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변호사님은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이라는 책에서 당신이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사용한 t1t2 판단법을 소개하셨다. 시간적 개념, 시기적 중요성이 가치판단에 중요한 요소라는 내용이다. 는 시간(time)의 약자이고, 1, 2는 어느 한 시점을 의미한다. 그 공식은 다음과 같다.


A>B.
But A(t1) + 0(t2) < B(t1) + A(t2).
Then B(t1) > A(t1).


A와 B의 두 가지가 있을 때 A가 B보다 더 중요하고 하고 싶은 일이다. 그런데 A를 먼저 하게 되면 나중에 B를 할 수 없지만, B를 먼저 하게 되면 나중에 A도 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이럴 경우에는 B를 먼저 선택하고 나중에 A를 하는 것이 낫다는 사고 방법이다. 어느 시점(t1)에서 A가 더 중요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흐른 시점(t2)에서는 B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고 느낄 수 있는데다가, A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B를 희생했다면 나중에 B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가치(present value)을 애호하고, 시간에 대한 할인(time discount)을 경계하는 재무이론의 기초와는 다소 어긋나는 이야기다.


물론 “A(t1) + 0(t2) < B(t1) + A(t2)” 에는 허점이 많다. 대개의 경우 A도 t2 시점에서 0으로 수렴하기 일쑤다.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어야하지 결심한 사람은 대개 목표했던 책을 상당 부분 못 읽게 된다. 1박 2일로 술 마시며 노는 것도 젊을 때 아니면 나이 먹어서 하기는 많은 무리가 따르기도 한다. 유능해지면 질수록 그 유능함을 써먹느라 몸과 마음이 닳는 게 대부분이다. 우선 자리 좀 잡고 나서 좀 기품 있게 살아보자는 계획을 성사시키기가 까다롭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많이 보아왔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기란 참 어려운 법이다. 어쩌면 신자유주의의 물결의 가장 큰 폐해 가운데 하나가 덜 유능할 때, 적당히 무능할 때를 만끽할 여유를 앗아간다는 점인지도 모른다. 자유는 유능함과 비례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또한 A, B의 설정은 일견 공정한 출발 같아도 B가 내포한 무게가 더 묵직하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만하다면 무척 가치롭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가령 연애는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고시는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다, 나라 걱정은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고시 공부는 학생 신분 벗어나면 무척 힘들다고 생각해보자. 이처럼 B를 통해 A를 이루기 위해서는 B는 권력지향적이거나 재물지향적인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건 비교적 또렷하다. 이를 통해 획득한 물적, 사회적 자본을 바탕으로 A를 도모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t1t2 판단법에는 A가 더 중요하고 하고 싶은 일이라고 가정하지만 세월의 무게를 못 견뎌내는 행위는 단기적 쾌락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A를 위해서 B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B를 위해 A는 덤으로 얻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하지 않을까 싶다.


마이클 왈쩌(M. Walzer)는 ‘영역의 정의’, ‘다원적 평등’이란 개념을 들어 영역과 영역 사이에 높은 담장이 있어 하나의 가치가 그 영역 안에만 머무를 때 사회적 정의가 실현된다고 주창했다. 왈쩌는 한 영역의 가치가 다른 영역에 침투해서 침투한 영역의 가치를 왜곡시키거나 무너뜨리는 일을 ‘전제(tyranny)’라고 칭했다. 다원적 가치의 평등한 영역을 보장하고,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지배의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왈쩌의 주장은 이상적이지만 충분히 음미할 만 하다. 왈쩌의 견해를 빌려 t1t2 판단법에 전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면 성격 모난 녀석의 괜한 트집이 될 공산이 크다. 고승덕 변호사님은 사람마다 다른 우선순위가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승덕 변호사님의 아름다운 공식에 약간의 첨삭을 통해 좀 더 일반화된 공식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내가 어찌어찌 좀 더 정교한 공식을 만들었다고 치더라도 그게 무슨 실익이 있을까. 이론적 모델을 가지고 승부하는 학자가 아니고서야 보통 사람들의 승부는 실천에 달려 있다. 고승덕 변호사님과 내가 차이가 난다면 목표의 유무, 삶에 대한 애착의 강약이 아닌 “자신에 대한 관대도의 차이”에서 비롯될 것이다. 퇴계 선생의 『자성록』 서문에는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옛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몸으로 실천함이 말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라는 말씀이 나온다. 솔직히 이 말 잘 실천하지 못했다. 그간 내 자신도 지키지 못할 말들을 많이 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좀 더 덜 너그럽거나 아니면 그럴듯한 다짐을 남발하지 않는 게 좋겠다.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둥은 홍위병을 격려하며 모든 반항과 반란에는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조반유리(造反有理)’라는 말을 남겼다. 수정주의자들에 반항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뜻인 이 말을 조금 바꿔 ‘성패유리(成敗有理)’라고 써본다. 성공과 패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너무 결과 위주의 사고 같지만 그렇다고 이만한 사회적 통념 혹은 상식을 부러 폄하할 까닭이 없다. 개인이나 조직의 성공사례와 실패사례에서 부지런히 보고 배워야겠다. 고승덕 변호사님의 성공에 이유가 있듯이, 나의 이룸에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공부 좀 하자.^^; - [無棄]

Posted by 익구
:

好學日記(06.11.06~06.11.12)

일기 2006. 11. 13. 02:13 |

061106
종종 국회의원들이 보내는 전자우편을 받는다. 아마 몇몇 사이트에 남겨진 회원정보를 통해 보내는 거 같은데 몇몇 의원님들 건 수신거부를 해버리지만 어지간하면 몇 번 오다 말겠지 싶어 그냥 둔다. 다만 이계안 의원님의 편지는 반갑게 받는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까지만 보내다 말 것을 지금까지 틈틈이 보내주는 정성이 대단하다. 이 의원님은 지난 5.31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강금실 후보님과 이기기 힘든 싸움을 벌였다. 오로지 강 후보님께 이목이 쏠려 있을 때도 “여전히 우리당은 나의 당이다”며 끝내 섭섭함을 내색하지 않는 모습에 나는 이 분이 진국이구나 생각했다. 물론 정치인에게 희망을 투자한다는 게 수익성이 낮다는 건 숱한 경험으로 입증되고 있지만 투자하지 않으면 희망이 커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실용적인 인생을 살고 싶지만 덧없는 게 또 인생이니 어쩌겠는가.

솔직히 이계안 의원님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이 의원님의 경선 고집이 서울시장 선거 진행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당의 원칙은 좀 우직하게 지킬 필요가 있었다. 사실 이 원칙이 흔들려서 후보 경선이 흥행에 참패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보기 드문 아름다운 패배와 멋진 승복이었다. 여하간 이 의원님이 <君子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보낸 엽서에서 그가 인용한 문구는 “君子는 求諸己요, 小人은 求諸人이라(군자는 잘못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그것을 다른 사람한테서 찾는다)”과 “군자는 欲訥於言而敏於行이니라(군자는 말은 더듬거리지만 행동은 민첩하고자 한다)”였다. 여기저기 주판알 굴리는 소리가 들릴 때 차분하게 제 허물을 돌아보는 모습이 얼마나 그리운가.

이계안 의원님 칭찬하는 와중에 모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하겠다며 의원직을 사퇴했다가 재보선에서 다시 의원 배지를 단 모씨가 떠올랐다. 그 분은 전 의원에서 머무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분은 내 투정(!)을 받아도 싸다. 아무쪼록 군자가 되고 싶다는 이 의원님의 바람이 머잖아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그가 쓰레기통 속에서 피어난 장미꽃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가 고통 속에서 진주를 품으리라 믿는다. 그에게 아름다운 승리와 멋진 수락도 함께 하기를.


061107
어제 휴가 나온 수현이와 청원이, 그리고 시험 공부를 해야하는 현식이와 함께 회기역에서 조촐한 회동을 가졌다. 수현이가 올해 송년회를 거하게 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현이가 일일이 전화를 돌려서라도 한 60명쯤 모아보자고 말했고, 나는 더 회의적으로 응했다. 수현이가 내기를 걸자고 했고, 나는 한사코 만류했다. “그냥 얼굴이나 보고 싶다”는 수현이의 소박한 바람을 나는 “그건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과거의 추억을 만나는 것에 불과하다”고 구박(?)했다. 내가 못됐다. 너무 야박하게 말했다.

나는 2002년 11월 24일 당시 동창들 온라인 클럽에다가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동문회 창설을 제안합니다’는 글을 올려 동창회 논의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동창회의 성격과 구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나는 논의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나 말고 다른 친구가 이 제안을 하고 논의를 시작했다면 더 많은 친구들이 믿고 동창회 건설에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을까라는 자괴심에 빠지기도 했다. 2003년 1월 말을 지나면 동창회 논의는 물 건너간다고 생각했던 나는 중국어과 진로를 위한 사이버 투표를 제안해 조속한 결정을 강구했다. 중국어과 친구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친구들의 뜻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망설여졌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1월말이 지나면서 논의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다행히 2003년 11월 가까스로 중어과 엠티를 성사시켰고 그 곳에서 동창회 논의를 2시간여에 걸쳐 시종일관 열띤 토론을 했다. 전원의무가입인가, 희망참여가입인가를 놓고 표결에 붙였고 내 평소 지론이었던 희망참여가입이 많은 표를 얻어 결정되었다. 싸이월드로 새로 옮기는 동창회 커뮤니티에 가입한 친구들을 회원으로 상정하자고 해 사실상 희망참여가입의 명분만 유지했을 뿐 전원의무가입과 크게 다를 바 없긴 했다. 내가 분열주의자 소리를 감수하고도 희망자의 참여를 강조한 것은 모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인연은 운명이 아니라 정성이며, 노력이다. 그 정성과 노력은 몇몇 개인에게 과중하게 지워져서는 안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조직화가 필요하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방책이라고 좀 더 힘주어 강조했어야 했다. 여하간 이 엠티 이후 동창회 논의의 후속 조치들이 너무 미비했다.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동창회 - 아시수”라는 명칭만 확정했을 뿐 임원진 혹은 운영진의 구성이나 동창회비 납부 문제는 결국 매듭짓지 못했다. 특히 동창회비 문제는 오래된 사이라고 해도 돈 문제로는 의 상하기 십상이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나는 재정적 끈(!)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지만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은 실패했다. 몇몇 친구들은 시기상조론을 폈지만 내가 보기에 고등학교 졸업 전후로 마무리할 일이 늦어진 것이다.

나는 동창회 논의를 하면서 직접 민주주의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절절이 체험했다.^^; 내가 열렬한 의회 민주주의 옹호자가 된 것도 이 때의 경험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나 친구들이나 논쟁에 띄어둔 사람들 대부분이 타협점을 찾기 힘들었다. 그만큼 우리는 철없고 어렸다. 내년 초를 기점으로 거의 모든 남학우들이 군 제대를 하고 나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남은 친구들의 수가 적다고 투덜거리지 말자.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옛 정을 버리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다.


061108
사람의 일생에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다. 가령 관운장의 오관육참(五關六斬)이나 유현덕의 삼고초려, 제갈공명의 출사표는 그네들의 일생에 걸쳐 가장 눈부신 순간이었다. 문제는 이 섬광처럼 스쳐가는 순간을 얼마나 평생에 걸쳐 꾸준히 유지하는 가다. 순간의 호기로움으로 아름다운 말을 늘어놓고, 짧게나마 그 실행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건 약간의 정성만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전생애를 걸쳐 제가 품었던 아름다움을 건사하는 건 지극한 수고로움이 따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과정에서 떨어져 나갔던가.

정치인 정동영은 그리 쟁쟁한 민주투사라고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1978년 MBC 기자 면접시험에서 보여준 행동은 눈부셨다. 사장은 “현 시국을 어떻게 보는지 말하시오”라고 물었고 그는 고심 끝에 “유신은 망하고 말 겁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요 근래 취업 면접을 준비하시는 선배님들을 뵙고 있지만 이게 정말 얼마나 어려운 결단인지 금세 알 수 있다(더군다나 요즘 같은 취업난에서야 더욱 그럴 게다).


정동영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 시대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당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끝이 안 보이는 유신독재의 그늘에서 그 멸망을 통쾌하게 말하는 용기는 아름답다. 이런 이들이 점차 늘어나서 오늘날 이만한 사회라도 이룬 거 같다. 정동영이 그 때의 눈부심을 지켜내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기로 하자. 그러나 오늘날 누군가는 지역주의는 망하고 말 겁니다라고 외치고, 국가경제 발전과 더불어 개인의 삶의 질 향상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외칠 수 있어야 할 텐데. 내 자신이 못하는 일을 내 대리인이라도 해주길 바란다면 지나친 탐욕일까.


061109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청장 후보 공천을 대가로 ‘명품 8종 선물 세트’를 받아 공직선거법 위반 및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박성범 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할 모양이다.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700만원에 추징금 12만원을 선고했다. “물품을 받아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의 경우 현행법상 과태료에 처하도록 돼 있어 선거법으로는 형사처벌할 수 없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배임수재죄만 인정했다. 피차 선수들인데, 뇌물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 모두 이러한 공직선거법의 맹점을 알고 있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의 이런 가정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사과드린다.

사실상 선거법 위반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재판부가 엄격한 법리적 판단을 내린 것 자체는 시비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공직선거법 허점에 대한 개정 논의를 게을리 한 국회에 더 많은 책임을 돌리고 싶다. 그런데 “물품 공여자의 적극적인 공세에 밀려 물품을 받은 점 등을 감안해 형을 감경한다”니 조금 납득하기 어렵다. 민감한 시기에 건네는 선물이 어떤 의미인지 피차 아는 판에 그런 정상참작까지 하는 정성(?)이 갸륵하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너그러움은 생계형 범죄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왕 떨구는 법의 눈물이라면 낮은 곳에 먼저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매관매직 사건도 이렇게 묻혀간다. 돌아온 최연희, 돌아온 김덕룡에 이어 돌아온 박성범도 추하다. 우리가 그들을 잊는다면 또 그들은 앞으로도 주욱 우리를 대표(!)하려 할 것이다.


061110
3년간 쓰던 휴대 전화 기기를 변경했다. 나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도 책을 봐가며 공부한 녀석이라 새로운 휴대 전화기의 기능에 익숙해지기 위해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따라해 봤다. 새 휴대 전화는 음악도 많이 넣어서 듣고, 인터넷도 하고, TV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일단 나는 전화 주고받고, 문자 오고갈 수 있으면 되는지라 그 기능만 익혔다. 컴맹에 가까운 내가 컴퓨터를 인터넷으로 글을 읽고 쓰고, 한글 문서나 활용하는 정도로밖에 쓰지 않는 것처럼 나는 문명의 이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틈만 나면 문명 예찬을 늘어놓는 나이지만 정작 내 자신은 문명에서 살짝 빗겨서 있기도 하다. 하기야 첨단기술과 유행만이 문명이라고 할 건 없겠지만. 고즈넉한 궁궐도 문명이지 않는가.

전화번호부를 옮기는 문제에 마주쳤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전에 쓰던 것에서 새 것으로 단숨에 자료를 옮겨준다고 한다. 미련의 화신(!)인 나는 이번에도 고심에 빠졌다. 520개에 달하는 전화번호를 수작업으로 옮기자니 여간 막막한 게 아니다. 하지만 이래저래 알게 된 전화번호를 이참에 날씬하게 정리하는 것도 필요할 듯싶다. 있던 것을 지우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입력하는 게 더 모양새도 좋고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200개 쯤은 입력해야 할 텐데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하나씩 새로 입력하면서 그 전화번호 주인공과의 추억을 곱씹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새 전화기에 연락처를 입력하지 않는 분들과도 애틋한 작별을 나누고 말이다.

아! 나의 미련 곰탱이 기질이 또 발동하려고 하고 있다.^^;


061111
어제 저녁부터 오늘 새벽까지 즐거운 자리를 가졌다. 97학번 선배님부터 05학번까지 모였으니 최근 들어 가장 학번 분산(Variance)이 높은 모임이었다. 어렵사리 자리에 함께 해주신 초고학번 선배님들과 많은 이야기 나누지 못해서 아쉽다. 당초 계획했던 모임에서 규모가 많이 커져서 제안자였던 내가 적잖이 긴장했지만 다행히 잘 마친 거 같다. 선배님들께 자꾸 빚져서 이거 나중에 어떻게 후배들에게 다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모임을 주도하거나 제안하지 않기로 약속해놓고 번번이 어기다가 이번에는 결정타를 날려 버렸다. 나와의 약속을 어긴 보람이 있지만 그것이 면책이 되거나 하는 건 아니다.

 

후배사랑으로 열변을 토하셔서 좌중을 감동시켜주시고 학번 분산 신기록에 지대한 공을 세워주신 상준형님, 인사 못 드렸지만 먼발치서 아우라나마 만끽했던 충언형님, 결국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 와주신 인호형님, 내 얼굴을 10초간 바라 봐주시고 선후배 간의 관계에 대한 많은 조언을 해주신 문철형님, 나를 92학번이라고 불러 주시며 당혹의 도가니로 몰고 가주신 승하형님, 상추쌈도 친히 싸주시고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던 신우형님, 이 모임의 영감을 제공해주신 선후배 관계의 모범 가운데 모범 광호형님,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나의 초중고대(!) 선배님 정훈형님, 한층 훤칠해진 모습으로 내게 외모관리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신 국주형님, 내 연락을 너무나 반겨주신 행시동의 다크호스 주원형님, 인사 드리기도 전에 이미 내 존재를 알고 계셨던 규현형님, “뻔한 게 좋아!”라며 늘 보는 얼굴을 좋아하시는 변함 없는 카리스마 을광형님 모두 고맙고 또 고마웠다. 정말 선배님의 뒤를 어떻게 쫓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좀 더 친해지기 위해 안달하는 02 동기들 하늬형, 정환형, 단비누나, 홍익, 정석, 패창, 보경, 재한, 재연, 수정... 우리 학번이 제일 많이 왔다. 푸하하~ 헌조형을 비롯해 역시나 친해지기 위한 물밑 교섭 중인 03학번 지호, 은수, 석원, 성환 모두 고생 많았어요. 04, 05의 대표 자격으로 어려운 자리 함께 해준 용철이와 상언이에게는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당분간 근신하는 시늉이라도 해야할 거 같은데 다음주 초에 준용형님을 모시고 고등학교 동문 모임을 기획하려고 하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전화기를 바꿀 것이 아니라 없애버려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흑흑


061112
행정행위에는 재량행위와 기속행위가 있다. 재량행위는 행정결정에 있어 행정청에게 선택의 자유가 인정되는 행정행위를 말한다. 반면에 기속행위는 행정행위의 요건 및 법적 결과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법을 집행함에 있어 행정청에게 어떠한 선택의 자유도 인정되지 않고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행정행위를 말한다. 법제처는 2005년부터 ‘재량행위 투명화’를 중점사업로 정해 모호한 법조문 정비에 착수했다. 법조문에서 ‘상당한 이유’, ‘정당한 사유’, ‘현저한 공익적 기준’ 등 애매한 표현으로 규정될 경우 행정청에 의해 재량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되고, 나아가 행정부패 소지가 발생하게 된다는 문제의식의 산물이다.

 

재량행위의 기준을 명확히 하거나 아예 기속행위로 전환함으로써 국민의 권익을 확충할 여지는 많다. 이를 통해 행정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면 국민의 권리 실현에 보탬이 될 것이다. 가령 건축허가의 경우 재산권 행사와 관련이 있는 관계로 원칙상 기속행위로 본다(강학상 허가의 경우 이와 같이 기속행위로 보는 경우가 많다). 건축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면 행정청의 별도의 가치판단 같은 거 없이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건축허가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환경 등 공익을 고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경우에 일정 부분 재량행위가 되는데 이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면 환경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행정의 예측가능성도 떨어져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된다.

 

경제안정정책을 둘러싼 케인즈학파와 통화주의자의 대립도 이와 유사하다. 케인즈학파가 적극적이고 재량적인 정책의 측면이 강한 미세조정 정책을 지지했다면, 통화주의자들은 소극적이고 준칙에 따른 정책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준칙은 기속행위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일례로 통화주의자의 거두 프리드만은 k% 준칙이란 통화정책을 제안했다. 이는 정부가 화폐 공급량을 매년 일정한 배율로 증가시켜 나갈 것이라고 공표하고 경제상황의 변동에 관계없이 이를 지켜나가는 정책을 말한다. 이를 통해 민간 경제주체들의 예측가능성을 높여 장기계획을 수립하는 데 보탬이 된다는 주장이다.

 

11월 들어서 공부를 미뤄두고 너무 노는데 치중했다. 스스로 재량을 줄이고 준칙을 좀 늘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다. 내 생활의 상당부분을 기속행위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학교는 두 번만 간다는 쿼터를 정한다고 하자. 나는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가는 것이니 만큼 학교 출입을 줄이면 노는 시간도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쩨쩨하게는 일주일간 쓰는 전화와 문자 횟수 상한선을 정하고, 일일 인터넷 활용시간을 제한하는 등을 검토해볼 수 있겠다. 반드시 무언가 줄이는 것말고도 하루에 영어 공부 최소 1시간은 하기처럼 무언가를 일정 수준 이상 수행하는 쪽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내 욕심을 채우려면 일정부분 기속행위와 준칙의 힘을 빌어야 할 거 같다.

Posted by 익구
:

김영길 효성가톨릭대 교수님은 계간 <문화과학>에서 한국보다 먼저 신자유주의화의 길로 간 일본 사회의 서민들에 대한 복지 서비스 후퇴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읽었다. “일본의 신자유주의화가 한편으로는 국가의 복지 영역을 민간기업에 떠넘기고 또 한편으로는 상징 천황제를 강화하며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우경화로 갔다”는 주장이다. 나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천황제 같은 건 없지만 우리네 천민 자본주의적 속성은 그에 못지 않은 저력(?)을 품고 있는 듯싶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곧잘 언급되는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하지만, 나는 자영업자 및 가족종사자가 36~37%인 고용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좋은 일자리의 부족으로 인한 불완전취업 및 저임금계층의 증가로 말미암은 고용시장의 구조적 모순이 안타깝다. 우리 사회의 안정성 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데 행정역량이 상당부분 집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의 사회 안정망 구축이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을 줄이고, 공무원 열풍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자영업자 비중을 낮추는 고용구조 개편도 시급하다.


한국개발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30대 대기업 계열사와 공기업, 금융회사 같은 괜찮은 일자리 종사자가 1997년 157만 9,000명에서 2004년 130만 5,000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월평균 명목임금이 전체 업계 평균치를 웃도는 ‘괜찮은 일자리’가 2004년 30만5000개에서 지난해와 올해 각각 14만1000개와 16만3000개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근 조사 결과도 우울하게 들린다.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인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너무 적은 탓도 있지만 문제는 보다 근원적이다. ‘성장→일자리→분배 개선’이라는 사이클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세계화, 자동화, IT화 등으로 말미암아 성장을 해도 그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회자되고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 출산율 저하 및 노동력 고령화, 중국의 급속한 성장, 지식노동으로의 노동방식 재편 등도 들어볼 수 있겠다. 성장에 따른 고용흡수력 감소는 선진국이 먼저 경험하고 있는 통상적인 현상이니만큼 이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교수님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경제구조 고용구조를 고민하지 않고 정부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에 문제가 심화되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알아서 살라고 하니, 길이 없어 자영업으로 몰린” 셈이다. 스웨덴은 보육 보건 복지 노동 교육 등 공공서비스가 전체 노동력의 약 30%라고 한다. 뭐 스웨덴 사례가 우리와 맞지 않다고 본다면 우리가 좇으려고 애쓰는 미국도 15%선임을 말해야겠다. 우리는 고작 5% 정도라고 한다. 다른 통계에 따르면 2005년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2,286만명 중 사회서비스 분야가 13.1%를 차지하고 있어 2003년 OECD 국가 평균에 10%정도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얼마 전 세금 논쟁에서 불거진 조세부담 비중에 대한 통계처럼 공공서비스와 사회서비스 분야 이런 것들에 대한 명확한 통계는 좀 헛갈리는 면이 있다. 참고로 정부의 재정지출 규모는 2004년 기준 27.3%(한국은행 결산기준 28.1%)로 OECD 국가 평균 40.8%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스웨덴(58.2%), 프랑스(54.4%)에 비교할 것도 없이 작은 정부의 표상처럼 떠받드는 일본(37.6%), 미국(36.%)보다 낮은 수준이다. 넓은 의미의 정부개념을 기초한 우리나라의 재정규모는 선진국에 비해 크다는 반론도 있다. 정부의 범위도 좀 명확히 해야 논쟁의 접점을 찾기 쉬울 거 같다. 제 입맛에 맞는 통계를 들고 나오는 건 나도 잘할 수 있다.^^;


성장과 분배의 비율을 높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모범답안이 없음은 명백하다. 어쩌면 이론적 논증 영역이라기보다는 실천적 적용 영역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분배를 표방한 복지정책이 언 불에 오줌 누기 식의 임시변통이라는 주장과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가 총수요의 증가를 가져다 온다는 주장이 팽팽하지만, 일자리 창출이 긴요하다는 데는 견해가 일치한다. 성장한 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는 시대일수록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More and Better Jobs)’ 공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힘은 어디까지나 기업에서 나오지만, 정부 또한 보이지 않는 손만 기다리기보다는 재주 있는 손을 동원해야 한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과 ‘사회서비스 확충’이 양립 불가능한 과제로 보이지 않는다. 민간과 시장이 뛰어들어 이문이 나기 힘든 사회서비스 영역에는 정부와 공공부문이 좀 나서겠다는데 인색할 까닭도 없다. 공공부문의 역할을 ‘민간이 전혀 하고 있지 않은 분야’로 제한한 케인즈의 단서를 수용하고 공공부문 개혁이 선행한다면 ‘할 일을 하는 좋은 정부(good government)’가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이래저래 어려운 문제다. 아무쪼록 새로운 질적 성장모델로 전환하기 위해 우리네 고용구조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해야 한다. - [無棄]

Posted by 익구
:

세금은 선동이 아니다

경제 2006. 11. 10. 01:00 |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님은 “세금을 올리더라도, 상위 20%가 소득세의 90%를 내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손해볼 것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에 ‘소득 상위 20%’의 실체와 ‘세금을 올리면 누가 부담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일부 언론은 “상위 20%=월급쟁이 대부분”이라며 저소득층의 부담을 신랄하게 써내려갔다. 상위 20%가 월급쟁이 대부분이라면 당최 그 아래 80%의 생활수준은 어떻다는 것인지 소름이 다 끼친다.


2005년 11월 재정경제부가 낸 자료에 따르면 근로소득세 과세표준이 1원도 안돼 세금을 한 푼도 안내는 사람이 전체 봉급생활자의 50.7%(643만8천명)고, 과표가 0~1천만원인 사람이 29.7%(377만7천명), 과표가 1천만~4천만원인 사람이 17.6%(224만2천명), 과표가 4천만~8천만원인 사람이 1.6%(20만8천명), 8천만원 초과가 0.3%(4만1천명)이라고 한다. 과표 0원이면 연봉 기준으로 대략 2000만~2500만원, 과표 1천만원이면 연봉 기준 대략 3000만~3500만원 정도다. 그런데 연봉 2000만~2500만원도 못 받는 사람이 전체 봉급생활자의 절반이나 되고, 연봉 3000만~3500만원 이하인 사람을 합하면, 80.4%로 봉급생활자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근로소득 상위 20%일 뿐 봉급생활자, 자영업자를 통틀어 가구당 소득이 상위 20%에 들어가려면, 연간 6855만원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상위 20% 월급쟁이’와 ‘상위 20% 가구’는 엄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여하간 월급쟁이 상위 20% 내에서도 소득구간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건 과표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누진세율 체계로 인해 세율을 동일하게 올리면 소득이 높을수록 자기소득 대비 부담은 더 커지는 게 상식이다. 과표 1천만원 이상이 근로소득자의 19.5%이고, 이들이 근로소득세의 93%를 부담하고 있다. 더 세분화해서 살펴보면 과표 8천만원 초과인 인원이 0.3% 밖에 안 되지만, 이들이 근로소득세의 19.3%를 내고, 과표 4천만~8천만원인 인원이 1.6%인데, 이들이 21.0%를 부담한다. 상위 1.9%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40.3%를 내는 셈이다.


여하간 월급쟁이 대부분에게 세금폭탄을 투하한다는 일각의 분개는 좀 지나친 감이 있다. 오히려 일부에게 집중될 세금폭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민생과 직결되는 세금 정책에 있어서 자신들의 편을 부러 늘려서 논쟁을 유리하게 끌어오는 건 떳떳한 자세가 아니다. 아울러 미온적인 특수직연금 개혁에 대한 의구심이 국민연금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듯이 전문직,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세금탈루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세금 문제만큼은 ‘계급의식’에 철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과세표준에 따라 나뉘는 계급이라 통상적 의미의 계급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증세든 감세든 세금 논쟁은 산수도 좀 살펴가며 꼼꼼하게 해나가야겠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단대표님이 지난 2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제안했듯이 민노당의 부유세, 열린우리당의 공평과세론, 한나라당의 감세론 등 각 당의 세제방안을 놓고 정직하게 토론하고 정책 경쟁을 하길 바란다. 세금은 선동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 [無棄]


* 권태호 기자님의 “‘세금폭탄’의 진실…난 상위 20%에 포함될까(한겨레신문. 2006. 03. 30.)?”를 거의 베껴오다시피 했음을 밝힌다.
Posted by 익구
:
국민연금 문제 해결은 “더 내고 덜 받기”를 실천하기만 되는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 개혁법안은 그렇게 단순하게 넘어가기에는 차이점이 많다. 여당의 개혁안은 현행 60%인 급여율을 2008년부터 50%로 10% 포인트 낮추고, 보험료율은 지금처럼 9%를 유지하되 2008년 이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65살 이상 전체 노인 중 65%에게 7만원에서 10만원을 차등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기초연금제를 상당부분 도입하기는 했지만 각 당의 입장 차는 그리 쉽게 봉합될 거 같지 않다. 1990년대 초 스웨덴 총선에서 연금개혁을 주도한 집권당이 참패한 사례 등을 봐도 국민들의 인기를 얻기 힘든 이 폭탄을 선뜻 품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님은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보고서’를 통해 “보험료율을 더 올리고 급여율을 낮추는 재정안정화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보험료율을 올리고 급여율을 내리는 동시에 빈곤 고령층에게 국가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공적부조를 제공하자는 보건복지부의 새로운 절충안”은 재원조달 등이 불투명한 야당의 전면적인 기초연금제 도입에 견주어 점진적 개혁안으로 평가된다. 적어도 이 수준이나마 고쳐서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를 조속히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초연금제도는 분명 매력적인 제도지만 현실적으로 돈이 너무 많이 든다. 특히 재원을 조세로 하는 조세방식 기초연금은 스웨덴, 핀란드 등 복지정책이 탁월한 나라들도 축소개편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성장과 저출산, 고령화로 말미암아 조세방식 기초연금을 유지하는 비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안은 기초연금제와 소득비례연금을 분리하는 2층 구조다. 기초연금 재원은 조세로 충당하고 소득비례연금은 보험료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조세에 의한 재원조달이 불가피한 만큼 보험료와 조세의 비율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열린우리당안이 야당 등에서 주장하는 기초연금 제도를 경로연금 확대로 부분적으로 수용하기는 했지만 기초연금의 취지를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초노령연금을 낮은 수준의 기초연금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당장 2조 7천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제대로 된 기초연금을 시행하려면 그 이상이 될 것은 자명하다.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쓰는 등의 다양한 제안들이 있지만 급격한 고령화사회를 겪는 우리가 기초연금제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를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의 15%보다 높은 20% 급여율의 기초연금제를 제안한다. 이 기초연금은 2006년에 급여율 9%(14만원)로 시작, 2028년에 20%에 도달한다. 높은 기초연금액을 마다할 사람은 없으나 재원방안이 아직 명쾌하게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감세를 주장해온 한나라당이니 만큼 보다 명확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기왕 감세를 추진한다면 감세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세수 감소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과 어떤 차이가 나는 것인지, 재정 적자에 대한 대비책은 있는 것인지, 단기적 경기부양으로 그칠 염려는 없는 것인지, 감세혜택이 부유층에만 집중될 소지는 없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할 것이다. 정부나 여당이 국민연금제도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에 비해 제1야당의 움직임이 그리 민첩하지 못한 거 같아서 해보는 소리다.


아울러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기존 가입자의 급여율과 보험료율 조정 문제에서 시야를 넓혀 미가입자들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등 특수직연금도 고통을 분담하는 동반 개혁이 있어야 한다. 비록 그네들이 강고한 이익집단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진 요인에는 미진한 공무원연금 개혁 등이 크게 작용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자영업자들에 대한 소득 파악도 보다 정교하게 해서 국민연금의 형평성을 높이고,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한나라당 등에서 주장하는 소득비례연금은 소득에 비례해서 받게 되므로 소득을 파악하기가 원활해지는 측면이 있다).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는 국민연금만으로 고령빈곤 문제를 해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복지후생을 전적으로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보다 섬세한 논쟁을 통해 미래세대의 희생을 줄여나가는 사회적 계약이 필요하다. 만약 기초연금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당장의 재원 확보 방안이 없다면 기초연금의 대상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본다. 상위 20%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않으며, 부부가 동시에 기초연금을 받을 경우 일부를 감액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민주노동당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 여당의 국민연금 재정안정화에 대한 문제의식도 타당하고, 야당 등의 기초연금제 주장도 경청할 점이 많다. 과연 우리의 대리인들은 얼마나 멋진 ‘가능성의 예술’을 선보여줄까? 부디 눌언민행(訥言敏行) 하기를! - [無棄]
Posted by 익구
:
061030
지난 토요일 추미애 전 의원님의 파워인터뷰를 시청했다. 일전에 고종석 선생님은 그를 “그는 기존 지지자들을 내침으로써 새 지지자를 얻겠다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정치공학에 가담하지 않은 원칙주의자로 남았고, 그 결과 민주화 시동 이후 가장 뻔뻔한 정권으로부터 비껴 서 있게 됐다”고 평했다. 추 전 의원님 스스로도 “특정 지역의 뺨을 때려서 다른 지역의 표를 얻겠다는 발상이 정의롭지 않다”며 자신이 권력 따라 나가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추 전 의원님이 마냥 그리 떳떳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부산신당으로 몰아세우며 현란한 호남지역주의 언사를 늘어놓았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추 전 의원님이 비록 권력의 달콤함에는 멀어져 있었을지는 몰라도 구민주당 말기의 그 역겨웠던 부패와 한계에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민주당의 몰골이 그 시기 때보다 별반 나아진 거 같아 보이지 않는다. 기왕 민주당원으로 남겠다고 선언한 이상 통합 운운하기 전에 제 식구들의 흐트러진 행태부터 바로 잡는데 진력해줬으면 좋겠다.

장영달 열린우리당 의원님이 “열린우리당의 출범이 원죄라고 생각하는 창당 인사가 있다면 차라리 탈당하고 정계에서 은퇴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일갈한 데 동감한다. “우리당의 위기는 17대 총선 이후 정부와 당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국민의 신임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된 것이지 열린우리당의 출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분당에서 비롯된 것이 결코 아니다”는 주장이 참 반갑다. 사실 분당의 리스크가 아주 없었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제3당을 감수한 국회의원 47명의 자기희생적 결단은 국민들에게 적잖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가진 게 적어도 희망이 충만했던 지난날과 견주어 오늘날 여권에서 나오는 통합 논의는 얼마나 너저분한가. 자기희생적 감동은 보이지 않고 그토록 결별하려고 애쓴 지역주의와 결합하는 모습이 얼마나 슬픈가. 추 전 의원님을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내지 못하고 다시금 반동의 격랑에 휩쓸리게 한 게 열린우리당이 역사적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람이 매서울 때 비로소 꼿꼿한 풀을 알아보게 된다(疾風知勁草)”고 했다. 과연 다시금 등장한 리트머스 시험지에 내 대리인들은 어떤 색깔을 보여줄까?


061031
몇 달 전 백낙청 교수님의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최장집 교수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읽고 내 사상의 지평이 넓어진 듯한 착각에 빠진 적이 있었다. 고작 책 두 권을 읽고 유식해졌다고 자화자찬에 빠질 정도로 두 분의 글은 매혹적이었고 배울 점이 많았다. 혹자들은 두 진보진영 지성 간의 논쟁이라고 싸움 구경을 유도하기도 했으나 사실 그 정도의 불꽃은 튀지 않은 거 같다. 최 교수님이 문제 분석에 탁견을 보이셨다면 백 교수님은 대안 제시에 설득력을 더했다. 문제 파악과 해법 모색을 각기 다른 분의 손을 들어주다니 내 지적 분열(?)이 우습다.^^;

통일문제와 계급문제를 어떻게 분리하고 어디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지 아직 감이 잘 안 오기 때문에 그런 두루뭉술한 양시론을 펼치는지 모르겠다. 일전에 박현채 선생님께서는 1980년대 변혁운동의 두 가지 이론적 경향을 두고 "PD적 입장에 서지 않은 NL의 비계급성은 허구이며 PD 역시 민족해방의 과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시기도 한 만큼 나의 어정쩡한 태도도 마냥 구박받을 일을 아닐 게다.^^; 아직 공부가 부족하니 이런 직관적 판단이 아닌 좀 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논리를 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최 교수님은 NL(민족해방)-PD(민중민주)의 두 구성요소가 분리되고 PD적 문제의식이 약화 또는 소진된 것을 문제로 지적하신다. 이 대목에서 신자유주의가 절제 없이 창궐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또한 “NL은 PD적 요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하나의 민족주의로 전락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하시며 민족주의적 정서로 민중 문제를 무마하는 걸 경계하신다. 반면 백낙청 교수님은 BD(부르주아민주주의)라는 제3자를 제시하신다. NL, PD, BD의 3자 결합을 통한 변혁적 중도주의가 그것이다. 물론 민족통일을 중시하는 자주파인 NL, 노동자 농민의 권익을 중시하는 평등파인 PD, 개량주의 시민운동 및 온건개혁세력인 BD가 매끄럽게 융합하는 건 무척 까다로운 과제다. 신자유주의의 가속화에 대한 NL, PD와 BD는 적잖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고, 남북관계의 경색에 관해 NL과 PD, BD는 저마다 상이한 행보를 보이는 듯하다.

BD는 하나의 단일한 세력으로 보기 힘들 만큼 다채로워 정리하기가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자칭 개혁정당이라는 열린우리당의 현란한 잡탕 퍼레이드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 일단 논의를 미루고 NL과 PD에 대해 살펴보자. 학생운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나이지만 1990년대 들어 동구권 몰락과 궤를 같이해 PD계열이 쇠락하고 민족, 통일문제로 파고든 NL계열이 학생운동을 주도하게 되었음을 대강 알고 있다. NL계열이 시대정신의 일부를 부여잡은 건 환영할 일이다. 그네들의 전략적 유연성도 한 몫 했을 게다. 하지만 NL계열의 그늘은 그 빛만큼이나 짙다.

이번 북핵 사태와 관련해서 민주노동당 내에서 NL과 PD 진영 간 내홍을 살펴봤을 때 NL계열은 조금 험하게 말해 감상적인 민족주의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아무리 민노당이 정파연합정당이라고 하지만 이쯤 되면 좀 지나친 거 같다. NL계열이 진보가 되는 인플레이션이 있다는 게 한국 정치 낙후성의 한 사례일 듯싶다. NL과 PD가 아름답게 결별하기에는 상황이 엄혹하다는 것도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런 측면을 가열차게 비판하던 사회당이 번번이 제도권 진출에 실패한 것이 이 대목에서 아쉽다. 진보정당을 민주노동당이 과대 대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야 기존 보수정당들의 이합집산과 철새 행진이 더 짜증스럽지만.

최근 공안정국이 형성되어 매카시즘이 횡행하고 있지만, 나는 남 욕하기를 그치고 차분히 BD계열의 단점을 곱씹어 봐야겠다. BD의 강점을 일부 정치 자영업자들이 휘두르게 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3자 결합 이전에 BD 스스로 자신을 추스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구기득권에 포획된 압도적 보수화의 물결에 맞서기 위해서는 저마다 제 약점을 고쳐나가려는 혁신이 필요하다.


061101
아침부터 “좌익이 판치는 세상”, “다시는 재야를 뽑지 말아야...”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무실에서야 귀머거리 겸 벙어리로 지내기로 철칙을 세운 터라 그러려니 늘 듣던 소리지만 오늘따라 살짝 귀에 거슬렸다. 몇몇 어른들이 공부도 안한 운동권을 질책할 때 나는 공부를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을 가늠해본다. 386세대의 오만과 독선을 지적할 때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불의와 너그럽던 세태와 결별하려 했던 이들을 후하게 평가한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놓으라는 게 대중의 마음이라고 야속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권좌에 오른 386들은 마땅히 그런 요구에 부응할 책무가 있다. 관자에는 “반드시 백성을 먼저 부유하게 만들고 나서 이를 다스린다(必先富民, 硏後治之)”는 구절이 나온다. 국민이 스스로 자꾸 궁핍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정부나 국회는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모델과는 다른 방식으로 국민들이 호의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전에 백낙청 교수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라고 지적하셨다.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민주화세력도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이 신선하다. 산업화세력의 경제발전 방식은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살린 민주화세력이 크게 공헌했다는 견해에 상당 부분 동감한다. 실상 박정희의 절제를 기대하는 것보다 민주화세력의 견제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었음을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실물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은 여간 수고로운 게 아니지만 386세대가 이 부분만 좀 더 보강한다면 시대정신을 다시금 부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여하간 좌익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이렇게 행복하게 잘만 사는 나로서는 어르신들도 조금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는 외람된 생각을 품어봤다. 박정희에 보여준 너그러움의 절반을 386세대로 표상되는 민주화 세력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것은 은연중에 그네들에게 진 빚을 보답하는 작은 정성이기도 하다. 향수 속에 빠져 살기보다는 오늘날 만개한 가능성에 희망을 투자해주시는 게 더 밝고 재미날 것이다. 또 그것이 남이 아닌 자신의 머리로 궁리하는 길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얼마나 내 머리를 써서 살고 있는 걸까?


061102
본래 이번 한 주는 한자공부에 올인하고자 했다. 올인이 단순히 시간을 많이 투하한다는 의미라면 나는 올인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효율성(Efficiency)과 효과성(Effectiveness)을 포함한다면 좀 복잡해진다. 효율성이란 투입에 대한 산출의 비율을 말한다. 1시간 공부해서 200자 외우는 것보다 300자 외우는 게 더 효율적이다. 효과성이란 미리 설정해 놓은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느냐는 것이다. 산출물이 목표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다주는지를 파악하는 개념이다. 간단히 목표 달성률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효율성과 효과성이 함께 발현되면야 좋겠지만, 효율적으로 정책을 수행했음에도 효과가 낮은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가령 혼잡통행료 징수로 늘 막히던 A도로가 한산해졌다고 가정하자. 세수 증대도 되니 일견 효율성이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차들이 우회하여 B도로에 교통량이 집중된다면 교통량의 적절한 분산이라는 정책 목표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해 효과성은 낮을 수 있는 것이다.

여하간 내 한자 공부는 효율성이 너무 낮다. 시험 유형에 최적화하여 공부를 해도 모자랄 판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심화학습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취미생활 겸해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해도 기왕 시작한 거 자격증 획득을 주목표로 해야 하는데 합격가능성이 흐릿해서 그런지 오히려 샛길로 빠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국의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이 도입한 X-효율성 이론에 따르면 조직 운영의 효율성이나 개인의 열성이 경제적 성과의 차이에 더 크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흥이 나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면 X-효율성이 높고, 억지로 눈치 보며 일하면 X-비효율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라도 수험 공부의 취지를 벗어나 시험에 안 나올 부분에 천착한다면 X-효율성의 요건을 가지고도 X-비효율성을 발생시키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가령 고사성어 공부를 하는데 호기심을 못 이기고 고사성어의 출전을 찾아 헤매는 내 행태가 바로 기형적인(?) X-비효율성이다. 물론 효율성은 떨어져도 한자 공부의 깊이와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효과성은 제법 신장했다고 변명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목표가 한자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아닌 합격에 있다면 효과성도 ‘영 아니올시다’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한자 공부 이외의 영역에도 손을 뻗친다는 데 있다.^^; 가령 博而不精(박이부정)이라는 한자성어를 접했다고 하자. 여러 방면으로 널리 아나 정통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독서에 있어서 정독(精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양주동 선생님의 수필 『면학의 서』에는 다독(多讀)이냐 정독(精讀)을 논하며 “'박이정(博而精)' 석 자를 표어(標語)로 삼아야 하겠다”는 대목이 나온다. “'박(博)'과 '정(精)'은 차라리 변증법적(辨證法的)으로 통일되어야 할 것―아니, 우리는 양자(兩者)의 개념(槪念)을 궁극적(窮極的)으로 초극(超克)하여야 할 것”이라는 대목에 맞장구를 치다가 양주동 선생님의 다른 수필을 찾아보며 양주동 문체의 맛에 흠뻑 빠져버린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수필 가운데 인상 깊었던 김소운 선생님의 『피딴문답』을 찾아본다. 썩지도 않고 병아리가 되지도 않고 피딴으로 화생(化生)함의 교훈을 다시금 곱씹다가 정신이 번쩍 든다. 博而不精을 익히다가 30분이 지나버렸다. 맙소사!


061103
11월 3일은 1929년 광주지역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전국의 학생들이 독립운동을 한 지 77년이 되는 날이다. 올해부터는 ‘학생의 날’에서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명칭도 바뀌고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이로써 학생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밝히고, 제대로 기념할 수 있어서 반갑다. 문득 고등학교 교지편집부 시절 학교 축제 기간에 학생의 날의 의의 등을 묻는 앙케트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만 해도 유명무실한 날에 불과했는데 올해 명칭 변경과 국가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이 날의 정신을 되새기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3월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님이 발의한 학생인권법 개정안에는 체벌 금지, 두발 자유화 법제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법안을 면밀히 검토해보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의 권익을 보다 향상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별 학교와 선생님들의 재량을 줄이는 게 마냥 옳은 일은 아니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동감하는 수준의 내용이라면 법제화를 통해 학생들의 권익 보호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요즘 아침 전철을 타면 머리가 긴 중고등학생을 많이 볼 수 있다. 모범생 원리주의자(?)였던 나는 학창시절 내내 거의 2주에 한번 꼴로 머리를 잘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동안 단 한번도 지각을 안 하고, 단 한번도 두발검사에 걸리지 않는 게 모범생 원리주의자로서의 내 화려한(?) 이력이다. 다만 어이없게도 평소에 안하던 손톱 검사를 하는 바람에 허를 찔려서 용의 검사 무적발 신화는 깨졌지만 말이다.^^; 여하간 나는 지금도 머리 기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조금 길렀다 싶어도 싹둑싹둑 잘라버린다. 나처럼 머리 모습에는 무심한 녀석에게 머리를 기르라고 강요한다면 그것도 참 고역일 게다. 여하간 두발 자유화를 실시하는 학교가 늘어간다는 건 우리 사회의 미시적 진보의 하나로 받아들여도 좋을 거 같다. 개인의 자유 영역이 늘어나는 것이 진보의 요체가 아닌가. 머리카락 길이와 학업성취도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별로 있지도 않았지만 시도한다고 해도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혹시 두발 자유화로 인해 외모만 신경 쓰다가 학업을 소홀히 할까 염려하기 전에 자유에 대한 책임의식을 키우지 못한 우리 교육의 초라한 몰골을 돌아봐야 한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고 했으니 제발 강제 이발만은 하지 말자.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의 주고객(?)은 아니지만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더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학생, 시시한 실천을 게을리 하지 않는 학생이 되기를 다짐해본다.


061104
한국어문회에서 주관하는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을 쳤다. 이번에는 시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무던 애를 썼다. 가채점 결과 35개~40개 정도 틀린 걸로 예상된다. 200문제 가운데 80% 이상을 득점해야 하는 만큼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내 목표(?)였던 161개 맞아 합격하기에 거의 근접하긴 했다.^^; 이번에도 화려한 오답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胡蝶(호접)을 “호랑나비”로 풀이했는데 그냥 나비라고 써야 하는 건지 솔직히 몰랐다. “나비 접”자에 이미 나비의 뜻이 다 들어 있어서 무언가 수식어를 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장자의 호접몽이 호랑나비가 아닌 그냥 나비였다는 걸 잘 알면서 헛갈렸다. 푸하하~ 내가 채점위원이라면 안쓰러워하며 가위표를 할 거 같다.^^; 엎어진 수레바퀴라는 뜻으로, 앞서 가던 사람이 실패한 자취를 이르는 말인 복철(覆轍)은 앞사람의 교훈으로 풀이했다. 실패라는 말을 안 써서 틀렸다고 해도 변명할 거리는 없다. 매우 적은 분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호리(毫釐)는 정말 처음 보는 단어라 그냥 비워두려다가 작은 곳을 다스림이라는 나도 믿지 않는 답을 써넣었다.^^;

한자어 쓰기 문제는 내 나름대로 가장 정성을 들인 분야라 생각보다 틀린 게 적었다. 疏忽(소홀), 期數(기수), 煩雜(번잡) 정도만 확실히 틀렸고, 태반은 아직 가부를 모르겠다. “이 한자들의 태반은 신조 한자어의 약어이다”라는 부분인데 반수 이상이라는 뜻의 “태반(太半)”과 거의 절반이라는 뜻의 “태반(殆半)” 가운데 나는 전자인 太半을 썼는데 문맥을 볼 때 크게 틀린 거 같지는 않지만 어문회 시험은 문제와 답안을 공개하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어려운 문제가 많은 동음이의어 문제는 잔실수가 많았다. 公募(공모), 장사(壯士), 葬事(장사) 같이 아깝게 틀린 문제가 많았다. 한자어 쓰기 문제는 연습을 많이 했다 보니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응용할 생각은 안 하고 머리가 하얘지는 부작용이 나오지 뭔가.^^; 유의어 쓰기 문제도 역시 신유형의 향연이었는데 “銓( )”이라는 문제에서 “저울질할 전”이라는 단어 때문에 저울의 뜻을 가진 “秤”이라고 썼는데 “저울대 형”인 “衡”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입시 전형 등에서 쓰이는 전형은 됨됨이나 재능 따위를 가려 뽑는다는 뜻이니 이 정답에 기꺼이 승복한다. 彌縫策(미봉책)의 유의어인 姑息策(고식책)은 “姑”가 도무지 생각이 안나 “枯”라고 썼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고식지계에 대한 시험문제가 나왔을 때 틀린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도 또 틀렸다.^^; 姑에 시어미라는 뜻 말고 잠시, 조금동안이라는 뜻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정말 난생 처음 보는 단어가 있었는데 거동궤 서동문(車同軌 書同文)이 그것이다. 여러 지방의 수레의 너비를 같게 하고 글은 같은 글자를 쓰게 한다는 뜻으로, 천하가 통일된 상태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좋은 거 배운 거 같다. 사자성어 문제에는 예측 못한 어려운 성어들이 많이 나왔다. 목불식정(目不識丁)과 비슷한 뜻으로 어(魚) 자와 노(魯) 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어로불변(魚魯不辨)은 시험 시간 내내 떠오르지 않다가 시험을 마치고 근처 헌책방을 향하는 길에서 떠올랐다. 역시 산책은 두뇌 향상에 도움이 된다.^^; 소를 마주 대하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깊은 이치를 말해 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므로 아무 소용이 없다는 “대우탄금(對牛彈琴)”은 나중에 악용(?)할 소지가 있어서 너무 담아두고 있지는 말아야겠다.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이 눈이 녹으면 없어진다는 뜻으로 인생의 자취가 눈 녹듯이 사라져 무상함을 일컫는“설니홍조(雪泥鴻爪)”는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아쉽다. 초로(草露)와 같은 인생을 이렇게도 근사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다. 여하간 이런저런 오답들이 있었지만 이 참에 많이 배웠으니 설령 159개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다. 물론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시험 마치고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 다녀왔다가 청원이 등을 만나러 노원으로 향했다. 청원이가 하도 청해서 심야영화로 타짜를 봤다. 평경장의 명연기에 매료되었고 이제 내가 좋아하는 배우에 백윤식이라는 이름도 써넣어야 할 거 같다. 타짜가 말하고자 하는 건 결국 설니홍조(雪泥鴻爪)가 아니었을까.


061105
토요일 밤에 심야영화를 본 관계로 노원역부터 집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물귀신 작전으로 청원이를 하계역까지 함께 걷게 했다. 범여권의 정계개편 이야기가 좀 나왔는데 나는 행정학의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인 정치 행정 이원화 등에 대한 이야기로 한참을 에둘러 갔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간 뒤에 나는 여권내 통합신당파의 논리는 동서 구도 부활이 아니겠냐며 조심스레 말했다. 오늘자 프레시안에서 임경구 기자님은 “'DJ의 호남'과 '盧의 영남'이 충돌할 때”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영남 중심주의'와 '호남 우선주의' 간의 뿌리 깊은 반목을 진단했다. 나도 결국 생후 5개월 간 살았던 대구의 지세(?)에 눌려 영남 중심주의자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열린우리당의 창당 정신은 그만큼 아름다웠다. 우리당의 원내 1당은 단순히 탄핵 역풍에 그치기보다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극복을 내건 그네들의 희망에 적잖은 유권자가 꿈을 투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당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졸지에 이상과 명분에 집착하는 고루한 집단이 되어버렸지만 3년 만에 자신들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허무는 모습은 그리 떳떳하지 못하다. 한번쯤은 당 간판을 걸고 대선이나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정치 도의는커녕 홍익이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경영학도의 제1원칙 중의 하나”인 high risk, high return을 감내하지 못하고 칭얼거리는 꼴이다. 과연 “꼬마 우리당”으로 남아 마지막까지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달게 받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하기야 주인들 수준이 변변치 못한데 대리인들이 빼어나길 바라는 것도 너무 지나친 욕심일수도 있겠다.

노원역에서 집까지 걸으면 보통 걸음으로 50분 정도 걸리는 듯싶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을 실행하기 좋게 그냥 큰길가로 직진만 하면 된다. 다음날 일정 부담이 없다면 종종 이렇게 걸어다녀 봐야겠다.

Posted by 익구
:

고구려 사극의 진실?

문화 2006. 11. 5. 23:23 |

요즘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 한창입니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은 고구려의 탄생, 고구려의 마지막 전성기, 고구려의 패망과 이어지는 부흥을 그려내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료가 부족하다 보니 역사왜곡의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 봐도 우리나라 고대사 사료는 정말 너무 적거든요. 김부식의 <삼국사기> 열전은 그보다 천년 전에 쓰인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비해 그 양도 1/10에 못 미칠뿐더러 그 질도 변변치 못하거든요. 우리 국사 교과서 초기 국가편의 부여, 옥저, 동예니 하는 나라들의 기록은 진수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그대로 베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자료가 적은 고대사이니 만큼 상상력을 가미한 해석이 많이 필요합니다. 고대사 부분은 정설과 통설이 가장 적다고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죠.


몇 가지 지적해보겠습니다. <주몽>에서 소서노와 주몽의 애틋한 로맨스는 역사적 사실과는 크게 다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에는 주몽이 소서노와 결혼할 때 이미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이 딸린 과부라는 설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편찬자는 백제의 시조를 온조왕설과 비류왕설 등을 기록하며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하간 적어도 소서노와 주몽의 사랑은 주몽이 북부여를 나와 졸본부여에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할 때 비로소 싹튼 것이지요. 소서노는 졸본지역 족장의 딸로서 주몽의 건국사업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소서노는 주몽의 첫 부인 예씨의 아들 유리가 태자로 책봉되고 주몽이 죽은 뒤 비류, 온조 두 아들과 함께 남하해 백제를 세우게 됩니다. 어찌 보면 남편을 고구려 시조로, 아들을 백제 시조로 만든 한국사의 여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략결혼에 시달린 가련한 여인일지도 모릅니다. 아참 슬프게도 우리들의 단세포 왕자 영포는 사료에는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라는 점도 밝혀야겠군요. 금와왕에게는 대소를 비롯한 일곱 아들이 있다고만 전해집니다.


이 밖에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종합하면 부여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2개 이상의 부여가 존재했다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라고 합니다. 북부여와 동부여의 구분이 매우 어지럽습니다. 금와왕은 해모수가 부여에 자신의 나라를 세움에 따라 동부여로 옮겨간 해부루의 양자였기 때문에 드라마에서처럼 진한 우정을 나누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몽은 동부여 금와왕 밑에 있다가 독립했다고도 하지만 광개토태왕비와 모두루묘지에는 주몽이 북부여로부터 나왔다고 말합니다. 알쏭달쏭하지요?^^; 더 놀라운 것은 <삼국유사>에는 해부루가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족보가 난리가 납니다. 졸지에 해모수는 금와왕의 할아버지가 되어 버리고 유화부인은 금와왕의 할머니뻘이 되며, 주몽은 금와왕의 삼촌이 되어버리거든요. 뭐 부여사에 대한 연구가 전무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혼돈으로 보이니 만큼 추후 연구 결과를 주목해봐야겠습니다. 이 밖에도 한사군의 하나인 현토군의 지리적 위치와 정치적 위상에 대한 논란도 치열하다는 점을 부연합니다.


다음으로 <연개소문>과 <대조영>에서 겹치기로 출연하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연개소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두 드라마에서 연개소문과 양만춘의 관계가 사뭇 다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 태종을 패주시킨 안시성 전투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주역인 성주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사료에 없습니다. 조선 후기 송준길과 박지원이 이를 양만춘이라 밝혔지만 우리 학계는 여전히 안시성주라고만 쓰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안시성주 양만춘 장군이라고 쓰고 있다고 하고요. 여하간 두 드라마는 안시상주를 양만춘이라고 호칭합니다. <연개소문>에서는 연개소문의 지휘를 받는 부하장수로, <대조영>에는 군권의 2인자로서 요동 지역을 관할하며 연개소문의 친한 친구 사이로 나옵니다. 하지만 둘 다 사실성은 떨어집니다.


안시성주는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통해 영류왕을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한 것에 반발했습니다. 연개소문은 안시성주를 복속시키려다 실패하고 결국 서로를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연개소문> 도입부에 연개소문을 띄우려는 의도가 지나쳐서 당시로서는 시골 촌구석인 안시성에 연개소문이 전쟁을 직접 지휘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연개소문과 안시성주와의 서먹서먹한 관계를 반추해볼 때, 영류왕과 귀족들을 죽이고 정권을 차지한 연개소문이 평양성을 비우는 위험을 감수하고 안시성까지 온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지는 설정이죠. 당나라와의 혈전을 총지휘한 사람은 어디까지나 연개소문이지만 안시성 전투에 연개소문이 직접 참전하지는 않았다는 게 정설입니다. 이 부분은 <대조영>이 좀 더 현실과 가깝게 그렸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으니 만큼 여기에서 그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에 강한 매력을 느낍니다. 연개소문이 665년에 사망할 때까지 당나라는 고구려를 상대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삼국사기> 연개소문 열전에는 잔인하고 포악한 독재자로 그려져 있지만 그 편찬자들이 이용했던 거의 모든 사료는 자치통감, 북사, 수서, 구당서, 신당서 등 중국 측 자료였습니다. 연개소문에 번번이 패한 중국인들의 증오에 찬 묘사를 그대로 끌어다 쓴 건 김부식을 위시한 삼국사기 편찬자들의 나태라고 구박해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연개소문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4천 년 역사에서 첫째로 꼽을 만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고구려 전통의 호족공화(豪族共和)라는 구제도를 타파하고 정권을 통일”했으며 “서수남진(西守南進) 정책을 변경해 남수서진(南守西進) 정책을 세”워 “당 태종을 격파해 중국 대륙을 공격”했다는 진취적 기상을 높이 평가합니다.


저는 신채호 선생님의 긍정적 평가에 상당 부분 수긍하면서도 연개소문 정권의 한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귀족연립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제도개혁이 아니라 사적 권력기반을 강화하는데 치중하였습니다. 시스템의 개편에 집중하지 않고 1인 개혁에만 몰두함으로써 자신의 사후에 불거질 혼란에 대한 면밀한 준비가 없었지요. 아들들에게 중요한 직책을 수여하고 그들로 하여금 권력을 세습하게 했으며, 태막리지(太莫離支), 태대대로(太大對盧) 등 집권을 위한 관직을 새로 만들어 취임하는 등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추종 세력의 발판을 넓히지 못하고 귀족세력의 반발을 유발한 점도 과오입니다. 665년 연개소문 사후에 벌어진 그의 자식들 간의 골육상쟁은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지한 리더십이 얼마나 허약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결국 연개소문이 죽은지 3년 만에 고구려는 멸망했습니다. 연개소문은 자신이 그토록 지켜내려 애썼던 고구려의 존속을 위해 좀 더 섬세하고 균형적인 지도력을 발휘해야 했지만 이 대목에서는 한계를 보여줬지요.


우리는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의 리더십을 취사선택해서 오늘날에도 발현할 여지가 있는지 살펴야겠습니다. 일세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화려한 업적과 아쉬운 한계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면 과거의 사실(史實)을 재해석하면서 오늘날에 주는 교훈을 거름 삼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숙적이기도 했던 당 태종 이세민은 이 세상에는 구리거울(銅鏡), 사람거울, 역사거울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위징이 병사하자 이세민은 매우 비통해 하며 “사람이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성쇠와 왕조가 바뀌는 이치를 알 수 있으며, 사람으로 거울을 삼으면 자신의 잘잘못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게 되었구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은 얄밉지만 말을 제법 그럴듯하게 하네요.^^; 이 말대로 역사거울에 우리를 자주 비춰봅시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킨 한반도를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사명감도 품어봅시다.


비록 조금 미비한 점이 있더라도 앞으로 이런저런 시기를 다룬 사극이 많이 등장해서 온 국민의 역사적 소양도 넓히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사극 하나 보는 여유 어때요? - [無棄]

Posted by 익구
:

好學日記(06.10.23~06.10.29)

일기 2006. 10. 29. 21:07 |

061023
누리꾼들의 댓글은 날이 갈수록 저열해지는 거 같다. 일전에 나온 통계에 의하면 소수의 악플러들이 댓글을 도배한다고도 하지만 이쯤 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도 너무 심하다. 그래도 드물게나마 재치 있고 논리적인 댓글들이 있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있지만 말이다. 인터넷의 넓어진 저변이 고작 감정의 배설로만 점철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네 지식인들이나 지각 있는 학생들이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인터넷을 선용하도록 견인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양질의 지식을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더 늘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악플 비슷하게 험한 글을 쓴 적이 한 번 있었다(아마 내가 잊어버린 게 몇 번 더 있었을 게다). 최연희 의원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 떠오른다. 2004년에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이 한창일 때 당시 법사위원장이던 최연희는 끈질기게 의사진행을 지연시켰다. 나는 그의 직무유기에 무척 분개했던 모양이다. 최연희라는 인간이 얼마나 시시한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성추행 사건에서 드러났지만 그런 사람의 노력(?)으로 국보법이 좀 더 연명할 수 있게 된 건 화나는 일이다.

나는 최연희씨의 홈페이지에 국보법 폐지를 결코 막지 못하리라고 썼다. 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만이 북한의 폭압정권을 궁극적으로 이기는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아무리 의사봉을 희롱하더라도 인권국가로 가기 위한 흐름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사의 흐름은 일개인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구박했다. 그러자 아래에는 욕설이 섞인 댓글이 달렸다. 그 때는 시국도 시국이었고, 내 뜨거운 성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런 말을 내뱉었다. “누가 누굴 보고 개라고 그러는 건지... 고작 이런 수준의 아해들과 싸워야하니 도저히 질 수가 없구나” 한참 지나고 보니 좀 지나친 말을 한 게 아닌가 싶다. 2년 가까이 지난 옛일을 굳이 떠올리는 건 나 또한 그런 말을 하면서 마음이 편치 못했기 때문일 게다.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악플을 떠올리며 그 거칠음을 반성하면서도 그 때의 정신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나는 함부로 질 수도 없다.


061024
주간한국 [역사 속 여성이야기]란 연재물을 인터넷을 통해 죄다 찾아 읽었다. 처음 알게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 장애를 딛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줄여나갔던 헬렌 켈러, 낮은 사람보다 더 낮은 자세로 가난한 사람 가운데 더 가난한 사람을 찾았던 마더 테레사, 남성 중심의 그리스 사회에 이름을 남김으로써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힘의 원천이 된 대시인 사포, 한나라의 착취에 고통 받던 베트남 사람들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분연히 떨치기 일어나 투쟁한 쯩자매(徵姉妹), 탁월한 인재 등용과 기민한 외교전략으로 삼국통일의 초석을 닦은 선덕여왕, 나치즘의 광기에 저항했던 백장미단 활동을 통해 독일인의 마지막 양심이 된 소피 숄, 제 몸을 버려가며 어렵사리 성사시킨 연구를 조건 없이 개방한 마리 퀴리,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의 황태자비로서 존엄을 잃지 않았던 이방자 여사, 일개인의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했던 호방했던 정치가 클레오파트라 등의 이름들이 찬란하다.

이 밖에도 마가렛 생어, 송경령, 신사임당, 하쳅수트, 예카테리나, 엘리자베스 1세, 메리 스튜어트, 에바 페론, 아가사 크리스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나혜석,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등의 영욕이 스쳐 지나간다. 이 가운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여성은 레이디 고다이버다. 11세기 중엽 잉글랜드 중부의 중공업 도시 코벤트리 주민들은 영주 레오프리크 백작의 가렴주구에 시달렸다. 백작의 아내 고다이버가 남편에게 주민들의 세금을 줄여달라고 거듭 요청하자 남편은 당신이 대낮에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를 한 바퀴 돈다면 세금을 줄여주겠다고 제안한다. 정숙한 백작 부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고다이버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살신성인에 감동한 주민들은 그녀가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채 백마에 올라 마을을 돌 때까지 아무도 거리에 나와 이를 구경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양복재단사 톰이 마을 사람들의 합의를 어기고 커튼을 슬쩍 들추어 엿보려다가 눈이 멀었다는 “엿보는 톰(peeping Tom)”이라는 권선징악적 이야기가 전한다. 이 때 고다이버의 나이 열 여섯이었다고 하는데 유관순 열사나 잔다르크가 연상된다. 이처럼 관습과 상식을 깨는 행동을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고 일컫는데 유능하고 선량한 여성의 고다이버이즘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마더 테레사는 “우리가 하는 일은 넓은 바다의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바닷물은 그 한 방울만큼 모자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처럼 출중한 여성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소진시키지 말고 한 움큼씩 더 발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세상에서 남성이 조금 불편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불편함은 여성들이 누릴 편익에 비하면 적을 게 확실하다. 아! 고다이버! 매력적인 여성이여!


061025
지난 9월 처음처럼 전국 소주시장 점유율이 11.4%, 서울 시장 점유율 21.3%, 수도권 시장 점유율 18.3%을 기록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내 단기 목표인 수도권 시장 20%와 전국 시장 12%의 고지가 보인다. 이런저런 술자리에서 내가 부러 처음처럼을 시킨 게 100병은 될 터이니 나도 적잖은 기여를 한 게 아닌가 자화자찬하고 있다. 참이슬 99병이 나올 때 山소주 1병을 의연하게 비웠던 나였던지라 오히려 처음처럼의 지평이 넓어지니 예전 같이 스릴을 만끽하며 시킬 일은 없어졌다. 개인적으로 처음처럼 맛이 좋다고 말하지만 내가 섬세한 미각을 가진 것도 아니고 실상 거기서 거기고, 결국 심리적 요인이 크다. 처음에는 독점은 소비자 후생을 깎아먹는다는 경제원론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처음처럼 판촉(?)에 열을 올렸는데 요즘은 거의 처음처럼 전도사가 되 버린 듯하다.

문득 <시사저널> 사태가 떠올랐다. 금창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지난 6월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잡지가 나온 뒤 기사가 빠진 것을 알게 된 이윤삼 국장은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내자 금 사장은 이를 즉시 수리했고 뒤이은 기자들의 항의에 무더기 징계로 대응했다. 기자가 고작 27명에 지나지 않는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이번 사태로 경징계 이상을 받은 기자가 무려 17명에 이른다고 한다. 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든, 경영진이 알아서 긴 것이든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언론”이라는 모토를 가진 <시사저널>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사건이다. 아! 시사저널마저 자유를 포기한다면 이 땅은 그만큼 어두워질 게다.

왈쩌(M. Walzer)는 경제 영역의 고유 가치인 부는 경제 영역에, 정치 영역의 고유 가치인 권력은 정치 영역에 머물 때 사회적 평등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즉 하나의 가치가 그 영역 안에서 머무를 때 다원적 평등이라는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왈쩌가 가장 우려한 것은 경제 영역에 머물러야 할 돈이 다른 영역을 장악하는 현상이다. 양식 있는 저널리즘이 자본에 포섭되는 광경을 보는 건 그래서 더 아프다. 왈쩌는 사회적 가치가 독점되는 현상을 전제(tyranny)라고 부르며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자꾸만 늘어가는 이 땅에서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우리네 천민 자본주의는 그칠 줄 몰라서 탈이다.

나는 처음처럼을 지지하듯 시사저널 편집국을 지지한다. 독점은 대개의 경우 악이다. 앞으로도 사회적 가치의 ‘부당한’ 혹은  ‘압도적’  독점에 반대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061026
10.25 재보선에서 전패한 열린우리당이 재창당을 운운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의 “무슨 殘黨잔당 비슷한 분위기”라는 말도 아프지 않다. 당최 한국 정당사에 집권여당이 이렇게 국민들에게 버림받은 사례가 있을까. 아니 세계 다른 나라에서 이런 사례가 있을까 싶다. 불과 3년 전 “100년 동안 집권할 정당을 만들자”고 외치던 이들이 실패를 자인하고 있다. 그간 입만 열면 반성한다고 했으니 더 이상 반성거리를 찾기도 힘들겠다. 기껏 내어놓는 해결책이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오만가지 잡탕 연대다. 딴에는 민주개혁통합이니 중도실용통합이니 평화번영세력이니 하지만 결국 지금 누리고 있는 권력의 달콤함을 연장하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정당정치를 개혁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당이 이념과 정책을 포기하고 다시금 구태로 투항하는 모습이 씁쓸하다.

혹시 열린우리당 관계자들과 참여정부 인사들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이 하는 일은 다 싫다, 설령 좋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이 대신 했으면 좋겠다는 인식이 퍼진 것은 죄 이상의 벌을 받는 것이라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상층부에서 당신네들이 누렸을 자유와 혜택을 생각하면 그 리스크는 마땅히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작금의 마녀사냥이 마냥 옳다는 것은 아니다. 정서적 반발도 유권자의 권리지만 그것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카타르시스만 생산한다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그다지 보탬이 될 거 같지 않다. 때 되면 이합집산을 일삼는 낙후된 한국 정당정치를 목도하는 건 여러모로 짜증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마냥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이 사회의 주인들은 자신의 대리인을 고를 때 좀 더 냉철한 이성의 체와 섬세한 윤리의 체를 이용해야 한다. 민주공화국 수준은 국민 수준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진중권 선생님은 “우리 사회의 희망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야 원칙을 지키며,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는 그 사람들에게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희망의 질만큼이나 양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의 승리지상주의는 수권정당에게는 필요악이다. 이는 자신들이 품은 희망을 실현할 힘을 일정 기간 부여받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원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최소한의 의리와 명분도 없이 그간 품었던 희망마저 헝클어뜨리는 형국이다. 열린우리당의 퇴장이 어떤 식이 될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그들이 내걸었던 헌걸 찬 창당 초심에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 정당에 꿈을 투자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적어도 옛 지지자들이나마 열린우리당의 조종(弔鐘)이 마음 짠해지게 만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3년 전 열린우리당의 등장을 그 누구보다 반겼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드리는 마지막 고언이다.

머잖아 어떤 배반과 반동이 횡행할지 몰라도 가슴 한 구석에 훈훈한 추억이 남는다면 좀 더 잘 버텨낼 수 있을 텐데.


061027
훈석이에게

간만에 찾아간 네 블로그에서 지난 지방선거 끝나고 쓴 글을 발견했다. 너는 한나라당이 “국내 유일의 보수정당”이 되었다고 정리했어. 열린우리당은 “포지셔닝 실패”로 말미암아 “60%에 해당하는 보수표를 전부 한나라에 넘겨 주었다”고 평했고. 나는 포지셔닝의 패착이라는 진단에 거개 동감한다. 사실 열린우리당이 내건 정치개혁이나 지역주의 타파 같은 구호에서 특별히 어떤 이념적 함의를 읽기는 힘드니까. 다만 4대 개혁입법 등을 통해 개혁적 색채를 생색이나마 내려고 부단 애썼음을 알 수 있지. 그나마 가장 빼어난 보수정당이 될만했던 우리당은 의회권력을 쟁취하고서도 오락가락 행보를 선보이며 숱한 이들의 실망을 자아냈어. 나는 지금 우리당의 실덕을 변명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나라당에게 보수정당이라는 칭호를 선사해도 될 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이 땅에 보수를 참칭하는 세력의 상당수가 기실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세련된 논리를 개발하는데 열중해왔다면, 한나라당의 수준은 아직 거기서 머무르고 있지 않을까. 제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키는’ 보수에 이 정당은 얼마나 모자란가. 또한 한나라당의 철벽(?) 지지율의 상당수가 내부 혁신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지역주의 정서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도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 2002년, 2006년 지방선거 광역의원 정당 비례대표 득표율을 살펴보면 한나라당은 2002년 52.1%, 2006년 53.8% 득표로 1.7%P 증가에 그쳤다고 해. 2006년 우리당과 민주당의 득표율을 합치면 2002년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이 얻은 29.1%보다 2.4%P 높은 31.5%가 되고.

뭐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지금 한나라당이 누리는 위세가 우리당과 민주당이 분할로 인한 어부지리임은 간단한 산수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거 같다. 다만 이렇게 충분히 예측 가능한 분당의 리스크를 감수하는 용기를 가지고 우리당 창당에 나선 인물들이 창당 초심을 지켜내지 못한 건 안타까운 일이지. 나는 이 대목에서 퇴행적 지역연합이 다시 꿈틀거릴까봐 불안하다. 다시금 지역에 기반한 정치가 횡행할 때 우리당이 꾸었던 아름다운 꿈이 무참하게 사그라지는 걸 보는 건 참 아플 거 같다. 우리당의 지도자들이 제 지지자들보다 끈기가 부족했다는 게 심원한 비극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어.^^;

나는 마지막으로 이 땅의 주인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하지만 고문기술자 정 아무개를 70% 이상의 지지율로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놓고도 민망함을 모르는 유권자들이 늘어갈 때, 부인의 공천헌금 수수가 드러나자 의원직 사퇴를 운운하던 김 아무개가 슬그머니 국정감사에 참여하고 있는 걸 너그럽게 넘어가는 유권자들이 늘어갈 때 국민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욕하는 정치꾼들에게 다시금 모욕을 당할 게 틀림없다. 한참을 에둘러서 말했지만 “국내 유일의 보수정당”이라는 네 표현은 좀 지나쳤다. 보수라는 칭호는 그렇게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거 같다. 언제쯤 진짜 보수에게 나라살림을 맡겨놓고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을까. 유학생활 건승을 빈다.


061028
열린우리당의 황혼에 대한 분석이 어지럽게 나오고 있는 요 며칠간 그간 부러 외면하던 보수와 진보에 대한 담론들을 찾아 읽어봤다. 훈석이와의 온라인 상에서의 논쟁을 통해 나는 “보수적 유권자”의 상당수는 수구기득권에 포섭된,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지배계급의 이익에 찬동하는 이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우겼다. 나는 친구보다 보수라는 개념을 조금 더 엄격히 적용했다. 이 땅의 자칭 보수들은 공동체의식이나 사회적 책임 의식도 박약하고, 자유와 인권에 대한 애호도 철저하지 못하다. 더군다나 일본 우익처럼 군사적 자주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자기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남에 대한 험담이나 늘어놓으며 약자에게 매서운 주먹을 휘두르는 이들에게 “보수”라는 칭호를 선사해도 될지 주저된다. 나는 한나라당에게 보수라는 칭호를 주기를 주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유권자들에게 보수라는 칭호를 빼앗기기가 싫다고 말했다. 나는 친구가 “보수”라는 말을 조금 아끼고 누군가에게 건넬 때 머뭇거렸으면 좋겠다고 투정 부렸다.

역사는 그래도 조금씩 진보한다고 믿는 사람에게 종종 찾아오는 역사의 돌아감은 고통스럽다. 결국에는 좀 더 인간적인 사회, 좀 더 인간성이 고양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을 믿지만 그 에둘러서 가는 시기를 감내하기는 여간 따갑다. 그것은 사람의 삶이 단 한번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평생 씨만 뿌리고 수확의 즐거움은 거두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해야 한다면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아무리 점진적인 개혁이 좋지만 적어도 한 시대에게 파종의 의무만 부여하는 사회는 옳지 않다. 그런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 자라는 진보는 그리 튼실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시대정신은 파종의 의무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부패하나 유능한 보수, 깨끗하나 무능한 진보’라는 말은 어폐가 심하다. 우리 사회는 부패하면서 무능하기까지 한 보수에게 시달려 왔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보다는 인간의 경험과 지혜가 축적된 역사에서 배우려는 보수는 점진적인 방법론으로 말미암아 덜 개혁적으로 비춰지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보수주의는 변해서 안 될 것을 지키면서 필요한 변화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그 속도가 조금 느릴지 모르겠으나 갈등비용을 상쇄해나간다는 점에서 더 현실적합적인 개혁이 될 여지도 충만하다. 박호성 서강대 교수님 말씀대로 개혁은 진보적 개혁과 보수적 개혁으로 나눌 수 있다. 보수적 개혁정권인 참여정부나 이를 물어뜯는 세력 모두 그다지 보수 개혁에 유능하지 못했다.

진보가 제시한 어젠다에 반대하기 급급한 보수, 시장만능 외에는 다른 대안을 부지런히 검토하지 않는 보수, 평등이란 요소를 자본주의적 토대에 결합시키려는 가능성을 모색하지 않는 보수,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처한 제약을 생각하고 그네들의 자유를 신장시킬 방안을 고심하지 않는 보수라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수구기득권 세력과 유사 파시즘 세력이 보수를 참칭하며 활보하는 걸 헤프게 받아들이는 보수는 제 고매한 이상을 내던진 굴종에 지나지 않는다.

어제 칭다오맥주와 이과두주를 먹길 잘했다. 덕분에 스트레스가 좀 풀린 거 같다.^^;


061029
한국어문회에서 주관한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 시험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지난 7월 고배를 마시며 한 번만 더 도전해보겠다고 했는데 벌써 덜컥 시험이 다가왔다. 공부량이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배울 거리도 적잖은지라 집중하지 못했다. 시험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그건 바로 벼락치기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남은 닷새가 지나면 당분간 한자 공부를 할 짬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한자를 벼락치기한다는 게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예의는 다하는 것, 그것이 나다운 것일 게다.

Posted by 익구
:

예전에 썼던 50문 50답의 문항을 몇 개 수정하고 최신 답변으로 업데이트 해봤습니다. 평소 익구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셨다면 댓글로 질문해주세요. 성심 성의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글이 익구닷컴 최고의 스크롤의 압박을 자랑할 듯싶은데 이제 이런 긴 글은 정말 자제할게요. 알면 알수록 오히려 할 말이 줄어드는 역설 속에서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일평생 “무지의 안락”과 싸우겠다는 것뿐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인터넷을 배우고 온라인 상에 이런저런 잡글을 쓰기 시작한지 일곱 해입니다. 안 했으면 좋았을 말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런 실수들도 제 성장통이 되고 제 인식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말이 아무리 훌륭하여도 실행되지 않는다면 말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言工無施 不若無言)”는 백사 이항복 선생님의 말씀을 천금처럼 여기고 게으른 심신을 다독여서 꾸준히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익구닷컴 방문객 10만명 돌파에 지대한 공을 세워주신 스팸 로봇님들께 심심한 감사를!


1. 이름(실제...^^)
최익구. 높을 崔자에 날개 翼자에 구할 求자입니다. 이름의 뜻은 “높이 날아서 구하라”라는 거창한 뜻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스스로 호를 지어서 쓰고 있습니다. 평생토록 쓸 호가 정해진 것은 아니니 좀 더 좋은 호가 생각이 난다면 몇 번 더 변경될 여지는 있습니다. 최근에 무기(無棄)라는 자호(自號)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박연이 세종대왕에게 시각장애 악공들의 처우 개선을 요청하며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다(天下無棄人也)”라는 말에서 따왔습니다. 그간 제 자신은 돌아보지도 않고 남을 미워했던 것을 반성하는 의미기도 합니다. 제 미움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 제 옹졸함이 빚어낸 것임을 자각하고, 저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이들에게서도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일전에 드라마 신돈을 즐겨 볼 때 한동안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뒤지며 고려 말기 역사에 빠졌었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저마다 약점이 있는 사람들끼리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약점에 집착하기보다는 장점을 도두보는 노력을 함께 해보고 싶어요. 훌륭한 목수는 버리는 재목이 없고,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으며, 웅숭깊은 스승은 아랫사람에게서 배우며, 부지런한 학생은 자신이 증오하는 것에서도 장점을 취하듯이 말입니다. 편협하거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너그럽고 섬세하며 온유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여하간 제가 지은 호대로 사람이든 꿈이든 원칙이든 제가 맺은 인연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으려고요.


2. 생년월일과 고향

1983년 7월 18일(음력 6월 9일)입니다. 대구에서 태어났는데 가뜩이나 더운 대구이지만 그 때는 더 더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위에 무척 약합니다.^^; 제 명목상 고향인 대구가 이런저런 사건사고로 말미암아 디시인사이드 사건사고갤러리에서 고담 대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었다고 합니다. 배트맨이 활약하던 그 우울한 도시와 대구가 포개지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요.


3. 혈액형
A형입니다. 저는 혈액형 심리학은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누차 강조합니다. 뭐 다들 알면서 농담 삼아 대화의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이상하게 혈액형 운운하는 게 탐탁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혈액형 심리학이 유행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네 가지 혈액형의 분포가 비교적 골고루 나오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의 경우 A : B : O : AB형이 34 : 27 : 28 : 11로 비교적 균등하게 나오는 편입니다. 일본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데 이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서 혈액형 심리학이 성행하고 있지요. A형과 O형의 비율이 압도적인 유럽 나라들에서는 혈액형별 성격유형을 따질 실익이 없으니 말입니다. 여하간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반적인 특성을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바넘효과(Barnum effect)라든가, 혈액형별 성격 유형에 자신을 꿰맞추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같은 것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MBTI 같은 보다 정밀한 성격심리 검사를 해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MBTI심리검사 상으로는 INTJ형, 심리학자 칼 융의 분석 상으로는 내향적 사고형입니다.


4. 장래희망

졸업을 앞둔 중학교 교실의 심드렁한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책이나 주워 읽던 중에 담임 선생님께서 넌지시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장래희망의 뭐냐는 질문에 별 생각 없이 대학 교수라고 말씀 드렸지요. 담임 선생님께서는 분개하시며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면 결국에 나 같은 선생님 정도에 그친다며 1시간 동안 열변을 토해내셨습니다. 당신께서도 소싯적 꿈은 대학 교수였다며 좀 더 큰 꿈을 주문하셨고 귀가 얇았던 저는 그 때의 여파였는지 허풍만 늘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막연히 제 장래희망을 국무총리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둘러대면서 말이죠. 국무총리는 직선 대표가 아니기는 하지만 한번쯤 꿈꿔 볼만한 직업(?)이니까요. 인사청문회법을 통해 임명직 대표인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에 대한 검증이 보다 더 섬세해진 것은 환영할 일이고요. 그만큼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국무위원과 중앙행정기관의 장, 정부위원은 모두 정부조직법에 그 범위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행정부 최고 심의기구인 국무회의는 대통령이 의장, 국무총리가 부의장이 되며 18부 장관 및 기획예산처 장관이 국무위원이 됩니다.

여기서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이 아니라 국무회의 구성원이라고 칭해야 합니다. 따라서 현행 국무회의 구성원은 21명입니다. 여하간 제 장래희망은 국무회의 구성원입니다. 꿈을 위해 매진하다가 제 한계에 맞닥뜨리면 그 때 가서는 정부위원으로 할인(?)하든지 하려고요.^^; 세상사는 자기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일을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잘한다고 해서 그 일이 밥벌이가 잘 되는 것도 아니며, 절실히 원하고 살뜰하게 노력한다고 해서 뜻하는 바를 끝끝내 이루는 것도 아니니까요. 중도에 지쳐 쓰러지고 힘에 부칠 때, 희망과 신념을 위해 한번 오롯이 바치고 난 거기까지가 제 한계라면 안달하지 말고 다른 꿈을 품어볼 생각입니다.^^;


5. 아이디, 뜻, 그리고 만든 이유

인터넷을 쓰기 시작한 초기에는 철학자 칸트를 흠모하여 kant가 들어간 아이디를 쓰다가 제 스스로 호(號)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부터는 호를 따서 아이디를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담혜(澹兮)에서 따온 damhye, 소권(疏權)에서 따온 sogwon, 우약(憂弱)에서 따온 uyak 등이 그것입니다. 요즘에는 어지간하면 liberal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미 가입된 아이디인 경우 생각은 힘이 세다라는 뜻으로 만든 strongthink를 쓰기도 합니다. 아이디가 아닌 별명(닉네임)으로 많이 쓰는 건 새우범생입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에서 영감을 얻은 건데, 대가들 틈에 끼어서 부지런히 새우등 터져 가며 열심히 배우겠다는 제 나름대로의 향학열(向學熱)을 표현한 겁니다.


6. 주량

지난 여름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를 벤치마킹한 “술 술 술 술을 마십시다!” 프로젝트를 통해 내수 경기 진작에 대한 강한 열의를 나타냈습니다. 이 숭고한 취지에 동감하는 분들께서 우리 경제가 도약하는 발판을 함께 마련해 주셨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 트레이드마크를 “릴렉스 롱런(쉬어가며 오래가는)” 음주 대신 “1+α(일단 한 병은 먹는)”음주로 전환했습니다. 『논어』 향당편(鄕黨篇)에 보면 공자는 술을 마시는 데 한도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술에 취해 어지러워지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唯酒無量 不及亂)고 했습니다. 정해진 주량은 없으나 취하지는 않고 기분이 좋은 정도로 그친다는 말입니다.

저는 유주무량과 불급난의 아름다운 결합을 지향하지만 굳이 수치를 제시하자면 1.5 단위 이상을 넘기지 않는 선에서 마시려고 합니다. 즉 소주 1.5병, 맥주 1500cc 이상을 마시는 것을 자제하는 편입니다. 2004년에 사발식 시주 7번 한 이후로 범막걸리 계열의 술은 어지간하면 피합니다.ㅜ.ㅜ 저랑 막걸리나 동동주 마시자고 하면 곤란해요. 제가 좀 덜 가난하거나, 덜 충동구매 했다면 남는 돈으로 포도주를 즐겼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참 그리고 소비자 후생을 필연적으로 깎아먹는 독점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처음처럼 한 병쯤 챙겨주세요.


7. 자신의 성격, 20자평!

이 세상에 한 뼘의 자유라도 넓히고 싶은 자유주의자, more liberal!


8. 나만의 징크스나 콤플렉스

중국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한다는 여섯 살 소년이 뉴스가 된 적이 있다. 그때 한 친구의 말이, 전생에 태어났던 나라의 말은 쉽게 배운다는 것이다. “그럼 난 한국에서만 계속 태어났나 봐. 외국어에 영 젬병이니.” 내가 원통히 뇌까리자 그 친구가 얄밉게 말했다. “넌 사람으로 처음 태어난 거 아닐까?”

황인숙 시인님이 2006년 5월 한국일보에 기고하신 [영어공부]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나는 왜 영어를 이리 못할까?”라고 한탄하면서 쓰신 수필의 일부입니다. 저도 어쩌면 사람으로 처음 태어난 건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영어권에서는 태어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세계화의 거센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하는 제 자신이 측은하지만, 늦게까지 모국어의 속살을 헤집는 녀석으로 남고 싶어요. 비록 국내용 인재에 그치더라도 여전히 글로벌 인재보다 그 수요가 많은 만큼 그 수요에 부응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9. 자신의 이상형은?

제 주제는 파악 못하고 눈이 높은 편입니다. 일단 저보다는 똑똑한 사람이 좋아요. 저보다는 좀 더 재치 있고, 유연하며, 현실감각이 뛰어난 사람도 좋고요. 저보다 나아 보이는 면이 많아야 평생 보고 배울 수 있겠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해서 티격태격 싸울 일이 없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저보다 외국어를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눈물은 아끼되 세상의 서러움에는 눈물 흘리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자리를 신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 눈이 하늘 높이 달렸다고 구박하셔도 달게 받으려고요. 그러나 이상형이라면 모름지기 까다로운 측면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이상형을 그리는 까닭은 그것이 반드시 옳거나 유익해서가 아니라 드물고 찾기 힘들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10.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녹색과 노란색


11. 좋아하는 음식

순두부찌개, 냉면, 제육볶음, 통닭, 참치김밥, 메밀국수, 처음처럼(?)


12. 싫어하는 음식

오이 ㅡ.ㅡ


13. 좋아하는 사람 타입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다는 뜻으로 무기(無棄)라는 호를 지어 쓰고 있는 만큼 기왕이면 모든 사람의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기』 이사열전(李斯列傳)에서 진시황이 다른 나라 출신들을 의심해 모두 국외로 추방하려는 축객령(逐客令)을 내릴 때 초나라 출신 이사는 간축객서(諫逐客書)라는 상소를 올립니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처럼 크게 되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처럼 깊게 되었다(泰山不辭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이라는 이사의 주장에 진시황은 축객령을 철회하고 이사를 중용함으로써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뤄냈습니다.

그래도 굳이 타입을 말하라면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사람”이 참 좋습니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은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언론”이라는 사시(社是) 혹은 모토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2004년 경영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학생회장 인사 시간에 제가 새내기들에게 했던 첫 번째 당부가 “자유를 만끽하시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였기도 합니다.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한다”는 말은 저 같은 자유주의자에게 있어 그 어떤 모토보다 명징한 신념이 아니지 싶어요.

경영학의 비용편익분석에서 영감을 얻어 주어진 자유만큼의 책임을 다했는가하는 자유책임분석(Liberty-Responsibility Analysis)을 생활화하려고요. 회계학적으로 보자면 분개할 때 차변에 얼마만큼의 자유를 쓰면, 대변에는 그만큼의 책임을 기입해야 대차평균의 원리가 맞는 셈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란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4. 좌우명

명언명구 수집이 삶의 한 부분인 저로서는 좌우명 삼고 싶은 말들이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실력 있는 이상주의자가 되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는 말을 패러디한 “지성감인(至誠感人)”  정도가 제가 만들어서 쓰는 것이고 나머지는 다 선현의 말씀을 빌려와 쓰고 있습니다. 몇 개 소개하자면 『도덕경』 2장의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功成而弗居)” 공을 쌓아도 그 공을 주장해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무언가 이룬 것이 있을 때 마치 저만의 공인 것처럼 자랑하지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여조겸의 『동래박의』에 나오는 “군자는 제가 약한 것을 걱정하지 적이 강한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君子憂我之弱 而不憂敵之强)”저는 이 말을 언제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모자람을 인식하자로 받아 들였습니다. 『맹자』의 “스스로 반성해서 정직하다면 천만인이 가로막더라도 나는 갈 것이다(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는 구절도 제게 힘이 됩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의 계원필경(桂苑筆耕) 서문에 보이는 “남이 백을 하면 나는 천을 한다(人百己千)”는 구절은 열심히 살기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원나라 명재상 야율초재가 말씀한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은 하나의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보다 못하고, 새로운 일을 한 가지 하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한 가지 수고를 더는 것보다 못하다(興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도 요즘 저를 흔들고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의 노력으로 진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I may be wrong and you may be right, and by an effort, we may get nearer to the truth)”는 철학자 칼 포퍼의 말씀은 정말 아름답죠. “장기에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며 장기적으로 경제는 균형에 이를 것으로 낙관하던 고전학파 경제학에 신랄한 비판을 한 경제학자 케인즈의 말씀도 여러모로 시사점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저의 2대 선조님인 문헌공 최충 할아버지께서 “선비가 세력으로써 출세하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어렵고, 훌륭한 학문과 행실로써 영달하여야 비로소 경사가 있다(士以勢力進 鮮克有終 以文行達 乃爾有慶)”는 말씀을 새기고 있습니다.

제게 좌우명을 하나만 골라보라고 물으신다면 그 질문은 너무 잔인합니다. 하지만 대외 홍보용으로 하나 정할 필요는 있을 거 같아요.^^;


15.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프로포즈를 한다면 어떻게?

제 역할 모델인 칸트께서는 “진실한 사랑에 빠진 남자는 그 애인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제대로 사랑을 고백하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수줍음이 많아서 프로포즈 같은 건 여러모로 애로가 많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뭔가 그럴듯한 프로포즈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다른 프로포즈가 없어도 좋아하고픈 녀석이 되려고요. 화려한 이벤트보다는 시시한 일상의 실천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16. 요즘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은?

밖에서 놀거나, 일찍 자거나, 인터넷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아서 티비는 잘 챙겨서 보는 편은 아닙니다. 그나마 사극을 즐겨 봅니다. 요즘은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이 무척 재미나던데 개인적으로는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본 [신돈]이 기억에 나네요. [100분 토론]을 비롯한 토론 프로그램이나 온게임넷 스타 경기 중계를 애청합니다.


17. 감명 깊게 읽은 책

중학교 1학년 때 어쩌다가 노자의 『도덕경』을 읽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기막힌 인연이었어요. 어린 마음에 무언가 얽매이지 말고 착하게 살자라는 교훈 정도만 얻었지만... 강박관념과 완벽주의에 시달리던 저에게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것 같습니다. 동양고전 하나 읽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신 분들은 사서(四書)보다 도덕경을 먼저 건드려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곱씹어볼 말들이 무척 많지만 그 가운데 최근 제 마음을 흔든 건 27장의 “그러므로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도와주고, 아무도 버리지 않습니다. 물건을 잘 아끼고, 아무것도 버리지 않습니다. 이를 일러 밝음을 터득함(襲明)이라 합니다(是以聖人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라는 구절입니다. 왕필(王弼)은 주석을 통해 성인은 나아갈 것과 향할 것을 만들어서 진보에 뒤쳐지는 사람들을 못났다고 버리지 않으며, 저절로 그렇게 됨을 도와줄 뿐 새롭게 일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다”라고 풀이합니다. 

노자의 “사람을 버리지 않음”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갈라서 차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모든 사람과 사물을 한결같이 대한다는 점에서 보통사람의 차별주의적 세계관을 뛰어 넘어 선악과 시비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 같아 조금 공허하게 들리기도 하지만요. 그러나 그런 식의 공허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혹은 세속적으로 해석해서 사람을 구제하기를 즐기며, 스스로의 편견으로 말미암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없는 자세로 본다면 얼마든지 실천 덕목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남자』에서도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 “사람에 버릴 사람 없고, 물건에 버릴 물건 없다(人無棄物 物無棄物)”고 말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다시금 제 호인 무기(無棄)가 여기서도 많은 영감을 얻었음을 밝힙니다.

60장의 “작은 생선을 굽듯 해야 한다(若烹小鮮)”는 말도 좋아합니다. 작은 생선을 굽는다며 젓가락으로 헤집고 뒤집기를 반복한다면 생선살이 부서지고 말 겁니다. 가만히 놓아두고 지켜보는 것도 어렵고, 적절한 시점에서 뒤집기는 또 얼마나 어렵습니까. 생선을 은근하게 굽는 마음처럼 어떤 일을 하든지 억지로 쥐어 짜내지 않고, 자연스레 배어나고 스며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약팽소선은 도가적(道家的) 자유주의자를 지향하는 제가 그리는 “억지로 하지 않기에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無爲而無不爲)”의 고요함과 치열함이 아닐까 싶어요. 생선이 새카맣게 탈 때까지 야윔의 고착화를 방관하지도 않고, 노릇노릇 익기도 전에 뒤집으려고 서러운 눈물을 요구하지도 않겠습니다. 전체주의의 젓가락이 생선살을 들쑤시는 것에 맞서고, 인위적인 손길이 센 불로 높여 생선껍질 태우는 데 고개를 젓겠습니다.


18. 자신의 보물 1호(‘자신’을 제외한..^^;)

제 온라인 보금자리인 익구닷컴(www.ikgu.com)입니다. 2003년 7월 개통한 이후 제 잡글들을 틈틈이 모아둔 저의 분신입니다. 요즘 딴에는 공부한답시고 긴 글을 예전처럼 자유로이 쓰지 못할 거 같아서 매일매일 짤막한 일기를 쓰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요. 저란 녀석이 궁금하시면 주저말고 놀러오세요.^-^


19. 가장 행복할 때는? or 가장 행복했던 때는?

중국의 운문선사의 “날마다 좋은날(日日是好日)”이라는 가르침을 생활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노어 루즈벨트(Eleanor Roosvelt)의 명언이 생각납니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that's why they call it the present.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를 선물이라고 부른다”니 정말 멋진 말이에요. 정말 오늘 하루를 선물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그만한 행복이 없겠죠.


20. 타인에게 가장 듣기 좋은 말은? or 듣고 싶은 말은?

“너와 함께 해서 유익했다”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고 싶다” “소중한 인연이다”
저란 녀석과 교류하는 것이 살림살이에 코딱지만큼이라도 보탬이 되고, 쥐꼬리만큼이라도 유쾌해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랜 시간 곁에 두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픈 녀석으로 평가된다면 일개인으로서 그만한 영예가 없겠죠.


21.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빌어먹지 않고 “벌어먹는” 삶을 살고만 있다면 감지덕지겠죠.


22. 거울을 본 후 자신의 생각은?

수염을 기르면 미염공(美髥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일찍 잘까? 술을 줄일까?
슬퍼하지 마라. 거죽은 머잖아 하향평준화 될지니...


23. 최근에 슬프거나 울었던 기억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지한 정당인 열린우리당의 실패가 가슴 아픕니다. 제 지지자들에게서 버림받는 정치인처럼 처량한 것도 없다지만, 자신의 꿈을 투자했던 인물에게서 실망을 느끼는 지지자도 서럽기는 매한가지일 거 같아요. 지난 5월 지방선거가 끝나고 친구네 집에서 밤새도록 통음하다 꺼내든 책에 정현종 선생님의 『대학시절을 향하여』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퀭한 눈으로 읽다가 “우리의 열망과 꿈이 정당한 것이라면 정당한 것일수록 스며드는 아픔도 클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콧잔등이 시큰해졌어요. 술을 더 마셔야 했기 때문에 울지는 않았지만요. 푸하하

저는 3년 전 열린우리당이 창당할 때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달려갈 만한 가능성이 가장 많이 보인다며 추켜세웠습니다. 우리당이 실적이 엉망이라며 아우성인 투자자들을 외면할 때도 솔직히 조금 더 넉넉하게 지켜봐 줬습니다. 저는 어쩌면 이 정당이 너무 많은 기대를 이루어주길 바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잘 살면서 따뜻하기까지 한 나라”에 대한 꿈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청부안민(淸富安民)의 꿈은 독점 불가능하잖아요. 우리당의 실패가 온건 보수 노선, 개혁적 자유주의 노선이 통째로 폐기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제 대책 없는 낙관주의는 케인즈의 유효수요(effective demand) 개념을 빌려 왔습니다 이 실패를 거름 삼아 다시금 괜찮은 보수정당을 꿈꾸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품습니다. 저는 아직 젊은 데 벌써 제가 지향하는 바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려니 섭섭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런 걸 미련이라고 해야 할까요?^^; 노무현 대통령님과 참여정부가 얼마나 더 초라해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네들이 소나기를 맞으며 물러갈 때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동이 옳아서가 아니라 드물기 때문입니다. 아 너무 솔직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네요. 그만큼 여러분들께는 솔직하고 싶어요.^-^


24.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주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미시경제학 공부를 하다가 일반균형분석(general equilibrium analysis)이라는 화두를 얻었는데 이 안목을 선물하고 싶어요. 이건 일방적인 선물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것이겠지만요. 단기간의 부분균형분석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간을 포함해서 서로 연관된 모든 시장들을 함께 분석하는 일반균형분석의 아이디어를 이제야 깨닫다니 제 무식을 고백하는 거 같아 부끄럽네요. 한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른 시장의 균형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가정하는 부분균형분석은 복잡한 경제현실을 단순화함으로써 특정 시장에서 균형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용이하게 분석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각 시장 사이에는 연관성이 존재할 수 있으며, 한 시장의 변화가 다른 시장의 균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두 분석 기법 모두 저마다의 가치와 유용성이 있지만 제게는 일반균형분석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제도를 고쳐나가는 시각이 좀 더 필요할 거 같아요. 지금 당면한 현상 너머의 파급효과와 상호작용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봐야겠습니다. 그것이 좀 더 사회적 후생을 증진시키는 일이 될 거예요. 함께 해요.


25. 꼭 봤으면 하는 영화

영화를 많이 안 봐서 잘 모르겠네요. 유치찬란한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 [오렌지 카운티]를 추천합니다. 국내에서는 영화로 개봉하지 않고 곧바로 비디오로 나온 것 같은데 그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제 별명 가운데 하나가 미스터 빈인데 저는 그런 식의 유치한 영화가 좋아요.^^


2004년 10월 1일 종묘 답사부터 시작된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청자, 불화, 불상, 석탑 같은 고미술 전반으로 확장되더니 이제 문화산업이나 문화정책까지 눈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종묘는 세계문화유산이기 이전에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사진 배경인 종묘 정전(正殿)은 여느 고궁과는 달리 단청을 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사를 위한 건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종묘 정전은 남문에서 보면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나 되는 묘정 월대(月臺, 대궐의 전각 앞에 놓인 섬돌)가 넓게 펼쳐 있지요. 종묘 정전의 웅장함에 몸서리치면서도 허구한 날 죽은 이를 위한 정성을 쏟느라 살아있는 자들의 고통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 우울한 역사가 떠오르네요.

여하간 그럼 다시 이어집니다.^^;


26. 생일날 받고 싶은 선물 리스트!

저는 생일에 그리 대단한 의미를 두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분들의 생일에도 무심한 편이지요. 저는 단순한 생일보다는 개인적인 기념일이 더 크게 다가오거든요. 가령 1월 14일을 사색의 날, 9월 10일을 독서의 날 이런 식으로 기념하는 참 특이한 녀석이지요.^^; 좀 더 첨언하자면 생일보다는 망일(亡日)이 더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요. 여하간 생일 선물은 문화상품권이 좋고 포도주 같은 술 선물도 좋을 거 같아요.


27.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걷는 걸 좋아합니다. 소요(逍遙) 혹은 만보(漫步)라고 할 수 있지요. 가끔 그 정도가 지나쳐서 저랑 문화유산 답사를 가는 친구들은 탈진 답사 모드라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발 운동으로 뇌의 혈류량이 증가하면 뇌도 함께 활성화되어서 좋은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기도 하고요. 오후 4시에 어김없이 시작하는 칸트의 산책을 보며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죠. 또한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란 글을 남기기도 했지요.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내 마음은 언제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제게는 그나마 산보가 최고의 운동인 셈입니다. 이 밖에도 필 받아서 잡글 쓰기, 애견 야니 안마해주기, 온오프라인 헌책방에서 충동구매하기 등이 있습니다.


28. 결혼 후 가족 계획은?

국가적인 저출산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두 명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29. 나는 이럴 때 죽고 싶다

죽고 싶을 때 덜컥 죽는 것은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살아서 행복에 겨워 살면 정말 죽고 싶지 않겠죠. 저는 좀 더 살고 싶은데도 천수를 누린 만큼 어쩔 수 없이 죽으려고요.^^ 일세를 풍미했던 고려 태조 왕건의 붕어가 임박하자 슬퍼하는 신하들에게 웃으며 말하길 “덧없는 생명이란 예로부터 그러한 것이다(浮生,自古然矣)”라고 한 말이 참 감명 깊습니다. 마지막에 이런 멘트 날리면서 그래도 너희들은 열심히 살아라 이렇게 말하고 떠나면 얼마나 뿌듯할까요. 푸하하


30. 친구와 약속, 친구가 오지 않는다면?

고대 타임에 물들어서 솔직히 저도 약속 시간을 자주 늦는 편이라...^^; 대개는 독촉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다리는 편입니다. 제가 남을 기다리게 했던 과오들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죠. 가까운 곳에 서점이 있으면 냉큼 들어가기도 합니다.


31. 지금, 자신의 핸드폰 첫 화면에는 뭐가 써있나요?

익구닷컴 놀러와요


32. 자신의 습관이나 버릇

실내에서 무언가 깊이 생각할 것이 있으면 막대기나 부채 같은 거 하나 들고 왔다갔다하면서 생각합니다. 영화 [어 퓨 굿맨]에서 탐 크루즈가 고심할 때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하죠.


33. 자신의 장점과 단점

제 장점은 “편애하되 편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나 사회적 이슈 등에 있어 제 입장과 주관을 비교적 솔직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외부의 비판을 검토해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반성적 균형(reflective equilibrium)을 늘 새기면서 편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그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제 입맛에 맞는 정보만 골라먹고 듣기 좋은 소리만 귀담아 듣고 제 협량한 경험에 기대어 세상사를 재단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습니다. 동전의 양면을 보려 하고, 그림자까지 파헤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싶은데 참 어렵네요.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단순한 산술평균이 아니라 숙고한 반성의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다는 점이 묘미입니다. 편식하지 않되 편애하겠다는 제 삶의 태도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보다 해볼만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공사 분간도 못하는 흐트러진 녀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공과 사에 대한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고요, 어떤 자원을 배분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편애를 싹 거두고 최대한 공평하게 나누도록 할 자신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불편부당과 무색무취일랑 벗어 던지고 제 생각을 숨기지 않고 말씀드릴 겁니다. 기왕이면 옳은 말,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애쓰되 사심 없이 복선(伏線) 없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를 아껴주시는 분들께 늘 투명하고 거짓 없이 대하는 게 마땅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아 이 사람이라면 허장성세를 부리지 않고 제 깜냥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가며 알콩달콩 성실하게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살겠습니다.

제 단점은 너무 많습니다. 제 구질구질한 생활 태도에서부터 모자란 성품까지 오만가지를 들 수 있겠죠. 일단 제가 너무 재미가 없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오죽하면 제 앞에서 농담 삼아 말도 잘 못하겠다고 하고, 뜬금없이 좌중을 심각하게 몰고 가는 제 보이지 않는 힘(?)에 기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상대방 이야기에 맞장구를 잘 못 쳐주는 데 있는 거 같더라고요. 심오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그 말을 거꾸로 받아들이면 재가 그만큼 쉽게 표현하지 못하고 에둘러서 말하는 간접화법을 즐기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 누구보다 솔직하겠다면서 직설화법은 최대한 피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 셈입니다. 좀 더 “열려 있고 쉽고 낮은” 후배, 친구, 선배가 되기 위해 한참이나 더 노력해야 할 거 같아요.

국어 교과서에 나온 일석 이희승 선생님의 딸깍발이를 너무 감명 깊게 읽었던지 알게 모르게 딸깍발이를 닮아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정말 딸깍발이 샌님 같이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어요. 딸깍발이 재판관으로 유명한 조무제 전 대법관님은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이 갑자기 옆을 돌아보면 떨어질 수도 있다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한결같은 사람을 저의 제일의 모토로 삼은 이래로 다양한 가치들을 부지런히 키워왔지만 한결같음에 대한 갈구는 그칠 줄 모릅니다. 조지훈 선생님의 「지조론」에 열광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지요.

저의 고지식한 꼬장꼬장함과 고답적인 깐깐함이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는 거 같아서 여간 미안한 게 아닙니다. 일전에 후배들과 함께 엠티 후발대를 가게 된 일이 있는데 표가 모자라서 무임승차를 해야할 처지가 되자 제가 다음 기차를 기다리든가 아예 엠티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시외버스를 타고 엠티 장소로 향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좀 너무 했구나 싶어요. 여하간 제 개인적 의리와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쓸데없는 원칙주의를 고수하거나 별 다른 이유가 없을 때는 통상관례를 끔찍이도 아끼는 보수적 태도가 많아서 역시 최씨 고집이라며 지탄받기도 합니다. 『장자』 칙양(則陽)편에는 위(衛)나라 대부인 거백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늘 자신이 딛고 있는 것의 잘잘못을 조회하며 일진월보(日進月步)하는 자세를 칭송하는 내용입니다.

거백옥은 나이 육십에 육십 번 변화했다. 처음에는 옳다고 했던 일도 나중에는 잘못이라고 물리쳤다. 육십 세가 된 지금 옳다고 생각한 것도 실은 59세까지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장차 잘못된 것으로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蘧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 未嘗不始於是之. 而卒詘之以非也. 未知今之所謂是之非五十九非也.

이 말처럼 스스로 돌아봐서 잘못을 했을 때는 깨끗이 인정하고 고칠 줄 아는 자세를 갖추고 싶습니다.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일관성과 유연성을 잘못 섞어서 헝클어진 인생을 살다 갔듯이 저 또한 부단히 경계해서 지인들께 괄목상대(刮目相對)하는 기쁨을 안겨 드리고 싶어요. 아무튼 이렇게 두서없는 횡설수설이 너무 잦다는 점도 제 단점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고 써야 하는데 조바심 때문에 늘어놓기 일쑤지요. 맛깔스런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가득한데 몇 년째 잡글을 쓰면서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제 허술한 글재주도 불쌍한 약점이겠죠. 이토록 모자란 게 많은 녀석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34. 만화책이나 소설책에서 한번 되어봤으면 하는 주인공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짓고 안인회 선생님이 번역한 『폭력에 대항한 양심』이라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 카스텔리오가 되고 싶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려고 평생 노력할 생각입니다. 카스텔리오는 칼뱅 정권이 세르베토를 처형한 사건을 관청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는 칼뱅이 광신적인 독선 때문에 한 인간을 살해하였고, 그와 함께 종교개혁 안에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도 살해해버렸다고 고발합니다.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을 뜻할 뿐이다”라며 당대 최고의 권력자에게 맞선 카스텔리오의 자유로운 양심을 본받고 싶어요. 츠바이크는 다음과 같이 평합니다.

인간의 피를 흘린 것은 언제나 유죄이며, 절대로 세계관을 이유로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진리는 퍼져나가는 것이니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학설도, 어떤 진리도 소리지르고 악쓴다고 더 올바르고 더 참된 것이 되지는 않는다.

다원화된 사회가 될수록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는 그저 다름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저는 유시민 선생님의 표현대로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사상이나 단 한 톨의 진실도 담지 않은 사상은 없”다고 믿습니다. 옳고 그름은 판정 내리기가 비교적 쉽지만, 다름의 문제 앞에서는 선택의 자유를 움켜쥐고는 하염없이 고독해집니다. 실컷 고심해서 내놓은 결론도 남의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편파적이고 자기본위의 주장이기 일쑤니까요. 그러나 자유 정의 진리를 독점하려는 이들에게 맞서고 제 자신도 독점하려는 유혹을 포기하려고 애쓰겠습니다. 고종석 선생님 표현을 빌려 “열정의 사슬을 자유로써 끊어내고, 광신의 진국에 의심의 물을 마구 타는 것”으로 사상의 자유시장을 수호하는 병졸이 되고 싶어요. 여담이지만 머잖아 헌법 개정이 된다면 사상의 자유를 명문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양심의 자유에 포함되는 걸로 애매하게 되어 있거든요.

제가 비겁하고 문약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경계하는데 카스텔리오는 큰 그림자를 드리워줬습니다. 점점 자신은 없어지지만 다시금 다짐합니다. 외로워서 적당히 타협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눈치껏 영악해지더라도 끝끝내 제 영혼마저 팔지 않기를. 지조나 소신도 좋지만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욕심은 얼마나 근원적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구차하게 살지 말기를 또 다짐합니다. 세상을 세련되게 욕하기는 쉽지만 티끌만큼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강자와 기득권의 편을 드는 건 쉽지만 이네들을 거스르기는 두렵습니다. 저는 얼마만큼 늦게까지 제 자리를 지키며 부귀에 누추하게 빌지 않고, 권세에 욕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마음이 약해질 때 저는 카스텔리오를 생각하겠습니다. “한 번 어려움에 부딪쳤다고 졸지에 자기가 지키던 뜻을 버린다면, 선비라고 할 수 없다(若因一困拂而遽喪其所守 則不可謂之士矣)”는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대로 어려울수록 그 사람의 진가가 나온다는 진리를 늘 명심하겠습니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에밀 졸라처럼 “나는 고발한다(J’accuse, 자퀴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5. (남자일 경우) 남자라서 안 좋은 점은?
(여자일 경우) 여자라서 안 좋은 점은

국방색 사회로 말미암아 제 나이 또래 남자들이 군대 문제로 고심해야 하는 지적, 물적 낭비가 너무 아깝습니다. 일전에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병역은 젊은 날의 권리, 병역의 특권을 가진 여러분은 우리의 자랑입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언짢았습니다. 병역은 권리 혹은 특권이 아니라 헌법에 규정된 의무일 뿐이며 모든 국민이 골고루 나누는 사회적 부담일 따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성역이며 이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징병제에 대한 근본적 검토나 부정적 군대문화 청산을 위한 노력은 참 힘든 일이고 대신 여자들이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핀잔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진짜 사나이라면 조금 힘든 이 길이 지름길이며, 옳은 길이라고 믿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개성 있는 청년들이 병역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멋지지만, 징병제가 사라진 나라가 훨씬 더 멋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36. 휴일에는 보통 뭘 하는지?

휴일이면 늦잠을 자는 습관은 좀처럼 고치기 힘듭니다. 제가 흠모하는 칸트의 1/10만이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칸트와 제가 같은 꿈을 품었더라도 이렇게 천지 차이가 나는 것은 결국 자기자신에 대한 관용도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토요일은 사실상 제 개인적인 휴일이라 공부를 한다거나 사무를 처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토요일에는 급박한 시험 공부라도 거의 손에 안 잡혀서 편법으로 금요일 밤에 이은 토요일 새벽과 토요일 밤에 이은 일요일 새벽시간을 이용해왔지요. 이렇게 하면 순수한(?) 토요일은 최소한도로 줄이고 금요일과 일요일을 확장하는 효과를 가져와서 그나마 조금 낫거든요. 요즘도 별일(?) 없으면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시간이 제 달콤한 휴식시간입니다.


37. 미리 쓰는 묘비명

“나에게 항상 새롭고 무한한 경탄과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두 가지가 있으니, 반짝이는 별을 보여주는 하늘과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 속의 도덕률”이라는 칸트의 묘지명이 어릴 적부터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96자의 한시 형식으로 된 퇴계 이황 선생님의 자찬묘지명 가운데 “오는 세상을 어찌 알리오/ 지금에도 이룬 것이 없거늘/ 근심 속에 즐거움 있고/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었네(寧知來世 不獲今兮 憂中有樂 樂中有憂)”라는 구절도 짠하게 다가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는 해학적인 묘비명을 직접 지은 극작가 버나드 쇼 익살도 빼놓을 수 없지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는 마르크스의 묘비명도 거인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니까”와 소설가 스탕달의 “썼노라, 살았노라, 사랑했노라”도 무척 매력적인 문구입니다. 미국의 비평가이자 작가인 도로시 파커의 묘비명인 “먼지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도 두고두고 미소 짓게 만듭니다.

아참 바람의 딸, 빛의 딸 한비야님이 준비한 묘비명은 “몽땅 다 쓰고 가다”라고 하네요. 정말 그답죠? 지금까지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했고 제 묘지명을 지어본다면 만약 짧게 쓴다면 “너는 내 운명, 自由!”나 “自由여, 좀 더 낮게!”를 새기고 싶어요. 물론 만연체를 애호하는 저는 또 장황한 잡설을 늘어놓을 공산이 크지만요. 아마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자찬묘지명을 능가하는 방대한 분량이 될지도 몰라요. 그만큼 알차게 살아 봐야죠.^^


38. 보통 하루 수면시간은?

수면시간의 분산(variance)이 큰 편입니다. 밤새서 잘 놀기도 하지만 다음 날은 하루종일 잠에 빠져서 결국 총 수면량은 똑같아집니다.^^ 한가할 때는 낮잠도 즐겨서 평균보다는 수면시간이 긴 편입니다.


39.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김동률, 박경림, 양희은, 권해효, 조혜련, 박명수, 지상렬, 노영심, 유재석, 안성기, 백윤식, 박수홍


40. 알라딘, 램프의 요정이 말했다, “세 가지 소원을 말하시오.”

고종석 선생님의 “덤의 보상에는 절제가 수반돼야 한다”는 말씀,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몫이 돌아가는 것이 사회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본 존 롤즈 선생님의 “최소극대화원칙”, 남이 먹을 수 있는 충분히 좋은 것을 남겨두고 부를 축적하라는 뜻의 “로크적 단서”, 신영복 선생님의 “평등은 자유의 최고치(最高値)”라는 말씀 등을 종합해 제 소원을 3단계로 정리해봤습니다. 이런 유토피아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까닭은 인생이 오직 한번뿐이라고 믿기 때문에 현세에서 최대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사람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1. 능력 있는 사람이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 사회를 바랍니다. 이런저런 연줄로 사람의 가치가 왜곡되지 않는 사회가 그것입니다. 열심히 살면 정말로 성공하는 능력주의 사회를 원합니다. 단 출발선상에 너무 차이가 나서 능력만으로 따라잡기 힘들지 않도록 어느 정도 보정이 있었으면 합니다.

2. 또한 능력 있는 사람의 성과에 미치지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노력한 사람도 적절한 보상을 받는 사회를 꿈꿉니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노력(!)이 부족했거나 어쩔 수 없이 재주가 모자라 유능한 사람에 미치지는 못해도 그 보상의 차이가 성과의 차이보다 현격히 차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3. 끝으로 능력도 모자라고, 노력도 부족했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가장 못난 자에게도 너무 압도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부과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장 못난 사람의 후생복지의 향상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는 시혜적 평등의 의미가 아니라 한 사회에 공유하고 합의하는 인간다운 삶의 최소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 3번 소원에서 놀고 먹느라 시간을 허랑방탕하게 보낸 이들의 후생까지도 염려하는 건 일견 자유주의 미감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는 까닭은 보다 확산된 자유가 인간적인 삶을 고양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일구는 번영은 마땅히 사람답게 살게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자유주의자가 그리는 사상의 자유시장이 자신이 증오하는 사상이라도 받아들이듯이, 게으른 사람의 궁핍함을 덜어주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가 빚어내는 차이가 먹고사는 것의 무지막지한 차별을 방기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 램프의 요정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 라며 짜증을 낼지도 모릅니다. 진짜로 소원을 빌라고 하면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겠죠.


41. 결혼하고 싶은 나이는?
독신으로 살 계획은 없다는 것밖에 아직 정한 것이 없어요.^^;


42. 노래방 애창곡

노래를 잘 못해서 노래방을 즐기지 않다 보니 애창곡 같은 개념이 없네요. 다만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나 보보의 [늦은 후회]를 노래방 첫 곡으로 자주 불렀던 거 같습니다. 김동률, 이승환 노래 일부와 [아침이슬]도 종종 부릅니다. 최근에 노래방용으로 연습하는 노래로는 이문세의 [기억이란 사랑보다],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 등이 있습니다.


43. 누군가와 다섯시간 이상 인터뷰를 한다. 누구와 하고 싶은가?

우리 시대 가장 매혹적인 자유주의자이시며, 제 영혼의 스승이신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 논설위원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저는 제 방을 고종석 선생님을 보배롭게 만드는 서재, 보배롭게 생각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보고재(寶高齋)”라고 이름지어 쓰고 있습니다. 평소 흠모하고 사숙하던 선생님과 같은 기품 있는 자유주의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아! 고 선생님 없는 익구란 상상하기도 싫어요. 최근에 나온 시평집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를 비롯해 『자유의 무늬』, 『서얼단상』을 권합니다.


44. 최근에 읽은 책

최근에 읽었던 책 가운데 추천할 만한 책으로는 고종석님의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최장집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백낙청님의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김원중님이 완역한 『사기열전』, 이덕일님의 『조선 선비 살해사건』, 김만권님의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홍은주님의 『그림으로 이해하는 경제사상』, 박세일님의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한비야님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이 있습니다. 20대에 1,0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게 목표입니다. 뭐 전부 정독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통독과 발췌독이 대부분이겠지만요.^^;


45. 취미생활

최근 생긴 취미생활은 일기 쓰기입니다.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국보 제153호 일성록(日省綠), 국보 제 303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같은 유구한 기록정신을 이어 받아 저도 흉내를 좀 내보려고요.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참 무섭습니다. 그러나 기록을 통해 내 자신에 좀 더 엄격해지는 계기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46. 좋아하는 음악 리스트

김동률님과 전람회 노래 거의 전부를 좋아하며 주로 잔잔하고 가사 많은 발라드곡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굳이 몇 곡 들어보자면 전람회의 [다짐], [10年의 약속], 카니발의 [벗], [거위의 꿈], 김동률의 [동반자], [희망], [귀향], [잔향],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이승환의 [다만], 신승훈의 [오랜 이별 뒤에],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양희은의 [그대가 있음에], 하은의 [아프고 화나고 미안해], 박효신의 [눈의 꽃], 해바라기의 [지금은 헤어져도], 민중가요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Bob Dylan의 [Blowin In The Wind], Beatles의 [Let It Be], [Imagine], Don McLean의 [Vincent] 등이 있습니다. 음악 감상도 잘 안 하는 편이라 자주 듣지는 않아요.^^;


47. 전생에 자신은 무엇이었을까?

농담 삼아 역사서를 편찬하는 사관(史官)이 아니었을까 말을 해보지만 저는 전생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이 땅에 한번 태어나서 한번 살다가 한번 죽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능한 한 옳고 아름답게, 착하고 재미나게 살 계획입니다. 한번뿐인 삶을 대충 살수는 없잖아요.


48. 요즘 최대 관심사

고심 끝에 행정고등고시 일반행정직을 준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자존심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제가 이런 시험 공부를 안 하고 다른 공부를 한다면 그에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면서 하는 시험 공부인 만큼 반드시 성사시켜야 제 기회비용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지만요.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역수의 물이 차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는 노래를 읊으며 자객 형가(荊軻)는 훗날 진시황이 된 진나라 왕을 암살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우등생은 아니었고 그저 제 때 수업이나 챙겨듣는 모범생에 불과한 제 한계가 얼마나 드러날지도 궁금합니다. 형가가 역수를 건너기 전에 길벗을 기다렸듯이 저 또한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시린 마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희망차면서도 불안합니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자고 하지만 조바심도 나고 머뭇거리기도 합니다. 오지 않는 길벗을 기다리듯이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버려가며 무엇을 이루려는 결단은 참 힘듭니다. 모든 빼어난 것은 드물기에 아름답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칸트의 말씀을 늘 곁에 두고 힘을 내겠습니다.

너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야만 하니까!(Du kannst, denn du sollst!)

* 2008년 3월부로 행시 공부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모색 중에 있습니다. 저는 끝내 역수를 건너지 못했습니다.


49.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말들의 풍경 19편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시인 김수영이 쓴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따온 제목인 듯싶어요. 고종석 선생님은 당신이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낱말 열 개로 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넋, 술을 꼽았습니다. 김수영 시인님은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았고요. 그래서 저도 이런저런 진통 끝에 제가 아름답게 여기는 우리말 열 개를 뽑아봤습니다. 참고로 이에 대한 친절하고 세세한 해석은 익구닷컴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글을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벗, 끼니, 차마, 이태, 젊음, 고맙다, 너그럽다, 처음처럼, 애면글면, 부끄러워하다


50. 존경하는 인물

돌아가신 분들 가운데 존경하는 스승 스물네 분만 꼽아보겠습니다. 본래 제가 열두 분을 뽑으려다가 하도 넘쳐서 부득이 두 배로 늘렸어요.^^;특별한 순서 없이 무작위로 말씀드릴게요. 삼국사기에서 빠졌거나 고의로 빼 버린 많은 사실들을 삼국유사에 수록해 우리 역사를 자주적으로 해석해 문화의 독창성을 일깨워준 일연 스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동법 시행에 일생을 걸어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려 한 민생을 생각했던 행정가 잠곡 김육, 우리나라가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했던 백범 김구, 끝끝내 대세에 영합하지 않아 선비정신의 고갱이가 된 온건 개혁가의 표상 포은 정몽주.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는 말씀을 과학입국으로 실천한 세종대왕,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빼어난 정치를 선보인 성군 중의 성군인 영민한 학자군주 정조대왕, 꿈에서도 가볼 수 없는 지적 깊이와 더불어 치열하되 재미나는 삶을 가르쳐준 대철학자 칸트, 평생 전체주의와 싸운 자유주의자로 점진적 사회공학을 주창한 칼 포퍼,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시대의 과제를 해결한 매력 넘치는 엘리트주의자 J.M 케인즈.

계급사회의 차별과 폭력에 맞서고 평화와 자비를 설파하며 물질적 행복을 넘어서는 정신의 고매함을 일깨워준 부처님(Buddha), 허리를 굽혀 섬기는 사람은 위를 보지 않는다며 늘 가장 가난한 사람 가운데 더 가난한 이를 섬긴 마더 테레사, 세속에 찌들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불의에 온몸으로 맞선 맑고 매운 유관순 열사,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이라는 탄식으로 배운 자들에게 부끄러움을 각성시켜준 전태일 열사, 해동공자·문헌공도라는 영예와 더불어 문무겸전의 아찔한 경지를 보여주신 내 할아버지 문헌공 최충.

지공무사(至公無私,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음)로 약소국을 이끌었던 인간미 넘치는 법가사상가이자 유연한 원칙주의자 제갈공명,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그 사회의 최소수혜자 계층의 입장을 최대한 증진시킨다는 조건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차등원칙을 제시해 못 가진 자, 덜 가진 자에게 애틋한 시선을 보낸 존 롤즈, 폭력에 대한 반대를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현해 인류의 감수성에 한 획을 그은 마하트마 간디, 사생취의(捨生取義)하는 대장부의 헌걸찬 기개를 맛깔스럽게 풀어 내려간 맹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王侯將相 寧有種乎)”라며 한국사의 스파르타쿠스가 된 만적.

백의종군을 감내하고도 “제게는 아직도 전선 열두 척이 있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라는 희망의 언어를 말했던 충무공 이순신, 꼿꼿하고 호방한 선비이자 차마 미워할 수 없는 기품 있는 보수주의자 면암 최익현, 인간국보 1호, 걸어다니는 국보라는 자칭이 아깝지 않은 소권(笑權, 웃을 권리) 옹호론자 무애 양주동 박사,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과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통해 어떻게 벌고 쓰는 지를 알려주신 경영학도의 사표 유일한 박사, 문화유산 유출을 막는데 자신의 재산을 아끼지 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간송 전형필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스승이 오늘날 저를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구접스러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분이 부디 없기를 바랍니다. 에이 설마요.^^;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 [無棄]

Posted by 익구
:

好學日記(06.10.16~06.10.22)

일기 2006. 10. 22. 22:19 |

061016
소은, 재호와 함께 연정이의 졸업전시회를 다녀왔다. 동양화에 대한 나의 고정된 틀이 깨어지는 문화적 충격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사군자에다가 수묵담채화의 향연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동서양의 통합을 체험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연정이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재료 같은 것들이 동양화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화가 대세인 서양화에 비해 동양화 특유의 맛 같은 게 느껴졌다.

나는 고흐의 자화상을 수묵으로 다시 그려낸 서민정님의 [고흐 씨?]를 잘 만든 작품 같다며 추켜세웠다. 또한 같은 작가의 작품인 악수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악수공화국]에서 “악수는 얼마나 긍정적이고 따뜻한가. 또 얼마나 비굴하고 너저분한가. 그래서 악수를 잘하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가”라는 도록에 실린 설명이 와 닿았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김해림님의 [일상-흐름]은 동양화의 색감이 아찔하게 다가왔다. 덜 무섭게 그리기 위해 애쓰셨다고는 하지만 송승희님의 [할 수만 있다면]은 제 심장을 덜어내 보이는 장면에서 절실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로를 재창조한 김동훈님의 [Neo_天象列次分野地圖Ⅱ]는 내 취향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들의 주인공 연정이의 작품은 “나”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나만 생각하고 끊임없이 채우고 싶지만 너와 함께 더불어 비우고 살아가고자 한다”는 작품 설명이 한참을 입에서 맴돈다. 장지 위에 채색한 탈춤 추는 사람, 순지 위에 수묵담채한 탈춤 추는 사람, 작은 탈들을 이어 붙여 다양한 표정을 연출한 작품까지 세 점의 작품을 한참을 감상했다. 탈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지만 나는 거기서 환희를 읽었다. 현대 미술하면 멜랑콜리와 데카당스가 언뜻 연상되지만 나는 이 젊은 가능성들이 좀 더 희망과 낙관을 말했으면 좋겠다. 여하간 연정이가 졸업전시회 준비한다고 바쁘다고 했을 때 너무 바쁜 척한다고 투덜거렸던 내 자신이 민망해졌다. 대학 4년간 이렇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 참 복된 일이다. 물론 이렇게 작품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물이 나와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친구의 정성어린 전시회를 보며 내 자신이 더 초라해져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너무 칭찬만 한 거 같아 부러 험담을 하자면 문인화 같은데서 볼 수 있는 시서화(詩書畵)가 겸비된 작품을 만나기가 힘들어서 살짝 아쉬웠다(어쩌면 그건 기본으로 갖추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특별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드물기 때문에 조금 더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고리타분한 걸 고집하는 답답한 사람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가. 나오면서 방명록에 최순우 선생님 선집 제목인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를 썼다. 내 나름의 안목과 잣대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것에는 마음을 아낌없이 내어놓을 줄 아는 여유도 있고, 추한 것을 미워하되 그 배경을 헤집는 여유도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채로운 동양화의 빛깔을 통해 내 미적 지평을 넓혀주신 고려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전공 졸업자 여러분들께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061017
어제 연정이 졸업전시회 끝나고 처음으로 가본 무아의 회국수는 달콤했다. 차나 한 잔 하자고 했지만 나는 부득이 함께 하지 못했다. 광호형님, 을광형님께서 뜻을 모으시고 나와 지현이가 껴서 경선, 종관이 입대 환송회를 조촐하게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약속이 겹치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하지만 놀기 좋은 날은 대개 엇비슷하기 마련이라 취사선택을 하거나 겹치기 출연을 하거나 할 수밖에 없다. 책임지지 못할 사람 욕심 때문에 한 모임에 충실하기 보다는 두 모임에 겹치기 출연을 한 경우가 조금 더 많았던 거 같다. 어떤 모임을 조금 일찍 나서는 대신, 혹은 조금 늦는 대신 앉아 있는 동안 알차고 재미나게 담소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하간 시험기간과 관계 없는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해서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술자리에서 으레 등장하는 진솔한 이야기는 사람 사이의 유대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나는 평소에도 글과 말을 통해 내 속내를 제법 많이 밝히는 편이라 특별히 더 드러낼 이야기가 없기 일쑤다. 혹여 내가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 녀석이라고 비춰진다면 내 표현력의 부족과 더불어 투명해질수록 탁해지는 아이러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령 내 대외홍보용 장래희망이 “국무회의 구성원”이라든가 하는 걸 나는 부러 숨긴 적이 없는데 말이다. 나는 내 둘레 사람들이 나를 대강 관찰한다면 어느 정도 언행이 예측 가능할 수 있게 자리매김하고 싶다. 날마다 성장하면서도 늘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탐욕인지도 모르겠다.

4차로 중앙광장을 향하는 길에 정환형과 재연이를 간만에 만나 잠깐 자리를 함께 가졌다. 새벽 2시까지 이어진 자리에 나는 함께 한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못한 거 같지만, 함께 한 사람들은 나를 기쁘게 해줬다. 광호형님이 말씀하신대로 정말 머지않은 훗날 동창회 형식을 빌려서라도 이 인연을 유지해나가고 싶다. 그 때 내가 미력이나마 도울 게 있는지도 찾아봐야겠다. 내 술버릇 가운데 하나는 모임을 가진 사람들이 귀가를 잘했는지 확인하는 거다. 요즘은 문자가 잘 안 보내지는 관계로 한 사람 한 사람 전화를 걸어 내 무사 귀가를 알리고 무사 귀가를 기원했다.

2차 천하객잔에서 마셨던 공부가주(孔府家酒)는 도수는 얼마 안 되었지만 후폭풍은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조신하게 지내는 건 너에겐 이룰 수 없는 꿈같은 걸?”이라는 소은이 문자가 뜨끔했다. 그나저나 종관이 환송 섞어주에 금붕어를 넣겠다는 계획을 말려야 할지 먼발치서 발만 동동 구를지 고민이다. 작년 8월경 나는 섞어주가 너무 갑자기 사라질까봐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석 달간은 유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는데 섞어주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역시 관성을 깨는 게 무너진 관성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 횡설수설을 보면 현식이가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논다고 구박할 듯싶다.


061018

나의 모교 서울외국어고등학교가 종교 집회를 개최해 학생들을 참석시키는 등 미션스쿨(개신교계 학교)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지난 9월 서울외고는 전일제 CA 활동 대신, 1, 2학년 학생들을 모두 강당에 불러들여 서울 S교회 김 모 목사의 종교집회에 참석토록 했다. 여기서 학생들을 위해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겠다면서 ‘사탄’ ‘미신’ ‘무교’ 등의 문구가 써진 송판을 격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강연 중간 중간에 하나님께 기도를 하라며 예배를 강요하기도 했단다. 김 모 교장이 “이 강연은 대 서울외고가 미션스쿨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라고 발언했다니 점입가경이다. 뿐만 아니라 연초 기간제 교사 초빙 공고 때는 신앙경력을 기재하라는 교사 채용 지원서 양식을 만들었다고 하니 이래저래 강한 의구심이 든다.

서울외고는 1994년 개교한 이래 이제 13년에 지나지 않은 짧은 역사지만 적잖은 이들이 거쳐 갔고 많은 추억과 가르침을 안고 사회로 나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짠한 그리움일 서울외고를 제 멋대로 바꾸려는 이들이 밉다. 지난 12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개정 사학법을 따를 경우 설립 취지에 맞는 종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개연성이 커진다는 측면에서 헌법 제20조 제1, 2항의 종교의 자유 등을 위배하여 위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정 사학법과 서울외고 사태 가운데 무엇이 더 위헌의 소지가 클까? 그 답은 비교적 또렷하다. 가장 낮은 이들과 벗했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기는 이들이 누구인가. 절대 약자인 학생들을 상대로 저열한 종교 장사를 벌이는 이들이 누구인가. 이런 강압으로 자신의 어린 양이 느는 것을 반기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차라리 대한민국 헌법을 더 애호하겠다. 서울외고 미션스쿨 전환을 반대한다.


061019
경영B반 웹진에 객원기자로 활동하며 한글 자음 ㄱㄴㄷ을 열쇠말(키워드)로 하는 시 감상 연재물을 총 14부작, 10개월만에 탈고했다. 얼렁뚱땅 시읽기 마지막 글을 올리니 글빚을 갚느라 노심초사했던 지난 기억들이 떠오른다. 처음의 호기로움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그런 시시한 글들만 쓰고 말았지만 내 졸고를 버리지 않고 이렇게 끝을 보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성과물이 하잘 것 없어도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애틋한 법이니까. 열 줄 짜리 글이라 순식간에 쓸 거 같아도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고 갈고 닦았다. 많이 걸릴 때는 서너 시간동안 작업하기도 했는데, 그런 시간 들이고서도 고작 이런 글밖에 못 쓰는 게 민망하다.^^;

가을가뭄 때문에 제대로 단풍도 들지 못하고 말라버린 나뭇잎 마냥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재주가 부족해 더 좋은 글을 쓰지 못해 미안하다. 윤동주 시인은 「쉽게 쓰여진 시」에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지만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시를 너무 쉽게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허술한 글에 화사한 옷을 입혀준 레이아웃팀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WE飛ZINE 여러분은 내 희망의 원천이며, 오래도록 함께 걷고 싶은 동반자다. 황금들판 같은 우리네 인연 오래도록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이제 객원기자 딱지를 떼고 정식기자 시켜달라고 졸라봐야겠다.


061020

섞어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어제 환송회 자리에서 다들 즐거우셨죠? 저도 간만에 처음처럼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어요. 제 나름대로 준비해본 야심 찬 아이템이었던 붕어빵과 더불어 들어간 새우젓, 브로콜리 등으로 말미암아 섞어주가 거의 해물샐러드 수준이 되었던 거 같아요. 아마 또 다시 섞어주가 존폐의 논란에 쌓이겠구나 싶습니다. 작년 8월경 저는 섞어주가 너무 갑자기 사라질까봐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석 달간은 유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는데 격세지감이 밀려오네요.^^;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개인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자리를 빠져 나온 거 같아 죄송스럽지만 이게 다 조금 덜 놀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음을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집에 와서 제 디카를 확인해보니 엄청난 양의 사진이 있더군요. 용철이가 부지런히 도촬한 건데 정말 이 사진을 공개해야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다들 도촬에 대한 대비가 별로 되어 있지 못한 모습이었어요. 저작권자인 용철이와 상의해서 선별하던지 해야겠습니다. 쿨럭

이역만리 미국에서 섞어주에 파워에이드를 꼭 좀 넣어달라고 제안해주신 혜진누나, 저만 보면 술을 주고 싶어하시는 헌조형, 이제야 정식으로 인사 나누고 친해질 날만 남은 지호, 후배 환송회를 위해 귀한 외박을 써가며 굳이 새우젓을 들고 와 섞어주 바다 버전에 일조한 성구, 환송회 극초반에 바람처럼 사라져서 아쉬웠던 영걸, 간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나서 반가웠던 패창, 결국 술을 약간 마셔버린 기민, 돈 걷느라 고생한 지수와 준웅, 섞어주를 고운 손을 넣어 휘젓던 준수, 제 잡설을 듣느라 고생했을 용휘, 그리고 저와 함께 처음처럼 술동무가 되어주신 많은 분들, 무엇보다도 짜디짠 섞어주에도 생존해준 종관이까지... 모두 고마웠습니다.^-^

-  종관이 환송회 다녀와서 쓴 <섞어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어제>  中


061021

나는 북핵을 저지하기 위한 비협상전략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북핵 불용(不容) 원칙에 위배될 경우 어떠한 형식의 남북 교류도 전면 중단하는 방안을 법제화하는 것을 검토하자는 거다. 이러한 비협상전략은 햇볕정책과 얼마든지 조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래야만 햇볕정책의 실효성을 더 확보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06학번 후배 하나가 어떠한 협상도 거부하게 된다면 이는 햇볕 정책과도 상충관계를 이룬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좀 더 정교한 논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이재석님의 지적대로 북한을 비난하는 게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아무런 효용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반북적(?) 발언은 좀 자제해야겠다.^^;

여하간 모든 정치인들이 몸 사리고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을 때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나 김대중 전대통령님 같은 분들이 소신 있는 행보를 하는 건 기꺼운 일이다. 특히 현실 정치적 관점에서 손해볼 여지가 많아 보이는 일에 투신하는 김근태님의 행보는 이채롭다. 이런 정치인이 있다는 게 반가우면서 한 편으로는 너무 적다는 게 슬프다. 김근태님이 개성공단 방문했다가 식당에서 춤은 춘 게 화제다. 점심 식사자리에서 북한측의 거듭된 요청으로 율동을 좀 한 거 가지고 광란의 춤판 운운하는 게 섬뜩하다. 얼마 전 음주가무를 즐기다 여기자를 성추행한 모씨나 술좌석에서 오징어로 경비원 뺨을 때리거나 술병을 집어던지던 모당 의원들이 떠오르고 이런 걸로 시비를 거는 한국 정치의 낙후성을 새삼 탄식하게 된다.

그나저나 송영선, 공성진 의원이 내년쯤에 해병대를 원산에 상륙시키자는 발언을 했다고 하는데 전쟁을 농담 삼아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러모로 불안하다. 두 사람은 국정감사 피감기관인 해병대 사령부에서 평일에 골프를 쳐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보니 발언의 진솔함이 많이 떨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평화통일이 우리의 목표라면 그 수단도 마땅히 평화적이어야 한다. 조금씩이나마 남북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낮춰 가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남북 간 평화적 군축을 실행해 나가는 것이 여전히 유효한, 앞으로도 추진해야할 통일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핵 같은 중차대한 사안에서는 타협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게 내 소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차 강조했듯이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지를 줄일뿐더러 국제적으로도 시비 걸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가슴으로 애국질을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태에 차가운 머리로 애국을 궁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061022

4년 반만에 토익시험을 봤다. 나는 대학 새내기 시절 토익 시험을 두 번 접수했는데 두 번 다 전날 술을 마셨다. 한 번은 결국 못 갔고, 다른 한 번도 그리 맑은 모습으로 시험을 치르지는 못했다. 그 후 내 공부도 부족했고, 인연이 닿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뤘다. 이제 더 이상 미루기 힘들어서 토익 시험을 당분간 계속 볼 듯싶다. 행시 1차 시험 응시 요건은 700점, 대학 졸업 요건은 780점이니 당분간 그 점수를 넘기 위해 애쓸 참이다. 나는 영어 공부를 그리 많이 하고 싶지 않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최소 기준만 채우고 다른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최소 영어 공부에 밀도가 있다면 그리 나쁘게 볼 일도 아니다.^^;

오후에 뉴스 검색을 하니 최규하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나온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기간이 8개월로 짧았음에도 그 기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1979년 12.12 사태와 이듬해 벌어진 광주 5.18 민주항쟁의 진상에 끝끝내 함구했다. 어느 책제목대로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라고 묻고 싶다. 최규하 일개인의 청렴함과 영민함은 준엄한 역사의 과오에 빛이 바랬다. 그는 비굴했고 시대정신을 외면했다. 그 자신의 문약함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그는 국가 최고권력자로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조금이라도 진전시키는 과업을 수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부지런했던 인물에게 험담을 늘어놓는 건 민망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는 나 같은 이의 볼멘 소리를 들어도 그리 섭섭해하지는 못할 거 같다.

Posted by 익구
:

프로타고라스의 재판

2006. 10. 19. 01:30 |

프로타고라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리석은 젊은이여, 그대가 이 소송에서 승소하든 패소하든 그대는 내가 요구하는 것을 지급해야만 할 걸세. 만약 그대가 패소한다면 내가 승소하므로 판결에 따라 내게 나머지 수업료를 지급해야 할 것이며, 만약 그대가 승소한다면 그대가 승소하므로 우리의 계약에 따라 내게 나머지 수업료를 지급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라네.”


에우아틀로스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현명하신 선생님, 제가 이 소송에서 승소하든 패소하든 저는 선생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제가 승소한다면 제가 승소하므로 판결에 따라 제가 선생님께 지급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만약 제가 패소한다면 제가 승소한 적이 없으므로 우리의 계약에 따라 제가 선생님께 지급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 재미난 이야기를 손수 번역해주신 사문난적님께 각별한 고마움을 표합니다.^-^

<출전> 스승과 제자---최후의 승자는?
http://www.cyberoro.com/board/board_view_pnt.asp?db=TB_CULTURE&num=3350
http://www.tygem.com/Column/Cboard/view.asp?seq=1699&pagec=1&find=프로타고라스&findword=title`content`&gubun=C002


프로타고라스의 제자 에우아틀로스는 법정에서 변론하여 승소하는 최초의 날에 절반의 수업료를 지불하기로 해놓고 차일피일 미뤘다. 프로타고라스는 제자가 한 번도 법정에서 변론을 하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을 보냄으로써 나머지 수업료를 지급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결국 에우아틀로스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딜레마의 대표적 사례로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 이 사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안을 찾았다.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명순구 교수님의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정구태님이 올려주신 답변인데 사견을 첨가해서 좀 더 알기 쉽게 정리해봤다. 물론 이것은 우리 민사소송법에 의거한 해답일 뿐이다.


프로타고라스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민사소송법상 법관은 사실심판변론종결시(事實審辯論終結時)까지 현출(顯出)된 자료만을 기초로 판결을 내리게 되어 있다. 따라서 사실심판변론종결시까지 에우아틀로스가 아직 승소한 적이 없으므로 프로타고라스의 수업료채권(授業料債權)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원고인 프로타고라스는 수업료채권의 부존재가 되어 청구가 기각될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에우아틀로스는 승소하게 되므로 판결확인시에 프로타고라스의 에우아틀로스에 대한 수업료채권도 발생하게 된다. 프로타고라스는 이러한 사실변경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소를 제기하면 승소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확정판결의 기판력(旣判力)이 문제가 된다. 기판력이란 확정판결의 내용이 갖는 구속력을 말한다. 일단 재판이 확정된 때에는 동일한 소송물에 대하여는 다시 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변론종결 후에 사정변경이 생긴 경우 기판력에 의하여 확정된 법률효과를 다시 다툴 수 있다. 가령 채무이행소송에서 기한이 도래되지 않아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었다가, 변론종결 후에 기한이 도래한 경우에 원고는 새로운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복잡하게 할 것도 없이 에우아틀로스가 고의적으로 승소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 프로타고로스의 청구는 이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에우아틀로스가 몇 번의 패소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변론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신의성실원칙에 반한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일부러 법서의 문체를 흉내내봤다. 행정법 책을 훑어보는 중인데 그 방대한 양도 양이거니와 헌법, 민법, 형법 같은 기초 법학의 소양도 없이 덜컥 행정법을 배우려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언젠가 김훈 선생님이 법학을 공부하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게 생각나서 좀 버티고는 있다만서도.^^; 조악한 문장에 주눅들지 말고 그래도 법학 특유의 논리적 구조를 배우려고 노력해봐야겠다. 이 재판의 결과만큼 궁금한 게 프로타고라스의 속내다. 이처럼 속 썩이는 제자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에우아틀로스 같이 얄미운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을 경계해야겠다. 유능한 확신범만큼 무서운 게 없구나. - [無棄]

Posted by 익구
:

好學日記(06.10.09~06.10.15)

일기 2006. 10. 16. 02:23 |

061009
북한이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건 희망이 아닌 절망일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김정일 일당의 영속적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몰상식과 파렴치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오기로 느껴진다. 아울러 그간 북한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민족 공조는 허울뿐인 거짓이었음이 또렷해졌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김정일 일당의 행패로 말미암아 대북 포용정책이 철저히 실패했다는 반응이 봇물 터지듯 나올까봐 걱정스럽다. 당분간 남북한 냉전세력들의 추잡한 상부상조를 보는 것도 고역일 게다.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재미에 사는 이들의 몽니는 북한 인민을 내 나라 사람처럼 아끼고 보듬으려 한 이들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가 될 것이다. 대뇌피질을 상실한 전쟁광들은 대한민국이 그간 갈고 닦은 진정한 힘을 이제 똑똑히 보길 바란다. 이 사태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풀어내는 가는 우리 사회의 역량에 달려 있다. 지나친 호들갑은 금물이다.


061010
어제 북핵 실험 때문에 한글날에 너무 험악한 말을 내뱉은 거 같아 하루 종일 후회스러웠다. 차분한 대응을 하자면서 정작 내 자신이 그다지 침착하지 못했다. 여하간 어제(9일)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가 공군 전산특기병으로 입대하셨다. 개인적으로 프로토스 팬인지라 임 선수에게 죽어 나간 숱한 프로토스 유저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많이 본 연유로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가 최연성 선수와의 스타리그 결승전 때 석패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릴 때 나는 그의 눈물이 헤픈 행동이었다고 얄미운 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가 오영종 선수와의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석패했을 때 환하게 웃으며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 때 나는 내 옹졸함에 고개를 떨궜다. 수명이 짧은 이스포츠 세계에서 만 7년째 버텨온 것은 그가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영민한 인물임을 말해준다. 병역특례를 주자는 여론에 기대어 볼만한데도 그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임요환 같은 인물이 병역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멋지다. 그러나 임 선수가 총 대신 마우스를 계속 잡을 수 있는, 징병제가 사라진 나라가 훨씬 더 멋질 것이다. 아무쪼록 요환형님이 늘 건승하시길 바란다.


061011
옆 사무실의 상근병 동생이 전역을 했다. 나는 축하를 하면서도 아직 10개월이나 남은 나의 군역을 헤아리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문득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꺼워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 됨을 기뻐함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진짜배기 축하는 참 어렵다. 남의 성공을 축하하기 이전에 나의 안일과 나태를 질책하기 바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나태에 대한 벌로서는, 자기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 이외에 타인의 성공이 있다”는 소설가 르나르의 말에 공감한다. 

정신의학자 아들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열등하게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To be a human being means to feel oneself inferior)”고 주장한다. 내가 곧잘 쓰는 표현인 ‘조바심은 나의 힘’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인 것 같다. 자기반성이 아무리 따갑더라도 지인의 경사를 가슴 깊이 반길 일이다. 운 좋게도 축하 받는 입장이 될 때에는 진심 어린 축하를 받지 못할까 염려해야겠다. 우리가 남의 잘됨을 내 일처럼 기뻐하는 건 단순히 성과 자체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의 신실함과, 이에 비추어 기대하는 더 나은 모습에서 찬사를 보낸다.


061012
신자유주의에 대한 탐구를 좀 더 하고 싶어졌다. 나는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자유주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니 순서를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탐구라고 거창히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대세적 분위기에 대한 차분한 검토 정도라고 칭하면 될 듯 하다. 적어도 “냉전적 수구세력의 집권을 저지하자”거나 “좌파들의 농단에서 나라를 구하자”라는 구호보다는 세금을 얼마나 더 걷고, FTA는 어떻게 할 것이냐 같은 논의가 좀 더 유익할 거 같다. 신자유주의를 마냥 증오하는 건 너무 단순해서 재미가 없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신자유주의도 여러 겹일 테니 말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데도 살기가 더 팍팍해지는 것에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처지에 놓인 최소수혜자들이 최소한의 고통을 겪는 수준에서 신자유주의적 기법과 양식을 체화하는 것이 이 난국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여러 겹이듯 그 대응 방안도 여러 겹일 테니 함부로 속단하지는 말자.


061013
게임이론은 사람이나 기업의 상호작용을 해석하려는 데서 시작된 학문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행동에 상대방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적인 선택을 수학적으로 분석한다. 게임이론에 관심은 많은데 조금만 깊이 들어가려고 하면 알쏭달쏭 수학 세상이 펼쳐져서 나를 안타깝게 만든다. 게임이론이 언뜻 보면 비정해 보여도 인간사의 냉혹함을 가능한 한 반영해 이론의 현실적합성을 높였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게임이론을 현실 상황에 적용시켜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아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머스 셸링은 납치범과의 극단적인 협상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는 공약(Commitment)을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더욱 좁게 만들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헌법에는 비행기 납치범과 협상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공약은 상대방의 선택 폭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스라엘의 비협상정책은 비행기 납치로부터 기대되는 이득을 제거함으로써 납치 실익을 0에 가깝게 만들어 버린다.

정부가 스스로 재량을 0으로 수축시킴(행정법 용어를 따왔다)으로써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방안을 남북관계에도 적용해보자. 북핵 불용(不容) 원칙에 위배될 경우 어떠한 형식의 남북 교류도 전면 중단하는 방안을 법제화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 한반도 생민들을 볼모 삼으려는 시도에는 사정 판단, 정상 참작의 여지없이 법대로 처리해버리는 셈이다. 이러한 비협상전략은 햇볕정책과 얼마든지 조화될 수 있다. 북한의 핵개발이 대한민국의 ‘결정적 이익(vital interest)’을 심대하게 침해할 때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 햇볕정책을 훼손할 것 같지는 않다.

그나저나 요 며칠 모기가 부쩍 늘어서 다섯 마리는 잡은 거 같다. 미물을 살생하는 데도 가끔은 마음이 아픈데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장사를 하려는 자들이 너무 얄밉다.


061014

승현(섭), 승현(정), 현식이와 간만에 만나 담소를 나눴다. 나는 이번 주에 공부한 거시경제학 상식들을 꺼내 놓으면서 우리나라 실업률이 상당부분 과소 계상되어 있음을 역설했다. 고용시장이 불안정한 건 우리 사회의 큰 짐이 될 공산이 크다.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사회는 힘들더라도 평생고용을 달성하는 사회는 만들어 내야하지 않을까 싶다. 두 단어는 거의 비슷한 뜻이지만 종신고용이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한다는 개념이라면 평생고용은 직장을 몇 번 옮기더라도 일할 나이까지는 계속 밥벌이를 해나갈 수 있다는 개념이다. 여하간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는 남들이 힘들게 포장까지 다 해놓은 사탕을 얄밉게 홀라당 까먹는 사회 지도층을 통박했다.

승현(정)은 보다 더 적절한 밤의 비유를 들어줬다. 밤송이를 애써 까놓고, 심지어 깎아놓기까지 했는데 슬쩍 챙기는 사람이라니 모두들 정말 밉살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레몬시장(lemon market)이나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처럼 경제학 용어 가운데 재미난 비유가 많은데 “밤알 빼먹는 사람(chestnut thief)”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놓고 자화자찬에 빠졌다. chestnut thief가 생산성이 낮은 태만한 노동자라는 가리키기보다는 무능한 정치인 같은 사회 지도층을 주 타깃으로 한다. 좀 더 문제의식을 확장해서 chestnut thief가 사회후생에 어떠한 손실을 입히는지에 대한 좀 더 체계화된 정리를 해보면 재미날 거 같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억상실증은 밤알 빼먹는 사람에게 너그러워서 그네들이 또 밤을 빼앗게 만든다.


061015

김경수, 박대근 교수님이 지은 거시경제학 책을 일주일에 걸쳐서 통독했다.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고, 복잡한 수식들은 적당히 건너 띄었지만 그래도 거시경제학의 기초를 훑어봐서 뿌듯하다. 거시경제학은 소비자와 기업의 경제활동, 물가, 금리, 대외수지 및 환율 및 각종 경제정책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흔히 경제학을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고 부르지만 본래 그 별명이 붙여진 배경과는 다른 이유로 경제학 공부를 하는 내내 조금은 우울했다. 복잡한 수식을 맞닥뜨릴 때나, 참신하고 아름다운 이론들을 접할 때면 내 모자란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동전의 양면과 같은 알쏭달쏭한 이야기가 현란하게 펼쳐지고 케인즈학파와 고전학파의 건곤일척도 흥미롭다. 얼마나 더 많은 공부를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거시경제학은 두고두고 내 지적 원천으로 벗삼고 싶다. 내가 보기에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안정성의 부족이다. 멀쩡한 직장인이 실직을 하는 순간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가파른 생활수준,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1/3이 넘는 기형적 경제활동 구조가 그 예다. 나와 생년이 꼭 100년 차이가 나는 경제학의 태두 케인즈에게서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확충하는 방안을 많이 얻을 것 같다.

Posted by 익구
:

거시경제학에서 생산성이 정체된 산업에서 비용과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Baumol의 비용질병(Cost Disease)이라고 한다. 이는 산업 부문에 따른 생산성 증가의 속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비용질병은 대부분 비교역 재화를 생산하는 서비스산업에서 발생된다. 서비스 부문에서 생산성 향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노동을 기계설비로 대체하기가 힘들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교역재를 생산하는 제조산업의 경우 비싼 노동력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어 노동생산성이 증가하지만, 비교역재를 생산하는 서비스산업은 생산성 지연(productivity lag) 문제를 겪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베토벤의 현악 4중주를 연주하는데 네 사람의 연주자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북·장구·징·꽹과리로 연주하는 사물놀이에서 하나를 빼서 삼물놀이로 바꾸기는 여간 힘들 것이다.


국민소득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을 경우에는 비교역재도 마찬가지로 저렴한 편이었으나 제조업 생산성이 증가하고,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생산성 향상이 더딘 비교역재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용 증가를 유발하게 된다. 예를 들어 노트북 컴퓨터나 휴대전화기의 가격은 자꾸 떨어지지만 교육비 지출은 가파르게 증가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자본집약적 제조업의 실질임금이 상승하면 노동집약적 서비스업의 생산비용도 상승하고 이에 따라 비교역재 가격을 인상시키는 파급효과를 가져다 준다.


만약 노동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고 한다면 오페라 배우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실질임금이 별 차이가 없어야 하는데 아마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오페라 배우직을 그만 둘 것이 분명하다. 반면에 공연예술이 가격이 다른 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지면 서민과 중산층의 문화생활이 제약되는데 이 또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이는 문화산업에 대한 정부 등의 지원의 논거가 된다. 가령 가수 비의 소득이 조용필의 열 배라고 가정하자. 그러나 가수 비는 조용필보다 노래를 열 배나 더 잘 부르는 것은 아님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유명 연예인의 엄청난 수입 증대는 연예인의 능력 향상보다는 삼성전자의 활약에 기인하는 바가 큰 셈이다.


비용질병이론을 개방경제로 확대 적용해보면 대한민국 대학교수와 미국 대학교수의 강의 질은 거의 차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임금은 현저하게 차이나는 까닭을 설명해준다. 이는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의 교역재 생산성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비교역재 가격도 덩달아 높아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물가가 더 높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생산성 향상과 경제성장은 장기적으로 비교역재의 교역재에 대한 상대가격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주는데 이를 Balassa-Samuelson 효과라 한다.


비용질병이론은 몇몇 대기업들의 매출 성장이 반드시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또한 비용질병은 피할 수 없지만 쓸데없이 더 늘리지는 말아야 하나는 교훈을 준다.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이 비용질병 문제를 해소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안이겠지만 사실상 쉽지 않다. 일례로 농업 개방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농업은 비교역적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더라도 함부로 포기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여하간 일반 국민들의 후생수준을 높이는 경제발전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거 같다. 비용질병의 개념에 대한 설명으로 내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신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님께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Posted by 익구
:
061002
“고연전 땐 오시죠?”라는 말에 결국 고연전 둘째 날에 참석해 다음날 아침까지 열심히 놀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는 길에 유혹에 약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니, 좀 더 좋게 말해서 소중한 인연의 권유에 약하다고나 할까. 고연전 뒤풀이 때 너무 넘치게 논 것이 마음에 걸려 당분간 조신하게 지내려고 했더니 며칠 뒤 “올꺼지?”라는 문자에 마음의 빗장이 열려 늦게나마 회식 자리를 향했다. 그러고 보면 “올 거지?”, “안 오고 뭐해?”라는 말처럼 사람을 불러내는 문구도 없는 거 같다. 나의 참석이 기정사실화 되었다는 느낌이 그리 불쾌하지 않다. 내 자유의사가 침해받았다는 생각보다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압도한다.

황인숙 선생님은 “자기가 타인의 주의를 끄는 사람인 줄 아는 것도 오해의 첩경”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그 오해가 있어 사는 게 덜 팍팍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오실 거죠?”, “왜 이제야 오고 난리야?”라는 말을 많이 해왔다. 이제 흔들리지 말자고 결심했지만 작심삼일이 되어 후배가 “저 군대 가는데 환송회 때 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살가운 전화 통화에 넘어가 버렸다. 이렇게 직접 전화까지 준 후배의 정성을 외면하기에 내가 너무 모질지 못했다. 나는 그 정성에 보답하느라 열심히 마셨고, 다음날 아침에 살짝 후회했다. 그래도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어 참 고맙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 사양도 해봐야겠다.


061003
개천절에 태어난 용철이 생일을 어떻게 축하할까 고민하다가 “하늘이 열린 날 태어난 용철아 너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길 바란다 생일 축하해^-^”라는 문자를 보냈다. 보내놓고 잘 쓴 거 같아 자화자찬했다. 나는 문자를 분량 제한(80byte)이 걸릴 때까지 꽉꽉 채워서 보내는 편이다. 달랑 한 글자를 보내는 것과 요금이 같은 이상 최대한으로 보내는 게 경제적이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길게 문자 보내는 비용이 있겠지만 편익이 더 앞서는 거 같다. 예전 연인과는 멀티메일을 몇 통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야 그게 즐거웠지만 역시 긴 말은 전자우편이나 메신저를 사용하고, 문자는 액정화면 하나에 꽉 찰 정도로만 주고받는 게 좋다. 문자는 딱 그 정도 양을 감내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일본의 하이쿠가 보여주듯이 짧은 문자도 알차게 보내면 문학 부럽지 않다. 모든 말글에는 혼이 깃들어 있으니까. 다만 80byte는 살짝 부족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0byte 정도만 되었으면 좋겠다.


061004
경영飛반 웹진 10월호 교환학생판에 대한 교열을 간단히 봤다. “근데 보면 대체적으로 기본적 매너가 좋아”는 “근데 언뜻 봐도 대체로 기본 매너가 좋아”로 고치고, “개인적인 조사도 많이 해보셨으면”은 “개인적으로도 많이 찾아보셨으면”으로 고쳤다. 나는 교열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기초적인 오자와 문맥만을 살폈는데도 무척 까다로운 녀석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렸다. 내가 상급자가 되면 결재서류의 오타를 살피는 무시무시한 상관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교열 맡은 사람이 조금 꼼꼼한 것은 그리 흉이 아니다. 수십 개를 고쳤더라도 놓친 한 두 개의 오타나 비문을 발견한 이들에게는 성의를 다하지 않은 글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일전에 “당시 반대표를 맞고 있던”을 교열에서 누락시켜서 지적 받았을 때 내 소임을 다하지 못한 거 같아 부끄러웠다. 우스운 건 내가 맡은 짧은 연재물은 정작 교열이 소홀해서 매천 황현 선생의 절명시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다(難作人間識字人)”을 “難作人間識者人”이라고 써놓고는 한참 뒤에야 발견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정말 경험적 진실이다.^^;

교열을 잠시나마 해보니 틀리는 걸 또 틀림을 알 수 있다. “-것”은 띄어쓰는 것이지만 붙여 쓰는 경우가 너무 많다. 사이시옷이 어려운지라 뒤풀이를 뒷풀이로 자주 틀리는데 누차 지적해도 자꾸 틀린다. 맞춤법은 원리원칙을 익히기보다는 다양한 용례를 접해서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다. 맞춤법 오답 노트까지 만들라는 게 아니라 의식은 하고 쓰자는 말이다. 시간을 내서 문장을 다듬는 법에 관한 책을 한두 권 읽고 좀 더 교열 내공을 쌓아보고 싶지만 이제 뒷사람에게 맡겨야겠다.^^; 새로 뽑는 후배 가운데 이 악역을 맡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061005
아침 일찍 귀성길에 나섰다. 나는 차만 타면 잠에 빠지는 습성이 있는지라 어차피 잘 거 밤새 놀다가 가기로 했다. 메신저로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이것저것 둘러보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문화유산 답사를 다닌 후로 풍경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황금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즐거웠다. 대구 외가를 들렀다가 경주 안강읍 친가로 향했다. 제사를 치르지 않는 터라 특별히 준비할 것은 많지 않았지만 나는 명절 음식 준비를 거의 돕지 않았다. 뭐라도 거들 게 있었겠지만 그냥 애견 야니를 음식 곁에 가지 못하도록 돌보는 일만 했다. 이 녀석이 어찌나 칭얼거리는지 거의 인내심 함양 수준의 정성을 요했지만 말이다. 김언수 교수님의 손자병법 강독서인 『전략』 1권을 틈틈이 읽었다. 주위가 어수선해서 손자병법의 세세한 내용까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곁다리로 나온 명언 두 개가 마음에 들었다.

니체의 “If you know ‘why’ to live, you can endure almost any ‘how’.” “왜” 사는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출전을 찾을 수 없지만 아마 독일어로 왜(Warum)가 명확하다면 어떻게(Wie)는 극복해낼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씀일 것이다. 김 교수님은 개개인의 미션(mission)을 이해하고 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당신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helping others)”이라고 말씀하셨다. 내 미션은 이 세상에 한 뼘의 자유라도 넓히는 “more liberal”이라고 정의해봤다. 사실 자유, 정의, 진리 모두 독점 불가능하고 골고루 배분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하나만 화력을 집중하는 게 미션의 달성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거 같아서다. 하기야 자유, 정의, 진리가 엄격히 분리되지는 않을 거 같기도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Fools say that they learn by experience. I prefer to profit by others' experience.” 바보들은 직접 경험을 하고서야 배우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배운다. 내가 누차 강조하는 간접 경험의 힘! 그러나 나는 점점 젊었을 때 직접 경험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지니는 지도 깨닫고 있다.

조명도 미비하고 두 군데서 서로 다른 TV 채널이 어지러워서 더 이상의 독서는 무리였다. 윤정 누나를 졸라 사촌들과 모두 근처 번화가(?)로 나와서 통닭에 맥주 한잔을 나눴다. 간만에 먹는 통닭이 참 달았다. 돌아오는 길에 강인형님의 한가위 잘 보내라는 문자를 받았고 나는 어린애처럼 자랑했다. 비록 휴학 네 학기 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 대인관계가 와해되지 않았음을 자랑하고 싶었다니 좀 우습기는 하지만. 구름이 달 사이로 빨리 지나갔다.


061006
언제부터인가 큰집에 제사를 지내러 가지 않았다. 내가 가야할 필요성도 못 느끼겠거니와 제사 말미에 여자들이 절 네 번 연속으로 하는 장면이 어린 시절 내게 큰 충격을 주었나 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도 하지만 제사 의식은 내게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여하간 이건 핑계고 내 귀차니즘이 가장 큰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찾아오는 손님들과 간단히 인사 나누고 틈틈이 야니를 산책시키고, TV 채널을 어지럽게 돌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늦은 오후에 다시 외가댁으로 향했다. 다리를 다치셔서 깁스를 하고 계신 외할머니를 뵈니 마음이 아팠다. 집안 어르신들이 내내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만큼 착각은 없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참 어렵다.

우연히 문학작품을 영상으로 재해석한 KBS1 ‘HD TV문학관’을 보게 되었다. 김동리의 ‘등신불’이었는데 잠깐 보다가 게임TV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묘한 흡입력이 빠져들었다. 중일전쟁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탈출한 재일유학생 ‘나’가 1000년 전 자기 몸을 불살라 열반하면서 등신불이 된 ‘만적선사’에 관한 전설을 접하는 이야기다. 단순한 구조고 뻔히 예측 가능한 결말이지만 배우의 연기력 덕분이었는지 빼어난 영상미 덕분이었는지 넋 놓고 봤다. 중국 현지 촬영이 많았는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낙산대불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등신불은 단편 소설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길게 풀어 나가는 것을 보니 이야기에 살을 붙인 거 같은데 나중에 원작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안고수비(眼高手卑)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눈은 높으나 재주가 낮다는 뜻이다.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어제 내 미션으로 정의한 more liberal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기 위한 결심인 셈이다. 등신불의 여운 때문이었는지 보름달에 맺은 언약 때문이었는지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부엌에 불을 켜고 『전략』 2권을 읽었다. 김언수 교수님은 마케팅에서 나오는 push와 pull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용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내가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면, 내가 적극적으로 가는 방법이 있고(push), 혹은 상대방이 나에게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만드는 수(pull)가 있”는데 최소한의 push와 최대한의 pull로 제자들을 이끌겠다는 다짐이 인상적이었다. 무척 설득력 있는 비유다. 경영학적 개념 가운데 이렇게 실생활에 응용해볼 수 있는 게 적잖은데 좀 더 열심히 배워둘 걸 그랬다.


061007
일찍 나선 덕분에 그리 막히지 않고 집에 올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거의 잠만 잤지만.^^;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김동리의 단편집이 있었다. 역시나 하는 생각에 읽어보니 어제 본 TV문학관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원작에는 없는 허구의 인물인 이복 여동생 여옥이 없다는 게 놀라웠다. 만적 선사의 소신공양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한 여옥에 대한 애틋한 연모의 정은 각색의 힘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나도 세상사의 고뇌 가운데 상당부분은 이성간의 관계에 비롯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 나쁜 행실을 하다가 미쳐버린 어머니가 아들의 소신공양을 계기로 정신을 차린다는 대목도 원작에는 없다. 사실 원작의 완결성을 깨는 대목이 어머니의 악행만 기록되고 추후의 행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 점에 있어서는 TV문학관이 더 밀도가 높은 결말을 보여준다. 물론 내 완벽증의 소산인지는 모르겠지만.

TV문학관은 마지막에 주인공 내가 “자네 바른손 식지를 들어 보게”라는 원혜 스님의 말씀을 “만적 선사처럼 온 몸을 다 바치는 대공양(大供養)뿐 아니라 비록 손가락 하나나마 신심으로 맹세하여 부처님께 공양한 나 또한 이미 누구 못지 않은 진실한 불제자인 것은 아닐는지”라고 생각한다. “만적의 소신공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엉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원작과 견주어 적극적인 해석이다. 문학적으로는 원작이 뛰어나겠지만 주인공의 자족적(?) 해석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고등학교 문학자습서 등에서는 만적의 소신공양과 주인공의 혈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소신공양은 이타적, 대승적 행위며, 혈서는 이기적, 소승적 행위로 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부처님의 은혜에 대한 구원을 꾀한다는 공통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주인공이 願免殺生 歸依佛恩(원컨대 살생을 면하게 하옵시고 부처님의 은혜 속에 귀의코자 하나이다)라고 혈서를 쓴 정성은 소중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테레사 수녀님의 시가 계속 떠올랐다.

[한번에 한사람] - 마더 테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061008
한가위의 대미를 영화 연애술사로 장식했다. 거시경제학 예습을 좀 하겠다는 연휴 계획을 거의 실천하지 못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레트를 보낸 스칼렛이 스스로를 위로하며 던지는 마지막 대사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라고 번역한 것은 정말 얄미울 정도로 멋진 재창조다. 이 명구의 실제 원작은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Tomorrow is another day)”였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살짝 실망했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렸다. 예나 지금이나 미련한 나는 이 대사를 듣기 위해 그 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말이다. 여하간 내일은 명절의 기운을 훌훌 털고 다시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쉴 만큼 쉬었고, 놀만큼 놀았다.
Posted by 익구
:

060925
젊은 시절 부대를 이탈해 18년간 도피생활을 하다 뒤늦게 자수해 20년 만에 군 복무를 마친 한 늙은 군인의 사연이 화제다. 이〇환 씨는 탈영 18년 만인 지난 7월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에 자수했다. 탈영병의 경우 만 40살이 넘으면 재판을 받아 보충역에 편입되지만 이 씨는 해당되지 않아 만 39살인 이 씨는 5개월이 모자라 탈영 당시 계급인 상병으로 복귀했다. 이 씨는 3군사령부 심의를 거쳐 약 1달간 재복무 끝에 지난 8일 상병으로 조기 전역했다. 늙은 사병을 위해 ‘현역복무 부적합’을 건의한 군부대측의 자애로움을 칭찬하려니 서글퍼졌다. 군사법원법상 탈영병에 대한 공소시효는 7년이다. 국방부는 탈영병에 대한 처벌 근거를 두려고 3년마다 복귀명령을 내려서 공소시효가 지나더라도 군 형법 제47조 ‘명령위반’을 근거로 탈영병들을 처벌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군법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공소시효를 연장시키는 편법을 쓰면서까지 탈영병을 거두려는 의지가 단호해 보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법의 지엄함은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설마 군법도 사병에게는 매섭고 간부에게는 부드럽지 않으리라 믿는다. 문득 전국민을 상대로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고도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전두환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요즘 유행하는 행정대집행은 전 씨 자택이 시급하지 않을까.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문 위의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사진으로만 봤으니 눈을 감고 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설령 눈을 감고 있다고 해도 실눈을 뜨고 있는 게 아닌가 헷갈리니 눈을 가리는 띠를 두르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공평무사함을 더 강조하는 게 무슨 쓸모가 있겠냐 만은.

처벌 위주의 법 집행이 만능은 아니지만 불법에 ‘선택적’으로 너그러운 것만큼 볼썽 사나운 것도 없다. 어느 책의 제목대로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그 눈물이 가진 것이 몸 뿐이라 몸으로 때우고 있는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면 더욱 좋겠다. 여하간 이〇환 씨의 건투를 빈다.


060926
예비군 향방작계 훈련 지원을 위해 야근을 했다. 교육장인 근처 중학교까지 이런저런 물품을 나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구청 강당에서 훈련이 있었으면 대기 시간에 책이라도 보는 건데 운동장에 나와 있으니 책도 보지 못하고 산보하며 일감을 기다렸다. 덕분에(?) 훈련을 위해 지원 오신 어느 동대장님과 어느 예비역과의 언쟁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동대장이 사단장이 순시할지도 모르니 자세를 똑바로 하고 시청각자료를 볼 것을 요구하자 그 예비역은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런 훈련을 하는 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것은 훈련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자꾸 강조하는 것이 탐탁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예비군의 발언이 거개 옳다고 생각했다. 동대장의 반박은 그리 설득력 있지 않았다. 일방적인 당위의 나열에 불과했고 좋은 게 좋은 거 수준에 그쳤다. 더군다나 더 이상의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예비군이 모든 논의를 중지하고 교육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언쟁을 그치지 않았다. 물론 동대장은 나이 지긋한 어른이지만 예비역을 고객으로 생각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의 훈계는 좀 넘쳤다. 초등학교 시절 장학사가 온다고 하면 나무로 된 교실바닥을 왁스칠하느라 소동을 피웠던 그 때의 사고방식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수많은 사람이 앉았다 나간 자리는 조금 헝클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혹여 높은 분들이 올까봐 다시금 줄을 맞추고 있는 내 자신이 좀 우스웠다.

그래도 이날 훈련 교관으로 온 중대장님은 참 인상 깊었다. 미안하다고 살갑게 말하며 부탁을 하고, 고생한다며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물론 그 중대장님이 외부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하고 자신이 거느리는 사람들에게는 엄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리 나쁜 양식은 아니지만 그 간격이 너무 넓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군 간부들이 사병들을 좀 더 애호했으면 좋겠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맡아 쓰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면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순리다. 묵자가 말했던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절대적 사랑인 ‘겸애(兼愛)’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적절한 수준의 ‘별애(別愛)’를 바라는 게 지나친 요구이며 간섭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두운 밤이라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분명 후덕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이런 군인이 좀 더 많이 그리고 빨리 늘어났으면 좋겠다. 국방력이 강화되고 있는 소리가 들리게.

이날 훈련을 위해 인근 동대에서 지원을 온 어느 상근병은 스물 한 살이었는데 그 ‘어림’이 부러웠다. 나는 내 젊음을 알차게 쓰지도 못하면서 남의 어림을 탐내는 못난 녀석이다. 여하간 예비군들의 짜증 섞인 투정과 함께 훈련을 무탈하게 마쳤다. 허겁지겁 물품들을 나르니 온 몸이 흠뻑 젖었다. 새벽 1시에 집에 돌아와 달콤한 포도 한 송이를 먹으니 피로가 풀린다. 반듯반듯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좀 우울한 하루였다.


060927
나와 바라보는 바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 내년 대선에 대한 체념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정책적 차이가 없다면서 대연정을 제의하였을 때 나도 크게 놀랐고 무척 상처받았다. 어렵게 일궈놓은 한국 정당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헝클어 놓았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이 변명할 구석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참여정부와 집권여당의 실정에 이제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을 내동댕이치고, 정치, 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응수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다. 한 사람, 한 시대정신에게서 실망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세속 초월(?)의 이유로 삼기에는 궁색하다.

나는 부러 체념과 환멸을 나타내는 분들이 엄살을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들이 “잘 살면서 따뜻하기까지 한 나라”에 대한 꿈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청부안민(淸富安民)의 꿈은 독점불가능하지 않는가. 또한 그들이 공박하는 노 대통령보다 더 흐트러진 언행을 일삼는 이들의 손에 국사를 죄다 도맡는 것을 배 아파서 못 보시리라 생각한다. 온건 보수 노선, 개혁적 자유주의 노선이 통째로 폐기될 까닭이 없다. 케인즈를 빌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할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낙관적인 견해일까. 나는 아직 젊은 데 벌써 내가 지향하는 바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려니 섭섭해서 하는 말이다. 이런 걸 미련이라고 하는 걸까? 헛된 집착인가.


060928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경향신문 창간 60주년 특집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에게 책임 지는 방법은 새로운 정책을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노정부는 갈등적인 이슈에 더 이상 손대지 말고 비갈등적인 이슈만 건드려야”하며, “합의가 충분히 돼 있고, 일상적으로 가게 돼 있는 국가, 내지 정부의 관리 수준의 것”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님 지적대로 “대통령이 신뢰 못 받는 상황에서 추진하니까 국민의 반대가 더 많아지고 있”다. 노무현이 미워서 그가 하는 일이 죄다 싫은 사람들이 집권 초기에 비해 많이 늘었다. 참여정부가 갈등이 큰 사회적 현안을 해결할 동력을 상실했음은 비교적 또렷해 보인다. 부단한 현상 유지마저 버거워 보인다.

얼마 되지 않은 기회였지만 사태를 호전시킬 계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결국 허송세월 해버렸다. 최 교수님은 “민주화를 지지했던 광범한 사회세력이 사실상 정치적 탄핵을 받은 정부와 함께 몰락해서는 안 된다”며 노 대통령과의 결별을 주장하신다. 어지간한 잘못은 참여정부에게 전가하며 신자유주의 반대와 정당체제 구축 같은 원론적인 대안들만 제시하시는 최 교수님의 한계가 엿보이지만 그 쓴소리를 죄다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여하간 묵직한 희망을 안고 출발했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줄곧 지지자들을 배신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 냉소의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혹 냉소를 품더라도 그 냉소는 짧을수록 좋다. 노 대통령이 얼마나 더 초라해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가 소나기를 맞으며 물러갈 때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행동이 옳아서가 아니라 드물기 때문이다.


060929
어제는 광호형님이 주최하신 04학번 이상 고학번 모임(05학번이 참석했지만), 오늘은 경영 飛반 웹진 회식에 다녀왔다. 둘 다 9시가 넘어서 찾아간 거라 여러모로 아쉬웠지만 공부한다면서 이틀 연속 술자리에 참석한 것도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역시 너무 사무치게 즐거웠다. 정말 앞으로는 이런 모임에 나갈 때 더 밀도 있게 혼신의 힘을 다해 만끽해야겠다. 이틀 연속으로 나온 이야기가 선후배간의 관계가 많이 소원해졌다는 것이다. 앞사람이 뒷사람을 핀잔하는 거야 늘 있는 일이지만 날이 갈수록 조바심도 나고 아쉽기도 하다. 내가 반 활동을 진작부터 했다면 이 문제에 좀 더 천착했을 텐데 이방인 처지를 면하는데 급급해서 미처 돌보지 못했다.

나는 왜 소규모라 선후배 관계도 돈독하고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동아리나 학회 대신 반 활동에 집중한 까닭은 무엇일까. 무정형의 어수선함과 다양성의 복잡다단이 좋았다. 오만사람이 모여 티격태격하면서 가까웠다 멀어졌다 하는 가운데 인연을 가꾸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재미를 후배들에게 강권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나보다 더 영민한 후배들은 제 나름대로의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후배의 가치판단을 대신해줘야겠다는 건 실현불가능한 과욕이다. “사람의 걱정은 다른 사람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데 있다(人之患在好爲人師)”는 맹자의 말씀으로 경계해야겠다. 좋은 선배 되기가 침 힘들다. 세상에는 별 거 아닌 거 같아 보이는 일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엄청난 공력이 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다.


060930
이틀 전 읽었던 최장집 교수님의 경향신문 인터뷰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들을 챙겨 봤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진보의 위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위기의 책임을 참여정부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핵심을 비껴가 버렸”다고 주장했다. 나는 김 처장의 말에 상당 부분 동감했지만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특정 정권을 평가할 때 말이나 레토릭 보다는 구체적 레코드를(기록) 통해 평가해야”한다는 최 교수님의 말씀을 가슴 아프게 새기고 싶기 때문이다.

다만 더 이상 일을 벌이지 말라는 최 교수님의 말씀은 좀 넘쳤다고 지적해야겠다. 국민의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국정을 포기하라는 논리는 인기가 많다는 핑계로 마녀사냥을 즐기는 어느 신문이 활약할 논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하간 내가 보기에 기품 있는 보수주의자 정도의 논리를 설파하시는 최 교수님이 진보 진영의 거두로 불리는 건 좀 민망한 일이다. 일찍이 강준만 선생님이 지적하신 ‘이념의 인플레이션’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최 교수님도 자신에게 지워진 그 레토릭을 차분히 검토해보셨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김 처장의 글 가운데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설은 특별히 인용한다.

요즘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를 어떤 사물을 악마화 · 물신화시키는 주술로 사용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정책을 비판하고 환원한다면 세계화와 개방의 높은 파고를 대응하려는 이 세상의 모든 정책과 정부도 신자유주의가 되고 말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구체성을 담기 힘든 철학적 개념이자 포괄적인 원칙입니다. 개별 사안마다 복합적·중층적인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늘날의 정부 정책을 신자유주의라는 단 하나의 추상적인 잣대만으로 평가, 재단하고 그것으로 진보지식인들을 자처한다면 이는 지적인 나태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런지요.

앞으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우리 실정에 맞게 소화해내려는 노력이 반드시 反신자유주의라는 구호 아래 표출될 필요는 없다. 물론‘신자유주의-反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구분은 ‘민주-反민주’보다 좀 더 현실을 반영하고 좀 더 적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사회통합이나 연대의 가치도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편이라고 쉽게 나눌 수 있을까. 결국 이 문제도 광범위한 중간영역을 높고 쟁투를 벌여야 할 거 같다. 다만 최 교수님의 지적대로 레토릭보다는 레코드로 선의의 경쟁을 나눴으면 좋겠다.


061001
미시경제학 공부를 하다가 일반균형분석(general equilibrium analysis)이라는 화두를 얻은 건 뜻밖의 행운이다. 단기간의 부분균형분석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간을 포함해서 서로 연관된 모든 시장들을 함께 분석하는 일반균형분석의 아이디어를 이제야 깨닫다니 내 무식을 고백하는 거 같아 부끄럽다. 한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른 시장의 균형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가정하는 부분균형분석은 복잡한 경제현실을 단순화함으로써 특정 시장에서 균형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용이하게 분석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각 시장 사이에는 연관성이 존재할 수 있으며, 한 시장의 변화가 다른 시장의 균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분석 기법 모두 저마다의 가치와 유용성이 있지만 내게는 일반균형분석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제도를 고쳐나가는 시각이 좀 더 필요할 거 같다. 지금 당면한 현상 너머의 파급효과와 상호작용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그것이 좀 더 사회적 후생을 증진시키는 일일 것이다.

Posted by 익구
:

얼마 전 행정고시 대비용 행정학 무료 동영상 강의를 재미삼아 듣다가 고위 공무원이 될 여러분들은 공무원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답안을 쓰는 것이 좋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 관리자급인 고위 공무원과 현행 공무원 노조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수험생 신분에서부터 공무원 노조를 부러 부정하는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는 게 씁쓸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보장한’ 대표적인 법률인 국가공무원법 제65조는 다음과 같다. 사실상 정치적 행위라고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전면 금지되고 있는 셈이다.


제65조 (정치운동의 금지) ①공무원은 정당 기타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
②공무원은 선거에 있어서 특정정당 또는 특정인의 지지나 반대를 하기 위하여 다음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1. 투표를 하거나 하지 아니하도록 권유운동을 하는 것
2. 서명운동을 기도·주재하거나 권유하는 것
3. 문서 또는 도서를 공공시설 등에 게시하거나 게시하게 하는 것
4. 기부금을 모집 또는 모집하게 하거나 공공자금을 이용 또는 이용하게 하는 것
5. 타인으로 하여금 정당 기타 정치단체에 가입하게 하거나 또는 가입하지 아니 하도록 권유운동을 하는 것
③공무원은 다른 공무원에게 제1항과 제2항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거나 또는 정치적행위의 보상 또는 보복으로서 이익 또는 불이익을 약속하여서는 아니된다.
④제3항외의 정치적 행위의 금지에 관한 한계는 국회규칙·대법원규칙·헌법재판소규칙·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개정 1963.12.16, 1964.5.26, 1981.4.20, 1994.12.22>


지난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탄핵 정국 관련 시국 성명은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의문사위는 대통령 탄핵에 대한 시국성명서를 발표하여 야3당의 ‘국민주권 찬탈행위’를 규탄했다. 더 나아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지지’를 결의함으로써 공무원의 정치 참여에 대한 논쟁을 심화시켰다. 이 와중에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004년 3월 25일 중학교 교사 김모씨가 지난 2001년 10월 “초중고 교사의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을 금지한 정당법과 선거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청구인들과 같은 초ㆍ중등학교 교원의 정당가입 및 선거운동의 자유를 금지함으로써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규정한 헌법 제7조 제1항ㆍ제2항,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제31조 제4항의 규정취지”와 “국민의 교육기본권을 더욱 보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을 우선시해야 할 것이라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초ㆍ중등학교 교육공무원의 정당가입 및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합헌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헌재의 본안 판단 가운데 눈 여겨 볼 대목은 다음과 같다.


다.공무원 및 교육공무원의 정치활동 제한의 헌법적 정당성
(1)헌법 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공무원은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입장에 있으며 일부의 국민이나 특정 정파 혹은 정당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한편, 헌법 제7조 제2항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의 요청은 정권교체로 인한 행정의 일관성과 계속성이 상실되지 않도록 하고, 공무원의 정치적 신조에 따라서 행정이 좌우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공무집행에서의 혼란의 초래를 예방하고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헌법재판소는 1995. 5. 25. 선고한 91헌마67 결정에서 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의 필요성에 관하여,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므로 중립적 위치에서 공익을 추구하고(국민전체의 봉사자설), 행정에 대한 정치의 개입을 방지함으로써 행정의 전문성과 민주성을 제고하고 정책적 계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며(정치와 행정의 분리설), 정권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의 신분적 안정을 기하고 엽관제로 인한 부패ㆍ비능률 등의 폐해를 방지하며(공무원의 이익보호설),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르는 사회경제적 대립의 중재자ㆍ조정자로서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담당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것(공적 중재자설)”이라고 하면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요청은 결국 위 각 근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무원의 직무의 성질상 그 직무집행의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판례집 7-1, 722, 759).
헌재 2004.03.25. 2001헌마710, 판례집 16-1,422,436-436


헌재는 “초ㆍ중등학교의 교원들에게 정당가입과 선거운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입법론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현행 법률을 과잉입법금지원칙이나 평등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법학 공부가 일천한 내가 볼 때에도 해석론적으로 위헌이라고 판단할 여지도 적잖다. 논란의 핵심은 헌법 제7조 2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헌재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규정을 의무로 봤다. 그런데 의무를 보장한다는 건 대다수 한국어 사용자들의 상식에 어긋난다. 통상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것이며, 의무는 부과하고 부담하는 것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조악한 한국어 구사에 수치심이 없는 법률가들이 많으니 헌법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각종 학설과 판례는 그렇다고 쳐도 적어도 법조문만이라도 읽기 이해하기 쉬워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 일반 국민들이 법조문을 읽고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 아닌가.^^; 물론 이런 험담은 좀 지나친 감이 있다. 다른 헌법조문들을 보면 헷갈리는 헌법 제7조 2항의 해석이 좀 수월해질 거 같다. 가령 헌법 제6조 2항의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나 헌법 제8조 1항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는 조문을 보면 아무리 봐도 여기서 의무가 도출되지는 않는다. 또한 헌법 제38조인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나 제39조 1항인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처럼 의무의 경우에는 “진다”고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헌법 제7조 2항을 권리로 해석할 경우 더더욱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해석론적으로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이 특정한 계층이나 정파의 눈치를 봐서 이익집단의 사익에 복무하지 않기 위한 보호막을 마련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공무원들도 국민인데 너무 과도하게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위 공무원이나 하위 공무원이나 정치적 기본권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러나 그것의 확대는 하위 공무원부터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백 번 양보해서 정치적 중립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 우선순위는 정책결정권을 가진 고위 공무원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선거 낙선자를 고위 공직에 임명하는 보은 인사가 정치적 중립성이 모자랄 여지는 있다. 하지만 일선 구청에 근무하는 운전수나 전기기사에게까지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건 가스검침원들에게 토익 성적표를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지나치다.


“모든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일괄적으로 전면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임지봉 건국대 교수님과 “공무원 개인의 직무수행과 관련이 없는 한 정당 가입, 지지 표명 등 정치활동의 자유를 일부 허용하는 것이 옳다”는 장영수 고려대 교수님의 말씀에 거개 동감한다. 아울러 국가인권위원회가 2006년 1월 확정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s·NAP) 권고안에는 ‘공무원은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는 국가공무원법 제65조 1항과 ‘공무원은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9조 등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과도하게 금지하는 법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혹자들은 이 권고안대로 관련 법 개정이 되면 수십만에 달하는 공무원과 교사들이 정치활동을 해서 나라가 혼란스러울 것을 염려한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인공기를 흔들 것이라는 논리와 대동소이하다. 호주제 폐지 논쟁이 한창일 때 금수의 나라가 될 것이라며 반발하던 일부 유림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어떤 법률의 개폐문제에 있어서 반대하는 이들은 그 법률로 인해 지금 현재 발생하는 문제보다 그 법률이 개폐되었을 때 발생할 문제를 강조해왔다. 물론 논리 전개상 자연스러운 입장이지만 그 분들의 상당수는 자신의 예측가능성을 너무 과도하게 신뢰한다. 그래서 측정가능한, 관찰가능한 현실의 문제는 외면하는 우를 범한다. 나도 예측을 좀 해보자면 공무원과 교사들이 국민의 법 감정을 넘어 과도한 행동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 및 여성의 고용촉진을 위해 시행 중인 육아휴직제도가 남성들에게 그림의 떡으로 운용되고 있는 현실이 한 사례가 될 수 있겠다.


물론 업무상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무원의 직무 특성상 정치 행위와 업무 행위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은 정치행위 금지를 내포하는 개념이라고 해석한다. 쉽게 공박하기 힘든 일리 있는 견해다. 교사의 정치 참여가 학생들의 학습권이라는 또 다른 기본권을 침해하고 제한할 수 있다는 헌재의 고뇌도 충분히 동감한다. 하지만 공무원과 교사의 권리 확대가 일반 국민들의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할 것 같지는 않다. 혹여 수인한도(受忍限度)를 넘어선 경우가 있다면 관련 법률을 통해 처벌하면 그만이다. 아마도 추상적 조직으로서의 정부나 각 부처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제법 실현해낼지 모른다. 하지만 일개인은 불편부당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의사결정을 산술적 평균으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저마다의 생각과 견해는 늘 갈리게 마련이다. 어차피 공무원과 교사는 지위의 특성상 온전한 정치적 자유를 누리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제 자신을 감추고 숨겨야만 간신히 법을 지키는 상황은 고쳐야 한다. 범법자를 양산하는 법은 그 목표의 적절성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좋은 법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은 원칙적으로 공무원의 정치활동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당원가입은 물론 사직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마도 가능하다고 한다. 미국은 연방공무원에게는 공개적인 후보지지 의사표시, 정치자금 기부 참여 등을 허용하고 있으며, 주와 지방공무원에게는 정치현안에 대한 의견개시, 정당활동 참여, 특정정당후보를 위한 선거운동도 가능하다. 영국은 하위직에게는 정치활동을 완전히 보장하고 있으며, 중간직은 국회의원 출마는 금지하고 다른 활동은 기관장의 허가를 받도록 돼 있다. 고위직은 정당가입은 인정하나 그 외 활동은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일본이 우리나라처럼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자민당 일당독재에 가까운 일본 정치 수준을 우리와 비교하는 게 좀 민망하다. 일본 우익들의 모델을 차용할 까닭도 없다. 하기야 우리 법률의 상당 부분이 일본 것을 베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제부터 우리 실정에 맞게 우리 국민의 권익을 더 신장하도록 고쳐나가면 될 것이다.


어느 친구는 삼성병원 면접 때 노조 가입 여부에 대한 질문에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어서 다른 병원에 취직했다고 한다. 이태 전 나는 노사관계론 강의 시험 시간에 노동자라고 쓰지 않고 줄곧 근로자라고 써 내려갔다. 여기까지는 법률용어에 충실한 것이라 그리 문제될 것은 없지만 답안 내용도 논란되는 사안마다 노조에 비판적인 내용으로 일관했다. 평소 생각이기도 했지만 사실 조금이라도 점수를 더 받으려는 속셈도 섞여 있었다. 적어도 참된 지식을 흠모하고 기품 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녀석이라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사무실 폐쇄 행정대집행이 100%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무원과 교사가 보수를 차등 있게 지급 받을 자유(?)를 강조하기 이전에 제가 믿는 바에 꿈을 투자할 자유부터 보장하는 건 어떨까. 의무를 지울 때는 재빠르면서 권리를 부여할 때는 머뭇거리는 것만큼 법치국가를 초라하게 만드는 건 없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헌법 제11조가 조문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 이 불평등한 인생사에 법마저 사람을 차별한다면. - [無棄]

Posted by 익구
:

060918
영국의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1830∼94)의 노래(Song)라는 시는 참 슬프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죽으면/ 나를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When I a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 for me)”로 시작하는 이 시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고종석 선생님은 “‘노래’는 그 자체가 어여쁘고 구슬픈 유언”이라고 하셨다. 나는 특히 1연, 2연의 후렴구 부분이 짠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으면 나를 기억하시고, And if thou wilt, remember,
잊고 싶으면 잊어버리세요. And if thou wilt, forget.

아마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할 거예요. Haply I may remember,
아니, 어쩌면 당신을 잊을지도 모릅니다. An haply may forget.


우리는 각골난망(刻骨難忘)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을 너무 쉽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늘 마음에 두겠다며 호언장담하던 게 얼마나 허망하고 허술한지를 알겠다. 하지만 그래도 내 자신이 누군가에 오래도록 곁에 두고픈 동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움에 사무치고 외로움에 절망할 때 하잘 것 없는 저란 녀석의 손을 잡아주었던 아름다운 마음들을 떠올리고 싶다. 나란 녀석과 교류 나눴던 순간이 쥐꼬리만큼이라도 유익하고 재미났다면 한꺼번에 잊지는 말기를 청하고 싶다. 인연의 끈이 닳을 대로 닳았을 때 다시 이을 수 있도록 아주 놓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를 잊고 싶으면 마음껏 잊게 해주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 함께 한 순간에 충실했다면 헛된 집착을 할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또 얼마나 맍은 것을 잊고, 버려야 할까.


060919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2005년 11월 발의한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 폐지법률안’이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이영순 의원은 “재향군인회는 정치활동뿐 아니라 '대한민국 안보'를 들먹이며 사상공세를 벌이고 있다. 노골적으로 친미사대성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친일에서 친미로 옷을 갈아입고 반공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왔다”고 주장했다. “재향군인회법 폐지는 재향군인회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자체적인 정관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고 다른 비영리 민간단체처럼 활동하면서 필요한 예산은 국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법으로 국고를 보조하도록 규정된 특혜를 없애자는 것”이라는 이영순 의원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감한다.

재향군인회가 공법상 특수법인의 지위를 부여받기에는 그간의 역할이 너무 시시했다. 극소수 군장성 출신 중심의 비민주적인 운영도 민망한데 일반 사병 출신 회원들의 의견 수렴은 별로 없이 이런저런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도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더군다나 극우파들과 짝짜꿍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면서 “호국정신의 함양 및 고취(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 제4조의2)”를 하겠다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제 자유시장경제가 살아 숨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재향군인회는 특권적 지위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다. 비판의 자유는 재향군인회 상층부에게만 소중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애국과 우국도 제발 독점하지 마시라. 국가안보는 협박과 호들갑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060920
고대 인촌기념관에 있는 일민국제관계연구원에 엄상윤 선생님을 찾아뵈러 갔다. 대학에서 만난 숱한 스승들 가운데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눈 선생님이다. 저녁에 대학원 강의가 있으셔서 간단히 저녁 먹고 담소를 나누다가 왔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받기만 한 거 같아서 민망하다. 머잖아 내가 돈을 버는 날에는 꼭 선생님께 식사 대접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는 선생님께 정치학원론, 국제정치의 이해라는 강의를 배우면서 공부하는 훈련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시일이 지나면서 많이 흐려지기는 했지만 그 고갱이는 오래도록 간직하겠다. 내가 무식하다는 소리를 면한다면 상당 부분 선생님 덕이다. 모든 스승들이 그렇겠지만 선생님께서도 당신의 제자가 큰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 내가 그 바람에 부응하는 제자가 되고 싶다. 나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마른 녀석이니까.^^;


060921
이덕일 선생님의 『조선선비 살해사건』에는 최영과 정몽주의 실수를 지적하는 대목이 나온다. 최영이 팔도도통사로 요동정벌군을 계속 지휘했더라면 요동정벌을 해볼 수 있었고, 회군도 막았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그는 우왕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우왕 곁에 남았고 고려의 멸망을 초래했다. 적어도 이성계와 조민수가 회군을 요청했을 때 회군을 수락할 것이 아니었으면 최영이 서둘러 현장에서 이성계와 조민수를 통제하고 군대를 지휘했어야 한다.

최영의 실패가 직접 나서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면 정몽주의 실패는 너무 나선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성계가 낙마해서 몸져누웠을 때 이성계 일파를 귀양 보내며 정국 장악의 실낱같은 희망을 보였다. 하지만 위독하다던 이성계가 개경으로 돌아오자 문병을 핑계로 다녀오는 길에 이방원이 보낸 자객의 쇠도리깨를 받는다. 그런 정세 파악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시점에서 혈혈단신으로 찾아가는 여유를 부려서는 곤란했다.

여하간 두 위인의 엇갈린 실책으로 말미암아 고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두 분의 패배를 보며 스스로 직접 나설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분별하는 게 만만치 않은 난제임을 알겠다. 그러나 만약에 최영과 정몽주가 제대로 된 선택을 했다손 하더라도 내부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안 부재에 시달리던 고려는 가까운 시일에 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웅 몇 명이 인력으로 막기에는 고려의 말기는 너무 구접스러웠다. 그런데 나라가 쓰러질 때까지 탐욕을 즐기던 권문세족들은 조선왕조가 개창되고 나서 응분의 대가를 치렀을까. 그게 궁금하다.


060922
하얗고 고운 피부를 가진 남자를 만났다. 고운 남자는 희소성이 높다는 경제학적 이유(?)를 떠올리는 와중에도 눈길이 자꾸 갔다.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했지만 왠지 여성스러운 느낌까지 풍겼다. 그 남자의 언행은 자주 쭈뼛쭈뼛할 거 같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팔목이 나만큼이나 가는 남자를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남성피부는 여성피부에 비해 피부가 약 30% 가량 더 두껍고, 모공이 크기 때문에 그 만큼 피지 분지가 활발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노폐물이 많아 피부가 쉽게 더러워지는데 과음, 흡연까지 합세하니 피부가 수분을 잃고 거칠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배우 이준기로 인한 예쁜 남자 신드롬을 못마땅하게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꽃미남, 얼짱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물론 획일적이기보다 좀 더 다양한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붙인다. 프티 부르주아적 소리를 늘어놓고 있지만 예쁘다는 좋은 말이 어느 한 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가치가 되는 건 어찌되었건 반가운 일이다. 좀 더 많은 예쁜 남자, 강한 여자가 양성평등을 좀 더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품어본다.

뉴욕타임스가 2004년의 10대 신조어 중 하나로 선정한 말로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 미적 감각을 추구하는 남성을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라고 한다. 반대로 사회적 성공과 고소득을 추구하는 씩씩한 여성은 콘트라섹슈얼(Contrasexual)이라 일컫는다. “자신감 같은 긍정적 남성의 면모를 갖추고, 기존 남성에게는 없는 감성 부족 같은 약점을 극복한 사람”이라는 뜻의 위버섹슈얼(Ubersexual)이라는 말도 들린다. 심리학자 융(Jung)은 모든 인간은 그 정신 속에 자신과 반대되는 성적 요소, 즉 남성은 아니마(여성적 영혼)를, 그리고 여성은 아니무스(남성적 영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융이 말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극단적이면서도 서로 조화하고자 한다. 육체는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있지만, 인간성의 본질은 원래 양성적이라는 것이다. 인격의 성숙을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라는 사회적 역할에 집착하기보다 내면의 인격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 이론의 핵심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시대에 양성성을 갖춘 인간상이 추구된다면 외모에 대한 집착도 상당부분 진정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외모에 무심해서 날로 거칠어지는 피부를 방치하고 있는 내 자신에 좀 미안해졌다. 매트로섹슈얼에 대항하는 말로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 시간과 돈을 투자할 의지와 관심이 없는 레트로섹슈얼(retrosexual)이라는 말은 나를 두고 한 말이다. 내 견고한 내면지상주의(?)를 좀 거두고 외면의 아름다움도 무시하지 말아보자. 세안과 면도만이라도 좀 더 신경 써서 해봐야겠다. 아참 기름종이를 사용해보는 건 어떨까?^^;


060923
2006년 정기 고연전을 다녀왔다. 전날까지만 해도 경기장은 가지 않거나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나서 작년에 발라놓고 온 꿀(?)을 찾아 벌처럼 날아들었다. 휴가 나온 군인 친구들을 만나는 게 특히 반가웠고, 그간 못 보고 지내던 사람들과 살가운 인사 나누는 재미가 쏠쏠했다. 경영대 다섯 개 반을 돌아다니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 인사 나누려다가 그만 뒀다. 서서히 잊혀지는데 방해가 될 거 같았다. 이제 내게도 언제든 찾아와 머물 곳이 생겼다니 감동의 도가니다.

안암역 참살이길로 와서 선배님들께서 술집 여기저기에서 후배들에게 무료로 음식과 주류를 제공하는 “나비처럼 돌아와 범처럼 쏜다” 행사에 참여하려고 보니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나는 『시경』에서 “공짜밥을 먹지 않는다(不素餐兮)”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결국 02, 03, 04학번이 따로 모여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훌쩍 지나가 버린 세월에 대한 한탄이 간간이 나오기는 했지만 무척 유쾌한 자리였다. 내 대학생활이 평범하지는 못했는지 친하게 지내는 동기들이 많지 않은 게 늘 아쉬웠는데 02학번 동기들과도 환담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냥 그 자리에 끼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모두들 의기충천하여 기차놀이도 했는데 학교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인사 한 번 하고 맥주 네 병을 얻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배반이 낭자하던 그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처럼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자정 즈음 들어갔던 뒤풀이 장소에서는 놀랍게도 처음처럼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동난 것은 아닐 테고 아직도 존재한다는 참이슬만 가져다 놓는 얄미운 술집이었던 것이다. 분개한 나머지 나는 독점이 싫다는 지론을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말했다. 무리한 사업다각화 및 차입경영으로 부도 난 진로기업에 대한 험담도 늘어놓았다(자기자본비율이 2.69%에 불과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이제 새로운 주인을 만나 새출발을 하겠지만 참이슬에 포개지는 진로의 이미지는 지우기 힘들다. 아름다운 말만 늘어놔도 모자란 자리에서 쓸데없이 남을 구박하는 발언을 한 거 같아 후회스럽다.^^;

작년 고연전 뒤풀이 때 패배의 쓴잔을 연거푸 들이켰다가 지갑과 디카를 분실했던 아찔한 추억이 있는지라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냥 전철 막차 타고 오려던 계획은 금세 사라지고 아침 6시가 넘어서까지 놀고 먹어버렸다. 스스로 민망한 마음에 그냥 좀 이따가 다같이 자리 파하자는 후배들의 권유를 애써 뿌리치고 도망치듯 집에 왔다. 생각해보니 해장국 한 그릇 먹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올해도 즐거운 고연전이었다. 아니 점점 더 재미있어서 부담스러울 정도다. 1대 0으로 앞서던 축구 경기 종료 1분 전에 터진 동점골이 못내 아쉬웠지만 경기장의 반쪽이 누렸을 짜릿함을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060924
박강님, 봄봄님 부부 댁에 집들이를 다녀왔다. 사실 오후 4시 30분까지 고연전 뒤풀이 숙취에 시달리느라 거의 못 갈 뻔 했으나 다행히 정신이 맑아져서 조금 늦게나마 출발했다. 가보니 박청희님과 조르바님이 와 계셨고 다섯이서 맛난 저녁을 먹었다. lee856님이 불참하셔서 못내 아쉬웠다. 결혼식 비디오를 봤는데 나와 조르바님이 축가하는 장면은 참 겸연쩍었다.^^; 다시는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했다. 숙취 해소를 위해 술은 안 먹겠다고 결심했지만 역시나 탐스러운 와인과 설중매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다. 백포도주는 포도를 까서 만들었다는 주장과 청포도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대립했는데 찾아보니 둘 다 맞다. 그냥 포도는 껍질을 까고, 청포도는 껍질째로 쓴단다. 내가 좀 덜 가난하거나, 덜 충동구매 했다면 남는 돈으로 와인을 즐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국 개신교의 다양한 분파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한국 개신교계의 주류가 장로회에서 갈라져 나온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가 갈라진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예장과는 무척 다른 양태를 가지고 있어서 재미났다. 불교에서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법화종, 화엄종, 열반종 같은 종파가 어지럽게 나뉘듯이 개신교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나는 정부조직개편안에서 문화관광부를 문화체육관광부로 바꾸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박청희님은 문화관광부의 공식 명칭은 문화부인데, 문광부로 많이 쓰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문화체육관광부를 줄여서 문체광부로 부를 수는 없을 테고 아마도 본래 이름인 문화부로 불리게 될 거 같다.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군에 끼지도 못하던 시절에 노무현의 가치를 대중매체에서 최초로 말한 이가 고종석 선생님이라는 박강님의 분석이 흥미진진했다. 되돌아보니 그런 것도 같다. 그랬던 고 선생님이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환멸을 느끼신다니 슬픈 일이다. 제 지지자들에게서 버림 받는 정치인처럼 처량한 것도 없다지만, 자신의 꿈을 투자했던 인물에게서 실망을 느끼는 지지자도 서럽기는 매한가지다.

청원이가 휴가 나왔다가 들어가기 전날이라 좀 더 앉아있지 못하고 태릉입구역으로 향했다. 홍제역에서 집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리는 긴 거리라 왕복하며 고종석 선생님의 새로 나온 시평집을 절반은 읽었다. 나는 내 문장 하나하나가 고 선생님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전에 열린마음님이 이야기하셨듯이 나도 고 선생님의 오마주(hommage)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청원이를 만나 서로가 준비하는 시험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벌어먹고 살기의 어려움에 장탄식을 늘어놓기도 했다. 내가 별 탈 없이 밥 벌어먹고 산다면 다섯 가운데 하나는 청원이의 공으로 돌려야 될지도 모른다. 어느덧 그만큼 내게 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금세 배가 꺼지고 허기가 진다. 산해진미를 먹어 놓고서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분식집에서 라볶이와 참치김밥을 먹었다. 단잠을 잘 수 있었다.

Posted by 익구
:

060911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지난 9월 5일 유럽 순방을 앞두고 유럽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양한 고전을 인용하며 박학다식을 과시했다. 영국 더 타임스 기자가 “잠자기 전에 주로 읽는 책은 무엇인가. 책을 덮은 뒤 잠 못 이루게 하는 고민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인용해 답변하겠다”며 중국 고전 명구들을 내리 인용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이소(離騷)’가 인상적이었다. “긴 한숨으로 눈물을 가리며, 백성의 수많은 고통을 슬퍼한다(長太息以掩涕兮, 哀民生之多艱)”라며 애민정신을 넌지시 내비치는 모습에서 중국의 거대한 문화적 힘을 느꼈다면 지나친 호들갑일까. 그는 일전에 “배움의 길은 까마득하고 멀지만, 나는 장차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찾아내리라(路曼曼其修遠兮, 吾將上下而求索)”라는 이소 구절을 인용해 중국의 잠재적 힘을 과시한 바 있다.

2005년초 열린우리당 임채정 당시 당의장은 굴원의 ‘어부사(漁夫辭)’에서 유명한 구절인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을 인용해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하는 실용노선을 강조한바 있다. 물론 그런 유연한 자세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아쉽다.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어 쓰고,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함을 읊조리는 사람도 몇 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라고 말한다고 해서 굴원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 않은가.

염결성을 강조한 나머지 비타협적이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라는 게 아니다. 다만 국민들에게는 봄바람처럼 자애로우면서, 스스로에게는 가을서리처럼 까다롭기를 바랄 뿐이다. 남 위에 있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남을 대표하고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060912
신라 제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김춘추-외교의 승부사』(박순교 著, 푸른역사 刊)란 책의 서평을 읽다가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생각해봤다. 삼국 가운데 거의 모든 게 뒤쳐졌던 신라가 결국 삼국을 통일한 것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광활한 만주벌판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장탄식을 늘어놓기 일쑤다. 일전에 소설가 이문열 선생은 계간 역사교양지 <한국사 시민강좌> 32호에 기고한 글에서 18세기 이후에나 형성된 민족개념을 신라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삼국통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민족주의적 관점이었다. 이민족인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게 신라를 비난하는 이유”라고 말하며, “1300년 전 신라에게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로 민족적 동질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영어를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사람을 무식하다고 나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도 국민국가라는 근대적 개념으로 고대사를 재단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기에 이문열의 주장은 수긍할 점이 많다. 그런데 글 끄트머리에 고구려 중심사관이 “뭔가 정치적으로 의심쩍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논의에 스스로 먹칠을 한다. 그의 논리를 조금 거칠게 말해보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분개하는 이들은 북한의 꼭두각시놀음에 당하고 있다는 것이 되기도 한다. 민망하다. 좋은 문제 제기가 그 때문에 엉망이 되버렸다. 하기야 굳이 이문열이 아니더라도 신라의 삼국통일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역사가들이 하고 넘쳤으니 하나쯤 빠져도 무방하겠다만서도.

비록 삼국이 민족공동체 같은 관념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삼국간의 이질감이 수나라나 당나라 같은 중원 국가들에 대한 이질감에 비해 더 적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중국에 비해 낮은 이질감, 낮은 수준의 친밀감 정도로는 서로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후발주자인 신라가 당나라와의 연합에 성공해 대역전극을 이룬 것은 그 나름의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무열왕은 고조선 멸망 이후 800여 년 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과 분열을 종식한 공이 있다. 더군다나 백제처럼 충신의 간언을 멀리하지 않았고, 고구려처럼 핵심 지도부가 내분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러나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지적대로 “고구려 영토의 회복의지라든지 북방으로의 진출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외세의 힘을 빌지 않고, 고구려 계승의지를 통해 북방진출 의지를 누차 피력했던 고려의 통일에 견주어 신라의 통일이 많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신라라는 거름에 힘입어 고려라는 거목이 자랄 수 있었다. 뒷사람이 보기에 앞사람이 한 행적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 하기는 쉽지만 당대를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신라에 대한 미움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그네들이 성공하게 된 원동력 가운데 배울 점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역사에서 억울한 패배는 많지만, 거저 이루는 승리는 없기에.


060913
차선의 이론은 만족되지 못하는 효율성 조건의 수를 세어 이를 후생 평가의 근거로 삼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만족되지 못하는 조건의 수와 사회후생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극단적인 경우 한 조건만 만족되지 못한 상황보다 다섯 개의 조건 모두가 만족되지 못한 상황에서의 사회후생이 더 높을 수 있다. 이 이론은 효율성을 위해 만족되어야 하는 여러 조건 중 가장 사소한 것 하나만 만족되지 못한 상태가 반드시 차선의 상태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 이준구, 『새열린경제학』, 2001, 다산출판사, 339쪽

립시(R. Lipsey)와 랭카스터(K. Lancaster)가 주창한 차선의 이론(second best theory)은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선택하라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완전한 사회에서 무엇이 차선인가”를 묻는 심도 있는 질문이다. 차선이론에 따르면 점진적 사회개혁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비합리적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고 해도 예기치 않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막으면 저기서 새나간다는 것이다. 부분적인 개편안이 반드시 더 놓은 사회후생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은 경청할 만 하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상수(常數)에 가깝다.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완전하지 못한 사회를 조금 덜 나쁘게 만들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영원히 추진될 것이다. 상충관계에 있는 효율성과 공평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면서 사회후생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실현가능한 대안을 찾아보는 수밖에. 우리는 부지런히 최악에서 차악을 골라내고, 최선을 못한다면 차선이라도 일구어야 한다.


060914
익구닷컴에 "알쏭달쏭 남북한 국방비"라는 글을 쓰다. 북한 관련 통계는 너무 불분명하다. 세상에 저렇게 폐쇄적이고 제 멋대로인 나라와 통일을 해야하는 대한민국의 운명이 너무 가련하다. 분단 비용으로 눈에 보이는 군사적 지출 외에도 분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어가는 협상 비용,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민족사적 과제 등을 꼽는다. 그런데 나는 분단 문제를 고민하는 지력(知力) 비용도 막대하다고 생각한다. 북한 문제 고민할 시간에 다른 공부를 했다면 얼마나 생산적일까!


060915
내 영혼의 스승 고종석 선생님의 신간이 나왔다. <한국일보>, <시사저널>, <씨네21> 등의 매체에 실은 글 중에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글들을 솎아낸” 다음 골라 모은 것이라고 한다. 책 제목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에서 말하는 신성동맹(神聖同盟)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직후인 1815년 9월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군주들이 파리에서 맺은 반동적 기독교 동맹을 지칭한다. 4국동맹(러시아ㆍ오스트리아ㆍ프로이센ㆍ영국사이의 동맹)과 더불어 성립한 빈체제는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을 탄압한 보수 반동 체제를 일컫는다.

선생님은 이 제목의 칼럼에서 반동정치세력과 반동언론권력 간의 신성동맹과 이념적, 정책적 차이가 있다고 여기는 참여정부와 집권여당의 착각을 질타하신다. “언어는 온건할수록 좋고, 실천은 어기찰수록 좋다”며 신성동맹의 눈치를 보느라 최소한의 개혁도 지지부진한 집권자들의 안일을 지적하신다. 선생님은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실망을 참 여러번 토로하셨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내 생각이 그 사이에 크게 변했다. 그러나 변한 것은 내 입장이 아니라 그의 입장일 것이다’고 책머리에 적고 있다니 슬픈 일이다.

신간에 묶여진 대부분의 칼럼을 그 때 그 때 챙겨 읽은 나이지만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로 이 책을 사서 읽고 가슴이 짠해질 예정이다. 다음 주 일요일로 예정된 고종석 팬카페 분들과의 모임에서 이 책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고 선생님의 쓴소리가 너무 과도하다고 핀잔을 늘어놓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자마자 선생님께 투정 섞인 전자우편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이 강고하고 굳건한 집단주의자들의 획일주의적 수구동맹에 투항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두렵다. 자신이 넘치는 말보다는 배운 대로 살겠다는 누추한 실천이 필요하다.


060916
KBS 파워 인터뷰에서 한비야 선생님이 나오셨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면 부끄러운 생각이 앞서게 마련이지만 한비야 누님(이렇게 부르고 싶다)은 내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신이 나게 해주셨다. 누님은 “만만한 사람이 열정과 노력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아니겠냐며 겸양하셨지만 정말 이 시대의 역할 모델이 될만한 스승이다.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겠어요”라는 씩씩한 목소리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 “우리들이 가진 생각의 틀 밖으로 나가보자”는 제안이 정말 와 닿는 사람, “언제 마지막으로 가슴 뛰는 일을 해보셨어요?”라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꾸짖음을 주는 사람, “百見이 不如一行이예요”라는 말이 천금처럼 들리게 하는 사람... 멋있는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누님이 역설하시는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정글의 법칙이 아닌 강자가 약자를 돌보는 사랑과 은혜의 법칙”에 나도 동참하고 싶다.

문화평론가 김갑수 선생님은 “관계없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게 낯선 한국인”이라며 아무 관계없는 민족, 다른 지역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냐는 질문을 던지셨다. 비야 누님은 1950년부터 1990년까지 도움을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언급하시며 “그 때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요?”라며 반문하셨다. “돈이 남아서 우리를 도운 건 아닐 거예요”라며 우리가 이제 도울 때라고 말씀하셨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게 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도 하던데 베푸는 데 조금 더 넉넉해져도 좋겠다.

그가 책에서 쓰기도 했지만 소말리아 국경에서 만난 한 케냐인 안과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누님이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이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라고 물었을 때 그 의사 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자신의 재주가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자는 등의 말은 나도 참 많이 하고 다녔는데 나는 그리 실천하지 못했고 그 의사 선생님은 실천하고 있었다.^^;

비야 누님은 여자치고도 작은 발 사이즈인 225mm라고 한다. 어른 신발이 없어서 아동용 신발을 사 신어야 한다고 한다. 그 작은 발로 세 바퀴 반을 돌고, 국토를 종단했다. 팔목 가는 게 콤플렉스인 나이지만 내 작은 손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을 거 같다. 함부로 포기하지 말자. 그러고 보니 비야 누님이 어느 강연회에서 손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이 있던데 나도 꼭 실천하고 싶다.

나는 이 손이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으로 쓰였으면 좋겠다. 상처를 어루만줘 주는 손으로 썼으면 좋겠다. 나는 적어도 이 손이 약자의 뒤통수를 치는 손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옳지 못한 돈을 세는 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지구 세 바퀴 반 돌고 내린 결론 ‘세상은 좁다’”, 이코노믹리뷰, 2006. 02. 24


060917
평교수로 복귀한 서울대 정운찬 교수님의 첫 강의는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지난 9월 1일 경제학연습2의 첫 강의 시간을 스케치한 기사를 읽다가 화들짝 놀랐다. 정운찬 교수님은 경제학과 학생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자신의 학창 시절 일화를 소개하셨다.

누가 자신에게 어느 대학을 다니냐고 물으면 경제학과를 다닌다고 답했고 재차 물으면 ‘상대’ 경제학과를 다닌다고 했으며 그래도 학교를 물으면 “당연히 서울대지 다른 대학을 다닐 데가 있느냐.”고 답했다는 것이다. 경제학과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는 이야기라지만 마지막 말씀은 좀 지나쳤다. 물론 자신의 후배들에게 격려하는 말씀으로 하신 것이니 웃으며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적 명망을 얻고 있는 정 교수님이신 만큼 자신의 말에 실릴 무게를 인식하셨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지난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고대 나오고도 기자가 될 수 있냐는 요지의 발언을 해서 서울대 중심주의라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당시 그 발언이 100%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일국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의 발언치고는 너무 천박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님이나 이 후보님의 농담 어린 말씀들은 서울대가 아닌 다른 대학을 다니는 나로서는 참 무서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도 애교심이 넘쳐서 오버를 한 적이 참 많다. 자신의 지적 고향이 그립고 애틋한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나쳐 남에게 역겨움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지 점검해봐야겠다. 자신의 것을 사랑하는 데도 절제가 필요한 모양이다.

Posted by 익구
:

일전에 2005년 4월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11기 3차 회의에서 공개된 북한의 2005년 예산은 북한 환율을 적용해봤을 때 28억7,000만 달러 정도라는 보도를 접하고 놀라워했던 적이 있었다. 북한은 국방비가 전체 예산의 15.9%인 북한 돈 618억원(한국 돈 약 4,600억원)을 배정했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공개 된 것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5년 한국 정부 예산이 195조원었고, 국방비가 22조 5,129억원이었던 것을 따져볼 때 단순 수치로는 북한 정부 예산과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그런데 두 해전 기사를 보니까 2003년 3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10기 6차회의에서는 예산 지출총액이 114억9천529만달러이며, 15.4%인 17억7천28만 달러를 국방비로 책정했다고 한다. 그 당시 분석으로는 국방비를 실제로는 50억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지적에 따르면 “북한이 발표하는 국방비는 인건비와 장비운영비 등 일부 경상지출만 포함한 것이고, 무기ㆍ장비 획득비나 연구개발비 등 핵심항목은 다른 예산항목으로 은폐하고 있다”고 한다. 국방비를 어느 범위로 하느냐에 따라 액수가 천차만별인지라 정확한 비용을 추산하기는 참 힘들다.


북한의 통계가 아무리 들쭉날쭉하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어떻게 이태만에 정부 예산이 3분 1 수준 이하로 축소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하기야 북한 관련 통계는 거의 다 추정치이고, 발표된 것도 곧이곧대로 믿기가 힘든 관계로 이런 비교가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확실히 북한 예산이 줄어들었고, 이는 계속되는 경제난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국방비 지출은 점점 더 한계에 다다르고 있고,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도모할 수 있는 핵 개발을 들고 나온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 같다. 나는 남북문제에 식견이 없는 만큼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불분명한 통계에 불투명한 전망이라니 찰떡궁합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9월 12일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올해 월드 팩트북 (World Factbook)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세계 각국의 군사비 지출에서 미국이 5,181억달러로 단연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어 2위는 중국으로 814억달러였으며 3위 프랑스 450억달러, 4위 일본 443억달러, 5위 영국 428억달러로 집계됐다. 한국은 210억5천만달러로 8위에 올랐으며 2002년 추정치로 50억달러를 사용한 북한은 22위였다. 북한의 2005년 예산 자료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텐데 업데이트를 안 한 것인지 아니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선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북한의 군사 위협을 강조하기 위해 줄어든 군사비를 반영 안 한 것은 아닐까 내 멋대로 추측해본다.^^;


물론 남북한의 경제체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남북한의 군사비 차이는 줄어들 여지가 있다. 통일연구원의 정영태 박사의 주장대로 “북한의 경우는 무기 개발 체계에 있어서 그 비용이 지불 안 해도 좋은 것이 너무 많이 있고, 모든 것이 국가 소유”이고, 인건비나 복리후생비가 남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게 든다. 2005년 8월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펴낸 “'05 국방예산 분석·평가 및 '06 전망”이란 자료집에 따르면 국방비 중 인력운영비 비중은 1990년 40%에서 2000년 46.5%, 2004년 49.1%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다가 2005년에는 47.9%선을 유지하고 있다. 인건비와 급식비, 피복비를 합한 군 인력운영비가 전체 국방예산의 절반 수준에 육박해 전력투자비와 경상사업비를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실질적으로 군사전력을 높이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남북한의 격차가 생각보다 작을 수 있다.


아무리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국방부는 너무 겸손한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알기로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북한의 군 전력이 우리와 비슷하거나 조금 앞서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최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해서 국방부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는 쪽에서 우려하는 군사력 열세 상황을 앞으로 군사력 증강을 통해 메우겠다며 자신감이 넘친다. 하지만 국방부의 우리 군 전력에 대한 설명은 여러모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대한 반성은 별로 보이지 않고 오로지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수년 간 북한을 압도하는 국방 예산을 운영하면서 고작 이런 식으로밖에 쓰지 못했는지 엄중하게 묻고 싶다. 사회경제적 측면에 바탕을 둔 종합적인 전쟁수행 능력을 구축해내지 못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하지 않을까. 2005년 54만 사병의 1년치 봉급 총액은 2900여억원이라고 한다. 3800여명인 전국의 예비군 동대장 봉급 총합보다 조금 많은 정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남는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에 쓰인 걸까. 제 나라 인민을 굶주리게 만드는 초라한 나라보다 못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워서 해본 소리다.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건 군대도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에 괜히 쓴소리를 해봤다. 아무쪼록 우리 국방부가 들인 돈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길 바란다. 끝으로 증액되는 국방비의 상당 부분은 그간 혜택을 받지 못했던 50만명이 넘는 사병들의 복무 환경 개선에 투자할 것을 촉구한다. - [無棄]

추신 - 국방비와 군사비는 좀 더 엄밀한 학술적 개념으로는 차이가 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그냥 동의어로 보고 혼용해서 썼음을 밝힌다.

Posted by 익구
:

옛사람들은 자신의 호를 짓거나 남에게 호를 지어 줄때 그 글자의 출전이나 뜻을 밝힌 글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호변(號辨) 또는 호기(號記)라고 하는데 옛사람들의 글 중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새로 바꾼 호에 대한 호변을 좀 늘어놓으려고 합니다. 소선(小鮮)을 쓴지 7개월 만에 새로운 호를 쓰게 되어 제 변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민망합니다. 하지만 제가 쓰는 호라는 게 재미 반, 목표 반이니 만큼 앞으로 평생 쓰겠다 싶은 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또 변경되고 그럴 듯합니다. 아호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 소개는 익구닷컴 “아호(雅號) 단상 - 小鮮에 부쳐”라는 글을 참조해주세요.



내 초등학교 일기장에는 『사기』 맹상군열전(孟賞君列傳)을 읽고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맹상군의 정신을 본받아야겠다는 구절이 보인다. 얼마 전에는 역사 속 장애인 이야기를 다룬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제목의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 책의 모티브가 된 것은 박연의 상소문이었는데, 박연은 시각장애 악공들의 처우 개선을 요청하며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다(天下無棄人也)”고 말한다.<주1> 물론 무기(無棄)라는 표현은 비단 박연의 독창적인 표현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자주 쓰이는 관용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전국시대 제나라의 맹상군은 그 전성기 때 6만호의 식객들을 거느리고 살았다고 한다. 오만 사람이 다 모였을 텐데 그러다 보니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고사도 나오게 된 것이다. 닭 울음소리나 내고 개구멍으로 물건을 훔치는 따위의 변변치 못한 재주도 버리지 않았던 맹상군의 사람 쓰는 재주는 오늘날에도 많은 영감을 준다.<주2>


버림이 없다(無棄)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는 『춘추좌전』 성공(成公) 9년조에 거(莒)나라가 방비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초나라에 망한 사실을 둔 이야기<주3> 가운데 나오는 “비록 실과 마로 짠 베가 있다 해도 띠풀이나 왕골 같은 물건을 버리지 말 것이며, 희성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할지라도 여위고 못생긴 이를 버리지 말 일이다. 무릇 모든 군자에게는 자신의 결함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雖有絲麻 無棄菅蒯 雖有姬姜 無棄蕉萃 凡百君子 莫不代匱)<주4>”가 있다. 여기서는 거나라가 방비를 소홀히 함을 지적하며 유비무환의 자세를 강조한 말이지만 뛰어난 것이 있다고 모자란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자세를 일컫는 말로도 많이 쓰이게 된다.


명주실(絲)과 삼실(麻)은 좋은 옷감을 만드는 실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을 비유한다고 할 수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질 나쁜 갈(菅)이나 사초(蒯)로 비유된 미천한 사람을 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무기관괴(無棄菅蒯)<주5>의 고사는 『삼국사기』 설총 열전에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설화로 알려진 화왕계에서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의 말 가운데 “옛말에 이르기를, 비록 사마(絲麻)가 있다고 해서, 관괴(菅蒯)를 버리는 일이 없고, 군자는 부족에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故曰 雖有絲麻 無棄菅蒯 凡百君子 無不代匱)”라며 춘추좌전을 인용하는 대목이 나온다.<주6>


『도덕경』 27장에는 “그러므로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도와주고, 아무도 버리지 않습니다. 물건을 잘 아끼고, 아무것도 버리지 않습니다. 이를 일러 밝음을 터득함(襲明)이라 합니다(是以聖人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라는 구절이 있다. 왕필(王弼)은 주석을 통해 성인은 나아갈 것과 향할 것을 만들어서 진보에 뒤쳐지는 사람들을 못났다고 버리지 않으며, 저절로 그렇게 됨을 도와줄 뿐 새롭게 일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다”라고 풀이한다.<주7> 노자의 “사람을 버리지 않음”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갈라서 차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과 사물을 한결같이 대한다는 점에서 보통사람의 차별주의적 세계관을 뛰어 넘어 선악과 시비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 같아 조금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공허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혹은 세속적으로 해석해서 사람을 구제하기를 즐기며, 스스로의 편견으로 말미암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없는 자세로 본다면 얼마든지 실천 덕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회남자』에서도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 “사람에 버릴 사람 없고, 물건에 버릴 물건 없다(人無棄物 物無棄物)”고 말하고 있지 않나 싶다. 편견과 집착을 버리고 사람을 대하려는 노력은 『맹자』에서 “탕임금은 중용을 실천하시고, 어진 이를 쓰는 것에 모난 것이 없으셨다(湯執中 立賢無方)”라고 한 것과 통한다. 無方을 “일정한 방법이 없다”로 해석하여 신분이나 지역 또는 출신을 따지지 않고 어진 사람이라면 등용했다라고 풀이하기도 하고, “같은 무리를 찾지 않는다”라고 해석하여 오직 그 사람이 현명한가 아닌가로만 판단해야 한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편견과 편애에 대한 절제와 경계를 일컫는 말이다.


내 새로운 자호(自號, 스스로 자신의 호를 지음)를 무기(無棄)로 하려 하는 건 이런 너그러움을 갖추고 싶기 때문이다. 너그럽다는 행위는 나와 다른 것을 인고(忍苦)하는 것이며, 그 사람의 약점에 천착하기보다 장점을 도두보는 노력이다. 훌륭한 목수는 버리는 재목이 없고,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으며, 웅숭깊은 스승은 아랫사람에게서 배우며, 부지런한 학생은 자신이 증오하는 것에서도 장점을 취한다.<주8> 『사기』 이사열전(李斯列傳)에서 진시황이 다른 나라 출신들을 의심해 모두 국외로 추방하려는 축객령(逐客令)을 내릴 때 초나라 출신 이사는 간축객서(諫逐客書)라는 상소를 올린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처럼 크게 되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처럼 깊게 되었다(泰山不辭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이라는 이사의 주장에 진시황은 축객령을 철회하고 이사를 중용함으로써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뤄낸다. 편협하거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너그럽고 섬세하며 온유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신작 『부의 미래(원제 Revolutionary Wealth)』에서 ‘쓸모없는(obsolete)’과 ‘지식(knowledge)’을 결합해 만든 ‘무용지식(obsoledge)’라는 신조어를 통해 쓸모없는 지식의 폐단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것을 사람에게 적용해서 무용(無用)한 사람이란 것은 성립할까? 내 잣대에 어긋나는 사람을 함부로 내칠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을 만족스럽게 하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재주다(Allen Menschen recht getan ist eine Kunst, die niemand kann)”라는 독일 속담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는 그저 “그 사람의 약점으로 그의 장점을 버리지 않음(不以人所短棄其所長)<주9>”을 실천하고 싶다. 지금도 여전히 배운 것은 부박하고 성정은 거칠지만 좀 더 긴장하고 의식하며 열린 마음을 품기 위해 애써야겠다. 내가 어떤 공부를 하든, 무엇으로 밥 벌어 먹고 살든 간에 남의 눈에 서러운 눈물 흘리게 만들기 보다는 그 눈물을 닦아 주거나 그도 아니면 차라리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그 눈물을 덜 흘리게 하는 일을 하는 것도 값지겠지만.


‘버리지 않는다’는 불기(不棄)와 ‘버림이 없다’는 무기(無棄)는 뜻빛깔이 미묘하게 차이난다. 불기(不棄)는 세상에는 버려야 할 사람도 있지만 기왕이면 덜 버리고 끌어안고 가겠다는 의미인 반면, 무기(無棄)는 애초에 버림 받을 사람이란 없다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로 볼 수 있다. 혹시 버림 받은 사람도 다시 거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이건 내 멋대로 해석이고 아닐 不 보다는 없을 無자가 좀 더 맘에 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끝으로 불가의 역행보살(逆行菩薩)을 떠올려 본다. 남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일부러 못된 짓을 하는 이로 변장한 보살, 스스로 반면교사가 되어 중생을 가르치는 보살이라는 넉넉함이 애틋하다. 내 미움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 내 옹졸함이 빚어낸 것임을 자각하고, 내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이들에게서도 배워야겠다. 사람이든 꿈이든 원칙이든 내가 맺은 인연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기를 다짐한다.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라는 만화 슬램덩크의 명언이 떠오른다. 버릴 사람은 없다. 신념을 버리지 않겠다. 꿈을 포기하지 말자. - [無棄]


<주석> 다양한 출전 정보와 용례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주1>
박연의 상소를 일부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을 사용하여 악사를 삼아서 현송(絃誦)의 임무를 맡겼으니, 그들은 눈이 없어도 소리를 살피기 때문이며, 또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미 시대에 쓰임이 된다면 또한 그들을 돌보아 주는 은전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古先帝王皆用瞽者, 以爲樂師, 委之絃誦之任, 以其無目而審於音, 且以天下無棄人也。 旣爲時用, 則疑亦有矜恤之典也。
- 『조선왕조실록』 세종 54권 13년 12월 25일 (병진) 005 / 박연이 무동의 충원과 방향의 제조, 맹인 악공 처우 등의 일을 아뢰다


<주2>
하지만 송(宋)나라의 정치가이자 문학가였던 왕안석(王安石)은 「독맹상군전(讀孟嘗君傳)」이라는 글에서 이런 내 견해를 통렬히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맹상군은 그저 계명구도들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어찌 선비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孟嘗君特鷄鳴狗盜之雄耳 豈足以言得士)?”라고 말한다. 제나라의 강성함을 마음대로 활용한 위치에 있었던 맹상군이 한 사람의 선비를 얻었다면 계명구도의 힘을 빌리지 않았어도 진나라를 제압할 수 있었다는 논설이 날카롭다. 즉 맹상군은 참된 선비는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3>
춘추좌전은 시경(詩經)을 인용했는데 이는 일시(逸詩)다. 일시(逸詩)는 시경과 같은 시대에 읊어진 고시로서 지금 전하는 시경(詩經)에서 빠진 것이다. 실전되어 시경에 싣지 못한 옛 시라고 보면 된다.


<주4>
춘추시대 희(姬)는 주(周)나라의 성이고, 강(姜)은 제(齊)나라의 성이다. 그래서 희강(姬姜)하면 큰 나라 여인을 가리키며, 또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른 풀이에서는 희강(姬姜)이 전설적인 삼황오제인 황제(黃帝)가 姬성, 염제(炎帝)가 姜성인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한다. 여하간 본래 대국의 왕비, 궁중의 여인이란 뜻에서 미인의 범칭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주5>
관괴(菅蒯)를 버리지 않는다의 용례를 이율곡 선생의 상소에서 만날 수 있다. 관괴를 버리지 않았다는 말은 옛사람들이 겸양을 표하는 상투적 표현이었던 셈이다.

신은 본래 경솔하고 졸렬하여 스스로 쓸 만한 인재가 못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초야에서 지내는 것을 감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성상께서 관괴(菅蒯)를 버리지 않으시고 과분한 은혜를 누차 내리셨으므로 감히 끝내 피하지 못했는데, 한 번 은총과 영광에 얽매이게 되자 혼미해져 돌아설 줄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臣本輕踈迂拙, 自知非才, 甘老溝壑。 幸際聖明, 不遺菅蒯, 誤恩屢下, 不敢終遯, 一縻寵榮, 迷不知返。
-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 17권 16년 6월 1일 (신해) 002 / 양사가 이이를 파직시킬 것을 연계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자 중지하다

또 무기(無棄)는 태평성세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김육의 『잠곡유고(潛谷遺稿)』에는 유배를 가는 아들에게 그리며 읊은 시에서 “성조에선 버려지는 사람 없으니(聖朝無棄物)”라고 노래했고,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성명 세대라 버려진 물건 없음을 비로소 알았으니/ 이제부터 남은 여생 벼슬길에 맡기리(始識明時無棄物 從今日月屬官家)”라며 자신이 벼슬길에 나간 것을 감개무량해하고 있다.


<주6>
서애 유성룡은 널리 인재를 구할 것을 청하는 계에서 무기관괴(無棄菅蒯)를 언급하는데 다음과 같다.

옛사람이 “비록 사마(絲麻, 명주실과 삼실)가 있어도 관괴(菅蒯, 왕골과 기령풀)를 버리지 말라.[雖有絲麻無棄菅蒯]” 한 것은 작은 재주도 반드시 취하란 말이요, “비록 희강이 있어도 초췌함을 버리지 말라.[雖有姬姜無棄憔悴]” 한 것은 천한 사람도 버리지 말라는 말이며, “순무를 캐고 무를 캐는 것은 뿌리만을 먹으려는 것이 아니다.[采葑采菲無以下體]<*>”라는 것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가지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 말대로 하면 사람을 등용하는 도리를 다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반드시 구비하기를 구하여 비록 백 가지 장점이 있으나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버려서 취하지 않습니다. 또한 문벌로 한정하고 지위와 명성으로 비교하여 비록 탁월한 재주가 있어도 불행히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나면 사람들이 모두 업신여겨서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고서도 남의 작은 허물이나 숨은 잘못을 드러내는 데에는 교묘하여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비방하는 가운데에 있어서 하나도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고서도 초야에 버려진 현인이 없고 모든 공적이 다 빛나기를 구하니,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옛적에는 사람 취하는 도리가 심히 넓어서, 혹은 노예에서 발탁하고 혹은 군사에서 뽑으며, 혹은 장사치에서 떨쳐 올려서 오직 재주만을 취하고 다른 것은 묻지 않았으니, 진실로 까닭이 있습니다.
- 『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文集)』卷七 啓辭 제7권 請廣取人才啓九月

* 采葑采菲 無以下體(채봉채비 무이하체)는 시경(詩經)의 패풍(邶風) 곡풍(谷風)에 있는 말로, 봉(葑)과 비(菲)라는 채소는 잎줄기는 아름답지만 뿌리가 좋지 못하다. 그러나 뿌리가 나쁘다 하여 좋은 줄기까지 버릴 수 없다는 말이다. 일부의 나쁜 점 때문에 전체의 좋은 점을 버릴 수 없다는 뜻으로 雖有絲麻 無棄菅蒯, 雖有姬姜 無棄憔悴와 비슷한 맥락이다.


<주7>
사람을 버리지 않음(無棄人)에 대한 왕필 주석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성인은 실제의 성적(形)과 의론(名)의 일치를 내세워 사물을 구속하지 않고, 나아갈 것과 향할 것을 만들어서 진보에 뒤쳐지는 사람들을 못났다고 버리지 않는다. 만물의 저절로 그렇게 됨을 도와줄 뿐 새롭게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다”라고 했다. 현명하고 유능한 이들을 기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투지 않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적이 되지 않고, 욕심날 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백성들의 마음이 혼란되지 않는다. 늘 백성들의 마음이 욕심 없도록 하고 현혹되지 않도록 한다면 사람을 버릴 일이 없다.

聖人不立形名以檢於物, 不造進向以殊棄不肖. 輔萬物之自然而不爲始, 故曰 無棄人也. 不尙賢能, 則民不爭, 不貴難得之貨, 則民不爲盜, 不見可欲, 則民心不亂. 常使民心無欲無惑, 則無棄人矣.


<주8>
“훌륭한 목수는 버리는 재목이 없”다고 한 것은 다음의 출전이 있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허침(許琛) 등과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허계(許誡) 등이 상소하기를,
《전(傳)》에 이르기를, ‘착한 임금의 사람 쓰는 것은 목수가 재목을 마르는 것과 같아서, 크고 작음과 길고 짧음을 또한 그 적당함을 얻도록 하기 때문에, 밝은 임금은 버리는 사람이 없고 훌륭한 목수는 버리는 재목이 없습니다.

傳曰: “聖主之用人, 如匠之制木, 小大長短, 亦得其宜。 故曰明主無棄人, 良工無棄材。”
- 『조선왕조실록』 성종 281권 24년 8월 27일 (기축) 002 / 허침 등이 윤은로의 일을 말하다


<주9>
진수의 삼국지 오서(吳書)에 나오는 제갈량의 조카 제갈각(諸葛恪)의 전기(傳記) 중에 제갈각이 승상 육손에서 보내는 편지의 일부에 출전이 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군자는 한 사람에게 완전히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공자의 문하생 대략 3천 명 중에서 특별하게 돌출되는 72명, 자장(子張)ㆍ자로(子路)ㆍ자공(子貢) 등 70명의 무리에 이르러서는 아성(亞聖)의 덕을 갖추고 있지만, 각기 단점이 있어 전손사(顓孫師:자장)는 편벽되고, 중유(仲由:자로)는 법을 만들지 못했고, 단목사(端木賜:자공)는 자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어찌 이들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결점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중니(仲尼:공자)는 이런 제자들이 갖추고 있지 못함을 문제 삼지 않고 손을 이끌어 친구로 간주했으며, 사람들의 단점 때문에 그들의 강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현재는 인재를 채용함에 있어 마땅히 지난 옛날보다 관대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愚以爲君子不求備於一人, 自孔氏門徒大數三千, 其見異者七十二人, 至于子張、子路、子貢等七十之徒, 亞聖之德, 然猶各有所短, 師辟由喭, 賜不受命, 豈況下此而無所闕?且仲尼不以數子之不備而引以爲友, 不以人所短棄其所長也. 加以當今取士, 宜寬於往古, 何者?
- 『三國志』卷六十四 吳書十九 諸葛滕二孫濮陽傳(제갈등이손복양전)第十九

Posted by 익구
:
060904
약자와 소수자는 곧잘 혼용되기도 하지만, 수적으로는 다수이면서도 의회대표성 등 대표성에서 소외되어 그 의사가 잘 대변되지 못하는 ‘약자’와 수적으로도 소수인 ‘소수자’로 구분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 사회의 여성과 장애인들은 각각 ‘약자’와 ‘소수자’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률가들은 원래 이 약자나 소수자와 친해야 한다.

우선 입법, 사법, 행정부의 삼부 중 주로 법률가들로 이루어진 사법부의 존립이유가 바로 이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보호에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입법부나 행정부와 같이 그 구성과 존립이 다수국민의 지지 획득 여부에 달려있는 기관을 다수파기관이라 부른다. 입법부의 국회의원이나 행정부의 대통령은 선거에서 재선되기 위해 항상 다수국민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신경써야 한다. 그러나 사법부는 삼부 중 유일하게 ‘선거’를 치르지 않고 ‘임명’되는 비다수파기관이다. 따라서 다수국민의 의사에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오히려 다수국민의 목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잘 조직화되지도 대표되지도 못하는 약자의 이익을 판결을 통해 획기적으로 구현해 나갈 수 있는 태생적 장점을 가진다.(하략)

-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학과), [목요일언]약자 및 소수자의 법률가, 법률신문 2006.09.01

청와대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을 내정하면서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적임자”라고 설명한 것에 8월 17일자 중앙일보 사설은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되 우리 사회 다수의 편에 서는 균형감각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간 우리 법원이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거 같다. 여전히 정치인, 기업인들에게는 관대하고 흐릿하면서도 낮은 계층에 있는 사람에게는 엄격하고 또렷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품을 수 있는 강점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발현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앞으로 강자와 약자의 구도보다는 승자와 패자의 구도가 좀 더 진일보된 사회라고 생각한다. 강약보다 승패로 가름하는 세상은 조금은 더 기회적 평등이 확충되고, 결과적 불평등도 절제되는 세상이다.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한다고 앵무새처럼 외치기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승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패자에게는 부활전의 여지를 남겨 두는 넉넉함을 갖춰야 한다. 약자가 패자가 되고, 패자가 다시 약자가 되는 악순환을 끊어내는 건 패자 문제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어려운 문제지만 이런 고민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그나마 덜 아프게 맞이할 수 있는 방책이 아닐까 싶다.


060905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는 지식인 700여명의 공동선언이 9월 5일 오전에 발표되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해 사회적 현안에 대해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놀라운 일 이전에 민망한 일이다. 물론 지식인들의 공동선언이 1960년 4월25일에는 서울대 교수회관에 모인 각 대학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펼침막을 앞세워야 할 의무는 없다. 그리고 지식인들의 선언이 반드시 진보나 개혁의 목소리일 필요도 없다. 보수적인 교수 사회의 풍토에 걸맞게 보수적 목소리가 더 많이 표출되는 것이 확률적으로도 자연스런 일이다. 그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부러 백안시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요근래 자칭 원로들이 이런저런 사회적 이슈에 개입하는 모습은 대개 아름답지 못했다. 최근에 전작권 환수를 가열차게 반대하던 군 원로들의 면면이 그리 떳떳하지 못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제 누군가에게 절실한 가르침을 주던 스승들마저 그 지적 권위와 도덕적 매력을 조금 덜어내려는 모습이 안타깝다(개인적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스승들도 있어서 이 선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혹 수백 명의 지식인들 가운데 기자회견 주도자의 친분 때문에 별 다른 고민 없이 자신의 이름을 내어준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식인은 자신의 이름을 여기저기 함부로 팔아서는 곤란하다. 과거의 언행들은 지식인들에게 영원한 차꼬가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안보 문제를 정치 문제화하고 있다는 우려에 충분히 동감한다. 그러나 전작권 문제가 너무 정치화되어 버렸다면 지식인들이 나서서 섬세한 논의를 주도해야하는 게 아닐까.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 행사 추진을 통해 대북전쟁 억지력의 확실한 근간인 한미연합사 체제를 해체하는 것은 안보 악화와 함께 미국과 일본에 대한 군사적 종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적어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나와 남북 간의 평화체제 구축의지를 분명히 할 때”가 좋다는 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그걸 해내가는 방안을 궁리하고 있지 않은가. 분단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민족사적 과제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짝 답답하다.

지식인이 지식인이라고 존경받는 이유는 그 압도적 지적 능력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와 더불어 삶의 태도도 지식인을 재는 중요한 잣대다. 슬프게도 우리는 그 잣대를 좀 적용하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지식인들이 너무 많았다. 전작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실 정도의 열성으로 그 옛날 후안무치하던 일당들에게 죽비소리를 내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근자에 수백 명의 지식인들이 비장한 결심으로 선언문을 낭독했던 적이 없었는데 왜 유독 전작권 문제에 이 분들의 안테나가 격렬하게 반응했을까.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산적한 현안들을 그 영특한 안테나로 잘 감지해주시기 바란다. 지식인의 권위는 스스로 세우는 것이니 말이다.

율곡 선생이 선조에게 바친 응지논사소(應旨論事疏) 한 구절을 음미해본다. 선비는 밉살맞지만 그 충정은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우리네 지식인들의 입바른 소리에 귀가 따갑고 입맛이 쓰더라도 내 삶은 보다 윤택해질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상정(常情)으로 말하자면, 선비란 자는 진실로 얄미운 자입니다. 다스림을 논하라면 멀리 당(唐), 우(虞)의 고사(요순시대)를 인용하고, 임금에게 간하라면 어려운 일로 책임을 추궁하며, 벼슬로 얽어매도 머무르지 않고, 총애를 하여도 즐기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뜻대로만 행하고자 하니 본래 쓰기 어려운 자들입니다. 또 그들 가운데에는 혹은 과격한 자도 있고 혹은 세상일에 어두운 자도 있고 또 명성을 좇는 자들도 그 대열 속에 섞여 있으니, 어찌 임금들이 미워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夫以世俗常情言之。則儒者。固可惡也。論治則遠引唐虞。諫君則責以難事。縻之不留。寵之不樂。惟在於欲行其志焉。固是難用。而其閒或有過激者。或有迂闊者。亦有好名者或廁乎其列。豈非世主之所可惡者乎
-『栗谷先生全書』 卷之六, 應旨論事疏


060906
실례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오죽 감동 받았으면 같은 내무실 동기들에게 익구형의 편지를 돌려 읽게 했겠습니까.^^; 다들 진심으로 감동하며 형이 써주신 『맹자』의 글귀를 가슴 속에 새기고는 훈련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제 막 이등병이 된 후배에게서 편지가 왔다. 정말 내 편지를 돌려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편지를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팽개치지 않고 아껴줘서 고맙다. 간만에 육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의 『맹자』 한 구절을 다음과 같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그의 몸을 수고롭게 하며 그의 배를 굶주리게 만들고, 그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뜻대로 되지 않게 흔들고 어지럽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분발하게 만들고 참을성을 기르게 해 지금까지 할 수 없던 일도 해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시련을 통해 심성을 단련시킨다(動心忍性)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다. 이건 누구보다도 내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행정법 책을 뒤적이다가 내 무식에 섬뜩해서 정신이 번쩍 들 때 그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고, 굶주리고, 궁핍하고, 흔들리고 어지럽힐지 모르겠으나 조금씩 나아진다는 믿음은 버리지 말자.


060907
어제 공인회계사(CPA) 합격자 발표가 났다. 아는 후배 하나가 붙었다며 환희에 찬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2차 시험에 합격해도 3차 면접이 있는지 알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CPA는 면접이 없는 관계로 최종 합격발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달콤한 축하 인사를 건넬 걸 그랬다.^^;

고시 공부는 공휴일궤(功虧一簣)라는 말을 늘 의식해야 하는 거 같다.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산을 높이 쌓지 못했다는 뜻으로, 힘들게 벌인 일을 마지막까지 견지하지 못해서 실패했다는 말이다. 『서경』에 "높이가 아홉 길이나 되는 산을 쌓다가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다 쌓지 못하고 실패했다(爲山九仞 功虧一簣)"라는 말이나, 『논어』에서 "비유하자면 산을 쌓는데 한 삼태기가 모자라 이루지 못했다(譬如爲山, 未成一簣)"라는 구절이 늘 고시생을 괴롭고 두렵게 만든다.

그래도 아홉 길이나 되는 성과물이라도 남겼으면 위안이라도 삼아볼 수 있겠지만 맹자는 더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신다. "뜻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마치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우물을 아홉 길이나 팠어도 샘에 이르지 못하고 그만두면 그것은 우물을 버리는 일이다(有爲者辟若掘井, 掘井而不及泉, 猶爲棄井也)"라니 조금 지나친 말씀 같다. 우물에 대한 비유보다는 산에 대한 비유가 좀 더 인간적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극초보 고시생 생활을 하다 보니 조바심이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되지 않고 너무 증폭된다. 간단한 정보 검색을 해봐도 공부할 양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이걸 다 언제 익혀 자유자재로 구사할까 염려스럽다. 나는 세속과 떨어지기 힘든 인간이라 고시 생활이 다소 불리하다고 자평하고 있다. 우등생은 아니었고 그저 제 때 수업이나 챙겨듣는 모범생에 불과한 내 한계가 얼마나 드러날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논술식 서술형 문제는 그래도 내가 자신 있어 하는 분야다. 통합력, 분석력, 정리력을 동원한 글쓰기를 배워보고 싶다.

더군다나 CPA처럼 내가 자신 없는 과목들만 있는 것도 아니며, 사법고시처럼 시험과목이 많은 것도 아니며, 외무고시나 입법고시처럼 사람을 무지 조금 뽑아 머리털을 쥐어 뜯게 하는 시험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것은 학문을 할 자신과 역량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문의 꿈을 포기한 마당에 제 아무리 까다로운 시험이라고 하더라도 못 이겨낼 건 없으리라.


* 簣 - (竹+貴)

060908
최형사(이하 최): 문목사... 당신은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소. 당신은 왜 이렇게까지 힘든 길을 걸어가는 것이오.
문목사(이하 문): 허허... 별거 있나? 올바르게 살려는 것이지...
최: ......
문: 내가 아는 것... 내가 올바르다고 믿고 있는 것. 그것을 실천하려는 것이지.
최: ......
문: 이 땅에서 태어나서, 그저... 내 아는 만큼 올바르게 살려는 것이지.
최: 그저... 착하게 살면 되는 거 아니겠소... 그게 올바른 게 아니오... 당신이 목사면... 목사답게... 착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니겠소...
문: 허허... 착하게 사는 거 좋지... 그런데... 착하게 사는 거랑... 올바르게 사는 거랑은 다른 것 같아... 남들이 하자는대로... 그게 틀린 것 같아도... 그저 반대하지 않고... 하자는 대로 하면 착하다는 말을 듣게 되지...
착하게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쉽네... 올바르게 사는 것이 어렵지...


강풀의 만화 『26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이럴 때만 감성지수(EQ)가 이럴 때만 높아지는 거 같아서 민망하다. 문익환 목사님은 착하게 사는 게 쉽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한참을 고개를 끄덕인다. 아울러 "올바르게 사는 것을 애초에 그 가능성마저 빼앗겨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고 외치던 곽진배의 울분에 찬 목소리도 많은 공감이 간다. 올바르게 살 여지를 좀 더 늘려나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1999년 3월 14일 민주화 운동가 계훈제 선생님의 부고를 TV뉴스를 통해 보고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저렇게 야위고 가냘퍼 보이는 사람이 이런 개명천지에도 투병과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니 너무 안타까웠다. 정치적 시비나 이념적 차이를 떠나 일평생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의 그 처연함과 쓸쓸함에 많이 상심했었다. 계훈제 선생님의 만년은 내게 늘 따가운 서글픔이다.

나는 내가 호인(好人) 소리 듣기 위해 무던 애써왔던 거 같다. 남들이 좋아하는 대로 맞춰 오지는 않았지만 기왕이면 선량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자는 거다. 그저 착하게만 사는 건 너무 쉽고 재미없다. 그 옛날부터 내가 많이 들어왔던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별명에 걸맞기 위해서는 좀 더 어렵지만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할 거 같다.


060909
9월 9일 토요일에 한자교육진흥회에서 주관한 한자자격시험 1급 시험을 치렀다. 지난 7월에 장렬하게 떨어진 한국어문회의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 시험 대신 본 시험이다. 기본적으로 평이한 시험이라 무난하게 합격하지 않을까 싶다. 이 여세를 몰아 어문회 1급 시험도 도전해야할지 고민 중이다. 당장 다음 주부터 올해 마지막 시험 접수를 시작하는데 말이다. 또 한자 공부에 몰두해버리면 당최 영어 공부는 언제 하느냔 말이다. 자꾸 영어 공부를 등한시하다 보니 내 목표인 "사회에서 요구하는 영어 최소수준을 살짝 넘기기"마저도 버거운데 말이다.^^;

여하간 오늘 본 시험 가운데 틀린 한자들을 복습해보면 다음과 같다. 血壓(혈압), 試寫會(시사회), 迂回(우회), 聚落(취락), 手帖(수첩), 隱蔽(은폐), 駐屯(주둔), 貯藏(저장), 普及(보급), 經驗(경험), 制約(제약), 電光石火(전광석화), 가르칠 誨(회), 시작할 肇(조), 비단 綺(기), 천둥소리 霆(정), 발끈할 勃(발), 여울 湍(단)... 회계학 문제풀이가 귀찮아서 눈으로만 풀면 막상 시험장에서는 손이 움직이지 않듯이, 한자 공부 또한 눈으로만 보면 독음이나 뜻 문제난 곧잘 맞추지만 쓰기 문제에서는 잔실수가 많다. 가령 수첩, 주둔, 저장, 경험, 제약, 전광석화 같이 내가 익히 알고 있거나 꽤 알고 지내던 단어들도 막상 시험장에서는 헛갈려서 엉뚱한 걸 써놓게 된다. 머리로는 아는데 손이 기억을 못한 것이다. 역시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도 해야 하나 보다. 아! 써보기 싫어서 눈으로만 훑어보고 마는 내 게으름이여!


060910
일전에 유홍준 선생이 백제의 문화를 잘 나타낸 말로 손꼽았던 삼국사기의 구절이 떠오른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 15년 기사에 “봄 정월에 궁실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았으며,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十五年 春正月 作新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는 말이 나온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을 삶의 자세로 삼아봐도 좋겠다.
Posted by 익구
:
060828
칸트를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는 데이비드 흄에 대해 조금 찾아봤다. 흄은 지각으로 증명되거나 반증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합리론자나 경험론자들이 서로 공유하던 ‘신이 상수(常數)로 존재한다는 믿음’과 ‘과학의 대한 전폭적인 신뢰’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우리는 결코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과관계란 얻을 수가 없다는 주장은 오늘날 되새겨도 파격적이다. 흄의 회의주의는 절대성과 필연성을 세련되게 공박함으로써 우리 삶의 자유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할 수 있으리라. 흄이 가변적인 정념(감정)에는 그 섬세한 회의의 체를 동원하지 않음으로써 절대시해버리는 우를 범했다고 비판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러셀이 “흄 이후 형이상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가장 고민했던 것은 어찌하면 그를 반박하느냐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듯이 그의 주장은 치밀하고 엄정한 것으로 보인다(굳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내가 흄의 저작을 읽어본 것이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해본 것이다). 각자 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치열하게 다투다가 끝에는 “나는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니, 대부분이다. 우리가 탄탄했다고 생각했던 합리적 판단도 사실은 조금 더 포장한 믿음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니 섬뜩하다. 흄이 남긴 “철학자가 되어라. 그러나 철학 가운데서도 여전히 인간이어라!”는 말이 감명 깊다. 불완전한 인간이 품는 진리나 지식 또한 불완전함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러한 인간을 연민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인간 인식의 한계를 곱씹게 만들어 준 흄에게 앞으로도 좀 더 많은 가르침을 받아야겠다. 흄이 물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그가 무신론자라고 그가 요청한 도움을 거절했다고 한다. 물에 빠져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그 절대 고독감 속에서도 굽히지 않았던 그 정신을 흠모한다.


060829
* 이영환 교수님의 미시경제학 책을 헌책으로 주문하고 나서 받아보니 연필로 밑줄이 무진장 많았다. 나는 2시간 동안 지우개로 조심스레 지워서 거의 새책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 정성으로 이 책을 보자고 결심하기는 했지만 조금 민망하다. 내 감출 수 없는 결벽증을 긍정적으로 발현해서 염결성과 치밀함으로 가꿔야겠다.

* 반성은 하고 싶지만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아요. 주로 자기가 결정을 하면은,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결정을 하면은 후회하지 않고 반성을 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저도 그렇게 살고 싶고, 많은 분들이 정말 자기가 결정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젊으신 분들은.

이금희의 파워인터뷰에서 배우 장진영이 한 말이다. 나는 얼마나 내 스스로 결정하고 있을까?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 나의 2세 할아버지 문헌공 최충께서는 1005년(목종 8년) 甲科(文科)에 장원급제하셨다. 984년에 나신 최충 할아버지와 내가 999년의 시차가 나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2004년경에 먹고 살 방편을 마련했어야 했지만 지금도 헤매고 있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060830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였던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와 작가인 레이몬드 헐(Ramond Hull)이 1969년 공저한 책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에서 “조직체에서 모든 종업원들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상급자는 자신이 무능력해지는 단계까지 올랐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이는 위계조직 메커니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특히나 연공서열 같은 계층제(hierarchy)가 강한 관료 조직에서 이런 현상이 빈번하다. 책 말미에 글쓴이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올라가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높을수록, 많을수록 좋다는 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큰 희생을 치르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그러나 어디 그것이 말처럼 쉬운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 위를 향해 오르는 사람이 차분히 성찰하고 관조하는 시간을 확보하기란 여간 힘들다. 그러나 제 깜냥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과분한 자리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민망할 때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을 찬찬히 돌아보며 음미해보는 게 좋겠다. 나는 유능해지고 유식해지기 위해 애쓰면서도 내 자신의 무능을 겸허히 인정할 수 있는 용기도 품어야겠다. 자기보다 덜 무능하고 더 유능한 사람이 내 자리를 꿰차게 될 때 후생가외(後生可畏)라며 기꺼운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사람, 멋지다.


060831
나의 6세조 최윤의 할아버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을 지으신 것으로 유명하다(혼자 지으신 건 아니고 17인 공저였다^^;). 상정고금예문은 최윤의 등 17명이 왕명으로 고금의 예의를 수집, 고증하여 50권으로 펴낸 국가의 전례서(典禮書)이다. 쉽게 말해 법령집, 규정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상정(詳定)은 골라 뽑았다는 뜻이니 가려 뽑은 예법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명언명구 수집을 즐기는 건 어쩌면 조상님의 상정(詳定)하는 자세를 이어받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것저것 주워 모으고 정리를 잘 안 해두다 보니 좀 두서가 없고 체계가 없는 게 흠이다. 여하간 나만의 상정고금옥문(詳定古今玉文)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될 거 같다. 내 버릴 수 없는 습관이기에.


060901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에서 주인공 꼬마가 돈을 잃어버린 뒤
“내 돈을 주운 사람은 얼마나 운이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곤고로운 사건을 겪을 때라도
이런 정도의 넉넉함을 갖춘 낙관주의자가 되고 싶다.
사실 고민하고 인상 쓰고 비감에 젖어 살기에는
시간은 열심히 달리고 있고, 인생이 너무 짧다.
설령 내가 조금 손해본 것 같아 참을 수 없을 때
누군가가 이익을 봤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를.


060902
찬구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상갓집 일을 좀 도와주려 둔촌동 보훈병원을 다녀왔다. 문상객들이 나가면 자리를 치우는 걸 했는데 먹고 논 것에 비하면 별로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거 같다. 현식이와 나는 밥값을 못한 거 같다며 한탄했다. 찬구 아버님은 삼남이셨고 위로 누님이 두 분 계시다고 한다. 그런 관계로 찬구 아버님과 더불어 누님의 사위 즉 고모부들이 상주를 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다가 그런 광경을 목도하니 좀 민망했다. 뭐 어차피 한 가족 간에 그걸 따지기가 민망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두 누님들도 상주 완장을 차고 있는 게 보다 더 공평한 일이 아닌가 싶다. 아들 없는 집의 장례식 때 사위가 상주를 하는 관행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왜 그리 견고할지 알 것 같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경조휴가를 주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연월차 휴가에서 공제하는 청원휴가로 대체하는 관행은 이제 좀 줄었는지 모르겠다. 군인 친구의 말로는 외조부, 외조모의 사망은 규정상 청원, 위로 휴가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조금 헷갈린다. 친조부모나 외조부모나 민법상 직계존속으로 같은 지위라고 알고 있는데 말이다. 병역법시행령 제59조 행정관서요원의 휴가 규정에는 “본인 또는 배우자의 조부모, 증조부모, 외조부모, 외증조부모 또는 형제·자매가 사망한 때”에는 3일 이내의 휴가를 준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현역병의 경우 휴가 체계가 명문화된 것을 찾지 못했다. 일선 지휘관의 재량에 많이 맡겨진다고 하던데 마땅히 친조부모와 외조부모 사망시 대우가 동등해야 할 것이다. 이건 재량의 영역이 아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과연 양성 차별 문제가 여성에게 남성의 자리를 좀 떼어주는 의무할당제 같은 식으로 꾸려지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법적, 제도적 노력을 그칠 수는 없지만 남성 중심주의적 문화를 건드리려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늘어나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예종』이라는 책에서 여성이 사회적 차별을 받는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유익하지 못하며 사회 전체적으로도 손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여자도 군대 가라 식의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남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피해를 줄여주고,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수모를 덜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이처럼 오랜 관습과 관성의 문제에서는 제도만큼이나 조금씩 조금씩 의식이 바뀌는 것도 절실하다. 문화적 해법은 오히려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여자로, 남자로 살기보다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낙관한다.


060903
“2년 동안 서로 다른 주제에 관해 쓴 150여개의 칼럼에서 저는 할 수 있는 말을 거의 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슴속에 가득 고여 절로 흘러 넘쳐 나오는 좋은 글을 쓰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저는 찰랑찰랑 바닥이 보이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억지로 퍼내고 짜낸 못난 글을 독자 여러분께 보여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 글 쓰기를 잠시 멈춰야 할 때가 온 듯합니다.”
- 유시민, [가슴을 채워 다시오겠습니다] - 동아일보 2000. 6. 27

유시민 선생은 저수지에 물이 차서 저절로 넘치는 것처럼 자연스레 쓰이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밑천이 바닥나더라도 한 번 더 우려먹으면서 억지로 쥐어 짜내기 일쑤다. 내 생각의 발전이 없어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한 게 그 얼마더냐. 좋은 글이란 하고 싶은 말을 참을 수 없어서 내뱉어서 큰 울림을 주는 글이다. 그것이 무언가 배운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구에서건, 사람 사이에 부대끼다 불현듯 떠오른 따끈한 생각이든, 과거 어느 날의 아픈 기억으로 말미암은 서늘한 깨달음이든... 머리보다 마음이, 마음보다 손이 먼저 가는 글에서 우리는 많은 감명을 받는 것 같다. 그간 이런저런 잡글을 많이 써온 나는 얼마나 살뜰한 글들을 써왔을까. 자꾸만 커져가는 지적 허영심에 모자란 우물을 메마를 때까지 퍼 올린 것만 같다. 앞으로 당분간은 긴 글 쓸 호사를 누리기 힘들 거 같다. 그 전에 좀 더 노작들을 완성해두고 싶었는데 기획만 하다가, 생각만 다듬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야윈 가슴과 가벼운 머리를 채워야겠다. Input을 늘리고 Output은 가다듬을 시기다.

Posted by 익구
:

060821
그 사람이 지은 죄 이상의 벌을 내리는 것은 또 하나의 죄를 짓는 것이다.
과도한 벌이 내려지는 경우는 대개 그 사람이 만만한 소수자이거나, 별 볼일 없는 비주류일 경우일 때가 많다.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 개인주의의 원칙이라면 보상과 문책이 누구에게나 공정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공만큼의 상을, 죄만큼의 벌을!


060822
대한상공회의소에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님을 모시고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마음(Feeling) 관리’를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한 동영상을 봤다. 휴학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PPT강의도 참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윤 교수님은 “기업이 곧 사람”이란 말이 있듯이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사결정, 종업원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축적되는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자본권력을 누리는 몇몇 대기업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적잖았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님의 말씀대로 “삼성의 공화국인가 공화국 속의 삼성인가”에 대한 성찰이 요긴하다. 윤 교수님께서 강의 말미에 강조하셨던 비트겐슈타인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돈다. 말조심해야겠다.

“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


-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


060823
현식장 폐쇄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모였다. 처음처럼을 많이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새벽에 현식이와 내가 익구닷컴에 쓴 "공인(公人)이라면"면 글을 놓고 제도 개혁과 의식 개혁에 관한 문제로 수다를 떨었다. 나는 시스템 개혁의 중요성에 동감하면서도 마음의 문제, 인심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고 우겼다. 공인들의 행동반경을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제도의 구비도 긴요하지만 공인의식을 갖추는 것 또한 의식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반문했다.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이 경제활동의 원동력임을 강조했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이기심도 가지면서 한편으로 자비심을 품는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닐까. 자기가 좋으면서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은 반드시 이기심만으로 구현되는 건 아닐 것이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장인정신은 이기심이라는 동인으로 묶기에는 그 품이 넓다. 복잡다단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제도 개혁을 얼마든지 꾀할 수 있다.


060824
철구 입대 환송회에 스리슬쩍 참석했다. 후배들 몇 명을 모아놓고 일장연설(?) 비슷한 걸 늘어놓았더니 집에 오늘 길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도 잘 해내지 못했던 일을 후배들이 더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들이니 그리 민망해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후생가외를 느끼는 건 두려우면서도 가슴 뛰는 일이다. 나를 뛰어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후배들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면 그 또한 슬픈 일이다. 나는 내 후배들이 내 어줍잖은 잔소리도 잘 가공해서 듣고 그 좋은 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사람이 하찮다고 그 사람의 말과 글까지 무시하지 않고 경청할 수 있는 후배들의 형형한 눈빛을 바라보는 건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060825
경북 영주 답사를 다녀왔다. 소수서원과 부석사를 둘러봤는데 한나절 코스로 훌륭한 것 같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유명하다. 사액서원이란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 받고 면세,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한다. 명성에 비해 규모는 무척 소박하다. 특히 서원의 원장과 교수가 기거하던 스승의 집무실인 직방재와 일신재, 유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인 학구재와 지락재가 매우 가까이 붙어 있었다. 학구재와 지락재가 스승의 그림자를 피해 뒷물림하여 지어진 점은 재미났지만 그래도 서로 조금 불편했을 거 같고 그 불편함도 수양의 방편으로 삼았을 것을 생각하니 옛사람의 교육열도 대단했구나 웃음이 나온다.

부석사는 너무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에 집착한 나머지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거 같다. 무량수전 주위만 맴돌고 그럴듯한 기념사진 남기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주위 풍광을 보고 다른 건물들과의 조화를 보거나 하는 식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국보 제45호인 소조여래좌상은 우람한 풍모가 매혹적이었다. 국보 제17호 무량수전 앞 석등도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라는 찬사에 걸맞게 돋을새김 된 보살상이 기품 있었다. 국보 제46호인 조사당 벽화를 좀 보고 싶었는데 실물은 보지 못했다. 무량수전 안에 복사본을 걸어두었고, 국보 제19호 조사당의 원래 벽화 자리에는 새 불화를 그려놓았는데 그림 솜씨가 엉망인지 색채 배합이 어색한지 그리 정감이 가지 않았다. 조사당 벽화를 떼어서 따로 유물보관동에 옮겼다고 하는데 일반에 공개를 안 하는지 아니면 다른 전각들을 신경 쓰지 않아서 보는 걸 놓친 것인지 헷갈린다. 여하간 조선의 폐불 정책으로 말미암아 사장된 고려불화들이 적잖을 생각을 하니 배가 아팠다.

아직 더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은데 차차 짬을 내서 둘러보기로 하자. 문화유산 완상은 속 좁은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평생 취미 아닌가.^-^


060826
지난 3월 행정고시 공부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시작하더라도 반년의 말미를 둬서 9월 말까지는 대책 없이 자유와 유흥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나는 반년의 여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읽고 싶은 책들을 미리 읽어두자고 했으나 수험 서적들을 들춰보았고,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어 자꾸 머뭇거렸다. 결국 반년의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슬금슬금 이것저것 뒤적거리고 있다. 내 나름대로 금석맹약을 했지만 결국 막판에 지켜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조금 일찍 덜 놀고 더 공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점도 많다.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도 잘 지키지 못하는 내가 과연 얼마나 더 유식해지고 유능해져서 그것을 써먹을 수 있을지 민망하다. 앞으로 내 자신과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여하간 이제껏 나를 이끈 힘 가운데 조바심이 적지 않았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고 애써보자.


060827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시칠리아 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 왕 디오니시우스의 신하 가운데 다모클레스(Damocles)라는 사람이 있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왕을 부러워하던 다모클레스가 안쓰러웠던지 디오니시우스는 그에게 임금의 자리에 앉아보라고 권한다. 얼씨구나 싶어 왕좌에 오른 다모클레스가 문득 천장을 올려다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카락 하나로 묶인 칼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권력의 자리가 밖에서 보는 것처럼 마냥 화려하고 안락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1961. 9. 25. UN 총회에서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핵무기를 "인류에게는 다모클레스의 칼"이라고 말하며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함으로써 유명해졌다고 한다. 다모클레스의 칼은 인간세의 불확실성을 표상하고 있다. 다모클레스의 칼이 성공을 자만하는 순간 툭 떨어진다는 비유처럼 조금 이루었구나 싶을 때 밀려오는 유혹을 뿌리치기는 여간 어렵다. 칼이 여차하면 툭 떨어져서 부정부패를 함부로 저지르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 구축도 긴요하겠지만 늘 머리 위에 혹은 마음 속에 나를 향하고 있는 칼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성찰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도 개인에게는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각성된 개인의 힘을 믿는다. 내 머리 위의 다모클레스의 칼은 튼튼하게 잘 매달려 있을까?

Posted by 익구
:
그간 오랜 숙원이었던 일기 쓰기에 도전합니다. 일단 무조건 매일 쓰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그 날 못 쓰면 다음 날, 다다음 날이라도, 아니면 예전에 썼던 글 조각을 인용하더라도 날마다 한 가지 생각씩을 하고 살았음을 기록하려 합니다. 일주일 단위로 등재할 예정입니다. 제 게으름이 두려울 뿐입니다.^^;


060814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기록문화 유산을 자랑한다. 조선시대 임금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작성한 ‘승정원일기’ 3,245책의 글자수는 2억4,125만여자에 달한다. 중국 명나라 294년의 역사를 기록한 명실록의 글자수가 1,600여만자인 점과 비교하면 그 방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16대 인조(재위 1623~1649)부터 고종까지 승정원일기 중 한글로 옮겨진 것은 고종때 것 뿐이다.

꼭 번역해야 하는 고전은 얼마나 되고, 언제쯤이면 ‘까막눈’신세를 면해 조상의 남긴 글을 쉽게 볼 수 있을까. ‘국학진흥을 위한 기획조사 연구’에 따르면 한 해 동안 60여책을 번역하는 현재의 여건 대로라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국가 기록물(국고문헌) 전체 3,300여책 중 번역이 안된 2,500여책, 문집 등 일반 고전 가운데 번역이 필요한 4,000여책을 모두 번역하는 데는 100년이 걸린다.
- “한자의 벽에 갇힌 전통을 구하라”, 한국일보, 2006. 07. 28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국보 제153호 일성록(日省綠), 국보 제 303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같은 유구한 기록정신을 이어 받아 나도 흉내를 좀 내봐야겠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참 무섭다. 그러나 기록을 통해 내 자신에 좀 더 엄격해지는 계기로 삼도록 하자.


060815
고이즈미가 결국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러 갔다지만 나는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동빈, 홍익이와 함께 지난 7월에 봤던 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전을 다시금 보니 역시 두 번째라 그런지 그 때 놓쳤던 느낌들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북한은 1998년부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황하문명과 함께 '대동강문명'을 추가하여 이를 '세계 5대문명의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셋이서 그걸 가지고 조금 구박을 했고, 국보, 준국보 지정을 너무 남발하는 게 아니냐며 좀 투덜거렸다. 만약에 북한 관계자가 우리의 말을 들었다면 좀 상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잖은 명품에는 마땅한 찬사를 보냈으며, 회화가 부족한 북한 문화유산의 형편에는 깊은 안타까움을 보냈다. 나는 신문지상에서 읽은 대로 고려 태조 왕건상에서 남근이 2cm로 축소되어 나타난 색욕을 멀리하라는 불교식 표현임을 설명했고 그걸 놓고 또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웠다.

상설전시관 관람이 이번이 다섯 번째이기는 하지만 갈 때마다 새로 눈에 들어오는 문화유산들이 참 많다. 회화 같은 경우 주기적으로 교체를 하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었다. 한 권의 책으로 된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은 교체 전시를 쪽수만 바꾸면 된다며 박장대소했다. 고려 묘지명(墓地銘) 기획특별전에서 최윤의 할아버지 묘지명과 기념촬영을 했다. 해주 최씨 선조이신 최윤의 할아버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상정(詳定)은 골라 뽑았다는 뜻으로 고금의 예문을 모아 편찬한 책이니 좀 거칠게 말하면 명언명구 모음집 같은 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명언명구 수집을 즐기는 건 어쩌면 조상님의 피를 좀 이어받아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상정고금예문을 1234년(고종 21년)에 금속활자로 찍어냈다는 기록이 있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국민의 성금으로 되찾아 온 선무공신 김시민 교서를 보면서 해외로 반출된 문화유산을 찾으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지 한탄을 했다. 홍익이는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를 얼른 찾아와야 한다고 역설했고 과연 얼마나 돈이 들지 서글픈 계산을 해봤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목판을 감상하며 고산자 선생의 장인정신에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국보 제302호 진주 청곡사 괘불은 길이 10m, 폭 6.3m에 이르는 지라 정말 엄청났다. 괘불(掛佛)은 글자 그대로 '걸어 매다는 불화'를 말한다.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를 그린 이 괘불은 본존불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 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화면 가득히 배치했다.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걸개그림인데 이 때 야외에 설치하는 법단이 야단(野壇)이며, 괘불이 걸리는 날에는 절에 사람이 북적거렸기에 야단법석이란 말이 나온 건 이제 상식이 된 거 같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는 이 거대한 불화를 전시하면서 소책자를 발간했는데 중앙박물관에서 특정 유물 1점만을 대상으로 한 이런 도록 발간은 사상 처음인 것을 보인다.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문화유산을 선별해서 이런 소책자를 많이 발간했으면 좋겠다. 높아진 문화수요에 공급이 절실하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케인지언이 되어 본다. 불화 전시실을 지나며 나는 또 고려불화의 90%가 외국 특히 일본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광복절이라 보니 일본이 조금 더 미워졌다.

일전에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가장 마음이 끌리는 유물로 꼽은 것이 반가사유상 전시실 가는 길목에 전시된 10세기 고려 철조불두(鐵彫佛頭)인데 나 또한 무척 좋아한다. 다정다감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그간의 근심걱정이 가벼워지는 치유효과가 있는 것 같다. 독방을 쓰시는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앉아서 바라보니 은은한 미소가 더욱 그윽하게 다가왔다. 셋이서 미소를 찬탄하니 안내하시는 분께서 국보 제83호에 비해 미소가 더 깊다며 맞장구를 쳐주셨다. 개인적으로 국보 제78호에 금박이 좀 더 남아 있었더라면 인기가 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준(犧尊, 소 문양의 술잔)과 상준(象尊, 코끼리 문양의 술잔)은 제기로 종묘나 문묘에서 행해지는 제사에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익살스런 모양에 한참을 감상했다. 술을 담는 야외용 합인 주합(酒盒)도 인상적이었는데 위와 아래는 안주를 담거나 술잔으로 대용하고, 가운데는 술병인 매우 재미난 유물이다. 오늘도 마음의 양식을 과식했다. 기획특별전 공짜표를 선사해준 동빈이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8월 가기 전에 호림박물관 국보전도 보러 가야겠다. 나는 내 것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 거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쓴 거라 좀 더 내용 보강해서 익구닷컴에서 "광복절 기념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이란 제목으로 새로 썼다.


060816
수현, 준식, 준석이와 함께 현식이네서 잡탕찌개를 끓여 먹으며 엠티 기분을 냈다. 현식이가 기숙사 입성에 성공하면서 현식장 폐쇄가 못내 아쉬운 이들은 땀을 흘려가며 환담을 나눴다. 그러다가 준석이가 대뜸 묻는다.

“너 아직도 노사모냐?”

뭐 이런 질문 한 두 번도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좀 당혹스럽다. 왜냐하면 묻는 사람이 노사모의 개념 정리를 잘 안 해주기 때문이다. 노사모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회원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여론조사에서 20% 정도 나온다는 대통령 지지자들을 일컫는 말인지, 아니면 열린우리당 친노 계파를 지칭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사실 뭐 그런 세세한 부분을 알았다면 그렇게 단순하게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을 게다. 차라리 참여정부나 집권여당의 거시적 혹은 미시적 정책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자고 했으면 얼마나 유익했을까? 너 노사모냐 아니냐 같은 마녀재판보다는 종합부동산세 문제나 한미FTA 문제 같은 걸로 안주를 삼았으면 좀 더 생산적이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세월의 무게를 잘 견뎌온 우리 우정이 아쉬워서 하는 소리다.

지난 2006 월드컵 결승전 당시 프랑스팀의 지단이 이탈리아팀의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한 이유가 “지단 너, 노사모지?”라고 말해 지단이 참을 수 없었다는 유머가 나돌기도 했다. 어쩌다가 노사모라는 상징성이 이렇게 야유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까? 일단 노무현 팬클럽 의미로서의 노사모는 이제 역사에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더 이상 무언가 새로 이룰 동력이 사라졌다는 판단에서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제는 저무는 일만 남지 않았나 싶다. 화려한 빛깔과 짙은 향기를 더 붙들어 두려고 안간 힘을 쓰기보다는 고이 지는 꽃잎이 되길 바란다. 노사모라는 이름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다만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로서의 노사모가 아닌 노무현이 표상했던 원칙이나 정신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것이다.

노사모란 이름으로 모였던 사람들이 어떤 이들인가? 노사모의 상당수가 현재의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지지나 호감을 나타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열린우리당의 창당명분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열린우리당은 ‘깨끗한 정치, 잘사는 나라’,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정당’, ‘백년 가는 정책정당’라는 목표를 걸었다.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질타를 받을망정 한국 정당사에서 매우 빼어난 모습으로 등장했다. 중산층과 서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지역주의를 극복해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루고,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치를 구현하고, 평화통일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는 건 열린우리당뿐만 아니라 모든 수권정당의 목표가 될 수 있고, 독점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꿈을 품는 사람이 노사모라면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노사모를 칭하겠다. 그러나 아마 이런 의미도 아닌 것 같다.

앞으로는 누군가를 노사모라고 삿대질하는 친구들에게 당최 노사모가 뭘 뜻하는지부터 반문해야겠다. 그래야 가타부타 답을 해줄 것이 아닌가. 좀 더 자유로우면서도 정의로운 세상이란 어떤 것인가를 궁리하는 친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가까운 친구들과 복선 없이 허심탄회한 토론을 나누는 건 상상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060817
영화 괴물의 흥행 돌풍에 김기덕 감독은 “한국영화의 수준과 한국관객의 수준이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이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며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괴물의 쾌속질주에서 우리네 집단주의 정서를 확인하는 건 오버일까? 몇 년 만에 인터넷 세상이 저열하게 바뀌고 있는 것 또한 다양성을 감내하지 못하는 우리의 편협함 때문은 아닐까?

민심이 천심이라고 믿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신봉하던 나였지만 요즘은 자꾸 회의가 든다. 대의 민주주의에 확신이 없어지는데 버나드 마넹 교수가 지은 [선거는 민주적인가]라는 책을 좀 보면 해법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기덕 감독의 표현을 빌려 한국정당의 수준과 한국유권자의 수준이 잘 만났다고 말하면 지나친 처사일까?


060818
내가 생각하는 바를 분명히 밝히는 것과
타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비판하는 것
(혹은 미감을 거스르지 않게 하는 것)
이 두 가지 것의 균형을 잡는 일이 참 어렵다.
진정성이 담긴 내 선의를 인정받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060819
고심 끝에 행정고등고시 재경직에서 일반행정직 응시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일단 책을 사 모으는 습성 탓에 재경직 필수과목인 재정학 교재를 몇 권 사놓은 게 조금 민망하지만 역시 내 마음이 좀 더 끌리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요 며칠 간 행정고등고시 재경직 선택과목 선정을 놓고 너무 난항을 겪었다. 내 전공이기도 한 경영학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기피 과목이 되어 도전하기 망설여졌고, 세법이나 통계학, 국제경제학도 내가 섣불리 선택하기 꺼려지는 분야다. 남은 게 회계학과 상법이었는데 회계학은 명색이 전공이지만 나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다. 행시 회계학 시험은 CPA시험과 달리 계산문제는 거의 출제되지 않고 주로 이론적인 질문 등이 주된 출제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학부시절 내 회계학의 처참한 전과들을 보면 호기롭게 고르기가 힘들다. 상법의 경우 법학에 무식한 내가 감내할 수 있을지 적잖이 걱정스럽다. 비록 선택과목 비중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으로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내 자존심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이런 시험 공부를 안 하고 다른 공부를 한다면 그에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면서 하는 시험 공부인 만큼 반드시 성사시켜야 내 기회비용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혹 남아 있을 마음의 장애물은 조속히 걷어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행시 재경직에 도전해서 그 핑계로 경제학과 재정학 공부를 좀 해보자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 일반행정 필수과목에는 재정학 대신 정치학이 들어가고 선택과목은 재경직의 그것과는 달리 고르기가 조금은 무난한 편이다. 정책학이나 지방행정을 고르고 남는 화력을 경제학과 행정법에 투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개의 고시생들에 비해 출발이 다소 늦은 편인 나로서는 좀 더 효율적인 수험 전략을 구사해야 했다. 내가 하려는 일이 결코 소풍을 가듯이 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이제 알겠다.

요즘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바뀌는지라 아직 좀 더 궁리할 시간에 최종결정이 바뀔 가능성은 있겠지만 이쯤 되니 배수진을 치는 느낌이다.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역수의 물이 차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는 노래를 읊으며 자객 형가(荊軻)는 훗날 진시황이 된 진나라 왕을 암살하기 위해 떠났다. 형가가 역수를 건너지 않고 지체하자 태자 단(丹)은 그가 변심하지는 않은지 의심했다. 형가는 노하여, “비수 한 자루를 가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진나라로 들어가는 와중에, 제가 아직 머무르고 있는 까닭은 제 길벗을 기다려 함께 떠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연암 박지원은 “형가가 기다린 사람이란 이름을 지닌 어떤 실재하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형가가 기다린 사람은 제 자신의 굳은 결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제 자신의 시린 마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지를 지닌 인간은 그토록 아름답고 무섭다.

내일은 희망차면서도 불안하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자고 하지만 조바심도 나고 머뭇거리기도 한다. 오지 않는 길벗을 기다리듯이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버려가며 무엇을 이루려는 결단은 참 힘들다. 모든 빼어난 것은 드물기에 아름다운 지도 모른다.


060820
외대 근처 신고서점에 가서 책 54권을 갖다 주고 오만원어치 책을 바꾸고 만원짜리 한 장을 받아왔다. 사실 내놓은 책들에 포함된 두툼한 대학교재 두 권 값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보면 너무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헌책 팔아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헌책으로 6만원 상당의 돈을 벌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 나름대로 양질의 도서를 엄선해서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푸하하 평소에 신고서점에서 좋은 책들 값싸게 많이 사왔던 터라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흥정 같은 거 없이 부르는 값에 책을 내려놓고 왔다. 책을 한번 바꿔보니 앞으로 도서 충동구매를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돈주고 산 책도 헌책방에 내놓을 때는 정말 얼마 못 받는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정말 소중한 경제 공부였다고나 할까. 부디 내 책들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 손에 값싸게 쥐어졌으면 좋겠다. 온오프라인 헌책방에 책을 내놓으려는 분들은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팔릴 법한 책들을 내놓아야 한다. 생각보다 값을 적게 쳐준다고 성내기 전에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내 책들이 전해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여유로울 것이다. 책 소유욕만큼이나 책 보시는 아름답다.^-^

Posted by 익구
:

공인(公人)이라면

사회 2006. 8. 21. 01:30 |
이우근 서울중앙지법원장이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부패의 향기’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다. 그는 최근 신임 헌법재판관으로 법조계 후배들이 지명되자 용퇴를 결심한 뒤 법조인의 자성을 촉구하는 글로 최근 법조 비리와 관련된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이라 원문을 볼 수 없어서 언론매체에서 보도된 조각들만 접할 수 있지만 대강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돈, 명예, 권력, 쾌락 따위의 달콤하고 나긋한 향기로 양심을 마비시키는 부패의 유혹은 차마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으로 이성을 제압하고 도덕성을 무력화한다”

“부패는 악취가 아니라 향기를 풍기며 다가온다. 부패의 유혹 앞에는 장사가 없다. 명철한 지식인도, 시민운동가도, 근엄한 종교인이나 법조인마저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속적이고 습성화된 부패의 경향은 타락의 사슬로 영혼을 옭아매기에 자기 정화는 그토록 어려운 법이다”

“부패와 비리를 다스리는 법조인이 스스로 비리를 저지르거나 부패에 젖어드는 일은 여간 심각한 부조리가 아니다. 법조인이라면 시대의 아픔과 이웃의 괴로움을 온몸으로 함께 나누는 사랑의 소명의식, 그리고 투철한 자유의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손바닥 뒤집듯 쉽게 이뤄지는 자기 정화는 없다. 치열한 자성을 통해 새로운 인격으로 태어나는 출산의 고통 없이 올곧은 자정은 불가능하다”


“셰익스피어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준법정신이 투철한 모범시민으로 그렸다. 그러나 샤일록은 남의 곤궁함을 존중하지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관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사랑을 알지 못했다. 남을 존중하고 타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법조인이라면 남의 비리를 벌하면서 자신의 부패에 눈감을 리 없다”


문득 이상호 기자의 “정치권력은 한철이지만, 자본권력은 장구합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요근래 정치권력에서 자본권력으로 무게의 중심추가 옮겨가고 있다고들 말한다. 배울 만큼 배웠다는 분들이, 똑똑하다는 소리 지겹게 들었을 분들이 돈 몇 푼에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는 게 참 민망하다. 이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시금석은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초연함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본권력의 유혹은 향기는 기본이고 거기다가 부드럽고 섬세하기까지 할 것이다. 자본권력은 지난날의 정치권력처럼 폭압적이지 않고 소비자의 이익을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별다른 견제를 받지 못하고, 그 폐해를 인지하지 못해 농노처럼 제 자유를 헌납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건 반동적이다.


정여립은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정해진 주인이 있겠는가? 누구를 섬기든 임금이 아닌가(天下公物豈有定主 何事非君)?”라는 말을 했다고 전한다. 혹자는 정여립이 우리 역사상 최초의 공화주의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여하간 천하가 공물이라는 발언만큼은 무척 감명 깊다. 천하는 비록 공물이지만 내 것처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공인들이 더 늘어야 한다. “천하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길 만 하다(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는 노자의 가르침도 곱씹어보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자신의 재산인 사용(私用)을 절약하는 것은 사람마다 능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공공의 재산인 공고(公庫)를 절약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공물을 사물처럼 여길 수 있어야만 어진 목민관이다(私用之節 夫人能之 公庫之節 民鮮能之 視公如私 斯賢牧也)”라고 말씀하신다. 장자는 “천하를 천하에 감춘다(藏天下於天下)”고 했다. 그만큼 감출 것 없이 떳떳하고, 정의롭고, 명쾌하다는 이야기다. 탐욕은 품을수록 커지고 권세는 누릴수록 더 보듬고 싶어진다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들였던 노력했던 지난날을 차분히 돌아보는 게 어떨까.


내가 고작 이 따위로 살라고 그렇게 뼈 빠지게 공부했는지 아느냐고 스스로에게 준엄하게 꾸짖어 본다면 달콤함과 향긋함에 몸과 마음을 함부로 팔지 않으리라. 우리가 공인(公人)이라고 기리는 건 단지 빼어난 재주와 명석한 머리만을 찬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능력이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아는 베푸는 마음가짐과 함께 이익을 만날 때 의로움을 생각하는 기품 있는 정신을 겸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부귀영화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는 사람, 제 자신의 원칙을 저버리는 것을 죽음보다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우리를 위해 봉사하고, 우리를 대표하고, 우리를 다스린다면 얼마나 기쁠까. 물론 대다수 분들이 묵묵히 그 가시밭길을 가고 있음을 잘 알면서 괜히 해보는 앓는 소리다.^^; - [小鮮]
Posted by 익구
:
고이즈미가 결국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러 갔다지만 나는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지난 7월에 생일 기념 회동으로 섭, 청원이와 함께 다녀온 지 한 달 만이다. 동빈, 홍익이와 함께 지난 7월에 봤던 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전을 다시금 보니 역시 두 번째라 그런지 그 때 놓쳤던 느낌들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북한은 1998년부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황하문명과 함께 '대동강문명'을 추가하여 이를 '세계 5대문명의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셋이서 그걸 가지고 조금 구박을 했고, 국보, 준국보 지정을 너무 남발하는 게 아니냐며 좀 투덜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의 국보는 2006년 현재 1725점이고, 준국보는 658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정문화재가 2006년 7월 31일 현재 국보 307점, 보물 1444점, 사적 458개인 점과 비교할 때 국보의 개수가 많이 차이가 난다. 북한도 종전에는 국보, 사전 등으로 구분하던 것을 문화유물보호법이 1994년 제정되고 1999년 개정되면서 국보유물, 준국보유물, 일반문화유물 등으로 구분하게 된 것을 보인다.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지정사항을 공포하지 않는 관계로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그동안 남한 학계에서는 북한 국보가 주로 사적 중심으로 지정되어 동산 문화재는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으니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그 인식이 바뀌게 될 모양이다.


여하간 만약에 북한 관계자가 우리의 말을 들었다면 좀 상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잖은 명품에는 마땅한 찬사를 보냈으며, 회화가 부족한 북한 문화유산의 형편에는 깊은 안타까움을 보냈다. 높이가 90cm에 달해 한반도에서 가장 큰 빗살무늬토기는 그 규모가 인상적이었고,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악기인 뼈피리는 모형으로 재현해보면 아직도 소리가 난다니 놀라웠다. 영명사터 돌사자는 매우 뭉개졌지만 몇 안 되는 고구려 돌조각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을 인정했다. 우리나라나 중국 등지에서 보이는 사자상은 대개 곱슬머리가 많아 그 이유가 궁금했다. 관음사 관음보살은 전신을 세밀하게 장식하고 맞뚫음기법으로 입체감을 높게 했다. 화강암보다 조각이 용이한 대리석이라고 하지만 돌을 조각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정치(精緻)했다. 절에서 쓰는 북 모양의 종인 쇠북(金鼓)은 어떤 소리일지 궁금했다 징 소리가 날지 범종 소리가 날지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개성시에 있는 불일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소탑 가운데 9층목탑으로 표상된 것에 눈길이 머물렀는데 이 유물 또한 황룡사 9층목탑 복원에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함부로 말할 건 못되지만 황룡사 복원은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시행착오 없이 이론적으로 완벽히 설정해서 지을 수 있다는 게 허상이 아닐까 싶다. 회화분야는 취약했지만 제법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보였다. 특히 김홍도의 선녀도는 애틋한 사연과 함께 기억에 남는다. 서왕모의 생일잔치에 늦게 참석했다하여 청봉산으로 쫓겨났다가 강원이라는 청년을 사모하게 되어 신선들만 먹을 수 있는 영지버섯을 그에게 먹여준 것이 영지선녀로 인해 인간이 영지버섯을 먹게 되었다니 프로메테우스가 떠올랐다.^^;


진귀한 유물 중에서도 단연 발길을 멈추는 곳은 고려 태조 왕건상이다. 북한에서도 개봉되지 않은 것이라 951년경 제작돼 개성 봉은사에 모셔진 왕건상은 왕실의 가장 신성한 상징물인 동시에 국가적 의례에서 중심적인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유교적 제례법과 맞지 않는다고 하여, 1429년(세종 11년) 태조 왕건의 현릉 옆에 묻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왕건은 수모를 당했지만 덕분에 소실 없이 후세에 전해서 빛을 발하게 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왕건상은 발굴 당시 몸을 비롯한 여러 곳에 금도금을 한 조각과 얇은 비단 천들이 붙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의복을 입은 상태로 사당 안에 모셔져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왕건상에 의복을 입혀야 할지 여부를 놓고 남북이 이견이 있었으나 동대문시장에서 75,000원에 산 옥빛 비단천으로 주요 부위를 가리는 것으로 가까스로 타협을 봤다. 북한은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신라가 아닌 고려라고 보는 만큼 고려를 개창한 왕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서 벌어진 촌극으로 보인다. 왕건의 모습을 부처의 형상에 가깝게 묘사하려다 보니 왕건의 팔다리와 손가락이 곱고 미끈한 것이 전장을 누빈 장수 같아 보이지 않았다. 또 왕건상의 남근은 2cm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색욕을 멀리하라는 불교식 표현이라고 한다. 마음장상(馬陰藏相)이라고 하여 남근이 말의 생식기처럼 오므라들어 몸 안에 숨어 있는 형상을 말한다고 한다. 성기 쪽에 있던 양기(陽氣)가 머리 쪽으로 올라가면 이렇게 된다고 하니 요즘의 거물 숭배나 음경확대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정액을 되돌려서 뇌를 보강한다는 환정보뇌(還精補腦)는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태조 황제께서는 남북이 갈라져 자신의 전시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기획특별전 관람을 마치고 찾아간 상설전시관 관람은 이번이 다섯 번째이기는 하지만 갈 때마다 새로 눈에 들어오는 문화유산들이 참 많다. 국민의 성금으로 되찾아 온 선무공신 김시민 교서를 보면서 해외로 반출된 문화유산을 찾으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지 한탄을 했다. 홍익이는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를 얼른 찾아와야 한다고 역설했고 예상되는 막대한 금액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국보급 문화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보통 그 가치를 보험가로 추산하는데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문화교류전 출품 당시 500억원의 보험에 들어 최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이 98년 미국 메트로폴리턴박물관 전시 때 300억원짜리 보험에 가입한 바 있다. 그러나 문화교류 차원에서 보험가가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감안하면 실제 가치는 헤아리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 문화방송 느낌표 프로그램인 ‘위대한 유산 74434’가 말하고 있듯이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7만 5000여점으로 추산되고 있으니 망연자실할 뿐이다. 얼마 전 홍익이가 중국 동북지방을 여행 다녀와서 장군총에 받침돌 하나가 없어져서 그 부분이 붕괴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줄 때 마음이 아팠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습기가 차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생생한 증언에 가슴이 미어진다. 우리 국내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해외 소재 문화재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할 수 없다지만 적어도 체계화된 목록을 작성해서 끊임없이 환수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


고려 묘지명(墓地銘) 기획특별전에서 최윤의 할아버지 묘지명과 기념촬영을 했다. 해주 최씨 선조이신 최윤의 할아버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상정(詳定)은 골라 뽑았다는 뜻으로 고금의 예문을 모아 편찬한 책이니 좀 거칠게 말하면 가려뽑은 의례서로서 규정집, 법령집 같은 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명언명구 수집을 즐기는 건 어쩌면 조상님의 상정(詳定) 정신을 좀 이어받아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상정고금예문을 1234년(고종 21년)에 금속활자로 찍어냈다는 기록이 있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의 목판과 목판본을 볼 수 있는 작은 기획전에서 아름다운 장인정신을 만날 수 있었다. 대동여지도를 인쇄하기 위해 만든 목판 9장이 공개되었는데 대동여지도는 55~60장의 나무판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12장이 남아 있다고 한다. 어쩐지 함경도 지역의 목판만 집중적으로 전시되어 있기에 의아했는데 상당부분 소실된 것이었다. 대동여지도는 1861년 초간본이 발간된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수정작업의 흔적을 보는 건 코끝이 시큰해지는 일이었다. 목판까지 직접 판각했다고 하니 고산자 선생 앞에서 감탄사를 아끼는 건 죄송스런 일이다. 인간의 꿈이란, 노력이란 참으로 숭고하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신라실에서 아기자기한 신라 토용을 보며 동물모양의 토용은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찰흙 수업 교재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적나라한 성애 장면을 교재로 쓰기는 좀 민망하니까.^^;


건성으로 지나치기 일쑤인 서예실에서 좀 시간을 두고 관람을 했다. 초서체 가운데 하나인 미친 듯이 흘려 쓴 광초(狂草)를 놓고 맨 정신에 이렇게 쓸 수 있는지 갑론을박했다.^^; 나중에 생의 막바지에 여유 있는 하직을 통해 시간을 확보하고 서예를 좀 배우고 싶다. 저무는 일만 남았을 때 추한 뒷모습을 남기지 않고 싶다. 우선 서예감상법부터 좀 배워둬야겠다. 회화실의 경우 주기적으로 교체를 하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회화 보존의 특성상 오래 전시할 수 없으니 자주 바꿔주는 모양이다. 그런데 한 권의 책으로 된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은 교체 전시를 쪽수만 바꾸면 된다며 박장대소했다. 여전히 회화는 내게는 미개척 분야지만 미술사학자 고 오주석 선생님의 저작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은 건 행운이었다. 오 선생님은 우리 그림은 세로쓰기를 하던 습관에 맞게 오른쪽 위에서 시작하여 왼쪽 아래로 가며<↙> 그림을 그렸다고 강조하셨다. 가로쓰기에 익숙한 우리는 자꾸만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며<↘> 그림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 회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요란스러운 일본식 표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림을 침범하지 않는 은은한 우리 표구에 대한 예찬도 새록새록하다.


국보 제302호 진주 청곡사 괘불은 길이 10m, 폭 6.3m에 이르는 지라 정말 엄청났다. 괘불(掛佛)은 글자 그대로 '걸어 매다는 불화'를 말한다.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를 그린 이 괘불은 본존불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 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화면 가득히 배치했다.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걸개그림인데 이 때 야외에 설치하는 법단이 야단(野壇)이며, 괘불이 걸리는 날에는 절에 사람이 북적거렸기에 야단법석이란 말이 나온 건 이제 상식이 된 거 같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는 이 거대한 불화를 전시하면서 소책자를 발간했는데 중앙박물관에서 특정 유물 1점만을 대상으로 한 이런 도록 발간은 사상 처음인 것을 보인다.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문화유산을 선별해서 이런 소책자를 많이 발간했으면 좋겠다. 높아진 문화적 수요에 공급이 절실하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케인지언이 되어 본다. 불교회화실을 지나며 나는 또 고려불화의 90%가 외국 특히 일본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광복절이라 보니 일본이 조금 더 미워졌다. 일전에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가장 마음이 끌리는 유물로 꼽은 것이 반가사유상 전시실 가는 길목에 전시된 10세기 고려 철조불두(鐵彫佛頭)인데 나 또한 무척 좋아한다. 다정다감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그간의 근심걱정이 가벼워지는 치유효과가 있는 것 같다.


독방을 쓰시는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앉아서 바라보니 은은한 미소가 더욱 그윽하게 다가왔다. 반가사유상은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에 걸치고(半跏), 오른쪽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명상에 잠긴(思惟) 불상의 모습(像)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식의 사색과 고뇌는 사람의 몫이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신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반가사유상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말미암아 가장 성스럽게 다가온다. 열반을 앞둔 부처님에게 앞으로 누구를 믿고 의지하냐며 제자들이 하소연했다. 부처님은 “그대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는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을 남겼다. 이 말씀처럼 인간은 한바탕 웃고 떠들다가도 결국 자기 자신과의 고독한 상념이 젖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동빈이가 연신 미소를 찬탄하니 안내하시는 분께서 국보 제83호에 비해 미소가 더 깊다며 맞장구를 쳐주셨다. 개인적으로 국보 제78호에 금박이 좀 더 남아 있었더라면 인기가 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불상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열없는 짓이지만 우아하고 화려한 78호가 다보탑이라면 정갈하고 청순한 83호는 석가탑이 아닐까 싶다. 큰 맘 먹고 산 강우방 선생님의 <반가사유상> 도록을 다시금 펴봐야겠다.


청자실에서는 고려청자가 발색(發色)이 고르지 못했다는 단점이 있지만 역시 일품이라며 어지러울 정도로 뚫어져라 봤다. 분청사기실의 추상성 짙은 작품들은 현대미술에도 많은 영감을 줄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백자실에서 발견한 희준(犧尊, 소 문양의 술잔)과 상준(象尊, 코끼리 문양의 술잔)은 제기로 종묘나 문묘에서 행해지는 제사에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익살스런 모양에 한참을 감상했다. 술을 담는 야외용 합인 주합(酒盒)도 인상적이었는데 위와 아래는 안주를 담거나 술잔으로 대용하고, 가운데는 술병인 매우 재미난 유물이다. mannerist 선배님께서는 문화적 가치를 특수성에서 찾아야지 보편성에 기대는 건 적어도 학적 영역에서는 그 근거를 대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지적하셨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우리 미술이 이룩한 것은 역사적으로 한국의 정치나 경제, 문학과 과학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세계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몇 안 되는 분야라고 보고 싶다. 자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턱없이 낮은 것에 대한 반발심인지, 결국 촌스런 민족주의적 감수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도 마음의 양식을 과식했다. 기획특별전 공짜표를 선사해준 동빈이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8월 가기 전에 호림박물관 소장 국보전도 보러 가야겠다. 나는 내 것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 [小鮮]
Posted by 익구
:
최봉원 선생님이 역주한 『중국고전산문』(2001, 다락원)이라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났기에 내 나름대로 다듬고 생각을 풀어봤다.


1.
돌아가자! 전원이 곧 황폐해지려고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왕에 스스로가 마음을 육신의 노예로 괴롭혔거늘, 어찌 홀로 근심에 빠져 슬퍼하는가? 지난 일은 탓해봐야 돌릴 수 없음을 깨닫고, 또한 앞으로 바른 길을 좇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노라. 실로 길을 잘못 들어 헤맸지만 멀어진 건 아니기에, 비로소 지금이 옳고 어제가 그릇됨을 알았다.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以獨悲? 吾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

동진(東晋)의 저명한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나이 41세 되던 해에 평택현령(彭澤縣令)에 부임하게 된다. 지금의 면장쯤 되는 자리였는데 봉급은 쌀 다섯 말이었다. 그런데 상급기관인 군의 독우(督郵)가 평택현을 시찰하게 되니 현리(縣吏)가 위관을 갖추고 나아가 맞이할 것을 권했다. 자유로운 영혼 도연명은 “내 어찌 쌀 다섯 말 때문에 시골뜨기 아이에게 허리를 굽힐 수 있으랴(吾不能爲五斗米折腰, 拳拳事鄕里小兒)!”라고 탄식하며 미련 없이 사직하고 불후의 명작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조린다. 나는 귀거래사보다 직장을 때려치는 도연명이 더 감명 깊다. 내 어찌 쌀 다섯 말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있겠는가(吾不能爲五斗米折腰!)! 이렇게 외치고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2.
태사공(사마천 자신)이 말하길, “부친께서 말씀하셨다. ‘주공이 죽은 뒤로부터, 오백 년이 지나 공자가 태어났고, 공자가 죽은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백 년이 되었다. 마땅히 어느 누가 능히 태평성세를 계승하며, 주역을 바로 해석하고, 춘추를 이어 지으며, 시경, 서경, 예기, 악경의 취지를 근본으로 삼아야 할 때가 되었는데, 너는 여기에 뜻이 있느냐?’ 제가 어찌 감히 양보하겠습니까?”

太史公曰, “先人有言, ‘自周公卒, 五百歲而有孔子, 孔子卒後, 至於今五百歲. 有能紹明世, 正易傳, 繼春秋, 本詩書禮樂之際, 意在斯乎. 意在斯乎.’ 小子何敢讓焉.”

“어찌 남에게 양보하겠는가?”라는 말을 하며 주공과 공자의 길을 계승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사마천이 부럽다. 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명심보감』으로 수업을 하셨던 선생님께서 당신이 무척 아끼는 구절로 꼽으신 것이 견선여갈(見善如渴)이었다. 계선편(繼善篇)에 나오는 말로 “태공이 말하기를,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을 본 듯이 주저하지 말며, 악한 일을 듣거든 귀머거리 같이 하라’ 또 말하기를, ‘착한 일은 모름지기 탐내고, 악한 일은 즐겨하지 말라’”는 구절의 일부다. 나는 과연 어떤 일을 남에게 양보하지 않고, 목마른 듯이 탐낼 수 있을까. 철없던 시절에는 할 게 너무 많아서 망설였다면 요즘은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은 거 같아서 주저하게 된다.^^; 사마천 흉내를 좀 내보자면 나는 나보다 999년 전에 태어나신 문헌공 최충 할아버지나 나보다 꼭 100년 앞서 태어난 J.M 케인즈 같은 경제지사(經濟之士)가 되고 싶다.


3.
군자는 행동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한다.

君子以行言, 小人以舌言

『공자가어』 「안회」에 있는 말이다. 이 구절은 안회가 공자에게 “소인의 말과 군자의 말이 같습니까? 군자 된 사람은 이를 분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질문한 것에 공자가 답한 것이다. 퇴계 선생의 『자성록』 서문에는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옛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몸으로 실천함이 말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간 하고 싶은 말이 넘쳐서 내 자신이 지키지 못할 말들을 너무 많이 한 것은 아닐까. 너무 혀로 많이 말해온 거 같아 부끄럽다.


4.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하지 말며, 올해에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날과 달이 가고, 세월은 나를 위해 더디 가지 않는다. 아! 늙었구나! 이 누구의 허물인가?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日月逝矣歲不我延, 嗚呼老矣是誰之愆?

『명심보감』 권학편(勸學篇)에 나오는 주자의 말씀이다. 세월은 나를 위해 더디 가지 않는다(歲不我延)는 말처럼 무서운 게 없다. 이것 말고도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으로 시작하는 주자의 권학시와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로 시작하는 도연명의 권학시도 끔찍이 좋아한다. 퇴계 선생은 『자성록』에서 “다만 이 이치를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기 어려운 것이며, 또 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참을 쌓아 오래도록 힘쓰기가 더욱 어렵다(惟此理, 非知難而行難, 非行難而能眞積力久爲尤難)”고 하셨다. 퇴계 선생은 학문에 있어서 참을 쌓고 오래 힘쓴다(眞積力久)는 노력을 매우 강조하셨다. 학문은 단순한 앎이라거나 일시적 선행이 아니라 조바심 내지 말고 애면글면 해나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서둘지 않고 쉬지 않는 노력이 부디 배반의 장미를 꽃피우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Posted by 익구
:
명나라 태조 홍무제(洪武帝) 주원장이 세상을 떠난 후 황태손 주윤문이 즉위하여 건문제(建文帝)가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주원장의 넷째 아들과 맞손자 사이에서 골육상쟁을 벌인다. 건문제와 연왕(燕王) 주체와의 전쟁을 역사는 정난(靖難)의 변이라 부른다. 북경 교외에 있는 명나라 황제의 집단 무덤인 명십삼릉(明十三陵)에 묻히지 않은 명나라 황제는 세 사람이다. 홍무제는 남경을 수도로 정하고 거기서 죽었기 때문에 남경에 있는 명효릉(明孝陵)에 묻혔고, 7대 경태제(景泰帝) 주기옥은 6대 정통제(正統帝) 주기진이 다시 8대 천순제(天順帝)로 복위하면서 명십삼릉이 아닌 금산에 묻히게 된다. 정통제/천순제는 자신의 제위를 빼앗았던 동생 경태제를 폐하고 왕으로 낮춘다. 그래서 명십삼릉에 안장하는 대신 경태릉(景泰陵)을 조성해 왕의 예로써 장사를 지내게 된다. 건문제는 영락제가 남경으로 쳐들어왔을 때 실종되어 생사가 밝혀지지 않아서 아예 무덤조차 없다. 참고로 명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17대 숭정제(崇禎帝) 주유검은 이자성의 반란군이 베이징으로 쳐들어오자 자금성 뒷산에서 목매어 죽는다. 불행 중 다행인지 청나라의 배려로 황제의 예로 명십삼릉에 묻히게 된다.


영락제는 건문제의 치세 4년을 역사에서 지우려고 무던 애쓴 모양이다. 실제로 명의 기록에는 건문제 시대가 누락되어 있다. 홍무제는 홍무 31년에 죽는데, 영락제가 등극한 이후 명의 문서에는 홍무가 35년 간 지속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는 영락제가 아버지 홍무제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이런 눈 가리고 아웅이 얼마나 통하겠는가. 여하간 정권을 장악한 영락제는 건문제의 옛 신하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병부상서(兵部尙書) 철현(鐵鉉)은 영락제를 보고도 의연히 돌아서서 굽히지 않고 항변하였는데, 이에 격분한 영락제는 그의 귀와 코를 잘라서 삶은 후에 그의 입 속에 넣고는 맛이 어떤지를 물었다. 철현은 “충신과 효자의 고기가 어찌 맛이 없겠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중국사는 이처럼 민망할 정도로 잔인한 이야기들이 많다.^^; 영락제는 건문제 측근들을 무참히 제거했지만 방효유(方孝儒)는 스승이기도 하거니와 명성 높은 대학자이기에 회유하기 위해 즉위 조서를 짓도록 명했다. 영락제는 그가 자신의 편이 된다면 황위를 찬탈한 정통성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을 것이다.


한사코 쓰지 않겠다는 방효유에게 영락제는 강제로라도 조서를 쓰게 할 작정으로 지필묵을 가져오게 한다. 방효유는 마침내 붓을 들어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종이에는 연적찬위(燕賊簒位, 연나라 도적이 황위를 찬탈하다)라는 네 글자만 쓰여 있었다. 영락제는 노발대발하며 “네가 아무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도, 설마 네 죄가 구족(九族)에게까지 미쳐도 좋단 말이냐?”라고 말한다. 그러자 방효유는 “구족이 아니라 십족(十族)을 멸해도 할 수 없는 일이오!”라고 일갈한다. 영락제는 칼로 방효유의 입을 귀 밑까지 찢도록 하고 방효유의 본가, 외가, 처가 친척과 십족인 친구, 문하생을 잡아들여 방효유 앞에서 한 명씩 차례로 처형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방효유를 취보문 밖에서 책형에 처했다. 이 때 죽임을 당한 사람이 847명이라고도 하고, 873명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형벌일 것이다. 역사가들이 영락제의 잔인함이 진시황을 능가했다고 한 것은 오히려 무딘 표현이다. 명나라판 수양대군인 영락제를 도무지 곱게 볼 수 없는 것은 내 옹졸함 때문인가.


흔히들 명나라 시대에는 송나라 때 볼 수 있었던 기개 있는 선비들이 적었다고 한다. 명나라의 숭정제는 이자성군이 몰려올 때 그를 지키려는 대신과 군사는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내시 왕승은만이 옆에 남아 그가 나무에 목을 매는 최후를 함께 했다고 전한다. 이에 반해 송나라의 황혼은 누추하지 않았다. 사실 남송과 원나라의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송은 몽골에 맞서 독자적으로 항전했다. 1276년 수도 항주가 함락되고 공제(恭帝)가 투항하여 사실상 멸망했음에도 마지막까지 송나라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있었다. 문천상(文天祥), 육수부(陸秀夫), 장세걸(張世傑)을 일컫는 송말삼걸(宋末三傑)이 대표적이다. 바닷가인 애산에 임시로 망명정부를 세우고 버텼지만 1279년 마침내 몽골군에 함락된다. 육수부는 어린 황제를 등에 업고 물에 뛰어들었고, 송나라 부흥을 위해 베트남으로 향하던 장세걸은 태풍을 만나 침몰해 죽었다. 대도(북경)로 압송된 문천상은 그의 재능을 아낀 원 세조 쿠빌라이칸이 여러모로 구슬렸으나 끝내 거부하고 처형되었다. 문천상이 남긴 시의 마지막 두 구절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인생은 예로부터 누구나 한번 죽는 법, 일편단심을 남겨서 청사를 길이 빛내리라(人生自古誰無死 留取丹心照汗靑)”


천하의 쿠빌라이칸도 문천상의 정신을 빼앗지 못했다. 송나라의 최후를 장식한 선비들이 많았던 것은 문치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문인들을 우대했던 송 태조 조광윤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광윤이 황위계승자에게 남긴 석각유훈(石刻遺訓)의 내용은 무척 간단했다. “송에 나라를 물려준 후주 왕실 시씨를 자자손손 돌봐줄 것, 황제의 행동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서 사대부를 죽이지 말 것” 이 두 가지였으니 외우기도 쉬웠을 것이다. 이처럼 선비의 명예를 존중하고 간언을 미워하지 않은 정신이 바로 송나라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반면 영락제가 자행한 방효유의 멸족은 헌정질서나 대의명분을 지키기보다는 현실의 힘에 굴복하라는 압력이었다. 영락제의 만행은 대다수 지식인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명나라의 마지막이 그토록 시시했던 것도 결국 자업자득인 셈이다.


몽골의 장수 장홍범(張弘範)이 장세걸에게 항복을 설득했을 때 장세걸은 “나는 항복하면 살고 또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의리상 마음을 변할 수 없다”며 거절한다. 제가 누릴 권세와 이득을 알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켜낸 배짱과 용기를 헛된 개죽음으로 칭하고 싶지는 않다. 의병장 조헌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맹세하는 말에서 “오직 의(義)라는 한 글자만을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두라(唯一義字 終始念之)”고 역설했다. 700명의 의병으로 금산 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의병들과 함께 모두 전사한 마지막 결전에 앞서서도 “오늘은 다만 한 번 죽음이 있을 뿐이다. 죽고 삶이나 나아가고 물러섬에서 의(義)라는 한 글자에 부끄럽지 않게 하라(今日只有一死 死生進退 無愧義字)”고 말했다고 한다. 이기적인 본연을 거스르는 행동은 감동을 자아내게 마련이지만 의리의 사나이에도 등급은 있다. 방효유, 송말삼걸, 조헌, 사육신 같은 이들이 상급이라면 전두환의 충복으로 유명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하급이라 할 만하다. 상하를 가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지킬만한 것을 지켰는지 여부를 보면 된다. 참여정부에서 고위직을 맡으며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기 위해 돌변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을 떠올리면 장세동에 대한 박절함이 조금 누그러지지만 결국 오십보백보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파레토는 “엘리트란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우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로 정의하며, “엘리트의 자격은 시대에 따라 변하며 역사는 그들의 등장과 몰락으로 이뤄지지만 항상 엘리트가 지배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여야가 바뀌고, 시민단체 인사들이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노조가 경영에 참가하고, 여성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결국 신진 엘리트일 뿐이라는 통찰에 매섭다. 이러한 엘리트 이론은 지배계급의 세습을 은폐하고,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나는 엘리트의 존재에 충분히 긍정적이다. 물론 의회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바탕으로 시민의식을 갖춘 대중을 상정한다. 아울러 다원주의 사회에서 부문별로 다른 전문성을 갖춘 다채로운 엘리트가 성립 가능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갖춘 엘리트, 의회 민주주의와 시민의식, 다원적 가치를 수용하는 문화가 얼마든지 조화될 수 있다고 본다. 엘리트의 위상과 역할, 분류에 대한 이견 속에서도 엘리트의 존재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부러 줄이지 않는다면 엘리트가 차지하려는 부와 명예와 권력은 늘 희소해서 다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이 향유하는 만큼 책무를 다하는 엘리트들이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삶은 단 한 번뿐이라고 믿는 사람은 대충 살 생각도 없지만 기왕이면 호의호식하며 살고 싶다. 누군가 나 대신 손해배상과 손실보상을 해줄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누리는 자유만큼 책임을 감내하며 열심히 착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내가 방효유의 처지에 놓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효유는 충절로 이름을 빛냈지만 그와 관계 맺은 숱한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었다. 방효유가 제 아무리 선비정신의 고갱이를 보여주고, 지식인의 절개를 드높였다고 한들 억울하게 죽은 목숨 앞에서는 거대한 죄책감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고약한 사고실험으로 내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괴롭다. 천만다행으로 개명된 천지에 살고 있는지라 적어도 그런 무도한 경우는 염려하지 않아도 되니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입술 꽉 깨물고 연적찬위(燕賊簒位)라고 써내려가고, 민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지인들을 북돋워주는 사람이 되기란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지켜야할 것을 지키면서 삶의 보람을 찾는 의리 있는 녀석이 되어보도록 하자. 방효유의 고뇌를 품고, 문천상의 기상을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조금 나은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으리라. 제대로 잘 살기란 참 까다롭다. - [小鮮]
Posted by 익구
:

지난 토요일에 한국어문회에서 주관한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을 치르고 왔다.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이어야 하는데 가채점 결과 70점 정도 받은 것 같다. 꾸준히 틈틈이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평소에 한자를 좋아했던 정분 덕분인지 벼락치기 한 것 치고는 선방한 셈이다. 그래도 세세한 실수는 못내 아쉽다. 가령 맛볼 상(嘗)자에 날 일(日)을 넣어야할 것을 눈 목(目)을 넣는다거나, 전전반측(輾轉反側)에서 측(側)자에 사람 인(亻)변을 넣을 것을, 삼수 변(氵)을 넣어버렸다거나 하는 식의 자잘한 실수는 신경이 쓰인다. 꼼꼼하게 보지 못한 티가 확 난다. 본래 어문회 한자시험이 현재 인정되는 국가공인 한자자격증 가운데 가장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다. 다른 시험들은 100점 만점에 70점 이상이면 되는 것을 80점 이상을 고수하는 점은 그렇다고 쳐도, 요즘 거의 의식되지 않는 장단음 문제를 10문제(200문제의 5%)나 내는 것도 엄청난 압박이다. 고등학교 시절 3급, 2급 시험을 치를 때 장단음 문제는 그냥 찍고 말았지만 합격선이 높은 1급 시험의 경우에 장단음 문제 10개를 틀렸다고 가정하고 출발하니 여간 조마조마한 게 아니다.


고3 수험시절 주위의 걱정스런 눈초리를 무마해가며 5월에 2급 자격증을 땄다. 한 주 뒤에는 고대에서 한문 경시대회가 열렸고 한문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잘 모르지만 아직 기억이 생생한 한자를 조합해서 제법 문제를 풀었던지 장려상으로 턱걸이 입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한문이나 현대 중국어는 고립어(孤立語)이기 때문에 문법적 관계가 주로 어순에 의해 표시된다. 영어처럼 시제나 진행, 완료형에 따라 동사가 변하는 것도 없고 생각보다 문법이 간소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한자 뜻만 잘 알고 있으면 어순에 주의해서 어찌어찌 해석은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한자어가 한문 해석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임은 부인할 수 없다. 고립어인 중국어와는 달리 한국어는 토씨(助詞)와 어미를 활용하여 말에서 각 낱말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나타내는 교착어(膠着語)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문을 읽을 때도 토씨나 어미를 사용했고, 여기서 구결(口訣), 이두(吏讀), 향찰(鄕札) 등의 표기법도 파생된다. 참고로 고립어는 문장의 순서를 바꾸면 아예 뜻이 바뀌지만 교착어는 문장의 순서가 바뀌어도 뜻이 거개 통한다. 가령 “나는 내일 서점에 갈 것이다”는 문장을 “내일 나는 서점에 갈 것이다”, “나는 갈 것이다, 내일 서점에”, “내일 나는 갈 것이다, 서점에”라고 해도 뜻이 바뀌거나 하지 않는다.


여하간 한자 자격증에 대해 몇 가지 험담을 하고 싶다. 우선 네 군데의 국가공인 한자 자격증의 급수별 배정한자가 많이 차이가 나는 점은 못마땅하다. 네 단체가 똑같은 한자습득능력을 측정하려다 보니 차별화를 위해 배정한자를 달리 한 모양이지만 수험자 입장에서는 당혹스럽다. 1급은 3,500자가 배정되어 있는데 네 자격증을 모두 따려면 5,000자 가까이 공부해야 한다니 어지간한 중국 사람도 이렇게 한자를 많이 공부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음으로 한국어문회에서 기출문제의 공개를 꺼리는 점도 불만이다. 수험생이 문제를 알게되면 수험생이 채점한 점수와 어문회에서 채점한 점수가 차이나서 이런저런 클레임이 걸려올 것이 귀찮기도 할 것이다. 그 많은 시험지를 한자 전문가가 하지 않는다면 경미한 실수나 오차가 있을 텐데 그걸 감추기도 힘들 테고 말이다. 수험생들이 제 기억을 복원해서 힘겹게 시험문제와 모범답안을 만들어내는 수고로움을 당최 언제까지 전가할 것인가. 이런저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시험 때는 일취월장(日就月將)해야겠다. 11월에 다시금 1급 시험에 도전하기 전까지 평소에 좀 공부해야겠다. 내 대학 입학에 지대한 공헌을 해준 한자와의 인연을 아름답게 이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서예학원에 다니면서 먹을 갈던 그 때부터 나는 한자와 한문을 편애하게 되었다. 물론 그 편애는 모국어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한국어를 끔찍이도 사랑한다. 비록 전문적인 한국어 탐구를 하지는 못하겠지만 맛깔스런 글을 지어내는 것은 내 평생의 꿈이다. 나는 내 모국어의 품이 넉넉했으면 좋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한자어도 마땅히 한국어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언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옛 한자어들이 서서히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워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툭하면 불거지는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의 문제에서 이미 한글 전용론의 승리는 완연하다. 나 또한 한자가 혼용된 텍스트를 읽는 것은 세로쓰기로 된 책을 읽는 것만큼 더디고 꺼려진다. 그러나 나는 한글만을 쓰더라도 필요에 따라 괄호 안에 병용하는 건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는 한국어를 풍요롭게 쓰려는 사람은 마땅히 한자도 좀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반드시 옳은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결코 지적 허영이나 낭비가 아니라 지적 알뜰살뜰함이라고 생각한다.


한자는 물론 중국 사람의 글자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인만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한자를 아쉬운 대로 잘 써왔다. 그러나 한국어는 영어의 알파벳처럼 다음절 언어인데 반해 중국어는 단음절 언어라 한국어를 표기할 때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한국어와 중국어는 어순까지 다르니 우리 글자가 없던 시기에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는 데 얼마나 고초가 심했을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두나 향찰 같은 한자차용표기법(漢字借用表記法)이 쓰였지만 한계가 적잖았을 것이다. 이두가 발달한 형태인 향찰의 경우 한국어의 입말을 가능한 한 가장 완전히 표기하게끔 고안된 서기 체계다(고종석, 『국어의 풍경들』, 문학과지성사, 1999, 36~47쪽 참조). 이두는 생략해도 한문이 그대로 남아 이해할 수 있으나, 향찰은 생략하면 문장 전체가 없어져버린다. 향찰로 표기된 문장은 한문이 아닌 한국어 문장인 셈이다. 만약 향찰이 좀 더 발전했다면 우리는 지금 일본의 가나 같은 보조적인 음절 문자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향찰은 식자층의 외면으로 고려 초기에 소멸해버렸다. 이두와 한문만으로 제대로 된 언어생활이 힘들었기에 한글 창제를 할 유인이 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향찰이 아무리 정교하게 개발되었더라도 한자를 통해 한국어를 온전히 구사할 수 없었기에 한글 창제 같은 노력이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


고종석 선생님이 누차 지적하셨듯이 한글은 음소 문자이면서도 낱글자를 음절 단위로 네모지게 모아씀으로써 음절문자의 효과를 내고 말았다. 실제의 운용은 일본의 가나 같은 음절문자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세종대왕을 위시한 훈민정음을 만든 분들은 처음부터 한자가 끼어들 여지가 있는 표기법을 염두에 두었다는 주장에 동감한다. “ㅎㅢ마o(希望)”, “lㄴ새ㅇㅁㅜ사ㅇ(人生無常)”이라고 쓰는 것보다 “희망(希望)”, “인생무상(人生無常)”으로 표기하는 것이 한자가 들어가기가 쉬움은 몇 번 해보면 시각적으로 알 수 있다. 요컨대 한글 한 음절과 한자 한 음절이 일대일로 대응되면서 한자가 개입될 여지가 충만해졌다. 이는 한국 한자음을 중국 한자음에 가깝게 고치고 싶다는 한글 창제자들의 욕망이 투영되어 음절합자식(音節合字式) 철자법을 낳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창제자의 의도 혹은 시각적 조화가 한자를 배워야한다는 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자를 쉽게 베어낼 수 없게 된 까닭은 규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한자 습득이 한자어 이해를 돕는 것은 한글전용이란 원칙과 별개로 얼마든지 병행해서 추구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한글 전용이라는 밥상을 차리고 싶어도 한자라는 반찬이 없으면 곤란할 정도로 한자어는 한국어에 깊게 침투해있다. 한자어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적정 수준의 한자 학습이 부당한 노동력 낭비이며 인권 유린(?)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종종 이야기되는 한자문화권이라는 개념은 그리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자는 한자문화권 밖으로 더 퍼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영어 공부에 쏟는 정성의 일부만 한자 공부에 두면 좀 더 풍성한 언어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겸사겸사 동양고전도 많이 읽으면 금상첨화다. 여하간 내 지인들에게 한자 자격증 시험에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시험 본다는 핑계로라도 좀 배워두면 좋겠다. - [小鮮]

Posted by 익구
: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말들의 풍경 19편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이 쓴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따온 제목인 듯하다. 고 선생님은 당신이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낱말 열 개로 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넋, 술을 꼽았다. 김수영 시인은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았다. 김수영은 그 수필에서 “그런 것(아름다운 말)을 아무리 많이 열거해 보았대야 개인적인 취미나 감상밖에는 되지 않고, 보편적인 언어미가 아닌 회고 미학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 고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차피 개인에 따라 다른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가 설령 회고 미학에 그치면 어떠한가. 그렇게나마 모국어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도 노력이고 용기다. 서로의 아름다움이 섞이고 스밀 때 보편적인 언어미도 시나브로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런저런 진통 끝에 내가 아름답게 여기는 우리말 열 개를 뽑아봤다. 개인적으로 한자어도 한국어에 마땅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고유어 혹은 토박이말로 한정했음을 밝힌다.


하나, 벗. 벗은 사랑만큼이나 파생되는 게 많은 말이다. 아니 오히려 품이 더 크다. 만남과 인연이며, 그리움과 설렘이며, 희노애락과 훼예포폄이 얼룩져서 한 사람의 삶을 빚어낸다. 『후한서』 송홍(宋弘) 열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후한 광무제가 누이를 재혼시킬 사람을 물색하다가 송홍을 불러 “옛말에 지위가 높아지면 벗을 바꾸고, 재산이 생기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던데, 공은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諺言貴易交, 富易妻, 人情乎?)?”라 물었다. 송홍은 “신이 듣기로 가난하고 천할 때의 벗은 잊지 말아야 하며, 술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으며 함께 고생했던 아내는 부귀한 뒤에는 호강시켜준다고 했습니다(臣聞貧賤之知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라고 말했다. 『삼국사기』 강수 열전에도 미천한 사람을 배필로 삼지 말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강수가 “옛사람의 말에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고 빈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미천한 아내를 차마 버릴 수 없습니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보통 여기서 조강지처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고 있지만 빈천지교도 두고두고 곱씹을만하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에서 영속성보다는 일시성이 두드러진 미래사회의 인간관계는 한 사람과 총체적인 관련을 맺기보다는 그 사람의 한 부분에만 관련을 맺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만나지도 않고 이해도 달리하는 친구들 대신에, 새로운 친구들을 탐색하는 사회적 발견의 냉혹한 과정”을 통해 효용가치가 없는 옛친구들은 빨리 버리거나 잊고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만한 새 친구를 찾아야한다는 그의 주장이 날카롭다. 그러나 그 탁견은 내 자신이 좀 더 진지한 유쾌함을 나눌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겠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인다. 나는 내 벗들과 『논어』에 나오는 구이경지(久而敬之)할 수 있기를 꿈꾼다. “오래되어도 여전히 공경한다”라고 해석하면 친해지더라도 존경심을 잃지 않고 범속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간이 흘렀다고 무심해지지도 않고, 세월이 지났다고 차갑게 식지 않는 그런 존재 말이다. “오래 사귈수록 공경하게 된다”라고 해석하면 오래 사귀어도 그 사람의 약점이 드러나기보다는 강점이 더욱 커진다는 뜻이다. 아니 어쩌면 그 약점과 한계마저 품을 수 있을 만큼 그릇이 커진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간에 벗과 관계맺음의 이상향으로 삼을만하다. 『명심보감』에서 “얼굴 아는 이야 천하에 가득하되, 마음 아는 이는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라는 구절이 있지만 수원수구(誰怨誰咎)하리요. 다 스스로 말미암을 뿐이다. 내 주위 사람은 다 착한 거 같다고 말씀하시던 어느 형이 생각난다. 선한 인연의 시작은 이런 자세부터다.


둘, 끼니. 중세어로 ‘끠’는 시간을 말하는 고유어였다고 한다. 지금은 ‘때’에 밀려 쓰이지 않지만 ‘같은 때’를 의미하는 ‘함께’라는 말과 ‘밥 때’를 의미하는 끼니, 끼에서 흔적이 남아 있다. 『사기(史記)』에 “임금 노릇을 하는 자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王者以民爲天, 民以食爲天)”는 말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6년 기사에서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부지런히 농사에 힘쓸 것을 하교하면서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라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국민의 생업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치의 근본(制民之産)이란 맹자의 경구를 교훈 삼아 어려운 서민경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기로서니 날도 좀 가리지 못하고 골프를 쳐서 국민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는 지도자들이 좀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전태일 열사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 건 그 얼마나 인간적인가. 먼 훗날 캡슐 하나만 먹으면 끼니 해결이 되는 약품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이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배곯는 사람에 가장 먼저 눈길을 보내고 손길을 건네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의 것이다”고 말씀하셨다지만 인생이 한번뿐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그 천국은 얼마나 허망한가. 빈곤 문제를 하나님에게 맡기는 건 비겁하다.


삼봉 정도전 선생은 “먹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큰 일이구나. 하루라도 먹지 않을 수 없고, 또 하루도 구차히 먹을 수 없다. 먹지 않으면 목숨을 해치고, 구차히 먹으면 의리를 해친다(食之於人 大矣哉 不可一日而無食 亦不可一日而苟食 無食則害性命 苟食則害義理)”고 말했다. 무척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시경』에서 “공짜밥을 먹지 않는다(不素餐兮)”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삼시 세 끼 밥값을 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늘 돌아볼 일이다. 군침 떨어지는 산해진미 앞에서 잠깐이나마 “먹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하여 먹으라”라는 키케로의 말도 떠올려보자. “크낙하게 슬픈 일을 당하고서도/ 굶지 못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슬픔일랑 잠시 밀쳐두고 밥을 삼켜야 하는 일이,/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밥을 씹어야 하는/ 저 생의 본능이,/ 상주에게도, 중환자에게도, 또는 그 가족에게도/ 밥덩이보다 더 큰 슬픔이 우리에게 어디 있느냐고.”라고 노래하는 이수익 시인의 「밥보다 더 큰 슬픔」을 찬찬히 읊조리면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산 사람은 먹어야 한다. 기쁨을 북돋우기 위해서든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든 부지런히 먹고 마셔야 한다. 『도덕경』은 “그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채운다(虛其心, 實其腹)”라고 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무지(Ignorance)가 아니다. 선의의 무심함을 발휘하는 넉넉함을 말한다. 생활을 간소하게 꾸리고, 헛된 욕심으로 간계를 꾸미지 않고, 제 영혼의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부러 배부른 돼지를 경멸하고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숭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얼마든지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다.


셋, 차마. 차마 뒤에는 부정의 몸짓이 따라온다. 그러나 그 부정은 애틋하고 안쓰럽고 안타까워 감히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이것을 하라고 강권하는 사회보다는 이것만은 차마 할 수 없지 않느냐고 호소하는 사회가 좀 더 열려있고 낮은 사회가 아닐까 싶다. 차마 할 수 없는 일은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포지티브 시스템보다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나아가서 자유와 권리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우직한 사람의 어리석음이 세상을 바꾼다고도 하지만 그 우직함은 무언가를 기꺼이 하는데서 있다기보다는 차마 이것은 못하겠다는 데서 출발한다. 남이 모른다고 해서 몰래 나쁜 짓을 하면 결국에는 천벌을 받는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 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못된 짓 좀 할라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차마 이 짓거리는 못하겠다며 팽개치는 사람이 그립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늦게까지 제 자리를 지키는 바보들이 많아야 세상이 좀 더 넉넉해진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적어도 그 바보들에게 함부로 눈 흘기지 말자. 우리는 저마다 차마 못하는 구석은 하나씩 있게 마련이니까. 그것을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라고 말해볼 수 있겠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남에게 모질게 굴지 못하는 마음은 사람에게 품는 희망의 고갱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이태. 두 해라는 뜻의 이태에서 ‘이’는 원래 ‘읻’으로 둘이란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이틀이나 이듬해처럼 ‘읻해’에서 발음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자주 틀리는 맞춤법 가운데 ‘며칠’이 있다. 종전에 ‘몇일’과 ‘며칠’을 둘 다 쓰던 것이 1988년 새 한글맞춤법에서 ‘며칠’로 통일된 것이다. 한글맞춤법 제27항은 “둘 이상의 단어가 어울리거나 접두사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은 각각 그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고 규정하지만 [붙임2]에서 “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고 하면서 그 용례로 ‘며칠’을 들고 있다. ‘며칠’은 ‘몇-일(日)’로 분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질 형태소인 ‘몇’과 ‘일(日)’이 결합한 형태라면 [멷닐->면닐]로 발음되어야 하는데, 형식 형태소인 접미사나 어미, 조사가 결합하는 형식에서와 마찬가지로 ‘ㅊ’ 받침이 내리 이어져 [며칠]로 발음된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몇 월(月)’의 경우 두 음절 사이에서 발음의 끊어짐 현상이 일어나서 ‘몇’이 [멷]으로 발음돼 [멷월->며둴]이 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틀도 어원이 분명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 단어를 읻흘이나 잇흘로 적는다면 ‘흘’은 사흘, 나흘 등의 흘과 공통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읻, 잇’은 무슨 뜻의 형태소인지 알 수가 없다. 한자어 ‘이(二)’와 결부시키기도 어려운 것”이라니 알쏭달쏭하다. 요는 며칠, 몇일의 ‘일’이 한자어 ‘일(日)’에서 온 것인지 이틀, 사흘, 나흘의 ‘흘’에서 온 것인지 통일이 되지 않아서 이런 혼선이 생겼다. 날짜를 나타내는 단위 명사의 어원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자주 쓰는 언중의 입장에서 좀 섭섭한 일이다.


이태는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기간이다. 이태라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다면 이 사람이 내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프로젝트형 인간관계에 치이는 시대에 이태를 숭상하는 내가 고지식하게 보이겠지만 말이다. 또한 이태라는 시간은 관계가 소원해지는 심리적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가수 김동률의 2집 ‘希望’에 실려 있는 ‘2년 만에’라는 노래에서 이태 만에 돌아온 사람의 심정을 말한다. “2년 만에 다시 이렇게 돌아왔는데/ 이만큼만 기다리면 됐는데/ 곁에 없다는 게 그렇게 그대 힘들었나요/ 그럼 나는 쉬웠을까요”라면서 “생각이 잘 안 나요 마지막 모습이”라고 탄식한다. 세월이 빠르다지만 이태는 제법 긴 시간이다. 이태 정도 못 보고 이야기 나누지 않으면 어지간한 금란지계(金蘭之契)도 느슨해지게 마련이다. 몇 십 년 만에 학창시절 동창을 찾아도 낯설지 않게 환담을 나눌 수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란이 있어 부득이 헤어진 게 아니라면 세파에 시달리느라 서로가 잊어버린 것이다. 미디어평론가 변정수 선생은 “인터넷은 사랑을 싣고?”라는 칼럼에서 “내내 친하게 잘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온다간다 말 한 마디 없이 실종되었던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이미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다시 만난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는 말에 조금 거부감이 들지만 내 자신이 이미 지금도 충분히 겪고 있는 일이다. 내 곁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겠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대개는 옳다.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이 늘어나서 어쩔 수 없이 소홀해지더라도 있을 때 잘했다면 서서히 잊히고 다시 재건할 수 있는 여지도 남길 수 있으리라. 게으른 주제에 미련이 많다.


다섯, 젊음. 젊음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나는 다짐을 남발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부담 없이 작심삼일할 수 있고 허영심에 들떠 제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게 젊음이다. 이렇게 잉여적 행동을 만끽할 수 있는 게 젊음이기에 그 자체로 특권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청춘이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는 사무엘 울만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공감한다. 각박한 세태에 묻어가면서도 짬짬이 옛 다짐을 기억하고, 어린아이처럼 즐길 수 있다면 젊음을 사수하지는 못해도 조금 천천히 잃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즐겨 보았던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노자 강의 한 토막이 떠오른다. 청춘의 가장 위대한 순간은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할 때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 헌신할 때 평화가 온다는 그 말씀이 얼마나 가슴 뛰게 했던가. 색신(色身)은 늙어도 법신(法身)은 함부로 늙지 말자.


극작가 배삼식 선생님은 “제갈량의 오만”이라는 칼럼에서 “결국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유능해’질 것이고, 세상사에 묶여 닳고 닳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젊은이들이 잠깐이라도 그들의 ‘무능함’을 즐기며, 도도하고 오만하게 폼 잡을 여유를 우리 사회가 주기 바라는 것은 영 배부른 소리일까”라고 말한다. ‘유능 권하는 사회’에서 젊음은 너무 담백해지다 못해 메마르고 있는 건 아닐까. 삼고초려한 유비를 맞이하는 공명선생이 지은 시는 호방함이 일품이다. “큰 꿈을 누가 먼저 깨닫는가/ 일평생 내 스스로 알고 있다네/ 초당에 봄잠이 넉넉한데/ 창밖에 해는 아직도 더디 가는구나(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라며 유비를 따라나선 자신이 세상의 먼지에 뒤덮일 것을 자조하면서도 포부를 품는다. 젊은 날의 큰 꿈이 너무 빨리 깨버리게 하지 말아야겠다. 그나저나 세월은 나를 위해 더디 가지 않는다(歲不我延)는 말, 정말 무섭다. 젊음은 칼날 위의 꿀물인지도 모른다.


여섯, 고맙다. 어원이라는 게 이설이 많지만 ‘고맙다’의 어원은 무척 재미나다. ‘고마+ㅂ다’에서 ‘고마’는 본래 신(神)을 일컫는 말이어서 ‘고맙다’는 존귀하다의 뜻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즉 고맙다는 우리말을 예전 의미로 풀어보면 상대방의 존귀함을 신처럼 받든다는 극존칭이 탄생한다. 당신이 내게는 하느님처럼 존귀한 분으로 여겨져서 공경한다는 표현이라니 이토록 절절한 감사의 말이 흔치 않을 것 같다. 이 풀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고맙다는 말을 쓸 때 이런 마음을 품어보면 좋겠다. 불가에서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하듯이 말이다. 곳곳에 부처님이 계시니 하는 일마다 불공을 드리는 마음으로 둘레 사람들을 고마워하자. 문득이 어떤 이가 얄미울 때 그에게 신세진 것은 없는지 내가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겠다. 남에게 고마웠던 일은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금세 잊힌다. 고마웠던 기억만 건사하기에도 우리 두뇌 용량은 버겁다.


일곱, 너그럽다. 너그럽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말들은 무척 많다. 어질다, 미쁘다, 미덥다, 살갑다, 베풀다, 나누다, 노느다 같은 말들이 언뜻 떠오른다. 하지만 너그럽다는 나와 다른 것을 인고(忍苦)한다는 의미가 좀 더 강한 것 같다. 똘레랑스라는 말이 여기저기 회자되고 있지만 자신이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고, 그 자유를 향유하는 사람을 보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정한 너그러움은 양시론을 휘두른다거나 줏대 없이 일단 얹혀서 가자는 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송논쟁이 한창일 때 서인의 영수 송시열에 대항했던 남인 논객 윤휴는 주자의 해석과 다른 문장해석을 했다는 이유로 송시열 일파들에게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맹렬한 공격을 받았고, 급기야 억지 죄명을 뒤집어쓰고 사약을 받았다. 교조적인 이념에 반기를 들었던 그를 포용하지 못한 것은 조선의 비극이었다. 나라에서 선비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는 푸념을 다시 반복해본다.


그러나 오늘 날에도 송시열과 같은 독선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를 궤멸시켜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지 않는 한 이 세상은 성인과 악당이 못 잡아먹어 안달인 아마겟돈(Armageddon)의 연속이 될 것이다. 조선 당쟁에서 배워야할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관용이다. 선악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일쑤인 다원주의 사회에서 사는 것이 혼란스러울 때 칼 포퍼가 말한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의 노력에 의해서 진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I may be wrong and you may be right, and by an effort, we may get nearer to the truth.)”라는 경구를 습관처럼 꺼내보자. 진수의 삼국지 오나라 편에 있는 제갈량 조카 제갈각의 전기에는 “그 사람의 약점으로 그의 장점을 버려서는 안 된다(不以人所短, 棄其所長)”는 말이 나온다. 그 사람의 약점에 천착하기보다 장점을 도두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종대왕 때 박연이 왕에게 시각장애 악공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다(天下無棄人也)”고 말한다. 정말 마음을 흔드는 말이다.


여덞, 처음처럼. 브랜드를 만들고 회사 로고를 디자인하는 네이밍 업체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는 처음처럼이란 말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가 개발한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은 성공회대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체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처음으로 하늘을 나르는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는 시와 함께 쓰인 처음처럼이라는 글귀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손 대표는 신 선생님의 글씨로 브랜드를 개발한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자신이 받은 작명료 8000만원 중 5000만원과 두산이 내놓은 기금을 합쳐 1억원을 성공회대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시경』에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이란 말이 있다.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까지 잘 마무리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시작이야 누구나 곧잘 하지만 끝맺음을 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 초심을 버리고픈 아찔한 유혹은 늘 내밀하고 지근한 곳에서 맴돈다. 임종을 앞둔 김유신 장군이 문무대왕에게 남긴 말에도 “예로부터 대통을 잇는 임금들이 처음에는 잘못하는 일이 없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臣觀自古繼體之君, 靡不有初, 鮮克有終)”라며 이 구절이 나온다. 어릴 적에는 한결같음을 일생일대의 과업으로 삼아 놓고 일로매진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진리는 늘 여러 겹이고, 아름다움에는 섬세한 무늬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처음처럼 유지해야할 것은 아주 적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아홉, 애면글면. 힘에 부친 일을 최선을 다해 이루려는 모양을 나타낸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던 괴테의 말, “절름발이 자라도 천리를 간다(步而不休, 跛鼈千里)”는 『순자』 구절, 『시경』, 『논어』, 『대학』에 3관왕으로 나오는 절차탁마(切磋琢磨)에 이르기까지 노력과 정성을 다하는 말을 무궁하다. 이 가운데 내가 각별히 여기는 말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계원필경(桂苑筆耕) 서문에 보이는 “남이 백을 하면 나는 천을 한다(人百己千)”는 구절이다. 최치원의 아버지는 당나라에서 10년을 공부하여 진사에 급제하지 못하면 나의 아들이라고 하지 말라며 열 두 살의 어린 아들을 머나만 타국 땅으로 보낸다. 최치원은 서문에서 “상투를 대들보에 걸어 매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노력에 부응하기 위하여 참으로 남들이 백의 노력을 할 때 천의 노력을 하였습니다(實得人百之己千之). 그래서 당나라에 유학간지 6년 만에 신의 이름이 방(榜)에 걸리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人百己千을 되뇌는 까닭은 사람들의 능력이 언제나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우리는 시간과 의지력만 있으면 어떤 것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나 한계는 존재한다”고 말했고, 그 말을 이제는 상당 부분 수긍하고 있다. 바람에 비해 재주가 모자란 한탄은 서글프다.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보고 “오! 신이시여, 저런 하찮은 존재에게는 천재성을 부여하고 나에게는 그런 천재성을 알아볼 재주 밖에 허락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탄식하는 대목은 범인의 안타까움을 함축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人百己千하려고 해도 모든 것에 최선의 노력을 하는 건 내 역량을 벗어난다. 人百己千마저 애면글면 포트폴리오를 해야 한다.^^;


열, 부끄러워하다. 부끄럽다는 형용사형보다는 부끄러워하다는 동사형이 더 생동감 있다. 『맹자』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비롯해서 부끄러워함을 촉구하는 내용이 많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다(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는 구절이나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부끄러워할 일이 없다(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라는 구절은 제 얼굴에 자꾸 철판이 늘어가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봤자 오징어라도 구워먹지도 못하는데 개기름까지 바르고 있으니 처연하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는 “군자는 홀로 서 있을 때도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게 하고, 홀로 잠을 잘 때도 영혼에 부끄럽지 않게 한다(君子獨立不慙於影 獨寢不慙於魂)”고 했다. 공식석상에서 정갈한 말과 우아한 자태로 우리를 설레게 만들던 숱한 지도자들이 이래저래 망가지는 것을 보면 참 의아하다. 적어도 나보다는 똑똑하고 잘난 분들일 텐데 왜 저럴까 답답하다. 습관적으로 그네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려다가 문득 이 분들이 정말 몰라서 저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능한 확신범만큼 두려운 게 없다지만 인간을 가장 무능하고 무지하게 만드는 것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우렁차게 말하는 사람, 이제 식상하다.


<마치며...>

너무 인용이 많지 않느냐는 핀잔이 있을 것 같다. 뭐 이번 글은 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내 취향에 충실해봤다. 독일의 사상가 리히텐베르크가 “새로운 것에서는 진실을 찾기 어렵고 진실한 것에는 좀처럼 새로운 것이 없다”고 말한 것에 동감하기 때문이며,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이 말했던 “좋은 말을 만들어낸 사람 다음으로 가치 있는 사람은 그 말을 인용한 사람이다”는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싶기 때문이다. 과학자 뉴턴은 과학의 발전에 엄청난 공로를 세워놓고도 자신을 바닷가에서 장난을 치는 소년이라고 겸양했다. “내 앞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진리의 대양이 펼쳐진 채로, 이제나 저제나 더 매끈한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질을 찾으려고 애쓰는 소년”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끝으로 열 개라는 숫자 제한에 걸려 아쉽게 다음을 기약했던 숱한 말들을 기억나는 대로 읊어본다. 모국어의 맛은 두고두고 우려내도 묽어지지 않는다. - [小鮮]

글, 값, 꿈, 즈음, 당최, 아이, 노을, 사흘, 달걀, 글쎄, 비꽃, 선비, 드므, 눈물, 그림자, 즐거움, 갈매빛, 누리다, 보듬다, 가엾다, 덧없다, 거닐다, 하소연, 나그네, 해맑다, 헌걸차다, 도두보다, 마음자리, 오롯하다, 우러르다, 시시하다, 보드랍다, 깔끔하다, 생각하다, 알콩달콩...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