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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2.16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을 읽고 2
  3. 2006.02.10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와 유시민 4
  4. 2006.02.09 아호(雅號) 단상 - 小鮮에 부쳐 2
  5. 2006.02.07 솔로만세당을 탈당하며 3
  6. 2006.01.27 19.5세를 위하여!
  7. 2006.01.16 몸 숭배를 거절하자
  8. 2006.01.16 네트워크 혁명에 대한 고찰 2
  9. 2006.01.10 비전향 장기수 송환 어떻게 볼 것인가 2
  10. 2005.12.31 책값 하는 새해를 다짐한다
  11. 2005.12.24 역행보살 과학영웅의 몰락
  12. 2005.12.13 사립학교법 통과를 환영한다 2
  13. 2005.12.05 PD수첩과 과유불급 3
  14. 2005.11.27 익구 방, 보고재(寶高齋)! 4
  15. 2005.11.17 관용이 흐르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꿈꾸며 5
  16. 2005.11.17 DJ의 진솔한 사과를 기대한다 1
  17. 2005.11.14 김대중 대통령님의 침묵을 본받고 싶다
  18. 2005.11.06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
  19. 2005.10.31 국립중앙박물관과 삶의 삼각형
  20. 2005.10.26 다시 돌아오는 것들을 반기며
  21. 2005.10.16 강정구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아도 2
  22. 2005.10.14 서러워라, 잊힌다는 것은
  23. 2005.10.08 조선 당쟁에서 배운다
  24. 2005.09.28 故 정운영 선생과 아흔 둘 욕심
  25. 2005.09.28 국가의 책임까지 떠맡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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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2005.09.20 잉여, 인문학, 위기지학
  28. 2005.09.14 북한의 습관성 몽니가 지겹다 2
  29. 2005.09.05 고종석과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
  30. 2005.09.01 싸이 동네에 잡글 테러하기? 1

戀人多望愛難成

잡록 2006. 2. 21. 02:15 |
자줏빛 바윗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라.



나는 헌화가(獻花歌)의 3행의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는 조건절과 4행의 꽃을 바친다는 은유적 표현을 맛깔스럽게 여긴다. 내가 헌화가를 좋아하는 까닭은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도 이렇게 낭만적이고 천진난만한 삶을 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절벽 위의 꽃을 꺾어다 바칠 수 있는 열정보다 대단하지만 그보다 더 부러운 것은 노래 하나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짙은 여운을 남기는 풍취다. 내가 애틋하게 간직하고 있던 헌화가를 써먹을 날이 오리라 믿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헌화가(獻花歌)의 마음을 그리며 내가 선물했던 헌화가 패러디는 다음과 같다.


번잡한 세상사에
읽던 책 쓰던 글 미루게 하시고
나를 아니 맵살스러워하신다면
술잔 따라 나누오리라.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세상의 통상관념을 지그시 무시해가며 알콩달콩 지내고 있다. 내가 편애하는 것들이 시나브로 늘어가서 두렵고, 죄다 책임질 수 있다며 호방하게 웃어 넘길 배짱은 없다. 다만 선한 인연을 위해 내 자신을 절차탁마하고 싶다. 연인은 주자의 권학시(勸學詩)를 패러디 해 내게 권애시(勸愛詩)를 선보였다.


戀人多望愛難成(연인다망애난성)
靑春不來拜別悔(청춘불래배별회)
珍重交際相悅愛(진중교제상열애)
於焉之間詣而立(어언지간예이립)

연인은 바라는 게 많고 사랑은 이루기 어려우니
젊음은 다시 오지 않고 헤어지면 후회하게 된다.
소중히 여기며 사귀고 서로 아끼고 즐거이 사랑하면
어느새 이립의 때가 오게 될 것이다.


도입부 모티브는 주자의 우성(偶成)이라는 칠언절구에서 따왔다. 내가 중학교 한문시간에 배운 뒤 즐겨 읊는 한시인지라 연인께서 패러디 대상으로 선정해준 셈이다. 내가 헌화가 패러디할 때는 내가 좋아서 한 건데 이번에도 내가 좋아하는 시를 선물로 받았으니 망극한 일이다. 우성(偶成)은 우연히 짓는다는 뜻으로 즉흥시를 말한다. 3, 4행의 미려한 구절을 우연히 지었다고 하니 그 겸손이 오히려 얄밉다.^^; 연인이 곱게 써 보내준 시는 힘써서 지었다라는 뜻으로 면성(勉成)이라고 불러봄직 하다. 참고로 주자의 권학시는 다음과 같다.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계전오엽이추성)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연못가의 봄 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소리를 내는구나.


연인은 내 소소한 일상을 궁금해하지만 사실 이런 것도 얼마든지 자질구레한 일상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게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최고위원이 신중하고 점잖은 행보 때문에 "김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왜이리 부러운지 모르겠다.^^; 가벼워서 어디로 날라 가야할지 모르는 세태에 진중한 교제를 꿈꾸는 건 아름다운 사치다. 戀人多望愛難成(연인다망애난성)... 참 명문이다.^^ - [小鮮]
Posted by 익구
:
2002년 봄 대학교 1학년 1학기 국어작문 과제로 제출했던 과제물이다. 예전에 쓴 조악한 글을 만날 때 가슴이 시린 것은 그 당시의 부박함이 아쉬운 것보다 지금도 크게 나아가지 못함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스러움 때문이리라.

쇼펜하우어 지음, 김재혁 옮김.『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고려대학교출판부, 1997.

[논쟁에서 이기자. 그리고 거기서 배우자]

철학사상보다는 기이한 행동으로 더 잘 알려진 쇼펜하우어는 그의 확고한 인간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설파한다. 그는 부단히 논리학과 토론술은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데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논리학은 이성적인 존재의 고독한 사고인 반면, 토론술은 두 이성적인 존재의 상이성에 따라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논쟁적 토론술'이라고 명명한 것은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인간의 태생적인 태도에 대한 학설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여기서 쇼펜하우어는 어떤 명제의 객관적인 진실성 여부와 논쟁을 통한 그 명제의 타당성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한다. 결국 논쟁은 자신의 주장이 정당성의 외관을 획득하기 위한 - 말 그대로의 싸움(爭)이라는 - 것이다. 그 현상의 분석 또한 염세주의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내리고 있다. 인간의 타고난 허영심, 수다스러움, 부정직함이 합작(?)하여 진실을 좇기보다는 비록 허울뿐일지라도 자신의 승리를 좇게 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을 일종의 예방주사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논쟁을 할 때 상대방이 써먹을 술책들을 미리 파악하고 그에 대비하라는 뜻이다.


쇼펜하우어가 늘어놓는 38가지 방법들은 어떤 일정한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고 중구난방 식으로 되어있다. (어쩌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가 소개한 방법 중에 하나를 이미 독자에게 써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토론술의 기초에서 언급된 골격을 빌려 나누어 보려해도 여의치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특히 대사상논증과 대인논증 중에서 대인논증의 비중이 훨씬 커 보이며 쓸모 있어 보이는 요령들도 거의 다 대인논증에 편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런 나눔이 무색할 정도로 쇼펜하우어는 작정하고 "모로 가도 서울로 가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그는 논리학은 논쟁에서 소용이 없으며, 상대방을 공략하는 각종 부정직한 요령들만이 논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게 할 것이라는 신념을 우리에게 펼쳐 보이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요령들을 가만히 따라가다가 혼란에 빠졌다. 수능을 위한 언어영역에서 논리적 사고 영역에서 배웠던 각종 논리적 오류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오류를 발견하고 비판하는 숱한 문제들을 풀던 나로서는 갑자기 그 오류들을 논쟁에서 활용하라는 쇼펜하우어의 논리에 적잖이 헤맸다. 조금만 살펴보면 동음이의어를 활용하라는 요령은 '애매어의 오류'이며, 개별적 경우의 시인을 보편적 진리의 시인으로 간주하라는 요령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범주 혼동의 오류' '군중에 호소하는 오류'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의도 확대의 오류' '논점 일탈의 오류' 등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는 논리학과는 별개의 문제로서 자신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얼마 전 까지는 그런 오류들을 발견해서 지적하는 것을 업으로 하던 이에게는 분명 산뜻한 충격이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밤에 난다"라고 헤겔이 말했다. 낮에 세상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 뒤 밤이 되어서야 사람은 비로소 지혜를 얻는다는 뜻으로 학문이 현실보다 뒤쳐지는 것에 대한 경계를 말하는 재미난 문구이다. 나의 이런 어지러움에도 헤겔은 이런 처방을 내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됐든 그는 첫 번째 요령으로 "상대방의 주장은 최대한으로, 자신의 주장은 최소한으로 하라"를 제시한다. 공격할 틈은 많이 만들되 방어할 틈은 최소한으로 하라는 간단하면서도 멋진 요령이다. 그러나 그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쇼펜하우어가 빠뜨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그 정도가 지나치면 상대방이나 청중으로부터 '소심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아무리 자기 논의의 범위를 이리저리 축소시켜서 성을 세워 상대방의 화살을 잘 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옹졸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이겨도 시원찮게 되고 만다. 설득력은 섬세한 수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청중들은 때로는 성문을 열고 나가는 박진감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요령들은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인신공격과 무례함으로 대응하라는 너스레를 떤다. 병법에도 삼십육계 줄행랑이 있듯이 그도 최후의 궁지에서는 마지막 발악(?)을 주문하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쇼펜하우어가 애초에 아주 실용적인 목적에서 이 책을 지었음을 천명했듯이 나도 실생활에서의 논쟁에서 그의 요령들을 검토해 보는 것이 그의 의도에도 맞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그 동안 내가 온라인 상에서 친구와 논쟁을 벌였던 부분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다.


지난 경험들을 돌아보면서 가장 먼저 기억이 나는 것이 있다. 나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글을 쓰다가 인용한 한 문구는 쇼펜하우어도 미소를 지어 보일 만 하다. 그 한마디인즉슨, "The way to be successful is to follow the advice you give to others. - 성공으로 향한 길은 당신이 남들에게 해 주는 바로 그 충고를 자신이 직접 따르는 것이다." 이 한 문구로 말미암아 나의 글의 요지는 "당신의 비판을 수용하겠다. 그러나 나에게 하는 비판을 당신 스스로가 따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바뀌는 절묘한 반전을 꾀한 것이다. 어쩌면 치졸한 대인논증인 피장파장이라고 폄하할 수 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왜 그러면 그것대로 행동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엄청난 무안을 주며 청중들에게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깎아 내리는 작용을 한다. 물론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쇼펜하우어의 요령을 적용해보자면 충분히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다고 판단된다.


좀 더 정치 사회적인 문제로 논쟁을 벌였을 때 논쟁은 더욱 격렬했다. 김대중 정권의 실정을 꼬집는 친구의 글이 올라왔다. 그 중에 하나로 새만금 간척 사업을 반대하며 환경을 버리는 그 정책은 비판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이에 나는 반론을 제기했다. 환경의 가치를 들먹이지만 전북 도민들의 개발 요구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점잖게 맞받았다. 구체적인 사례로 전북 도민의 절반인 1백만 여명이 사업 추진 지지 서명을 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미 공사가 절반 이상 진행된 상태에서 공사 중단 운운하는 것은 전북 도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고서 나는 두 가지 비수를 던졌다. 하나는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친구 글의 성격을 이용했다. 쇼펜하우어가 상대방이 인정하는 권위에서 근거를 마련하라는 요령을 제시했듯이, 나도 "한나라당도 새만금 사업에 대해 명백히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가 수긍하지는 않았다 치더라도 청중들에게는 분명 많은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또 하나는 "교실 안의 쓰레기나 잘 처리하자"는 억지였다. 논의와는 별반 관계가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당장 우리 주위의 형편이나 살피자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친구의 주장에 타격을 가했다. 친구의 매서운 주장에 나의 비수가 어느 정도 잘 꽂혀 들어갔는지 친구의 재반론에서는 오염된 시화호의 사례를 드는 다소 감상적인 접근으로서 새만금 사업에 대한 논의를 접었다.


또한 친구는 교육의 실정을 물고 늘어졌다. 무시험 전형이라는 정책으로 수험생의 혼란과 각종 해악을 끼쳤다며 기세를 올렸다. 나는 사안을 보편적인 쪽으로 끌고 가서 보편적인 것을 공격하는 요령을 사용했다. 제도 몇 개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의식 속의 학벌주의를 몰아내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는데 안간힘을 썼다. 우리 스스로가 학벌주의의 철저한 신봉자이면서 교육 문제를 논한다는 것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며 논의의 선을 그었다. 원체 불리한 입장에서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 포문을 열었다. 교육 문제는 입시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사립학교 개혁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미온적 태도를 꼬집었다. 최소한 청중들에게 양비론이라도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었다. 실제로 다른 한 친구는 우리 둘의 논쟁을 '그게 그거'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친구의 공들인 주장에 김이 빠지게 하는 다른 친구의 반응이 있었다. "코사인 법칙이나 익혀라" 물론 서로 다 같은 반 친구로서 농담 삼아 던진 말이다. 그런 주장하느라 시간들이지 말고 수학 공식이나 하나 더 외우라는 이런 사소한 핀잔에도 그 친구는 상당한 타격을 입지 않을까 생각된다. 적의 적은 동지라 하더니 그 친구가 어쩌다보니 나를 도운 셈이 된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요령은 나, 상대방, 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단순한 청중에서 나아간 '제삼자'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제삼자의 지지를 활용하는 것 또한 논쟁에서의 무시 못할 방책이다.


그 후 다른 논쟁에서 나는 쓴잔을 마셔야 했다. 어려운 수능을 성토하는 분위기에 나는 대안 없는 비판에만 몰두하는 것을 문제 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나를 무섭게 몰아 부쳤다. 대안 없는 것은 오히려 교육당국이라고 지적하면서, 기막힌 한 방을 날려 나를 나가떨어지게 했다. 수시모집 합격생인 나를 수시제도의 수혜자라고 판단하고 수시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측면 공격을 한 것이다. 내가 수시제도에 대해 상대적인 침묵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물고 늘어졌고 그 전술은 청중들에게 유효했다. 쇼펜하우어 역시 청중을 어떻게 다루느냐, 청중에게 어떻게 자신이 옳다고 느끼게 만드느냐하는 문제를 중요시했다. 청중이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실만을 외치기보다는 다양한 편법으로 청중들을 구워삶으라는 그의 제안은 실로 정확했다. 나는 논쟁의 성패는 결국 청중이 가린다는 점을 실감하고 그 논쟁에서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지나간 논쟁들을 살펴보면서 나와 친구 사이에 오갔던 말의 파편 중에서 상당수가 쇼펜하우어의 요령에 부합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라인 상에서의 논쟁이라서 비교적 차분히 이루어졌고 의미 없는 말로 교란시키거나, 상대방이 화를 내는 부분을 집중 공략하는 등의 요령들은 활용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무척 재미있고 뜻깊은 작업이었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며 논쟁의 장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그야말로 백화제방백가쟁명(百花齊放百家爭鳴)을 일컫는 시대이다. 그러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토론에 대한 냉소가 팽배하다. 그 냉소에서 벗어나 자신의 주장에 최선을 다하는 성숙된 토론 문화를 일구어내야 할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예방주사는 잘 맞아야겠지만 거기에 천착해서는 안될 일이다.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논쟁에서 배우는 방법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글에서 든 사례들은 온라인 상의 제 고등학교 커뮤니티에서 저와 제 친구가 올린 글들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Posted by 익구
:
헌정사상 최초의 국무위원 국회 인사청문회 진통 끝에 마무리되었다. 통과의례, 요식절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거세지만 일단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앞으로 대통령의 인사권을 얼마나 제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섬세한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국민연금 미납 등은 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것으로 청와대 검증과정에서 놓친 부분을 국회에서 찾아낸 성과도 적잖았다. 다만 장관 내정자가 청문회를 거친 뒤 최종 임명되기까지 너무 오랜 기간 업무 공백을 빚는 점은 조속히 보완해야할 것이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에 대한 검증은 혹독했지만 상대적으로 정책과 전문성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여야는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기세 싸움으로 일관해야 했다. 시종일관 제 편을 들지 않고는 못 배길 살벌한 분위기였다. 유시민 청문회에서 대체로 질문이 답변보다 길었는데,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인고의 방어도 눈물겨웠지만 한나라당의 똑같은 시비 또 걸기도 안쓰러웠다. 아무리 양측이 정쟁만 주고받았다고 해도 한나라당은 국무위원 인준 여부를 국회에서 결정하도록 국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에 신중해야 한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헌법적 문제가 결부되어 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유시민 내정자의 태도 변화가 화제였다. 겸허한 자세로 대부분의 질책에 수긍하며 몸을 낮춘 그의 모습이 조금 당혹스러웠다. 한신(韓信)이 기어서 남의 바지가랑이 밑으로 지나갔다는 과하지욕(袴下之辱)의 고사가 떠오른다. 굴욕을 참아 그가 품은 뜻을 펼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예의 총기와 재기가 흐려진 듯 보여서 아쉽다. 이제 정말 그가 "나는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없을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인물을 국무위원으로 보내는 대신 자유롭고 재기발랄했던 스승을 잃은 것만 같다. 여하간 유 내정자의 고초를 통해 국무위원 되기의 엄중함을 많이들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


유시민 내정자는 청문회를 마치며 도종환의 시「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낭독했다.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라는 구절에 가슴이 아렸다. 노무현 후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이래로 많은 오해를 받고 숱한 낙담을 겪었을 유 내정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가 시니컬해졌다면 절망에 익숙해져 염세주의의 바닷물을 들이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왕따를 당해 괴로울 때 나마저 손쉬운 손가락질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편애를 확인한다. 어떻게 나마저...


유 내정자가 참여정부와 우리당을 위해 형극을 마다하지 않은 걸 기억한다. 그런데 이제 그가 맡을 국민연금 개혁은 욕먹을 일이 태산 같다. 그 저주와 증오를 어떻게 견뎌낼지 걱정이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을 그와 함께 얼마나 비를 맞아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엄살을 좀 부려봤지만 그가 초심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그를 지지하겠다. 살아있는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기란 이렇게 어렵다.^^ - [小鮮]


나는 범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비치듯, 이탈리아의 피렌체가 아테네의 문화를 받아 빛났듯이, 남의 광영을 힘입어 영광을 맛보는 것을 반사적 광영이라고 한다.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이 반사적 광영이 없다면 사는 기쁨은 절반이나 감소될 것이다.

- 피천득. 2002. 『인연』. 해냄. 199쪽. 반사적 광영反射的 光榮 中
Posted by 익구
:
지난 3년여간 써왔던 제 호인 憂弱(우약) 대신 새로운 호를 만들어 쓰기로 했습니다. 여조겸의 [동래박의]에서 君子憂我之弱 而不憂敵之强(군자는 제가 약한 것을 걱정하지 적이 강한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憂弱은 언제나 저의 어리석음과 모자람을 인식하자는 다짐이면서도 약한 것, 어려운 것, 힘겨워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자는 뜻이었습니다. 둘러댄 유려한 의미에 부합하지는 못했더라도 늘 제 호를 염두에 두고 노력했다는 것만큼은 자부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부정적인 한자어로만 구성된 제 아호가 종종 불만스러웠습니다. 약함을 근심한다는 것인지, 약해져서 걱정스럽다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말입니다.^^; 제 천성이 변덕이 많은 것인지 이런저런 흠을 잡아 싫증도 냈고 말입니다. 그러던 참에 잊고 지내던 약팽소선(若烹小鮮)이란 도덕경 구절을 만나던 순간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도덕경 20장에서 따온 잠잠히 흐르는 모양, 담담하구나!라는 뜻의 澹兮(담혜)라는 제 생애 최초의 호를 쓸 때의 마음이 새록새록 되살아났습니다. 제 영감의 원천인 도덕경에서 이번에도 신세를 좀 져야겠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自號(스스로 만들어 쓰는 호)를 짓는 것이 온당키는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이름을 매우 중요시하고 소중하게 여겼으며, 자신의 이름에 떳떳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고명사의(顧命思義)라 하여 항상 자신의 이름이 품고 있는 뜻을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생각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름마저 수신(修身)의 방책으로 삼은 옛사람들의 집요함을 마냥 찬양할 생각도 없지만, 그네들의 노력이 헛된 파닥거림이라고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세월의 무게는 참으로 대단한지라 과거에는 상식과 양식이던 것들이 후세에는 고루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선현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호와 자를 분간하는 것도 힘들어합니다. 옛사람들은 태어나면 이름(名)을 갖게 되고, 성년식의 일종인 관례(冠禮)를 치르면서 자(字)를 받고, 호(號)도 지어 쓰며, 특별한 공적이 있는 사람은 국가에서 사후에 시호(諡號)까지 내려 주었습니다.


특별히 왕의 경우에는 묘호(廟號)와 능호(陵號), 존호(尊號)를 받았습니다. 묘호는 돌아가신 왕의 신주를 모실 때 부여하는 호칭이고, 능호는 왕과 왕비의 무덤을 일컫는 호칭이며, 존호는 왕과 왕비의 공덕과 업적을 찬양하며 왕 또는 신하들이 올리는 호칭입니다. 조선시대 세종의 경우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叡武仁聖明孝大王)이라는 긴 호칭이 부여되었는데, 세종은 묘호, 장헌은 중국에서 준 시호, 영문예무는 존호, 인성명효는 아들 문종이 올린 시호입니다. 아울러 세종대왕릉은 영릉(英陵)이라는 능호로 불립니다.


자(字)는 성인 된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가 없어서, 태어난 후 받게 된 이름 외에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별도의 칭호로 쓰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중국 송나라 때부터 호(號)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자도 이름처럼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자를 함부로 부를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이름과 자의 제약을 피해 누구나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지어 쓴 것이 바로 호입니다. 호는 아호(雅號)나 당호(堂號), 댁호(宅號)와 함께 불가의 법명(法名)까지 포괄해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훈련소 법당 수계식에서 받은 법명은 명각(明覺)입니다.^^;


호가 이렇게 성행하게 된 까닭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어진 이름과 자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지어 쓸 수 있었던 호를 선호하는 인지상정 때문이었겠지요. 후대로 갈수록 호가 일상화되면서 자마저도 이름처럼 함부로 부르지 않게 됨으로써 호의 사용이 더욱 촉진되었습니다. 시호는 넓게는 호의 일종이나 일반 호와 달리 사후에 생전의 업적을 참작하여 국가에서 왕이나 유공자에게 내린 칭호입니다. 중국 주나라 때부터 쓰기 시작하였고, 후대로 갈수록 시호법이 정착되어 정형화되게 됩니다. 특히 文, 武, 忠, 孝 같은 글자가 많이 쓰인 것은 익히 잘 아시리라 사료됩니다.


이처럼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경명사상(敬名思想)은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식이 부모의 이름을 말할 때 이름 두 자를 붙여 함께 말하지 않고 한자씩 떼어 "아무 字 아무 字"라고 하는 것도 피휘(避諱, 피하고 꺼림)의 일종으로서 이름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하간 이런 복잡한 메커니즘을 통해 서로의 품위와 인격을 존중하고 예우하고 배려하려했던 옛사람들의 자세는 곱씹어 볼만합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좋아하는 선현들의 아호 중에 백범 김구 선생과 무애 양주동 박사의 그것이 있습니다. 白丁의 白과 凡人의 凡을 딴 白凡이라는 아호를 두고 김구 선생은 "가장 미천한 사람까지 모두 나와 함께 애국심을 가져야겠다는 것이 나의 소원임을 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양주동 박사는 "나는 가없는 것을 좋아한다. 바다를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하고, 가없는 사랑을 사랑하고, 가없는 뜻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自號를 ‘无涯’라 하였다"고 밝힙니다. 두 분 다 자신의 호에 걸맞은 삶을 사신 분들이라 더욱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너무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이제 새로 지은 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옛사람들은 자신이 호를 짓게 된 변(辨)이나 기(記)를 남기거나, 남에게 호를 지어 줄 때 그 의미와 전거(典據)를 밝힌 글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호변(號辨) 또는 호기(號記)라고 하는데 옛사람들의 글 중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새로운 호에 대한 호변을 좀 늘어놓겠습니다. 아참 저도 그간 실수하던 건데 자신의 호를 우아한 호라는 뜻의 아호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높이는 것으로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호를 쓰는 사람이 드물어서 아호라는 표현을 꺼릴 필요가 있겠냐 싶기는 하지만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小鮮은 도덕경 60장의 治大國若烹小鮮(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듯 해야 한다)에서 따왔습니다. 작은 생선을 굽는다며 젓가락으로 헤집고 뒤집기를 반복한다면 생선살이 부서지고 말 겁니다. 가만히 놓아두고 지켜보는 것도 어렵고, 적절한 시점에서 뒤집기는 또 얼마나 어렵습니까. 생선을 은근하게 굽는 마음처럼 어떤 일을 하든지 억지로 쥐어 짜내지 않고, 자연스레 배어나고 스며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약팽소선은 도가적(道家的) 자유주의자를 지향하는 제가 그리는 無爲而無不爲(억지로 하지 않기에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의 고요함과 치열함이겠지요. 제 자신이 작은 물고기(小鮮)가 되든, 팽소선(烹小鮮)을 하는 자리에 가게 되든 말입니다.


小鮮이라는 자호에 부끄럽지 않도록 이 세상에 한 뼘의 자유라도 더 넓히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생선이 새카맣게 탈 때까지 야윔의 고착화를 방관하지도 않고, 노릇노릇 익기도 전에 뒤집으려고 서러운 눈물을 요구하지도 않겠습니다. 전체주의의 젓가락이 생선살을 들쑤시는 것에 맞서고, 인위적인 손길이 센 불로 높여 생선껍질 태우는 데 고개를 젓겠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숙고된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한 점진적 사회개혁을 추구할만한 깜냥이 될지 여전히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나 궁극적 소수로서의 개인에 대한 연민과 애정만이 익숙해진 절망을 헤쳐나가는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자중자애(自重自愛)하자는 의미에서라도 제 둘레에 아호 하나쯤 만들어 쓰는 지인들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어주거나 짓는 것을 도왔던 각영(刻影), 무념(無念), 무본(務本), 우로(雨露) 등의 벗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새삼 궁금하네요. 여하간 새로운 호인 소선(小鮮)을 의연하고 당당하게 써나갈 테니 많은 질정편달 부탁드립니다. 한번뿐인 삶을 알차게 살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과 목표 등을 표상하는 호 문화에 빠져보심은 어떨까요? 고맙습니다. - [小鮮]


<참고 문헌>
신용호·강헌규. 1997. 『先賢들의 字와 號』. 전통문화연구회.
김석제. “[儒林 속 한자이야기] (69) 雅號(아호)”. 서울신문. 2005. 4. 30.
국립중앙박물관 안내문 중 "묘호, 존호, 시호, 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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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선한 인연을 많이 맺는 것이 제 삶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인연을 위해 제 자신을 절차탁마하려는 욕심도 품어봤습니다. 오랜 기간 제가 몸담은 솔로만세당은 제 허물을 보듬어주시고, 제 성장통을 감내해주셨습니다. 솔로만세당이 지금보다 더 옹골찬 모습으로 보무당당하길 바라마지않습니다만 연인들에게 좀 더 넉넉했으면 좋겠습니다. 연인들이 솔로만세당을 특별히 미워하지 않듯이 솔로만세당 역시 연인들의 앞길을 축원하는 여유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조직의 논리를 위한답시고 증오를 부추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애호하는 솔로만세당의 정신에 맞지 않을 겁니다(물론 웃자고 해본 말입니다^^).


저의 탈당이 너무 전격적이라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 줄로 압니다. 적잖이 섭섭하셨을 텐데 등을 토닥여주시며 격려를 해주시던 따뜻한 마음들에 감복했습니다. 소개팅을 흔쾌히 알아봐 주시던 동지, 때로는 추상같은 질책으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시던 동지, 동병상련으로 얼싸안고 침묵의 위안을 건네던 동지... 모두 가슴 깊이 고맙습니다. 당사를 나서는 순간부터 여러분들의 뜨거운 정성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겠습니다.


저는 영원의 달콤함보다는 덧없음의 쌉싸름함을 더 사랑합니다. 또한 절대자의 굳건함보다는 상대주의의 허무에서 노닐기를 즐깁니다. 무상함과 적요함을 노래하는 제게 사랑이란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탈당을 하는 까닭은 제 지혜로움을 기대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만 이 시련과 생경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기에 소금 같은 의지를 벼려봅니다. 아무쪼록 제 비루함 앞에 억지로 인고하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제 물러납니다. 아주 가끔만 뒤돌아보고 채우기 위해 비우는 데 열중하겠습니다. 제가 편애하는 것들이 시나브로 늘어가서 두렵습니다. 죄다 책임질 수 있다며 호방하게 웃어 넘길 배짱은 없습니다. 그러나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잃지 않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이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중자애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한 뼘의 자유라도 더 넓히는데 일조하겠습니다. 자주 제 둘레에 연민을 품겠습니다. 더 많이 부끄러워하겠습니다.


고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가려질 뿐입니다. 그래서 사랑합니다. 너무 즐거워서 죄송합니다. - [小鮮]


번잡한 세상사에
읽던 책 쓰던 글 미루게 하시고
나를 아니 맵살스러워하신다면
술잔 따라 나누오리라.

- 헌화가(獻花歌)의 마음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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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세를 위하여!

사회 2006. 1. 27. 01:30 |
익구닷컴 방명록에 "생일이 빨라 학교에 일찍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올려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고심 끝에 독자맞춤형 줄기잡글(?)을 써보기로 했다. 이 글을 전국의 19.5세들에게 바친다.^-^


2005년 10. 26 재선거 때 2004년 6월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만 19세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만 18세에게 국방, 납세, 근로의 의무는 지도록 하면서 선거권은 이에 못 미쳐 다소 아쉽다. 2004년 중앙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세계 167개국 중 143개국이 만 18세 이상 선거권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좀 더 적극적인 하향 조정을 해봄직 했다. 미국의 독립혁명 당시 영국이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은 미국인들이 납부할 수 없다는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ve)"라는 원칙을 상기해보자. "권리 없이 의무 없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무만큼의 권리는 누려야 하지 않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하면 통상 성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고등학교가 청소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 나이는 만 18세다. 그러나 선거 연령 인하가 쟁점으로 등장하자 여야는 만 18세 인하와 만 20세 고수를 놓고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중간점인 만 19세로 절충하게 된다. 선거 연령 인하의 모티브가 된 민법개정안 성년 규정이 정치판 눈치를 보다가 만 19세라는 어정쩡한 기준을 내어놓았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특히 한나라당이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대승적 자세로 해결에 임하지 않아 밉살맞다. 앞으로도 현실과 법 사이의 괴리를 호소하는 볼멘 소리가 적잖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2001년 4월 국회를 통과한 청소년보호법 개정법률안에 따르면 청소년보호법 2조 1항에서 <"청소년"이라 함은 만 19세 미만의 자를 말한다. 다만, 만 19세에 도달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자를 제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단서 조항에서 연(年) 나이의 개념이 등장한다. 연 나이는 생일로부터 다음해 1월 1일을 지난 횟수만큼 나이로 인정해주는 새로운 나이 개념이다. 생년월일을 모두 감안하는 만 나이와는 달리 연 나이는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뺀 나이로 태어날 때부터 한 살인 한국식 나이에서 1을 뺀 개념이다. 예를 들어 83년 7월생인 나는 2006년 1월 현재 한국식 나이로 24세, 1월 1일이 지났으니 연 나이로 23세, 생일은 아직 지나지 않았으니 만 나이로 22세가 되는 셈이다.


연 나이의 도입은 만 19세 미만과 만 18세 미만으로 혼재되어 있던 청소년 관련 법률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청소년 보호와 관련해 각종 법안마다 다르게 규정되어 있는 성년 규정이 연 19세 미만으로 조정되었지만 여전히 논란의 불씨는 살아있다. 2005년 12월 청소년위원회는 국회에서 심의 중인 영화 및 게임 등에 대한 법률의 청소년 연령 기준을 청소년보호법에 따른 연 19세로 통일할 것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및 법제사법위원회에 전달했다. 문광위 소위 심의 과정에서 만 18세로 하향 조정한 것을 당초 정부안대로 해달라는 요구다. 문화관련 법령만 만 18세인데서 오는 법체계적 불일치를 해소하고 청소년보호정책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제법 호소력 있다.


민법상 성년은 만 19세이며, 청소년보호법상 성년은 연 19세인데다 문화관련 법령은 만 18세여서 엄청난 혼선을 빚고 있는 만큼 법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개정은 불가피하다. 영화가 술이나 담배와 같은 청소년 유해물과 다른 문화매체라는 주장, 단속과 규제를 용이하게 하려고 기준을 통일하는 것이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항변에 동감하기 힘들다. 술, 담배와 영화는 선호의 문제지 우열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문화예술의 열외성(列外性)을 주장하는 논리는 위험하다. 물론 그렇다고 문화 향수권 대상을 줄이는 것이 마냥 바람직하다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이 일련의 논란들이 만 18세를 관철시키지 못한 후유증인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문화관련 법령만 예외로 하기보다는 민법, 청소년보호법 전반의 성인 규정이 하향 조정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문화향유권만 특출나게 소중한 건 아니다.


연 나이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경계선에 있는 빠른 연령대 사람들, 한국식 나이 기준 19.5세들의 고초다. 매년 새해마다 반복되는 19.5세 경계인들이 겪는 곤란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5세들이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점이다. 청소년보호법이 개정되기 전에 만 19세 규정이 적용될 때는 그 폐해가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만 19세에게 술을 파는 불법 업소가 오히려 흥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Bad money drives out good)하는 현상, 즉 범법자가 준법자보다 유리해지는 경우가 횡행했으리라. 연 19세 규정으로 인해 그나마 범법자 대량 양산을 줄인 것은 다행이지만 19.5세들이 겪는 소외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범법을 저지르는 동지(?)들이 대폭 줄었으니 또 얼마나 외로울까!


19.5세들은 소수자가 된 것도 서러운데 교통비등은 성인비용을 내며 청소년 할인혜택을 못 받는다. 연 19세 규정에 따르면 법적으로 엄연히 청소년인데도 말이다. 권한을 주는 건 더디면서 혜택을 앗아가는 건 재빠른 것처럼 약오르는 일이 어디 있던가. 2006년 한해 동안 빠른 88년생들은 얼마나 많이 법을 어겨야 할지 상상하면 아찔하다. 자기 자신이 이런저런 술자리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느낌은 무척 구접스러우리라. 문득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새내기 시절을 보내던 2002년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한답시고 모였을 때가 떠오른다. 입장 가능한 술집을 찾아 전전긍긍할 때 84년생 친구들이 괜히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종국에는 짜증을 내던 기억이 선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술 한잔 나눌 자리를 위해 거리를 헤맬 19.5세들이 안쓰럽다.


이 문제에 있어서 해법이 새로울 건 없다. 이건 실천의 문제다. 빠른 생년의 취학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그 연배의 동기들과는 똑같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맞다. 빠른 연령대의 취학 능력을 인정한 마당에 그들이 성년으로서 누릴 권리를 한해씩이나 늦추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제 연 19세 규정의 사각지대에서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 19.5세에게는 예외적으로 연 19세 규정을 적용하지 말고 만 18세에 도달하는 해의 3월 1일 정도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만 하다. 19.5세에게는 특별히 만 18세 규정을 적용하는 방안도 있겠으나 과도한 특혜로 여겨질 수 있는 만큼 조금 양보해서 3월 1일로 일괄 조정하자는 것이다. 대학생의 경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2월에 열리니 범법의 유혹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연 나이 개념상 87년 12월생과 88년 1월생이 1년이나 차이 나는 오류를 시정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다만 19.5세는 어디까지나 제도권 교육이나 적어도 그 동등 수준의 학력 개념을 염두에 둔 개념이다. 이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극소수의 청소년들은 열패감을 가질 만도 하다. 이런 문제까지 깔끔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성인 규정과 청소년 기준을 만 18세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어렵다면 19.5세의 자유와 권리의 제재를 덜어주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양자간에 자유와 권리가 현저히 차이 나는 문제에서는 기왕이면 그 자유와 권리가 큰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기 일쑤이지만 범법이 넘쳐 흐른 다음에 퍼덕거리는 건 민망한 일이다. 연 19세의 입법취지에 19.5세도 포함하는 것이 도리다. 이제 19.5세에게 멍에를 벗게 해주자. - [憂弱]


※ 미네르바의 올빼미란 지혜는 세상사의 변화가 가라앉아 그 세계를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때 비로소 발견 가능하다는 헤겔의 말이다. 대다수 학문이 이미 일어난 경험을 이론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실정을 빗댄 경구다. 진리와 진실에 대한 이성적 인식은 한 시대가 끝날 무렵에나 가능하다는 체념을 하거나, 불의가 휩쓸고 지나간 이후에 정의 실현이 뒷북처럼 나타나는 현상을 투덜거릴 때 많이 쓰인다. 굳이 이런 설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다섯 해 전쯤 처음 이 근사한 표현을 접하고 나서 뜻을 알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던 옛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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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숭배를 거절하자

문화 2006. 1. 16. 03:54 |
『몸 숭배와 광기』(발트라우트 포슈, 2004, 여성신문사)를 읽고

TV에서 연예인들의 예전 모습을 보면 대개는 우스꽝스럽다며 웃게 만든다. 당시 유행의 첨단이 오늘날에는 촌스러움으로 전락하는 것은 꽤 흔한 일이다. 이처럼 아름다움의 기준은 늘 변해왔다. 그러나 어떤 특정 시점에서 지배적인 아름다움 또한 존재해왔다. 『몸 숭배와 광기』는 아름다움 추구에 대한 역사적 조망과 더불어 외모지상주의에 허우적대는 현대인의 광기를 꼬집는다. 특히 이런 몸 숭배에 좀 더 취약한 여성들의 애환을 많이 나타내려고 하고 있다.


얼마 전 마광수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살빼기와 성형 열풍이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 프로그램에서 멋 안내는 것은 게으르다는 주장을 펼쳤다. 마 교수는 “선천적 외모가 주는 자연미보다 ‘인공미’가 더욱 아름답다(마광수, 2005,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해냄, 172쪽.)”고 주장한다. 그는 인공미 추구의 일환으로서 살빼기와 성형을 긍정적으로 본다. “몸짱ㆍ얼짱 열풍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해온 정신우월주의에 대한 반동”이라는 그의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마음을 보고 반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외모지상주의를 너무 부추기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성형중독 후유증으로 전사회적 충격을 안겨 줬던 선풍기 아줌마의 힘겨운 재활 과정을 지켜보며 아름다움의 문제를 마냥 일개인의 책임영역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 노력이 즐거움을 주며 개성을 확장시켜 주는 한(『몸 숭배와 광기』, 33쪽)”에서라면 마 교수의 표현대로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사회가 외모를 어떻게 평가하느냐(21쪽)”의 관점이 중시되면서 개인의 자유의사보다는 사회적 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무한경쟁에 시달려야 한다.


글쓴이는 “육체가 당혹과 부끄러움, 열등감 내지 우월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어서는 안 될 것(270쪽)”이라고 말하지만 다소 이상적이다. 육체든 정신이든 그런 다양한 감정의 원천이 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인답시고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는 것 또한 그리 흡족한 해결책은 아니다. 글쓴이가 아름다워지는 것의 한계선으로 제시한 “내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된다. 한꺼번에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결정지어서도 안 된다(273쪽)” 또한 원론적인 수준이라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연스러운 육체를 비하하고 인공미에만 탐닉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는 것 만한 처방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비록 미적 기준을 강제하는 사회적 측면이 적잖으나 제도 개혁보다는 의식 개혁이 좀 더 근본적일 수밖에 없는 문제인 셈이다.


남성도 외모를 가꾸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아름다움의 추구에 있어서 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은 아무래도 여성이다. “여자는 외모, 남자는 능력”라는 등식이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다. 여성이 이런 루키즘(lookism)의 광풍에서 벗어나는 길은 여성차별을 넘어서는 개성의 발현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융(Jung)은 모든 인간은 그 정신 속에 자신과 반대되는 성적 요소, 즉 남성은 아니마(여성적 영혼)를, 그리고 여성은 남성적인 아니무스(남성적 영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융이 말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극단적이면서도 서로 조화하고자 한다. 육체는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있지만, 인간성의 본질은 원래 양성적이라는 것이다. 인격의 성숙을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라는 사회적 역할에 집착하기보다 내면의 인격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 이론의 핵심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시대에 양성성을 갖춘 인간상이 추구된다면 외모에 대한 집착도 상당부분 진정될 것이다.


차이가 차별의 명분이 되는 세상에서는 유럽의 코르셋이나 중국의 전족 같은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게 된다. “고정적이고 획일화된 아름다움”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든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사회에서 개개인은 좀 더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며, 무엇보다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여성과 남성 이전에 궁극적 소수로서의 개인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자중자애(自重自愛)라는 말처럼 스스로 무겁게 여기고 사랑하는 자만이 남의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되어 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내면적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이 외면적 아름다움까지 풍긴다면 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예쁘다라는 기준을 절대화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관점으로 묶어두려는 절제가 필요하다. 타인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아름답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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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홍성욱, 2002, 들녘)을 읽고

정보화 시대가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거세다. 하지만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한 변화의 흔적은 짙다. 컴퓨터 자판을 통해 글을 써서 교류하는 전자우편, 채팅, 커뮤니티 활동이 자연스러워졌다.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을 인터넷 헌책방에서 가까스로 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은 가속화될 정보기술의 발전 속에서 어떤 삶의 양식을 품어야 할지를 다각도로 고찰하고 있다.


글쓴이는 진행 중인 변화를 "네트워크 혁명"으로 명명한다. 오늘날 변화의 원동력은 정보통신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파생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변화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의 혁명적 변화다(19쪽)"라고 선언한다. 결국 네트워크 혁명의 요체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기술적 혁신만큼이나 인문학적 사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엄청난 변화의 물결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은 인문학적 성찰과 반성의 힘이라는 것이다.


글쓴이는 쏟아지는 정보를 잘 골라내고 창조적으로 재결합하는 사람에 대해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찾은 정보를 거르고, 이 중 괜찮은 정보와 그렇지 못한 정보를 골라내며, 이를 조합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50쪽)"이라며 암묵적 지식을 체화한 사람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이를 위한 대학 교육 시스템을 개편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글쓴이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실용성이라는 잣대에 인문학은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이런 아쉬움 때문에 인문학적 기초를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인문학 지식에 대한 관심이 테크놀로지쪽으로 전이되었다고 해서 마냥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시집 한 권과 MP3 음악 모음 사이에 위계서열을 매기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글쓴이의 인문학 강조는 정보기술에만 매몰된 테크니션을 경계하라는 수준에서 받아들이면 될 듯 하다. 비단 인문학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순수학문 혹은 기초학문에서도 실력을 배양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글쓴이는 온라인을 통한 사회적 연결망을 주시한다. "전통적인 사회운동이 약화되는 반면 네트워크를 통한 새로운 사회운동이 부상(23쪽)"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글쓴이는 다양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 공동체의 힘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가상 공동체의 관계는 느슨한 경우가 많고, 오프라인의 뒷받침이 없으면 지속성을 가지기도 힘들다. 지난 2002 대선 때 인터넷이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말이 회자되었지만 인터넷과 종이신문이라는 대립항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 인터넷만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을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 혹자들은 인터넷이 인간의 감성적인 면에 호소함으로써 단시간에 파급력을 넓혀나가는 것을 우려한다. 가령 2004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탄핵표결 장면이 빠르게 전파되면서 많은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던 것도 그러한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상의 활동이 반드시 격정적이고,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문자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활자매체 대신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영상매체들이 득세한다해서 진지한 사고를 못한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보다는 상호조화를 통해 좀 더 명료한 지식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미 네트워크 혁명의 편리성과 유용성을 거부하고 살 수 없는 시대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재미난 정보들만 좇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만큼 진보했지만 거기서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트워크 혁명을 통해 "글로벌 문화의 잡종적 혼재 양식"인 "글로컬리제이션(134쪽)"을 지향해야한다. 정보화 사회는 힘의 논리가 아닌 문화와 지식의 다양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들 하는데 이는 네트워크 혁명과 무관하지 않다. 중급지식의 범람으로 고급지식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처럼 독창적이고 참신한 문화역량을 갖추는 것도 절실한 과제이다.


섞임과 스밈을 마다치 않고 열린 자세로 숙고해낸 균형감각만이 어떠한 변혁에도 흔들림 없이 인간다운 삶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상호연관과 상호의존이 일상화되면 "이타적 개인주의"까지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 극단적 대립보다는 화해와 협력의 자세가 널리 퍼지게 만들 수 있으리라. 네트워크 혁명은 결국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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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어느 모임에서 김동원 감독의 영화 [송환]을 보고 쓴 후기이다. 영화를 마치고 나눈 대화를 통해 많은 생각거리를 얻었다. 스스럼없이 반북주의자(?)를 자처하는 나이지만 남북문제는 참 어렵다.^^;)

김동원 감독의 영화 [송환]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으로 칭함)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오르는 저란 녀석의 부박함에 말입니다.^^; 또한 영화 내내 계속되는 폭력에 대한 증언에서 인간 자유의지를 단죄할 권리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봤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는 이제 영화처럼 폭력을 통해 특정 의사를 강제하지는 못할 만큼 성숙했습니다. 작년 12월 북파공작특수임무동지회 소속 일부 회원이 경기 파주 보광사 경내에 있는 비전향 장기수 묘역을 훼손시키는 사건이 벌어지기는 했지만요.^^; 이네들의 불관용을 지적할 만큼 우리 사회가 넉넉해졌음을 실감합니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한 송환을 보면서 폭력과 광기의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폭압과 희생의 제의를 걱정하지 않을 만한 사회로 가고 있다는 안도감도 듭니다. 납북을 인정하지 못하는 장기수들이나 장기수 송환을 촉구하는 집회에 빨갱이들이라고 손가락질하던 분이나 모두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꼴 보기 싫은 것을 바로 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지만요. 영화 말미에 납북자 가족들이 장기수 송환 차량을 막아서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조금 비약인지 모르겠으나 피해자간의 대립을 통한 분할통치(divide and rule)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든 묘역 훼손 사건에서 남북 분단의 희생자인 북파공작원이 장기수의 고통은 헤아리지 못하는 비극이 수구기득권층의 분할통치전략에 부합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가져봤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상대방의 잘못을 이유로 들어 자신의 똑같은 잘못을 정당화시키는 냉전적 사고틀에 갇혀 살았다. 이것을 과감히 벗어 던질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바로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능가하는 '대한민국의 힘'이 아닐까 싶다.
- 유시민. 2000. 『WHY NOT?』. 개마고원. 248쪽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단상」 中


유시민 의원의 말씀대로 대한민국의 힘이 발현되어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상전향제도와 준법서약서 제도는 폐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실체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체제가 국군포로나 납북자를 용납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우리는 이 문제를 묵혀두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인권, 인도주의 측면은 엄격한 상호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사료됩니다. 부러 상호주의라는 용어를 쓰기는 했지만 이것은 미송환 장기수와 국군포로 혹은 납북자와의 일대일 교환 같은 완전한 등가교환을 추구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가령 적어도 북한 당국에 실체 인정과 실태 조사를 요구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솔직히 이 정도의 인도주의적 요구조차 체제 유지에 위해가 될까 걱정하는 사회라면 어차피 그 체제는 존재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북송을 희망하는 미송환 장기수를 대한민국 땅에 붙잡아둘 실익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자명한 만큼 얼른 보내드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봅니다. 북송된 장기수들이 훈장을 차고 인민의 영웅대접 받는 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대한민국의 비인도적 처사를 더 이상 비난할 수는 없을 터이니 그리 손해보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장기수들의 북송이 선심 쓰듯이 할 사안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합니다. 과연 조건 없는 북송이 북한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지키며 통일의 초석을 놓는 것인지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현대아산 김윤규 부회장의 퇴진을 둘러싼 현대아산과 북한의 갈등을 보며 기본적인 상도덕조차 준수하지 않는 상대와 무슨 사업과 지원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송환 장기수들은 기꺼이 보내겠으나 북한측의 태도와는 관계없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후속대책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문제의 주도권은 북한에 있다고 생각하고 손놓고 있을 만큼 한가로운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수분들이 그렇듯이 이분들도 대부분 고령입니다. 더군다나 시간을 끌면 끌수록 냉전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아킬레스건으로 두고두고 괴로움을 겪을 뿐입니다.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방해가 될까봐 이 문제를 후순위로 조정해서는 곤란합니다. 국익이란 명분으로 북한 땅에서 신음하는 대한민국인의 고난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비판해마지않는 국가주의자, 전체주의자와 얼마나 섬세한 차이가 나는 걸까요? 국익을 위한 이라크 파병이란 말에 언짢아했던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남북화해를 위해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덮어두는데 반대해야하는 게 일관된 처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담이지만 칸트는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에서 영구 평화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고 설파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확산과, 민주주의의 심화가 그것입니다. 슬프게도 북한은 이 두 조건 모두를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네요.^^; 북한은 오히려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가 주창한 국가의 안정을 위해 언제나 외부의 적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영원한 전쟁(perpetual war)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역시 극과 극은 통하나봅니다.^^ 북한의 습관성 몽니는 여러모로 불편하고, 이러다가 “영구적 평화”는커녕 “영원한 전쟁”에 함몰되어 있는 한반도는 “항구적 분단”이 고착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이념대결의 시대가 갔다고 화해협력의 시대가 무조건적으로 꽃피는 것은 아닙니다. 투철한 반공교육의 압박을 피하고 자란 젊은 세대들이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 덜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애호감이 더해졌다고 보기도 힘드니까요. 그렇기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속된 남북 화해무드를 잘 이어나가야 하겠습니다.


[송환]을 보며 남북관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꺼내볼 수 있어서 무척 유익했습니다. 아울러 전체주의의 끔찍함도 새삼 깨우쳤습니다. 일평생 전향하지 않고도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세상, 아니 궁극적으로는 전향과 비전향의 잣대보다는 다양한 개성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끝으로 한반도 땅에서 자유의지를 제 목숨처럼 여겼던 많은 민주영령들에게 존숭의 뜻을 표합니다. 쉽사리 망각하지 말고 함부로 무심하지 않기를!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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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들을 만나러 노원역을 향하는 길이었다. 집에서 다섯 정거장인 짧은 거리였지만 챙겨온 책을 꺼내 들었다. 한국 명수필 모음집이다. 맛깔스런 문장들을 슬쩍 내 것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유혹이 아찔했다.^^;

그러던 중에 상인 한 분이 1000원짜리 장갑을 팔기 시작했다. 전철을 타고 다니며 똑같은 장갑을 팔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보기는 했으나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했다. 아마도 내 손에 쥐어진 책과의 부조화 때문인 것 같다. 책 뒤표지를 넘겨보니 12000원이라 써있다.

1000원짜리 장갑과 12000원짜리 책, 저 상인 분은 이 전동차 몇 량을 헤매어야 내 손에 들린 책 한 권을 장만할 수 있을까. 과연 이 땅에 자기가 읽고 싶은 책 맘놓고 사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내가 읽는 책값을 하고 있는 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번다하고 부잡스런 내 생활이 부끄러워졌다. 내 삶이 너무 평온하다 보니 지적 허영심만 들어 입만 놀릴 줄 아는 건 아닌지 참괴하다. 늘 모자라다고 투정부렸지만 실상 제 깜냥에 비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공짜가 없는 세상이라고 외치고 다니면서도 거저 얻은 것은 적당히 합리화했다.

세상에 넘쳐나는 눈물의 상당량이 눈물을 흘리는 당사자를 위한 것이고, 세상의 추함 가운데 하나가 자기연민이라고 한다(이 표현은 고종석 선생님의 『인숙만필』발문에서 훔쳐왔음을 밝힌다). 가끔은 남을 위해 눈물 흘리고 남을 위해 연민을 보듬고 싶다. 나는 내가 자주 연민을 품길 바란다.

금아 피천득 선생은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고 예찬했지만 이 말은 절반만 맞는 게 아닐까. 성찰하고 긴장하지 않는 젊음, 치열하되 재미나지 않은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다울 수 없으리라. 우리는 아주 가끔 육체는 늙어도 정신은 청춘인 사람들을 만난다. 젊음을 아껴 써야 하는 이유는 시기가 유한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가능성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내가 읽어 치운 책값을 하도록 노력해보자. 간명한 듯 지난하다. 명리(名利)에 허겁지겁 길들지 말고, 빈한(貧寒)에 속절없이 굽히지 않기를. 내 선한 인연들을 더 값지게 간직할 수 있기를! 덧붙이며, 새해에는 서러운 눈물들이 좀 줄었으면 좋겠다. - [憂弱]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이것은 청춘의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실현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상의 보배를 능히 품으며, 그들의 이상은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어,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 민태원, 『청춘예찬』中(전철 안에서 읽던 책의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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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결과를 재검증 중인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중간 조사활동 결과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고의적으로 조작되었음이 드러났다. 2개 줄기세포주에서 얻어진 결과를 11개로 부풀린 것이다. 황 교수팀은 매매난자 및 소속 연구원 난자의 사용 과정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실책이 불거지기 무섭게 논문 조작이 발견됨으로써 과학자로서의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전국을 거대한 논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이번 사태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논문 조작이다. 이미 황 교수가 논문 철회 의사를 밝힌 마당에 원천기술 보유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 거대한 논란이 이제 일단락 되어 가면서 지난 한달 간의 격론 속에 내 자신이 어떤 생각들을 품었는지 돌아봤다. 평소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오지랖 넓게 왈가왈부를 즐기다 보니 주위에서 이번 사건의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생명과학분야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도 없던 터라 내 의견을 밝히기를 꺼렸다. 다만 PD수첩팀에게 쏟아진 무차별적인 폭격에 대해 문제의식 아니 정확히는 공포감을 느꼈을 뿐이다. 사상의 자유시장이 무참하게 짓밟힐 때 용기보다는 침묵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 와중에 PD수첩의 취재윤리 위반과 함께 MBC의 사과문 발표를 보며 대세가 기운 것이 아닌가하며 섣불리 판단했다. 난리가 벌어진 새벽에 [PD수첩과 과유불급]이라는 제목으로 부랴부랴 잡글을 썼으니 말이다. PD수첩의 공과를 냉철히 판단하자며 거대한 비난의 예봉을 꺾어보려 무던 애를 썼지만 내심 걱정도 많았다. 괜히 PD수첩을 편드는 걸로 오해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워낙 사안이 엄중하다 보니 PD수첩의 실수가 너무 뼈아프고 무겁게 보였다는 다소간의 변명도 둘러대 본다. 오십보 백보를 따지며 "나는 달랐다"라고 우쭐대기보다는 "나 또한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겸허하게 인정한다. 시린 진실보다는 달콤한 희망에 현혹되었고, 진지한 물음보다는 기계적 균형 속에 안락했다.


2.
지난 5월초 고대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황우석 교수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전문적인 내용까지 죄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분야에 애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가슴 시리게 깨우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의 형형한 눈빛을 보며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에 설레었다. 강연이 있은 며칠 뒤에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로 사이언스 표지논문이 되었다는 낭보를 들었다. 내 성공처럼 기뻐했다. 수의대라는 비주류학과에 순수 국내파 박사가 이룬 쾌거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6두품의 서러움 운운하거나, 주류 의학계의 음모론을 주창하는 이들에게 심정적으로나마 끌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리 논란이 벌어졌을 때까지만 해도 황 교수님은 솔직히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이를 두고 “진짜배기 학자를 만난 신선함이 기껍다”라고 호평했다. 하지만 얼마 뒤 황 교수님이 “인위적 실수”를 언급하실 때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예전에 썼던 칭찬을 슬쩍 지우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누가 알아채겠냐는 생각에 “진짜배기...” 구절 대신 “앞으로도 각종 의구심들에 성실하게 대응해주시길 바란다”는 글귀를 집어넣었다가 다시 원상복귀시켰다. 그 때 당시의 내 생각을 감추는 것은 부질없고 비겁한 짓이라고 판단했다. 무책임은 무능과 무지만큼이나 무서운 죄악이다.


사실 진실공방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이쯤 되면 서로 비기는 게 상책이라는 소망을 가졌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황 교수팀의 조작은 광범위했고 과욕은 넘쳐났다. 우리 사회가 황빠와 황까로 나뉘어 극심한 대립을 겪었지만 심지어 황까조차도 논문 전반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을 것이다. 황 교수님이 조국을 사랑하셨던 만큼 우리 국민들도 조국을 사랑했다. 나는 얼마 전까지 PD수첩팀에게 관용을 요구했듯이 황 교수팀에게도 관용을 베풀기를 청한다. 황 교수팀은 논문 조작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받되 PD수첩팀에 쏟아졌던 멸시와 조롱까지 받지는 않기 바란다. PD수첩 사태에서 얻은 교훈을 당장 써먹어 보자. 지은 죄만큼의 벌을 내리는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과유불급(過猶不及)을 과유불급으로 맞서지 말았으면 한다. 그 대신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루하루 정성을 쏟고 있는 많은 연구자들에게도 애정과 관심을 가지는 쪽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3.
문득 일본이 세계적인 망신살을 뻗쳤던 2000년 11월 마이니치신문의 보도를 떠올렸다. 60만년 전 구석기 유물을 발굴해 일본인의 민족적 자부심을 고양시킨 일본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의 신화가 발굴지에 미리 석기를 파묻은 조작극이었음이 드러났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옳거니 하면서 일본인들의 추악한 역사왜곡을 질타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당분간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참담한 학문풍토를 질타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에게 뱉었던 욕지기를 고스란히 돌려 받을 각오도 해야겠다. 아무쪼록 이 참담한 사건도 우리 역사로 잘 기억되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이 서글픈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불가에서는 역행보살(逆行菩薩)이란 말을 쓴다. 남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일부러 못된 짓을 하는 이로 화현(化現)한 보살이라는 뜻이다. 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들이 오히려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라 여기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그윽하고 넉넉한 이야기다. 타고난 악당은 없고 저마다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미움과 증오가 밀려올 때 스스로를 반성하며 내 자신 속의 역행보살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어야겠다. 그리고 남이 저지른 실책에 너그러워지고 연민을 가질 수 있기 바란다. 어쩌면 우리들의 역행보살이었을지 모르는 과학영웅의 몰락이 못내 씁쓸하다. 신실한 불자로 유명했던 황 교수님에게 어느 헌책방에서 성경책 표지에 써놓은 “양심은 신보다 위대하다”라는 구절을 조금 바꿔서 말씀드리고 싶다. “진실은 부처보다 위대하다”고.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내가 더 사랑하는 것은 진리다. 나는 내 나라가 진실과 정직과 연민을 더 애호하길 바란다. 나 또한 소수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나만이 진실이라고 우쭐거리지 않기를 다짐한다. 광신과 성역 앞에 떨고 있지만 말기를. - [憂弱]


추신 - 고종석 선생님은 원로 국문학자 김윤식의 표절 문제를 제기한 평론가 이명원이 겪은 수난을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의 구접스러움은 표절 자체에 있다기보다 표절을 대하는 방식에 스며 있는 ‘아름다운’ 인연의 그물에 있다(고종석, 「‘표절’을 대하는 태도」, 시사저널842호(2005/12/02).)”고 탄식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논문 조작 자체보다 논문 조작을 대하는 방식이 우리 사회의 성숙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조작의 유혹과 표절의 매력은 늘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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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의 공조로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오랜 진통 끝에 이뤄진 사학법 개정으로 인해 사학운영 전반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칠 전망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는 법이다. 인재 양성을 위한 나름의 의지와 포부로 시작한 교육사업을 무탈하게 펼쳤다면 뭐가 그리 걱정이고, 호들갑이겠는가. 제 발이 저리신 분들은 목청을 높이기 전에 발마사지부터 서두를 일이다.^^;

 

학교를 폐쇄하겠다며 게거품을 무는 일부 사학 관계자들을 보면 인간적 연민을 감출 수 없다. 학생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의 태도에 분통이 터진다. 자신들이 애써 가꾼 학교를 내 덕분에 이만큼 일구어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 공로 또한 일개인으로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학교를 좌지우지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도덕경 2장에 生而不有 爲而不恃(생이불유 위이불시)라는 구절이 있다. 잘 이루면서도 그 결실을 가지려하지 않고, 잘 되어가도록 하면서도 그것에 기대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生而不有 爲而不恃를 권한다. 설령 학교 폐쇄가 이뤄진다면 교육당국은 임원 승인취소와 임시이사 파견 등의 조치를 신속하게 하면 그만이다.

 

성난 표정을 짓고 있는 사학 관계자들도 사립학교가 설립되는 순간 학교는 설립자의 사유물 이전에 공익적인 학교법인의 재산이 된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립학교의 운영비가 재단 전입금보다는 학생들의 등록금과 국고로 대부분 충당된다는 것도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사학법인의 재정기여도는 초 12.8%, 중 1.8%, 고 1.9%, 대학 8.4%로 낮은 편으로 대다수 사립대는 등록금으로, 중등학교는 국민들이 낸 세금에 의존하고 있다.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외치기 이전에 공공성에는 얼마나 충실했나를 스스로 성찰해봤으면 좋겠다. 사학법인들을 회원으로 하는 한국사립학교법인연합회가 제정한 ‘사학윤리강령’에 포함된 “사학을 위하여 제공된 재산은 국가사회에 바쳐진 공공재산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유물 같이 다뤄져서는 안된다”는 구절에 부끄럽지 않게 말이다.

 

사립학교 법인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종교계는 특히 더 자성하길 바란다. 다른 단체들도 아니고 종교계에서 색깔론 운운하는 것처럼 볼썽사나운 것이 없다. 우습게도 졸지에 사립학교법이 종파를 초월한 종교간 화합과 단결의 장을 열어주었지만 종교를 팔아 제 뜻을 관철시키려는 꼼수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도 눈물을 흘리시고,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도 콧등이 시큰해지셨으리라. 불국정토나 하나님의 왕국이 탐욕과 분노 속에서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부디 우리 종교계가 그저 남들 다 지키는 상도덕이나마 준수하길 기원한다. 몸과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벗이 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다시금 사학법 개정안 처리를 환영한다. 이제 열린우리당이 당초 제시한 4대 개혁입법 중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다. 남은 하나의 입법이 결코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다른 법안들에 비해 국민들의 지지도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겸허한 자세로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간 입만 살았던 개혁의 허송세월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좀 더 부지런해져야한다. 다시, 국보법 폐지를 촉구한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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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과 과유불급

사회 2005. 12. 5. 02:47 |
황우석 교수팀의 윤리 문제를 보도한 MBC 프로그램 PD수첩에 대한 집중 성토가 무섭다. 황우석 교수는 매매된 난자를 연구에 사용했고, 또 연구원의 난자를 기증 받아 연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솔직히 사과하고 책임을 지려고 애쓰는 모습에 한없는 경의를 표한다. 각종 의혹들에 변명하지 않고 순순히 인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를 생각하면 황 교수의 사과는 참으로 값지다. 진짜배기 학자를 만난 신선함이 기껍다.


각종 공방이 격화되는 가운데 12월 4일 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PD수첩팀이 배아줄기세포 진위논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취재윤리를 위반한 사실을 확인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윤리 문제를 제기했던 PD수첩팀 스스로가 취재윤리를 확보하지 못한 점은 뼈아픈 실책이다. 황 교수가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려한 모습과는 판이하기에 더욱 아쉽다. PD수첩팀의 과욕은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으며 MBC 또한 치열한 자기검증에 실패했다.


PD수첩팀이 그간 성역처럼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지던 황우석 신화의 틈바구니에서 연구원 난자 제공 및 난자제공자에 대한 금전적 대가 지급 등을 사실을 밝힌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비록 취재윤리 위배로 인해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앞으로의 줄기세포 연구가 윤리적인 견제와 감시 속에서 해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준 공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진중하지 못했던 연구 검증 공방에서 PD수첩팀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이 그래서 더 안타깝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흙보다도 더한 겸허를 지녀야 한다"는 간디의 말이 따갑다.


이제 더 이상의 극한 대립을 거두고 양측이 수긍할만한 공적 검증을 신속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시련을 통해 단련된 윤리의식을 토대로 다시 생명공학 발전을 위해 매진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황 교수의 성공을 내 일처럼 기뻐하고 아꼈던 국민들도 PD수첩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길 바란다. 여담이지만 PD수첩팀에 쏟아 부은 극렬한 분노를 포트폴리오(?) 전략을 구사해서 다른 사회문제들에도 생산적으로 분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황 교수팀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은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한다. 또한 우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언론보도들도 기탄 없이 이어져야 한다. 언론은 진실과 사실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뿐 오지랖넓게 국익을 추구하거나 국민들의 심기를 살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또한 언론 스스로 자아도취하여 마녀사냥을 펼치려 하거나 자신의 오류를 수긍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도 안 될 것이다. 다른 언론들도 PD수첩팀의 공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은 죄 이상의 벌을 내리는 것은 또 하나의 죄를 짓는 것이다. PD수첩팀에 대한 치죄가 너무 공포감을 유발할 정도로 끔찍하게 펼쳐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사람'과 그 사람의 '주장'을 일치시켜서 그 사람의 '주장'이 밉다며 그 '사람'을 제거하려 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아울러 소수파에 대한 관용은 그 사회의 성숙함을 재는 척도가 되어야 한다. 모든 광신을 경계하고, 다시금 관용을 꺼내드는 것이 이번 사건의 소중한 깨달음이리라.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논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만한 애국이 어디 있겠는가.^^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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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재(寶高齋) 전경

옹방강은 당시 78세였다. 그는 소동파를 좋아하여 서재 이름을 "소동파를 보배롭게 받드는 서재"라는 뜻으로 보소재(寶蘇齋)라고 했다. 추사는 이를 본받아 귀국 후 자신의 서재를 "담계 옹방강을 보배롭게 만드는 서재"라고 해서 보담재(寶覃齋)라고 하였다.
- 유홍준, 2002, 『완당평전 1』, 학고재, 91쪽


얼마 전 읽은 완당평전에서 다음 구절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추사 김정희는 청나라 연경학계의 원로인 옹방강을 스승으로 모시며 서재 이름을 저렇게 지었다고 한다. 또한 정약용이 유배되었던 전남 강진 다산초당의 현판 글씨를 써주면서 보정산방(寶丁山房)이라고 써주는 데 보정산방이란 "정약용을 보배롭게 생각하는 집"이라는 뜻이다(유홍준, 2002, 『완당평전 2』, 학고재, 551~552쪽 참고). 옛사람들이 나눈 절절한 사모의 흔적들이 참 정겹다.


보소재, 보담재, 보정산방 등의 용례를 보며 나도 내 방(혹은 서재) 이름을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내 영혼의 스승이신 고종석 선생님을 존경하며, 그를 보배롭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보고재(寶高齋)라고 지었다. 평소 흠모하고 사숙하던 선생님과 같은 기품 있는 자유주의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인터넷 헌책방, 출판사 문의를 통해 어렵사리 구한 고종석 선생님의 절판된 저서인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고종석의 유럽통신』, 『언문세설』, 『책읽기 책일기』, 『기자들』등을 구한 것을 기념하는 의의도 있다. 여하간 보고재에서 자유주의가 만개하길!

보고재 탄생의 모티브인 고종석 선생님의 저서들

보고재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상존한다. 좋은 책이라도 한두 해만 지나면 서점에서 찾을 길 없는 부박한 출판 풍토상 미리 확보를 해두어야겠다는 강박관념, 물욕이 발동하여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인데 도무지 구할 길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본 기억,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반납하는 대신 분실했다고 하고 내 책꽂이에 꽂아둘까 하는 아찔한 유혹, 무엇인가 홀린 듯이 별 고민 없이 충동구매하고 나서 드는 후회, 통장잔고가 바닥나는 데 아랑곳 않고 묵직한 책꾸러미를 보며 배불러하던 포만감, 단 한 쪽도 읽지 않고 고이 모셔두면서도 책표지와 책등만 바라봐도 흐뭇해하며 언젠가 꺼내들 그 날을 고대하는 희망...

날림으로 만들어 본 보고재 현판(?)

내 누추한 방구석을 보고재라 이름지으며 20대에 1000권 이상의 책을 읽기로 새삼 결심해본다. 1년에 100권이라는 소리인데 생각만큼 쉽지는 않으리라.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 않는 책읽기,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일을 하면서도 짬짬이 하는 책읽기, 남 눈치보지 않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해나가는 책읽기를 주창해본다. 허영의 독서도 분명 있었을 것이고, 불필요한 금전적 낭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책장을 넘기며 그 책들만큼 아름다운 마음들과 대화를 한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책과의 인연을 사랑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책 사랑에 대한 고백은 아무리 해도 모자란 그 무엇이다. - [憂弱]


추신 - 보고재 탄생에는 mannerist 선배님이 잠시 거처하신 울산 모처의 원룸이자 "무사안일 쾌락만땅"이라는 모토를 실현시킬 공간이라는 뜻의 "만땅재"라는 이름도 참조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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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객원기자(?)로 일하고 있는 경영B반 웹진 2005년 11월 1호에 기고한 원고를 전재합니다. 일전에 익구닷컴에 올린 [조선 당쟁에서 배운다]를 정리해본 글입니다. 익구닷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화려한 레이아웃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무덥던 여름도 어느새 그 자취를 감추고, 이제 북악산도 알록달록한 단풍에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가을은 또한 가장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쌀쌀해진 가을바람에 코트 옷깃을 여미며 한권의 책을 넘기는 飛반인의 모습,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멋진 모습이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준비했습니다. ‘늦가을, 飛반인의 문화 산책’! 이번 웹진은 飛반인들에게 가장 ‘대학의 지성인’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인물로 설문조사 된!! 최익구 선배님의 글을 싣는 기회를 가져 보았습니다.

 


 

          이덕일, 1997,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석필.

          <한줄 서평 - 선조부터 정조까지의 조선 당쟁을 깔끔하게 돌아본다>

          이덕일, 2000,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김영사.

          <한줄 서평 - 시대를 역행한 한 정치가에 대한 추상같은 비판이 돋보인다>

          이덕일, 2004, 『사도세자의 고백』, 휴머니스트.

          <한줄 서평 -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보는 영조 탕평책의 한계를 짚어본다>

          이덕일, 2004,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1, 2권) , 김영사.

          <한줄 서평 - 정약용 일가의 이상과 좌절을 통해 정조시대를 추억한다>

 


 

[관용이 흐르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꿈꾸며]

- 이덕일 역사서 4종 세트(?)를 통해 조선 당쟁을 헤집다

 

                              역사를 좋아하는 이들은 낙관적인 편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그 숱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망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왔고, 때때로 후퇴하지만 대개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길게 보고 너그럽게 볼 수 있는 안목이야말로 역사를 읽으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보배이다. 역사를 궁리하면서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나아가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창의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의지를 기를 수 있으리라. 대중적인 역사서를 집필하기로 유명한 역사학자 이덕일의 저서를 통해 조선 당쟁의 진면목을 만나보자. 독선과 오만에 빠진 닫힌 사람들에게서 역설적으로 겸손과 화해 그리고 열린 사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조선 중기 사림파는 훈구파의 집요한 견제와 숱한 사화를 이겨내고 마침내 사림의 시대를 열었다. 높은 도덕성과 엄밀한 학문성을 자랑하던 사림파는 사소한 일로 분당을 거듭하더니 종국에는 시대변화에 뒤쳐져 사회발전의 걸림돌이 된다. 진보의 표상은 수구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 눈의 티끌에 성내는 당쟁의 폐해는 이조정랑 임명을 둘러싸고 대립한 김효원과 심의겸의 동서분당 시발점부터 나타났다. 인사상의 이견에서 비롯된 사소한 갈등은 내 편이 아니면 죽여야 하는 극한 대치를 낳았다. 동인, 서인, 북인, 남인, 노론, 소론할 것 없이 정권을 잡았을 때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조선 당쟁을 칭찬하기에는 꺼림칙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쟁에 휘말린 이들이 자당의 이익 수호에만 급급해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잃은 경우가 많았다. 가령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존망의 위기 앞에서도 서로를 비난하느라 바빴던 붕당을 곱게 보기란 힘들다. 임진왜란 때는 모든 당파의 공과가 병존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나 잘났다만 외쳤으니 이 얼마나 밉 살 맞 은 가. 점입가경으로 당쟁 말기로 가면 갈수록 원한에 사무쳐 서로를 저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당쟁이 끝끝내 사대부들만의 잔치를 벗어나지 못한 것 역시 큰 폐단이었다. 영조가 당파간 공존의 틀을 만들려고 애썼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사대부들만의 정치 독점을 흔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배층의 탕평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피지배층의 사회참여를 확대하고 이들을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가 절실했다. 농업 생산력의 발달과 신분제의 변동으로 말미암은 변혁의 욕구에 유연하게 대처하려 했던 정조의 좌절이 더 안타까운 까닭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향한 아귀다툼은 늘 존재했지만 당쟁에 몸담았던 유학자들 상당수가 너무 편협했다. 물론 역사 연구는 최대한 그 시대의 과제와 현상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온 환경과 시대적 분위기를 십분 감안한다 하더라도 자신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겨서 당론으로 국론을 통일하려 하고, 반대파를 발본색원하려 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을 나누고, 비판을 가한다.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주의주장을 없애는 길은 그 주의주장의 제창자와 추종자를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주의주장 자체의 허실을 가리면 그만이다.               아무리 왕조사회의 인식틀과 성리학적 사고방식이 절대적 진리와 집단주의적 사고와 맞닿아 있다고 하더라도 살육으로 점철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인가.


  정조는 천주교를 공격하는 공서파(攻西派)의 강경 대응 주문에 성리학을 지지하면서도 “정학(正學:성리학)이 밝아진다면 사학(邪學:천주교)는 자기자멸할 것이다”며 탄압에 반대했다.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한 개명군주 정조의 바람과는 달리 정조 사후 혹독한 박해가 이어졌다. 그러나 교조화된 성리학의 답답함을 서학으로 풀게 된 이상 수천의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현지인들의 자발적인 수용이 강한 한국 천주교 보급은 사대부 계급 간 밥그릇 싸움에 신물이 난 백성들의 저항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홍경래가 최후로 버틴 정주성을 함락시켜 여자와 열 살 이하의 남자를 제외한 1917명을 모두 처형한다고 해서 지역차별의 불씨가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다. 장보고에게 비수를 꽂는다고 신라 골품제의 비효율성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노비 만적을 강물에 던진다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육신을 거열형에 처한다고 해서 수양대군의 찬탈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봉준을 죽여도 사람을 하늘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이 식는 것은 아니다.


 

 

 

 

 

 

 

 

 

 


<- 1800년 재위 24년만에 정조가 승하한 창경궁 영춘헌

 

 

오늘날 한국 정치는 사림시대의 그늘을 경계해야 한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당파 싸움을 “세계에서도 드물 만큼 소아병적이고 추잡한 것”이라 비판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정권 연장을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사상 공세를 일삼았다. 겉으로는 대의명분과 개혁성을 앞세우면서 독단아집, 지역주의, 주의, 줄서기에 연연한다면 당쟁의 병폐가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특히 개혁 세력에게 당쟁의 교훈이 필요하다. 사림파는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면서 훈구파의 과오를 답습하기 시작했다. 세월의 무게는 영원할 것만 같은 것도 녹슬게 만들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낯설게 만든다. 개혁의지로 타오를수록 역사를 외경하고, 자신 앞에 솔직할 필요가 있다. 높을수록 낮아지는 정신이 그립다.

 


사회 내부의 모순에 허덕이느라 시대 정세를 읽지 못하고 나라를 잃는 수모를 당해야했던 조선의 몰락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이제 예송논쟁 따위나 하며 한가하게 소일할 여유는 그리 없다. 더군다나 이제 경쟁은 안에서보다 밖에서 더 치열하다. 우리는 상호공존을 추구하는 정치를 위해 “사람”과 그 사람의 “주장”을 동일시하지 않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그른 점을 지적하는데 자신을 싫어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미성숙하다. 건설적인 토론을 인신공격으로 오해하고 물타기를 하는 사람은 비겁하다. 사람을 원망하기는 쉽지만 그 사람의 생각을 반박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드는 일이다. 사람 자체를 매장하려 하지말고 그 사람이 내놓은 지식과 인식, 내뱉은 말과 글을 비판해야 한다. 앞으로는 사람을 없애 그 사람의 이론과 사상을 손쉽게 정리하는 야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정직하게 경쟁하되 겸허하게 수용하고 깨끗하게 승복하자.


  예송논쟁이 한창일 때 서인의 영수 송시열에 대항했던 남인 논객 윤휴가 억지 죄명을 뒤집어쓰고 사약을 마시기 직전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라고 푸념했다. 상호공존의 틀이 무너졌음을 암시하는 윤휴의 볼멘소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송시열과 같은 독선을 만나는 것도 흔한 일이며, 사도세자의 비극과 정약용 일가의 비운은 현재 진행형인지 모른다.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를 적대시하는 풍토가 잦아들지 않는 한 이 세상은 성인과 악당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광경이 계속될 것이다. 조선 당쟁에서 배워야할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관용이다. 선악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일쑤인 다원주의 사회에서 사는 것이 혼란스러울 때,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날 때 칼 포퍼의 다음과 같은 말을 꺼내보는 것은 어떨까. - [憂弱]


                                                         I may be wrong and you may be right, and by an effort, we may get nearer to the truth.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의 노력에 의해서 진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 K.R. P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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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불법도청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장들이 전격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항간에서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고도 한다. 음모론이라느니, 모독 운운하며 설왕설래가 어지럽다. 김대중 전대통령측의 극구 부인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의 공덕과 인권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물론 불법도청 사건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니 무죄추정이 옳다. 그러나 드러난 정황으로 보아 완전 사실무근으로 보기는 힘들다.


분기탱천보다는 석고대죄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 전대통령이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의 정부가 내걸었던 가치를 거스르는 부끄러운 과거에 많은 이들이 상심했다. 미워하면서 닮는다고는 하지만 군사정권의 치부를 답습하는 모습은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도청을 하고 싶다는 권력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김 전대통령은 당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국민에게 겸허하게 사죄하는 것이 순리다. 노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에게 섭섭함을 토로하기 이전에 그를 믿고 지지한 국민들의 허탈감을 달래는 것이 우선이다. 김 전대통령 본인의 충격보다 국민들의 아픔을 헤아린다면 국가기관의 조직적 범죄가 일어날 수 없는 계기가 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 인생무상을 누구보다 많이 겪었을 당신께서 세리(勢利)에 연연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DJ의 인생역정에서 한줄기 빛이 되었던 진실에 대한 열망은 그만의 것은 아니다. 두 전직 국정원장을 믿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은 김 전대통령 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바라마지않는 것이다. 변함없이 진실과 정의를 애호하는 그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름다운 은퇴자로 남기란 여간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당신이기에 이런 어려운 기대를 해보는 것이다. 건승을 기원하며 충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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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글의 모티브이자 요즘 자꾸 읽게 되는 칼럼 - 김대중을 ‘3김’으로 묶지말라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한 "여러분은 나의 정치적 계승자"라는 덕담 한 마디에 우리당과 민주당의 신경전이 날카로웠다. 우리당이 기쁨에 겨워 몸서리칠 일도 아니고, 민주당이 냉소를 날리며 코방귀를 낄 일도 아닌 듯 싶다. 우리당은 김 전대통령의 애정 어린 충고를 받아 들여 민심을 얻는데 애쓰기 바란다. 민생경제를 추스르고 지역주의에 굴종하지 않는 것이 진정 김대중 전대통령을 계승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여하간 이 헤프닝을 계기로 생뚱맞게 김대중 전대통령과 나와의 인연(?)을 생각해봤다. 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에게 패한 김대중 후보는 눈물을 흘리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영삼의 환호보다 김대중의 침울이 내게는 깊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다. 그러다가 95년 7월 18일 김 전대통령은 정계복귀를 선언한다. 그 후로 내내 야당 분열과 정계은퇴 번복이라는 비난에 시달렸지만 내 생일날 다시 돌아온 그를 나는 내심으로 환영했는지도 모르겠다. 96년 4.11 총선 때 그는 전국구 14번의 배수진을 쳤으나 국민회의는 79석을 얻는데 그쳤다. 그 자신마저 낙선했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허전했다.


중학교 2학년 때 97년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내 생애 최초의 정치적 의사표시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부당하게 욕을 먹는 듯한 김대중이라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당시 나라를 말아먹던 김영삼에 대한 실망이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내 고향 대구의 정치적 성향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파악하기 시작했고, 소수파가 될 것을 자처하며 내린 결심이었다. 밤늦게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개표방송을 지켜보다 그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국민의 정부는 그 탄생만으로도 대단한 역사적 성과였다. 하지만 욕심만큼 썩 잘 하지는 못한 것 같다. 김대중의 성공만을 막아야겠다며 저주를 퍼붓던 이들을 보란 듯이 이겨내지 못한 점도 많다. 김종필 일당과 손을 잡고서야 겨우 집권할 수밖에 없었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대놓고 미워하지는 못했다. 그와의 첫 만남이 하필이면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눈물바다였다 보니 그 잔상이 머릿속을 맴돈 탓이었을까. 아니면 괜히 내가 잘못한 것 같아 그것을 인정하기 싫다는 우스운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그의 퇴임 후 이런저런 불평불만이 쌓여서 김대중 전대통령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런데 몇몇 사건들을 겪고 나니 김대중이란 인물이 얼마나 거인이었는가를 절감한다. 특히 지난 4.15 총선에서 끝끝내 침묵을 지킨 것이 정말 대단한 일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을 향한 삼보일배를 보며 애간장이 타면서도 인고하고 말았던 그 헌걸찬 기백을 뒤늦게나마 경외한다. 그 때 당시 속시원하게 우리당을 지지해주지 않는다며 타박했던 나의 옹졸함과 부박함이 너무 민망할 따름이다.


나아갈 때를 알고 너무 머뭇거리지 않는 것도 능력이지만 물러날 때 깔끔하게 뒤로 가는 것도 참 매력적인 일이다. 요근래 내가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서도 모른 체하고, 허영심에 들떠 소명감을 들먹거리는 유혹을 마다치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 손을 떠난 일인데도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세월의 무게로 인해 쌓아놓은 것이 바래는 것을 참지 못하기 일쑤였다. 지난 총선 때 김대중 전대통령이 보여줬던 침묵을 본받아야겠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감에 최선을 다하고서 스스럼없이 잊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성과 앞에서 죄다 내 공덕인 것처럼 우쭐거리지 말고, 쥐꼬리만한 권세에 취해 남을 업신여기지 말고, 인기 관리를 한답시고 자꾸 숨기고 핑계대지 말자는 의미다. 감놔라 배놔라 참견하는 대신 차분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겪었던 일들을 재치 있게 털어놓는 넉살을 품고, 뒷사람들이 잘하는 모습에 아낌없이 격려할 줄 아는 겸허함을 간직하고 싶다.


無爲而無不爲! 억지로 하지 않기에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는 고요함과 치열함을 그려본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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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늦잠에서 간신히 깨자마자 강아지 산책을 나섰다. 간밤에 내린 비로 낙엽길이 펼쳐져 있었다. 강아지 목줄에 걸린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와 낙엽들을 헤집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낙엽길을 거닐다 보니 마음이 여려진다. 여하간 역시 가을은 시름과 상념에 잠기기 좋은 계절이다. 이 가을 상념을 착한 이야기와 좋은 생각들을 나누는데 쓰기보다는 남 험담하고, 내 자신의 경솔함을 보는 데 치중하다보니 민망할 따름이다. 문득 [논어]의 樂而不淫 哀而不傷(낙이불음 애이불상, 즐기되 지나치게 빠지지 말고, 슬퍼하되 자신을 상하게 하지 말라)이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무릎을 쳤다.


어제 있었던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오매불망 응원하던 프로토스 유저가 우승을 차지했다. 오영종 선수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또한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던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도 무척 멋졌다. 5판 3선승제에서 5경기까지 이어지는 대혈전을 살 떨리는 기분으로 지켜봤다. 경기 중계를 보면서 짬짬이 읽으려고 책을 옆에 뒀으나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번도 펴보지 못할 정도로 안절부절못했다. 문득 무언가를 편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했다. 내 편, 내가 응원하는 것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 성취의 희열을 맛보기 전에 애간장이 새카맣게 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프로토스 종족이 엄혹한 시절 속에 맞이하는 환희는 정말 가슴 뿌듯했지만 낙이불음(樂而不淫)을 떠올렸다.


요근래 대학교에서 일이 좀 있었다. 사익추구를 공익으로 멋들어지게 포장하는 꼴이 영 마뜩잖아서 시비도 좀 걸었다. 사람 모이는 곳은 어디든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고, 도덕군자와 소인배간의 건곤일척이 아니라 고만고만한 사람들 간의 티격태격임을 깨달았다. 새삼 권력의 유혹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에 몸서리 쳤고,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는 오버가 얼마나 구역질나는지를 절감했다. 남 흉보느라 내 자신을 다잡는 것을 소홀히 했고, 험담하는 재미에 내 옹졸함과 부박함이 커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이번 사태를 겪을수록 사람에 대한 실망을 많이 한 것 같다. 이 슬픔과 원망에 너무 상심하지 말도록 하자. 애이불상(哀而不傷)을 좀 더 확장해서 적용하면 좋겠다. 내 자신을 상하게 할 만큼 애상에 잠기지 않는 것과 더불어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더라도 깊은 생채기는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행복할 때 절제하지 못하면 뒤따르는 고통이 더 따가운 법이다. 남을 향해 회초리를 들 때 그 매질은 고스란히 내 가슴을 내리친다. 조금 빈 듯이, 약간은 주저하듯이, 덜 채운 모습으로 세파를 헤쳐나가면 어떨까. 기뻐할 때 한 발짝 물러설 수 있고, 가슴이 미어질 때 의연하게 추스를 수 있으리라. 즐거움에 겨워 사시는 분들, 자신이나 남에 대한 혐오 혹은 안쓰러움에 시달리시는 분들께 樂而不淫 哀而不傷을 권한다. - [憂弱]


니체는 말하기를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심연(深淵)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이 당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황금을 얻고자 싸운 사람은 황금에 먹히지 않도록, 권력에 집착한 사람은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범인 잡는 데 종사한 사람은 자기 마음이 범인 닮아서 사악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가 명심할 것은 공산당과 싸운다면서 공산당의 수법을 닮아가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할 일이다.

- 김대중, 2000, 『김대중 옥중서신』, 한울, 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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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 조금이라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개관 시간 전에 서두른 덕분에 별 무리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이번 관람은 사전답사의 성격이 짙어서 동선 파악과 주요거점 확보 등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된 후 찾으니 하나하나 그 의미가 각별했다. 적당히 생략하며 넘어갔는데도 둘러보는 데 5시간 정도 걸렸다. 함께 온 답사 동반자는 지치지도 않냐며 성화다. 집에 가서 저녁 무렵에야 피곤함을 좀 느꼈을 뿐 그야말로 박물관을 사뿐사뿐 잘도 걸어다녔다.^^;


국보 83호 금동 반가사유상을 친견한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서투른 사진 실력으로 어렵사리 찍어 온 사진은 당분간 내 컴퓨터 배경화면을 장식할 예정이다. 일본에서 온 고려불화 두 점 앞에서 눈이 떨어져라 황홀경을 만끽했다. 4미터가 넘는 부석사 괘불탱도 장관이다. 백제 금동대향로도 명불허전이었으며 백제 산수문전은 지극히 아름다웠다. 신라 사천왕사 녹유사천왕상의 조각은 어찌나 세련되며, 성덕왕릉 원숭이상은 또 얼마나 정겨운가. 황복사 순금제여래좌상과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 앞에서는 황금빛이 주는 찬란함에 매료되어 떠날 줄을 몰랐다. 고려청자 죽순모양 주전자와 칠보무늬 향로의 미감에 아찔했고, 다시 만난 백자 달항이리도 여전히 정겨웠다. 감은사 석탑 사리장엄구와 고려 청동 11층탑은 금속공예의 백미였다.


대강 훑어봤는데도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했다. 일본, 영국, 프랑스 등지의 유명한 박물관들이 조금 폄하해서 장물 집합소라면 우리네 박물관은 남의 것 약탈한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는 평화와 문화의 이상적인 만남이 아닐까 자화자찬해봤다. 궁궐 답사 등을 통해 목조 건축에만 약간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이제는 조각, 공예, 회화, 건축 등 한국 고미술 전반에 대한 애호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예전에는 오로지 글자만 있는 책만을 고집했는데 이제는 멋들어진 화보집, 풍성한 도록에도 열광하고 있다. 결국 관람을 마치고 나오기 전에 들른 문화상품점에서 백제 금동대향로 도록을 지르고 말았다. 다만 무척 비용이 많이 들어서 앞으로도 이 취미를 간직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전의에도 불탄다.^^;


흔히들 친한 사이에는 정치나 종교 문제를 꺼내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정치나 종교에서의 차이만큼 첨예한 갈등을 유발하는 것도 없기 때문에 이를 염려한 처세책일 것이다. 물론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친밀감을 높이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르게 살아왔음을 감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신만이 옳다고 우기지 않으면서 서로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며 배우고 다투는 것이 진정한 우애가 아닐까 싶다. 기실 정치나 종교 문제에 대한 티격태격보다 더 민망한 것은 기호나 취향을 문제 삼는 것이다. 4500만의 기호, 60억의 취향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편협함만큼 볼썽사나운 것도 없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는 내다버려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극우파 인사들이 빨갱이 사냥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일부 개신교도들이 사탄을 때려잡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고 지인들에게 분노를 토로하는 것이 구박거리는 아니다. 이런 공적 영역에 대한 토론이 활발한 것이 건강한 사회이며, 반대로 사적 영역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한껏 존중해주는 것이 성숙한 사회다. 가령 역사를 좋아하고 문화유산 완상을 즐기는 나는 내 나이 또래에서 문화적 소수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소수파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내 마음이 끌리는 것에 아낌없는 시간과 정성을 쏟을 자유가 있다. 남의 미감이 소중한 만큼 나의 미감도 충분히 존중받겠다는 지극히 세속적인 꿍꿍이다.^^;


좋아하는 선배님 한 분이 자신의 삶을 이루는 세 개의 꼭지점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영감을 얻어 나 또한 세 개의 꼭지점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선배님 글의 내용인즉슨 공학적 숫자놀이로 밥벌어먹고, 음악으로 향락하며, 책읽기와 글쓰기 같은 글자놀이를 즐기는 삼각형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선배님의 정리를 빌리자면 工-♪-冊이라는 세 꼭지점이 있는 삼각형을 추구하는 셈이다. 나도 선배님과 비슷한 삼각형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경제, 경영 분야로 밥을 벌어먹으면서(과연?^^;) 역사와 문화유산에 끔뻑 넘어가고, 마찬가지로 글 읽고 쓰는 기쁨을 추구할 공산이 크다. 경제, 경영의 經, 문화생활은 돈이 많이 든다는 점에 착안하여 財(문화재의 재字의 의미도 있다), 그리고 텍스트 사랑으로서의 書... 이로써 經-財-書라는 꼭지점을 가진 삼각형이 탄생한다.


인문학적 교양과 사회과학적 전문성간의 균형, 문예적 기질의 원만한 발현,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 input한 양을 넘어서지 않는 output 등등의 대강의 얼개가 나온다. 아무래도 정삼각형이 되기는 글렀고, 이등변삼각형이 될 수도 있고, 한 개의 꼭지점이 끼어들어 사다리꼴이 될 수도 있고, 어쩌다보면 육각형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에 經이라는 꼭지점 대신 공무원 철밥통을 끌어안아 볼까 기웃거리는 모양새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 경우에 공무원의 公이라고 해야 하나, 철밥통의 鐵이라고 해야할지의 사소한 문제가 남지만.^^; 여하간 아직 나의 진로는 반죽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찰흙이며, 어떻게 이어 붙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수수깡과 같다. 안개 속에 헤매는 기분이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니 너무 조바심 낼 필요도 없겠다.


올해 말까지 무료로 개방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인지라 그 핑계로 몇 번 더 찾아갈 참이다. 바지런히 유물원정대를 꾸려서 출정을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유물원정대 일정을 위해 기껏 잡아준 소개팅 날짜도 미뤄버렸다. 한 꼭지점에 충실하다 보니 문화적 소수파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자기 좋아하는 일 하는데 남 눈치까지 볼 만큼 여유는 없다. 내가 흠모하는 고종석 선생님께서 당신의 팬에게 해주신 말씀인 Carpe Diem, 즉 Seize the day를 주문처럼 외워보자.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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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MBC 대학가요제에서 동률공을 만나서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김동률은 내가 팬임을 천명한 최초의 가수이자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다. 그는 내가 여느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 사람의 팬이 된다는 보편적인 감정을 나도 느껴볼 수 있게 해준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그를 꼭 동률공이라 높여 부르는 것도 이런 나의 호감의 표현이다. 동률공이 KBS 라디오 ‘김동률의 뮤직 아일랜드’ 디제이로 선임되고, MBC TV 수요예술무대 후속으로 ‘김동률의 포유’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나서게 된다고 한다. 그간의 적조함이 무색할 만큼 왕성한 활동이다. 반갑다. 죄다 자정 시간대라 수면시간이 좀 줄기는 하겠다만서도.^^;


드디어 개관하는 국립중앙박물관도 참 기쁜 소식이다. 요즘 들어 우리 문화유산과 미술사학 쪽에 부쩍 관심이 높아졌지만 다 둘러보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린다는 그 위용 앞에 조금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감각과 직관을 자유롭게 열어놓고 그저 유구한 역사를 음미할 수 있다면 무척 좋은 기회일 것 같다. 벼르고 있던 만큼 “유물원정대”를 꾸려서 자주 찾아갈 예정이다. 서로 유물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이게 좋았다느니, 이런 느낌을 받았다느니 하면서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광경을 얼마나 그려왔던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때까지 애면글면 노심초사하셨을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드린다.


떠남이 아쉬운 가을에 이렇게 돌아오는 것들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돌아오는 존재들 덕분에 또 스산해진 마음을 덥혀준다. 돌아옴이 떠남의 아쉬움을 채워주는 용도로만 쓰여서는 곤란하겠지만... 상당부분 그렇게 사용하는 것을 억지로 부인하지는 말자. 이 정도만 해도 고독의 침투에 우아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 고독 때문에 괴롭다고 한다. 모든 이에게 나름대로 숨겨져 있는 고독을 보자. 고독 위에 사랑을 심자. 다시 돌아오는 모든 것들에 따스한 격려를!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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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를 놓고 여기저기서 게거품을 물고 있다. 열린 사회의 적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최장집 교수, 송두율 교수 사건에 이어 국가보안법의 광기가 희생양을 찾기 위해 군침을 흘리고 있다. 물론 "한계 없는 관용은 관용 자체를 파괴하고, 제한 없는 자유는 자유 자체를 파괴(신중섭. "맥아더가 전쟁광이면 김일성은 뭔가." 문화일보. 2005. 07. 29.)"한다. 하지만 강 교수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적화통일을 갈망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부 수구세력들의 한계 없는 불관용과, 제한 없는 반자유가 더 문제인 듯 싶다.


법무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반발해 검찰총장이 사퇴한 것도 황당한 일이다. 형식상 적법한 조처를 차마 거부하지는 못해 수용하면서도 이런 식으로 항거해야만 했나 씁쓸하다. 검찰은 이번 일을 계기로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돌아보길 바란다. 인신구속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열린우리당은 행여나 이번 사건이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몸 사리지 말길 바란다. 우리당은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들에 맞서야 한다.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 이 마저도 외면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강 교수를 감옥에 넣으라고 아우성인 자들을 보니 너무 섬뜩하다. 오늘날에는 사람을 없애 그 사람의 이론과 사상을 손쉽게 정리하는 야만을 저지르기 힘든 세상이라고 넉넉히 생각하고 있던 차에 뒤통수를 한방 맞았다. 사람을 원망하기는 쉽지만 그 사람의 생각을 반박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드는 일이다. 강 교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여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할 수 있도록 하면 그만이다. 사람 자체를 매장하려 하지말고 그 사람이 내놓은 지식과 인식, 내뱉은 말과 글을 비판해야 한다. 강 교수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죄다 게으르고 단순하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진중권의 말대로 "강 교수를 구속하라고 인민재판을 벌이는 그 분들이야말로 사상의 자유시장을 믿지 못하여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는 반시장주의자들"이 너무 밉살맞다. 북한에서 탈북자 가정에게 가해진다는 연좌제가 백보라면, 강 교수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취업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김상렬 대한상의 부회장의 연좌제는 오십보쯤 된다. 오십보와 백보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김상렬 부회장이 좀만 더 건각(健脚)이었으면 김정일을 따라잡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고방식이 피차일반이기 때문이다. 폭압적인 김정일 정권을 이기는 데 왜 그네들과 똑같은 폭력을 사용해야 하는가. 저들의 야만스런 행위를 따라하는 것이 과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인가.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하는 일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티격태격하며 배우고, 고치는 수밖에 없다. 사상의 자유에는 웬만하면 고개 끄덕일만한 근사한 생각을 할 자유만이 아니라, 이거 아니다 싶은 조악한 생각을 할 자유가 포함된다. 표현의 자유에는 남 듣기 좋은 입 발린 소리를 늘어놓는 자유만이 아니라, 남의 속을 긁어 놓는 헛소리를 할 자유가 포함된다. 조악한 생각과 헛소리를 탓하기 전에 폭력을 휘둘러 자신의 사상을 강제하고, 다른 생각을 발본색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유의 적'들을 경계하자. 더군다나 사상의 자유시장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견해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 서서 싸우겠다"는 볼테르의 말을 심심하면 꺼내들어야 하는 현실이 솔직히 짜증난다. 왜 굳이 편들고 싶지도 않은 사람을 위해 열을 내야 하는가. 강 교수의 언행은 내 미감을 심하게 거스른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위해 애쓰는 것만큼 흥이 안 나는 일도 없다. 하지만 이런 번거로움에도 내가 강 교수의 학문적 자유를 옹호하는 까닭은 이러한 행위가 김정일 일당의 폭력과 야만, 극우파들의 옹졸과 부박(浮薄)보다는 한결 너그럽되 굳건하고, 우아하면서도 인간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끝으로 나라가 붉게 물들까봐 걱정이 태산인 이들이 잠을 설쳐 충혈된 눈망울로 횡설수설하는 걸 앞으로 계속 들을 생각을 하니 고역이다. 빨갱이 사냥하느라 지친 당신, 이제 잠 좀 자자.^^ 강 교수를 어떻게 하면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 고심하느라 날밤을 새기보다는 국가보안법 좀 폐지하는데 일조해주시면 어떨까. 주체사상 같은 북한의 실체를 여과 없이 만나게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반공이 어디 있을까. 물론 아동틱한 자기자랑과 신물나는 찬양을 즐기는 독특한 취향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손학규 경기지사의 말대로 "사회가 다양해질수록 별의별 사람들이 많고 별의별 이론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게 마련"이다. 우국지사(?)들도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불면증 없는 대한민국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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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떠나기 좋은 계절인 모양이다. 쓸쓸함을 만끽하기도 좋다. 누군가 나를 잊었다고 한탄하기 전에 내가 잊은 누군가를 먼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우연히 접한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김탁환의 소설 제목이 머릿속을 맴돈다. 정호승의 시구대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10월 13일 저녁에 열린 경영대 학생대표자회의(이하 “경학대회”)를 참관하면서 기쁘면서도 섭섭했다. 경영대 학생회칙이 대폭 개정된다는 소리에 적잖이 호기심을 가지며 예의주시하다가 결국 회의장까지 찾아갔다. 현 경영대 학생회칙이 비록 보잘 것 없고, 허점투성이지만 이 마저도 많은 이들의 노고 끝에 완성되었다.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정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으되, 회칙 한 조항 한 조항이 고심의 산물이었음을 존중해주었으면 하는 욕심도 솔직히 있었다. 수년간 멸실되어 있던 경영대 학생회칙을 이 사람 저 사람 번거롭게 하며 어렵사리 제정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학생회칙 조항들이 여기저기 뜯겨 나가는데 마냥 박수칠 만큼 모질지도 못하다.


그러나 이런 나의 감상과는 달리 경영대 학생회칙은 이미 나를 비롯한 회칙제정위원들의 손을 떠났다. 앞으로 어떤 예기치 못한 변화와 의도치 않은 귀결을 맞을지도 모른다. 후임자들 나름의 창조를 통해 다시 태어날 테니 말이다. 내심 “나만 하겠어?” 싶었던 후배들은 서로 다른 고민을 나누며 척척 잘 해나가서 기뻤지만, 내 빈자리를 결국 누군가 부지런히 채워나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니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후임자들이 잘하는 모습에 격려하고 축복하겠지만 콧잔등이 시린 애잔함마저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배들을 믿고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경학대회 대의원 정족수를 예년에 비해 대폭 줄인 관계로 고작 6명이서 경영대 학생회칙을 고치는 게 아무리 탐탁지 않고, 못마땅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결국 굳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참지 못해 몇 마디 내뱉었다. 결국 회칙 개정 논의는 다음으로 미뤄졌다. 원하는 바를 이뤘지만 가슴 한 구석은 텅 빈 듯 했다. 발그레해진 얼굴로 회의장을 나서며 안도감보다는 자괴감이 압도했다. 태클 거는 대신 그저 인고(忍苦)할 수는 없었을까. 질시와 불신을 억누르고 내 자신을 다시금 다잡는 것은 어땠을까.


작년 이맘때 학생회장 임기 종료를 앞두고 걷잡을 수 없는 레임덕(?)에 시달렸다.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궁궐 답사가 인연이 되어 요즘은 문화유산 전반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고 있기도 하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주문처럼 외웠지만 가을밤을 제법 뒤척였다. 늘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하면서도 잊혀진다는 것이 너무 두렵고 아쉬워 어찌나 몸서리 쳤던가.


그 후 1년, 많은 것을 비우고 제법 가벼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한 움큼씩 쥐고 있던 것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버려야겠다. 그리고 조금 더 물러나야겠다. 지워짐으로써 자유롭고, 잊혀짐으로써 풍성해지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내던지고, 베어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세월의 무게는 영원할 것만 같은 것도 녹슬게 만들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도 낯설게 만든다. 가을바람에 나부끼며 끝내는 으스러지는 낙엽이 된다고 서글퍼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도 아름답지만, 어쩔 수 없이 회한을 짙게 남기고 떠밀려 가는 이의 퇴장도 그리 추잡한 것만은 아니다. 설령 미련이 남는다고 머뭇거리고 있으면 좀 어떤가. 어차피 다들 가을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이 될 터이니 말이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제법 스산해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다가 문득 凡事留人情 後來好相見(범사유인정 후래호상견)을 떠올렸다. 모든 일에 인정을 남겨 두면, 다음에 좋은 낯으로 대하게 된다는 말이 참 와 닿는다. 언제 어떻게 떠나고, 잊혀지고, 지워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남을 서운하게 했던 일들이 마음에 걸린다. 함부로 내뱉었던 말들이 민망하다.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삶을 갈구하는 나로서는 본의 아니게 나로 인해 상심했을 많은 이들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남 눈의 티끌을 보며 뿌듯해 하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하나하나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 자신을 다스리는 데 더 정성을 쏟아야겠다. 가을에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시달리지 말자. 대신 지금 가고 있는 길에 감사하고, 함께 가는 이들에게 정다운 인사도 건네 볼 일이다. 떠남이 달콤하려면 머무는 시간들이 살갑고 진득해야한다. - [憂弱]

함께 영원히 할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함께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 한용운, [인연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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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당쟁에서 배운다

문화 2005. 10. 8. 21:57 |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주최한 ‘좋은 서평이 좋은 책 살린다’ 우수 리뷰 이벤트에 응모한 서평이다. 본래는 조선 당쟁을 주제로 쓰려던 글을 쓰려고 생각하던 참에 이 서평 응모전이 열리기에 책 내용을 추가해서 재구성해봤다. 그렇다 보니 서평이라기보다는 당쟁에 대한 내 생각만 늘어놓은 격이다. 그래도 뭐 덕분에 앓던 이 하나는 뽑았다.^^;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 윤휴의 절규

예송논쟁(禮訟論爭)이 한창일 때 서인의 영수 송시열에 대항했던 남인 논객 윤휴가 억지 죄명을 뒤집어쓰고 사약을 마시기 직전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라고 푸념했다. 그의 외침은 예송논쟁에서 당파간 공존의 틀이 무너진 후에 야기될 극한 대립의 전주곡이었다. 이덕일 교수의 『사도세자의 고백』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당쟁의 그늘을 추적해가면서 서로를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했던 참담함을 돌아보게 한다. 가만히 물어본다. “왕으로 삼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 사도세자의 죽음과 영조 탕평책의 한계

글쓴이는 영조의 두 가지 콤플렉스에 천착한다. 어머니 숙빈 최씨의 신분과 경종독살설에 대한 콤플렉스가 영조를 평생 괴롭혔다는 것이다. 특히 경종독살설은 그의 재위기간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는 효종으로 즉위한 봉림대군이 소현세자의 아들이 이어야 할 자리를 가로챘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린 것도 비슷하다. 세자빈 강씨를 역강(逆姜)이라 칭하며 신원 문제를 시종일관 거부했을 뿐 아니라 강빈의 신원과 소현세자 셋째아들의 석방을 직언한 신하를 죽이기까지 한다. 영조가 이인좌의 난이나 나주 벽서 사건 때 분개한 것도 모두 자신의 즉위 명분과 정통성 문제에서 비롯된다. 노론이 나주 벽서 사건을 소론 전체를 역적으로 몰고자 할 때 영조가 추인하게 되는 것도 영조 즉위과정의 한계인 셈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세자와 영조의 생각이 갈리기 시작한다.


세자는 경종 시절 노론의 왕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은 객관적으로 볼 때 문제가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분명 신하가 임금을 택한 ‘택군’이었으며, 당시 그러한 행위는 역적으로 공격받을 소지를 충분히 갖고 있었다. 그러니 수십 년이 지난 이제 와서 복수할 만큼 정당성이 있는 행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간 당론 조제가 임금의 역할임을 기회 있을 때마다 훈계하던 정치적 가르침에 비추어 보아도, 지금의 옥사는 지나친 것으로 보였다.
- 이덕일. 2004. 『사도세자의 고백』. 휴머니스트. 194쪽


영조는 탕평을 통해 포용하려했던 소론을 내치려고 하였으나 세자는 이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수십 년 간 절치부심하며 과거사 재평가 작업을 해온 영조로서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표명하는 세자는 아들이라기보다는 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청나라에 볼모로 갔다가 귀국한 소현세자 부부를 정적으로 여기고 냉대했던 인조의 좀스러운 증오심이 재연되는 순간이다. 다만 글쓴이가 누차 강조하듯 눈물 많고 정 많은 영조는 아들만 죽음에 몰아넣었을 뿐, 며느리와 손자들까지 죽인 인조의 비정함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소현세자의 비극은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유구한 경험을 다시금 선보였다. 사도세자의 비극도 비슷한 면이 많지만 당쟁의 틀에서 좀 더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자가 반노론의 입장을 밝혀가며 소론쪽으로 기울자 노론은 자신들의 지위를 사수하기 위해 세자를 향한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다. 노론이 조작한 나경언의 고변까지 터지자 영조는 세자에 대한 적개심을 부당(父黨)과 자당(子黨)이란 표현을 통해 드러낸다. 이제 영조는 아들을 정적을 넘어 역적으로 여기고 결국 뒤주에서 가둬죽인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영조의 탕평정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조는 자신의 정통성을 옹위하기 위해 결국 노론 중심의 일당 독재체제를 암묵적으로 승인하게 된다.


사도세자의 비명횡사 이후 세손의 지위도 위태로워졌다. 노론의 견제를 뚫고 등극한 정조는 즉위 일성(一聲)으로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친다. 뒤주 속에서 비참하게 죽은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추모의 정을 듬뿍 실었을 이 말에 노론 대신들이 얼마나 아연실색했을지 짐작이 간다. 정조는 영조가 못다 이룬 탕평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아버지의 원통한 죽음을 갚아 나갔다. 이에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을 지어 친정의 무고함을 항변하려 한다. 이 노회한 정객의 글재간으로 말미암아 사도세자는 실제 이상으로 정신이상자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글쓴이는『한중록』의 순수성에 거듭 의문을 제기하며 사도세자의 죽음의 실체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고 있다. 혜경궁의 눈물이 “진정 애통해야 할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억울한 죽음을 초래한 가해자들을 위해 흘린 것(이덕일. 2004. 『사도세자의 고백』. 휴머니스트. 353쪽)”이기에 동정 받을 수 없다고 일갈할 때 여간 통쾌한 것이 아니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글쓴이의 필력에 힘입어 경종, 영조 연간의 당쟁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이 책은 당쟁의 한 사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당쟁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장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된다. 또한『한중록』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며 당쟁의 끔찍함을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현종 연간의 예송논쟁과 숙종 연간의 환국 정치, 경종 연간의 신임옥사를 거쳐 가면서 각 붕당들은 자꾸만 피를 부르는 당쟁의 심각성을 깨우쳤어야 한다. 영조와 정조가 탕평책을 앞세워 난국을 타개하려 애썼지만 대다수 사대부들은 편 가르기에만 몰두했을 뿐 화해와 상생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정조의 마지막 노력이 무색하게 붕당정치보다 더한 세도정치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 당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혹자는 사색당파 운운하며 조선 정치의 후진성을 논하는 것은 일제 식민사학의 주장이라며 의분을 터뜨린다. 물론 조선시대의 당쟁이 한국인의 분열적인 민족성에 기인한다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이론은 부적절하다. 당쟁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이를 한국사 전체로 일반화 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연구는 최대한 그 시대의 과제와 현상을 들여다봐야 한다. 선악의 이분법으로 두부 자르듯이 재단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유교적 문치주의가 당쟁으로 진행된 것에는 명암이 있게 마련이다.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과거시험으로 관리를 뽑았던 능력 위주의 경쟁이 심하다보면 단결이 잘 안되는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능력 위주의 경쟁 사회에서 단결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능력주의 자체를 문제시하기보다는 능력주의야말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정신적 자산이라는 주장은 음미할 만 하다(이성무. 2000. 『조선시대 당쟁사1』. 동방미디어. 21~22쪽 참조). 당쟁 말기로 갈수록 능력주의는 많이 빛을 발하지만 당쟁을 사갈시하는 것보다는 균형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조선 당쟁을 칭찬하기에는 꺼림칙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쟁에 휘말린 이들이 자당의 이익 수호에만 급급해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잃은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가령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존망의 위기 앞에서도 서로를 비난하느라 바빴던 붕당을 곱게 보기란 힘들다. 사실 임진왜란 때는 모든 당파의 공과가 병존했다. 북인은 김덕령, 곽재우 등 많은 의병장을 배출했고, 남인은 유성룡이 이순실, 권율 등을 중용한 공이 있다. 서인은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고, 부사 황윤길의 침략 예언 보고를 했다(이덕일. 1997.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석필. 122쪽 참조). 그런데도 나 잘났다만 외쳤으니 이 얼마나 밉살맞은가. 점입가경으로 당쟁 말기로 가면 갈수록 원한에 사무쳐 서로를 저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쟁의 여러 긍정적인 기능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사대부들만의 잔치를 벗어나지 못한 것 역시 큰 폐단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예송논쟁이 제 아무리 고상한 철학논쟁이요, 고도의 정치이론이라고 한들 민생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탁상공론 혐의가 짙다. 영조가 노론과 소론 간 공존의 틀을 만들려고 애썼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사대부들만의 정치 독점을 흔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배층의 탕평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피지배층의 사회참여를 확대하고 이들을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가 절실했다. 정조는 일반 백성들의 민원사항을 수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고, 모든 노비를 해방시키는 정책을 준비했다. 농업 생산력의 발달과 신분제의 변동으로 말미암은 변혁의 욕구에 유연하게 대처하려 했던 정조의 개혁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정조의 좌절이 더 안타까운 까닭이다.

사림파는 훈구파의 집요한 견제와 숱한 사화를 이겨내고 마침내 사림의 시대를 열었다. 높은 도덕성과 엄밀한 학문성을 자랑하던 사림파는 사소한 일로 분당을 거듭하더니 종국에는 시대변화에 뒤쳐져 사회발전의 걸림돌이 된다. 진보의 표상이 수구의 온상으로 전락하는데 많은 시일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피를 뿌렸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 눈의 티끌에 성내는 당쟁의 폐해는 김효원과 심의겸의 동서분당 시발점부터 나타났다. 가장 오래 정권을 잡은 서인-노론 계열에 가장 큰 책임을 돌려야겠지만 동인, 서인, 북인, 남인, 노론, 소론할 것 없이 정권을 잡았을 때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일 상례였음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점을 볼 때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 정치도 사림시대의 그늘을 경계해야 한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당파 싸움을 “세계에서도 드물 만큼 소아병적이고 추잡한 것”이라 비판했지만, 그 자신도 정권 연장을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사상 공세를 일삼았다. 겉으로는 대의명분과 개혁성을 앞세우면서 독선과 아집, 지역주의, 연고주의, 줄서기에 연연한다면 당쟁의 폐단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특히나 민주화 세력에게 당쟁의 교훈이 필요하다. 사회 각지에 넓어지는 진보의 영역에서 얼마만큼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실현하고 있는지 겸허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림파는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면서 훈구파의 과오를 답습하기 시작했다. 세월의 무게는 영원할 것만 같은 것도 녹슬게 만들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낯설게 만든다. 개혁의지로 타오를수록 역사를 외경하고, 자신 앞에 솔직할 필요가 있다. 높을수록 낮아지는 정신이 그립다.

비단 조선시대 당쟁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향한 아귀다툼은 늘 존재했다. 또한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것도 여지없이 증명해보였다. “과거 역사에 대한 판단은 현재의 세계관이 아닌 그 당시의 인식틀과 논리, 그리고 다른 이들의 신앙과 신념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다원주의 원칙에 의거해서 내리는 것이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박노자, 허동현. 2003. 『우리 역사의 최전선』. 푸른역사. 200쪽)”라는 박노자의 견해에 동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당쟁에 몸담았던 유학자들 상당수가 너무 편협했다. 그들이 살아온 환경과 시대적 분위기를 십분 감안한다 하더라도 자신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겨서 당론으로 국론을 통일하려 하고, 반대파를 발본색원하려 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을 나누고, 비판을 가한다.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주의주장을 없애는 길은 그 주의주장의 제창자와 추종자를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주의주장 자체의 허실을 가리면 그만이다. 아무리 왕조사회의 인식틀과 성리학적 사고방식이 절대적 진리와 집단주의적 사고와 맞닿아 있다고 하더라도 살육으로 점철된 당쟁까지는 이르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인가.

한국 정치가 당쟁의 병폐를 끊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더군다나 이제 경쟁은 안에서보다 밖에서 더 치열하다. 지연과 학연을 바탕으로 다투던 당쟁의 폐해와는 서둘러 결별해야 한다. 사회 내부의 모순에 허덕이느라 시대 정세를 읽지 못하고 나라를 잃는 수모를 당해야했던 조선의 비운을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 이제 예송논쟁 따위나 하며 한가하게 소일할 여유는 그리 많지 않다. 글로벌 경쟁 아래 우리끼리 다퉈서 이기면 세상을 다 차지한 것인 양 좋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호공존을 추구하는 국내정치, 평화와 번영을 지향하는 남북관계 조성에 더 이상 사도세자와 같은 희생제의가 필요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칼 포퍼의 세계 3이론을 새기며

박세채는 1683년 탕평론을 제기하면서, 당파에게는 우열론을 써야 하고, 권력을 쥐고 흔드는 간신과 그들에게 붙은 무리에게는 시비론을 써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붕당은 사리와 분별이 있는 사대부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따지기보다는 ‘누구는 우수하고 누구는 열등한가’를 가리는 우열론(優劣論)이 적절하다는 것이다(박광용. 1998. 『영조와 정조의 나라』. 푸른역사. 149쪽 참조). 조선의 현실에서 주자의 시비분별론(是非分別論)보다는 우열조제론(優劣調劑論)이 단기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고육책이리라.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우열조제론은 단순히 단기적 처방이 아니라 영구한 대책이 될 공산이 크다.

박세채의 논설도 훌륭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칼 포퍼의 세계 3이론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포퍼는 물질의 세계(세계 1), 주관적 마음(정신, 의식)의 세계(세계 2)와 구별되는 객관적 사상의 세계, 마음의 산물이면서도 그 인식주체와 독립해 존재하는 세계 3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상, 언어, 윤리, 제도, 과학, 예술 등을 설명한다. 세계 3은 그 기원에 있어서는 인공적 산물이지만 일단 그러한 이론이 존재하게 되면 자신의 고유한 생명을 가지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귀결을 산출하며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Popper. 1977. 『자아와 두뇌』(The Self and Its Brain) 참조). 이에 따르면 어떤 이론이나 지식을 말하는 사람과 그가 내놓은 이론, 지식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말에 대한 비판”과 “사람에 대한 비판”을 구분해야한다는 것이다.

세계 3은 인간의 산물들의 세계로서 일단 존재하게 되면 그것을 생산해낸 인간과 분리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세계 3은 세계 2에서 파생되었으되 의도치 않은 논리적 귀결들과 문제, 인식주체를 벗어난 독자적인 발전과 전개들로 구성되는 자율적 영역이라는 것이 포퍼 주장의 핵심이다. 주관적 인식의 세계인 세계 2와 객관적인 인식의 세계인 세계 3의 구별은 획기적이다. 비판과 토론에서 누가 주장했는가보다 어떤 주장을 했느냐에 주안점을 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인 것이다. 이 전환은 어떤 “사람”과 그 사람의 “주장”을 동일시하지 않는 혜안을 선물해준다. 자신의 그른 점을 지적하는데 자신을 싫어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미성숙하다. 건설적인 토론을 인신공격으로 제멋대로 오해하고 물타기를 하는 사람은 비겁하다. 주장 자체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인간 됨됨이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사람=그 사람의 말과 글”이라는 등식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지식의 생산자를 그 지식과 동일시하여 어떤 사상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그 사상의 산출자를 없애버렸다. 이는 정치적 해결은 될 수 있어도 학문적 해결은 될 수 없다. 이러한 방식의 정치적 해결은 항상 폭력을 수반한다. 열린 사회는 이러한 정치적 해결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 신중섭. 1999.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자유기업센터. 114쪽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도입될 때 전세계 천주교 역사에 유례없는 극심한 박해가 자행되었다. 천주교를 공격하는 공서파(攻西派)의 강경 대응 주문에 정조는 정학을 지지하면서도 “사교(邪敎:천주교)는 자기자멸할 것이며 정학(正學:유학)의 진흥에 의해 막을 수 있다”고 탄압에 반대했다.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한 개명군주 정조의 바람과는 달리 정조 사후 혹독한 탄압이 이어졌다. 그러나 교조화된 성리학의 답답함을 서학으로 풀게 된 이상 수천의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선교사에 의한 전파보다 현지인들의 자발적인 수용이 강한 한국 천주교 보급은 사대부 계급 간 밥그릇 싸움에 신물이 난 백성들의 저항이었다. 홍경래가 최후로 버틴 정주성이 관군에 함락되면서 2983명이 사로잡혔을 때 자행된 사건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열 살 이하의 남자 224명과 여자 842명을 제외한 1917명을 모두 처형한 것은 지역 차별을 반성하지 않고 피로써 잘못을 감추려했던 역사의 비극이다. 어디 그뿐인가. 장보고에게 비수를 꽂는다고 신라 골품제의 비효율성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노비 만적을 강물에 던진다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육신을 거열형에 처한다고 해서 수양대군의 찬탈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봉준을 죽여도 사람을 하늘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이 식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자기의 이론과 더불어 같이 죽지 않게 되었을 때, 인간은 용감하게 새로운 모험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지적 전통은, 전에는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방어적 태도로 기존의 교설을 보존하는 데 봉사하였으나, 지금은 탐구적 태도의 뒷전으로 밀려나서 변화를 위한 힘으로 바뀌었다.
- 브라이언 매기. 1998. 『칼 포퍼』. 문학과 지성사. 78쪽

이제 사람을 없애 그 사람의 이론과 사상을 손쉽게 정리하는 야만을 저지르기 힘든 세상이다. 세계 3이론은 그 사람이 내놓은 지식과 인식, 내뱉은 말과 글을 비판함으로써 보다 자유롭고 열린 세상을 만든다. 가수 김민기는 자신의 노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무덤덤한 이유를 “내가 만든 노래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났고, 노래란 향유하는 사람들 나름의 창조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것(정혜신. 2005. 『사람 VS 사람』. 개마고원. 159, 160쪽 참조)”이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세계 3 속에서 끊임없이 수정되는 지식들을 모두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지지 않는 겸손함을 가져야한다. 세계 3이론은 치열하게 토론하고 정직하게 경쟁하되 겸허하게 수용하고 깨끗하게 승복하라는 깨달음을 준다. 사람을 원망하기는 쉽지만 그 사람의 생각을 반박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드는 일이다. 세계 2와 세계 3을 분간함은 건전한 정쟁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다.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관용!

윤휴의 볼멘소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도세자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인지 모른다.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를 적대시하는 풍토가 잦아들지 않는 한 이 세상은 성인과 악당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광경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다원주의 사회에서 절대선과 절대악이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고, 선악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일쑤다. 『사도세자의 고백』에서 배워야할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관용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고 싶은 유혹을 버리기가 마음만큼 녹록지 않을 것이다. 고종석의 다음과 같은 말을 늘 곁에 두자. 버리면 가볍다. - [憂弱]


문화로서의 전체주의를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우선 진리의 전유권(專有權)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들이 진리를 전유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리에 대한 사랑을 줄이는 것, 열정의 사슬을 자유로써 끊어내고, 광신의 진국에 의심의 물을 마구 타는 것이다. - 고종석. 2002. 『자유의 무늬』. 개마고원. 143쪽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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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정운영 선생이 향년 61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사회과학자로서는 드물게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이 깊게 배어나는 글쓰기로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다. 외국 사례의 무분별한 나열이라는 핀잔도 있겠지만 그의 글은 진보와 보수를 넘어 권력에 눈이 멀어 제 밥그릇의 안위만을 염려하는 이들에 대한 통쾌한 죽비소리였다.


조정래 선생은 그를 추모하며 "고작 이 세월을 살려고 그 많은 공부를 한 것입니까. 태산이 무색할 독서, 그 해박한 지식이 아깝고 아깝습니다(조정래. "[정운영 형을 기리며] 그토록 꼿꼿하고 당당했던 삶." 중앙일보. 2005. 9. 26.)"라고 탄식했다. 좀 더 많은 일을 해줬으면 하는 선생이 이렇게 빨리 속세의 짐을 내려놓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세를 풍미했던 논객의 떠나 보내면서 내 인생의 초라함과 막막함을 생각해봤다. 내 나이 이제 스물 셋, 아흔 둘까지 산다고 치고 이제 삶의 1/4을 지나고 있다며 농담 삼아 계산했던 일을 떠올렸다. 조정래 선생의 추도사에서 "태산이 무색할 독서"라는 구절이 머리에서 가시지 않는다. 내가 정 선생보다 서른 해를 더 산다고 해서 나의 글 읽고 쓰기가 그의 반의반에라도 미칠까 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꿍꿍이가 발동했다. 아흔 둘까지 살아야겠다는 욕심은 남들이 환갑이면 이룰 일을 좀 더 시일이 걸려서라도 해내려는 의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젠장 술이라도 좀 줄여볼까.^^;


손해보는 장사를 싫어하는 경영학도로서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이 헛되지 않을 만큼의 삶을 꾸리고 싶다. 어차피 요절한 천재가 될 가능성도 없는데 그저 세월을 진통제 삼아 풍진 세상을 버텨 나갈 따름이다. 더군다나 곱게 늙는 것은 내게 있어 꽤 중차대한 목표 중에 하나다. 세월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아찔할 게다.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와 여유를 갖춘 노년의 모습은 그 얼마나 기품 있는가. 나 또한 젊은 시절에는 많이 어리숙했고 윗사람 눈에 못미더운 녀석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후임자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시기하기보다는 기뻐하고 축복할 수 있기를. 그렇다면 신경질적인 노인 대신 해맑은 소년으로 평생을 살 수 있으리라.


절륜(絶倫)했던 인문주의자, 출중했던 스승이 떠나도 따르는 제자들의 몸부림은 계속된다. 고인을 가슴 깊이 추모하면서 다시금 치열하고 자유롭게 살 것을 다짐해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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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는 야만이다』는 동생이 서평 과제가 어렵다고 긴급구호를 요청하길래 엉겁결에 읽게 된 책이다. 그 통렬한 문제의식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해법은 조금 다른 식으로 내봤다. 책을 열심히 읽지는 않은 터라 내용 파악에 미진한 부분이 있을까 두렵다)


IMF 사태가 터졌을 때 일 열심히 하고 세금 꼬박 내던 서민과 중산층에게 돌려진 화살은 엄청났다. 마치 이 모든 것이 국민들의 안이한 생활태도 때문인 것처럼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아우성이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의 과실은 대체 어디로 가고 다시 허리띠나 졸라매라는 채찍질만 돌아온 것인가. 『가족주의는 야만이다』는 이러한 의구심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글쓴이는 경제침체 이후 심심지 않게 등장하는 박정희 향수는 파시즘의 소산이라고 주장한다. 개발독재 시대에 가족이 국가 동원의 단위로 이용되면서 사회의 부재,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가 은폐된 것이다. "가족을 정(情)의 수사학으로 포장하면서 국가의 존재를 은폐시키는 것이야말로 파시즘"으로서 "사디즘적인 사회에서는 개인이 마조히즘화되고 개인의 정신은 왜곡"된다고 본다. 글쓴이는 가국(家國) 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이 국가가 공적인 영역에서 해야 할 일들을 다 떠맡고 있는 체제"를 말한다.


글쓴이는 시종일관 가족=국가라는 도식을 비판한다. 이어서 나라의 위기가 나의 위기로 여기며 스스로 국가에 기꺼이 봉사하는 마조히즘적 국민에서 벗어나라고 주장한다. 내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개인이나 가족단위가 떠맡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농산물 시장 개방의 경우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농가에서 기를 쓰고 반대하는 이유는 개방으로 인한 이익이 자신들의 손해를 보상하는 데 쓰일 것이라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어느 정도 책임져야할 부의 재분배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농산물 시장 개방의 예에서처럼 국가의 기능 중에 대표적인 것이 가치 분배일 것이다. 가치의 생산이나 창출은 개인과 기업의 역할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가치 분배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홍세화는 나눔과 분배가 같은 말인데도 상반된 반응이 나타나는 이유가 "나눔은 사적 영역으로서 시혜나 기부의 의미를 갖는다면, 분배는 공적 영역으로서 조세정의 등 제도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홍세화. "나눔과 분배, 그리고 공공성." 한겨레신문. 2005. 8. 24. 참조). 양극화와 빈곤 문제를 개인의 선의에 호소하는 나눔이라는 구호가 내걸리는 것은 국가의 책임 방기라고 비판해야 한다. 글쓴이가 예로 든 수재의연금과 금모으기 운동이 기만적인 이유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글쓴이는 국가와 사회를 구분하면서 국가와 가족 사이에 시민사회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사회-국가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관계를 지향하자는 주장하기에는 국가와 사회, 가족 간의 경계가 다소 애매한 감이 있다. 조금 수정해보면 국민 개개인의 이익을 존중하고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 '국가', 민주적 시민의식을 함양하고 연대성을 키우는 '시민사회', 그리고 궁극적 소수로서 자유롭게 욕망하는 '개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글쓴이는 가족이라는 존재를 무척 중요시하지만 가족관념이 많이 희박해진 현대 사회에서 가족은 시민사회와 상당부분 포개질 공산이 크다. 즉 가족과 시민사회의 기능이 상호작용하면서 둘 사이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대신 가족의 자리에 개인을 놓는다면 국가욕망으로부터 탈주하기도 한결 수월할 것이다. 고종석이 제시했듯이 "모두가 궁극적 소수 곧 개인인 세상", "집단이라는 추상에서 개인이라는 구체로 눈높이가 낮아진 세상(고종석. 2002. 『서얼단상』. 개마고원. 148~149쪽)"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글쓴이는 "가족은 신성하지만 가족주의는 불온하다"면서 '가족'과 '가족주의'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두부 자르듯이 나누기 힘들어 보이며 가족이 가족주의, 국가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반드시 국가의 세뇌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을 중시하는 사고에도 이미 국가주의의 싹이 트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국가의 책무를 소홀히 하고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글쓴이의 지적은 타당하지만 가족보다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울러 국가주의와 가족이기주의에만 논의를 집중한 나머지 우리 사회에서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지역주의나 학벌주의 같은 집단주의에 대한 검토가 부실한 편이다.


결국 글쓴이에게서 사익을 국익으로 포장하는 권력자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일사불란한 국론통일 욕구는 여전히 강하다.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공공성을 확보한 시민사회의 영역이 보다 넓어지고, 자기 자신을 함부로 희생하지 않고 자중자애하는 성숙한 개인들이 보다 많아져야 한다. 국가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 개성과 자유라는 칼과 공동체와 연대라는 방패로 맞서야 한다. 자유의 대가는 영원한 불침번이기에.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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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정기 고연전은 1승 4패로 아쉽게 마무리되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한마당이었다. 고대인에게는 한해에 세 번 큰 명절이 있는 모양이다. 설날, 한가위 그리고 고연전! 기왕이면 승리가 좋겠지만 경기 승리로 인한 잠깐의 기쁨보다는 학생 개개인의 자아실현 여부로 승부를 걸 수 있기를. 어느 자리에 있든 없어서는 안 될 소금 같은 존재들이 된다면 그것만큼 유쾌한 일도 없으리라.


둘째 날 럭비와 축구가 연거푸 지기는 했지만 마지막 응원은 여전히 흥겨웠다. 경기가 마치자 공교롭게도 비가 조금 내렸는데 나는 이건 고대의 눈물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1시간 남짓 내리던 소나기를 거의 온몸으로 받아냈는데 비 맞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로서는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외고 선배님이신 박수일 응원단장님 바로 아래에 있었던지라 열심히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정말 고생하셨어요.^^


올해는 연대 주최라 뒤풀이가 신촌에서 있었다. 어디로 갈지 고심하다가 선배님들과 동기들이 있는 안암골로 향했다. 처음 뵙는 국주형, 영빈형과도 인사 나누고 반가운 형, 누나, 동기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 단란함이 너무 지나쳤던 탓인지 너무 술을 달려버렸다. 나름대로 패배의 쓴잔인데도 완급조절이란 찾을 길이 없었다.^^; 칠칠맞지 못하게 지갑과 디카가 든 가방을 몽땅 잊어먹고 집만 겨우 찾아 돌아온 내 자신을 발견할 때의 어이없음이란...^^;


나는 술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아도 술자리는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려고 한다. 대개는 "쉬어가며 오래가는 음주(혹은 릴렉스 롱런 음주)"를 지향하지만 가끔은 사양하지 못할 때가 있고 기억이 지워질 때도 있다. 지워진 기억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지만 지금까지 몇 번의 블랙아웃(blackout, 필름 끊김^^;)에서 특별히 민폐를 끼칠만한 주사는 없었던 것 같아 일단 다행이다. 이번에도 특별한 민폐는 없었지만 내 자신에게 엄청난 폐를 끼치고 말았다.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은연한 나는 이럴 때 의외의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그래도 휴대전화는 잘 챙겨왔다고 위안을 삼고, 신분증이 싹 사라졌지만 집에 옛 학생증이 남아 있어서 도서관 출입에는 지장 없겠다고 좋아하는 내 자신을 보니 이럴 때는 꽤 쓸만한 듯 하다. 마신 술에 비해서 숙취가 거의 없다며 흡족해하고, 집에는 잘 찾아왔다고 용하다는 아버지의 반응까지 보태서 이 침통한 사태를 잘 무마하는 중이다.^^;


너무 자기위안이 심한 것 같아 조금 우울하게 손해계산을 해봤다.^^; 문화유산 답사하면서 기념사진 찍는 것이 낙인데 당분간 그게 힘들어질 듯 하니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가방 안에 넣어뒀던 내 학생회장 퇴임 기념 고대경영 배지도 다 못 나눠주고 잃어버려서 섭섭하다. 지갑 안에 있던 문화상품권 두 장으로 이럴 줄 알았으면 책이나 더 충동구매할 걸이라는 생각도 든다. 현금은 뒤풀이하러 신촌 간 후배들 술값에 보탰으면 더 좋았을 것을.


책탐으로 미루어 볼 때 내게도 적잖은 물욕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쥐고 있던 것들에 손을 떠나갈 때는 그저 인연이 다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면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에서 주인공 꼬마가 돈을 잃어버린 뒤 "내 돈을 주운 사람은 얼마나 운이 좋을까?"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곤고로운 사건을 겪을 때라도 이런 정도의 넉넉함을 갖추고 싶다.


당분간 불편한 생활이 되겠지만 자기 소유에 대한 책임감도 좀 키우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얽매이지도 않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아울러 술 핑계대지 말고 내 부족한 자제력을 수양해야겠다. 비록 지갑과 디카를 잃어먹었지만 술은 끊지 않겠다. 늘 자제하면서도 할 건 다 하는 오묘한 균형을 찾아봐야겠다. 피하기보다는 맞서는 데서 얻는 자유의 달콤함을 만끽하려는 쓸데없는 고집을 좀 더 부려볼 셈이다.


무료한 일상에 지치고 허망한 인생에 투덜거리다가 문득 고연전을 추억하는 날이 올 때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힘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간 잘 보지 못했던 지인들도 많이 만났던 살가움과 정겨움이 가득한 고연전이었다. 끝으로 2005 정기 고연전을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즐거웠어요.^^ - [憂弱]


추신 - 잃어버린 물건들은 택시 안에다 두고 내리지 않았을까 막연히 추측하고 있다. 택시에서의 유실물을 한 곳에 보관하는 택시 유실물 센터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하철과는 달리 택시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란 무척 힘들다. 택시기사의 선의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유실물 주인 찾아주는 수고로움을 덜어 준다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아무튼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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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연휴를 하루 앞두고 주임님의 배려로 평소보다 일찍 구청을 나섰다.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고구려 고분벽화 도록이 도착했다는 서울역사박물관 뮤지엄샵으로 향했다. 얼마 전 야나기 무네요시 민화 특별전을 보고 난 후 찾은 뮤지엄샵에서 꽤 괜찮은 고구려 고분벽화 도록을 발견했으나 재고가 다 떨어지고 없었다. 아쉬운 대로 견본품이라도 사려다가 또 들어온다는 이야기에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 때 점원이 나를 알아보고는 말을 건네 왔다.


점원: 저번에 그 분이시죠? 꼭 필요하신 건가봐요?
익구: 아 예... 이런 도록은 시중에서 구하기가 힘드니까요.
점원: 혹시 관련 학과세요?
익구: 아니요. 그냥 취미생활이에요.^^;


교보문고에서 할인판매하는 세계문화유산 화보집 냉큼 구매해서 싱글벙글하는 나를 보고 관련 학과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이틀 사이에 똑같은 질문의 연속이다. 혹자는 내 취미생활이 너무 방대하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잉여(剩餘)도 없이 제 밥벌이만 챙기는 삶은 얼마나 퍽퍽한가. 전부 다 제 전공만 파고드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잉여를 낭비쯤으로 취급할 수도 있지만 나는 여유와 운치로도 해석하고 싶다. 점원의 의아스러운 표정을 뒤로하고 가뿐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서다가 이게 남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행동인가 자문해봤다. 만약에 토익 공부를 이렇게 했다면 이상하게 취급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시 문화적 소수파가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아닐까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다.


나는 내가 인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했으면 좋겠다. 원체 비문학적(?)인지라 문학작품을 손에서 멀어진지 오래지만 역사와 철학 쪽만은 남부끄럽거나 남부럽지 않게 공부하고 싶다. 요즘 들어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분야가 너무 많다. 처음에 궁궐에서 비롯된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문화유산 감상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청자, 불화, 석탑 등 고미술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또한 자유주의 사상을 비롯한 경제철학 쪽도 섭렵할 계획이다. 늘 멀리 바라만 보는 칸트 철학도 수박 겉핥기나마 도전하고 싶다. 만날 조금씩 갉아먹다가 끝나는 논어와 맹자도 제대로 씹어 먹어볼 때다. 향가와 고려가요도 궁리하고 몇 수 외워서 늘 품고 지내야겠다. 읽고 싶은 책, 빌려봐야겠다 싶은 책들의 목록이 자꾸 쌓이지만 게으른 몸뚱이가 얼마나 따라줄지 의문이다.


이렇게 유식찬란(有識燦爛)해지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이 경영학도라는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욱 멋지고 기품 있는 경영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문화경제학, 문화경영이라는 근사한 레토릭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문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영, 경제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문화를 향유하는 삶이라고 본다. 도대체 네 정체는 뭐냐는 물음이 적잖지만 이 혼란스럽고 산만한 모습 자체가 나란 녀석임을 쑥스럽게 고백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가 있음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무슨 일을 하게 되던 간에 은근하고 탄탄한 인문적 사유를 딛고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부와 권력을 마다할 사람 없지만 그런 것들에만 함몰된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우선 위기지학(爲己之學)이며 그 후에 얻는 부와 권력은 외려 내가 바라는 바다.


논어에서 "옛날의 공부하던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공부하더니, 오늘날의 공부하는 사람은 남을 위해 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라는 구절이 나온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은 자기를 위해, 자아실현을 목표로 하는 배움이다. 종국에는 그렇게 배운 것을 사회에서 써먹는 데까지 나아가야겠지만 시작은 어디까지나 인격 도야와 자기 수양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위인지학(爲人之學)은 남을 위한 학문, 남에게 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배움이다. 물론 남의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지적 허영과 세속적 공명(空名)을 마냥 나무라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처사다. 또한 학문이 출세와 치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분개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위기지학을 추구하다보면 지혜를 얻기보다는 스스로를 높이는데 열중하고, 시대의 아픔을 살피기도 전에 앞에 나서는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돌 틈에서 솟아나는 싸늘한 샘물은 때로는 외롭다. 눈밭에 고개 드는 새파란 팟종은 때로는 힘겹다. 그러나 그렇기에 맑고 매울 수 있는 것이리라(허영자의 시 [무제]를 거의 그대로 베껴왔다). 내 지적 편력은 거칠고 엉성하지만 그것이 내 의지와 자유의 소산이라면 한계마저도 눈부시다. 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져야할지도 모른다. 내 자신에 대한 투자가 헛되지 않기 위해 괜찮은 수익률을 보이려고 애써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늘상 정색하고 달려드는 것은 금물이다. 치열하되 재미나게 살아야한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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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아산 김윤규 부회장의 퇴진을 둘러싼 현대아산과 북한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다시금 대북사업의 리스크를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다. “비리 경영인 인사조치가 잘못된 것이라면 비굴한 이익보다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는 현정은 회장의 선언도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신뢰도 떨어지는 상대방과 계속 교류를 나눠야 하는지 회의감도 적지 않다. 현대가 막대한 투자를 통해 얻어낸 독점사업권을 이렇게 간단히 무시한다면 대북사업 전체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상도덕을 준수하지 않는 상대와 무슨 사업이며, 지원이란 말인가.


북한은 “100% 포식하려 들지 말고 80% 정도의 포만감에 만족해야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충고를 경청해야 한다. 걸핏하면 민족공조를 외치면서 조금만 배알이 뒤틀리면 습관성(?) 몽니를 부리는 자세는 적절치 않다. 북한은 남한 사람들이 금강산과 개성이 정말 볼 것이 풍부해서 비싼 돈 내며 관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저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북한을 굳이 찾아가는 이들이 어떤 안쓰러운 마음으로 북녘 땅을 밟고 있는지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칸트는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에서 영구 평화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고 설파한다. 자본주의의 확산과, 민주주의의 심화가 그것이다. 슬프게도 북한은 이 두 조건 모두를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핵을 이용한 협박으로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제 인민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폭압적 전제정치만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나라 중의 하나인 북한과 통일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은 심원한 비극이다.


북한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 언제나 외부의 적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영원한 전쟁(perpetual war) 개념을 가장 충실히 하는 나라로 보인다.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의 이 개념이 북한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볼 때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무드가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북한의 안하무인적 태도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러다가 “영구적 평화”는커녕 “영원한 전쟁”에 함몰되어 있는 한반도는 “항구적 분단”이 고착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럽다.


믿음도 산산이 부서질 때가 오고, 눈물도 마를 때가 오며, 사랑도 식을 때가 오게 마련이다. 북녘을 내 나라 땅처럼 여기며 아끼고 챙겨준 이들이 등을 돌리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퍼주기라는 비난과 친북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마다치 않았던 이들을 이런 식으로 욕보인다면 곤란하다. 믿음의 자리에 실망이, 슬픔보다는 성냄이, 사랑 대신 증오가 싹 트지 말라는 법도 없다. 북한 인민과 남한 국민들을 볼모로 호의호식하는 한줌의 노멘클라투라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봐야한다.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다.


아울러 현대 그룹은 교착상태에 빠진 대북사업에 주눅들지 말고 원칙을 흔들림 없이 견지해나가기 바란다. 내정간섭을 끔찍이 싫어하는 북한이 남의 나라, 기업에 간섭하기를 즐기는 것은 아이러니다. 고 정주영, 정몽헌 회장의 유지도 대북사업이 평화통일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 북한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화통일은 너무나 소중한 지상과제지만 의연하고 당당하게 추진해나가야지, 비굴하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 현정은 회장의 말대로 대북사업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대한민국은 몰상식과 파렴치까지 다 받아줄 만큼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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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고종석 팬카페 정모를 안암골에서 가졌다. 구청 사무실에서 있는 내내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마냥 안절부절못했다. 간신히 6시까지 버티다가 칼퇴근을 하고 학교로 향했다. 이런 즐거운 모임이 안암골에서 열리다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때마침 경영C반 개강총회가 있는 날이어서 04학번 후배들 몇 명이랑 인사나 나눌 겸 잠깐 들렀다. 1학기에 비해 많이 조촐해진 2학기 모임들을 보면 늘 아쉽다. 시간이라는 필터링이 얄미울 따름이다. 안 그래도 모임 시간에 늦은 터라 서둘렀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단 앉으면 여간 일어나기가 힘들다. 급하게 소주 몇 잔을 나눈 뒤 총총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길치인 나이지만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약속 장소인 참살이길 끝의 어느 화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서두른다고 했지만 9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고, 많은 분들이 있어서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일단 자리 잡고 앉으니 어찌나 편한지 모르겠다. 고종석 선생님의 전작주의자인 박강님의 화려한 수집담을 듣다 보니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고 선생님의 글이 언론매체 등에 나오기 시작한 게 90년대 초반이니 나는 그 때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에 불과했으니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박강님의 초청을 받아 전격적으로 박강님네 탐방 혹은 답사를 떠날 참이다.^^


한참 환담을 나누고 있던 차에 테이블 저 쪽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홍세화 선생님이 떡 하니 자리잡고 계신 것이 아닌가. 고종석 팬클럽 모임이기도 했지만 고 선생님의 지인들도 많이 초청되어 오신 것 같았다. 홍세화 선생님, 황인숙 시인님을 비롯해 방송작가, 시인, 변호사, 치과의사, 기자분까지 사회적 명사들이 줄줄이 포진해 있었다. 이 분들의 실명을 거론하면 이 모임의 위상이 더 오를 것 같다는 세속적 꿍꿍이를 꾹 누르고 말씀을 나눠보지 못한 분들은 그냥 밝히지 않는 것으로 하겠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홍 선생님이 한겨레 구독신청서를 돌리는 모습이 참 대단하면서도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다. 또한 고 선생님의 [자유의 무늬] 99~ 102쪽에 나오는 ‘나’를 베끼는 것을 감시하는 세 사람의 독자 중에 한 분인 "스물일곱 먹은 스웨덴어 학도"분도 참석하셨는데 아쉽게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박강님, lee856님 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어공용화가 튀어나왔다. 일동은 과연 저자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한 마음에 고 선생님의 의견을 청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스포트라이트에 선생님은 적잖이 당황하셨다. 그냥 뭐 영어를 많이 쓰게 되는 것을 억지로 막지도 말자는 거라며 대강 얼버무리시는 것으로 볼 때 술자리는 될 수 있으면 가볍게 즐기자는 주의이신 것 같다. 나는 적극적 영어공용화론자인 복거일 선생님과 함께 엮이는 것이 조금 아쉽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영어로 벌어먹고 사시는 young님이 반대하시고, 한국어로 벌어먹고 사시는 박강님이 찬성하시는 것도 어색한 듯 재미났다.


문득 대학 1학년 교양국어 시간이 떠올랐다. 영어공용화라는 주제를 놓고 복거일 선생님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게거품을 물 듯이 통박했던 기억이 난다. "만일 막 태어난 당신의 자식에게 영어와 한국어 가운데 하나를 모국어로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자식에게 어느 것을 권하겠는가?"라는 식의 거친 사고실험이 영 마뜩잖았던 것이다. 고 선생님은 복 선생님을 자신의 스승이라고 스스럼없이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복 선생님은 네게는 지적으로 할아버지뻘(?) 되는 셈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주 인연이 없지는 않았던지 복 선생님의 다음 문구가 내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이 문구를 중얼거리며 내 스승의 스승을 찬하는 우스꽝스러움이란.^^;


보다 일반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안'이란 말은 너무 가볍게 쓰인다. 현존하는 관행, 질서, 풍습, 규칙, 법, 기구, 공동체 도는 사회에 대한 '대안'을 선뜻 내놓는 사람들은 현존하는 것들이 많은 대안들 가운데서 가장 나은 것들로 판명되어 사회적 진화를 통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게다가 '대안'이라고 제시된 것들은 거의 모두 이미 오래 전에 시험되어 버려진 것들이다.
- 복거일,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2005), 삼성경제연구소, 131쪽


이번 모임의 수확 중에 하나가 열린마음님을 뵌 것이다. 열린마음님께서 고종석 팬카페에 가입인사로 올리셨던 글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의 글을 키운 것의 팔할은 고종석이다. 나의 글은 그에 대한 오마쥬에 불과하고 서양철학이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듯이 나의 글은 그의 글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 이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글을 잡아들고 어찌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고종석 선생님은 우리 둘을 보고 경영학도들이 이런 자리에 나타났다며 신기해하셨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쉽사리 말을 못 붙이는 편이라 그리 많은 대화가 오가지는 못했지만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대개 나랑 비슷한 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내는 편이다(하기야 강퍅한 나 같은 녀석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거나, 바라보는 곳이 비슷한 사람과의 교류를 꿈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흩어져서 잘 살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마주치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흙탕물에서 자라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 같은 사람을 만나는 건 그 얼마나 기쁨인가.


이윽고 저쪽 테이블에 앉아 계시던 고종석 선생님이 이쪽 테이블로 넘어 오셨다. 초면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약간 불콰해진 모습의 고 선생님은 내게 훈련소 생활의 안부를 물어주셨다. 선생님께서 나를 보고 "반듯한 녀석"이라고 칭하신다. 민망한 마음에 손사래를 쳐본다. 저 정말 비실비실하게 살고 있답니라고 항변을 해본다.^^; 선생님은 술자리에서 "술 좀 마시십시다"라는 말을 즐겨 하시는 것 같다. 그러다가 대뜸 "너 같이 부르주아 같은 애가 소수파를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던지셨다. 순간 부르주아 되기도 어렵지만 프롤레타리아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라는 상념이 스쳐갔다.


나는 막연히 내 자신이 프티 부르주아쯤 되겠거니 생각한다. 궁궐건축에는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등급의 단청인 금단청을 볼 수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나는 분명 쁘띠(petit)의 원래 뜻대로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한평생 꾸려나가는 것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는 소시민이다. 엘리트주의를 적잖이 지지하고, 고아한 것을 좋아하는 귀족적 취향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내가 소수파가 되었을 때 느꼈던 불편함과 두려움을 다수파가 되어서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올챙이적 생각을 해낼 수 있는 양심적 기억력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꽤 그럴듯한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가 되기 위한 내 최소한 아니 최대한의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고 선생님의 [서얼단상]에 보면 "나는 무던히도 전라도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번 술자리에서도 진정이 물씬 풍기는 농담(?)으로 경상도 사람이 싫다고, 경상도 사투리가 귀에 거슬린다고 솔직히 토로하셨다. 고 선생님 처음 뵈었을 때 내 고향이 대구라는 말을 듣고 놀라셨던 모습이 선하다(난 생후 5개월간 대구 외할머니댁에서 살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게다가 내가 경영학도라는 사실에 또 다시 놀라셨다. 내가 아무리 날라리 경영학도에다가 무늬만 경상도 사람이라고 강조를 해도, 경상도와 경영학도라는 표지가 짙게 드리워진 모양이다. 여하간 지금까지는 그 사람이 어느 지역 사람인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거 같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역보다는 그 사람의 학력이나 학번에 더 신경이 쓰인다. 망국적 지역주의라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것보다는 다른 거대한 장벽이 있는 셈이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고 경상도가 싫어~"라는 도식이 등장하는 것이 고 선생님의 술버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만큼 "전라도 사람이기 이전에 개인"이 되기가 참 어려운 세상이다. 이 말을 하신 선생님 본인에게도 무척 힘들 정도니 말이다.


황인숙 시인님이 나를 잊지 않고 "새우씨"라고 정겹게 불러주셔서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내 아이디가 새우범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님은 시종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안주가 떨어졌다 싶으면 얼른 채워주시고, 나가서 긴급 공수까지 해오시고 말이다. 그냥 좀 앉아서 쉬라고 여러 번 권해도 이게 내 일이라며 마다하셨다. 왜 그리 일만 하시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압권이었다. "그래야 권태를 이길 수 있거든요"... 권태라는 단어가 자꾸 입안을 맴돌았다. 나는 이런저런 인사말에서 꼭 재미나게 보내라는 말을 한다. 까딱 잘못하면 지루하고 권태로운 삶의 연속이 될 것을 염려해서일 게다. 문학과는 담쌓고 지낸지 오랜지라 살아있는 시인을 만나서도 그리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다니 참 서글픈 일이다. 얼마 전 시인님의 시집 [자명한 산책]을 급하게 먹는 밥처럼 후닥닥 읽어 치웠지만 결국 체하기만 했다. 나는 너무 비문학적이다.


고 선생님이 저쪽 테이블로 건너가시고 홍세화 선생님께서 이 쪽으로 넘어 오셨다. young님, 열린마음님과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시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어떤 생각이나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게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연거푸 강조하셨다. 숙고하지 않은 맹목적인 믿음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나란 녀석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책들을 읽고, 어떤 사색을 하고, 어떤 사건을 겪어서 만들어진 것인지 대답하기가 너무 막막하다. 홍 선생님의 그윽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저 깊이 궁리하고 널리 배우자는 정도의 깨달음 밖에 건지지 못하는 내 자신이 민망할 따름이다. 하긴 그 마저도 실천을 못하고 있으니 더 비극이지만 말이다.^^; 홍 선생님은 와인 두 잔밖에 못하는 데 오늘은 아홉 잔이나 마셨다고 하셨다. 나는 주책 맞게도 주량이 400% 인상되셨다는 어이없는 말을 했다. 푸하하 홍 선생님은 본인이 술은 잘 못 마시지만 술 따라 주는 건 잘 한다며 내 잔을 부지런히 채워주셨다.^^; 그저 망극하고 황송할 따름이다.


고 선생님은 당신의 벗들을 시종일관 "늙은이들"이라고 조금 위악적으로 칭하셨지만, 사실 그렇게만 늙을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곱게 늙는 것은 내게 있어 꽤 중차대한 목표 중에 하나이니 말이다. 지금의 벗들이 세월이라는 가랑비에 너무 많이 씻겨 내려가지 말고, 나중에도 이렇게 도란도란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흥겹다. 시간이 제법 흘러 하품들도 한번씩하고 얼굴을 비벼 피로를 쫓는 모습들이 보였다. 제법 배반이 낭자하게 즐기긴 한 모양이다. 한바탕 정리를 해서 가실 분들을 보내고, 남은 분들끼리 맥주를 간단히 더 나누다가 새벽 3시가 넘어 모임을 파했다. 원체 무심한 나이지만 술의 힘을 빌리면 조금 다정해지기도 한다. young님께 전화를 넣어 조심해서 잘 들어가시고, 담에 사무실 한번 놀러가겠다고 인사 드렸다. 열린마음님께도 문자를 통해 조만간 다시 뵐 것을 기약했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거스르기는 또 얼마나 힘든가"를 생각했다. 하지만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그저 "좋아한다"라는 단어의 청량감을 만끽했다. 택시비가 6000원이 안 나왔다. 학교와 집이 멀지 않다는 행복감까지 밀려왔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오는 길은 이렇게 상쾌하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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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싸이 미니홈피에서 하이에크의 명언을 접하고서는 형언할 수 없는 필에 사로잡혀 써서 올린 글이다.^^; 하이에크의 명언은 구청장들의 세목교환 반대 광고에 실렸다.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때문에 정확하게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한다. - 하이에크

이 문구가 실린 신문광고 나도 봤어. 하이에크의 명구가 이렇게도 쓰이는 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했고.^^ 하이에크 선생의 말은 대단한 통찰이지만, 지금 당장 삶이 지옥인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들리지는 않다는 단점도 있을 듯... 하지만 늘 가슴에 새겨두고 있는 구절 중에 하나지. 추가하자면 미래의 천국을 만들려고 애쓰지 말고, 오늘의 지옥을 없애려고 노력하라는 칼 포퍼 선생의 점진적 사회공학도 무척 좋아하는 말이고. 그래도 이렇게 고전에서 명구를 뽑아 제 주장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 막말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가끔 이렇게 교양을 떨어주는 센스도 좀 발휘해도 좋은 듯. 푸하하


시장경제를 위한다는 사람들, 특히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추앙해마지 않는 하이에크라는 인물을 알고 싶어서 그 분의 저서를 충동구매했다우. [노예의 길], [치명적 자만], [자유헌정론]... 하이에크 선생의 대표적 저작물은 거의 입수한 셈이지. [자유헌정론] 같은 경우는 얼마 전 인터넷 헌책방에서 힘겹게 구해서 좋아라하고 있고. 하이에크 사상의 골자는 이래저래 많이들 이야기해주니 얼추 들어 알고 있지만 조만간 천천히 읽어보려고. 젠장 사모으는 것에 비하여 읽어치우는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민망할 따름...^^;


꽤 그럴듯한 자유주의자가 되어보겠다고 결심한지 2년쯤 되었지만 아직도 흐릿하기만 하다. 마케팅 시간에 배운 포지셔닝이 잘 안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미래의 천국을 만들려고 애쓰지 말고, 오늘의 지옥을 없애려고 노력하라는 칼 포퍼 선생의 점진적 사회공학에 자꾸만 끌린다. 세상을 내 뜻대로 재단하려고 하지 않는 자제력과 사회의 부조리를 마냥 방치하지 않는 실천력을 겸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다.


안 그래도 우유부단한데, 사려 깊은 척 하려니 완전 우유부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듯하다니까.^^; 함부로 나서지 않으면서도 움직일 때를 아는 경지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좀 더 배우고 부딪혀 봐야할듯 싶구만. 그래도 궁리하고 탐구하다 보면 가끔 서광이 비칠 때도 있겠거니 하는 이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기대어 오늘도 싱글벙글 웃으며 지내볼란다.


이제 본격적으로 휴학생활이 펼쳐질 텐데 일생을 두고 추억할만한 달콤한 기간이 되기를 빌어마지않는다. 열심히 놀라면 우선 튼튼해야겠지.^^ 늘 건강!


방명록이 대세인 싸이 동네에서 가끔 이런 식의 잡글 테러를 하고 간다. 그나마 텍스트를 많이 쓰는 친구의 미니홈피니까 이렇게 글을 남길 따름이다. 남들 다 다음카페와 한메일을 쓸 때 한참이나 늦게서야 미적대며 가입하더니, 너도나도 하는 싸이질에 동참하지 않고 사는 것도 마냥 쉽지만은 않다. 싸이 미니홈피를 별장으로 다시 열까 고심 중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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