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에 썼던 글을 조금 덧붙여서 올린다. 나의 역사는 기억과의 투쟁이며 끊임없이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믿기에... 이 글을 쓴지 꽤 되었는데 학생운동의 미묘한 변화의 흐름을 느낀다. 학생운동의 한 축이었던 전학협이 해소를 선언하고 한총련도 발전적 해소를 논의하고 있다. 학생회 해체 운동이라는 격한 목소리도 들린다. 학생사회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어느덧 대학 2학년이라는 직위(?)를 소지하게 된 것과 더불어 ‘헌내기’라는 칭호를 더하게 되었다. 문득 나의 대학 새내기시절을 돌아보니 별로 한 것도 없이 구질구질하게 보낸 것 같아서 영 안쓰럽다. 그나마 한 것이라고는... 35대 총학생회 기획국 차장이라는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말단 일꾼으로 활동했다는 것 정도라고 할까... 나는 입학하기 전인 2002년 1월에 총학생회 홍보를 듣고 지원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데 임기 끝까지 남아 있었던 거의 유일한 02학번 생존자(?)가 될 줄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나로서는 그 자랑스런(?) 업적을 드러내놓고 뽐낼 만도 하건만...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비록 잡일꾼이었지만 총학생회 살림이 꾸려지는 과정들을 새내기치고는 제법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35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고대 최초의 비운동권 총학생회라는 명칭에 걸맞게(?) 이미 거의 대부분의 단과대를 장악한 운동권 학생회들과는 맨날 소모적 신경전이 벌어졌다. 말단 잡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나이지만 그런 파행적인 모습들을 지켜보며 인식의 간극의 방대함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반학생들에 눈에는 뭐 저런 것을 가지고 피 터지게 싸우냐 싶을 정도로 그들만의 문제에 매몰되어 생산적인 활동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도 많이 있다. 또한 운동권 내에서도 서로 계열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먹서먹한 모습들을 볼 때면... 학생사회의 분열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는 했다.



분명 나는 운동권학생들에게 진 빚이 있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뭐 학생운동사나 그런 것들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지만... 그저 남들이 그러니까 나도 덩달아 그러려니 하면서 말이다. 유시민씨의 말대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이 ‘미련한 인간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그의 말대로 경제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나는 채무의식을 내내 버리지 못했다. 침묵과 복종이 몸을 지키는 방책이던 시절에 말하려 했고 싸우려 했던 이들... 미련하고 바보스러웠던 사람들을 잊는다는 것은 ‘붕어대가리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나쁜 기억력이 행복의 지름길이라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지만... 잊어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은 분명 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 없다. 또한 운동권에서 배출한 활동가와 이론가들이 이 땅의 민주화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을 부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하지만 미련하지만 순수한 운동권 분들에 대한 첫인상은 점차 노련하고 노회한(?) 정치꾼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간 운동권의 성지라고 불리던 고대에서 정권(?)을 빼앗긴 것에 대한 분풀이였을까.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장들과의 마찰은 참으로 낯부끄러웠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저렇게 싸우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축소판으로 보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난 또 낙관적인 견해를 내놨다. 결국 윗대가리들의 권력 다툼, 자존심 싸움일 뿐, 아랫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적대감에 불타 싸울 이유도 없다고, 다름이 있으면 그 다름을 인정하며 내가 더 적절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있으면 된다는 당위적 명제를 들먹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대립은 날카롭다. ‘빨갱이 자식’과 ‘수구꼴통’이라고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요원하기만 하다.



주위 또래친구들을 돌아봐도 학생운동, 특히 운동권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민중을 외치면서도 급속히 대중성을 잃어가고 있는 운동권의 초라한 초상을 보는 듯해서 어떤 면에서는 아쉽기도 하다. 많은 분들을 겪어봤지만 참 영민한 분들이 많은데도 언뜻언뜻 발견하는 그들의 ‘계몽 전사’ 의식은 보통의 무식한(?) 이들에게는 부담감과 거부감을 주는 지도 모르겠다. “뭐 지들이 온갖 진보를 다 일구어내는 듯 생색을 내고 있다” 비슷한 의식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깡그리 말아먹은 운동권들에게 상당한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운동권도 표현들이 많이 약해지고 좀 더 일반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학생운동은 ‘인기 없음’에 마냥 초연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안타깝다. 대학 새내기 시절 호기심에 문을 두드리던 학생회 조직에 왜 한 두 해만 지나면 관심이 식어버리게 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나는 운동권들이 이를 갈았던 비운동권 총학생회에서 한 해를 살았다. 하지만 그저 약간의 잡일을 거들던 위치에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첨예한 대립과정에서 낄 일이 없었던 나는 여전히 운동권 분들은 학생사회의 좋은 일꾼 분들이시며... 아마 계속해서 논의되고 있다는 학생운동의 통합 혹은 발전적 해체와 관련된 것들에도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요즘 자꾸 들려오는 ‘한총련 합법화’뿐만 아니라 소위 운동권이라고 지칭되는 모든 학생 운동의 흐름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정녕 ‘자유민주주의’국가가 맞다면 말이다. 별로 한 것도 없지만 지난 한해 소위 말하는 학생사회의 일꾼 역을 해본 소감은 아직도 정리가 되고 있지 못하다. 총학생회 내부에서의 모순, 그리고 운동권 단과대 학생회의 모순... 그리고 그 모순들의 요란한 파열음... 나름대로 시간을 투자해가며 활동한 것에 후회는 없지만 뭔가 뒤끝이 켕기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한때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듯이 나도 진보주의자인줄 알았고... 사회 변혁에 뭔가 안다는 듯이 남의 의견을 부지런히 주워 나르기도 했다. 그러나 차차 생각해보니 오래 전부터 나는 개인주의자, 자유주의자였다. 아무리 사탕발림이 되어 있어도 전체주의 냄새가 나는 좌파나 우파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좌파, 우파의 입지가 여전히 좁지 않은가라는 나의 짧은 생각이다. 결국 중간자가 으레 겪는 ‘회색인’ 취급을 받을지라도. 지난 한 해의 경험으로 운동권에 대한 환상이 철저히 깨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극우 헤게모니가 춤추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과 연대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음을 새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깊고 넓은 서로간의 오해와 불신은 여전히 학생사회의 큰 과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총학생회에서 알고 지내게 된 친구가 넌지시 묻는다. “작년에 조금 안 맞는 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 나는 뜨거운 마음으로 답한다. “어, 물론 다 맞는 것은 아니었지.” 그랬다. 솔직히 일하는 내내 조금 나와 맞지 않는 부분과 투쟁해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35대 고대총학에서 보고 배우고 느꼈던 것들은 너무나 소중하며, 그 점에 있어서는 후회가 없다. 또 그 친구는 나를 진보, 개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해 주었다. 물론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진보, 개혁적인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인 삶의 양태로서 이념적 좌표를 대충이나마 잡아보는 것. 아직 조금 더 고민해볼 일이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고 앙드레 말로가 말했다. 내게는 꼭꼭 담아두고 평생을 두고 추구할 꿈이 있는지 늘 생각한다. 요즘 들어 조금씩 그런 거대한 희망보다는 좀 멋이 없지만... 평생을 담고 갈 삶의 자세에 마음이 머문다. 똘레랑스와 불관용에 맞설 수 있는 최소한의 용기, 자유에 대한 철저한 옹호와 남을 배려하는 마음,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함과 나를 아는 사람들에 대한 성실함과 진솔함... 이런 자그마한 부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희망은 내 곁에 함께 해줄 것이다. 날로 소박해지는 나는 부끄럽기보다는 조금은 안쓰럽고 오히려 더욱 사랑스럽다. 6(^.^)9



덧붙이며...
결국 이것도 정치 이야기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정치 관련 이야기는 최소한도로 하려고 노력한다. 정치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들보다는 싫어하는 친구들이 훨씬 많은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 없다. 대중성 확보에 목맨 나로서는 더더욱. 다만 정치는 일부 사람들이 거창한 명제를 들먹이며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즐겁고 재미나게, 의사결정의 일환으로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싶다. 정치가 별거냐? 우리 모두가 정치를 하자. 그래야 쓰레기 정치인들이 발을 못 붙이게 된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을 주절거린 거랍니다. 인식의 박약함에 대한 질책은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어수선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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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기 2부

문화 2003. 8. 12. 14:34 |
아침에 일어나니 이슬비가 살포시 내린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시원한 단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전날의 놀란 몸뚱이를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지 아직도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어제 세일이와 모의한 관광모드로의 전환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터에 푸짐한 아침상이 차려졌다. 갑자기 불쑥 찾아와 민폐만 끼쳐드리는 것이 아닌지 영 죄송스러웠지만 이 글을 빌어 다시금 감사 드린다는 말씀을 올리는 수밖에. 다시 짐을 꾸리고 협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나는 페달과의 투쟁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못했다. 눈빛으로 고민을 마주하던 세일이와 나는 “일단 좀 가보자”는 것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결국 자전거 안장에 몸을 싣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완주 대신 반주라도 하는 수밖에. 중문관광단지에서 다음을 도모해야겠군.”



어제의 고난이 밑거름이 되어 이제는 다행히 자전거 출발과 방향전환이 수월해졌다. 내심 흥도 나면서 페달을 돌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득이 근처 학교에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약간의 뒤에 실은 짐들에 방수처리를 하며 비가 좀 그치기를 기다렸다. 제주도에 있는 학교들은 참 색깔이 화려하다는 느낌을 많아 받았다. 서울 도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색동옷을 입은 학교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게다가 높지 않은 아담한 규모가 잇따른 증설로 운동장도 잡아먹고 숨을 막히게 하는 서울의 학교들과는 달리 여유와 푸근함이 느껴졌다.



소나기가 그치고 다시 여정을 재촉했다. 그러나 내가 또 사고를 치고 말았다. 뒤에 싣고 가던 돗자리의 끈이 자전거 바퀴에 칭칭 감겨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바퀴가 뻑뻑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때 멈췄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저 부지런히 페달을 밟다가 줄이 엉킬 대로 엉켜버린 것이다. 결국 병승이의 휴대용 칼로 줄을 끊어내고 다시 출발을 했지만 안 그래도 지체된 길을 더 느리게 만들어 미안한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도 짐을 묶는 끈이 바퀴에 감기는 사고를 치고 만다^^;)



어느덧 햇빛이 비치고 젖은 옷들이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에 초콜릿박물관 안내표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급한 길이지만 그렇다고 볼거리들을 마냥 스치고 지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박물관을 가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표지의 5km라는 거리의 위압감에 친구들이 망설였지만 나의 간곡한 호소로 가보기로 결정했다. 천만다행으로 들어가는 거리가 5km 보다 짧아서 어찌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돌로 아담하게 지어진 건물이 동심을 일으키려고 무던 애를 썼다. 초콜릿 몇 개 맛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섰으나 헛된 기대였다는 것이 밝혀져서 허탈했다.^^;



뭔가 잔뜩 초콜릿 역사 등에 대한 설명이 있었지만 전혀 눈에 가지 않았고 초콜릿 껍데기와 견본 전시도 그림의 떡이니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공짜 초콜릿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 뒤에 우리는 한층 풀이 죽었다. 1년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다는 카페에서 사진을 좀 찍으며 안장에 시달린 엉덩이를 달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초코홀릭인 나로서는 여간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했던가. 공짜라니 이러려니 하는 수밖에.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건 양반이구나 싶었다. 비싼 값 요구하면서도 알맹이 없는 상도덕이 떨어진 것들도 많은 판에 이 정도쯤이야.



또 한참을 달리다가 고행길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송악산이 펼쳐진 것이다. 동산이기는 하지만 평지보다야 힘이 더 드는 것이 당연지사. 조금 샛길로 빠져서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다가 말이 방목되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흔히들 회자되는 ‘말자지’의 실체를 확인하고 친구들은 경악했으나 나는 그저 몸집이 크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문득 한 시구가 떠올랐다.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고
좀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 문정희,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中



그러면서 사마천을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라고 노래하고 있다. 평생 남의 눈치를 살피며 기둥 크기나 재다가 갈 것인지, 아니면 기둥일랑 내던지고 순수한 열정을 연료 삼아 타오를 수 있는 멋진 사내가 될 것인 지의 물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사계리 해변도로를 달리며 신기한 모양의 섬 두 개를 보며 재미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아본 결과 이 섬이 형제섬이었다. 크고 작은 섬 두 개가 형과 아우처럼 마주보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갯바위들이 있어 보는 방향에 따라 섬의 개수와 모양이 달라진다는데 내가 본 것은 딱 두 개 뿐이었다. 시원스레 달리다가 용머리 해안에 당도했다. 해안 언덕 모양이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과 닮아 이름 붙여졌는데 바닷바람이 바위를 이리저리 파놓은 모습이 장관이며,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힌다. 들어가 했으나 높은 파도로 입장이 불가능해서 부득이 근방에 나와서 사진 하나 찍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이제 또 다른 난코스인 산방산을 오르게 시작했다. 오르막길의 연속이라 자전거를 끌고 하염없이 올라가야 했다. 산방산은 큰 바윗덩어리가 하나 덩그러니 있는 형상이라 마치 어떤 큰 산의 봉우리를 쏙 뽑아도 놓은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본래 한라산 정상이던 것이 뽑혀 산방산이 되고 그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산방산 아랫자락에서 계단으로 30분 정도 올라가면 산방굴사가 나온다고 하지만, 이미 페달을 돌릴 여력을 소진해서는 안된다는 판단 하에 올라가지 않기로 합의했다. 해안을 바라보며 마시는 물 여러 모금이 마음을 씻어주었다. 본래 물을 즐겨 마시던 나는 이번 여행 내내 철저한 ‘워터홀릭’이 되어 버렸다. 무언가의 부재는 고통스럽지만, 그 부재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갈증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다. 물을 자꾸 마시면 자전거 운전에 지장이 있다는 친구들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아낌없이 들이켰다. 가늘게 나오는 신음소리를 벗삼아 오르다보니 어느덧 내리막길이 보였고 나는 산방산 탈출(?)에 쾌재를 불렀다.



이제 목표 지점인 중문을 향해 달렸다. 약간 길을 헤매는 바람에 날이 어두워졌지만 서둘러 천제연(天帝淵) 폭포로 향했다. 천제연 폭포는 ‘하느님의 못’이라는 뜻으로 한밤중이면 옥황상제의 일곱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한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폭포야 비가 온 후 가서 보는 것이 물줄기도 크고 제 맛이라고 하지만, 물안개가 자욱해서 경관을 즐길 수 없었다. 3개로 나누어진 폭포를 모두 둘러보는 데 자전거에 시달린 다리를 이끌고 가려니 정말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울창한 수풀이 폭포만큼이나 호젓하게 다가왔다. 천제연 계곡에는 선녀 상을 조각한 선임교라는 웅장한 아치형 다리가 있는데 그 아래로 내려다보는 안개 속에 쌓인 폭포수는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선임교를 건너면 보이는 천제루라는 누각이 딱 내 취향이었으나 몇 개 되지 않는 계단을 보고 오를 마음이 싹 사라졌다. 물안개에 몸도 마음도 젖어 눅눅한 기분에 휩싸였다. 무거웠다.



서둘러 민박집을 잡고 무거운 몸을 풀었다. 낙지전골,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시켜 푸짐한 저녁을 먹고 나니 무거운 기운이 가시는 듯했다. 맛난 저녁을 먹은 후에 근처 할인매장에서 각자 선호하는 간식을 하나씩 골랐다. 내가 고른 초코파이를 비롯해 수박 반쪽, 강정 등을 펼쳐놓고 후식도 거나하게 즐겼다. 이 날부터 저녁 먹고 난 후에 각자 선호하는 간식 고르기는 여행 끝까지 계속되었다. 방정맞은 군것질도 여행길에서는 낭만으로 둔갑해버린다.^^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부터 햇살이 무척 따가웠다. 우리는 제주도 최고의 관광명소인 중문 관광단지로 향했다. 깨끗이 단정된 거리와 쭉쭉 뻗은 야자수가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신라, 롯데, 하얏트 등의 특급 호텔들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황홀하던지. 중문해수욕장에 인접한 호텔 산책로를 즐기는데 무더운 날씨라 연신 헐떡거리기만 했다. 물살은 꽤 거칠게 일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 정도 가지고 이 찌는 더위를 식히기는 역부족이었지만 말이다.^^;



찌는 듯한 더위에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할 곳을 찾기로 하고 제주국제컨벤션센터로 향했다. 에어컨 바람에 더위를 식히니 좀 나아진 것 같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가 봤으나 그 화려한 가격에 경악하며 나올 수밖에 없었다. 종영한 드라마 ‘올인’의 무대가 되었던 곳인 것 같은데 ‘올인 샌드위치’라는 메뉴의 가격을 보고 다들 입을 모았다. “올인 샌드위치 먹다가 올인 나겠네.” 한바탕 웃고 말았지만 형편이 된다면 이런 곳에서 샌드위치 뜯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널찍한 공간에 은은한 음악에, 색다른 맛을 즐기는 것이 뭐 어때서. 학교 앞 식당에서의 밥 몇 끼 식사라고 계산 두드리는 것은 옹졸한 처사다. 개인적으로 여행하면서 뭔가 해먹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엠티 같은 것을 가서 고기 구워먹고 라면 끓이는 것 정도야 재미로 넘기지만) 몇 끼 해먹는다고 절약하면 얼마나 절약한다고.



‘무전여행’이라든가 돈 몇 만원 딸랑 들고 가는 여행도 그리 달갑지 않다. 이런 여행길은 결국 이런저런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데, 본인이야 멋진 경험을 한다며 뿌듯해할지도 모르지만, 남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뿌듯함은 나로서는 영 삐딱하게 보인다. 첫째 날 병승이 선배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어찌나 죄송스러웠는데 뱃삯만 덩그러니 들고 떠났다느니 하는 무용담(?)은 불편하기만 하다. 여행을 갈 때는 돈을 쓰러간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나의 신조다. 안 그래도 소비 위축으로 난리라는데, 내 지갑 안 열면서 남의 지갑 열리기 바라는 것도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 아니겠는가.^^; 짠돌이 인생이라도 흔치 않는 여행길에는 너무 아끼지 말자. 여행에서의 궁상은 더욱 초라할 뿐이다. 멋을 즐기는 인생은 결국 얼마만큼은 낭비하며 가는 길이다. 아까운 기분으로 먹고 마시고, 약간의 헤픈 씀씀이에 취하는 것이다. 비단 여행길뿐만 아니라 시시콜콜한 일상 속에서도 가끔의 사치는 생활의 활력이 되어 준다.



결국 이 곳에서 끼니 때우기를 포기하고 근처에 있는 지삿개를 보러 떠났지만, 나와 병채는 건물 안에서 에어컨 바람에 푸욱 빠져 있었다. 지삿개를 다녀온 친구들이 좋았다며 흥분해서 이야기할 때도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의 효용이 그 어느 것보다 컸기 때문일 것이다. 지삿개는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나오는 주상절리를 말한다. 이것은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모양으로 굳은 것으로 용암이 바닷물을 만나 냉각되면서 압축력을 받아 수축작용에 의해 생겨난 틈이 절리이고, 그 형성상태가 기둥 모습이어서 주상이라 부른다. 찍어온 사진 몇 장으로 그 기운이 제법 느껴질 정도로 제주도에서 손꼽히는 장관이다. 파도가 절벽을 때리면서 절벽과 물거품의 흑백대비가 그리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근처 매점에서 팥빙수와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게 된 우리는 이번 여행의 최고 한 마디를 뜻하지 않게 접하게 된다. 그 내용인즉슨, 날이 더운 터라 팥빙수만 먹기로 했으나 못내 아쉬워던 병채의 권유로 컵라면도 먹기로 한다. 컵라면을 주문하러 들어간 병채왈, “라면도 좀 먹어야겠는데요...” 우리는 동시에 자지러졌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통상 ‘라면 3개 주세요’ 라는 정도의 표현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그 미묘한 어감이 주는 해학은 대단했다.



제주도에서 가장 놀거리 많다는 중문 관광단지를 너무 가볍게 지나쳤음을 일주 막바지에 들어서 깨달았지만, 당시는 얼른 전진하자는 일념밖에 없었다. 날은 덥고, 오르막은 달릴만하면 나오는터라 모두들 땀을 뻘뻘 흘려가며 힘겹게 나아갔다. 자꾸 뒤쳐진 나는 늦게 도착한 죄로 친구들보다 쉬는 시간도 적은 터라 자꾸만 중간중간 멈취 서기 일쑤였다. 홀로 천천히 달리면서 몸은 참 정직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조금 더우면 땀이 나고 발이 아프면 통증이 찾아드는 것은 어김이 없었다. 사람의 마음은 애써 본심을 숨기고, 자기합리화로 방어를 하기 급급하며 위선으로 치장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몸은 그 자체로 너무나 솔직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비루한지도 모르겠다. 동서양의 숱한 철학자들이 몸에 대해 질시를 보낸 것도 몸의 감추지 못하는 속성 때문은 아니었을까.



한참의 오르막을 지나고서 만나게 된 외돌개 가는 내리막길은 무척 구불거리고 가팔랐다. 이곳은 사고가 잦은 지역이라 초심자로서는 브레이크를 요령 껏 잡아가며 속도 조절을 해야했다. 어린 시절 자전거 뒷 안장에 타서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다가 사고를 당한 기억이 있는 터라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유난을 떨었던 덕분인지 별탈 없이 난코스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일행 중에 나 혼자만 여행자 보험을 가입했다. 도저히 보험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자전거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치고 포기하고 싶었을 때 나를 이끈 건 팔할이 여행자보험 3000원이었다.^^; 외돌개는 말 그대로 외롭게 자리한 20미터 높이의 기둥바위이지만, 내려가는 계단을 보고 생략하기로 결정했다. 외돌개 꼭대기에 있다는 외돌개보다 더 외로운 해송 한 그루를 보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시원한 곳이 필요하다.



--- 자전거를 벗삼아 떠난 제주도 여행기 3부를 기대하시라...^^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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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즈믄해 큰다짐

익구 2003. 8. 6. 07:47 |
2001년 1월 14일, 고 3 겨울방학 때 익구는 계속 미루던 [새즈믄해 큰다짐]을 선포했다. A4 용지 한 장에 사색의 짬을 엮어냈을 때는 꽤나 희열에 휩싸였지만 지금 보면 애들 장난도 이런 것이 없다.^^; 그 다짐의 내용을 소개한다.


하나, 나는 올바른 이상을 세우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하나, 나는 한결같음과 너그러움을 지닌다.
하나, 나는 건설적인 휴머니즘을 지향한다.
하나, 나는 진리탐구에 헌신하며 깨달은 것은 실천한다.
하나, 나는 끊임없이 사유하며 비판해서 그릇된 것을 고쳐 나간다.



1.
나의 이상주의는 1996년 1월 14일, 즉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뜬금없이 떠올랐던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는 꽤나 적극적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를 ‘익구의 사회철학’이라고 거창한 포장을 하며 기리고 있고 1월 14일을 ‘사색의 날’로 지정해 개인적인 명절로 지정하고 있다) 올바른 이상이란 ‘인간의 행복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라는 단 하나의 전제조건을 두었다. 나는 이상을 세우는 것보다는 그것의 실현에 더 무게를 두었다. 그래서 현실과의 타협이 내게는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상의 실현을 위해 이상을 계속 깎아 내려가고, 현실과 타협하기 때문에 이상을 실현해도 늘 아쉬움이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순수한 이상주의라기보다 ‘이상실현주의(理想實現主義)’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가끔은 현실주의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는 나의 이상실현주의이지만, 理想이라는 근사한 단어에 너무 일찍 중독이 되어 버려서 아마 쉽사리 던져버리지 못할 것 같다.


2.
한결같음, 너그러움의 두 가치는 내게는 이분법적 세계관의 기초가 되는 녀석들이다. 중학교 1학년 때 ‘한결같음’의 그 은은한 느낌에 넘어가서 평생의 삶의 좌표로 삼자고 호들갑을 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전을 위한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 가의 문제에 봉착했고, 원칙주의와 실용주의의 대립으로 보이거나, 나중에는 도덕주의와 합리주의의 논쟁으로 혼자서 끙끙 앓아댔다. 결국 실용주의, 합리주의의 이름을 걸친 ‘발전의 위한 변화’가 판정승을 거두면서 중학교 3학년 말 무렵에는 배보다 배꼽이 커져 한결같음보다 변화추구가 더 큰 가치가 되어버린 형국아 되었다. 이런 모종의 패배감(?)을 만회하기 위해 수입한 개념이 ‘너그러움’이다. 한결같음을 너그러움으로 보완하면 될 것이라는 전략이었다. (조금 삐딱하게 보면 그냥 내버려두고 좋게 좋게 보자는 것인지도...^^;) 결국 어설픈 봉합으로 말미암아 이런저런 실랑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한결같음과 너그러움, 변화에 대한 나의 정의는 대충 이랬다.


‘한결같음’이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지켜나가는 굳건한 신념을 말한다.
‘너그러움’이란 이해하지 못해도 인정은 해주는 다양성을 용인하는 관대한 정신을 말한다.
‘발전을 위한 변화’는 한결같음의 필수사항이므로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2001년 1월 14일판과 2001년 7월 17일 개정판이 동일)


여기서 발전을 위한 변화라고 굳이 길게 늘어 쓴 것은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변화를 용인하는 것일 뿐, 굳이 불필요한 변화는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변화에 두려움이 앞서며, 변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려는 노력을 뒷구멍으로 끊임없이 하는 것은 아마 이 때의 습속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한결같음에의 천착은 내게 있어 영광과 모멸의 양날의 칼이다.


3.
건설적인 휴머니즘에 대한 정의는 대략 이러했다.


건설적인 휴머니즘이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타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며,
상호간의 행복 추구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반폭력의 의지를 수호한다.
이는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는 올바른 개인주의와도 상통한다.
(2001년 1월 14일판)

건설적인 휴머니즘이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인간과 무연(無緣)하지 않은 것들에게 인간적일 의무를 지닌다.
타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상호간의 행복 추구에도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폭력을 단호히 거부하는 반폭력의 의지를 수호한다.
이는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는 올바른 개인주의와도 상통한다.
(2001년 7월 17일 개정판)


개정판에서 “인간과 무연(無緣)하지 않은 것들에게 인간적일 의무”는 루소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반폭력의 의지’ 부분에서 처음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개정판에서는 폭력을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것으로 조금 후퇴했다. ‘비폭력(非暴力)’보다 적극적인 개념인 ‘반폭력(反暴力)’이라는 단어를 계속 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너무 극단적인 반폭력주의를 실현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완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다시 고쳐보라고 한다면 반폭력字도 던지고 ‘가능한 비폭력을 사용한다’ 정도로 대대적인 후퇴를 할지도 모르겠다. 건설적인 휴머니즘은 결국 개인주의를 말하려고 한 것이다. 개인주의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이렇게 치졸하게 돌려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개인주의라고 하지 않고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는 올바른 개인주의’라는 수식어를 치렁치렁 달은 것도 개인주의를 떳떳이 등장시키기 힘든 척박한 집단주의 풍토를 자각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라고 외쳤다지만, 나는 “개인주의가 휴머니즘”이라고 외쳤다. 물론 키에르케고르의 “주체성이 진리”라는 외침처럼 실존주의는 결국 개인주의와 맞닿는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하간 요즘은 “자유주의는 휴머니즘”이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주의보다는 눈총을 덜 받아서 좋은 것 같다.^^;


약간 샛길로 빠지면... 익구의 개인주의적 전통을 엿볼 수 있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하나는 ‘일부 선행 개방’이라고 하는 것인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나는 남을 위한 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참 고약한 심보다^^;) 선행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를 위해 쓰기에도 바쁜 것이라고 생각했다.(당시에 나 좋은 일 하는 것이 善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책도 좀 읽고, 학교 선생님들의 끊임없는 훈육을 접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게 된다. 타인을 위해서 착한 일을 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일부 선행 개방’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즉 나에게만 쓰던 선행을 남들에게도 좀 나누어주자는 정책이었다. 유치찬란한 어린 시절의 흔적들이지만 나는 여기서 개인주의의 떡잎을 발견했다. 또 다른 하나는 ‘개인 소국가론’이었다. 이건 말 그대도 개개인은 하나의 국가라는 인식론이다. 한참 뒤에 스토아 학파의 개인은 소우주라는 말을 듣고 “이건 내 것인데...”라며 2000여 년 전에 선수 당한 것에 대해 배 아파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쩌면 어쩌다가 스토아 학파 내지 그 비슷한 이야기 주워듣고 그 변주곡을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때의 인식 틀이 남아서 친구관계를 비롯한 대외적 관계를 아직도 ‘외교’라고 칭하는 것이 그 당시의 언어들 중에 아직도 남겨진 거의 유일한 것이다.


4.
진리탐구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진리탐구에의 헌신이란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이며, 지적 성실성을 그 방법으로 한다.
또한 호학(好學)이념을 발전시킨 낙학(樂學)이념을 이른다.
지혜는 배운 것을 실제 행동에 옮기는 고귀한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성립한다.
(2001년 1월 14일판)

나는 지적으로 순수하고 성실하며, 학문적으로 진실 되고 당당하도록 한다.
지혜는 배운 것을 실제 행동에 옮기는 고귀한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성립한다.
실천하지 않는 지성은 참다운 지성이 아니다.
(2001년 7월 17일 개정판)


‘낙학 이념’이란 논어의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에서 연유한 개념으로 큰 의미는 없다. 개정판에서 보이는 ‘실천지성(實踐知性)’은 칸트의 ‘실천이성’에서 따온 것은 쉽게 눈치 챌 수 있으리라. 진리탐구에 헌신한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은 것은 학생이라는 신분이 크게 좌우한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다고 학교공부에 충실하자를 내걸기는 너무 볼품 없지 않는가.^^;


5.
지금 생각해보니 네 번째 다짐과 유사한 점이 많다.


나의 사유는 인문학적 소양을 토대로 하며, 정의와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비판하고 고쳐나가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 입각하여 행한다.
(2001년 1월 14일판)

나의 사유는 진보적이며, 정의와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비판하고 고쳐나가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 입각하여 행한다.
나의 사상과 양심에 따라 시대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
(2001년 7월 17일 개정판)


처음에는 ‘인문학적 소양’을 토대로 한다고 했다. 아마도 당시 나를 지배하던 철학적 감수성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한 것 같다. 개정판에서는 ‘진보적 사유’를 한다고 했는데, 이것 또한 진보의 세례를 받은 여진(餘震)에 휘감겼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내가 골수 진보주의자인 줄 알았으니 이념의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했다^^;) 본의 아니게 인문학적 소양은 ‘순수’라는 가치를 대표했고, 진보적 사유는 ‘참여’라는 가치를 대표했다. 같잖게도 순수와 참여의 대립각을 나도 흉내내보고 싶었던 것이다.^^; 책상머리에서 잡생각을 하는 것이 유일한 유희였던 고3 수험시절에 나는 가장 급진적이었고, 소위 진보로 굴레 지워지는 생각들에 많이 젖어 있었다. 이 놈의 지긋지긋한 수험생 신분을 벗어 던지면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참여하며 살겠다며 이런저런 공약들을 쏟아 부었지만, 나답지 않게 너무 뜨겁게 타올랐든지 얼마가지 않아 식어버렸다. 열정이 한바탕 휩쓸고 간 후로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몸서리만 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새즈믄해 큰다짐]은 자구 하나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할 정도로 정성을 쏟아 부은 것이지만, 정작 그 실천이 제대로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악한 한 장의 다짐은 나의 성장이 함축되어 있고, 나의 목표가 반영되어 있는 소중한 녀석이다. 6(^.^)9
Posted by 익구
:

(대학 새내기 시절 날림으로 읽고 썼던 장자 독후감... 고작 이런 횡설수설 쓰는데 12시간 동안 컴 앞에서 거의 자리를 뜨지 않고 자판만 눌러대던 참으로 그리운 집중력을 발휘했던 기억이 납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서평으로도 올렸습니다)


[양심 있는 개인주의자 - 장자를 읽고]

  ‘장자’하면 내가 떠오르는 것이 하나가 있다. 아내의 죽음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 그것이다. 어찌 아내의 죽음에 노래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는 답한다. “괴로움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아무 것도 거리낄 것 없는 즐거운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어찌 울고불고 하고 있겠는가?”라고. 이렇게 죽음을 계절이 변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대인의 풍모가 내가 장자에 들어가기 전의 편견 아닌 편견이다.


  장자를 읽고 가장 먼저 든 느낌은 “난감함”이다. 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말을 잠시 빌려 표현한다는 장자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을 보인 것인지도 모른다. 장자에는 우화와 비유들이 가득하다. 공자가 등장할 정도로 별의 별 사람들이 등장하고 숱한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것을 가만히 읽고 있자니 머리가 아플 정도다. 주인공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도 없어 보인다.


  장자는 내편, 외편, 잡편으로 이루어졌다. 대개 내편은 장자의 저술로, 외, 잡편은 후대의 저술로 본다. 그런 외, 잡편이 우화로 이루어져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한 반면 내가 건드린 내편은 난해한 사상으로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뭐 100% 이해를 목표로 한 것도 아니었기에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내가 알 수 있는 만큼만 장자를 음미해 보려한다. 노자도 知足不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편에 속하는 2편 제물론을 중심으로 나의 장자 읽기를 풀어보겠다.


  이제는 식상하기 조차한 “반잔의 물”비유를 꺼내보자. 그 반잔의 물을 보고 하는 말을 두고 긍정적,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물이 반 밖에 없네”라는 반응보다는 “여기 물이 반이나 있잖아”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는 암묵적인 강요도 덧붙여서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물 반잔을 놓고도 사람을 나누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장자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여기 물이 반 있구만...” 어떠한 가치판단을 버리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을 기르라는 장자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말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장자의 말에 동의한다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여기 오이 한 접시가 가득 있다고 하자. 나같이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잘 씻어서 아삭 깨물어 먹고 싶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피부미용에 관심이 많다면 오이마사지를 떠올릴 테고, 달팽이를 키워 본 사람은 오이를 썰어서 달팽이 먹이로 주고 싶을 것이다. 이처럼 똑같은 오이를 두고서 사람마다의 반응이 다르다. 그런데도 장자의 말대로라면 “오이 한 접시가 있네”라고만 말하고 만다는 것인데 과연 합당한 것인가?


  어떤 사물이 있는데 그것의 가치판단을 넘어 그저 있는 그대로의 실체로만 바라보라는 그의 말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것인가? 칸트는 자신의 인식론을 기존의 인식론을 획기적으로 뒤집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유하며 말했다. 다시 말해 이전의 인식론은 주어진 명백한 대상을 놓고 우리가 인식해 가는 것이었다면, 칸트의 인식론은 그냥 주어진 대상을 우리가 여러 가지 범주를 이용하여 능동적으로 인식해 낸다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는 것임에도 말만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든 ‘오이의 비유’가 바로 칸트의 인식이론에 따른 것이다. 칸트는 자신의 인식이론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부르며 자화자찬(?) 했지만 2000여 년 전의 장자는 이런 칸트의 노력조차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물 반잔의 비유’에서는 그저 “물 반잔이 있네”하고 담담히 바라볼 수 있던 내 눈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칸트의 인식이론을 들먹이며 다시 생각해보니 장자의 말이 영 신통치 않아 보이는 것도 결국 나 또한 어떤 가치에 빠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된 것이다. 또한 장자와 칸트를 놓고 누구의 견해가 옳은 것인가 따지는 것마저도 장자의 입장에서는 부질없는 짓이 되어버리니... 독자를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보아 아마 장자는 독자중심의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 것 같아 보인다.^^;


  논의를 더 확장시켜보자.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고사가 있다. 장자는 원숭이의 비유를 들면서 따지고 이해득실이나 따지는 세계를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다. 한 쪽에 치우치지 만도 않고, 독단과 독선에 빠지지도 않으며, 양쪽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하늘의 고름(天鈞)’에 머무는 것, ‘두 길을 걸음(兩行)’이라고 말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부산하게 좇아 다니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그러하다고 받아들이라는 것을 다른 표현을 들어 연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원숭이의 눈으로 보자면 두 길을 걸으라는 이야기는 줏대 없는 회색분자일 따름이고, 무책임한 양다리 걸치기 같아 보인다. 참 힘든 노릇이다.


“자네에게 묻겠네.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허리가 아프고 반신불수가 되겠지. 미꾸라지도 그럴까? 사람이 나무 위에서 산다면 겁이 나서 떨 수밖에 없을 것일세. 원숭이도 그럴까? 이 셋 중에 어느 쪽이 거처에 대해 바르게 안 것일까?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을 달게 먹고, 올빼미는 쥐를 좋다고 먹지.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이 맛을 바르게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구절은 내가 장자를 통틀어 가장 감명을 받은 구절 중에 하나다. “인의니, 시비니 하는 것들은 이렇게 주관적이라서 번잡하고 혼란한데 내가 어찌 이런 것이나 따지고 있겠느냐?” 는 장자의 말이 익살스럽다. 오이의 비유에서 말했듯이 사람마다의 반응이 천양지차인데 어느 것이 옳겠느냐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표현을 빌린다면 비틀즈의 “Let it be"라는 것이다)


  짧은 소견으로 대략 결론을 내린다. 장자는 오이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견해만을 옳다고 목소리 내지 말라는 것이다. 인의니, 시비니 하는 것도 환경과 상황에 따라 형성된 특수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보편타당한 진리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선악, 미추, 우열, 귀천의 분별은 그 누가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며, 그런 것에 매여 살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석연치 않은 점이 남는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인의나 시비의 분별을 거두라는 것이라면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장자의 말대로 라면 그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만 외치다 끝나는 것 아닌가. 소국과민(小國寡民)이 아니고서야 오늘날의 방대한 규모의 조직과 단체에서는 어느 하나로의 선택의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까. 이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다수결’에 대한 장자의 생각을 찾아 뵙고 묻고 싶다. 장자의 견해에 따르면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했으니, 많은 의견 중에서 어느 하나로 선택되는 것은 억지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다수결의 논리는 필요악이라고 말씀하실까? 아니면 다른 비유로 나를 깨우치게 하실까?


  죄송하게도 다시 칸트를 들먹인다. 칸트는 위에서 말한 인식론으로 지각한 내용으로 판단한 것이 ‘물자체’와 일치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각내용과 물자체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칸트의 상대주의에 대한 대목에서야 비로소 장자와의 공통점을 찾은 것 같다. (온갖 인위로 점철된 유사점 발견이다) 장자와 칸트는 절대주의를 부정했다. 다양한 가치와 인식이 공존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기 일쑤인가? 그것은 자신의 인식과 가치, 자신이 믿는 바가 ‘자기자신’이라고 하는 특수한 범위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나는 이런데 너는 왜 안 그래?”라는 오만한 논리로 무장하는 것이다. “우리 때는 이랬는데 요즘 것들은 그렇지 않아.” “나는 군대 가서 힘들게 고생했는데 너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외치면서 왜 안 가려고 해?” “누구는 재수하느라 고생인데 너희들은 대학 갔다고 주말마다 만나서 노냐?” “그 사람은 내가 봤을 때 정말 아닌데 넌 왜 자꾸 그 사람이랑 사귀려고 하는 거야?”... 이런 식의 숱한 이야기들이 결국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고서 남을 나에게 맞추라는 폭력이 되어 나타난다. 이것이 장자가 상대주의, 다원주의를 옹호하면서도, 저가 잘났다고 우기는 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의 편협성에 질려 시비를 가르는 것을 그토록 혐오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잣대로 남을 재단하려고 하는 오만을 부리는 것, 그것을 장자는 거부한 것이다.


  이제 다른 이야기를 살펴보자. 장오자가 여희라는 미녀가 처음에는 대궐로 가기를 슬퍼하다가 왕과 함께 호의호식하자 울었던 일을 후회하였다는 말을 하면서, “죽은 사람들도 전에 자기들이 삶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여희가 처음에는 집을 나서는 것을 싫어했지만, 새로운 세상에 가서 호강을 하자 집을 떠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듯이, 우리의 삶도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확장시켜보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금에 익숙한 나는 다른 알지 못하는 나로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생무상하고 끊임없이 우리는 변화에 놓이게 된다. 예전의 나가 편해질 만 하니까 무상한 세상이 다시 나를 다른 곳으로 가라고 떠미는 격이다.


  대학 새내기만의 특권으로 ‘사월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는 3월 한달 정신 없이 지내고 4월을 맞이하고 보니 막상 기대하고 있던 대학에 대한 회의 같은 것이 몰려와서 이런 저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나를 포함해서 사월증후군에 시달리는 이 들에게 장자가 짐짓 이렇게 타이르지 않을까? “고민만 하고 눌러 앉아 있지 말라”고. 충분한 고민과 성찰 뒤에는 자기 속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시련을 헤쳐나가서 새로운 나를 찾아가라고 말이다. 삶의 모든 일들은 무상하기만 하다. 그러나 무상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깨닫고,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행복할 수 있을 수 있지 않는가! 이 ‘무상의 역설’을 우리는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유명한 ‘나비의 꿈’을 살펴보자.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정녕 알 수가 없다. 지금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인생이 한바탕의 꿈이라면 참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설령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다 할지라도 일단은 모두 진실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 수 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끝내 지금의 삶이 꿈이었다고 해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것이 장자의 주장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된다. 나비가 되었으면 열심히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고 장자가 되었으면 열심히 자기 주장을 펼치라는 것이다. 사족이지만, 얼마 전 소개받은 과학이야기가 떠오른다. 이야기인즉슨, 두 입자가 거리와 무관하게 결합되어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얽힘현상’으로 조그만 양자의 세계에서는 물체의 원격이동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내가 여기 있지만 한순간에 저기 있는 것이 가능 할 것이라는 얘기다. 장자가 설마 이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지금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본 제물론의 주제인 ‘제(齊)한다’는 것은 ‘하나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하나’는 전체주의적인 획일화가 아닌 다양함이 존중받고 어우러지는 하나됨을 말한다. 좁은 시야에서는 구별되어 보이는 개개의 사물들이 크게 보면 하나로 통일되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자꾸 분리하고 구별해대지만, 크게 보면 모두 같다는 깨달음이다.


  장자는 ‘어느 쪽이 바르게 알겠는가’ 라는 물음에서 핏발 세우며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도 옳을 수 있는 상태를, 여희의 이야기에서는 지금의 나를 고집하지 않는 절대적 자유경지를, 나비의 꿈에서 가치적 편견과 주관적 독선에의 초월을 노래하고 있다.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로 통한다. 오리다리가 짧다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나무랄 것이 아니라, 그대로 자유롭게 노닐도록 두는 여유를 장자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다수결을 언급하면서 장자가 현상을 탁월하게 분석했지만 대안제시에는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장자는 이렇게 그럴듯한 해결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자는 참으로 ‘양심 있는 개인주의자’라고 평해본다. 남을 철저히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행복의 극대화를 위해 편견의 벽을 허물고 상식의 틀을 바꾸는 부단한 노력을 하는 그에게서 대자유를 느낄 수 있다.


  달팽이 뿔 위에서 아옹다옹하는 우리들에게 장자가 엷은 미소로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하다. “허허... 좀 더 너그러워 지면 될 것을...”

Posted by 익구
:
(아래 [빌린 것은 깨끗이 쓰자]와 마찬가지로 교양국어 과제물을 조금 다듬어 올린다.
아래 [빌린...]이 환경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했다면
이것은 그것에서 좀 더 나아간 세부적인 입장 표명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무분별한 녹색바람을 경계한다]


   인도의 종교 중에 자이나교가 있다. 자이나교는 엄격한 계율로 말미암아 대중성을 잃고 신도가 적게 되었다고 배웠다. 자이나교 신도들의 유명한 행동이 바로 땅위의 개미라도 밟을까봐 조심조심 걷는 행동이다. 비살생의 도리를 다하는 그들의 노력이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작은 세를 유지하는 것도 어쩌면 스스로 자초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원광스님이 왜 세속오계를 만들어야 했던가? ‘불살생’인 불교의 교리를 몰랐을 리 만무한데, ‘살생유택’이라는 파계(?)를 감행해야 했던가. 이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에 시달리는 민중들을 위한 배려였으며, 스스로 낮춤이었다. 환경보호에 대한 문제에서 이 둘의 대처방안이 어떤 시사점을 주는 듯하다.


   고3 때 입시를 위한 면접을 준비하면서 중요한 시사 상식으로 배웠던 ‘가이아 이론’이 떠오른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대기, 해양, 지표의 바위 등 환경계와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로 이뤄진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한다. 연일 환경오염에 대한 기사들을 접하는 나로서는 가이아 이론은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 할 삶의 양식이라며, 역시 진리는 소박한 것이라며 칭찬해 마지않았던 것이다. 이 이론이 뜨게 된 이유는 인간이 지구를 남용함으로써 유기체 전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지구와 인간은 하나의 유기체라는 매혹적인 이론은 환경오염에 고민하던 많은 이들의 가슴을 환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우리 주위의 많은 환경주의자들은 환경운동을 “모든 생명체는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운동”이라고 보고, 그 안의 인간을 “욕망을 가진 동물이다”라고 규정한다는 점에서 가이아 이론과 관련성을 갖는다. 이들은 덧붙여 “산업혁명이 환경파괴의 출발이었다”라며 과학문명을 비판한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세상살이의 묘미와 불행이 다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산업혁명이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한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발전이 아니었다면 지구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투쟁의 결과 폐허로 변했지 않을까? (공산주의 실험을 볼 때 인간은 생각보다 더 이기적이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객관성과 합리성 등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의 최대한 활용만이 환경문제를 줄이고, 발견하고, 해결할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살리기 위한 어떤 실질적 처방도 내리지 않은 채 인간에게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죄의식과  죄 값만을 강요한다. 자이나교 신도들이 “너희들은 하찮은 미물의 생명을 등한시하는 못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가졌을 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우월감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설법의 호소력은 내려갔으리라.


   “아류 생태주의는 몸에 해로운 만병통치의 비책을 찾으려 한다. 그들은 먼 과거의 신화적 정신성에 의지하던 직관주의를 찬양한다. 그것은 인간 이성을 부정하고 범신론적 ‘우주적 자궁’에 스스로 파묻혀 몽롱해진 결과가 아닐까?”
- 머레이 북친, [휴머니즘의 옹호], 18쪽 발췌



   이제 환경보호에 대한 화두를 반대하는 이는 거의 없게 되었다. 다만 환경에 거스르지 않는 개발이 어느 정도일 것인가는 논의하는 수준이지 환경보호를 부정하기는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것은 환경 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노고가 무척 크다. 그들이 환경오염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환경의 훼손을 막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말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일부 환경주의자들에게서 보이는 모성적 자연에 대한 신앙, 다시 말해서 환경은 인간이 범할 수 없는, 인간의 가치에 의해 결정될 수 없는 ‘본질적 가치’를 지녔다는 믿음에는 고개가 저어진다. 자연을 그렇게 신격화 시켜놓고 우리 모두를 원죄의식에 시달리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완전치 못한 동물이라 자꾸 구박만 하면 오히려 더 안 하게 된다. (공부하라는 잔소리 들으면 더 공부하기 싫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요즘에는 환경보호의 강력한 논거로 이걸 보호하면 경제적 효용이 더 높다거나 하는 것을 드는 경우가 많다. 무척 잘하는 일이다. 환경 운동가들은 시민을 자꾸 환경파괴범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당근을 보고 좇아가도록 해야 한다. 조금 구차해 보이지만, 뭔가를 지키거나 뭔가를 바꾼다는 것이 그저 고고한 자세만으로 되지 않지 않던가.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절약하기 위해 변기 탱크에 벽돌이나, 패트병을 넣어야 한다고 한창 유행이던 적이 있었다. 마치 그것을 안 하면 물낭비의 원흉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대변과 소변을 구분해서 물의 양을 조절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소변을 볼 일이 많으니,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보면 물이 절약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괜히 변기 탱크에 팔 걷어붙이고 벽돌이니, 패트병이니 넣고 환경보호에 뿌듯해 하는 모습보다는 더욱 편안하게 환경보호를 하는 것 아닐까?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벽돌이나 패트병을 넣어두면 대변 볼 때는 물이 적게 내려가서 가끔 막히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휴지를 적게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자꾸 이런 이야기만 하니 내가 무슨 환경방임주의자(?)가 되어버린 듯 하다. 나 또한 환경보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우리 국민들이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환경보호가 상식으로 체화된 사회 분위기를 위해서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그 다음에 방법론의 차이에 대해서 논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인간을 ‘자연계에 붙은 암세포’ 정도로 규정하는 일부의 인식은 너무나 反휴머니즘적이다고 지적하고 싶다. 비록 내가 ‘인간중심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인간마저 휩쓸어 버리는 녹색바람(?)에는 비판을 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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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새내기 시절 교양국어 시간에 냈던 수시과제물을 조금 다듬어서 올린다)

[빌린 것은 깨끗이 쓰자]


  지구를 귀중히 다루어라. 지구는 부모가 당신에게 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들의 어린이에게서 빌린 것이다. - 케냐의 속담


  환경오염이 위험수준에 달했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하도 많이 듣다보니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는지 웬만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고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게 된다. 얼마전 ‘생태맹(ecological illiteracy)’이라는 개념을 듣고 무릎을 쳤다. 생태맹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신비함과 풍성함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전영우 국민대 교수(산림자원학과)는 “천부적으로 물려받은,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우리의 정신적 능력이나 우리 자신이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감성이 결여된 상태가 바로 생태맹”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우리의 사고와 의식으로부터 자연이 사라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올 여름(2002년) 최악의 수해피해를 낸 태풍 루사가 난개발과 부실관리 등 환경파괴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연의 정복자인 인간이 벌이고 있는 과학 문명의 잔치 마당에서 지금 자연이 인간에게 반격의 포문을 열기 시작한 것인가? 우리가 정복한 자연이 이제 우리를 불안과 공포 속에서 몰아넣고 있다. 과학 문명은 인간을 물질적 빈곤, 추위와 더위,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오늘날 첨단 과학 기술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까지를 우리에게 안겨주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간의 물질적 소유욕과 그러한 인구 증가가 무한한 데 반해, 자연이 제공하는 자원은 물론 지구의 물리적 공간에는 한계가 있다. 골프를 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산을 깎지만, 지구상에 산은 그렇게 남아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과학 기술의 위대한 공적과 문명의 진보를 규탄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한계와 진보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과 문명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인간은 지구의 살인범으로, 자연과 더불어 화석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사고 양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가치관과 세계관의 지각 변동과 같은 혁명이 절실하다.
- 박이문, [과학 문명과 자연의 반격]中



  이제 ‘지속 가능한 개발’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속 가능한 발전 문제의 현실적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막연한 일로 여김으로써 실천적 논의가 미흡한 것 같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볼 때, 이 패러다임은 이미 유토피아적 논의를 넘어 21세기 지구 공동체의 최대 실천과제로 확산되고 있다. 유엔과 유럽연합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나라에서 미래 건설의 기본 틀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무역규제와 보조금 삭감 등 실질적인 행동계획이 점차 강화되는 추세임을 볼 때, 지속 가능 발전 문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이고 착실히 대처하는 노력이 긴요하다 할 것이다.


  이 개념은 “경제가 희생되더라도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환경 지상주의적 이상론이 아니다. 지속 가능 발전 패러다임은 결코 경제성장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며 경제, 환경, 사회의 동시적 균형발전을 추구하고, 이를 통하여 후손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자는 개념이다. 지나친 환경주의로 경제가 손상된다면 그것은 지속 가능할 수가 없다. 나아가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하는 환경보전과 사회발전도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식량, 물 등 기초자원이 제약된 자원부족 국가이며 세계적인 인구조밀 국가다. 국토가 좁아 환경오염이 발생했을 때 자연정화 능력이 극히 제약된다. 이는,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필요성이 그 누구보다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부터라도 지속 가능한 발전에 관한 실천적 인식을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발굴하여, 우리 경제,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착실히 높여 나가야 하겠다.


  비록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화두에는 조금 빗겨서 있어 보이지만, 1854년 미국대통령에 의해 파견된 백인 대표자들이 땅을 팔 것을 제안한 것에 대한 미국 서부지역에 거주하던 인디언의 추장 시애틀의 답 글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그는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라고 했지만, 오늘날에는 마실 물을 사먹는 것이 일상적이고 공기까지도 돈을 내고 즐겨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또한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라고 했지만, 우리는 강의 오염을 걱정하는 척하면서도 쓰레기를 던져대기를 그치질 않는다. 오죽했으면 그가 문명인들에게 이런 경고까지 내리게 한다.“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야만인이라고 칭했지만, 도시적 안락함에 자연과의 교감을 내팽개친 우리는 얼마나 야만인의 혐의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논거를 제공한다는 ‘경제논리’를 이용해서 환경보호의 의미를 설명해야겠다. 회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나오는 회계방정식이 ‘자산 = 부채 + 자본’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연을 자본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원래 자기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걸 잘 굴려서 이익을 남겨 먹을까를 궁리한다. 그러나 위에서 인용한 케냐의 속담이 잘 말해주듯이 자연은 엄연히 우리의 부채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등장하면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할 빚이란 말이다. (사실 인간세상에서 엄밀히 자본이라고 칠 만한 것이 자기 몸뚱이 빼고 뭐가 있을까 생각된다. ‘차마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세상 모든 재화는 결국 빌린 것일 따름이다.)


  이자는 쳐서 주지 못할망정 원금마저 깎아먹는다면 정말 상도덕(?)에 어긋나는 처사일 것이다. 상도덕도 지키지 못하면서 경제적 이윤을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면 후안무치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마저도 먹히지 않는다면 자연을 더럽히는 일이 결국에 손해보는 장사가 된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전략을 쓰자. 시애틀 추장이 그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었다. 6(^.^)9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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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계승해야 한다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투신 자살은 경악스럽고 슬픈 일이다.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이어 대북사업을 총괄지휘하던 그의 죽음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한 인간으로서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한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그의 죽음에 대해 정치인들은 저마다의 잇속에 맞는 해법을 내어놓고 다투는 모양이지만 결국 비극적 분단 현실과 우리간의 갈등이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제 많은 의문과 추측을 뒤로 한 채 떠났다. 이제 못다 이룬 남북 경제협력 사업의 이어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여기서 다시금 현대의 대북 사업을 돌아보게 된다. 그간 숱한 화제를 모으며 하나하나 추진되었던 현대의 대북 사업은 금강산 관광도 계속 적자가 누적되고 있으며, 대북송금 특검으로 말미암아 기업의 이미지도 실추되는 등의 여러 가지 위기에 봉착했다. 경제논리로 바라보자면 단기적으로는 남는 것 없고 고생하고 욕만 먹는 장사다. 하지만 이런 현대의 희생이 남북 화해의 분위기 조성의 밑거름이 되고 국가적으로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득을 얻었다.


험난한 길을 개척하는 이들에게 쏟아지는 부당한 비난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손해보는 장사하고 있는 것을 격려해주지는 못할망정 의심의 눈초리가 너무 따가웠다. 평화를 위한 투자에 손익계산을 일일이 따지려는 조급증을 버리고 은근과 끈기로 차근차근 한반도의 비극을 해결해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두 가지 사안은 분명하다. 하나는 대북 경제협력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대북 사업에서의 현대의 기여를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가 조금 밑지는 장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분단 현실을 극복하려한 것에 대한 응분의 보상으로서 크게 보아 상도덕을 확립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상도덕을 세우기도 전에 이득부터 내려는 본말의 전도를 이제는 끝내자.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서민들의 자살에 이어 굴지의 재벌 회장의 투신 소식은 이 사회가 얼마나 불안한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배려 없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횡행하며 극한 대립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혼돈 속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려는 선량한 사람들이 애꿎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합리적 사회 시스템 구축과 상대방을 인정하려는 관용의 문화 확산이 시급하다.


죽음은 허무할지 모른다. 그러나 삶은 허무해서는 안 된다. 살아가는 자들은 결국 이 땅의 현실과 맞서는 수밖에 없다. 우리 앞의 모순과 혼란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켜 가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싸움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그 누군가의 희생으로 진보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다같이 조금씩 나누고 다투면서 천천히 돌아가며 진보하는 사회를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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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기 1부

문화 2003. 8. 1. 03:52 |
(2003년 7월 21일부터 6박 7일의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익구가 허접한 여행기를 써봤다)

21일 밤기차로 출발해서 27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싣기까지 6박 7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여행은 어쩌면 집의 소중함을 느끼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밖으로 나다니는 것에 엄청난 에너지 소진을 느끼는 녀석에게는 이번 여행은 참으로 각별한 감회에 휘감기게 한다. 아직도 여독이 덜 풀렸는지 자꾸만 늘어지는 나른한 몸을 추스르며 조촐한 여행기를 열어본다.



일주일간의 여행이 시작되는 7월 21일에는 마냥 늑장을 부렸다. 밤 11시 40분 기차다보니 낮잠에 흠뻑 취해 있다가 주섬주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약속시간인 4시를 훌쩍 넘겨 5시가 더 넘어서야 약속장소인 학교에 겨우 도착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며 조금은 축축한 날씨가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함께 떠날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이래저래 시간을 때우다가 9시 즈음에서 출발지인 서울역으로 향했다. 호남선을 타는 것은 처음이라서 약간 설레는 마음을 가져보려고 했으나 역시나 그다지 설레지는 않는다. 재미난 것은 무궁화호를 탄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고등학교 엠티 간답시고 통일호 입석에 시달리다가 안락한 무궁화호에 몸을 실을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피식 웃어 보였다. 새로운 여정에 대한 설렘보다는 보다 편안한 기찻길에 대한 만족이 지배하는 나를 애써 부정하지 말자.



11시 40분이 되어 목표행 무궁화호 열차가 출발하였다. 심야 기차라 제법 운치를 느껴보려고 했으나 차창에 비추는 야경은 그리 멋있지 않았다. 나름대로 멋을 내려고 책을 펴들었으나 조명이 너무 어두워 서문만 눈에 힘주고 읽다가 집어넣고 스르르 잠을 청했다. 대전 근방을 달리고 있을 때 눈을 잠깐 떠보니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잠시 창 밖을 응시해봤으나 선로 밖의 풍경은 어둡기만 했을 뿐,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어서 시흥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또 졸음에 호응했다. 어느덧 충청도를 지나 전라도로 접어들었다. 그제서야 내가 호남선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열차 안의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열차에서 호남사람들이 꽤나 있음을 느꼈다.



친가, 외가가 모두 영남이고 비록 5개월 살다가 서울로 올라오기는 했지만 나도 엄연히 대구가 고향이다. 솔직히 호남사람들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접하지는 못했다. 애써 부정하지만 나도 조금은 호남에 대한 편견에 물들어 있다는 반증일까. 갑자기 무슨 적진에 뛰어든 사람마냥 경계심이 마구 발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생김새를 관찰하며 뭔가 트집을 잡을 것이 있나 승냥이처럼 눈을 돌려대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괜한 긴장을 품고 있는 눈에 힘을 빼고 창 밖을 국면전환용으로 돌아봐야 했다. 그간 내게는 없다고 믿고 있는 영남인으로서의 프레임이 사실은 없던 것이 아니라 애써 감춰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호남지방에 발을 디딘 적이 없었다. 지역주의 타파를 입으로 외치고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하며 정서적으로 半호남인이라고 여기던 내가 보였던 경계의 눈초리는 처음 달리는 호남선의 공기만큼이나 낯설었다. 전라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질타하던 나는 내 실존의 떨림 앞에 무척이나 놀랐다. 역이 몇 개 지나쳤지만 개운치 못한 기분이 계속되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즐거운 여행길에 이게 웬 낭패란 말인가. 궁하면 통한다고 약삭빠른 잔머리가 다행스레 작동해주었다. 결국 미묘한 낯설음과 찌푸림에 관대하지 못할 정도로 호남에 대한 애정이 두텁다는 해설을 늘어놓았다. 지역차별의 굴레와 부당한 인식 앞에서 半호남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유효하다는 다짐까지 하는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이 날의 다짐은 분명 무언가 부재 하는 것을 메우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잠결에 괜스레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나니 잠이 확 달아나서 좀처럼 눈을 붙이기가 힘들었다. 결국 아무런 생각 없이 차창을 바라보며 어둠을 벗하는 수밖에 없었다. 22일 새벽 5시 15분에 종착역인 목포역에 당도했다. 아침 9시 제주도로 가는 배를 기다리기까지 무척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북적이는 여객선 터미널의 습한 기운에 한창 시달리고 있을 때 다행히도 승선 시간이 되었다. 무척이나 큰배에 올라타 제주도를 향한 바닷바람을 맘껏 쏘이니 무척 유쾌했다. 배의 속도와 바닷바람이 합쳐지면서 무척이나 강한 바람에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지만 갑판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 들였다. 그러나 바람은 무척 세차게 불었고 비까지 조금 쏟아져서 재빨리 사진 몇 장을 찍고는 3등 객실로 돌아왔다. 배 멀미는 없었지만 배의 흔들림에 책을 읽기는 불편해서 머리맡에 두고 몸을 누이니 기차에서 말끔히 없애지 못한 졸음 녀석이 찾아왔다. 차멀미, 배멀미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런 것은 없다. 다만 졸음이 그 자리를 대체할 뿐이다.^^



오후 1시 30분이 되어 제주도항에 도착했다. 한나절을 소비하며 달려온 제주도에 발을 디디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비행기를 타는 것과의 손익계산이었다.^^; 왕복하면 거의 하루 꼴이 되는 제주도 길은 조금 비싸지만 시간을 현격히 줄일 수 있는 하늘길을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남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주판을 굴려댔다. 제주도항에서는 제주 하이킹 직원분이 나와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참 잊고 있었다. 제주도를 온 목적이 자전거 하이킹이었다는 것을. 자전거라고는 초등학교 시절 잠깐 타본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에 몸서리치기 시작했다. 뜨아아~ 여기서 한 명의 친구가 더 합세해서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일행이 되어 페달을 밟으러 제주 하이킹 본부로 향했다.



여기서 함께 온 친구들을 소개해야겠다. 세일. 그는 대학 새내기시절 2학기가 되어서 알게 된 친구다. 내 기억으로는 세일이가 먼저 반갑게 아는 척을 해주면서 가까워지게 되었다. 본인은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자책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소수의 친구들에게 진정으로 잘 대해줄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친구다. 원혁. 그는 세일이와 단짝으로 같이 다니다보니 세일이를 알게 된 뒤 함께 알게 되었다. 과묵하지만 그 뒤에 감쳐진 촌철살인의 능력이 대단하다. 세일이와 더불어 성실함으로 나를 감복시킨다. 병채. 그는 1학년 2학기를 휴학하고 뉴요커로 살다 왔다고 한다. 뭐 그 덕분에 아직도 대학 새내기 시절을 만끽하는 행복한 친구다. 세일, 원혁이랑 마찬가지로 어눌한 편이지만 무척이나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자존심도 강한 친구다. 병승. 원혁이 친구로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된 친구다. 다른 네 명과는 달리 무척 쾌활하고 이야기도 잘 풀어내는 친구다. 이 친구의 말들에 맞장구 치는 것만 해도 숨이 찰 정도로 여행기간 내내 활력을 불어넣어 준 친구다.^^



이렇게 네 친구와 나를 더해 다섯 남자들이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위해 뭉쳤다. 솔직히 난 자전거로 제주도 완주하려는 목표가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고 발을 동동 굴렀다. 짐짓 태연한 척 했으나 걱정이 태산같았다. 일단 두발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지부터가 문제 아닌가. 지금도 그렇지만 예체능 분야에는 천부적 무소질로 일관했던 나는 특히 운동 분야에서 그 특질이 두드러졌다. 내가 게으름을 예찬하고 집구석의 사색을 옹호하는 것은 운동을 싫어하고 몸을 움직이며 떨구는 땀방울에 대한 혐오감에 기인한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초등학교 시절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를 힘겹게 타다가 정말 어렵게 보조 바퀴를 떼고 두발 자전거를 타려고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이제 겨우 두발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즈음 자전거를 도난 당하는 바람에 그 후로는 자전거를 발에 대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 앞에 놓여진 두발 자전거의 압력이 나를 짓눌렀다. 뭐 그래도 한 번 타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거라며 격려해주는 친구들을 위해서도 이를 악물고 자전거에 올랐다. 몇몇 오르고 내리기를 씨름하다 페달에 발이 긁혀 생채기가 났다.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은 않고 얼른 자전거를 운전해야겠다는 일념에 휩싸였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친구들이 내 짐을 나눠서 들어주었다. 어찌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사람은 자기가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수준에서는 별다른 감정이 일어나지 않지만, 거기서 나아가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는 미안한 감정이 마구 솟아오르는 것 같다. 제 무능을 합리화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넘어 타인의 선행을 입을 때는 변명하기가 난처해지는 것은 그래도 낯짝 있는 인간의 도리다.



내 자전거를 더없이 가벼워졌지만 내 마음은 좀 더 무거워졌다. 자전거도 잘 못타는 주제에 짐을 왕창 챙겨온 내가 얄미웠다. 이런 미안함, 고마움을 달래기 위해 자전거 페달과 좀 더 익숙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덕분에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가 보였다. 물론 좀만 언덕이 있다거나 좁은 길이 나올 때면 자전거를 멈추는 바람에 일행의 속도를 자꾸만 떨어뜨렸다. 대학 새내기시절 현대기업경영 생산관리 파트에서 나왔던 명제가 나를 포함한 친구들의 머릿속에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가장 늦은 것은 전체 속도를 좌우한다” [더 골](The Goal)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행군폭을 최소화하면서 행군의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는 대열 앞에 있는 이들이 가장 늦은 녀석보다 속도를 더 내지 못하도록 하는 해법을 제시한다. 좀 더 응용하면 원자재 투입시기와 병목자원을 연결시키는 신호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각설하고.



어쨌든 그 개념들을 떠올린 친구들이 합심해 나를 선두에 두고 행렬을 줄이려는 숱한 노력을 하지만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임을 꽤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여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여정의 7할 이상을 내가 꼴찌로 달렸으니까.^^; 친구들에게는 추월의 쾌감을, 개인적으로는 절대고독의 시간을 가지게 하는 기회가 되었으니 그럭저럭 윈윈(win-win)전략이었다고 자부한다.^^ 몇 차례 오르막과 내리막을 접하면서 어느 순간 내가 그래도 자전거맹(盲)을 벗어버렸구나를 느끼게 된 계기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인식의 차이를 감지한 순간이다. 처음에는 가속이 붙는 내리막이 위험하기도 해서 브레이크에 손을 대고 긴장하며 가는 터라 싫었다. 그러나 몇 번 지나다보니 페달을 더 밟아도 영 신통치 않게 올라가는 오르막이 더 싫어지고 내리막을 기다리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견한다면 불경하다는 소리를 좀 듣겠다만...



일주도로에서 해안도로로 나가니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졌고 거기서 자전거에 완전히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평소 운동을 등한시하던 내 몸뚱이는 여기저기 피로감을 호소했다. 애완견 야니를 데리고 산책 다니는 것마저 없었다면 진작에 나가 떨어졌으리라.^^; 해안도로는 짠기운이 느껴지는 바닷바람이 선선히 불어왔다. 처음에는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도 눈길 한 번 주지 못했지만 자전거에 익숙해지면서 주위 풍경을 힐끔거리며 감상했다. 바다를 보면서도 달려가 발이라도 담그고픈 욕망이 거의 일지 않은 딱 그만큼을 나는 늙어버렸는지 모르겠다. 결국 이번 여행에서 지나친 숱한 해수욕장에서 발 한 번 담그지 않고 그저 파도만 감상하고 돌아왔다.^^;



오후에 출발한 길이라 벌써 어둑해지려고 하고 있어서 우리는 초조한 마음이었다. 서두르는 친구들의 바퀴 굴러가는 것을 따라잡지 못하던 나는 꽤나 뒤쳐지게 되었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급하게 달리다가 결국 옆의 풀밭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속도를 냈다고 해봤자 워낙 저속이었다 보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던 다른 하이킹 여행객들의 안부를 묻는 것을 접하니 얼른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왼쪽 발의 뜨거운 기운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 수밖에.



밤 9시가 되어서 한림읍 협재해수욕장 근처에 병승이가 아는 선배 집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뭐 다들 오랜 자전거와의 실랑이에 지쳤겠지만 나는 특히나 녹초가 되었다. 점심도 안 먹고 달린 터라 선배 집에서 만들어주신 국수 맛은 달콤했다. 저녁을 먹고 선배형과 병승이의 담소를 듣는 것으로 한참을 보냈다. 특히 술을 매개로 한 이야기들은 재미난 이야기의 단골소재이다. 기발한 술버릇 대목에서는 피곤에 찌든 표정들을 잊고 파안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대학 친구들과 비단 술자리가 아니라도 재미나게 보낸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반성되었다. 캠퍼스의 낭만이 사라진지 오래라 지만, 대학살이 알콩달콩 재미나게 보내는 이야기들 들으며 침만 흘려대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한바탕의 이야기마당도 파하고 잠자리를 정리하면서 세일이와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정말 도저히 완주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상황을 보고 둘이 빠져서 관광이나 하자는 것으로 대략 의견일치를 보았다. 세일에는 만약에 하는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무척이나 심각하고 딴에는 생존의(?) 절박함에서 우러나와 다른 여행 시나리오의 나래를 펼쳤다. 나 같은 자전거 초심자가 그래도 적어도 평균 이상인 자전거 실력의 친구들과 자전거 완주를 도모한다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라며 도덕의식을 들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일단 두 발 뻗고 쉬고 보자. 그러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리며 속삭여봤다.



‘그래, 모두 내일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서 생각하기로 하자. 그러면 견딜 수도 있을거야.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


--- 자전거를 벗삼아 떠난 제주도 여행기 2부를 기대하시라...^^
Posted by 익구
:
나는 수시모집제도가 확대된 원년에 수시모집으로 대학을 가게 된 그 수혜자다.
서류전형에서 자기소개서가 있는데 수시의 확산과 더불어 한바탕 열풍이 불었다.
4가지 문항에 대해 얼마 되지도 않는 인생을 다 헤집으며 글을 쥐어 짜냈다.
조금 과장과 미화가 심하기도 해서 친구들에게 공개했을 때
어찌나 웃음거리가 되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즐거운 풍경이다.
경영학과와 사회학과용으로 두 가지가 만들어졌는데...
갑작스레 정해진 경영학과 선택이 난감했는지...
4번 문항의 그 궁색함에서 경영에 대한 애정과 관심보다는
‘빵’에 눈이 멀어 선택하게 되었음을 역설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아무튼 경영학과용으로 썼던 것을 주로 소개하고 사회학과용을 조금 붙인다.
수시모집이 도입되었을 때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 혼란스러웠던 수시모집을 일관되게 옹호했던 그 때가 생각난다. 6(^.^)9


1.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특성 혹은 능력)과 보완, 발전시켜야 할 단점(특성 혹은 능력)에 대하여 기술하십시오(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었던 사례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하십시오).



~ 저는 제 자신을 ‘햄릿’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햄릿과 저의 장단점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햄릿은 소심해서 행동하기 전에 몇 번이고 생각해 보는 타입이지만 조심스럽게 상황을 파악해 가며 끝내 자신의 결심을 이루고 마는 신중함과 진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햄릿을 단순히 내성적이고 감상적인 인물로 간주하지 않고, 자기가 할 바를 알고 그에 따라 능동적 의지로 산 인물로 평가합니다. 저도 햄릿처럼 항상 고개가 갸우뚱한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단순판단보다는 종합판단, 현상보다는 본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변혁과 진보는 너와 같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담임 선생님 말씀 한마디에 큰 용기를 얻고 있는 저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고교시절 문학, 철학, 심리학,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보였던 관계로 주관이 너무 강해졌다는 점이 저의 단점이 아닐까 합니다. 박학다식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몇 푼의 지식을 마치 전부인양 내세우다 보니 친구 관계가 원만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많은 대화시간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동호회 활동이나 토론 소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저의 이런 단점을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결성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PSC'(philo sophos club)라는 토론 소모임에 활동한 것이 다양한 의견을 귀기울이고,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2.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 이외의 활동영역(사회봉사활동, 교내, 외 클럽활동, 단체활동, 취미활동, 문화활동)에서 가장 소중했던 경험을 소개하고, 이러한 경험이 자신의 성장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기술하십시오.



~ 고등학교 때 교지편집부원으로 참여했던 활동은 사회에 대한 안목을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체험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새천년 편집부’ 첫 야심작 “인간존엄성에 대한 논의”를 기획하고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인간 존엄성에 위배되는 여러 분야의 문제들-즉 남녀 차별, 빈부 격차, 인간 소외, 복제 인간 등등의 사회적 문제들을 진단하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원고 마감을 몇 번이고 미뤄가면서 인간의 실질적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하는 의문에 해답을 찾을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부조리한 현실과 모순으로 가득 찬 사회 구조 속에 방치된 인간의 존엄성 문제는 저의 정의감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자료 조사를 하며 사회의 부조리한 면면을 알게 되었을 때 분개하기도 하였고, 해결 방안에 대해 고민하면서 너무나 많은 정신적 성장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인간의 삶에 가장 기본이 되어야할 가치에서부터 사회적으로 반드시 지켜져야할 인간의 가치까지 폭넓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른봄에 시작하여 첫눈이 내리던 겨울에 탈고할 수 있었던 ‘인간의 존엄성’ 문제는 인간과 사회를 향한 저의 뜨거운 애정과 정열이 담긴 처녀작이 되었습니다. 정직함이 손해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 성실함이 그 자체로 존중되는 사회, 정의로운 인간이 소외당하지 않는 사회, 휴머니즘이 옹호되는 사회에 대한 염원이 알알이 담긴 작품이었다고 자부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비전은 환각이다”라고 독일의 어느 경영자가 말했습니다. 이 말처럼 이상은 머리로만 생각하고, 입으로만 부르짖는 것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배우려는 경영은 결국 사람을 통한 일입니다. 고생 고생해서 일구어낸 편집부 기획은 사회의 공동선을 이루려는 의식을 가진 경영학도로서의 포부를 다지는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 사회학과용에서는 후반부를 이렇게 채웠다.

앎의 추구도 중요하지만, “정의는 행위 속의 진실이다”라고 디즈레일리가 말했듯이, 사회적 실천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준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배우려는 사회학은 결국 사람을 통한 일입니다. 고생 고생해서 일구어낸 편집부 기획은 사회의 공동선을 이루려는 의식을 가진 사회학도로서의 포부를 다지는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이게 뭐 하는 짓거리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 당시... 아니 지금도 자기소개서 쓰는 친구들은 알리라. 지망 학과가 여러 개일 때는 약간의 문맥 다듬기로 여러장 지어내야했던 고육지책을 말이다...^^;)



3.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이나 경험을 설명하고, 그것이 자신의 가치관 혹은 인생관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기술하십시오.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도덕경’과의 만남입니다. 도덕경을 처음 접한 것은 중1 때였습니다. 그저 잔잔한 시를 읽듯이 몇몇 핵심어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습니다. 문득 생각나거나, 힘겨운 일이 있을 때 종종 꺼내 들어 번잡한 세상일을 놓아두는 일종의 도피처로 애용한 것 같아 노자님께는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죽했으면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 선거에 입후보하여 마땅한 선거문구를 고민하다가 정한 것이 바로 “上善若水”였습니다. 비록 고배를 마셨지만 “물 같은 학생회”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그 때의 경험은 정말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아직 “無爲”의 개념도 채 익히지 못한 저이지만 무위란 인간들의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의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도덕경의 그늘로 들어간 이후로 저는 “爲無而無不爲”의 경지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 것도 하지 않으나 이루지 않는 것이 없는 경지, 너무나 자연스러워 ‘함이 없는 함’을 실천하는 경지 말입니다. 저는 이 무위를 체득하여 경영학도에게 요구되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균형감각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특히 “내 몸 바쳐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가히 세상을 떠맡을 수 있다.”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라는 구절은 지식정보사회의 최고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더더욱 올곧게 형성하여 항상 인간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천력을 겸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 전공선택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경험(인물, 사건, 서적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 제가 경영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에 영향을 준 것은 우습게도 신문입니다. 중3때부터 신문을 꾸준히 읽어 왔습니다. 정치, 사회, 문화면까지 자세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훑어보고 의문도 갖고 교훈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주일치를 모아서 보기를 좋아하는 제가 신문을 보려고 정리하면서 하는 일이 언제나 경제 섹션을 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아는 것이 없어 읽어도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IMF 시대가 열리고 경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놓아졌지만 최근까지도 경제 섹션을 빼는 일을 해왔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경제신문’을 하나 더 보게 되었는데 읽자니 모르겠고, 그냥 두자니 아까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내심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에게 ‘박학다식의 표본’으로 추앙 받고(?) 선생님마저 ‘최박사’라고 불러주시는 저의 자존심에 여간 큰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언제나 미지의 분야로 남아있던 분야에 한번 도전해보자는 오기가 진로마저 경영학과를 선택하게 해주었습니다. “인생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라는 초등학교 때부터의 이상을 고교시절 내내 고민해보았습니다. 과연 어렸을 적 꿈꾸었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경영학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경영학의 매력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신문 덕분에 이제 막 경영이란 어떤 것이며, 경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는 얼뜨기 경영학도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저의 전공에 애정을 가지고 헌신할 것입니다.




---> 정말 경영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를 묻는 이 질문은 쓸 말이 없었다. 고작 이런 말을 쓸 수밖에 없었지만 이건 사실이다. 나를 경영학도로 이끈 두 가지는 ‘빵’에 마냥 초연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과 미지의 분야에 대한 정복욕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하는 것은 본업보다는 부업으로만 추구되었던 나의 지난 경험들도 바탕이 되었겠지만... (가령 수학을 가장 싫어했지만, 가장 못하는 과목이라 수능 전략상 3년 간 수학에만 매달려야했던 고행 같은 것들...)


이에 반해 사회학과용은 꽤 진솔함이 묻어 나있다. 어릴 적 꿈이 그 뜻도 모르는 ‘사회학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지원을 해봤던 사회학과이지만 그 마음만은 진정성이 가득했다. 경영학도로 제법 시달린 지금에서는 사회학도로서의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을 비교적 다행이라고 여기는 비겁한 망각을 꾀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제가 사회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에 영향을 준 것은 우습게도 어렸을 적의 일기장입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방안을 정리하다가 큰 상자 구석에 처박혀 있던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 몇 권이 저의 진로를 정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의 유치한 사색의 흔적들을 곱씹으며 회상하다가 제 눈을 고정시킨 다짐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인생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제 어릴 적 꿈이 ‘사회학자’였음이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철없던 시절, 사회학자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문구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제 머릿속의 사회학자는 너무나 작은 존재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 후 고교시절 내내 초등학교 때의 다짐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생활하며 ‘모범생’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그저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나 따분한 일이었습니다.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고픈 욕구’는 언제나 제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사회학과로 제 길을 정했을 때 부모님의 만류와 ‘굶어 죽기 십상’ 이라는 친구들의 핀잔보다도 옛 꿈을 찾았다는 만족감이 너무나 컸습니다. 사회를 이해하는 다양한 틀을 제공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제반현상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회학의 매력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사회학을 배워서 보다 많은 민주주의의 원리가 실현되고 확장되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어릴 적 동경해 마지않았던 그 ‘거인’이 되고자 합니다.



내가 썼던 이 자기소개서 대학으로 가는 길에 그다지 많은 도움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배점도 크지 않았고 거의 요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나를 돌아보며 대학인으로서의 꿈을 키우던 유쾌한 경험이었다.
이런저런 자기소개에서 별로 기억나는 역사도 없고, 자랑할만한 것도 없는 인생은 허전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수입하고 치열하게 싸워야겠지.
자기소개거리가 메마르지 않는 인생은 가슴 뛰는 인생일 것이다. 6(^.^)9
Posted by 익구
:

강준만을 논하다

잡록 2003. 8. 1. 03:32 |
(강준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해보라는 친구의 질문에 졸린 눈 부비며 주절거렸던 글... 큰 인물을 논하기에는 너무 모자르다. 조속한 업데이트 요망이다.^^;)

하도 컴 앞에서 노닥거리다가 이제 좀 들어가 쉬려는 찰나... 강준만 교수에 대해 물어오는 너의 글을 발견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판을 두들길 수밖에 없었다.^^


글쎄... 너가 말했듯이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결국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 안그래도 편파적인 인간인 내가 바라보는 강준만 교수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일단 강준만 교수하면 [인물과 사상]이라는 1인 잡지로 유명하신 분이지. [인물과 사상]을 창간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네...


“우리는 기록과 평가의 문화에 인색하다. 특히 인물의 경유에 그러하다.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공익을 추구한 사람도 위선과 기만과 변절을 범한 사람의 과거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그래선 안 된다. 보상과 문책에 철저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공익을 생각하고 기회주의적 처신을 두렵게 여긴다.”- 강준만, [인물과 사상] 1권 표지안쪽


보상과 문책에 철저해져야 한다는 강준만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겠지... [인물과 사상]의 문제제기 중에서 소위 말하는 대박이 터진 것은 아무래도 ‘안티조선’일 듯... 한국사회가 침묵하던 언론의 문제를 가장 앞장서서 제기하며 불관용이 주특기인 신문인 조선일보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는 아마도 우리 언론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아닐까 생각해.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나에게서는 찾기 힘든 화끈한 독설이 시원하기도 하거니와...(나란 놈은 늘 치졸한 자기검열로 말미암아 할 말 가려하기 일쑤이니깐...) 무엇보다도 중립성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실명 비판’으로 우리 사회 지도층의 봐주기 풍토를 비판하며, 토론의 마당을 펼치려고 노력한다는 점일세. 그의 말을 좀 들어보자면...


“튀는 두더지는 방망이로 찍어누르고 모난 돌은 정으로 때려야만 직성이 풀린다. 둥글게 둥글게, 그게 인간의 조건이다. 집단주의에 중독된 사람들은 홀로 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은 자율적 판단능력을 발휘하려 하기보다는 연고집단에 적극 참여하거나 ‘대세’라고 판단되는 흐름에 무조건 동참하는 데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다”


아마 강준만도 어지간히 튀는 인간인 건 사실인 것 같다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웃사이더와 비주류, 약자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비판을 하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되고...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분들도 많겠지만...) 집단주의를 혐오하고 학연, 지연 같은 것들의 침묵의 카르텔을 부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고. 강준만 같은 개성적 인간이 전체주의 문화에서 살기는 이래저래 불편하겠지...^^


마당발 정신, 둥글게 둥글게 주의, 화기애애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준만의 공격을 보면서 이 분의 탁월한 의제설정 능력에 감복한 점이 많지. 초심을 잃지 않고 매서운 비판의 끈을 놓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의 그의 한계점을 지적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의 존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역설하지 않을 수 없구나.


“독립은 고립이 아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다. 가치를 지향한다. 그래서 독립된 사람들끼리의 연대는 의외로 무서운 것이다. 서로 술 한 번 같이 마신 적 없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전화 한 통 한 적 없어도 같은 뜻을 나누고 힘을 모을 수 있다. 그래서 독립은 고독도 아니다. 고독하다면 그건 책임의 고독이다. 우리는 책임을 위해선 각자 좀 더 고독해져야 한다.”- 강준만, [인물과 사상] 9권 - 12쪽


독립된 사람들끼리의 연대... 익구를 흔들었던 개념이로세...^^ 노사모가 추구한 ‘각성된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이 연대의 개념은 익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지. 하여간 강준만 교수가 던진 화두 중에서 익구가 수입한 것이 꽤 많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분의 글들이 익구가 ‘정치적 인간’으로 살게 된 것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지.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고... 나머지는 너가 강준만 교수의 글을 읽어가면서 느껴보시라.


끝으로 강준만 교수의 팔뚝이 더 굵어지고, 띠꺼운 생각들을 더 많이 쏟아내시기를 바란다. 6(^.^)9


추신 - 정혜신 선생이 쓰고 개마고원에서 펴 낸 [남자 VS 남자]라는 책을 읽어보시길... 강준만 교수에 대한 분석도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인간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재미난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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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어느 날에 자유기업원 주최로 열린 ‘자유주의 정책 제안’ 세미나를 다녀오고 나서 쓴 글이다. 지금 보니 죄다 유시민 선생의 글조각들을 정리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최초의 세미나 후기라서 염치 무릅쓰고 올려본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제는 기업이 정부보다 우선하는 시대라고 외치고 있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때를 아직 벗지 못한 시장만능주의자들과의 대립각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네들과 토론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에 대해 배우고 느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유주의 정책 제안 세미나 후기]

  지난 세미나는 여러 주제가 짤막짤막하게 이어졌지만 나름대로 유익한 내용들이었습니다. 대체적인 논조들이 국가의 권력을 낮추자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말씀들이 많았지만.... ‘시장은 선이요, 국가는 악’이라는 식의 논리가 대체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그런 쪽으로 많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시장의 효율성을 믿는다고 해서 반드시 국가의 극소화를 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위적 질서’인 국가가 그런 것처럼 ‘자생적 질서’인 시장 역시 완전무결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죠.


  결국 시장과 국가는 서로 대립하면서 의존하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실패니 어쩌니 하면서 규제를 만들어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을 비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시장에 맡기면 될 것이라면서 국가의 모든 시도를 비난하는 ‘광신적 시장론자’들은 사절입니다.^^; 물론 있는 제도도 잘 운영하지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만드는 폐단도 분명 존재하겠지요. 그러나 있는 것을 잘 운영하는 것과 더불어 충분히 행해질 수 있는 새로운 시도들을 너무 악의적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에 재벌 개혁에 대한 논의가 참 분분한 것으로 아는데...  편법상속과 부당내부거래 근절, 책임경영과 무능총수 퇴진, 소액주주권강화 등의 개혁정책이 실질적으로 집행한다면 기존의 재벌체제가 그대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 환영할 일이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여하간 제 개인적인 소견은 우리나라의 기업이 국민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맨날 국가권력만 탓할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문제점들을 성찰하고 고쳐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이 언제까지 “재벌놈들은 죄다 악한 것들이야”라고 말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모든 종류의 권력 집중에 반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권력도 경계해야겠지만 재벌 같은 민간 경제권력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분 들 중에서는 경제에 치우친 자유주의자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경제적 자유는 그렇게 열심히 옹호하면서도... 다른 분야의 자유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해보이는 모습들을 접할 때 참 난감합니다. 하긴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양쪽에서 욕먹기가 십상이겠죠. 어느 한 편도 안 드는 박쥐같은 녀석 같아서 오히려 더 얄미움을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얕은 지식으로 주절거려 봤습니다. 인식의 박약함에 대한 질책은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어수선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제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건데... 머리를 맞대면 지혜가 보입니다. 6(^.^)9


덧붙이며...
자유기업원은 결국 전경련을 위시한 대기업들의 이익단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의 이익 추구는 정당한 권리이고 자기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적 제스추어를 취하는 것도 그네들의 자유다. 자신들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설파하려는 그들의 노력까지 폄하할 생각은 없다. 뭐 경청할 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이 공평한 논쟁을 하기보다는 현재 있는 기득권을 이용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기업의 자유만을 논하고 사상의 자유나 노동자의 자유를 외면하는 이들을 진짜 자유주의자로 규정할 수 없음은, 적어도 자유에는 계급이나 구분이 있을 수 없다고 믿는 날라리 우파의 최소한의 지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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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학기 조직행동론 강의를 마무리짓다
- 집단사고에 대한 토막강좌

익구는 7월 18일 조직행동론 기말고사를 치름으로써 여름학기를 마쳤다. 이번 여름학기는 그간 강의를 한 번도 같이 못 들어서 아쉬웠던 고등학교 친구 청원, 무연이와 함께 들을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항간에 의하면 익구는 사학과인 청원이에게 경영학과 전공필수를 듣자고 꼬신 것에 대한 모종의 죄의식 때문에 부디 강사님께서 학점을 뿌리셔서 욕먹을 일 하나 안 만들게 되기를 비밀리에 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직행동론은 조직에서의 사람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으로서 사람 자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나 사람과 직무간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둔다. 즉, 조직에 속한 사람들의 행동과 내면적 세계, 그리고 상호간의 교류현상을 연구한다고 할 수 있다. 조직행동론은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경영학의 모든 분야가 사람의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사람의 가정, 사람의 심리, 사람간의 관계, 사람의 통제 등을 연구하는 조직행동론이 경영학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하지만 그런 말 함부로 했다가는 다른 분과에서 펄쩍 뛸 일이다.


익구는 평소 철학의 맛만 나는 것을 건드리기를 즐겨오던 터라 동기부여, 리더십 이론 같은 부분에서 무척 흥미를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경영학 과목 중에 숫자 들어가는 것에 유난히 취약한 모습을 보여야 상심이 컸던 익구는 조직행동론을 위시한 이른바 ‘말발’ 과목들을 공략해 학점 분산을 꾀하겠다는 대안을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간 잠잠했던 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이번 강의를 계기로 점화될 것으로 보여 짧은 여름학기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익구는 이번 강의에서 재미나고 유용한 개념들을 제법 배웠지만, 그 중에서 하나를 소개하자면 ‘집단사고’ 개념에 대한 것이다. 이 개념은 1961년 미국의 케네디 정부가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시도했지만 크게 실패한 피그즈만 침공사건이 그 발단이 된다. 실패 위험이 높은 허접한 작전에도 불구하고 각료회의에서 일사천리로 처리되어 실천에 옮겨졌다가 낭패를 본 이 사건은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1971년 미국의 심리학자 Janis는 이와 더불어 몇 가지 사례의 의사결정과정을 분석하여 밝혀낸 집단의사결정에서의 집단착각 현상인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다시 말해 집단사고란 집단 구성원들간의 잘못된 의견일치 추구성향인데, 집단사고의 전제들로는 다음과 같다.

1. 집단의 응집력이 높은 경우
2. 외부로부터 고립, 비민주적 리더십, 토의절차상의 방법 부재, 구성원간의 사회적 배경 및 이념적 동질성 등의 충분한 토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적 결함
3. 외부위험에 의한 스트레스 급증, 일시적으로 유발된 자존감 저하 같은 촉진적 상황요건



이런 전제조건들로 말미암아 집단사고 경향, 즉 의견일치추구 경향이 발생하게 되는데 집단사고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1. 집단역량 과대평가 - 우리는 약점이 없다는 착각, 도덕적으로 옳다는 신념...
2. 폐쇄적인 아집 - 우리가 항상 옳다는 집단적 합리화, 타집단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
3. 획일성 추구 압력 - 반대의견을 스스로 자제하는 자기검열 심리, 만장일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착각, 반대자들에 대한 압력, 반대의견 제시 못하게 설정한 규제...



이런 증상들이 발생하여 역기능적 의사결정 증상이 나타나 성공적인 결과창출의 확률이 저하된다는 것이 집단사고 모델의 대강이다. 뭐 잠깐 생각해보면 간단한 것을 했던 말 또 해가며 억지로 만든 감이 없잖아 있지만, 여하튼 집단사고는 지나친 ‘우리주의’가 조직 내부의 비판 기능을 위축시켜서 문제와 대안에 대한 평가와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집단사고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들이 ‘뻔할 뻔’자로 보이지만 괜히 말만 붙여서 만든 것들이 있으나 그 요지는 간단하다. ‘반대자, 소수자의 자유에서 배우라’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실정은 배우기는커녕 자유조차 보장을 안 해주고 있다. 그만큼 집단사고의 위험이 높다는 뜻이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이론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직행동론 강의를 마무리지은 익구는 일주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떠난다. 과연 익구의 제주도 구상은 무엇일지 그 향방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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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랑에 대한 고백

잡록 2003. 7. 21. 01:40 |
나른한 일요일 오후를 때워볼 속셈으로 수유역 근처의 헌책방을 찾아 가봤다. 뭐 딱히 작정을 하고 간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둘러보며 손이 까맣게 되도록 고르고 골라 책 몇 권을 사들고 왔다. 세월의 무게였을까, 이래저래 먼지 투성이에 누렇게 빛바랜 책들을 그냥 두기 아쉬워 겉표지의 때를 한 번 벗겨본다. 바랜 책장이야 그저 먼지 한 번 쓰윽 닦는 것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지만.


사실 나는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은 어느 것이 더 좋은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서점을 활보하며 읽은 몇 구절이 절실했을 때도 많았다. 나올 시간을 정하고 나서야 서점에 들어서지만 지금까지 제 시간에 나온 적이 거의 드물다. 꼭 책장 몇 장 더 넘기다가, 책 몇 권 더 꺼내보다가 이런저런 약속도 늦고, 함께 온 사람 기다리게 하기 일쑤다. 어쨌든 이렇게 자기와의 약속 늘상 어겨가며 이래저래 주섬주섬 사 모은 책들을 책꽂이 앞에서 어디 꽂아둘까 궁리하는 재미는 아는 사람만이 아는 뿌듯함이다. 그래서인지 충동구매를 의식적으로 행한다. 이 정도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려나?^^;


지금 남들 다 하는 공부를 따라가기도 벅찰 판에 한가롭게 이런저런 책들 속에 파묻혀서 신선놀음 할 처지냐는 자괴감이 분명 있다. 필요한 책만 골라서 읽는 것도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대단한 능력일 것이다. 물론 모든 독서라는 것이 그렇게 일정한 목표를 이루는 징검다리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독서가 그렇게 단지 수단이라면 궁극의 목적지까지 다다르는 도정의 괴로움을 어떻게 다 견뎌내라는 것인지 항변하고 싶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오로지 정상에 오르는 희열만을 위해서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올라가는 걸음의 즐거움, 내려오는 걸음의 가뿐함도 함께 느끼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칸트의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정언명령을 조금 바꿔서 ‘독서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말하고 싶다. 설령 어떠한 목표점이 존재하는 과정에 어느 책이 놓여있더라도 그 책을 집어들고 있는 순간만큼은 그 독서 자체의 즐거움 속에 빠져들 수 있는 외도(?)를 감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독서가 좀 더 재미난 것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어쩌면 과거의 악몽에 아직 헤어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 이외의 독서도 신분에 걸맞지 않는 행동으로 취급된다. 교과서 이외의 독서는 한낱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책을 읽는 동안 다른 누군가가 교과서를 파고들어 나보다 한 문제를 더 맞추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상당수 고3 수험생들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게 될 것 같은 이 강박관념은 우리의 독서 풍토를 사막화시키는 주범이다. ‘독서를 하지 않으면 지적 성장이 퇴보하지는 않을까’ 하는 독서를 안 하는 데서 오는 강박관념보다 이처럼 고3 수험생들이 공유하는 (교과서 외의) 독서를 “하는” 데서 오는 강박관념의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상 모든 지식의 기초는 기본적으로 암기라는 푸념으로 위안을 하며 그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은 책을 읽기 좋은 환경이니 책을 많이 읽도록 합시다’라고 설파하는 것은 참으로 야만스러운 짓이다. 대학에서는 마음껏 독서하라고 외쳐봐도 한 번 떠난 마음이 쉽사리 돌아오기란 영 쉽지 않다. 비단 고3 만이 아닌 그 이전까지 포함해 중, 고등학교 시절을 죄다 ‘독서는 사치’라는 인식풍토 속에서 보내다가 이제는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라는 이 놀라운 경제학적 전이(?)에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필수품이 되어 좀 더 대중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독서는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느 때나 필요하지만, 청년 학생기에 있어서는 가장 필요하다. 말할 것도 없이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 즉 모르는 것을 배워 익히는 것이므로, 이 때문에 학교에 다니는 것이지만, 현대의 교육제도는 종합적이 되지 못하고 교수의 가르치는 방법도 불완전하다. 전공 학과에 관해서만 가르칠 뿐이고, 전공 외의 것에는 일체로 언급하기를 싫어하며, 또 그 전공 학과일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지극히 상세하지만 근본에 들어가서는 조금도 손을 대려고 하지 않는다. 때문에 현대 교육의 이런 결함을 보충하고, 다시 더 알고 배우기 위하여 독서가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조용만, [학생과 독서] 中)
- 안춘근, [독서의 지식], 범우사, 44~45쪽에서 재인용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한계가 있다. 전공에만 파고들어 테크니션으로 전락하기보다는 다방면의 교양을 쌓아 좀 더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학문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독서의 가치를 새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미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독서를 외면하게 되어버린 많은 이들이 이제 와서 다시 독서의 즐거움에 풍덩 몸을 던지라는 속삭임이 우습다는 것은 솔직한 심정이다. 독서를 멀리 만드는 대학 이전의 교육 풍토를 시급해 개선해야 할 것이다. 시험을 위해서만 독서를 한 인생에게 ‘밑천이 달린다’는 위기감을 선사(?)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책을 읽다보면 어디까지가 내 생각이고 어디서부터가 남의 생각인가 혼미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 책 속에 녹아 있는 것을 보고 선수(?) 당했다고 아쉬워할 때가 있다. 실상 내 고유한 생각이라고 자부하던 것들이 결국은 누군가가 했던 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자꾸 반복되다보면 책에서 읽었다는 기억은 제거해버리고 이 생각은 나의 것이라는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게 되고 만다. 고종석의 이 말에 내가 얼마나 무릎을 쳤던가.


내 표절의 역사에서 정녕, 놀라운 것은, 내가 남의 글들을 여기저기서 훔쳐 내 이름으로 발표한 글을 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읽노라면, 그것들을 표절한 기억들은 가물가물 사라지고 그 글이 온전히 내 독창적인 생각인 듯한 착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 내가 그때 이미 이런 대단한 생각을 했구나”하며 후안무치한 자족감에 빠진다는 것이다.
- 고종석, [서얼단상], 개마고원, 266쪽


허영의 독서도 분명 있었을 것이고, 불필요한 금전적 낭비도 따지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책장을 넘기며 그 책들만큼 아름다운 마음들과 대화를 한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至樂은 莫如讀書(지극한 즐거움은 책 읽는 것 이상이 없다)는 이제 옛사람의 감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지식의 광산을 캐는 연장에 책만 있다고 주장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사랑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책 사랑에 대한 고백은 아무리 해도 모자란 그 무엇이다. 6(^.^)9 (200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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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에 효순이, 미선이 1주기 기념을 위한 6.13 위원회에 대한 유인물을 받았다. 마침 날도 더운지라 부채 삼아 부치다가 문득 한 마디를 내뱉었다.


“참 그러고 보면 무슨 무슨 위원회도 참 많이 만들어지는구만...”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한 마디 한다.


“그게 다 반장 콤플렉스 때문이지.”


한바탕 키득거리다가 스스로를 돌아보기로 했다.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감투 밝힌다고 하는데 나도 그리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워낙 모범생적 답답함과 완고함의 이미지가 주로 각인되어서 친구들의 인기를 별로 못 얻어서인지 학창시절 통틀어 반장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물론 안 한 것만 못한 부반장 시리즈들은 제법 해봤지만 말이다.


뭐 친구가 말한 반장 콤플렉스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반장을 많이 해봐서 반장을 해먹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진 부류와 다른 하나는 반장을 하도 못해봐서 한이 맺힌 부류가 그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나는 후자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한이 맺힌 것은 아니니 콤플렉스 딱지 붙이기는 좀 과분한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2인자 콤플렉스’다. 별 좋지도 않은 거 만들어서 무안하기는 하다만... 따져보니 직선대표에는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다. 일단 필수불가결한 표를 위한 아첨이 영 서툴다. 게다가 지금 내 모습은 대중성 확보하기가 힘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 반작용에서였는지 간선대표에 대한 욕망은 보통 이상인 것 같다. 이거 참 호가호위(狐假虎威)를 꿈꾸고 있는 게 아닌가.^^;


대중성의 확보를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자유주의자의 정체성을 위해 내 개성의 수호에 힘쓰는 방향으로 전환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외교정책은 ‘비굴모드’를 바탕에 깔고 있으며 “놀아줘~”를 외칠 준비가 되어있다. 이것은 나의 부족함에 대한 자각이기 때문에 그다지 부끄럽지는 않지만 너무 내 것을 포기하지는 말아야겠다. 내 것과 타인의 것이 공존하며 교류하는 것을 원하지 어느 한 쪽의 소멸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관계다.


아무리 아웃사이더가 존중받고 비주류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소수파에 서기란 일단 두려움이 앞선다. 하물며 이 땅의 현실은 두려움에다가 실질적 손해에 대한 손익계산서까지 첨부해주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쥐꼬리만한 권력이나마 부여잡아 조금은 편하게 개성 타령하고, 자유주의 들먹거리며, 대중성 추구하려는 심산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2인자 콤플렉스라고 하니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짐작하다시피 김종필이다. 때마침 오마이뉴스에 인터뷰기사가 실렸다. 그냥 노회한 정치인의 면상이나 좀 째려보고 말라고 했건만, 우연히 들어온 한 질문이 눈에 코옥 박혔다.


흔히 'JP는 영원한 2인자'라고 말하는데,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정치인 김종필'은 어떤 사람인가.

- "(사람들이 나를 '영원한 2인자'라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선두에 서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늘 뒤에서 선두에 선 사람 도왔다. 그러면서 선두에 선 사람 못지 않게 보람을 느껴왔다.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데 '티샷'보다 '세컨드 샷'이 잘 나간다고 '골프도 2인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하하). 지금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야~ 뒤에서 묵묵히 퍼스트 리더를 돕는 세컨드 리더가 되겠다는 저 답변에 감동 먹었다. 김종필의 인생역정으로 볼 때 저 말의 진정성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시할 것도 없다. 물론 그가 주인을 바꿔가며 연명한 데다가 무척 의심스러운 주인을 모시기도 했다는 점에서 대개의 사람들이 남을 부려먹지 못해 안달이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은 잘 모른다. 저마다 대장 하겠다고 설치지만 부하 하겠다고 손드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는 부리고 섬기는 상하관계가 수평적이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주종관계식이다보니 섬기는 위치보다는 부리는 위치에 서고 싶은 유인이 크게 발생하는 것이다. 왕 아니면 노예라는 흑백의 세상에서는 나라도 왕을 하려고 달려들 것이다. 좀 더 평등한 상하관계가 구축된다면 굳이 부리는 위치에 목매달지도 않을 것이며, 섬기는 위치가 마냥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위에 올라서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인격적 미숙함이나 학문적 조악함을 조금씩 메워 나가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2인자 콤플렉스도 좋지만 너무 남들 보이기 민망한 감도 없잖아 있다.^^; 반장 콤플렉스라도 좀 수입해야할 판이다. 2인자 콤플렉스는 너무 쩨쩨해 보이지 않는가.^^


안 그래도 한 친구 녀석이 내가 JP를 닮았다고 성화인데, 그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김종필이 그 무지막지한 보수성과 어울리지 않게 꽤나 낭만적인 구석도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김종필은 아니다. 어차피 눈치가 떨어지는 나는 김종필 만한 2인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뭐 좀 침이야 흘리겠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다행이다. 6(^.^)9


추신 -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남을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발견했다. 역시 내가 하는 말들, 내가 하는 생각들... 죄다 예전에 한 번씩 나왔고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래도 발언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자.^^
(2003/06/26)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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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활, 복거일, 자유...

잡록 2003. 7. 21. 01:33 |
얼마 전 기사에 성균관대 총학에서 농활을 운동권의 유물이라며 지원을 거부해서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뭐 나는 농활을 안 가봐서 농활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모르겠다. 만약 농활이 단순한 봉사활동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야 나도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을 것 같다.


뭐 그렇지만 이번 사태는 성대 총학의 오바인 것 같다. 실상 오늘날의 농활은 가는 사람만 간다. 거기서 무슨 의식화를 기대할 것도 없으며, 운동권의 외연을 넓히는 자리가 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지레 겁을 먹고 있다는 조바심의 발로일 뿐이다.


‘농민학생연대활동’이라는 거창한 이름이야 둘째치고, 농번기 때 농민들의 일손을 돕는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봉사도 하고 경험도 하겠다는데 입맛에 좀 안 맞다고 일체의 협력을 거부하는 것은 어떤 흐름의 자치활동이라도 육성할 최소한의 의무를 망각한 처사다.


다만 성대 총학이 농활 대신 다른 봉사활동을 추진하겠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고 하는 것 같던데 그 점은 다행스럽다. 요즘 농활 같은 전통 있는 봉사활동 말고도 각종 봉사활동들이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그건 일단 좋은 흐름이다. 봉사활동에도 우열이 있다고 따지고 들면 할 말이 없지만...


농활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해보면서 문득 지난 어느 강의가 생각났다. 지난 겨울 복거일의 강의를 한 번 접할 수 있었다. 작년 2학기 교양국어 시간에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을 주제로 발표하며 친일파의 논리라며 게거품을 물었던 기억이 있던 터라 조금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심약한 익구, 단호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나름대로 재치 있던 그의 강의에 빠져들었다. 결국은 농산물 시장 개방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논거들이 제법 탄탄했던 걸로 기억한다. 막연한 선입관을 부수는 것만으로도 자기 주장의 설득력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좋은 교훈이기도 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식량안보론’을 비판하는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아마 이건 두고두고 써먹을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고약한 심보가 발동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요약을 해보려고 했으나 그냥 그대로 인용한다. 타이핑하느라 고생한 손가락에 고마움을 표하며...^^


농업에 관한 ‘신화’들 가운데 가장 널리 퍼진 것은 “식량이 무기로 쓰일 수 있으므로, 사회 안보를 위해서라도 농업 기반은 보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먹는 식량에 관한 것이라, 이런 ‘식량무기론’은 강력한 호소력을 지녔다.


그럴 듯한 주장이지만, 그러나 ‘식량무기론’은 근거가 허술하다. 식량이 무기로 쓰일 수 없는 까닭들 가운데 먼저 들어야 할 것은 세계의 농업 시장은 일반적으로 ‘구매자 시장’이라는 사실이다. 농업의 생산성이 빠르게 높아진 현대에서 주요 농업국들의 만성적 문제는 과잉 생산이다. 농업의 생산성이 아주 낮은 우리나라에서도 농사에 관련된 파동은 늘 과잉 생산이었다. 그래서 주요 농업국들은 늘 안정된 해외 시장을 찾는다. 자연히, 식량이 무기로 쓰이는 일이 일어나면, 먼저 그리고 훨씬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식량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들이다. 그런 나라들로부터 농업 시장을 열라고 거센 압력을 받는 우리가 그들이 언젠가는 식량을 무기로 쓸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은 한가롭고, 그런 한가로운 걱정 때문에 미리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다.


다음엔, 농업은 공업보다 기반을 복구하기가 훨씬 쉽고 간단하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덮이지 않는 한, 버려진 논밭은 한두 해 안에 아쉬운 대로 복구되어 다시 경작에 쓰일 수 있다. 실은 휴경(休耕)은 농약에 찌들고 화학 비료가 스며든 땅을 정화하고 지력을 높인다. 씨앗이나 생산 기술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보존될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나라가 식량을 무기로 쓰려고 할 것인가?


셋째, 어떤 나라나 나라들이 식량을 무기로 쓰려면, 그들이 농산물 시장에서 적어도 과점적 지위를 지녀야 한다. 현재 그런 지위를 가진 나라는 없다. 어떤 농산물을 수출하는 나라들이 연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커피처럼 생산국들이 한정되었고 가격등락이 심한 품목들에선 카르텔을 결성하려는 시도가 나왔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그런 카르텔은 과점적 이익을 겨냥했지 식량을 무기로 쓰려 한 것은 아니다.


넷째, 식량을 무기로 삼는 일은 너무 비윤리적이어서 그럴 가능성을 크게 줄인다. 더구나 지금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들은, 미국을 비롯해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칠레, 네덜란드, 덴마크 등, 대부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녔고 사회가 안정되었다. 그런 나라들에서 식량을 무기로 삼은 정권이 안팎의 비난을 받고서도 살아 남기는 어렵다.


석유는 쌀보다 산업적으로 훨씬 중요하고 우리는 전혀 생산하지 못한다. 게다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라는 카르텔이 석유를 실제로 무기로 삼았고, 세계는 큰 불경기를 맞았었다. 우리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지금 우리는 석유가 다시 무기로 쓰일 상황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OPEC을 움직이는 나라들이 중동의 회교 국가들이어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의 분쟁과 미국과 이라크 사이의 전쟁은 당장 석유 공급에 영향을 미칠 터이지만, 지금 석유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째서 그런 ’준비 없음‘이 큰일이 아닌가?


물론 식량과 관련된 위기가 올 가능성은 작지 않다. 어떤 농산물의 수출국들이 연합하여 과점적 이익을 누리는 경우를 상정할 수도 있고, 기후가 갑자기 바뀌거나 무슨 병충해가 심각해져서 세계적으로 식량이 크게 모자라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들은 ‘식량을 무기로 삼는다’는 얘기에서 무기라는 말이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실은 ‘식량 무기론’은 논의의 초점을 잘못 맞추어서 그런 재난으로 농업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방해한다.

- 복거일, [농업과 농민에 관한 선입관]中



길게 인용한 복거일도 무작정 개방만세만을 외친 것은 아니다.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쌀 농사에 포격을 집중했다. 채소 같은 경우에는 신선한 것이 낫기에 국내에서 여전히 생산될 것이라며 나름대로의 아량(?)을 베풀어 보이기도 했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무역상무론 교수님께서 지난 학기 강의 중에 쌀을 100% 수입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셨다. 평소 후덕함을 존경해마지 않던 터라 저 해맑은 표정에서 나온 격한 발언에 놀라웠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하니 그만큼 우리 농업, 특히 쌀 농사의 경쟁력이 형편없다는 절박한 상황의 방증이기도 한 것 같다.


아직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아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식량안보론만을 외치며 농산물 개방에 반대하는 것은 논거가 빈약하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었다. 물론 그래도 영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다. 도서관에서 아무리 손쉽게 빌릴 수 있는 책이라도 내 방안의 책꽂이에 꽂힌 책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심리적 차이감 내지는 불안감이라면야 오죽 좋겠냐만은.


진중권은 복거일을 보고 자유주의에 극단으로 흘러 천박해진 인물이라고 평한다. 나 또한 복거일의 문제의식에 때때로 공감하면서도, 그 숱한 자유 중에서 ‘영업의 자유’만을 사랑하며 재벌의 이익 옹호에만 열심인 ‘자칭 자유주의자’들과 통한다는 것이 영 찜찜하다. 아무쪼록 대학을 주식회사로 만들자는 쇼킹한 발언들을 ‘유연한 과학’이라고 칭하는 자화자찬을 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 뭐든지 지나치면 ‘경직된 미신’이 되는 법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시지 않는가.


파격적인 발언들을 많이 쏟아내다 보니 여기저기 공격도 많이 들어오나 보다. 뭐 열심히 발언하는 자는 종종 비판을 넘어선 비난을 접하기도 한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에서 복거일은 꽤 격이 높은 논객으로 보인다. 허나 “내게 도끼 들고 찾아온다는 사람까지 있었다‘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은 마냥 편하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직도 국가폭력의 상흔에 시달리는 이들이 하고 많은데 그런 엄살은 고품격 논객으로서는 지나친 너스레다.


비록 자유지상주의자의 모습이 너무 강해 거북스러울망정 복거일은 내게는 아직 큰 존재다. 그의 헛소리를 매섭게 비판할 머리를 가지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겠지만, 자유가 철철 흘러 넘쳐 역겨움이 치솟는 그의 발언도 기꺼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책무다. 발언할 자유, 비판할 자유... 이 기본적인 것이 제대로 보장 안 된다는 것이 현실이다만... 자유주의자도 적어도 자유의 문제에서만큼은 과감할 줄 알아야 하는데 여전히 멈칫거린다. 6(^.^)9 (2003/06/26)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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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운’이라면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는 것을 알리는 문자였다. 그냥 ‘그런 줄 몰랐다, 좋은 거 배웠다’고 둘러대면 좋으련만... 이 심보가 그렇지 못하고 “나중에 내가 써먹으려던 건데 선수를 당했구만”이라는 답문을 보냈다. 열심히 엄지손가락 혹사시켜가며 문자를 보내준 친구가 민망하게 말이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는 것을 안지도 제법 되었는데... 여전히 행복이라는 풀밭에서 행운을 찾아 헤맨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행복보다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행운의 형상들에 끊임없이 손짓하며 딴 마음을 품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갖고 있거나, 언제든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좀 더 요원한 것에 마음이 끌리는 무책임한 확장욕구다.


전에는 내가 제법 용감한 내부 고발자쯤이나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괜한 시비와 트집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이건 아니라며 분연히 따진 것들 중에는 꽤 호응을 얻은 것도 있고, 차가운 반응만을 받은 것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손익계산서를 만들어보자면 그다지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손해봤다는 생각이 커서였을까. 요즘에는 나의 칼날이 많이 무뎌진 것 같다. 전 같으면 왜 이렇게 못하냐, 왜 그런 식이냐며 닦달을 했을 나이지만... 이제는 될 수 있으면 좋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저런 행동이 최선이 되었으리라고 선의의 해석을 하려고 한다. 좋게 말해서 역지사지이지만, 조금 비꼬면 알아서 기는 모드로 전환한 것이다.^^;


설령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모자른 점이 있더라도... 지금 딛고 있는 곳을 옹호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치졸한 자기 방어 이전에 인지상정인지도 모르겠다. 현상황을 더욱 긍정하려한다는 점에서 조금 더 보수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진취적인 모습이 거세되었다고 슬퍼하기 전에,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거둔 것들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모습을 아껴야겠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대학생활의 피상적인 인간관계가 한 몫을 했으리라. 굳건한 우정으로 영원할 것 같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소원해지는 것이 꽤나 진척되고... 나름대로 노력해도 대학살이에서 사람과의 만남이 지지부진하다보니...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고, 기존의 것에 더욱 충실하기를 강요받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네 잎 클로버의 허상만을 좇기보다는 세 잎 클로버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딱 그만큼은 더 현실적이 되었다. 어쩌면 세상은 나에게 좀 더 무뎌지기를 요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몽의 열정'이 식은 자리에 '상실에 대한 경계'가 피어난다. 아직은 세 잎 클로버에 좀 더 다가설 때이다. 지금 이 순간, 지금 만나는 사람들,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6(^.^)9 (2003/06/06)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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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국사선생님의 말씀

잡록 2003. 7. 21. 01:28 |

잊힌다는 것은 때로는 홀가분하지만 대개는 슬픈 일인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사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아마 세월이 지나면 익구 같은 학생들은 잊히겠지만...
말썽부리고 속 썩이던 학생들은 기억이 나게 될 것 같다.” 뭐 이 비슷한 발언이었다.

당시 모범생의 대표주자였던 나를 예로 들어서
어쩌면 인간관계의 묘한 속성을 설파하신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때는 그 말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돌아보니 나에 대한 우회적인 조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란 존재는 기억하기보다는 잊혀지기 쉬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혹은 약간 특이했던 아이라는 희뿌연 이미지정도가 남을지도 모른다.

이제 제법 고등학교 친구들과 ‘잊어감’과 ‘잊힘’이 진행되면서 깨달았다.
누군가의 기억 한 구석을 차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이제 그토록 우정을 외치던 목소리도 거의 수그러들었다.
앞으로는 고단한 기억과의 싸움이 이어질 것 같다.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자꾸 끄집어내려 하지 말자.
지난날의 한계를 바로 보고 덧칠을 하려고 하지 말자.
혀를 깨물고 눈물이 찔끔 나도 지난 것에 너무 서러워말자.

누군가의 기억 속에 실존하고 싶다는 것은...
내가 먼저 진정함과 성실함으로 대하겠다는 의지다.
딛고 있는 자리에 부끄럽지 않게 노력하고, 또 행복해야겠다.

다시금 물어보자.
그 때 국사선생님이 내게 전하려는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뻔한 것 같아도, 애써 외면해본다. 6(^.^)9 (2003/05/30)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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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에 대한 변명

잡록 2003. 7. 21. 01:27 |
(고3 시절 이과생이었던 친구가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가기보다는
학과를 먼저 생각해보자는 글을 올렸을 때 답글로 올린 것이다.
만인의 예상을 뒤엎고 경영학도가 되게 된 나에 대한 궁색한 변명과
익구의 현실추수적인 단면들을 잘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문과라서 문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면...
문과는 학과들의 성격에 큰 차이가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국문과나 법학과, 정치학과에 관심이 있었던 내가
순식간에 경영학과를 지망하게 된 것도
결국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하긴... 이번 수시모집에서도 내가 지망한 학과는
경영학과, 사회학과, 정치행정학과...로 정말 다양했다.
하지만 어느 것을 하게 되더라도 즐겁게 시작했을 것 같다.
진리의 길을 제대로 간다면 시작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에...

만법귀일(萬法歸一)...
물리학자에서 출발하든 철학자에서 시작하든
결국 어딘가에서는 만날 거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길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아무리 억지로 들어간 학과라도 혹시 재미있어 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실상 우리가 원하는 학과라는 것이 장래가 유망하다고 생각되는
몇몇 학과에 집중되지 않는가...
정말 좋아서 진정으로 원하는 학과가 있겠는가...

어느 학교나 전교 1등 치고 법학과와 의예과
지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가능성 90% 이상)
그럼 전교 1등들은 모두 법학과와 의예과를 좋아한다라는
법칙이 필연적으로 성립하는 것인가...
뭐,,, 어느 정도 성립한다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소위 말하는 그런 학과를 갈 때의 '보장'이 탐날 수밖에 없다.
전교 1등 하는 정도의 영특한 머리의 소유자라면
이런 정도의 이해타산이 분명히 나올 것이다.
... 그냥 이런 현실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서 해본 말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독일의 법학자 라드브루흐는 법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를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첫째 부류는 남들이 법을 공부하면 결코 손해는 안된다는 바람에
학문에는 관심도 없이 지망한 사람들.
둘째 부류는 중, 고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낸 우등생으로서
법학과가 좋다니 당연히(?) 들어온 사람들.
셋째 부류는 철학, 예술 혹은 사회와 인도주의에 기울어지면서도
외적인 사정 때문에 부득이 법학을 택하게 된 이들.
예로 경제적으로 가난하여 작가나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법학을 선택하게 된 사람들이다.

우스운 것은 라드브루흐는 셋째 부류의 사람들이 끝까지 법학을
공부하면 누구보다도 훌륭한 법학자와 법률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글쎄... 이 글을 읽고 나는 무척 웃겼는데... ^^

친구들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철학과에 가라고 하지만...
내 자신은 철학과에 가기 싫다.
철학과 출신들마저 자기 학과에 오지 말라고 충고하는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진로는 선택하고 싶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나는 머리가 나빠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
이렇게 말을 하면 혹 이런 말을 들을까?
"너만은 그러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할 말 없지만... 에구에구,,,
아직 이 땅은 정말 가난한 사람은 학문하기가 힘든 곳 같다.
왜 내가 사회학자의 꿈을 접어야 했던가...
학자라는 것만큼 소모적인 직업이 어디 있던가...
이런,,, 신세타령이 시작되기 전에... 각설.

결론을 내리자면...
학과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특정 학과가 신분 혹은 계급이 되어버리는 사회 현실일 뿐.
슬픈 현실이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학과보다는 입학자체가 더 문제이니까... ᅮ.ᅮ (2001/10/14)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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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문서 정리를 한다며 뒤적거리다가...
친구와 채팅을 하다 나눈 ‘양성평등’에 대한 이야기에서 내가 했던 말들을 발견했다.
나는 페미니즘 이론을 치열하게 파고들거나 투쟁 대오에 끼어들 생각은 없고...
그저 생활 속의 소박한 양성평등 실현에 만족하는 소심한 놈이지만...
이마저도 그리 쉬운 일이라는 기막힌 현실 앞에 웃음이 피식.


물론 나는 여성의 권리와 기회균등에 그 누구보다 찬성하며 남성의 기득권을 내어줄 용의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여성의 역할의 중요성과 그 책임을 매섭게 강조할거거든...^^;


~ 내가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여성의 권익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남성의 인간적인 권리를 옹호하기 위함이다. 결국 남을 도우려는 것이 아닌, 내가 편하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의 발로이다. 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만이 용인되는 세상의 그 숨막힘을 싫어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식한 마초들만큼이나,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순한 양들에게도 비판의 화살을 던진다. 정작 아쉬워 해야할 사람이 누구인데...


일단 생활 속에서 양성평등의 개념이 친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양성평등이 우리에게 이득이 된다는 확실한 신념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 비유가 좀 유치하지만... 우리가 교통질서를 지키는 것이 무법천지의 도로보다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남녀차별보다는 양성평등이 더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 양성평등이 잘 된 나라일수록 경제성장이 잘 된다는 조사결과를 본 것 같다. 아무튼 요즘처럼 경제만능인 세상에서 양성평등이 살림살이에 보탬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좋은 방책일 것 같다. 인간의 의식이 바뀌는 데 30년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 양성평등 실현까지 30년이라는 시간을 잡아봤다. 그 때가 2000년이니까 2030년에는 내가 그리는 양성평등한 세상이 올 것이라는 계산이다. 양성평등에 대한 신념이 하나하나 늘어갈 때 거대한 수익이 창출될 것을 믿는다.


내 꿈은 사회교과서에서 있는 양성평등의 그 유창한 내용들이 우리 실제생활에 콕콕 박혀들어 왔으면 해... 교과서 속의 글자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당연한 상식으로 자리잡는 그 날이 오기를^^


~ 위에 내가 했던 말... 너무 당연해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활자로만 남으려는 양성평등의 가치가 우리 마음속에서 뜨겁게 요동치는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래서 행복을 꿈꾸는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양성평등을 그토록 바라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성이라는 태초의 기득권을 버릴 수 있느냐부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상식’이 가장 어렵다.^^ 6(^.^)9 (2003/05/24)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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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모든 교양 있는 사람들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너무나 많이 짓밟히고 있다.


양성평등을 주창할 때... 무식한 마초들이 주절대는 것이 있다.
“억울하면 남자처럼 군대도 가고, 무거운 물건도 들어봐. 못하면 좀 가만히 있어.”


남성이 여성보다 근력이 세다는 생물학적 우위를 주장하며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일부 무식한 마초들. 그것밖에 자랑할 게 없다니 인생이 불쌍할 뿐이다.


일부 극단적인 마초들은 이 땅을 동물의 왕국으로 규정하려고 노력한다. 약육강식의 논리를 옹호하는 한 편으로는 인간만이 가지는 허위와 위선으로 치장하기 여념이 없다. 전혀 인간답지 않은 논리를 사랑하면서, 인간다운 품위를 누려보려는 모순이다.


최근 금녀의 영역에 여성들이 성취를 하는 모습들이 여기저기 보이면서 여권신장이라는 호들갑을 떤다. 과연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양성평등의 길일까? 아니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만 막으면 된다.


여자답게 살고 싶은 여자도 내버려 두고, 남자답고 싶은 남자도 내버려 두라.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자 말라. 특히 일부 극단적인 마초들은 자신의 단순함을 타인에게 전염시키려 하지 말라.


차이가 차별의 명분이 되는 세상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고정적이고 획일화된 아름다움’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줄뿐이다. 양성이 ‘정말로’ 평등하게 공존하는 사회에서 개개인은 좀더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며, 무엇보다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성평등주의를 지지한다. 그러나 평등에 대한 열정보다는 차별에 대한 경계로써 지지한다. 일각에서의 차별이 싫다고 차이마저 없애려는 시도에는 동의할 수 없다. 차이는 자유의 자연스런 산출물이다. 아울러 차이에 대한 상이한 보상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차이가 폭압적 차별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한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한 세상이라니 참 우스운 일이다.^^;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사소한 것에 시비를 거는 용기를 가지기를 다짐해본다. 6(^.^)9


잡담들...

극우 헤게모니가 춤추는 한국 사회에서 소수파 노릇이란 두려운 일이다. ‘주류편입’과 ‘별류(別流)창조’(개성적인 흐름 정도의 의미)사이의 고민은 주류편입으로 점점 기울어져간다. 나같이 모자른 사람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주류에 대항하기가 힘에 부친다는 솔직한 자기인식이 진행되면서, 주류로 끼어 들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전체주의가 해체되고 모두가 개인 자체에서 출발하는 세상을 옹호하는 개인주의자라는 정체성이 무색할 만큼 현실추수적으로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면 씁쓸함만 느껴진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되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약속하자. “올챙이적 생각을 잊지말자고.”


나는 변방을 넓혀 중앙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모두가 서얼인 세상, 서울도 서얼이고 대구도 서얼인 세상, 자유주의자도 서얼이고 사회주의자도 서얼인 세상, 모두가 서북이고 송도인 세상, 남자도 서얼이고 여자도 서얼인 세상, 모두가 소수인 세상, 그래서 모두가 궁극적 소수 곧 개인인 세상. 모두가 서얼인 그 세상은 아무도 서얼이 아닌 세상일 것이다. 그 세상에서 나는 전라도 사람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서울 사람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한국인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아시아인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남성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김대중의 비판적 지지자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문필가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4인 가족의 가장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무신론자이기 이전에 개인일 것이다.
- 고종석, [서얼단상] 148쪽

(2003/05/23)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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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스승의 날 겸해서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뭐 이제는 제법 낯설어진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이 학교의 주인은 교복을 갖춰 입은 후배님들의 것이니까... 내 것도 아닌 것에 자꾸 침 흘리는 것도 상도덕에 어긋나는 처사이리라.^^;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면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이 그립다는 이야기가 쏟아지지만... 그 투정은 지난날의 추억이나 고민들이 점점 옅어져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제 서로 얼굴 한 번 보기도 점차 힘들어지고, 딱 잘라 말해 콩가루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고등학교에 얽매여 있던 것들에서 상당수 벗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얽매인 것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홀가분함이 가장 먼저 찾아오지만... 그 뒤를 이어 두려움과 혼란 등이 줄지어 찾아오기에 당분간은 이 어수선함을 달게 받아들여야겠다.


지나가 버린 것은 미화되기 쉬운 법이다. 좋은 것은 더욱 좋게, 그저 그런 것은 좋은 쪽으로, 나쁜 것은 덮어두려 하는 것은 한 개인의 소박한 심리적 방어기제일 것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을 어영부영 제대로 한 것도 없다고 매섭게 몰아붙이다가도, 당시의 선택 하나하나에 담긴 고민을 돌아보며 조금씩 누그러뜨리는 것도 마찬가지의 방어다.


고등학교를 찾아갔을 때 윤리 선생님께서 뼈 있는 말씀을 던지셨다. “이제 학교일랑 찾아오지 마라. 앞으로 나가기도 바쁜 너희들이 자꾸 뒤를 돌아봐서야 되겠냐.” 어찌나 가슴을 파고들던지 모르겠다. 과거지향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던 나에게는 더욱 날카로운 비수였다.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쉬어 간다는 핑계로 숨 고르는 시간이 자꾸 길어지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아직도 간간이 나를 ‘익구어린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주는 친구가 있을 정도로 유치한 짓거리를 많이 하며 살아왔다. 물론 ‘익구어린이’에 담긴 애정 어린 뜻 한 편에는 현실감각 없이 좌충우돌하는 익구에 대한 경멸의식도 조금은 섞여있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익구청년’으로 갈아치운 지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익구어린이’는 뜨거운 감자다. 익구어린이가 품었던 ‘순수’와 ‘이상’이라는 화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성년의 날이다. 그간 어리게 놀던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왕창 늙어버린(?) 기분이다. 이런 내 기분을 아는지 노원구청에서 고맙게도 성년의 날 기념 카드를 보내왔다.


성년이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웃과 사회에 큰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두 줄을 여러 차례 읽으면서 떨림... 다음으로 서글픔을 느꼈다.


“익구어린이가 성인이 되기는 하는 걸까?” 6(^.^)9 (200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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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강연회 후기

사회 2003. 7. 20. 01:46 |
2003년 5월14일 화요일 오후 5시 10분부터 고려대 경영신관 학우강당에서 개혁당 유시민 의원의 [통일독일과 북한, 정치개혁]이라는 주제의 강연회가 열렸다. KUBS 방송제 표까지 구해놓은 것을 포기하고 가게 된 강연회는 무척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유시민씨의 강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작년 7월에 교보 교양 강좌에서 [우리 시대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연회가 있었던 것을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홀홀 단신으로 참석했다. 그 강연회에서 나는 정치인으로서의 대변신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개월 뒤에 이렇게 주목받는 정치 신인으로 성장할 것까지는 예상할 수 없었겠지만.^^;


작년 7월의 강연이나 이번 강연이나 내가 핵심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경계”이다. 주제가 다르고, 상황이 달라도 그의 강연에는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본능적 경계가 깔려있는 듯하다.


이번 강연에서는 북한의 한글전용정책과 한자를 모르고서는 알기 힘들 정도의 한자어가 공존하는 북한 말글의 모순점에서 시작되었다. 북한의 어문정책이 성서 원리주의자와 비슷한 교조주의이며, 경직성의 증거라는 지적은 북한 사회의 참담한 모순 덩어리의 근원을 정확히 집어 주고 있었다. 자연스레 독일 통일 이야기로 넘어간 그는, 독일 통일 과정을 통화 통합, 기업 통합, 사회 통합의 단계로 이행된 것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특히 서독의 사회복지제도가 동독에 그대로 이식된 것을 높이 평가했고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북한에 그대로 이식해도 괜찮겠느냐는 부끄러운 질문을 던졌다.


다음으로 북한 전체주의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적 시스템을 외부적 강압으로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러면서 독일의 브란트 총리, 콜 총리로 여야 합의로 꾸준히 이어져온 독일의 통일 정책을 높게 평가한다. 특히 이미 한 사회를 정상적으로 유지할 기능을 상실한 북한과는 어쩔 수 없이 흡수 통일의 형태가 될 것이라는 발언은 조금 위험스럽기도 했지만 현실과 가장 부합하는 전망이라고 생각되었다. 자연스레 정치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불관용이 특징이다” “북한 문제가 나오면 그 불관용이 폭발한다” 등으로 지금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그의 자유주의 신념을 풀어놓는다.


뭐 그의 자유주의에 관한 이야기는 작년의 강연회나 그의 숱한 글에서 너무나 많이 듣고 보아와서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이런 당연한 바람이 아직도 제대로 정착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초상이 건재하기에 늘 새롭고 반가운 이야기다. 우리에게 가장 긴급히 요구되는 것이 ‘개인의 자유’라는 자유주의적 가치라는 그의 화두는 익구가 그대로 수입해서 재가공하고 있다.^^; 다수파의 자유는 저절로 보장되지만 소수파의 자유는 의지를 가지고 보장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내가 소수파가 될 경우 소수파로서의 자유를 꾀하기보다는, 다수파로의 편입을 더욱 궁리하는 나에 대한 반성이었으리라.


남북 통일의 기초는 남한 정치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관용하고 어울리는 법을 배워나가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으로 그의 강연은 마치고 질의 응답시간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최근 관심사의 신당 논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신당들과 뭐가 다르냐는 것에서부터 다양한 신당 관련한 질문들이 있었다. 특히나 이번 ‘벼락치기’를 어여삐 봐달라는 말이 재미났다. 하긴 언제나 미리 공부해두겠다고 하지만, 막상 벼락치기하기 일쑤인 우리네 인생을 보아도 너무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다.^^


불가의 자리이타(自利利他) 개념도 잠시 나왔다. 이는 스스로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뭐 아담 스미스가 멋들어진 비유를 들어 설명했던 그 개념과도 일맥상통하겠다. 거의 대부분의 회사원은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승진하기 위해서, 더 좋은 보수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한다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그 일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구할 수 있겠지만, 그 활동으로 인해서 한국경제가 풍요로워진다면, 자신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간에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충실한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사회... 익구가 제시하는 이상향인 ‘보통선(普通善)의 시대’와 거의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보통선’은 전통적 의미의 착한 행동이 아니라,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으로 성립되는 소극적 의미의 선행위를 말하는 익구가 멋대로 만들어낸 개념...)


끝으로 민주노동당 당원 분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지난해에 이미 이런저런 학생사회의 회의에서 이런 경험들을 많이 해온 터라 이제는 자연스러웠지만, 이러한 지적들 앞에서는 늘 떨리는 마음이다.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권이며, 정리해고 증가와 국가보안법 사범 증가 등의 이야기가 반복되었고, 유시민씨는 격앙된 목소리도 답변했다. “김대중씨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했던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비슷한 문장으로 발언을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조금 부연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진보 정당 분들도 분명 이회창씨보다는 김대중씨에게 기대를 더 했을 테니까. 물론 유시민씨가 원하는 만큼의 기대는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굳이 매섭게 몰아붙이실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 여기저기서 보여지는 진보 정당과 민주당, 혹은 개혁당과의 알력은 나같은 새가슴에게는 영 아슬아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너무 과도하게 싸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김대중씨는 국민이 기대했던 만큼의 일을 하고 떠났다는 유시민씨의 견해에 동의한다. 김종필과 손을 잡아서 겨우 40%의 지지로 대통령을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제 제발 김대중 씹기로 연명하는 정치가 아닌, 새로운 기반에서의 정치가 되기를 유시민씨나 나나 한결같은 바람이다.


뭐 이번 강연을 딴에는 근엄한 표정으로 임했다. 뭔가 내 이 좌충우돌 인생의 좌표를 마련해볼까 하는 흑심도 품었다. 얼치기 경영학도로 이래저래 찌들다보니 적당히 물신주의에 물들어서 ‘개인의 자유’ 다음으로 ‘물질적 복지’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건전한 좌파나 우파나 개인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에서 동일하므로 결국 물질적 복지 추구는 나의 제일의 이념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좌파라고 선언한 적도 없지만, 우파라고도 선언한 적도 없다. 나름대로 ‘정치적 인간’(직업적이고 전문적인 ‘정치인’이 아닌 사회 의사결정과정으로서의 정치의 다양한 모습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아직도 눈치보기만 해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충 정리를 해도 될 것 같다. 익구는 극우파를 혐오해서 한국 사회에 팽배한 극우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데 코딱지만큼 일조하고 싶은, ‘날라리 우파’다. (김규항식으로 말하자면 낙제를 겨우 면한 ‘D급 우파’라고나 할까.^^;) 유시민씨가 한국사회에서는 리버럴을 외쳐도 진보가 된다고 했듯이, 익구도 날라리 우파,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옹호 정도를 역설해도 분명 불온하게 보거나, 극단적으로 보는 눈초리들이 많을 것이다. 유시민씨가 자신의 자유주의가 ‘고전적 자유주의’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해 좀 더 배우고 나와도 얼마나 유사한지 찾아봐야겠다.


살아오며 아웃사이더, 소수파, 비주류에 많이 끼었던 터라 나의 이번 ‘날라리 우파’ 선언은 혹시라도 계급 의식에 반하는 짓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 해먹을 거리가 많은 ‘범생 우파’의 길을 가지 않고 날라리 우파를 선언하는 것은, 그나마 자본주의 세상의 지나친 물신주의에 대한 경계이며, 소수파 경험에서 비롯된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연대의식의 발로이다. 물론 그 무엇보다도 익구의 심약함이 가장 큰 원인이 되겠다만은...^^;


이번 유시민씨의 강연회는 무척 유익했고 아울러 개인적인 결심을 선언하게 해줘서 고맙다.^^ 아무쪼록 새로운 정치 개혁의 흐름에서 많은 역할을 해주시길 기원하는 바이다. 개혁당 당원이 될까도 고심했지만, 역시 아직은 신당 논의를 지켜보는 수준에서 만족할란다. 뭔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익구의 지난 삽질의 역사상 아직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저울질 할 생각이다. 아악 이 옹졸한 눈치보기란...^^; 그래도 “생각은 힘이 세다”


문득 고종석과 칼 포퍼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6(^.^)9 (2003/05/16)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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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도 헌내기다. 새내기 시절을 제대로 못 보내기는 했다만 물리적인 위치상 헌내기임에는 분명하다. 고등학교 때 교지편집부 하면서 후배들 몇 몇에게 선배소리, 오빠, 형소리 들었지만 03학번들에게 선배소리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다.^^


권력을 마다할 사람 없고, 자기 따르는 사람 생기는 거 싫어할 사람 없겠다만 그래도 내가 누군가보다 높은 위치에 선다는 것은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누군가보다 물리적 위치상으로나마 우월하다는 것은 행복한 만큼의 책임감을 수반하는 일이다.


03학번들이 많이들 모여서 놀고, 재미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앞선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는 노는 것이 본업이라고들 하지만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한 헌내기의 만시지탄인지도 모른다.


좀 더 많은 후배들을 알고 싶고, 끊임없이 후배들이 어떻게 지내나 묻고 싶다. 선배 대접을 받아보기 위한 술책이라기보다는 덧없이 흘러간 새내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앞으로 한 두 살 먹어 가면서 선배, 오빠, 형 소리를 들을 위치에 놓일 데가 더 많아질 것이다. (물론 그 역의 경우로 나의 손윗사람들도 많아지겠지만 논외로 치도록 하자) 그럴 때 나는 이른 바 ‘나이 값’을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많은 사람이 반드시 더 지혜로운 것도 아니요, 어린 사람이 꼭 무지의 온상이 되는 것을 아니다. 나이 값은 그런 개념이 아니라, 물리적 위치상으로나마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보여주는 책임감을 말한다.


한 마디를 할 때도 더욱 진솔하고 신중하게 해내는 태도를 가질 수 있을지 두렵다. 누군가를 섬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누군가를 부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남을 부려먹지 못해 안달이지만, 그 일만큼 무거운 것도 없다.


여동생이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오빠 소리는 많이 들었다. 여기서도 얕은 경제학의 지식이 발동하는지, 희소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형 소리에 나는 더욱 기쁘고 한 편으로는 떨린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형이 될 수 있을까?


이 사람이라면 정말 형으로 모시고 싶다라는 진정한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어린왕자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는 생각 간절하다. 6(^.^)9 (2003/05/10)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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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지 말고 쉬지 말고

잡록 2003. 7. 19. 08:13 |
"글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지나칠 때 그것은 미신이 된다. 즉 글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위험한 미신일 수 있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나 글쟁이들이 만들어내는 미신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원리가 관철되어 있으며 글로써 사회가 변할만큼 이 사회는 아직 신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 '진보적' 글쟁이들의 글이란 '금 안에서만 노는' 글이다.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망각하는 모든 글쓰기는 미망에 지나지 않는다."


[서준식의 생각]이라는 책의 머리말에 담긴 글입니다.
그저 잡글 정도 즐기는 일개 네티즌에 지나지 않는 저이지만...
진보를 머금은 글들에 설레는 저에게도 날카로운 이야기입니다.

두 번을 생각해봐도 저는 활동가적 기질을 갖춘 사람은 아닙니다.

쓰는 것, 말하는 것들에 비해 늘 몸이 늦게 움직이며...
움직여야할 시점에 한 번 더 생각하느라 기회를 놓치기 일쑤입니다.

사회 모순의 일선에서 투쟁하는 ‘거시 혁명’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기 주위 사람들이나마 충실히 설득하고
자기 자신 하나 온전히 변화시키는...
‘미시 혁명’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어제오늘의 경험이 비추어 보아도 거시 혁명을 수행할 전사보다는...
미시 혁명을 수행할 소박한 사람들이 더 많을 겁니다.

세상은 선량한 보통 사람의 소극적 도덕으로 일구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는 마음...
자기와 다르다고 함부로 무시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마음...
개인성과 더불어 사회성도 고려하는 균형 잡힌 마음...
이런 것들이 세상을 소리 없이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때의 진보에 대한 격정과 열정으로 불타다가
어느덧 싸늘히 식어 과거의 낭만이나 들이대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차갑게 타오르는 불이 쉽게 식지 않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미지근하겠지만 조그만 나아감을 품으며 평생을 꿈꾸고 싶습니다.
설령 거기까지가 제 한계라면 기꺼이 받아드리겠습니다.

저의 작은 이상, 작은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쉬지도 않겠습니다. 6(^.^)9

--- 아침 비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이런저런 반성을 하면서 (2003/04/21)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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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선쟁이

어느 친구가 나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넌 어느 하나를 정하면 모든 것을 그것에 맞춰 몰아가는 것 같아.”


뭐 솔직히 부인하지는 않는다. 어느 인식적 틀을 정하면 그걸 기준으로 밀고 나가는 성격인 것 같기는 하다. 좋게 말해 가치관 확립이고 비꼬면 고집불통 막무가내인 셈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정하는 것은 정말 고통이다. 한 번 정하면 계속 밀고 나가는 우직함(?)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결정과정에서 엄청나게 고민을 하기 때문이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뛰어들어가기 전에 엄청난 검토를 해대는 것이다.


이건 이제는 다 버렸다고 생각하는 ‘한결같음’에 대한 집착의 그늘이 아직도 내 삶의 양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실상 ‘한결주의자’는 위험하다. 그네들의 원칙과 소신은 때로는 과도한 순결주의와 결합하면서 무시무시한 배타성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소심쟁이 익구가 독선적인 마음을 먹게 되기까지는
정말 여러 번 생각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생긴 독선도 언제나 다시 점검하고
언제든지 기꺼이 고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다는 것을...
독선과 독선이 만나서 경쟁하고 절충하는 과정이
독선은커녕 아무 알맹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믿거든.
독선 과잉도 문제지만... 독선 부재도 문제니까...

- 익구, [독선쟁이가 되자] 中


한결같음에의 천착이 나의 아이덴티티라면 무작정 내치기보다는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답답하기 일쑤이고 임기응변은 전무하며, 때를 놓치기 다반사다. 이런 내가 싫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꾀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성격심리학이라는 수박을 핥아보고 나서야 겨우 나의 이 못난 성격을 인정하고 공존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인정은 긴장감을 유지한 인정이다. 지난날의 생각과 경험들이 쌓여 이루어진 지금의 나를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부정하는 모순의 칼날을 기꺼이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무언가 시작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늘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낯설음이나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언제나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처음과 끝이 같을 수는 없다. 그건 지나친 욕심에 불과해”라고 말씀하셨고, 딴에는 무릎은 쳤지만... 아직도 그 말을 체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나는 참으로 더딘 놈이다.


나도 그 놈의 냄비근성을 가져보고 싶다.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정신 없는 세상에서는 활활 타오르다가 이내 식어버리고 또 다른 장작더미를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식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일관성에의 집착은 식을 줄을 모른다. 초라한 결말이 싫어, 애초부터 초라함으로 무장(?)하는 ‘새가슴의 고리’를 끊기가 참 힘들다. 이럴 때는 뻥튀기의 선수들인 정치인들의 기질을 좀 수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 기회주의자

나는 어쩌면 기회주의자인지도 모른다. 교묘한 저울질의 끝은 대개가 중간 어디쯤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양시론, 양비론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래 생각하다보면 상반된 대안의 장단점이 보이면서 그 때부터는 적절한 타협에 들어간다.


오른쪽으로 많이도 아니고 욕먹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둔다. 이념문제에 민감한 이 땅에서는 좌나 우나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라는 것을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날라리 우파’를 선언했다. 아직 해먹을 거리가 많은 ‘범생 우파’의 길을 가지 않는 것은 ‘최소한의 계급의식’ 이전에 심약함의 발로다.


나는 이따금 내가 세속도시에서 유토피아로 밀파된 스파이이거나 유토피아에서 세속도시로 파견된 스파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스파이에게 영예가 주어지는 법은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불안하고 누추한 회색지대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 고종석, [자유의 무늬], ‘책 앞에’ 中


날라리 우파로서의 나는 회색지대가 두렵고 스파이가 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도 고종석의 저 말에 한없는 공감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은연중에 스파이의 과업을 수행하고, 부지불식간에 회색지대로 성큼 나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참 그러고 보면 나름대로 많은 변화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는 나를 ‘극단적 진보’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정치 교과서에 있는 정치 문화에 대한 그래프를 소개해줬다. 그 그래프는 정치적 의견의 동질성 여부를 합의적 정치 문화와 다극적 정치 문화로 나눴다. 극좌부터 극우까지 X축에 두고, Y축은 퍼센티지(%)로 된 구성된 그 그래프에서 합의적 정치 문화는 ∧모양으로, 다극적 정치 문화는 ∨ 모양으로 대략 그려져 있었다.


그 친구는 합의적 정치 문화가 안정적 사회발전을 가져온다면서 나를 비판했다. 무슨 오기였는지 나는 극단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라 양극단이 부딪히면서 사회가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내게 있던 극치의 아름다움과 타협을 거부한 극단에 대한 동경의 표현이었다. (물론 각종 문제집의 모범답안들은 당연히(!) 합의적 정치 문화를 지지했다)


하여간 그 때 나나 그 친구나 너무 멀리 나갔다. 그 친구는 기껏해야 ‘눈치 많은 보수’ 정도에 불과한 나에게 극단적 진보라고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씌웠고, 나는 그걸 반박하기는 오히려 ‘극단예찬’을 해대는 잘못을 저질렀다. 적당한 타협과 강요된 굴종에 허우적대는 나를 보면 그 친구도 그 때의 구박을 취소하겠지. 물론 나도 두 발 물러서야겠지만.


기회주의자로서의 익구는 실상 스스로 자초한 결과이다. 한결같음의 리스크를 감소시키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들여온 것이 이 녀석이다. 그런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더니, 이 기회주의는 어느덧 내 삶의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있다. 이것이 바로 현실에 대응하며 발전을 위한 변화의 길이라는 그럴듯한 수사로 치장하고서 말이다. 식용을 위해 들여왔다가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되었다는 황소 개구리, 기회주의는 내게 있어 꽤나 먹성 좋은 황소개구리다.


3. 똘레랑스(tolerance, 관용)

“소수가 혁명적인 것보다 다수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것이 훨씬 더 혁명적이다”라고 그람시가 말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거나 돌린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성실한 자세로 몸과 마음으로 설득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아무리 진정성을 보여도 또 어쩌다가 상대방의 진정성이 드러날 경우에도 서로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내가 진정성을 보이거나 상대방에 진정성을 보이는 단계까지만 가더라도 성공이지만. 결국 운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무책임하게 둘러댄다. 나는 내게 운이 더 생기기를 바란다.


살아가며 뜻 맞는 사람 만나고 서로의 동질감을 확인하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눈 씻고 찾아보면 마음 맞는 사람은 몇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런데도 나와 공유할 사람을 찾는 즐거움보다는 내가 처한 상황, 내가 겪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애썼다. 이것이 안정추구의 보수적 성향이라면 딱 그만큼은 보수주의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게으름의 탓일 것이다.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난다고들 하지만, 그보다는 어쩌다가 만난 사람들에 감사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우연으로 엮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자신과 내 주위 사람들의 변화를 일으키는 ‘미시 혁명’과 만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단 주어진 것에 한 번 긍정하고 들어가니까 딱 그만큼은 보수주의자가 될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의 폐해일 뿐이다.


다양성, 이질성, 복잡성을 존중하기 위해 무던 애를 쓰는 나는 결국 똘레랑스를 찾았다. 동질성과 단일성의 아름다움에 숨이 막히는 나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본디 똘레랑스는 프랑스 수입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라는 기둥과 함께 또 하나의 기둥이 있다. 쏠리다리떼(solidarité), 즉 ‘연대’가 그것이다. 똘레랑스가 개성과 자유의 미덕이라면 쏠리다리떼는 공동체와 연대의 미덕이다.


뭐 구구절절 따질 것도 없이 똘레랑스보다는 쏠리다리떼가 훨씬 진보적이다. 똘레랑스가 내 자유를 옹호하고, 남의 자유를 인정하는 데서 그친다면, 쏠리다리떼는 더 나아가 평등과 박애에 닿는 적극적인 개념이다. 그렇지만 나는 똘레랑스에 그쳤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똘레랑스 하나 온전히 수행하기도 너무 벅차다. 무엇보다 앵똘레랑스(불관용)에 단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똘레랑스가 강조되는 사회에선 강요나 강제하는 대신 토론합니다. 아주 열심히 토론합니다.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러다 벽에 부딪히면 “그에겐 안된 일이지만 할 수 없군!(tant pis pour lui!)”하며 아주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섭니다. 강제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습니다. 치고 받고 싸우지도 않습니다. 또 미워하지도 않으며 앙심을 품지도 않습니다.
-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290쪽


그러나 이런 나의 모자름에도 불구하고 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한 똘레랑스라는 무기는 여전히, 앞으로도 유효하다. 똘레랑스는 순전히 나를 위한 것이다. 이것이 뿌리내린 땅에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아웃사이더, 소수파, 비주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다수파일수는 없다. 그렇기에 똘레랑스는 일종의 보험이다. 물론 남과 다른 것에 마음을 열어야하는 보험료는 그리 싼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보험료의 부담쯤이야 보험금의 혜택에 비추어볼 때 확실히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뭐 나란 녀석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려고 노력하지만 막상 잘 되지 않는다. 독선쟁이로서 한결같음을 외치다가 기회주의자가 되어 눈치를 보기 시작하다가도 똘레랑스를 들이대며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들먹인다. 한마디로 모순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복잡한 양상들이 모여 나란 인간을 형성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나에 대해 째려보기를 그치지 말자. 그러나 가끔은 따스한 눈길을 보내자. 어느 친구의 옛 편지에서 살짝 웃고 만다.


“너야 맨날 긍정적이게 사는 사람이니까 또 웃으면서 세상을 초월해서 살아가구 있겠지...^^;”


나는 절대 세상을 초월해서 살지 못할 것 같다. 오히려 악착같이 붙어서 재미난 인생을 꾸리기 위해 머리를 굴려댈 것이다. 나의 길이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아직은 영 흐릿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 약속하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뒹굴 거리더라도 최소한의 양심과 이상은 손에서 놓지 않겠다고.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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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 보낸 편지의 일부...
에구 조만간 편지 한 통 써서 보내야겠다.)

이번 편지에서는 지난주부터 다니고 있는 운전학원에 대해서 이야기 할까합니다.
차안에서 핸들 이리저리 돌리고 정지했다가 기어바꾸고...
이렇게 정신 없는 찰나에도 섬광같이 스쳐가는 깨달음이 있더군요.
첫날 운전할 때 도로 가에 있는 돌 위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그걸 연석이라고 하던가... 잘 모르겠네요...^^;)
둘째 날에는 한군데서 대여섯번 연속으로 시동이 꺼져서
제 뒤에 차들이 줄을 좌르르 서게 만들기도 했답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굴절, 곡선, 방향전환 코스를 배웠습니다.
다섯 개 관문 중에 세 개를 배운 셈이죠.
이제 시동도 거의 안 꺼지고 중앙선 침범도 안 하는 경지에 다다랐습니다.
아직 급정거를 한다고 구박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학원에서는 월요일마다 새로운 반이 개강합니다.
월요일날 새로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운전연습을 했는데
정말 만감이 교차하더라구요...^^;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말도 있는데...
일주일 전 저처럼 헤매고, 지그재그로 달리는 차들을 보고
한번쯤 비웃어 줄만도 한데... 왜 저러랴고 생각해 볼만도 한데...
좀체 그게 안되더라고요...^^;
그보다는 저의 초반 쩔쩔맴이 오버랩 되면서...
동병상련만 물씬 풍겨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감한다는 것, 공감한다는 것...
실로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랑 처지가 같거나 나와 같은 생각,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그 든든함을 느낀다는 것은
분명 고독이 모르는 재미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 바로 앞에서 길옆의 돌 위로 올라가는 차를 보면서
그때의 당혹감을 공감할 수 있기에...
함부로 웃어 제끼거나 할 수 없는 것이더라고요...^^

티비에서 두 번인가 본 ‘동감’이라는 영화도 재미났지만...
동감 혹은 공감은 힘은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 무언가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각박한 세상 살아가는데 무척 요긴한 녀석인 것 같습니다.

게임 한판을 치열하게 하고 난 희열을 동감하는 사람들이 있고
같은 책을 읽고 함께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들 수도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초면도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고
같은 어려움에 빠져있는 이가 있다면 꼭 오바해서 돕고 싶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발걸음이 있고...

생각만 해도 흥겨운 이런 일들이 부러워서
제가 “진솔한 대중성”에 그렇게 목매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체 고독과도 친숙하게 지내는 저라고는 하지만...
본디 남의 떡이 커보이는 법이라지 않습니까...^^

물론 이 공감이라는 녀석이 지나쳐서 엉뚱한 데로 흘러서는 안되겠습니다.
지연이니 학연이니... 뭐 각종 연줄이니 하는 것들...
크게 보면 공감 혹은 동감에서 싹이 트는 것이겠지요.
이런 것들은 철저히 경계할 일입니다.

천하의 ‘기계치’인 제가 운전을 배우다보니...
별의별 생각이 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삼수해서 그들의 서글픔에 공감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방학 때 별로 한 게 없다보니 이것 밖에 드릴 말씀이 없군요.
몇몇 친구들을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잘도 다니던데...
저는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그런 제가 엄청 못나 보이고 모자라 보였는데...
짧은 성격심리학을 빌리면... 내향적인 사람은
밖에다가 에너지를 쓰면 금세 지쳐버린다고 하는 내용이 있더군요.
그 어느 천군만마가 저의 게으름을 이처럼 합리화시켜 줄 수 있을는지...^^; <2002년 8월 6일>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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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모음

잡록 2003. 7. 16. 23:55 |
각박한 세상, 우리 가끔 시인이 되어 조금 어깨의 집을 덜어보자.
고등학교 시절 함부로 끄적였던 흔적들을 좀 내어보며 웃어보자꾸나.^^

[爽秋情景]


남도의 초가을 단아한 논에는
청량한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벼들이 있다.

쓰다듬으면 사뭇 서글퍼지는
100년 고목이 호젓이 터잡고 있다.

달콤한 고독에 헤어나지 못하는
스산한 부슬비가 후두둑 나리고 있다.

번뇌 버혀내는 싱그러운 이슬과
시름 떨궈내는 지긋한 고추내음이 있다.

무수한 상념속에 헤매이는
깨어있고자 흐릿한 마음하나 있다.

세지(世智) 모를 풋선비가 고달퍼
가락만 나지막히 읊조리고 있누나.
<2000/09/13>

[혬가림]


저녁놀 너볏할제 바람이 스쳐가면
빛바랜 조약돌이 속절없이 애와티네
도니니 무지근하여 봄꽃만 시드는구나

짙은밤 곰살가워 샘물을 길러내면
차디찬 곳어름이 얼러붙어 아뜩하네
무르니 어수룩하여 통나무만 부둥키구나

밝을녘 가물대니 구름을 기다리면
텅비운 곱구슬이 시름겨워 한들대네
너르니 머뭇거리며 생채기만 쓰리는구나

<너볏하다 - 아주 떳떳하고 의젓하다.
애와티다 - 분해하고 슬퍼하다
도닐다 - 가장자리를 빙빙 돌아다니다
무지근하다 - 1.뒤가 잘 안 나와서 기분이 무겁다.
                    2.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무엇에 눌린 듯 무겁다.
곰살갑다 - 겉으로 보기보다 성질이 부드럽고 다정하다.
곳어름 - 고드름의 옛말
가물대다 - 1.(불빛 따위가)희미하여 자꾸 사라질 듯 말 듯하다.
                 2. (멀리 있는 물체가)희미하여 보일 듯 말 듯하다.
                 3.(정신이나 기억이)맑지 못하고 희미하다.
곱구슬 - "고운 구슬"의 준말로 억지로(?) 만든 말
한들대다 - 가볍게 이리저리 자꾸 흔들리다. 또는, 자꾸 흔들리게 하다.>
<2000/09/17>

[은행나무]


흔들린다.
떨어진다.
무심하게도.
으스러지고 나부끼는 너희들.

쓴 미소도 과분한.
차마 떨구어 내지 못하는 너희들.
내 마지막 작은 집착.

다가올 겨울의 추위보다
지난날 얘기들이 더욱 야위게.

눈물 몇 방울쯤 애써 외면할 뿐.
<2000/11/10>

[망각의 늪]


망각의 늪에서 나는 기도합니다.

부시도록 슬픈 날
한 줌의 재조차 불어버리고
백사장의 빛나는 모래처럼

여름밤의 흐느낌은
쓰린 고통과 씁쓸한 미소가 되어
저만치서 헤매이는데

망각의 늪에서 나는 혼미합니다.

시련은 아름답지만
행복은 또 다른 아픔이 되어
나를 짓누르는고

순간 입이 닫히고 귀가 막히더니
채 못 벗어낸
역겨운 고백을 되뇌이는데

망각의 늪에서 나는 절망합니다.

얽어매인 고독이
소야곡 읊조리는
서글픈 시름에 겨워

잿빛 하늘은
잦아든 눈물을 부르고
공허한 괴성을 지르는데

망각의 늪에서 나는 주저합니다.

부질없는 순수와
헛된 낭만에
에이는 마음이라도

먼발치에서 바라다가
설렘은 한 떨기 금잔화로
파랑새는 날개를 접으려
<2000/11/21>

[踏雪]


아직은 눈을 밟을 수 없습니다.
그저 타인의 발자욱을 조심스레 스쳐봅니다.
순백의 눈.
짓이겨져 누런빛이 되고
감장물로 어지러이 녹아도
조용히 두 눈뜨고 보아야만 합니다.
못내 그러다
설원으로 목도리 두르고 나아가
청음의 황홀경에 빠져들지니.

오늘도 웃으며 놓인 발자욱에 입을 맞춥니다.
<2001/01/18>

[공명선생을 좇다]


- 대륙의 구석에서 채 피지 못한 웅지여...

혹자는 선생의 공을 논하고
혹자는 선생의 과를 논할 제
나는 한 인간이 영원히 사는 것을 본다.

신선의 꿈은 접어두고
세진에 뒤덮이고
잡인과 어울리며
피를 토해내셨지만
선생의 터럭 좇지 못함을 탄식하니.

질퍽한 형극의 길을
기꺼이 필마단기(匹馬單騎)함은
썩어빠진 서생의 가련한 업이로다!
<2001/01/12>

[세상 바라보기]


녹음방초에서 순백까지
산이 좋다.
팽개치는 내가 자랑스럽다.

시대는 빨리 변하고
사람은 빨리 따라잡고
시대는 빨리 도망가고
사람은 빨리 쫓아가는

끝없고 무서운 숨바꼭질!

변하지 않는 것 하나 없어도
변하기 싫은 것 넘쳐나는
변하는 것 하나 없어도
변해야 하는 것 넘쳐나는

끝없고 우스운 숨바꼭질!

그저 푸르른
바다가 좋다.
팽개치는 내가 부끄럽다.

그렇구나! 얼마만큼은 버리고 가는 길.
<2001/02/11>

[그대는]


그윽한 커피향을 즐기면서도
나를 위해 녹차 한 잔 끊여주는 그대였으면 좋겠다.

음반 사기를 좋아하고,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나를 위해 시집 한 권 나눠보는 그대였으면 좋겠다.

내가 두려워하는 영어를 남들보다 잘해서
내가 가진 한을 조금 풀어주는 그대였으면 좋겠다.

비 맞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나를 위해
흐린 날에는 넌지시 우산을 챙겨주는 그대였으면 좋겠다.

내가 흔들리고 어려워할 때는
그 어떤 말보다 따끔한 구박 한마디하고 마는 그대였으면 좋겠다.

더럽고 메마른 세상에 부대끼면서도
맑은 눈물 떨굴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는 그대였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이 있어서
그걸 할 때면 행복한 미소짓는 그대였으면 좋겠다.

내가 이상을 논하고 비판할 꺼리를 찾을 때
단지 사랑만으로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그대였으면 좋겠다.
<2001/03/11>
Posted by 익구
:

익구 염색하다!!!

잡록 2003. 7. 15. 21:44 |

(2002/04/14 고등학교 온라인 카페에 쓴 글)

나 염색했어...
푸하하... 꼴은 조금 우습다만...
또 새로운 영역에 발을 담가 보는구만...@.@
내가 머리를 짧게 자르는 조건으로...
(신기하게도 나는 머리를 자르고 싶어하고...
부모님들은 머리를 기르라고 하시는 풍경이 벌어진다^^)
엄마께서 원하시는 염색을 했건만...
뭐 그럭저럭 만족한다.

솔직히 난 안경만 벗으면 아무것도 뵈는 것이 없어서...
염색을 하는데 어찌 되는 줄 몰라서 얼마나
은근한 공포에 떨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리버럴(liberal)한 이념적 지향에 충실하기 위해...
끝끝내 안할 줄 알았던 염색마저 하니 감개무량하다.^^;

근데 염색에서마저 인생무상을 느낀다.
지금 이 빛깔은 결국 바래질 것을...
결국 다시 검게 돌아갈 것을...

끝으로 내가 물들인 색깔은 불빛에 비춰봐야만...
염색했는지 알아 볼만큼의 연한 갈색이란다.
본디 녹색계통을 희망했지만... 본인도 감당 못할 것 같아서 후퇴했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지...
“나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無可, 無不可)
나도 자꾸자꾸 생겨나는 편견과 고정관념과 아집들에게...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별 것도 아닌 염색 한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나는...
역시 아직은 좀 더 살아야겠다...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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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6 쓴 글>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먼저 칸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존경하는 학자인 칸트는 그 학문의 내용도 물론이지만 한 학문을 위해 헌신한 그의 진지한 삶이 저를 매혹합니다. 아마 확실히는 모르지만 초등학교 생활의 길잡이에 나온 칸트의 규칙적인 생활 이야기를 접한 이후부터 그를 이렇게 받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광대한 칸트의 철학중에서 (물론 아는 바도 없지만...)그가 말한 인식이론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자신의 인식이론을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유했습니다. 종래에는 대상에 따라 인식한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선천적 형식에 따라 대상이 들어와 인식된다는 것은 마치 천문학상에서 천동설이 지동설로 뒤집힌 것만큼이나 획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인식에서의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이란 대상이나 사물이 이미 완성된 상태로 주어져 있고, 우리가 그에 따라 모사하거나 반영함으로써 인식이 성립하는 대상 중심의 인식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명확하지 않고 그럭저럭 주어지는 대상을 인간이 어떤 구체적인 대상이나 사물로 만들어서 인식한다는 인간 중심의 인식론을 말합니다.


  간략히 말해 이전의 인식론은 주어진 명백한 대상을 우리가 인식해 가는 것이었다면 칸트의 인식론은 그냥 주어진 대상을 우리가 여러 가지 범주를 이용하여 능동적으로 인식해 낸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여기 오이 한 접시가 가득 있다고 합시다. 저같이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잘 씻어서 아삭 깨물어 먹고 싶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피부미용에 관심이 많다면 오이마사지를 떠올릴 테고, 달팽이를 키워 본 사람(제가 옛날에 그랬죠...)은 오이를 썰어서 달팽이 먹이로 주고 싶을 겁니다. 이처럼 똑같은 오이를 두고서 사람마다 다른 인식의 형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는 것임에도 말만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면 며칠전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러다가 "개개인의 행복이 최대한 보장되고 개인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물음은 꼬리를 이었고, 그러다가 문득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공리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칸트의 정언명령에 다소 의문을 가지던 저로서는 일대 혼란에 빠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칸트는 절대론적 윤리설이고 공리주의는 상대론적 윤리설이지요.) 엉뚱하게 윤리 문제까지 번졌지만 결국에는 인간은 행복하게 살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행복의 방법론들을 모색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근 한달 간 행복주의니, 해피즘이니 하며 고민하던 저였는데 어느날 한 스님의 신문사설을 읽고 경악(?)했습니다. "반드시 행복해야 돼."라는 생각 속에서 행복은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다는 그 글을 읽고 나의 지난 한달간의 논의가 얼마나 허망했는가 돌아보니 허탈 그 자체였습니다. 나만의 행복은 무엇일까 하며 갖은 궁리를 하면서 행복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서는 스스로 행복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냈다며 자화자찬(?)했습니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것은 진리지만 때로는 얻기 위해 잃은 건지, 잃기 위해 얻은 건지 알 수 없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잃은 것에 가슴 아파하는 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겁니다. 잃은 것을, 모자란 것을 채워나가면 거기서 행복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얻은 것에 감사하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설령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얻은 것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굳이 행복을 찾고자, 누리고자 헤매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는지...


  이런 뻔한 이야기를 참 빙빙 둘러서 말했군요. 그래도 뭐... 어차피 행복이란 우리 삶을 영원한 화두일테니...


  달라이라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정한 자비심은 물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


  아직도 멀은 저입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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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두 녀석 덕분에(?)

잡록 2003. 7. 15. 21:08 |

<2001/11/20 쓴 글>

저의 침대에는 베개가 두 개 놓여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베개 두 개가 있는 것은 낯익은 제 방 풍경입니다.
한 녀석은 노란색과 남색의 체크무늬
한 녀석은 노란색도, 연두색도 아닌 어정쩡한 색깔...
두 녀석 중에 잠을 잘 때는 '체크무늬 베개'를 썼습니다.
그 베개가 더 낮아서 더 편하기 때문에...

그런데 어느 날 엄마께서 베개를 빨고 나신 후에
베개 껍데기를 바꿔 놓으셨습니다.
몇 년만에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베개가 바뀐 관계로...
이제는 '어정쩡한 색의 베개'를 베고 자야했습니다.
하지만 며칠간은 무의식적으로
체크무늬 베개를 끌어다 베다가
높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베개를 바꿔야 했습니다.

밤마다 베개를 바꾸기를 며칠...
문득 "익숙함"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들더군요.

어린 왕자에서의 "길들여짐"이라는 단어도 스쳐갔지만
저를 흔들었던 것은 "실존(實存)"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친구라는 이름을 얻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친구라는 이름에 머물지 않고
정말 익숙한 친구, 실존하고 있는 친구를
두기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양(量)이 문제가 아니라 질(質)이 문제이기에...

과연 나는 얼마나 많은 친구에게 "실존"하고 있을까?
저는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실존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려고 하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익숙한 사람이 될 수 있으려나?

누군가에게 실존하고 있다는 것,
익숙하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일 것입니다.
실존 해야만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르트르'가 주창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명제를 알 듯 모를 듯.
"나"라는 개체의 본질도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실존하고 있지 않다면
자신에게 익숙한 것 몇 개조차 두지 못했다면...
"나"라는 개체는 허상에 지나지 않을까요?

살아가면서 우리 안에 실존하고 있는 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그걸 명심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것에 더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만화 [원피스] 16권에서 닥터 히루루크의 대사를 꺼내봅니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냐? ...(중략)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다!!!
내가 사라져도 내 꿈은 이루어진다.
"이어 받는 자"가 있다면..."

베개 두 녀석 덕분에(?)
새삼 익숙함의 축복, 실존한다는 것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실존하고 있는 것들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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