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편파성

사회 2006. 7. 25. 03:41 |

2002년 6월 당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던 유시민 선생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했던 '유시민의 시사카페'에서 '칼럼니스트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언급했다. 이 칼럼은 지금도 내게 큰 지적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는 스스로에게 “칼럼니스트는 반드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칼럼니스트가 논리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중립을 지키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정치적 중립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 칼럼니스트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비난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왈가왈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곱씹어 볼만한 주제다. 유시민 선생은 정치적 중립은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칼럼니스트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고 답한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중립이냐 여부가 아니라 어떤 칼럼니스트가 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은 태도를 형성하고 표명하게 되었으며, 그가 정당한 방법으로 자기의 정치적 견해를 뒷받침하는지 여부라고 헌걸차게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이한 시각과 논리 사이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그의 입장에 거개 동감한다. 우리 사회의 극단적 대립은 중립성이 부족했다기보다 공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와 다른 견해와 겸허하게 경쟁하려는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진단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중간 영역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중립성이라는 표현보다는 중간 영역이라는 표현이 좀 더 가치중립적인 것 같다). 자신이 편드는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리 둘레를 살펴보면 저마다의 편향성을 보이면서도 상당부분 중립적으로 사안에 접근하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것이 한갓 개똥철학으로 치부될지언정 대개의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제 나름대로 정보를 처리하고 세상을 판단하며 소신을 품는다. 그것이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권능이자 책무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공고화(consolidation)를 위한 요소 가운데는 이러한 갑남을녀들의 의사를 폭넓게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분명 포함될 것이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데아(Idea)가 실현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그에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는 있다. 마찬가지로 공정한 편파성도 이데아일 뿐, 우리가 추구하는 건 그 언저리까지다. 이데아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답답해하지 말자. 그게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내는 불확실한 세상일지니.


자신의 색깔을 사랑하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기를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는 중간 영역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시민 선생의 주장도 자칫 잘못하면 그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중립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모두 편파적이 되어야 한다로 귀결되는 건 곤란하다. 그러다 보면 극단적인 해법만이 최선이라고 외치거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냉큼 달려가자고 재촉할 여지가 많다. 고교 평준화 제도가 문제가 있다며 당장 고교 입시를 부활시키라는 주장에 많이 무리가 있듯이, 민족사적 과제인 남북통일을 왜 당장 이루지 못하느냐고 보채는 것도 억지스럽다. 가령 한-미 FTA 문제는 찬성과 반대 두 가지 영역 밖에 없는 건가. 그 사이에 있는 조건부 찬성, 조건부 반대, 가능하면 찬성, 가능하면 반대식의 입장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이거 양보하면 차라리 협상을 결렬하겠다는 마지노선을 가지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저쪽에서 상당한 수준의 양보를 해왔다면 우리의 마지노선도 다소 수정할 수 있는 게 아닐까(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구체적인 협상에 대한 평가를 내린 건 아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접근은 효율성을 높이고 지지자들의 충성도를 높인다. 강한 추진력을 통해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경우도 적잖이 있다. 그러나 이익 갈등이 다각도로 진행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그런 틀을 가지고 사회를 운영하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높다. 섬세하게 계산되지 못한 갈등 비용은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이다. 갈등 비용 관리는 주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은 “어느 편이냐고 묻지 마라. 그 질문은 너무 폭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도 “회색분자가 많아야 좋은 세상”이라고 말한다. “기회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이지만 양심적인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한다는 말은 많은 영감을 준다. 나는 유토피아를 믿지 않지만 굳이 말해보라면 ‘보통선(普通善)’이 만개한 세상이라고 말하겠다(보통선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만들어 놓고 자화자찬했던 용어로 쉽게 말해 소극적인 선이란 뜻인데 앞으로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볼 생각이다. 내 이런 소박한 바람이 결국 아담 스미스가 주창하던 내용들과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 은근히 두렵다.^^;). 이는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 진보하는 사회, 착한 사람들의 손해를 먹고 지탱되는 사회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 상도덕을 준수하며 제 몫을 챙기는 사회다. 그곳은 날마다 천사와 악마가 건곤일척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곳, 갈등 비용이 많이 줄어든 곳일 것이다.


중립성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문화일보 윤창중 논설위원이다. 나는 그가 2002년 이후로 연재한 칼럼을 거의 빠지지 않고 다 읽어 왔다. 그는 노무현 스토커로 불릴 정도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집권여당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를 해온 인물이다. 비슷한 소재로 글을 쓰면 질릴 법도 한데 늘 새로운 채찍을 준비하는 걸 보면 무척 솜씨 좋은 논객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2002년 대선 국면에서는 전국언론노조 문화일보지부 공정보도위원회에서 “윤 위원의 칼럼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이런데 굴할 사람이 아니다.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 두려우면 신문사 자리를 버리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하며 살고 있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내가 사무실에 앉아 해야할 일은 노정권을 비판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밝히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갸우뚱거린다. 왜 그런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까.


윤 위원의 칼럼을 읽다가 그의 편파성을 도드라지게 드러난 부분을 발견했다. 2003년 5월 “전대통령 YS”라는 칼럼에서 김영삼 전대통령이 돈이 부족해 힘들게 지내고 있다고 전한다. YS의 덕목 중 하나는 돈에 관한 한 욕심이 없다는 점을 들며 “정부로부터 연금으로 월 844만원, 예우보조금 월 542만원 등 모두 1386만원을 받”지만 “어쩔 수 없이 전직 대통령의 품위 유지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씀씀이가 있기 때문에 매달 돈 때문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전대통령의 살림살이를 추론해 정부지원금이 순식간에 바닥나는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런데 2006년 3월 “盧대통령의 노후”라는 칼럼에서는 태도가 돌변한다. “노 대통령은 실제로 노후를 걱정할 게 없다”면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혜택을 설명한다. “노 대통령이 저축한 돈 가운데 다만 얼마라도 서민 복지를 위해 쾌척하며 양극화 해소를 외친다면 서민들조차 이렇게 복장을 터뜨리고 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위소득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해 선거에 이용하려는 그 뻔한 위선과 언어의 유희, 그야말로 진정성의 문제”라며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의 예우가 김영삼과 노무현이 크게 다르기 않을 텐데 누구는 교훈적인 미담이 되고, 아직 퇴임도 하지 않은 현직 대통령은 진정성이 없다고 외치니 참 난감하다. 이게 다 저축한 노무현 탓인가.^^;


외람된 말씀이지만 내 부족한 인식에 근거해서 볼 때 윤 위원이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허상과 싸우느라 열심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06년 7월 24일자 “17% 대통령”라는 칼럼에서 “노 대통령의 지지층이 평택, 광주의 친북·반미시위 때나 볼 수 있는 맹목적인 좌파·친북·반미 세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기야 일전에도 열린우리정권은 주체사상 맹동주의 세력이라고 하신 분이니 더 이상 기대를 하는 게 무리일 듯싶다. 그토록 날카로운 윤 위원이 “‘내부 붕괴형’ 정계개편”란 칼럼에서 “무자비한 자상(刺傷)에 고통의 본능을 억제하는 농축의 절제미는 ‘2% 부족한 영남 공주’를 옛말로 만들어 버렸다”며 박근혜를 평하는 대목은 그가 꽤 따뜻한 품격을 지니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정치인의 약속”라는 칼럼에서 송파갑 불출마를 선언한 맹형규의 인간적 고뇌에 연민을 느끼면서 한국 정치가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외치기도 했다. 물론 맹형규는 재출마를 해버렸고 윤 위원은 졸지에 민망한 처지가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를 예상했는지 “눈 딱 감고 재출마해도 그만이다”는 복선을 깔아두기도 했다. 놀라운 혜안이다.^^; 여하간 윤 위원의 글을 보며“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심연(深淵)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이 당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것이다”는 니체의 말을 꺼내들게 한다. 가뭄에 콩 나듯해도 한나라당에게 쓴소리를 내뱉던 그의 모습이 그립다. 2007년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되든 간에 지금의 냉소와 저주에서 좀 더 나아간 글쓰기를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공정한 편파성이 손쉽게 이를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사안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을 하면 할수록 고통스러운 선택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차라리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내 편이 있는 게 마음도 편하고 좋을 텐데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내가 그간 편파적으로 자랑스레 해왔던 언동들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좀 더 꼼꼼할 필요가 있었다. 윤창중 논설위원 같은 식의 편파성은 이제 정중히 거절해야겠다. 무엇보다 그렇게 단순하게 세상을 살아가기가 너무 손쉽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물론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하는 용기를 배울 용의는 충만하다. 나는 시원하고 화끈한 사람보다 맹맹하고 조신한 녀석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중간 영역을 청취하기 위해 좀 더 노력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공정한 편파성이라는 이데아를 손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공정한 편파성과 균형적 중립성의 차이가 실상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일단은 좀 더 바지런해지고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않기를 다짐한다. 아무 편이 아닌 사람들과도 알콩달콩 잘 지내야겠다. - [小鮮]


편을 갈라서 사는 것이 편안한 사람들이 볼 때 아무 편도 아닌 사람은 회색인이자 경계인이거나 기회주의자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 편도 아닌 사람들이야말로 자유ㆍ민주주의자이며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인문주의자다. 필요한 것은 관용의 정신이며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자세다. 그런 자세가 없으면 한국사회는 더 성숙해질 수 없다. 아무 편도 아닌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 임철순. "아무 편도 아닌 사람." 한국일보. 2004. 02. 05.

Posted by 익구
:

7월 18일 제 생일을 맞이해서 조금 급하게 익구에 대한 말말말 4탄을 정리해봤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그리운 이름들을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보며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라고 탄식했지만 저는 좀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좀 더 그윽해진 모습으로 오래도록 곁에 두고픈 동반자가 되겠습니다. 그리움에 사무치고 외로움에 절망할 때 하잘 것 없는 저란 녀석의 손을 잡아주었던 아름다운 마음들을 생각하겠습니다.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는 절제를 지키려고 애쓰는 저이지만 이번만큼은 오버를 하고 싶네요. 여하간 생일 특집이라 주로 좋은 말들로만 정리했습니다. 진실은 이렇지 않다는 거 감안하시고, 너그러이 양해해주세요. 푸하하


잘 실험 관찰했어요. 계속적인 관찰을 한다면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어요.
- 초등학교 5학년 때 달팽이를 가지고 관찰실험 보고서를 제출한 것에 대한 선생님의 코멘트

풍부한 상상력으로 이런 극본을 썼구나. 선생님이 지켜볼 제자이구나 축하한다.
- 초등학교 6학년 때 방학 과제로 써낸 극본 권선징악에 대한 선생님의 코멘트

나중에 신문을 유심히 봐야겠구나.
-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 나중에 신문에 내 이름이 날 수 있는 명사가 되기를 축원해주시며

본받을 점: 온순함. 무슨 일이 있어도 화를 잘 내지 않는 것. 친근감.
고칠 것: 너무 순해서 탈이다. 필요할 때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 중학교 1학년 도덕시간에 했던 친구 장단점 써주기 시간에 나에 대해 나온 말

익구는 책을 열심히 읽고 착하고 맡은 일에 책임감이 있다. 단점으로 판단력이 부족하다.
- 역시 도덕시간에 했던 장단점 써주기

익구야! 너는 착하고 순수해서 좋아. 그렇지만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나쁜 놈들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을 너무 믿지 마라. - 중학교 2학년 시절 절친했던 친구의 고언(?)

"자기를 다스릴 때는 가을기운을 띠고, 세상을 살아갈 때에는 봄기운을 띠어야 한다(律己宜帶秋氣, 處世宜帶春氣)" 내가 늘 그렇게 해야 겠다..라고 품고 사는 생각을 미리 실천해나가는 익구형. 익구형의 성격을 좋아하고 익구형의 글을 좋아하고 익구형의 생각을 좋아하고 익구형을 좋아한다.
- 04학번 후배녀석의 오버(?)

그리고 개인주의자시라는 말이 친근하게 와닿는군요. 이상한 의미로 잘못 수입된 가짜 개인주의가 횡행하는 우리 나라에서 개인주의를 스스로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은 보기 힘듭니다. 친근하군요.
- 몽테님의 말씀

스무살이 지나고나면
스물 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살 그 후가 오는 것이라고...
어느 시?에서 그러던데 형의 신입생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 민망한 질문을 던지던 04학번 후배녀석

익구는 정말 사람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지니고 있구나..
- 다정다감하신 선배님의 말씀

하여간 너같이 입대한지 1년 8개월만에 편지 쓰는 인간도 드물 거다. - 식이

언젠가 나이 40 쯤 되서도
웃으면서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었음 하네요~
- 그 약속 지키고 싶게 만드는 영민한 후배의 말

아무리 생각해도 익구의 논리는 콩깍지에 씌어져 한부분만을 보는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 내게 정치적 반대자를 만나는 기분을 선사한 외우(畏友)... 나는 "나는 한 부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부분에 더욱 중점을 두는 것일 뿐이다"라고 받아쳤다.^^;

예전에 ㅈ랑 ㅅ이랑 이야기할 때 익구형은 지적인 매력이 최고의 무기라는 말이 나왔었어요.
- 아부도 잘하는 귀여운 05학번 후배

소개팅 하면 꼭 익구닷컴을 여자분께 소개해주시면 집에 가서 형의 매력을 알게 될 거예요.
- 후배가 알려준 소개팅 전술

익구의 별명이 새롭게 바뀐다!!!!!
그 이름 하야
엄지군!!!!!!
아...ㅜ ㅜ정말 환상적인 닉네임이야
최엄지
엄지군
엄지공
엄지씨
엄지9...
아아 ㅜ ㅜ 좆쿠나~
- 내게 엄지군이란 별명을 선사한 정형

너는 가계의 부채(負債)다. - 내 유흥비 탕진과 도서 충동구매를 염려한 각영(刻影)공의 말씀

민폐강박증 환자 ㅋ - 유강님의 말씀

저희 새내기 때 애들이 익구형 귀엽다고 막 그랬었는데
- 04학번 후배, 어느덧 인생(?)을 배우다.^^;

프로토스로 치면 하이템플러 같은 존재시지
- 04학번 후배, 인생을 함께 배우고 있었다.

익구형처럼 되야지 ㅋㅋ
- 잘못된 희망을 품어버린 05학번 후배녀석

똑 부러지는 녀석.... - 싸이 일촌평 中

행복한 이상주의자가 되고파 하는,,'엄지손들기'를 즐겨하는 친구^^ - 싸이 일촌평 中

의외성과 부드러운 카리스마, 내면의 깊이, 그리고 유머감각까지 갖춘 멋진 선배님 ^^ - 싸이 일촌평 中

익구는 새해인사가 너무 심오하구나. - 내수경기 진작을 호소하는 문자를 받으신 어느 형님

익구형도 입학하실 때 논술 쓰고 입학하셨겠죠? .. 익구형이 쓰셨을 입시 논술 글을 보고 싶어지네요-_-b
- 뭐라고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익구형 글재주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싶은 능력중, 단연 1위입니다. - 웹진 후배님의 과공비례

지관(地官) 하려고 그러냐?
- 문화유산 답사 가운데 무덤 순례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두고

무슨 놈의 사진을 그렇게 미친듯이 찍냐!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진 찍기에 집착하는 나를 두고

차라리 네 방에 사당을 차려라.
-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묘에 가자고 친구에게 제안했다가 들은 소리

책 좋아하고 글 좋아하는 사람들 최대 약점이 뭔지 알아? 몸으로 살아내야 할 일도 책에서 배운 것 찾고 머리로 재는 거. 책 덜 읽는 사람들 한 수 아래로 접어보는것. =)
- mannerist님의 충고, 나는 "잇힝 부인할 수가 없군요. 뭐 그렇다고 제가 요즘 책을 많이 읽거나 그런 것도 아니지만요"라고 답했다.

'자유는 힘이 세다'라는 짧은 문장에서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낍니다. 물론 이 캐치프레이즈에 걸맞는 홈페이지주인 '익구'님의 풍성한 노작들이 없다면 두근거리는 가슴은 곧 멈춰버리겠죠.
진취적이고 사려깊은 한국 젊은이의 모습을 보고싶다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 곳으로 가 보십시오. 머리가 꽉 차는 흐뭇함과 탄탄한 내용들의 깊이에 빠져 헤어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원래 제가 속이 좁아서 남의 홈페이지를 링크하고 남의 글 퍼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저는 하다못해 익스플로러에 즐겨찾기도 등록하지 않습니다.)이 곳은 저로 하여금 닫혀있던 즐겨찾기 메뉴를 처음으로 열게 하는군요. 자 모두 가서 자유가 얼마나 힘이 센지를 느껴봅시다!
- 반전할까요님의 상부상조 덕담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들이 다 그저 그런 것 같지만,
늘 고민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10년 후는
분명히 다름을 40년 가까운 세월을 사는 동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최군도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룩하세요.
- 즐거웠던 행정학개론 선생님께서 주신 메일 中

자신을 포지셔닝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면 훌륭한 성과입니다. 사실 나도 늘 나 자신을 제대로 포지셔닝하고 있는지 반문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폭넓은 교양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정확한 것입니다. 사회과학 분야는 물론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교양을 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대학 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들을 잘 실천해나간다면 성공적인 삶이 최 군의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 흠모하는 경영대 교수님께서 주신 메일 中

보내준 메일 잘 받았습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사사로운 자기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인 대학가의 현실에서...
보다 큰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서 아주 보기가 좋군요.
다양성과 편파성이라....
Tocqueville같은 사람은 미국정치 분석을 통해 파벌, 다시 말해 편파성이 민주주의 발전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단언하기도 했었습니다. 여하튼, 편파성없는 다양성도 있을 수 없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편파성도 무의미 하겠지요. 그렇다고 중간적 입장에서 적당히 수렴하는 것이 마냥 옳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고.... 아무리 논리적 근거를 들이댄다 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기호가 반영될 수밖에 없겠지요..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단순히 비판을 위한 비판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비판인지, 생산적 비판인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 내 지적 향상에 큰 영향을 주신 정외과 엄상윤 선생님께서 주신 메일 中

최익구가 중국어랑 인연이 있는 것 같게 느꼈다면 이것은 정말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해요. 그것 만으로도 성공한 셈이죠. 그리고 고민하지 말아요. 중국어를 선택했을 당시 이미 고민은 끝난 거예요. 시간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지나가고 있어요. 그러니 이미 시작한 중국어 계속하기를 바래요 현상유지를 위해서든 실력 향상을 위해서든 꾸준히 계속하면 중국어도 아마 자기 모국어 만큼 사랑스러워 질 때가 있을 거예요 절대 그만두지 않기를 바래요.
- 경영외국어 선생님의 말씀... 이 고마운 말씀에도 불구하고 중국어 공부를 못하고 있다.ㅜ.ㅜ

자신이 어떤 입장이고 어떤 정체성을 지녔는지 모르는 체 '선한' 척 하는 것이 타락의 주범입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는 것을 모른 채 다른 사람의 착취를 욕하고, 자신이 외치는 것은 순 키보드워리어 수준임을 모른 채 진보와 개혁의 편이라고 착각하는 것 - 이런 사람들이 의식주 문제에 부닥치면 여지없이 '한나라당'에 가까운 입장으로 바뀌는 것 ? 제 개인적 경험이 일반화될 수는 없겠 지만 '수없이' 보아왔다는 것, 말씀드립니다. 조중동이 싫다하는 학생도 언론사 취업시장에 뛰어들면 조선일보부터 선호하듯이 말입니다.
- 인터넷 서점 알라딘 서재에서 벌어진 위서가님과의 논쟁 中

'전선'을 얘기할 땐 어느 정도의 단순화는 불가피한 것이라 봅니다. 신자유주의-반신자유주의의 전선을 거론한 것이 곧바로 새우범생님 말씀처럼 '두부 자르듯이 가름하는 행위'는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님의 말씀대로라면 어떤 전선을 얘기하든 그것은 이분법에 사로잡힌 행위가 돼버리는 거겠지요(저는 이것이야말로 잘못된 단순화 내지는 이분법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경제 속에서 차지하는 '주변부'로서의 위상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 배척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닐 테지요. 그러한 문제의식을 '신자유주의-반신자유주의 전선'이라 표현한 것이고, 이는 어디까지나 용어상의 문제입니다. 단순화 없는 요약이 가능할까요.
- groove님이 주신 댓글 가운데 신자유주의 관련 대목

기억의 습작을 듣다가 갑자기 자네 생각이 나서ㅎㅎ
- 성균관 명륜당의 설경을 감상하던 중에 운치 있게 날아 온 문자

캬...익구형 색깔은 늘 다양하면서도 또렷하네요^^ㅋ
- 조선 당쟁에 대해 쓴 글에 달린 댓글

익구야 너 인사하는 법 어디에서 배웠니!!? 너무 좋아!!!! 꺄아~
- 나만 보면 예의바르다고 칭찬해주시는 고마운 누님

90도에 육박하시던데요..옆에서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요..ㅋㅋ
- 허리까지 숙여야 나오는 각도인 70도에 육박하는 인사를 하려는 나의 "70도 인사"에 대한 후배의 평

고3처럼 보이는데요.
- 정확히 2006년 7월 19일 노원역 어느 고깃집 종업원에게 들은 말

걸신 그 자체 같으니라구./ 익구형은 엥겔지수가 무지 높으신 거 같아요.
- 지인들은 나를 보고 많이 먹고도 살이 안 찐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사실 나는...^^;

뒷좌석에서 항상 안전벨트를 매는 익구 ㅜㅜ
- 오로지 준법과 안전을 위하여...^^;

경영학과 가더니만 이해타산만 늘었어.
- 청원이

너가 만약 장교가 되었다면 무척 까다로운 간부가 되었을 게야.^^;
- 내 잔소리를 마뜩잖아하는 친구

항상 생긋 웃는게 참 착하게 보였는데~
아마도 멋진 사람이 될 것 같아.ㅋㅋ
- 내 썩은 미소를 생긋 웃는다고 순화해준 고마운 친구

형 덕분에 제가 최고학번이 아니었어요! 늘 감사해요 형 ㅎㅎ
- 2006년 봄 엠티 따라갔다가 들었던 소리... 이제 그만 가야겠다.^^;

형의 선비같은 모습 발끝도 못미치네요
- 잊을 만 하면 등장하는 선비 소리... 덜덜

솔직히... 익구형 글은 너무 길고 내용이 힘들어요. ㅠㅠ 귀차니즘 세대인 저로서는, 뭔가 핵심을 집어주셨으면 좋겠어요. ㅠㅠ
- 게을러서 글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고 답해줬다.^^;

행정병이나 정부 부처에 있는 어지간한 공익보다 나은 거 같은데.
- 예비군 업무 감사관이 내게 해준 말. 그분들은 내게 이런저런 찬사를 선사해주셨다. 더 열심히 하라는 무언의 압박인가. 덜덜

돌아와서도 형과 평생 돈독한 관계로 지내고 싶어요.
- 이제 곧 입대하는 愛후배와의 금석맹약

새우범생님이 너무 일찍 염세주의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내 영혼의 스승께서 해주신 따뜻한 염려의 말씀

넌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안 변하냐. - 휴가 나온 친구ㅡ.ㅡ;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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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개업식 날 친절봉사 외쳐 대면서 맛도 좋더니
실컷 놀다가 개학식날 굳은 맹세 하더니
변하더군 흐지부지 사랑이 식듯이 별 가책도 없이
원래 뭐 그런 거 아니냐더군

- 이승환, 「첫날의 약속」 中


아마도 이승환의 노래는 정채봉 작가의 「첫마음」이라는 시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싶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펼치던/ 영롱한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첫마음이 흔들릴 때 찬찬히 소리 내어 읽어볼만하다. 공익근무를 수행한지 딱 절반의 시간이 지난 오늘 이 시를 꺼내들었다. 이제 정상에서 맑은 공기를 쐬고 하산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은 날들을 추슬러야겠다.


요근래 근무 관련한 감사 준비를 하면서 우리의 예비군 행정체계가 이렇게 꾸려져야 하는가 많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일단은 방통처럼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자신을 겨우 뇌양현 현령으로 내려 보낸 유비에게 삐친 방통이 고을을 다스리지는 않고 매일 술 먹고 노는 대목이 나온다. 유비가 이 소식을 듣고 장비와 손건을 감사관(?)으로 내려 보냈다. 장비가 놀고먹는 방통을 윽박지르자 방통은 태연히 말한다. “겨우 백리밖에 안되는 고을의 작은 시빗거리를 분별하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운 일이겠소?” 그리고서는 반나절도 안 돼 백여일이나 밀렸던 일을 수월하게 처리해버린다. 장비가 감동하고 유비도 자신의 과오를 뉘우쳐 방통을 중용하게 되었다 뭐 이런 내용이다. 그래도 벼락치기라도 하는 사람이 낫다.


구청으로 와서 처음 업무를 배울 때 선임이 없어서 여기저기 물어서 조금씩 배워나갔던 기억이 난다. 잘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가를 절절이 체험하는 값진 경험이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어찌나 곤혹스러웠던가. 나는 “아는 것이 힘이다”가 대개는 옳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내 주업무인 예비군, 민방위 행정에 대해 적잖이 익숙해졌지만 역시나 아직도 낯설다. 민방위 업무는 내가 좀 간소화해도 무방한 재량의 여지가 좀 있지만 예비군 업무의 경우 개인이 사사로이 건드리지 못하는 번문욕례(繁文縟禮)가 너무 많다. 하긴 이런 번문욕례가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구박하려는 마음이 약해진다.^^; 최근에 전산화를 통해 업무 통합을 하려고 애쓰고는 있다지만 중간에 낀 아랫것들은 바뀌는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고생일 뿐이다. 그 방향이 옳다고 보기에 조금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는 있지만 얼른 정착이 되어 행정 간소화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예비군 제도가 현역군인 다음으로 국가안보의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선의를 인정하더라도 예비군 제도는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개편하되 좀 더 양질의 작전수행력과 동원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예비군 복무 기간을 전역 후 8년에서 5년으로, 훈련 기간을 6년에서 4년으로 줄이기로 합의한 바 있다. 세부적인 단축안까지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부담을 덜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 된 짐을 덜기가 말처럼 쉬운 일인가. 예비군 복무기간 단축이 포함된 국방개혁기본법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어디 그 뿐인가, 민방위 편성 연령을 40세로 인하하고, 교육시간을 4시간으로 축소해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는 민방위기본법도 마찬가지로 상정만 되어 있고 처리가 안 되고 있다. 논어의 눌언민행(訥言敏行)이 떠오른다. 말은 좀 어눌해도 행동은 민첩하게 하는 대표자들이 좀 더 많아져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리인비용을 좀 줄일 수 있으리라.


여하간 내가 맡고 있는 일의 범위나 폭이 좁은 편이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업무일지도 매일 퇴근 30분 전에 꼬박꼬박 뽑던 것이 퇴근 5분 전에 부랴부랴 뽑거나, 그마저도 못해서 다음 날로 미루기까지 한다. 공문 처리도 당일 처리 원칙이 무너지고 급한 게 아니라면 두어 개 모일 때까지 놔두기 일쑤다. 작년에는 혼자서도 거뜬히 들던 통합방위 상황판이 요즘에는 혼자 들기가 힘에 부쳐 둘이서 같이 들어야만 한다. 더군다나 매일 8시 30분까지 출근하던 것도 조금씩 늦춰져 이제는 40~45분에 간신히 출근하고 있다. 매일 하던 사무실 청소도 점점 간소화되고 있다. 의식하지 않아도 내 몸과 마음이 하산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짬이란 칸트의 시계만큼이나 정확하다.


연애감정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건 꽤 알려진 연구결과다. 사랑의 감정을 일으키는 호르몬의 지속시간을 이탈리아 파비아대 엔조 에마누엘레 박사팀은 6개월, 미국 코넬대 신디아 하잔 교수팀은 18~30개월, 이탈리아 피사대 연구팀은 2년 정도라고 발표했다. 사랑의 호르몬이 사라진 자리에 귀여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채워진다고도 하지만 사랑의 가슴 뜀마저 항체가 생긴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권태란 참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중경삼림의 대사는 생리적 유효기간을 넘어서기 위한 의지의 표출일까.


적어도 세금은 축내는 녀석이 되지 말자고 결심하며 근무를 시작했다. 조금 지나고 나서는 기왕이면 내가 받는 세금의 열배 값은 하자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소집해제의 그 날까지 세금의 열배 값을 해내기란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늘 한결같고자 하는 건 과욕이라는 중학교 2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한결같은 삶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내게 그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가. 그러나 그 말뜻은 의욕적으로 품었던 초심을 함부로 내팽개치라는 뜻은 아니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는 언제든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가꾸라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권태가 도둑처럼 찾아와 내가 품던 겸양과 열정을 흔들 때 다시금 내 자신을 다잡는 견결한 자세를 욕심내보자. 자동차 사고는 초보운전일 때보다 제법 운전이 익숙할 때 일어나게 마련이듯이 모든 화근은 이쯤 하면 되었다 싶을 때 시작된다. 언제나 처음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첫마음을 건사해내는 하루하루가 모인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처음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기본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그 기본은 진짜 실력에서 나온다. 변치 않기 위해 부단한 자기혁신을 마다하지 말자.


처음처럼 소주가 예전 山 소주의 시장점유율을 넘어 선전하고 있는 모양이다. 수도권 소주 시장 독점 구도를 걱정하던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 처음처럼을 마실 때만이라도 내 형형한 눈망울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을 해봐야겠다. 앞으로 남은 절반의 공익근무 기간 동안 더 깊어지고 넓어지도록 노력하자. 근데 2007년 8월이 오기는 하는 걸까?^^;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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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교육인적자원부는 그간 전국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던 외국어고등학교 입학을 거주지 시와 도 소재지에 있는 외고에만 지원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발표를 했다. 교육부는 2006년 현재 전국적으로 31개 외고가 운영되고 있으나 서울, 경기, 부산에 전체의 64% 이상인 20개교가 몰려 있고, 울산, 광주, 충남, 강원에는 1개교도 설립되어 있지 않아 지역적 불균형이 심화되는 문제를 거론한다. 또한 어학분야 영재 양성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면서 졸업생의 동일계열 대학진학비율이 2004년 기준 31.2%에 불과해 과학고의 72.5%에 크게 못 미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학생부를 중심으로 한 내신성적을 강화하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하에서는 동일계 이외의 분야로 지원하는 외고 학생들은 불리하기 때문에 자퇴를 하거나 내신경쟁을 위한 사교육에 의존하는 등 비교육적 사태가 초래될 것은 우려된다고 말한다.


사실상의 외고 입학 제한 조치에 논쟁이 거세다. 추측컨대 이런 특단의 대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공영형 혁신학교를 띄우기 위한 의도도 있겠지만, 내신 성적을 강화하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제도의 원칙을 견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대학들이 외고 학생을 흡수하려고 내신 반영률 50% 원칙을 지키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100점 만점에 내신이 50점이라 명목반영률(외형적 반영률)이 50%라고 해도 40점을 기본점수로 주면 실질반영률은 10%밖에 되지 않는 맹점이 있다. 실제로 2006학년도 서울 주요 대학 입시에서도 표면상 40%에 달했던 내신의 실질반영률은 2.28%(서울대)∼11.7%(연세대)로 태반이 10% 이하였다고 한다. 내신이 강화되더라도 실제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을 것이라는 믿음이 특목고를 필두로 확산될 여지가 많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경제행위에 있어서 위협(threat)과 약속(promise)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협이나 약속에 얼마나 신빙성(credibility)이 있는가가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고려해야할 중요한 요소다. 대학들이 실질반영률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명목반영률만 높여봤자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즉 수험생들에게 그다지 신빙성이 없는 위협 혹은 약속이 되게 된다. 공교육 정상화를 고심하는 교육부는 정책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외고의 모집 단위를 제한하는 식의 처방으로 입시 명문고로 자리매김한 외고에 대한 선망을 얼마나 줄일지 회의적이다. 신통찮은 효과만 누릴 정책을 급박하게 내어놓는 건 전략적으로 미숙하다. 벌써부터 실제 입시에서 학생부 영향력은 실질반영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실질반영률보다 좁은 개념의 ‘사실상의 반영률’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전망이다.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으로 대학 입시에서 내신의 실질반영률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교육부는 지난해 2008학년도 입시 내신 강화안을 발표하면서 동일계열 진학 외 내신불리 조항을 명백히 하여 입시 목적의 특목고 지망생에게 신호(signal)를 보낸바 있다. 그러나 2002학년도 입시 때 수능 등급제를 도입하면서 얼마나 큰 혼란이 유발되었던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몇 해 전에 수능 총점제 폐지를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닥치니 수험생과 학부모 모두 고초를 치렀던 전례를 살폈어야 했다. 물론 외고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교육부의 취지는 기본적으로 적절하다. 그러나 정책 입안 및 발표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공영형 혁신학교 시범운영 방안에 끼워서 발표한 것부터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교육정책은 섬세하게 추진해야 한다. 외고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그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대처했어야 하는데 그저 문제점 몇 개를 던져놓고 해법도 그다지 설득력 없으니 오해를 사고 있는 것이다. 원론이 맞다고 곱게 봐주기에는 각론에 너무 허점이 많다. 외고에 대한 수요를 공영형 혁신학교로 흡수하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안일한가. 과연 현행 입시제도의 틀 안에서 공영형 혁신학교는 입시위주의 교육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974년 도입된 고교 평준화 제도는 고등학교 입시를 위한 중학생의 과외 열풍, 고입 재수생의 누적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이를 통해 명문고 중심의 학벌주의를 완화하고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이 안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수월성 교육의 부족과 학교선택권의 제한 같은 문제도 적잖았다. 이런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80년대 후반부터 과학고, 외국어고, 자립형 사립고 등을 설립해 평준화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다양한 고교 시스템을 꾀하고 있다. 외고는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내신 적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요동을 쳤다. 1994년 2월 교육부는 특목고 학생들이 동일계열 진학 때 학교 성적이 아니라 수능시험 성적에 따라 내신점수를 부여하는 ‘비교내신제’를 99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폐지한다고 밝혔다. 비교내신제와 대학별고사 전형을 믿고 외고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은 크게 반발했고 97년 2월에는 ‘입시제도 변경에 따른 신뢰이익의 손실’을 두고 헌법소원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교육부는 99학년도부터 비교내신제를 폐지했고, 당시 전국 외고와 과학고에서 무더기 자퇴사태가 벌어지며 홍역을 앓았다.


이해찬 당시 교육부장관이 주도하는 2002년도 입시개혁안까지 나오면서 외고 진학을 고민하는 중3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을 바꿔야 했다. 나 같은 경우 외고 진학을 결정한 날을 선택기념일이라고 명명해가며 고등학교 시절 내내 기렸을 정도다. 내가 서울외고에 지원했던 98년도에 서울 시내 6개 외국어고의 99학년도 신입생 모집 결과 평균 1.74대 1의 경쟁률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나는 1.6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가까스로 서울외고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내신이 생각만큼 불리하지 않을 터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선생님들의 격려를 거름삼아 그럭저럭 2학년까지 마치고 마침내 고3 수험생이 되었다. 대대적으로 확대된 수시모집 제도에 도전하려니 석차백분율이 필요했다. 중국어과 두개 반을 다해도 100명이 안 되다 보니 모든 과목을 과 10등을 하더라도 석차백분율은 10%가 넘었다. 수시모집에 대한 꿈을 안고 석차백분율을 계산하다가 패닉 상태에 빠졌던 고3 교실의 광경을 아직도 선하다. 수시모집에서 다소 불리한 점이 있었다고는 해도 정시모집에서는 내신 절대평가제나 수우미양가의 평어 계산이 도입되면서 불리한 면을 불식시켰다. 고대나 연대 등 일부 대학들이 절대평어 방식으로 특목고생들을 유혹하면서 일반고까지 성적 부풀리기 현상이 만연하는 촌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부 대학의 고교 등급제 적용 논란까지 불거지더니 결국 교육부는 2008학년도 대입부터 내신을 상대평가하기에 이른다.


외고 문제에 대해 솔직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내가 외고에 간 건 외국어 전문가가 되려는 게 아니었다. 사실 내 고등학교 1학년 동안의 꿈은 국문학도였고, Y대에서 나를 거절하지 않았으면 지금 사회학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외고 입학 당시만 해도 외국어가 정말 좋아서 외고 온 사람은 열에 하나 정도였다. 대개는 좋은 환경과 시설을 누리며 모범생 혹은 우등생들과 함께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그 불안함 속에서도 지원한 것이다. 물론 수업시수도 많고 하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중문과를 전공하게 된 친구들이 많지만 시작부터 일편단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외고의 어문계 진학비율이 낮다고 하지만 외고가 생긴 이래 동일계 진학비율은 늘 30~60% 정도였다는 점은 엄연한 현실이다. 10년 전인 1996년에도 31.9%였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고등학생들의 진로가 애초부터 정해진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사실 외고의 설립 취지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는 조금 애매한 감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역관 양성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외국어 능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외국어를 도구삼아 다른 학문의 지평을 넓힌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은 아닐까. 영어도 열심히 공부 안하고, 그나마 좋아했고 잘했던 중국어마저 하루하루 까먹어가는 내 처지가 한심해서 하는 말이다.


외고는 고교평준화 정책의 보완책으로 나왔다. 좀 더 명확히 말해 평준화 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교육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어느 정도 공급하기 위한 사회적 타협의 산물이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10년 이상을 유지해오며 어느 정도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당장 고교평준화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면 외고 같은 타협은 불가피하다. 외고보다 좀 더 나은 대안으로 공영형 혁신학교를 내놓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외고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수도 적고 힘도 없고 역사까지 짧은 외고는 지난날 평준화 도입으로 말미암아 명문고들이 입었던 타격보다 더 많은 피해를 감내해야하기 때문이다(제법 위용을 자랑하는 대원외고 같은 몇몇 외고는 좀 예외일수도 있겠지만). 공영형 혁신학교가 그리 자랑스럽거든 잘 만들어서 외고랑 경쟁에 붙이면 그만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교육정책을 운용하기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들의 눈물이 너무 무겁다. 외고에서 외국어‘도’ 잘하는, 외국어‘마저’ 잘하는 인재를 키우는 게 뭐가 그리 잘못인가. 어딜 가나 출신학교를 따지는 이 나라 풍토에서 외고만 세류에 휩쓸리지 말고 독야청청 외국어만 파고 있으라는 주장은 너무 끔찍하다. 외고생과 그 학부모들은 천사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가지고 애쓰는 사람들일 뿐이다. 다시금 내신 불이익의 공포에 떨 이름 모를 후배들이 가여워 쓴소리를 해봤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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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부부를 위하여

잡록 2006. 7. 3. 03:08 |

(제목은 고종석 선생님의 칼럼 「11월의 新婦를 위하여」 패러디입니다^^;)

청첩장을 들고 용산역 어디께를 찾아가는 길은 기쁘고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좋은 사람들의 소중한 결혼식에 가는 길이 이토록 즐거운 일인지 이제 알 것만 같다. 어른이 되어 가는 징표 중에 하나가 제 앞으로 전해오는 청첩장도 해당되리라. 지난 3월 수옥누나가 내 생애 첫 청첩장 수령의 영광을 안기신 후 7월 첫 번째 일요일에 치러진 익균님과 승효님의 청첩장이 두 번째다. 특히 이번에는 신랑과 신부를 모두 잘 아는 재미난 상황이기도 하다. 사랑에 관한 명언이 하고 많지만 내가 특히 꼽는 건 실러의 말이다. "어디서나 기만과, 위장과, 살인과, 독약과, 위증과 배반이 있다. 그러나 단 하나 순수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깨끗한 인간성 속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사랑뿐이다."


두 분은 고종석 팬카페를 통해 알게 된 분들이다. 그래서 나는 카페 아이디인 봄봄님과 박강님으로 부르는 게 더 익숙하다. 두 분이 처음 만나신 것이 작년 9월초에 있었던 카페 정모였으니 딱 10개월만에 카페 커플 1호라는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우신 셈이다.^^; 사람은 사랑할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플라톤이 말했다지만 이 두 분은 그럴 공산이 매우 크다. 두분 다 국문학을 배우신 분들이라 보니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나시다. 두 분이 대학로 이음아트에서 정답게 책을 고르실 때 두 분 뒤로 쏟아지는 광채 혹은 깨알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유쾌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간 단벌신사로 지내다가 이번 결혼식 참석을 핑계로 여름양복을 한 벌 맞췄다. 이렇게 의상까지 신경 쓴 까닭은 축가를 불러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기 때문이다. 음치를 약간 면한 고음불가인 나도 함께 축가를 불러야 한다는 강권(?)을 끝끝내 마다하지 못했지 뭔가.^^; 카페에서 알게된 조르바님과 당일 날 알게 된 두 분을 포함해 네 사람이 급조되어 축가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난감한 마음만 가득했지만 아마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축가가 될 것이 틀림없기에 그냥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이 다음에 내가 결혼식을 치르게 되면 축가는 꼭 노래 잘하는 준비된 사람을 고르리라 굳게 결심하기는 했지만.^^;


축가는 정호승 시인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노래였다. 인터넷에서 찾아서 들어보고는 다행히 그리 높지 않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악보를 받아 들고 보니 내 음역을 뛰어넘는 고음도 있고 난리도 아니었다. 역시 가수의 첫째 조건 가운데 하나는 높은 곡조를 그리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 당황하는 내 마음이 통했는지 음을 좀 낮춰 부르기로 했고 그제야 좀 상황이 호전됐다. 실제 축가를 부를 때 떨리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고음처리 불안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립싱크도 좀 하고 말았다. 추가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며 앞으로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들을 때 딴청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비문학 청년인 내가 문학을 집어드는 경우가 흔치는 않지만 인연이 닿아서 정호승님의 시집은 몇 권은 읽어봤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시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로 시작되는 시를 소리내 읽고 나면 힘이 생긴다. 이 밖에도 "신촌 뒷골목에서 술을 먹더라도/ 이제는 참기름에 무친 산낙지는 먹지 말자/ 낡은 플라스틱 접시 위에서/ 산낙지의 잘려진 발들이 꿈틀대는 동안/ 바다는 얼마나 서러웠겠니(산낙지를 위하여 中)"나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내가 사랑하는 사람 中)" 같은 주옥같은 시구를 저장해두고 써먹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시 좀 읽어야겠다.


간만에 뵙는 young님과 lee856님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신랑과 신부 어느 편에 설까 하다가 완전 가운데에 섰다. 지금 생각하니 자리를 정말 잘 잡은 거 같다. 어디 가서 이 정도의 기민한 순발력만 있다면 좋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피로연 음식은 뷔페였는데 늦은 점심이라 시장이란 반찬까지 곁들여서 무척 달게 먹었다. 다만 음식 분배에 실패해서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육회를 덜먹은 건 좀 실책이었다. 사실 내 식대로 했더라면 후식 이런 거 없이 마지막 접시까지 육회 등을 채워서 먹었어야 했는데 대화 나누느라 깜빡했다. 조르바님이 사숙하시고 봄봄님과 박강님이 함께 강의를 듣기도 했던 강유원 선생님과 대화 나누는 재미에 내 페이스를 잃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메밀국수를 고작 두 그릇밖에 안 먹은 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강유원 선생님이 공부하셨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자신이 비참해졌다. 사람이 어떻게 하루에 18시간을 공부할 수 있을까. 18시간을 놀라고 해도 졸려서 못할텐데 말이다. 선생님이 인세로 1000만원 모으기까지의 험난한 세월을 듣다 보니 이 나라의 부박한 학문 풍토가 개탄스러웠다. 글로 벌어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보니 곡학아세나 연줄 타기의 유혹이 스며드는 건 아닐까. 인세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이 나라에 고작 한 손가락 꼽을 수준이라니 無恒産無恒心(무항산무항심)이 떠올랐다.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이 없어진다"라는 말로 요즘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들의 단골 문구이기도 하다. 백성들이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고, 제 영혼을 건사할 수 있는 경제적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맹자는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서도 항상 꾸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고 말한다. 여기서 선비는 학자나 공직자쯤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분들 가운데 무항산은커녕 유항산인데도 무항심인 경우가 많다. 신영복 선생님은 "얼마만큼의 소유가 항산(恒産)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항산이 왜 항심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항산이 항심을 지탱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항산을 마련하는 일보다 항심을 지켜주는 문화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역순(逆順)을 밟아야"한다면서 "항산과 항심에 대한 생각을 달리다보면 결국 우리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소유를 갈구하게 하는 욕망의 생산구조에 생각이 미치게"된다는 것이다("유항산(有恒産) 무항심(無恒心)." 신동아 권두수필 1996년 11월호 참조).


강유원 선생님은 내 전공은 경영학과라고 말씀드리자 "경영과"가 아니냐고 반문하셨다. 學자를 붙일 수 있느냐의 함의가 무척 묵직하게 다가왔다. 나는 과연 이런 맹렬한 비판을 살뜰히 방어하며 學자를 사수하는 경영학도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미제스는 『자유주의』라는 저서에서 "자유주의가 인류의 물질적인 복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는 것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들을 경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떠한 외형적인 규제조치로도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고상한 것에 도달할 수는 없다는 확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경영학의 성격을 이해해봄직하다. 경영학은 유항심(有恒心)보다 유항산(有恒産)에 관심이 많다. 모든 학문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결국 비슷하겠으나 가는 길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부디 물질적이고 외형적이라는 이유로 學자에 인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여하간 강유원 선생님의 글을 좀 더 찾아 읽고 배우고 싶다.


강유원 선생님이 먼저 자리를 일어나시고 새우범생(나), young님, lee856님, 조르바님과 2차까지 이어지는 환담을 나눴다. 특히 독문학을 공부하시는 조르바님의 대학원 진학과 독일 진출이 화제가 되었는데 대학원 진학을 사실상 포기한 나로서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미 다 꺼트려 놓은 대학원의 불씨가 살아나지는 않을 것 같다. 공부를 하기에는 내 자신이 놀기 좋아하고 게으르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종석 팬카페에서 뵙게된 분들은 내게는 너무 과분한 사람들이다. 오래도록 함께 환담을 나누고픈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주눅 들기보다는 좀 더 바지런해지는 수밖에 없겠다. 내 둘레에 이렇게 열심히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이 많은 것에 대한 최선의 보답은 나도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리라. 우리는 조만간 신혼집 집들이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오늘 하루 몸과 마음 모두 포만감에 행복했지만 밤이 되니 또 허기가 졌다. 오늘 하루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사느냐는 고민을 너무 많이 했나보다. 근심걱정일랑 미뤄두고 된장찌개와 호박전으로 맛나게 늦은 저녁밥을 먹었다. 오늘 맺어진 두 분이 때로는 채우고, 더러는 비워가며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 [小鮮]


[우리가 어느 별에서] -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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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바나나킥을 소주 안주로 삼으면 기가 막히다는 내 주장에 반신반의하던 친구들이 한번 먹어보더니 맞장구를 쳐줬다. 그 날 바나나킥 다섯 봉지를 맛나게 먹으며 바나나에 대한 나의 애호를 새삼 확인했다. 문득 통상정책 강의시간에 교수님이 과거에 바나나 한 개가 얼마나 귀했는지를 추억하시던 것이 떠올랐다. 막상 먹어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과일이 하도 귀하다보니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자유무역의 혜택을 설명하시려는 의도였을 게다.


바나나의 황홀한 맛에는 거품이 적잖았다는 체험담에서 그 옛날 도루묵의 거품이 생각난다. 임진왜란 때 한양을 버리고 피난을 갔던 선조 일행은 먹을 것이 변변치 못했다. 아쉬운 대로 진상된 ‘묵’이라는 생선을 먹은 선조는 너무 맛있다며 생선의 은빛 뱃살을 보고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전쟁이 끝나고 선조는 달게 먹었던 은어 생각이 났다. 그러나 산해진미와 함께 놓인 은어의 맛은 예전 같지가 않았다. 왕은 도로 ‘묵’이라고 부르도록 하였고 여기서 도루묵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손을 떨며 한 개를 조심스레 까먹던 바나나를 요즘은 한 다발씩 사서 대강 까먹다가 한 두 개 정도는 너무 갈변했다며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기 일쑤다. 바나나의 베이지빛 과육을 음미하며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떠올려봄직하다. 세상인심도 반추한다면 금상첨화다.


바나나는 한때 무척 귀한 과일이었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입되는 과일이다. 거래가 많다 보니 분쟁도 많아 2001년에 미국과 유럽연합(EU) 간의 바나나 무역분쟁이 일단락 되기도 했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바나나를 수입 규제하는 대신 비닐하우스를 전기 난방해서 바나나를 재배하게 했다. 이 국내산 바나나는 맛도 신통치 않았거니와 값도 비쌌다. 게다가 농업용 전기는 원가 이하로 공급되기 때문에 그 차액을 국민이 분담해야 했으니 이런 낭비가 없다. 1991년 수입 개방으로 델몬트, 돌, 스미후르 같은 기업들이 국내시장에 진출하면서 바나나는 그 귀족적 자태를 잃고 서민의 품에 안겼다.


예전에는 호사품이었던 바나나가 저렴한 가격에 부담 없이 사먹을 수 있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바나나를 처음 수입할 때 사과 소비가 줄어 사과농가가 타격을 입는다며 반대했던 게 무색할 정도다. 그런데 얼마 전 한-칠레 FTA를 체결할 때는 포도농가가 타격을 입지는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다행히 큰 무리가 없이 지나갈 모양이지만 앞으로 농업 부문의 개방은 이런 식의 갈등이 재연될 소지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곡, 과일, 육류가 비싸다는 게 사실이라면 풍요로운 먹을거리를 값싸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쇠고기는 비싸지만 그래도 값 싼 수입 쇠고기가 있다는 건 육식을 즐기는 이들에게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도 좋지만 파시스트가 아니고서야 애국심도 동이 나게 마련이다.


다만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키더라도 단기적으로 소수에게 피해가 집중된다면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농산물 개방을 둘러싼 갈등은 역진적인 소득재분배 문제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와 국회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Trust)]에서 사회구성원들의 신뢰가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켜 경제적 번영을 뒷받침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인다고 말한다. 신뢰가 한 나라의 복지와 경쟁력을 결정짓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주장은 경청할 만 하다. 후쿠야마의 지적대로 대한민국이 저신뢰(low-trust) 사회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호불신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은 나라살림을 주름지게 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까지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한-미 FTA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의 하나라면 때려치우라는 단선적 주장 대신 어떻게 하면 좀 더 얻어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길 바란다. 우리가 어느 선에서 배수진을 칠 것인지, 우리가 꼭 얻어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놓고 섬세한 논쟁을 벌이다 보면 막연한 불안과 불신도 줄어들 것이다. 노란 껍질이 그럴싸하지만 썩기 쉬운 바나나처럼 시장 개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명쾌할지언정 곪기 쉽다.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개방해서 실패한 경우도 있었지만 쇄국해서 성공한 나라는 없다”고 한 말은 설득력 있다. 바나나처럼 썩기보다는 바나나가 서민들의 벗이 되었듯이 개방의 혜택이 서민들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 [小鮮]

Posted by 익구
:

메신저 상에서 후배와 수다를 떨다가 술자리에서의 진지한 대화 시도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주제와 관련도 있는 데다 횡설수설의 궤적도 살필 겸 약간 인용해봤다.

익구 :
분단 상황이 얼마나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저력을 갈아먹고 역량을 훼손하는지 참 슬픈 일이야.
지력도 소모되고, 재력도 더 들고, 인권도 침해되고
여하간 이 분단체제를 무탈하게 극복해내는 거
우리 세대에서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짜 우리 다음 세대에 이게 반복되면 진짜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듯...

B군 :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것저것 보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분단 해결이 점점 멀게 느껴져요. ;

익구 :
동북아에서 신냉전이 도래할지도 모르는 국제정세도 불안한 만큼 스스로 능력을 키우면서도 확고부동한 평화통일의 원칙을 지켜내는 수밖에...
키득키득 이게 다 김정일 일당 때문이야. 막 이러고
개인적으로 북한 내부의 급변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나 그런 식의 통일은 동독의 붕괴보다 더 치명적이고 위험하다는 점에서 함부로 공언할 일은 아니지...

B군 :
급변에 중국이 개입하게 되면 특히 그럴 것 같구요.

익구 :
그러나 나라가 망하려면 속절없이 망하는 게 고금의 상례니 신라가 항복하고,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국치를 맞았듯이 그렇게 스스로 몰락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봐.

B군 :
스스로 몰락한 다음에도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서요. 중국은 북한과 경제적-군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몰락 이후에 북한에 진입하려고 시도할 것 같아요.

익구 :
중국이 한반도 북부로 다시 막 밀려들어온다. 덜덜덜
역시 역사는 반복되는가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아마 다시 중국이 개입한다면 희극이 되길 바라야겠다. 키득키득
암튼 이런 주제로 오프라인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은근히 재미날텐데...
우리도 술자리에서 이런 식의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필요가 있어.

B군 :
예전부터 이야기되던 '대학생 다운 술자리 화제'인 것 같네요. 단순한 일반화인지는 모르겠지만 ^^;;

익구 :
아 예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가
뭐 당장 대학 새내기에게 그런 걸 권하는 건 무리고...
산전수전 겪은 대학 2년차 이상의 사람들은 그런 걸 함 추진해볼 필요가 있지.
귀한 시간 내서 다들 만났으니 기왕이면 좀 더 가치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고.

B군 :
좋죠.

익구 :
근데 나도 말은 이렇게 하고 쉽지는 않다니까.
초동을 끊는 게 완전 압박

B군 :
일단 술이 들어가면 또 힘들지요.

익구 :
뭐 근데 일단 또 함 성사시키면 대박인 경우도 있으니까.


술자리에서 조금 진지하고 다소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 술맛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건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화해와 타협의 술자리는 차이나 갈등을 녹이며 대동단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대개의 통상적이고 평범한 술자리에서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할 수도 있고, 이슈에 대한 찬반을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다. 내 또래의 술자리는 그게 잘 안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여럿이 모이는 대학 행사 뒤풀이의 경우에는 서로 인사 나누고 근황 묻고 약간의 상담을 나누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더군다나 술을 더 마시네 못 마시네 이런 식의 실랑이라도 벌어지면 거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이야기를 할 여지를 많이 줄여버린다.^^;


지난 주말 자취하는 친구 녀석의 집에 가서 족발과 바나나킥, 새우깡과 소주를 놓고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스크린쿼터를 반대하는 영화인들이 FTA 반대를 주장하는 게 언짢다고 했다. 나는 농민과 영화인이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약자와 소수파가 연대하는 건 반가워하고 권장할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친구는 스크린쿼터에 그리 관심도 없을 장동건이나 이준기 같은 유명 배우가 1인 시위 등으로 이목을 끄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는 그네들이 설령 스크린쿼터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 않더라도 유명하지 않은 배우, 이름 모를 영화 관계자들을 위해 사회적 발언을 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반박했다. 미국 민주당의 케리가 갑부지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보다 많이 내는 정당의 대통령 후보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예를 들어가며 사회적 연대를 자꾸 차포 떼듯이, 양파껍질 벗기듯이 축소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기껏해야 보수적인 나이지만 개혁이나 진보를 말하고 실현하는 사람들도 보란 듯이 성공해서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사회가 좀 더 건실하고 역동적일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밖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적잖이 의견 접근을 이루기도 하고 끝끝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기도 했다. 안주 삼아 나눴던 이야기들이 훌륭했는지 취하지도 않고 어찌나 맑은 기운이 맴돌던지.


이른 아침 한적한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서 앞으로 이런 술자리는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올해 초에 세웠던 목표 중에 하나가 내가 먼저 나서서 잡는 약속, 내 주도로 성사시키는 모임을 꾸리지 않는 것이었다. 조금 차분하게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확보하고 지인들과 교류 나누는 재미를 적정하게 통제하면서 좀 더 유익한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려는 거창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다짐을 굳건하게 지키지는 못했다. 내가 먼저 연락해서 놀아달라고 조르고, 날을 잡은 게 하나둘 쌓이면서 나중에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밤의 대화처럼 유쾌한 모임이라면 좀 더 가져줘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바빠지기 전에 그나마 좀 여유로울 때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자리를 가져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올 여름 내수 경기 진작을 위해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과 더불어 잊지 못할 자리도 좀 가져보고 싶다. 나란 녀석이 좀 뜸해지고 떠나있게 될 때, 조금 더 뇌리에 남아 있고 조금 천천히 잊혀지게 하고 싶다. 탁 까놓고 말해 내가 누군가에게 실존하고 각인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소중한 시간 내서 한 자리에 만났다면 그에 상응하는 짭짤한 수익을 서로에게 안겨다 줄 수 있는 노력을 해야겠다. 이런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당장은 어색해도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며 깊이를 더해 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나는 내 둘레를 진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소리를 적잖이 듣는다. 그 재능(?) 마음껏 발현해보자. 가벼움이 대세인 세태에 내 진지 모드가 안 통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주눅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지극한 정성은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자세로 하찮은 나란 녀석을 보듬어주는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보련다. 역설적이지만 약간의 긴장이 사람 사이를 좀 더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거 같다. 진지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 [小鮮]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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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알라딘 서재에서 알게된 마태우스님의 술 일기를 읽다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을 만났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여정님의 이야기다. 술을 마실 때마다 "경제를 살려야 해!"라고 말씀하시고, 마태우스님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경제 살리고 있어요!"라며 자긍심을 내비치시는 분이다. 예전에 강준만 선생님이 "독립된 사람들끼리의 연대는 의외로 무서운 것"이라고 인물과 사상에서 써놓으셨던 문구가 떠오른다. 정말 마태우스님이나 여정님의 존안을 뵌 적도 없고, 술 한 잔 나눠본 적도 없고, 경제에 대한 고견을 청해본 적도 없지만 이 땅의 어디선가 같은 뜻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2004년 4.18 구국대장정에 대한 중앙운영위원회가 있던 날 올해 4.18 기조와 구호를 논의하는 시간이 있었다. 비정규직 철폐, 파병 철회, 신자유주의 반대 같은 문구들이 줄줄이 제시되었고 일사천리로 통과가 되었다. 침묵하고 있던 나는 사실 "내수경기 진작하자"는 구호를 제안하고 싶었다. 내수라는 단어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말하지는 않았다. 내 진솔한 고민이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역시 경영학도가 생각하는 건 고작 그 수준이지 이런 경멸이나 받아 경영대 학우들께 누를 끼칠까봐 그만뒀다. 4.18이라는 행사는 너무 엄숙했고, 행사를 관장하는 학생회 일꾼들은 너무 경직됐다. 대신 나는 2005년 새해 인사 문자를 보내면서 내수경기 진작하자는 구호를 건넸고,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공식, 비공식 선거자금이 시중에 유통되게 마련인 전국적 선거를 얼마 전 치렀다. 그런데 국내 경제 규모가 원체 커졌다 보니 그 효과가 미미하다고 한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생각에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앞선다. 이렇게 커질 대로 커진 우리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내 자신이 좀 더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사명감이 압도한다. 머잖아 내 진로에 대한 준비로 말미암아 마음껏 놀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뭔가 내 몫을 해내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구국의 처음처럼, 불패의 참이슬이 나설 때다.


지인들이 대부분 여름방학이라는 점을 착안해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캠페인을 벌이려고 한다.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를 벤치마킹한 "술 술 술 술을 마십시다!" 프로젝트다. 앞으로 소주 한두 잔 먹고 경제를 살렸다고 뿌듯해하지 않기로 했다. 소주 한 병은 먹어야 이제 좀 내수 진작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싶다. 이 숭고한 취지에 동감하는 이들의 정성을 모아 이 여름 우리 경제가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 방학기간인 7, 8월 두 달 동안 지인들에게 제안할 실천강령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봤다.


1. 15번 이상의 술자리를 가진다(나흘에 한 번 꼴).
2. 안주는 남기지 않을 선에서 최대한으로 시킨다.
3. 될 수 있으면 사람을 많이 모아서 마신다.
4. 소주보다 세율이 높은 맥주도 많이 마셔준다.
5. 어떤 자리든 제 주량의 2/3 이상은 먹도록 한다.


내 자신은 이 다섯 가지를 다 지키려고 하겠지만 너무 기준이 엄격하면 중도에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 주위에는 다섯 개 중에 세 개를 실천하길 권할 생각이다. 그간 못 만났던 지인들과 약속을 잡고 주저 없이 잔을 나누리라. 우리 경제에 대한 허심탄회한 난상토론을 안주 삼아 나누면 금상첨화다. 여정님의 감동적인 멘트를 빌려와 늦은 저녁에 "지금 경제를 살리고 있어요. 함께해요!"라는 연락을 돌려봐야겠다. 문득 고개를 들어 유독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 보이거든 "아 익구가 어디선가 내수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주시길.^-^ - [小鮮]


추신 - 해외로 나갔다 오는 분들은 좀 더 특별관리를 해야 한다. 그 기간 동안은 내수를 살릴 수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그간 유출한 국부를 감안해 좀 더 가열찬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일단 떠오르는 건 중국 유학 중인 친구 섭공이다. 7월에 학기가 마치고 돌아올 그에게 나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둘 것을 권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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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이란 이름은 1858년 H. D 마크로드가 명명한 것이다. 영국의 금융가인 그레셤(Thomas Gresham, 1519-1579)이 내놓은 화폐 유통에 관한 법칙으로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는 말이다. 이는 그레셤이 악화를 개주(改鑄)하여 외국환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구상을 엘리자베스 1세에게 진언한 편지 속에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는 한 사회 안에서 귀금속으로서 값어치가 큰 화폐와 값어치가 작은 화폐가 동일한 화폐가치를 지니고 유통되는 경우(실질가치가 다른 두 화폐가 똑같은 명목가치를 지닐 경우), 귀금속 가치가 큰 화폐는 유통에서 사라지고 가치가 작은 화폐가 활개를 친다고 주장했다.


18세기까지 유럽에서 쓰인 돈은 모두 은화 아니면 동화였다. 지폐와 달리 금속화폐는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했다. 1파운드의 금이나 은이 그만한 가치를 액면으로 반영했고, 그 무게단위가 화폐단위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재정 부담을 줄이고자 순도가 떨어지는 은화나 동화를 생산해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순도가 높은 은화는 쓰지 않고 저장해 두고, 순도가 낮은 은화만 널리 사용했다. 가령 빳빳한 새 지폐는 좀 더 보관하려 하고, 너덜너덜 낡은 지폐는 얼른 써버리는 행위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금화와 은화가 똑같은 액면가를 가질 경우 될 수 있으면 금화는 쓰지 않고 저장하고, 은화만 쓰게 된다. 금화는 차라리 녹여서 금괴나 장식물로 쓰거나 해외로 반출하는 게 이득이 되어버린다. 가령 희소성이 있는 기념주화가 거의 유통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기 그 뿐인가. 주화 가장자리를 조금씩 깎아내 모은 금, 은을 팔았다고도 한다.^^;


1866년 흥선대원군은 당백전(當百錢)을 찍어내 강제로 사용토록 했다. 당백전은 당시 통용되던 상평통보(常平通寶, 엽전)의 100배에 해당하는 큰돈이었지만 중량은 상평통보의 5,6배에 지나지 않았다. 당백전의 실질가치는 명목가치의 20분의 1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상인들이 당백전 받기를 꺼리자 강제로 당백전을 유통시키기 위해 애썼고 나중에는 양화인 상평통보 대신 악화인 당백전만 유통되어 물가가 폭등했다. 당시 백성들은 당백전에서 백자를 뺀 당전을 거세게 발음해서 ‘땅전’이라 불렀고, 땅전은 뒤에 ‘땡전’으로 일컬어졌다. 당백전에 대한 혐오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흥선대원군은 화폐발행차익(seigniorage)을 이용해 경복궁을 다시 지어 후손들에게 번듯한 문화유산을 물려줬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오늘날에는 금속화폐 대신 신용화폐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 그레셤의 법칙은 화폐 유통을 설명하는 적실성을 잃었다. 오히려 경제학 이외의 분야에서 다양하게 응용되는 경우가 많다. 경영학자 H. A.사이먼은 경영의 의사결정문제로 전환해 “계획의 그레셤법칙”을 주창했다. 이는 경영자가 정형적 결정 책임과 혁신적 결정책임을 동시에 지니고 있을 때 일상적인 정형적 문제처리에 쫓겨 혁신적ㆍ전략적 결정을 놓치거나 미루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장기적 수익모델을 창출하고 급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혁신적ㆍ전략적 결정이 통상 사무처리인 정형적 결정에 밀려 버리는 것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매일 매일 주문처리와 재고관리에만 얽매여 있다가 신기술 도입이나 신상품 출시를 소홀히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혁신적 결정을 수행하기 위한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며 전문화된 부서를 설치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다소 엄밀한 학적 개념 외에도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그레셤의 법칙을 적용해볼 수 있다. 본래 그레셤의 법칙은 선악의 가치판단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 영역으로 확대 적용되어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득세하는 세상을 개탄할 때 자주 쓰인다. 가령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을 때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이 부패하고 무능한 사람에게 밀려날 때 그레셤의 법칙을 떠올려봄직 하다. 양질의 전문 학술 서적은 맥을 못 추고 할인 경쟁을 하는 대중서적들만 난무하는 도서출판계의 사정도 비슷하다. 어쩌면 이토록 다양한 변용이 가능한 까닭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이기심을 바로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나 파사현정(破邪顯正)이니 하는 말들이 허울뿐인 구호라는 체험적 지식에서 연유된 것은 아닐까.


그런데 反그레셤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다. 디지털 기술 기반의 여러 제품이나 서비스가 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탈바꿈하는 것을 가리키는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가 그 주인공이다. 기술 경계를 허물고 통합해 새로운 기술을 지향하는 흐름에는 악화가 마냥 넘쳐날 수 없게 만든다. 즉 시장지배세력이 기득권에 안주하며 신제품의 출현을 지연시킬 여지를 줄이게 된다. 소니는 브라운관 TV의 명품 브랜드인 베가(WEGA)를 지키려고 했지만 삼성전자를 위시한 LCD TV의 성장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소니는 2005년 LCD TV 전용 브랜드인 브라비아(BRAVIA)를 출범함으로써 LCD TV 경쟁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디지털컨버전스와 반 그레셤의 법칙” 전자신문. 2004. 03. 08. 참조). 이처럼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경우가 좀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악화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자발적인 혁신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양화와 악화로 가름하는 건 편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재미나기까지 하다. 그레셤의 법칙을 들어 악화가 만개하는 세상이 도둑처럼 찾아오게 하지 말자고 외치는 건 얼마나 명쾌하고 통쾌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양화와 악화의 이분법으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양화와 악화의 건곤일척을 상정하면 싸움 구경하는 재미야 있겠지만 다원주의 사회에서 명백한 악화는 드물기 때문이다. 어쩌면 독선과 오만이야말로 진짜 악화인지도 모른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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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세(Tax Saving)는 기본권이야!”


세무학을 공부하는 친구의 일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절세는 세법이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이는 행위다. 강남구 의회를 비롯해 서울과 경기도 상당수 자치단체가 올해 주택분 재산세를 최고 50%까지 인하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투덜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불법이 아닌 것에 너무 분개하는 건 그다지 좋은 태도가 아닌 것 같다. 명백한 불법을 제 때 단죄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세상인데 그런 것까지 너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렇게 쿨하게 넘어가기에는 뭔가 조금 석연치 않다. 서울지역 25개 구 중에 20곳이 인하했는데 내가 사는 중랑구가 그 혜택을 입지 못해서 섭섭해서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재정 형편이 어려워 탄력세율을 적용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니 세금 아껴서 책을 더 사보거나 하지는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재산세에 탄력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기존의 계획을 강행하고 있어 ‘동일가격 동일세금’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도 일가견이 있다. 재산세 탄력세율은 아파트를 비롯해 주택을 소유한 주민들의 재산세를 인하해주는 것을 말한다. 물론 재산세 탄력세율 적용은 지방세법에 근거한 합법적인 조치다. 현 지방세법상 주택에 대한 재산세율은 상하 50%범위에서 지자체가 자율로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같은 세금을 놓고 이를 깎아주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양분되는 건 조세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파트 투기와는 거리가 먼 강원도 사정 탓인지 강원일보에서 비교적 높은 어조의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수도권의 아름다운 감세 열풍과는 달리 강원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재정자립도가 낮아 세수 감소로 이어질 재산세 인하를 선뜻 따라하지 못할 것이다.


주택공시가격이 적잖이 올랐기 때문에 늘어나는 세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 구청측의 입장에 적잖이 동감한다. 2006년 부과되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는 공시가격이 전년대비 18.5% 가량 크게 오른 데다 과표 적용률 상향 조정으로 인하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부동산 불로소득 회수가 목적이라면 양도소득세 인상이 해법이지, 자꾸 보유세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항변도 설득력 있다. 일단 정부는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를 기본원칙으로 보유세(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강화에 따른 세수증가분은 거래세(취득세, 등록세) 인하와 연계해 국민 전체의 세부담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개선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이번 보유세 개편의 핵심은 주택보유에 따른 세부담을 늘려 시세차익이나 임대료 등으로 발생하는 주택보유의 수익률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보유세 부담은 주요국들에 비해 낮은 것이 사실이다. 주택가격 대비 보유세 비율인 보유세 실효세부담률은 2005년 현재 0.15%로 미국의 1.69%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보유세 실효세부담률을 어느 수준까지 끌어 올리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 일정 정도의 인상은 크게 반대할 명분도 없다. 그런데 보유세 인상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차가운 것은 왜일까.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이 말한대로 “부동산세는 소득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즉 돈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저항이 심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더군다나 정부가 2%p 낮췄다나는 거래세도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해서 거의 체감할 수 없게 된 것도 실책이다. 세금을 인상하더라도 납세자의 부담 능력과 심리적 충격을 고려해 증가속도와 증가폭을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금 가파르게 세금을 올릴 경우에는 정말 성심성의껏 그 불가피성을 설득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정부와 여당은 그 점에서 섬세하지 못했다.


2.
여하간 재산세와 더불어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살펴보자. 종부세 산출세액은 ①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 - ②차감재산세액 - ③세부담상한초과액으로 정리할 수 있다. 좀 더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 = 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 × 세율
* 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 =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자산 공시가격 - 종합부동산세 기준금액) × 70%(2006년도 기준)
② 차감재산세액 = 재산전체에 부과된 재산세 - 종합부동산세 기준금액에 부과된 재산세
③ 세부담상한초과액 =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 - Min(세부담상한액,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


② 차감재산세액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종부세 과세대상 자산은 지방세법의 재산세의 과세대상이기도 하다. 재산세가 과세되고 종부세가 또 과세된다면 이중과세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에 따라 종합부동산세법에선 종부세 과세대상 자산에 이미 부과된 재산세는 종부세에서 차감한다.


③ 세부담상한초과액이란 종부세를 도입하더라도 종부세 과세대상 자산에 대한 보유세 부담의 급격한 인상을 막기 위해 세부담 상한선을 두는 것을 말한다. 2005년에 1.5배이던 것을 3배로 상향조정했다. 만약 2005년에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해 1,000만원을 납부했다면 올해 보유세 부담상한은 1,000만원 × 300% = 3,000만원인 셈이다. 만약 2006년도에 재산세가 800만원이고, 종부세가 2,500만원이라면 종부세는 2,200만원만 납부하게 되는 것이다.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Min(세부담상한액,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를 이용해 계산을 해보자. 종부세의 세부담상한 초과액을 계산하려면 부담한 재산세액은 빼줘야 하기 때문에 세부담상한액은 3,000만원-800만원=2,200만원으로 계산된다. 따라서 세부담상한초과액은 2,500만원-Min(2,200만원, 2,500만원)=300만원으로 산출된다.


당최 이게 뭔 소리란 말인가. 그래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강남구에 따르면 공시가격이 24억3900만원인 삼성동 아이파크 73평형은 지난해 재산세 418만5000원을 납부했지만 올해는 재산세 583만7500원과 종부세 1519만8500원을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재산세 탄력세율 50%를 적용하면 재산세가 291만원으로 크게 줄어들고 대신 종부세는 1749만7250원으로 다소 늘어난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재산세 탄력세율 50%가 적용되면 재산세의 상당액이 종부세로 전가돼 고가주택은 주민의 세부담 경감 혜택이 축소된다"고 밝혔다.

- “서울 자치구 재산세 인하추진” 매일경제. 2006. 05. 30


위 기사의 사례에서 나온 수치가 도출되는 중간고정을 낱낱이 밝혀보겠다. 다만 세부담상한초과액은 계산에서 제외하도록 하겠다. 무려 네 시간동안 독학으로 끙끙대다가 구했으니 내 부족한 수리능력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우선 계산은 “(공시가격 × 과표적용률) × 세율”의 기본 구조를 가진다. (공시가격 × 과표적용률)이 과세표준을 의미하는데 과세표준(standard of assessment)은 말 그대로 세금을 부과함에 있어 그 기준이 되는 것을 말한다.


○ 24억3900만원에 대한 재산세 과세
재산세 과세표준 : 1,219,500,000원(공시가격의 50%)
* 2008년부터는 2006년 현재 50%인 과표적용률을 매년 5%포인트씩 높여 2017년 100%로 올릴 계획임.

공시가격 8,000만원 이하(세율 0.15%)
(80,000,000 × 50%) × 0.15% = 60,000
공시가격 8,000만원 초과 2억원 이하(세율 0.3%)
(120,000,000 × 50%) × 0.3% = 180,000
공시가격 2억 초과(세율 0.5%)
(2,239,000,000 × 50%) × 0.5% = 5,597,500

∴ 60,000 + 180,000 + 5,597,500 = 5,837,500원

○ 6억원을 초과하는 1,839,000,000원에 대한 종부세 과세, 즉 산출세액전 종부세 산출
종부세 과세표준 : 1,839,000,000원(2,439,000,000 - 600,000,000)
* 2006년 현재 70%인 과표적용률을 매년 10%씩 상향조정하여 2007년 80%, 2008년 90%, 2009년 100%로 올릴 계획임.

공시가격 6억원 초과 9억원 이하(세율 1.0%)
(300,000,000 × 70%) × 1.0% = 2,100,000
공시가격 9억원 초과 20억원 이하(세율 1.5%)
(1,100,000,000 × 70%) × 1.5% = 11,550,000
공시가격 20억원 초과 100억원 이하(세율 2.0%)
(439,000,000 × 70%) × 2.0% = 6,146,000

∴ 2,100,000 + 11,550,000 + 6,146,000 = 19,796,000원

○ 6억원 초과한 18억3900만원 상당의 재산세분에 대한 이중과세조정, 즉 차감재산세액 산출
(1,839,000,000 × 50%) × 0.5% = △4,597,500원

☆ 종부세 산출세액 = 19,796,000 - 4,597,500 = 15,198,500원
☆ 보유세 산출세액 = 5,837,500 + 15,198,500 = 21,036,000원


여기서 재산세가 50% 인하된다면 ...

○ 재산세는 5,837,500원 × 50% = 2,918,750원으로 인하

○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액은 위와 마찬가지로 19,796,000원

○ 그러나 차감재산세액의 변동이 있음, 종전의 차감재산세액 산출에서 재산세 인하폭인 50%만 계산
4,597,500 × 50% = △2,298,750원

☆ 종부세 산출세액 = 19,796,000 - 2,298,750 = 17,497,250원
☆ 보유세 산출세액 = 2,918,750 + 17,497,250 = 20,416,000원

◎ 재산세 50% 인하에 따른 절세 효과
21,036,000 - 20,416,000 = 620,000원

아쉽게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재산세의 20%인 지방교육세와 재산세 과표의 0.15%인 도시계획세가 더해지고, 종부세의 20%인 농어촌특별세라는 부가세(surtax)가 더해지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생략했다. 여하간 이렇게 해서 보유세 대장정은 일단락된다.


3.
재산세 탄력세율 50% 적용이 되어도 고가주택 주민의 세부담 경감 혜택은 축소된다는 강남구청 관계자의 주장은 상당히 호소력 있다. 고가주택 주민들은 재산세 인하된 만큼 종부세가 늘어나게 된다. 종부세는 국세이고, 재산세는 지방세다. 중앙정부의 살림을 위해 국민으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을 국세라 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을 위해 지역주민으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을 지방세라 한다. 국세는 중앙정부의 행정관서인 국세청(세무서)과 관세청(세관)에서 부과·징수하며, 국방·치안·교육 등과 같은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된다. 지방세는 지방자치단체인 특별시와 광역 및 도와 시·군·구의 행정기관에서 부과·징수하며, 상·하수도 및 소방 등과 같은 지역주민의 이익과 지역발전을 위해 사용된다. 결국 재산세 인하되고 종부세 인상될 경우 강남 이외의 지역에서도 쓸 수 있는 국세가 늘어나기 때문에 반드시 강남에만 좋다고 볼 수도 없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강남 고가주택 소유자에게 해당되는 말이고, 종부세 부과와 관계없는 강남의 대다수 서민들은 재산세가 줄어드는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강남 서민들이 혜택을 누리는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에 곱지 않은 시선이 가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강남이라는 상징자본이 표상하는 이미지가 크게 작용한 듯하다. 그러나 강남의 주민보다 싼 주택을 가진 다른 지역의 주민이 더 많은 재산세를 내는 역설은 그리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강북지역 주민들이 강남지역 주민보다 세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건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또한 수도권 전체로 시야를 넓혀서 보면 수도권처럼 주택값이 오르는 곳은 세금을 깎아주고 오르지 않는 지방은 세금을 그대로 내야 하는 것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할 공산이 크다. 이런 식의 선심성 행정이 해당 지역의 복지나 문화 등의 행정 서비스 축소, 지방재정의 왜곡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실제로 강남구청은 세수 부족 등을 우려 탄력세율을 30%로 낮춰달라며 재의를 요구했다가 무산되었다. 구의회가 지자체의 재정이나 행정, 국가 정책에 대한 보조는 뒷전에 두고, 주민들의 민원 해결을 빌미로 조삼모사(朝三暮四)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생긴다.


부자 지자체들의 이기적 행동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일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세제 강화라는 국정 취지를 지켜가려면 조세감면 제도의 정비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의 재정 보조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세목(稅目)교환, 공동재산세 같은 정책들도 검토하는 적극적 노력을 통해 조세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해야할 것이다. 아울러 지방에서도 주민들의 세금부담을 완화하면서도 재정자립도를 확충할 수 있는 세원정책과 재정운용을 고심해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의 영역에서 국민들의 복리후생 증진을 위해 경쟁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부동산 관련 조세 정책의 핵심이 부동산투기 근절이라면 정책 실현 과정에서 촉발된 서민과 중산층의 실질적, 심리적 부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부동산 정책은 다른 경제사회정책과 상호 관련이 있는 만큼 세금 정책만 들여다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가령 지역균형발전정책 같은 정책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부추긴 것은 아닌지 기존의 정책들도 고찰해야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세력에게 버티면 된다는 식의 신호를 주지 않으면서도 서민과 중산층의 심리적 섭섭함을 어루만질 수 있는 묘안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앞으로도 양극화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한 증세와 감세를 둘러싼 세금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지속적인 세금 토론을 통해 사회 저변의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小鮮]


<추신>
1. 아 나중에 돈 벌면 종부세를 꼭 좀 내고 싶군요.^^;
2. 열심히 공부해뒀는데 종부세법이 개정되면 낭패
3. 재산세, 종부세 계산할 때 도표 같은 걸로 멋들어지게 만들지 못해서 죄송해요.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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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경영학도?

경제 2006. 6. 14. 01:00 |
그러나 5.31 지방선거가 보여주듯이 한국의 진보는 정점에서 다시 추락하고 있고 한국의 보수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보수의 부활은 다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추동되었다. 첫째, 한국 진보의 실패가 한국의 보수에게 부활이라는 반사이익을 안겨주었다. 한국의 진보는 정권을 장악했을 때, 통치능력 (governability)을 보여주지 못했다. 진보정권은 세계화의 도전에 대응하여 성장촉진형 분배정책, 분배개선형 성장정책의 개발을 통해 경제영역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는데 실패하였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나 동반성장이라는 수사학은 요란했으나, 성장은 부진했고 분배상황은 악화되었다. 사회의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진보의 지지기반은 약화되었다. ‘고용없는 성장’으로 청년 실업층이 증가하면서 진보의 강고한 지지층을 형성해왔던 20대의 이반이 일어났다.
- 임혁백. “한국사회는 보수화되고 있는가” 교수신문. 2006. 06. 05.


도둑처럼 다가온 한나라의 천년왕국(?)에서 영락을 누리기를 마다하는 내 자신이 밉다.^^; 임혁백 교수님의 글 중에서 “성장촉진형 분배정책, 분배개선형 성장정책”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 왔다. 앞으로 짬을 내어 그 쪽을 고심해보고 싶다는 야심에 불타 올랐다. 가령 파이는 언제까지 키워야하는 것인가, 성장우선주의는 극복할 수 없는 절대선인가, 양극화 문제를 좀 더 합리적으로 조정가능한 방안은 무엇인가 같은 주제들을 놓고 궁리해봐야겠다는 의욕이 생겨버렸다. 조세정책을 비롯한 분배정책, 공정거래/재벌 문제/소유지배구조를 검토하는 기업이론, 균형 잡힌 노사관계, 납득 가능한 국민연금 개혁, 부동산 문제 해법, FTA를 위시한 통상정책 등의 주제를 놓고 모자란 머리를 신나게 굴려보고 싶다. 사실 내 학부 전공과 적잖이 관련도 있고 말이다. 그간 너무 외도(?)가 심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돌아온 탕자(蕩子)가 되어 볼 참이다. 돌아온 탕자가 올바른 길을 간다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기실 명색이 경영학도이면서도 내 전공을 조금 업신여겨왔던 거 같다. 수리에 약한 내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구차한 숫자놀음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아주 좋아서 경영학도가 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굴러들어간 것이지만 이 운명 같은 만남을 통해 내 자신이 많이 배우고 성장했음을 이제야 밝힌다. 경제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경영, 경제에 대한 이해와 기업인에 대한 합리적 비판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좀 더 확장해봐야겠다. 내가 돌아가는 까닭은 한번뿐인 삶을 대충 살지 않기 위해서다. 경영, 경제학적 지식을 좀 더 연마해야겠다. 몰라서 당하기는 싫다. 가령 서울대 박세일 교수는 부유한 국민이 사는 덕 있는 나라라는 “부민덕국(富民德國)”이라는 이상을 제시했다. 나도 실질적 분배를 구현하는 성장전략을 어떤 식으로든 모색해보고 싶다. 부민(富民)은 그 누가 독점하기에는 너무 소중하고 절실한 문제다. 그러나 적어도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외우고 싶지는 않다.


2005년 4월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11기 3차 회의에서 공개된 북한의 2005년 예산은 북한 돈으로 3,885억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이 미화 1달러에 북한 돈 135원50전 정도의 공식 환율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28억7,000만 달러가 2005년 북한 예산이라고 추정했다. 그 당시 환율 1달러에 1,000원으로 계산하면 한국 돈으로 2조 8,700억원이 북한의 한해 예산인 셈이다. 한국 정부 예산 195조원의 약 1/70 규모다. 2005년도 한국 국방비가 20조8,226억원이었던 것을 따져볼 때 북한의 예산 전액이 국방비에 투입되더라도 한국 국방비의 1/8 수준이라는 점이 충격적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지는 않고 북한은 국방비가 전체 예산의 15.9%인 618억원(한국 돈 약 4,600억원)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실제 국방예산은 공개된 것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의 계산에 따르더라도 북한의 국방 예산은 1조원 이상에 불과해 우리 국방비의 1/10도 안 된다.


북한의 예산체계가 우리의 그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물가도 차이가 난다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이 수치는 놀랍다. 왜 훈련소의 정훈 장교는 미군이 없으면 우리가 북한을 이기기 힘들다고 열변을 토했을까. 당최 우리나라 군대는 이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예산을 가지고도 북한 하나 이기지 못하는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다니 기가 막히다. 물론 공격을 하는 쪽이 방어를 하는 쪽보다 쪽수나 물자가 우세해야 한다는 건 병가의 상식이다. 그런데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을 우리가 먼저 침공할 일도 없을 터이고 방어를 위한 전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이쯤 되면 군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문책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군 장성부터 예비군 동대장에 이르기까지 매일 밤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베갯잇을 물기로 적셔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여하간 이런 식으로 조금만 유식해지면 사기도 덜 당하고 남 좋은 일을 나 좋은 일이라고 착각하지 않게 된다.


성경에 있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찾아 음미했다.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 있는 이 이야기에는 아버지로부터 재산 상속분을 미리 받아 머리 떠났다가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허비하고 빈털터리로 돌아온 둘째 아들이 나온다. 돌아온 못난 자식을 아버지는 측은히 여겨 달려 나와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열어준다. 그간 아버지 곁을 지켰던 착실한 맏아들은 “그동안 내 벗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도 주지 않으시더니 놀다 온 아들에게는 이렇게 잔치를 베풀어 줄 수 있느냐”며 불평한다. 아버지는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지만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다”며 달랜다. 사실 내가 탕자 흉내를 낸다고는 했지만 묵묵히 실천으로 보여줬던 맏아들의 심정은 충분히 동감할 수 있을 듯싶다.^^;


아버지를 떠날 때는 스스로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돌아올 때는 다시는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탕자의 마음이 되어 본다. 나는 둘째 아들처럼 내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경영, 경제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돌아온 탕자의 마음처럼 다시는 내 전공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경영학의 이름으로 기도한다(어느 목사님의 설교문의 표현을 데려와 바꿔봤다). 어쩌면 내 전공은 집 나간 경영학도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축복하기를 빨리 하시는 사랑의 경영학은 인내하심으로 기다리는 사랑, 내 더러움을 개의치 않는 사랑, 좋은 것으로 바꾸어주시는 사랑, 내 방황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랑을 주신다. 어찌 아니 경배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 이제 경영학 어버이의 품으로 돌아가야겠다. 이제는 경영학의 전능(?)을 뼛속에 새기며 경영학을 나의 지적 스승으로 모시고 경제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새 인생을 살아야겠다. 내게도 잔치를 베풀어주시리라. 금의환향을 못한 귀거래사일지언정 고향은 언제나 그립다. 돌아가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맸지만 멀어진 건 아니다. 비로소 지금이 옳고 어제가 그릇됨을 알았기에(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경영경제宗敎(?)에 귀의하면서 너무 요란을 떨었나.^^; 다시금 강조한다. 몰라서 당하는 게 싫어서 돌아간다. 내 마음의 고향으로. - [小鮮]


혁명적 변화는 사람들에게 영웅적 행위 속으로 개인의 삶을 투척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의 경우 일상적 삶에서 잃어버릴 것이 없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발전 단계에 두드러진 것은 일상적 삶의 성장이다. 그것을 넘어, 해야 할 많은 일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얻은 것에 기초하면서 그것을 넘어가는 것이라야 한다. 마르크스적 혁명 이상에 공감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성쇠를 지켜보면서 사회 혁명의 바른 방법은 마치 시인이 사실을 비유적으로 변화시켜 원래의 의미를 확대하듯이 사회가 드러내주는 사실 자체의 성격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의 과제는 현실의 핵심적인 사실에 충실하면서-이 현실이 사람의 삶의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그것을 보다 온전한 것으로 바꾸어 가고, 그것을 보다 나은 다음 단계로 유도해 가는 것이다.
- 김우창. “[시대의 흐름에 서서] 정치와 일상적 삶” 경향신문. 2006.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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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님 고별 강연 동영상(오마이뉴스)

6월 8일 신영복 선생님이 올해로 17년째인 교수 생활을 마감하는 고별 강연을 가졌다. 운 좋게도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넷으로 생중계해주는 것을 챙겨볼 수 있었다. 선생님 강연의 핵심은 석과불식(碩果不食)이었다. 가장 위태롭고 절망만이 가득 찬 때가 바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기회라는 말이다. 석과불식은 주역(周易)의 박괘(剝卦)의 효사(爻辭)를 풀이한 구절로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며, 왕필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선생님께서 동서고금의 수많은 담론 중에서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다.


박괘는 단 한 개만 남아있다는 뜻으로 “세상에 나쁜 악이 만개해 있고 단 한 개의 가능성, 희망만이 가느다랗게 남아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마저도 언제 음효로 전락될지 모르는 곤경의 상황을 의미하는데 주역 64괘 가운데 제일 어려운 상황을 나타낸다고 한다. 한 괘(卦)를 이루는 각 효(爻)의 뜻을 설명한 글을 효사라고 한다. 박괘의 효사인 석과불식에서 석과(碩果)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지막으로 매달린 과실이라는 뜻으로 절박하고 위태로운 상황을 상징한다. 이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의 복(復)괘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선생님은 엽락(葉洛)과 분본(糞本)을 말씀하셨다.


엽락이분본(葉落而糞本), 잎이 떨어져 뿌리의 거름이 된다는 말이다. 엽락(葉落)은 잎사귀를 떨어야만 줄기가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거품 속에 가려 있던 우리 사회의 경제적 구조, 정치적 주체성, 문화적 자존을 냉정하게 직시하자는 외침이다. 분본(糞本)은 잎사귀가 떨어져 뿌리를 거름하고 북돋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뿌리(本)는 곧 사람(人)을 말한다. 선생님은 가장 중요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절망의 괘를 희망의 괘로 바꿀 수 있음을 역설하셨다. 아울러 잎사귀를 떨구고 뿌리를 거름하려면 겨울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의 뿌리,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가질 것을 당부하셨다. 고독 속에서 제 자신, 제 둘레의 실상을 마주하는 건 그 얼마나 두렵고 아픈 일인가.


선생님은 차가운 머리만으로는 안 된다, 뜨거운 가슴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말씀하셨다.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 가장 먼 여행”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애틋하다. “각박한 언어로 제시되면 안 되고 더 큰 인간적인 애정 속에서 융화될 때 진정한 담론”이 된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다. 선생님은 사회 변화를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고백(?)하셨다. 그러나 변화시키려는 과정 자체가 인간적이고 아름답고 보람 있으면 그것으로서 훌륭한 사회임을 강조하셨다. 꽃을 피우기보다 곳곳에 씨를 묻는 노력을 함께해나가기를 당부하셨다. 나는 과연 얼마나 사람의 가치를 온전하게 읽어내고 키워낼 수 있을까. 내 대책 없는 낙관주의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는지 반성해본다.


선생님은 어리석은 사람의 우직함 때문에 세상이 더 나아진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에 자기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는 사람이 끝끝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어리석음은 단순한 무지는 물론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 땅의 구접스러움을 익히 알면서도 차마 구합(苟合, 구차하게 영합함)하지 않는 태도는 아닐까. 힘겹다는 것을 알면서도 냉소하지 않고 시시한 실천을 다하는 자세가 아닐까. 현란한 희망과 믿음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합리적이지 못할 때도 많고 정의를 외면하고 강자에 굴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무한의 신뢰를 보낼 만큼 너그럽지 못하다. 그러나 나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기대한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남에게 잔학하게 굴지 못하는 마음은 사람에게 품는 희망의 고갱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인성, 품성으로 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고별강연의 강연료를 대신할까 한다. 선생님이 늘 건승하시고 건필하시길 바란다. - [小鮮]


다음은 신영복 선생님의 고별 강연에서 사용된 사전원고 전문이다.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碩果不食)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언어가 바로 희망이라고 생각된다. 아마 그 다음이 인내일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무작정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면 희망은 견디기는 견디되 곤경의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이다. 무작정 인내하기보다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경우가 훨씬 수월하다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수시로 확인된다. 절망이란 의미가 희망이 없다느 뜻이고 보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희망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희망도 희망 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희망이 단지 소망이나 위안에 불과한 적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다"는 시구를 비롯하여 희망의 언어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수많은 담론 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는 '석과불식'이다. 이 말은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욱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기도 한다. 주역 박괘의 효사에 있는 구절이다. 씨 과실은 결코 먹히지 않는 법이며 씨 과실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이 말에서 나는 옛 사람의 지혜를 읽게 된다. 수많은 세월을 면면히 겪어오면서 터득한 옛사람들의 유장함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이 괘를 읽을 때마다 고향의 감나무를 생각한다. 장독대와 우물 옆에 서 있는 큰 감나무다. 무성한 낙엽을 죄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만 서 있는 초결울의 감나무는 들판의 전신주와 함께 겨울바람이 가장 먼저 달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겨울의 입구에서 그 앙상한 가지로 서 있는 나무는 비극의 표상이며 절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앙상한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빨간 감 한 개는 글자 그대로 희망이다. 그것은 먹는 것이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씨를 남기는 것이다. 나목의 가지 끝에서 빛나는 가장 크고 탐스런 씨 과실은 그것이 단 한 개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희망이다. 그 속에 박혀있는 씨는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석과불식이 표상하는 이러한 정경이 더 없이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의 언어를 이처럼 낭만적 그림으로 갖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낭만은 흔히 또 하나의 환상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곤경에서 갖는 우리들의 희망이 단지 소망이나 위안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의미로 이 정경을 읽어야 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은 우리들 스스로가 키워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밭을 일구고 씨를 심는 경작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WTO, IMF, FTA 라는 일련의 힘겨운 상황에서 나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잇는 박(剝)괘를 연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진정한 희망을 갖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환상이나 소망이 아닌 진정한 희망을 키워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당면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나는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의 뼈대를 직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성한 잎이 떨어지고 한파 속에 팔 벌리고 서있는 나목의 뼈대를 직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품이 걷히고 난 후의 우리 경제의 모습을 직시하는 일이다. 비단 경제구조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틀어 돌이켜 보는 일이다. 그러한 역사를 살아온 우리들 스스로의자화상을 대면하는 일이다. 남의 돈을 빌려 살림을 꾸리고 자녀들을 내몰아 오로지 돈 벌어 오기만을 호령해 온 어른들의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든 이 겨울을 넘기고 나면 다시 봄이 오겠지. 이것은 안이한 답습의 낡은 언어이며 결코 희망의 언어가 아니다. 희망은 새로운 땅에 싹트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희망은 새로운 땅을 일구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동토에 쟁기를 박아 넣는 견고한 의지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패배할 수 없는 천근의 땅에 씨앗을 심는 각오여야 하기 때문이다.


산지박괘의 다음 괘는 '지뢰복' 괘다. 다섯 개의 음효가 위로 쌓여 있고 제일 밑바닥에 한개의 양효가 싹트고 있는 모양이 복 괘의 형상이다. 글자 그대로 광복이다. 씨 과실 속에 있던 씨앗이 땅 속에서 싹 트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가능성을 키워내는 것 이것이 절망의 괘에서 희망을 읽는 진정한 독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곤경을 견뎌야 할 지 모른다. 그럴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희망의 언어다. 희망을 키워내는 실천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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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에서 주관한 2006 문화유산 사진 및 답사후기 공모전에 출품한 졸작입니다. 솔직히 입선 말석이라도 될 줄 알았는데 똑 떨어졌어요. 문화재청을 살짝 구박하는 내용이 있어 미움을 산 거 같기도 하고, 답사기 콘셉트가 주최 측이 원하는 것과 좀 안 맞았던 거 같기도 합니다. 물론 이건 농담 삼아 해본 말이고, 다른 분들이 좋은 글을 많이 써주셔서 많이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양왕릉에서 고려를 추억하다>




1.
사육신묘 답사를 함께 갈 지인들을 찾다가 너는 왜 그리 무덤을 좋아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짬짬이 흥덕왕릉, 무령왕릉, 능산리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 경순왕릉, 고려 고종 홍릉과 고려 희종 석릉, 세종대왕릉, 의릉, 태릉, 동구릉, 홍유릉, 정몽주 선생묘, 최영 장군묘, 이율곡 선생묘, 정약용 선생묘 등을 답사하며 지관(地官)이 될 참이냐는 농담을 많이 들었다. 앞으로의 답사 계획에 경주 대릉원, 융건릉, 광해군묘, 조광조 선생묘, 김육 선생묘 등이 잡혀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그런 지청구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싶다.


무령왕릉이나 세종대왕릉 같이 아주 유명해서 관광객이 몰리는 극소수 무덤을 제외하고는 능묘로 가는 길은 한적하다. 어지간한 산사들이 관광객들로 붐벼 번잡함을 느끼기 일쑤인 것보다 고즈넉함을 더 간직하고 있다. 덜 알려진 무덤을 찾는 길은 조금이라도 흐린 날에 찾았다가는 한적함을 넘어 스산함마저 느끼기 십상이다. 제대로 된 안내 표지판이 미비한 경우가 많은 선현의 유택을 부러 찾아가는 것은 모종의 세속적 꿍꿍이가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우선 일세를 풍미했던 인물들도 결국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무상함 앞에 짜릿한 평등의식을 느낀다. 아울러 현실 세계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장구한 역사는 지킬 만한 가치를 지킨 사람을 마냥 외면하지 않음을 믿게 된다. 무덤 앞에서 내 삶을 좀 더 알차고 기품 있게 가꿀 것을 다짐한다. 잘 살면 얼마나 잘 살겠다고 구차하게 명리에 몸과 마음을 팔지 않기를 새삼 결심한다.


공양왕릉을 찾아가는 길은 고려 말의 충의지사를 추념하기 좋은 시간이다. 『논어』에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는 구절을 떠올려도 좋다. 살다보면 선택의 순간이 온다. 고만고만한 선택지라면 제 입맛에 따라 골라잡으면 그만이지만, 거대한 간극이 있는 경우에는 취사선택 앞에 하염없이 고독해진다. 맹자는 고뇌 끝에 이렇게 선언한다. “삶(生)도 원하는 것이고 의(義)도 원하는데 둘 다 취할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를 지키겠다.” 『맹자』 고자상편에 나오는 유명한 사생취의(捨生取義)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도 그것을 쓰지 않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라도 피하지 않는 것은 삶보다 더 소중히 하는 것이 있고, 죽음보다도 더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맹자의 외침을 실현한 여말 망국대부들의 충절에 옷깃을 여민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시세의 흐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늦게까지 제 자리를 지키는 한결같은 사람에게 더 애착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의 장릉(莊陵)에는 충의공 엄홍도의 정려각이 있다. 영월 호장이라는 미관말직의 엄홍도는 단종이 시해 당하자 시신을 수습해 선산에 장사 지냈다. 주위에서는 후환을 두려워하며 만류했으나 이를 뿌리치며 “의롭고 착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爲善被禍吾所甘心)”라고 의연히 말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엄홍도의 경우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사람들은 그리 오래 기억하지 않을지 모른다. 좋은 일을 해도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니냐며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느냐이다. 부끄러울 치(恥)자 셋이면 천박함을 피한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꺼삐딴 리의 역겨움을 제법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2.
일전에 강화도 답사 준비를 할 때 남한에도 고려 왕릉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고려 왕릉은 대부분 북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강화 천도 시절의 왕릉 2기(희종 석릉, 고종 홍릉)와 소재가 확실치 않은 3기(우왕, 창왕, 공양왕릉)를 제외한 나머지 29기는 개성일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까지 17기가 확인되었다고 하지만 국내에서 상세한 자료를 구하기는 어려워서 일반인들에게 양질의 정보가 제공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공양왕릉은 경기도 고양시의 공양왕릉(사적 제191호)과 강원도 삼척의 공양왕릉(지방기념물 제71호)의 2기가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 당국은 세종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고양시에 있는 공양왕릉을 공식 인정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능산리 고분군에는 의자왕과 태자 부여융의 가묘가 있다. 백제가 멸망한 직후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묻힌 두 사람의 원혼을 달래려는 애틋함이 고맙다. 비명횡사한 우왕과 창왕에 대한 조촐한 가묘라도 설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양왕릉은 고려의 마지막 제34대 왕인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쌍릉으로 망국의 임금의 처량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공양왕의 비참한 최후와 고려의 멸망이 주는 비감이 그 어떤 감회들을 압도한다. 봉분에 입힌 떼가 듬성듬성 허전하다. 봉분 앞으로 비석과 석상이 각각 하나씩 서있고, 장명등, 석인 두 쌍, 석수 한 마리가 서있다. 비석과 석상, 장명등이 군색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본디 고졸한 맛을 자랑하는 고려의 석물이 무참하게 석인들마저 좀스러웠다. 유독 세월의 풍상을 더 겪은 것처럼 마모도 심하다. 그러나 공양왕릉의 참담함은 단지 석물이 조악하다거나 정자각 같은 제향시설이 없어서 뿐만 아니다. 그보다 왕릉 뒤로 보이는 수많은 무덤들이 공양왕릉을 찾은 답사객의 마음을 허탈하게 만든다. 조선시대에 행세깨나 했던 벼슬아치인지는 몰라도 감히 왕릉 바로 뒤에 번듯한 묘역을 차린 몰취향도 밉살스럽고 이를 방기한 조선왕실과 관료들의 무관심도 씁쓸하다.


볼품없는 능역이지만 무덤 주위에 세우는 석수가 맨 앞에 튀어나온 것이 이채로운데 봉분 둘레에 한 쌍씩 두는 보통의 능묘 형식과는 사뭇 다르다. 본래 봉분 옆에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던 것이 한 마리만 남았다가 능역을 보수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공양왕이 데리고 다녔다는 삽살개가 형상화되어 능을 지키게 되었다고도 한다. 능역 아래에 있는 연못의 전설을 소개한 안내판에는 왕과 왕비가 연못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홀로 남은 삽살개가 짖어 이 사실을 알렸다고 쓰여 있다. 사서에서는 강원도 삼척에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능도 두 개이듯이 죽음도 두 장면이 남은 셈이다. 아마도 한 마리만 남게 된 석수를 놓고 고양지역 사람들이 공양왕을 추모하는 뜻에서 삽살개의 전설을 만들었겠지만 석수의 파격은 역설적이게도 공양왕릉에서 그나마 멋스런 부분이다.


『고려사』에는 이성계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 공양왕이 “이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되니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다”며 눈물 흘리며 절규했다고 전한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조선 초기 역사가들의 입장이 반영되어 적잖은 왜곡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여말의 혼란과 패악을 집중 부각시킴으로써 조선 건국의 당위성을 돈독하게 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로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자식으로 폄하해 『고려사』 열전 반역편에 싣는 만행을 저지른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조선 초기 사가들의 기록은 너무 지나쳤다. 그만큼 오백 년간 지속된 왕조를 무너뜨리는 작업이 녹록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고려사』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왜곡이 오죽했으면 세종대왕이 학자들에게 내린 유자(柚子)와 정과(正果)가 아깝다는 탄식을 할 정도였을까. 그러나 공양왕의 눈물만큼은 진실이었을 것이다. 기실 그 자리에 누가 있든 간에 망국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공양왕은 시종일관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성계 일파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뽑고 내치고 죽였다. 그 쓸모가 다하자 공양왕은 혼암하여 임금의 도리를 잃고 인심도 이미 떠나갔다는 이유로 폐위된다. 폐위 교지를 엎드려 들은 공양왕은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다고 말하며 울었다고 한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이 재가했던 우왕과 창왕의 비참한 말로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원주로 추방된 공양왕은 강원도 간성으로, 다시 삼척으로 멀리 유배되었다가 끝내 두 아들과 함께 목 졸려 죽는다.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신하들이 죽이기를 청하길 열두 번이나 하니 어쩔 수 없이 그 청을 따른다는 이성계의 변명이 가소롭다. 이런 번지르르한 말과는 달리 조선왕조가 정책적으로 왕씨들을 멸족하려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계육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제 아무리 권력이 달콤하고 대의명분이 또렷해도 함부로 살상해 깊은 원한을 남기지 않는 절제가 필요함을 담담히 말해준다.


3.
공양왕릉을 이리저리 살피며 이광철 의원의 2004년 문화재청 국정감사 자료를 실감했다. 이 의원이 내놓은 고려왕릉 보존관리 실태조사 보고서는 방치된 고려 왕릉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현재 남한에 있는 고려 왕릉급 무덤은 총 5기로 이들 모두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예산이 전무하거나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고양 공양왕릉의 경우 2001년 크게 훼손되어 도굴을 당한 것으로 밝혀져 한바탕 난리가 났다. 도굴이라기보다는 보수공사가 잘못돼 단순 훼손된 것이 도굴 흔적처럼 보인 것이라고도 한다. 부장 품목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도굴 여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도굴 의혹 기사가 쏟아진 이후 관련 기사를 뒤적여 봤지만 추후에 어떤 결론이 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문화유산 관리의 허술함보다 더 서글픈 것은 그 때 그 때 잠깐 관심을 갖다가 잊어버리는 우리들의 냄비근성이 아닐까 싶다. 사적으로 지정된 고분뿐만 아니라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고분군에 대한 보호 관리 대책 수립이 긴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요하는 일이라 1년 예산이 3,700억(2006년 기준) 내외인 문화재청이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얼마 전 문화재청은 ‘조선시대의 왕릉과 원’ 53기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를 신청했다. 찾아가느라 애먹었던 강화지역의 고려 왕릉들도 강화문화권 정비사업에 포함되어 있다니 뒤늦게나마 다행이다. 이러한 의지를 살려 고분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수행해낼 수 있느냐 하는 문화적 역량 시험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전통문화를 이야기할 때 대개 조선시대를 떠올린다. 아무래도 현대에서 가장 가까운 시기의 왕조이고, 관련 유적과 사료가 단연 많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지상 건축물의 대부분은 임진왜란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조선으로 그치지 않는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더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 고려시대가 아닐까 한다. 삼국시대를 비롯한 고대사는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대중적 기반을 넓혀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조선시대만큼의 깊이와 저력을 가졌던 고려시대의 문화는 잘 인지되지 않고 있다. 이는 현재 북한 지역인 개경 일대에 고려시대의 주요 문화유산이 있다 보니 접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크다. 오는 유월에는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들이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고구려 고분에 대한 남북 공동 연구도 잰걸음을 하고 있다. 이처럼 남북 경제 교류만큼이나 문화 교류에도 눈을 돌려 그간 무심했던 고려 왕릉을 위시한 고려의 문화유산들이 많이 알려져 고려시대 역사를 탐구하고 문화를 음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은 교착상태에 빠져있지만 머잖아 개성 관광이 현실화되면 꼭 한 번 개성을 답사하고 싶다. 왕건릉, 공민왕릉도 참배하고 선죽교의 돌도 쓰다듬어 보고 만월대에 걸터앉아 석양에 지내는 객(客) 행세도 해보고 싶다.


큰 산은 바라보기에 따라 다르다. 우리의 유구한 전통 또한 여러 겹의 속살을 가지고 있기에 다각적이고 섬세하게 바라보는 정성이 필요하다. 공양왕릉은 변변찮은 유형문화유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능역을 감도는 그 처연한 서정은 많은 영감을 가져다준다. 문화유산은 국보나 보물 같은 지정문화재가 많은 것으로만 우열을 가름할 수 없다. 그 자리에 걸맞은 역사성과 시대정신을 담보해낼 수 있다면 제 나름의 흥미로운 역사의 숨결이 될 수 있다. 거창한 복원과 중건에만 현혹되지 말고 이런 식으로 영혼을 어루만지는 작은 문화유산들도 소중히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겠다. 문화는 고매한 기교 이전에 낮고 약하고 가여운 것을 외면하지 않는 정신이다.


공양왕릉에서 고려의 영광과 황혼을 찬찬히 회상해본다. 늘 승전고만 울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기왕 지더라도 떳떳하고 아름답게 패배하고 싶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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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를 처음 익히던 시절

경제 2006. 5. 16. 01:47 |

2003년 2학기에 들었던 통상정책 중간고사 서술평 문제를 대비한 답안정리다. 그 때는 즐겁게 배우고 앞으로도 관심을 갖자고 해놓고서 그간 신경을 못 썼다. 한미 FTA가 화두로 떠오른 요즘 WTO를 처음 익히던 그 시절을 추억한다.

 

<WTO협정의 구성내용 및 GATT와 대비한 WTO의 주된 특징을 설명하라>

2차 세계대전 후 세계무역 체제는 다자간 무역협상기구인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제 아래서 운영되어 왔다. WTO(세계무역기구)는 전후 약 50년 간 세계무역을 주도 해왔던 GATT체제의 발전적 해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WTO는 기본적으로 전신인 GATT의 기존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국제교역환경의 변화에 따라 부상한 새로운 교역과제를 포괄하고 회원국들의 무역관련 법, 제도, 관행 등의 명료성을 제고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세계교역을 증진시키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최종의정서에 회원국들이 서명함으로써 정식 체제를 갖추게 된 WTO 협정은 이 최종의정서의 부속서로서 많은 세부협정들을 포함하고 있다. WTO 협정문은 회원국들의 무역관련 활동에 대한 공통의 제도적 틀을 제공하는 WTO 설립협정과 분야별 제도적 틀을 제공하는 부속서들인 다시 17개의 다자간 무역협정(MTA)과 4개의 복수간 무역협정(PTA)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자간 무역협정은 WTO 협정의 일부로서 모든 회원국에게 적용되며, WTO 설립협정의 부속서 1에서 3까지 규정되어 있다. 부속서 1은 다시 그 성격에 따라 3개로 나뉘어 부속서 1A는 상품무역에 관련된 협정으로서 GATT 1994, WTO로 복귀하는 협정, 도쿄라운드 MTN 협정 중 다자화된 분야, UR 협상을 통해 새로 도입된 협정 등으로 구분된다. GATT 1994는 GATT 1947과 UR 협상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각서와 부속 협정에 의해 개정된 것을 말한다. WTO로 복귀하는 협정으로는 농산물 협정과 섬유 협정을 들 수 있다. 이는 GATT 규정의 폭넓은 예외조치를 인정받은 이 두 분야를 UR 협상의 주요의제로 삼아 WTO 체제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도쿄라운드 MTN 협정 중의 일부를 다자화시킨 것으로는 수입허가절차, 관세평가, 보조금 및 상계관세, 반덤핑, 기술장벽 등 5개 분야를 말한다. UR 협상을 통해 새로 도입된 협정으로는 위생 및 검역조치, 무역관련 투자조치, 선적전 검사, 원산지 규정, 긴급수입제한조치 등이 있다.


부속서 1B는 서비스무역에 관한 협정(GATS)이며, 부속서 1C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정하고 있다. 부속서 3에는 분쟁해결규칙 및 절차에 관한 협정(DSU)를 담고 있어 GATT 체제에서 명확한 분쟁해결 절차가 없던 것을 보완하고 그 권위를 대폭 확충, 강화했다. 부속서 3에는 무역정책검토제도(TPRM)가 있어 각 회원국의 무역정책과 관련제도 및 관행을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복수간 무역협정을 정하고 있는 부속서 4에는 민간항공기 교역, 정부조달 협정 등이 있는데 이에 속하는 협정들은 이를 수락한 회원국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WTO 협정과는 별도로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GATT와  WTO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주요 차이점을 대비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GATT는 임시적 성격의 국제협정으로 국제기구로서의 법인격을 갖추지 못한 임시 사무국의 성격을 가진 불완전한 체제였다. 이러한 이유는 ITO의 성립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WTO는 항구적이고 법인격을 갖춘 국제기구이다. 모든 회원국은 WTO 규정을 비준하는 법적 절차를 거침으로써 WTO는 법인격을 갖춘 실체로서 그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둘째, GATT가 관세인하에만 주력했다면 WTO는 관세인하 외에 특정 분야에 대한 무관세화와 고관세 품목의 관세완화 등 다양하고 큰 폭의 관세인하를 진행시킨다. 또한 WTO에서는 GATT에서 선언적 규범정립에 그친 수량규제 같은 비관세장벽 철폐를 강력히 추진한다.


셋째, 관할범위에서 GATT는 상품무역에 한정하고 있지만, WTO는 농산물과 섬유는 물론 무역관련 투자, 서비스, 지적재산까지 포함하는 매우 포괄적인 관할범위를 갖고 있다. 이는 세계의 경제 및 무역환경의 급변에 맞춰 새로운 이들 분야들의 거래에 관한 국가 간의 질서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넷째, WTO는 분쟁해결방식도 과거보다 훨씬 신속하고 강력하게 되었다. GATT에서는 무역분쟁에 대한 권고안만 제시했지만 WTO에서는 분쟁해결을 위한 협정이 제정되고, 상설 분쟁해결기구(DSB)와 상소기구를 설치해놓고 있다. 또한 분쟁해결의 단계적 절차와 이행기간이 명료화하였으며, GATT에서의 합의제와는 달리 역총의제를 통해 DSB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또한 WTO에서는 교차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분쟁기구의 결정사항이 용이하게 집행되도록 하고 있다.


WTO의 목표인 자유무역과 다자통상체제는 명목상으로 약소국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며 실제로 미국은 자국에게 유리한 분야를 의제로 채택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여러 요직에 자국의 인물들을 앉혀 놓기도 하는 등 강대국들의 입김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WTO가 GATT보다 더 강력하게 무역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라면 보다 강력한 위상을 가진 국제기구로서 개도국에 대한 무역 강대국의 일방적인 무역제재조치 같은 횡포를 제지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기구로서 거듭나서 모든 회원국들의 권익을 도모하는 데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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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입학 전에 신입생 과제물로 전광용의 『꺼삐딴 리』에 대한 독후감을 쓰면서 “이인국은 물질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패배한 사람이다”라고 신랄한 비난을 했다. “대의보다 대세를 따르려는 현실이 아쉽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꽤 시일이 지난 오늘날 다시 곱씹어보니 그 비난의 날은 무뎌졌지만 탄식은 더 깊어진 것 같다.


이인국은 도드라진 처세술로 기득권을 누린 지식인이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친일파로, 해방기에는 친소파로, 월남해서는 친미파로 변신하는 삶의 궤적은 현란하다. 모범적인 황국신민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상범의 입원을 거절하는 장면, 소련군 장교의 후원에 힘입어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 보내는 장면, 미국으로 가기 위해 미대사관 직원에게 고려청자를 선물하는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영달을 위한 노력이 신기하다 못해 추잡하기까지 하다. 기회주의자가 승승장구하던 시대에 개인의 윤리와 책임은 무엇인가를 음미하게 해준다.


권력에 빌붙다가 어느 순간 그 자신이 권력이 된 기득권의 변절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때로는 혐오하고 때로는 연민하다가 어느 순간 흠모하고 추종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부박한 생존양식을 온몸으로 마다할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약자의 설움에 눈물 흘리면서도 결국은 강자를 편드는 것이 세상인심이라며 남 탓하기 바쁘다. 힘있는 자 곁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재미를 은연중에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워하면서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게 제일 두렵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의 장릉(莊陵)에는 충의공 엄홍도의 정려각이 있다. 영월 호장이라는 미관말직의 엄홍도는 단종이 시해 당하자 시신을 수습해 선산에 장사 지냈다. 주위에서는 후환을 두려워하며 만류했으나 이를 뿌리치며 “의롭고 착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爲善被禍吾所甘心)”라고 의연히 말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엄홍도의 경우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사람들은 그리 오래 기억하지 않을지 모른다. 좋은 일을 해도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니냐며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느냐이다. 부끄러울 치(恥)자 셋이면 천박함을 피한다.


지난 4월 16일 열린 서울 길상사 법회의 아름다운 법문이 떠오른다. 법정 스님은 아프리카 탐험에 나섰던 유럽인들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유럽 탐험가가 원주민을 짐꾼 겸 안내인으로 앞세워 쉬지 않고 나아갔다. 사흘째 되는 날 원주민들이 꼼짝도 않고 주저앉아버렸다. 탐험가가 이유를 묻자 원주민은 “우리는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도 않고 너무 빨리 왔어요. 이제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곳에서 기다려야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속도와 효율성을 내세우다가 영혼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우화다. 원주민의 말을 이렇게 변형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제대로 성찰하지 않고 너무 빨리 변했어요. 이제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때까지 부끄러워해야만 합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꺼삐딴 리의 역겨움을 제법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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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fference or Wrongness

잡록 2006. 5. 15. 23:19 |

(대학 새내기 시절 들었던 교양영어 과제물로 냈던 에세이를 발견했다. 영어 에세이에 한자를 섞어 써낸 그 불굴의 정신이란...^^; 이 글의 주제인 에스노센트리즘(ethnocentrism)은 자민족중심주의, 자문화중심주의를 뜻한다)

[ENGLISH JOURNAL - "Ethnocentrism" p 150~153] - 2002년 5월 16일

[ Difference or Wrongness ]
    There are many people in the world. Every man have his own hobby or taste. No

two people think alike. "So many man, so many minds." This proverb describes this

situation. But we often make a mistake that is wrong which unlike one's own thing.

Ethnocentrism also has a weak point from this point of view. Sometimes ethnocentrism

is the point that one's nation unconditionally is superior to other nations.

    For instance, It is wrong that the West mistreats Korean eating dog meat. Though 

we Korean eat dog meat, we don't like to eat mutton or horse meat well like the West.

We and the West enjoy eating pork and beef, however. The people in Islam culture

never eat pork. And Indian hold a cow scared. Are their behavior suspicious really?

What do you think of the fact that France enjoy eating "foie gras" which is widen

through cruel method while they laugh at Korean who enjoy eating dog meat?

    Some people evaluate Picasso`s achievement as the best thing while others Gogh`s.

In this way, It is not right to think "the difference" as "the wrongness". We must get

rid of our prejudices that "myself is always right," and listen to others attentively with

open mind.

    Finally I remember this words that is talked to Korean famous philosopher Lee

Hwang.  "There are many opinions in the world. But why oneself is always right

whereas  others is always  wrong? (天下之義理無窮 豈可是己而非人)." That is very

instructive to people who have prejudice.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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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누나가 제안하신 긴급 설문 조사 "이번 출교 조치 정당하다고 보십니까?"에 답을 고르기가 쉽지 않아 고심하다가 얼떨결에 잡글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경영飛반 커뮤니티에 동시 게재합니다.


<고려대학교 출교 조치 유감(有感)>
"언짢은 마음"이라는 뜻의 유감(遺憾)이 아닌 그냥 "느끼는 바가 있음"을 뜻하는 유감(有感)입니다.^^;


4월 19일 학교 당국은 교수 억류 사건으로 징계 대상에 오른 학생 19명 가운데 7명에게 출교(黜校) 조치를 내렸습니다. 출교란 퇴학(혹은 제적)과 달리 징계해지 사유가 발생하더라도 재입학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징계입니다. 출교를 당하면 영구적으로 학적이 삭제되어 재입학과 편입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출교 징계를 내린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감금하고 스승은 제자를 학교에서 영구추방하는 모양이 민망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생소한 출교 조치가 과연 필요한가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일단 학생상벌에 관한 시행세칙을 존중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태의 발단은 병설 보건전문대를 보건과학대로 승격해 고대로 편입시키는 과정이 매끄럽지는 못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통합 결과 06학번 보건과학대 새내기 300여명은 고려대생이 됐으나 2~3학년 1,200여명은 여전히 보건전문대 학적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4월 안암배움터 총학생회 재선거에서 일부 후보진영이 보건전문대 2~3학년도 총학생회 선거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학교측은 학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투표권 여부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일부 학생들은 지난 5일 보직 교수님을 억류한 채 농성을 벌였습니다.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총학생회 재선거를 실시하면서 가장 중대한 선거권자 획정을 너무 소홀히 했습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칙 4조 1항은 "정회원은 안암배움터 재학생 전원"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 만큼 보건전문대 2~3학년에게 투표권을 주는 문제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합니다.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의 06학번부터 투표권을 가지는 것이 총학생회칙 규정에도 맞다는 수많은 학우들의 지적이 잇따르자 재선거가 종료된 후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열어 보건전문대 투표 유효 여부를 정한 것은 한 편의 코미디였습니다. 관련 당사자들은 충분히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여하간 작년 5월 이건희 명예박사 수여식 사태 이후 다시금 학내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스스로 살을 도려내는 비장한 각오로 징계를 결정했다"는 학교측의 항변을 상당수 학우들은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대미문의 출교 조치가 너무 가혹하고 비교육적이라 비판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세인에 입에 그다지 화목하지 못한 모습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 학교측으로서도 여러모로 부담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학교측의 대응에 아쉬운 점도 적잖습니다. 천려일실(千慮一失)이며, 천려일득(千慮一得)이라고 했습니다. 학교측이 학생들의 요구 중에 수긍할 만한 것은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모습을 그다지 보여주지 못한 점도 균형감각을 잃은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도 일방적이었지만, 학교측도 만만치 않게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교수 억류 사건은 "목적이 옳다고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지루하면서도 위대한 명제를 끌어와서 간단히 정리해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중징계가 능사였냐는 물음 앞에서는 무척 곤혹스러워집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작년에 곤욕을 치르면서도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며 젊은이들의 열정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혹자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마뜩잖게 여겼지만 삼성측의 그러한 아량이 문제 확산을 막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사안이 다소 다르지만 스승이 제자를 매몰차게 내치는 모습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 같습니다. 제자의 잘못을 자신의 허물로 삼는 참스승의 모습을 거론하고도 싶고, 그러기에는 제자의 잘못이 막중해서 안타깝고... 참 난감합니다.


징계의 적절성 여부를 놓고 두 가지 기준을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어떻게 했는가와, 지금 현재 다른 대상에게는 어떻게 하는 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4년 본관점거 투쟁 때도 17명의 징계대상자 명단 발표가 있었고, 2005년 이건희 명예박사 학위수여식 사태나 지난 2월 입학처 점거 사태에도 징계 이야기가 나왔으나 그 후 미미하게 처리되거나 철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조치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징계 수위가 출교 7명, 유기정학(1개월) 5명, 견책(1주일) 7명으로 편차가 큰데 그리 명확한 설명이 없습니다. 물론 징계수위는 차이가 나게 마련이지만 출교와 견책 사이는 너무나 가파른 차이가 있어서 말입니다.


본관 점거를 했던 학생들의 불관용적 자세를 저도 관용하지 않습니다. 그네들에 대한 징계에 상당히 명분이 있다고 보며 거개 동감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그간 유명무실하던 징계 조치를 갑자기 엄히 적용할 만큼 패륜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교수님들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제 일개인은 끝끝내 이번 사안에 한해서만이라도 출교를 거두는 것이 좋겠다고 입장 정리를 했습니다. 앞으로 징계 국면에서 상대적 아니 절대적으로 약자인 학생들의 처지를 고려할 때 징계를 통한 학생 계도는 조심하면서도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간 다소 무원칙적이었던 징계 처리가 자리를 잡아야겠습니다. 좀 더 체계적이고 투명한 징계 절차가 확립되고 징계 수위가 예측가능할 정도로 공신력을 가지길 바랍니다.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에서 진시황이 자국 신하들이 아닌 빈객들을 추방하려 하자, 초나라 출신의 이사가 그 부당함을 간하며 했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처럼 크게 될 수 있고, 강과 바다는 작은 냇물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처럼 깊게 될 수 있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는 말입니다. 이에 진시황은 축객령(逐客令)을 철회하고 오히려 이사를 중용함으로써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룩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간 일련의 학내 갈등 속에 서로에 대한 열린 마음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고향을 한없이 사랑합니다. 그 사랑은 편협하거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너그럽고 섬세하며 온유해야겠지요. - [小鮮]


추신 - 이번에도 참사 수준의 횡설수설인 것을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이번 사안에 대해 확언을 하기가 힘들고 어려웠어요.ㅜ.ㅜ
Posted by 익구
:
내 생각을 우직하게 밀고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엄습하는 요즘 故 조지훈 선생의 지조론이 읽고 싶어졌다. 도입부의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는 구절부터 끄트머리의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에 이르기까지 죄다 절절이 다가온다.

자유당 말기 극도로 부패한 정치현실 속에서 친일파들이 과거에 대한 뉘우침 없이 정치일선에서 득세하고 사회 지도층들이 변절을 일삼는 세태를 통렬히 꾸짖는 명논설은 오늘날에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다. 그래서 서글프다. ‘변절자를 위하여’라는 부제(副題)처럼 변절이 횡행하는 시대에 변절을 마음 먹고 있는 이들에게 이 글을 권하고 싶다. 아울러 개인적인 바람을 밝히자면 나도 먼훗날 이런 식의 경세적인 중수필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터넷 상에 오타가 적잖은 전문이 오고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조지훈 전집5: 지조론》(나남, 1996)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교열, 감수했다. 어려운 단어 풀이도 하고, 인물 소개도 부기하였으니 온라인 상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지조론 텍스트가 될 수 있으리라 자부한다. 다만 나의 이런 노력이 저작자의 사망 후 50년까지 저작권이 존속되는 현행 저작권법에는 다소 위배되는 바가 있다. 선생께서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리라 믿는다.^-^



지조론(志操論)
―변절자(變節者)를 위하여-



지조(志操)란 것은 순일(純一, 온전한 하나의)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지켜 나감)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 위엄이 있는 엄숙한 차림새)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 명예와 이익)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 하루아침에, 갑자기)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와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困苦, 어렵고 고생스러움)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者)이기 때문에 배신하는 변절자를 개탄(慨嘆)하고 연민(憐憫)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警醒, 정신을 차려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타일러 깨닫게 함)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는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識見)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지사(志士)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을 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 다 지사(志士)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정당운동의 단계에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정당운동을 통한 정치도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정상(政商, 정치가와 상인의 결합, 정치가와 결탁하거나 정권을 이용해서 사사로이 이익을 꾀하는 사람)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구복(口腹, 입과 배, 탐욕)과 명리를 위한 부동(浮動, 떠다님)은 무지조(無志操)로 규탄되어 마땅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직업정치인보다 지사적 품격의 정치 지도자를 더 대망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충정(衷情)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염결공정(廉潔公正, 성품이 청렴결백하며 공평하고 정대함) 청백강의(淸白剛毅, 성품이 깨끗하고 강직하며 씩씩함)한 지사정치(志士政治)만이 이 국운을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 모든 정치 지도자에 대하여 지조의 깊이를 요청하고 변절의 악풍을 타매(唾罵, 더럽게 생각하고 경멸하며 욕함)하는 것은 백성의 눈물겨운 호소이기도 하다.


지조와 정조는 다같이 절개에 속한다. 지조는 정신적인 것이고, 정조는 육체적인 것이라고들 하지만, 알고 보면 지조의 변절도 육체생활의 이욕(利慾)에 매수된 것이요, 정조의 부정도 정신의 쾌락에 대한 방종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정치인의 무절제를 장사꾼의 이욕과 계교와 음부적(淫婦的, 음탕한 여인과 같은) 환락(歡樂)의 탐혹(眈惑)이 합쳐서 놀아난 것이라면 과연 극언이 될 것인가.


하기는, 지조와 정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늘에 와선 이미 시대착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하긴 그렇다. 왜 그러냐 하면, 지조와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부자연한 일이요, 시세를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부나 홀아비가 개가(改嫁)하고 재취(再娶)하는 것은 생리적으로나 가정생활로나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고, 또 그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개가와 재취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승인하면서도 어떤 과부(寡婦)나 환부(鰥夫, 홀아비)가 사랑하는 옛짝을 위하여 또는 그 자녀를 위하여 개가나 속현(續絃, 거문고와 비파의 끊어진 줄을 다시 잇는다는 뜻으로, 아내를 여읜 뒤 새 아내를 얻음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의 길을 버리고 일생을 마치는 그 절제에 대하여 찬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능히 어려운 일을 했대서만이 아니라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본능고(本能苦)를 이성과 의지로써 초극(超克)한 그 정신의 높이를 보기 때문이다. 정조의 고귀성이 여기에 있다.


지조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의 사상과 신념과 양심과 주체는 일찌감치 집어던지고 시세(時勢)에 따라 아무 권력이나 바꾸어 붙어서 구복의 걱정이나 덜고 명리의 세도에 참여하여 꺼덕대는 것이 자연한 일이지, 못나게 쪼를 부린다고 굶주리고 얻어맞고 짓밟히는 것처럼 부자연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면 얼핏 들어 우선 말은 되는 것 같다.


여름에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다가 가을바람만 불면 단팥죽 장사로 간판을 남 먼저 바꾸는 것을 누가 욕하겠는가. 장사꾼, 기술자, 사무원의 생활 방도는 이 길이 오히려 정도(正道)이기도 하다. 오늘의 변절자(變節者)도 자기를 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자처한다면 별 문제다. 그러나 더러운 변절의 정당화를 위한 엄청난 공언(公言)을 늘어놓는 것은 분반(噴飯, 웃음이 참을 수 없음)할 일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먼 줄 알아서는 안 된다. 백주대로에 돌아앉아 볼기짝을 까고 대변을 보는 격이라면 점잖지 못한 표현이라 할 것인가.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고 항거(抗拒)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困辱)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정신의 자존 자시(自尊自恃, 스스로를 존중하고 믿음)를 위해서는 자학(自虐)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분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奇癖, 기이한 취마나 버릇)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신단재(申丹劑) 선생은 망명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앉아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다 얼굴을 씻기 때문에 찬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弟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逸話)가 있다. 무서운 지조를 지킨 분의 한 분인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지조가 낳은 기벽의 일화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다. “한 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의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는 《채근담(菜根譚)》의 한 구절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란 것이다. 끝까지 참고 견딜 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야당(野黨)의 투사를 가장함으로써 권력의 미끼를 기다리다가 후딱 넘어가는 교지(狡智, 교활한 슬기, 약은 꾀)를 버리라는 말이다. 욕인(辱人)으로 출세의 바탕을 삼고 항거로써 최대의 아첨을 일삼는 본색을 탄로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충언의 근원을 캐면 그 바닥에는 변절하지 말라, 지조의 힘을 기르라는 뜻이 깃들어 있다.


변절(變節)이란 무엇인가? 절개를 바꾸는 것, 곧 자기가 심신으로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철이 들어서 세워 놓은 주체의 자세를 뒤집는 것은 모두 다 넓은 의미의 변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 데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을 변절이라 한다.

일제 때 경찰에 관계하다 독립운동으로 바꾼 이가 있거니와 그런 분을 변절이라고 욕하진 않았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파(親日派)로 전향한 이는 변절자로 욕하였다. 권력에 붙어 벼슬하다가 야당이 된 이도 있다. 지조에 있어 완전히 깨끗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들에게도 변절자의 비난은 돌아가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 협의(狹義)의 변절자, 비난 불신의 대상이 되는 변절자는 야당전선(野黨戰線)에서 이탈하여 권력에 몸을 파는 변절자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이름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다.


자기 신념으로 일관한 사람은 변절자가 아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치욕에 김상헌(金尙憲)이 찢은 항서(降書)를 도로 주워 모은 주화파(主和派) 최명길은 당시 민족정기(民族正氣)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으나 심양(瀋陽)의 감옥에 김상헌과 같이 갇히어 오해를 풀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얘기이다. 최명길은 변절의 사(士)가 아니요 남다른 신념이 한층 강했던 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누가 박중양(朴重陽), 문명기(文明琦) 등 허다한 친일파를 변절자라고 욕했는가. 그 사람들은 변절의 비난을 받기 이하의 더러운 친일파로 타기(唾棄, 침을 뱉듯이 버리고 돌아보지 않음)되기는 하였지만 변절자는 아니다.


민족 전체의 일을 위하여 몸소 치욕을 무릅쓴 업적이 있을 때는 변절자로 욕하지 않는다. 앞에 든 최명길도 그런 범주에 들거니와, 일제 말기 말살되는 국어의 명맥을 붙들고 살렸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민족 해방의 날을 위한 유일한 준비가 되었던 《맞춤법 통일안》, 《표준말모음》, 《큰 사전》을 편찬한 ‘조선어학회’가 ‘국민총력연맹 조선어학회지부(國民總力聯盟 朝鮮語學會支部)’의 간판을 붙인 것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런 하는 일도 없었다면 그 간판은 족히 변절의 비난을 받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좌옹(佐翁), 고우(古友), 육당(六堂), 춘원(春園) 등 잊을 수 없는 업적을 지닌 이들의 일제 말의 대일 협력(對日協力)의 이름은 그 변신을 통한 아무런 성과도 없기 때문에 애석하나마 변절의 누명을 씻을 수 없었다. 그분들의 이름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것을 우리의 기억이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이분들은 ‘반민특위(反民特委)’에 불리었고, 거기서 그들의 허물을 벗겨 주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못하고 누명만 쓸 바에는 무위(無爲)한 채로 민족정기의 사표(師表)가 됨만 같지 못한 것이다.


변절자에게는 저마다 그럴 듯한 구실이 있다. 첫째, 좀 크다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나도 될 수 있다, 나만 깨끗이 굶어 죽으면 민족은 어쩌느냐가 그것이다.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는 투의 이론이요, 그 다음이 바깥에선 아무 일도 안 되니 들어가 싸운다는 것이요, 가장 하치(품질이 낮은 것)가, 에라 권력에 붙어 이권이나 얻고 가족이나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굶어 죽기가 쉽다거나 들어가 싸운 다거나 바람이 났거나 간에 그 구실을 뒷받침할 만한 일을 획책(劃策)도 한 번 못해 봤다면 그건 변절의 낙인밖에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어떤 선비도 변절하여 권력에 영합해서 들어갔다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쓰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온 예를 역사상에서 보지 못했다. 연산주(燕山主)의 황음(荒淫)에 어떤 고관의 부인이 궁중에 불리어 갈 때 온몸을 명주로 동여매고 들어가면서, 만일 욕을 보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해 놓고, 밀실에 들어가서는 그 황홀한 장치와 향기에 취하여 제 손으로 그 명주를 풀고 눕더라는 야담이 있다. 어떤 강간(强姦)도 나중에는 화간(和姦)이 된다는 이치와 같지 않는가.


만근(輓近, 근래에, 최근에) 30년래에 우리나라는 변절자가 많은 나라였다. 일제 말의 친일 전향, 해방 후 남로당의 탈당, 또 최근의 민주당의 탈당, 이것은 20이 넘은, 사상적으로 철이 난 사람들의 주책없는 변절임에 있어서는 완전히 동궤(同軌, 같은 궤도, 같은 선상에 있음)다. 감당도 못할 일을 제 자신도 율(律)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민족이니 사회니 하고 나섰다라는 말인가. 지성인의 변절은 그것이 개과천선이든, 무엇이든 인간적으로는 일단 모욕을 자취(自取, 제 스스로 만들어서 됨)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기녀(妓女)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좇으면 한평생 분냄새가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貞操)를 잃고 보면 반생(半生)의 깨끗한 고절(苦節, 어떤 고난을 당해도 변하지 아니하고 끝내 지켜 나가는 굳은 절개)이 아랑곳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後半)을 보라”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백 리를 날아간다(늦게 배운 잘못은 더 큰 잘못을 저지른다)는 우리 속담이 있거니와, 늦바람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아직 지조를 깨뜨린 적이 없는 이는 만년(晩年)을 더욱 힘쓸 것이니, 사람이란 늙으면 더러워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직 철이 안든 탓으로 바람이 났던 이들은 스스로의 후반을 위하여 번연(飜然, 깨달음이 갑작스러움)히 깨우치라. 한일합방(韓日合邦) 때 자결한 지사시인(志士詩人) 황매천(黃梅泉)은 정탈(定奪, 옳고 그름을 가리어 결정함)이 매운 분으로 ‘매천필하무완인’(梅泉筆下無完人, 매천의 붓 아래에서는 온전한 사람이 없다-매천의 날카로운 비평과 지조를 일컬음)이란 평을 듣거니와 그 《매천야록(梅泉野錄)》을 보면 민충정공(閔忠正公), 이용익(李容翊) 두 분의 초년(初年) 행적을 헐뜯은 곳이 있다. 오늘에 누가 민충정공, 이용익 선생을 욕하는 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 분들의 초년을 모른다. 역사에 남은 것은 그분의 후반이요, 따라서 그분들의 생명은 마지막에 길이 남게 된 것이다.


도도(滔滔)히 밀려오는 망국(亡國)의 탁류(濁流)-이 금력과 권력, 사악 앞에 목숨으로써 방파제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지조의 함성을 높이 외치라. 그 지성 앞에는 사나운 물결도 물러서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천하의 대세가 바른 것을 향하여 다가오는 때에 변절이란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이완용(李完用)은 나라를 팔아먹었어도 자기를 위한 36년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은 가졌었다.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권력에 뒤늦게 팔리는 행색(行色)은 딱하기 짝없다. 배고프고 욕된 것을 조금 더 참으라. 그보다 더한 욕이 변절 뒤에 기다리고 있다.


“소인기(少忍飢, 잠깐 굶주림을 참으라)하라.” 이 말에는 뼈아픈 고사(故事)가 있다. 광해군의 난정(亂政) 때 깨끗한 선비들은 나가서 벼슬하지 않았다. 어떤 선비들이 모여 바둑과 정담(情談)으로 소일(消日)하는데, 그 집 주인은 적빈(赤貧)이 여세(如洗)라(몹시 가난하기가 마치 물로 씻은 듯하여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음) 그 부인이 남편의 친구들을 위하여 점심에 수제비국이라도 끓여 드리려 하니 땔나무가 없었다. 궤짝을 뜯어 도마 위에 놓고 식칼로 쪼개다가 잘못되어 젖을 찍고 말았다.


바둑 두던 선비들은 갑자기 안에서 나는 비명을 들었다. 주인이 들어갔다가 나와서 사실 얘기를 하고 추연(愀然, 낙심하는 모양)히 하는 말이, 가난이 죄라고 탄식하였다. 그 탄식을 듣고 선비 하나가 일어서며, 가난이 원순 줄 이제 처음 알았느냐고 야유하고 간 뒤로 그 선비는 다시 그 집에 오지 않았다. 몇 해 뒤 그 주인은 첫 뜻을 바꾸어 나아가 벼슬하다가 반정(反正, 광해왕 15년(1623)에 이귀, 김류 등 서인(西人) 일파가 광해왕 및 집권파인 대북파(大北派)를 몰아내고 능양군인 인조를 즉위시킨 인조쿠데타를 가리킨다) 때 몰리어 죽게 되었다.


수레에 실려서 형장(刑場)으로 가는데 길가 숲 속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수레를 잠시 멈추게 한 다음, 가지고 온 닭 한 마리와 술병을 내놓고 같이 나누며 영결(永訣)하였다. 그때 그 친구의 말이, 자네가 새삼스레 가난을 탄식할 때 나는 자네가 마음이 변한 줄 이미 알고 발을 끊었다고 했다. 고기밥 맛에 끌리어 절개를 팔고 이 꼴이 되었으니, 죽으면 고기 맛이 못 잊어서 어쩌겠느냐는 야유가 숨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찾은 것은 우정이었다. 죄인은 수레에 다시 타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탄식하였다. “소인기, 소인기(少忍飢 少忍飢)하라”고…….


변절자에게도 양심이 있다. 야당에서 권력으로 팔린 뒤 거드럭거리다 이내 실세(失勢)한 사람도 있고, 지금 요추(要樞, 중요한 요직)에 앉은 사람도 있으며, 갓 들어가서 애교를 떠는 축도 있다. 그들은 대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표면으로 성명은 버젓하나 뜻있는 사람을 대하는 그 얼굴에는 수치의 감정이 역연하다(歷然―, 누가 보아도 분명하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란 것이다. 구복과 명리를 위한 변절은 말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다. 자기 변명은 도리어 자기를 깎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핑계는 있다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왜 아기를 배게 됐느냐 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창피하지 않은가.


양가(良家)의 부녀가 놀아나고 학자 문인까지 지조를 헌신짝같이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으니 변절하는 정치가들도 우리쯤이야 괜찮다고 자위할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조를 잃고 변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자임(自任, 스스로 자기의 임무로 여김, 자기의 능력 따위에 대하여 훌륭하다고 자부함)하는 바를 포기하는 것이다.

- 1960년 2월 15일 《새벽》 3월호


<인물 소개>

*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 항일 독립운동가, 사학자.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그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항일 논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듬해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활약하며 내외의 민족 영웅전과 역사 논문을 발표하여 민족의식 앙양에 힘썼다.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 의정원(議政院)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1925년경부터 무정부주의를 신봉하기 시작, 1927년 신간회(新幹會) 발기인, 무정부주의 동방동맹(東方同盟)에 가입해서 활동하다 일경에 잡혀 복역하던 중 옥사하였다. 적과 타협 없이 독립투쟁을 전개하는 동안 ‘독립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 이와 같은 견해가 곧 그의 역사연구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고조선(古朝鮮)과 묘청(妙淸)의 난(亂) 등에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고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내걸어 민족사관을 수립,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저서에 조선상고사, 을지문덕전, 이순신전 등이 있다.

*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 항일 독립운동가, 승려, 시인.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다.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월간지 《불교(佛敎)》를 인수,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그 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 성북동에서 중풍으로 죽었다. 시에 있어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고 불교적인 ‘님’을 자연으로 형상화했으며,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노래했다.

* 청음 김상헌(金尙憲, 1570~1652): 조선 중기의 문신.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여 선전후화론(先戰後和論)을 주장했으며,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 문서를 찢고 통곡했다. 1641년 청나라 심양(瀋陽)에 끌려가 이후 4년여 동안 억류해 있었다. 당시에도 강직한 성격과 기개로써 청인들의 굴복 요구에 불복하여 끝까지 저항하였다.

* 지천 최명길(崔鳴吉, 1586~1647): 조선 중기의 문신. 병자호란에서 강화를 주관했으나 1643년 청나라에 끌려가 수감되었다가 1645년 소현세자 일행과 함께 풀려났다. 병자호란 때는 “싸우자니 힘이 부치고 감히 화의하자고 못하다가 하루 아침에 성이 무너지고 위아래가 어육(魚肉)이 되면 종사를 어디에 보존하겠느냐”는 입장에서 강화를 주장하였지만, 자신이 쓴 항서를 찢는 척화파 김상헌의 행동에도 의미가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독단에 빠지지 않았다. 병자호란 후에도 스스로 청나라를 왕래하면서 대청 외교에서 패전국으로서 겪는 온갖 어려움을 당당한 자세로 해결했다.

*박중양(朴重陽, 1874~1955?): 일제강점기 때 유명한 친일파 관료. 이토 히로부미의 눈에 들어 통감부 시절 이래 일제 치하 내내 전국 각지의 주요 관직을 두루 지냈다.

* 문명기(文明琦, 1878~?): 일제강점기 때 유명한 친일파 경제인. 일제의 비호 아래 지역 굴지의 사업가로 성장, 제지업과 수산업으로 자본을 축적한 뒤 금광에 투자하여 대부호가 되었다.

* 좌옹 윤치호(尹致昊, 1865~1945): 한말에서 일제강점기의 정치가. 일찍부터 개화운동에 투신해 1881년에는 신사유람단을 따라 일본에 다녀온 뒤 미국에 건너가 신학문을 배웠다. 1895년 독립협회, 1906년 대한자강회를 조직하여 교육 사업에 힘썼으며, 1910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을 조직했다. 일제 말에 변절, 일본제국의회의 칙선 귀족원의원을 지냈다. 1945년 광복 후 친일파로 규탄받자 자결했다.

* 고우 최린(崔麟, 1878~1958): 일제강점기의 친일파,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33년 말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세우며 친일파로 변절, 1934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中樞院參議)가 되었고, 1937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1939년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단장을 지내는 등 8·15광복 때까지 친일활동으로 일관했다. 1950년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

* 육당 최남선(崔南善, 1890~1957): 한국의 사학자, 문인. 신문화 수입기에서 언문일치(言文一致)의 신문학운동과 국학(國學) 관계의 개척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족대표 48인 중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다음해 가출옥했다. 193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만몽일보 고문으로 있다가 1939년 일본 관동군이 세운 건국대학 교수가 되었고, 귀국 후 1943년 재일조선인 유학생의 학병지원을 권고하는 강연을 하기 위하여 도쿄로 건너갔다. 광복 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소되어 1949년 수감되었으나 병보석되었다.

* 춘원 이광수(李光洙, 1892~1950): 한국의 소설가. 1917년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無情)》을을 써서 한국 근대소설사의 새 장을 열었으며,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8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뒤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년 만에 석방되고부터 본격적인 친일행위로 기울어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다. 8·15광복 후 반민특위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 매천 황현(黃玹, 1855~1910): 조선 후기의 학자, 우국지사. 시문에 능하여 1885년(고종 22) 생원진사시에 장원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 향리에 은거하였다. 1910년(융희 4) 일제에 의해 국권피탈이 되자 국치를 통분하며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하였다. 《매천야록(梅泉野錄)》은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총서(史料叢書) 제1권으로 발간되어 한국 최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

* 충정공 민영환(閔泳煥, 1861~1905): 한말의 문신, 순국지사. 잦은 해외여행으로 새 문물에 일찍 눈을 떠, 개화사상을 실천하고자 유럽제도를 모방하여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민권신장(民權伸張)을 꾀할 것을 상주하였다. 친일적인 대신들과 대립, 일본의 내정간섭을 성토하다가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의 한직(閑職)으로 밀려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병세와 함께 이를 반대했으나, 이미 대세가 기운 것을 보고 집에 돌아가 조용히 자결했다. 의정대신(議政大臣)에 추증, 고종의 묘소에 배향되었다.

* 이용익(李容翊, 1854~1907): 한말의 문신, 정치가. 친러파의 수령으로 일본이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1904년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가 체결된 후 배일(排日)친러파로 일본에 납치되었다가 이듬해 귀국, 경북관찰사에 등용되었는데, 그 동안 보성사(普成社) 인쇄소를 차리고 보성학원(普成學院: 지금의 고려대학교)을 설립하였다. 나중에는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로 망명하여 구국운동을 계속하다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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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잘났다는 인걸들이 몰려 있는 정치판에서, 배울 만큼 배웠다는 수재가 그득한 정치판에서조차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우가 많다. 진중권 선생은 글쟁이로서의 좌우명으로 프리드리히 쉴러의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하는 얘기를 해야 한다"는 말을 꼽았다. 사람과 함께 하기를 좋아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품은 사람이라면 이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곡학아세(曲學阿世)가 별 거 아니다. 아군에게 듣기 좋은 유리한 말들만 골라서 하는데서 시작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이적행위는 아닌지 염려하고, 그간 나를 입맛에 맞게 여기던 사람들이 떠나가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할 때 곡학아세의 유혹이 스며든다.


나는 적어도 대중의 환호에 얽매여 나를 버리지 않을 자신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내가 만약 거대한 조직에 투신하게 되었을 때 조직의 논리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나만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을지 점점 확신이 사그라진다. 그간 내 편에 넉넉하고 저들에게는 깐깐하게 대한 적도 제법 있었으며, 내 탓을 남 탓으로 교묘하게 치환하는 기지에 스스로 흐뭇해하기도 했다. 눈앞의 세속적 성취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내 편을 거스르기는 뼈를 깎는 아픔이다. 진리를 독점하라는 유혹은 늘 아찔하고, 광기의 국물은 늘 달콤하다.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우직하게 원칙으로 돌아갈 때 결국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은 얼마나 흐릿한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지더라도 아름다운 패배일 수 있다"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말은 큰 울림을 준다. 지켜야할 것을 지키는 굳건함, 남아 있어야 할 때 남아 있는 진득함,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수 있는 산뜻함을 고루 갖추는 것은 자신의 원칙을 얼마만큼 애호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어차피 늘상 승전고만을 울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기왕 지는 거라면 아름다운 패배가 되는 게 좋지 않을까. "스스로 반성해서 정직하다면 천만인이 가로막더라도 나는 갈 것이다(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는 맹자의 말씀은 아름다운 승리보다는 아름다운 패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나는 물론 최대한 이기는 싸움을 하고 싶다. 온전히 내 자신으로 승부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우아해져야겠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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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후배가 고등학교 친구의 군대 후임으로 들어갔다는 재미난 소식을 접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말년병장이던 친구에게 원체 대한민국 땅이 좁다 보니 생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각별한 인연이 아닐까 싶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잘 보살펴주기를 청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그 친구가 건넸던 질문에 답을 해봤다.


(전략) 후배를 잘 좀 봐달라는 청을 하다 보니 문득 옛날 이야기가 떠오르는 구나. 그 때 당시 네가 육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을 게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만 너는 흥미로운 사고실험을 제기했었지. “만약 네 아들이 입대할 나이가 되고, 아는 사람 중에 군장성쯤 되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뭐 이런 식의 물음이었던 거 같다. 나는 그런 방면으로 별로 생각해보지 않아서 확답을 피했던 걸로 기억해. 다시금 생각해보니 그 질문은 역으로 생각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풀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군장성일 때를 가정해봤어. 아예 모른다면야 모를까 아는 친구의 아들내미인 걸 알고 있다면 후대하지는 못해도 박대하지도 않겠지.


비슷한 의미로 내가 만약 음식점 주인이라면 친구들이 왔을 때 조금이나마 더 많이 얹어주고, 피차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깎아주려고 하지 않을까. 또 내가 만약 작가라면 내가 쓴 책을 몇 권쯤은 주위에 나눠 읽으라고 선심 쓰듯이 건네주려고 하지 않을까. 혹은 내가 만약 신문기자라면 일부러 좋은 기사를 써주지는 못해도, 친구들 이름 석자라도 한번 싣는 방향으로 애쓰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거 같더라. 명백한 불법이 아니고서야 또한 속 보이는 편법이 아니라면야 그 정도의 여유는 인지상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어질지는 못해도 모질게 살고 싶지는 않거든.


국사 시간에 나오는 상피제(相避制)를 기억하려나? 일정범위 내의 친족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통속관계에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게 하거나, 연고가 있는 관직에 제수할 수 없게 한 제도라는 뜻인데... 조선시대 지방관을 파견할 때 자신이 자란 곳이나 연고가 있던 곳에는 보내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예지. 이 제도를 선용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아는 사람에게 잘해주고픈 마음을 마냥 억누를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제도를 통해 발현되는 것을 막는 것이 최선은 못돼도 차선책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에둘러서 말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5년 전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서 해본다.


문제의식을 확장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는 것,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해봤어. 아주 큰 맘 먹고 거스를 수야 있겠지만 곧 뒤따를 각박함과 구접스러움에 대한 원망을 견뎌낼 자신이 없기도 하고 말이지. 이런 혼란스러운 질문이 들 때 그저 조금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름다운 인연, 선한 인연을 많이 맺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후략)



예전에 부친 편지의 일부가 떠오른 까닭은 얼마 전 어느 선배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네가 성공하거나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내가 뭘 좀 부탁하려 한다면 그걸 들어줄 거니?" 나는 "제가 그런 걸 들어줄 만한 자리에 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라며 웃어 넘겼지만 가슴 뜨끔한 질문이었다. 또한 예전 같으면 언짢게 들었을 "학연이 문제라고들 하지만 학연이 너무 좋은 거 같아요"라는 후배의 솔직한 애정 고백에 나도 적잖이 동감하기도 했다.


내가 부러 호인(好人)행세를 하려 들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거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거스르기란 참 힘들다. 몇몇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용기를 내어 거스른다고 해도 내 자신에 쏟아질 그 실망의 눈초리를 감내할 자신이 많이 줄었다. 나는 팔이 안으로 굽으려 할 때 어떤 균형감각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내가 지향하는 개인주의, 자유주의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내 파당성(派黨性)은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 건가. 좀 더 부딪혀봐야겠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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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카드] - 황인숙

알지 못할 내가
내 마음이 아니라 행동거지를
수전증 환자처럼 제어 할 수 없이
그대 앞에서 구겨뜨리네
그것은, 나의 한 시절이 커튼을 내린 증표

시절은 한꺼번에 가버리지 않네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물, 한 사물
어떤 부분은 조금 일찍
어떤 부분은 조금 늦게

우리 삶의 수많은 커튼
사람들마다의 커튼
내 얼굴의 커튼들

오, 언제고 만나지는 사물과 사람과
오, 언제고 아름다울 수 있다면

나는 중얼거리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신부님이나 택시 운전수에게 하듯
그대에게

축, 1월!



“시절은 한꺼번에 가버리지 않네”라는 구절이 한참동안 입안에서 맴돈다. 짧은 연애를 나눴던 벗에게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다했다며 제법 단호하게 말했던 것이 민망하다. 시절인연이라는 녀석도 갑자기 확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사를 두부 자르듯이 재단하는 것은 질색이지만 괜한 미련을 남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내 마음 한 조각과 함께 썰어냈다. 내가 아등바등해도 시절인연은 의도치 않은 다른 모양으로 싹트리라. “오, 언제고 만나지는 사물과 사람과/ 오, 언제고 아름다울 수 있다면”말이다.


육조 혜능(慧能)은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이 일겠는가(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노래함으로써 홍인대사의 수제자 신수(神秀)를 꺾고 선종의 법맥을 잇는 후계자가 된다. 그는 선불교를 중창하고 완성함으로써 동양 사상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수의 게송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틈틈이 부지런히 닦고 털어서 먼지가 끼지 않도록 하라(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는 성찰도 소중하다. 신수가 점진적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점오(漸悟)를 말했다면 혜능은 단번에 벼락처럼 깨닫는 돈오(頓悟)를 제창했다. 선종은 혜능의 남종선과 신수의 북종선으로 나뉘어 경쟁하지만 역사는 남종선의 손을 들어준다.


선종에서 말하는 돈오의 교의는 본각(本覺) 사상이 기반이라고 한다. 본래 깨달은 존재라는 본각 사상에 따르면 구태여 새삼스레 깨우칠 것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수행할 때 깨달음을 기대하는 태도를 대오(待悟)라 칭하며 경계한다. 깨달음을 얻고자 헤아리고 따지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이라 하여 덧없게 여긴다. 본각으로서의 깨달음은 시간의 틀이나 인과율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얽매이지 않는다. 단박에 깨치는 것은 세월의 무게와는 관계없다는 선가의 가르침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 하는 세월의 무게가 실상 대오(待悟)에 불과할 수도 있단 말인가. 흐르는 시간에 기대어 깨달음을 날름 주워먹으려는 속셈은 아니었던가.


초기 불교에서는 불보살 이외의 자가 성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뒤에 이르러 일반 중생도 후천적인 수행을 통해 불성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퍼졌다. 점수(漸修)를 통하여 점오(漸悟)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그러던 것이 종국에는 일체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미망에 가려져 있을 뿐 그것을 떨쳐버리면 성불한다고 말하게 된다. 가령 열반경(涅槃經)은 “모든 중생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으나 무명에 뒤덮여 있어 해탈하지 못하고 있을 뿐(一切衆生 悉有佛性 無明覆故 不得解脫)”이라고 말하고 있다. 본각을 가지고 있다는데, 이미 깨우친 상태라는데 그 놈의 무명은 참 짙고도 무거운 모양이다.


여하간 또 우리 내면에 부처가 이미 있는데 뭔 놈의 욕망과 번뇌가 이렇게 많은지 의뭉스럽다. 유마경(維摩經)에서 어느 사리불이 “부처님이 보살로 수행할 때나, 현재 불도를 이루어 부처님으로서 교화할 때에, 그 마음은 분명히 청정할 터인데, 세상이 이처럼 깨끗하지 못한 것은 어인 까닭입니까?”라고 물었다.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이렇게 묻는다. “여기 깨끗한 해와 달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장님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이 경우에 깨끗한 해와 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해와 달의 허물이냐?” 장님이 청정한 해를 보지 못한다는 비유로 본래 부처인 중생들이 미망에 가려서 본각의 세계를 보지 못한다는 설명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타종교의 파닥거림과 마찬가지로 안쓰럽다. 내가 백지설(白紙說)과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의 오랜 지지자여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돈점(頓漸)논쟁은 불가의 오랜 논쟁거리 중에 하나인지라 그 속살을 들여다보기가 여간 녹록지 않다. 큰 틀에서 우리나라 불교는 혜능의 돈오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비판했다. 성철스님이 돈오를 한 후에도 계속 닦아나가야 한다는 돈오점수를 왜 그리 통박하셨는지 잘 모르겠다. 성철스님이 주창하셨던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실체 또한 명료하지는 않다. 불성을 깨닫는 순간 게임오버라는 개념인지, 한번 깨우치면 잡생각에서 자유로이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것인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고승대덕의 가파른 정신세계를 돈오하기란 쉽지 않다.^^;


다시 혜능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돌아가자. 본래 내 것이란 없다는 가르침이 추상같다. 인연이 닿아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물러나는 것이다. 나의 실체가 없는데 내 소유는 따져 무엇하겠는가 하는 마음, 잠시 내가 맡아 있을 뿐이라는 겸허한 자세가 애틋하다. 부러 집착할 그 무엇도 없는 공(空)의 상태란 스스로를 비우는 것을 뜻할 듯싶다. 참으로 텅 빈 곳에 오묘한 진리가 있다는 진공묘유(眞空妙有)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을 잊을 때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을 해본다. 간디는 “내 것이란 내가 잠시 맡아둔 것일 뿐”이라며 보관인 정신(trusteeship)을 설파했다. 내가 추구하는 개인주의가 무소유를 체화할 자신은 없지만, 탐욕에 찌들지 않을 양식은 있다.


짧은 연애를 통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임을 알았다. 한 번도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았거나, 한 번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시절인연이 닿아 사랑을 할 때는 동질적 경험의 반복이나 번개처럼 들이닥치는 찰나의 깨달음에 너무 기대지 말도록 하자. 범부인 나의 깜냥을 감안해서 대오(待悟)라도 해보자. 세월의 무게에 기대든, 소심하고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에 기대든, 나와 다른 가치관을 존중하고 내 것을 고집하지 않는 열림에 기대든 간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봐야겠다. 사량분별(思量分別)이라고 구박받을지언정 나는 사랑에서만큼은 점오점수(漸悟漸修)를 행하고 싶다. 조금씩 조신하고 조심스레 깨닫고 싶다.


결국 혜능과 신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말았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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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한 구절을 읽고 상념에 빠졌다.

만장이 “한 고을에서 다들 훌륭한 사람이라고 일컫는다면, 그 사람이 어디를 가더라도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음이 없을 것인데, 공자께서 덕을 해친다고 하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물었다.
맹자가 말씀하시길 “그들을 비난하려 해도 딱 들어서 비난할 길이 없고, 그를 풍자하려 해도 풍자할 구실이 없으며, 세속에 아첨하고 더러운 세상에 합류한다. 거처하는데 충실하고 신의가 있는 척하고, 나아가 행동하는데 청렴결백한 척한다. 여러 사람들이 다들 그를 좋아하고, 스스로도 옳다고 여기지만 그와 더불어 요순의 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덕을 해친다고 한 것이다. 공자께서는 ‘비슷하면서 아닌 것(似而非)을 미워한다. 강아지풀은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벼 싹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아첨하는 자를 미워하는 것은 의로움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정(鄭)나라 음악을 미워하는 것은 아악(雅樂)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자주색을 미워하는 것은 붉은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다.’고 말씀하셨다. 군자는 상도(常道)로 돌아갈 뿐이다. 상도가 바로 되면, 백성들은 감흥하고, 백성들이 각성하면 사특함이 없을 것이다.”


萬章曰 : "一鄕皆稱原人焉 無所往而不爲原人 孔子以爲德之賊 何哉?"
曰 : "非之無擧也 刺之無刺也 同乎流俗合乎 世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而不可與入堯舜之道 故曰德之賊也. 孔子曰, '惡似而非者 惡莠 恐其亂苗也. 惡佞 恐其亂義也 惡利口 恐其亂信也. 惡鄭聲 恐其亂樂也. 惡紫 恐其亂朱也 惡鄕原 恐其亂德也.' 君子反經而已矣. 經正則庶民興. 庶民興 斯無邪慝矣."


맹자 진심하편(盡心下篇)에 있는 내용이다. 공자는 자신의 집 앞을 지나면서 집안에 들어오지 않고 가더라도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을 사람은 오직 향원(鄕愿)일 뿐이라고 말한다. 향원은 덕을 해치는 도둑(鄕愿德之賊)이라는 공자의 말을 두고 만장은 도대체 향원이 어떤 사람이기에 공자가 그토록 미워했는지 질문한데 대한 답이다. 향원은 한 고장에서 행세깨나 하는 사이비 군자이자 위선자를 말한다. 언뜻 보면 후덕하고 신실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구합(苟合, 구차스레 남의 비위를 맞춤)하는 기회주의자라는 뜻이다.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사려는 이는 제 자신의 줏대가 없게 마련이라는 지적이다.


논어 양화편(陽貨篇)에도 나오는 표현이지만 “섞인 자주색이 순수한 붉은색을 빼앗는 것을 미워한다(惡紫之奪朱也)”는 표현이 가슴에 박힌다. 자주색은 붉은색처럼 보이지만 붉은색은 아니다. 하기야 자주색은커녕 때 되면 표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인물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 자신이 벼린 원칙을 사람 좋다는 소리 듣고 싶은 욕심에 내팽개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내 원칙을 세우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거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거스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혹여 용기를 내본다고 해도 내 자신에 쏟아질 그 실망의 눈초리를 감내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나 혼자 착하고 싶지 않다느니, 내 성정이 모질지 못하느니 하면서 끝끝내 호인(好人)행세를 하려 들것 같다.


옛 선비들의 고루한 습속까지 죄다 본받지는 않아도 그 견결한 정신의 상당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상징조작에 불과하다는 핀잔을 받을만한 여지도 적잖지만 그래도 여전히 헌걸차다. 자신의 뜻을 목숨처럼 여기는 기백이야말로 선비정신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 몸을 위태롭게 할 수는 있어도 뜻을 빼앗지는 못하는 게 진짜 선비다. 끝내 자기 뜻을 지키면서 백성들의 눈물을 닦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이는 부귀에 구차하게 빌지 않고, 권세에 욕보이지 않는 고매한 정신이다. 이병기의 시조 구절인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를 넘어 흙탕물에서 자라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 같은 사람이 참선비다.


살다보면 선택의 순간이 온다. 고만고만한 선택지라면 제 입맛에 따라 골라잡으면 그만이지만, 거대한 간극이 있는 경우에는 취사선택 앞에 하염없이 고독해진다. 무언가를 버려야할 때 그 손실이 만만치 않다면 머뭇거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제 삶을 오롯이 걸고 결단을 내려야할 때 의로움을 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맹자라고 이런 고민이 없었을 리 없다. 그는 고뇌 끝에 이렇게 선언한다. “삶(生)도 원하는 것이고 의(義)도 원하는데 둘 다 취할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를 지키겠다(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捨生而取義者也.).” 고자상편(告子上篇)에 나오는 이 구절이 유명한 사생취의(捨生取義)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도 그것을 쓰지 않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라도 피하지 않는 것은 삶보다 더 소중히 하는 것이 있고, 죽음보다도 더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由是則生而有不用也, 由是則可以避患而有不爲也. 是故所欲有甚於生者, 所惡有甚於死者.).”라는 맹자의 외침에 옷깃을 여민다. 이는 논어 헌문편(憲問篇)에서 인간완성에 대한 질문에 대한 공자의 답과 상통한다. “이익을 보게 되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칠 줄 알고, 지난날 자기 말을 잊지 않고 실천한다(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면 인간완성이라 할만하다고 하신 말씀은 그 얼마나 엄중한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이비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향원에 안주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자주색을 미워할 자신이 있는가, 사생취의하고 견리사의(見利思義)할 자신이 있는가. 초심을 초개처럼 버리는 사람은 하고 넘친다. 그러나 초심을 태산처럼 여기며 명리(名利)를 초개처럼 버리는 사람은 드물다. 드물어서 고생스런 길에 들어서더라도 내 자신을 잃어버려서 얻는 부귀영화에 굴하지는 말자. 세상을 바꾸기 전에 스스로 바뀌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이 나를 얼마나 더 배신할지 모르겠지만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잃지 않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이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신이 지탱할 만큼의 빗방울을 머금고 나면 미련 없이 비워내는 연꽃잎처럼 살아야겠다. “선비는 궁해도 의로움을 잃지 않고, 높은 지위를 얻어도 도를 벗어나지 않는다(窮不失義 達不離道)”는 말을 늘 곁에 두자. 자유롭고 떳떳한 선비가 되고 싶다. 한번뿐인 삶을 도저히 대충 살 재간이 없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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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국무총리의 3.1절 골프 추문은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골프에 대한 호오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적 영역이다. 그러나 총리가 골프를 치는 순간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골프를 쳤느냐는 공적 영역으로 전환된다. 더군다나 개혁성과 도덕성을 주창하는 참여정부의 2인자인 그가 골프광으로 행세하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총리도 자신의 재미를 추구할 권리는 있지만 조금 절제하는 덕목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송나라 재상이었던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나오는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 전에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 한 다음에 즐거워해야 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구절을 새겼어야 했다. 멸사봉공씩은 아니더라도 선공후사 정도는 했어야 했다.


유신독재에 비수를 던지던 이 총리는 홀컵에 공을 집어넣는 재미에 여념이 없었다. 과연 이 총리는 나이스 샷을 외치며 짝짝거리는 소리에 그 옛날의 곤고함은 까맣게 잊었는가. 그만큼 이 세상은 고루 살맛 나는가. 이 총리는 분권형 국정운영이라는 기조 아래 대통령으로부터 경제, 사회 분야를 아우른 내치를 사실상 일임 받았다. 국정의 새로운 지평을 연 분권형 총리에게 붙어 콩고물을 노리는 자들을 왜 결연히 떨치지 못했는가. 늘어난 권한만큼 더욱더 무겁게 처신하는 진중함이 못내 아쉽다. 엄혹했던 시절 이 총리가 믿고 의지했을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서는 곤란하다. 이 총리가 출세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 자신의 출중한 재능 때문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운동권 출신들을 권좌에 올려 놓아준 국민들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떠나야할 때를 다소 놓치기는 했지만 이 총리가 책임지고 물러난 것은 바람직하다. 물론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이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에 사퇴하는 것은 영 찜찜하다. 지방선거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여하간의 쟁투와 한나라당의 물타기 전략에 희생이 된 감도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지율이 40%에 육박하는 때에 더욱 행동거지를 조심하지 못한 실책은 뼈아프다. 노 대통령은 그토록 애호하던 이 총리의 사퇴로 적잖이 당혹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참여정부 국정운영은 사람 보다 시스템이 일하는 체제를 지향했다고 본다. 이해찬이라는 걸출한 인재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 대통령의 읍참마속은 사람에 집착하지 않고 시스템을 신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 총리의 불명예퇴진은 개혁세력의 타산지석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덜 혜택을 받아 그늘진 사람들의 열망을 제 이욕 추구에 온전히 들어바치는 광경은 무참하다. 개혁세력들은 혹여 이 사회에서 흥건한 혜택을 받아 양지바른 사람들의 열망을 대변할 이들에게 권력을 넘겨줄 때가 오더라도 국민의 핑계를 대지 말기를 바란다. 남의 누추함을 따지기 전에 제 자신의 비루함을 먼저 경계하라. 이 총리는 3월 15일 이임식에서 “나는 지금까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디 그 결심을 앞으로도 유지하시기 바란다.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 중에 가장 끔찍한 것은 부끄러움을 잃는 것이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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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이 다했다

잡록 2006. 3. 19. 05:55 |
불가 용어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때가 오면 스스로 찾아오고, 때가 되면 스스로 물러간다는 뜻이다. 내 짧았던 연애도 시절인연이 다했다. 나로서는 이게 가장 손쉬운 해명이지만 실은 오롯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민망하고 부끄럽다.

모든 것은 한때의 시절인연이며, 시절인연이 다해 가는 것을 잡아둘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런 말로 둘러대기에 나는 너무 무심했다. 나는 진리는 시간의 딸이듯이 사랑 또한 시간의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 또한 버젓하지 못한 변명이었다. 결국 내 우려대로 내 부박함은 연인의 섬세한 영혼에 생채기를 남기고 산화했다.

법정스님의 잠언집을 건네고 헤어진 뒤 찾아간 동네모임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노원역에서 태릉입구역까지 만보(漫步)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동력이 소진된 연인에게 내가 굳이 직설법으로 종지부를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탄식했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직설법은 여전히, 앞으로도 낯설고 어색할 듯싶다. 어쩌면 내가 먼저 동력이 소진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간 한 게 뭐가 있다고.

그 날 만나서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짓도록 하자.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일부다.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정무를 보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하루종일 페리클레스를 따라다니며 욕설을 해댔지만 페리클레스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다. 저녁이 되자 페리클레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계속 욕을 하며 페리클레스의 집 앞까지 좇아왔다. 집에 도착한 페리클레스는 하인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길이 어두우니 횃불을 밝혀 저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 주게.”

시인 이온(Ion)은 페리클레스의 그러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페리클레스는 지나치게 교만한 사람이오,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속마음을 감추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오.” 페리클레스가 고상한 척하는 것은 인기를 끌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해 철학자 제논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도 그처럼 행동해 보게. 그렇게 행동하다 보면 자네도 분명 고매한 인품을 갖출 수 있을 것이네.”


본래 내 것은 없다. 그렇게 다짐해놓고도 있을 때 잘하지 못했다.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천형처럼 짓누른다. 좀 더 유익해지고 싶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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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정치 참여라는 주제로 원고 청탁을 받아 쓴 글이다. 원론적인 주제라 재미난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적잖이 고생했다. 대학생에 한정하지 않고 주고객(?)을 20대 청년으로 삼아 투표를 독려하는 글을 써봤다)


<한 표의 권리가 청춘을 더 빛나게 한다>

젊은이들이 보수화 되었다고 흥에 겨워 말하는 이들이 있다. 대학가의 보수화 물결을 집중 조명하는 기사들이 어지럽다. 그러나 민주화가 성숙해 가는 단계에서 대학생들이 진보의 짐을 과도하게 질 필요는 없다. 예전처럼 공부를 잠시 미뤄두고 사회의 거대한 부조리를 고심해야 하는 시대는 아니다. 배우기 바쁜 20대 청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데 그걸 보수라고 치부할 까닭도 없다. 조사결과에 따라 때로는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게 나오기도 하지만, 민주노동당 지지도도 평균보다 높게 나오는 만큼 보수화의 표지를 드리우는 건 다소 성급하다. 다만 우려할 것은 과도한 정치적 무관심이다.


젊은이들의 투표율을 날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96년 15대 총선 20대 투표율이 44.3%(전체 투표율 63.9%)이던 것이 2000년 16대 총선 20대 투표율은 36.8%(전체 투표율 57.2%)로 하락했고, 2004년 17대 총선 20대 투표율은 37.1%(전체 투표율 60.6%)을 보였다. 특히 탄핵 정국으로 투표 열기가 놓았던 지난 총선에서 20대들은 0.3% 포인트 상승한 투표율을 기록했다. 30대가 6.3% 포인트, 40대가 2% 포인트, 50대가 5% 포인트가 상승한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다. 20대 젊은이들이 17대 총선의 전체 투표율이 16대 총선 전체 투표율보다 3.4% 포인트 상승하는 것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투표부대를 위시한 온라인상의 뜨거움도 젊은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비교적 투표율이 높은 대선이라고 해서 상황이 별반 나을 게 없다. 97년 15대 대선 20대 투표율이 68.2%(전체 투표율 80.7%)이던 것이 2002년 16대 대선 20대 투표율은 56.5%(전체 투표율 70.8%)을 기록했다.


2002년 지방선거 20대 투표율은 31.2%(전체 평균 48.9%)였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2006년 5.31 지방선거 20대 투표율은 30%선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2005년 10.26 재선거에서는 20대의 투표율은 21%(전체 투표율40.4%)를 기록했다. 한나라당이 완승했던 재선거에서 60대 이상의 투표율은 61.2%에 달해 연령대별 투표율 차이는 최대 3배까지 벌어졌다. 특히 선거법 개정으로 처음 투표에 참여한 만19세의 투표율도 21.4%에 그쳐 그 험난했던 입법과정을 무참하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젊은 세대들의 투표장 외면은 적잖이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정치적 무관심과 선거의 기권은 개인 선택의 영역이다. 선출 투표는 참여한 사람들의 의사의 총합이 반영되면 그걸로 유의미하다. 기권의 자유 혹은 선거 무관심의 권리는 선출된 대표자에게 승복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 의회민주주의다. 있다. 세계 30여 나라가 투표를 의무로 규정해 불참에 대한 공적 제재를 가한다고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나라가 의무 투표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권리의 행사는 권리를 누릴 자유와 더불어 그것을 행사하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하기에 의무 투표제를 섣불리 지지하기 힘들다. 오히려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억지로 투표를 할 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투표장을 향할 때 그 행위는 공동체의 의사를 제대로 모으지 못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젊은 세대들의 투표 불참은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다. 그러나 제 정치적 지향이 비교적 선명하면서도 단지 귀차니즘 때문에 기권을 하는 경우까지 보듬기는 힘들다. 정치적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나 옅은 사람이나 똑같이 한 표씩 가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 유신독재나 전두환 일당 시절과는 달리 한나라당은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결과를 통해 존속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밉살맞은 짓거리를 할 때 쉽사리 손가락질하기 힘든 까닭은 그네들을 찍은 국민들의 의사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을 부흥시킨 것이 국민들이듯이 그들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것도 국민들의 몫이다. 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세상에서 그나마 평등을 실현하는 1인 1표제를 우리 젊은이들이 적극 활용해야하지 않을까.


경영학에서 대리인문제(agency problem)라는 개념이 있다.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는 항상 일치될 수 없기에, 주주와 경영자, 주주와 채권자 등의 관계에서 이해관계가 상충하여 발생하는 문제를 일컫는다. 대리인문제와 관련하여 발생되는 대리인비용(agency cost)은 세 가지로 분류한다. 감시비용(monitoring cost)은 대리인의 행위를 직접 감시, 감독하는 데 드는 비용뿐만 아니라 일의 성과에 대한 평가비용, 합리적 보상체계와 유인체계의 도입비용, 기회주의적 행위의 제재비용 등을 말한다. 확증비용(bonding cost)은 대리인이 스스로 기회주의적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물적, 인적 보증을 하는 비용을 말한다. 잔여손실(residual cost)은 감시비용과 확증비용 지출에도 불구하고, 대리인의 의사결정이 주인의 최적의사결정과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주인 부의 감소를 말한다. 감독과 보증노력을 하고 나서도 남는 비효율과 낭비인 셈이다.


보통의 합리적 인간이라면 대리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을 지출하려고 노력하게 마련이지만 말 그대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대리인의 기회주의적 행위를 원천봉쇄 하기는 힘들다. 결국 일정 정도의 잔여손실은 불가피한데 이를 정치 문제에 대입시켜보자.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모든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이 일정 기간 동안 위임해준 것이다. 주인인 국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정치권력은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을 현격히 높이다가 궁극적으로는 잔여손실을 증대시킨다. 사람마다 잔여손실을 견디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대리인들의 삽질이 계속되면 될수록 대리인들을 퇴출시키고 자신이 직접 나서는,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다른 대리인을 내세우려는 유인이 커진다. 자신의 잔여손실 내성(耐性)을 넘어섰을 때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강력한 수단은 역시 선거권의 행사다.


루소는 18세기 영국 대의민주주의의 허상을 비꼬며 "영국의 인민들은 의원을 뽑는 동안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난 직후에는 다시 노예로 돌아가 버린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선거 기간에만 최고 주권자 대접을 받고, 투표날에만 주인의 권한을 행사하는 처지는 크게 나아진 바 없다. 한번 생각해보자. 현행 선거제도의 틀을 유지하고 앞으로 백 살까지 80년을 더 산다고 하더라도 대선 16번, 총선 20번, 지방선거 20번을 할 수 있다. 천수(天壽)를 누린다고 해서 백 살까지 장담할 수는 없으니 우리 생애 전국적 투표는 50번 정도다. 권력도 유한(有限)하지만 우리의 주인 노릇은 그보다 더 유한하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가 한껏 자유로운 시대에 이 빛나는 청춘의 일부를 구접스러운 세상을 세련되게 욕하고, 불의를 자행하는 정치꾼들을 단죄하는 데 쓸 수는 없을까. 청년들의 호기로운 문제의식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두려움에 잠식되게 놔두지는 말자. 나보다 못한 놈들이 나를 다스리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면 김종필 대신 노회찬을 의회로 들여보냈듯이 우리 삶을 한 뼘이라도 더 윤택하게 만들 인물들을 좀 더 많이 의회로 보내자. 우리에게 주어진 한 표의 권리를 애호하자.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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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질문

잡록 2006. 3. 17. 01:10 |
<메신저 대화 일부를 발췌한다>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어떤 삶을 원해?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좋아하는거랑 잘하는거랑 분리시킬거야?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이 물음부터 대답하길. =)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아마도 분리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면서 말이죠.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일전에 형께서 말씀하셨듯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아주 잘하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식상해져버릴 것 같아요.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그럼 그 다음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밥벌이와 좋아하는일 분리시킬거유?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어쩌면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들이 가끔 즐기기 때문에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동감.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제 자신의 깜냥과 역량을 그다지 과대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의 폭 이런 건 그다지 생각지 않고 있어요.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밥벌이와 좋아하는 일 분리 문제는 좀 더 고심해야겠지만 아마 분리될 듯 싶어요.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명예욕에 대해서는?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1. 강함 2. 그저 그러함 3. 약함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강하지만 어찌 보면 그리 신경 안 쓰는 거 같아요. 남의 평가를 되게 중시하면서도 간단히 무시하는 양가적 행동을 하다 보니 말이죠.^^;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이정도면 대강 답 나오지? ㅎㅎㅎ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되 내 맘대로 결정한다는 식이거든요. ㅡ.ㅡ;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음 글쎄요 세 질문으로 확답이 나올는지... 덜덜덜


<아 모르겠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이 멀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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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몽에서 깨어날 때

잡록 2006. 3. 10. 02:43 |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 유치환, 「생명의 書」부분


몸과 마음이 노곤해서 잠깐 졸 때면 종종 내가 깨어났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나는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아직도 쿨쿨 자고 있다. 아마도 가위눌린 것처럼 머리는 깨어났는데 몸은 좀 더 잠을 청하고 싶다는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인가 보다. 어쩌면 지금 나는 미몽에서 깨어나는 게 마뜩잖아서 미몽의 안락을 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미몽 속에 있으면서도 미몽을 깨어나고 있다는 착각만 안고 말이다. 이 두터운 각질에 굴하지 않길 바라면서 좀 더 간소해지기로 결심했다.


내가 재물이 넉넉해 일 안하고 유유자적하면서 지낼 수 있는 유한계급(有閑階級)이기를 무던히 꿈꿨다. 세상 통념에 비추어 그리 재미나게 사는 것 같지 않아 보여도 내 자신이 끔찍이도 놀기 좋아한다는 것을 요즘 절감하고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지 않으면 얼마나 기품 있을까, 각박한 세상에 한 잠 늘어지게 자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우아할까 늘 갈망한다. 내가 꿈꾸는 문화 향유가 미만한 세상은 실상 속 편하게 놀고 먹는 세상이다. 인간의 진보는 실상 귀차니즘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내 깜냥 전체를 걸고 진지한 고심을 시작했다. 삼월의 미묘한 힘에 이끌려 깊은 시름에 잠겼다. 이제는 마냥 한가로이 세상을 유랑하며 즐길 수 없어졌다. 내 둘레에 사회인이 되어 세상의 번다함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친구들과 그 부잡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 자신을 갈고 닦느라 여념이 없는 이들을 보면 한없이 부끄럽다. 자꾸만 설렘을 갉아먹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내 성정을 잘 아는지라 궁리할 시간을 많이 주고 싶지만 그냥 무턱대고 돈오(頓悟)에 휩싸일 그 날까지 기다릴 짬은 안될 듯싶다. 결단이 임박했다.


삘 꽂히는 대로 가버리고픈 열정을/ 마음에 품지 않은 자가 어디 있으며/ 순간순간의 행복을 놓치고픈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줄 위에서 균형을 잡은 채 계속 나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잠시 내려와서 기술을 더 연마하자(...)//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잠시 묶어두자/ 불씨만 우선 살려두자/ 활활 타오를 기회는 나중에도 널리고 널렸다.


이 말을 남기고 행정고시 준비에 매진한 그 벗은 지금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으려나. 멀리 뛰기 위해 잠시 움츠리는 냉철한 현실감각, 내일의 당당한 주체로 서기 위해 오늘의 땀방울을 아끼지 않는 자세가 참 멋져 보였는데 말이다. 분명 순간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순간의 행복을 유보한 만큼 얼마나 더 큰 행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순간의 행복은 말 그대로 대체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부지깽이로 들쑤시지는 것마저 마다하고 그저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잘 간직하는 절제는 가슴 아리다.


고시생이 되기로 결심한다고 해도 반년 정도는 신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듯싶다. 도저히 이 달콤쌉싸름한 세속세계를 하루아침 사이에 절연한 자신이 없다. 내가 만났던 아름다운 마음들에게 너그러운 양해를 구하고 싶다. 미처 못다 쓴 잡글도 마저 써야겠다. 내가 쓰고 싶거나 공부하고 싶은 목록을 뽑다가 아연실색했다. 공민왕과 신돈정권 연구, 수원화성 답사기, 뮌헨 영화평, 로스 어버전(loss aversion, 손실회피) 개념 적용, 파시즘 연구, 파레토 최적과 소극적 자유주의, 정암 조광조 탐구, 부여/공주 답사기, 왕의 남자 영화평,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비교 대조, 드라마 궁과 조선왕조 추존문제 고찰, 면암 최익현과 보수주의... 어디 그뿐인가. 당분간 읽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못 볼 것을 감안하면 반년도 모자라다. 이게 미련이고 집착이다.^^;


나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 같지 않고, 극락세계와 내세도 도무지 믿기 힘들다. 가끔 농담 삼아 "내가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다고..."라며 말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는 명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나는 내 우주가 소멸되기 전에 하고 싶은 일도 해보고, 해야 할 일도 해보고, 하면 좋은 일도 해봐야겠는데 게으른 몸뚱이가 늘 머뭇거렸다. 나란 녀석 덕분에 이 우주가 조금은 재미나고 조금은 푸근해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늘 품고 있다. 이 우주의 은혜를 아는 게 진짜 개인주의자의 미덕일 테니 말이다.^^;


나는 누리기에 견디고, 견디면서도 누리는 일을 찾는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밥벌이에 대한 고심으로 몸살이 나야하는 내 처지를 원망했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 오히려 나보다 더 힘겨운 이들의 고통과 함께 하기로 하자. 황인숙 시인처럼 나도 웃음이 헤픈 건 좋아하지만 울음이 헤픈 건 언짢다. 내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이미 충분하고 앞으로도 흥건할 것이다. 자기연민은 굳이 품지 않아도 늘 내 뒤를 쭐레쭐레 따라올 것이다.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고 싶다. 세파에 찌들어 먹고살기 힘들다며 징징거리지 않겠다. 내 눈물은 최대한으로 아껴두도록 하자. - [小鮮]


웃음이 헤픈 건 좋다. 울음이 헤픈 건 화가 치민다. 미감이 상한다. 내 성질이 이상한 건가? 울음은, 눈물은, 정말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상비약처럼 아껴둬야 한다. 정말 그것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순도와 농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이 돼버려서는 안될 눈물을 위해서.
- 황인숙. 2003. 『인숙만필』. 마음산책. 15쪽 '쓰달픈 인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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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김연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마음산책, 2004)에 나오는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에서 따왔음을 밝힌다>


지난 삼일절에 운전할 줄 아는 친구를 졸라 부여와 공주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터, 부여박물관, 궁남지, 무령왕릉을 둘러보며 신들린 듯 사진도 찍고 파안대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2004년 10월 1일 종묘 답사부터 시작된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청자, 불화, 불상, 석탑 같은 고미술 전반으로 확장되더니 이제 문화산업이나 문화정책까지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부여박물관 앞길에 깔린 백제 무늬전돌(文塼)과 무령왕릉 들머리에 세운 벽돌무덤을 본 뜬 홍예문에 왜 이리 설레었던지.


얼마 전 찾았던 서울역사박물관 삼국유사 특별전에서도 무언가 아쉬움을 느끼며 나라면 어떻게 꾸렸을까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저작권법 개정 논란이 일었을 때 고작 이렇게 밖에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지 아쉬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문화산업이나 문화정책과 관련한 일을 밥벌이로 삼아보면 어떨까 진지하게 고심하기 시작했다. 행정고시를 봐서 문화관광부쪽에서 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제법 구체적인 진로를 놓고 장고에 빠졌다. 번듯한 미래설계 없이 대학 4학년을 맞이한 나로서는 이제 어떤 식으로는 결단을 강요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


“선거와 관련한 고민은 공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요약된다. 사회활동에서 내가 드러냈던 철학·성격·언행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게 흔들리면 당락 여부와 상관없이 패배라고 본다. 아름답지 못한 패배다. 그러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지더라도 아름다운 패배일 수 있다. 삶이란 승리보다는 패배의 축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빼앗거나 더럽히는 방식으로는 아름다운 승리가 될 수 없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한겨레21과 나눈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구절을 읽고 내 심정도 그와 같다며 설레발 쳤다. 나의 경우 고시와 관련한 고민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요약된다. 나는 미래의 안락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결연히 내던질 자신이 없다. 나는 끊임없이 세속에 부대끼며 글 읽고 쓰는 걸로 위안을 삼고, 지인들과의 환담에 영감을 얻고 주말에 한 잠 늘어지게 자는 것을 좋아한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내 필생의 보배가 빛을 바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나의 호사스러운 사치는 곧 현실의 무게 앞에 짓눌릴 공산이 크다. 프리랜서로 유유자적할 깜냥이 되지 않는 나는 시험 공부, 대학원 진학, 취업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어떤 일을 하던 내 역량의 보잘것없음에 지치고 실망하지 않도록 절차탁마해야 함은 자명하다. 내가 궁리한 것을 바탕으로 내가 믿고 좋아하는 것을 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승패를 떠나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남의 입신을 질시하고, 남의 양명에 군침만 흘리지 말고 나란 녀석을 온전히 드러내놓고 견주어야겠다.


『시경(詩經)』에 靡不有初 鮮克有終(미불유초 선극유종)이란 말이 있다.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까지 잘 마무리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시작이야 누구나 곧잘 하지만 끝맺음을 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 초심을 버리고픈 아찔한 유혹은 늘 내밀하고 지근한 곳에서 맴돈다. 나는 변화무쌍한 삶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지라 일단 한번 정해지면 큰 궤도 수정 없이 밀고 나가고 싶다. 신중하게 결심하고 우직하게 밀어 붙이는 전략이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두려움이 설렘을 죄다 잠식하기 전에 길을 나서야 한다. 누리기에 견디고, 견디면서도 누릴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만약 공부를 시작한다면 우선 세 분의 사표(師表)를 두고 차근하게 해나가고 싶다. 삼국사기에서 빠졌거나 고의로 빼 버린 많은 사실들을 삼국유사에 수록해 우리 역사를 자주적으로 해석해 문화의 독창성을 일깨워준 일연 스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동법 시행에 일생을 걸어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려 한 김육 선생, 우리나라가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했던 김구 선생이 그 분들이다.


아름다운 문화의 향기에 취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무한경쟁의 황량함을 감내하는 이 역설 앞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반나절 정도는 책 읽고 잡글 쓰는 짬을 내고, 한달에 하루 정도는 부담 없이 놀러 다닐 자신이 생길 때 스스럼없이 이 귀하디 귀한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 듯싶다. 서약보다 질긴 편애만이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줄 것이다. 조만간에 경기도 여주의 세종대왕릉(英陵)을 찾아가 흐트러지고 이지러진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끝으로 외쳐보자. 靡不有初 鮮克有終! - [小鮮]


추신 - 靡不有初 鮮克有終에서 靡 자가 생소한데 靡(쓰러질 미)는 『시경』에서 '無'로 해석되는 조사라고 한다. 여하간 이 구절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서 만날 수 있다. 문병 온 문무대왕에게 임종을 앞둔 김유신이 남긴 말 중의 일부다.

신이 보건대 예로부터 대통을 잇는 임금들이 처음에는 잘못하는 일이 없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대의 공적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없어지니 심히 통탄할 일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공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아시며, 수성하는 것 또한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소인배를 멀리하며 군자를 가까이 하시어, 위로는 조정이 화목하고 아래로는 백성과 만물이 편안하여 화란이 일어나지 않고 나라의 기틀이 무궁하게 된다면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臣觀自古繼體之君, 靡不有初, 鮮克有終, 累世功績, 一朝墮廢, 甚可痛也. 伏願: 殿下, 知成功之不易, 念守成之亦難, 疏遠小人, 親近君子, 使朝廷和於上, 民物安於下, 禍亂不作, 基業無窮, 則臣死且無憾
- 三國史記卷第四十三 列傳第三 金庾信(下)<삼국사기 권 제43 열전 제3 김유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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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독서토론 모임에서 관용을 주제로 한 토론의 후기다. 모든 집단주의는 대체로 악이다)

관용을 주제로 한 토론 즐거웠습니다. 특히 지역주의에 대한 고민은 하면 할수록 시름만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득권층의 분할통치의 산물인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지방분권과 다원화사회를 지향하는 길은 참으로 요원하기만 합니다. 영호남의 불균형이 아직도 적잖겠지만 앞으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 강북과 강남의 불균형에 대한 많은 문제제기가 있어야겠습니다.


지역주의의 폐해는 그 발생론적 오류(genetic fallacy)에서 기인합니다. 이는 논리 자체의 타당성을 검토하기보다는 논리를 생산한 사람을 보고 타당성 여부를 정하는 오류를 말합니다. "전라도 사람은 빨갱이다"는 언설은 빨갱이 운운한 데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전라도 운운하는 발생론적 오류가 더 심각합니다. 고종석 선생님의 지적대로 "한 사람에게서 그 개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표상을 읽어내는 집단주의"인 셈입니다.


지역주의의 폐해를 보다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길은 역시 개인주의의 심화입니다. 공동체의 번영이란 미명 하에 소수자 집단을 희생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개인주의, 개인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지역과 혈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자유로운 사고판단으로 표출할 수 있는 개인주의의 확산만이 이 야만적인 지역주의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단언컨대 한국 사회에 미만한 집단주의 사슬을 끊어내야만 합니다. 모든 집단주의는 대체로 악이니까요. 아래 고종석 선생님의 말씀대로 방어적 지역주의가 공격적 지역주의로 바뀌는 데는 그리 많은 수고로움이 들 것 같지 않습니다.


그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한국인으로서 또 나는 지역패권주의에 맞선 지역등권론이라는 것에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것이 한 노정객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방편적·전술적 차원에서 제기된 보기 흉한 선동이라는 판단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지역패권주의에 대한 올바른 처방 역시, 공격적 민족주의에 대한 처방처럼, 개인주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집단주의의 악을 작은 집단주의로 막을 수는 없다. 집단주의의 악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개인주의다. 게다가, 작은 집단주의가 커다란 집단주의에 견주어 반드시 윤리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예컨대 통일 베트남의 민족주의가 인도차이나의 이웃 나라들에 대해 행사했던 패권주의는 중국의 대국주의가 베트남과 그 이웃나라들에 대해서 행사하려고 했던 패권주의에 견주어 반드시 덜 흉했던 것도 아니다.
- 고종석. 1997. 『책읽기 책일기』. 문학동네. 297~298쪽. 「개인주의여 영원하라」中


저는 요즘 강준만 선생님이 그토록 통박하셨던 양비론에 빠져봅니다. 민주당에 대한 호남인들의 적잖은 지지에 놀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현상이 2004년 총선 당시에 민주당이 궤멸적인 몰락을 겪은 것에 대한 연민의식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호남인들의 동정표에 기대 의기양양한 민주당을 보면서 과연 저들이 자민련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 가 당혹스럽습니다. 호남인들의 상대적 진보성도 사실상 지역구도 아래 치러진 선거에서 본의 아니게 씌어진 허울이 아니었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도 해봅니다. 호남인들이 저항적 지역주의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겠지요.


팔이 안으로 굽는 편견을 빌미로 억압과 통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편견을 마냥 죄악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것이 인간의 비루한 속성이라고 해도요. 만약 다수자의 편견이 나쁘다면 소수자의 편견도 딱히 나을 건 없겠지요. 유시민 장관님이 일전에 말씀하신대로 "남의 허물이 나의 알리바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나라당을 찍는 영남인들의 심성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일부 호남인의 심성, 국민중심당에 혹하는 일부 충청인의 심성 사이에 있을 섬세한 차이를 헤아리는 건 부질없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의하다 연계해서 나온 대연정 문제를 살펴보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정치일생을 걸었다고 즐겨 말하는 노무현 대통령님이 제안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은 대체로 실책이라고 봅니다. 일부 토론자께서 대연정이 앵똘레랑스를 똘레랑스로 대응하는 새로운 모델이라고 전향적으로 평가하신 견해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앵똘레랑스에 앵똘레랑스하지 못했던 것은 반성하지 않고 뜬금없이 앵똘레랑스에 똘레랑스하자고 하니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더군다나 그런 판국에 한나라당이 거절을 한다면 똘레랑스를 앵똘레랑스한 셈이 되니 얼마나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는 행위입니까. 노 대통령님의 지역구도 해체라는 목표의 진정성은 아름답지만 대연정 제안은 과정의 진정성이 부족했습니다. 노 대통령님이 갈등의 정치구조를 타파하고자 했다면 우선 열린우리당의 앵똘레랑스 전략을 독려했어야 합니다. 굳이 똘레랑스를 하려고 했다면 앵똘레랑스의 구심점보다는 앵똘레랑스를 지지하고 소비하는 국민들을 보듬었어야 합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가치들에 좀 덜 너그러워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대통령님 자신의 문제의식만을 절대시하는 과오가 너무 컸다고 봅니다. 지역주의라는 집단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집단주의적 방법을 끌어다 오는 것이 탐탁지 않았습니다. 지역구도를 해소해서 정치문화가 바뀌면 사회 모든 부문이 잘 돌아갈 것이라는 식의 정치환원주의에는 여전히 동감하지 않습니다. 앙시앙레짐은 분명 극복해야할 과제이지만 앙시앙레짐은 지역구도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앙시앙레짐을 해체할 열쇠를 들자면 지역주의 타파보다는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확산이라고 봅니다.


현행 선거구제 하에서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동토에서 산화해야할 것 같습니다. 노 대통령님 말씀대로 농부가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각오로 앞으로도 지극 정성을 쏟아 부어야겠지요. 누군가의 희생으로 움트는 진보를 달가워하지 않는 저이기에 더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선거구제 개편 같은 제도를 개선보다 의식을 바꾸는 것이 더 긴요하다고 봅니다. 이제 정치적인 지역차별은 거의 사라졌지만 문화적인 지역차별이 남아 있는 만큼 제도개혁보다는 의식개혁이 더 필요합니다. 선거구제 개편은 의식개혁을 촉진하기 위한 유력한 방안일 뿐이고, 이 밖에 정치경제적인 지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지방분권 전략도 많이 요구되겠지요.


언제쯤 상대방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에 개의치 않고, 경상도에서 한나라당 안 찍어도 그만 이라는 인식이 퍼질 수 있을 까요. 저는 궁극적 소수로서의 개개인에 주안점을 두기 위해 “선의의 무심함”을 주장합니다(여기서의 선의는 윤리적 평가와는 관련이 없는 법률적 의미를 말합니다). 이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과 소수파에 대한 탄압을 알면서도 모르쇠 하는 악의의 무심함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상대방을 잘 모르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 무심함, 설혹 어떤 요소들을 알게 되더라도 그것을 편견의 잣대로 삼지 않는 무심함을 말하고 싶습니다. 무심한 태도는 "이해는 못해도 인정한다", "공감하지 않지만 존중한다"는 식의 태도보다 훨씬 실천하기 쉬울 겁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집단주의 정서는 무심보다는 관심을 강조합니다. 물론 관심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맹자가 말씀하신 “선을 권장함은 벗의 도리(責善 朋友之道也)”와 같은 관심은 유익한 점이 많습니다. 다만 “타인의 행복을 보살펴 줄 권리는 그들의 가까운 친구에게 한정된 하나의 특권”이라는 칼 포퍼의 제언처럼 벗의 도리는 매우 절제되어 한정되어야 합니다. 집단주의가 관심을 만나면 대개는 과도한 간섭, 부당한 개입으로 나아가기에 각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악의의 무심함을 극복하기 위한 기제로서 제한된 관심이 적용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아직 궁리하는 과정에 있어서 생각이 거칠고 해법이 정돈되지 않습니다. 토론 주제였던 관용으로 돌아가자면 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한 똘레랑스는 여전히, 앞으로도 유효합니다. 똘레랑스는 일종의 보험입니다. 모든 면에서 다수파일 수는 없습니다. 부러 좇아서 다수파에 줄서지 않는다면 누구나 아웃사이더, 소수파, 비주류가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진리를 독점하라는 유혹을 버리고, 나와 다른 것을 증오하지 않는 보험료의 부담보다는 보험금의 혜택이 더 큰 남는 장사라고 확신합니다. 똘레랑스라는 늘씬한 보험상품을 파는 외판원이 좀 되어봐야겠습니다. 하나 구매해주셔도 좋고, 같이 팔러 다녀도 좋을 것 같아요. 푸하하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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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人多望愛難成 퇴고

잡록 2006. 2. 22. 21:30 |

퇴고(推敲)는 시문(詩文)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것을 말한다. 좀 더 확장해서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해 문장을 다듬고 어휘를 살피는 작업이다. 이태준은 『문장강화』에서 퇴고의 고사를 “우리 문장인에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로맨스를 전한다”고 찬했다. 그 내용인즉슨 당시기사(唐詩紀事)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절친한 친구였던 이응(李凝)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에 좋은 시상이 떠올라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이응의 그윽한 거처에 붙여(題李凝幽居)라는 제목의 오언율시는 다음과 같다.


閑居隣竝少(한거린병소)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한가로이 거처하니 이웃도 드물고
풀에 묻힌 오솔길은 거친 정원으로 통한다.
새는 연못가의 나무 위에 잠들고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


가도는 결구(結句)를 두드리다(敲)로 해야 할지, 밀다(推)로 해야 할지 골똘히 고민하다가 자신을 향해 오는 고관의 행차와 부딪혔다. 가도가 길을 막은 사람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며 서울시장격인 경조윤(京兆尹)의 직위에 있던 한유(韓愈)였다. 한유는 가도가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니 두드릴 고(敲)가 좋겠다고 말했다. 그 후로 둘은 막역한 시우(詩友)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쓴 글을 읽어주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얼마나 황송한 기쁨인가. 내 마음을 읽고 봄바람 같은 격려와 가을서리 같은 비판을 해주는 이는 그 얼마나 투명한 설렘인가. 가낭선(賈浪仙)과 한퇴지(韓退之)의 우의를 숭앙하며 연인이 건네 준 권애시를 조심스레 퇴고해봤다.


<퇴고 전>
戀人多望愛難成(연인다망애난성)
靑春不來拜別悔(청춘불래배별회)
珍重交際相悅愛(진중교제상열애)
於焉之間詣而立(어언지간예이립)
연인은 바라는 게 많고 사랑은 이루기 어려우니
젊음은 다시 오지 않고 헤어지면 후회하게 된다.
소중히 여기며 사귀고 서로 아끼고 즐거이 사랑하면
어느새 이립의 때가 오게 될 것이다.


<퇴고 후>
戀人多望愛難成(연인다망애난성)
靑春不停拜別悔(청춘부정배별회)
喜色然後亦破顔(희색연후역파안)
塵世誰知自由心(진세수지자유심)

연인은 바라는 바가 많고 사랑은 이루기 어려우니
젊음은 머무르지 않고 헤어지면 후회하게 된다.
연인이 기뻐한 후에 나 또한 웃으니
티끌세상에 누가 자유로운 마음을 헤아릴까.


1행의 望자는 바라보다의 의미도 있지만 願자는 원하다, 소망하다의 의미로 많이 쓰이니 뜻이 보다 명료하기는 하다. 하지만 다망(多望)이라는 말은 "바라는 바가 많음, 꿈이 많음"이라는 뜻이니 그냥 놔둬도 무방할 듯 싶다. 이럴 때는 독음을 입으로 읊조려서 더 달라붙는 걸 선택하는 수가 있는데 이응(ㅇ) 받침이 한결 부드럽다. 2행에서 올 래(來)자 대신 머무를 정(停)자를 쓴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초고의 3, 4행은 다소 산문적이어서 조금 문학성을 높이기 위해 이것저것 뒤적거려봤다. 3행은 송나라 재상이었던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 전에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 한 다음에 즐거워해야 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구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처음에는 자구만 좀 수정해서 후연인지소이소(後戀人之笑而笑)라고 해서 "연인이 웃고 난 다음에 웃고"라고 했다가 좀 더 변형해 봤다.


4행은 조광조의 영금(詠琴)이란 시 4행을 따왔다. 조광조가 외로움을 노래한 시구를 이런 데 훔쳐 와서 모종의 자부심을 표현하니 좀 민망하다.^^; “때를 만나 천지가 모두 뜻을 함께 하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한 정의일 뿐 내 잘못이 없나니/ 나라를 위한 참된 마음을 그 누가 알아주랴(時來天地皆同力 運去英雄不自謀 愛民正義我無失 爲國丹心誰有知)”는 전봉준의 절명시(絶命詩) 4행을 고쳐서 多情丹心誰有知 혹은 自由丹心誰有知라고 써볼까 했으나 고심 끝에 조광조의 시구를 채택했다. 백아절현(伯牙絶絃) 고사에서 나온 조광조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瑤琴一彈千年調(요금일탄천년조)
聾俗紛紛但廳音(농속분분단청음)
怊悵鐘期歿已久(초창종기몰이구)
世間誰知伯牙心(세간수지백아심)

천년의 가락을 거문고에 실어 보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만 듣기만 하네.
슬프도다 종자기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고
이 세상에 뉘 있어 백아의 마음 알아주리.


플라톤은 사람은 사랑할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지만 아무나 되는 건 아닌가 보다. 한바탕 씨름했더니 배가 고프다.^^ - [小鮮]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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