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16대 인조(재위 1623~1649)부터 고종까지 승정원일기 중 한글로 옮겨진 것은 고종때 것 뿐이다.

꼭 번역해야 하는 고전은 얼마나 되고, 언제쯤이면 ‘까막눈’신세를 면해 조상의 남긴 글을 쉽게 볼 수 있을까. ‘국학진흥을 위한 기획조사 연구’에 따르면 한 해 동안 60여책을 번역하는 현재의 여건 대로라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국가 기록물(국고문헌) 전체 3,300여책 중 번역이 안된 2,500여책, 문집 등 일반 고전 가운데 번역이 필요한 4,000여책을 모두 번역하는 데는 100년이 걸린다.
- “한자의 벽에 갇힌 전통을 구하라”, 한국일보, 2006. 07. 28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국보 제153호 일성록(日省綠), 국보 제 303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같은 유구한 기록정신을 이어 받아 나도 흉내를 좀 내봐야겠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참 무섭다. 그러나 기록을 통해 내 자신에 좀 더 엄격해지는 계기로 삼도록 하자.


060815
고이즈미가 결국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러 갔다지만 나는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동빈, 홍익이와 함께 지난 7월에 봤던 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전을 다시금 보니 역시 두 번째라 그런지 그 때 놓쳤던 느낌들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북한은 1998년부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황하문명과 함께 '대동강문명'을 추가하여 이를 '세계 5대문명의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셋이서 그걸 가지고 조금 구박을 했고, 국보, 준국보 지정을 너무 남발하는 게 아니냐며 좀 투덜거렸다. 만약에 북한 관계자가 우리의 말을 들었다면 좀 상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잖은 명품에는 마땅한 찬사를 보냈으며, 회화가 부족한 북한 문화유산의 형편에는 깊은 안타까움을 보냈다. 나는 신문지상에서 읽은 대로 고려 태조 왕건상에서 남근이 2cm로 축소되어 나타난 색욕을 멀리하라는 불교식 표현임을 설명했고 그걸 놓고 또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웠다.

상설전시관 관람이 이번이 다섯 번째이기는 하지만 갈 때마다 새로 눈에 들어오는 문화유산들이 참 많다. 회화 같은 경우 주기적으로 교체를 하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었다. 한 권의 책으로 된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은 교체 전시를 쪽수만 바꾸면 된다며 박장대소했다. 고려 묘지명(墓地銘) 기획특별전에서 최윤의 할아버지 묘지명과 기념촬영을 했다. 해주 최씨 선조이신 최윤의 할아버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상정(詳定)은 골라 뽑았다는 뜻으로 고금의 예문을 모아 편찬한 책이니 좀 거칠게 말하면 명언명구 모음집 같은 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명언명구 수집을 즐기는 건 어쩌면 조상님의 피를 좀 이어받아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상정고금예문을 1234년(고종 21년)에 금속활자로 찍어냈다는 기록이 있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국민의 성금으로 되찾아 온 선무공신 김시민 교서를 보면서 해외로 반출된 문화유산을 찾으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지 한탄을 했다. 홍익이는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를 얼른 찾아와야 한다고 역설했고 과연 얼마나 돈이 들지 서글픈 계산을 해봤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목판을 감상하며 고산자 선생의 장인정신에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국보 제302호 진주 청곡사 괘불은 길이 10m, 폭 6.3m에 이르는 지라 정말 엄청났다. 괘불(掛佛)은 글자 그대로 '걸어 매다는 불화'를 말한다.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를 그린 이 괘불은 본존불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 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화면 가득히 배치했다.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걸개그림인데 이 때 야외에 설치하는 법단이 야단(野壇)이며, 괘불이 걸리는 날에는 절에 사람이 북적거렸기에 야단법석이란 말이 나온 건 이제 상식이 된 거 같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는 이 거대한 불화를 전시하면서 소책자를 발간했는데 중앙박물관에서 특정 유물 1점만을 대상으로 한 이런 도록 발간은 사상 처음인 것을 보인다.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문화유산을 선별해서 이런 소책자를 많이 발간했으면 좋겠다. 높아진 문화수요에 공급이 절실하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케인지언이 되어 본다. 불화 전시실을 지나며 나는 또 고려불화의 90%가 외국 특히 일본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광복절이라 보니 일본이 조금 더 미워졌다.

일전에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가장 마음이 끌리는 유물로 꼽은 것이 반가사유상 전시실 가는 길목에 전시된 10세기 고려 철조불두(鐵彫佛頭)인데 나 또한 무척 좋아한다. 다정다감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그간의 근심걱정이 가벼워지는 치유효과가 있는 것 같다. 독방을 쓰시는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앉아서 바라보니 은은한 미소가 더욱 그윽하게 다가왔다. 셋이서 미소를 찬탄하니 안내하시는 분께서 국보 제83호에 비해 미소가 더 깊다며 맞장구를 쳐주셨다. 개인적으로 국보 제78호에 금박이 좀 더 남아 있었더라면 인기가 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준(犧尊, 소 문양의 술잔)과 상준(象尊, 코끼리 문양의 술잔)은 제기로 종묘나 문묘에서 행해지는 제사에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익살스런 모양에 한참을 감상했다. 술을 담는 야외용 합인 주합(酒盒)도 인상적이었는데 위와 아래는 안주를 담거나 술잔으로 대용하고, 가운데는 술병인 매우 재미난 유물이다. 오늘도 마음의 양식을 과식했다. 기획특별전 공짜표를 선사해준 동빈이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8월 가기 전에 호림박물관 국보전도 보러 가야겠다. 나는 내 것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 거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쓴 거라 좀 더 내용 보강해서 익구닷컴에서 "광복절 기념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이란 제목으로 새로 썼다.


060816
수현, 준식, 준석이와 함께 현식이네서 잡탕찌개를 끓여 먹으며 엠티 기분을 냈다. 현식이가 기숙사 입성에 성공하면서 현식장 폐쇄가 못내 아쉬운 이들은 땀을 흘려가며 환담을 나눴다. 그러다가 준석이가 대뜸 묻는다.

“너 아직도 노사모냐?”

뭐 이런 질문 한 두 번도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좀 당혹스럽다. 왜냐하면 묻는 사람이 노사모의 개념 정리를 잘 안 해주기 때문이다. 노사모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회원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여론조사에서 20% 정도 나온다는 대통령 지지자들을 일컫는 말인지, 아니면 열린우리당 친노 계파를 지칭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사실 뭐 그런 세세한 부분을 알았다면 그렇게 단순하게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을 게다. 차라리 참여정부나 집권여당의 거시적 혹은 미시적 정책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자고 했으면 얼마나 유익했을까? 너 노사모냐 아니냐 같은 마녀재판보다는 종합부동산세 문제나 한미FTA 문제 같은 걸로 안주를 삼았으면 좀 더 생산적이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세월의 무게를 잘 견뎌온 우리 우정이 아쉬워서 하는 소리다.

지난 2006 월드컵 결승전 당시 프랑스팀의 지단이 이탈리아팀의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한 이유가 “지단 너, 노사모지?”라고 말해 지단이 참을 수 없었다는 유머가 나돌기도 했다. 어쩌다가 노사모라는 상징성이 이렇게 야유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까? 일단 노무현 팬클럽 의미로서의 노사모는 이제 역사에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더 이상 무언가 새로 이룰 동력이 사라졌다는 판단에서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제는 저무는 일만 남지 않았나 싶다. 화려한 빛깔과 짙은 향기를 더 붙들어 두려고 안간 힘을 쓰기보다는 고이 지는 꽃잎이 되길 바란다. 노사모라는 이름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다만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로서의 노사모가 아닌 노무현이 표상했던 원칙이나 정신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것이다.

노사모란 이름으로 모였던 사람들이 어떤 이들인가? 노사모의 상당수가 현재의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지지나 호감을 나타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열린우리당의 창당명분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열린우리당은 ‘깨끗한 정치, 잘사는 나라’,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정당’, ‘백년 가는 정책정당’라는 목표를 걸었다.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질타를 받을망정 한국 정당사에서 매우 빼어난 모습으로 등장했다. 중산층과 서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지역주의를 극복해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루고,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치를 구현하고, 평화통일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는 건 열린우리당뿐만 아니라 모든 수권정당의 목표가 될 수 있고, 독점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꿈을 품는 사람이 노사모라면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노사모를 칭하겠다. 그러나 아마 이런 의미도 아닌 것 같다.

앞으로는 누군가를 노사모라고 삿대질하는 친구들에게 당최 노사모가 뭘 뜻하는지부터 반문해야겠다. 그래야 가타부타 답을 해줄 것이 아닌가. 좀 더 자유로우면서도 정의로운 세상이란 어떤 것인가를 궁리하는 친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가까운 친구들과 복선 없이 허심탄회한 토론을 나누는 건 상상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060817
영화 괴물의 흥행 돌풍에 김기덕 감독은 “한국영화의 수준과 한국관객의 수준이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이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며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괴물의 쾌속질주에서 우리네 집단주의 정서를 확인하는 건 오버일까? 몇 년 만에 인터넷 세상이 저열하게 바뀌고 있는 것 또한 다양성을 감내하지 못하는 우리의 편협함 때문은 아닐까?

민심이 천심이라고 믿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신봉하던 나였지만 요즘은 자꾸 회의가 든다. 대의 민주주의에 확신이 없어지는데 버나드 마넹 교수가 지은 [선거는 민주적인가]라는 책을 좀 보면 해법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기덕 감독의 표현을 빌려 한국정당의 수준과 한국유권자의 수준이 잘 만났다고 말하면 지나친 처사일까?


060818
내가 생각하는 바를 분명히 밝히는 것과
타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비판하는 것
(혹은 미감을 거스르지 않게 하는 것)
이 두 가지 것의 균형을 잡는 일이 참 어렵다.
진정성이 담긴 내 선의를 인정받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060819
고심 끝에 행정고등고시 재경직에서 일반행정직 응시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일단 책을 사 모으는 습성 탓에 재경직 필수과목인 재정학 교재를 몇 권 사놓은 게 조금 민망하지만 역시 내 마음이 좀 더 끌리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요 며칠 간 행정고등고시 재경직 선택과목 선정을 놓고 너무 난항을 겪었다. 내 전공이기도 한 경영학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기피 과목이 되어 도전하기 망설여졌고, 세법이나 통계학, 국제경제학도 내가 섣불리 선택하기 꺼려지는 분야다. 남은 게 회계학과 상법이었는데 회계학은 명색이 전공이지만 나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다. 행시 회계학 시험은 CPA시험과 달리 계산문제는 거의 출제되지 않고 주로 이론적인 질문 등이 주된 출제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학부시절 내 회계학의 처참한 전과들을 보면 호기롭게 고르기가 힘들다. 상법의 경우 법학에 무식한 내가 감내할 수 있을지 적잖이 걱정스럽다. 비록 선택과목 비중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으로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내 자존심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이런 시험 공부를 안 하고 다른 공부를 한다면 그에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면서 하는 시험 공부인 만큼 반드시 성사시켜야 내 기회비용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혹 남아 있을 마음의 장애물은 조속히 걷어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행시 재경직에 도전해서 그 핑계로 경제학과 재정학 공부를 좀 해보자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 일반행정 필수과목에는 재정학 대신 정치학이 들어가고 선택과목은 재경직의 그것과는 달리 고르기가 조금은 무난한 편이다. 정책학이나 지방행정을 고르고 남는 화력을 경제학과 행정법에 투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개의 고시생들에 비해 출발이 다소 늦은 편인 나로서는 좀 더 효율적인 수험 전략을 구사해야 했다. 내가 하려는 일이 결코 소풍을 가듯이 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이제 알겠다.

요즘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바뀌는지라 아직 좀 더 궁리할 시간에 최종결정이 바뀔 가능성은 있겠지만 이쯤 되니 배수진을 치는 느낌이다.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역수의 물이 차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는 노래를 읊으며 자객 형가(荊軻)는 훗날 진시황이 된 진나라 왕을 암살하기 위해 떠났다. 형가가 역수를 건너지 않고 지체하자 태자 단(丹)은 그가 변심하지는 않은지 의심했다. 형가는 노하여, “비수 한 자루를 가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진나라로 들어가는 와중에, 제가 아직 머무르고 있는 까닭은 제 길벗을 기다려 함께 떠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연암 박지원은 “형가가 기다린 사람이란 이름을 지닌 어떤 실재하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형가가 기다린 사람은 제 자신의 굳은 결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제 자신의 시린 마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지를 지닌 인간은 그토록 아름답고 무섭다.

내일은 희망차면서도 불안하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자고 하지만 조바심도 나고 머뭇거리기도 한다. 오지 않는 길벗을 기다리듯이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버려가며 무엇을 이루려는 결단은 참 힘들다. 모든 빼어난 것은 드물기에 아름다운 지도 모른다.


060820
외대 근처 신고서점에 가서 책 54권을 갖다 주고 오만원어치 책을 바꾸고 만원짜리 한 장을 받아왔다. 사실 내놓은 책들에 포함된 두툼한 대학교재 두 권 값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보면 너무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헌책 팔아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헌책으로 6만원 상당의 돈을 벌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 나름대로 양질의 도서를 엄선해서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푸하하 평소에 신고서점에서 좋은 책들 값싸게 많이 사왔던 터라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흥정 같은 거 없이 부르는 값에 책을 내려놓고 왔다. 책을 한번 바꿔보니 앞으로 도서 충동구매를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돈주고 산 책도 헌책방에 내놓을 때는 정말 얼마 못 받는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정말 소중한 경제 공부였다고나 할까. 부디 내 책들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 손에 값싸게 쥐어졌으면 좋겠다. 온오프라인 헌책방에 책을 내놓으려는 분들은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팔릴 법한 책들을 내놓아야 한다. 생각보다 값을 적게 쳐준다고 성내기 전에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내 책들이 전해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여유로울 것이다. 책 소유욕만큼이나 책 보시는 아름답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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