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경영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지금보다 더 모르는 것이 많았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 경영학원론에 해당하는 현대기업경영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재무관리 부분 강의에서 장하성 교수님의 Korea Discount에 대한 논문을 접했다. 재벌구조에 대한 많은 논란 중에 아직 어느 것이 더 적절한지 잘 모르겠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장하성 교수님의 논문을 접하고 감명을 받을지라 그쪽에 무게중심이 더 있음도 솔직히 고백한다. “기업 지배구조는 단순한 경제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기업가치와 자본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구절에서 얼마나 가슴이 시렸던가.


Korea Discount는 한국기업의 주식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현상을 말한다. 장하성 교수님의 [Korea Discount와 기업지배구조] 논문을 소거법의 전개로 정리해봤다.


1) 할인율은 기업의 자산이나 이익에 내재된 위험을 반영한 것이다. Korea Discount는 우리 기업이 다른 경쟁국가보다 높은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을 말한다. 국제간의 기업가치의 평가에 반영되는 위험은 크게 국가위험, 산업위험, 그리고 기업위험이 있다.

2) 국가위험이 높기는 하지만 국가신용등급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저평가되고 있지는 않다. 산업위험은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다른 나라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 따라서 우리기업의 저평가 현상은 기업차원의 위험에서 찾아야 한다.

3) 기업위험은 영업위험, 재무위험, 기업지배구조위험이 있다. 이익의 변동성이 큰데서 비롯되는 영업위험과 부채비율이 높은데서 비롯되는 재무위험이 특별히 더 크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 따라서 기업경영의 투명성 및 책임성과 관련된 기업지배구조 위험을 검토해야한다.


최근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Korea Discount는 실체가 없으며 기업지배구조 때문이 아니라 “낙후된 회계관계, 부적절한 시장개입, 부패 등이 신흥시장국에 공통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국내적으로는 안보위협, 정치적 불안, 소모적 노사관계, 투자부진에 따른 성장탄력의 둔화 등에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서를 냈다. 아울러 한국적 환경에서는 소유-경영 분리의 영미식 지배구조보다는 지금 같은 오너 경영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너무 일방적으로 재벌기업들을 옹호하는 듯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 성과가 달갑지 않다고 해서 곡학아세(曲學阿世)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훌륭한 연구소에서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에게 쓴소리도 시원하게 하는 것을 너무 보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든다.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기업지배구조 문제 제기에 사측에서 “순이익 100달러의 실적을 거둔 기업의 지배구조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이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자부심의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나갈 때일수록 경계하고 혁신하는 것을 모를 이 없을 것이다.


그간 Korea Discount의 대표적 원인으로 지적된 열악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재별개혁이 당위적으로 받아들여진 감이 없잖아 있다.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어 경영 투명성이 높여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절대적 수단은 아닐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지적대로 글로벌 스탠더드랍시고 받아들인 각종 제도와 기준이 절대선은 더더욱 아니다. 최소한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부정, 부패, 비리가 없는 선에서 한국식 지배구조를 모색해볼 필요도 있다(이 대목은 이필상 교수님의 강의에서 따왔다). 기업지배구조에는 명확한 해답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는 소수 지배주주의 독단적 결정이 아니라 전체 주주가 참여하는 의사결정으로 바뀌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 변화가 너무 더디다고 뾰로통하지만, 변화를 감내하는 기업들은 적잖이 곤란할 것이다. 게다가 기업의 항변대로 Korea Discount는 기업만의 탓도 아닐 공산이 크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행정 전반에 걸쳐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에 힘써야 한다. 정부기관, 공기업들은 나몰라라하면서 애꿎은 민간기업만 선진화된 기업지배구조를 강요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비단 기업지배구조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혀 사회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의 룰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이 그 핵심이 될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정부 정책이 일관성 있게 진행되어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하며, 정치권도 경제권력과의 유착을 끊고 경제에 대한 안목을 키워나가야 한다. 우리가 일한 만큼의 제 값을 받기 위해 모든 경제주체들의 지혜를 모아 다방면으로 궁리하고 힘쓸 때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휴학생의 각오

잡록 2005. 3. 16. 02:59 |
한참을 미적거리다 휴학 신청을 했다. 공익근무 기간을 포함해 2년 반에서 3년 간의 긴 휴학기간이 시작된 셈이다. 공익근무 날짜가 나오기 전까지는 당분간 청강을 하며 학교를 다닐까 생각했으나 역시 강의에 대한 해방감이 나를 압도했다. 그래 일단 이렇게 푹 쉬면서 재충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공익근무 날짜는 빨라야 오월에나 나올 것 같으니 적어도 사월까지는 푸근한 자유를 만끽할 계획이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많은 분들과의 만남을 가져봐야겠다. 밥과 술을 함께 하며 정담을 나눌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인가. 또한 바쁘다는 핑계가 싹 사라진 만큼 차분히 책도 좀 읽어야겠다. 나름대로 삶의 전환기인데 책을 통해 희망과 영감을 얻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니까.


휴학생이라고는 하지만 도서 대출/반납을 빌미로 학교를 자주 드나들 예정이다. 집에서 학교가 가까운 특권(?)을 남용해볼 요량이다. 강의와 과제에 시달리는 재학생 여러분들께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놀아달라고 떼도 써볼 참이다. 공익근무를 다소 애매하게 신청해서 내가 스스로 의도한 이 여유의 시간은 내 삶에서 다시 찾아오지 않은 한가함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넉넉함 앞에서 사뭇 비장해진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사회적 교섭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소집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일부 노동자들의 물리력 행사로 또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착잡했다. 목소리 큰 소수가 한 표의 권리 이상을 행사하려 들 때의 광경은 대개 볼썽사납다. 유치한 원론 이야기지만, 민주주의는 소수파가 다수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런 룰 때문에 다수파는 소수파를 존중하고, 소수파는 다수파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다.


나는 민주노총 대의원 구성도 잘 모르고, 그들이 노조원 평균의 의사를 잘 대변하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의 대의민주주의가 가진 한계일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국회의원이 보통 국민들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확신할 수 없으며, 4월에 있을 열린우리당 대의원대회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을 당의장으로 선출한다고 기대할 수도 없다. 나는 다만 한 표의 권리들이 모여 선출한 이들이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을 뿐이다.


회의를 저지하려는 쪽에서는 절차적 민주주의보다 내용적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 잘은 모르겠으나 절차적 민주주의 다음에 내용적 민주주의를 고려하는 것이 상식이다. 절차에 문제가 없어야 알찬 내용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절차가 큰 문제가 있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는 이들이 내용적 민주주의를 들먹거릴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아무리 많은 토론과 대화를 한다고 해도 소수파가 100% 만족할만한 결론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다수파가 뜻하는 바가 많이 반영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수파가 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패자는 서글프고 소수파는 애달프게 마련이다. 어쩌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수의 의견이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항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 보기에는 노동계와 대다수 국민의 시선이 너무 싸늘하다.


합당한 비판과 부당한 비판의 경계는 언제나 논란이 있기 마련이지만... 두 가지 기준 정도가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과거에 어떻게 했는가와, 지금 현재 다른 존재에게는 어떻게 하는 가를요. 가령 언론의 비판에 대해서 따져보면 과연 김영삼에게 던졌던 비판의 수준과 동일한가, 또 현재 한나라당과 극우세력에게 던지는 화살과 비슷한가... 이런 것들을 따져보았을 때 ‘그들’에게는 너무 넉넉하고 노무현에게는 너무 매섭다고 충분히 느껴져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것도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 대통령 탄핵 때 메신저 대화 中


내가 제시했던 비판의 기준 두 가지는 사실 매우 허약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환경이 달라졌을 수도 있고, 현재 존재하는 존재들 간에 기대되는 수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좀 더 섬세한 비판을 위해서는 변수 몇 가지가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례’와 ‘현재 다른 존재’에게 동일한 잣대를 썼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비판이 일관성을 잃으면 단순한 인신공격으로 전락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Filibuster, 의사진행방해)를 할 때 게거품을 물며 질타하고, 행정도시특별법이 통과되었는데도 난리법석을 떠는 이들에게 의회주의의 적들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이번 민주노총 사태에 대해서는 비교적 말을 아낀 편이다. 괜히 건수 잡았다고 호들갑을 떠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 자제하려고 했다. 내 스스로의 비판에 대한 기준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내키지 않는 쓴소리를 하는 까닭은 이번 갈등을 잘 치유하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들 표현대로 신자유주의나 자본의 공세가 얼마나 거센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일수록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끝으로 그렇게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외치던 민주노총이 내부 분열에 시달리는 모습에서 사람 모이는 곳은 어디든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전임 학생회장 A/S도 다 끝난 마당에 이제 학생회 일 이야기는 그만 하려고 했다. 허나 대학 3년 간 내가 유일하게 했던 학업 외 활동이 이 것뿐이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대학시절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고 하기에는 그 폭이 너무 좁은 것 같아 아쉽다.ᅮ.ᅮ


37대 경영대 학생회 홈페이지를 폐쇄하기 전에 게시판을 한번 둘러보던 중에 비상학생총회를 홍보하는 글을 읽다가 피식 웃었다. 당시 비상학생총회를 바라보는 내 견해가 그대로 드러난 글이었다. 이것은 홍보문이라기보다는 세부적 의견 차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절대 강제하지 않으며, 잠깐의 자발적인 참여로 권익을 향상하자는 나의 생각을 써놓은 논설문이었다.^^;


4월 8일 비상학생총회
오후 1시 중앙광장에서 만나요~

비상학생총회는 총학생회 회칙에 의거해 고대생 전체 재적인원의 1/10 이상의 참석으로 개의할 수 있습니다. 이번 비상학생총회는 등록금 인상 반대, 신자유주의 교육 재편 반대, 탄핵 반대, 국회해산의 기치 아래 진행됩니다.

2000명 이상의 학우가 모여야 개의되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설령 세부적인 구호에 동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차이와 이견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 우리의 뜻을 전달한다면 학교측에서도 좀 더 우리들의 요구를 수렴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바쁜 걸음 잠시 멈추시고 잠시라도 들러주시기 간곡히 호소합니다. 학생사회의 행사는 절대 강제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잠깐의 자발적인 참여가 보다 많은 우리들의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비상학생총회는 긴급을 요하는 사항이 있을 경우 소집하는 것으로 재적인원 1/10 이상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인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재적인원 과반수 출석으로 개의하는 학생총회 성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장 높은 의사결정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학생총회를 소집할 만큼 난리가 났다면 재적인원 과반수 출석하고 자시고 할 여유가 있지도 않을 것 같다. 이런 불가능한 규정이 악세사리로 들어있는 것 같아 마뜩지 않다. 그리스 폴리스 시절에 있었다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향수인가?


여하간 이런 비상학생총회가 2002년부터 3년 간 열렸다. 누가 보면 학교가 늘 긴급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오해할 일이다. 3년 동안 지켜본 많은 학우들이 연례행사냐며 볼멘 소리가 가득했다. 2005년에도 비상학생총회를 계획하는 모양인데 언제 한번 정족수 미달로 회의가 무산되어 봐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다.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 50%를 넘겨야 한다며 편법 연장선거를 자행하는 이들이 총투표니 비상학생총회니 하면서 학우들을 동원하려는 광경이 또 반복되는 것 같아 아쉽다. 피차 번거로운 행사는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학우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이렇게 매섭게 쏘아붙였지만 사실 나는 2002년 비상학생총회 준비를 거들었고, 2003년에도 참석했다. 2004년에는 학생회장 신분인지라 참석을 독려해야 하는 처지에까지 놓였다. 비상학생총회의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일부 반대표들의 항의가 곤혹스러웠고, 비상학생총회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나의 심중을 읽힌 탓인지 저조한 참석률에 애먹었다. 시간대도 최악이었고, 깔끔하게 불참한 단과대학도 있었지만 나는 적은 수나마 머릿수를 보태는 것으로 만족했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오래 전부터 비상학생총회 개최는 자연스런 지상과제였고, 별다른 이의제기도 없이 통과된 것이라 나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제기해보지도 못했다. 나의 책임방기지만 어차피 막지 못할 일에 태클만 걸면 가뜩이나 안 좋은 경영대 이미지가 더 나빠질까 봐 몸을 사렸다.^^; 사실 나는 1년 간의 중앙운영위원회(단과대/동아리 대표자들의 정기적 회의) 대부분을 고독한 소수파에다 깐죽거리는 성격파탄자가 되어야 했으니 가끔은 그냥 넘어가기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학생회 조직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학우들의 무관심의 벽은 더 높아가고 있다(여기서 학생회 조직은 주로 학생운동 진영이 꾸리는 학생회 살림을 말한다. 비운동권 진영은 일관성과 연속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분석하기 힘들다). 우리네 군대가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사회는 더욱 더 좋아져서 군이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아직도 말썽인 것처럼 말이다. 학생회가 아무리 변화해도 일반 학우들과의 거리감이 더 벌어지는 것은 비극이다. 이제 학우들은 아무리 선의가 충만한 것이라고 해도 동원이라는 생각이 들면 결연히 반대하고 있다. 자발적인 참여의 부재만을 탓하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현재 학생회 조직에 불만을 품는 학우들은 참여를 통한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대부분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를 하고 있다. 합리적 무시는 다수의 대중보다 똘똘 뭉친 소수의 집단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어떤 사안에 있어 대개 소수에게 걸린 이해관계가 다수의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크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다수의 입장에서는 굳이 논쟁에 참여하는 비용을 지불하기보다는 무시하는 전략을 쓰는 편이 이득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귀차니즘을 누적시키기보다는 다소 간의 참여와 논쟁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개개인의 비용 지출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부의 자극이 시원치 않으면 내부의 혁신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학생회 상층부 의사결정에서 생산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너무 많은 일을 하려해서 문제고, 너무 제 생각을 고집해서 문제다. 기성 정치판에서도 익히 보아온 의사진행방해나 결과 불복도 적지 않았다. 고작 3년만을 보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것인지는 모르나 내부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전/현직 학생회 일꾼들이 크게 섭섭하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학생회 조직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을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비상학생총회 참석을 독려하며 썼던 내 글을 보며 나 또한 매너리즘에 빠져 만만한 후배들을 이런저런 행사에 내몰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혹여라도 나의 날치기 통과(?)에 실망한 분들께도 깊은 사과말씀 드린다. 한가지 일을 오래 붙잡고 있어도 크게 나아지지 않음을 깨달을 때 내 자신의 초라함이 너무 부끄럽다.


프리챌 커뮤니티는 회원이 마스터 본인만 남아야 폐쇄가 가능한 관계로 1570명의 회원들을 강제탈퇴 시켜 겨우 폐쇄할 수 있었다. 폐쇄를 한 순간 지난 한해 내가 열정을 쏟았던 그 무언가가 이제 말끔히 지워짐을 느꼈다. 내게 아름다운 마음을 보여주신 분들, 모자란 녀석에게 투자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 좀 더 멋진 녀석이 될 것을 다짐할 뿐이다. 이제 이 말도 그만하고 실천! 실천! 실천! - [憂弱]
Posted by 익구
:

전임 학생회장 A/S 완료

잡록 2005. 3. 13. 03:41 |
“저기... 05학번이세요?”


이런저런 반 행사 뒤풀이에서 05학번 새내기들에게 이런 질문을 몇 번 들었다. 세파에 나름대로 찌들었다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보인다니 고마운 일이다(선배를 위로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술을 줄이지는 못했지만 잠을 늘린 것이 피부에 보탬이 된 것이 아니냐며 속으로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02학번이라는 내 솔직한 정체를 밝히면 새내기들은 갑자기 정색을 하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어려워하는 05학번 새내기의 모습에서 나의 새내기 시절 99학번 선배님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음을 기억 해냈다. 사람 처음 만나는 것은 원래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아무래도 좀 더 까다로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소중한 추억과 좋은 인연들과 함께 한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며 후배들의 어려워하는 눈치도 달갑게 받아들이자.


지난 11일 금요일에 경영대 세 개 반이 개강총회를 마쳤다. 조만간 05학번들이 실무의 주체가 되어 한해 살림을 꾸려나가게 된다. 경영대 학생회장 시절 함께 일을 나눴던 2004년 2학기 반일꾼들도 모두 임기가 끝나는 것이다. 그간 전임 학생회장이 A/S한다는 핑계로 행사들 챙겨서 다녔지만 이제 그것도 마지막이다.^^; 2002년 12월부터 경영대 학생회 잡일을 거들기 시작한 이후 짧지 않은 여정이 끝난 거 같아서 시원섭섭하다. 이제 정말 나와 업무상으로는 무관한 후배들이 활약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새로운 반일꾼들에게 깊은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내 자신에게 개구리 올챙이적을 생각하자며 암시를 건다. 새로 뽑힌 후배들이 나와는 큰 연관관계가 없다고 해서 괜히 모자라고 어리숙하다고 핀잔을 주지 않기를. 나도 어지간히 어리버리했고, 선배님들의 눈에 못미더운 녀석이었음을 가슴 아프게 긍정하기를. 오히려 후임자들이 잘하는 모습에 기뻐하고 축복할 수 있기를.


각종 행사들을 쫓아다니다 보니 “없으면 허전할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내 빈 곳은 누군가가 채우게 마련이다. 지난날 선배님들이 계시던 자리를 어느새 내가 꿰차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도 세월은 내게 좀 더 높은 자리로 오르라고 할 것이다. 때가 됐으니 당연한 것이라며 냉큼 올라서기보다는 열심히 내 자신을 가꿔 멋진 선배의 모습으로 오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헛된 세월 보내지 않은 선배처럼 매력적이고 모시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까.


이제 A/S는 끝났지만 또 다른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하시라.^^ - [憂弱]
Posted by 익구
:

한승조 망언을 접하고

사회 2005. 3. 11. 02:53 |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의 일제 식민지배가 축복이었다는 망언을 접한 직후의 단상을 정리해봤다.


1. 얼마 전 독립문 근처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람한 기억이 났다. 매우 한산할 때 찾아 일제의 참혹한 고문 장면들을 나 혼자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사형장에 들어서니 스산한 분위기가 엄습해 어찌나 몸서리쳤는지 모른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는 일제의 우리 문화재 파괴의 기록들을 읽으며 치를 떨었다. 갖은 분노를 겨우 잠재우고 나니 힘없는 나라의 비애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기를 다짐했다.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그렇게 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2. 애국과 민족을 극성스레 강조하는 것이 전세계 극우파의 특성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극우파는 자기 민족을 비하하고 외세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자기 말에 동조하지 않으면 죄다 빨갱이에 좌파에 공산당으로 규정해버린다. 세상 천지를 붉은 색으로 칠해 놓고 말세 타령을 하니 이런 삽질이 따로 없다. 자기들은 빨갱이 세상에서 잘만 살면서도 뭔 엄살이 그렇게 심한지 모르겠다. 이런 저질 군상들이 이 참에 제 마각을 드러내기를 바란다.


3. 식민 지배를 축복하는 이들이나 개발독재를 찬양하는 이들이 싫은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게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강준만 선생의 표현)”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제 부역이나 독재에 대한 아부를 통해 호사를 누렸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피땀 어린 부당한 고통과 희생 앞에서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것을 넘어 아예 지난날을 합리화하고 확대 재생산하려고 안달이다.


4. 일본은 또 독도 가지고 시비다. 짜증나는 일이다. 그래도 일본 극우파들은 제 나라를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우리는 나라 팔아먹고, 인권 유린하고, 자식 군대 안 보내고, 집회에서 성조기를 흔들고, 세금 빼먹고, 땅 투기에 원정출산까지 서슴지 않는 이들이 애국한답시고 설친다. 비극이다.


5. 개교 100주년을 맞아 들뜬 고려대학교에 똥물을 퍼붓다니... 학교가 욕 무지하게 먹도록 애써주신 덕분에 개교 200주년도 거뜬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식의 도움은 다시는 필요 없다. ᅳ.ᅳ; 이런 액땜 두 번 했다가는 거덜나기 좋겠다.


아 지금은 前 고려대 명예교수다. 앞 전자가 이렇게 각별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쿨은 무장해제다

잡록 2005. 3. 10. 18:44 |
나는 ‘쿨(Cool)’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무엇인가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남을 제 뜻대로 강제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좋게 해석했다. 그러던 중에 한 친구의 글에서 “쿨하다=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로 왜곡되어 쓰이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는 것을 읽었다. 친구는 쿨하다는 방패로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통박했다.


다소 개인주의 색채가 짙은 쿨한 자세는 한국적 유대관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게다가 개인주의는 자칫 잘못하면 이기주의의 늪에 빠지기도 하니 쿨에서 이기주의의 냄새를 맡고 이물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비록 내가 쿨함이 부족한 것 같아 좀 배우려고 노력 중이지만 친구의 우려는 십분 동감한다. 나 또한 매정한 이기주의자가 쿨의 가면을 쓰고 횡행하는 것은 볼썽 사납다.^^


어쩌면 쿨 해야할 때와 쿨 하지 말아야할 때를 분간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세상만사는 대개 일장일단(一長一短)라서 나를 늘 곤혹스럽게 한다. 그냥 무조건 좋은 것도 있고, 무조건 나쁜 것도 있어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섞여 있다 보니 차마 속시원하게 버리지 못하고 지나고 나서도 미련을 가지거나 후회를 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안마다 장단점을 분석하는 노력은 다원주의 사회를 사는 내가 자청한 업보다.


쿨하다는 것이 치열한 자기절제 수준을 넘어 메마른 냉혈한이 된다면 사양한다. 과격한 열정을 줄이는 것을 넘어 다정한 모습까지 버리는 것이라면 원치 않는다. 나와 남을 구속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넘어 소중한 인연마저 경시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넘어 날카롭기만 한 독설을 즐기는 것도 경계해야한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재고 따지는 것은 그다지 쿨한 모양새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쿨한 백조가 되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서는 열심히 발을 저어야하듯이, 쿨도 중용의 체로 걸러내야한다.


쿨하다는 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각박한 인심이 낳은 궁여지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만 쓰면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고, 헛된 집착과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쿨함에서 배워야할 것은 스스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자세와 인간에 대한 진솔한 애정일 것이다. 즉, 열심히 노력하되 결과에 따른 책임에는 쿨하게 승복하고,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 쿨의 미덕이다.


쿨은 내 자신이 상처 받을까봐 꼭꼭 막는 방패나, 남을 배려하지 않고 푹푹 찌를 수 있는 창이 아니다. 진정한 쿨은 열린 마음과 열린 자세로 건설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무장해제가 되어야 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어떤 억울함

잡록 2005. 3. 9. 11:10 |
지난 2004년 2학기 경영대 사물함 추첨 때 사물함이 다소 부족했다. 새 사물함을 대거 들여오기 위해 낙후된 사물함을 일부 철거했기 때문이다. 늘 조금 남는 경영대 사물함이지만 이번만큼은 많은 학우들이 사물함을 못 쓰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경쟁률은 1.043대 1이었다. 신청 양식을 잘못 기입한 경우도 과감하게 배정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그것을 포함해도 1.1대 1도 안 되는 경쟁률이었다.


사물함 배정은 컴퓨터 학과 선배님의 도움으로 만든 추첨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으로 나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100% 아웃소싱으로 이래저래 많은 신세를 진 셈이다. 앓던 이가 빠진 심정으로 배정 결과를 공지했다. 그런데 그 후 곤혹스러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엄청나게 낮은 경쟁률이었음에도 떨어졌다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 것인지. 게다가 안면이 있는 학우들의 불평을 많이 접했다. 딱히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들이 느끼는 인간적인 섭섭함 앞에서 참으로 난감했다.


사물함 수리를 철저하게 한 덕분에 예년에 비해 고장 신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 여분 사물함을 추가로 배정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워낙 낮은 경쟁률이다 보니 떨어진 것이 납득하기 힘들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내게 쏟아진 볼멘 소리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분명 사물함 배정은 당초 공지한대로 랜덤 배정이며, 그 배정마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 맡겨서 한 것으로 한 점 의혹도 없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2005년 3월에 어느 후배로부터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에 커플들이 많이 떨어졌다는 루머가 돌았다는 것이다. 2인 1조로 신청할 때 여자와 남자가 함께 신청한 조를 일부러 골라서 배정시키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그냥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였던지라 웃고 지나갔지만 사실 엄청 억울한 일이다.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그런 만행(?)을 저질렀겠는가.^^;


하지만 원래 억울함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내 자신에게 치명적인 불명예가 아니라면 그 정도의 오해는 너그러이 품고 갈 일이다. 그런 화풀이를 통해 커플들의 우애가 돈독해지고 사물함 탈락의 아쉬움이 조금이나마 가실 수 있다면 나로서도 반가운 일이다. 내 학생회장 임기가 끝난 지는 제법 시일이 지났지만 내 불찰로 걱정을 끼치거나 내 게으름으로 불편하게 한 점이 적지 않을 것임을 새삼 일깨워주는 고마운 제보(?)였다.^^;


분명 그 사람이 지은 죄 이상의 벌을 내리는 것은 또 하나의 죄를 짓는 것이다. 과도한 벌이 내려지는 경우는 대개 그 사람이 만만한 소수자이거나, 별 볼일 없는 비주류일 경우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 개인주의의 원칙이라면 보상과 문책이 누구에게나 공정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공만큼의 상을, 죄만큼의 벌을!”이라는 구호를 입버릇처럼 되뇐다.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설령 내 잘못이 없다고 해도 한바탕 웃고 말일이면 좋게 간직하는 여유도 있어야 할 것이다. 예외 없는 법칙이 어디 있나.


이 에피소드를 듣던 중에 문득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에서 주인공 꼬마가 돈을 잃어버린 뒤 “내 돈을 주운 사람은 얼마나 운이 좋을까?”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곤고로운 사건을 겪을 때라도 이런 정도의 넉넉함을 갖춘 낙관주의자가 되고 싶다. 설령 진실이 아닌 일에 억울한 일을 겪고, 내가 조금 손해본 것 같을 때 누군가가 이익을 봤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 인상 쓰고 비감에 젖어 살기에는 시간은 열심히 달리고 있고, 인생은 너무 짧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호주제 폐지 만세!

2005. 3. 7. 16:20 |
호주제가 폐지되었다는 낭보가 들려온 순간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의 회상에 잠겼다. 당시 교지편집부원이었던 나는 편집부 기획의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는 고심 끝에 양성평등을 주제로 해봤으면 좋겠다고 주장했고, 거기서 조금 확장된 주제인 인간존엄성 문제로 선정되었다. 한해 동안 인간 존엄성에 위배되는 여러 분야의 문제들-즉 남녀 차별, 빈부 격차, 인간 소외, 복제 인간 등의 사회적 문제들을 진단하고 고민하게 되었는데 나는 처음 생각대로 양성평등 문제를 맡았다.


양성평등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하다가 설문조사를 통한 결과 분석을 하기로 했다. 여러 문항 중에서 담당 선생님의 제안으로 호주제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결과는 폐지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여학생들이 많은 서울외고의 특성이 다소 반영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호주제 폐지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호주제 폐지해야 한다는 보기에 “반드시!”라고 적혀 있거나 별이 쳐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 때 본 굵은 글씨의 “반드시!”와 빨간 별모양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05년 3월 2일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오랜 세월 양성평등을 저해하며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를 존속시켰던 호주제가 폐지된 것을 가슴 깊이 환영한다. 또한 모든 국민이 하나씩 독립된 신분등록부를 갖게 됨으로써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권리를 인정받게 된 것도 기쁜 일이다.


한 80대 여성이 호적등본 떼러 갔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한평생 교사로 일했던 그는 일찍 남편을 잃고 장남의 호적에 올랐으나 몇 해 전 아들도 세상을 떠난 처지였다. 그는 자신이 차남의 가(家)에 입적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남의 가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혹시 하며 삼남의 호적등본을 떼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는 결국 5살짜리 손자의 호적등본에서 자기 이름을 발견했다.

그 손자는 장남의 혼외자로 그는 자신의 연금으로 양육비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 어린애가 자기 집안의 호주라니 어이가 없었다. “오래 산 죄로 사종지도(四從之道)를 걷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혼인 전엔 아버지, 혼인 후엔 남편, 남편 사후엔 아들을 따르라는 삼종지도로도 부족해서 이제 다섯 살 짜리 손자를 호주로 모시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평생 돈을 벌어 세 아들을 키우며 당당한 가장노릇을 해왔는데 법이 끝까지 여자를 사람대접 안 한다고 그는 개탄했다.

- 장명수, [할머니의 사종지도(四從之道)], 한국일보 2003년 6월 1일


그간 민법의 호주승계 순위는 남편→아들→손자→딸→처 순으로 남성 중심이었다. 위의 글처럼 삼종지도도 모자라 사종지도를 만드는 엽기적인 규정이었던 셈이다. 대학교 2학년 때 교양으로 들었던 법학통론 시험에서 호주제에 대해 논하라는 문제 앞에서 시험 답안으로는 너무 거칠게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써놓고 더 이상 쓸 말이 없어서 할머니를 제치고 손자가 호주가 되는 현실을 통박한 기억이 난다.


요근래 여풍이 분다면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이야기하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자가 가는 곳에는 이런저런 차별이 아직도 여전하다. 여성 인권 무시의 대표적 사례였던 호주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은 천만다행이다. 혹자들은 호주제가 가족을 지키는 제도라며 옹호하지만 도대체 그렇게 지키고 싶다는 가족 구성원들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 세상의 절반이 희생되어 이룩하는 그 어떤 것도 온전할 수 없다. 제 아내의 고통은 외면하면서 후세의 안녕을 걱정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호주제가 오로지 하나의 형식의 가족만을 인정함으로써 다양하게 존재하는 우리네 가족들을 수용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겸허하게 살펴봐야 한다. 불완전한 인간들끼리 만나서 사는 세상에 오순도순 백년해로하며 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간 이혼한 여성이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할 때 과거의 멍에 때문에 고통받고 그 자녀까지 낙인이 찍히는 것은 잔인한 일이었다. 개개인이 행복해야 가족이 굳건한 것이지 한 개인이나 특정 성이 다른 개인들과 상대 성을 억압하는 구조라면 늘 위태롭고 아슬아슬할 것이다.


호주제 폐지에서 여성 인권의 존중만을 생각하지 말고 남성 인권의 동반 향상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호주의 권리와 의무가 대폭 축소되어 현행 호주제는 사실상 관념적인 제도로 남아 있기는 했지만 가장의 상징적 권위는 은연중에 재생산되고 있었다. 호주제 폐지와 더불어 가장의 어깨에 모든 부담을 덜어주는 시대가 끝났다. 이제 여성이 확대된 권리만큼 늘어날 책임과 의무를 다 하려고 노력해야할 것이다. 권리의 달콤함만 느끼고 책임은 모른 척 하는 것처럼 꼴 보기 싫은 것도 없다.


양성평등이라는 시대의 흐름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깨우쳐야 한다. 남성중심의 세상에 적당히 안주하려는 사고를 버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개척하는 자세를 가져야할 것이다. 남자라는 이유로 특권을 가지던 것이 사라지고, 여자라는 핑계로 책임 앞에 모르쇠가 되지 않을 때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에서 살림살이를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편집부 설문조사의 마지막 문항은 남녀차별의 사례를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선생님이 회장 찾을 때 누구건(학생도) 남자 회장을 찾는다”는 문구였다. 여남 회장 1인씩 두었던 내 고등학교에서 여자 회장은 양성평등에 따라 할당된 구색을 맞추기 위한 들러리가 아니냐는 의문 앞에 나는 양성평등주의자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기사를 작성하며 “한결같은 것이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모든 남자들이 한결같이 사내 대장부가 되기는 불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썼던 당시의 뜨거운 마음은 앞으로도 간직할 것이다. 잉글리시만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남녀차별, 양성평등 모두가 우리 마음 속에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 [憂弱]
Posted by 익구
:

저작권법을 어기기 싫다

2005. 2. 27. 02:00 |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에 있는 ‘네티즌이 알아야 할 저작권 상식’의 문서를 읽어보았다. 50개 항목이 문답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졸지에 범법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익구닷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칼럼을 수집하는 펀글 전용 게시판이다. 대부분 출처가 신문 칼럼이니 신문사나 칼럼니스트, 기자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 셈이다. 저작권 상식 문서 본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개인 홈페이지에 출처를 표시하고 이용하더라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코멘트에 올린 첨부자료 참조).


이미 익구닷컴에는 수백 편의 남의 글이 있다. 좋아하는 타인의 글을 멋대로 퍼온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냥 문서 파일로 나 혼자 보관만 해도 될 것을 이렇게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은 좋은 글은 나눌수록 더 가치가 커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저작권법은 친고죄로 되어 있어 저작권자가 고소하여야 비로소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범법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고소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아슬아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글을 기왕이면 가감 없이 게재하여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좋은 글을 나눠준 많은 네티즌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었기에.


여러 칼럼니스트가 빈곤층에 위한 정책을 논하는 글, 성차별 문제를 고찰하는 글, 병무행정 개혁을 촉구하는 글, 사회 고위층의 불법적 행태를 고발하는 글 등등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더라도 이를 퍼가는 사람은 저작권법상 범법자가 될 소지가 크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글들이 정작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널리 읽는 것이 어렵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글쓴이는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글을 읽고 공감해주기를 바라겠지만 그의 글이 해당 신문사 홈페이지에만 갇혀있게 되는 셈이다. 네티즌들이 맨날 그 사이트 찾아가 확인하고, 퍼가기 위해 일일이 허락 받을 만큼 한가한 사람들은 아니다.


무고한 네티즌들이 줄줄이 범법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저작권법의 억지 적용에 동감하지 않는 많은 논객들은 자신의 글을 영리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자유로이 퍼가서 쓸 수 있다고 공지해주기 바란다. 특히나 좋은 글을 많이 써주시는 분들일수록 더욱더 말이다. 이 글 퍼가도 되겠습니까라는 문의를 해야하는 독자나 괜찮다고 답변하는 글쓴이나 피차간에 피곤할 뿐이다. 이제 글 쓰는 사람은 읽는 이가 자신의 글을 합법적으로 나눠보고 토론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하는 우스운 상황이다.


여하간 저작권 보호라는 미명 하에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나 커뮤니케이션 권리 등이 침해되는 것은 불만스럽다. 인터넷 문화의 핵심인 문화적 교류의 편리함을 이런 식으로 규제한다면 국가보안법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일상적으로 작용하는 통제 메커니즘이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끝끝내 존속시키고 있는 국회가 이번에는 정보보안법(?)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한가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억지스런 족쇄를 가만히 보고 있을 사람도 아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많이 배웠고 지적으로 성숙해졌다.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마시길.^^ - [憂弱]
Posted by 익구
:

알고 보면

문화 2005. 2. 26. 07:52 |
어느 인터뷰의 한 꼭지를 보다가 얼마 전 내가 고민했던 “알고 보면”이라는 주제를 떠올렸다.


▼ 지승호 - 변화를 추구하다보니까 생기는 일인 것 같은데요. ‘성격이 좋게 말하면 쿨한 거고, 잔정이 없어 보인다’는 평도 있고, 잘 아는 분들은 ‘냉정한 듯 하지만 따뜻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는데요.

▲ 유시민 - 잘 알아서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어요?(웃음)
- http://www.freechal.com/sibi , 2005-02-25, 지승호의 유시민 인터뷰 中


유시민의 말은 “알고 보면”이라는 내 고민거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알고 보면 그렇게 각박하고 쌀쌀맞은 사람에게도 풋풋하고 낭만적인 구석이 조금은 있게 마련이다. 알고 보면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답답한 사람에게도 소탈하고 진솔한 면을 만날 수 있게 마련이다. 알고 보면 저마다 아픈 구석을 간직한 좋은 사람이다. 알고 보면 그 사람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거친 말과 손가락질이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내가 관계맺음에서 진정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성찰과는 반대로 대인관계에 나는 대개 무심한 편이다. 제 자신을 가꾸는 노력을 하는 것만으로도 허덕이다 보니 지인들의 근황이나 요즘 생각들을 챙기는 것을 잘 못하는 편이다. 또한 내 개인주의적(혹은 자유주의적) 성향 탓에 타인의 인생에 어지간하면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좀처럼 친하기 힘들다는 인상이 강하다. 결국 “알고 보면”이라는 화두를 실현해볼 여지가 별로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인들의 삶 구석구석을 꿰뚫어 볼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뜻일 뿐, 지인들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한편, 상대방을 대충 훑어보고 다 좋은 사람이라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서도 안 된다. 정이 많다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엄정한 평가를 내리고 보상과 문책을 해야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타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비판하는 것도 잘 못하는 것 같다. 이렇게 무심한 데다가 제대로 비판도 못하고, 더군다나 재미나지도 않은 녀석을 좋아할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을 사귀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제 깜냥 이상의 성과는 늘 위태롭게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의 내 인복은 너무 과분한 것이 아닐까 싶어 늘 전전긍긍이다.^^;


관계맺음이 제법 깊어지면 서로간에 개입을 하려는 하는 욕망이 싹튼다. 상대방이 내가 하는 일에 조언도 해줬으면 좋겠고, 나도 상대방의 언행에 왈가왈부하고 싶어진다. 칼 포퍼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가까운 사이에 한정된 하나의 특권이다. 하지만 나는 이 특권을 쓰는 것을 자제하는 편이다. 특권의 의미는 그것의 행사 여부가 자유의사에 맡겨진 것이니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다. 내가 이 특권을 쓴다면 “그렇게 하지 마라, 이렇게 해라”는 식보다는 “이런 장단점이 있을테니 알아서 잘 생각해 보라”는 정도가 될 것이다.


혹자는 무책임하다고 불평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개개인의 자유와 책임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무심함을 사무적인 관계라고 느끼고, 가까이 하기 힘들다고 착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의견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의 의견이 소중하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의 삶을 최대한 존중하고 싶다. 나의 무심함은 그 사람에 대한 최대한의 존경이다.


기우인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삶에 하나둘 개입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내 의견에 따르지 않았다고 섭섭해하는 독선적 인간이 될까봐 두렵다. 내 인격적 미성숙을 어느 정도 극복해서 이 우려를 씻어냈을 때 그 때는 조금 활발한 개입을 통해 특권을 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특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내 나름의 방법으로 나같이 모자란 사람과 교류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다할 것이다. 사실 나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다. 푸하하 - [憂弱]
Posted by 익구
:
이구열 선생의 [한국 문화재 수난사](돌베개, 1996)라는 책을 보는 내내 가슴이 쓰렸다. 이 책은 우리 문화재의 훼손에 대한 안타까움을 기록하며 문화재 애호사상의 생활화를 일깨워주고 있다. 흔히들 우리의 문화유산이 볼품 없고 보잘것없다고 말할 때 나는 주로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국권이 미약하여 우리의 문화유산의 수난을 막지 못했던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이 책은 일제시대, 한국전쟁, 해방 이후의 수난 등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일제시대의 수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일제의 만행이 문화재까지 미쳤다는 것이야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막상 그 참상을 접하니 슬픔이 밀려왔다. 또한 한국전쟁의 난리통 속에 가까스로 지켜진 박물관 유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해방 이후의 수많은 도굴과 도난 사건들도 시리게 다가왔다. 일제의 문화유산에 대한 만행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개성 등지에서 고려고분 파괴와 고려자기 도굴을 크게 조장시킨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내용, 경천사 십층석탑, 불국사 사리탑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가까스로 돌아온 사연들, 석굴암에서 사라진 오층소탑과 감실 부처 2점의 안타까움, 행방불명된 불국사 다보탑의 돌사자 3점, 항일민족사상과 투쟁의식을 유발시키고 있는 민족적인 사적비에 대한 파괴, 보신각종이 일제 병기창으로 끌려가서 녹아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일, 낙랑고분, 가야고분, 신라고분의 처참한 도굴 사례들, 광개토왕릉비 조작, 백제고분을 연구한답시고 부장품을 파낸 악당 가루베의 만행...


하나하나 가슴이 따끔거리는 이 참담함을 잘 나타내준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다음은 총독부 고적조사위원이었던 이미니시의 조사보고에 경북 선산군 옥성면의 처참한 가야고분 도굴현장에 대한 증언의 일부이다.


“이곳의 고분들 중에는 묘광(墓壙)을 그대로 누출시킨 것도 있다. 고분의 봉토가 유실되어 그렇게 광을 노출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이 거기에 접근하지 않고, 또 침해하지도 않는 순박함이여. 사자(死者)에 대한 예(禮)를 결(缺)하고 있는 현대의 도굴, 파괴, 고인(古人)의 분묘에 능욕을 가하고 있는 현대인(일본인)에 비하면 송연한 바가 있다. 구(舊)조선의 도덕을 보려거든 이 옥성면의 제분(諸墳)을 가 보면 족하리라.”
- 이구열, [한국문화재 수난사](1996), 돌베개, 186쪽


이러한 문화재 약탈 사례들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누구나 어려웠던 기억을 되돌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 구차하고 비루했던 우리 역사와 똑똑히 마주함으로써 현재를 다잡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을 인정하되 앞으로는 소중히 보존하고, 지속적인 보수,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잘 가꾼 문화유산은 세계화 시대에 대비한 주요한 경쟁력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더 이상 잃어버릴 ‘우리의 것’도 없지 않는가.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을 보면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전반적인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도 낮고,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도 날로 줄어들고 있다. 이미 수능시험에서 국사가 사회탐구 선택과목의 하나일 뿐이며, 2월 25일 치러지는 행정고시, 외무고시 1차 시험에서 마지막 국사시험이 치러진다. 우리가 스스로 제 나라 역사를 팽개치고 있는 셈이다.


그 사이에 이 작은 나라에 뭐가 그리 뜯어먹을 것이 많은지 여기저기 군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주한 일본대사는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며 망언을 내뱉고, 중국은 고구려사, 발해사를 제것으로 만들려는 야욕을 하나둘 실현해나가고 있다. 그나마 작은 땅덩어리도 반으로 쪼개져서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고, 한쪽은 독재와 굶주림에 신음하고, 한쪽은 그 작은 땅덩어리마저 쪼개서 싸우고 있다. 이 비극적 현실에 좌절하여 자기혐오에 빠지기보다는 스스로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이 난국을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희망은 가난한 자의 빵이니까. - [憂弱]


추신 - 일본에게 빼앗겨서는 안되는 중요한 문화재가 있으면 값을 따지지 않고 사들여 우리 문화재를 수집, 보호한 간송 전형필 선생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훗날 돈을 제법 벌게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큰 모범이 되어주셨다. 매년 5월, 10월에 관람 가능하다는 간송 미술관을 꼭 찾아가야겠다.
Posted by 익구
:
2월 22일 신입생 특강 뒤풀이에 참석했다. 05학번 새내기들과도 처음으로 말을 제법 많이 나눠볼 수 있었다. 내 짧은 기억력 탓에 이름과 얼굴도 거의 잊어먹었지만 05학번과의 만남도 무척 유쾌했다. 물론 늘 반가운 04학번 후배들과의 만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새로움이 압도할 때 익숙함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내색은 안 했지만 고학번 선배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긴장감이 역력했다. 조금만 대화 나누다 보면 대단치 않고 부담 없는 선배라는 사실이 금방 탄로가 나지만 말이다.^^; 하지만 굳이 처음의 그 어색한 공기마저 마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는 원래 어렵고 힘든 것이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입장벽을 넘어서려는 아름다운 노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대선배님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05학번들과 대화 나누면서 고학번 선배의 대열로 밀려들었음에 대한 서운함이 적잖이 들었다. [어린왕자]에서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는 핀잔이 나오기는 하지만 내게 붙은 02학번이라는 숫자가 세월의 무게를 머금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기는 한 모양이다(여담이지만 경영학도라면 숫자에 밝을 필요가 있다).


05학번 새내기들에게 어줍잖은 충고라고 몇 마디 내뱉었던 것을 다시 되새겨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건 충고라기보다는 내가 못한 것을 대신 이루어주기를 바란다는 일종의 주술(?)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후배가 이런저런 충고를 잘 취사선택하여 훗날 선배를 능가해 후생가외(後生可畏)를 실감하게 한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리라.


아직 술을 마시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들에게 음주인생(?) 초반에는 제 주량을 감지하기 위해 술잔을 세면서 마실 것을 주문했다. 선배들이 주는 술을 모두 받아먹는 미련함보다는 제 몸을 건사하는 재치를 귀띔하기도 했다. 술을 많이 마셔주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늦게까지 취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좋아하는 선배들의 이율배반적이면서도 변덕스런 마음을 잘 헤아릴 것도 당부했다.


또한 이름이 흔한 새내기에게는 금방 헷갈리기 쉬우니 한번 더 이름을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학기 초반에 있을 각종 행사에서 최소한 동기들이라도 많이 익혀두는 부지런함을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옛친구들과의 유대관계도 이어나가고, 학과 공부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균형감각’이야말로 새내기의 덕목이라며 강조했다.


영특한 후배들이 이런 유의 시시한 내용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실천이다. 나 또한 대학 새내기로서 이 정도쯤은 할 수 있겠거니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 새내기 시절 못다 이룬 꿈들은 이제 고스란히 빚이 되어 이자만 불리고 있다. 이를 갚아나가는 것은 기품 있는 선배가 되는 것에 있을지 모르겠다. 희망에 설레는 눈망울들을 바라보며 더 가슴 뛰게 살 것을 다짐했다. - [憂弱]


추신 - 술자리 말미에 B반의 아끼는 후배가 A반과 B반 중에 어느 반이 좋냐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다 소중한 경영대라며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후배는 적잖이 실망한 표정이었고, 나는 나대로 무척 당혹스러웠다. 물론 그 자리에서 B반이 당연히 더 좋다며 맞장구를 쳐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술 마시면 평소보다 더 잘 웃는 내 특성상 싫은 기색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좀 기분이 언짢았다. 어느 B반보다도 B반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행사 때마다 참여했던 내게 그런 물음은 좀 지나쳤다. 별다른 연락이 없어도 내가 먼저 일정을 확인하고 찾아왔던 것을, 늦은 시간에라도 찾아가서 인사라도 나누려고 했던 나를 몰라주는 것 같아 조금은 섭섭했다.


공식적인 행사 뒤풀이 때야 그나마 알고 찾아갈 수 있지만 각 반별로 소소하게 있는 행사들은 내가 알 길도 없다. 그런 잡다한 모임들에 내가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 때의 기분을 조금 헤아려줄 수는 없었을까? 때때로 내가 가질 수밖에 없는 아웃사이더, 이방인의 감정을 모르지 않을텐데 말이다. 이렇게 볼멘소리를 했지만 그 후배도 좋고, 우리 경영대도 사랑한다.

Posted by 익구
:

전전반측 2005 새터

잡록 2005. 2. 19. 23:19 |
전전반측(輾轉反側)... 2005 새터를 갈지 말지 고민하던 나를 이렇게 묘사하고는 한바탕 웃었다. 새터 오라며 따스하게 권해준 고마운 후배들이 몇몇 있었고, 지난 2년의 새터에서 일만 한 기억밖에 없어서 놀러 가는 새터도 한번 가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02 동기들도 거의 없고, 은퇴한 몸이라는 등의 별 시답지 않은 핑계를 대고 끝내 가지 않았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새터 뒤풀이까지 외면하지는 못하고 간만에 반가운 얼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간만에 전철 첫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기분은 상큼했다.^^; 05학번 새내기를 알고 싶다기보다는 이제는 어엿한 선배가 된 04학번 후배들을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제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낼 일이야 없어도 뒤풀이 때는 짬짬이 다녀볼 생각이다. 전임 학생회장이 A/S 하는 셈치고 말이다.


차마 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04학번 후배들이 참 많이 고마웠고 함께여서 즐거웠다. 04학번 새내기들의 입학을 축원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어엿한 선배의 자태를 뽐내는 것을 보니 기쁘다. 기품 있는 선배들이 될 거라 믿는다.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지만 이 소중한 인연은 앞으로 더 돈독하게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04학번 후배들이 올 한해 소중한 인연들과 재미나고 보람찬 관계 맺어나가기 바란다. 다만 05학번 새내기 맞이로 분주한 이 맘 때 04학번을 추억하는 선배들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기를. 넓어질수록 깊어지고, 높아질수록 낮아지는 멋진 고대인이 되도록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끝으로 적극적이면서도 진지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책임감 있는 05학번과의 만남도 고대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쓸쓸한 황룡사터에서 희망을 찾다

문화유산은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보존하는 것도 능력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형편없는 축에 속한다. 잦은 외침에 시달려 찬란했던 문화유산들을 한없이 파괴당하고 약탈당했다. 또한 일제시대를 겪으며 어지간한 문화유산은 개박살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족간에 전쟁을 치르는 것도 모자라 개발독재 시절 난개발의 후유증도 계속되고 있다. 진정한 문화 강국은 잘 만드는 것보다 잘 지켜내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훼손된 문화유산의 목록은 끝도 없지만 그 중에서 많은 이들을 애타게 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황룡사다. 황룡사는 4대왕 93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완공된 신라 최대 사찰이다. 동양 최대의 목탑인 9층목탑과 구리 3만여근, 황금 1만198푼이 들어간 본존불 금동장륙상 및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보다 4배나 큰 황룡사종이 있었다고 한다.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버리고, 임진왜란 때도 왜놈들이 불타버린 황룡사의 유물들을 파헤쳐 갔다고 한다.


지금의 황룡사터는 금동장륙상을 올려놓았을 커다란 석조대좌 흔적과 9층목탑을 쌓았던 64개의 초석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잿더미가 되고 약탈도 당했지만 발굴 당시에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높이 182cm, 최대 폭 105cm인 대형 망새는 황룡사의 규모를 짐작케 해준다. 망새는 치미라고도 하는데, 궁궐, 절 전각의 용마루(지붕 위의 가장 높게 마루진 부분) 양쪽 머리에 얹는 용머리처럼 생긴 기와 장식물을 말한다. 거대한 망새의 존재는 당시의 건물이 얼마나 웅장했는지 즐겁게 상상하게 만든다.


9층목탑 터에 서면 전율이 돋는다. 600년대에 세워진 높이 80m(225척)의 웅장한 목탑의 위용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현존하는 목탑 중에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1056년 요나라 때 만들어진 응현5층탑을 능가하는 높이다. 많은 이들이 9층목탑 복원을 소망하는 것도 문헌상의 기록으로만 짐작하는 화려했던 목탑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리라. 너른 목탑 터에서 세계 최고의 목탑을 세운 것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더 짙게 드리운다. 거대한 심초석을 어루만지며 고종석 선생의 소설집에 등장하는 세계적 석학 피터 버갓씨의 냉소를 떠올렸다.


이 나라는 뭐든지 규모가 작다. 일본 사람들은 작은 것 잘 만들어내는 데 세계 제일로 알려져 있지만, 옛 일본 사람들이 남겨놓은 유적들은 그 규모가 꽤 볼 만하다. 한국은 궁전이든 사찰이든 너무 작다. 단지 작을 뿐만 아니라 초라하다. 나는 이 나라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미국인이나 유럽인에게 덜 매력적인 것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판단했다. 좋게 평가하자면, 이 나라는 과거의 나라가 아니라 미래의 나라인 듯하다. 이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빈약한 자연적 문화적 자원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사회라도 만든 것이 대견하다 싶을 정도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이탈리아나 아일랜드에 비교하고 싶어하지만, 이 나라에는 이탈리아나 아일랜드만한 과거가 없다.
- 고종석, [엘리아의 제야](2003), 문학과 지성사, 89 ~ 90쪽


우리가 풍요로운 전통문화를 자랑한다고는 하지만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문화유산을 보면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지켜내는 능력이 부족했던 우리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면 풍성한 문화유산보다는 첨단 기술력의 덕이 더 클 것이다. 2004년 12월 삼성물산은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두바이에 세워질 높이 700m가 넘는 버즈 두바이 빌딩을 수주했다. 이로써 삼성은 세계 3대 마천루 모두를 건설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또한 롯데물산은 서울 송파구 신천동 제2롯데월드 부지에 높이 800m 규모의 초고층 빌딩 건립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선조들의 장인정신이 우리를 미래의 나라로 이끌어주는 것은 아닐까.


문득 2004년 중국 베이징 여행 때 들렀던 원명원이 생각난다. 본디 이화원을 능가하는 호화로운 이궁(離宮)이었으나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약탈당하고, 1900년 또 다시 8개국 연합군에 의해 파괴되어 폐허만 남게 되었다. 서양루 유적지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부서진 석재들이 그 자체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황룡사터 경우에는 목조 건축이다보니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아 그런 감흥이 일지가 않는다. 남은 잔해가 거의 없으니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제대로 느끼기가 힘든 것은 목조 건축의 치명적 단점인 셈이다.


많은 외침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은 어느 하나 성한 것이 없다. 목조 건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적극적인 문화유산 복원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잘 지켜내지 못한 만큼 다시 세우려는 노력만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한다. 이 마저 소홀히 한다면 볼 것 없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가능한 많은 문화유산을 복원(혹은 중건)하는 것은 관광수지 적자에 대처하는 장기적인 투자다. 미래로 치닫는 세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문화유산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다. 폐허마저 흥미로운 볼거리였던 원명원은 2008년 올림픽을 대비한 대대적인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2002 대선 때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불교 표심을 잡기 위한 공약으로 황룡사, 미륵사 복원을 똑같이 내세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절인 미륵사나 세계 최고의 황룡사 9층목탑이 다시 세워지는 것은 황홀한 일이다. 설령 옛날의 그 솜씨만큼은 못하더라도 복원한 것이 훗날에는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대역사일테니 만반의 준비를 한 뒤에 시작해야겠지만 그 날을 고대하고 있다. 고증이 어려워 제대로 된 복원이 힘들다는 고충이 있겠지만 북한의 문화유산 개건(改建)처럼 원형에 대한 강박관념은 조금 덜어낼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지를 답사해보니 단군릉은 북한에서도 ‘복원(復元)’했다고 말하지 않고 명백히 ‘개건(改建)’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점은 동명왕릉, 왕건릉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단군릉은 5천 년 전 유적이 아니라 20세기 유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남한에서 충남 아산에 만든 현충사가 조선시대의 유적이 아니라 20세기의 기념건축인 것과 같은 맥락에 있은 것이다.
- 유홍준,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상권(1998), 중앙M&B, 143쪽


개건이라는 용어는 원형 그대로를 복원한다는 것보다는 다소 유연한 입장이다. 물론 북한의 개건 사업은 현대에서 재해석이라는 선의보다는 민족주의를 이용한 정권연장의 꿍꿍이가 더 강해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북한 정권의 평소 행태로 보아 대규모 개건 사업은 나치 정권이 독일 전역에 거대한 규모의 기념물들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이해된다. 하지만 열악한 문화유산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평가할 만 하다. 허나 단군 황조(皇祖)와 동명성왕, 태조 왕건께서는 굶주린 인민들 걱정하시느라 잘 단장된 무덤이지만 편히 쉬시지 못할까 걱정된다.


황량한 황룡사터에서 어깨도 쭈욱 펴고 입술도 질끈 깨물어보자.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새로 만들어갈 희망을 노래하기 좋은 곳이다. 9층목탑터에서는 흐뭇한 표정도 지어볼 일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설 연휴 경주 답사 중에서 흥덕왕릉, 석불사, 황룡사터만 뽑아 이에 대한 감상을 적어본다)

수학여행의 추억

설 연휴에 경주 관람을 간단하게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이후 10년만의 경주 방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 서울시 노원구로 전학을 온 관계로 한달 사이로 경주 수학여행을 두 번 다녀왔다. 두 번의 경주 답사는 거의 비슷한 코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국사, 석불사(석굴암), 첨성대, 천마총, 안압지(임해전지), 반월성, 무열왕릉, 김유신묘, 경주국립박물관 등을 둘러봤던 것으로 기억한다(이번 답사에서는 분황사와 황룡사터를 새롭게 가봤다). 문화유적을 끔찍이도 좋아하는 나이지만 초등학생 때까지 그런 것을 볼 줄 아는 혜안은 없었던지라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체 기념사진에서 지루함과 피곤함이 쌓인 어린이의 모습이 그 증거다.


그러나 연달아 있은 두 번의 경주 답사에서 인연을 끌어다 썼는지 중고등학교 때는 경주로 향할 일이 없었다. 중학교 때는 아이엠에프 사태로 인해 졸업여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고등학교 때는 강원도 설악산 등지로 떠나는 바람에 들를 기회가 없었다(다음해에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고 한다). 수학여행 하니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공주, 부여로 수학여행을 갔던 것이 떠오른다. 낙화암을 오르고 무령왕릉을 들어가 본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특히 심각한 훼손으로 97년 영구폐쇄가 되기 전에 들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으리라.


비록 반강제적 성격이기는 하지만 수학여행을 통해 어린이들이 우리 문화유산을 처음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체계적인 역사 교육까지는 필요 없지만 적어도 우리 문화유산이 보잘 것 없고 하찮은데다 따분하다는 생각을 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중등학교 이후에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보는 관심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도 첫단추를 잘못 꿰는 잘못이 크지 않을까 싶다. 유치한 구호이지만 진정한 세계화는 한국적인 것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사랑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외로운 흥덕왕릉이여!

본격적인 경주 탐방에 앞서 경북 경주군 안강읍에 위치한 할머니댁에서 머지 않은 곳에 위치한 흥덕왕릉을 찾았다. 다른 신라 고분들이 경주 시내나 근처에 포진되어 있는 것에 반해 흥덕왕릉은 농가 밀집지역에 외롭게 자리잡고 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다가 표지판이 놓인 입구에 당도하면 휘어진 소나무들이 왕릉을 호위하듯이 빼곡이 들어서 있어 그제서야 왕릉이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지리상 떨어져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는 하지만 흥덕왕릉은 신라 역대 왕릉 가운데서 규모가 크고 형식이 갖추어진 대표적인 왕릉의 하나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완비된 능묘제도를 나타내준다는 괘릉(원성왕릉으로 추정)과 비견될만하다.


큼직한 봉분 둘레 호석에는 십이지신상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어 눈을 즐겁게 했다. 두 쌍의 돌사자와 한 쌍의 문인석과 무인석도 온전히 남아 있었다. 돌이끼가 좀 피었을지언정 천년도 넘는 세월을 지키고 서있었다. 근처에 이래저래 꺼이진 귀부(龜趺,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가 보였다. 비신(탑신)은 온데 간데 없고, 이수(螭首, 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도 보이지 않는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비신도 깨어지고, 이수도 날라가고, 귀부도 쪼임을 당했을 것이다. 목 잘린 불상들마냥 온전한 것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능비(혹은 탑비)는 수난의 한국사를 말없이 증언해주고 있는 셈이다.


흥덕왕릉은 귀부마저 많이 훼손되었음에도 천망다행으로 흥덕(興德)이라고 새겨진 비석의 파편이 발견되어 제 이름이나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신라 고분 중에서 무열왕릉과 흥덕왕릉 이외에는 확실하다고 알려진 왕릉이 거의 없다. 신라의 전성기를 열었던 진흥왕의 릉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어 많은 이들의 의심을 받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흥덕왕릉은 이런 면에서는 복을 받은 셈이다.


흥덕왕은 신라의 제42대 왕(재위 826~836)으로 청해진에 장보고를 두어 방비케 하고,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 종자를 지리산 자락에 심게 해 우리나라 차 문화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흥덕왕은 임금이 된 첫해에 왕비인 장화부인이 죽었는데, 11년 동안 죽은 장화부인만을 그리며 홀로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소원대로 아내의 무덤에 합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질펀한 밤의 황제(?)가 있었던가 하면 이런 순애보도 있었다.


저승에서 달콤한 사랑을 나누고 있을 이들 부부의 무덤은 수 차례나 도굴 당할 정도로 관리가 소홀한 편이다. 봉분 주위의 호석을 보아도 도굴의 여파로 깨진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또 언제 신라 고분의 사슴뿔 모양 금관과 불꽃 모양 금관을 기대하며 장비를 챙기는 검은 손들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흥덕왕릉도 제대로 발굴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신라의 상당수 고분들이 발굴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문화재 보호는 더욱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에 조선의 왕릉이 많이 남아있지만 별로 대단치 않은 부장품이 약간 들어가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삼국시대 왕릉은 규모도 규모지만 그 안에 부장품이 무궁무진하다. 비록 고대 사회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지만 후손들은 그것을 잘 지켜낼 의무가 있다.


가까이 볼 수 없어 더 그리운 석불사

다시 찾은 서라벌은 싱그러웠다. 경주 시내에 도착해 도로변에 여러 왕릉과 탑 등의 유적지들을 스쳐 지나면서 천년 고도로 들어왔음을 실감했다. 이런저런 유혹을 뿌리치고 곧장 토함산 석불사(石佛寺)로 향했다. 흔히 석굴암이라 부르지만 본래 그 이름은 석불사였다. 말 그대로 돌부처가 있는 절이다. 1910년경부터 일본인들이 석불암 대신 석굴암(石窟庵)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경운궁(慶運宮)이 황위에서 물러난 상황(당시의 고종황제)을 가리키는 칭호인 덕수궁(德壽宮)이 널리 쓰이는 것처럼 맞지 않는 명칭인 셈이다.


일제가 석굴암을 완전 해체하고 잘못 조립하여 지금은 불상들의 온전한 위치와 정확한 구조를 알 길이 없게 되었다. 수리하는 와중에 슬쩍해간 것도 적지 않으니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일제는 석굴 전체를 해체하여 일본으로 가져갈 계획까지 세웠으나 한일합방으로 굳이 반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하니 섬뜩한 일이다. 일제는 보수를 하면서 당시 신소재로 각광을 받던 시멘트를 사용함으로써 석굴 내부에 습기가 차는 중 각종 문제점을 낳았다. 결국 1961년 복원 때 목조 전실과 석굴암 사이에 유리벽을 설치하여 일반 답사객은 유리로 막아놓은 벽 너머로 석굴암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밖에 없어 제대로 된 감상이 힘들다. 애를 써도 십일면 관음보살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석굴법당을 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우선 유리벽 너머로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없으니 그 진가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또한 생각보다 규모가 너무 적다는 것에 불만이 쏟아진다. 그러나 석굴암의 재료는 화강석이다. 가령 경천사터 10층석탑과 원각사터 10층석탑은 석회암의 일종인 대리석으로 조각되었다. 이런 경도가 낮은 재질은 제작하기가 화강석에 비해 쉽기 때문에 화려한 조각을 뽐낼 수 있다. 하지만 조각하기 힘든 딱딱한 화강석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조각한 데서 찬란한 우수성을 깨달을 수 있다. 이 독창성에서 우리는 세계화의 파고를 어떻게 해쳐 나갈지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유리벽 너머의 감상은 어쩔 수 없이 가장 크고 중앙에 자리잡은 본존불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깊은 명상에 잠긴 듯한 표정은 위엄이 넘친다. 웃는 것은 아니지만 온화한 미소가 느껴지고, 화내지는 않지만 나지막이 꾸짖는 것 같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그 표정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워 마음 깊이 새기고자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대로 볼 수 없어 이토록 많은 답사객들의 애를 태우는 석굴암이지만 습기가 차는 것을 비롯해 이런저런 잔병치레가 심하다고 한다. 영구폐쇄된 무령왕릉처럼 석굴암도 폐쇄를 해야한다는 의견도 들려온다. 천년을 견뎌온 이 위대한 역사가 부끄러운 후손들에 의해 암흑에 쌓일지도 모른다니 안타깝다.


석굴암의 본래 구조와 앞으로의 보존 방법 등을 둘러싸고 많은 치열한 논쟁이 있다. 그만큼 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적인 내용들은 잘 알아들을 수 없어서 어느 말이 맞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에서 60년대의 복원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며 목조 전실은 있을 필요가 없으며, 팔부신중의 배열이 잘못되었으며, 햇빛이 비치는 광창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성낙주는 [인물과 사상] 7권에서 미미한 피해를 침소봉대하여 60년대의 보수공사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최악의 상태에 있던 일제 때의 석굴암으로 되돌아가자는 우를 범할 것이라며 비판한다. 실제 복원 공사에 참여했던 신영훈도 [(천상이 천하에 내려 깃든) 석굴암] 등의 저서를 통해 최선의 복원이었다며 옹호하는 입장이다. 유홍준의 글이 엄밀한 학술논물이 아니지만 성낙주와 신영훈의 글이 비교적 많은 반박논거를 제시하고 있어 뒤쪽의 의견에 더 공감하는 편이다. 사실 이렇게 티격태격하게 만든 원흉은 일제의 엉터리 복원이었다.
Posted by 익구
:

久而敬之를 꿈꾸며

문화 2005. 2. 12. 04:35 |
1.
사람을 가늠하는 잣대는 저마다 다르다. 이러한 개인적 좋고싫음은 큰 합리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개인적 기준으로 사회적 차별의 근거로 삼거나 폭력적으로 교정하려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개개인의 미감은 존중받아야 한다.


가령 나는 포커페이스보다는 생긋 웃는 얼굴에 더 호감을 느낀다고 하자. 여기까지는 내 자유겠지만 포커페이스가 하는 말은 믿을 수 없다고 공언하고, 포커페이스에게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웃는 훈련을 강제하는 것은 비합리성을 넘어 폭력성을 띄는 단계가 되는 것이다. 내 옆의 사람은 포커페이스가 진중함이 있고, 카리스마 넘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살아가며 많은 사람을 만날 때 제 나름의 기준조차 없다면 늘어만 가는 인간관계는 범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옛사람의 신언서판(身言書判)처럼 꼼꼼히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갖추려고 노력한 개인적 잣대는 가질 필요가 있다. 박노해는 다음과 같은 잣대를 제시한다.


인간성을 평가하는 잣대, 그 사람됨과 인간의 격(格)을 판단하는 단 하나의 잣대를 고른다면 나는 약자에 대한 태도를 들겠다. 자기보다 힘있는 사람들을 섬기고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들과 서로 주고받는 것은 누구나 한다. 그런 ‘연줄 잡기’와 ‘패거리 짓기’가 너무도 심각하여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 가난한 이웃에 대한 태도, 여성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태도, 그것이 가치관의 핵심이고 인간다움의 중심 잣대가 아니겠는가.
- 박노해, [오늘은 다르게](1999), 해냄, 45~46쪽


한동안은 박노해의 잣대를 받아들여 써왔다. 도덕경 77장의 “하늘의 도는 남는 데서 덜어내어 모자라는 데에 보태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 모자라는 데서 덜어내어 남는 데에 바친다(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 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라는 구절이나 고종석의 “강자에게 고분고분한 사람이 약자에게 휘두르는 주먹만큼 보기 흉한 것도 없다(고종석, [참여정부의 抑弱扶强], 한국일보, 2003/11/26)”는 말씀도 새기고 있었다.


2.
그러던 중에 최근에 사람을 바라보는 새로운 잣대를 세워봤다. 강유원의 다음과 같은 독백에 영감을 얻었다.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과 '옳은 것/ 그른 것'을
구별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의 그른 점을 지적하면,
아니 그에 관한 사실을 밝혀 보이면
내가 그를 싫어하는건가?

- 강유원 블로그( http://armarius.net ) Kommentar 20 Nov. 2004


자신의 그른 점을 지적하는데 자신을 싫어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미성숙하다. 건설적인 토론을 인신공격으로 제멋대로 오해하고 물타기를 하는 사람은 비겁하다. 칼 포퍼는 말에 대한 비판과 사람에 대한 비판을 구분해야한다고 설파한다.


포퍼는 물질의 세계(세계1), 주관적 마음(정신, 의식)의 세계(세계2)와 구별되는 객관적 사상의 세계, 마음의 산물이면서도 그 인식주체와 독립해 존재하는 세계3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상, 언어, 윤리, 제도, 과학, 예술 등을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어떤 이론이나 지식을 말하는 사람과 그가 내놓은 이론, 지식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FTA 체결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누군가 그 사람이 내놓는 찬성 논거를 살펴보지는 않고 그는 농민들을 다 죽이려는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한다고 치자. 이는 인식의 세계를 잘못 짚어 세계2와 세계3을 분간하지 못한 것이다. 그 사람의 주장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인간 됨됨이를 걸고넘어지는 것, “사람=그 사람의 말과 글”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지식의 생산자를 그 지식과 동일시하여 어떤 사상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그 사상의 산출자를 없애버렸다. 이는 정치적 해결은 될 수 있어도 학문적 해결은 될 수 없다. 이러한 방식의 정치적 해결은 항상 폭력을 수반한다. 열린 사회는 이러한 정치적 해결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 신중섭,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99), 자유기업센터, 114쪽


친구가 어떤 상황에서는 부적절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된다면 그 견해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친구 된 도리다. 혹시 내가 괜히 듣기 싫은 소리를 해서 감점이나 당할까봐 그냥 입에 발린 소리나 해주는 것이나 애정 어린 쓴소리를 경청할 줄 모르고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며 멀리하는 것이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것은 친구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배반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물론 타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비판하는 것(혹은 미감을 거스르지 않게 하는 것)과의 균형을 잡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진정성이 담긴 내 선의를 인정받기란 늘 힘든 일이지만 맹자가 말했듯이 “선을 권장함은 벗의 도리(責善 朋友之道也)”일 것이고, 칼 포퍼의 제언처럼 “타인의 행복을 보살펴 줄 권리는 그들의 가까운 친구에게 한정된 하나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이 “도리”와 “특권”은 때로는 쓴소리도 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3.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에서 미래사회가 영속성보다는 일시성이 두드러진 사회가 될 것임을 설파한다. 인간관계도 예외가 될 수 없어 총체적인 인간과 관련을 맺기보다는 그 사람의 한 부분에만 관련을 맺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인간들도 빨리 스쳐가기 때문이다. 그는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이해관계가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이상스러운 일이라며 인간관계의 단편화(파편화와 유사한 의미인 듯)와 자유는 병행한다고 주장한다(앨빈 토플러 著 장을병 譯, [미래의 충격](1986), 범우사, 88~108쪽 참조).


토플러는 개인의 사회적 활동을 “이제는 만나지도 않고 이해도 달리하는 친구들 대신에, 새로운 친구들을 탐색하는 사회적 발견의 냉혹한 과정”이라고 표한다. 효용가치가 없는 옛친구들은 빨리 버리거나 잊고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만한 새 친구를 찾아야한다는 그의 주장은 유한책임을 바탕으로 한 계약관계가 자유롭고 경제적(?)이라는 사고에서 기인한다. 그의 탁견에 일정부분 동감을 하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풋풋함만큼이나 세월의 무게가 가져다 주는 푸근함을 좋아하는 나는 앞으로도 “貧賤之交 不可忘(가난하고 천할 때의 친구를 잊어서는 안된다,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의 고사)”을 주문처럼 외울 것 같다.


관계맺음의 길고 짧음에 대한 논의를 넘어 내가 맺는 관계가 논어에 나오는 久而敬之(구이경지)와 같았으면 좋겠다. “오래되어도 여전히 공경한다”라고 해석하면 친해지더라도 존경심을 잃지 않고 범속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 되고, “오래 사귈수록 공경하게 된다”라고 해석하면 오래 사귀어도 그 사람의 약점이 드러나기보다는 강점이 더욱 커진다는 뜻이 된다. 어느 것으로 해석하든 관계맺음의 이상향을 잘 나타내준 말이 아닐까 싶다.


久而敬之하고 싶다면 나와 다른 의견을 기꺼이 긍정적으로 검토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단지 자신의 의견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섭섭해하고 토라지는 것은 제 그릇의 작음을 선전할 뿐이다. 자신의 의견이 소중한 만큼 남의 의견이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과의 교제는 생선비린내를 면치 못할 것이다.


나란 녀석을 인간적으로 끔찍이 좋아하면서도 생각이 다를 때 함께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자기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이를 적대시하기보다는 서로간의 차이에 감사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칠 마음이 있는 사람과는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꿔도 좋을 것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어지간한 군자와 성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개인적 좋고싫음의 상당수는 편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관계에서 개인적 좋고싫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 과정이 크게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폭력적이지만 않는다면 존중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에 대해 나쁜 감정을 품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말과 글을 신뢰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의 뜻대로 강요하는 행위는 폭력적이고, 구박받아 마땅하다. 이런 경우의 대표가 나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최근에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을 표방하며 등장한 자유주의연대를 위시한 단체에게서 “나만 잘났다”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사실 처음 자유주의연대가 등장했을 때 극우파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 제대로 된 보수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남의 탓이며 내 말이 옳다라는 독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명색이 자유주의자라는 이들이 이 짓거리니 더욱 실망스럽다.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나는 누구인가?”를 가장 중요한 물음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뉴라이트들은 “너는 누구인가?”를 캐내는 데 날밤을 새고 있다. 너는 주사파고 빨갱이라며 손가락질하기 바쁘다. 자기 반성 없이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합리적 보수 세력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먼저 극우파와 수구세력을 통박하는 것이 순서다. 국가주의적 폭력과 손잡는 사이비 자유주의자와 경제적 자유에만 편향된 자유주의자들을 극복하는 데서 제 존재 의의를 찾았어야 한다.


그런데 뉴라이트들은 진보좌파를 공격한답시고 노무현 정부에 화살을 쏘고 있다. 자기 반성 없이 남 손가락질하는 것도 우스운데 그것도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아간 셈이다. 뉴라이트와 노무현 정부의 사회경제정책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FTA를 통해 시장 개방을 추진하고, 노조 등에 욕 먹어가며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다 사회복지도 열악해서 부실 도시락 파문이나 일으키는 정부가 무슨 좌파라는 것인지 수긍하기 힘들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헌법이 규정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하겠다는데 자유민주주의의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니 황당할 따름이다.


앞서 말했듯이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극우파의 횡포에 침묵했거나 오히려 한술 더 떠서 거기에 기생하고 봉사했던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유주의자는 사이비에 불과하다. 왕년의 주체사상 신봉자였던 이들이 전향해서 극우파를 지원사격하는 것도 자유주의와 거리가 먼 것은 피차 일반이다. 아니 오히려 극단을 넘나들며 헛소리를 반복하는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진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고 주사파에서 반공투사로 바뀌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고해성사를 빌미로 남의 양심고백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왕년에 요설을 휘둘러 대장질 하던 재미가 쏠쏠했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시장을 옥죄는 국가보안법을 나 몰라라 하고서 “나와 정정당당하게 한 판 겨뤄보자”는 외침은 공허할 뿐이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전면적 자유주의자”라야 한다. 경제적 자유만을 절대시하는 것은 진리의 포트폴리오를 하겠다는 이의 자세가 아니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의 자유가 만개할 때 자유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자유가 모든 영역에서 평등(!)하게 적용할 때 비로소 자유주의자로서의 보람을 느껴야 한다. 일부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은 제 입맛에 맞는 자들의 자유만 옹호하고, 합리적 토론을 가로막는 각종 폭력적 방식에 침묵, 방조하는 편식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영혼을 야위게 하고 있다.


태도로서의 자유주의는 모든 ○○주의자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자라는 타이틀이 한국 사회에서 유효한 것은 전체주의와 싸우고, 이 땅의 숨막히는 보수성에 유연성을 불어넣고, 개인의 해방을 추구하는데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뉴라이트가 공연히 연막작전이나 피우면서 한나라당 등의 세력을 돕는 판세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조선일보에 실리는 진보적 색채의 글 상당수가 조선일보의 극우성을 감추는 분칠을 하는데 쓰이는 것처럼 말이다. 뉴라이트가 첫마음을 잃고 극우파와 짝짜꿍할 때 그네들이 그렇게 주창하는 자유시장의 법칙에 따라 퇴출되거나 한나라당에 인수, 합병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뉴라이트는 자신의 자유만큼 남의 자유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함부로 강요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 힘있는 자의 자유에는 너그러우면서 힘없는 자의 자유에는 매서운 자유주의자는 볼썽사납다.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김정일 폭압정권을 누구보다 비판하는 분들인 만큼 자신들도 그 덫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싸우면서 닮는다고 하지만 공산당을 극복하겠다면서 파시스트의 방식을 답습해서는 희망이 없다. 자유주의자가 믿고 기댈 것은 남의 생각과 색깔을 따지기 전에 스스로를 회의하고 성찰하려는 자세,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부당한 지원 없이 정정당당히 겨뤄보려는 자세다.


신자유주의 바람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보다 자꾸만 팍팍하게 만든다면 진짜 자유주의자들이 앞장서서 비판해야 한다. 부당한 부자유와 불평등으로 인해 인간다운 삶이 위협받을 때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진짜 자유주의자들이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이제 진보주의자들이 각종 개혁 의제를 독점하게 놔두지 말자. 앞으로 진보 세력에게 볼멘소리로 시비나 걸고 반동적 목소리에 동조하는 추한 모습도 삼가자. 우리가 몸둘 곳은 치열한 경쟁이 있는 자유시장이지, 안온한 자본과 기득권의 품속이 아닐 것이다. 자유시장에서 상도덕을 지키며 살다보면 끼니마다 고기반찬이 오르기 힘들지는 몰라도, 편식 없는 고른 영양섭취로 영혼이 살찔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는 확신을 미감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신뢰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낙관주의가 없으면 자유주의는 비루해진다. 남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 자유가 잘 실현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굳이 서로를 철썩 같이 믿지 못해도 낙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라이트의 건투를 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은 실로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을 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기 위해 경복궁 흥례문을 헐고 광화문마저 철거하기로 하였으나 이를 비판한 일본문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 등의 도움으로 1926년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에 옮겨지게 된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광화문은 한국전쟁 당시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문루가 소실되고 석축만 남게 된다. 1968년 박정희가 복원을 했을 때는 문루를 콘크리트로 처발라버렸다. 이렇게 광화문에는 외세침탈과 동족상잔, 개발독재의 그늘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1968년 복원 때 석축 자재들은 조각난 채 콘크리트 자재와 뒤섞이게 되고, 목조 건축물을 문루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 단청을 입혀 완전히 바꿔 버렸다. 재정 상황 등으로 인해 비싼 목재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콘크리트를 사용했다는 항변을 인정한다고 해도 너무나 어이없는 복원이다. 영구보존이라는 명분이 무색할 정도로 고유의 옛 정취는 사라져버렸다. 이 때문에 광화문을 원래의 목조 건물로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미 문이 앉아 있는 방향도 틀어져 있고 위치도 뒤로 물러나 있으며, 서십자각 없이 동십자각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등 전체적으로 흐트러진 모습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그런데 박정희의 친필인 현재의 광화문 현판을 교체하겠다는 문화재청의 발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박정희가 쓴 현판을 그대로 두자, 목조 건물로 복원할 때까지는 놔두자, 바꾸더라도 한글 현판을 쓰자, 옛 모습을 살려 한자 현판을 써야 한다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현판에 대한 폭넓은 의견 수렴이 있어야겠지만 현판 교체는 적절하다고 본다. 독재자의 글씨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에 떡 하니 걸어놓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목조 건물로 복원할 때까지 놔두자는 것은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 실현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 사실 박정희가 엉망으로 복원해놔서 제대로 복원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닌 현판 교체까지 정색을 하고 반대할 이유는 없다.


어두웠던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자는 법안 통과에도 게거품 물던 이들이 이제는 현판 하나에도 무슨 미련이 남아 난리법석을 치고 있다. 역사라는 것은 과오를 반성하고 오늘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것인데도,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더러운 과거만을 옹호하는 이들이 현판 하나까지도 손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들 눈에는 최근 공개된 한일협정 관련 문서들에서 일제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사실상 포기하고 경제발전이랍시고 가로챈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경복궁의 각종 전각들이 일제의 손에 어떻게 훼손되었는지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독립운동의 성지인 탑골공원 정문에 박정희가 쓴 ‘삼일문’ 현판이 어색했듯이 광화문 현판도 박정희의 글씨가 있을 곳이 아니다.


철저한 파괴로 인해 본래의 10~15%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경복궁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보수, 복원이 있어야 한다. 문화유산 복원은 정치논리가 아니라 문화적 안목에서 이뤄져야 한다. 광화문 현판 교체는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논의해서 판단할 문제다. 우선은 문화재 전문가들의 역할을 존중하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광화문 현판만 부라리지 말고 차분히 경복궁을 들어가서 우리 선조들의 문화의 향기를 맡고, 일제의 파괴 흔적을 곱씹어보자. 그리고 덧붙여 턱없이 부족한 문화재 관련 예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곳곳에 방치된 우리의 문화 유산을 도두보자. 박정희 일개인에 대한 집착(?)은 스르르 녹아 없어졌음을 발견할 것이다.


한편 현판 교체 시에 한자를 쓸 것인지, 한글을 쓸 것인지의 문제가 남는다. 궁궐의 전각이나 사찰 등의 문화유산을 복원할 때 한자를 쓰는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나 유독 광화문은 선뜻 망설여지는 것은 그만큼 광화문이 우리 문화유산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방증한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한글 현판을 고집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한자 현판을 절대시할 필요도 없다. 한글 현판이 과거의 원형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한자 현판이 한글을 경시한다는 것도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하지만 적어도 광화문만큼은 한글 현판을 썼으면 한다는 명분도 만만치 않다. 세종로 쪽에는 한글 현판을 달고 경복궁 안쪽에다가는 한자 현판을 다는 등의 대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만하며 보다 많은 접점을 찾아야 한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은 어느 하나 성한 것이 없다. 경복궁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유산들을 보수, 복원하는데 아낌없는 투자가 있어야 한다. 설령 옛날의 그 솜씨만큼은 못하더라도 보수하고 복원한 것이 훗날에는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이 마저 게을리 한다면 볼 것 없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이제 문화유산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음을 깨닫고 전국민적인 사랑이 절실하다. 일본은 허구한 날 자신의 만행을 가리기 바쁘고, 중국은 호시탐탐 고구려사를 넘보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역사와 문화는 우리가 챙겨야 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저작권 문제에 대해

공지 2005. 1. 30. 08:26 |
저작권법 개정으로 온라인 세상이 한바탕 난리법석입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음악 관련 해서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에게도 전송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보다는 저작권 침해 단속 강화 방침이 많은 누리꾼(네티즌)들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음악 관련 내용만 있는 줄 알고 먼 산 바라보듯 했는데 그것이 아니더군요. 문화관광부의 친절한 설명에 따르면 “온라인상에서 저작물을 함부로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하는 행위, 자신의 블로그나 카페에 올려놓는 행위, 허락을 받지 않고 남의 글을 함부로 자신의 블로그 등에 옮겨 놓는 행위(펌 행위) 등도 저작권 침해행위”이고 “5년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과중한 범죄”가 됩니다.


블로그로 전환한 새 익구닷컴에 있는 게시판 중 논객열전/ 경제카페/ 녹차한잔은 펀글 전용 게시판입니다. 그간 칼럼과 시 등을 모아왔고 앞으로도 모을 예정입니다. 그냥 문서 파일로 저 혼자 보관만 해도 될 것을 굳이 이렇게 해둔 것은 좋은 글은 나눌수록 더 가치가 커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펀글 게시판의 글 중에 맘에 드시는 것이 있으시면 마음껏 퍼다 나르시기를 바랐고요. 저작권법 개정안 시행 이전에도 이미 개인 홈페이지에 저작물 무단 인용(?)은 불법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이제 쌍심지에 불을 켜고 처벌을 하겠다니 당혹스럽습니다.


저작권법을 어긴 행위는 침해를 당한 권리자의 고소 고발이 필수적인 친고죄에 해당하니 당장은 익구닷컴을 운영한 죄로 벌금형에 징역살이를 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습니다. 게다가 상당수 논객들께서 자기 글 좋다고 가져간 학생에게 처벌을 요구하지 않을 것 같고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겠지만 업데이트는 계속 할 것입니다.


저작권법 개정이 음악 쪽에 치중되어 있다보니까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글 같은 경우에는 원래부터 위법인 셈입니다. 물론 무분별한 펌 문화가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인터넷 현실을 고려한 법 적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행법상으로는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가 허용되는 범위가 매우 좁아 대량의 범법자만 양산할 것이 뻔합니다. 사실 국내 대학 교재들 상당수가 외국 교재를 이래저래 베낀 것이라는 것은 상식인데 이건 그냥 쉬쉬하고 넘어가고(뭐 참고문헌들 주르르 달아서 면책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이 칼럼 하나, 시 한 편 나눠보겠다는 것은 안 된다니 좀 억울합니다.


어느 한 개인이 궁리해서 내놓은 저작물은 대부분 혼자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의 글과 말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말입니다. 설령 100% 자기 생각과 경험으로만 이루어진 글이 있다고 합시다. 사실 그런 글이 저작권을 주장한다면 가볍게 안 읽으면 그만입니다. 남의 것을 읽고 보고 듣지도 않고 이루어진 창작이라면 어차피 별 볼일 없는 내용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방문객도 한정적인 개인 홈페이지에서 이 분의 글이 좋아서 나눠보겠다는 것이 처벌까지 받아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듭니다(이 부분은 명확한 유권해석이 궁금하네요). 설령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대다수 누리꾼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것은 황당한 일입니다. 또 가난하고 무식한 서민들만 곤욕을 치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전 국민의 지식수준이 높아져서 저마다 칼럼도 쓸 수 있고, 시도 지을 수 있지 않는 한 온라인 상에서의 지적 교류가 막혀 버릴 테니 말입니다.


앞으로 온라인 상에서 글로 교류하는 것이 자신의 창작물로만 가능하다면 매우 수준이 낮거나 아니면 교묘한 표절이 횡행할 것이 뻔합니다. 물론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으면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우리도 사느라 바쁜데 언제 일일이 허락 받고 앉아 있으며, 설령 허락을 받으려고 해도 그게 하루 이틀만에 허락을 해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결국 돈 없고 빽 없는 이들은 온라인 상에서 칼럼을 놓고 토론도 못하고, 시도 함께 감상하지 못하게 생겼습니다.


이래저래 울분을 토해놨지만 저작권에 대해 정확히 아는 바가 없어서 많이 틀린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니 제가 오해하고 있고 기우에 시달리고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식의 과도한 저작권자 보호가 문제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인용 후 그 출처를 명기한다면 그 정도는 양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하간 쓸데없이 누리꾼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현행법의 보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공짜가 없는 세상에 권리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시장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익구닷컴의 글들은 원칙적으로 copyleft를 추구합니다. 남의 글 부지런히 실어다 나르는 제가 무슨 염치로 copyright를 주장하겠습니까?^^; 제가 쓴 잡글의 경우에도 원칙은 동일합니다. 제 잡글을 별도의 허락 없이 발췌해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만 출처 정도는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하실 일이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만요.^^


아무쪼록 오늘도 열심히 배워서 남도 많이 나눠주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익구닷컴이 블로그로 전환하면서 손님용 게시판이었던 舊 익구닷컴 자유게시판이 없어지게 되었다. 손님들의 글선물 중에 인상 깊었던 글과 나의 해명(?)과 선배님의 변호(?)를 올린다)

[경짱님아......] - C반04, 2004-04-15

여기 즐겨찾기 해놓구 자주 들어와서

많이 배우고, 많이 느낍니다.

저는 특별한 정당을 지지하거나 그렇진 않습니다.

정치에 관해서는 극히 중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짱님의 정치적 견해가 어떻든

개인적 홈페이지에 특정정당을 지지한다고

적어놓는 것은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주게 마련입니다.

물론 경짱님 개인의 정치적인 소견이 뚜렷하고, 미래의 자신을 그리면서 거기에

맞춰가려 한발 또 한발 앞으로 나아가며 노력하는 것 같아 저는 개인적으로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죠

한나라당 지지자도 있을 것이고, 민주당, 노동당 지지자들도 있을 겁니다.

또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고 질려서 심히 개탄하는 사람들도 있을거구요.

그런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한 사람으로, 한 훌륭한 인격체로 경짱님을 보기 이전에

편견과 선입견의 색안경을 낄 것입니다.

물론 경짱님이 쓰신 글, 주옥같은 생각들도 그 안경에 가려져 곡해되고 비하 될 것입니다.

큰 정치인이 되려면 일단 여러 사람을 끌어안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포용하는 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 지지자 최익구님이 아니라 멋진 포부를 가지고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최익구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저의 이런 짧은 생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지 저는 사람들이 오해할까 조금 아쉬웠을 뿐입니다.

더 크고 깊은 사람으로 나라의 굳건한 재목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꼭 그리 되실 거라 믿습니다.



(이 글에 대한 익구의 답글이다. "새우범생"은 익구의 온라인 별칭이다)

[오해받는 두려움 달게 받기] - 새우범생, 2004-04-15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04학번으로 본인을 소개하셨으니 제가 후배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우선 글선물에 굶주린 이 누추한 집구석에 글을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어느 한 정당을 지지하기로 결심하면서 저 또한 정파적 이해에 자유로울 수 없는 녀석이 되어 버렸지요. 내가 지지하는 곳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적당히 덮어주고 싶고, 저 쪽이 잘못하면 버럭 화를 내며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분명 잘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매도할 부당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적당히 방어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편견과 선입견의 색안경을 염려해주셨는데... 사실 “나는 우리당을 지지한다”고 외치는 그 순간부터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고 다짐한 일이지요. 친구들이나 혹은 주위 사람들이 저란 녀석을 보는 여러 가지 표지(標識) 중에서 “아 저 사람은 우리당 지지한데”라는 강력한 낙인이 찍히는 것을 예상치 못한 것도 아니고요.


이런 안경 혹은 낙인에 가려 곡해되었다고, 비하되었다고, 오해받는다고 섭섭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단지 제가 비교적 옳다고 믿는 것,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비교적 잘 발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선호를 밝힌 것뿐이고,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저는 편파적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오류투성이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자신의 견해를 밝혀서 어떤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늘 두려운 일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로서 저는 이 두려움을 달게 받아야죠 뭘...^^;


물론 저도 단순히 우리당 지지자로서의 정체성으로 타인에게 다가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제 스스로에 대한 나태함이니까요. 저란 인간의 이런저런 모습들 중의 하나로서 우리당 지지자가 있어야지, 우리당 지지자라는 표식이 저를 대표하는 것은 저도 원하지 않는 일이고요. 다만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가 저란 인간의 다른 가치를 발굴하지 못한 것이니 다시 한 번 반성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총선이 끝나면 일부 친구들이 평하는 정치색 물씬 풍기는 이 집구석도 아마 상당부분 탈색될 것 같네요^^;)


글 중에 “큰 정치인이 되려면 일단 여러 사람을 끌어안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사실 저와는 맞지 않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문득 회남자의 海不讓水라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바다는 마음이 넓어 온갖 물을 사양하지 않는다”는 이 구절을 처음 접하고 가슴을 때렸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가진 이 무기력한 자유주의 가지고는 도랑물에서 평생 만족해야겠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저는 제가 누구보다도 열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언제나 제 편협함과 소심함, 그리고 귀차니즘은 이런 저의 다짐을 늘 흔듭니다. 큰산이 한줌의 흙을 마다하지 않고, 바다가 시냇물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저란 인간은 결벽증을 핑계로 남을 무시하고, 혼자 깨끗한 척 깔끔을 떨지 않았나 늘 돌아봐야겠습니다.


경영학도로서 손해보는 장사를 싫어하는 만큼, 제가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아마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시급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마 제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배우고 생각해야 하는데 이 게으른 몸뚱이 때문에 근심만 한가득입니다.^^;


잡소리가 길었습니다. 이 정도면 주신 글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다한 것인지 걱정스럽습니다. 아무쪼록 중간고사가 코앞인데 후배님의 시험공부에 진전 있으시고,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憂弱]


(글 중에 ‘노동당’은 ‘민주노동당’이라고 해주세요. 민노당 지지자분들이 섭섭해하십니다.^^ 열린우리당이 ‘열우당’으로 불릴 때 늘 조금씩 섭섭해봤으니 남들이 섭섭해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네요. 잔소리 미안합니다^^;)



(어느 선배님께서 다음과 같은 답글을 달아주셨다)

[새우범생을 변호하며...] - mannerist, 2004-04-16

안녕하세요. C반04(이 글에서 님을 이렇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을지요)님.

님의 글을 보고 생각나는 것 몇 자 적습니다.

...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헌법 조항으로만 존재하는 레토릭만은 아닐것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겠죠. 그리고 그 주권을,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통해, 또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피력함으로서,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은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저 행위를 정치 과정의 범주에 넣는 것이, 그리 부자연스러워보이진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된 권리로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또한 이는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를 부정하시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C반04님께서 생각하시는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정치 과정의 참여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부정하지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정치 참여의 일부로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고, 특히나 '공적'영역에 있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대외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그 정치적 지향점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말이죠. 줄여 말하면,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정치행위 참여와, 특정 정당의 공개지지 사이에 벌어져 있을지도 모르는 거리를 불편해하시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대한민국의 구성원이 주권을 행사하는 여러가지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입니다. 과연 이것이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와 과연 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선거권과 피선거권 이외에도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방법은 많이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가장 중요한'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 한정하자면, 저 물음에 대한 대답은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정치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당에 대한 지지를 피력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가 아닐지요.


문제는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 아닐까요. 얼마나 바른 기준을 가지고 해당 정당을 지지하느냐라는 문제 말입니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의 말을 조금 빌리자면 "정치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따라서, 어느 쪽에 편파적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 편파성에 도달하는 과정이 문제다. 이 과정이 합리적이라면 편파성 그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정도가 되겠지요. 특정 정당에 대한 편파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편파성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문제란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달 수입 백만원도 안되는 데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는 비정규직 종사자가, 기업에 대한 노동 규제 약화와 고용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그 자신의 위치와 신념을 완전히 배반하는 것입니다. 혹은 자신이 특정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어느 정당을 지지한다면, 이 역시 합리적인 절차로 지지 정당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겁니다. 바른 기준으로,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정치 참여라는 대의에 있어서, 나쁘게만 볼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런 것이겠지요. 만약 익구군이 자신의 위치를 악용하여 경영대 학생들에게 공적인 장소에서 강하게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강요하거나(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해당 정당에 대해 이로운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할 일을 접어놓거나 할 때, 즉 자연인 최익구가 아니라 경영대 학생회장 최익구로서 특정 정당에 이로운 행위를 할 때 말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강하게 비판해야합니다. 그렇지만, 자연인, 주권을 가진 궁극적 소수로서의 최익구군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이성적인 판단을 거쳐 나온 결론으로 피력하는 것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합니다. 문제는 편파성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 지역감정/사적감정 등이 개입하였다면 그 부분의 논리적 모순을 비난해야합니다. 그렇지만 저 과정이 합리적이었다면, 그 사람의 일상적 정치 행위에 대해 왈가왈부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노파심에 조금 더 덧붙입니다. 특정 정당의 지지자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것을 걱정하셨는데요. 저는 어느 사람이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을 표방한다고 그러한 편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누히 말씀드린것처럼, 편파성 자체가 아니라 그 편파성에 도달하는 과정과, 그 편파성이 일에, 대인 관계에 어떻게 작용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비판한다면 그 과정과, 편파성으로 인한 잘못을 지적하는게 옳지 편파성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특정 정당의 지지자니까 이러이러할꺼야'라는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과, 개심한 전과자에 대한 곱지 못한 시선, 장애자에 대한 비장애자들의 편견과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힘 주어 말합니다. 그 편견을 떨쳐내시라고 말입니다.


앞으로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거리낌 없이, 당당히 드러내시는 자세, C반04님 계속 지켜나가시길 빌어마지않습니다.

정릉에서 mannerist...

넋두리) 노동당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입니다. =)
Posted by 익구
:
익구닷컴 3차 리뉴얼이 완료되었습니다. 고심 끝에 블로그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손님들의 클릭 수를 줄여주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에 솔깃해서 전격적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최신 글 보기 기능이 없고, 게시판 글 하나하나를 클릭해야 하는 舊 익구닷컴의 불편한 점을 고쳐보고자 나름대로 고객 중심의 사고(?)를 발휘했습니다. 이번에도 전작업의 99%를 싫은 소리 없이 도와주신 윤정누나께 가슴 깊이 고맙습니다.^^


제가 홈페이지라고 조잡하게 만들어 프리챌에 셋방살이 시작한 것이 2003년 4월 4일이었습니다. 그 후 사촌누나의 도움으로 2003년 7월 15일 익구닷컴이 개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포털 사이트에서 이런저런 블로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쓰면 용량 제한도 없고, 도메인비와 웹 호스팅 비용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굳이 이렇게 돈 내고 꾸려나가는 것이 조금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생하며 세간살림 채워나가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홈페이지 하나쯤 거뜬히 운영하겠지만, 저같이 게으름을 사랑하는 녀석에게는 무척이나 성가신 일입니다. 좋아하는 글을 퍼 나르고, 별 시답지도 않은 일상사나 생각들을 잡글로 써갈기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터넷에 쏟아 붓는 시간들의 상당수가 이 홈페이지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너도나도 정신 없이 달려가는 세상에서 이 무슨 한가한 신선놀음이냐는 불안감도 종종 엄습하고요.


잡글이라도 써내는 것은 나름대로 커다란 용기와 노력이 듭니다. 가끔은 밑천이 달리면서 억지로 글 쥐어 짜내지 말고 공부나 하자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지만 조금 모자라더라도, 조금 오류가 있더라도 열심히 발언하되 성실히 고쳐나가고 보강해나가는 노력을 하는 것도 꽤나 괜찮은 전략 같습니다. 물론 입으로만 거창한 이야기 주절거리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언제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을 말하고 제 멋에 취해버리는 것에 대한 욕망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일상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이 바로 홈페이지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언가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그 순간의 행복은 개인 홈페이지 꾸리는 사람들이 포기하기 힘든 행복일 것입니다. 각박한 세상에 잡글 몇 개와 사진 몇 장으로 위안을 삼아 힘을 낼 수 있다면 분명 싸게 먹히는 유희일 것입니다. 경영학적으로 비용-편익 분석을 해도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고요...^^


문자 텍스트에 중독된 저인 만큼 조금 지루한 이야기라도 놓치지 않고 모으고 풀어놓아 보겠습니다. 늘 한결같은 모습이되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바쁜 시간 쪼개서 이 누추한 구석에 들러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한다는 것은 즐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고 신경 쓰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익구닷컴을 처음 열었을 때의 환희와 설렘을 잊지 않겠습니다.


종종 들러주시고 방명록이나 댓글들도 좀 남겨주세요. 그게 힘이 됩니다. 벽에다 대고 독백을 늘어놓는 기분보다는 적당한 피드백이 있어야 저도 힘이 샘솟는답니다. 그럼 오늘도 재미난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그간 미뤄져왔던 익구방 정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서류 뭉치들 정리가 한창이다. 이것저것 모으기 좋아하는 익구의 수집벽을 방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뭐 하나 잘 못 버리는 성격 탓에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해서 1박 2일 동안에 말끔히 정리가 될지 의문이다. 아마 중랑구로 이사올 때나, 쓰레기 종량제 전면 시행 하루 전날의 대규모 정리에 맞먹는 작업이 될 듯 싶다.


이번 대정리 기간에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는 것들은 과감하게 폐기 처분하거나 이면지 활용을 하기로 결정했다. 대학 이후의 서류들도 상당하지만 그 이전 시절의 잡동사니들도 어마어마했다. 나중에 고등학교 전과목 선생님 할 것도 아니면서 각종 과목의 수업 자료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또한 대학에 들어와 무지막지하게 뽑았던 이런저런 강의 자료와 참고 자료들, 학생회 일꾼 시절의 문서들도 공해 수준이었다.


방 구석구석에 여기저기 들어서 있는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이번만큼은 확실히 버릴 것을 결심했다. 따져보면 종이 한 장 어느 하나 의미 없는 것이 없지만 방안에 꼭 쳐 박아 둬야만 그것이 계속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채우려는 욕심이 지나쳐 내 자신에게 주어진 자그마한 공간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라는 반성을 해봤다.


분명 덜어낸 만큼 또 채우겠지만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진실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미련과 집착을 덜어내고 산뜻함과 담박함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한없이 살찐 방의 기름기를 제거하는 일은 내 마음의 때를 벗겨내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을 잘 쓸 줄도 알아야 하지만 잘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은 사람보다는 일단 서류 뭉치들에게 먼저 적용해야할 판이다.^^;


이번 정리를 하면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틈틈이 해왔던 신문 스크랩 뭉치들도 대폭 정리할 것 같다. 어지간한 문서들은 거의 이면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아마 어린 시절 레고 장난감, 초등학교 일기장이나 중학교 몇몇 공책들, 고등학교 교과서 몇 권은 이번 구조조정의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겠지만 침대 밑 어둠 속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서류 정리가 얼추 끝나면 흉물스럽게 쌓아놓은 책들도 아름다운 가게 등을 통해 처분할 예정이다.


방만했던 지난날들이 베여나가고 있다. 황량함이 느낄 정도까지 정리를 한 뒤에 깨끗이 비워진 책상 위에 앉아 그간 읽지 않고 처박힌 책들을 꺼내어 상쾌하게 읽어 내려갈 계획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2004년 성탄절날 신촌에서 열린 고종석 팬클럽 오프모임에 참석했다. 고종석 선생님은 현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계신데 [오늘]란을 연재하시고, [이런생각]이라는 칼럼을 기고하신다. 고종석 선생님은 내게 개인주의를 당당히 말할 용기를 주셨고,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신 내 영혼의 스승이다. 언젠가 한 번 꼭 뵙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만나 뵐 수 있어서 크나큰 행운이었다. 성탄절에 오붓한 시간을 보냈을 그 어느 커플도 부럽지 않았었다.^^; 그 날 모임이 끝나고 고 선생님께 편지를 보냈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성탄절날 인사 드렸던 새우범생입니다^^]

안녕하세요. 고종석 선생님...

드디어 이렇게 전자우편 한 번 날려보게 되었네요. 저는 지난 성탄절에 있었던 고종석 팬클럽 오프 모임에 있었던 새우범생입니다. 지금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고요. 개인적으로 성탄절이 중요한 휴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을 뵐 수 있어서 제 짧은 생애에 최고의 성탄 선물이 되었습니다. 산타할아버지께서 정말 귀한 선물을 주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개인주의를 당당히 말할 용기를 주셨고,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신 제 영혼의 스승이십니다. 사람 앞에서 막상 그 사람 칭찬을 못하는 성격 탓에 이 말씀을 못 드렸네요. 선생님께서 이런 치사(致謝)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아 더 이상의 낯간지러운 말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개인주의나 자유라는 소재로 이런저런 말씀을 드려보고 싶네요. 요즘 개인주의의 물결이 대학가를 휩쓸고 있다고들 합니다. 저 또한 진짜 개인주의의 물결이라면 더 거세져서 한국 사회에 너무 깊게 찌들은 집단주의와 획일적 문화를 걷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의미 있는 개인들이 부딪힐 때 우리 사회가 좀 더 빛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마다 개성, 개성하지만 획일화된 개인, 행복마저 유니폼이 되어버린 개인들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개인주의자의 모습은 집단에 피신하지 않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자세, 나의 생각과 판단에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 남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진정한 개인주의자라면 타인과의 차이를 존중하지만 그것이 차별이 되는 것을 반대해야겠고요. 이는 모든 사람이 개성의 향연을 누리면서도 그런 개성들 사이에 현저하게 다른 가치가 부여되지 않도록 하는 세상이겠지요.


미국의 철학가, 소설가인 에인 랜드의 “난 결코 다른 사람을 위해 살거나 다른 사람더러 나를 위해 살아달라고 부탁하지 않겠다”는 말에 무릎을 쳤습니다. 저 또한 제 자신이 이기적 효용함수를 가졌으며, 이타주의적 희생 모델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집단의 이익에 복무하라는 전체주의적 억압에 불편함을 느끼고, 집단의 이름으로 저나 다른 개인의 이익이 심하게 훼손될 때 언짢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싶습니다.


끝으로 중요한 것은 소수파가 되었을 때의 불편함과 두려움을 다수파가 되어서도 잃지 않는 양심적 기억력일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다수파일수 없다면 저는 언제나 소수파가 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내세우는 똘레랑스는 일종의 보험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남과 다른 것에 마음을 열어야하는 보험료는 그리 싼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험료의 부담쯤이야 마음 편히 소수파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보험금의 혜택에 비추어볼 때 확실히 남는 장사로 보입니다.^^: 이처럼 개인주의는 고립주의가 아니며, 궁극적 소수로서의 다른 개인과의 연대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대략 이런 생각들을 정립할 수 있는 데까지는 선생님의 영향력이 지대했습니다. 제가 괜히 영혼의 스승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정말 진짜배기 개인주의자가 되기는 너무 어렵네요. 정말 의미 있는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고독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용기도 제법 있어야 하겠고, 타인과 열린 마음으로 교류할 자세도 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지난 학기 과제물 작성을 위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때 과제물을 하면서 선생님 글의 다음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기독교 역사나 마르크시즘 역사는 사랑의 이름으로 이룩한 증오의 역사다. 그들이 내건 사랑이 그리 크지만 않았더라도, 그들이 역사 속에서 실천한 증오의 크기가 그렇게 엄청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나 마르크시즘을 포함한 모든 유토피아니즘이 그려온 유토피아는 먼 미래나 과거, 또는 외딴 섬에 설정돼 있다. 그들이 그리는 유토피아가 지금 이곳과는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는 사랑, 우애는 무책임하게 클 수 있었고, 그 반동으로 그들이 실천한 증오도 덩달아 그리 클 수 있었다.

- 고종석, [자유의 무늬](2002), 개마고원 刊, 233~234쪽


지적 쾌락을 추구하는 풍족한 유토피아 사회의 주된 특징은 획일성이었습니다. 2년에 한 번씩 똑같은 모양/색의 옷을 주기 때문에 의복의 자유도 없고, 이혼도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여행 허가증을 일일이 끊어야 해서 이동의 자유도 없었고 말입니다. 특히 각 가정에서의 식사보다는 공공 장소에서의 공동 식사를 하는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모어는 그럴듯하게 묘사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도덕적인 설교를 듣고, 연장자들의 평가를 상시적으로 받아야 하는 숨막히는 식탁 풍경이 그려졌습니다. 물론 종교적 관용이나 교육의 평등 같은 좋은 부분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통제사회라고 느껴졌습니다. 라파엘이 그렸던 유토피아는 엄격한 통제 메커니즘이 24시간 돌아가야지 겨우 실행되는 초라한 몰골이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유토피아 사회는 사랑이 크기 때문에 더욱 엄격하게 감시하고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봅니다. 절대선의 경지에서의 이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유토피아 시민들을 안심하게 만들고, 반대에 대한 철저한 탄압이 유토피아 사회를 지탱하는 힘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과제물을 쓰면서 유토피아는 개인의 행복을 최대화시켜줄 것처럼 보이지만, 그 행복은 집단의 위계질서 앞에 순응하고, 전체주의적 생활양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혹평을 했습니다. 결국 사적 영역을 말소시키고 거대한 집단 속에서만 안온함을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게거품 물고 손가락질했답니다. 어쩌면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와 종이 한 장의 차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토피아의 열정이 지나쳐서 개인의 공간을 소멸 당하고, 순응 속에서만 자유를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런 디스토피아도 없겠지요.


선생님께서도 많이 지적하셨지만 청결과 순수에 대한 강박과 조급증 때문에 자신의 네모 반듯한 기준에 들어맞게 하기 위해 여분을 덜어내고, 부족함을 억지로 채우는 무리수를 두는 경우를 역사상 많이 보아 왔습니다. 십자군 전쟁도 이교도의 손아귀에서 성지를 수복하자는 거룩한 사명을 띠고 시작되었고, 마오쩌둥의 문화혁명도 혁명사상 고취를 통해 인민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약속했으며,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 또한 이라크에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라고 강변하고 있으니까요.


유토피아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열망에서 출발하고, 이를 위한 노력과 욕망이 인류를 진보시킨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유토피아 사상은 여전히 살맛나는 세상을 향한 의지의 표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유토피아로 치장한 전체주의는 더 이상 등장해서는 안되는 비극의 씨앗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동질성으로 무장하기보다는 다양성으로 흩어지는 사회를 건설해야겠지요. 특히 사회적, 문화적 소수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진짜 유토피아로 가는 길목일 것입니다.


요즘 들어 추상적인 이상에 대한 합의는 참 어렵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특히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절대선과 절대악이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고, 선악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일쑤입니다. 미국의 네오콘 같은 사명감에 불타는 무식쟁이들만 있다면야 옥석을 가리기 쉽겠지만, 대개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맞서게 마련이니까요. 가령 신자유주의 논쟁만 해도 WTO는 전세계 민중을 착취하는 미국식 세계화에 불과하다는 입장과 WTO가 실현할 자유무역과 다자통상체제로 말미암은 경제적 다극화가 우리가 살길이라는 입장과의 간극은 너무나 벌어져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악의 화신도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만병통치약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이처럼 대립하는 사회 개혁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숙고된 균형감각이 절실합니다. 제 아이디 새우범생은 이렇게 상반되는 두 상반되는 고래 같은 주장들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새우등 터져 가면서 배우자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부지런히 새우등이 터지다보면 가끔 콩고물도 떨어지고 그러겠지라는 희망을 안고 오늘도 싸움 구경에 눈이 둥그래지는 수 밖에요.^^;


자유는 본질적으로 차이를 낳고, 이 차이에는 여러 종류의 불평등이 포함됩니다. 진정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라면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을 막고, 불평등이 계속 고착화되는 것에도 고개를 가로 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상호 존중이라는 가치를 미래의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희생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숙고된 균형감각 위에 점진적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해 나갈 때 유토피아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사실 이 대목은 칼 포퍼의 점진적 사회공학을 수입했답니다^^;).


여하간 제 생각을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티격태격하다가 생채기 나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고 싶습니다. 또한 제 사상과 양심에 비춘 편들기하지 않는 편파적인 놈이 되고 싶습니다. 가끔은 오해받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쳐야할지도 모르지만,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상도덕을 준수해가며 열심히 살다보면 공자의 말씀대로 덕불고 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 실현될 날이 오겠지요. “우리는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는 사르트르 말을 늘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이 저주가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하지 않는 녀석이 되는 것이 제가 꿈꾸는 저의 모습입니다.


그냥 선생님의 글들에서 깨우쳤던 내용들을 두서 없이 늘어 놓아봤습니다. 너무 횡설수설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네요.^^; 경영학도로서 손해보는 장사를 싫어하는 만큼, 제가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아마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시급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배우고 생각해야 하는데 이 게으른 몸뚱이 때문에 근심만 한가득입니다.^^;


평소 흠모하고 사숙하던 선생님을 뵐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더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는데... 쑥스러움이 많은 성격이라 다 못한 것 같아 아쉽네요. 기회가 되면 또 뵙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선생님 글 잘 챙겨 읽으며 치열하게, 자유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무쪼록 훈훈한 세밑 되시고 늘 건승, 건필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다시금 만나 뵙게 되어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의 야합을 통해 4대 개혁입법 처리를 물거품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믿었는데, 얼마나 울었는데, 어떻게 사랑했는데, 열린우리당 당신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여기저기 울분을 토하고 분노를 표하는 지지자들이 보이지 않는가, 들리지 않는가? 안으로는 우리당의 모자란 점을 다독거려 주고, 밖으로는 반대자들의 손가락질 받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우리당 지지자들에게 기어코 피와 땀과 눈물을 쥐어 짜낼 참인가?


우리당에 한 표를 얹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많은 자유주의세력, 개혁세력, 온건보수세력들은 고작 한나라당에 굴복하는 꼴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당을 과반수 1당으로 만들어준 것은 이 땅에 극우파를 썩혀 거름으로 쓰고 제대로 된 자유를 심어 개혁을 꽃피우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얼마나 굽실거리고 생채기 나야했단 말인가. 당신들이 떵떵거리고 거들먹거릴 수 있는 것은 다 지지자들이 허리 아프게 굽히고, 손바닥 열나게 비비고, 발바닥 저리게 뛰어다닌 덕분임을 잊지 마라.


탄핵 사태 때문에 엉겁결에 뽑힌 인간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자유주의 개혁세력에 쓸만한 인재가 아무리 없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국가보안법 폐지조차 이렇게 미적거릴지 몰랐다. 수구세력과 극우파들이 저렇게 난리를 치는 것은 국가보안법이 저들을 지켜주는 심리적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저들의 방벽이 아무리 튼튼하더라도 인권의 화살을 날리고, 자유의 창으로 부수고 함락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힘겹게 이겼나? 얼마 만에 찾아온 기회이고, 이번을 놓치면 다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믿음도 산산이 부서질 때가 오고, 눈물도 마를 때가 오며, 사랑도 식을 때가 오게 마련이다. 당신들이 어려울 때 함께 눈물 흘리고 곁에서 힘이 되었던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마음이 떠나고 있다. 욕지기가 나오고 있다. 믿음의 자리에 실망이, 슬픔보다는 성냄이, 사랑 대신 증오가 싹 트고 있다.


한나라당과 치열하게 토론하라. 하지만 끝내 의견을 좁히지 못할 때는 당당히 표결 처리하라. 파시스트의 눈치보다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라. 수구세력을 걱정하기보다는 실적이 엉망이라며 아우성인 투자자들을 걱정해라. 극우파와 어깨동무하기보다는 자유에 목마른 국민의 손을 잡아줘라. 우리당에 꿈을 투자한 많은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앞장서 당신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킬 것이다. 저들이 결사적으로 나온다면 당신들도 모든 것을 걸고 맞서라. 이제 당신들이 코피 터지게 싸울 때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국가보안법 폐지안 법사위 상정조차 결사적으로 저지하던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이 북한 노동당에 가입해 간첩으로 활동했다며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한나라당은 저희들 스스로가 국가보안법이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사상의 자유와 인권의 엄숙함 앞에 타협이란 없다.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개혁입법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야 한다.

익구는 이번 사건을 길이 기억하기 위한 기념시를 발표했다. 패러디 대상이 된 시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발표한 친일문인명단에 들어간 사람 중에서 골라 노천명의 [사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당첨됐다. 야만스러운 국가보안법과 그 법을 추종하는 무리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시제가 좋지 않은 관계로 문학성은 그리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 [憂弱]


[늑대]

상판때기가 두꺼워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불안한 편 말이 많구나.
국(國)이 부끄러운 너는
무척 무참한 족속이었나 보다.

핏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잊었던 고문을 생각해 내고는
주체할 수 없는 향수에
흐린 동태눈깔을 하고
바로 옆 빨갱이를 째려본다.



[국보법 옆에서]

한 조각의 국보법을 지키기 위해
박정희부터 한나라당은
그렇게 가뒀나 보다.

한 조각의 국보법을 지키기 위해
사상의 자유는 철창 속에서
또 그렇게 갇혔나 보다.

아프고 목마름에 가슴 후비던
생생한 국가폭력의 뒤안길에서
아직도 살아서 헌법 위에 선
승냥이 똥같이 생긴 법이여.

빠알간 네 조문이 적용되려고
대낮엔 인권이 저리 내동댕이쳐지고
내게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나 보다.
Posted by 익구
:
(이 글은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요구됩니다. 벙커에 마린이 없는 광경이 우습지 않은 분, 오버로드 한 부대로 공격을 떠났다는 에피소드에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시는 분들은 이해하기 힘드실 겁니다^^;)

가끔은 대체 무슨 재미로 사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컴퓨터 게임들은 거의 못하고, 잘하거나 좋아하는 운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래방에서 한 곡 뽑는 흥겨움을 즐길 줄도 모르고, 영화, 콘서트, 문화행사 등을 크게 즐기는 것도 아니며, 당구, 카드 같은 잡기에도 젬병이다. 이렇다 보니 사람 만나 노는 것의 대부분이 마실 거리 나누며 담소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궁궐 답사 같은 것도 다녀봤으나 번번이 파트너 구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대중성 확보에 아무리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들 사교 수단이 변변치 않으니 진전이 있을 리가 없다. 고작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책이나 붙잡고 있는 녀석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퍼진 것도 도무지 나머지 활동들이 전혀 안 보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일 것이다. 물론 나는 삼국지 게임을 열성적으로 즐기기도 했고, 만화책도 어지간히 읽었으며, 체스는 둘 줄 안다며 같잖은 변명을 둘러 대보겠지만 별무신통이다. 게다가 담소를 즐긴다면서 적당히 맞장구 치기보다는 괜히 시비 걸고 어줍잖은 독설을 내뱉어 분위기 깨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렇다 보니 무슨 재미로 나 같은 놈과 놀아줄까라는 역지사지도 충분히 해볼 수 있다.^^;


내가 중3 때 PC방이 등장해서 지반을 꾸준히 넓혀가더니 1시간에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떨어지자 급속도로 확산이 되었다. 단연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의 인기는 PC방의 전파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 남학우들의 태반은 틈만 나면 창동 근처 PC방을 애용하며 스타로 울고 웃었다. 그 나이 또래가 대개 그랬듯이 남학우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대학이나 공부 관련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스타에 관한 전략과 순위 싸움, 누구누구가 사귄다고 하던 연애담이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두 뜨거운 감자를 거의 거들 떠도 보지 않았다.


고등학교 학기초의 어수선함도 잦아들었지만 남학우들의 스타 사랑은 식지 않고 유지되었다. 2학기 들어 강원도 설악산 등지로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 안에서 남학우들은 차창 밖의 군부대를 지나치며 벙커가 어쩌니, 마린이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박장대소할 때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야말로 소외감이란 것을 절실히 체험했다고나 할까. 결국 그 소외감을 극복하고 대중성을 확보하겠다는 일념 하에 11월 어느 날 PC방 무리에 섞여 낯선 곳으로 향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의 모범생적 감수성 오락실을 꺼리는 것에 모자라 거의 죄악시했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는 투입구가 마치 지옥의 문인 것처럼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 내게는 크나큰 도전이었던 셈이다.


사실 PC방행이라는 거사를 치르기 전에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해놨다. CD를 구해 게임을 집 컴퓨터에 깔아서 기초적인 것을 미리 익혀둔 것이다. 매뉴얼을 보며 각 유닛과 건물의 특징들을 외우고 익혔다. 책을 보며 게임을 습득하는 나를 보며 대다수 친구들이 세상에 게임은 하면서 배우는 거라며 애정 어린 충고를 해주었지만 일단 내 식대로 했다. 여하간 나름의 준비를 갖추고 PC방의 한자리를 꿰차고 앉아 전투 준비를 했다. 어디서 주워들었던지 처음 하는 사람은 프로토스가 괜찮다는 말에 프로토스를 선택해서 첫 대전을 펼쳤다. 아마 4대 4 팀플레이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전력이 0인 내가 끼어 들어 균형을 맞추려면 4대 4 팀플 정도는 해야했다.


(당시에 대규모 인원이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심할 때는 4대 4 팀플을 두 개 동시에 진행하고도 사람이 남아 기다리면서 교체하기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남학우가 두 반 통틀어 45명 남짓인데 그 절반이 한 PC방에서 하나의 게임을 주고받고 하는 진풍경이 한 동안 벌어졌던 것이다. 스타의 광풍이 조금 사그라지고서야 참전용사(?)들이 10여명 전후로 줄어들어 나중에는 4대 4보다는 3대 3이나 2대 2 정도의 팀플을 즐기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주워들은 빌드오더를 구사해서 일곱 번째 프로브로 파일런을 짓고 아홉 번째 프로브로 게이트웨이를 지어 마침내 질럿을 한 기 생산해냈을 때 왠지 모를 흥분에 휩싸였던 것이 생생하다. 아 드디어 공격유닛이 나왔으니 나도 공격을 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흐뭇했던 것 같다. 질럿이 차곡차곡 쌓였고 저글링 몇 마리가 정탐을 왔으나 질럿으로 가볍게 해치우니 의기양양해졌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무탈리스크 몇 마리가 내 진영으로 날라 오는 것이 아닌가. 나름대로 공부한다고는 했는데 질럿은 대공능력이 없다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결국 프로브는 몰살당하고 넥서스가 파괴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 첫 참전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대공능력의 부재라는 패인 분석을 통해 대공 능력을 위해 내가 꺼내든 방안은 포톤캐논이었다. 드래군을 뽑으려면 가스도 채취하는 등의 번거러움이 있다보니 초심자가 취약한 초반 러쉬를 막기 위해서도 포톤캐논은 유효한 수단이었다. 캐논에 맛들인 나는 그 이후 포톤캐논 꽃밭을 즐겨 썼는데 상대편에는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깍두기 신세이니 불쌍해서 차마 초반에 쳐들어가지는 못하겠는데 시간만 좀 주면 포톤캐논 꽃밭을 만들어서 괴롭히니 계륵인 셈이다. 특히 무한맵에서는 자원 걱정이 없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을 틈타 중앙에 포톤캐논 꽃밭을 가꾸어 놓으니 얼마나 얄밉겠는가.^^


나의 이 너무 단조롭고 예측 가능한 게임 진행을 바꿔보라는 많은 권유에도 불구하고 나의 포톤캐논 사랑은 변할 줄 몰랐다. 포톤캐논으로 충분히 방어하고 질럿, 드래군만 열심히 뽑아 아군의 병력에 보탬이 되는 것 정도로 2년여를 버텼다. 한 번은 내 자신도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를 연상시키는 똑같은 플레이에 지겨워진 나머지 전략을 바꿔 다크템플러 기습을 했는데 대성공을 거둬 상대편 일꾼들을 상당수 잡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아마 그 때가 스타를 하면서 거의 유일하게 칭찬을 들었던 것 같다. 대개는 포톤캐논 그만 좀 쓰라고 질타를 받았으니 말이다.^^;


가끔 기회가 되면 스타를 했지만 내 스타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고 나 또한 스타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유한맵에서는 멀티를 해야하는데 타이밍 잡아 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단축키를 별로 못 익혀 마우스로만 사용하려니 한계에 부딪혔다. 게다가 유닛 컨트롤 같은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인공지능을 신뢰하는 자유방임주의를 펼쳤으니 잘 될 리가 없다. 자신이 못하는 것을 재미나게 오래도록 하기란 힘든 것이 인지상정이라. 대학에 와서는 어쩌다가 팀플을 몇 번 했을 뿐 스타를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대신 다른 사교 수단으로 위닝을 배웠고, 고스톱을 한 번 배워 보고 싶어서 스스로 세이 고스톱에 빠져보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는 PC방에서 스타를 한 것이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내 손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손에서는 멀어진 스타가 최근에 눈에서는 떠나지 않는다. 지난 3월 중랑구 묵동으로 이사온 집에 케이블 방송 몇 개가 나오는데 그 중에 온게임넷이 있다. 여름방학 끝날 무렵 시간 때우기용으로 몇 번 봤는데 캐스터와 해설자들의 구수한 입담과 프로게이머들의 기발한 전략과 재치 있는 컨트롤을 접하면서 재미를 느꼈다. 스타리그, 프로리그, 듀얼 토너먼트, 챌린지리그 등의 대회들이 쉴새 없이 이어지고 희비가 엇갈리는 프로게이머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한 친구는 스타가 이제는 어른들의 바둑이나 장기처럼 부담 없이 즐기는 대중적 놀이가 되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화려한 그래픽과 매혹적인 스토리로 자극하는 게임들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의 위세가 이처럼 대단한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나의 스타 중계방송 애청이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무척 흥겨웠던 킬링타임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처음 스타를 배우려고 했던 대중성 확보를 위한 사교 수단으로서의 목적은 거의 실패한 셈이지만 쓸데없는 비용 지출이라서 아깝지는 않다. 가끔 아직 집에 남아 있는 스타 미션 게임을 치트키 쳐서 격파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SPORTS라고 불리는 스타가 우민화 정책의 일환인 3S(스포츠, 스크린, 섹스)의 그늘을 답습할지도 모른다. 지난 이라크 침략 전쟁에서 탱크를 위에서 진군 속도를 과시하던 종군 기자의 모습에서 고작 시즈 탱크를 타고 가는 테란의 병사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현실세계의 다양한 이슈들에 침묵하지 않고, 도피하지 않는다면 게임은 게임으로 즐기면 그만이다. 예전에는 소설 읽기를 즐기던 내가 요즘에는 문학작품을 도통 손에 못 잡고 있다. 사진 찍히는 것을 피하던 내가 요즘은 사진광 소리를 듣는다. 온게임넷 애청자로서 틈만 나면 채널을 그 쪽에 고정시키는 나를 주위 친구들은 놀란 듯이 바라본다. 인생은 무상하고, 무상한 덕분에 사람은 늘 변한다. 그 재미에 이 무료한 삶이 그나마 살아 볼만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세 가지 유형의 우정을 있다고 말했다. 첫째로 서로를 사귀는데서 비롯되는 즐거움에 바탕을 둔 쾌락을 위한 우정, 둘째로 교제의 유용성에서 비롯되는 우정, 셋째로 서로의 존경에서 비롯되는 우정인 덕성을 위한 우정이 그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세 번째 우정만이 참된 우정으로서 가장 가치 있다고 말하고, 어디선가는 좋은 우정을 위해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원전을 확인해보지 않아서 어느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느 책에서 언뜻 봤을 때는 앞의 해석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뒤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얼굴 보며 담소 나누는 것이 즐거운 사람과 사귈수록 이득이 있고, 배우는 점도 많아 유익한 사람과 서로가 존경하기 때문에 경애하며 만나는 사람을 두부 자르듯이 나눌 수 없는 것 같다. 결국 지인들과 사귈 때 이 세 가지 우정이 다 깃들어 있어야 만남마다 설레고 흥겨울 수 있을 것이다. 한바탕 술자리가 지나면 허무해지고 다음날 숙취가 가시자마자 전날 밤의 죽네 마네 한 이야기도 치기로 취급된다. 땀흘린 밤샘 작업이 끝나면 흩어지게 되고 다음날 새로운 동업자를 찾아 새로운 계약을 맺기 위해 헤매야 한다. 상호간의 존경만 가득하면 무미건조할 따름이고 다음날 살 궁리를 하다 보면 알맹이 없는 한담은 잊혀지고 번드르르한 칭찬도 퇴색한다.


스타를 하며 우정을 키워나갔던 상당수 고등학교 친구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이 세 가지 우정의 유형은 특히 어느 한 쪽이 더 강할 수는 있어도 어느 하나 빠진다면 관계는 지속되기 힘들다. 내키지 않았던 술자리에서 제법 진지한 이야기로 인생 고민과 세상 한탄을 나눌 수도 있고, 일 때문에 만난 사람에게서 의외의 매력을 느끼고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수도 있다. 세상에 무조건 안 되는 일이란 거의 없다. 스타에 영원히 관심 없을 줄 알았던 내가 스타 중계 방송에 푹 빠져 있듯이 세상만사 함부로 가름하고 제한해서는 안되겠다. 사람을 만날 때도 편견을 버리고 열린 자세로 대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함부로 부정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겠다. 끝으로 더 이상 재미없는 놈으로 낙인찍히기 전에 나란 놈에게도 무언가 유머러스한 구석이 있음을, 나랑 더불어 즐길 거리가 있음을 개발하고 소개해야겠다. - [憂弱]


추신 - 요즘 프로토스 유저들이 죽을 쑤고 있는 것 같다. 엄연히 프로토스 유저인 나로서는 프로토스의 선전을 기원한다. 엄혹한 시절이 끝나고 찾아드는 서광은 아름다울 것이다.
Posted by 익구
:

경짱 퇴임 기념 인터뷰

잡록 2004. 12. 7. 01:15 |
3년 간의 학생회 일꾼 생활을 마치고 평민(?)으로 돌아온 익구와 인터뷰했다. 인터뷰 씩이나 해주는 곳이 있을리 없으니 주특기인 혼자 묻고 답하기로 진행했다. 그의 솔직한 심정 토로와 자화자찬을 감상해보자.^^ 스크롤의 압박이 좀 있으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지난 3년 간 고생 많으셨다. 시원섭섭하겠다.

- 시원섭섭하기보다는 그냥 시원할 뿐이다. 3년 간 학생회 일꾼으로써 해볼 수 있는 일, 겪어 볼만한 것들 다 해봐서 그런지 몰라도 더 이상의 미련이 없다.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시원한 기분만 압도할 뿐이다.^^


경영대 학생회장(이하 경짱)이 되기 전 학생회 생활을 정리한다면?

- 2002년 1월경 수시 합격생을 위한 오티에 참석했고, 그 때 35대 총학생회 홍보 시간이 있었다. 그 때 설문조사를 했을 때 학생회 일꾼 의사가 있다고 답했고 추후에 연락이 온 것이 인연이 되어 여기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입학하기도 전에 35대 총학생회 정책국원이 되었으니 지금 돌아보면 참 기막힌 노릇이다.

  총학생회 일꾼이었던 02학번은 나 이외에도 많았다. 하지만 3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있었던 새내기는 나 혼자였다. 나는 35대 총학생회 기획국 차장이라는 제법 그럴 듯한 말단 일꾼으로 새내기로서의 한해를 살았다. 비록 잡일꾼이었지만 총학생회 살림이 꾸려지는 과정들을 새내기치고는 제법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35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고대 최초의 비운동권 총학생회라는 명칭에 걸맞게(?) 이미 거의 대부분의 단과대를 장악한 운동권 학생회들과는 맨날 소모적 신경전이 벌어졌다. 사소한 차이를 메우지 못하고 비생산적인 다툼이 나중에는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아마도 그 때의 경험 덕분에 내 인내력이 많이 신장되었을 것이다.^^ 막내 입장이었고 치열하게 투신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임기를 끝까지 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뭐든지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 두지 않는 성격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총학생회 일꾼 한해 동안 너무 지긋지긋하게 시달렸기 때문에 정말 딱 잊고 새롭게 대학생활을 꾸려나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하셨던 장정우 형께서 36대 경영대 학생회장 선거를 나가셨다. 더 이상 학생회 바닥에 기웃거리지 않기로 했었는데 학생회 조직이 취약한 경영대 사정을 잘 아는 터라 무슨 측은지심이 들었던지 결국 돕기로 했다. 36대 경영대 학생회 기획국장 일은 2003 새터 준비나 매 학기 사물함 배분이 좀 빡세서 그랬지 총학생회 일꾼 생활의 1/10의 힘만 들이고 한해를 보낸 것 같다.


37대 경짱 출마는 어떻게 결심한 것인가?

- 사실 내 꿈은 단과대 학생회 사무국장이었다.^^; 농담 삼아 내 궁극적 장래 희망이 국무총리이듯이 말이다.^^ 그런데 36대 경짱님께서는 내 바람과는 달리 내게 사무국장을 시켜주시기 않았다. 사실 초기에 이게 은근히 불만이라 학생회 일꾼 그만두려고 했었다. 그런데 일단 시작하면 쉽게 그만 못 두는 성격 탓에 결국 한 해 꼬박 다 채운 것이다. 경짱의 꿈보다는 경영대 사무국장 자리가 더 탐났고,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동창회 건설이나 경영 E반 학생회 건설 등에 더 뜻이 있었지만 모두 다 지지부진했다. 그 와중에 고등학교 친구 중에 청원, 효석 두 친구가 학생회장 출마를 사실상 부추기기도 했다.^^;

  2학기 들어서 학생회 일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경영대 학생회 일이 크게 많은 것은 아니라서 부담 가지지 않고 한해 더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때 당시 학생회장으로 나올 만한 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학생회 활동이 취약한 경영대라고 해도 학생회 건설마저 무산되어서는 안되겠다는 학생회주의자(?)의 집착이 발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단독선거도 이미 예상한 것이어서 부담 없이 출마하게 됐다. 애초에 작은 학생회를 공언하고, 현상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기 때문에 욕심부릴 것도 없었다. 어쩌다가 팔자에도 없는 직선대표를 하게 된 것 같다.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이 어쩌다가 나 같이 무능한 놈이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어줬지 뭔가.^^;


경짱으로서 지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가장 아쉬웠던 일이 있다면?

- 아무래도 2004 새터가 기억난다. 아쉬웠던 점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고 그 때 고생했던 많은 새터준비위원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물론 사발식 시주 네 번 째 반에서 정신을 잃어서 다섯 개반 돌지 못했던 대형 참사도 빼놓을 수는 없다.^^; 그간 멸실된 경영대 학생회칙도 제정했으며, 미약하기는 했지만 경영대 단과대운영위원회나 경영대 학생대표자회의도 복원하는 등의 안살림을 챙긴 것도 잘했다고 자평한다. 회칙개정을 위한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때 투표율 50%가 넘어야 개표할 수 있다는 규정에 대한 삭제 발의도 당연시 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는 점에서 무척 뜻깊은 행위였다. 또한 각종 행사 때마다 다섯 개 반 뒤풀이 번갈아 가며 들렀는데 이 또한 소중한 추억이다. 슬픈 것은 잠깐씩 짬을 내어 들른 것이다 보니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고 막상 임기 끝나고 나니 좀 더 친해져 둘 걸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생회 일하면서 사람이라도 남기지 않으면 허무해서 어쩌겠는가?^^ 여하간 나를 도와줬던 분들, 나와 놀아줬던 분들과 앞으로도 좋은 관계 맺어간다면 경짱은 과거의 추억이기보다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아쉬웠던 점은 학생회 회의나 사업들을 잘 알리지 못한 것이다. “열려있고 쉽고 낮은 경영대 학생회”라는 모토를 사용했는데 그에 부응하지 못하고 닫혀있고 어렵고 높은 학생회가 되지는 않았나 반성이 된다. 회의 진행 과정이나 사업계획 같은 것을 좀 더 잘 알려서 관심을 유발했어야 했는데 막상 회의 소집해서 진행하는 것만도 벅차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실 단과대 학생회 진행 사항을 일일이 기록할 영양가는 그다지 없는 편이다. 중앙운영위원회 같은 큰 회의도 회의록 작성이 제대로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인적인 욕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서기를 좀 더 일찍 뽑아 활용했더라면 하는 후회는 여전히 남는다.


경영대 학생회 운영은 어떤 식으로 했나?

- 보다시피 나란 녀석이 풍채 당당한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댈 것은 오로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밖에 없었다. 이것저것 처음부터 이야기 나누다 보니 회의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었고 언젠가는 한 번 “어쩜 그렇게 쉬지 않고 계속 말할 수가 있죠?”라는 구박도 들었다.^^; 반일꾼들 상당수는 함께 토론해서 무언가를 정하기보다는 내가 딱딱 정해서 공지해주는 것을 바라는 눈치였다. 어지간한 사안들은 토론을 유도해서 좀 더 숙고해서 정하려는 내 방식이 어리버리, 우유부단하다고 질타 받기도 했다. 또 일이 지지부진할 때도 마냥 싱글벙글하다 보니 “화를 내본 적이 있어요?”는 진지한(?) 질문까지 받기도 했다.

  내가 비록 모질지 못해서 조금 강단이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한해 동안 숱한 회의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 가면서 실무적인 것을 비교적 깔끔하게 처리했다고 자부한다. 앞으로도 어떤 조직의 일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나는 통솔력 있는 사람도 아니고, 번뜩이는 재주를 지닌 사람도 아니지만 소심함에서 우러나오는 꼼꼼함과 성실함으로, 어수룩함에서 묻어 나오는 진솔함과 편안함으로 꾸려나갈 것이다.

  나는 도덕경 제 8장의 첫 구절인 '上善若水(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의 정신으로 학생회를 꾸려나가기로 약속했다. 자기를 비우고, 조용하고 성실하게, 오직 섬기는 자세로 시의 적절하게 움직이는 물, 어느 누구와도 다투는 일 없이 자기를 끝까지 낮추는 물의 자세를 얼마나 실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이 더러운 것을 씻어 준다는 것은 남의 허물을 대신 떠맡는다는 뜻이다. 부디 지난 한해 경영대 학생회의 모든 실수와 실책은 직간접적으로 다 내 책임이다.


상선약수는 익숙한 구호다.

- 사실 익구 전 생애를 통 털어 유지될 삶의 양식이라고나 할까. 뭐 지적하셨다시피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 때도 상선약수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당시 중국어과 후보 단일화만 없었다면 상선약수를 좀 더 구체화되어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쉽다. 이제사 하는 말이지만 상선약수 하나만 연설에 제대로 반영했다면 3등은 가볍게 했을 것이다(참고로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 당시 1위 500여표, 2위 300여표, 3위 120여표, 4위 110여표, 5위 딱 100표, 6위 60여표 득표했다. 후보 단일화를 통해 연설도 대충하는 등 선거 관련 행동은 일체 하지 않았던 익구는 100표 득표로 5등 했다). 나는 도덕경에 나오는 물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애쓰거나 남들 위에서 군림하려고 집착하기보다는 그저 밑에서 묵묵히 섬기는 자세를 갖추고 싶다. 상선약수는 앞으로도 내 단골 구호가 될 것이다.


학생회 집행부 이야기 좀 해달라.

- 우리 경영대는 학생회 인력풀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부터 고민한 것이 일꾼을 모집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퇴임 즈음해서는 10명의 집행부를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일이 있을 때만 모여서 일을 돕고는 흩어져버리다 보니까 농담 삼아 007 첩보 활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내 임기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준 사무국장 재희, 내 꾀임(?)에 넘어가 입대도 한참 늦추고 나를 수행하느라 고생 많았던 기획국장 현수, 나랑 잘 놀아주는 다정다감한 교육국장 미선, 성실한 문화복지국장 회선, 글씨 잘 쓰는 홍보국장 윤원, 궂은 일도 마다치 않는 정책국장 호영, 든든한 인사관리국장 화영, 재치만점의 대외교류국장 철운, 촌철살인의 서기 겸 수석보좌관 은기, 꼼꼼한 편집국장 효진이까지 모두들 참 고맙다. 다들 마음에 쏙 드는 후배들이다. 좀 더 잘해주고 싶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우리의 임기는 끝났지만 우리의 교류는 이제 시작이다.


비운동권을 자처했는데 학생 운동은 어떻게 생각하나?

- 열심히 운동권을 비판하고 있지만, 부당한 매도에는 방어를 해주는 편이다. 오늘날의 학생 운동이 상당부분 그들 스스로의 잘못과 실책으로 쇠락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배우는 학생들이며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비록 나와는 정치적 라이벌이지만 그네들이 불신의 눈초리를 받는 것은 가슴 아프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운동을 하는 학우들의 길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완전히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국사회가 학생운동에게 진 빚은 여전히 지대하다.

  학생회 일꾼들의 땀과 눈물을 너무 무겁게 여길 필요도 없지만 너무 가볍게 여기지도 말아줬으면 한다. 살맛 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일꾼들에게 정파와 이해를 떠나 따스한 관심 부탁한다. 누구나 결점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 결점을 채워나가려는 노력을 보시고 애정 어린 비판을 아끼지 말아주시기 바란다. 건실한 경쟁 속에서 참된 진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학생회 일꾼들이 명심할 것은 이제 학생회 조직으로 대동단결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전직 학생회장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앞으로 학우들이 이렇게 학생회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없어질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학부 학생회도 대학원 학생회 정도의 위상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38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연장투표가 진행되자 전례 없이 많은 학우들께서 반발하셨다. 이제 학우들은 아무리 선의가 충만한 것이라고 해도 정치적 동원이라는 생각이 들면 결연히 반대하실 것이다. 학우들의 의사와 괴리되어 대리인 비용을 높이는 것을 이제 용납하지 않는 추세이다. 학생회 일꾼들은 대의 민주주의제 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대리인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참 힘든 과제다.


경짱을 하면서 받았던 오해가 있다면?

- 많은 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있느냐 묻고 앞으로 그 쪽 방면에서 일할 것이냐고 물었다. 사실 이건 오해가 아니라 그냥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발언도 많이 하고 관심도 많은 편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정치가 잘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눈길을 보낼 것이다. 실제로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과 정치 세력에게 도움을 주고도 싶다. 자유주의를 참칭하는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이 아닌 진짜 자유주의자가 이 땅의 개혁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정치란 국회의사당과 청와대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성격의 조직의 의사결정 속에서 백가쟁명 백화제방하는 생활정치가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말하고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에 더 관심이 있다.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지만 국가보안법은 얼른 폐지해야 한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이 대목에서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으신 점이 있다면 나는 정치 분야만 관심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명색이 경영학도인데 그 쪽 분야도 관심이 지대하며, 역사, 철학 같은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나는 배우는 학생이고 이것저것 많이 익혀서 써먹고 싶다.

  아참 그리고 항간에 내가 학점 4.0이 넘는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어서 해명해야겠다. 지난 5학기 평점평균은 3.8이니 오해들 마시라. 물론 나는 학생의 본분은 어디까지나 학업이고, 학업에 소홀해가면서까지 다른 일에 투신하는 것을 꺼리는 범생주의자다. 남은 학기들 학업에 열중해 졸업할 때는 4.0에 근접한 학점을 얻고 싶다. 재수강들 하면서 루머가 현실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 35대 총학생회, 3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36대 경영대 학생회, 37대 경영대 학생회, 38대 경영대 선거관리위원회로 이어진 지난 3년 간의 학생회 일꾼 생활에 회한도 많이 남지만 이제 깨끗이 정리했다. 이제 다시 새로운 인생의 보람거리를 찾아야 한다. 최근에 평소 해보고 싶었던 역사기행을 이래저래 다녔다. 서울시내 5대 궁궐을 비롯한 문화 유적들을 제법 둘러봤다. 그 다음에는 소개팅 등을 통해 연애나 한 번 해볼까도 생각 중인데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과 정당을 위한 활동도 해보고 싶은데 아마 최소한에서 그칠 것이다. 또한 이 해방감을 채우는 데는 역시 책이 제격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학생회 생활을 계기로 맺었던 소중한 인연들을 꾸준히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할 것이다. 내년 2/4 분기에 공익근무를 할 계획이라 당분간 휴학을 하며 어떤 공부를 할지 등도 좀 더 생각해야겠다. 여하간 그간 모자란 사람의 빈곳을 채우느라 고생했던 분들에게 참 고마웠다며 충심 어린 감사 인사를 나누고, 정을 담은 술 한잔을 건네고 싶다.


끝으로 한 마디 한다면?

- 익구는 앞으로 더 열심히 살 것이다. 지인 여러분들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하게 이어나갈 것이다. 나는 빚지고는 못산다. 내게 아름다운 마음을 보여주신 분들, 모자란 녀석에게 투자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반드시 보답할 것이다. 에머슨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했다. 익구란 녀석과 함께 했던 시간이 살림살이에 코딱지만큼이라도 보탬이 되고, 쥐꼬리만큼이라도 유쾌해질 수 있도록 치열하게 정진할 것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사귀고 싶은, 곁에 두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픈 녀석이 될 생각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박정희의 값비싼 교훈

사회 2004. 12. 1. 03:15 |
박정희 신드롬에 대한 상반된 평가

  우리 근현대사의 인물 중에서 박정희만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도 드물다. 한 쪽에서는 근대화의 기수, 고독한 혁명가, 청렴하고 강력한 지도자라는 찬사를 들으며 단군 이래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낸 지도자라며 추켜세움을 받는다. 그러나 다른 한 쪽에서는 만주군 장교 출신의 민족반역자이며, 민주주의를 파괴한 군사독재자, 인권유린의 원흉이라는 혹평이 내려진다.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으며, 복제인간으로 만들고 싶은 인물로 거론될 정도로 여전히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특히 IMF 사태 이후에 일부 언론사들의 부추김에 힘입어 박정희 신드롬이 확산되기도 했었다. 요즘 경기침체로 다시 박정희 향수가 일어날 조짐이 보이기는 하지만 5년 넘게 끌어온 박정희 기념관 사업이 사실상 무산되었다. 이를 볼 때 국민들이 박정희를 경제적 치적 등을 높게 보는 듯 하면서도 박정희에 대한 총체적 평가가 호의 일변도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간 박정희와 그에 대한 공과를 논해보고 오늘날의 시사점을 살펴보겠다.


기회주의자 박정희

  박정희는 초등학교 교원을 하다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해 황군 장교가 되었고, 만주군의 긴칼을 차다가 해방을 맞이한 바람에 슬그머니 광복군에 잠시 가담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 군대 내 남로당의 조직책으로 활약하다 여순 사건을 계기로 전향하여 군부 안의 좌익을 색출하는 숙군 수사에 적극 협력하여 본인은 처벌은 면하게 된다. 종국에는 반공투사가 되어 군국주의에 기반한 병영국가를 만든 독재자가 되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박정희의 제3공화국을 기회주의 공화국으로 표현한다. 아마도 이러한 평가는 박정희 개인의 이력에서 드러나는 기회주의적 처신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친일파, 좌익활동, 반공투사로 이어지는 박정희의 숨가쁜 변신은 우리 현대사의 격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는 절대 대세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일생을 통해 단 한 번도 ‘정의로운 소수’에 참여하거나 동조한 적이 없었다. 사회적 약자의 편을 든 적도 없다. 대세에 편승하더라도 그냥 끼어드는 정도가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핵심부에 들어갔다.

- 최상천, [알몸 박정희](사람나라, 2001), 157쪽

  박정희의 기회주의적 처신의 끝은 5.16 군사쿠데타로 정점에 다다른다. [실록 군인 박정희]에서 그려진 5.16 쿠데타 이모저모를 살펴보면 고작 3400여명의 군인을 동원된 명백한 불법 쿠데타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권 수뇌부나 군 수뇌부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또한 기회주의의 발로였다. 결국 멋들어진 혁명 공약을 내세운 박정희 세력들은 강한 권력에 취해 부패하기 시작했고, 정경유착과 인권유린이 도처에서 자행되었다.


박정희의 통치철학

  박정희는 [우리 민족의 나갈 길]이라는 저서에서 5.16 쿠데타를 찬양하면서 서구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에 맞는 민주주의를 해나가야 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행정적 민주주의(administrative democracy)로서 민주주의를 정치적으로 달성할 것이 아니라 행정적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인 ‘국민에 의한 통치’에 대한 유보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지니고 있다. 결국 박정권은 이 개념을 통해 자신들의 군정을 민주주의의 일종으로 포장하려 했다.

- 전재호,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책세상, 2000), 48쪽

  주권자인 국민을 배제하고 행정적 방법을 사용하겠다는 것이 행정적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박정희 정권은 시종일관 한국적 특색을 담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행정적 민주주의를 비롯해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적인 체질과 이념에 맞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정희는 자신들은 민족적 자주성과 주체성에 기반한 민주주의 사상을 지녔다고 주장하며 야당의 민주주의를 사대주의적이며 서구 민주주의에 경도된 것이라며 비판했다. 하지만 한일회담이 졸속으로 처리되면서 민족적이라는 수사는 공허한 것으로 전락한다. 이처럼 박정희는 경제 발전을 위한 행정의 능률성과 원만한 정치적 협조를 강조하면서 이를 발판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추진하게 된다.

  행정적 민주주의를 위시한 박정희가 주창했던 통치철학들은 실상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처사였다. 국민 개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철저히 제한하면서도 주권자의 뜻에 따르는 민주주의를 운운한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권력자가 자신이 국익이라고 믿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행정적 수단을 총동원하고 국민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의 기회를 억압하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에 불과하다. 박정희의 행정적 민주주의는 파시스트의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의 경제 발전 공로 분석

  박정희식 한국적 민주주의는 가난에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는 무의미하며, 일단 경제 발전을 해야한다는 논리이다. 많은 이들의 박정희의 무수한 과오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제 발전 공로는 인정해야한다고 말한다. 대다수 국민들이 절대빈곤을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박정희가 빈곤 퇴치에 기여한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아무리 휘황찬란한 경제 발전과 근대화라고 해도 국민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훼손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과오다. 장면 정부가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장면 내각이 들어선 지 18일 만에 쿠데타 모의를 한 육사 8기생들의 기록으로 보아 박정희 일파의 쿠데타 이유가 장면 정부의 무능과 부패였는지도 의심스럽다. 5.16 쿠데타는 합법적인 정부를 통한 산업 근대화와 경제 발전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이런 가능성 박탈에 대한 비판은 경제 발전의 공로가 아무리 커도 가릴 수 없는 허물임에 분명하다.

  물론 박정희가 당대의 시급한 과제였던 빈곤 퇴치에 기여했음을 인정한다. 잘 살고자 하는 국민들의 의지를 결집해서 대다수 국민들에게 믿음과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공로도 평가할만하다. 이렇게 군사 쿠데타로 인한 정통성 부재를 경제 발전으로 만회하려는 선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더라도 박정희의 업적은 상당 부분 세계 최악의 노동조건에 시달린 노동자들의 희생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박정희가 특출 난 능력이 있어서 국민들의 열망을 잘 조직해냈다고 하는 의견은 동감하기 어렵다. 그것은 결과지상주의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힘들다.

  다만 박정희를 위한 변명을 할 점이 있다면 그의 성장전략이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는 선성장 후분배 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자본주의 국가들도 공업화 초기에는 분배의 편중이 심하여 노동자, 농민이 간신히 생계를 꾸려나갔고,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과 중국 또한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하며 인민들의 소비 억제로 인해 굶주려야했다. 이 당시 대다수 국가들이 추진한 경제개발 전략의 폐해가 대략 비슷했던 것을 굳이 박정희 정권에게만 높은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개발독재라는 미명 하에 이뤄진 박정희의 철권통치 없이도 민주정부를 통해 경제 발전을 제대로 수행해 나갈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리기 힘들다. 혹자들은 박정희가 없었다면 국가역량을 경제 발전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를 옹호한다. 물론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발전이 모든 측면에서 골고루 이뤄지기 힘들고, 이상적 방안대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일에는 실수도 있고 다툼도 있게 마련이다. 60년대 당시 성숙한 민주의식을 가진 시민들과 집행력을 갖춘 정부관료들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합법적 민주정부가 통치한 기간은 너무 짧았기 때문에 섣불리 평가를 내리기 힘들다. 고작 1년 남짓의 혼란스러운 시절을 겪었다고 민주주의 싹을 잘라버린 것은 박정희와 쿠데타 세력이 자랑하는 경제 발전의 영원한 짐이 될 것이다.


박정희의 명백한 과오

  박정희의 경제 발전 업적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명확한 평가를 내리기 힘든 사안들이 많다. 하지만 박정희의 과오들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박정희의 유토피아는 인간성 개조를 통한 병영사회의 건설이었다.

그 사회는 무엇보다도 병영 사회였다. 지금까지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향토예비군, 학도호국단, 민방위대, 학생 교련, 반상회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신민 전체를 군대식으로 편제한 것이 박정희였고, 긴급조치, 물고문, 전기고문, 야간통금, 장발단속, 치마단속을 통해 그 신민 전체를 ‘표준적 인간’으로 만든 것이 박정희였다. 어린아이들에게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매일 외게 한 것도 박정희였다. 그 시절 애국가는 극장에서고 학교에서고 거리에서고 하루도 쉬임 없이 흘러나왔고, 신민들은 멈춰서고 기립하고 입다문 채 하루에도 몇 차례씩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고종석, [자유의 무늬](개마고원, 2002), 249쪽

  일사불란한 병영사회 건설을 위해 갖가지 인권유린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자신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한 많은 이들을 혹독하게 처벌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문민정부 이후 당시 민주화 인사들이 국회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복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병영사회를 표방한 전체주의가 국민들을 세뇌하면서 국민들의 윤리의식 수준이 상당히 저하되었다. 군부독재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은 상도덕 준수보다는 정권에의 밀착이 지상과제가 되었고,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금전만능주의가 심화되었다.

  일각에서는 인권탄압이 경제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이익집단 간의 다툼이 되기 쉬운 민주주의 제도의 맹점을 지적하며 강력한 사회통합이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과 경제발전이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아직 규명된 바가 없다.

그런데 아직 개발독재로 인해 탄압받은 사람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그 독재자를 예찬하자고? 그건 인간의 길이 아니다. 일부 인간들이 부당하게 죽음을 당하고 고통받았다 해도 전체의 국부가 증대되었으면 그건 좋은 일이다고 말하는 건 극단적인 파시스트도 감히 공개적으론 하기를 꺼리는 말임을 알아야 한다. 그건 집에 들어가 이불 속에서 혼자 키득거리며 내뱉을 말이다. 그게 바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 강준만, [인물과 사상] 2권(개마고원, 1997), 35, 36쪽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의 의회 민주주의를 비롯한 민주적 생활양식을 향유하고 있는 것은 군부독재에 저항한 민주인사들의 노고 덕분이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기 위해 투쟁한 이들에 대한 평가도 이뤄져야 한다. 위의 글의 지적처럼 유신체제를 거치면서 부당하게 고통받은 사람들이 엄연히 남아있는데도 경제발전의 공로만을 찬양하는 것은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다.


박정희의 값비싼 교훈
  
  지금까지 살펴본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서 경제발전 공로에는 상대적으로 박한 점수를 주고, 과오는 큰 것으로 본 것은 개인적인 편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 이 땅에 박정희 등장할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자유를 억압하면서 경제발전에 올인하는 것에 국민 대다수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잖은 국민들이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지지했더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시대적 환경이 그 때와는 판이하다.

  경제침체를 빌미로 박정희 향수가 조금 피어나는 것까지는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박정희 추종자들이 과거 추억을 넘어 과거의 부활을 노리는 것에는 단호히 반대할 것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듣기보다는 서로 논쟁하고 협력하려는 개인 자유의지의 총합이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사회 제반시스템을 정비해나가고 세계화 시대의 무한경쟁의 파고를 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하거나, 우리 손으로 뽑은 대표자들에게 맡길 것이다.

  결국 박정희의 가장 큰 업적은 역설적으로 이 땅에 박정희 같은 파시스트들의 등장을 다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는 점이다. 아무쪼록 현재의 경제침체를 보란 듯이 극복해서 박정희의 망령을 잠재우는데 각 경제주체들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익구
:

익구닷컴 개장 이후 익구닷컴에 제 모든 생각들이 녹아 들어가 있지만... 그 이전의 잡담과 잡글들을 대강 정리해봤습니다. 2004년 이전 익구의 잡담과 잡글 중 일부를 발췌해봅니다. 제가 했던 생각들, 내뱉었던 말들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 지난날을 함께 해준 모든 이들께 새삼 고마운 마음이 솟아납니다. 새롭게 만나는, 만나게 될 지인들과 주고 받을 잡담과 잡글들을 기대해봅니다.


나의 삶의 대원칙인 "한결같은 삶"... 내가 자랑할 수 있게 만들고픈 -아직은 문제가 많은- 나의 이상이다. 원효대사께서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으셨다면 나는 집 앞 개천(?)의 고인 물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담박한 진리를 말이다. 충격(?)을 받은 나는 고인 물처럼 되지 않기 위해 좀 더 너그러워지고자 했다. 하지만 한결같음과 너그러움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아~ 인생은 삐걱대는 양팔저울...
- 차마 할 수 없는 말..., 2000/08/15


라이프니츠는 신이 이 세상을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것으로 창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넘쳐나는 악은 무엇이란 말인가?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반론한다. 그러한 악이 있기에 세상은 선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만일 악이 없다면 선한 것은 결코 선한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을 위해 있는 것이며, 불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을 위해 있는 것이다. 비록 부분적인 악이 있다 할지라도 전체 속에서는 선한 것이며 무한한 신의 눈에는 결코 악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이런 그의 견해를 '철학적 낙천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어이할까. 그런 그도 말년에 실각하여 분루를 삼키며 고독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던가. 화려한 지위에 있었던 라이프니츠도 정치적 몰락과 함께 그의 장례는 아무런 격식도 없이 초라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하지만 감히 이런 그에게 조소나 던질 수 있겠는가? 그의 오른쪽 다리의 혈액순환에 이상이 생긴 이유가 아마도 며칠이고 의자에서 떠나지 않을 때도 있을 만큼 공부를 계속한데 있지 않을까라고 전기 작가가 말한 그의 삶을 보며 나는 그의 사상에 감히 피식 웃어나 보일 수 있겠는가?
- 서글픈 잡담들, 2000/11/10


공짜가 없는 세상. 변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만큼은 버리고 가는 길이며, 결국은 얻은 만큼 잃는 길이다.
- “그래 맞아!”와 “이게 뭐야?”, 2001/02/11


그래도 제가 아직은 각종 격한 언어를 쉽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어릴 적의 충격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가 집으로 가는 길에 같은 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때는 개구쟁이였던 아무도 믿지는 않지만...) 저는 혀를 얄밉게 내밀어 '메롱!'이라고 할 참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엘롱!' 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로 맞은 편에 있던 그 친구가 반가이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까? 제 혀는 3분의 1쯤 나와 있는 상태인데... 저는 놀라서 한동안 그 혀를 집어넣지 못했습니다. 메롱도 욕이라고 생각할 적에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남에게 감히 심한 말이나 그 비슷한 종류의 말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것에의 죄책감이란 것이 본디 더 무서운 법인가 봅니다. 마구 가는 세상을 친구들과 같이 욕하면서 느끼는 다정함 내지 친근감을 저는 얻지 못했습니다. "야, 임마!"도 못하는 저를 매정한 놈으로 여겨 주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제 말이 조금은 딱딱하고 정 없어 보이더라도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때 그렇게 반가이 손 흔들어 주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ᅮ.ᅮ
- 익구어린이의 언어생활!, 2001/02/13


나는 줄곧 비주류였음을 인정한다.
이제 비주류가 선이고 주류가 악인 시대는 지났다.
내 바람이 있다면 주류로 편입해서 비주류를 옹호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당화될 수 있는 불평등이 있다고 해도
소수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무뚝뚝한 옹고집으로 남아버릴지 모른다.
교과서 같다느니 고리타분하다느니 하는 말도 꽤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다소 기인(奇人) 취급도 받았던 것 같다.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조롱 반의 소리도 들었고...
(중3때 한 친구는 '도덕고등학교'에 가라고 신랄한 풍자를 하기도 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스스로 위선이 아니냐고 시비를 걸어본다,
난 정녕 내가 착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착함에 도달할 수는 없다. 다만 착하려고 노력해볼 뿐이다.
실제로 나는 자신은 그렇지 못하면서 남에게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아이들에게는 정말이지 피아노를 던져버리고 싶다. (과격한가...^^)
- 정녕 실패한 것일까?, 2001/04/15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입니다.
분명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미워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아니, 그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증오의 감정은 조금은 안으로 삭혔으면 합니다.
아직도, 앞으로도 착한 사람과 좋은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요...
- 그럴듯한 넋두리는 어디에, 2001/04/19


내 마음의 독(毒)은 날로 묽어 지는 것 같은데...
나의 매운 눈빛은 자꾸만 흐릿해져만 가는데...
물들고 싶지 않고, 굽히고 싶지 않은데...
내 머리 속의 오늘은 무엇이 이리도 복잡한가?
이게 아닌 듯, 이게 아닌데...
여기까지 어떻게 밀려 온 건가?
가끔은 나를 위해 내가 눈물을 흘려야 한다.
뭐가 옳은 건지 혼미할 때
나의 가치가 흔들릴 때
마음의 소리조차 멎을 때
통절한 깨달음은 회한 뒤에서 수줍어한다.
내면의 공허함을 밖에서 메우려 하지 말자.
한(恨)마저 부둥켜안는 매섭고도 맑은 마음을 가져야지.
내 우매함에 조금 슬퍼하고
좀 더 생각해야겠다.
- 맑고 맵게 살자꾸나, 2001/05/05


언제나 멀리 있는 것은
가까이 둘 수 없기에 더 그립고,
손 닿을 수 없는 것은
두고 바라만 봐야 하기에 더 애타게 한다.
하고자 하는 것은 늘 멀리에만 있지만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 스스로의 비수를 품고, 2001/06/23


나는 왜 학벌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가?
그것은 학벌에서 소외된 이들의 아픔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아픔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꾸 그 아픔에 빠진 이들을 구하고자 하는
제 정신 이탈한 의분(?)이 나를 감싸며 나를 괴롭힌다.
- 학벌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나, 2001/09/02


인간의 의식이 바뀌는데 3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양성평등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30년의 시간을 잡았습니다.
지금은 초라해도 그 때쯤이면...
상황이 많이 달라지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왜 지독한 양성평등주의자가 되었을까요?
글쎄요... 저는 단지 싫을 뿐입니다.
'고정적이고 획일화된 아름다움'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 자신도 고통을 받기도 했고...)

양성이 "정말로" 평등하게 공존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좀더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며, 무엇보다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이 땅에 여자라는, 남자라는 이유로 고통받는 이들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마음이 전부입니다.
- 사소한 제안!, 2001/09/23


아무리 우리의 이상이 소중하다고 해서
내 눈의 눈물을 막기 위해
남의 눈에서 피눈물이 떨어지게 하지 맙시다.
우리 이상에는 철저하게 '사람'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그렇게 비판하는 이들의 추악한 '욕망'과
무엇이 차이가 있겠습니까?

조롱 받는, 동정 받는 이상주의자가 되지 맙시다.
치열히 정진해서 실력 있는 이상주의자가 되어 버립시다.
시대적 진실을 고민하는 벗들이 있어서
이 땅은 앞으로도 아름다울 겁니다.
모멸의 시간은 짧고 환희의 시간을 길지언저...
- 이상주의자 벗들에게 보내는 편지, 2001/10/21


나는 맛난 음식이 좋고 고급스런 옷이 좋다.
착할 뿐만이 아니라 지혜롭기까지한 여자가 좋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고 치켜세워 주는 것이 좋다.
권력이 있어서 나에게 충성을 다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좋다.
왜 나는 그런 욕망을 떳떳이 밝히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것은 나쁜 것이라고 부정하려고 했을까?
아아! 나는 반쪽 짜리 순수만을 열망한 것인가...
- 비판의 칼끝을 들이대다, 2001/11/16


난 꽤 매사에 분명한 선을 긋기 좋아하는
그런 칼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곧잘 오해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흐리멍텅과 안절부절 사이에서 헤매이고 있을 뿐이다.
내게 과격하다는 평을 내려주시는 분이 간혹 있지만
나만큼 온순하고 유약하기까지 한 놈도 찾기 힘들다. ᅮ.ᅮ
이건 순전히 [도덕경]에서 비롯된 내 삶의 도가적 경향 덕분이다. ᅮ.ᅮ
좋은 건 못 배우고 나쁘게 배워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 폐인 생활도 이젠 지겹다, 2002/01/23  


열정이 식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열정이 존중받을 수 있는 풍토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 열정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하여, 2002/04/06


“久而敬之”

...“오래되어도 여전히 공경한다.” 정말 가슴 벅찬 말이야. 나는 우리들 사이가 이랬으면 한단다. 시간이 흘렀다고 무심해지지도 않고... 세월이 지났다고 차갑게 식지 않는... 그때 그 시절 같을 수는 없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늘 반가운 그런 존재가 말이야...우리 사이에는 권태기가 없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 오래되어도 여전히 공경한다, 2002/07/13


얼마 전 여자 택시운전기사 분을 보았다...
여자 버스운전기사 분을 본 적은 많았지만...
택시운전기사가 여자인 것은 처음 본 그 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했었다.

이렇듯이 양성평등은 거창한 구호가 전부가 아니다...
가장 낮고 쉬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관심과 의지일 따름이다.
- 장상 총리인준부결 - 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2002/07/31


세상 어느 구석에나 행복과 진리가 있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진리를 캐고자 하는 신념만 있다면...
행복은 어느 순간 내 옆에 앉아서 미소지어 주고 있을 것이고...
진리는 어느 순간 내 가슴속에 알알이 박혀와 있을 것이다.
- 가만히 들여다보면..., 2002/12/17  


못난 사람이 남 핑계를 즐기는 법이다. “내가 딛고 있는 곳은 왜 이 모양인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왜 저런가?” “내가 하는 일은 왜 죄다 이런 식인가?”...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나에게는 조금 면죄부가 생기며 꽤나 잘난 인간이 되는 듯한 착각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무책임한 도피를 반성한다. 지금 이 순간, 지금 만나는 사람들, 지금 하는 일을 소중히 해야 하도록 다짐해본다. 설령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모자른 점이 있더라도... 지금 딛고 있는 곳을 옹호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치졸한 자기 방어 이전에 인지상정인지도 모르겠다.

현 상황을 더욱 긍정하려한다는 점에서 조금 더 보수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진취적인 모습이 거세되었다고 슬퍼하기 전에,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거둔 것들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모습을 아껴야겠다.
- 비 나리는 날에 일상성을 생각함, 2003/06/27


비록 앞으로 나아가며 좀 더 배우고 느껴가면서...
지난날의 다짐들과 사색들, 기억들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때는 그랬다고 적당히 방어하며 보듬어줄 수 있기를
어제를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그 위에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리라 믿는다...^^
- 믿는다, 2003/08/29


다음으로 준식이는 대학의 자유도 좋지만, 약간의 울타리가 있는 것이 좋고... 고등학교 시절이 그립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하기사 무지막지한 자유는 필연적으로 나를 고독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할 수 없는 것은 약간의 울타리로 인해 주어지는 속박에 걸릴 때의 기분 나쁨이 더 싫기 때문이다. 가령 수강신청 같은 것 할 때도 정말 머리털 뽑히듯이 고민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쫓아다니며 알아보느라 부산하기 일쑤인데, 이거 솔직히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내 스스로가 똘아이가 아니라고 믿는다면... 내가 앓으며 고민해서 선택한 자유를 누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는 고독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 물론 나도 고등학교 시절이 그립지만 사람이 그립고 그 때의 꿈들이 소중한 것이지, 그 때의 울타리는 싫었다.^^;
- 존호 송별회에서의 말말말, 2003/09/27


하긴 그간 조금은 바쁜 척을 해가면서 제대로 못만나고 이야기 나누지 못했던 우리들이었다면... 이제는 정말 바빠서 함께 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힘들어질 것이다. 다양한 곳에서 열심히 살다보면 고등학교 친구들의 가치는 자꾸 희석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 한잔에 떨어진 빠알간 잉크 한 방울이 컵 하나를 붉게 물들이듯이 상당히 많은 물을 부어야 그 붉은 기운을 없앨 수 있으리라. ‘중어과 친구’ 라는 잉크 한 방울의 저력을 나는 믿는다. - 송년 모임에서의 믿음 한 조각, 2003.12.24


<그 밖의 출처와 시기가 불분명한 잡담들...>

(어떤 사물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양팔저울 할래... 맨날 양쪽에서 시달리지만 끝내는 균형을 잡고 마는 양팔저울의 뚝심을 본받을래. - 메신저 채팅 中

세상을 썩었다고 욕하기는 쉬우나 티끌만큼이라도 바꾸기는 어렵다. - 익구의 지론임^^;


우리 실컷 고민해보자. 비록 얻는 것이 쥐꼬리 만해도, 남는 것이 코딱지 만해도... 인생을 그냥 날로 먹으려 드는 것은 너무 치졸한 것이잖아...^^ - 쪽지 대화 中


자기 의견을 감춰가며 친구들을 위한다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배신”쯤에 지나지 않을까요? 제 의견은 ‘옳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 2002 수능에 대한 논란 中


뭐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라고 새삼 믿고 싶다우...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고 멀리 돌아서 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결같이 앞쪽을 향하고 있다고 말이오... 그래서 늘 희망이라는 녀석을 놓지 않고 있다네... - 익구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내준 말^^;


현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자비할 뿐이다. 낭만과 서정 뒤에 숨기보다는 현실의 평범함과 냉혹함을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눈을 갖기 위해 노력하지만... 나의 이상은 언제나 현실과 협상 중에 있나 보다...^^; 다만 나의 청년시절이 아쉬움이 많이 녹아있는 과거처럼... 지나지 않게 하고 싶을 따름이다. - 어딘가 썼던 잡글 中


내 개인적인 견해는 선한 행위라는 개념이 차차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해... 이건 개인주의적 도덕과도 연관된 것인데... 자기 맡은 분야의 일을 책임지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충분히 선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나는 믿거든... 불굴의 투사정신이나 숭고한 희생정신만을 선한 행위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니까 적극적 선, 높은 기준의 선에서... 소극적 선, 낮은 기준의 선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생각해... 뭐 실제로 세상이 그 쪽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현상에서... 조직과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전통적인 선 개념에서... 자기 일 책임지고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된다는 소극적인 선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 그런 현상이 점차 심화되고 있고... 아마 그렇게 역사는 진보할 것이라고 예상된다우...
- 메신저 채팅 中, 소극적 선 혹은 보통선의 개념은 익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임^^


합당한 비판과 부당한 비판의 경계는 언제나 논란이 있기 마련이지만... 두 가지 기준 정도가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과거에 어떻게 했는가와, 지금 현재 다른 존재에게는 어떻게 하는 가를요. 가령 언론의 비판에 대해서 따져보면 과연 김영삼에게 던졌던 비판의 수준과 동일한가, 또 현재 한나라당과 극우세력에게 던지는 화살과 비슷한가... 이런 것들을 따져보았을 때 ‘그들’에게는 너무 넉넉하고 노무현에게는 너무 매섭다고 충분히 느껴져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것도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 대통령 탄핵 때 메신저 대화 中


뭐 어쨌든 님의 견해를 존중합니다. 제 편이 오버할 수도 있겠죠. 결국 우리는 모두 편협한 의견을 펼치고 있습니다. 남의 편파성을 꼬집는다고 자신의 혜안과 지적 우월함이 드러나지는 않을 듯 합니다. 우리의 입장 차이를 확인했으면 부지런히 서로의 입장이 더 적실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면 될 일입니다. 너무 욕하느라 힘 빼지 마세요.^^
- 열나게 노무현 비난하는 글에 화딱지 나서 쓴 리플 내용 中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