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319
KBS 스페셜 <참여정치의 추억>은 상식과 원칙, 유쾌한 개미들의 반란을 꿈꾸며 창당했던 개혁국민정당의 소멸 이후를 담담히 술회한다. 2002년 11월 16일 창당식을 가지고, 2003년 11월 1일 해산투표를 하며 사실상 종지부를 찍은 개혁당은 내게도 애틋한 그리움이다. 나는 개혁당의 태동부터 몰락까지 1년여의 격정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처음 겪어보는 정당 홈페이지를 거의 매일 들렀던 거 같다.

2003년 법적으로 투표권이 생기고, 정당에 가입할 권리가 생겼을 때 개혁당원이 되는 걸 많이 검토했다(나는 여전히 개혁당 정도의 포지셔닝을 가진 정당이 한국 정당에 하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점입가경의 신당 논의를 지켜보다 때를 놓쳤다. 만약 내가 개혁당원이었다고 해도 개혁당 해산 투표에 찬성표를 던졌을 듯싶다. 난 민주노동당 지지자들만큼의 확신과 끈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강경 보수파의 독점을 얼른 해체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개혁당 일부를 흡수 통합한 열린우리당은 얼마 전 기간당원제를 스스로 허물고, 날림 전당대회를 치름으로써 제 존재 가치를 생존욕구로만 한정짓고 말았다. 이 정당에서 작은 것이나 실현하려고 했던 무수한 꿈이 아프게 깨졌다. “개혁당 같은 정당 만들 때 다시 연락해!”라는 피켓 문구가 유독 눈에 박히는 것은 개혁당 같은 시도가 다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짙은 회의 때문이리라.

당원과 지지자를 실험동물로 쓰려는 이들을 단죄하지 못하는 한 개혁당의 실패는 되풀이된다. 진정한 생활정치는 남 좋은 일이 아닌 나 좋은 일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데서 시작한다. 염치없는 바람이지만 개혁당과 열린우리당이 못다 이룬 백년 정당의 꿈이 다시 싹 틔우길 바란다.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적은 눈물만으로도 결실을 거뒀으면 좋겠다.


070320
노무현 대통령님이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급 행정 지도자는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는 말씀하셨다. 정치와 행정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거리가 있는 만큼 자세한 건 덮어두도록 하자. 하지만 장관처럼 고도의 정책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현실 정치에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점은 명징하다.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정치활동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선출직, 임명직 공무원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에 견주어 일반 공무원들이 누리는 자유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데 있다. 노 대통령님께서 정치에 무조건(!) 무관해야 하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셨으면 좋았을 거 같다.

일전에 민주노동당의 당우(黨友) 제도의 적법성 여부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활동이 원천봉쇄된 것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헌법재판소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헌법 제7조 2항을 의무로 해석했다. 그런데 헌법 제6조 2항(외국인의 지위), 제8조 1항(복수정당제 허용) 등 다른 헌법조문들에서 “보장된다”는 구절에서 의무가 도출되지는 않는다. 제38조(납세의 의무)와 제39조 1항(국방의 의무) 조항에서는 “의무를 진다”고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의무를 “보장한다”는 건 대다수 한국어 사용자들의 상식에 어긋난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1조를 위배하고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외국의 사례에 비춰 봐도 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정치활동 규제가 엄격한 측면이 많다. 정당정치 제도화를 위해 청소년 및 대학생 정치교육의 내실화와 더불어 정치활동의 저변을 높이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자유는 대학교수와 국무위원들만 누리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070321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20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 사회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마법에 빠져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호는 ‘목소리 큰 일부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으로도 비쳐질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21일자 <기업 하기 나쁜데 살기 좋은 나라도 있나>라는 사설에서 일류국가들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기업 하기 더 좋은 나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이 사설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보다는 소비자,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권 위원장의 주장에 대해 “마차(馬車)를 말보다 앞에 놓겠다는 격이다. 기업 하기가 나쁜데 어떻게 소비자와 국민이 살기 좋아질 수 있나”고 반문한다. 불학무식한 내가 건드리기에는 너무 어려운 주제다. 기업의 성장과 전체 경제 주체들의 윤택한 삶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지에 대한 통계자료를 쉽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겨레신문 2월 3일자 칼럼에서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순이익은 2000년부터 2005년 사이 네 배나 늘었다. 반면, 가계의 소득 증가는 경제성장률을 크게 밑돌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해법도 있어야 할 듯싶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최대한 전경련 수준으로 주창하시려는 분들은 제 주장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한 논거들을 합리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라느니 하면서 공포의 동원을 부추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시장만능교를 세속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수사가 가뜩이나 비대한 자본권력의 살을 더 찌우는 데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가 그리는 사회의 주된 특징은 획일성이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개인의 자유를 고양해 공공성을 구축하는 활사개공(活私開公, 사를 살리면서도 공을 추구한다)을 지향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나라 말이다.


070322
너는 사케를 언급하며 잘 모르는 분들을 배려해 정종이라는 용어를 썼겠지만 이제 알 만큼 알려진 만큼 청주라는 말을 써도 괜찮을 거 같단다. 정종(正宗)은 그리 바람직한 명칭이 아니라고 생각해. 정종은 일제 강점기 때 들어온 일본의 청주 상표 중 하나가 널리 쓰여 일반 명칭처럼 잘못 굳어진 것이니까. 백제 사람들이 일본에 청주 제조법을 전파했다고도 하니까 주객이 전도된 셈이야. 물론 일본은 주조 기술을 발전시켜 청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고유의 술인 사케(Sake)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원조라고 주장하기가 좀 머쓱하지만.

여하간 정종은 일본의 청주 상표 가운데 마사무네라고 불리는 사케의 한 브랜드일 뿐이지. 가령 한 때 진로가 수도권 소주 시장을 독점하던 시절 그냥 “진로 주세요”했듯이, 내가 버블에서 종종 즐기는 벨기에산 흑맥주 “레페 브라운 주세요”하는 것과 비슷한 셈이야. 일본 술 중에 예를 들자면 “아사히 주세요”하는 것과 비슷하고. 이처럼 상표명이 대표화된 예로 봉고, 워크맨, 레미콘, 미원 등이 있어. 술에서는 프랑스의 샹파뉴(Champagne) 지방에서만 생산되는 거품 나는 술인 샴페인이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일본에서는 정종이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정종이라는 술 브랜드가 많다고 하지만 우리가 그걸 따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정리하자면 정종은 일본말 마사무네를 우리 음으로 읽은 것이며, 소주나 맥주 같이 술의 종류를 나타내는 말이 아닌 브랜드명인지라 진짜 정종 상표를 마실 때만 한정해서 말하는 것이 비교적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청주 혹은 일본 청주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일본 국왕의 호칭 문제도 참 난감한 문제지. 일왕(日王), 일황(日皇), 천황(天皇) 혹은 덴노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사실 나도 헛갈린다(요즘 일본 하는 꼴을 봐서는 확 왜왕이라고 부를까도 싶지만^^;). 야채(野菜, やさい)가 일본식 용어임을 알면서도 채소(菜蔬)를 어색해 하고, 순우리말인 푸성귀나 남새는 거의 잊어버리는 현실을 보면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보다 더 중요한 건 일상의 실천인지도 모르겠다. 본의 아니게 잡설을 늘어놓았어. 너그러이 헤아리시길.^-^

-  <정종의 바람직한 명칭을 찾아서> 전문


070323
매일유업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이하 하얗다)’가 인기다.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에 이어 단숨에 시장 2위를 차지했다. 바나나 우유는 노란색이란 고정관념을 깬 ‘하얗다’는 색소를 넣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해 투명 재질의 용기를 써 흰색을 부각시켰다.

바나나의 속살은 본래 하얗다. 노란 껍질에 미혹되어 그 알맹이를 몰라봤던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한다. 어쩌면 바나나 우유 시장의 독점을 막기 위해 ‘하얗다’를 소주 ‘처음처럼’ 같이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달달한 걸 좋아하는 내가 단맛을 최소화했다는 이 녀석과 쉽게 친해지기는 힘들게다. 그러고 보니 바나나는 원래 안 달다.^^;


070324
사실 우이동은 집에서 가까운 편이 아니다. 하지만 엠티를 참석한답시고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그곳을 향했다. 늦게 찾아간 만큼 날은 금세 밝았고 나는 도망치듯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내 옆을 오래 지켜준 태순이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스치듯이 지나간 숱한 후배들과 푸근한 한 때를 공유했을지 자신이 없다. 내 딴에는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짜내서 후배들을 만나는 건데 상대방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후배로서의 나도 변변치 못하지만, 선배로서의 나는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녀석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내세움의 잣대는 세간의 평가와 사뭇 다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마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학부생 시절에 뭔가 대단한 걸 이루기는 어렵다고 해도 돌아보면 딱히 해놓은 게 없어 부끄럽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게 반드시 서로의 치밀한 계산 하에서 이루어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피차 해놓은 거 없는 적수공권(赤手空拳)끼리 의지를 북돋고 시름을 달래는 건 정겹다.

‘손님이 짜다면 짠 것’으로 여기는 음식점은 손님의 마음을 많이 얻었으리라. 나도 내 진정성을 다해 사람을 대하면서 나를 향한 충언을 귀담아 들어야겠다. “내가 그린 나보다 타인이 그린 내 모습이 설득력이 있다”는 칸트의 말씀은 재미나다. 그는 대상이나 사물이 이미 완성된 상태로 주어져 있고 우리가 그에 따라 모사하거나 반영함으로써 인식이 성립하는 대상 중심의 인식론을 반박했다. 주어진 대상을 인간이 어떤 구체적인 대상이나 사물로 만들어서 인식한다는 인간 중심의 인식론을 설파한 그인 만큼 타인에 비친 자기 모습에도 관심을 보냈을 듯싶다. 나도 점점 그런 거 같다. 내 둘레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걸까?


070325
<하얀 거탑>이 종영된 지 2주가 되었는데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여진(餘震)이다. 다면적 인간이었던 장준혁에 대한 내 감정도 복합적이다. 나는 그를 마음껏 미워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고백했듯이 내 안의 장준혁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치열함과 그의 갈망에 미치지 못하는 내 흐리멍덩함이 더 미웠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이 습관처럼 말하던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는 길”이란 건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얼마나 의연하게 지는 게임에 참여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이 나가버려서 다시 돌아오기 힘들지 않도록 잘 살필 수 있을까? 마냥 느긋한 걸 보면 내가 아직 돈맛을 덜 보고, 권세의 달콤함에 취해보지 못한 모양이다.

Posted by 익구
:
070312
천하에는 하나의 재능도 없는 사람은 없으니 만약 많은 사람을 모아 각각 그의 장기를 써서 재능을 서로 통용하게 한다면, 세상에는 버려진 사람이 없을 것이고 사람은 재능을 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天下無無一能之人。若聚十百人而各用其長。便爲通才。如此則世無棄人。人無棄才矣。

- 정조대왕, 『홍재전서(弘齋全書)』卷百七十二 日得錄十二 人物[二]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다(天下無棄人)”에서 따온 무기(無棄)라는 내가 지어 쓴 호(號)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옛 글에서 무기(無棄)의 용례는 대부분 지도자가 아랫사람의 장점을 잘 취합하고 함부로 사람을 내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할 때 쓰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다”로 풀이해도 될 것을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다”라고 한 것도 시빗거리다. 내가 사람을 부려 쓸 수 있는 위치에 서고 싶다는 욕망이 조사 ‘-은’에 담겨 있는 건 아니었을까? 경계할 일이다.

묵자는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愛人若愛其身)”며, “천하에 남이란 없다(天下無人)”고 설파했다. 묵자의 겸애(兼愛)까지 나아가지 못한 건 실천하지 못할 것을 염려해서다. 天下無人보다 天下無棄人이 보다 실천가능하다는 핑계를 대본다. 내 게으름을 현실주의를 방패막이 삼아 보호하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여하간 부족한대로 무기(無棄)에라도 충실해보자.


070313
이명박 전 서울시장님의 출판기념회에 1만여명(혹은 2만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한나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는 관례적으로 오후 2시에 해오던 개회식을 오전 10시로 앞당겨 출판기념회 참석을 위해 개회시간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지방에서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참석한 것을 보고 동원 정치의 의혹을 제기하는 게 부질없을 정도로 열성적 지지자들의 향연이었다.

이 전 시장님은 연설에서 “투자는 성장을 가져오고 성장은 더 나은 복지와 분배의 기반을 마련한다”며, “발전이 바로 통합”이며 “모두가 다 잘 살면 국민 통합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고 역설하셨다. “불균형은 발전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소해야”하며 “성장과 발전이 생산적 사회 통합을 이뤄낼 것”이며 “결국 통일도 경제”라는 주장이 흥미롭다. 대한민국 747을 향한 도전을 시작하자며 ‘7% 성장, 4만불 시대, 7대 경제대국’을 목표를 제시한 것도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명료해서 알아듣기 쉬웠다.

책 홍보 영상물에 전날의 자기 약속을 잊지 않고 실천한다(久要不忘平生之言)는 논어 한 구절이 인용되었다. 공자가 인간완성의 조건으로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과 함께 제시한 말씀이다. 책임 윤리가 부족한 지도자들이 넘치는데 약속의 실현을 거듭 다짐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본 출판기념회 가운데 가장 성대히 치러진 이날 행사를 보면서 도덕경 한 구절을 건네고 싶어졌다. 하여간 이 모난 성격이란.

부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긴다(富貴而驕 自遺其咎).


070314
어제 강남역 회동을 기다리다 강남 교보문고를 잠시 들렀다. 김원중 건양대 교수님이 진수의 삼국지를 완역해 네 권으로 펴낸 것을 발견했다. 삼국지연의에 비하면 재미도 덜하고 가독성도 떨어지지만 삼국지 마니아들을 설레게 하고 삼국지 읽기의 지평을 넓힌다는 점에서 가슴 깊이 환영한다. 11만원짜리 전질이지만 도서 구매 목록에 올려놓고 두고두고 나를 괴롭힐 녀석들이다. 사실 삼국지가 열악한 편집 체계에도 불구하고 명맥을 유지한 것은 배송지(裵松之)가 단 주석의 힘이다. 배송지주는 원문에 맞먹는 분량이라고 하는데 이번 완역본에도 배송지주는 발췌해서 실려 아쉬움을 남긴다.

처음 뵙게 된 97학번 재현형님, 상일형님과 두 번째로 뵙는 상준형님을 비롯해 07학번까지 10년의 시차를 갖고 모인 자리는 푸근했다. 97학번 선배님들 입학 10주년 기념으로 여는 홈커밍데이를 기획하며 인해전술이나 물량공세가 아닌 농익은 우애와 은근한 진정을 나누는 자리를 고심했다. 양광모 휴먼네트워크연구소 대표는 사람은 최소한 21번은 만나야 자신의 인맥으로 만들 수 있다고 귀띔하신다. 나는 비교적 붙임성이 없는 편이다. 붙임성은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접근성을 주로 의미하지만 오래도록 인연을 잘 유지해가는 지속성을 뜻하기도 한다. 접근성이든 지속성이든 내가 좀 더 노력해야할 대목이다.


070315
<“한번쯤 ‘인용을 하나도 쓰지 말고’ 글을 써 보는건 어떨까?”라는 댓글에 대한 답변>

최근에 퇴계의 <성학십도>, 율곡의 <성학집요>를 통독했는데 대유학자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책의 본문 70~80%가 남의 글 편집(짜깁기라고 하면 너무 경망스럽게 보일까봐 자제했어요)이더라고요. 물론 이렇게 신나게 우려먹는 게 유가식 글쓰기의 특징임을 감안하더라도 좀 지나치다 싶었어요. 하지만 눈을 흘기면서도 은연중에 물들어서 남의 글 갈무리하면서 제 딴에는 단장취의(斷章取義)한다며 자기만족하고 그런 건 좀 있네요. 하지만 일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저는 지식을 생산해내는 학자도 아니니 만큼 남들이 했던 이야기를 부지런히 수입해서 재조합하기도 벅찬 녀석일 뿐입니다. 저는 글의 야마(글의 논리적 구성력쯤으로 해석하면 되나요?)를 꾀할 역량이 되지도 않고요.


차마 잡글쓰기를 당장 관둘 수 없어서 이런저런 잡글을 쓰고 있을 뿐 제가 뭐 거창한 주의주장을 담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답니다. 최근 들어 그런 목표를 가지고 써본 글도 없네요. 하긴 제 잡글이 언제부터 그런 목표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제가 글로써 누군가를 설득해본 경험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제 잡글에게서 남을 바꾼다는 측면에서의 생산성을 바라는 것도 과도한 바람이십니다.^^; 인용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옛사람들 말씀을 즐겨 인용하는 것의 폐단 말고 어느 정도까지의 인용을 포함하신 말씀인지 좀 애매하네요. 좀 범위를 명확히 해주시면 좋겠어요. 개인적 경험과 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체득한 지식만을 늘어놓으라는 말씀은 아니실 테고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이 있을 텐데 제가 그걸 잘 잡아내지 못하겠어요.


“호사스런 취미”로 비춰질 수 있다는 염려는 참 무서운 지적 같아요. 가장 덜 호사스런 취미는 토익 문제집 풀기 정도가 있을까요? 국어 맞춤법에 신경 쓰는 사람을 호사스럽다고 구박하는 경우는 있어도 영어 공부에 애쓰는 사람을 호사스럽다고 하는 건 못 들어봤거든요. <예기>나 <여씨춘추>를 몇 시간 만에 발췌독한다고 했더니 들려오는 소리가 “호사스럽다”였어요(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책 좀 읽으라는 간곡한 충고도 곁들여서요). 언젠가 좋아하는 시구를 암송하다가 호사스럽다는 농담 섞인 핀잔을 들었을 때는 좀 섭섭하기까지 하더라고요. 문화유산 완상이 호사스럽고, 맛집 탐방이 호사스럽고, 설레는 마음으로 부치는 전자우편이 호사스럽다면 저는 차라리 이 팍팍한 삶에 호사스러움을 건사하는 걸 권하고 싶네요. 그건 겉멋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 싶어요.


호사스러움이라는 잣대란 게 또렷하다면 슬쩍슬쩍 피해 다니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네요. <실업사회>란 책의 재무제표 분석 결과를 인용하고, 최장집 교수님의 옥음을 설파하는 건 덜 호사스럽고, 맹자의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에 호들갑을 떨고 성호 이익의 “착한 사람은 박복한가(善人福薄)”란 글을 읊조리는 건 호사스러운 일일까요? 어쩌면 호사스럽다는 말은 쓸데없이 지적 낭비나 일삼고 밥벌이에 도움 안 되는 책이나 두리번거리는 (저같은) 한량을 조금 높여서 부르는 말이 아닐까 싶네요.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직설적이니까 조금 둘러서 표현하는 배려를 마다한다면 제가 너무 나쁜 놈이 되어버리겠죠.^^; 부끄럽사옵니다.


070316
『자유의 무늬』를 다시 읽다가 <특권>이라는 꼭지를 옛 친구처럼 반겼다. “예술(가)의 열외성(列外性)”을 비판하는 대목은 몇 년 전 나를 밤 새워 이 책을 읽게 만든 구절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나는 독서가의 열외성, 공부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많은 편이다. 내 자신이 공부와 인간적 성숙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고 싶기도 하다. 마이클 폴라니의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을 지성과 덕성이 결합한 것이라 풀이한다면 이게 바로 내가 그리는 앎의 모습이다.

요 근래 내가 놀고 마시는데 탐닉하는 까닭은 내 공부가 너무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싫증이 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가난하게 살 자신도 없으면서 밥벌이를 위한 공부를 멀리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돈과 밥의 지엄함” 앞에 무릎 꿇을 날이 머지 않았으면서 의연한 척 담담한 척 하고 있다. 사실 해법은 간단하다. 내가 조금 더 바지런해지면 내 변변치 못한 독서가 허망하지 않고, 밥벌이를 위한 공부가 지지부진하지도 않을 게다. 내 마음도 채우고, 내 배도 채우려는 욕심이 참 가당찮다.


070317
되요(X) -> 돼요(O)란다. ‘되다’에 ‘-어, -어라, -었-’ 등의 어미가 결합한 것을 줄여 쓰면 ‘돼, 돼라, 됐-’의 ‘돼-’ 형태가 되지. 예를 들어 안 됀다(X) -> 안 된다(O)/ 안 되요(X) -> 안 돼요(O)가 되는데 풀어쓸 수 있으면 ‘되’로 보고, 풀어쓸 수 없으면 ‘돼’로 보면 된단다. 여기서는 ‘되어요’가 줄어 ‘돼요’로 쓰는 게 맞지. 비슷한 원리로 자주 틀리는 표현에 뵈요(X) -> 봬요(O)가 있지. 자세한 건 한글맞춤법 제35항 [붙임2]와 관련 해설을 참조해주시길.^-^

인터넷 상의 한 줄 짜리 댓글에서 틀린 표현을 발견하고 발끈해(?) 이런 댓글을 남기는 선배를 후배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무섭다며 피할까? 신기하다고 여길까? 쩨쩨하다고 생각할까? 가엾다고 혀를 찰까?^^; 그나저나 앞으로 나랑 잘 안 놀아 줄까봐 걱정이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는데 07학번과 만나는 초기에는 좀 평범한 컨셉으로 나갔어야 하는 건데 또 넘쳤다.


070318
드라마 <연개소문> 옛 방송을 대강 훑어보니 당나라 인물 가운데 위징(魏徵)이 돋보였다. 당나라 초기의 정치가 위징은 본래 당 고조 이연의 맏이인 태자 이건성의 측근이었다. 위징은 이건성에게 동생 이세민을 죽이라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626년 현무문의 변으로 이세민이 집권하자 그토록 자신을 죽이려고 애쓰던 위징을 잡아들이지만, 이세민은 그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그를 중용한다.

이세민의 치세는 정관(貞觀)의 치(治)라 불리며 동아시아 통치자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었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위징이 가장 높은 비율로 등장할 만큼 이세민은 위징의 간언을 새겨들었다. 언젠가 반대파를 과감하게 등용한 위징 기용의 사례가 코드 인사를 비판할 때 쓰인 글을 읽은 적 있다. 국민의 정부 이래로 비판적 언론과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수사를 덮어쓴 집단들이 집권세력이나 개혁진보세력의 이분법과 편협성, 파괴지향성 등을 통박하는 일들이 부쩍 늘었다.

“열린 마음으로 들으면 밝아지지만, 닫힌 마음으로 들으면 어두워진다(兼聽卽明 偏聽卽闇)”라는 위징의 명언은 대통령만 계속 듣기에는 너무 아까운 말씀이다. 비판하는데 기력을 쏟느라 늘 심각한 분들의 얼굴이 밝아졌으면 좋겠다. 일단 그 분들이 듣기 좋은 말만 가려 듣지 못하게 도와드려야겠다.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내가 그분들을 기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기꺼워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이야말로 ‘비판적’이라는 왕관 혹은 방패를 쓸 자격이 있을 터이니 말이다.

Posted by 익구
:

최도영을 위한 변명

문화 2007. 3. 15. 00:30 |

무료신문 <데일리줌>을 펼쳐들었다가 발견한 하얀 달(http://blog.daum.net/literarywork)님께서 쓰신 드라마 <하얀 거탑> 감상 글을 여러 번 읽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장준혁은 가엽다>는 제목의 글에서 글쓴이는 “장준혁은 명예도, 친구도, 자기를 따랐던 수간호사와 막내레지던트도, 종국적으로는 생명마저도 잃었지만, 대척점에 서 있던 ‘선량한’ 최도영은 사실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심지어 친구마저도. 장준혁에겐 경계심을 푼 눈으로 찾아갈 친구가 최도영 외엔 없으니 말이다”고 안타까워한다.


호기심에 글 쓴 분의 블로그를 찾아가 <장준혁을 위한 변명>이란 연재 글을 모두 읽었다. “장준혁을 악한 사람의 위치로 내몰아친 건 이주완이나 우용길과 같은 겉으로도 비열한 이들뿐만이 아니라 오경환이나 최도영, 이윤진과 같은-사실은 이해관계도 없는-선량한 다수들이다”라는 분석이 흥미롭다. “선량한 다수가 한 명의 천재를 ‘정의’의 이름으로 밟는 폭력은, 사필귀정은 교훈이 아니라 또 다른, 전도된 약육강식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신다. 누가 누구를 버렸는지 주객전도의 의혹이 짙다. 나는 선량한 다수가 악한을 응징하는 것보다 소수의 착한 사람이 독불장군이라고 지탄받는 걸 더 많이 보아왔다는 점만 지적하고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장준혁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항변이다. “‘부르주아는 자기 계급을 선택한다’는 말이 있다. ‘삼대째 의사인’ 집안의 이윤진이나 ‘형제가 줄줄이 의사인’ 최도영은 자신의 선함과 여유로움을 ‘선택’할 수 있다. 가진 자는 이처럼 ‘자비로움’을 선택할 수 있어도, 못 가진 자는 일단 ‘가지기’ 이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논리다. 만약 최도영도 배곯고 자라고, 이윤진도 월세 집에서 사는 시민운동가였다면, 즉 최도영이나 이윤진의 집안도 변변치 못해 장준혁에 견주어 그다지 나을 바가 없었다면 이 상대적 비교는 무의미해진다. 그런데 장준혁 만큼 집안이 대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염동일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볼 때 반드시 이 논리가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배경론(환경론) 대신 등장할 건 의리론 혹은 인성론일지 모르겠다. 친구의 의리를 저버리고 스승을 배신했다는 식으로 몰아붙이거나, 남 잘 되는 걸 못 보는 미성숙한 인간이니 어쩌니 하는 시청자 소견들을 봐도 그렇다. 이런 것들보다 장준혁의 처지에 가슴 짠하게 만드는 건 역시 배경론이다. 장준혁과 대비되는 최도영과 이윤진의 유복한 집안은 그에게 최소한의 명분을 부여하기 위한 작가의 교토삼굴(狡ꟙ三窟)이 아닐까 싶다. 개천의 용이 되기까지 갖은 설움을 겪었을 장준혁을 애처로워하는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최도영을 비난하는 이들이 의사 집안에서 자란 최도영의 윤택한 환경을 핀잔하고, 돈 걱정 없이 시민단체 활동할 수 있는 배경을 누리는 이윤진을 흘기면서 장준혁의 바보 산수화나 돈이 담긴 케이크 상자를 건네는 행위에 면죄부를 발급한다.


사실 그 면죄부는 장준혁을 옹호하는 자기 자신에게 주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면죄부를 마구 발급한 분들께서는 재벌기업의 편법 경영권 승계에는 어떤 분노를 느낄까 궁금하다. 아마 최도영과 이윤진의 앞선 출발을 개운치 않게 여기는 마음으로 재벌기업을 바라본다면 우리 사회의 균형감각 내지 기회의 평등이 한층 더 넓어졌을 것만 같다. 분노는 위에서 아래보다는 아래에서 위로 향할 때 좀 더 쓸모가 있다. 그러고 보면 외과의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시점의 장준혁은 적어도 돈 없고 빽 없는 절대 약자는 아니었다. 혹자는 젋은 시절의 고생이 그를 메마르게 했다며 동정을 표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렵게 자라면 구김살이 있다 식의 근거 없는 편견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장준혁도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다. 장준혁은 선택의 여지가 생겼을 때도 그 여유를 활용하지 않았다. 장준혁이 명인대학병원장쯤 되면 욕망의 질주를 좀 그치고 자비로움을 선택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 건지 회의적이다.


드라마는 선악의 명백한 대립구도를 보여주지 않고 복합적 인간, 양가적 감정이 상존하는 인간 모습을 잘 그려냈다. 하지만 어머니를 향한 사모의 정이나 내연녀와의 애틋함이 장준혁을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고 해서 그가 내면 갈등을 심하게 앓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는 자신의 신조대로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갔고 차분한 성찰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원체 행동파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정확히는 그가 유능한 확신범이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힘겹게 눌러쓴 상고 이유서가 그 증거다. 장준혁을 현대판 파우스트라 칭하는 건 좀 넘쳤다. 짧은 드라마에서 한 개인의 내면까지 판단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며 개인의 판단 영역이겠지만. 그러나 장준혁의 인간적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인물들의 비인간성을 부러 강조한다면 형평성을 잃은 판단이 될 것이다.


장준혁은 실력 있는 의사였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의술로 많은 환자들을 살렸다. 너무 가파른 의료 윤리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의사 선생님”이라는 칭호에 붙은 사회적 존경 역시 비현실적이긴 매한가지다. 물론 보통 사람이 지키기 힘든 행위를 비현실적이라고 일컫는 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최도영이 철부지가 되고 염동일이 배신자가 되며, 이윤진이 오지라퍼(오지랖 넓은 사람)로 조롱받을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현실적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들을 ‘비현실적’이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노린 건 아니었을까? 너무 양자택일로 묻는 건 같지만 우리 사회에 장준혁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나, 너무 적어서 문제였나? 최도영이 너무 넘쳐서 이 모양인가? 너무 모자라서 이 모양인가?


한국일보 1월 30일자 기사에 우리 사회의 공익제보자(내부고발자) 20인과의 인터뷰 결과를 보면 전체의 90%가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됐고, 절반 가량은 수년에서 10여년 동안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장준혁의 도피처인 현실주의가 먹고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저지른 단계를 넘어 집단적 폭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조사대상의 95%(19명)는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60%(12명)는 제보 직후 파면과 해임 등으로 직장을 잃었으며, 소송 등을 거쳐 복직에 성공한 일부를 제외한 11명은 아직도 무직 상태라고 한다. 이게 진짜 ‘현실’이다. 공익제보자들은 이러한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전체의 55%(11명)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도 다시 제보하겠다고 답했다. 이들의 비현실성은 그렇게 우스운 걸까?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하는 사람을 왕따시키면서 자신은 현실적이라고 희희낙락할 수 있는 건가? 군대 폭력을 지금 수준으로나마 낮추고, 차떼기 정치가 잦아들게 만든 건 비현실적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고발했던 이들의 공로였다.


자칭 현실주의자들에게는 늘 성역이 많다. 그네들이 자랑하는 추진력을 위해서는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 성역을 돌아서 가는 게 인간미라며 추켜세우기까지 한다. 의리의 돌쇠가 마냥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일말의 책임의식도 없이 세속적 꿍꿍이 때문에 의리를 사칭한다면 딱히 곱게 볼 까닭도 없다. 한국 남자들이 사이비 돌쇠에게 건네는 넉넉한 시선은 우리 사회를 곪게 만든다. 문제의식 없이 거침없이 달려가는 현실주의자의 폐해를 곱씹으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엄중히 물어야 한다. 현실을 빙자해서 자신의 태만을 방어하지 않았는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핑계 대며 약자에게 칼자루를 휘두르지 않았는가. 양심을 버리면서 그것이 희생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불의에 타협하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위안 삼지 않았는가.


인간은 악하고, 인간들이 모여 사는 국가 또한 악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서 국가의 유일성, 단일성, 합리성을 가정하는 현실주의는 국제 관계는 무정부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고 결국 힘의 논리에 지배되고 있다고 역설한다. 이상주의 경향을 비판하며 등장한 현실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학계의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군림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에 맞서는 자유주의에 진보라느니 이상적이라니 하는 수식어가 썩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상호의존을 강조하고 다원주의를 주창했던 자유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야말로 현실을 바로 보고 있으며 적절한 처방을 내려놓고 있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현실주의가 무조건 현실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고 여기는 건 명칭에서 오는 과도한 믿음 때문이다.


현실적이라거나 현실주의자라는 말은 그리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현실상 존재하는 제약조건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응해 실천 가능한 대안을 궁리하는 이에게 주어져야 하는 칭호다. 인간이란 존재의 비루함을 알기에 더욱 인간다움이 고양되는 사회를 위해 가능한 일부터 조금씩 해나가는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다. 인간사의 부조리를 인정하면서도 그 모순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줄여나가려는 의지도 필요하다. 단기적 이익과 사리사욕에만 집착하고 사람을 이용가치로만 환산해서 주판알 굴리기 바쁜 게 현실주의자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현실주의가 소비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헤겔의 명구는 오역 시비가 있다. 헤겔은 모든 현실을 이성적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성에 맞지 않은 현실을 바로 잡아서 이성과 합치되도록 만들면 현실이 참되게(wirklich) 된다고 논증했다. 존재자의 현존이 본질과 조화를 이룰 때, 즉 고유한 개념이나 기능과 일치할 때에만 참되다, 진정하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것은 이성적이지만, 현존하는 모든 것이 진정한 것은 아니다. “이념은 이상이나 당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화될 수 있고 그렇게 될 때 이념과 현실은 일치하며, 이 때의 현실은 곧 진정성을 지니게 된다(백훈승. 2004.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가?” 『범한철학』 제33집. pp. 153~171 참조)”는 새로운 의미가 드러난다. 이 논변에 따르면 헤겔은 현실 자체를 합리화함으로써 생존력을 척도로 삼고 기존질서를 유지하려는 보수 반동적 주장을 하지 않은 셈이다.


이성과 현실의 관계를 놓고 헤겔 우파와 헤겔 좌파가 대립하고 포퍼를 위시한 사람들이 논박했다. 그만큼 이성과 현실의 좌표 설정은 어려운 문제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복잡미묘한 철학적 용어를 헤집는 것은 내 역량 밖이다. 나는 그저 현실과 이성이 서로 배타적일 때 너도 나도 현실만을 따르지 않는 문화를 구축했으면 좋겠다. 이러한 의사결정의 단순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개별 인간성에만 천착하지 말고 사회 전반적인 기본 룰로서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이상과 도덕으로 빛나는 사회가 아니라 원칙과 상식이 흐르는 사회다. 이와 같은 무던한 지향점은 다시 개별 인간의 주체적 행동이 가능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불가항력이라며 현실을 추수하지도 않고, 부조리를 고치기 위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지도 않아도 되는 게 진짜 ‘인간적인’ 사회다. 나는 이 땅에 그런 인간다움이 좀 더 커지기를 희망한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과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하얀 달님의 마지막 연작에는 “선하지도 올바르지도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몹시 ‘인간적’이었다. 그를 괴롭혔던 ‘인격의 덜 됨’에서 그 인간성의 잣대는 매우 첨탑처럼 놓다랗고 이상화되어 있으나, 그에게서 내가 느낀 ‘인간적임’은 우리가 하루하루의 삶에서 공감할 것들이다”라고 논의를 마무리하신다. “인간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인간적이다”라는 새로운 명제로 들린다. 장준혁에게서 자화상을 발견했다는 분들이 진정한 의미의 현실주의자가 되고, 진짜배기 소신을 건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장준혁의 실력이 실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현실주의자들이 할 일이 적잖다. 가령 염동일을 구박하기는 쉽지만 공익제보자들에게 가해지는 집단적 보복이 온당치 않다고 외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현실주의자들이 근시안적이라는 법은 없다. 현실주의자들은 조금 까다로운 일에도 도전해볼 필요가 있다. 장준혁 정도를 역할 모델로 삼기에는 좀 허전하지 않나요?


끝으로 최도영이라는 인물을 추억한다. 그는 절차에 대한 원칙을 견결하게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좀 느린 감이 있지만 과정에 충실하면 저절로 좋은 결실을 맺는다고 신뢰하는 자세는 배울 점이 많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논리가 넘쳐나는 세태에 과정과 결실의 아름다운 일치를 꾀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달갑다. 살맛나는 사회는 과정과 결실의 상관계수가 높아지는 세상이 아닐까. 결실의 달콤함에 취하기보다 과정의 쌉싸래함을 만끽하는 이들이 늘기를 바란다. 우리 둘레에 최도영이 좀 더 늘기를 바란다. 그가 단지 드물기에 숫자를 좀 맞춰보자는 소극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가 옳기 때문에 상식이 되고,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적극적 의미에서다. - [無棄]


추신 - 하얀 달님의 정성스런 글들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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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05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 교수님의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흥미롭게 읽었다. 인터뷰 말미에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士爲知己者死)고 했는데 제가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려선 안 되죠”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 『전국책』, 『사기』에 등장하는 의로운 자객의 표상 예양의 고사를 반추해봤다. 자신을 진실로 알아준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저 실패했다는 말씀밖에 안 해주시는 학자분들보다 참여정부의 공과를 헤집으려는 노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한미 FTA 관련한 이 교수님의 쓴소리에 더 무겁게 다가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전에 외우(畏友) 소은이는 “노무현 대통령은 외롭겠다. 정태인 같은 사람을 잃어서”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참여정부는 아까운 인재들을 그만 잃어야 한다.


070306
『주역』 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易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通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進新)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久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신영복, 『강의』(돌베개, 2004), p. 130

궁(窮)은 궁극에 이르다, 막히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변화의 근본은 한계를 바라봄이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내쉬는 한숨이다. 정채봉 시인의 멋진 시구대로 “생선이/ 소금에 절임을 당하고/ 얼음에 냉장을 당하는/ 고통이 없다면/ 썩는 길밖에 없다”는 게 주역의 정신인지도 모르겠다. 변화하는 것이 영원하다는 오묘한 역설이다.

변화야말로 만물의 본질이라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존재’는 언제 어디서나 불변한다고 역설한 파르메니데스의 대립을 종합한 것은 데모크리토스다. 그의 원자론은 파르메니데스에게서 불변하는 원자의 존재 양식을 고안해내고,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원자들의 운동과 결합으로 말미암아 사물의 다양한 모습이 만들어짐을 도출했다. 물론 오늘날의 원자와는 차이가 있지만 데모크리토스의 종합은 배울 점이 많다.

한결같음과 너그러움의 조화는 내 어린 시절의 화두였다. 데모크리토스 흉내를 내서 그럴 듯하게 융합해봤으면 좋겠다.


070307
드라마 <주몽>이 인기 속에 막을 내렸다. 주몽이 오매불망 한사군(漢四郡) 중 하나인 현토군과 싸워 다물군의 유지를 이어 받는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고구려가 현토군 영역에서 세워졌다는 건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우기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한나라 무제가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을 물리치고 낙랑, 진번, 임둔, 현도 4개 군(郡)을 설치한 한사군은 중국 동북공정의 도구로 곧잘 활용된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이견들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의문은 과연 한사군 가운데 가장 오래 남아 한민족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낙랑군의 존재다. 고구려에 멸망당하는 기원후 313년까지 존속했다는 낙랑군을 기원후 8년에 망한 전한(前漢:西漢)은 물론 기원후 220년에 망한 후한(後漢:東漢)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지 의뭉스럽다. 일제는 한반도가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을 통해 원시시대를 끝냈다며 한민족 역사발전의 타율성 늘어놓기도 한 만큼 낙랑에 대한 세밀한 탐구가 있어야겠다.

더군다나 1차 사료인 사마천의 조선열전에는 4군을 설치했다는 이야기(遂定朝鮮爲四群)가 있을 뿐 낙랑, 진번, 임둔, 현도 등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조선열전을 거의 베끼다시피 한 한서(漢書)에서 “수멸조선위낙랑현도진번임둔(遂滅朝鮮爲樂浪玄兎眞番臨屯)”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서 한사군의 명칭이 등장한다. 일부 사학자들은 이런 정황에 비추어 한사군은 후세의 가필이라고 주장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고조선 역사가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若無古朝鮮史, 是無韓國史)”고 역설하셨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꼭 반만년을 자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국 상고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고, 땅이 줄을 수는 있지만 역사는 빼앗겨서는 곤란하다. 민족주의적 감수성 같지만 중국과 일본의 천박한 역사 분탕질에 생채기를 입고 싶지 않다.


070308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드라마 <궁S>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입헌군주제라는 상상력을 품게 한다. 입헌군주제는 왕권과 의회 사이의 타협이 만든 제도다. 세계에서 왕실이 있는 나라는 대략 30개국 정도라고 한다. 영국과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편이지만 중동국가들의 경우 왕이 실권을 행사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말레이시아는 선출직 입헌군주제라로 13개주 가운데 말레이 반도의 9개주 군주들이 5년마다 한 명을 새로운 국왕으로 선출하는 독특한 체제를 뽐내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입헌군주제 국가는 역시 일본이다. 입헌군주제 하의 왕들이 각별한 대접을 받는다는 걸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일왕은 그 정도가 좀 심하다. 일본 극우파들의 구심점이 되는 일왕의 존재는 우리에게는 영 불편하다.

일각에서는 황실과 의례를 상징적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대한민국 헌법에 비추어 볼 때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정작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할 것은 민주공화국 안의 황제들이다. 곧잘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을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삼성이 입헌군주제는커녕 절대군주제와 비슷한 행동 양식을 보일 때 나는 껄끄럽다. 대한민국에 황제는 필요 없다. 과연 삼성은 절제된 자본 권력의 기품을 보여줄 수 있을까.


070309
오전 6시 55분에 출근해 오전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중구청 직장민방위대 비상소집훈련을 진행을 도왔다. 내가 맡은 업무에 사명감을 갖고 일하면 좋겠지만 민방위 교육만큼 일하는 사람을 힘 빠지게 하는 과업도 없다. 이미 민방위 비상소집훈련 대리 출석과 부실한 교육 운영이 언론 보도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올해부터 민방위 편성연령이 만45세에서 40세로 낮아진 관계로 민방위대원의 수가 대폭 줄었다. 연간 8시간 교육을 실시하던 민방위 1-4년차도 4시간을 줄어 국민의 부담을 줄인 만큼 내실 있는 교육 운영이 더욱 요구된다. 하지만 유사시 비상대비태세를 갖추려는 훈련목적은 퇴색하고 출석도장 찍는 거 자체에 치중하고 있는 게 솔직한 실정이다.

이날 훈시 말씀을 하신 행정관리국장은 불참자 명단을 파악해 불참 사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하셨다. 구민회관 교육장으로 이관되는 보충훈련과 달리 구청에서 자체 실시하는 기본훈련이 더 유의미하다는 주장은 일면 수긍할 만하다. 참석인원을 파악해 부정출석을 막겠다는 의지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참 사유서를 내라는 건 지나쳤다. 불참 사유서를 독촉해서 받아내는 하루 종일 내 기분도 언짢았다.

법적으로 보장된 보충훈련을 무시하고 직원들 기강 단속으로 활용하려는 구청 고위직 공무원의 행태는 그리 사려 깊지 못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추레한 일은 민방위 훈련을 대충 넘기기 위해 이런저런 경로로 빠져나가는 어른들이다. 민방위 훈련이 어차피 출석 확인하고 끝나는 건데 뭘 그리 깐깐하게 구냐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 출석 확인이라도 공평해야 한다. 자신에게 귀찮은 일은 남도 귀찮다.


070310
경영飛반 개강총회 때 새로 뽑힌 반일꾼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성인지미(成人之美)다. 『논어』 안연편에는 “군자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고, 남의 나쁜 점을 이루어주지 않지만, 소인은 이와 반대로 한다(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고 말한다. 성인지미(成人之美)는 다른 사람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점을 도와서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성(成)이 성인지미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구성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져야겠지만 직선 대표들은 특별히 제 둘레의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해서 우리의 아름다움을 고양해주길 바란다.

3월 9일~10일 동안 벌어진 이날 행사에서 마신 소주는 1차 레드 크라우드 101병, 2차 대성집 투 41병, 3차 대성집 원 42병 도합 184병으로 공식 집계되었다(쏘맥 제조를 위한 맥주 3,000cc와 어쩌다가 등장한 막걸리 1병도 있다). 이로써 2005년 3월 11~12일 집계한 소주 133병의 기록을 갱신했다. 07학번 여러분의 가열찬 참여로 이룰 수 있었던 신기록이 아닐까 싶다. 머잖아 이 기록도 깨지겠지만 일단 어렵사리 이룬 이 기록에 고맙다. 본의 아니게 술 권하는 선배가 된 거 같아 민망하다.


070311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님은 한국일보에 쓰신 옴부즈맨 칼럼에서 “매운 소리를 통해 ‘역린(逆鱗ㆍ임금님의 분노)’을 건드릴 것을 희망(한국일보 2000년 12월 21일자)”한다고 말씀하셨다. 성역 없는 비판에 대한 주문이다. 역린(逆鱗)은 한비자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말이다. 남을 설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서술한 이 글에서 “유세(遊說)하려는 자는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역린을 상대의 치명적 약점이라고 봐도 좋고, 각별히 민감한 곳이라고 풀이해도 되며, 결정적 이해(vital interest)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로의 역린이 맞설 때 우리는 곧잘 화해할 수 없는 세계관의 차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역린은 있다. 하지만 큰사람일수록 그 역린은 적거나 작게 마련이다. 나에게 조금 거북하다고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행동하는 건 미성숙하다.

남의 밥그릇을 침범하는 건 역린까지 다다를 위험이 크다. 우리는 부득이 남의 역린을 건드릴 때면 충정이나 고언(苦言)을 방어기제로 내세운다. 가령 공무원들 앞에서 공무원 시간외 수당 문제를 꺼내는 건 무척 떨리는 일이다. 역린을 함부로 들쑤시는 폐해보다 역린이 너무 크고 많은데서 생기는 폐단이 더 크다. 내 역린을 많이 덜어낸다고 해서 반드시 남의 역린을 매만질 권한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우선 내 역린의 비대함을 베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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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26
2월 26일 한국관광문화정책연구원이 기획예산처 사회서비스향상기획단에 제출한 <문화분야 사회서비스 실태조사 제도개선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문화예술인들은 저소득층에 해당한다. 문화예술가의 60% 가량이 창작활동 소득 월평균 100만원 이하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일을 병행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울 정도라니 우리의 허약한 문화역량이 다시금 드러난다.

미술학부에 다니는 다운, 연정에게서 대다수 미술학부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보다는 교사 등의 진로를 결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의 경우 손꼽히는 미술학과 졸업전시회에는 유수의 콜렉터들과 전문가들이 참석해서 신인 작가들을 발굴한다고 한다. 반면 우리네 대학 졸업전시회는 친구들 정도가 축하해주는 자리로 끝날 때가 많다.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개인전을 다섯 번쯤을 해야 그 때서야 작가로서의 자격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기 때문에 그걸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 두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두 미술 전공 친구들의 푸념을 들으며 인내심 테스트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서글픈 모습을 실감했다. 몇몇 연예인들과 작품들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다고 한류라고 호들갑을 떨기에는 내실이 없다. 이렇게 2차 문화산업에 관심이 쏠리면서 기초 문화예술에 건네는 눈길이 줄어 외화내빈을 부추기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양질의 소장 도서를 갖추었느냐의 여부를 떠나 도서관의 절대 개수가 부족한 지역 도서관 실정을 보면 더욱 안타깝다.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에는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榮辱)을 안다(倉稟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는 말씀이 있다. 요즘 경제를 살리자는 이들이 즐겨 인용하는 문구라지만 이 말을 좀 변형해서 도서관에 책도 좀 차고, 예술가의 의식도 좀 풍족해지길 바란다.


070227
최장집 고려대 교수님은 최근 발표한 글을 통해 ‘정당체제의 제도화’와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우리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셨다. 사실 이러한 지향점보다는 참여정부가 이 두 가지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려 있어 논의의 본질이 흐려졌다. 보수 언론들은 최 교수님의 가리킨 달보다는 참여정부로 향한 손가락질이 더 요긴했는지도 모르겠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님이 최 교수님의 견해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로 이용되는 가를 검토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신 것도 비슷한 맥락의 충고다.

참여정부와 진보진영 사이의 진보 논쟁이 생산적이려면 서로가 겸허하게 자신의 과오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책임 공방에 초점에 맞춰지는 게 볼썽사나운 이유다. 최 교수님의 지적대로 나 또한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정당일체감이 너무 낮은 데 있다고 생각한다. 양대 보수정당의 차별화가 별로 없어 그 놈을 그 놈으로 여기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민주주의 제도 가운데 정당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핵심적인 집단적 행위자라는 최 교수님 말씀에 크게 공감한다.

그런데 당비를 내가며 당원이 되겠다는 유권자가 별로 없다면 정당체제의 제도화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제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픈 정당이 만들어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당체제의 제도화를 선결문제로 삼기에는 현재 우리 정치 풍토상 꽤 오랜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 될 듯싶다. 열린우리당이 기간당원제를 스스로 폐지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정당 민주주의 구축을 원할수록 일모도원(日暮途遠)을 뇌까리게 된다.

민생을 가장 챙기고 기간당원제를 먼저 정착시킨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가 좀처럼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보수 정당의 과점체제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 과점을 해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누차 지적하고 있지만 최 교수님은 이에 대한 해법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정당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회통합을 성취할 수 없다”는 최 교수님의 지론을 실현시키기는 방안들을 모색해봐야겠다. 비교정치쪽 공부를 할 때 정당일체감 고양 방안을 탐구해보고 싶다. 원론적인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또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다.


070228
노무현 대통령님이 28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대통령님은 탈당신고서 접수와 함께 공개한 <열린우리당 당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임기가 끝난 뒤에도 당적을 유지하는 전직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며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의 역량부족으로 한국 정치구조와 풍토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저는 임기 말 당을 떠나는 마지막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는 말씀이 아프게 들린다. 정당체제의 제도화를 건설하기 위해서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몇몇 정치인들의 욕심에 좌우되지 않는 정당에 대한 열망이 다시금 싹트길 바란다. 못다 이룬 백년정당의 꿈이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저 비통하다.


070301
『패자의 역사』(구본창, 2003)는 패자의 역사를 도두보는 책이다. 내 흥미를 끈 것은 이율곡의 10만 양병설에 의구심을 품는다. 10만 양병설이라는 말은 이율곡의 학문을 계승한 서인(西人)들의 문집인 김장생의 율곡전서, 송시열의 율곡연보에만 나와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문집은 위인전인 관계로 실제보다 부풀려 써질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선조실록에는 10만 양병설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인조 쿠데타로 집권한 서인 정권이 이들 문집을 기초로 선조실록을 고친 선조수정실록에서야 10만 양병설이 수록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것이 정설로 굳어진 것은 서인 노론 가문의 후손인 역사학자 이병도가 국사교과서에 실어 국민적 상식으로 만들었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율곡 선생이 10만 양병설을 실제로 주장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적잖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임종 전 마지막 저술인 시무육조계(時務六條啓) 등을 볼 때 국방력 강화를 위한 방비를 촉구한 점은 분명하다. 그의 사회경장론은 조선 사회의 폐단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 많았다. 그의 개혁안이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의 무실(務實)은 오늘날에도 많은 영감을 준다. 다만 한 인물의 위대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승자가 가필을 했다면 그건 배워서는 안 될 것이다. 율곡 선생께서도 바라는 일은 아니었을 테고 말이다.


070302
신권 발행을 놓고 이런저런 지적과 불평들이 쏟아지고 있다. 다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왜 한국은행이 인물 초상 변경에 소극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조선시대 이씨 남성으로만 되어있는 현행 화폐가 대한민국을 온전히 대표하지 못한다는 건 자명하다. 일본은 의학자 노구치 히데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 등을 비롯해 화폐 인물이 다채로운 편이다. 특히 2004년 11월 새 오천엔권에는 여성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가 등장해 큰 관심을 모았다. 적어도 화폐 측면에서 일본에게 한참은 뒤진다.

화폐 인물을 선정하는 건 어지간한 선거를 몇 번 치르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일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쟁쟁한 후보들 가운데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화폐의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방증이다. 은행권 용지나 주화 등을 수출할 만큼 훌륭한 기술을 보유하고도 정작 우리 화폐 도안에 대한 치밀한 검증에는 소홀한지 아쉽다. 화폐는 ‘무언(無言)의 외교관’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이제 내 지갑에도 구권보다는 신권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우리의 문화적 수준을 표상하는 신권을 보며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조만간 고액권 화폐를 만들게 되면 꼭 여성을 넣었으면 좋겠다. 그간의 모자람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070303
“쯧쯧 아랫사람 입 단속 하나 못하고 말이지.”

염동일의 양심선언을 두고 시청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속이 메스껍다. 어쩌면 장준혁도 치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귀다툼에서 나가떨어지는 패배자 취급을 받는 건 아닐까 싶다. <하얀 거탑>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찬사를 받은 건 장준혁의 승리에서 기인한 바 크다. 빼어난 실력만으로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제약조건을 그려낸 것이 드라마의 핵심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염동일의 부끄러움을 보며 우리 스스로에게 마구 발급했던 면죄부를 돌아보게 하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차라리 장준혁이 보란 듯이 이겨서 진실이 패배하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 싶다. 그게 정말 리얼리티일지도 모르겠다.

양명학파의 시초인 왕양명은 앎과 실천이 하나라며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한다. 먼저 이치를 깨우쳐야 행할 수 있다는 주자의 선지후행설(先知後行說)을 통박하는 말씀이다. 왕양명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단지 아직 알지 못한 것(知而不行 只是未知)”이며 “참된 앎은 행하기 위한 까닭이다. 행하지 않으면 그것을 앎이라 말할 수 없다(眞知所以爲行 不行不足以爲知)”라고 설파한다. 지행합일의 참된 앎(眞知)이 발현되지 않는 것은 사욕(私慾)에 가로막힌 것이며 사욕을 배제해 지행의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는 논변이 매력적이다. 사욕을 걷어낸 염동일의 지행합일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070304
비 오는 중랑천변을 한 시간쯤 걸었다. 낚시하는 분들을 좀 지켜보다가 강태공(姜太公) 생각을 했다. 미끼도 없는 곧은 낚싯바늘로 낚시를 하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기다린 강태공은 인내의 상징이다. 조바심 내지 않는 기다림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대학교 동기, 후배들을 서른 명쯤 만난 오늘 하루 나는 어떤 끈기를 보여줬을까?

『육도삼략(六韜三略)』에 나오는 강태공의 사자후는 늘 내게 큰 울림을 준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의 삶을 이어받은 보통사람들의 천하다. 천하의 이익을 함께 나누는 자는 천하를 얻고, 천하의 이익을 오로지하려는 자는 천하를 잃는다(天下非一人之天下 及天下之天下也 同天下之利者 則得天下 擅天下之利者 則失天下).” 이 말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실천하고 싶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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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서평으로 올린 글입니다)


고종석 선생님의 신간 『바리에떼』(개마고원, 2007)의 서문에는 2부의 첫 번째 글인 <식민주의적 상상력>(이하 <상상력>)을 꼼꼼히 읽어달라는 당부의 말씀이 있다. 나는 그 부탁에 기꺼이 호응해 삼일절 새벽에 그 글을 가장 먼저 읽었다. <상상력>은 복거일 선생님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이하 『변호』)를 비판한 글로서 친일 문제에 대한 많은 성찰거리를 남긴다. 『변호』는 일제 식민통치는 가혹했으며 조선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설파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식민통치가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겼다며 인구증가율 등을 들어 논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보인다’는 표현을 쓴 것은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 선생님은 『변호』의 주장을 “과격한 상황론”이라며 『변호』의 저자가 지금껏 취해온 개인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중시하는 우파적 스탠스와 다름을 지적한다. 특히 “이런 환경결정론을 일제 하의 친일 행위에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범죄들, 특히 궁핍에 기인한 강력범죄나 ‘이념 범죄’들로까지 넓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의 논거가 한결 진지하고 단단해(93쪽)”질 것이라며 권유할 때는 무척 통쾌했다. 『변호』의 논리를 차용해 삼일절 새벽에 거리를 질주한 폭주족들도 이 날의 역사적 의미를 다소 요상하게 기린다는 상황론으로 넘어가 주면 어떨까? 각종 불법과 비리로 구속된 재벌 관계자들이 어려운 경제여건이라는 상황론으로 말미암아 유유히 옥문을 빠져나오는 것보다 훨씬 작은 너그러움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변호』는 통계적 수치를 통해 식민통치의 경제적 효용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주의자(!)인 나는 그런 식민통치로 이룩한 경제발전이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다. 개개인의 자유를 몇몇 통계수치로 가늠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기도 하거니와 설령 가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훼손된 자유에 대한 비용 처리가 너무 인색하다. 추상적 가치를 계량화하기 즐기는 복 선생님의 장점이 바래는 순간이다. 고 선생님의 의구심대로 “일본 식민통치에 대한 변호의 연장선에서 박정희를 바라보고 있(107쪽)”다 보니 이런 무리수를 던진 건 아니었을까.


복 선생님은 징집제도로 젊은이들이 맛보는 비참함은 우리 사회의 복지를 크게 줄인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또 징집 제도는 병사들의 낮은 생산성도 문제된다며 주관적 측면에 대한 계량적 접근을 시도한다(복거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 문학과 지성사, 1996, 197~203쪽 참조). 이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복 선생님은 『변호』에서 예의 그 장기를 선보이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니 한국이 징병제 국가가 되고 군사주의 문화에 시달리는 게 일제와 아주 무관하지 않기도 하다.


일제가 조선을 돼지 키우듯이 먹여놓고 탐스러운 살코기를 음미하려했는지, 진심으로 내선일체를 퍼뜨려 이등국민으로나마 편입하려 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도록 하자. 조선과 비슷한 정착자 식민지로 손꼽히는 미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상상력>의 논박으로 충분할 듯싶다. “앵글로색슨족의 입장에서는 세 나라가 지상의 낙원일지 모르겠지만,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고향(101쪽)”에 지나지 않음은 또렷하다. 추출 식민지와 정착자 식민지 사이의 섬세한 차이를 헤아리는 것보다 “모든 식민주의는 그냥 나쁘다(105쪽)”라고 외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복 선생님이 힘주어 말씀하시는 그 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를 떠받드는데 힘을 다한 나머지 정치적 자유에는 무심해서 당혹스럽다. 조선인들이 제 자유를 헌납하고 이룩한 경제적 이득에 우호적 눈길을 건네는 게 마뜩잖다. 게다가 그 헌납은 자유의지도 아니었다. 이런 점들을 부러 견뎌내더라도 “‘우리 모두가 죄인인데 누가 누구를 탓하랴’ 하는 전 국민적 반성주의(123쪽)”만큼은 단호히 반대한다. “죽은 자는 더 궁극적 소수다. 산 사람들과는 달리, 죽은 사람들은 연합을 이룰 수 없다. 그들은 홀로 누워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후대 사람들의 선고를 받는다”는 복 선생님의 주장에도 거의 동감할 수 없다.


안락하게 자연사함으로써 일신과 가문의 부귀영화를 건사한 이들은 충분히 남는 장사를, 보다 정확히는 부당이득을 취했다. 『변호』를 소수를 위한 변명으로 보기에는 그들은 너무 다수였고 주류였다. 다수파와 주류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강요하는 건 어색하다. 관용은 의무라기보다는 권리다. 친일 행위를 했던 지식인 및 사회 지도층을 더 엄준하게 꾸짖는 것이 사회 발전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억지스럽다. 그네들이 누렸던 자유만큼의 책임을 요청하는 건 그리 지나친 요구는 아니다.


사회 상층부에 대한 윤리적 기대 수준을 낮추려는 시도는 일제시대에 지나지 않고 오늘날까지 그 파장이 전해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커녕 남들 다 지키는 준법정신도 발휘하지 않은 이들이 사회 상층부에 머무르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지식인의 변절이 일제에게 적잖은 선전 도구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쩌면 『변호』는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이 없어진다(無恒産無恒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들의 단골 문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맹자는 곧이어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서도 항상 꾸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고 말씀한다. 무항산유항심은 차치하고 무항산무항심도 아니고 유항산무항심이었던 지도층을 보는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다.


일전에 유시민 선생님은 민주화 유공자 보상법을 게임이론을 빌려 설명하며 경제정의의 실현으로 볼 것을 주창했다(유시민, 『WHY NOT?』, 개마고원, 2000, 74~84쪽 참조). 나는 그 제안에 공감하며 반복되는 게임에서 대한민국 구성원들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탄탄한 경제정의를 세우길 희망한다. 일제 치하와 같은 암울한 상황이 다시 벌어질 때 자유를 애호하고 폭력에 반대하는 시민과 지식인들이 더 늘기 위해서라도 친일파에 대한 최소한의 기록과 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열악한 형편에서도 대한민국에 대한 ‘배신전략’보다 ‘협조전략’을 선택하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접근이라고 본다.


역사는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복 선생님은 ‘진화’라는 말을 좋아한다. 복 선생님은 진화에도 큰 추세는 있음을 인정한다(“‘친일은 없다’ 발언으로 논란 일으킨 복거일씨.” 동아일보. 2002. 06. 03. 참조). 생존을 선(善)으로 여기는 복 선생님께서도 인간은 점차 이타적으로 나아가는 추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복 선생님은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에서 개인들의 이기심은 ‘상호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게임이론의 “‘되갚기’의 놀라운 성공에 담긴 함의들은, 생명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협력한다는 통찰(“‘게임이론’ 벗어난 對北유화정책.” 동아일보. 2005. 11. 14. 참조)”을 조명하는 칼럼에서도 그런 낙관이 읽힌다(참여정부의 되갚기 정책이 미흡함을 질타하는 칼럼을 읽으며 나는 그의 되갚기가 편향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인간이 상호적 이타주의로 진화해감에 있어 되갚기가 필요불급하다면 왜 친일파는 예외가 돼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물며 여기서의 되갚기는 부관참시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며, 후손들을 단죄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진상을 규명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기록하겠다는 정도다. 광복 이후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최린이 자신의 친일행적을 사죄하며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달라”고 참회한 것과 같은 반성이 드물고 드문 까닭은 친일파들의 상당수는 확신범이었다는 방증이다. 적어도 부끄러움을 인지할 능력을 잃었다는 징표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헌법이 그렇고 그렇게 살다간 자들과 그네들의 후손(특히 힘센 자들)의 명예권, 인격권까지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을까 싶다.


<상상력>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부득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책 제목 바리에떼(Variete)는 프랑스어로 ‘다채로움’이라는 뜻이다. <상상력>을 비롯한 여러 정치 에세이를 관통하는 원칙은 균형감각이 아닐까 싶다. “치우침으로 치우침을 치유하지는 못한다(58쪽)”는 명제는 이 책의 핵심 주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사회적으로든 유전적으로든)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차가운 인식과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지녀야 한다는 뜨거운 믿음 사이의 균형(58쪽)”을 찾기 위한 정성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고 선생님 글을 달게 읽는 이유는 불완전한 인간의 냄새를 맡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좀 더 기품 있게 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의 신산함이 거침없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라는 구절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산다면 한번 뿐인 삶을 대충 살지 않는 힘이 될 것이다. 책에 실린 각종 평론 외에 선생님이 지인들에게 건네는 사랑 표현도 넉넉한 덤으로 읽어봄직 하다. 아니, 또 하나의 본전이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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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19
설 연휴 마지막날 배우 봉태규님이 출연한 영화 두 편을 연속으로 시청했다. <방과 후 옥상>은 억세게 재수 없는 고등학생 남궁달이 전학 온 첫날 학교의 짱을 건드리는 바람에 “방과 후 옥상으로 올라오라”는 통보에 맞서 벌이는 눈물겨운 생존투쟁이 익살맞게 그려진다. 고심 끝에 회피하지 않고 옥상행을 결심하며 거울을 바라볼 때 거울에 적힌 문구가 돋보였다. “겁쟁이는 천 번을 죽지만, 사나이는 한 번만 죽는다”는 셰익스피어의 명구는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한 가지라도 건져가게 하려는 교양주의의 살가운 배려다.

그 문구를 보며 우리 사회에 진정한 사나이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셰익스피어는 사나이라는 말을 군자나 대장부급의 말로 썼을 것이다. 일전에 김규항 선생님은 <마초의 꿈>이란 글에서 “나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당당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부드럽다”는 게 마초의 기본이라 역설하셨다. 마초의 탈을 쓴 겁쟁이들은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것을 인간 존재의 숙명인양 비감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이 권위주의의 압박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권위를 세우는 사나이들이 좀 더 늘어야 한다. 어쩌면 양성평등이 더딘 까닭이 마초의 기본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넘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070220
그대를 그리며 무언가를 줄 것이 없어
대나무 부채 하나를 주려고 합니다
부챗살 사이로 맑은 바람 불거든
그 바람 따라 서로를 생각하길 바랍니다.
憶君無所贈 
贈次一片竹
竹間生淸風
風來君相憶

드라마 <궁S>에 나오는 군상억(君相憶)이라는 한시다. 여남(女男) 간의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진 시가 본래는 친구 사이에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시였음을 발견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나는 책 사는 거 외에 특별히 다른 상품을 사본 적이 없어서 벗들에게 뭔가 선물하는 것에 인색한 편이다. 더군다나 옹졸하기까지 해서 남 칭찬도 잘 못하니 나 같은 녀석을 친구 삼아 지내는 사람은 참 심심하고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 욕심은 많아서 부챗살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을 맞으며 그리워하는 우정이 참 부럽다. 일단 내 무심한 성정부터 좀 다듬어야겠다.


070221
2월 21일은 국채보상운동이 백주년을 맞는 날이다. 일제가 우리에게 강제로 떠넘긴 차관을 국민이 대신 갚아 경제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문 운동이다. 나라를 운영하는 권리는 극소수가 누렸으면서 망해가는 책임은 백성 모두가 져야했던 비극이기도 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기보다는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될 역사의 과오로 간직하는 게 옳다. 그런 식으로 일구는 국민통합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는 요즘의 양극화 심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책임을 나눌 만큼 나누면 권리는 또 소수가 거머쥐는 현상의 반복일 따름이다.

김규항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이 같잖은 나라도 조국이랍시고” 십시일반 했던 가련한 국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갑다. 세금 꼬박 내고 법 잘 지키는 것만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세상을 꿈꾼다. 나의 이런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백년 전 대구의 그 애틋함에는 한없는 경의를 보낸다.


070222
노무현 대통령님이 공식적으로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이 땅의 책임정치, 정당정치가 무참히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퇴임 후에도 평당원으로나마 남고 싶다는 대통령님의 바람은 무너진 백년정당의 꿈만큼이나 허망해져 버렸다. 그러나 그간의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책무가 막중하기에 인간적인 연민은 최소한도로 그친다. 남은 임기동안 참여정부의 탄생을 반겼던 돈 없고 빽 없는 이들을 돌아보시길 바란다. 이는 대통령님이 옛 지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직선 대표는 본래 인기 없음에 초연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 인기를 지켜내고 만들어내는 힘은 원칙과 일관성에 있다. 제 정성을 다한 다음 겸허하게 국민의 평가를 기다리는 책임정신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통합신당에 대한 대통령님의 부정적 견해는 거개 옳다. 열린우리당 평당원과 지지자들은 이 정당이 그저 여당이라서 지지했다기보다는 내걸었던 창당 초심에 애정을 가졌던 분들이다. 비록 대연정 제안이라는 뼈아픈 패착도 있었지만 열린우리당의 황혼에 즈음해 대통령님이 보여준 결기는 인상 깊었다. 아무런 감동 없는 집권여당 실세들의 몸짓과는 사뭇 달랐다.

부디 대통령님께서 떠날 때의 말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시길 바란다. 그는 속절없이 실패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수많은 지지자들에게 보답해야할 일이 아직 많지 않은가. “울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다”는 탄식을 자아내게 했던 사람의 의연한 뒷모습이 보고 싶다.


070223
23일에 하루 연가는커녕 반가도 못냈지만 가까스로 조퇴를 할 수 있어서 다행히 졸업식 끄트머리에나마 찾아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경황이 없어서 많은 분들께 축하 인사를 건네지는 못했다. 졸업하시는 선배님들, 동기들, 후배들 다시금 가슴 깊이 축하 드린다. 특히 선배님들의 빈자리는 무슨 수로 메울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어쩌면 이 허전함이라는 것도 선배님을 흠모하는 마음, 동기들을 아끼는 마음, 후배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라기보다는 순전히 내 이기적인 욕심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렇게 아쉬운 까닭이 실상 내 자신을 위한 아쉬움인지도 모르겠다. 공유했던 지난날의 추억을 곱씹으며 좀 더 잘하지 못했던 내 자신에 대한 책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는 별 만큼이나 많은 미래의 가능성만큼은 꼭 부여잡겠다.


070224
이제 막 선배가 되는 06학번에게 원나라 때 영종이 신하 배주에게 당나라의 명재상 위징과 같은 명신이 있겠냐고 물었던 고사를 언급했다. 배주는 “그야 황제가 어떤 황제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둥근 그릇에 물을 담으면 둥글게 되고, 네모난 잔에 물을 담으면 네모난 모양이 되지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06학번들이 제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그릇이 되어주길 바란다.

07학번 새내기들에게는 찰리 채플린에게 “당신의 최고 걸작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Next One(다음 작품입니다)”이라고 답한 일화를 꺼냈다. 모든 선배는 후배가 자신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새내기들이 최고 걸작이자 Next One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 밖에도 낯 뜨거운 연서를 많이 써내려 갔는데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하지 못한다(書不盡言 言不盡意)”는 주역 계사상전 구절이 자꾸 맴돈다.


070225
드라마 <하얀 거탑>을 1회부터 재방송으로 보다가 기막힌 문구를 접했다. 오경환 석좌교수가 최도영 교수를 격려하며 “小醫治病 中醫治人 大醫治國”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간 의사는 사람을 고치고,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오 교수는 최 교수에게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으려 한 순간부터 이미 대의의 길에 들어선 것이라며 한껏 덕담을 풀어놓는다.

최도영이라는 인물은 절차에 대한 원칙을 견결하게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 과정에 충실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믿는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논리가 넘쳐나는 세태에 과정과 결실의 아름다운 일치를 꾀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달갑다. 살맛나는 사회는 과정과 결실의 상관계수가 높아지는 세상이 아닐까. 결실의 달콤함에 취하기보다 과정의 쌉싸래함을 만끽하는 이들이 늘기를 바란다. 최도영이 저만 아는 독불장군으로 치부될 때 우리 사회의 아픔은 더 깊어지리라.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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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12
지난 1월 3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유신치하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판결내용과 판사명단을 공개했다. 대법원은 “30년 전 시대 상황에서 사법시스템 전체가 짊어져야 할 과오를 우연히 현재까지 현직에 남아있는 몇 명의 법관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결코 우리 모두가 바라고 있는 진실과 화해에 바탕을 둔 미래지향적인 과거사 정리를 이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법시스템 전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좋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영 마뜩잖다.

도무지 사죄하는 사람이 없다. 대기업들이 불법행위 등으로 국민의 원성을 살 때 임직원 일동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불법, 탈법의 주체는 그룹 총수 측근에게 한정될 것이 뻔한데도 아랫사람들까지 죄다 책임의 굴레를 씌우는 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그간 공적을 나누기는 꺼려하면서 과오는 나눌 것을 강요하는 지도층을 너무 많이 봐왔다. 판사들이 자신들의 인격권을 끔찍이 아끼는 마음으로 일반 국민들의 판결을 내렸다면 지금처럼 신뢰를 잃지 않았으리라. 영특한 머리가 아깝다.


070213
이필상 고려대 총장님이 논문 표절 의혹을 부인하며 전체 교수 신임투표를 제안한 일로 학내가 뒤숭숭하다. 나는 일평생 사상과 진리의 독점을 막기 위해 살고 싶다는 꿈을 품는 녀석이다. 내 모자란 머리로 궁리해볼 때도 진리가 다수결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도 명확하다. 이 총장님이 신임을 얻어 총장직을 수행하시든 결국 용퇴를 하시든 간에 적잖은 생채기가 남게 됐다. 사기 조선열전에서 사마천은 고조선을 침공한 한나라 수륙양군이 모두 치욕을 당했다(兩軍俱辱)고 기록하고 있다. 그 누구도 승자가 아닌 참담한 상황이지만 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힘은 우직한 원칙에 있지 않을까. 고대스러운(?) 해법이 점점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자세한 내용은 익구닷컴 <이필상 총장님의 출처(出處)> 글 참조


070214
경복궁 건춘문 맞은 편에 자리한 술집 오로(ORO)에서 처음 만난 또래 친구에게 살가운 악수를 건네려고 했다. 모임 장소에 당도하기 전에 세 번을 상기했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한 걸 보면 난 여전히 악수가 서툴다. 70도 정도 허리를 숙이는 인사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악수가 영 어색하지만 내 좋고 싫음과는 관계없이 익혀둘 예법 가운데 하나다.

악수는 서양 남자들 사이의 인사법에서 출발했다. 손에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지만 그 밖에도 다양한 연원이 있다.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는 여성들이 악수하는 풍속이 없다는 게 재미나다. 그 때문인지 나도 여자와 악수를 나누기가 조금 스스럽다. 여하간 강아지가 등을 땅에 대고 연약한 배를 보임으로써 친밀감과 무저항을 보여주듯이 인간의 무기인 손을 건넨다는 건 화합의 몸짓이며, 신뢰의 교태다.

“어르신을 위하여 나뭇가지 하나 꺾어 드리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爲長者折枝, 語人曰 我不能 是不爲也, 非不能也)”는 <맹자> 구절이 있다. 무능한 나이지만 못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을 뿐인 일도 많이 있다. 내 게으름을 조금 다독이면 금세 해낼 수 있는 일을 내 천학비재(淺學菲才) 탓으로 돌리지 말자. 천학비재는 고치라고 있는 것이지 핑계 삼아 비빌 언덕은 아니기에.


070215
보통의 필부가 그렇긴 하지만 나도 계획은 구만리 장공을 노니는 붕새지만 결국 하는 일은 매미 정도이기 일쑤다. 초등학교 시절 명언집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하기 시작한 이래로 명언명구 수집은 내 취미다. 아니, 내 생활의 일부다. 내 가슴 한 구석에는 명언집 편찬의 꿈이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다. 배운 도둑질이 짜깁기라면 차라리 그 짜깁기를 멋지게 해보고 싶다.

양주동 선생님의 <세계명언대사전>은 서양 쪽에 치우쳤고, 모로하시 데쓰지의 <중국고전 명언사전>이 중국에 올인했다면 한국과 중국을 아우르는 동양고전명언사전이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멋대로 상상해본다. 아쉽게도 내가 아직 서먹서먹해서 일본까지 마수(?)를 뻗칠 자신은 없지만.^^; 쟁쟁한 대가들이 나서지 않으시는 것을 보면 그리 돈 되는 아닌 모양이다.

동양명언명구집이 없지는 않지만 적잖은 아쉬움을 느낀다. 우선 몇몇 인기 고전에 치우치지 말고 잘 알려지지 않은 글도 고루 실어야 한다. 맛깔스러운 한국어로 옮기되 재미난 해설과 번뜩이는 혜안을 선사하는 고전명구집은 내 영혼의 이데아다. 피안(彼岸)이다. 이루지 못할 꿈, 지키지 못할 약속이지만 그런 최소한의 허영심도 없다면 매미의 삶이 너무 딱하지 않겠는가.


070216
김학주 교수님이 번역한 시경이 품절이라 출판사 명문당에 재고 문의를 해봤다. 교수신문 고전번역 비평 시경 부문에 선정된 책이 아까운 마음에서다. 출판사에서는 가지고 있는 책이 두 권 있는데 표지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출판사 재고로 남아있는 책은 대개 반품된 것일 터이니 상태가 양호하리라 기대하는 게 무리라 이거라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하다가 옥션에서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예용품과 서예서적 위주로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절판된 책을 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운 마음에 4,000원짜리 용모양 필산(筆山)도 함께 구매했다. 필산은 ‘山’ 자 모양으로 만들어 붓을 걸어 놓는 기구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문진 용도로 쓸 수도 있고 필산도 겸용이라 서예를 하지 않는 나이지만 충동구매를 하고 말았다. 붓을 못 올려도 펜이라도 올려놓고 써봐야겠다.

일전에 어느 출판사 책창고에서 일일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일당 대신 책을 한가득 안고 와서 어찌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함께 일했던 아저씨 한 분의 말씀이 가끔 생각난다. 많은 책을 옮기고 하다보면 좀 찌그러지고 그럴 수 있으니 조금 봐달라는 취지의 말씀이었다. 그 때 이후로 좀 많이 나아졌지만 나는 아직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면 제본부터 책등, 책배 상태 등을 꼼꼼히 살핀다. 책을 많이 사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기는 하겠지만 나는 경미한 흠집이 있는 책을 많이 만나는 징크스가 있는 편이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표지에 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에 책 사기를 망설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런 사소한 흠집도 견디지 못하는 내가 약간 부족하거나 불편한 사람을 얼마나 잘 보듬을 수 있을지 반성해봤다. 장애책에 분개하는 내가 장애인에게 정성을 다하겠는가. 책의 껍데기를 중요시하는 내가 사람의 껍데기에 정신을 흩트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물론 이건 좀 억지 비교다. 책 제본 상태나 표지 디자인 등에 신경 쓰는 것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상관관계는 낮다. 더군다나 나는 책 읽을 때는 손때나 땀이 묻는 것도 아까워 손을 깨끗이 씻는 녀석이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고민은 미리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070217
영화 <홀리데이>를 중간 부분부터 봤다. 영화속 지강혁(이성재 분)이 외치던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는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을까.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돈을 많이 벌기 이전에 돈 없는 게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2006년 3월경 구멍가게에 들어가 1,800원을 훔친 스물 아홉 살 이모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을 신청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기각되어 풀려났다고는 하지만 1,800원에 추상 같이 무서웠던 국법은 왜 위로 올라갈수록 훈훈한 봄바람이 되는 것인지 우울하다.

<사기>에서 범려는 “천금의 자식은 결코 저잣거리에서 사형 당하지 않는다(千金之子 不死於市)”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면 진실도 덮고, 사람도 살린다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좀 더 늘었으면 좋겠다. 천금지자의 품위보다 무금지자(無金之子)의 서러움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가 진정 아름답고 기품 있다.


070218
청원이가 하도 재미나게 보고 있다기에 나도 결국 <하얀 거탑>을 시청하게 됐다. 권력을 향해 매진하는 장준혁을 우리 둘레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조직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며 같이 물들면서 원래 뭐 이런 거라는 소리도 적잖이 들어왔다. 우용길 부원장이 장준혁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려는 최도영을 구슬리자 끝내 마다하는 최도영을 보다가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정말 내가 이런 남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사람을 얼마나 사귈 수 있을까 하는 시험(!)의 유혹 말이다.

의로움을 지키기 위해 권세를 마다하고, 어짊을 건사하려고 부귀를 버리는 사람이 좀 더 늘기를 바라면서도 내 자신이 그렇게 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함부로 호언장담하는 게 얼마나 신중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인지를 이제야 좀 알겠다. 번민하지만 거짓 증언을 하고만 염동일에게 모진 회초리를 던지지 못하는 까닭은 그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장준혁 같은 유능한 확신범이나 최도영 같은 정의의 사도보다는 고뇌하는 염동일이 정규분포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으리라. 우리 사회의 희망은 좀 더 많은 염동일이 최도영쪽으로 다가서게 하는데 있다.

내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드는 사명 같은 건 없겠지만 그 강물에 목을 축이기 위해 내 자신이 해야할 몫이 적잖으리라 믿는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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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지난 2월 13일~14일 전체 교수 신임투표가 진행 중일 때 작성한 글입니다.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에 제 입장을 정리해본 글이라 시의성은 다소 떨어집니다. 이필상 전 총장님의 낙마는 여러모로 많은 성찰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이필상 고려대 총장님을 경영학 교수 가운데 드물게 빼어난 분이라고 생각해왔다. 실제로 고대 경영대생들은 졸업하기 전에 마땅히 이 교수님 강의 하나는 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불문율이 있기도 하다. 가장 많은 열성 수강생이 있는 경영학과 강의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경영학자에게도 기품을 기대할 수 있다면 이 교수님을 앞자리에 꼽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 백분토론 등을 즐겨볼 때 종종 패널로 나오셔서 사회경제 전반에 대한 풍부한 식견을 보고 배우며 내가 팬을 자청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일련의 사태는 더 가슴이 아프다.


최근 마광수 연세대 교수님이 최근 펴낸 시집에서 제자의 시를 부분적으로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마 교수님이 표절 사실을 시인한 일이 있다. 연세대측은 도작이 드러난 교수가 문학창작과 관련한 교과목을 맡는다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마 교수님의 모든 수업을 폐강시켰다(성현석. “이필상 총장이 마광수 교수에게서 배울 점.” 프레시안. 2007. 02. 09. 참조). 물론 마 교수님의 과오는 변명할 여지가 없지만 일단 아니라고 잡아떼고 보는 풍토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지난해 8월 이필상 총장님은 <연합공보>에 기고하신 글에서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님의 눈문 표절 파문에 대해 “논문 표절 비리는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칼럼을 기고하셨다. 이 총장님께서 김 전 부총리님에게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가?”라고 물으셨지만 사실 그 질문은 너무 매섭고 날카로워서 남에게 선뜻 던지기 망설여진다. 그 물음은 남에게 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먼저 여러 번 던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어떤 무능도 부끄러움의 능력을 잃은 것만큼 부끄럽지는 않다(고종석. “환멸을 견디는 법.” 한국일보. 2004. 06. 30. 참조)”는 고종석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어 본다.


표절의 경우 3년의 공소시효가 있다고 한다. 이 총장님의 표절 의혹이 발생한 시점은 20년 전이라고 하는데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 까마득한 예전의 일이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건 너무 지나치다. 보다 섬세하게 논의를 하자면 표절에도 수위가 있으리라. 표절 아니면 결백 이렇게 전부 아니면 전무가 아닐 공산이 크기 때문에 단순히 마녀사냥식으로 접근할 문제도 아닌 듯하다. 가장 염려되는 점은 앞으로 교수님들이 학생들과의 공동 저술을 꺼리는 분위기가 퍼져 후속 학자를 양성하는 연구 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정기원. “표절시비.” 한국경제신문. 2007. 02. 08. 참조).


비례원칙을 넘어서는 무분별한 매도행위에는 반대하지만 전체 교수 투표 또한 그리 바람직한 수단이 아니라는 건 명징하다. 내 모자란 머리로 궁리해볼 때도 진리가 다수결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도 또렷하다. 나는 이런저런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기로 했다. 기실 ‘학내 정치’는 변수(變數)가 아니라 늘 존재해왔던 상수(常數)에 가깝다. 문제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이 총장님 논문의 표절 여부이기 때문이다. 이 본질을 흩뜨리는 곁가지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로 했다. 진실이 반드시 승리하지는 않더라도 진실한 태도만큼은 남아 희망의 싹을 틔우는 것을 적잖이 보았다.


진상조사위의 결론이 미덥지 않다면 차라리 재무관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논문 표절 검증을 맡기는 방식을 제안하는 게 더 실효성 있다고 생각한다. 상당부분 표절이 인정될 경우 총장직 수행에 결정적 흠결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나는 학교의 단합을 위해 용퇴하라는 주장에는 동감하지는 않지만 김 전 부총리님 사건으로 말미암아 한껏 촘촘해진 학문적, 윤리적 체를 이 총장님이 통과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고 보면 옛날 사람들의 출처(出處,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에 대한 자세는 너무 깐깐해서 탈이었다. 탄핵 상소가 올라오면 그 날로 벼슬자리를 버리고 낙향해버리기 일쑤였다. 일단 비판하는 말이 들려오면 관직에 물러나는 시늉이라도 하는 그 시절의 풍속이 때로는 너무 넘쳐서 황당하다. 허구한 날 상소-사직-등용의 무한반복이 이어지다 보면 행정의 효율성과 효과성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었을 듯싶다.


남명 조식은 “선비의 큰 절개는 오직 출처(出處) 하나에 달려있다”고 강조하셨고, 그의 수제자 내암 정인홍이 “고금의 인물을 두루 논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출처를 본 연후에 업적의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며 스승의 말을 실천하려 했다(이광일. “출처.” 한국일보. 2007. 02. 11. 참조). 이는 행정의 효율성, 효과성보다 더 중요한 것을 붙잡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게다. 논문의 출처(?)가 문제되고 있는 요즘, 출처(!)하는 자세까지 함께 성찰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명확한 결론 없이 우물쭈물했지만 틈틈이 박절한 말들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다른 누구도 아닌 이필상 교수님이기에 더욱 아끼고 존경하는 마음에서 충언을 한 것이라 생각해주시길. 부디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벌어지는 곳에 맞잡음을, 마음의 가시가 돋아난 곳에 안도의 한숨이 있기를!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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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05
‘백성들에게 육전 이외에서도 매매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許市民六廛外, 通共和賣).’ 조선왕조실록 정조편 신해년(1719년) 1월25일자의 일부다. 조선 상업사 최대사건이라는 ‘신해통공(辛亥通共)’이 시행된 것이다. ‘통공’은 진입장벽 철폐. 비단과 종이 등을 국가에 대는 육의전을 제외한 품목의 자유로운 매매 길이 열렸다.
- 권홍우. “[오늘의 경제소사/1월25일] 신해통공” 서울경제. 2005. 01. 25.

신해통공으로 시전상인이 누리던 독점상업특권인 금난전권(禁亂廛權)이 사라졌다. 이러한 봉건 상업질서의 붕괴는 사상(私商)들의 부단한 투쟁의 성과였다. 나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 “금난독권(禁亂讀權)”을 만들어 봤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마구 읽는 독서 습관을 금지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읽기로 결심한 동양고전 목록을 추려보니 아무리 속독을 한다고 해도 엄청난 양이다. 선현들이 몇 십년 걸쳐 곱씹은 고전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읽어치우겠다는 게 지나친 처사지만 나 아니면 누가 또 이런 헛짓거리를 하겠는가?^^; 금난독권의 한시적 비호 아래 할 수 있는 데까지 고전의 바다에 빠져보자.


070206
열린우리당 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 등 23명의 의원들이 집단 탈당했다. 대한민국 정당 정치의 비루한 수준을 몸소 보여주지 않으셔도 익히 잘 알고 있는데 이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소속 정당을 떠남은 의원 개개인의 자유다. 허나 이 분들은 자신이 누리는 커다란 자유만큼의 책임은 모르는 듯싶다. 떠나는 이들의 감동 없는 참회를 들으며 이들에게 쥐어준 건국 이래 최초의 의회 권력 교체가 무참해졌다.

송나라 이방(李昉)이 편찬한 백과사서 『태평어람』에는 사귐에 대한 제갈공명의 말씀이 실려 있다. “선비가 서로 사귐에 있어서 따뜻하다고 해서 꽃을 더 피우지 않고, 춥다고 해서 잎 모양을 바꾸지 않는다. 사시사철 시들지 않고, 어려움을 겪어가며 더욱 굳건해진다(士之相知,溫不增華,寒不改棄,貫四時而不衰歷,坦險而益固)”는 말씀을 새기며 너무 많이 바꾸고, 너무 빨리 시든 분들을 곡한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먹고사니즘’에 건넬 동냥은 없다.

명나라 말기의 고증학자 고염무는 <일지록(日知錄)>에서 “세상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고 말했다. 나같은 백면서생의 어깨마저 무겁구나.


070207
아침에 출근하다 구청 앞에서 민주노동당 중구위원회의 “노무현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악을 반대한다”는 제하의 유인물을 받았다. 이 유인물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은 우리 모두를 위한 투쟁이다”고 강조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취업난과 형편없는 연금제도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세금이 복지에 쓰이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 어디 있는가! 오히려 다른 노동자들의 국민연금도 정부가 지원해야 마땅한 일”이라는 주장에 상당 부분 동감한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고용 안정을 누리고 있다지만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 명이 해고됐고 ‘괘씸죄’에 걸려 연금도 못 받을 판”이라며 공무원에게 건네지는 선망의 시선을 간단하게 처리하고 넘어간 것은 그리 고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용 안정에 큰 가중치가 부여된 시대인 만큼 공무원들의 항변이 그리 와 닿지 않는다. 다만 “진정으로 특혜를 누리는 자들은 공무원연금을 삭감하려는 정부 고위 관료들과 국회의원들”이라는 주장에는 큰 공감을 보낸다. 국회의원들이 고통을 분담한다며 세비나 후생복지를 줄였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성추행범 최연희가 꼬박꼬박 타먹은 세비만 생각하면 이 땅의 상도덕이 참 무안하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굳이 해야 한다면 위에서부터 뼈를 깎아야만 따를 마음이 생긴다.

오후에는 중구청 광장 개소식이 열렸다. 오세훈 서울시장님이 참석하는 관계로 “명품서울 행복중구 오세훈 시장님과 함께 만들어요”, “오래도록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시는 오세훈 시장님을 환영합니다”, “오세훈 시장님의 중구 방문을 전 구민과 함께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펼침막이 여기저기 걸렸다. 특히 4층짜리 별관 한쪽 면을 뒤덮는 대형 펼침막은 몇 시간 쓰려고 만든 것 치고는 너무 지나쳤다. 과공비례(過恭非禮)다. 거부감이 드는 펼침막을 걸어 놓는 몰취향도 문제지만 만약 서울시장 일행이 그걸 보고 흐뭇해한다면 이게 더 큰 문제리라. 중구민이 아니더라도 지나가면서 대형 펼침막을 보고 세금 걱정을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서울시장이 중구청을 다시 방문해 펼침막 비용을 절반으로 줄이는 게 최선의 방책이려나.^^;

행사 진행 내내 광장 앞 한 켠에서는 덕운·흥인상가 세입자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오 시장님은 “똑같이 혜택이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며 “효율적으로 서울을 개발하고 발전해 나가야”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문득 “그건 정말 특수한 경우일 뿐이야, 라는 자기정당화로 눈을 감아도 소용없다. 특수하든 그렇지 않든, 극빈은 관념이 아니라 삶이므로”는 황인숙 시인님의 글이 떠올랐다. 거창한 말이야 쉽지만 관념이 아닌 삶의 문제를 인고하며 풀어내는 정성어린 행정을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듯이 펼치길 바란다. 공천헌금을 받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박성범 의원은 염치가 있는지 짤막한 인사만 하고 내려왔다.


070208
맹자는 “큰사람이란 어린 시절의 순진한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孟子曰 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말씀하셨다. 젊은 날의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에 열중한 나머지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유치했던 기억을 하찮게 여기지는 않았나 반성한다.

정조대왕은 <일득록(日得錄)>에서 맹자의 이 구절을 언급하며 어린이의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꼭 같지는 않다고 말씀하신다. 다만 사욕에 물들지 않아 순수하고 거짓이 없는 기상을 잘 간직하여 마치 밝은 거울이며 잔잔한 수면과 같기에 ‘잃지 않는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고 풀이한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내 삶의 제일 목표로 삼았던 것은 “한결같음”이었다. 새삼 한결같음의 위력을 실감한다. 대중형님께서 말씀해주신 “위대한 일상성”을 떠올리며 권태와 싸우는 소소한 삶의 재미를 찾아봐야겠다.

75년 생애의 수많은 주간들은 정해진 일과의 틀을 따라 흘러갔다. 매일은 다른 날과 쌍둥이처럼 비슷하였다. (...) 이 끔찍한 작업 캘린더에는 빈 곳이 없다. (...) 창조적인 힘의 이런 엄청난 균형은 그의 생활의 지겨운 겉모습 뒤에 진짜 마적인 요소가 숨어 있음을 폭로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정신의 탐험가들』, 푸른숲, 2000, pp. 319-321, mannerist님 블로그에서 재인용


070209
사적 제101호인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가 7일 붉은 페인트로 칠해져 심하게 훼손되었다. 삼전도비로 많이 불리는 이 비석은 370년 전인 1637년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한 것을 기념해 세운 비석이다. 비문을 지은 이경석이 글공부를 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며 탄식했던 비극의 기록이다. 말끔히 지우기 힘들 페인트만큼이나 우리 마음의 생채기도 깊어질 것이다.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역사는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 나은 역사를 만들 때만 과거를 분칠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조선 백성들의 비참한 이야기들을 회고하려니 가슴이 아프다. 병자호란이 끝나고도 뻔뻔스럽게 왕위를 유지했던 인조를 비롯한 대다수 신료들의 무책임이 역겹다. 책임 정치를 갈구하는 건 민초들의 오랜 바람이자 마땅한 권리다.


070210
나는 확실히 호고벽(好古癖, 옛것을 좋아하는 취미)가 있는 모양이다. 옛사람들의 언행에 끔찍한 관심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전체 역사서의 장점은 역시 열전에 있다. <한서열전(漢書列傳)>을 읽으면서 한번 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되돌아보았다.

중과부적을 극복하지 못하고 흉노군에 항복한 이릉(李陵) 장군은 한나라로 귀환하라는 제안을 거부하며 “대장부는 욕된 일을 두 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간신을 없애라고 황제의 분노를 사서 끌려가다가 어전의 난간에 매달려 난간이 부러지는 바람에 절함(折檻)의 고사를 만든 주운(朱雲)은 직언의 결기를 보여줬다. 사치로운 장례(厚葬)는 죽은 이에게 무익하다며 벌거벗긴 채로 묻어 주길 유언한 양왕손(楊王孫)은 인간의 허영심을 깨우쳤다.

도연명은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서 스스로를 평하며 “책 읽기를 좋아하되 그 뜻을 깊이 깨달아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好讀書 不求甚解), 좋은 구절을 만나면 기뻐하여 밥을 먹는 일도 잊어버렸다(每有意會 便欣然忘食)”라고 말하고 있다. 나 또한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을 갈무리하기를 즐기며 심대한 의미를 파헤치는 수고로움은 꺼리는 편이다. 물론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070211
내가 읽을 동양 고전 목록에 여씨춘추는 넣지 않았다. 여씨춘추는 잡가(雜家)에다 백과사전 성격이 강한 글이라고 들어 제대로 독해를 하지 못할 거 같았다. 그런데 우연히 접한 여씨춘추 한 구절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여씨춘추도 읽을 책 목록에 넣기로 했다.

요리사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만 자기가 그것을 먹지 않기 때문에 요리사일 수 있다.
만일 요리사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그것을 자기가 먹으면 요리사가 될 수 없다.

庖人調和而弗敢食, 故可以爲庖.
若使庖人調和而食之, 則不可以爲庖矣.

이 말은 사회 지도층이 사사로운 이득을 꾀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제를 나타내고 있는 듯싶다. 당리당략에 식상하고 사리사욕에 진절머리가 나는 요즘에 더욱 음미하고픈 말씀이다. 정성껏 만든 요리를 남에게 내어 보이고 크게 심호흡을 내쉬는 모습이 요리사의 본분이요, 사명이다.

노자는 “생성하고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고, 이루고도 그것에 기대지 않는다(生而不有 爲而不恃)”라고 했다. 이경숙님은 生而不有를 “살면서도 없는 듯하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없는 듯하다”라고 풀이하셨는데 일리가 있다. 여하간 논공행상에 집착하며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를 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머금을 수 있는 만큼의 물방울이 넘으면 미련 없이 비워내는 연꽃잎처럼 들어온 만큼 내보낼 수 있는 마음자리를 갈망한다. 열심히 가르친 스승이 아쉬움을 감추고 제자를 하산시키는 모습은 그 얼마나 애틋한가. 미식가는 넘치는데 요리사가 없는 사회는 암담하다.

Posted by 익구
:

춘추(春秋)와 한국사

문화 2007. 2. 8. 12:28 |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서평으로 올린 글을 문체를 바꿔 수정했습니다)

 

<춘추(春秋)>는 주(周)나라의 제후국인 노(魯)나라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편년체 역사서다. 은공(隱公) 원년(BC 722년)에서 애공(哀公) 27년(BC 468)에 이르는 255년의 사실을 엮었다. 쇠락한 주 왕실로 말미암아 “옳지 못한 설(說)과 포악한 행동이 행해지고, 신하로서 임금을 죽이고,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죽이는 자가 있어 공자가 이런 세태를 두려워해 <춘추>를 지었다”고 맹자는 말하고 있다. 붓으로 기록함으로써 나쁜 것을 단죄하는 것을 ‘필주(筆誅)’라고 하는데 이러한 춘추필법은 동양 정신의 고갱이가 되어 오늘도 전한다. 이 땅의 언론인들이 춘추필법을 잘 구사하는지는 의문이지만.


후한시대 역사가 반고(班固)는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 춘추의 경우 그 전(傳)이 총 23가(家) 948편에 달한다고 정리했다. 경(經)이 공자가 편찬한 춘추 본문이라면, 전(傳)은 좌구명 등이 경에다가 해석, 부연 설명을 덧붙인 것을 가리킨다. 23개의 학파에서 춘추 해석서를 948편이나 내놓았다니 춘추의 인기를 실감하게 만든다. 후대 사람들은 성인(聖人)의 경(經)과 현인(賢人)의 전(傳)이 합작한 것이라고 좋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우리가 춘추 본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1만 6천여 자로 분량이 매우 적고, 그 내용도 소략하다. “So what?”이라는 질문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법하다. 결국 너도나도 춘추 해설서를 써냈다.


이 수많은 해설서들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치열한 다툼 끝에 세 종류가 명맥을 유지했다. 그 영광의 얼굴들이 바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이다. 세 경전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가 삼국시대 이후에 춘추좌씨전(이하 좌전)이 춘추학을 제패한다. 삼국지에서 촉한의 관우가 좌전을 좋아해 전장에서도 좌전을 끼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고사다. 또한 촉한의 맹광(孟光)은 공양전을 선호해 좌전에 뛰어났던 내민(來敏)과 함께 두 책의 우열을 놓고 티격태격했다는 기록도 보인다(좌구명 著, 신동준 譯, 『춘추좌전』 1권(한길사, 2006), 20~22쪽 참조).


그런데 우리나라는 오로지 좌전이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우리나라에서 춘추학의 발달이 더뎠던 것은 이러한 독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좌전을 넘어서는 해설서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정약용의 춘추고징(春秋考徵) 정도가 예외인 듯싶다. 이러한 무관심은 광복 이후에도 다를 바 없어 2005년 자유문고에서 곡양전과 곡량전의 역주본을 내놓은 것이 유일하다. 송대(宋代)에 성립된 개념으로 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경서를 고른 13경(十三經)은 시경, 서경, 주역, 주례, 예기, 의례, 논어, 효경, 이아(爾雅), 맹자와 더불어 춘추 3전을 일컫는다. 중국 사람들의 선정이기는 하지만 좌전 편향의 우리 풍토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좌전이 역사적 사실 해설과 실증적 탐구에 열중해서 높은 인기를 얻게 되었음은 인정해야 한다(좌전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내가 공양전과 곡량전 걱정을 한다니 참 우습다.^^;). 여하간 춘추를 놓고 벌어진 현란한 논쟁을 바라보며 춘추시대 여러 나라의 역사서 가운데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노나라의 역사를 경전으로 승격시켜 아낄 줄 알았던 중국인들의 문화의식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역사가 간략하다고 한탄하기 전에 유득공이 <발해고(渤海考)>를 엮는 심정으로 매달렸다면 어떠했을까. 만약 춘추를 익히는 정성의 반의반만이라도 삼국사기를 위시한 우리 사서들에 대한 주해를 달았다면 어찌 동방에 경전 몇 개쯤 나오지 않았으랴!


우리나라 과거시험에서 좌전을 단골 시험 문제로 출제한 것은 익히 전해진 사실이다. 서로 춘추대의(春秋大義)를 주창하며 자신의 일을 합리화했다. 주나라 왕실 기록도 아니고 제후국 가운데 강성했던 나라도 아닌 약체 중의 약체인 노나라의 역사를 배우려고 우리 선조들이 하얗게 지새운 밤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조선 때  진사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김 아무개의 답안 가운데 “주몽이 고구려를 열고 동명이 업적을 이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 김정국(金正國)은 “우리나라 사람의 본국 사적(史籍)에 자세하지 못함이 이와 같으니 가소롭구나”라고 비꼰다(김영인. “짜증나는 역사” 데일리안. 2005. 03. 07. 참조). 일부 학자들은 고구려 시조 동명왕과 별개로 부여의 시조도 동명왕이라고 주장한다. 즉 본래 부여의 시조를 동명왕이라 칭하는데 삼국사기 등에서 고구려의 시조도 동명왕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한(東漢)의 사상가 왕충(王充)이 쓴 <논형(論衡)>에 나오는 부여의 건국신화는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거의 같다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고구려 건국세력이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여의 동명신화를 차용해 주몽신화를 만들었다’는 설이 나온다. 또 ‘동쪽의 밝음’을 뜻하는 동명이라는 한자가 특정한 왕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의 공통 분모로서 보통명사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정장열. “드라마 ‘주몽’ 놓고 고구려사 논란” 주간조선. 2006. 06. 27. 참조). 부여족 갈래인 백제가 건국 직후 건립한 동명묘(東明廟)는 주몽을 위한 것이 아닌 부여의 시조를 받드는 사당이었다는 견해까지 있다. 여하간 “주몽이 고구려를 열고 동명이 업적을 이었다”는 표현은 말이 안 된다. 주몽과 동명왕을 동일 인물로 묘사한 삼국사기만 읽었어도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으리라. 최근 벌어지는 논쟁을 받아 들여 “동명이 부여를 열고 주몽이 업적을 이었다”라고 한다면 모를까.


우리 역사를 가벼이 여긴 것은 비단 일개 유생에 그치지 않는다. 비극적이지만 거의 모든 식자층이 그랬다. 이황이 남긴 도서는 모두 1,700여 권인데 주자의 저작과 경전 등 중국서적이 159종이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경국대전 등 조선의 역사, 지리 등 관련 서적은 그의 1/3 수준인 55종이었다. 그의 여러 가지 저술도 주자 성리학 등 중국에 관한 것들이었다고 한다(오인환,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열린책들, 2003), 171쪽 참조). 이이는 <기자실기(箕子實記)>를 지어 중국에서도 전설상 인물인 기자가 조선으로 왔다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을 체계적(!)으로 서술했다. 이러한 모화사상은 17세기 이후 형성된 조선 중화주의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이이 著, 안외순 譯, 『동호문답』(책세상, 2005), 114쪽 참조).


세종대왕은 북송 때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資治通鑒)을 무척 애독했다고 한다. 이를 인쇄하고 반포하기 위해 새로운 제조법으로 종이를 만들고 새 활자를 주조하는 정성을 들여 백성들에게 보급할 <자치통감훈의>을 편찬했다. 물론 세종대왕이 <고려사>, <고려사절요>의 내용 보강에도 관심을 보인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중국 역사에 대한 흠모에 비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대학자와 호학군주조차 제 나라 것을 경시했는데 대다수 지식인들이 자신의 역사에 얼마나 무심했을지 안 봐도 뻔하다. 선현들이 우리 역사에 해설을 붙이기 위해 노력했다면 오늘날 후손들에게 더 풍성한 기록을 물려주실 수 있었으리라.


중국 대륙을 차지했던 북방 유목민족들이 하나둘 중국화(中國化)하는 와중에도 한국은 아름다운 예외였다. 거의 모든 지배계급이 중국화를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도 끝내 중국과는 별개의 주체성을 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경이롭다(한국하이에크 소사이어티, 『자유주의만이 살길이다』(평민사, 2006) 中 강위석, <공자와 자유>편 참조).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민심이란 본질적으로 민중의 무의식이 투사된 개념이다”고 설파한 바 있는데 어쩌면 그 설명이 들어맞을지도 모른다(정혜신. “정신분석학으로 본 노 대통령” 한겨레. 2005. 08. 30.) 지배층의 중국화 열망을 막아낸 것은 힘없는 백성의 보이지 않는 저항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자발적 복종의 시대는 지났다. 민초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이 땅에 켜켜이 쌓인 지혜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같은 빼어난 기록문화가 조선 이전의 역사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아쉽다. 사기열전의 그 화려한 기록들을 보면서 군침을 흘렸듯이 춘추를 질리지도 않고 잘 우려먹는 중국인들의 은근함에 새삼 부끄럽다. 한문으로 쓰인 우리 고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게 돈 안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남의 어지간한 아파트 한 채 값 정도인 20~30억 원이 당장 없어서 고전 국역 사업에 인색한 현실이 서글프다.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에는 분개하기는 쉽지만, 청나라 건륭제 때 문헌 3458종 7만9582권의 사고전서(四庫全書)를 발간한 그 치열함을 배우기는 어렵다. 아무쪼록 고전 국역 작업에 대한 투자가 문화강국의 주춧돌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좀 더 늘었으면 좋겠다. 다가 올 한중일 역사 전쟁에 의연히 맞설 수 있는 방책은 가까운 곳에 있다. - [無棄]

Posted by 익구
:
070129
홍사덕 전 의원이 1996년에 펴낸 『지금 잠이 옵니까?』라는 책의 겉표지가 수험생들의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인기를 끌던 적이 있었다. 홍사덕 전 의원의 매서운 눈매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효과만점이었다고 한다. 믿기지는 않지만 원고지 1100매 분량의 이 책은 단 닷새 만에 탈고되어 기네스북에 오르기까지 했다니 놀랍다. 분명 밤잠을 설쳐가며 그 책을 쓰셨을 게다.^^;

어쩌면 <지금 잠이 옵니까?>라는 문구를 새기며 밤잠을 쫓았을 수많은 수험생들이 대학생이 되어 다시 똑같은 표어를 꺼내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자는 시간 줄이지 말고 깨어있는 시간 동안 알차게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깨어 있는 시간 허비를 줄인다는 것 또한 잔인하기는 매한가지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번번이 샌드위치로 때운다거나 어려운 책 붙잡고 있는 시간이 사치스러워 해제만 찾아다니며, 시시한 후배들과 수다 떠는 게 낭비라 후배들 밥 사주는 것도 꺼리게 된다고 가정하자. 차라리 잠을 못자 휑한 모습이지만 한 끼 식사를 맛나게 하고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원전을 읽다가 입술 깨물며 포기하기도 하며, 모자란 후배와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 안에서 교학상장(敎學相長)하는 모습이 더 멋지지 않을까 싶다.

여하간 수석 합격생들의 단골 멘트인 “잠은 충분히 잤어요”가 정말 진실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불면 권하는 사회가 슬프다.


070130
강명석 매거진t 기획위원님은 배우 박건형님에 대한 기사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며 “‘하나쯤 있어야 할’ 배우”라고 평한다. “하나쯤”은 외로운 것들에게 건넬 수 있는 찬사이자 격려다.

칸트께서 설파하신 목적의 왕국(Reiche der Zwecke)은 수단이 아닌 목적 자체로서 절대적 가치를 지닌 인격이 도덕률로 결합한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목적”이라는데 주안점을 두고 정리하자면 인간의 개별성이 존중되며 주인의식이 고양되는 이상향이 아닐까 싶다.

돈이 덜 되는 꿈을 꾸는 것이 외면 받는 시대라지만 나는 목적의 왕국을 꿈꾼다. 내 개별성(나쁘게 말하면 모난 성정^^;)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들께 “저 같은 녀석 하나쯤 필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넉살좋게 말해야겠다. 자아실현은 남을 함부로 버리지 않듯이 내 자신도 함부로 팽개치지 않는데 있다.


070131
경기도 수원시 공무원들이 초과근무수당을 부당하게 지급 받아 물의를 빚고 있다. 2000여 공무원들이 아침 8시면 사무실에 도착해 밤 11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5년 간 했다는 기록을 곧이곧대로 믿은 담당자의 정신세계가 경이롭다. 서무담당 공무원이 똑같은 필체로 서명하지 않았더라면 끝끝내 밝혀내지 못했을 세금 도둑질이었다. 무죄추정 원칙을 상기하려고 해도 이와 같은 사례가 공무원 사회에서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공무원의 후생복지가 평균적인 취업자보다 못하지 않은 시대에 혈세 착복은 묵과할 수 없는 죄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지지부진하다. 공무원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일반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호소한다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누군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이 달갑겠냐만 고용 안정이라는 천복까지 누리는 공무원들이 연금 개혁에 반발하는 것은 더욱 명분이 없다. 잘 조직된 집단이 제 이익을 잘 지켜내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원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를 악용해 이익을 꾀하는 데도 절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착하고 성실한 공무원이 많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인 신뢰보다는 일상적인 감시 시스템과 공정한 평가체계가 더 필요하다는데 기꺼이 동의한다. 토마스 제퍼슨은 “자유의 대가는 영원한 불침번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워싱턴의 미국시민권연맹 사무실 앞에는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이다”라고 쓰여있다고 한다(아마 영어로 거의 동일한 모양이다). 혈세가 아깝다며 탄식하는 국민의 거친 손을 살갑게 잡고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멘트를 날려줄 수 있는 공무원이 더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070201
고등학교 편집부 선배이신 대중형님을 오랜만에 뵈었다. 난생 처음 먹어본 신당동 떡볶이는 달콤했고 기다리는 사람 걱정만 없다면 안주 삼아 오래도록 앉아있고 싶은 자리였다. 형과 간단히 맥주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정권교체 당연론(?)을 주장하시는 최장집 교수님 이야기가 조금 나왔는데 나는 내 견해를 정리해서 말씀드리지 못했다. 나는 본래 어정쩡한 양다리를 걸쳐왔다.

정당 정치 기능을 회복해야한다는 최장집 교수님의 논지에 동감하면서도 “분단체제 전체에 돌려야 할 책임을 현 정부나 그 이전의 개혁정부에만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백낙청 교수님의 논리에도 적잖이 공감을 보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에 돌을 던지기 앞서 진보 세력도 적절한 대안 마련에 실패했다는 조희연 교수님의 고백도 경청한다. 구조의 탓이라 둘러대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강철같은 의지만으로 막아낼 수 있는 성질도 아닌 것 같다.

박정희 방식과 다르게 경제를 운용하는 대안을 산뜻하게 제시하지 않고서는 모든 논쟁이 허망할 공산이 크다. 형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김만수 박사님의 『실업사회』라는 책은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 책은 높은 실업률이 구조조정이나 경제정책으로 인한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경향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임을 논증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 자본구성 변화를 세밀하게 분석해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고 설득력 있다.

김 박사님은 마르크스의 개념을 빌려 자본을 가변자본(임금)과 불변자본(설비, 토지, 건물)으로 나눈다.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가변자본 비율은 작아지기 때문에 실업률은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라 전망한다. 즉 마르크스가 역설한 산업예비군의 증가를 통계분석으로 살필 때 가변자본의 상대적 감소가 완연함을 입증해 보인다.

경제성장을 주창하는 분들은 이런 우울한 이야기에 그러니까 얼른 파이를 더 늘려야 한다고 말씀하실 지 모른다. 김 박사님의 주장을 가변자본의 감소경향이 임금 하락과 고용 감소와 직접적 연관관계가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의문을 품을 수 있듯이 이네들의 무한성장론(?)이 임금 상승과 고용 증가를 가져다 주는 지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총자본의 증가가 가변자본의 증가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장밋빛 상상은 차치하고 대중형님의 지적대로 중국만 볼 때도 파이를 늘리자는 주장이 그리 탄탄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2006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0.7%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이 이 정도인데 우리나라가 아무리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한다고 한들 갑자기 총자본을 엄청나게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탐스러운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신자유주의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 여하간 자본주의 시스템은 자본가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지 혼란스럽다. 케인즈의 말씀을 음미하며 보다 인간답고 아름다운 사회를 궁리했다.

자본주의는 성공작이 아니다. 그것은 현명하지도 아름답지도 공정하지도 않으며, 고결하지도 않다. 그것은 우리의 기대에 어긋난다. 요컨대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이제는 경멸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볼 때 우리는 몹시 당혹스러워한다.
- 마이클 앨버트, 김익희 옮김, 『파레콘: 자본주의 이후, 인류의 삶』, 북로드, 2003, 135~136쪽


070202

어제 대중형님께 아흐리만님이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 연 블로그를 찾아봤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한윤형의 블로그(http://yhhan.tistory.com)>를 찾을 수 있었다. 군 생활 중에 틈틈이 작성하신 글도 만날 수 있었고, 이전에 쓰셨던 글들도 알음알음 모으고 있으셨다. 낯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아흐리만님이 입대하시기 며칠 전에 부랴부랴 팬레터(?)를 써서 보냈다.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저는 노사모는 아니지만...” “저는 민주노동당 지지자는 아니지만...” “저는 반미주의자는 아니지만...” “저는 운동권은 아니지만...” “저는 군면제는 아니지만...” “저는 재벌옹호론자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말을 입에 달아야만 안심이 되고 비로소 색안경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한국 사회는 아직도 불행합니다. 도대체 명색이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면서 페미니스트도, 노사모도, 민노당 지지자도, 반미주의자도, 운동권도, 군면제자도, 재벌옹호론자도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니 말입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기회의 평등조차도 제대로 실현이 안 되니 황당하지만 아마 아흐리만님께서 이 황당함을 더 많이 느끼셨을 것 같네요.

나는 이런 좀스러운 말들을 늘어놓은 말미에 나 같은 녀석보다 더 많이 읽고 쓰시는 아흐리만님이 군 생활로 말미암아 읽고 쓰는 것이 자유롭지 못함을 염려했다. 그가 무탈하게 돌아와서 반갑다. 나와 비슷한 또래에 저 정도의 사고와 논리와 용기를 갖출 수 있다니 예나 지금이나 신선한 자극이고 충격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배우고 깨져야할지 벌써부터 아찔하다.

요즘 도덕 교과서에도 된사람이 으뜸이라고 가르치고 있겠지만 나는 든사람과 난사람이 부럽다. 우리 사회가 된사람이 모자라 이 모양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학문과 지식이 풍성한 든사람, 총명하고 영특한 난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아흐리만님의 건승을 빌며 그가 난사람이면서 든사람이고 된사람이길 바란다.


070203
문화유산 답사를 제외하고는 나다니기 싫어하는 나 같은 녀석에게도 때로는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동호의 제안으로 속초 여행을 떠났다. 주말 내내 해야할 방정리를 미루고 선뜻 나선 것은 바다가 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이란 말을 중학교 한문시간에 처음 듣고 나는 물이 좋다고 생각했다. 정체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물의 속성을 배워 자유롭게 흘러감을 본받고 싶다. 바닷바람을 마시며 답답했던 소회를 달랬다.

회맛을 더욱 돋운 콩코드 적포도주의 매력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다. 함께 한 동호, 주영, 한영, 기표, 지혜, 해승, 효진이에게 고맙다.


070204
청년 율곡이 스무 살에 쓴 자경문(自警文)을 여러 번 읽고 새겼다. “성인을 본보기로 삼아서 터럭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以聖人爲準則 一毫不及聖人 則吾事未了)”라고 호기로움이 맵다. 율곡 선생님의 뜻을 미욱한 내가 얼마나 보듬을지 모르겠다.

“항상 ‘한 가지의 불의를 행하고,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더라도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슴속에 담고 있어야 한다(常以行一不義 殺一不辜 得天下不可爲底意思 存諸胸中)”는 말씀 또한 내 이상에 어떤 것들이 들어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듯하다.

스물 두 살의 키에르케고르는 일기장에 “온 세계가 다 무너지더라도 내가 꽉 붙들고 놓을 수 없는 진리, 내가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진리”를 갈망한다고 썼다. 내게도 목숨을 걸 수 있는 가치(the idea for which I can live and die)란 것이 있을까? 그것은 찾아내는 것인가, 만들어 내는 것인가?

Posted by 익구
:
070122
내가 동양 고전에 달통하다는 추정은 나에 대한 오랜 오해 가운데 하나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잘 모르는 다른 과 친구에게서도 익구는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느니 하는 뜬소문이 돌았다. 아마도 내 나이 또래는 으레 “사서삼경=동양 고전”이라는 등식을 품고 있었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지만 내가 처음 읽은 동양 고전은 <도덕경>이었고, 그 다음이 <채근담>, <명심보감>, <장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논어>는 한 번 통독한 이래 번번이 정독에 실패하고 있다. 내가 끔찍하게 아끼는 <맹자>는 짬짬이 발췌독을 하지만 완역본을 꼼꼼히 독파한 적은 솔직히 없다.

하지만 나에 관한 오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확증으로 바뀌고 있어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고전 명구를 좋아해서 이리저리 찾아보고 곧잘 인용하는 탓에 그런 심증을 굳히게 만든 내 책임이 크다. 하지만 고전 완역본을 다 독파해야지만 그 고전에 대해 말하는 건 지나치게 엄격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몇몇 경전 번역에 편중하여 아직도 제대로 완역되지 않은 고전들이 많음은 덤으로 지적해본다. 특히 우리 한문 고전의 경우 더욱 더디다. 어지간한 우리 고전들이 다 번역되려면 지금 속도로 따져 10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런저런 제약조건을 덮어 두고 제자백가를 중심으로 탐독해보기로 했다. 중간에 그만 두지 않도록 빠른 호흡으로 읽는 원칙을 견지해야겠다. 훗날을 대비한 초벌구이인 셈이다.

중국 최초의 시인으로 불리는 굴원이 지은 어부사(漁父辭)는 내가 무척 아끼는 시가다. 독야청청을 버리지 못하는 견결하고 고고한 마음자리를 흠모하기도 하거니와 사람 사는 세상은 늘 비슷하구나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옛사람들의 문제의식 중 상당수는 오늘날도 여전히 끙끙 앓아가며 고민해야 하는 화두다. 단순히 말해 어부사에서 보이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대립항이 그 예다. 뭇사람이 술에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는 “중취독성(衆醉獨醒)” 구절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갑갑하다. 동양 고전 읽기가 두려운 까닭은 읽은 만큼 실천이 따르지 못할까 저어되기 때문이다. 홀로 깨어 있고, 나아가 함께 깨어 있을 수 있기를.


070123
이계안 의원님이 23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그는 ‘정치적 「렉서스(LEXUS)」를 꿈꾸며’라는 탈당의 변에서 “열린우리당이 추구하는 목표와 강령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죽어야 한다고 믿습니다”라며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결단이라 밝혔다. 이 의원님만큼 ‘잘사는 나라’, ‘따뜻한 사회’라는 우리당 정강정책을 많이 읊조린 분도 없다. 개혁이니 민생이니 하는 구호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세부적인 정당 목표를 자주 언급하는 게 정당 정치의 기본이라면, 이 의원님은 탄탄한 기본기를 자랑하는 분이다.

그런데 “국민들께 「잘사는 나라, 따뜻한 사회」라는 훌륭한 상품을 팔 수 있으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라고 말씀하시니 당혹스럽다. 양질의 상품이지만 포장에 문제가 있어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는 식의 논리를 정당 정치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설령 그 논리에 수긍하더라도 그 특단의 조치는 국민이 내리는 것이 더 맞다. 지도자들이 비장한 결심을 통한 위로부터의 개혁이 사실 시시한 것이었음을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도무지 정감이 안 간다면 개인적인 편견일까?

이 의원님을 잃은 건 여당으로서는 큰 손실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몇몇의 탈당보다는 우리당을 거쳐갔던 60여만 명에 달하는 당원들을 더 아프게 받아 들여야 한다. 문득 2005년 4월 우리당 전당대회에서 당의장 후보 유시민 의원님의 연설 한 토막이 떠오른다. “우리의 후보를 위해서는 돈과 몸과 시간을 주는 당원이 있는 정당”이라는 우리당의 창당 초심을 무겁게 여겼더라면 지금의 몰골은 아니었으리라.

이 살벌하고 유치한 생존의 시대에 “인간은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던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우직함이 그립다.


070124
중국 정사인 25사(史) 가운데 유일하게 완역에 가깝게 번역된 진수의 삼국지(신원문화사 刊)는 현재 절판이다. 가까운 시일에 배송지 주석 등을 망라하고 원문까지 수록된 삼국지가 완역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을 품어본다. 이 땅에 삼국지를 읽느라 밤을 새고, 삼국지 게임에 매료되어 끼니를 거른 사람들이 많은데 견주어 삼국지 번역은 초라한 실정이다. 다행히 신동준님이 역주한 자치통감 삼국시대편이 있어 반갑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은 북송시대 정치가이자 사학자인 사마광(司馬光)이 지은 편년체 역사서다. 전국시대부터 송나라 이전까지 1,362년 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294권이나 되는 방대한 저작이다. 자치통감은 조선시대 문과는 물론 무과의 시험과목에도 포함되었다고 하니 오늘날 행정학 내지 행정법의 위상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가치관을 좌지우지했던 자치통감 완역을 위해 중앙대 사학과 권중달 교수님이 애쓰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8권까지 나온 자치통감은 펴낸 곳이 매번 바뀌었다. 수익성이 낮아 선뜻 출판하는 곳이 없어 정년퇴직금을 털어서 아예 출판사를 차렸다니 고맙고도 죄송스럽다. 2009년까지 31권으로 완간하시겠다는 계획이 꼭 성공하실 바란다.

번역자가 직접 출판사를 만드는 기막힌 현실이지만 나는 이런 미련한 분들이 좀 더 많이 나와서 그 덕을 봤으면 좋겠다. 기껏해야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책 한 권 사주는 일이니 나처럼 미련한 독자들도 좀 더 늘었으면 더욱 좋겠다. 여담이지만 남송시대 학자 여조겸(呂祖謙)이 엮은 동래박의(東萊博義)가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반들이 꼭두새벽인 오경(五更)부터 일어나 “동래박의를 얼음 위에서 박 밀듯 왼다”는 박지원의 양반전에 나오는 책 말이다. 동래박의는 춘추좌씨전에 대하여 논평하고 주석한 역사평론집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준비 교본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옛사람들의 벼락치기용 참고서를 읽고 싶다는 벼락치기 예찬자의 욕심이다.^^;


070125
중학교 시절 나는 역사부도를 들여다보기를 좋아했다. 특히 역사부도는 초등학교 때와 달리 상세해서 내 마음을 빼앗았다. 초등학교 역사부도에서 당나라 영토는 오늘날 중국 영토와 거의 똑같이 그려 놓았는데 중학교 때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을 알고 매우 분개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어린애들 보는 교재라고는 해도 사실에 부합하게 그려서 국가의 흥망성쇠와 영토의 변경 같은 걸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았으리라. 물론 요즘 교과서들은 잘 나오리라 믿는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 나는 삼국지 4, 5 게임에 넋을 놓았다. 중국 역사상 삼국시대는 그다지 역사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평가하면서도 삼국지 소설과 매력은 거부하기 힘들었다. 제갈공명에 흠뻑 빠진 나는 중국을 가게 되면 공명선생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를 찾기로 결심했다. 사실 무후사는 한소열묘(漢昭烈廟), 즉 유비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유비묘 곁에 공명선생을 추념하기 위해 무후사를 세웠고, 나중에는 무후사가 더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정호갑 기자가 쓴 “민심은 제갈량·관우·유심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기사 제목에 많이 동감했다.

진수는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서 공명선생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탬이 된 자는 비록 원수일지라도 반드시 상을 주었고, 법을 어기고 게으른 자는 비록 가까운 사람이라도 반드시 벌을 주었다(盡忠益時者雖讎必賞, 犯法怠慢者雖親必罰)”, “선행이 작다 하여 상을 주지 않은 적이 없었고, 악행이 작다 하여 처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善無微而不賞, 惡無纖而不貶)”. 숱한 난관과 역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원칙을 지켜나갔던 그를 흠모한다. 그 의연한 모습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하다.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謀事在人 成事在天)”라고 탄식할지언정 뚜벅뚜벅 최선을 다하는 게 사람의 몫이다.


070126
동양고전 책을 사기 위해 헌책방을 다녀왔다. 신촌의 숨어있는 책의 고전 파트는 낡은 책이 대부분이라 기왕이면 보기 좋은 디자인을 원하는 선뜻 손이 가는 책이 별로 없었다. 양질의 도서를 잘 갖추기로 유명한 곳이라 괜찮은 책은 금세 팔려가지 싶다. 한자 원문 주해가 비교적 잘 되어있는 격몽요결, 생소한 해동소학 두 권을 집어 들었다. 해동소학은 조선판 소학인데 이 책을 만나서 우연히 마주친 지기(知己)마냥 기뻤다.

외대역 신고서점의 고전 파트는 우리네 고전 편식 풍토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사서와 노자, 장자, 명심보감, 채근담 정도의 비슷한 책들만 잔뜩 꽂혀 있었다. 고전을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열심히 보는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책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고 구석에 박아 두느라 더 많이 바래고 찢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헌책이지만 두고두고 볼 고전은 좀 깨끗한 책이 좋겠다 싶어 다시 꽂아둔 책이 많다.

셈을 치르기 위해 기다리다가 서점 초입에서 <십팔사략(十八史略)>을 발견하고 충동구매했다. 아직 마땅한 완역본이 안 보여서 조금 기다려보기로 하던 참인데 책 말미의 야율초재 부분이 마음에 들어 사버렸다. 원나라의 명재상 야율초재는 “하나의 이익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의 해로움을 제거하는 것만 못하고,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은 지금의 수고로움을 더는 것보다 못하다(興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는 구절의 원전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2,000원을 내고 사왔다.

때 되면 도지는 도서 충동구매는 내 고질병이지만 이 한 구절을 곱씹는다면 2,000원 정도는 금방 본전일 게다. 내 아름다운 약점을 너무 나무라지 말기를.^^;


070127
책사냥 마지막 행선지인 코엑스 반디앤루니스는 서가 간격이 넉넉해서 앉아서 책을 고르는 맛이 있었다. 광화문 교보문고 동양고전 서가가 바로 옆에 점술서들이 많은 관계로 번잡한 것과 달리 한적해서 좋았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서점만 알던 내게 교보문고는 큰 문화적 충격을 안겨줬다. 옛 정이 두터워 오프라인 서점은 광화문 교보문고부터 찾지만 가끔씩 외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본래 서점에서 필사를 잘 안 하는 편이다. 깨알 같이 적더라도 몇 자 적지도 못할 바에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 필요한 부분 몇 장 복사하면 훨씬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오늘따라 꼭 적어가고픈 구절을 발견했다. 필사라는 것이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가운데 그 구절을 눈으로 읽고, 손으로 기억하고, 마음으로 음미하는 효용이 있음을 깨달았다.

성호 이익 선생의 성호사설에서 ‘착한 사람은 박복한가(善人福薄)’이라는 글은 일마다 세속에서 숭상하는 것과 상반되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착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 묻어나는 글이다. 착한 사람이 고생하는 것을 정신적으로 극복해내라는 말 밖에 해줄 수밖에 없는 성호 선생의 안타까움에 동감했다.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는 유물론적인 인간중심의 철학을 강조해 수많은 당대의 기독교인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신이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창조된 존재로 “인간이 신의 아들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아들”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내 종교관에 많은 영향을 끼친 그 분의 저서를 실제로 접하니 반가웠다.

그러나 선비의 힘쓸 것은 여섯 가지 참는 데에 있다. 주림을 참아야 하고, 추위를 참아야 하며, 수고로움을 참아야 하고, 몸이 곤궁함을 참아야 하고, 노여움을 참아야 하며, 부러워짐을 참아야 한다. 참아서 이것을 편안히 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위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 이익, 『성호사설』(솔출판사, 1997), pp. 277~278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자를 가만 놓아두고 살아 있는 자들만을 걱정하자! 우리가 더 나은 삶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실제로 만들려 할 때,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힘을 합쳐 만들려 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이룩할 수 있다. 또한 적어도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 온 극도의, 천인공노할, 가슴을 찢는 불의와 해악의 상태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만들고 작용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의 사랑을 유일하고 참된 종교로서의 인간의 사랑으로 대치해야 한다. 신에 대한 믿음을 인간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힘에 대한 믿음으로 대치해야 한다. 그것은 인류의 문명이 인류를 벗어나 있거나 초월해 있는 존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자신에 의존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것은 인간의 유일한 악마는 인간, 다시 말하면 조야하고 미신에 사로잡힌, 이기적이고 약한 인간이고 동시에 인간의 유일한 신도 인간 자신이라는 믿음이다.

- 포이어바흐,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한길사, 2006), pp. 400~401


070128
고종석(48)에게는 열성독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가 있다. 2004년 문을 열어 270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고종석 팬 카페(cafe.daum.net/kjsfreedom)’는 인문서 저자로서 그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인문서 저자의 팬 카페는 손으로 꼽을 수 있다.
- 출판칼럼니스트 최성일님의 한겨레신문 2007년 1월 26일자 기사 中

출판칼럼니스트 최성일님의 고종석 선생님 인터뷰로 말미암아 내가 운영자로 있는 고종석 팬카페 방문자수와 회원 가입이 급증했다. 그간 몇몇 분들 위주로 조촐하게 돌아가던 우리 카페에 활기가 돌아서 매우 기껍다. 사흘 만에 수십 분이 가입해 회원수 300명을 훌쩍 넘겼다. 아마 내가 언론의 힘을 체험한 첫 사례가 될 듯싶다.

정치인들은 언론에 자신의 부고 기사 빼고는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바람직하다고 여긴다는 농담이 있다. 그저 내가 관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신문지상에 알려진 것도 괜히 가슴 뛰고 신경 쓰이는데 만약 이름 석자가 여기저기 실린다면 어떨까? 유명세(有名稅)라고도 하지만 남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면 그 이목의 눈치를 보느라 개인의 자유가 제약받는 경우가 많다. 이 상충관계(trade off)를 잘 조율해냄도 공인의 실력이다.

선현들이 남의 기림을 바라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문인 위인지학(爲人之學)보다 자신의 인격과 덕행을 닦는 학문인 위기지학(爲己之學)을 강조한 뜻을 새긴다. 나는 내 자신을 위한 공부를 잘 해나가고 있는가?

Posted by 익구
:
070115
故 박종철 열사의 20주기다. 박종철 열사가 죽는 순간까지 보호하려 했던 박종운씨가 한나라당에 입당해 부천오정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대경실색했다. 박씨는 “나를 변절자라며 매도하지만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반시장적 반민주적 처사들을 극복하는 것과 북한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종철이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는 386이라는 레테르를 뽐내며 그렇게 동원되고 소비되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물론 민주화 운동을 훈장으로 금배지를 탐했던 사람은 헤아리기 힘들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숱한 인사들이 권세를 얻고 명예를 누렸다. 박씨는 운 없게도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했으니 마음 고생도 심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의 진심을 못 받아들이겠다. 박씨의 출세를 시기해서도 아니고 치열한 자기성찰을 폄하해서도 아니다. 다만 고통 속에 죽어간 한 다정한 정신이 너무 억울하고 분통하기 때문이다.

도피생활로 고초를 겪고 있는 선배를 걱정하며 목도리를 벗어주고 1만 원을 손에 쥐여 줬던 박종철 열사를 떠올린다면 정말 그러면 안 된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그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차마 못할 일을 하지 않는 그침의 미덕이리라. 다른 건 몰라도 때 되면 비장한 표정으로 박종철을 추념한다고 팔고 다니지 말기를 박씨에게 정중히 요청한다.

실천하는 지성을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나는 고작 애먼 사람만 험담했다. 왜 이리 아픈가. 왜 이리 추운가.


070116
2006년 11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영어의 경제학>이라는 보고서에는 “한국은 공교육을 제외한 영어 관련 사교육 투자 비용만 한 해 1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 학생수가 1193만5000여명이고 이들이 매달 10만원씩 연간 120만원을 학원 수강, 개인 교습 등 사교육에 지출하고 있다고 추산하면 14조 3,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여기다가 토익, 토플 등 영어시험 응시로 한 해 7,000억원 이상을 쓰다 보니 15조가 얼추 나온다. 2004~2005년 세계 토플 응시인원 가운데 18.5%가 한국인이었다.

“영어구사 수준은 만족스럽지 못해 '고비용 저효율' 현상이 심각하다”라는 진단을 들으니 고비용 저효율에 일조하고 있는 내 자신이 민망해졌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訓民正音)과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국보 제142호 동국정운(東國正韻)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의 책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조선의 한자음을 중국의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 표준음을 정하는 목적으로 편찬했다고 한다. 애민정신의 표상인 한글 창제에서 엿볼 수 있는 모화사상의 편린이다. 오늘날 영어 열풍도 강대국이 되지 못한 이 땅의 서글픈 역사의 재연인지도 모르겠다.

턱없이 높은 영어 능력을 요구하는 세태에 대한 불만을 좀 다독여본다. “고귀한 인물은 쉽게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씀을 음미한다. “실패와 몰락에 대해서 책망할 사람은 나 자신 이외는 없다. 내가 내 자신의 최대 적이며, 내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었다”는 나폴레옹의 금언을 되새긴다. 문제의식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철저하게 내 탓을 하자.


070117
삼청동길 근처에서 고종석 팬카페 신년 모임이 번개처럼 열렸다. 새벽까지 적포도주를 많이 마셨다. 파스퇴르는 “포도주는 모든 술 가운데서 건강에 가장 유익한 술이다”라고 예찬하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적정량을 마실 때의 이야기일 게다. 물론 파스퇴르는 포도주는 많이 마셔도 다른 술보다 그 해악이 덜하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백포도주에 대해 찾아보고 청포도로 만든다고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청포도 말고 껍질을 벗긴 적포도를 이용해서도 만듦을 발견했다. 포도알을 으깨면 청포도와 적포도 상관없이 투명한 즙이 나온다고 한다. 이처럼 과즙만을 발효시켜 씨와 껍질을 함께 발표시켜 붉은 색소를 추출하는 적포도주와는 다른 풍미를 낸다. 추가로 차게 먹는 포도주인줄 알았던 아이스 와인(ice wine)은 언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말한다는 것도 새로 익혔다. 포도가 얼면서 당도가 높아지게 된다. 어쩐지 언젠가 먹어봤던 아이스 와인은 서늘함보다는 달콤함이 강했다.^^;

내가 우파 편식을 막기 위해 부러 진보적 인사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듯이, 동양 편식을 막기 위해 포도주를 배워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포도주를 즐기기에 내 미각은 참 둔하지만.^^; 대화 가운데 프랑스어, 독일어, 기사련, 빈, 깐느와 같은 유럽 관련 소재가 많았는데 내 귀찮음을 다스려 언젠가는 유럽을 좀 둘러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고종석 선생님도 무척 반기신 문화관광부가 2011년까지 세계 100곳에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을 건립에 가장 마음이 갔다. 중국의 공자학원,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 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 일본의 일본어 학습거점과 같은 문화와 언어를 전파하는 학교를 세계각지에 만들겠다는 포부가 기껍다. 그간 외국인의 한국어 습득은 한국학을 전공하는 등의 지식층을 위주로 이루어졌다면, 세종학당은 현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 기대가 크다.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참 풍성했다.


070118

아침에 온 주원형의 문자에 재까닥 답문을 보냈다. 점심에는 몇 주째 벼르던 토요일 저녁의 고기부페 회동 참석인원을 확정했다. 오후에 걸려온 종로구청 동년배의 업무 문의전화에 성심껏 답해줬다. 해질 무렵에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학교를 찾아가서 군대 가는 후배 얼굴을 보기로 했다. 퇴근길에 들른 헌책방에서 옆 사무실 동생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기열전 2, 3권을 샀다.

오전에 “곰곰이 뜯어보면 경상도 사나이라는 말은 삶에서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한다는 생각이다. 다정하지 않아도, 잘 해 주지 않아도, 무뚝뚝해도, 엄해도 “나, 경상도 사나이야” 한 마디면 모든 게 용인된다는 뉘앙스다(최지향. “‘경상도 사나이’면 다냐.” 한국일보. 2005. 05. 12.)”는 글을 읽고 무의식적으로 다정한 행동을 많이 한 거 같다.

정계에서 소문난 마당발 가운데 한 분인 김상현 전 의원은 얼굴과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1만 명이라고도 하고, 아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정리하다 보니 3만 명이 넘었다는 등의 놀라운 이야기가 전한다. 그가 아끼던 측근의 배신을 접했을 때 “그 사람은 자리든 돈이든 내게 기대한 게 있어서 왔는데 충족시켜줄 수 없게 됐으니 내가 그 사람을 배신한 것”이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의미심장하다(김두우. “누가 배신자인가.” 중앙일보. 2006. 08. 20. 참조).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발이 넓은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다. 하지만 발을 넓히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손 잘 비비기를 할 자신이 없어서 그림의 떡으로만 두고 봤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거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거스르기란 참 힘들다. 용기를 내어 거스른다고 해도 내 자신에 쏟아질 그 실망의 눈초리를 감내하는 건 따갑다. 난 무뚝뚝함을 애호하지만 좀 더 살갑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핑계 같지만 내가 보기보다 속정이 깊다.^^;


070119
05학번 후배 정석이의 환송회 자리에 다녀왔다. 저녁만 먹고 나온다는 것이 눈치 없게 자리를 너무 오래 지켰다. 후배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빼앗아 민망했다. 집에 오는 길에 이제는 너무 식상해져버린 의형제라는 말을 생각해봤다.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도원결의에 대한 집착 탓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언젠가 의형제를 맺고 싶다.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주몽의 의형제였던 오이, 마리, 협보 역시 도원결의 못잖은 우애를 나눴으리라 믿는다.

불신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라지만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을 그리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 식의 이중생활을 처세 방편으로 삼을 요량은 아니다. 공사의 구분을 엄격히 하되 사적인 영역에서는 가능하면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북돋워줌을 지향한다. 볕들 때나 그늘질 때 한결같이 내 빈곳을 채워줄 사람 찾는 마음을 세속적인 꿍꿍이로 보기에 우리는 너무 외롭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함석헌 선생님의 시구는 내 마음의 가시다. 일생동안 내 곁에 몇 명의 사람을 둘 수 있을까? 섬광처럼 의형제 하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에게 머뭇거리지 않을 자존감을 키우고 싶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날도 있을 게다.


070120
청원, 승현(섭), 승현(정)과 고기 뷔페 까르네 스테이션에서 저녁을 먹었다. 작년 2월 수원화성을 답사하고 나서 수원갈비의 엄청난 가격에 경악하며 눈물을 머금고 갈비탕을 먹었다. 갈비탕을 달게 먹긴 했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워서 머잖아 돈 많이 벌어서 이 갈비를 보란 듯이 뜯어주자며 맺은 갈비 서약(?) 이후 고기에 대한 내 애정은 좀 더 짙어진 거 같다. 섭은 괜찮은 고기 뷔페라며 까르네 스테이션을 권유했고 수원갈비의 상흔을 다독이기 위해 회동을 갖기로 결의했다.

그렇게 많은 곡절을 안고 찾은 고기 뷔페에서 원 없이 먹고 마셨다. 소주, 맥주는 물론 포도주와 양주까지 무한대로 마실 수 있어서 흥취는 극에 달했다. 양주와 포도주를 모두 한 번씩 맛봤지만 내 미각은 너무 무뎠다. 맛 메모라도 좀 해서 다음에 시행착오를 좀 줄일 수 있게 하고 싶었는데 뷔페에서 메모를 부지런히 하고 있는 사람을 좋게 볼 사람은 거의 없을 거 같아서 그만 뒀다.^^; 고기도 이것저것 많이 구웠지만 소 양지삼겹과 소 부채살이 특히 달콤했다. 백김치와 무쌈을 번갈아 싸먹으니 세상사 시름이 스르르 녹아 내리는 듯하다.

1985년 유시민 선생님의 항소이유서에는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예쁜 여학생과 고고 미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는 구절이 나온다. 한 끼 잘 먹어놓고 갑자기 비장한 표정으로 돌변하겠다는 게 아니다.

친구들과 청계천을 산보하면서 밥 벌이 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밥 값하는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다. 수입원도 없는 학생에게 22,000원짜리 뷔페는 부담스럽지만, 한 해에 한 두 번쯤은 이런 호사를 누리면서 재충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070121
KBS 드라마 <대조영>에서 고구려가 멸망했다. 고구려의 멸망 이유를 보통 내부의 적 때문이라고 정리한다. 연개소문 아들들의 골육상잔은 고구려-수당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여념이 없었어야 할 고구려를 더욱 암담하게 만들었다. 나당 연합전선을 상대하기에 무척 벅찬 지경이 이르렀고 결국 당시 최고 권력자 연남건으로부터 군사 일을 위임받은 승려 신성(信誠)이 성문을 열어 주고 만다.

평양성이 포위되자 보장태왕은 남건의 아우 남산을 시켜 당나라 군대에게 백기 투항을 했지만, 남건은 여전히 성문을 닫아 걸고 막아 지켰다. 당에 협력한 매국노 연남생이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에 봉해진 것은 물론 성문을 연 신성이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항복의 흰 기를 들고 항복의 뜻을 전한 남산이 사재소경(司宰少卿)이란 벼슬을 받았다. 끝까지 저항한 남건만이 검주(黔州)로 귀양을 떠났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일지언정 성문을 사수했던 남건에게 애틋한 시선을 건네는 것은 단지 그가 고구려 패망의 책임을 진 거의 유일한 지도층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패권국가의 오만에 맞서 싸웠던 고구려의 호기로움을 곱씹으면 평양성 성문은 스스로 열어 젖히기보다는 적들에게 부수어지는 편이 나았다. 그것이 화려했던 문명을 꽃피운 이들 다운 최후였을 것이다. 반달리즘(Vandalism)에 사로잡힌 당나라가 철저히 파괴해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 버린 고구려 문명이 새삼 아쉽다.

Posted by 익구
: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중복 리뷰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여기서 중복 리뷰란 하나의 서평을 알라딘, 예스24, 인터넷 교보문고 등 여러 개의 온라인 서점에 동시에 게재하는 것을 말한다. 마태우스님과 매너리스트님 온라인 서재만 살폈지만 매너리스트님이 제기하신 “동일한 글로 서로 다른 두 군데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게 온당한 일인가?”에 대한 판단이 다른 만큼 더 이상의 논의의 진전은 보기 힘들 듯싶다.


먼발치에서 그네들의 고민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지난달 국립중앙도서관이 발표한 ‘2006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이 1년 간 읽은 책은 11.9권으로 한 달에 한 권 정도다. 이렇게 척박한 독서 풍토에서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반갑다. 다른 건 몰라도 보르헤스님 댓글 가운데 “많은 사람들 중에 책을 읽는 사람은 그 중에서 소수이고, 그 소수 중에 서평을 꼬박꼬박 쓰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희귀종”이라는 구절은 참 많이 동감했다. 아무쪼록 독서할 시간을 건사하는 분들이 흉금 없이 대화하되 앙금은 남지 않기를 바란다.


논쟁이 격하게 진행된 여파로 서재를 닫는 분도 생겼다. 특히 평범하고픈 콸츠님께 아직 인사도 못 드렸는데 여러모로 아쉽다. 한국 경영학계의 거목이신 윤석철 교수님께서는 지난 7월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특강에서 마음(feeling)관리를 핵심으로 한 인사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프리챌의 실패 사례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따갑다. 윤 교수님은 2002년 커뮤니티 이용자 110만명을 대상으로 전격적으로 유료화를 결정한 프리챌은 ‘돈내기 싫으면 나가라’식으로 고객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고 지적하셨다. 단지 유료화 때문에 누리꾼의 마음이 돌아선 것이 아니라 그 추진 방식이 누리꾼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윤 교수님은 “마음속 상처는 육체의 상처보다 더 크고, 상처받은 고객이나 종업원의 마음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한다”고 역설하셨다.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을 헝클어뜨린 프리챌의 실책이 못내 안타깝다. 작년 말 내가 자주 들어가던 프리챌 커뮤니티 하나가 싸이월드로 옮기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나는 이전에 다소 미온적인 발언들을 늘어놓았지만 많은 회원들의 인심을 잃은 프리챌을 고수할 동력이 마땅치 않았다. 고객의 거부감을 덜 줄 알았던 싸이월드의 승리는 누가 봐도 마땅하다.


윤 교수님은 “마음관리의 중요한 수단은 언어”임을 강조하시며, 비트겐슈타인의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는 말을 인용하셨다. 프랑스는 2006년 초 최초고용계약제도(CPE)를 도입할 당시 “신입사원 채용 후 2년 이내에 해고할 수 있다”고 발표해 젊은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독일은 2005년 11월 “임시직으로 써보고, 2년 후 ‘채용’할 수 있다”고 밝혀 마찰 없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례는 의미심장하다.


어렸을 때 데일 카네기의 책을 좀 읽으면 내 사교성에 보탬이 될까 해서 탐독했던 적이 있다. 내가 반발하며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카네기 저서를 중도에 접게 만들었던 챕터가 바로 “논쟁을 피하라”는 대목이다. 철없던 시절 “아니 그럼 내 껍데기를 보여주면서 벗삼기를 청하고, 그저 허울 좋은 허수아비와 사귀란 말인가”라며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 다시 찾아본 카네기의 충고에 적잖이 끄덕였다. 그간 내가 벌였던 숱한 논쟁이 그리 매끄럽지 못했던 탓일 게다.


십중팔구 논쟁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믿게 되는 것으로 끝나는 법이다. 당신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논쟁에 지면 지는 것이고, 이긴다고 해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데일 카네기 지음, 최염순 옮김, 『카네기 인간관계론』(성공전략연구소, 1995), 172쪽


내가 보기에 카네기의 논거는 그리 탄탄하지 못하다. 가령 “미움은 결코 미움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없어진다”는 부처님 말씀을 인용한 건 적절치 못했다. 논쟁이 때로는 감정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논쟁을 벌이는 게 그 사람을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니기 때문이다. 링컨 대통령이 동료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인 젊은 장교를 몹시 꾸짖으며 한 말 가운데 “개와 싸움을 하다가 개에게 물리는 것보다는 개에게 길을 비켜주는 편이 더 낫지 않겠나. 설령 그 개를 죽인다 해도 물린 상처가 아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일세”라는 구절도 너무 넘쳤다. 논쟁의 단점을 이전투구로 치부한 건 지나친 처사다.


이런 험담에도 불구하고 “논쟁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피하는 것이다(The only way to get the best of an argument is to avoid it)”는 카네기 말씀을 경청한다. “한 방울의 꿀이 한 통의 쓸개즙보다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는 링컨 대통령의 명언은 어떤 사람을 논리로 이겨도 마음으로 감복시키지 않으면 무용하다는 가르침을 준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논쟁을 흘겨보지 않을 거 같다. 생산적인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정말 멋진 친구라고 아직은 믿고 싶다. 가끔 한 방울의 쓸개즙을 쓸 줄 알아야 한다.


편견에 자유로운 인간은 없고, 합리화하기 좋아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러한 인간의 마음자리를 외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한계를 알면서도 우리의 생각을 나누고 교학상장(敎學相長)을 꿈꾼다. 이성을 고양하고, 논리로 무장하는 건 가까운 사이일수록 허용되는 특권 같은 게 아닐까 싶다. 혹시 내가 괜히 듣기 싫은 소리를 해서 감점이나 당할까봐 그냥 입에 발린 소리나 해주는 것이나, 충언을 경청할 줄 모르고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며 멀리하는 것이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지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비판하는 법을 좀 배우고 싶다. 혹은 미감을 거스르지 않고 티격태격하는 법 같은 거 말이다. 고등학교 때 아버님이 선생님인 친구와 교직원 정년 단축을 놓고 치열한 언쟁을 벌였던 적이 있다. 나는 선생님들이 정년단축에 반발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몰아붙였다. 교직원 정년 단축을 그렇게 반길 까닭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 나갔던 거 같다. 지금도 가끔 후회가 되는 걸 보면 내가 빈약한 논리로 어지간히 우겼나 보다.^^; 그래도 나는 공무원 어머니를 둔 친구가 들을 것을 염려해 공무원 연금개혁 촉구를 물리지 않고, 군인 아버지를 둔 친구가 있는 자리에서 군 관계자들의 책임 방기 꾸짖기를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지은이를 헤로도토스라고 말한 친구를 구박한 것도 따지가 좋아하는 모난 성격이 드러난 것 같아 민망하다. 사실 그 친구에게 청량리역을 헷갈려 청계천역이 있다고 우겼던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내 훈련소 시절을 회고하며 틈새시장인 니치(niche)의 스펠링을 틀렸던 중대장을 농담 삼아 말한 것도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그렇게 말한 나는 선배님 과제물에 적어야 할 프리미엄(premium) 스펠링을 primium이 아니겠냐며 마치 아는 듯 말씀드렸던 부끄러운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카네기는 어느 인용구가 성경이 아닌 햄릿 구절이라고 시비를 따지는 것조차 무익하다고 말씀하지만 나는 적어도 기본적인 사실관계 교정 정도는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의 루쉰이 “페어플레이는 시기상조”라는 글을 발표하자, 린위탕이 “물에 빠진 개를 치지 않는 것이 페이플레이 정신”이라며 맞받았다. 이에 루쉰은 “물에 빠진 개일지라도 어떤 경우에는 때려야 한다”며 페어플레이를 나눌 상대가 아니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한다고 논박한다. 페어플레이 정신의 기반은 완전무결한 인간에 대한 갈망을 누그러뜨림이며, 배우며 참회하며 개선하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음이라고 생각한다. 칼 포퍼가 말씀한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의 노력에 의해서 진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I may be wrong and you may be right, and by an effort, we may get nearer to the truth.)”라는 경구를 논쟁하기 전에 세 번쯤 외워야겠다.


일전의 이건희 회장 명예 철학박사 학위수여식 사건 때 나는 인심의 문제를 언급했다. 나는 “인심을 잃으면 삼성의 그 휘황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노동탄압의 괴수가 되고, 일부 학우들의 노동자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 옹고집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어정쩡한 입장을 말해서 양쪽에서 다 핀잔을 받은 기억이 난다.^^; 내가 사람의 마음을 돌아본 까닭은 논쟁을 어색해 하는 우리네 정서가 논쟁이라면 그저 악의에 찬 트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때 서라벌을 유린할 정도로 강성했던 견훤의 군대가 최종 승리를 거머쥐지 못한 것은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는 서라벌 백성들이 “옛날 견씨(甄氏)가 왔을 때에는 마치 승냥이나 범을 만난 것 같았는데 지금 왕공(王公)이 이르러서는 마치 부모를 보는 듯하구나(昔甄氏之來也 如逢豺虎 今王公之至也 如見父母)”고 말했다고 전한다. 승자의 기록이라 적잖은 미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견훤은 서라벌의 마음을 잃었고 결국에는 제 나라마저 잃었다.


손자병법 모공(謀攻)편에는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이긴다는 것은 선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최선 중의 최선이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전이굴(不戰而屈)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며, 늘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문경지교(刎頸之交)로 유명한 염파와 인상여 이야기가 부전이굴의 예가 될 수 있겠다. 굳이 논쟁을 피해야 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상여는 진(秦)나라에 빼앗길 뻔한 구슬 화씨벽(和氏璧)을 온전히 찾아온 공로로 상경의 자리에 올랐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명장 염파는 세 치 혀를 놀린 자가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못마땅했다. 벼르고 있던 염파를 일부러 피하는 인상여를 보고 주위에서 겁쟁이라고 투덜거렸다. 인상여는 “진나라가 우리를 침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염파와 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 다투면 적에게만 좋은 일이다. 국가의 안위가 우선이지 개인의 감정이야 그 다음이 아니겠는가?”라고 토로한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웃통을 벗고 회초리를 짊어진 채 인상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고 한다. 논쟁이 반드시 일치를 꾀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하나 됨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우애로울 수 있다. 동주 열국지에 “수레를 몰아 골목길로 피한 인상여의 도량은 참으로 크며/ 웃옷을 벗고 죄를 청한 염파의 뜻 또한 웅장했도다(引車趨避量誠洪 肉袒將軍志亦雄)”라고 찬탄한 무명씨의 시에서 그 본보기를 느낀다. 한바탕 논쟁을 벌이고도 다시 손을 건네 뜨거운 악수를 나눌 수 있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더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다.


거칠지 않으면서도 그치지 않는 논쟁을 해보고 싶다. 그런 논쟁을 나눌 사람이 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보다 내 자신이 말벗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겠다. - [無棄]


사람을 생긴 그대로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평화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둘 때이며
행복은 그러한 마음이 위로받을 때이며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이 부딪힐 때이다.

- 황대권, <야생초 편지> 中

Posted by 익구
:

070108
스토아학파(Stoicism)는 세계는 대우주, 인간은 소우주에 비유했다. 개인을 세계의 축소판으로 본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우주 이성이 깃들여 있으며, 본질상 인간 이성과 우주 이성은 같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보편타당한 법률인 자연법 사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법은 실정법(實定法)에 대비되는 법 개념으로 민족·사회·시대를 초월해 영구불변의 보편타당성을 지니는 법을 말한다. 인간의 이런저런 문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연적 성질에 바탕을 둔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뀌지 않는 법이라는 뜻이다. 스토아학파는 자연법이야말로 ‘올바른 이성’에 맞는 완전히 평등한 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스토아학파를 알기 한참 전에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개인 소국가론’을 만들어 썼다. 말 그대로 개개인은 하나의 작은 국가라는 인식론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읽었던 도덕경의 소국과민(小國寡民,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을 알게 되면서 구체화했다. 고등학교 때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접하고 2000여 년 전에 선수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여하간 요즘도 관계 맺음을 ‘외교’라고 지칭하고, 나의 다짐을 ‘정책’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옛날의 습관이 이어져 내려와서다.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윤준호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젊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공화국”이어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까닭은 내가 ‘내각총사퇴’를 결심했기 때문이다. 20대 전반과 후반밖에 없다는 내 개인적인 신념(?)에 비추어 나는 20대 후반이 되었다. 이 때가 되도록 딱히 이뤄놓은 게 없다는 게 둘레 또래 친구들의 한탄이기도 하지만 나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하다. 나의 무능과 태만을 반성하는 의미로 내각총사퇴라는 표현을 써봤다. 현실 정치에서는 내각총사퇴라는 말이 정략의 도구로서 함부로 발설되는 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쓰는 이 말에는 내 자신을 벼리겠다는 서늘한 결의만 있을 뿐이다.

이래서 내 친구들이 나를 보고 “혼자서도 잘 논다”라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070109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창한 진지전은 매운 기운이 서린 말이다. 통상 진지전 개념은 서구 자본주의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기동전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 현상에 대응해 내놓은 새로운 전략이라고 본다. 지배계급의 막강한 헤게모니에 맞서기 위해서 지적, 문화적 참호를 파고 장기전에 대비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서글픔이 살짝 배어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강고함에 절망하지 않고 그 체제 안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말한 진지라는 것이 그저 아픈 다리를 서로 기대는 안식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지전은 함부로 좌절하지 않겠다는 끈기의 언어이며, 비탄에 잠겨 있지 않겠다는 긍정의 언어다. 일상의 바지런함으로 자발적 복종의 악순환을 막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중용』 26장에는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至誠無息)”는 구절이 있다. 누구나 사흘쯤은 성인군자 행세를 할 수 있다. 닷새 정도는 공부를 하다가 지쳐 단잠에 빠질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사흘과 닷새를 보름으로, 달포로 늘려나가는데 있다. 눈치 보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정성이 하늘까지는 몰라도 사람은 감동시킬 수 있기를.


070110
9일 노무현 대통령님이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발표했다. 각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개헌을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는 응답이 많다.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는 노 대통령이 개헌을 정략적인 승부수로 던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인 셈이다. 그래서 원론적으로 찬성하나 시기적으로 반대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문득 대인 논증(argumentum ad hominem)이 떠올랐다. 이는 논증 그 자체가 아니라 논증을 제시하는 사람에 대한 논증을 말한다. 논리학에서는 오류의 하나로 보고 있다. “사람에 반대하는 논증”은 어떤 명제가 특정한 사람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유로 그르다고 판단하는 논증을 일컫는다. 주장의 논거를 살피기보다는 그 주장의 발설자에 따라 타당성이 결정되는 오류다. 이처럼 주장한 사람의 환경적 요인을 문제 삼는 것을 특정해서 “정황적 대인논증 오류”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대통령님께서 진정성과 선의를 강변해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부산에서 또 다시 낙선한 노무현 후보는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현 정치지형에 순응하고 체념하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밭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제 몫의 일을 찾아 끊임없이 궁리하고 부딪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회의 또한 대통령님이 감내해야할 업보이자 책무다.


070111
동아일보는 2004년 4월 29일자 ‘개헌 우선순위 아니다’는 사설에서 개헌 시기를 2006년 후반기나 2007년 초로 꼽았는데 정작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주장하고 나서자 2007년 1월 10일자 사설에서 “왜 지금 개헌이냐”며 민생을 걱정했다. 개헌 논의의 맥락에 바뀌었다는 지적을 수용하더라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상관관계를 헤집으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트집거리를 찾기 위해 필요할 때는 텍스트 비판을, 아쉬울 때는 컨텍스트 비판을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언론의 말 바꾸기는 하도 겪어서 놀라운 일도 아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사주들이 탈세 혐의로 구속되자 사설에서 일제히 무죄추정원칙과 불구속수사 확대를 주장하다가 강정구 교수 사건 때는 입장이 돌변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일전에 진중권 선생님이 통박하신 바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이들의 말을 내가 얼마나 참을성 있게 귀 기울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개체와 실존이 전체와 보편이라는 미명 하에 뭉뚱그려져 이해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었다. 그는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주체적 결단을 강조하며 “주체성이 진리다”라고 설파했다. 겉으로는 불평부당을 외치면서 파당성을 주입하고 있는 이들에 맞서 내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을지 두렵다. “정신을 꼿꼿하게 곧추세우고 있는 한 인간은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님의 말씀을 꺼내 본다.

내 실력과 열려있음이 그 분들의 저주와 냉소를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생산적 논쟁을 피하고 사상의 자유시장을 봉쇄하려는 비겁한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


070112

경영飛반 웹진 신입부원 멘토-멘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월 한 달 동안 과제를 내주고 간단한 강평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내가 낸 두 번째 과제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시사논쟁 이슈에 대해 A4 1장 내외의 글을 써보는 것이다. 언젠가 웹진에서 좋은 책 골라서 소개하거나, 사회적 논쟁거리를 분석하는 기사가 실릴지도 모르니 미리 연습해보자는 의도에서 내봤다.

나는 서평을 쓸 때 “인상깊었다”식의 개인의 인상에 근거를 둔 주관적 비평인 인상비평보다는 글쓴이의 주장과 논리체계를 파악하고 시사점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해볼 것을 요구했다. 시사논쟁의 경우도 찬반양론을 정리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이 좀 더 기운 입장을 편들어볼 것을 주문했다. 나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 생각을 얼마나 녹여낼 수 있느냐가 이번 과제의 핵심 포인트가 될 거 같다고 말했다.

단순한 사실 나열도 아니면서 일방적인 감정 토로도 아닌, 읽을만한 글을 쓰기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나도 잘 못하는 것을 내 멘티에게 하라고 던져준 못된 멘토다. 손석춘 한겨레 기획위원님의 “기름진 글과 기름 묻은 글의 차이”라는 글 제목을 되새겼다. 내가 기름 묻은 글을 쓸 자신은 없다. 내가 원하는 글은 담백한, 아니 솔직히 조금의 윤기는 흐르는 글이다. 나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지 않고, 천박한 인식을 먼저 부끄러워할 줄 알며, 화풀이 저주를 함부로 내뱉지 않기 위해 진력을 다해야겠다.


070113

금요일 저녁의 안암역 근처 참살이길은 붐볐다. 02학번, 03학번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03학번 후배들이랑 친해질 기회를 많이 놓친 아쉬움 때문인지 03학번들과는 좀 더 교류 나누고 싶다. 사기 관안열전(管晏列傳)에는 제나라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관중은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였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라고 소중한 벗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사마천은 세상 사람들이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아를 더 우러러봤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한비자 십과(十過)편을 보면 제나라 환공이 관중의 후임자를 물색하며 “포숙아는 어떻겠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관중은 불가하다고 답하며 그 까닭을 설명한다. “포숙아는 사람됨이 지나치게 곧고 고집이 세며 일 처리에 있어서 너무 과격한 면이 있습니다. 강직하면 백성들에게 포악할 우려가 있고, 고집이 세면 백성의 마음을 잃게 되며, 과격하면 아랫사람들이 등용되기를 꺼릴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두려워하는 바가 없으니 패왕의 보좌역은 아닙니다(鮑叔牙爲人, 剛愎而上悍. 剛則犯民以暴, 愎則不得民心, 悍則下不爲用. 其心不懼, 非覇者之佐也).”

과연 포숙아는 관중에게 섭섭했을까? 관중이 포숙아의 원칙주의를 염려해서 진언을 한 것이라고는 하나 포숙아가 관중에게 베푼 후의를 생각하면 차마 못할 말 같다. 하지만 포숙아의 성품이라면 자신의 결점을 짚어주고 나라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을 천거하려는 관중의 선의를 인정했을 듯싶다. 포숙아와 관중을 본받아 모자란 녀석과 선연(善緣)을 맺어준 고마운 분들이 나를 추억하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 애쓰고 싶다.


070114

나의 2대조 최충 할아버지와 나는 생년이 999년 차이가 난다. 최충 할아버지는 고려시대에 손꼽히는 문무겸전의 행정가셨다. 1170년 정중부 등의 무신란 때 할아버지의 문집이 소실되어 지금 전하는 건 시 몇 수와 단편적인 행적이 전부다. 최자 할아버지의 보한집(補閑集)에 최충 할아버지가 두 아드님에게 경계하며 했던 말씀이 전한다.

“선비가 세력을 이용해 출세하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어렵고, 학문과 덕행으로 영달하여야 비로소 경사가 있다. 나는 다행히 문행으로써 드러나 밝고, 청렴함과 삼가함으로써 세상을 마치게 되었다(士以勢力進 鮮克有終 以文行達 乃爾有慶 吾幸以文行顯哲以淸愼終于世).”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기고만장할지 모르는 자식을 훈계하는 쓴 소리가 천년 뒤의 후손에게도 큰 가르침을 준다.

1996년 1월 14일 오늘 나는 “험난하기는 해도 인생은 사회에 적응하는 게 아니고 만들어 낸다는 것이 내 철학이야”라고 일기장에 썼다. 이 헌걸찬 한 구절을 기리며 매해 1월 14일은 개인적인 기념일로 삼고 있다. 뭔가 거창한 걸 시작하기 좋은 날인 만큼 나는 최충 할아버지의 시호인 문헌(文獻)을 따서 ‘문헌공 프로젝트’라고 이름지어봤다. 그나마 내가 비교우위를 갖는 유일한 소질인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를 이렇게 에둘러 말했다. 이제 날라리 고시생의 생활을 접고 모범 고시생이 거듭 나야겠다. 그간 너무 많이 놀았다.^^;

Posted by 익구
:

1월 12일 아침에 SBS 모닝와이드라는 프로그램에서 “루브르의 친구들”을 소개했다. 전세계 주요 박물관 가운데 루브르는 유난히도 마니아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루브르는 관람객의 40% 이상이 두 번 이상 방문하는 반복 관람객이라고 한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한 이래 다섯 번 관람한 나도 어엿한 반복 관람객이자 마니아의 소질이 조금은 풍긴다.^^; 우리네 박물관은 남의 것 약탈한 흔적이 없는 평화가 깃든 곳이다. 남의 것 빼앗지 않고도 제 스스로 흘린 피와 땀의 자취를 모았기에 더 애틋하고 아름답다.


루브르 마니아로 소개된 뱅상 라파노님은 9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루브르를 처음 방문한 이래 30년 동안 한 달에 두 번 정도 루브르를 방문해왔다고 한다. 얼추 따져봐도 700번이 넘게 방문했다는 것인데 정말 탄성이 나온다. 라파노님은 “루브르와 열정(http://louvre-passion.over-blog.com)”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해서 루브르에 대한 사랑을 온라인 상에서도 실천하고 있다. 블로그를 찾아 들어가 보니 프랑스어에는 문외한이라 거의 해독을 할 수 없었지만, 중앙박물관에서 한창 진행 중인 루브르박물관전에 대한 글(Le Louvre a Seoul)도 보였다.


“루브르의 친구들”은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만든 루브르 후원회다. 연간 30억 원이 넘는 회비로 루브르에 작품을 기증하는 등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2007년 1월 2일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했다고 밝힌 ‘김시민 선무공신교서’는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환수한 문화유산이다. 시민들의 힘을 마땅히 예찬하면서도 이것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성으로 녹아들기를 기원한다.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잡고 미술관에서 감상평을 나누고, 연인들이 데이트 비용을 아껴 문화유산 관람료를 지불하는 등의 고만고만한 생활을 그려본다.


2000년 5월 아파트 재건축 조합원들이 복원하기 힘들 정도로 훼손한 풍납토성 경당지구의 부끄러운 기억을 떠올리니 프랑스의 문화적 저력이 새삼 부럽다. 고고미술사학자 엄기표님에 따르면 지리적 장벽에 막힌 고구려와 달리 백제사는 개발 광풍에 유적지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마구잡이 근대화의 최대 피해자”인 백제사를 아파하며 루브르의 친구들의 정신을 배워보면 어떨까. 루브르를 내 집처럼 여기며 애호하는 그들처럼 우리도 우리들 것에 대한 주인의식을 품어봤으면 좋겠다.


이런 보통 시민들의 문화적 성숙과 더불어 기업들의 적극적 투자도 병행되어야 한다. 메세나(Mecenat)는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문화예술 분야 외에도 과학, 스포츠 분야 및 공익사업에 대한 지원을 통칭하는 말이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 문화예술가들을 열성적으로 지원한 로마의 정치가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용어다.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쓴 이후, 여러 나라의 기업인들이 메세나 협의회를 설립했고 우리나라도 한국메세나협의회 등이 활동 중이다.


김병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것은 결국 자본가이며, 있는 사람들의 미덕”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기업에게 조건 없는 지원을 강권할 생각은 없다. 문화예술의 이미지를 이용해 기업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해도 무방하다. 내 자신도 문화경제에 투자하는 것이 이문이 남는 길이 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는데 일조하고 싶다. 소설가 김별아님의 표현을 빌려 “끝없이 배고픈 자본주의의 논리에 밀려 배부른 소리나 지껄이는 팔자 좋은 궁도령”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 [無棄]

Posted by 익구
:
070101
30일부터 아프기 시작하던 것이 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다. 새해 첫날까지 액땜을 하였으니 올해는 정말 좋은 일이 많을 모양이다. 두 해에 걸쳐 앓았으니 그보다 더한 경사가 있지 않겠는가? 내 일개인을 넘어 둘레의 고마운 분들의 액땜까지 했겠거니 그렇게 믿고 싶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을 떠나기 앞서 그의 모든 재산을 병사 가족에게 나누어주자 측근 한 명이 “왕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출발하시려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알렉산더는 “단 하나, ‘희망’이라는 이름의 보물을 가질 뿐이다”고 답했다고 한다. 내 희망이, 내 성실성이, 내 도량이 더 커지도록 노력해야겠다.


070102
사흘 째 약을 먹었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서 동네 의원을 찾았다. 어지간하면 병원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나 같은 사람은 간호사나 의사분께서 미워하실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내심을 알 리가 없는 의사선생님께서는 따뜻하게 진찰해주셨다. 컴퓨터를 이용해 처방전을 만드는 모습이 재미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감기->고열->알약A, 감기->코막힘->시럽B 이런 식으로 범주화된 곳에서 필요한 약을 척척 골라내시는 듯했다. 의사들의 전매특허였던 휘갈겨 쓰기 대신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되니까 훨씬 친근해 보인다. 앞으로 병원을 좀 덜 꺼릴 듯싶다. 내가 싫어한 건 주사기보다 병원을 감도는 묵직한 공기였던 모양이다. 하긴 엉덩이에 주사 맞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몽테뉴는 “부귀, 영화, 학식, 미덕, 명예, 사랑도 건강이 없으면 퇴색되고 사라져버린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건강을 버려 가며 그 가운데 하나라도 건사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도 하다. 보왕삼매론에는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念身不求無病 身無病則貪欲易生)”고 말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소설 동의보감에는 “병도 긴 눈으로 보면 하나의 수양(修養)이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런저런 역경과 마찬가지로 아플 때도 사람의 진가가 나오는 것 같다.

“술은 마시지 말아요”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자꾸 귓전에서 울리는 것을 보니 어쩌면 내가 병원을 멀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무시무시한 금주령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070103
06년 5.31 지방선거 때 서울 중구청장 선거에서 얼마나 보기 드문 장면이 펼쳐졌는지 알만한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크로스 포지션이라고 놀렸는데 어느 보도에서는 ‘후보 스와핑’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나라당 소속이던 전장하 전 서울시의회 사무처장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자 열린우리당 소속이던 정동일 전 시의원은 한나라당에 전격 입당해버렸다.

전장하님은 고 성낙합 당시 구청장과의 공천 경쟁을 피해 한나라당을 떠났고, 정동일님은 전장하님과의 경쟁에 부담을 느껴 열린우리당을 나왔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정당정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낯 뜨거운 일이다. 지방일꾼들에게 정당정치 가치를 너무 중시하는 건 지나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다.

서울 중구청이 3일 구민 눈높이에서 투명하고 친근한 구정을 펼치기 위해 구청 본관 3층에 위치한 구청장실을 1층으로 이전했다. 구청장 집무실과 비서실, 직소민원실이 1층에 위치하게 된다. 구청장실 1층 이전은 정동일 구청장의 선거 공약 가운데 하나였던 만큼 새해에 맞춰 이전을 하게 되었다. 중구는 이에 앞서 관내 15개 동사무소의 동장실도 모두 1층으로 옮겼다고 한다.

구청장실 접근성이 높아진 만큼 낮은 사람에게 더 낮아지는 구청 문턱이 되었으면 좋겠다. 중구청장님께서 작년에 거두셨던 그리 개운치 못한 승리를 이렇게 좋은 정책으로 하나 둘 메워나가실 바란다. 구청장실 개소식 연하장 수백 장 만드는 걸 도운 녀석의 충언이니 너무 섭섭하게 듣지 마시기를.^-^


070104
국방부가 입법예고한 ‘군인복무기본법’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군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구타나 가혹행위 및 언어폭력 등 사적(私的) 제재를 받지 않도록 명시했다. 또 지휘계통상 상관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거나 편제상 직책을 수행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병 상호간에 어떠한 명령이나 지시, 간섭을 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무엇이 사적 명령이고 무엇이 공적 명령인지 경계가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 법안을 서로 다르게 해석해서 발생할 전투력 약화의 우려를 덜기 위해 세부적인 실무규범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군 복무 환경을 끊임없이 개선하더라도 군대는 민간사회만큼 안락하게 지낼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그 현격한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너무 적었고 더뎠다는 점을 관계자들이 겸허히 인정했으면 좋겠다. 왜 우리 젊은이들이 영어점수만 따면 카투사 지원에 몰리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본권과 사생활을 철저히 보장하는 미국군의 질서를 선망하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부문이 미국 기준 못 맞춰 안달인 나라에서 왜 군대 구조는 미국식을 보고 배우지 못하는가.^^; 왜 대한민국 국군이 미군을 보며 군침을 흘려야 한단 말인가.

병역자원이라는 용어를 자연스럽게 쓰듯이 일개 병사는 군사전략의 주요 자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던, 어떤 외적환경에도 이용되지 않는 최종 목적이라고 외쳤던 칸트의 말씀이 사무친다. 적어도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만큼은 부끄러워하고 아파해야 한다.


070105
꾀 많은 토끼는 굴이 세 개 있어 위험에 대비한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는 맹상군의 식객이던 풍환이 강조한 이야기다. 외골수로 치닫기 일쑤인 내게는 매우 유효적절한 충고다. 일어날 법한 상황을 여러 가지 산정해놓고 그에 대비한 대안을 마련하는 사고실험이 내게는 너무 부족하다. 통상관례에 따르는 내 고루한 습속과 더불어, 닥치면 부랴부랴 해결하는 대증적 처방을 남발하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내 자신은 이렇게 살면서 사회 문제에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강구하려니 좀 멋쩍다.^^;

미국 경제학자 마코위츠는 현대 투자이론의 기본을 이루는 포트폴리오이론을 최초로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자산을 단순히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계수가 낮은 자산을 서로 결합하여 투자하는 것이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비결이라고 설파했다. 상관계수란 두 변수 사이의 상관관계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상관계수 -1에서 1 사이의 값을 갖는데 양수면 두 변수가 정의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음수면 두 변수가 부의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0일 경우는 유의미한 선형(線形)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마코위츠는 분산투자의 효율성을 이론적으로 규명함으로써 1990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의 이론을 응용하면 주식, 채권, 부동산으로 분산투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유럽 등 지역분산,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 통화분산 등도 포트폴리오의 대상이 된다. 여하간 이 분산투자 이론을 내 삶에 적용해보려니 측정의 어려움이 적잖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교류하는 사람과 나와의 상관계수, 내가 읽는 책들 간의 상관계수 등은 명확하지도 않을뿐더러 억지로 계산하는 게 더 미련한 짓이다.

다만 내 개인적인 관습에만 너무 얽매이지 말자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야겠다. 나와 상관계수가 높은 소중한 인연의 그물에 걸려 공사의 구분을 못하는 것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070106
2002년 대선 정국은 참 역동적이었다. 특히 집권당이던 민주당의 어지러운 행각들은 후세 사람들이 사극 소재로 써먹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오래 기억해야할 것은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소속 의원들의 현란한 추태다. 그 가운데 백미는 역시 김원길 전 의원이다.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다가 정작 후보단일화가 성사되자 한나라당으로 향한 그의 변심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면 독일의 히틀러보다 더 심한 나치 독재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던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다.

집권여당의 요직을 두루 맡고, 국민의 정부에서 국무위원까지 한 사람이 정치 도의를 어디까지 저버릴 수 있는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한나라당 입당을 밝히는 기자회견장에서 환하게 웃던 모습은 내가 2002년을 통 털어 가장 잊고 싶지 않는 사진이다. 김 전 의원을 따라가지 않고 사표를 던졌던 윤후덕 보좌관과 최종환 비서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제 밥줄을 끊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그네들은 우직하게 정당정치를 지켰다.

여권의 정계개편 논의가 어지러운 가운데 염동연 의원이 선도 탈당의 기수가 되기로 한 모양이다. “교섭단체(20명) 구성이 되든, 안되든 나가서(탈당해서) 기다리는 게 떳떳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씀은 시원해서 좋다. 어쩌면 제 2의 후단협을 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누가 국민을 더 두려워하는지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길. “가는 길이 다르면 서로 더불어 일을 꾀하지 않는다(道不同 不相爲謀)”는 공자의 말씀이 그립다. 그간 공통점이라고는 오로지 권력에 대한 집념 밖에 없던 이들이 단물이 떨어지니 갈라서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래서 이익만을 위한 사귐이 추하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070107
일반적인 법대 강의 과정에서 행정법은 3학년 이상에서 배운다. 그도 그럴 것이 1, 2학년 때는 헌법, 민법, 형법 등 법학의 기초를 습득하는데 투자해야하기 때문이다. 기초 법학의 소양도 없이 덜컥 행정법을 배우려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언젠가 소설가 김훈 선생님이 법학을 공부하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게 생각나서 좀 버티고는 있다만.^^;

모든 법학이 그렇게 주장하듯이 행정법도 그 나름의 논리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아직도 생성되고 있을 정도로 어지러운 학문이기도 하다. 통일된 법전이 없기 때문에 이것저것 짜깁기한 ‘모자이크’적 성격이 강하다. 이 복잡다단한 행정법을 어떻게 체계화해서 익히느냐가 관건이다. 조악한 문장들을 헤집어 가며 조금씩 익혀보자. 행정법 공부는 내가 넘어야 할 큰산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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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2.25~06.12.31)

일기 2006. 12. 31. 22:31 |

061225
나는 이런저런 글을 쓸 때 맞춤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정확한 한국어가 아름다운 한국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믿음 때문이다. 물론 그 정확성의 기준은 선뜻 제시하기 힘든지라 명백한 비문이나 오류를 고치는 데 그치지만. 한글 문서를 사용하면 오타의 상당 부분을 손쉽게 고칠 수 있다. ‘걸맞는’에 빨간 줄이 그어지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걸 맞는’이라고 띄어쓰기를 했다. 빨간 줄이 없어지니까 맞게 썼다고 생각하고 넘어 갔다. 한참이 지나 한 후배가 띄어쓰기의 의문을 제기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좀 어색해 찾아봤다.

찾아보니 ‘걸맞다’는 형용사이므로 ‘걸맞은’으로 써야 맞다. 동사의 어간에 관형사형 어미가 붙을 때는 시제가 현재이면 ‘-는’(가는 벗, 먹는 꿀), 과거이면 ‘-은(ㄴ)’(간 벗, 먹은 꿀)을 쓴다. 그런데 형용사의 어간에는 현재와 과거 시제의 구별 없이 항상 ‘-은(ㄴ)’만 붙는데, 어간의 받침이 있으면 ‘-은’, 없으면 ‘-ㄴ’이 붙는다.

형용사 ‘기쁘다’‘예쁘다’는 받침이 없으니까 ‘기쁘는 일’‘예쁘는 아이’라고 쓰지 않고 ‘기쁜 일’‘예쁜 아이’라고 쓰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따라서 ‘걸맞다’도 ‘걸맞은’이 되고, ‘알맞다’ 역시 형용사이기 때문에 ‘알맞은’으로 쓴다는 것도 같이 알아두면 좋을 듯싶다. 후배 덕분에 그간 틀리게 알고 있던 표현을 고칠 수 있었다. 이런 사소한 잘못이나마 지적해주는 지인들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061226
군 원로들이 노무현 대통령님의 지난 21일 평통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군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가르쳐 훌륭한 민주시민으로 만들어 내는 국민교육의 도장임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태연스럽게 하다니 정말 당혹스럽다. 군대에서 훌륭한 민주시민을 만들어 낸다고 자랑스레 말씀하시다니 아마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와 그 분들의 민주주의는 많이 다를 듯싶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군 복무기간을 단축시키려는 시도에 대하여 우리는 강력하게 반대한다”는데 국민의 병역 부담을 합리적으로 덜어줄 생각은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성명에 참여한 군 인사 가운데 노재현 전 국방장관의 이름을 발견하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가 누구인가. 전두환이 12·12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맞서 싸우기는커녕 한미연합사 지하벙커로 피신한 사람 아닌가. 평생 자숙하며 살아도 모자란 위인이 목청을 높이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아무리 관용이 좋다지만 우리 사회가 고작 이런 인물이 뻔뻔스럽게 활개를 칠만큼 일말의 양심조차 부재한 곳인가. 이 분들은 애국은 당신네들만의 전유물인 줄로 아신다. 신성함은 오로지 자신들을 치장하는 수식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그저 대자연이 알아서 해결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061227
광호형 덕분에 사베인-옥슬리 법안(Sarbanes-Oxley Act)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미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엔론 회계 부정 사태 이후에도 회계부정과 경영자비리가 잇따르자 회계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02년 제정돼 현재 시행중인 법이다. 폴 사베인 상원 은행위원장과 마이클 옥슬리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 주도로 마련된 이 기업회계개혁법은 내부통제시스템 도입, 경영인증시스템 구축을 통해 모든 단계별 기업활동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관리, 감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최고 경영자(CEO) 및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재무보고서에 서명하도록 규정한 302조와 감사인이 내부통제프로세스에 대해 인증, 날인하도록 한 404조가 핵심 조항이다(“[IT키워드]사베인 옥슬리 법안(Sarbanes Oxley Act).” 전자신문. 2004. 10. 28. 참조). 

이 법안은 경영자들은 실적보고서에 거짓이 드러나면 성과급을 반납해야 하고 자사주식 거래를 보다 신속하게 보고해야 하는 등 더욱 엄격한 회계책임을 골자로 한다. 뉴욕증시에 상장됐거나 진출을 추진 중인 외국 기업들은 이 법안이 엄청난 비용 상승의 유발한다며 볼멘소리를 내왔다. 기업들의 회계 보고를 강화하도록 하는 한편 외부 인사의 회계 감시를 의무화하는 404조가 외국기업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기업 이사회가 스스로 회계투명성을 위해 회계 시스템을 점검해 문제가 있다면 회사 비용을 들여 시정해야 함을 의무사항으로 정해놓음으로써 미국기업은 물론 외국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13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 내부통제시스템의 효율성 평가를 외부 회계사에게 맡기도록 한 규정을 폐지해 기업의 감사가 독자적으로 평가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SEC가 404조에 대한 논란에 입장 정리를 한 셈이다. 사베인-옥슬리 법안의 개정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 정도 완화 조치에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추가적인 규제 완화 조치가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규제 강화, 유지, 완화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건 선진 민주주의 사회의 일상사다. 필요한 규제는 유지, 강화하면서 효용이 다한 규제는 재빨리 덜어주는 게 위정자들의 할 일이다. 규제는 원칙이 중요하지만 관성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061228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를 읽고 갈무리 해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몇 년 전 화제를 모았던 크루그먼의 세계화에 대한 논설이 역시나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다른 부분도 눈길이 가는 곳이 많았다. 좋은 에세이를 아직 꼼꼼히 독해할 내공이 없어서 건성으로 읽은 게 좀 민망하다.

여하간 크루그먼은 1996년 6월 <슬레이트>지에 기고한 「Downsizing Downsizing」(31~36쪽)라는 글에서 “보수가 좋은 미국 노동자들이 중산층에서 밀려나 다운사이징될 상황에 처해 있다”는 당시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의 주장을 정서 만족용 소설(emotionally satisfying fictions)이라고 구박한다.

요점은 라이시 스타일의-통계보다는 뒷이야기에, 진지한 분석보다는 구호에 의존하는-경제학은 미국이란 큰 나라의 다양성과 방대한 규모를 정당하게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난다. 낯선 이가 아동을 유괴하고, 수학자가 테러리스트가 되며, 회사 중역이 햄버거 장사로 전락하기도 한다.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전체 맥락과 맞아 떨어질 것인가? (책 34쪽)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몇 개의 특수한 사례를 들어 전체가 그 사례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추론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성을 결여한 자료를 근거로 도출한 사실을 일반화하면 그릇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찬반이 첨예한 사안일수록 균형을 잃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례만을 골라잡고 싶은 유혹이 커진다. 그러나 봄이 아무리 기다려진다고 해서 한 마리의 제비가 당장 봄을 불러 올 수는 없다. 물론 우리네 언론들은 종종 봄을 만들기도 하지만.^^;

무릇 지성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저지르기 쉬우면서 고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상을 대충 살피지 않겠다는 지적 성실성으로 무장하는 것이 믿는 것을 보지 않고, 보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힘이 된다. 침소봉대하지 않고, 호들갑 떨지도 않으면서 본질을 꿰뚫으려는 혜안에 도전해보고 싶다.


061229
KBS 드라마 황진이가 28일 종영했다. 대학로에서 즐거운 모임을 갖느라 마지막 방송을 챙겨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정통 사극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그리 눈길을 보내지 않은 드라마였다. 기사로나마 종영 스케치를 살펴보니 주말에 재방송을 보고 싶어졌다. 황진이와 부용이 여악행수 자리를 다투는 장면이 무척 감명 깊게 표현되었다. 드라마 신돈이 새삼 아쉬운 대목이다.

패배를 자인하는 부용에게 여악행수 자리가 돌아가는데 그 이유가 압권이다. “조선 최고의 춤꾼은 그냥 춤을 추면서 살면 그 뿐이다. 하지만 여악 행수는 달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춤에 박수를 보내고, 격려할 줄 아는 자, 경쟁에 위치에 놓여 있으나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야하는 것도 행수의 몫”이라는 행수 매향의 해설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의 재주를 인정하고 북돋워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황진이는 여성에다 천출이었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 이름도 나와 있지 않다. 소수파의 표상을 다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한계에 결연히 맞섰던 그 호기로움을 배워야겠다. 숨쉬기조차 답답했을 억압에 좌절하지 않고 제 길을 의연하게 개척한 수많은 황진이들에게 경애를 표한다. 그네들의 신명나는 춤이 계속되길 바란다.


061230
한해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막판에 앓았다. 감기 기운에 술병까지 겹쳐 총체적인 몸살이 나고 말았다. 대학로에서 고등학교 동창들과 송년회가 있었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갔지만 결국 얼마 못 있다 자리를 나서야했다. 정말 더 앉아있고 싶었지만 초췌한 모습으로 자리만 지키는 게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집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내가 본 처음처럼만 열댓 병이었는데 나는 딱 두 잔밖에 못 마셔서 안타까웠다.^^;

집에 돌아와서 계속 누워 있다가 새벽에 영화 <연인>을 봤다. 듣던 대로 영상미도 뛰어났고 반전도 흥미진진했다. 서로의 대의를 저버리고 바람처럼 살기를 원했던 주인공들의 애틋함이 돋보였다. 주인공들이 장기판의 졸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보며 이들이 사소취대(捨小取大)하지 못했다고 꾸짖을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 “매염방을 추모하며(In memory of Anita Mui)”라는 문구가 자꾸 떠올라서 연유를 찾아봤다. 엔딩 크레딧에 종종 추모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기 일쑤인데 매염방이라는 묘한 매력의 이름에 마음이 끌렸나 보다.

홍콩의 유명 배우 메이옌팡(梅艶芳)은 본래 <연인>에서 비도문의 두목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암 투병 중임에도 영화 촬영에 나섰던 그는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제작진은 매염방을 애도하며 그녀의 배역을 삿갓을 눌러써 얼굴을 보이지 않게 했다고 한다. 혹자들은 <연인>의 스토리 구성이 흐트러진 것은 매염방의 급작스런 죽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매염방의 출연을 격려한 장이모우 감독, 주연 유덕화의 진한 우정까지 알고 나니 영화의 여운이 배가된다. 고등학교 동창회는 차가 끊겨 택시를 나눠 타고 귀가를 해야할 만큼 성황리에 마친 모양이다. 흔치 않은 기회를 놓쳐서 아쉽지만 머잖아 또 좋은 자리가 있으리라 믿는다. 사실 내가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고 해서 즐거움을 더 보탰을 거 같지는 않지만.^^; 나는 내 성장통을 함께 해준 이 친구들에게 유익한 벗이 되고 싶다.

처음처럼 그렇게 영원히 함께하길!


061231
197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호주 출신의 작가 패트릭 화이트는 『행복한 계곡』이라는 소설에서 “인간은 자신이 겪은 고통의 분량만큼 진보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는 괴테의 『파우스트』 구절도 떠오른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은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내 허물을 고치는 일, 가슴 뛰는 일로 다사다난하다면 한 해를 알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거 같다. 내 미력을 다해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고 희망의 무게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근하정해(謹賀丁亥)! 새해에는 내수 경제가 좀 더 살아나기를!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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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서평으로 올린 글입니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삼인출판사)는 메시지가 또렷한 책이다.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의 상징동물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공화당이 만든 프레임에 민주당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코끼리가 되라고 주문하고 있다. 자신의 언어와 자신이 만든 틀 위에서 상대방과 경쟁하도록 만들라는 주장이 신선하다.


프레임(frame)은 통상 생각의 틀 정도로 해석되지만 책에서는 정부나 정당이 설파하는 구호나 선전으로 좁게 쓰이기도 한다. 가령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세금 인하(tax cut)’ 대신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용어를 만들어 씀으로써 민주당을 압도하는 프레임 우위를 누렸다. 세금의 압제(?)에서 국민들을 구하는 공화당에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애틋한 시선을 보내게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미국 민주당의 06년 중간 선거 이전의 잇따른 패배는 공화당의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보다 궁극적으로 민주당이 자신들만의 프레임을 만들어야 함을 글쓴이는 주장하고 있다. 상대방의 실책으로 얻은 승리는 그리 공고하지 못한 건 직관적 경험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집권 여당 의원들 위주로 이 책을 많이 탐독했다고 하는데 이 책의 알맹이는 익히지 못한 모양이다. 기껏 한다는 것이 조악한 정치공학이라니 좋은 책을 읽은 보람이 별로 없어 보인다.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 논설위원은 06년 5.31 지방선거 직후 <계급의식은 어디로?>라는 칼럼에서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받은 지지의 크기를 보면, 이 사회의 가장 어려운 계층 사람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이 부패한 부자 정당에 표를 건넨 것이 분명하다. 이들의 계급의식은 어디로 갔는가?”라고 묻는다. 또한 “사회 상층부가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고 하층부가 거꾸로 된 계급의식을 소비하는 허영에 몰두하는 한, 사회 양극화의 출구는 없다”고 말한다. 한나라당이 거의 싹쓸이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를 보면 이 정당이 받은 지지에는 그네들이 좀처럼 보살피지 않는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적잖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 이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정체성에 투표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이 자기 이익과 일치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쪽으로 투표할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단순히 자기 이익에 따라서 투표한다는 가정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52~53쪽


레이코프는 유권자들은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다고 명쾌하게 말한다. 정체성 혹은 가치관은 프레임의 다른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레이코프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이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기만 하면 그들은 옳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는 가정은 신화라고 말한다. “진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에 부합해야 합니다. 만약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버려집니다(48쪽)”라고 주장한다.


언론개혁에 찬동하시는 분들은 종종 조선일보 프레임, 조중동 프레임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가령 보수 언론에서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부동산 이슈를 선점하는 효과를 누린 것을 들 수 있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오늘 신문에 종부세가 8배 올랐다며 세금폭탄이라고 하는데 아직 멀었다”라고 말한 것은 세금폭탄 프레임에 걸려든 셈이다. 2006년 1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당 서적, 인쇄물 구입에 지출한 돈이 월평균 1만 405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2000년 70%에 달하던 신문구독률이 지금은 40%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독서량이 적은데 몇몇 언론들의 프레임이 실재하다면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프레임 재구성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뉴딜(New Deal)을 잡딜(Job Deal)로 바꾸면서 일자리 창출에 선뜻 반대하기 힘들게 만든 것도 프레임 전환을 꾀한 대표적인 경우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평통 발언을 통해 예비역 장성들의 직무유기를 질타한 것도 전작권 환수가 한미동맹 균열이 아닌 자주권 고취에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또한 옮긴이의 해제에서 들고 있는 중앙일보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옮긴이는 중앙일보가 ‘양극화’라는 프레임 자체를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중산층 되살리기’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222쪽 참조).


상대방의 주장을 부정하는 흔한 실수를 저지르지 마라. 대신에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프레임으로 구성되지 않은 사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단순히 사실을 진술하고 그것이 상대편의 주장과 모순됨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프레임은 사실을 이긴다. 프레임은 유지되고 사실은 튕겨 나간다. 언제나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211~212쪽


글쓴이는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님을 강조한다. 민주주의 주인의식의 기초는 제 이득에 따른 호불호를 밝히는 것이라고 원론적으로 주장했던 내게는 큰 지적 충격이다. 또한 진심과 선의가 반드시 통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기가 여간 힘이 든다. 앞서 언급한 평통 발언으로 촉발된 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전 국무총리의 대립각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전달된 것보다 사실이 중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고 전 총리측에서는 “대통령께서는 진의가 아니라고 하시던데 일반 국민들이 무슨 뜻으로 들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응수했다. 이 책에 따르면 고 전 총리가 논리의 적부 여부를 떠나 효과적인 반론을 펼친 것이 된다. 물론 지도자나 지식인이 ‘전달된 것’에만 천착하는 건 민망한 일이지만.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vous devez vivre comme vous pensiez sinon aussitot vous penseriez comme vous vivez)”라고 말했다. 나는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이 시구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프레임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새로운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들어내라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다. 단 자신만의 프레임을 만들 때 듣는 사람을 고려하고 현재의 지배적 프레임을 고려해서 섬세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나는 여전히 진실의 편에 서려는 사람이 늘어날 때 우리 사회의 인간다움이 고양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의 상당 부분이 허상일 수도 있다. 프레임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통해 내 것의 허실을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으리라. 내 신념을 진실 되게 표현하는 프레임을 개발하고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곱씹어본다. 이 책은 내 인식의 한계를 넓혀준 고마운 스승이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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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2.18~06.12.24)

일기 2006. 12. 24. 23:35 |
061218
서울 중구 관내의 동대를 관할하는 대대장님이 이임하면서 국방동원정보체계에 짤막한 작별인사를 올렸다. 삭막한 공문 수발만 하던 곳에서 사람 냄새나는 글을 읽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구청에 종종 들르셨기 때문에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게 되었다. 대대장님은 My Way의 가사를 인용하셨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알고 있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가사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포크 가수 윤태규님의 노래였다.

아주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다 볼 것 없네

정말 높이 올랐다 느꼈었는데
내려 볼 곳 없네

길 하니까 고 유재하님의 <가리워진 길>이 떠올랐다. “보일 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을 헤맬 때 힘이 되어줄 벗을 찾는 절창이다. 김남주 시인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에서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라는 구절은 또 얼마나 다정다감한가.

돌아볼 만큼 변변한 것도 이루지 못했으면서, 내려볼 만큼 오르지도 못했으면서 나는 왜 그리 교만하고 나태했을까. 그렇다고 누군가의 길을 터준 것도 아니고 넘어진 벗을 일으켜 세우는데도 인색했다. 이래서야 시내트라의 노랫말처럼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았다(I did it my way)”고 좋아할 수 있을까.


061219
우석형님께서 “광호들은 광호가 연수끝나면 한번 모이자~ 그때 홍익이들도 불러서 광호가 술먹이는거 구경하고파”라는 글을 쓰셨기에 표현이 재미나서 여러 번 곱씹었다. 00학번 형들을 지칭하는 “광호들”과 02학번 무리를 지칭하는 “홍익이들”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면서도 정감이 갔다.

“-들”이라는 의존명사는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나열할 때, 그 열거한 사물 모두를 가리키거나, 그 밖에 같은 종류의 사물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대부분의 보통명사와 인칭대명사, 지시대명사에 어울린다. 하지만 고유명사에는 언뜻 맞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고유명사는 말 그대로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을 일컫기 때문이다. 가령 “서울들”, “한강들”, “숭례문들”이라고 썼다가는 구박받기 십상이다. “경복궁들”이라고 하면 창덕궁, 창경궁이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

하지만 사람 이름 뒤에 쓰니 의미가 크게 나쁘지 않다. 허구한 날 “02학번”들이라고 쓰는 것이 식상할 때 가끔 써봄직하다. 물론 이건 어지간해서는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쓰는 게 예법에 맞을 거 같다. 가령 말단 공무원이 국무위원을 가리킨답시고 “한명숙님들”이라고 말한다면 불경스럽게 비칠 것이다. 아직 언중에게 낯선 표현이라서 그렇다. 여하간 우석형님 덕분에 한국어의 용례가 좀 더 넓어진 거 같다. 종종 써먹어 봐야겠다.


061220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2006년 하반기 문화유산 사진 및 답사기 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그다지 잘 쓴 글은 아니었지만 작은 상이나마 받게 되어 기쁘다. 어렸을 때부터 잡글 쓰기를 즐겼던 나는 글쓰기로 받는 상처럼 기쁜 게 없다. 나는 글짓기 대회에 응모할 때 입선 말석이나마 차지하기를 내심 기대한다. 하지만 내 글솜씨는 아직 부족해서 그 꿈을 좀처럼 잘 이루지 못한다. 이번에는 입선보다 조금 높은 가작이니 기대 이상의 성과다. 다음에는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우수상 이상을 노려봐야겠다.

<동궐(東闕)을 꿈꾸다>는 창덕궁 자유관람을 다녀와서 쓴 답사기다. 나는 이 글 말미에 동궐로의 복원을 주장했다.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전락할 때 왕이 거처하던 창덕궁과 구별하기 위해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담장이 놓이게 되었다. 이제 창덕궁과 창경궁을 갈라놓은 그 담장을 걷어내고 온전한 동궐로 재탄생한다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더 드높이리라 믿는다. 광화문 복원이 완료되면 20년 간의 경복궁 복원 계획이 일단락되는 만큼 그 다음에는 동궐로 눈을 돌려봤으면 좋겠다. 동궐을 다 둘러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거 같다.


061221
“대부분의 경우 낙관은 삶에 대한 무책임과 무지의 속편함이다”라는 mannerist님의 말씀에 가슴이 뜨끔했다. “정말 끔찍한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률론적 논거보다 내가 더 강하게 기대고 있는 것은 인간 이성과 감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품을 수밖에 없는 어떤 믿음 때문이다. 인간에게 반드시 있으리라 믿고 싶은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같은 것 말이다.

내가 낙관주의자를 자처하고 다니는 건 사소한 현상에만 분노하면서 정작 본질은 놓치지 말자는 다짐의 일환이기도 하다. 지엽적인 것에 호들갑을 잘 떠는 내 자신을 구박하며, 좀 더 길고 넓게 보고 대응하자는 꿍꿍이에서 나온 레토릭이다. 쓸데없이 비탄에 잘 잠기는 내 고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의도적 노력의 산물로 그런 용어를 부러 차용했다. 내 낙관주의가 책임성을 확보하고 무지를 부끄러워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겠다.

장자에 나오는 목계(木鷄)의 자세를 배우기로 했다. 싸움닭을 훈련시키라는 왕명을 받은 기성자는 왕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미룬다. 40일째 되는 날 왕이 또 묻자 기성자는 그제야 “이제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울어도 아무런 태도의 변화가 없으니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로 만든 닭처럼 보입니다. 그 덕이 온전해졌습니다(幾矣. 鷄雖有鳴者, 已無變矣. 望之似木鷄矣. 其德全矣)”라고 말한다. 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목계는 “재능이 있어도 무심(無心)으로 살아 사람들을 감화시키기 때문”에 이기는 법이 없다고 설명하신다.

실천에는 게으르지만 지키지도 못할 목표를 만드는 데는 재빠른 나는 새해 표어를 “의연하게 또 의연하게”로 잠정 결정했다. 아마 매우 유효적절한 목표가 되지 않을까 자화자찬하고 있다.^^; 제 기운만 믿고 성내지 않는 나무닭과 같이, 그림자에게 달려들지 않는 나무닭과 같이, 눈을 흘기며 조소를 보내지 않는 나무닭과 같이 세밑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의연하게 또 의연하게!


061222
며칠 전 사학법 재개정을 주장하며 목사 수십 명이 단체 삭발식을 감행해 화제다. 나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이근복 목사님께서 이에 반대하며 “예수께서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찾아온 성탄절을 앞두고 교회가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참회가 참 고맙다. 정말 다른 때도 아니고 성탄절 즈음해서 좀 너무한다 싶다.

조선 말기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와 더불어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 8,000여명의 순교는 오늘날 가톨릭이 손꼽히는 종교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주기철 목사님의 신사 참배 거부하며 순교하신 것 역시 개신교가 남부끄럽지 않는 힘이 되고 있다. 순교의 각오로 사학법 재개정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하겠다는 목사님들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까닭은 단지 내 성격이 모나서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종교지도자들에게 있으리라 믿어지는 그 무엇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이 방면으로 좀 찾아보고 읽어봤지만 나는 현행 사학법이 신앙과 선교의 자유를 얼마나 심대하게 침해하는지 그 연관관계를 도저히 밝혀내지 못하겠다. 현행 사학법 시행령은 개방형 이사의 자격과 추천방법을 학교 정관에 위임하고 있는 만큼 개방형 이사의 자격을 학교를 운영하는 종교재단의 종교인으로 정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선교활동이 어려워진다고 분개하시니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사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절대 약자인 학생들을 상대로 선교의 자유를 들먹거리는 것 자체가 좀 민망한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나는 이 헌법 애호가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첨언하자면 저는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비추어 종교인에 대한 근로소득세 부과를 오래 전부터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득세법은 면세 대상자에 대한 열거주의를 택하고 있다. 여기에 종교인은 따로 규정이 없다. 마찬가지로 규정이 없는 작가나 예술가들은 모두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 국교가 있는 외국인의 종교인들도 소득세는 내고 있는 걸로 아는데 헌법에 복수종교와 정교분리를 규정한 나라에서 종교인들의 과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납득하기 힘들다. 명백하게 헌법과 소득세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일말의 반성은 없으면서 개정 사학법이 위헌이라며 목청을 높이시는 분들이 많이 안타깝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또 험한 말들을 쏟아 냈구나 반성하며 <평화의 기도>를 암송한다.

미움이 있는 곳에 평화를,
무례함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기를,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기를,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 성 프란체스코, <평화의 기도> 中


061223
결국 술자리에서 그 분의 흉을 보고 말았다. 나는 국민일보 백화종 주필의 칼럼 <의절 할 수도 없는 사이라면>라는 칼럼을 떠올리며 의절(義絶)이란 섬뜩한 용어까지 꺼냈다. 그 분은 바로 김근태 의원님이다. 내가 감히 김근태 의원님에게 섭섭한 내색을 한다는 건 참 무례하고 어이없는 일이다. 나에게 김근태 의원님은 정치인 이상의 정치인이었으며, 지도자들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지난 수 년 간 그가 좀 더 존경을 받고, 좀 더 사랑 받기를 갈망했던 나로서는 매우 고통스런 마음이다. 그러나 나는 비판을 거둘 수 없다. 그가 다름 아니라 김근태이기 때문이다.


061224
미국에서는 몇 해 전부터 성탄절을 앞둔 인사말이 종래의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에서 ‘해피 홀리데이(Happy Holidays)’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종교를 가진 많은 민족들로 구성된 미국에서 특정 종교의 교주 이름을 사용하는 인사말을 피하려고 하는 미국인들의 노력에 공감한다. 미국처럼 개신교가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에서도 이런 자성이 일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그런 시도조차 안 하는 거 같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미적거리는 열린우리당 비대위원들을 상대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 종교가 등을 돌리게 만들어 놓고 집권한 적이 있는가”라고 경고했다. 송 교수님은 그런 경고를 날리기 전에 민주주의가 발달한 어느 나라에서 종교가 세속권력을 탐하는지 부터 연구해서 발표해주시길 바란다. 여하간 성탄절 연휴에 가장 낮은 이들과 벗했던 예수님의 그 마음가짐을 흠모하고 배우고 싶다. 한 편으로 단재 선생의 탄식도 잊지 말아야겠다. 모두들 Happy Holidays!!!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利害) 이전에 진리를 생각하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主義)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主義)가 되지 않고 주의(主義)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主義)를 위한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적 특색이다.  
- 단재 신채호, <浪客의 新年漫筆> 中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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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에서 실시한 2006년 하반기 문화유산 사진 및 답사기 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했습니다. 그다지 잘 쓴 글은 아니었지만 작은 상이나마 받게 되어 기쁘네요. 잡글 쓰기를 즐기는 저는 글쓰기로 받는 상처럼 기쁜 게 없습니다. 당초 노렸던 입선 말석보다는 좋은 성과가 나와서 세밑에 제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이 될 거 같아요. 부끄럽지만 졸문을 올립니다.


<동궐(東闕)을 꿈꾸다>

  안거(安居)나 피정(避靜)을 좀 떠나고 싶었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지만 꿀벌도 가끔 슬플 때가 있는 법이다. 나의 우울증이 헤픈 자기연민에 그치는 것이 아닌 뼈를 깎는 자기성찰을 위한 매운 의지이길 바라며 창덕궁을 찾았다. 이태 전 창덕궁을 찾았을 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듯이 나는 모종의 세속적 꿍꿍이를 품었다.


  창덕궁은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는 이유로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따른 책임은 막중하다. 이 문화유산은 비단 우리 후손들 것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공유해야할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의 위기유산(Danger Heritage) 제도는 지정 등록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알리는 좋은 징표다. 우리 궁궐 환경의 문제를 꼽아보라면 역시 주차장이다. 규모가 큰 경복궁 동편 주차장이나, 지하주차장과 노상주차장이 사이좋게(?) 들어서 있는 종묘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창덕궁 주차장도 그리 아름답지는 못하다. 금호문 밖으로 난 주차장은 창덕궁의 문화적 저력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일전에 자금성 답사를 다녀왔을 때 놀란 점은 궁궐 안에 주차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천안문(天安門)보다 훨씬 앞에 있는 정양문(正陽門)에서부터 걸어가며 중국인들의 자부심의 근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궁궐도 정문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문화를 정착시켰으면 좋겠다. 나의 이런 생각이 답사객들을 불편하게 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궁궐에 바짝 붙어서 궁역을 잠식하는 지금의 주차장 구조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돈화문(敦化門) 앞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을 바라보며 씁쓸했다. 국민들의 문화적 안목이 높아진 만큼 요구수준은 날로 높아가고 있다. 그 다양한 요구를 문화재 당국이 재빨리 수락하기 어렵다는 고충을 십분 이해한다. 그만큼 묵직한 기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고 좀 더 애써주셨으면 좋겠다.


  27년만의 자유관람을 하려니 가슴이 설렌다. 최근 들어 창덕궁 관람영역을 넓히려는 많은 노력이 있었다. 2004년부터는 시행한 옥류천 특별관람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던 후원 지역을 개방함으로써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킨 긍정적 의미가 컸다. 미공개 지역에 대한 개방에 이은 자유관람 제도의 신설로 관람의 질을 높인 것도 환영할 일이다. 문화유산 보호라는 측면에서 안내원의 지도 아래 짜여진 제한관람을 당장 없애는 것이 곤란한 만큼 자유관람을 통해 다른 각도의 답사를 즐길 수 있어 반갑다. 창덕궁은 날로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서울에 살면서도 창덕궁에 가보지 않은 분들이 창덕궁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서울에 남아 있는 옛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돌다리인 금천교(錦川橋)에는 언제나 묵직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래 너만은 제 자리를 지켜주었구나’ 싶어 돌짐승들을 자꾸 어루만진다. 인정전(仁政殿) 답도(踏道)는 중국의 그것에 비해 규모가 초라해서 아쉬울 때도 있지만 만만하고 살갑다. 하지만 인정전 박석(薄石)만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경복궁이나 종묘의 박석을 볼 때마다 ‘최소의 인공미라고 해야 할지 최대의 자연미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호들갑을 떤다. 고유섭 선생은 한국미의 특질을 “무기교의 기교”라고 평했는데 박석이 그 결정판 가운데 하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못하는 일이 없다(無爲無不爲)”는 도가의 정신이 유교적 건물의 정수에서 만난다. 밉살맞은 일제는 이 박석을 걷어내고 잔디를 깔았다. 최근에 다시 복원했다고 하지만 너무 반듯반듯해 정이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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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드므와 박석>
드므란 ‘입이 넓은 큰 그릇’이란 뜻의 순우리말로서 여기다 물을 담아 두어 화마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궁궐 전각 곳곳에서 이 드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창덕궁 박석은 좀 모자라지만 종묘나 경복궁의 박석은 참 매혹적이다. 돌을 너무 잘 다듬으면 햇빛이 반사되어 눈부시기 때문에 부러 울퉁불퉁하게 둔 것이라고 한다. 또한 미끄럼 방지 기능까지 있다니 혜안이 놀랍다.



  임금이 평소에 국사를 논의하던 편전(便殿)인 선정전(宣政殿)을 늘 멀리서만 지켜봤는데 가까이서 가볼 수 있게 개방해놓아서 기꺼웠다. 현존하는 궁궐 전각 중에서 유일한 푸른색의 유리기와라는 각별함 때문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다. 청기와는 회색조의 일반 기와보다 세 배 정도 비싸다고 하는데 조선 초기에는 몇몇 사찰에 청기와를 썼고, 궁궐 건물로는 경복궁의 근정전과 사정전만이 청기와를 이었다고 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자금성의 황금기와나 천단의 청기와보다 더 매력적이고 질리지 않는다. 청와대의 청기와도 그 나름대로 공력을 들인 것일 텐데 선정전의 기와를 상대하지는 못할 듯싶다. 나는 옛사람의 솜씨보다 못하다는 것을 타박하려는 게 아니다. 고금의 기술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옛것을 아끼면서 새로운 미적 감각을 얼마든지 구현해낼 수 있으리라. 햇살에 비친 청기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 회의와 낙심을 다독인다.


  선정전 오른쪽으로 내전의 중심이 되는 희정당(熙政堂)과 대조전(大造殿)이 있다. 왕의 침전이 딸린 편전인 희정당과 왕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이 너무 꽉 들어차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십상인데 이 건물은 본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건물 다 화재로 소실된 것을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등을 헐어 새로 지은 것이다. 대대적으로 중건된 이후 법궁의 지위를 회복한 경복궁에 대한 훼손의 일환인 셈이다. 철저히 파괴되어 터만 남은 경희궁, 창경원으로 격하되기까지 했던 창경궁만큼은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의 창덕궁은 일제의 전시장이자 연회장이 되었고, 수많은 전각들이 훼절되었다. 이래저래 잘리고 상처 입은 우리 궁궐을 바라보며 일제의 만행만 곱씹기보다는 우리 스스로의 부박함을 반성해야겠다.


  새 모양으로 생긴 대조전 일곽의 처마 빗물받이가 익살맞다며 연신 사진을 찍고 집에 와서 찾아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내가 마냥 좋다며 흐뭇한 미소를 보내던 빗물받이가 있던 곳은 대조전 부속건물인 흥복헌(興福軒)이었다. 1910년 8월 22일 흥복헌에서는 한일합병을 결의하는 조선왕조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린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며 버텼다는 순정효황후의 통분이 서린 곳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데만 급급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어디 가면 뭐가 있더라며 피상적으로 듣는 것에 만족했던 게 민망하다. 어디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적극적으로 헤집고 오늘날 그 의미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그게 진짜 공부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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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복헌 처마의 빗물받이>
나는 흥복헌에서 역사의 입체적, 총체적 이해를 깨우쳤는지도 모른다.



  후원으로 발길을 돌려 주합루(宙合樓)를 올려다보니 적서의 구별 없이 실력을 키웠던 가능성의 광휘(光輝)를 받는 듯 힘이 솟는다. 보기 드문 6각 지붕에 2층 처마를 한 존덕정(尊德亭)은 아기자기한 맛이 일품이다. 한 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고 기교가 많이 들어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곳은 정조대왕의 꿈이 깃든 곳이라 더 애틋하다. 숨이 찰 때까지 옥류천(玉流川)까지 소요(逍遙)하고 만보(漫步)했다. 발 운동으로 뇌의 혈류량이 증가하면 뇌도 함께 활성화되어서 좋은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다.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나는 산책을 즐긴 칸트와 루소를 흉내내 생각거리를 찾다가 “민족”이라는 화두를 꺼내 들어봤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 Imagined Communities』에서 민족은 근대 자본주의가 발달 하면서 생겨난 개념이며, 사람들에 의해 상상되어진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민족은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경험에 의해서 구성되고 상상되어진다는 주장이 파격적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경청하지만 “민족은 공동의 언어·혈연·문화공동체라는 객관적 요소에 민족의식이라는 주관적 요소가 더해져 공고해진 실체”라는 신용하 교수의 반박이 더 맞는 거 같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 같은 공격적 민주주의의 폭력과 차별에 반대하는 것을 허상과 싸우는 것이라고 손쉽게 말해서는 곤란하다. 자중자애(自重自愛)라는 말처럼 스스로 무겁게 여기고 사랑하는 자만이 남의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되어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남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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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천 바위>
옥류천 바위에는 흐르는 물에 왕이 술잔을 띄워 보내면 잔이 닿은 신하는 시를 읊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 그 길이가 짧아서 시 한 수 읊을 짬이 별로 없었을 거 같다. 아마 글재주가 특출 나지 않고서는 영락없이 벌주를 마셔야 했으리라.



  후원의 정자들은 규모가 소박한 편인데 이는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인공미를 가미하려는 우리 전통 조경의 산물이다. 부러 투정을 부려보자면 후원의 우수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지나쳐 절대화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미적 가치를 너무 보편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건 무모한 시도인 거 같다. 저마다 독특하게 뿜어내는 향기 그 자체를 완상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목재가 덜 들어가는 익공양식이 널리 유행한 것은 웅장한 건축물을 일부러 안 지은 것이 아니라 양질의 목재가 부족해 정말 못 지었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빚어낸 정성을 기리는 게 진정 문화를 애호하는 이의 겸허하게 열린 자세일 것이다. 비록 도자의 발색(發色)이 고르지 못했다는 흠이 있지만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흠뻑 빠져도 지나치지 않는다.

  경복궁을 설계한 정도전은 “검소하되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한 데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고 말했다. 유교적 이상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검박함을 추구한 왕실의 정신이 지나쳤는지 조선의 백성들은 늘 빈궁하고 고달팠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중국이 사치로 망한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검소함으로 인해 쇠퇴할 것이다”고 일갈했다. 우리의 풍속이 정녕 검소함을 좋아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재물을 사용할 기술을 알지 못한데 불과하다는 그의 지적이 매섭다. 그런데 오늘날 상황은 급변하여 모든 것이 숫자로만 표현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쯤 되면 넉넉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다. 후원에서 그걸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유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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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심정과 빙옥지>
청심정(淸心亭)은 창덕궁 후원 중에서도 꽤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이번에 처음 찾아가 봤다. 청심정 앞에 돌로 만든 조그만 연못인 빙옥지(氷玉池)와 청심정을 향해 앉아있는 앙증맞은 거북이가 있다. 우리나라 돌조각은 무섭게 만든다고 해도 어찌나 살벌한 기운이 안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자연미를 한껏 살린 빙옥지 끝마무리가 인상적이다.



  어느덧 해거름이 내렸다. 창덕궁을 맨 마지막으로 나서며 동궐(東闕)의 온전한 복원을 희망했다.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전락할 때 왕이 거처하던 창덕궁과 구별하기 위해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담장이 놓이게 되었다. 이제 창덕궁과 창경궁을 갈라놓은 그 담장을 걷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동궐로 재탄생한다면 우리는 이 세계문화유산을 더욱 가치롭게 가꾸는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창덕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련정(愛蓮亭)의 모티브가 된 애련설(愛蓮說) 한 구절을 습관처럼 읊조려본다. “연꽃이 흙탕물에서 자라되 진흙에 물들지 않고, 맑은 잔물결에 씻었으되 요염하지 않은 것을 나는 홀로 사랑한다.” 자신이 지탱할 만큼의 빗방울을 머금고 나면 미련 없이 비워내는 연꽃잎처럼 살아야겠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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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2.11~06.12.17)

일기 2006. 12. 18. 00:20 |
061211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박상훈 부장판사)는 2003학년도 수능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를 한 사실이 뒤늦게 적발돼 올해 초 수능 성적 무효통지를 받은 ㄱ씨가 낸 행정처분 무효확인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형벌과 행정처분은 주체와 효력, 목적을 달리한다”며 “수능성적을 무효로 하는 행위는 구 고등교육법에 따른 하나의 완결된 최종적인 공권력의 행사이자 준법률적 행정행위”라고 밝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부정행위 수험생이 합격한 후 장기간 세월이 흘렀다거나 대학입학 이후 우수한 성적을 나타내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구제된다면 경쟁의 원리가 심각하게 왜곡될 뿐 아니라 부정행위가 만연될 우려가 크다”고 판시하는 대목이다. 어려운 경제사정을 고려해 기업인들의 부정을 선처해주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경쟁의 원리”가 만만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황금률이 아니길 바란다.

ㄱ씨는 항소를 하겠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다른 판결이 나올 거 같지는 않다. ㄱ씨가 수시전형으로 합격했다고 하지만 수능이 최소자격요건으로 반영 되었다면 면책되기는 어려울 거 같다. 여하간 국법은 누구나 경외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니 오히려 사회경제적 상류층이 좀 더 두려워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상류층의 품위 유지를 이유로 하나둘 법망을 빠져나간다면 법의 권위는 추락한다.

16대 국회의원 시절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 업자들로부터 1억 8천7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복역중인 ‘영화인 강신성일 구명을 위한 탄원서’ 서명운동을 고깝게 보는 내가 나쁜 놈일까. 왜 이 땅의 관용은 위에서만 맴돌까.


061212
청부중민(淸富重民)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봤다. 박세일 교수님의 부민덕국(富民德國, 부유한 국민이 사는 덕 있는 나라)에서 영감을 얻었다. 시혜적 평등이 아닌 합법적 분배의 대상인 청부(淸富)와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잘 살게 될 수록 인간다움을 고양할 수 있는 중민(重民)의 결합을 지향하겠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잘 살면서 따뜻하기까지 한 나라의 다른 표현이다.

본래 부국안민(富國安民)이라고 쓰던 것을 청부안민(淸富安民)으로 바꾸어 쓰다가 중민(重民)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다시 바꿨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다(天下無棄人)”는 내 모토와 맞아 떨어지는 느낌도 있고 말이다. 삼봉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서 “위정자들의 모든 행위는 백성을 위하고(爲民), 백성을 사랑하고(愛民), 백성을 소중하게 여기며(重民), 백성을 편안하게(安民)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서술하는 대목에 그 용례가 보인다.

비록 모자란 머리지만 청부중민(淸富重民)에 바탕을 둔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을 모색해보자.


061213
꼭 1년 전 오늘 나는 익구닷컴에 <사립학교법 통과를 환영한다>라는 글을 썼다. 그런데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사법개혁안과 함께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무기력한 집권여당이 또 다시 원칙을 저버린다면 이 땅의 공공성은 재차 시련을 맞이할 것이다.

한국해양대 김용일 교수님은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학교법인 이사장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자의 학교장 임명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 제54조의 제3항”이 개정 사학법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신다. 집권여당이 “설립자나 법인 측에서 더 '치명적'이라고 여긴 친인척 학교장 임명금지 등에서 이미 "자발적인 양보"”한 셈이라는 말씀이 이채롭다.

김 교수님 지적대로 개방형 이사제의 숫자에만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개정 사학법의 본래 취지인 교육 공공성과 사학 민주화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듯싶다. 첨언하자면 종교계 사학관계자 분들은 이번 만큼은 자숙하시길 바란다. 한 해 전에도 말했지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 눈물을 흘리시고,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 콧등이 시큰해지실 일이 없기를.


061214
불교뉴라이트연합이 출범한다고 한다. 하시는 말씀들을 들어보니 “불교정신을 기반으로 국가 정체성과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2000만 불자의 역량을 총결집할 것”이라며 “호국불교의 정신을 되살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선진 대한민국의 건설과 평화통일에 일조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모르겠으나 부처님을 팔아먹는 행위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불교하면 무소유의 정신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스님께서 친히 시장경제를 사수하시겠다니 그 정성에 마음이 짠해진다. 다만 시장경제가 먼저 뿌리 내려야할 곳은 따로 있다. 불교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을 독점하려는 불교계의 과도한 주장부터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불교문화재 보존수리에 들어간 혈세는 당연한 것인가? 호국불교를 언급하기 전에 세금정산부터 철저히 하자. 자기 소유에만 애틋한 불자만큼 볼썽사나운 것도 없다.


061215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님이 쓰신 <헐어 짓는 광화문>라는 경향신문 칼럼을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내가 오독하지 않았나 염려스러워서다. 김 교수님은 벨기에 겐트 시의 시청 건물이나 이스탄불의 소피아 사원의 예를 들어 역사 원리주의, 정통주의에 대한 강박증을 비판하셨다. 김 교수님은 참여정부가 “과거사 바로 잡기로 그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확립”하는데 열중했으며, “섬세한 조절을 통한 현실 개조의 노력보다는 명분에서 나오는 추상적 거대 계획을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 스타일을 집약하여 보여주는 것이 최근의 역사와 건축을 아우르는 광화문 복원 계획”이라는 말씀에서 고개가 갸우뚱거린다. “복원된 광화문이 이 정부의 정치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집약한 마지막 기념비가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로 맺는 칼럼을 읽고 좀 혼란스러웠다. 내가 듣기로 총 244억원이 투입되는 광화문 복원사업은 1990년에 20년 계획으로 시작된 경복궁 복원사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업이다. 일제가 원체 철저히 훼손해서 20년 동안 복원해도 본 모습의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여정부가 모종의 정치적 술수를 부려 광화문 복원에 나선 것이 아니라 당초 짜여진 계획대로 시행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광화문 복원에 의문이 있으시면 문화재 당국에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20년 동안의 복원 프로젝트의 허실을 지적해주셔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갑자기 대정부 비판을 하셔서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홍찬식 동아일보 논설위원님은 <광화문 복원>이란 칼럼 말미에 “이 시대를 대표할 ‘새 광화문’을 지을 역량이 정부에 있을까”라며 황당한 결말을 맺고 있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이라면 내 오독이 너무 심한 걸까. 물론 광화문 자체보다는 광화문에 매달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현판에 더 관심이 큰 것으로 보이는 홍 논설위원님의 글과 김 교수님의 글을 비교하는 건 너무 지나치다. 하지만 광화문 복원과 참여정부의 정치 스타일을 연계시킨 건 상관관계가 떨어진다는 것이 개인적 소견이다. 인기 없는 정부라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 믿는다지만 적어도 지식인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말해야하지 않을까.

여하간 나는 3년 뒤 콘크리트를 벗고 국내산 육송(陸松)으로 새로 지어질 새 광화문을 환영한다. ‘광화(光化)’는 서경의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에서 따왔다고 한다. 빛이 사방을 덮고 가르침이 만방에 미친다는 본래 뜻처럼 이 땅의 오욕을 딛고 다시금 문화적 찬란함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부디 잘 만들어져서 김 교수님과 홍 논설위원님 등의 의구심도 말끔히 해소해드리길 바란다. 아 정말 점점 이러다가 문화재청에 취직할지도 모르겠다.^^;


061216
나는 왜 영어를 이리 못할까? 아니 왜 잘 하려는 의지도 크지 않고,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대해 당시 어린이가 구사할 수 있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찬탄한 이후 나는 언어에 있어서는 국수주의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 정규 교과목으로 영어가 등장하자 나는 보란 듯이 공부를 게을리 했다. 영어 공부를 안 하고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대한민국 교육체계상 어찌어찌 근근히 따라가기는 했지만 늘 떠밀리는 공부만 했던 거 같다.

어쩌면 영어공용화 논의에 내가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도 그 논리적 근거를 따지기 이전에 생존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계화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한다. 영어를 공용화 수준에 가깝게 잘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든 세상은 내가 바라는 바람직한 세계화의 모습은 아니다. 티베트족이 중국어가 아닌 티베트어를 잘 간직해나가는 것, 캐나다의 퀘벡주가 프랑스어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가 아닐까? 아 정말 배부른 소리다.^^; 그래도 세계화가 표준화에서 그쳐야지 획일화까지 나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최근 영어 공부를 하면서 내 무식함이 가장 크게 만개하고 있는 영역을 헤집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학 입학한지 5년이 지나서야 토익 점수에 신경 쓰기 시작한 내 무신경에 스스로 놀랄 정도다. 나는 무슨 배짱으로 토익을 무시하고, 영어를 멀리하며 살았던 것일까. 물론 나는 그 대신 무언가를 배웠고 익혔다. 하지만 이런 것과는 무관하게 내가 평균 수준 이상의 토익 점수를 따지 못한다면 내 인생 자체가 불성실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될 공산이 크다. 토익 점수가 나를 말하는 지표가 될 수는 없겠지만 나란 녀석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둘 필요가 있겠다.


061217
동생과 함께 토익 시험을 치렀다. 지난달 토익 시험에 이어 3주만에 보는 시험이라 많은 준비를 하지는 못했다. 너무 단기간에 점수 올리기를 집착하다 지난달에는 시간 안배에 실패해서 독해 지문 하나를 거의 읽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내년에도 매회 꾸준히 응시해서 주어진 시간에 내 모자란 지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담대함을 길러야겠다.

동생에게 시험을 잘 마쳤냐고 넌지시 물으니 시간이 모자라지 않았다며 당당했다. 토익 시험 처녀 응시자의 풍채(?)가 아니어서 놀랐다. Part 1, 2에서 나오는 Directions 시간에 그걸 따라서 듣고 읽는 여유까지 부린 동생을 구박하며 앞으로는 그 시간을 아껴 다른 문제를 풀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는 매정한 내 모습이 미웠다.^^;

통화바스켓 제도를 흉내내서 앞으로 동생 토익 점수와 내 점수를 합산해서 내보는 것도 재미날 거 같다. 통화바스켓은 자국과 교역비중이 큰 복수국가의 통화를 선택하여 통화군(basket)을 구성하고, 바스켓을 구성하는 통화들의 가치가 변동할 경우 각각 교역가중치에 따라 자국통화의 환율에 이를 반영하는 환율 제도를 말한다.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가기 전의 과도기적인 환율 제도로 우리나라도 1980~1990년에 복수 통화바스켓 제도를 시행했었다.

나는 이 복잡한 환율 제도를 차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구성통화의 꾸러미 개념을 빌려 둘을 합산하는 것을 목표 삼고 싶다. 이번 시험에서 나랑 동생의 토익 점수가 합쳐서 1200점을 넘어봤으면 좋겠다. 중장기적 목표로 익구-윤미 토익 바스켓의 총점은 1600점(가령 820점과 780점)이다. 원수 같은 영어지만 이걸 핑계로 동생과의 우애를 다지면서 분명한 목표를 향해 서로 격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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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2.04~06.12.10)

일기 2006. 12. 10. 22:52 |
061204
제34회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 1급에 합격했다. 가채점을 좀 엄격하게 해서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넉넉하게 합격선을 넘었다. 2002년 5월, 2006년 6월에 이어 삼수 끝에 딴 자격증이라 기쁨이 더 크다. “한자는 호모 사피엔스 문화의 한 극점”이라며 격려해주신 고종석 선생님 덕분에 막판에 힘내서 벼락치기 할 수 있었다. 방심하는 사이에 2급을 날름 따버려서 내가 1급 시험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청원이에게도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2000년 11월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에 도전한 이래 6년 만에 그 대미를 장식했다. 맨 처음 한자자격증을 소개해주셨던 양성준 선생님을 언제 찾아뵙고 소식을 전해야겠다.

사실 쟁쟁한 자격증에 비해 내가 딴 것은 그리 대단하지도 않고, 쓸모 있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실용성이 별로 없어도, 남이 안 알아줘도 마냥 즐겁다. 고3 수험시절이 한창인 2001년 5월에 2급 시험에 도전했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분야가 아닌가. 작은 성취를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기반으로 더 큰 공부를 할 수 있어야겠다. 내 한자공부의 본래 지향점이었던 동양고전 읽기도 서둘지 말고 쉬지 말고 해봐야겠다.


061205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님이 “언론에서 ‘발목 잡는다’고 표현한 야당 간부들을 찾아가 손목을 잡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간청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사법개혁안 지연처리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시는 기사를 읽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3000여건에 달하는 신기록 행진 중이라는데 그 가운데 사법개혁안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발목 잡았지만 나는 손목 잡았다”라는 기사제목을 참 잘 지은 거 같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지도자들의 추태가 식상한 요즘 묵묵히 맡은 소임에 충실한 분들이 있어 참 고맙다.

어제 강인형님, 광호형님, 재연이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정석이가 노무현 대통령님이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이야기를 잠깐 했다. “패장은 말이 없다”는 내 요즘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통합신당 논의를 “결국 舊민주당으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정의 표류가 반복되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자는 제안이나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도, 표결을 통해 결론을 내주지도 않는” 야당을 질타하는 내용은 발설자가 대통령님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품어봄직한 화두다. 첨언하자면 정치 관련해서 장문의 편지를 쓴 정성으로 연금개혁이나 종합부동산세 같은 갈등적인 민생이슈에 대한 편지를 써보시는 것도 좋을 듯싶다.

다만 편지에 국정 최종책임자로서의 무한책임감이 잘 읽히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대통령님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만 남 탓을 하기 전에 자기 탓을 먼저 하는 것을 빼먹는 바람에 편지의 설득력이 반감됐다. 부디 대통령님께서 상대방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에만 재능을 쓰지 않으시길 바란다. 아울러 대통령님께서 내가 먼저 손목 잡겠다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조악한 정치공학에 빠져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는 여당 지도부보다는 대통령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보기도 좋을 거 같다. “군자는 헤어지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아니하며, 충신은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의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君子交絶不出惡聲, 忠臣去國不潔其名)”라는 사기(史記) 구절이 사무치게 그리운 나날들이다.

참이슬을 과다 복용했더니 오전 내내 숙취에 시달렸다. 숙취 방지용 처음처럼을 좀 확보했어야 하는데 실수다.^^;


061206
영국의 정치가인 필립 체스터필드는 지식을 회중시계에 비유했다.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에서 지식은 회중시계처럼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두고 굳이 꺼내 보이면서 자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시간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 때만 대답하면 된다. 시간의 파수꾼이 아니니까 누가 묻지도 않는데 시간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지만 누가 시간을 묻거든 그 때는 정확하게 대답해 주어라. 이 때는 다만 네 시계가 정확해야한다”는 조건도 붙였으니 체스터필드는 꽤 치밀한 분인 거 같다.

나는 그간 우리의 부싯돌은 부딪힐수록 빛이 난다는 볼테르의 말씀을 빌린 ‘지식 부싯돌론’, 퍼낼수록 샘솟는 우물에 빗대어 ‘지식 우물론’ 등을 주장했다. 그런데 점점 체스터필드의 ‘지식 회중시계론’이 맞는 거 같다. 상대방은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은데 너무 내 이야기만 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되짚어본다. 나는 더 겸손해진 걸까? 더 겁이 많아진 걸까?


061207
나는 고건 전 국무총리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분이 도대체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도통 또렷하게 밝히지 않으니 애써 찾지 않고서야 알 길이 없다. 혹자는 고건님의 행보는 정당정치가 뿌리 내리지 못하고 인물중심으로만 돌아가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고건님이 당적을 가지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적이 있고, 정무직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셨으니 그 지적은 지나친 감이 있다. 하기야 거대 양당의 유력 대권주자 지지율이 열 배 차이가 넘는 나라에서 무슨 정당정치를 기대하겠냐 싶다.

우리나라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정당일체감이 거의 없다. 일부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는 정당일체감의 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권자가 특정 정당에 대해 갖는 정서적 일체감이 적으니 지역주의적 투표가 여전히 큰 변수로 부각되는 것이다. 또한 소수 정치 엘리트들이 이합집산하며 정계개편을 하는 것도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당일체감이 어느 정도 뿌리 내렸다면 당원이나 지지자가 무서워서라도 감히 그렇게 못할 것이다. 자신이 아끼는 정당의 영광과 치욕을 함께 하려는 지지자들이 좀 더 늘어난다면 철새 정치인도 줄고 책임정치 실현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고 전 총리님은 정치색이 엷고, 무색무취하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집권여당이 제 당원을 배신하고, 제 금배지를 지키겠다며 정치공학 꼼수를 부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고 전 총리님은 전문 행정가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했을 뿐이라고 해명하지만 그렇다면 이제라도 자신이 꾸릴 정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당이라는 시스템이 뒷받침 되어 있다면 그 정당의 정강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고 전 총리님은 그런 면이 부족하다.

고 전 총리님을 예측 가능한 안정적 리더십으로 추켜세우는 분들도 있지만 고 전 총리님은 지금 시점에서는 너무 예측 불가능해서 문제다. 정당정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 전 총리님만 바라보고 있다는 게 딱하다. 혹시 있을 고건 신당이 철새 정치인들을 모아 건실한 ‘원내정당’을 이룰 가능성은 요원하다. 그렇다고 ‘대중정당’이라도 건설하자니 고 전 총리님은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는 게 고 전 총리님의 일차 과제가 될 것이다.


061208
드라마 <황진이>에서 백무가 기생들의 춤을 끝까지 안 보려는 벽계수 일행의 술상을 뒤엎는 장면을 우연히 봤다. “신분이 천하다 하여 가진 재주도 천하다 보는가? 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외침이 인상 깊었다. 하층민으로 서글픈 삶을 살았던 이들의 기록이 미미한 건 비단 우리 역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몸은 천민이었을지언정 정신은 양반 못지 않았을 기생들의 애환보다는 매춘이 먼저 떠오르게 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게오르그 짐멜은 『돈의 철학』에서 “인간을 단순히 목적으로 취급하라는 칸트의 도덕명령은 매춘의 경우 두 당사자에 의해 완전히 부정된다. 아마 매춘은 인간관계 중에서 관련 당사자들을 모두 수단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시켜 버리는 인간관계의 가장 전형적인 본보기”라고 말한다. 황진이 같은 기품 있는 기생들은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지 않을까 싶다.

한 푼의 외화라도 더 벌겠다며 기생관광을 묵인했던 지난날의 아픈 과거들이 떠오른다. “성매매로 인해 이룬 경제라면, 그런 경제는 망해도 좋겠다”는 김선주님의 일갈대로 성매매로 흥한 경제라면 성매매로 망할 것이 뻔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수출액이 3천억 달러가 넘었다는 자부심은 이런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061209
옛사람의 사귐에 대한 글을 묶은 『거문고 줄 꽂아놓고』라는 책을 즐겁게 봤다. 성호 이익 선생이 「사귐을 논함論交」이라는 글에서 소개한 옛날 월(越)나라 민요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어떤 조건이나 지위보다는 사람 그 자체를 사귀는 걸 노래한 시 같다. 나는 이 시를 홍익이에게 생일선물로 전하며 좀 더 친구 노릇을 잘할 것을 기약했다.

君乘車我戴笠 그대는 수레 타고 내가 삿갓 썼거든
他日相逢下車揖 수레에서 내려와 인사를 해주시게
君擔簦我跨馬 그대가 우산 메고 내가 말을 탔거든
他日相逢爲君下 기꺼이 그대 위해 말에서 내리겠네

* 3연 簦(竹+登) 우산 (등)

책 206쪽에 나오는 이야기를 좀 옮기자면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벗 사귐에 차이가 컸다고 한다. 정약전은 여항의 술꾼들과 가까이 지냈지만 정약용은 주로 깔끔한 엘리트들과 어울렸다. 1801년 신유사옥(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이 일어나 형제의 처지가 위태로워졌을 때 형의 벗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정약전 형제를 잘 대해준다. 아우인 다산은 “이 점이 바로 내가 형님께 못 미치는 점!”이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나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래저래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밀기도 했다. 수레에서 내리고 말에서 내린다고 진심을 알아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정성이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061210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공했던 프랑스의 해군장교 주베르는 “이 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고 탄식했다. 물론 말만 그렇게 해놓고 외규장각에 소장된 의궤 등 189종 340여 책을 약탈하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말이다.

주말에 행정법 동영상 강의를 몰아서 듣느라 읽으려던 책을 못 읽었다. “독서는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다”는 게 내 철석같은 신조지만 자꾸만 책읽기를 후순위를 미루게 되어 씁쓸하다. 모자람을 채울 게 많은 녀석이라 읽고 싶은 책만 읽으며 살지는 못하리라. 그래도 책을 덜 읽으면 마음이 가난해진다고 믿는 고지식한 녀석으로 남고 싶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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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개인주택 종부세 부과대상은 23만7000명 정도다. 전국 주민등록상 세대수 1777만 세대의 1.3%를 차지한다. 종부세를 내야할 납세자의 71.3%는 2채 이상의 다주택 보유자라고 한다. 전군표 국세청장님은 “종합부동산세 대상자중 65세이상의 1가구 1주택자라도 예외를 둘 정도로 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한상률 국세청 차장님에 따르면 세부담 능력에 따른 분석 결과를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하니 좀 더 두고봐야겠다. 집 한 채가 전부인 봉급생활자나 은퇴자들이 투기와는 무관하더라도 서민들에 비해 담세능력이 월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동산 과다보유 규제와 투기억제라는 정책목표에 비추어 이분들의 세금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보유세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한다. 미국은 보유세와 거래세의 비율이 98대 2 정도이며 영국은 89대 11, 일본은 95대 5 정도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77대 23의 비율이다. 부동산 보유에 대한 실효세율도 0.4~0.6%로 1% 이상인 미국, 영국, 일본보다 낮은 편이며, 전체 세수 대비 부동산세 비율도 한국이 9.6%, 일본 13.9%, 미국 11.3%, 영국 10.7%로 낮은 편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세금폭탄이라는 레토릭은 국제적 시각이라기보다 국내용 선전 문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는 과잉금지에 위반된다는 주장과 종부세는 이익에 부과하는 과세가 아니라 보유에 대한 과세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데 후자가 좀 더 설득력 있다. 다만 주택이 자산의 70~80%를 차지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무시하기 어려운 만큼 1주택자에 한해 종부세를 경감하는 건 수긍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정책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말이다.


아무리 종부세의 허점이 적잖다고 해도 중앙일보의 11월 18일자 <내달 `종부세 폭탄` 터진다> 제하의 기사는 매우 불편하다. 기사인즉슨 11년 전에 2억원으로 장만한 아파트가 현재 13억원으로 오른 서울 대치동의 이모씨가 258만원의 종부세와 1억3400만원의 양도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연을 소개한 것이다. 대다수 성난 누리꾼들과 마찬가지로 “종합부동산세 때문에 요즘 밤잠을 설친다”는 그 애틋한 사연에 함께 눈물 흘리지 못하는 내가 참 못된 놈인지도 모르겠다. 이 땅의 가련한 부자들의 간절한 호소를 귀담아 듣지 않는 오만불손함을 반성(!)한다. 비록 미실현이익이기는 하지만 11억원의 시세차익에는 한마디 언급도 없어 섭섭하다. 대다수 서민들이 꿈꾸지 못할 위치에 있는 분의 고충을 1면 톱으로 게재하는 건 서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국세청은 종부세가 “선택된 소수가 납부하는 '아름다운 되돌림!'이라며 “종합부동산세 납세의무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대한민국 1%의 고귀한 의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우리네 경제적 상류층은 너무 겸손하셔서 그런 고귀한 의무보다는 서민의 자세로 내려오길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계급 구성원들이 자신의 객관적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를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라고 설파한 바가 있다. 이 때의 허위의식은 피지배계급이 계급의식이 결여된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우리 사회는 경제적 상층에 자리잡은 분들이 계급의식에 너무 철저해서 문제다. 참여정부가 계급의식을 조장해 편을 가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누가 계급의식에 더 열심인지를 곰곰이 따져봤으면 좋겠다. 설마 계급의식에도 귀천이 있단 말인가.


정몽주가 선죽교로 향하는 밤 마지막을 함께 지키던 녹사(말을 모는 사람) 김경조가 자기와 더불어 봉변을 당할까봐 혼자 가겠다며 녹사와 동행하지 않으려 한다. 녹사는 이를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정몽주 곁을 지키다 죽음을 당하는 이야기를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게 보수층 혹은 상류층의 참모습이 아닐까 싶다. 지켜야할 것을 지키되 자기가 먼저 헌신하는 분들이 밤잠을 그만 설치고 두발 뻗고 주무셨으면 좋겠다. 에드먼드 버크는 “사랑과 현명함이 인간에게 함께 주어지지 않듯이 세금과 기쁨도 마찬가지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때로는 납세할 수 있다는 것도 기쁨이다. 나도 종부세를 내기 위해 밤잠을 설쳐 공부해봐야겠다. 그런 다음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 들고 단잠을 자야겠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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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27
27일부터 종합부동산세 징수 절차 시작된다. 과세기준이 대폭 강화된 종부세 통지문이 부과 대상자들에게 일제히 발송된다. 지난해보다 대상자가 5배 늘어나고 세금 액수도 3배 가까이 불어났으며 앞으로 더 오를 전망이다(올해에는 공시가격의 70%인 과세표준이 내년 80%, 2008년 90%, 2009년에는 100%로 높아진다). 세금 올리는 거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 조세저항은 인지상정이다. 이미 고가 아파트 일대 주민들이 법개정 청원을 제기하고, 위헌소송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강남권에 아파트 한 채를 장기보유하고 있는 직장인과 수입이 없는 은퇴생활자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더군다나 주택 1채만을 가진 분들에게 과도한 세금 부담이라는 볼멘소리도 충분히 수긍 가능하다. 미실현 소득인 부동산에 대한 과세가 과도하다는 항변은 무시하기 힘든 논리다.

그러나 세금이 예측 가능한 수준을 넘어 오른 것보다 집값이 더 예측을 뛰어 넘어 올랐다. 종부세 강화 첫 해인 올해의 경우 급등한 실제 자산 가치에 비해 부담액이 엄청나 보이지는 않는다. 국세청 분석에 따르면 올해 보유 주택 때문에 종부세를 물게 된 개인 납세자는 23만7천명으로 전국 세대(1천777만 세대)의 1.3%에 불과하며 주택을 갖고 있는 세대(971만명)의 2.4%에 그친다고 한다. 종부세가 부담스러운 분들은 종부세를 잘 낼 테니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있어봤으면 좋겠다는 많은 이들의 한탄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불만이 단지 가진 자들을 시기하는 경제발전의 적이라고 본다면 너무 가혹하다. 최근 불어난 불로소득의 규모를 생각하면 세금이 과중하다는 호소에 눈을 흘기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어느 부동산정보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아파트 103만 416가구 중 시세가 6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28만 3,368가구로 27.50%에 달한다고 한다. 서초구와 강남구가 각각 86.59%, 86.54%에 달했지만 강북구와 금천구, 은평구는 6억원 초과 아파트가 아예 없었고, 내가 사는 중랑구는 고작 0.64%다. 종부세 대상은 시세가 아닌 공시지가로 하는 만큼 시세가 6억원이 넘는다고 곧바로 종부세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앞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시가의 80%로 잡으면 현재 시가가 9억원이 넘어선 아파트들은 내년에 새로 종부세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이 땅에는 세금이 너무 높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세금을 낼 처지가 못 돼 힘겹게 살고 있다. 비록 사회적 대타협까지는 이뤄내지 못했지만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판단되는 만큼 강화된 종부세가 시행되기도 전에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얼마 남지 않은 참여정부 책임 하에서는 정책 일관성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부동산 세제 현실화와 조세형평성 제고를 잘 실천해나가길 바란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나는 내가 이 다음에 돈을 벌면 종부세를 내보고 싶다.^^; 자선을 베푸는 부자보다 법을 지키는 부자가 더 위대하다. 부는 시혜적 평등이 아니라 합법적 분배의 대상일 뿐이다. 그것이 청부(淸富)다.


061128
27일 청와대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 103일 만에 지명을 철회했다. 헌정 사상 첫 여성 헌법재판소장의 탄생은 조금 미뤄지게 됐다. 전 헌재소장 후보자님은 보도자료를 통해 “후보자의 자질에 관한 평가나 관련 헌법 및 법률 규정에 관한 견해는 국회의원 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국회는 표결절차를 통해 다수결의 법리에 의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드 인사는 안 된다며 막무가내식으로 국회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절제의 미덕(?)을 선보인 한나라당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이번 지명 철회를 가지고 “사석(捨石) 치운 것 갖고 여권은 너무 생색내지 말라”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이 정당에 건네지는 국민들의 과도한 기대가 무참하다. 아무리 선출된 권력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을 이렇게 욕보이고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하기야 돌 눈에는 돌만 보일 테니.

“다른 국회의원들은 물리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수수방관하면서 동의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고 정쟁만을 계속하고 있는 바, 문제가 어렵다고 풀지 않고 출제철회를 바라며 임명동의안 처리를 장기간 미루어 두는 것 역시 국회가 헌법과 헌법재판소를 경시하는 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전 후보자님의 말씀에 동감한다. 집권여당과 군소야당도 별다른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절차상의 하자가 적잖았지만 그를 보정하기 위한 노력도 제법 있었다. 전 후보자님이 흠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는 않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였던 거 같다. 처리 절차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이렇게 무산되는 건 너무 지나치다.

듣자니 한나라당 윤리위원회가 피감기관에서 골프를 쳐 물의를 빚은 김학송, 송영선, 공성진 의원 등과 광주 해방구 발언을 한 김용갑 의원에 대한 징계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한다. “죄 없는 자여.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떠오른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그들은 이제 또 어떤 사냥감을 향해 마녀라고 소리칠까.


061129
올해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면접관이 응시생을 상대로 사실상 사상검증을 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처음 실시된 제도인 ‘심층면접’은 3차 면접에서 국가관 등 윤리의식에서 ‘부적격 의심자’로 판명 받은 이들을 상대로 따로 면접을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면접위원 재량을 존중하는 만큼 주적(主敵)이나 북핵 문제 등을 물을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부적격 의심자로 판명된 사례나 수험생들의 증언에 비추어 볼 때 면접시험을 통해 면접위원의 견해와 다른 발언을 하기 힘든 분위기였다고 한다. 면접위원들이 특정 답변을 요구하는 듯한 모양새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많은 국민들이 그나마 사법부라도 불편부당한 판결을 내려 국민의 권리 구제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판결을 숱하게 보았지만 그래도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사회의 공정성을 지켜내는 보루로서의 권위는 막강하다. 사법부의 편식(?) 의혹은 그래서 더 우려스럽다. 그래도 심층면접 탈락자 등 8명은 내년에 3차 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한 차례 더 주어진다니 다행이다. 내가 날림으로 준비하는 행정고시의 경우 면접에서 탈락하면 다시 기회를 주지 않으니 더 잔혹하다. 면접 강화 자체는 환영할 일이지만 이런 식의 면접이라면 솔직히 답변하기가 참 망설여질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사시 면접대상자라고 사고실험을 했을 때,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에 대해 물어왔다고 하자. 나는 내 소신대로 폐지를 스스럼없이 주장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내가 그토록 애호하는 ‘사상의 자유시장’에 대한 신념을 떳떳하게 밝힐 자신이 없다. 법이 한 개인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권능이 있는지 여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상상만 해도 자존감이 마구 헝클어진다. 이런 나를 한심하게 여겨도 좋다. 하지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란 인간의 구차한 한계도 아프지만 밝히는 게 예의다.

어쩌면 이번 사시 면접 파동은 우리 사회가 겪을 변화의 한 단초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압도적 보수 우경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암묵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앞으로 입 좀 다물고 살아야겠다. 내 생각을 말하기가 두렵다.


061130
가수 양희은님이 데뷔 35주년을 기념해 신보를 발매했다. 양희은님은 71년 데뷔곡 아침이슬을 회고하며 “노래는 ‘서정’이지 ‘참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 노래를 만든 사람도 이 노래를 부른 나도 아침이슬이 데모 주제가로 사용될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노래는 가수의 것도, 저작권을 받는 사람의 것도 아닌 되불러 주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양희은님의 말씀이 고맙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존재’의 방식이란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속박당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소유를 갈망하지 않고 해석의 자유를 인정하는 양희은님의 자세가 멋지다. 신곡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도 참 좋다.


061201
중국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탁오(卓吾) 이지(李贄)는 성교소인(聖敎小引)이라는 글에서 “쉰 살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지나지 않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이다. 왜 짖느냐고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라고 말한다. 제 그림자를 보고 놀라 짖는 것조차 따라 짖는 개였음을 고백하는 마음은 얼마나 따가웠을까. 나도 개처럼 살아온 지난날을 반성하고 각성한 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삶이 더 실패하기 전에 자기수정을 해보자는 의미로 반성문을 써봤다. <노예의 삶을 반성합니다>라는 글에서 나는 스스로 “역사의 패자”라고 칭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역사의 패자로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김규항 선생님의 ‘우리의 도량이 저들의 도량보다 적다면 세상을 바꾸려는 우리의 꿈은 이루기 어렵다’라는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나의 반성이 더 크고 깊기를 바란다. 니체는 석양에 빛나는 호수를 보고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듯이 나는 썩지 않기 위해 좀 더 아파해야겠다.


061202
문화재위원회가 세 차례 불허 결정을 내렸던 서울시청사 신축이 조만간 통과될 모양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님께서 “신청사는 어차피 짓도록 결정된 것이고,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하신 만큼 디자인만 조금 수정하면 통과될 예정이라지만 과연 지금의 고압적이고 우악스러운 모습을 얼마나 탈피할지는 미지수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재건축을 불허하는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는 지적을 수용하더라도 황룡사 구층목탑보다 더 큰 건물이 시청 자리에 들어서는 건 그리 달가운 소리는 아니다. 문득 자금성 앞에 펼쳐진 널따란 광장이 부럽다. 우리는 어떤 아름다움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까?


061203
성삼제 교육인적자원부 지방교육재정담당관님을 본받고 싶다. 성 담당광님은 2001년 일본 후쇼샤 역사교과서 사태 이후 교육부의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 실무반장을 역임하시며 일연 스님의 저서를 통해 고조선 역사를 접했다. 작년에 펴낸 『고조선 사라진 역사』라는 책은 정부 업무를 맡으며 꼼꼼히 기록해둔 정성의 산물이다. 특히 7장의 <일본은 '삼국유사'를 변조했나>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성 담당관님은 일제의 조선 강점 이전인 1904년 발행한 동경제국대학학장판(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서 석유환인(昔有桓因)이 아닌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는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다. 이를 통해 환인(桓因)이라는 불교식 용어를 써서 단군신화가 창작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고 있는 일연 스님의 누명을 벗기는데 일조한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는 석유환국(昔有桓國)과 “옛날에 환인이 있었다”는 석유환인(昔有桓因)은 글자 하나 차이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고조선 이전의 환국이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환인이라는 신화속 인물만 남게 되는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낳는다.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은 밝혀서 널리 알려야겠다는 성 담당관님의 노력이 참 고맙다. 당장의 태스크포스팀 업무에 그치지 않고 우리 역사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말쑥한 책을 펴낸 성삼제 담당관님을 존경한다. 땅 투기에 혈안이 된 공무원도 많지만 이런 공무원도 있기에 우리가 또 부질없이 기대를 품어보는 건 아닐까. 그런데 꽤 오래 전부터 국회에 설치했다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무슨 일을 해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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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건을 기억하라!

문화 2006. 12. 3. 22:09 |

드라마 <대조영>에서 빛나는 열연을 보였던 연개소문이 타계했다. 나는 연개소문에 대한 신채호 선생님의 긍정적 평가에 상당 부분 수긍하면서도 연개소문 정권의 한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귀족연립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제도개혁이 아니라 사적 권력기반을 강화하는데 치중했다. 시스템의 개편에 집중하지 않고 1인 개혁에만 몰두함으로써 자신의 사후에 불거질 혼란에 대한 면밀한 준비가 없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연개소문이 임종을 앞두고 아들들에게 “너희 형제들은 물고기와 물(魚水)처럼 화합해 벼슬자리를 다투지 말라”고도 유언했다고 하지만 실효성 있는 방책은 마련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665년 연개소문 사후에 벌어진 그의 자식들 간의 골육상잔은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지한 리더십이 얼마나 허약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결국 연개소문이 죽은 지 3년 만에 고구려는 멸망했다. 연개소문은 자신이 그토록 지켜내려 애썼던 고구려의 존속을 위해 자신의 자식들에 대한 단속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도 부정(父情)은 버릴 수 없었나 보다. 그렇다고 고구려 멸망의 책임을 연개소문과 그 모자란 아들들에게만 전가하는 것도 너무 과하다. 큰집이 무너지는 것을 나무 기둥 하나로 떠받치지 못하듯 이미 기울어지는 대세를 혼자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인 ‘일목난지(一木難支)’가 떠오른다. 최고 권력자들의 다툼이 아무리 심했던들 3년여만에 나라가 망한 것은 잇따른 전쟁으로 말미암은 고구려의 내상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당나라 수도였던 낙양 교외 북망산 일대에서 발견된 천남생묘지명 등을 살펴보면 연남생 이하 4대가 당나라에서 누린 부귀영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남생은 동생들과의 권력쟁탈전에서 패하자 당군의 앞잡이가 되는 반역을 저질렀다. 묘지명에는 마지막까지 항전한 남건은 본래 처형될 계획이었으나 남생이 간청해 유배형에 그쳤다고 쓰여 있다. 조국을 배신한 남생의 마지막 형제애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그 역겨움이 쉽사리 가시지는 않는다. 남생은 물론 항복한 보장왕과 항복 의사를 전한 연개소문의 셋째 아들 연남산, 성문을 열어 당군을 맞이했던 승려 신성은 모두 당나라의 벼슬을 했지만 오직 남건만이 검주로 유배를 떠났다. 그나마 유일하게 고구려 패망의 책임을 진 인물이 남건이다.


비록 연남건이 권력다툼으로 침략의 빌미를 제공하고, 당나라의 싸움에서 번번이 패전했다고는 하지만 그가 있어 고구려의 최후가 부끄럽지 않았다. 그가 계백장군 같은 무공을 선보인 것도 아니며, 검모잠처럼 고구려 부흥운동에 뛰어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망국의 충절로 따지자면 마의태자 정도의 대우는 받음직하다. 그는 적어도 좌초될 위험에 빠진 배를 버리지 않고 지킬 줄 알았던 선장이었다. 그의 고집이 무고한 고구려 백성들의 피를 더 흘리게 했을 지는 모르겠으나 뒷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참 고맙다. “질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할 때가 있다”는 바이런의 말을 되뇌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고구려사를 그리워할 때 연남건의 이름도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는 역사를 핑계로 패배의 유미주의(唯美主義)를 찬양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패배가 임박한 순간에 제 자리를 늦게까지 지키는 사람에게 애틋한 감정이 생기는 건 막을 길이 없다. 어려울 때일수록 우직하게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좀 더 늘기를 바란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차마 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의 신뢰성도 그만큼 고양될 것이다. “아무리 패배의 상처가 쓰라리더라도 패배 역시 승리만큼이나 인간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영광을 가져오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no matter how hard the loss, defeat might serve as well as victory to shape the soul and let the glory out)”라고 말하는 미국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2000년 대선 패배 연설문 한 대목을 꺼내본다. 아름다운 패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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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日記(06.11.20~06.11.26)

일기 2006. 11. 27. 02:20 |
061120
얼마 전 익구닷컴 이벤트로 “익구가 궁금하다-50문 50답”을 쓰면서 당분간 이런 식의 긴 글은 당분간 쓰지 않기로 내 자신과 금석맹약했다. 그런데 열린마음님이 당신의 미니홈피에다 1000문 1000답 올려놓으신 걸 보니 또 유혹이 손짓한다.^^; 자신에게 던지는 1000가지 물음이라니 질문마다 한 줄씩 띄어쓰고, 한 문제에 한 줄씩 단답형으로 답해도 A4 50장이 넘는 대작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분명 길게 잡설을 늘어놓을 테니 100장을 넘기는 것도 순식간이다. 나는 글도 잘 못 쓰면서 글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옹고집에다가 생산성까지 낮아서 변변치 않은 글 쓰는데도 한참을 붙잡고 있다. 해야할 공부는 많은데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을 너무 늘어놓는 거 같아 늘 후회스럽지만 일단 일기는 꾸준히 써보고 싶다.

오늘이 100번째 일기다.^^


061121
2학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졸업예정자”의 경우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경우만 투표율에 반영하는 것으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을 개정한 것을 놓고 학생들의 반발이 심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50% 투표율에 대한 현실적인 재조정을 위해 도입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졸업예정자가 취업 준비에 바쁘다고 해도 그것이 총학 선거에 배제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보다 많은 학우들의 투표 참여를 위해 편법 연장투표를 해왔던 그간의 관행에 대한 반성도 없이 일방적인 투표권 제한은 너무 무책임한 처사다.

중선관위측은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만 투표율에 반영하는 대학들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하는데 문제의 화근(?)인 50% 투표율 규정이 없는 대학들의 사례는 애써 외면한 거 같아 아쉽다. 졸업예정자를 투표율 산정에서 제외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졸업예정자 가운데 투표에 참여한 이들은 과대 대표되어 1인 1표 원칙을 거스르게 된다는 데 있다. 잠깐 계산을 해보면 투표에 참여한 졸업예정자의 한 표는 비졸업예정자(?)의 표에 비해 투표율을 더 높이는 효과를 가져다 줌을 알 수 있다. 50%라는 형식적 대표성을 확보하겠다며 졸업을 앞둔 선배님을 투표율 높이는데 이용하는 태도는 그리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할 게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나는 학생회 살림을 꾸리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진지한 사색과 깨끗한 실천을 품는 이들이라고 믿고 흠모해왔다. 여전히 지적이며 유능한 이 분들의 황당한 행태가 민망하다. 어빙 제니스가 설파한 ‘집단사고(group think)’가 떠오른다.


061122
열린우리당이 결국 기간당원제를 폐지했다. 이로써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이라는 원대한 꿈이 막을 내렸다. 종이당원, 당비대납 등의 문제를 야기했던 기간당원제도의 문제를 보완하겠다면서 기초당원제로 바꾸고 기초당원의 자격요건을 완화했다. 전체 당원의 15% 범위내에서 당원협의회가 특별히 공로를 인정한 자에게 기초당원 자격을 주도록 만들었다. 기간당원들 덕분에 명줄을 유지하던 정당이 당의 기간(基幹)을 스스로 허물었다. 주인이 사라진 정당에 대리인들만 설치는 모습이 안쓰럽다. 어쩌면 이렇게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을까?

우리당에 정작 필요한 것은 “기초당원”이 아닌 당원에 대한 “기초적 예의”다. 나의 대리인들에게 견결한 지조와 거창한 대의명분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선장은 배가 난파되었을 때 자신의 배를 떠나는 최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람시의 말씀은 그야말로 우이독경이다. 정계개편에 골몰하는 이들에게 사즉생(死卽生)을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생즉사(生卽死)라는 험담은 좀 건네고 싶다. 자식의 종아리를 치는 부모의 마음에는 그보다 몇 배 굵은 몽둥이가 내려쳐 진다. 나는 그 몽둥이를 마다할 길이 없겠구나. ‘동원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로 살려고 한 내가 감내해야할 짐이다.

故 열린우리당의 명복을 빈다. 지는 꽃잎처럼 희망은 그렇게 가는구나.


061123
어제는 웹진 신입생환영회가 있었다. 역시 참이슬 과다 복용은 처음처럼에 비해 숙취가 심하다. 내 개인적인 편애가 입맛에 이어 숙취 강도도 변해버린 거 같다. 나는 앞으로도 처음처럼 시장점유율 상승에 좀 더 주력해야겠다.

문화재청 설문조사에 응하고 받은 창덕궁 자유관람권을 쓰기 위해 모처럼 하루 휴가를 내고 현식이와 함께 종로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우리는 참 많이 먹고 참 많이 걸었다. 새 단장한 조계사는 예전의 옹색함을 많이 극복한 거 같다. 역시 일주문을 새로 지은 게 이제야 좀 절터 같은 느낌이다. 조계사 불교용품점에서 새로 장만한 휴대전화가 걸 은으로 된 금강저는 중앙에 손잡이가 있고 양쪽에 창 모양으로 장신된 불교의식구다. 저(杵)는 본래 인도의 무기의 하나인데, 금강저는 밀교에서 인간 번뇌를 부숴 버리는 보리심(菩提心)의 상징이라고 한다. 여하간 까만 휴대전화기에 하얗게 매달린 금강저가 참 어울린다. 잘 샀다.

해장국이 아닌 해장궁(?)이라니 이런 호사가 있을까. 창덕궁을 안내원의 지도 아래 짜여진 동선과 시간제한 없이 제 멋대로 둘러보니 가슴이 터질 거 같았다. 더군다나 단풍도 절정이고 낙엽도 밟는 재미도 쏠쏠했다. 자유관람의 경우 어른은 15,000원이라서 좀 부담이 되지만 문화재청 1년 예산이 3,600억원 정도밖에 안 되는 만큼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공짜표 말고 직접 표를 사서 가봐야겠다. 자주 드나들면서도 변변치 못한 사진만 찍으니 사진을 좀 찍을 줄 아는 분을 섭외하면 더 좋을 거 같다.

2004년 10월 1일 종묘, 창덕궁 답사부터 시작된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청자, 불화, 불상, 석탑 같은 고미술 전반으로 확장되더니 이제 문화산업이나 문화정책까지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게 요즘은 아예 국가정책, 행정체계 전반까지로 확대되버렸다. 그래서 종묘와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이기 이전에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앞으로 문화유산 답사를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러다가 덜컥 문화재청에 취직하겠다고 그럴까봐 걱정이다.^^; 이번 답사에서는 청심정(淸心亭)을 처음 찾아갔는데 정자는 매우 조그맣고 특징이 없지만 청심정 앞에 돌로 만든 조그만 연못인 빙옥지(氷玉池)와 청심정을 향해 앉아있는 귀여운 거북이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돌조각은 무섭게 만든다고 해도 어찌나 살기가 안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건축물 사진 찍기를 즐기는 나와 단풍 등의 풍경을 찍기를 즐기는 현식이가 하나의 사진기를 놓고 티격태격했지만 무척 뿌듯한 하루였다. 부디 나와 답사를 처음 나서본 현식이가 만족했으면 좋겠다. 내 탈진 답사모드는 아무에게나 권하지 않는 호의의 상징이니까.^^


061124
탄핵 악연으로 유명한 천정배 열린우리당 전 원내대표와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가 사돈을 맺는다는 걸 저는 좀 탐탁지 않게 여겼다. 너그러운 척 해가며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추켜세우지는 못하겠다. 한국 지배계급의 근친성이나 동종교배 같은 부정적 뜻빛깔의 단어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 계급의식에 철저한 사회 상층부와 달리 왜 보통사람들은 작은 걸로 갈라지고 싸워야 하는 건지 좀 서글펐다. 최병렬님과 천정배님의 자제분들이 사랑을 나누게 된 것도 사실 그 활동영역이 겹치기 때문일 테니 말이다. 우리 사회 유리 천장(Glass ceiling)의 한 단면을 보는 거 같다. 김규항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정말 계급적이라서 지배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다고 이 결혼이 잘못된 거라고 주장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자제분들의 백년가약은 가슴 깊이 축하할 일이다. 다만 천정배님의 경우 스스로 주도해서 만들었던 집권여당의 상황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배반의 장미를 흩뿌리며 언론 노출 횟수나 늘리고 있는 게 좀 얄밉긴 하다. 목표가 낳은 3대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분의 처신치고는 그리 가지런하지 못한 거 같다는 개인적인 소견이다. 이 와중에 개인적인 경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스스로 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 가지고 시비나 걸고 나 참 못됐다.^^; 하지만 천정배님의 원칙과 소신을 신뢰했던 내가 요즘 느끼고 있는 배신감은 감출 수도 없고, 감춰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후보까지 꿈꾸는 사람이 그만한 양식과 절제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결격 사유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에 내가 내세우는 사회 지도층의 “개인 윤리의 각성”이 과연 유효적절한 해결책인가를 놓고 고등학교 선배님과 한바탕 논쟁을 벌였다. 나는 논리도 모자라면서 고집을 부렸다. 앞으로 좀 더 그래볼 생각이지만 말이다. “각성은 그 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달성”이라는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님의 말씀에 많이 동감한다. 나 또한 시스템적 측면도 많이 생각해봤다. 가령 부정부패의 리스크를 현저히 높여 그 편익을 거의 상쇄시키도록 만드는 기술적 측면도 많이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의식 개혁이 좀 더 효과적일 거 같다. 왜냐하면 사회 엘리트들은 법과 제도로만 통제하기에는 너무 영민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런 식의 “도덕적 설득”은 비용도 별로 들지 않기 때문에 가장 경제적이기도 하다. 이건 정책학 등에서 나오는 이야기인 만큼 제 독단의 생각은 아니다.

엊그제 나눴던 대화 말미에 유민이가 제안한 역지사지가 떠오른다. 만약 “오빠가 그런 자리에 있다면 지금 구박하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라는 가정형 질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나는 그 분들보다 훨씬 더 자신이 없다. 다만 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 나머지 네 손가락을 제 자신을 향하도록 해볼 생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내가 남기는 글들도 미래의 차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운 말보다는 시시한 실천으로 응수해봐야겠다. 믿을 사람 없다고 한탄하기 보다 내가 먼저 믿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봐야겠다.


061125
지난 9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설립 60주년 기념해 문과대 건물 뒤편에 조지훈 선생님의 시비가 세워졌다. 시비에 새겨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는 4.19 혁명 보름 뒤인 1960년 5월 3일자 고대신문에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라는 부제와 함께 실렸다고 한다. 서울 남산 산책로 초입에는 조지훈의 시비 앞에서 `파초우(芭蕉雨)’ 시비가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국시 가운데 하나인 ‘승무’ 시비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다. 아직까지 없다면 내가 만들어 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좀 찾아보니 2004년에 경기도 화성시 용주사에서 승무 시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조지훈 선생님의 『시의 원리』라는 책에서 “열아홉살 적 어느 가을날, 화성 용주사에서 승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와 어느 이름 모를 승려의 승무를 보고는 밤 늦도록 용주사 뒷 마당 감나무 아래에서 넋없이 서 있었다”며 “당시 승무의 불가사의한 선율을 20살 되던 다음해 여름에 비로소 시로 지을 수 있었다”고 승무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고인은 시인에 머무르지 않고 민속학과 역사학을 넘나들며 국학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선생님이 48세로 요절하신 게 안타깝다. 내가 스물 넷이니 딱 그 절반인데 겁부터 난다.

자유당 말기 극도로 부패한 정치현실 속에서 친일파들이 과거에 대한 뉘우침 없이 정치일선에서 득세하고 사회 지도층들이 변절을 일삼는 세태를 통렬히 꾸짖는 <지조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난다. 이 새벽에 지조론을 톺아보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글 말미의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는 구절에 졸음이 확 달아난다. 요 근래 지조론을 권하고 싶은 나의 대리인들이 많다는 게 답답하다. 지조론은 아주 가끔씩만 꺼내 읽고 싶다. 너무 자주 읽으면 마음이 아리다.

정말 우리 사회에 배반의 장미는 도처에 만개해있다. “브루투스, 너마저...”가 아니라 “내 그럴 줄 알았다”, “너도 별 수 없구나”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박원순 변호사님은 어느 대학 강연회에서 오늘날 뭇매를 맞고 있는 386세대의 헌신을 재평가하며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만한 사람들이 되더라”고 말씀하셨다. 민주주의와 진보개혁을 장신구로 삼던 이들의 잇따른 변절은 인간에 대한 기대를 마구 헝클어뜨린다. 그러나 남 험담하기 전에 우선 내 자신에게 무시무시한 질문을 먼저 던져보자.

내 치부를 드러내는데 좀 더 민첩할 수 있을까. 내가 그리는 세상의 한계를 스스럼없이 밝힐 수 있을까. 자아도취에 빠져 구체적 실천 대신 추상적 놀음에 열중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 자임(自任)하는 바를 함부로 포기하지 않을 의지가 있는가.

그나저나 승무와 지조론이 한 사람에게서 나온 작품이라니 딱 그만큼은 세상이 불공평한 거 같다.^^;


061126
내가 흠모하는 광호형님의 생일이다. 형과 정식으로 인사 나눈 건 두 해가 조금 못 되지만 (아마도 내가 먼저였겠지만) 서로 친해지고픈 의지가 있었던 거 같다. 앞으로 더 그윽한 교류를 나눌 수 있는 후배가 되고 싶다. 만으로 25세가 된다며 슬퍼하시는 형께 황인숙 시인님 이야기를 해드렸다. 황인숙 선생님은 10대 때 스무 살 넘은 자신의 삶을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른, 마흔을 넘긴 요즘은 어차피 끔찍한 나이에 이르렀으니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이시란다(『인숙만필』 발문 참조). 나는 그렇게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한 살씩 먹어 가면 될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스물다섯이 넘도록 살게 운명지워진 그대들이여, 모두들 나만큼이라도 의지가지가 생기기를 빈다”는 황 선생님의 산문 한 구절이 떠오른다. 스물 다섯이 넘도록 살면 계속 살라는 뜻인가?^^;

생일을 축하드리려는데 이 표현이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들어 좀 찾아봤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표준 화법에서는 ‘축하드리다’를 어색한 조어로 보고 있다고 한다. ‘축하’라는 말이 자신이 고맙게 느끼고 축하하는 일이라서 ‘드리다’라는 말과 어울려 쓸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축하합니다’와 ‘축하드립니다’가 공대(恭待, 상대에게 높임말을 함)에서 차이를 두고 쓰이는 것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언중들이 널리 쓰고 있어 이 표현을 잘못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부담 없이 써야겠다. 여하간 글은 말을 다 표현할 수 없고, 말은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書不盡言 言不盡意)고도 하지만 형께 참 고맙다. 못 다 표현한 감사는 내 소소한 실천으로 갚아야겠다.
Posted by 익구
:

나의 공책(http://www.mycahier.com)에 groove님이 프랑스 사회당의 새로운 기수가 된 세골렌 루아얄 이야기로 시작해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글을 재미나게 읽었다. 이 글을 놓고 mannerist님과 groove님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란 존재의 “문화적 효과와 심리적 위안”을 놓고 의견이 많이 갈렸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내 신조(?)에 충실해서 두 분의 댓글 가운데 새우범생이라는 아이디로 내 잡설도 살짝 달아봤다.


저는 기왕이면 여성에게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계속 따라 다닐 것 같습니다. 여성 권력자들이 특별히 부귀영화를 마다할 리는 없겠지만 기대를 가져볼 만 하다는 건 또렷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기대는 아직 권력의 단맛(?)을 많이 못 본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담백함 같은 것이겠지만요. 여성이 남성에 비해 특별히 더 유능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된 희망을 퍼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성을 높이는 건 잘못된 희망이 아니라 마땅히 실현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싶어요. 물론 그 수단이 좀 과격해서 당혹스럽기는 하지만요.^^; “심리적 위안과 문화적 효과”보다 더 논의의 진전 혹은 의견의 일치를 보기 힘든 대목이 바로 남성 후보보다 부적합하고 무능한 여성 후보 골라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박근혜님은 그나마 공적 행위가 많이 드러났지만 대다수 예비 여성 지도자들은 정보도 많이 부족하고요. 부족한 게 아니라 잘 알려고 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겠지만요.


개인적 차원의 내적 감정을 정치적 주장으로 논의하는 것의 해악을 지적하신 mannerist님의 말씀은 절반만 동감합니다. 문득 견우미견양(見牛未見羊)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제물로 끌려가는 소가 가엾게 여겨져서 보지 못한 양을 제물로 쓰게 되었다는 희생양의 고사가 여기에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구체적 생활의 문제를 건드리는 생활정치(Micro-politics)는 결국 개인적 경험과 식견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사익의 단순합이 공익이라는 공익과정설(공익 = ∑사익)을 비교적 지지하는 터라 개인적 차원의 이해와 발언이 그리 구박될 사안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물론 지식인, 공직자 등에게는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다른 영역에서 쌓은 명성을 이용하려는 점은 비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 또한 거시적 통찰 혹은 일반균형분석을 해내는 안목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이를 기르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각종 통계를 보면 선거 때 기왕이면 여성을 뽑겠다는 사람들이 적잖음에도 늘 과소 대표되는 게 이상했습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대놓고 공언하지는 못해도 여자라서 찍는다라는 사람보다 여자라서 안 찍는다는 사람이 더 많은 탓인 거 같아요. “박근혜는 여자라서 안 될 거다”라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접한 제 개인적인 경험이 크게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저는 성별 구분 없이 능력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편애 혹은 혐오의 수준이 여성과 남성이 차이가 나는 거 같더라고요. 이런 지극히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저는 차마 양비론을 꺼내들지는 못하겠습니다. “소수파를 소수파로 묶어두는 것 자체가 자유주의 윤리에 어긋”난다는 고종석 선생님의 말씀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해야할지 정말 어렵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비례대표나 공천의 여성 할당제보다는 여성후보에게 득표수의 일정 %를 가산해주는 우대조항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런데 이걸 채택한 나라가 있기는 한가요?). 아마 위헌 논란도 있고 역차별 문제도 있겠지요. 정당 경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게 만병통치약이 아님은 자명하고요. 하지만 아무리 제도적 보완을 해도 미미한 효과에 그친다면 한시적이나마 좀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물론 생물학적 여성만이 선출직 공직자에서도 특혜(?)를 받아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남습니다. 그나마 생물학적 여성은 양적 다수파(적어도 절반)라도 되지만 양적 소수파인 약자들이 참 많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의 절반이 누리는 삶의 질이 제법 향상된다면 그 동력을 발판으로 사회적 약자와 문화적 소수파에게 건네는 눈길도 좀 더 넉넉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여성에 대해 가해지는 편견과 질시조차 극복하지 못하면서 그보다 더 낮은 사람들을 어떻게 보듬을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계급문제에 둔감한 여성주의 운동”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반쪽짜리 시각이고, 부분균형분석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수긍하지만요. 견우미견양(見牛未見羊)으로 다시 돌아가면 이라크 민간인들의 원통한 죽음에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이 김선일씨의 죽음에는 격렬한 슬픔을 보이는 게 나쁜 일일 거 같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그게 어디냐” 싶습니다. 인간 이성과 감정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는 노력과 그 한계를 좀 줄이려는 노력을 동시에 진행해야겠지요.


매우 재미나고 배울 점이 많은 댓글들의 빛남을 흐리는 잡글을 썼습니다. 해량해 주십시오.


mannerist님께서 내가 쓴 댓글과 관련한 코멘트를 해주셨다.


난 대체 그 '문화적 효과'라는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묻고 싶다. '우리도 저기까지 갈 수 있다'는 희망? 김규항의 말마따나 지독한 정치적 남성인 정치인이 펴나갈 정책 아래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난 되려 이게 더 나쁘다고 본다.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어 쓴다)무제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그로 인한 반 여성화 정책을 핀다 해도, 여성이 최고 의사결정자 자리에 있다면 '남녀차별? 여자도 저렇게 될 수 있는데 무슨!'라고 허울뿐인 억압기제가 되기 딱 좋다는 얘기다. 그런 이유로, 네가 말한 해악이 좋은 점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이야기다.


핵심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시 한 번 하자면, '자질 없는 정치인도 여자니까 지지해주자'라는 위험천만한 주장을 나포하는 데 대해서는 난 계속해서 씹을 거다. 그정도 위치에 있는 - 시네 21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지금은 영상문화진흥원 원장자리까지 앉은 - 조선희가 할 일은 자질없는 정치적 남성인 여성 정치인을 지지해야 한다고 '우리도 여성 최고 의사 결정자 하나 가져보자'고 한풀이성 외침을 공적인 자리에 끄적일 게 아니라, 정치적 여성성을 가진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박근혜를 비롯한 정치적 남성인 여성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영상문화진흥원의 비정규직을 포함안 여성 노동자의 처우를 그녀의 권한 내에서 증대시키는 거라 본다.


그리고 새우범생, 내가 '잘못된 희망'이라 언급한 것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데, 실제 정치적 남성인 자질 미달인 여성 정치인이 최고 의사결정자가 된다는,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만으로 여성의 권익이 더 나아질거라는 생각이 위와 같은 이유로 착각이라는 이야기라는걸 하고 있다. 글로 써진 주장이 진지하게 펼쳐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본다면, 박근혜에 대한 지지, 함부로 말할 것 못된다고 본다.


아주 극단적으로 말해서,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박근혜를 지지하는게 이해가 된다면, 똑같은 이유로 송영선과 전여옥을 지지하는 것 역시 의미있는 일이라는걸 생각해보기 바란다. 한국인에게 필요한 건, 여성 정치인에 대한 지지 증가가 아니라, 여성지향적인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와, 거짓된 근거에 기반한 지지에 대한 강한 반론이라고 본다.


나는 소극적으로 해명을 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지지하는 사람은 매우 적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박근혜님의 경우에는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적잖기 때문에 전략적 지지 같은 논의가 좀 되는 모양이지만요. 저는 여성이란 이유로 지지하는 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지하지 않는 것보다 개미 눈물만큼은 우월하다고 봅니다. 저는 우월하다는 위험한 표현을 썼습니다. 똑같은 한 표인데 우열을 나누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현저히 거스르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여성 후보는 절대로 찍지 않는 분의 한 표도 제 한 표 만큼이나 가치롭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어쩌면 이 발언을 한 걸 많이 후회할 거 같네요).


여하간 이처럼 제한된 유의미성인 만큼 어느 정도 용인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마 사회적 타협을 이루기는 어렵겠지만 여성에게 유리하게 약간 기울어진 경기장이 필요하고, 그것이 기회의 평등에, 실질적 민주주의에 좀 더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남성인 여성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말씀하신 대목은 많이 동감합니다.

Posted by 익구
:

好學日記(06.11.13~06.11.19)

일기 2006. 11. 20. 00:30 |
061113
집 앞에서 오래간만에 성희와 미현이를 만났다. 작년까지는 동네 모임도 종종 가지고 했었는데 몇몇 친구가 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그간 통 못 보던 친구들이었다. 셋이서 수다를 떨다 보니 미현이는 인문계생들의 알 수 없는 이야기라며 손사래를 쳤고, 나와 성희는 견해차를 적잖이 드러나며 재미난 언쟁을 벌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 요즘 지론인 요식업계 소비(더 정확히는 주세 납부)를 통한 내수경기 진작에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내 케인즈학파적 시각에 성희는 그렇게 총수요에 천착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응수했다. 그렇다고 성희가 통화주의자 같지는 않고 그 대신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적 가치관 자체를 문제삼는 것으로 보였다.

잠깐 사이에 오만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성희는 농담 삼아(진담일지도) 내가 국가주의에 민족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타박했다. 아무래도 국부 증진을 주창한 게 그렇게 비춰진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에 내가 신봉하는 서구식 자유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유가 공동체주의 등을 좀 끌어다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긴 했다. 천민 자본주의의 횡행과 시장만능주의의 쾌속질주에 적당한 제동을 거는데 유교적 방식이 유용하게 쓰일 거 같다. 그토록 극복하고 싶었던 유교적 관습과의 화쟁(和諍)을 통해 장점을 가려 쓰는 데 인색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나는 내가 민족주의자라는 소리에 일면 수긍했다. 내 민족주의는 북한을 아우르지 않으니 좀 더 자세히는 대한민국주의자쯤 되려나. 아무리 못난 나라라고 해도 제 나라가 잘 되길 바라고, 내 나라에 보탬이 되고픈 마음을 품는 거 자체는 그리 나무랄 일이 아닐 것이다. 뭐 그 정도가 지나쳐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부조리와 모순 해결에 머뭇거릴 수도 있겠다만. 나는 궁극적 소수로서의 개인이라는 명제에 거개 동감하면서도 세계시민주의에는 고개를 젓는다. 인류의 감수성이 거기까지 다다르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거 같다. 특히 우리의 경우 지역감정도 해결하지 못해 허덕이는 판에 더 일러 무엇하겠는가. 우리에게는 건전한 민족주의가 좀 더 많이 필요하다. 민족주의 자체가 악이라고 한다면 세상 모든 주의주장은 거의 다 악일 게다.

잠깐 대화였지만 성희에게 많이 배워야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대학생활 내내 사회과학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가 나의 수박 겉핥기식 잡설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언제 만나 서로의 썰(?)들을 풀어 보면 무척 재미날 거 같다. 친구의 내공 앞에 괄목상대를 하는 건 가슴 뛰는 일이다.


061114
우군에게

아이 참 유한계급, 고학력 룸펜 이런 말들은 좀 아껴서 하는 게 어떻겠니. 일개 학생에 지나지 않는 우리가 그런 허울까지 뒤집어 써야할 거 같지는 않다. 그건 너무 지나친 자조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자기 경계로 삼는다고 해도 말이지. 솔직히 나는 유한계급이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기를 늘 꿈꾸지만 그게 내가 유한계급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될 거 같지는 않다. 그 욕망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걸 줄이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일 뿐 사회적 강제나 주변 눈치 때문에 그것이 교정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각설하고.

국가주의는 국가폭력이나 광신적 애국주의 등의 부정적 함의가 많이 남아 있으니 차치하고라도 과연 한반도에서 민족주의를 손쉽게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느냐의 문제의식은 좀 있어. 하긴 여하간 단일민족(물론 믿지 않지만)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경우 민족주의는 주로 남북관계 등에서 쓰이고, 국가주의는 국익 논쟁 같은데 쓰이는 거 같다만 둘을 엄격히 가르는 것도 실익이 적을 수는 있겠다.

여하간 내가 말한 민족주의는 거창한 것이라기보다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추진하는 우리 고전 번역 사업이라든가, 한국사를 읽고 공유한다든가 이런데 치중되어 있음을 밝힌다. 좀 더 정확하고 아름다운 모국어를 구사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도 내 민족주의적 근성(?)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기다가 대한민국의 의사결정이 분단체제 때문에 많이 제약된다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도 추가할 수 있겠지만 내게는 이 부분은 좀 부차적이라서 말이지. 민족주의의 집단주의적 속성을 나도 익히 알고 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개인의 삶이 온전히 제 자신의 것이라고 보기 힘든 거 같다. 자유주의밖에 몰랐던 내가 공동체주의 주장에도 귀 기울이는 징조라고 생각해주렴.^^;

너는 내가 국가적 해법에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했어. 무척 타당한 지적이야. 하지만 나는 현시점의 과제가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생각해. 가령 노사간의 대타협, 사회 복지 수준을 둘러싼 대타협, 연금 개혁을 위한 대타협 이런 것들 말이지. 그래서 갈등비용과 거래비용을 줄이고, 예측가능한 사회를 구축하는 게 선진 민주주의 수립 혹은 민주주의의 공고화라고 여기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념과 정책에 따른 정당정치를 흠모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지.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백가쟁명 백화제방도 좋지만 최소한의 합의를 일구어내는 게 요긴하다고 생각해. 개인적으로는 그 사회적 타협의 내용에 자유주의적 요소가 많이 포함되었으면 좋겠고 말이지. 치열하게 토론하되 깔끔하게 승복하는 문화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우리 사회의 압도적 보수 우경화의 물결 때문에 소수파의 견해가 거의 반영되지 않을 우려가 있지만 그 우려는 또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보고 말이지.

나 또한 우리 사회처럼 행복마저 “유니폼”이 되는 사회가 곤혹스럽다. 고정적이고 획일화된 아름다움을 극복하는 건 내가 고등학교 철부지 시절부터 세웠던 꿈이고 말이지.^^; 개개인이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며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 건지 참 어려운 문제다. 나는 ‘차이’가 폭압적 ‘차별’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할 뿐 그 밖에는 개입하지 않는 매우 소극적 입장인 거 같다만. 일찍이 고종석 선생님은 “변방을 넓혀 중앙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지. 네 말에서 그걸 읽었어. 어쩌면 “모두가 궁극적 소수 곧 개인인 세상”을 말하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어떤 주의주장의 신봉자 이전의 개인, 어떤 학연혈연지연 이전의 개인 이런 것들 말이지. 물론 그런 다채로운 정체성이 만개하는 세상이 좋다, 아니 옳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드리워진 집단의 표지를 손쉽게 벗겨내지는 못할 거 같다. 조금 과장 섞어 말하면 내가 민주노동당 지지자를 복선 없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듯이, 네가 경영학도의 언동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횡설수설의 제왕은 바로 내가 아니겠니.^^; 정제되지 않은 헛소리지만 일단 생각나는 대로 늘어놓아 봤어. 네 숱한 지적대로 나도 미끈한 말보다는 시시한 실천을 좀 더 모색해볼게. 아마 네게 좀 더 많은 구박과 자극을 받아야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대화가 차이점을 더 드러낼지 오히려 더 좁힐지는 모르겠지만 나 또한 “to be continued!”를 외칠 친구가 있어서 기쁘다.^-^


061115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님이 13일 성명을 통해 “한나라당이 ‘부자비호정당’이라는 소리를 듣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대책이 서민이 아닌 부자들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며 부동산 대책에 대한 적극적인 견해를 밝힌 것은 신선하다. 종합부동산세가 “과세대상이 전체 가구의 2%를 약간 넘는 정도이므로 지금 조정이 시급한 것이 아니다”고 말하고, “한나라당의 주택정책은 무주택자와 1가구 1주택자를 대변하는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외치는 게 이채롭다.

“보수당이란 게 원래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분배보다는 성장위주의 정책을 펴며 중산층 이상의 국민에 정책을 맞추는 당인데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고 싶다면 당을 바꾸거나 신당을 만드세요”는 어느 누리꾼의 지적도 통쾌하지만 손 전 지사님의 그런 발언은 일단 반길만한 일이다. 득표지향적인 catch-all party의 장점은 이렇게 균형감각을 발휘하려고 한다는 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기간 진보와 보수의 정당정치가 발전한 서구사회에서는 중앙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는 거 같다. 우리는 매우 작은 차이를 침소봉대하는 보수 양당이 티격태격하며 이념과 정책에 따른 고정 지지계층이 있다기보다는 지역주의에 좌지우지 되는 경향이 높다.

지난 7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우세지역에서 승리한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보수 성향 민주당원을 뜻하는 ‘네오뎀(neo-Dem)’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판에는 유사 네오뎀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특히 열린우리당에는 한나라당 성향 우리당원, 민주당 성향 우리당원이 넘쳐나는 것 같다. 네오뎀은 제 지지자들의 의견을 수렴할줄 안다는 미덕이 있지만 우리당 내 유사 네오뎀들은 제 안위에 더 관심이 많은 거 같다. 1968년 미국독립당을 창당했던 조지 월러스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는 1달러는커녕 25센트 정도의 차이도 없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 25센트 차이가 참 부럽다. 우리네 거대 양당은 10센트의 차이를 선거 때 2달러로 불리는 몹쓸 버릇만 가득하다.^^; 이념과 정책에 따른 정당정치를 구현한다는 것이 반드시 10센트의 차이가 50센트로 벌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은 차이도 내실 있게 경쟁한다면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061116
60여만 명이 결전을 치른 수능 날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99년 11월 17일 내가 쓴 일기를 보니 수험생 형, 누나들의 건투를 빌며 내가 올린 진언(?)에는 “학창시절의 그 마음, 꿈과 이상을 사회에서 헌신짝처럼 내던지지 말고 지켜나가고 소중히 하기를” 운운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때 멋 모르고 올렸던 그 말이 이제는 고스란히 내 차지가 되었다.^^; 여하간 한 무더기의 싱싱한 가능성들이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하려고 하고 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는 하지만 뒷사람에게 자꾸 따라 잡히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5년 전 사상 초유의 점수 대폭락 사태를 빚었던 충격의 2002 수능이 떠오른다. 이제 제법 시일이 흘러서 그 때를 별다른 통각 없이도 곱씹어 볼 수 있다. 또렷한 기억은 아니지만 나도 원점수가 30~40점 정도 떨어졌는데 깊은 내공(?)을 자랑하던 언어영역이 100점에서 0.2점 모자란 건 충격적인 사실이었다(당시에는 120점 만점). 100점도 되지 않는 점수로도 상위 3%로 1등급을 받을 수 있었으니 당시 시험 난이도가 얼마나 매서웠는지를 알 수 있다. 언어영역에서 원점수 기준 120점 만점을 받은 수험생이 한 명도 없었고 118점이 최고점이었다는 궁색한 변명을 해본다. 언어의 제왕(?) 소리를 종종 들었던 녀석으로서 110점 정도는 욕심을 냈어야 했는데 여러모로 아쉽다. 다시 보라고 하면 절대 그 점수 못 맞겠지만.^^; 모의고사 두 번 중에 한 번은 72점 만점을 받던 사회탐구 영역은 67점으로 무려 5점이나 감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위 1%가 나왔다.

여하간 나는 이미 수시모집으로 대학교를 조건부 합격한 상태여서 종합등급 2등급 이상만 획득하면 최종 합격이라 부담이 훨씬 덜했는데도 역시 수능은 수능이었다. 사실 나는 모의고사에서 특별히 우수한 편은 아니었다. 모든 걸 잘해야 하는 현행 수능체제에서 나는 수리영역과 과학탐구영역에서 이런저런 누수가 많았다. 내가 정작 좋아하는 국어와 사회 공부를 제쳐놓고 늘상 수학과 과학 공부에 매달렸던 건 서글픈 일이다. 우스운 건 난 아직도 매우 적게 공부한 국어와 사회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2002 대입부터 전격 확대된 수시모집 제도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지금 이 학교, 이 학과에 있지 못하고 새로운 삶을 꾸려나갔을 게다. 제도가 어수선할 때 강한 내 면모가 드러난다고나 할까.^^;

수능 점수가 예측 가능한 수준을 넘게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2002 수능부터 총점기준 누가성적분포표(전국 석차)를 공개하지 않게 되자 고3 교실은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알면서도 98년 입시 개혁안 때 이미 공언된 총점제 폐지 등의 틀을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혔고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았다. 물론 내가 정시모집에서 제 위치를 명확히 몰라 애끊는 심정까지 겪어보지 못했기에 내 주장의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총점석차에 의한 대학 서열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굽히지 않았고 참 많이 상처도 받았던 거 같다. 여하간 요즘은 선택과목도 다양해지고 영역별 점수 반영이 활발해져서 나 때보다는 많이 안정화된 거 같다. 이렇게 정책이 자리 잡는 건 좋은 일이지만 안착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더군다나 교육정책 같은 민감한 사항에서는 더욱 세심해야 한다.

여하간 수험생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수능 시험장에서 기도하는 절실한 마음으로 산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061117
차기 총장 예비선거에서 부적격자로 지목돼 탈락한 어윤대 고려대 총장님에 대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교수들이 변화를 싫어하고 안정만을 추구하는 측면이 있다”는 어 총장님의 인터뷰에 교수의회에서 권고문을 내고 교수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삼갈 것을 권고하기까지 했다. 중간에 와전된 내용들도 적잖겠지만 이제 결과가 나온 이상 관련 당사자들이 깨끗하게 승복하는 게 도리다. 어 총장님이 연임에 실패했다고 해서 교육 효율성 제고와 교수사회 혁신 과제가 통째로 폐기되는 건 아닐 것이며, 연임에 성공했다고 해서 학교를 기업과 동일선상에 놓고 보는 사고방식의 단점이 줄어드는 건 아닐 것이다. 어 총장님 스스로 50%의 리스크를 안고 도전한 연임이라고 하신 만큼,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경영학도의 자세를 보여주시길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의 지적대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CEO라는 말이 가치중립적으로 쓰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CEO가 “모든 조직의 책임자들이 반드시 구현해야 할 지고지선의 가치이자 전범(典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과문한 내가 듣기에 완벽한 리더십 모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CEO형 지도자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면 무게중심이 그 쪽으로 쏠리는 것을 부러 백안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CEO를 기업식 경영방식을 구사하는 리더십으로 좁게 정의하더라도 구체적 실천방안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는 만큼 섬세하게 접근해봐야겠다. 경영, 경제 전공자나 기업에 몸 담았던 이들이 너도 나도 CEO형 지도자를 자처하는 게 민망해서 하는 소리다. 내가 경영학도인 만큼 좀 위악적으로 말해보자면 우수마발이 CEO를 외치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가 너무 획일적이다 보니 리더십마저 유행에 민감한 게 아닐까 싶다.^^;

끝으로 어윤대 총장님 그간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유종의 미 거두시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061118
선배님들과의 번개 모임 장소가 변경되어 2년 만에 강남역을 향했다. 내가 뭐 강남을 부러 꺼리는 건 아니지만 인연이 많이 닿지 않는 건 사실이다. 삼성역 코엑스몰 정도를 한 해에 두 어 번 가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강남을 좀처럼 찾아가지 않는다. 그만큼 네게는 많이 낯선 동네다. 나는 최근 내수경기 진작을 위한 술 소비 등 소비 확대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그 활동 반경을 강북 동부의 중랑구, 노원구, 도봉구, 성북구, 동대문구, 성동구, 광진구, 강북구 등 8개구와 인접한 중구, 종로구 정도 잡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오면서 내가 강북 주민으로 산지도 10년이 넘었고 학교도 계속 그 반경을 넘지 않았으니 나도 모르게 강북을 편애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강남역 근처에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와중에도 귀갓길을 걱정해야 하듯이 강남은 내게 아직은 심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가깝지 않는 곳이다. 11시 20분쯤 먼저 자리를 나오면서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역지사지를 생각했다. 보통 학교 근처에서 대학 모임을 가지면 나는 집이 가깝다며 부담 없이 놀았던 적이 많았는데 남쪽 동네에 사시는 분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그간 너무 잊고 있었다. 아무리 유쾌한 모임이었다고 해도 전철도 끊긴 시간 붐비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건 꽤 고역이다. 번번이 엄청난 택시비를 감당할 여력이 학생에게 있을 리도 없다. 그런걸 내색하지 않고 마다하지 않고 모임 때면 자리를 빛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일요일 아침에 일정이 있어 부득이 자리를 떨치고 나왔지만 다음에는 강남 어딘가에서도 밤을 지새우며 놀아봐야겠다. 그렇게 한 번 정(?)을 통하면 앞으로 나의 남행이 마냥 거북하지만은 아닐 게다.

처음 뵙게 되어 기뻤던 우석형님, 납세자가 계산하자는 멋진 제안을 하셨던 인호형님께 각별히 감사 드리며, 졸지에 막내가 되어 몸둘 바를 몰랐던 나를 비롯한 홍익, 정석이에게도 고맙다. 무엇보다도 다음에는 준희형님과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다.


061119
2006년 6월 영월댐(일명 동강댐) 건설이 백지화됐다. 생태계의 보고를 지키겠다는 환경적 가치가 설득력을 얻은 이례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환경단체 등의 보고에 따르면 댐 건설 계획 백지화 이후 동강은 오히려 더 오염되었다고 한다. 동강 러시가 벌어져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와 오물로 1급수 청정 하천이었던 동강의 물이 2급수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산을 깎아내고 도로를 내며 관광 자원화에만 열중했고, 천혜의 비경이라는 찬사가 무색하게 많이 훼손된 모양이다.

최근까지도 댐 건설론자들은 동강댐 등 당초 계획되었던 댐들이 건설되어야 집중 호우 때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남한강 수계에는 북한강 수계와는 달리 다목적댐이 충주댐 하나밖에 없어 물을 가둬둘 댐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경청할만하다. 하지만 동강댐 등이 홍수 조절 효과가 없고, 경제성까지 별로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환경 문제에 대해 크게 아는 바는 없지만 앞으로 이런 식의 갈등은 재현될 소지가 많다. 일전의 천성산 터널공사 논란도 이와 비슷한 갈등이 표출되었다. 이슈가 터지면 치열하게 논쟁하다가 가까스로 봉합되면 문제의식이 소진되어 후속조치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날마다 터지는 사건사고에 눈이 휘둥그레지기 일쑤고, 먹고살기 바쁜 보통 사람들에게 그만한 책임감을 강요하는 건 지나친 처사지만 말이다.

2004년 문화재청 국정감사 때 열린우리당 이광철 의원님이 내놓은 고려왕릉 보존관리 실태조사 보고서는 방치된 고려왕릉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올 봄에 실제 몇 군데 답사를 다녀오니 여전히 황량하고 적막한 곳이었다. 특히 고양시 공양왕릉의 경우 2001년 크게 훼손되어 도굴 된 게 아니냐며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도굴 의혹 기사가 쏟아진 이후 관련 기사를 뒤적여 봤지만 추후에 어떤 결론이 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문화유산 관리의 허술함보다 더 서글픈 것은 그 때 그 때 잠깐 관심을 갖다가 잊어버리는 우리들의 냄비근성이 아닐까 싶다.

“동강의 비극”은 정책 종결에 따른 사후조치 미흡이 어떤 참상을 가져다 주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동강댐을 포기하면서 지키려고 했던 가치들을 유지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도 해야할 때가 있는 법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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