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사회과학적 용어가 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오늘날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도 그 중 하나다. 정말 신축성이 뛰어난 고무줄마냥 이 용어에 대한 해석은 엄청난 탄력성을 보여준다.^^; 유시민 선생의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사상이나 단 한 톨의 진실도 담지 않은 사상은 없다”는 말을 믿는 나로서는 설령 신자유주의가 진보진영에서 외치는 것처럼 나쁜 점만 가득하다 할지라도 몇 톨의 진실을 줍기 위해 기웃거려볼 생각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신자유주의가 몇 톨의 진실만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폄하되기는 힘들 것 같다. (사실 고작 한 두 톨 정도의 진실만을 담은 사상은 생산성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머지 않아 적실성을 잃고 퇴출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질 운명이라도 잠시라도 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사상의 자유시장이다)


내가 얼치기 경영학도로서 배운 몇 안 되는 것 중의 하나는 수익자부담과 참여자보상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센티브 없는 곳에 열심히 일할 유인이 좀처럼 생기지 않고, 경쟁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있는 개인이나 조직은 비효율에 수렁에 빠지게 마련이다. 이건 성선설 혹은 성악설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런 인간의 귀차니즘일 것이다. 여기에 도덕적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부적절하다. (나는 선악이 개인의 의지 이외의 어떤 것에 귀속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 본성에 선에 대한 능력, 악에 대한 능력이 동시에 있다고 말한 칸트의 성무선악설을 지지한다) 인간의 이러한 편안함에 대한 욕망이 비루하다고 한탄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쁜 것이니 제거해야 한다고 난리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사실 귀찮음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인간의 진보를 가져왔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신자유주의는 악의 화신도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만병통치약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세계경제의 주도적 흐름이 되어 우리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중국이 돈맛을 알면서 각종 개방정책과 외자유치에 두 발 벗고 나서고, 시장경제 도입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은 우리의 감상과는 별개로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중국의 거센 도전에 우리 기업들이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도 외면하고 싶지만 분명한 현실이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천민 자본주의나 부박한 경쟁일변도의 논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대전제인 상도덕이 바로잡힌 사회부터 만드는 것이 급선무이다. 사실 이것도 제대로 안된 흙에 신자유주의라는 나무를 심으려고 하니 제대로 자랄 리가 없다.


혹자는 신자유주의가 WTO로 대표되는 미국 주도의 세계화라고 비판한다. 물론 그런 측면이 다분하고 그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어차피 우리 주도가 아닌 이상 남이 하는 일이 무조건 좋게 보이는 것도 배알이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거부하겠다는 것은 머리가 없는 짓이다. 약간 옆으로 새자면 미국의 패권이 쇠퇴한 뒤에도 자유무역질서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인가는 국제정치경제분야의 뜨거운 감자다. 현실주의자들이 WTO 같은 국제 레짐(regime)은 패권국의 운명과 같이 한다는 입장인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국제 레짐이 독자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 자유무역질서가 살림살이에 보탬이 된다면 미국 패권의 지속 여부와는 관계없이 계속 유지할 유인이 생길 것이다. 솔직히 자유무역질서가 미국의 지원 없이도 제 앞가림 할 수 있을지를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미국과 함께 촉석루를 등지며 남강으로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미국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명제는 타당하지만, 미국만의 이익에 목매달고 있다는 명제는 타당하지 않다.


경영학은 제한적인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가진 인간을 가정한다고 한다. 시장도 정부도 불완전하다. 인위적 질서인 국가가 그런 것처럼 자생적 질서인 시장 역시 완전무결한 존재는 아니며, 시장과 정부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의존하는 관계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합리성에 한계가 있는 이상 시장의 오바(over)와 정부의 삽질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도 사실 불완전할 것이다. 그러나 부지런히 감시의 눈빛을 보낸다면 오류의 폭은 줄어들 것이며, 효용의 수준은 늘어날 것이다.


칼 포퍼의 점진적 사회공학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는 추상적인 선의 실현을 위해 힘쓰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악은 직접적인 수단에 의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유토피아 건설로 악을 간접적으로 제거할 생각말고, 오늘의 희생을 쥐어 짜내기보다 지금의 고통을 덜어내는 데 힘쓰라는 것이다. 이는 고종석 선생의 선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은 악을 감소시켜려는 노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기쁨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더는 세상은 개개인을 조정하여 세상을 바르게 만들 수 있다는 ‘치명적 자만’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찬반을 떠나 점진적 사회공학으로서의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순기능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생각들 하시겠지만 말이다)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약자에게 그리 따뜻한 눈길을 보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은 기업가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는 것만큼이나 억지스런 짓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낮은 사람들에게 발길질까지 해대는 것은 반대한다. 적어도 균등한 기회를 주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수확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주창하는 자유경쟁의 원리일 것이다. 냉정한 자기책임의 원칙을 역설하기 전에 우선 상도덕이 바로잡힌 시장 구축에 힘써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공짜 점심을 먹으려는 자들에게 칼로 작용한다면 환영할 일이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성실한 사람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투명하게 평가되는 사회, 상도덕을 어긴 자들에게는 엄중한 문책과 퇴출이 이루어지는 사회라면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일부 광신적 시장주의자들의 도피처가 되고, 일부 자본가들의 식탁만을 풍성하게 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정치만능주의에 대항한답시고 경제만능주의에 빠져버린다면 나는 열심히 구박하겠다.


모든 주의주장이 그렇듯이 실재를 보다 명확하게 해석하는 능력과 더불어 보다 많은 이들의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상만이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천박한 경제만능주의로 빠진다면 매섭게 비판해야겠지만,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적용되는 자유경쟁의 제도화에 힘쓴다면 응원할 생각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우상을 섬기는 이들 상당수가 가진 자의 더 큰 자유만을 옹호할 때 나는 곤혹스럽다. 알아서도 잘 살 사람들을 굳이 돕는 것은 자유주의 미감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내버려둬라(Laissez faire). 자유주의자가 할 일이 이 땅에 만연한 부자유를 제거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가진 자의 부자유보다는 못가진 자의 부자유를 제거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맞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차이를 낳고, 이 차이에는 여러 종류의 불평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이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을 막고, 불평등이 계속 고착화되는 것에도 고개를 가로 저어야 한다. 과연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것들이 자유주의 미감을 얼마나 구현해낼 수 있을지 좀 더 두고봐야겠다. 자유주의 미감이라 함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째려 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려면 우선 나부터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익구닷컴을 들러주시는 여러 벗님들...
이 썰렁한 집구석에 몇 마디 따스한
글 선물 남겨주고 가시지 않으시렵니까?
익구가 당신의 방명록을 기다립니다.
Posted by 익구
:

개성의 미학

잡록 2004. 4. 4. 06:15 |
‘평범의 미학’이라는 것이 있다. 둥글둥글 원만하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제법 근사한 레토릭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나에게 ‘개성’이라는 단어가 찾아왔다. 대외적으로 고지식한 모범생이라는 평이 자자한 터에 내 삶의 정체성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를 하기 시작했고, 개성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구세주였다.


나는 ‘개성의 미학’을 선포하고 삶의 지표로 삼기로 했다. 도덕이나 원칙 같은 것에 얽매인 나에게 개성에의 천착은 시원한 샘물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의 개성이 모범생스러운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내 발견하게 된다. 중학교 2학년 때 일기를 보면 이러한 고민이 나타나 있다.


나는 어딘가에 구속되거나 제약받는 것을 무척 싫어해. 하지만 이런 자유롭고 싶은 나이지만 나는 여태껏 원칙적이고 형식적인 삶을 고수해왔어. 그래서 몇몇 친구들은 내가 형식적이고 억압적인 것을 싫어한다고 하면 의아해 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지. 정말 나는 어떤 것이 나의 참모습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 1997년 11월 10일



늘 똑같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의 초라함이 참을 수 없어서, 개성이라는 것을 추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집단적 관성을 한번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곳의 자양분을 부지런히 흡수하는 모범생에 불과했다. 개성이라는 단어는 ‘용기’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맺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 가는 주요한 감정 중에 하나가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는 것이다. 내가 사실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쥐뿔도 아닌데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것이 문득 서글퍼질 때가 오고 마는 것이다.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누구나 몸서리를 치게 마련이다.


이런 허무를 감추기 위해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개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갈고 닦은 것들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가령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다른 지식들보다 더 맛깔스럽고 빼어나 보인다. 남들은 상식수준의 말을 반복하는 것 같아 지겹다고 폄하하고, 자신이 좀 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인식의 오류가 조금 있는 것은 너그러이 넘겨줄 수 있다. 자신의 것이 소중한 것은 개인주의 사고의 기초이니까 말이다. 남의 것도 소중히 여겨주고, 배려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다만 일부 지식인 혹은 그에 준하는 윤똑똑이들은 자신의 지식은 훌륭하다고 여기면서 대중들의 일반상식은 경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세상은 합리적 상식으로 굴러가고 있고, 지식이란 것은 좀 더 잘 굴러가기 위한 윤활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 점을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나 또한 이러한 덫에서 내내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내가 좀 더 개성이 넘치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그러한 개성이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란다. 또한 나의 생각이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를 위해 창조적 상상력을 연마하는 데 나의 정성을 쏟을 것이다. 남들과 똑같다고 조바심 내지 않고, 남들과 다르다고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만이 개성의 향연을 펼칠 수 있으리라. 개성이란 무작정 똑같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기꺼이 함께 연대할 수 있다는 정신이며, 차이를 존중하되 차별에는 단호히 반대한다는 의지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익구에 대한 말말말은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과 따스한 질책 부탁드립니다.^^


95년도에는 더욱 남자다워지기 바라며
새해에는 좀 더 남자다워지겠니?
5학년 때 공부 열심히 하고 좀 남자처럼 행동을 했으면 좋겠어
- 초등학교 성탄절 카드에 적혀있는 남성성 강요의 압박^^;

I like you. - 초등학교 시절 받은 연애편지(?) 中

너는 너무 착해. 여자애 같아. 하지만 아주 조금은 남자답게 굴어. - 다른 연애편지 中

밤에 잠잘 때 눕기만 하면 천장에 너의 모습이 어른거릴 꺼야. - 또 다른 연애편지 中

익구야 너만큼은 외제품을 쓰지 말아라. - 중2 크리스마스 카드 중에 뜬금없이...^^;

너는 왜 웃기만 하니? - 중2 때 한 친구

제발 나중에 커서 크게 사기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게. 그게 제일 걱정이다.
- 중2 때 절친하던 친구의 간곡한 인생 충고^^;

내가 익구처럼 공부했으면 세계 초천재가 되었을 텐데...
-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던 우등생 친구가 공부량에 비해 성과가 떨어지는 익구를 아쉬워하며

너는 외고를 가기보다는 도덕고등학교를 가야한다. 다만 아직까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외고 진학을 결정하고 나서 고지식하고 원칙에 얽매인 나를 핀잔주며 중3 친구가 한 말

자라, 거북이, 코알라, 간디, 원숭이... 합해서 자거라디이 같으니라구...
- 익구를 닮은 것 5개를 엮어 별칭을 지워준 한 친구

He is a cute boy.
- 고등학교 1학년 영어회화 선생님께서 나를 지칭하시며...^^; 대략 점수 잘 받았다. 푸하하

똘레랑스하고, 당당하고, 배워서 남주는 날애의 희망 전사가 되자꾸나.
- 서울외고 교지 편집부 날애 담당 선생님의 편지 中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구로도 당신의 그 찬란한 소중함을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 연애편지 아님, 어디까지나 고2 때 크리스마스 카드에 기재된 내용

너를 보면 청학동 댕기동자가 연상되지 뭐야... - 세이클럽 채팅 中

‘고답적(高踏的)’이라는 말은 너를 위한 단어다. -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고답적이라는 단어를 보며 감격해서 외친 한 친구

언젠가 익구와 친구였다는 것을 남에게 자랑하고 다닐 날이 올 것 같군.
-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동창회 아시수(我是誰) 댓글 中

항상 익구가 쓴글을 보면 괜히 심오해져~~ 생각도 많아지구~~ ^^ - 역시 아시수 댓글 中

익구야... 너 사람 진지하게..웃기게 하는구나... - 아시수 댓글 中

익구 글을 보면 언제나 느끼는 건데... 한 50~60대 노작가가 쓴 수필 같아...--;; - 아시수 댓글 中

익구야 니 글을 보면 왜이리, 꼬리 달리가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ᄏᄏ - 아시수 댓글 中

익구는 확실히 프론티어 정신이 있는 것 같다. 다만 남을 돌아보면서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아시수의 익명 게시판

참 올리기 힘든 글이었지만 소신이 있는 익구이기에... 다수의 횡포가 그에겐 두렵지 않을듯... 저는 익구를 정말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사회를 위해 할말은 할 줄 아는 그런 진정한 빛과 소금이 되시길...
- 수능 혼란 때문에 모두들 패닉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글을 올려 구박받고 있을 때 한 친구가 격려해주면서

익구는 이런 거 쓰는 게 인생의 낙이니까 우리가 이해하자...
- 한 친구가 잡글 즐겨 쓰는 나를 두고 한 말

이제 노무현 타령 좀 고만하자 익구야 진심이란다
- 2002 대선이 끝나고 나서 한 친구가 그 간의 노무현 타령에 질렸다며

한마디를 안질라고 그러는구나 익구 - 온라인 상에서 논쟁을 벌이던 한 친구가

너는 아무리 봐도 경영대생보다는 정경대생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경영대 왜 왔니?
- 입학 이래 참 많이 듣는 질문... 늘 어쩌다 굴러 들어왔다고 둘러댄다.^^;

20년 뒤에 정치인 최익구 경력에 k대 x과 학생회장이 추가되겠군
- 경영대 학생회장 당선 후 한 친구가 밝힌 냉소적인 축하 발언

익구랑 오랜만에 말하니깐 다른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과는 다르구나, 고등학교 때 이후로 느껴보지 못했던 것인데.
- 오랜만에 메신저 상으로 대화 나눈 친구가

익구 웬만하면 안 취하잖아. 얼마나 마셨길래, 고대가 사람 버려놨군.
- 언제 한 번 술 마시고 크게 취한 다음날 한 친구가 경악하며

익구는 술꾼에 안주킬러다. - 요즘 들어 고등학교 모임 술자리만 나가면 듣는 말

넌 대체 뭔 재미로 산단 말인가? - 잘 놀 줄 모르는 익구를 보며 한 선배가 한탄하며

배용준보다 더 깊고 그윽해 보이는 경영학도 후배
- 시민사랑 정모에서 만나게 된 어느 선배님의 과찬의 말씀

대학교 2학년이면 아주(?)젊은 나이인데 그런 정직한 생각을 가진 님께 진심으로 축복을^^
- 내가 인터넷 상에서 올린 글에 달린 댓글 中

처음에도 느꼈지만 어떤 ‘선’을 추구하려는 정직함이 보여요. 님을 글을 읽고 있으면... 생각하고는 있지만 선뜻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생각들을 최대한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들이(제눈에 보이기에) 부럽기도 하고 저도 많이 공부해야겠어요...
- 또 다른 댓글 中

생각만큼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편안하고 이야기도 재미나게 하셔서 그간의 생각을 바꿨습니다. - 서울외고 교지편집부 후배

말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 청산유수더군요. - 교지편집부 다른 후배

지금도 꽃미남이시죠. - 유치원 사진에 비해 폭삭 늙어버렸다고 한탄하자 한 후배님께서 격려해주며

익구에게 미적 감각을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 고등학교 선배님 mannerist

엄지손가락이 특이하네... 어쩜 이렇게 짜리몽땅할 수가...
- 익구의 엄지손가락에 대한 숱한 태클... 익구는 이런 엄지손가락이 손재주가 좋다며 응수하고 있다.^^;

김종필 외손자 같으니라구... - 한 친구가 인상착의, 목소리, 하는 짓(?)이 김종필과 닮았다며

익구는 미스터 빈을 닮았다.
익구는 우비소년을 닮았다.
익구는 김PD를 닮았다.
- 익구를 닮았다는 각종 캐릭터들...^^;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데 참 동안이네요. 너무 어려 보이는 것도 좋지 않으니 염색해서 좀 나이 들어 보일 필요가 있겠어요. - 미용실 누님의 조언

회의 좀 짧게 해주세요. 어쩜 그렇게 쉬지 않고 계속 말할 수가 있죠?
- 각 반 일꾼들 모아놓고 학생회 회의만 하면 듣는 말

익구는 남자 수다쟁이다. - 회의 중 계속되는 나의 잡담을 듣던 미술학부 학생회장님이

원래 학생회장이 덩치도 크고 되게 무서우신 분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뵈니 귀여우시네요. - 어느 04학번 후배님이

익구형이랑 진짜 어울리는 단어 - ‘투덜거리다’ - A반실 익명대자보 글 中

홈피에 가서 선배님의 글을 읽다 보면... 공부할 거리가 많다는 것과 나도 많이 배우고, 공부하고, 생각해야겠다는 것을 느낀다. 알고 보면 위트 넘치는 재미난 분 ^-^ - 익구닷컴 칭찬해준 고마운 후배

글 전개하는 게 은근히 재밌게 흐름 안 끊기고 잘 쓰는 거 같아서 지루하기보다는 재밌어. 너가 글을 명작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도 없는 거고~ 읽기에 부담 없으면서 뼈가 있음 된 거지 뭐... - 익구닷컴 칭찬해준 고마운 친구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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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구 중랑구민 되다

잡록 2004. 3. 30. 02:57 |

익구네는 3월 26일 중랑구 묵2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전날에 민족고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 참석해서 밤샘 회의를 하다가 아침 9시 30분 경에 탈출해서 부랴부랴 노원구 상계동 집으로 달려왔다. 아침 8시부터 짐싸기가 시작되어서 꽤 상당부분 진척이 되어 있었다. 포장이사를 불러서 한 관계로 사실 익구가 거들만한 일은 없어서 밤샘회의의 여파로 인해 쏟아지는 졸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새집으로 이삿짐을 어지러이 나를 때 익구는 빈 공간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새우잠을 청하는 촌극을 벌였다.


그저께도 컴퓨터 앞에서 노느라 잠을 2시간밖에 못 잔 터라 이틀 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이 폭발하면서 그 난리통속에서 꿋꿋이 잠을 자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익구는 절대 잠을 줄이면서 어떤 일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는 평가다. 익구 생활에 있어서 ‘수면총량 불변의 법칙’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증명된 셈이다. 한참이나 단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날은 저물어 있었고, 이사는 일단락 나 있었다.


새집은 일단 넓은 거실이 인상적이고, 창가에 중랑천변이 훤히 보인다는 특징이 있었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의 기운이 있는 익구로서는 처음에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는 듯 했으나 어차피 살 집이라는 생각이 발동해서였는지 금세 상쾌한 기운을 찾을 수 있었다. 익구방에는 책꽂이와 책상, 침대와 함께 옛집 거실에 있던 피아노가 들어섰다. 본디 피아노를 방에 들이지 말기를 강력히 제안했으나 거실에 둘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부득이 익구방에 피아노가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예체능에는 천부적인 무소질(!)을 보여주는 익구가 어린 시절 힘겹게 배웠던 피아노 연주의 악몽이 떠올랐지만 할 수 없이 방구석을 차지하는 것을 수락했다.


익구방 정리는 책꽂이에 책을 이리저리 정리해서 꽂은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책배치를 하면서 읽지도 않을 것을 괜히 산 책들에 부끄러워지고, 허영의 독서를 반성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들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익구를 있게 했다는 자부심은 분명했다. 아직 못다 읽은 많은 책들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최대한 손길이 닿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새삼 해봤다. 그러나 컴퓨터에게 상당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익구가 책읽는 시간을 얼마나 확보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익구는 주말을 이용해 주변 지하철 동선을 파악하고, 근처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먹골역 주변을 꽤 뒤져보았으나 아직 변변한 서점을 찾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상점들이 거의 다 구비되어 있었다. 특히 익구는 애견 야니를 위해 가까운 거리에 동물병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안도하는 반응을 보였다. 9년 만에 펼쳐진 이 낯선 풍경들 앞에서 익구는 지나간 것들, 익숙한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새로 맞이하게 될 인연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부풀어 올랐지만 말이다. 익구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진지한 사색과 깨끗한 실천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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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충격 그 후...

사회 2004. 3. 25. 02:53 |
탄핵 충격이 이제야 좀 가시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슬픈 기운이 나를 압도한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지 못한 것에 슬프고, 겨우 1년 만에 대통령직에서 밀려나 헌재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는 상황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도 슬프다.


이 넘치는 슬픔 속에서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 믿고 있는 것을 지켜내는 것은 막연한 확신이나 근거 없는 낙관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처절한 가르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주된 생활습성인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이번 사태로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이번 탄핵 폭거는 인간 합리성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 해줬다는 점에서 개인사적 전환기를 가져다 줄지 모르겠다.


국회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드높은 요즘이지만 나는 여전히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는다. 누구도 한 표 이상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전제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개개인의 의사의 총합에 일정기간 지배력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생산적이고 효율적임을 인정해야 한다. 의회주의의 식탁 자체를 걷어찰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밑반찬을 조금 바꾸거나, 입가심으로 녹차를 내어올지, 박하사탕을 준비할지 정도 같은 수준에 한정될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번 사태는 의회 민주주의의 이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그간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된 지도자의 권위를 일관되게 인정하지 않고, 모욕하고 트집잡던 이들이 민의를 겸허히 살피지 않고 수적 우위를 밀어붙인 것은 의회주의의 정신에 대한 모독이다. 이들에게 반민주주의 세력이라는 멍에를 씌우는 것에 주저하지 않겠다.


이제 내게 주어진 과제는 그 날의 슬픔을 똑똑이 간직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하지만 슬픔의 눈물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의 미소가 피어나고, 인간의 비루함에 대한 원망은 인간에 대한 따스한 배려와 사랑으로 치환될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나는 다시 낙관주의에 지친 몸을 기댄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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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지 애지중지하는 나의 온라인 보금자리 익구닷컴의 업데이트가 다시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래저래 바쁜 일이 있다보면 업데이트 신경 못쓰기는 다반사다. 경제에도 호황기와 불황기가 반복되게 마련이듯이 사람이 하는 글쓰기라고 크게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업데이트라는 것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올릴 때 일정 길이 이상의 정돈된 글을 써야한다는 스스로의 제약이 너무 컸던 것은 아닐까. 학기가 시작되고 학과 공부와 학생회 업무 등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차분히 앉아있을 시간이 부족했고, 그래서 번번한 잡글을 내어놓기 어려워졌다.


조금은 정갈하게 내 생각을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너무나 익숙해진 잡글에 대한 결벽증이 어쩌면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문자로 된 텍스트에 대한 사랑이 무척 큰 나로서는 알게 모르게 고집을 부렸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일상에서의 경험이나 교훈에 대한 꼼꼼한 분석 없이 그저 사실을 담담하게 진술해 내는 것을 나태하다고 생각하고, 내면을 여과 없이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의 정제되지 않는 조악한 분위기라고 폄하하면서 너무 배격하려고 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요즘 싸이월드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고, 미니홈피 간의 교류도 무척 활발하다. 나는 싸이월드가 산문정신의 쇠퇴를 가져온다고 호되게 비판해왔다(아무리 봐도 싸이월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긴 글을 쓰기에는 부적절한 구조이다). 하지만 이 정신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태에 일촌등록으로 오가면서 꼬리라도 달아주고 짧은 방명록 남겨주는 정도의 노력으로 비교적 싼값에 사교비용을 치르는 편리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부쩍 든다. 물론 앞으로도 싸이족들에게 투항할 일은 없겠지만, 다만 그네들을 내 잣대로 함부로 폄훼하려고 하지는 않았나 부끄럽다. 어쩌면 내 가슴속에는 “저 몇 마디 말조각들을 돌리며 희희덕거리고 있는 모양새란...” 정도로 깔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물론 내가 본받고 싶은 정말 풍성하고 맛깔스런 미니홈피들도 정말 많이 있다).


잡글을 읽고 쓰면서 내가 느낀 것은 나란 녀석이 소통의 욕구가 무척 강하다는 것이다. 나의 잡글 쓰기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면서도 그 누군가와의 끊임없는 교감을 향한 것이다. 그래서 나의 글이 혹시 나만 알아먹는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노파심에 중언부언 부연설명도 많은지 모르겠다(이것이 많은 친구들이 스크롤의 압박을 호소하는 주원인이 된다^^;). 불현듯 느껴지는 글의 무력함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 무력감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과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 글로써 소통하는 것을 즐기고 글로써 이룩하는 편안함을 사랑하는 잡글예찬론자로 앞으로도 살 것 같다.


자꾸 드는 생각이지만 적극적 의미의 착함이 아닌, 소극적 의미의 착함(혹은 비교적 최소주의의 입장에서 정의한 착함)을 지키기도 무척 힘들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세상만사 일장일단(一長一短) 속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만 하는 고독,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도 늘 버겁게 다가온다. 이런 무거운 짐들을 잡글로써 감시하고 독려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노력이 나의 독백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좋은 이들과의 교류에서 더욱 여물었으면 한다. 설령 이런저런 생채기가 날지라도 대화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자. 미칠 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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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3월 10일 저녁 7시경

익구는 탄핵안 발의 소식을 듣다. 159명이나 동조를 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익구는 그냥 가볍게 민주당 이 제 정신 아닌 것들이라고 구박해본다. 이 때까지만 해도 다들 그랬듯이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하다.


장면2. 3월 11일 3교시 행정법총론 강의 시간

친구 청원이와 지루한 행정법 강의를 들으며 농담 따먹기를 하다. 익구가 침울한 모습을 보이자 탄핵안 발의 때문이냐며 물어 온다. 익구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청원이는 설마 탄핵안이 의결되겠냐며 걱정하지 말라며 격려해준다. 익구 또한 히히덕거리며 그럼 그렇지라며 맞장구 친다. 강의 시간 내내 계속 딴짓거리 하며 놀다.


장면3. 3월 12일 오전 11시 20분 집구석

익구는 강의가 없는 날이라 여느 때 같으면 정오는 지나야 일어나겠지만 엄마께서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다. 거실 쇼파에서 좀 더 누워볼 요량이었으나 티비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잠이 번쩍 깨다. 이미 상황은 탄핵 소추안이 상정되어 투표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인의 장막(혹은 개떼들)에 가려진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항의 구호가 간간이 들려오는 광경이 벌어지다. 익구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 평소 욕설을 안하기로 유명한 익구였지만 참지 못하고 몇 마디 욕을 입에서 웅얼거리다. 결국 탄핵안이 가결되고 분노는 극에 치닫다. 오후 3시가 되도록 각종 뉴스들을 접하며 화를 삭혔다. 오후에 각 반 개강총회와 신입생환영회를 들르기 위해 학교에 갔다가, E반 신입생환영회에서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도 기분 탓인지 금세 취해서 A반 개강총회 뒤풀이는 참석하지 못하고 집으로 서둘러 돌아오다.


장면4. 3월 13일 오후 6시 광화문

익구는 청원, 규상과 함께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서다.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기는 아깝다며 호기심에 가득 차 함께 한 청원과 술집 알바라 토요일에 빠지기 싶지 않은데도, 내 몫까지 해달라는 사장님의 격려를 들으며 알바를 미루고 함께 한 규상. 세 사람은 광화문 일대를 헤매이며 촛불을 흔들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보고, 한바탕 웃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끝 무렵에 수현이도 만나 함께 귀가를 하려던 참에 수현이가 알바비로 야참을 쏠 것을 제안해서 일동 흥분했으나 1호선 서울역 근처에 먹을 곳이라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무산시키게 되다.^^; 방향이 다른 수현이를 먼저 보내고, 세 사람은 야참을 위해 동대문역에서 내려 헤매이다 심야 영화를 보자는 것까지 의견을 모았으나, 결국 닭꼬치와 햄버거를 사먹고 흩어지다. 전철길에 '다함께'에서 발간한 신문을 읽던 규상이 문자를 날리다. “얘들 탄핵'만' 반대한데.ㅡ.ㅡ” 익구도 서둘러 답문을 보내다. “갸들 원래 그랴.^^; 그래도 고맙잖아.” 집 오는 길 내내 허기를 달랠 수 없던 익구는 노원역 근처 분식집에서 라볶이 2인분을 사서 포식하며 씁쓸한 마음을 달래다.


장면5. 3월 14일 새벽 컴퓨터 앞에서

탄핵 관련 뉴스들과 글들을 읽느라 여념이 없다. 특히 탄핵특별판을 낸 딴지일보를 보며 기분을 좀 풀다. 또한 재미난 피켓으로 모두들 즐겁게 한 디시인사이드에 가서 탄핵 관련 합성 사진들이나 글들을 보며 키득키득거리다. 고등학교 동창 동호회에서 그간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던 친구의 글을 발견하며 우리의 오랜 갈등을 일거에 해결해준 한나라, 민주 일당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다.^^;

“익구야 나 열린우리당 찍을 거다. 이번에 탄핵역풍으로 많이들 열린우리당 지지한다 하더라... 그래도 노무현이 너무 말실수 많이 하는 거 같다. 노무현이 잘만했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지 않았겠니? 노무현에게도 잘못이 있으니 성찰하면서 추이를 지켜보자.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을 기원하며”



장면6. 3월 15일 고려대

정치적 사안에 대한 불개입이 원칙이던 37대 경영대 학생회의 원칙을 깨고, 탄핵 반대 대자보를 제작하기로 의견을 모으다. B4 8장으로 대자보 용지 딱 한 장에 들어맞게 대자보 작업을 해서 주요 게시판에 붙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시 보니 감정적인 내용만 많아서 민망하다.

대통령 탄핵 폭거 규탄한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 정치꾼들의 악행 중에서도 가히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국민들과 함께 3.12 의회 쿠데타에 대해 매우 비통하게 생각한다. 우리 소중한 민주주의를 분탕질한 무책임한 거대 야당의 횡포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은 대통령 탄핵을 수적 우위로 밀어붙인 한민당의 야만스런 행위에 우리는 분노한다.

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서 그 부끄러운 낯짝을 치워야할 16대 국회가 탄핵 장난으로 마지막 패악질을 하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고 갖은 손가락질로만 연명하던 이들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막무가내 칼부림을 하고 만 것이다. 차떼기 강도질과 부끄러운 협잡질로 일관한 거대 야당은 제 허물은 보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 탓만 하는 추한 모습을 보였다.

이미 효용을 다한 정치꾼들에게 이제는 정치시장 상품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자. 추악한 탄핵 장난질을 한 정치꾼들에게 다가올 4.15 총선에서 시장의 냉엄한 심판을 보여줄 것이다. 오래 전에 도덕적 정당성조차 잃은 자들이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함부로 끌어내리는 천박한 행태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한다. 아울러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안에 대해 조속하게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법률적 근거가 미약한 탄핵안에 대해 정당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저 오만한 정치꾼들이 저지른 탄핵에 동의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은 사소한 차이는 벗어버리고, 공화국 시민으로써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자.

37대 경영대 학생회 운영위원회



장면7. 3월 20일 저녁 집 거실 오디오 앞에서

익구가 고대하던 김동률 4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음반점에서 구입해서 쭈욱 들어보다. 수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고3 수험 교실에서 익구에게 한줄기 위안이 되었던 동률공 3집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던 것일까. 혹은 지금 시국이 뒤숭숭해서 편히 감상할 마음이 되지 않아서일까. 아님 동률공의 걱정대로 조금 어렵게 느껴져서인지는 몰라도 무언가 차분히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이번 4집 앨범명은 토로(吐露)... 나름대로 솔직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익구이지만 토로라는 단어 앞에서 무언가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다.


지난 일주일간 많은 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욕도 해보면서 탄핵 정국의 혼란은 이제 좀 가라앉는 듯하다. 익구도 그간 어수선하던 기운을 털어 내고 차분히 일상으로 돌아오다. 저들이 자초한 최악의 행패에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기대하며 하루하루가 늘 희망에 넘치지만 한 편으로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관성의 법칙은 늘 질기고 굳건해서 함부로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직감 때문이다. 여기저기 조직되고 있는 무적의 투표 부대들이 이 관성의 법칙을 극복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번 탄핵 충격을 계기로 거대한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에 균열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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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구는 6일 02년도 새터 때 같은 조를 해서 인연을 맺었던 성연, 상훈, 두수와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다. 현재 이 세 친구 모두 군인이어서 대화의 90% 이상이 군대 관련 소재들로 채워졌다. 그 분야에 무심한 익구로서는 하나같이 낯설고 정신 없는 이야기였지만, 친구들이 재미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상훈이와 두수는 카투사인 관계로 이런저런 관련 용어들을 알아듣는데 무척 애를 먹어야 했다.^^;


현재 상병인 성연이는 1년 남은 군생활이 얼른 지나가서 전역했으면 좋겠다고 내내 푸념했고, 상훈이, 두수도 맞장구를 치며 얼른 학교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구는 학교생활이 5학기에 접어드니까 많은 의욕을 상실해가고 있어서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반박했다. 그러다가 복학했을 때의 학기 수를 따져보며 네 사람이 모두 함께 강의를 듣는 것은 네 사람 모두가 4학년이 되었을 때나 가능하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깃집에서 저녁을 맛나게 먹은 네 사람은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발렌타인12년산 작은 병을 시켰다. 음주인생 최초로 친구들 모임에서 양주가 등장하게 되자 익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양주가 그 값에 비해 맛이나 양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익구로서는 65,000원짜리 발렌타인12년산이 과연 3,000원짜리 山소주의 효용에 비교해서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머리를 굴려보기도 했다. 또한 유명한 맥주 브랜드인 하이네켄도 마셔보았는데, 미각이 둔한 익구로서는 일반 맥주와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특히 병맥주임에도 흑맥주의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 생맥주의 느낌이라 실망감은 더욱 컸다.


1년 만에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 무척 즐거웠고, 대학 와서 처음 알게 된 친구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특히 이야기 소재가 죄다 군대 이야기들뿐이었는데, 익구는 편한 마음으로 들었다. 사실 군사주의에 대한 반감이나 성차별적 군대문화에 대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던 익구였지만 이런 생각들이 크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후임병을 갈궈야 피차 편하게 된다느니, 여자 경험 없는 순진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지금 군인으로 고생하고 있을 숱한 친구들에 대한 모종의 예의였다.


군대에서의 시간을 허송세월로 생각하는 세 친구들의 일치된 견해를 보면서, 익구는 우리네 군대가 너무 과다한 비용을 지출해가며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그저 몸 건강히 나오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군대라는 공간이 얼마나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졌다. 익구는 획일적 문화를 재생산하는 군대문화에 대해 단호히 맞설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감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군대 휴가 나오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 친구들에게 내가 비판 내지는 어떤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 힘든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세 친구들과 헤어진 익구는 얼른 노원역으로 향했다. 중고등학교 6년 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지만 단짝으로 지내는 친구 동욱이의 입대 환송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1차 감자탕집에서 나오는 것에서 합류한 고등학교 친구들 일행은 2차로 파전집을 잡았다. 익구는 아까 먹다 남은 발렌타인12년산을 동욱이에게 맛보라고 건넸고, 대신 제주도의 한라산 소주를 얻었다. 술은 동동주를 시켰는데, 익구는 막걸리 생각이 나서 한 잔 정도 마시고는 도저히 더 먹을 수 없었다(이는 사발식에 대한 안 좋은 추억에 기인한 것으로 2004 새터 후기를 참조하면 알 수 있다). 결국 동동주를 포기하고 동욱이에게 받은 한라산 소주 남은 것을 마시니 상대적으로 어찌나 달고 맛날 수가 없었다.^^;


여하간 전날 개강잔치가 있어 A반 사발식 시주와 E반 개강잔치 3차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을 소화한 익구는 이틀간 여러 종류의 술을 접하면서 풍성한 개강 맞이 행사를 가졌다. 익구는 이틀 간 마셨던 술의 종류만큼 다양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과 이틀 간 마셨던 술의 양만큼 많은 학습량으로 이번 학기를 지내겠다는 다짐을 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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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안경을 맞추다

잡록 2004. 2. 28. 01:32 |
지난 21일 토요일에 13개월간 쓰던 은색테의 안경에서 회색의 반무테 안경으로 맞췄다. 세 번이나 압축해야 하는 특수한 경우이다 보니 역시나 안경은 수요일에서나 받을 수 있었다. 반무테를 하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는데 반무테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엄청난 두께의 렌즈 압박이 생각보다는 심한 것 같다. 테가 있을 경우 렌즈의 두께가 상쇄되는 반면 반무테의 경우는 그것이 안되기 때문이다. 눈이 나쁜 나는 한 번 해보고 싶었던 무테는 안경점의 만류로 영원히 해보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이 천냥이면 눈이 팔백냥”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눈은 인체 장기 중에 신경이 가장 많이 연결된 곳이라고 한다. 12개의 뇌신경 중 제일 굵은 다발이 시신경이며, 1백만~ 1백 20만개의 신경이 모양과 색깔을 구분하게 해준다고 한다. (1998년 11월 15일, 중앙일보 [사람이 천냥이면 눈이 팔백냥] 기사 참조) 게다가 인간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90%가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귀가 5~9%이고, 나머지가 촉각, 미각, 후각 등이다.


그런 면에서 지독하게 눈이 나쁜 편이 나로서는 무척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 밑천의 80% 중 상당수가 날라간 셈이니 말이다.^^; 현재 내 시력은 나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통상 쓰는 단위인 디옵터로 -6 디옵터 이상을 고도근시라고 하는데 일단 -8을 넘어서고 있으니 고도근시에다가 짝짝이눈(부등시)에다가 난시까지 있어서 안과에서도 안경을 썼을 때의 시력인 교정시력도 1.0을 맞출 수가 없다고 할 정도니 시력 관련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디옵터는 굴절력의 단위로 보이는 거리<수정체를 조절하지 않은 상태에서 망막에 상을 정확히 맺히게 할 수 있는 물체의 거리>의 역수를 말한다. 가령 -1디옵터는 1M(미터)까지 잘 보이며(1/1M), -10디옵터는 10cm(1/10M)거리까지 잘 보이게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첫 시력 검사 때 0.2라는 판정을 받은 후 지속적으로 나빠진 눈은 이제 성장기가 멈춤에 따라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예전에 학교에서 시력검사를 할 때 안경 썼을 때의 시력이라도 높여볼 심산으로 시력 검사판을 외워봤지만, 언제부터인가는 난시의 여파로 막대기 끝이 잘 보이지 않아서 외운 보람이 없게 되어 버렸다. 요즘은 웬만한 시력검사가 기계로 이루어지다 보니 딱히 외우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이 나쁜 눈 덕분에 신검에서도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사유가 ‘안과질환’이라고 나오던데, 안경만 제대로 쓰고 있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데도 공익근무를 시키는 것을 보면, 대체 현역 군인들의 생활 중에 안경을 벗어 던지고 활동해야 하는 것이 있기는 있단 말인가? 뭐 주위에 눈 나쁜 사람이야 흔히 찾을 수 있으니 이런 호들갑 떨 것도 없지만 그래도 눈이 나쁜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지난 은테 안경은 어쩌다가 백화점 안경점에서 맞춘 데다가 일제를 쓰게 된 관계로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렀다. 안경테도 20만원, 안경알은 20만원이 훨씬 넘어 거의 50만원에 육박하는 금액(48만원 정도로 기억)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안경테가 5만원, 안경알은 19만원으로 해서 24만원에 맞췄다. 보통 사람 기준에서는 엄청나게 비싼 안경 값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맞추는 내내, 안경테를 괜히 싸구려 맞추는 것은 아닐까, 안경알이 이렇게 쌀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싸게 맞춘 것이다.^^;


이전 안경에 비해 거의 반값에 맞춘 새 안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재미난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얼마짜리 안경이냐에 신경 쓰기 보다 내 내면을 가꾸는 데 더 치중해서 좀 더 다정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 [憂弱]


덧붙이며 - 흔히들 내가 눈이 이렇게 나쁜 것은 책을 많이 봐서라고 덕담 삼아 해준다. 하지만 나는 유전적인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눈이 나쁘게 시작했고, 책을 많이 봐서라기보다는 책 읽는 자세가 많이 불량해서라는 것이 더 적절하다. 요즘도 책을 절대 책상 같은데서 못 읽고 침대에 기대어 읽는 게 대부분이니 말이다. 게다가 컴퓨터는 또 얼마나 해대는가...^^;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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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구는 26일, 27일 이틀 간 열린 경영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새내기 수강신청 지도 업무를 무사히 종결지었다. 새내기 수강신청의 경우 시간대가 겹치거나 수강정원이 부족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속출해서 애를 먹었으나 학사지원부와의 조율 끝에 한바탕 난리를 치렀지만 무사히 마쳤다. 2004년도부터 대대적인 교과과정 개편이 추진되고 있는데 학교측이나 학생들이나 모두 혼란스러워 앞으로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익구도 지속적인 수강신청 연구를 통해 도사가 된 터라 전산실에서 이뤄진 새내기 수강신청을 이 사람 저 사람 도와주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26일 경영대 오티 오전 일정에서 학생회장 10분간 인사 시간이 있었는데 익구는 날림으로 작성한 원고를 변형해서 간단한 인사를 드렸다. 다음은 원고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37대 경영대 학생회장 경영학과 02학번 최익구입니다. 새터 이후에 처음 뵙는 건데 새터는 재미나게 잘 다녀오셨나요? 새터를 총괄한 저로서는 부족한 점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앞으로 펼쳐질 대학 새내기의 다양한 행사들에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새내기 여러분, 고려대학교 그것도 우리 경영대학에 오신 것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의 어려운 선택이 결코 후회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이는 겉멋만 든 오만이 아니라 호상인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진솔한 자부심입니다. 이제 이 자부심을 새내기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까 합니다.

저는 대학 새내기 여러분들께 네 가지 정도를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자유를 만끽하시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 대학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유롭게 쓸 권리가 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대학은 어쩌면 고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따릅니다. 우리는 그 책임 앞에서 고독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쏟아지는 자유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에 따르는 고독을 마다하지 않는 그래서 철저히 자기 몫의 일에 자기탓을 할 수 있는 멋진 대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남 핑계대기 쉽고, 변명으로 떠넘기기 쉬운 세상이지만 자신이 치열하게 고민해서 한 일을 자기 책임으로 짊어지는 모습이 가장 대학인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자신만의 가치로운 일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22세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온 천하가 다 무너지더라도 내가 이것만은 꽉 붙들고 놓을 수 없다. 내가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나의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양한 생각들이 만나고 숱한 갈림길이 있는 대학생활에서 자신의 꿈을 투자하고 싶은 것이 어떤 것인지 궁리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키에르케고르처럼 죽네 사네 할만한 큰 가치를 붙잡지는 못해도 자신이 이거다 싶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자신에게 가장 큰 효용을 주는 것 하나를 건져 가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콩달콩 열심히 추구한다면 누구나 자기 인생의 당당한 주체로서 또한 주류로서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비판적 사고를 기르시기 바랍니다. 비단 경영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들을 접하면서 또한 다양한 사회 이슈들을 접하면서 남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맙시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 한 번 더 비판적으로 생각해서 취사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이런저런 다양한 정보의 원천들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성실함과 더불어 자기 스스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평가하는 새내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주자는 “큰 의심을 가지면 진보도 크고, 의심이 작으면 진보도 작다.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으면 진보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욕하기는 쉽지만 티끌만큼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티끌만큼이라도 바꾸려는 노력과 더불어 우선은 세련되게 섬세하게 욕하는 법부터 배워야겠습니다. 비판적 사고는 창조적 지성인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남과 연대할 줄 아는 개인주의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앞서 말한 책임이나 자신만의 가치, 비판적 사고는 모두 개인주의자로 수렴됩니다.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타인과 단절된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 타인과의 이런저런 연대 속에서 피어납니다. 저는 큰 꿈과 높은 실력을 가진 여러분들의 연대가 우리 곁의 소수자들, 약자들, 비주류들을 향하기 바랍니다. 높이 솟아오른 정신일수록 가장 낮은 곳을 응시하는 법입니다. 우리 모두 높아질수록 낮은 곳을 볼 줄 아는 개인주의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시시콜콜한 당부의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저 같은 경우 새내기 시절 이런 말 들으면 감동 먹고 그런가 보다라고 했었는데, 요즘 후배님들은 원체 영특하셔서 이미 다 이런 것쯤이야 다 알고 있으시다보니 뻔한 말을 해서 괜시리 죄송스럽습니다.^^; 그래도 많은 덕담들 너무 지루하게 여기지 마시고 그러려니 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분명 대학생활은 기대만큼 녹록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경영학도입니다. 경영학도의 기본적인 자세 중의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경영학도는 손해보는 장사를 정말 싫어합니다. 새내기 여러분 모두 경영학도답게 대학 4년을 남는 장사하시기 바랍니다. 훌륭한 교수님, 그리고 곁에 있는 동기들,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한다면 먼훗날 자신이 일궈낸 엄청난 수익에 흐뭇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금 안암의 새끼 호랑이가 되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지금까지 37대 경영대 학생회장 최익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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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한달 고심 끝에 겨울학기를 안 듣고 영어학원을 수강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숙제도 꼬박꼬박하고 모르는 단어 하나하나 샅샅이 뜻을 찾아보고 텍스트도 뒤적거리는 성의를 보였던 나는 새터 준비가 겹친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하나둘 소홀히 하다가 결국 나중에는 강의 시간에 앉아 있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아마 토익 시험을 보라고 한다면 별로 실력 향상이 없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전무했던 토익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절박한 생존상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영어 공부는 이번에도 시원치 않은 성과를 가져왔다.


물론 despite가 전치사이고, though가 접속사라는 사실과 이 둘을 뒤에 구나 절이 오느냐의 여부에 따라 적절하게 구사하는 법 같은 몇 가지 공식과도 같은 것들을 접한 것이 아주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정법 과거완료의 문장 구조라든가, 동명사와 TO부정사, 관계대명사나 분사구문, 복합명사 같은 시험의 단골소재들을 수박 겉핥기로 걸쳐간 보람은 없잖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습이 거의 없었던 만큼 죄다 망각의 강을 한참은 건넜으니 답답할 뿐이다.^^;


영어공부의 효용은 나에게 모멸감을 선사하면서 나의 무식함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준다는 점과 갑자기 학구열을 불태울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인 것 같다. 함께 다닌 친구가 나보다 문법 문제를 몇 개 더 맞추는 모양을 보면 나의 조급증은 폭발하고 졸지에 나는 영어도 못하는 촌놈이 되어버린 극도의 소외감을 맛보기 일쑤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한 졸업요건 중에 토익 780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늘 마음 한구석의 짐이 되고 있다. 아직 토익 시험 한 번 제대로 본 적도 없는 나는 장래에 대한 고민이 없는 놈,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녀석으로 전락하고 만다. 토익점수를 위해 부지런히 매달 시험을 보고 보면 볼수록 점수가 오른다며 권하는 친구 앞에서 나는 영어만능주의 비판이나 하는 고집불통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중학교 1학년 제도권 교육에서 처음으로 영어를 접하게 되면서 영어 단어 외우기를 왜 그리 게을리 하고, 영어문장 암기 시험을 그토록 저주했는지 후회스럽다. 그 때 좀 영어에 애정을 가지고 공부했다면 지금 이러한 몰골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핑계다. 지난날의 언어 국수주의 혹은 폐쇄적 국어사랑에 대한 질타로 지금의 내 초라한 모습을 무마해보려는 속셈이다. 또 고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던 한 친구에게 내가 한 덕담은 고작 “전성기의 대국인 미국에 가서 영어라도 건져 오시게”였다.


공교롭게도 내가 영어학원을 수강하던 시기에 읽었던 책 중에 하나가 김영명 교수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책이다. 영어 사대주의를 신랄히 비판하고 있는 책을 영어 학원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틈틈이 펼쳐보는 부조화의 극치였다.^^; 여하간 글쓴이는 책에서 영어 공용화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우리말 사랑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역설한다. 나도 저자의 문제의식에 대부분 동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빼어나게 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특히나 영어회화는 더더욱 말이다. 그런데도 가스검침원에게조차 토익 성적표를 요구하는 현실은 황당할 따름이다.


글쓴이는 영어 공용화 정책을 펼치라는 자들을 사이비 자유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이는 자유주의자들이 파시즘 체제에서나 가능한 동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홍세화 선생의 비판과도 일맥 상통한다. 자유주의자가 영어가 공용화되는 것이 대세라면 막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것까지는 이해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영어 공용화에 앞장서는 것도 해서는 안될 일임은 자명하다. 어떤 방향이든 강제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자유주의자의 책무인데 대체 그것 어디다 엿 바꿔 먹고 영어 타령만 하는지 모르겠다.  


글쓴이는 기득권, 권력, 부를 가진 세력은 언제나 현실론과 효용을 앞세운 사대주의 세력이었다고 말하며 민족주의 이념은 우리 역사상 한번도 지배층의 주도 이념이었던 적이 없었다며 한탄한다. 중립적 세계화는 허구라며 힘센 자는 중립의 논리를 좋아하게 마련이라며 강하게 비판한다. 아울러 저항 민족주의로서 한국어 사랑은 의미가 있다고 역설한다.


특히 한자파들이 한글하고만 싸우려 하지말고 영어와의 싸움에 힘을 보태주기 바란다는 글쓴이의 지적에 크게 동감했다. 적의 적은 동지인 법이고, 한자파도 영어라는 거대한 적 앞에서는 공동의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고3 수험시절에 틈틈이 한자공부를 해서 한자능력검정 2급 자격증을 딸 정도로 한자를 좋아한다. 조선일보와 내가 유일하게 생각을 같이 했던 때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공문서 한자병용에 대한 논쟁이 붙었을 때 한자병용을 옹호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한자혼용도 아니고 괄호 안에 한자를 표기하겠다는 수준의 한자병용은 충분히 양해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국어 공부를 위해서 일정정도의 한자공부가 병행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변함 없다.


나는 어차피 배우고 가르쳐야할 한자라면 될 수 있으면 일찍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말 어휘의 절반 이상은 한자어이며 한자어들의 상당수가 한자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없이는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가 한글 전용이라는 밥상을 차리고 싶어도 한자라는 반찬이 없으면 곤란할 정도로 한자어는 한국어에 깊게 침투해있다. 한자어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적정 수준의 한자 학습이 부당한 노동력 낭비이며 인권 유린(?)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물론 아무리 한자의 매력에 빠진 나라고 해도 한글 전용의 대원칙은 건드리지 않으며 우리 말글살이가 한글만으로 충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미 한글 전용이 대세인데, 한자를 쓰겠다는 욕망을 금기시할 필요까지 없다는 소수자 보호(?) 수준의 논의일 뿐이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샜다. 다시 영어 공용화 논쟁으로 돌아오면... 1998년 여름 출간된 소설가이자 경제 평론가 복거일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刊)라는 책인 우리 사회에 ‘영어 공용화’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세계화와 국가경쟁력이라는 논제가 깔려 있다. 그는 영어는 지구촌의 ‘표준’ 언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제국의 언어'라고 말한다. 따라서 ‘주변부’의 우리가 ‘중심부’로 진입하기 위해서, 또는 중심부의 지식과 담론을 제대로 빠르게 흡수하여 중심부 못지 않은 경쟁력을 갖추라는 것이다.


이른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시민들이 보다 더 "영어"에 능숙해져야 한다는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는 것이다. 복거일이 자신의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점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닫힌" 민족주의를 버리고 "열린" 민족주의로 나가야 한다는 그의 말도 맞는 말이다. 편견이나 아집을 버리고 세계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경쟁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많이 나갔다.


물론 영어를 공용어로 삼는 일은 지금 우리의 감정에 너무 거슬른다. 우리 말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는 우리 말을 아끼고 써야 한다는 주장에 심정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자연스러운 것이 늘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191쪽

언어는 도구다. 언어가 사람에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리고 모국어가 우리에게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언어가 도구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고 그것을 우상으로 떠받드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은 오롯이 남는다. - 같은책, 194쪽



일면 맞는 말이기는 한데 정서적 거부감은 어쩔 수 없다. 복거일이 말한 민족주의의 사슬에 걸려있다는 죄책감이 더해서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은 의문이 든다. 한 민족의 언어라는 것이 단순히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일까? 효용성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그런 것일까? 과연 영어 공용화가 합리적 대안인가?


영어 공용화를 옹호하는 입장은 대개 다음과 같다. 언어는 생활 속에서만이 습득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영어권 국가로 이주하지 않고는 영어를 마스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어학 연수로 인한 외화 낭비의 절감과 세계화시대에 발 맞추어 간다는 의미에서 영어의 공용화는 필수 불가결 한 것이다. 영어 공용화가 민족성을 해친다는 것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일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모국어에 대한 입장은 갈리게 된다. 복거일은 민족어는 박물관 언어로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대개의 영어 공용화 옹호론자들이 반드시 민족어의 사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민족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문화 주체성 운운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식의 논리가 더 많아 보인다. 아이들의 언어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한국어는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데 매우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고도로 발달, 분화된 언어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일시적인 언어 지체현상을 지나 세 돌이면 두 가지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영어 공용화 옹호론자들은 영어 공용화는 세계화의 추세에 걸맞은 행동이며,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편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영어 공용화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물론 영어가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고, 국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공용어로 제정함으로써 비롯되는 많은 혼란과 비용을 감수할 정도로 절실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공용어로 제정한다고 해도 실제 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어가 필요한 분야는 전문가의 영역이고 영어 공용화보다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으로 충분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영어가 공용화되면 더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 않느냐는 옹호론자의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따진다. 당장에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영어가 공용화된다고 해서 원서를 줄줄 읽어 내려갈 일은 없다. 또한 전문적인 입장에서도, 실제 실험을 하거나 연구를 하는 데는 영어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다만 대외적인 경향이나 추세를 파악하고 우리의 연구 실적을 발표하는데 영어가 필요한데, 그 분야에서 사용되는 영어 역시 고난도의 전문적 수준을 요구할 정도는 아니다는 것이다. 공용화 보다는 단기적으로 통역과 번역에 능통한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학교 교육 정상화를 통해 영어 교육을 시작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봐야지, 전 국민을 영어의 바다에 빠뜨리는 것은 위험한 짓이라는 것이다.


영어 공용화를 반박하는 숱한 논거들이 있지만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거가 대개는 현실적 이익을 도모해보자 수준에서 그치는 빈약한 수준이니 별로 반박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두 가지 정도의 주장에 대해서는 확실히 반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로, 영어를 잘 해야 잘 살게 된다는 미신이다. 걸핏하면 드는 것이 싱가포르의 예인데 그들이 현재와 같이 발전한 것은 그들이 영어를 사용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선진화된 제도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또한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보다 절박한 생존의 문제가 시급한 인구 300만의 도시국가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찬양을 하는지 정말 배알도 없는 처사다. 또 홍콩을 영어 공용화의 표본이라고 받들기도 하는데, 그네들의 영어 문화가 영국 식민 통치의 산물일 따름이며, 설령 2개 국어를 능숙한 홍콩의 모습에 침을 흘릴지언정 그밖에 우리가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영국 연방이 44개국이고 영어를 대부분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데 그들 가운데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는 5개국도 안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되새겨봤으면 좋겠다. 영어 사용과 국가발전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


게다가 영어 공용화는 우리 ‘모두’를 잘 살게 해줄 것 같지도 않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게 되면 국민의 약 20%가 영어 상용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상류의 기득권층은 영어를 쓰고 그 이하 계층은 한국어를 쓰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사실 뻔할 뻔자 아닌가). 결국 기득권층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점점 더 유리해지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계층은 더 불리해질 것이다. 이미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인도, 필리핀, 나이지리아 등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실례로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인도에서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소수라고 한다. 다수의 빈곤층은 자기 모국어밖에 모르는 실정이다. 필리핀에서도 영어를 제대로 하는, 교육받은 사람들은 미국, 호주, 중동 등 외국 이민으로 빠져나가는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영어 공용화로 이른바 ‘영어 특권 계급’ 같은 것이라도 나타난다면 우리 사회 통합에도 큰 지장을 줄 것이다. 아울러 일부 소수 계층만이 영어를 배우는 북한의 실정을 고려할 때, 다가올 통일한국 시대에 남북 간의 영어로 인한 괴리감도 충분히 생각 가능하다.


둘째로, 영어 공용화가 세계화에 발 맞추는 것이라는 미신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세계화’의 개념에 대한 것이다. 아마 세계화 시대에 발 맞추는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정글 세계화’의 개념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화란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사회로서, 영어를 쓰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고, 의식주 해결도 쉽지 않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먼저 이런 세계화에 대해서 가치판단을 요구하고 싶다. 영어를 공용화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 정도의 세계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올바른 미래의 사회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세계화에 대해서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인가? 올바른 사회는 아니지만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한다면, 어째서 이런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사회가 우리 미래 사회 모습인지 묻고 싶다.


양자역학에서는 관찰자의 관찰하는 행동이 관찰대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즉, 한 사람이 그냥 흘러가는 역사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관찰한다는 행동 자체가 역사의 변화 방향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역사는 대세의 흐름대로 저절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미래의 모습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냥 "영어공용화가 될 테니 영어 공부나 열심히 하자"고 행동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영어 공용화 사회로 바꿔 놓는 것이다. 반대로 "영어 공용화는 올바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올바른 사회로 가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정글세계화에 어떤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좀 더 바람직한 세계화의 모습은 이런 것이 되어야 한다. 아프리카 흑인이라고 천시하지 않고, 유럽 백인이라고 우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이다. 인간의 개인 가치를 중요시 여기며 어느 누구의 희생도 바라지 않는다. 각기 다른 점을 인정하며, 그 개성을 바탕으로 인류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다른 것을 강제하지 않는다. 각각의 개성을 죽이지 않고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이다. 세계화를 이런 다른 점을 존중하고 평등한 것을 추구하는 사회로 생각할 때, 영어 공용화와 모순이 일어난다. 티베트족이 중국어를 공용어로 쓰는 것이 아니라, 티베트어를 잘 간직해 한족에 동화되지 않고 지금까지 고유한 문화를 이어가고 있듯이, 또 캐나다의 퀘벡주가 영어의 바다 속에서도 프랑스어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세계화가 아닐까?


한국에서 영어 공용화를 한다는 것은 필히 전 국민에게 영어를 강제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러한 강제적인 행위는 세계화 정신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아울러 앞서 말했듯이 자유주의자로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자발적으로 영어 공용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가정은 세계화가 되면 한국어가 불편한 생활을 강요할 것이라는 예측에 기반한다. 한국어를 쓴다고 해서 생활이 힘들 정도의 불편한 생활을 해야 한다면, 이것은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는 세계화 기본 이념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또 지적하고 싶은 점은 가장 큰 다른 점 중의 하나인 언어를 개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없애려 든다는 것은 역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 사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획일화된 세계화는 없는 것이 낫다.


기실 공용어화에 대한 논리는 이미 우리 역사에 있었다. 주요한은 “대동아 공영권의 공용어로서 일본어가 등장할 것”이라며 우리가 빨리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을 부르짖으면서 우리 민족이 모두 일본인처럼 일본어를 잘 해야 한다고 했다. 친일의 논리는 ‘힘의 논리’였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는 그들의 논리를 다시 듣고 있다. 지금 영어 공용어화를 주장하는 많은 이들도 애국하는 심정으로 주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구조는 친일파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힘의 논리는 “힘은 변한다”는 기본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서정주의 "일본이 그렇게 망할 줄 몰랐다. 못 가도 100년은 가리라고 생각했다"는 솔직한 고백은 이러한 비극적 현실인식을 전형적으로 나타낸다.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과 함께 친일의 논리가 망한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한국어로 잘 포장해 놓는다면 우리 다음 세대들은 한국어만 가지고도 진리를 잘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중심이 어디로 변하든지 한국어만 지키고 있다면 그들은 진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외국어 교육은 세계의 중심이 변했을 때, 그 중심에 맞춰서 다시 교육하면 된다. 지금 불고 있는 ‘중국어 교육 열풍’을 봐도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영어교육이지 영어공용화가 아니다. 우리는 이 둘을 잘 구분해야 한다.


한 민족이 외세의 침략을 받고 강압에 못 이겨 외세의 언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경우는 있지만 스스로 외국어를 자기 국어로 끌어들이는 일은 역사상 유례가 없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고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 외국어로서의 영어 교육과 공용어 문제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직 불변인 것은 한글이 우리의 언어고 그것을 우리는 아름답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말글의 지위를 높이자면 우리가 잘 되는 수밖에 없다. 즉 영어를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우리나라를 좀 더 발전시키고 또 우리말글의 지위를 높이는 방편으로 생각해야할 것이다.


끝으로 영어 잘하는 지식인들에게 청컨대, 영어가 좋으면 남에게 강요하지 마시고 그 속에서 좋은 정보 많이 뽑아 국민들에게 쉽게 소개해주는 ‘지식 소매상’의 역할을 많이 좀 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네들이 타박 안 해도 한국어는 자꾸 소멸되어 가고 있다.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마시라. 불난 집에 부채질하지 않는 것이 그대들의 마지막 상도덕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근대 일본 지식인들이 서양 개념을 일본말(한자어)로 번역하려고 노력한 것을 생각해보시기를 권한다. 한국어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우리말의 조어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만들 말을 통용시킬 힘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지, 그것은 물론 언중의 책임도 있겠지만 남 위에서 시켜먹기 좋아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길 바란다.


이렇게 시원하게 쏘아붙이고 나서 또 걱정이 된다. 토익 점수는 언제 따며, 대학 영어강의는 또 어떻게 들어야 하나 같은 고민들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될 수 있으면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글로 쓰려는 노력, 조금 어색해도 한국어 용어를 만들어 보려는 시도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 고종석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누구에게나 자신의 모국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다. 외국어를 배우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자신이 처음 배운 언어, 가장 익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외국어 공부량에 비례한 만큼 새록새록 피어날 것이다. 영어 문법 틀렸을 때의 곤혹스러움의 반의 반이라도 아름다운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채우기를 다짐해 본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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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구는 친구들 사이에 별명들을 서로 불러주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본명을 불러주기를 즐긴다. 그러나 그런 익구마저 본명 대신 다른 명칭을 쓰는 이가 있으니 바로 친구 섭승현이다. 승현이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을 하게 되어 알게 된 친구로서 익구는 ‘섭’이라고 부른다. 이유인즉슨 승현이라는 이름이 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특이한 성씨인 ‘섭’으로 호칭을 정했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섭은 현재 중국 인민대 법학과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방학이고 해서 한달간 한국을 들렀던 섭이 곧 중국으로 떠나게 되어 익구는 23일 월요일에 약속을 잡았다. 익구와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인 청원이도 가까스로 섭외가 되어 셋이서 중계동 은행사거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주로 놀러가는 노원역 일대와는 달리 중계동 일대는 학원가들이 많은 편이라 비교적 거리도 한산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결국 그 일대를 주욱 둘러보고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이 때가 거의 자정이 다될 무렵이었다.


익구의 강력한 주장으로 흑맥주 2000cc를 시킨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섭이 중국 유학생이다보니 이야기 화제가 중국 관련한 것이 많이 나왔다. 섭은 법학도인 관계로 중국의 사법제도를 조금 이야기 하다가 중국의 사법부는 독립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에 공산당 말고 다른 정당들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중국 당국은 “공산당 영도하의 다당제”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익구는 공산당 일당독재가 이어지는 한 중국의 발전은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민주주의나 인권에 대한 열망은 자연히 높아질 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존경받는 선진국으로서의 지위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의 우월성을 인정해야한다고 말했다. 섭은 13억 인구의 그 엄청난 규모의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데 일당독재 시스템이 필요악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청원이는 미국의 패권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면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중국 등이 도전하는 다극체제로의 진입은 요원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익구는 아무리 사람수 많은 나라라고 해도 중국 인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엘리트층이 두터워지면 결국 저 잘났다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어 있고 일당독재 시스템의 적실성을 상실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섭은 상당수 식자층에서 그런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거나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답했다. 청원이는 미국이라는 유일 패권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EU같은 한중일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 연합체를 창설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밝혔다. 익구는 아시아 연합은 회의적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중국보다는 차라리 EU가 미국을 견제할 세력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는 기대를 보였다.


이에 섭과 청원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차이만 봐도 유럽통합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그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익구는 현재까지만 해도 놀라운 성과이며 더욱 가시적 성과가 기대된다고 반박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돌다가 중국이 그나마 도전하고 있을 뿐, 현재 세계는 서구 중심의 질서 안이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감했다. 터키가 EU에 가입하려고 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에 씁쓸함에 느끼면서 한때 세계의 주도권을 지었던 동양의 몰락은 너무 안주한 결과라며 혀를 찼다. 익구는 덧붙여 서양의 지속적 자기 혁신 노력도 한 몫 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세 사람은 모두 서울외고 중국어과 출신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친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익구와 청원이는 중국을 꼭 가보고 싶다며 중국 여행에 강한 집념을 보이기로 했다. 섭은 자신이 먹고 살 터전이 될 중국이 앞으로도 경제발전을 하기를 기원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익구는 앞의 이유들을 들어 중국의 성장이 발목을 잡힐 것이라며 폄하했다. 청원이는 두 사람의 설전을 듣고 있다가 역사학도답게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 문제를 제기했다.


섭은 최근 들어 노골적으로 고구려사를 자기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듯하다고 말했으며, 이미 시험 등을 통해 그런 내용을 주입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익구는 이에 분개하며 우리의 역사에 대한 무지가 결국 고구려사를 유린당하게 하고 있는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정작 청원이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서 그나마 우리 역사로 볼 수 있는 것일 뿐, 사실 고구려가 온전히 우리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익구는 졸지에 민족주의자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그건 어불성설이며 그렇게 따지면 어느 나라가 지난 나라를 이어 받아 그 역사를 독차지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 밖에도 중국과 연관된 소재를 조금 더 나눠보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중국이 더 이상 꾀죄죄한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에 합의를 했다.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는 무서운 경쟁상대로서 시샘이 난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았다. 익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늘어나는 돈만큼 그에 비례해서 중국의 고민도 늘어날 것이라고 마지막 태클을 걸었다.^^; 그런 와중에 지금 중국 걱정 할 때가 아니며 이웃한 북한만 생각하면 속이 막힌다는 것에도 놀랄 정도로 합의를 이뤘다. 중국만큼의 유연성도 보이고 있지 못한 꽉 막힌 조선로동당 꼴통들에 대한 구박도 이어졌다.


북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 와중에 청원이는 뜬금없이 부시가 제발 이번 미 대선에서 떨어지기를 바란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세 사람은 엄청난 공감대를 형성했다. 세 사람은 우리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도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앞선 이야기들의 사소한 차이들은 다 덮어지고 한바탕 큰 동감의 마당이 펼쳐졌다.^^


중국 이야기를 마저 나누다가 한 때 이슈가 되었던 파룬궁 사태가 궁금해서 섭에게 물었다. 그러나 섭은 파룬궁 사태가 무언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국에 종교가 있긴 있지만 사실상 종교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상황을 전했다. 익구는 마르크스의 말대로 종교는 아편이라는 인식이 있는가보다고 받아 넘겼다. 갑자기 화제가 종교쪽으로 넘어 오면서 평소 익구의 소신대로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우악스러움을 지적하며 게거품을 물었다.


청원이는 신이 없는 종교인 불교 신자인 만큼 과연 종교를 가진 사람도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익구는 유신론자이지만 무교임을 천명했고, 섭은 카톨릭이지만 그리 열심히 나가는 신자는 아니라고 했다. 셋은 종교인들 중에 상당수는 종교를 통한 인맥 구축 같은 세속적 꿍꿍이를 가진 사람일 것이라는 비판을 했다. 또한 종교가 일단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건드리기 쉽지 않고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데 모두 동감했다. 익구는 다만 헌법상 보장된 종교의 자유는 믿을 자유와 더불어 안 믿을 자유도 보장하는 것임을 종교 가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니 술, 안주가 모두 떨어졌다. 결국 자리를 떠서 2차 장소를 물색하던 중 분식집에 자리를 잡았다. 된장찌개 곁들인 비빔밥, 김밥, 쫄면 등을 시켜 배불리 먹으면서 이야기 마당을 이어 갔다. 그러던 중에 앞으로 우리 무엇을 해서 밥 벌어먹고 살까라는 고민을 해봤다. 세 사람은 법학도인 섭이 사법부에, 행정고시 준비생인 청원이는 행정부에 진출하기로 하고, 남은 내가 입법 관련으로 진출해서 삼권분점을 해보자고 농담 삼아 말했다. 분식집 서약이라고 명명해놓고서는 서로 기가 막혀서 한참을 낄낄거렸다. 여하간 세 사람은 야참을 맛나게 먹으며 흡족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세 사람은 헤어졌다. 오랜만의 긴 대화에 만족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아쉬운 눈치였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섭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익구는 앞으로도 이런 푸근한 이야기 마당을 친구들과 나눴으면 한다는 포부를 밝히며 이번 회동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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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16일 ~ 18일 2004 새내기 새로배움터(이하 ‘새터’)가 막을 내렸다. 새터 이야기를 작년 12월 초부터 시작했으니 두달 간은 새터에 시달렸지만... 너무도 짧고 허망하게도 2박 3일은 지나가 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행사인 새터는 본디 어설프고 모자르게 마련이지만... 내가 책임지고 준비한 이번 경영대 새터는 여러모로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많다.


내가 좀 더 신경 쓰고 챙겼다면 좀 더 알찬 새터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내 게으름 때문에 못다 이룬 일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는 새터인 만큼 새터를 기억하는 것도 갖가지 빛깔들이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새터의 부족함, 잘못된 모습들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다 허접한 학생회장인 나의 탓으로 돌려졌으면 좋겠다. 그간 못난 사람이 시키는 일 묵묵히 잘 도와준 03학번 후배님들, 새터에 열심히 참석해준 04학번 새내기들은 그저 좋은 기억만 간직하기를 바란다. 모든 잘못들은 내가 걸레가 되어 쓱싹쓱싹 훔쳐내고 싶다.


새터는 기본적으로 가장 위험부담이 높은 행사다. 학생회 사업 중에서 가장 먼저 맞부딪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학생회 일꾼이 아니고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잘 모르고 돈은 어떻게 써야하고, 뭐를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여기저기 물어서 채워나가야 하다보니 이래저래 삽질을 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런 새터의 위험성과 비례해서 일년 행사 중에서 가장 참여율이 높다는 특징도 있다. 물론 9월에 있는 고연전도 엄청난 참여율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경기에 열광하고, 응원에 미치는 고연전이라고 해도 낯설음과 설렘이 교차하면서 제 돈 내고 2박 3일간 어디론가 떠나서 새로운 사람과 뒹구는 새터의 위상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새터 안가면 왕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들도 새터의 무시 못할 위상 때문이리라. 단지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새터는 대학 한해살이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다.


이렇게 거창하게 풀어놓지만 사실 조금 호들갑을 떠는 감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귀차니즘들을 뚫고 짬을 내어 회의를 하고 발로 뛰는 과정들 하나하나가... 지나가면 손해보는 장사 같아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기억이 되어 버린다. 경영학도로서 새터 준비에 발 담그는 것이 손해보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근 발을 차마 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반 일꾼들이 자꾸 손해 보는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할 때 속 편히 맞장구를 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작년 12월 기말고사가 다 끝난 금요일 오후에 새터준비위원회 구성을 위한 회의를 했다. 중앙 사무국 회의를 들어가서 새터 실무를 총괄해줄 새터준비위원장을 선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래도 잡일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다들 눈치채고 선뜻 자원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다행스럽게도 D반 부반대표였던 03학번 이재희군이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맡아주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경영대 사무국장 겸 새터준비위원장 겸 D반 부반대표라는 초호화 감투가 등장하게 된다.^^; 사실 이번 새터에서 재희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빼앗았는데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새터준비위원장을 뽑고 사무국 회의가 시작되면서 새터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작년에 갔던 강원도 평창이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 괜찮아서 다시 갈까 생각도 했지만... 기획사는 강원도 속초 일대를 들고 나왔고 결국 강원도 속초 사조리조트라는 곳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장소 결정이 끝나고 이제 세부적인 내역들을 산정하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인 예상인원 산출에서 술 베팅 같은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다행스레 2003 새터도 깊숙이 관여했던 터라 일단 작년 기준으로 가감을 하기로 해서 비교적 수월했던 것 같다.


예상인원은 400명이라고 잡았는데 실제 새터에 참석한 인원은 480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새터를 마치고 학교로 오는 11대의 버스가 11번 버스가 몇 석 남은 것을 빼고는 거의 꽉 차서 갔으니 말이다. 준비한 입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대박이 터져서 뿌듯하기도 하지만... 물품들도 부족하고 숙소 환경도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과연 이만한 인원들이 다음 새터에서 모이겠느냐는 자만심도 조금 생기기도 했지만 말이다.


술 같은 경우도 400명 예상하고 작년과 비교해서 산정했다. 2003 새터 때 소주 25상자, 막걸리 30상자(750ml 들이), 맥주 42상자였던 것이 2004 새터 때는 소주 40상자, 막걸리 40상자(750ml 들이), 맥주 3상자(패트병 6개 들이)로 큰 폭의 변화가 있었다. 일단 작년 새터 때 맥주가 남고 소주가 모자랐다는 평가와 막걸리가 부족했다는 평가를 수렴했다. 그러나 날로 늘어가는 술 못 마시는 이들을 위해 일정량의 맥주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소수여서 맥주가 상품용으로 최소한도로 책정된 것은 아쉽다. 내가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술을 잘 못마셔서 곤혹을 치러야 했던 새내기들이 분명 적잖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새터가 끝나고 돌아보니 소주나 막걸리가 모자랐다는 말을 들리지 않을 것을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상인원보다 수십명이 오바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레 넘어간 것을 보면 확실히 술을 적게 마시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내기들이 내게 가장 많이 물어보고 걱정한 것도 술을 강제적으로 마시게 하나요, 술을 못 마시는데 어쩌죠... 이런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둘러댔지만 모든 방에서 술을 강권하는 장면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술 마실 자유가 있다면 술 안 마실 자유도 있다. 모든 주당들은 그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새터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각 반 일꾼들에게 연락해서 회의 일정을 맞추는 일이였다. 다들 바쁘게 사는 친구들인데 비는 시간 맞춰서 회의 한 번 열기가 녹록지 않았다. 하물며 방학중인데 학교까지 와서 잡스런 회의 잠깐 하러 들르라고 하기가 참 미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회의는 단 한 번만 열고 모두 오프라인에서 회의를 연 것은 내가 아직 얼굴 맞대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한테 무언가 강제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이지만 회의 오라고 통보하고, 늦는다고 닦달하는 것은 참 고역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회의에 참석해준 03학번 새터준비위원님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대강의 윤곽이 잡히고 2월 3,4일로 경영대 LT를 다녀왔다. 가서 주로 한 일은 새터 답사와 새터 실무 논의였다. 공간들을 열심히 나눴지만 막상 답사를 가서 보니 반별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쉬운 대로 함께 가는 단과대와 공간을 나누고 경영대 각 반별 공간을 나눴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안전대책에 대해 논의를 나눴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실제로 크게 지킨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각 방의 안전은 각 방이 책임진다는 대원칙은 확실히 지켜져서 2박 3일간 안전 걱정 없이 보낸 것 같다. 철저한 출입통제 등을 기획했지만 내 도가적 습성이 폭발해서 흐지부지되었고, 매시간 인원보고도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경영대 LT를 마치고 본격적인 새내기 연락에 들어갔다. 확보한 새내기 연락처를 각 반별로 분배해서 새터에 대해 알렸다. 이번 새터에서 엄청난 인원이 몰린 것은 높은 재학생의 참여와 더불어 새내기들의 열성적인 참여가 합쳐진 결과다. 이 두 개가 한꺼번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나는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 행운은 어디까지나 모든 이들의 노고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각 반 03학번들이 개별 연락을 하는 사이 나 또한 04학번 커뮤니티나 전자우편, 쪽지를 통해 새터에 대한 홍보와 문의사항을 받았다. 인터넷 중독자인 나로서는 이런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새내기 연락들을 돌리고 온라인 공지를 띄우는 동시에 본격적인 새터비 수납이 시작되었다. 작년에도 새내기 새터비를 걷었던 터라 익숙하게 통장정리와 입금확인을 했다. 사실 새터 결산이 끝나는 그 날까지 나를 괴롭힌 것은 적자의 압박이었다. 회계학적 보수주의에 따라 최대한 비관적으로 계산한 새터 재정 운영은 나를 내내 괴롭혔다. 아마 모든 새터준비위원들도 걱정이 태산 같았을 것이다. 다행히 예상을 웃도는 참가인원으로 인해 새터비를 많이 걷혔고, 각 반에 작년 새터와는 달리 풍성한 뒤풀이비까지 남기는 쾌거를 이뤘다. 40만원이라는 손망실비를 지불하고서도 끄떡없었던 이번 새터는 정말 재정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새터 당일날 아침 잠을 설치다 새벽에 눈을 떴다. 학교에 가서 먼저 점검할 일들을 확인하고 짐을 꾸린 뒤 학교를 향했다. 사실 나는 메모하는 습관이 없고, 그저 이면지를 사용해서 여기저기 끄적이는 수준이라 급히 할 일도 종종 빼먹기도 했다. “기억력이 좋은 머리보다도 무딘 연필이 더 낫다”는 독일 격언이나 총명불여둔필(聰明不如鈍筆)이라는 한자성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기록하는 습관은 어느 정도 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행히 수집욕이 있어서 잡글을 잘 모아두는 것은 잘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다. 여하간 내가 까맣게 있고 있던 것들은 03학번 후배님들이 상기시켜 주고 해가며 빠짐없이 꾸렸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빗발치고 나도 여기저기 연락하며 정신이 없는 와중에 이런저런 일들을 해치우고 새터 중앙판 행사 장소인 노천극장으로 향했다. 새터비 현장납부를 하면서 새내기들의 학번과 반을 알려주고, 술과 기념품 같은 물품들을 분배해서 나르는 등의 일들이 이어졌다. 새터 중앙판 행사를 마치고 차에 타는데 놀랍게도 새터 참가 인원이 예상을 넘었음을 그제서야 확인했다. 결국 고민 끝에 여분의 차를 한 대 더 신청했다. 버스 한 대당 44만원이서 꽤 부담이 컸지만 그래도 사람이 넘쳐서 한 대를 더 부른 것이라 기분이 좋았다. 여행자보험을 한명도 빠짐없이 쓰게 하기 위해 각 차를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강원도 속초까지는 먼 여정이라 초조해졌다. 결국 당초 계획한 진부령 길 대신 꾸불꾸불해서 불편하지만 시간이 단축되는 미시령 길을 타기로 했다.


미시령의 가파른 고개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착해서 짐들을 풀어 놓고 보니 어느덧 8시가 다 되어 있었다. 결국 경영대 중앙판 행사는 11시가 되어서야 시작하게 되었다. 5곡을 위해 겨울방학 내내 준비한 경영대 밴드 너와나의 흥겨운 공연과 고려대학교 응원단 기수부 YT의 열정적인 응원 한마당을 이어갔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KUBS와 KUTV 영상물 상영을 기술적인 결함으로 상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름대로 신경 써서 빔 프로젝터도 대여하고 VTR로 챙겨왔건만 실패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슬프게도 최악의 기계치로 유명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여하간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중앙판 행사를 석연치 않게 마무리 짓고 각 방별 친목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경영대 본부실에서는 머리를 쥐어뜯는 결산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새터 재정 적자의 공포는 없었지만 재학생 참여도에 따라 새터 뒤풀이비가 크게 차이나서 당황했다. 그러나 결국 당초 합의한대로 각반에서 중앙 할당량을 제외한 모든 금액은 각 반별 뒤풀이비로 쓰기로 결정했다. 높은 참가율만큼이나 넉넉한 새터 재정이 꾸려져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많이 늦어진 일정과 계속된 새터 결산 회의의 피곤함으로 안전대책에 대한 논의를 깊게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방별로 안전수칙이 잘 지켜져서 2박 3일간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새터를 치를 수 있었다. 본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깨어 있으려고 했건만, 각 방 안전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잠이 몰려와서 술 창고 마련된 방에서 술도 지키고, 한 손에는 숙소비 지급을 위한 돈 가방을 꼭 끼고 새우잠을 잠시 청했다. 나는 꼭 무슨 일을 할 때 밥을 굶고서 하는 습관이 있는데 새터 첫째 날 내가 한 식사라고는 저녁 때 먹은 서늘하게 식은 점심 때 도시락이 전부였다. 제발 밥은 챙겨먹고 일을 해야겠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말이다.^^


여하간 아침이 밝았고, 여기저기 골아 떨어진 풍경들 속에서 최대한 아침밥을 먹으라고 깨워본 뒤 반별 대동놀이, 촌극 준비, 발표 같은 행사들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본부실을 지키며 별 탈 없이 진행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고종석 선생의 [코드 훔치기]라는 책을 펴들었는데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해 논하면서 ‘차이의 권리’는 교묘하게도 ‘권리의 차이’로 전복된다는 구절을 접하고는 무릎을 치며 몇 번을 되뇌었다. 역시 밖에 나와서 읽는 책의 맛은 참으로 삼삼하다. 잠시 내가 속한 반인 E반 촌극을 보러 갔는데 2년 전에 선배님들께 촌극을 공연하던 기억이 나서 피식 웃어보였다. 나는 그 때 미팅 자리의 웨이터를 했는데 연기력은 정말 꽝이었다.^^; 그래도 제가 잘났다고 믿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라 나 때의 촌극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뭔가.^^;


여하간 오후 행사도 일단락되고 대망의 사발식이 이어졌다. 새터를 준비하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결국 올해 새터에서도 경영대 5개 반 모두가 사발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사발식을 안 하는 단위들이 늘어나고 있고, 사발식이 불필요하게 새내기들의 공포를 자아내는 경향도 없잖아 있다. 사발식은 고대문화의 패막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지목되어 뭇매를 맞고 있고, 이런 따가운 비판 덕분에 사발식의 양과 강도(?)과 많이 줄어 들었고, 강제하는 분위기도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밉지만 선뜻 내팽개치기 힘든 고대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좋게 생각하고 싶다.


일단 사발식의 의미는 종전까지의 획일화된 입시 위주의 교육을 벗어 던지고, 자유롭고 창조적인 지성인으로서 다시 태어나자 정도의 의미로서 막걸리를 마시고 토한다는 제법 비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실 이 의미가 맞는 것인지의 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정도 선에서 매듭지어야지 사발식을 신성시하는 오바질도 삼가야 할 것이다. 사발식에 대해 그리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이지만, 막상 시주한답시고 새내기들 앞에 서니 갑자기 사발식이 나름의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역설하기 시작했다. 사발식을 앞두고 긴장된 새내기들 앞에서 사발식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줄어드는 사발식의 양만큼 사발식의 위상도 축소되겠지만 한바탕 즐거운 마당으로써 기억될 수 있었으면 한다.


사실 학생회장이 사발식 시주를 하는 것이 그간의 관례였지만 할지 말지 무척 고민했다. 고대문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면 그것을 유지하고 계승하는 역할도 있지만, 그에 비례해서 이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을 듣고 수용해야할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입장 정리를 선뜻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의사만으로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각 반 사발식 시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사고를 쳤다는 것이다.^^;


전날 술 한잔도 안 마시고 이래저래 노곤한 몸으로 막걸리를 들이 부으니 몸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결국 마지막 반인 E반을 남겨두고 기절쇼(?)를 펼치는 초유의 사태를 벌여서 E반에서는 시주를 못하고 말았다. 네 번째 반인 B반에서 어떻게 나온 것 같기는 한데 나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황 수집을 해보니 쇼파에 기대 있다가 옆으로 스르르 쓰러졌다고 한다. 내가 새내기였던 02 새터 때 사발식 순서가 E반 새터 새내기 65명 중에 꼴지로 하는 바람에 5시간 가까이 기다린 끔찍한 기억이 있는데... 역시 나와 막걸리와는 대략 궁합이 좋지 않은 듯 하다.^^; 여하간 졸지에 사발식 시주 다 못하고 쓰러진 학생회장이 되고 말았다.^^;  


일찍 쓰러져서 잠든 관계로 아침에 무척 개운했다. 전날의 민망한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던 나로서는 모두에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다들 괜찮냐는 반응들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사발식 시주하던 내가 왜 본부실 이부자리에 누워있었는지 생각하니 전날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여기저기 증언들을 수집하고 내가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발식 시주를 끝까지 돌지 못한 것은 못내 미안한 일이었지만... 뭐 가끔은 학생회장이 먼저 쓰러질 수도 있지 라며 넉살좋게 받아 남겼다.^^


여하간 2박 3일은 이렇게 숨 돌릴 틈도 없이 빨리 지나가 버렸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내내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욕심은 많았지만 내 개인의 역량부족과 철학의 부족이 새터를 제대로 꾸미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문득 고등학교 1학년 때 다니던 학원 국어 선생님의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대학시절 연극부원이었다는 선생님은 정말 연습연습 끝에 상연한 연극이 끝나고 아무 이유 없이 그저 펑펑 울었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잘 끝났으면 된 것을 가지고 울었다는 선생의 잉여적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때 선생님은 지나가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별 게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세상사의 허망함을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허망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후회할 여지를 줄여야 한다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더라면 오해도 안하고 좋았을 것을...


해질 무렵 고대로 돌아온 우리 모두는 반별 뒤풀이 장소로 흩어졌다. 이로써 나의 역할은 모두 끝났다. 나란 존재야 금세 잊혀지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지만 모두들 이번 새터에서 좋은 만남들 가졌다면 그것으로 대성공이다. 끝으로 도덕경 2장의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란 구절이 떠오른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하기사 이번 새터에서 나의 역할이란 극히 미미해서 공을 주장할 것도 없지만...^^; 이제 새내기들이 각 반으로 흩어져 동기들과 선배들과 알콩달콩 재미나게 보내는 모습을 보며 괜히 침 흘리지 말고, 하나둘 나란 녀석을 모른 체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다짐이다.


잊지 못할 2004 새터 함께 해준 모든 이들께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앓던 이를 뽑은 시원함보다 더 강한 서운함이 나를 짓누르지만... 지금은 회한보다는 새로운 만남을 주선했다는 벅찬 뿌듯함을 이야기할 때다. 끝으로 고생하신 모든 경영대 학우 여러분 사랑합니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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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뇌 논쟁(?)

사회 2004. 2. 6. 05:45 |
어느 아주 늦은 새벽에 한 친구와 메신저 상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 친구도 다니는 대학의 반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터라 자연스레 ‘새터’(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반일을 대표하는 자리 있는데 정확한 직함을 몰라서 반학생회장이라고 처리했다) 이 친구가 자칭 타칭으로 쓰는 별명이 있으니 ‘우군’이다. 우군은 ‘새맞이’(그 학교는 새터를 새맞이라고 불렀다)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고민했다. “내용 없이 무뇌한 새맞이가 정말 걱정스럽다”는 말을 덧붙였다.


실은 그 말을 듣고 뜨끔했다. 나도 그 무뇌의 혐의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니까 말이다. 2박 3일간의 일정은 자기 방사람들과 친해지기도 짧은 시간이라며, 이런저런 행사도 줄이고 어떤 새로운 시도도 해보지 않고 그저 예년의 프로그램들을 재탕하는 식으로 새터를 기획하고 있던 나도 갑자기 동병상련을 느꼈다. 나는 “원칙은커녕 최소한의 관심만이라도 있으면야 감지덕지지. 그 관심을 모아 총합을 대충 얼기설기 엮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고...”라고 궁색한 변명을 해봤다. 나의 변명은 이어졌다.


“그냥 선후배간의 첫 만남이고, 새내기들에게는 대학 생활의 첫 시작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원체 크니깐... 그것만으로도 새터의 의미는 그럭저럭 채워지고... 그냥 한바탕 질펀하게 잘 놀고 몇몇 사람 잘 만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 아닐까? 실상 03학번 새터준비하는 친구들은 그냥 놀자판 새터라고 홍보해도 새터를 오려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며 볼멘 소리하는데 말이지...^^;”


우군은 갑자기 과반이 ‘진보적 자치 공동체’라는 것에 동감하냐고 물어왔다. 아마 새터 자료집 같은 것에 글을 쓰다가 그 문구를 집어넣느냐를 고민하던 중에 넌지시 물어온 것이라고 제멋대로 추측해본다. 여하간 우리의 대화는 이랬다.


익구 - 글쎄... 그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만한 과반들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한건가?^^; 사실 내가 속한 단과대의 반은 그런 것을 이야기하기에 너무 황량하다보니...^^;

우군 - 허허. 오히려 ‘무너져 갈수록’ 그것을 잃어버리면 정말 끝장이란 걸 절감한단다.

익구 - 일단 '진보적 자치 공동체'에서 진보적이라고 붙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다양한'이라고는 조심스레 붙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상 진보라는 것이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만약에 보수라는 것의 대립어로 쓰인다면 과반이 반드시 진보적 색채를 띨 필요는 없지... 그게 가능하지도 않을테고...

우군 - 아니. 그런 섬세한 의미의 진보 말고. 적어도 무뇌하지 않은-

익구 - 아 그렇다면 진보라는 단어보다는 '개성' 등의 단어들을 찾아 봐야하지 않을까...

우군 - 개성, 개성이라기 보다는...

익구 - 여하간 ‘개성’은 그냥 생각나길래 해본거고... 무뇌의 대립어로서 ‘진보’가 적절할지는 의문이라는 것이지... 차라리 ‘진지’면 모를까...^^;

우군 - 그 무뇌가 개인의 무뇌라면 그렇겠지만 집단의 무뇌라면 어떨까?

익구 - 집단의 무뇌가 개인의 무뇌의 총합을 넘어선 플러스 알파가 있다면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 사실 그런 감이 없잖아 있고... 근데 근본적으로 집단의 무뇌라고 분명히 규정 내리기 힘든 세상이라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는 듯... 다원주의 사회에서 절대선, 절대악이 없는 이상 저마다의 논리를 가지고 세상을 인식하고 사는 데... 어떤 집단을 무뇌라고 지칭할 수 있을지 늘 조심스럽다니깐... 물론 치명적 도덕적 결함이 있어서 손가락질하기 쉬운 경우라면야 오죽 좋겠지만... 안 그런 경우가 많고... 집단의 무뇌가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집단의 무뇌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그에 적절한 단어를 찾는 것이 어쩌면 너무 오바인지도 모르고... 이래서 낙관적 다원주의자인 나는 늘 회의주의와 짝짜꿍한다니깐...^^;

우군 - ᄏᄏ 무슨 말인지 알겠소. 공감하는 바이요.

익구 - 황당한 것은 위에 했던 말은 내 단골 레퍼토리라 지겹도록 반복하는 데도... 아직도 또 써먹을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현실이지...^^;

우군 - 세상사는 건 과정이잖냐.

익구 - 과정이랑 성과물과의 균형을 잘 맞춰야겠지... 그 비율은 또 저마다의 몫이겠고... 에구에구 나도 제 잘난 멋에 사는 인간이라... 남들이 참 무뇌아스럽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남들이 다른 기준으로 나를 보면 저 놈 참 무뇌아구만... 이라는 소리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려고 노력 중이지...


여하간 우리의 대화는 이쯤에서 대강 마무리된다. 어쩌다가 ‘무뇌 논쟁(?)’이 벌어졌지만 실은 참 어려운 문제다. 내 생각을 옳다고 믿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다른 사람도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면... 그래서 차이는 차이로만 끝나고 간극은 메워지지 않는다면...


역시 단골 골칫거리라 그런지 해법도 늘 비슷하다. 그래도 접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소중하다는 것,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해할 수 없는 세계관의 차이를 절감할 때는 어찌해야 하나? 맞부딪치는 생각 가운데 우열을 가려볼 수는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다원주의를 주술처럼 외우며 팔짱만 끼며 여기도 맞고, 저기도 맞다며 황희 정승 흉내를 내볼까나?


상대방을 향해 무뇌아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즉 우열을 가른다는 것은 너무 힘든 과제다. 나는 다만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이 될 수 있는 자격요건에 대해 조금 말해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내가 믿고 있는 바를 편파적으로 내뱉을 것이다. 그것이 사상의 자유시장의 상품이 될 수 있는지 늘 긴장하면서 말이다. 설령 내가 ‘무뇌아’ 소리를 듣더라도 말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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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익구는 영어학원을 가는 길에 함께 수강하는 친구 청원이와 영어학원 결석을 극적으로 합의했다. 결국 동대문역에서 내릴 것을 5호선 광화문역으로 행선지를 바꾸어 교보문고로 향했다. 익구는 교보문고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탁한 기운에서 과도한 난방비 지출을 가슴 깊이 구박했다. 함께 서점을 둘러보던 청원과 익구는 결국 서로의 관심사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고 알아서 책들을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익구는 교보문고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철학 분야를 훑어본다. 읽지도 못할 난해한 책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철학소년으로서의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듯했다. 특히 경외하는 스승인 칸트 관련 서적들은 늘 똑같이 꽂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맘이 설렌다는 특이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으로는 근처에 있는 경제분야 책들 중에 쉽고 재미난 것이 없을까 뒤적여 보지만 역시 선뜻 손이 가는 책이 없음을 느꼈다. 유명하다 싶은 입문 서적들은 일단 충동구매로 확보해둔 터라 딱히 더 추가할 책이 없어 보이는 반응이다. 다음으로는 정치학 서가에서 사회학 서가까지 이어지는 사회과학 분야를 주욱 돌아보았다. 역시 딱히 눈에 띄는 것이 없어서 몇 권 꺼내 보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기겁하며 다시 집어넣고 말았다.


익구는 맨날 서점만 같이 가면 나올 줄 모른다며 타박하는 청원이의 등쌀을 감안해 이번에는 1시간만에 이 한바퀴를 돌아보는 속도를 냈다. 익구 집 책꽂이 꽂혀있는 수많은 충동구매 도서들이 아직도 간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데로 서점만 가면 알 수 없는 유혹에 이끌려 한권씩은 사들고 오는 익구를 보며 청원이는 병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결국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정치경제학과 경제주의]라는 얄팍하고 곱상한 경제 개론서를 구매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경제주의’라는 단어에 혹해서 충동구매했다는 평가다.


교보문고 회동을 즐거이 마치고 익구는 새터 회의 관계로 학교로 향했다. 새벽 5시까지 술 마시고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숙취 현상이 그리 크지 않은 것에 내심 만족했지만, 회의 내내 했던 말 또 하면서 이것저것 중구난방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증세를 보여 회의 참가자들을 대략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여하간 회의도 단란하게 잘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유니스토어에 들려 평소 점찍어 두었던 [시장의 도덕]이라는 책을 구매했다. 이 책 역시 제목과 서문을 읽고 충동구매했다는 지적이 자자하다. 그러나 익구는 인터넷 서점에서도 절판된 것이라 대학서점에서 재고 남았을 때 확보해둔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라며 반박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책을 마지막으로 그간 보유하고 있던 문화상품권을 모두 소진했던 것이다. 6, 7장 정도 보유하고 있던 문화상품권이 한달 만에 동이 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혹자는 익구에게 문화상품권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물고기를 맡기는 격이라며 이미 예견된 결과라고 논평했다. 또한 삼월에 개강하고 대학 교재를 사기 위해 남겨 두겠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에 대한 반발도 예상된다. 그칠 줄 모르는 도서구매벽을 치유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다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익구는 이런 문제의식에 통감하면서도 새로 사온 책들을 책꽂이에 꾸역꾸역 쑤셔 넣으며 흐뭇해하는 모습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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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가족들에 대해 무척 무심한 편이다. 친구들과는 곧잘 펼치는 대화마당도 가족들과는 좀처럼 펴 보일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몇 문장의 짤막한 대화들이나 지극히 사무적인 대화들을 나누기 일쑤이다. 동생과는 그래도 재미난 이야기 마당을 열어보기도 하지만 부모님과는 도통 그러지 않는다. “가족주의는 야만이다”라는 명제의 자세한 내막은 들여다보지 않고 그 날카로움에 매혹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제 멋대로 둘러대 본다.


그래도 소심한 모범생으로 학창시절 그럭저럭 마친 지난날 덕분인지 부모님과 나 사이는 은근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때때로 개인주의적 신경질이 발동해서 다툴 때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부모님은 내게 큰 간섭 없이 내 하고자 하는 데로 놔두셨고, 나 또한 웬만한 일들은 부모님과의 상의 없이 내 마음대로 결정한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부모님으로부터 대단히 독립된 지위에 있는 듯 하지만 알바 하나 하지 않는 나는 재정적으로 부모님께 의존해 있다^^;)


여하간 엄마, 아빠와 교류가 부족한 점은 반성하고 있지만 억지로 소통의 절대량이나 밀도를 높이려고 노력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난 내게 주어진 문제를 풀어내고 고민을 키워내면서 알콩달콩 재미난 삶을 꾸려나가는 것으로 자식된 도리를 다할 생각이다. 자식을 향한 불필요한 근심걱정을 덜어주는 것은 소극적 의미에서의 효도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못난 아들이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그 중에서 두 가지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지극히 사소한 것이지만 내 인식의 기초에 보이지 않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장면1 -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날

나 - 한글에 대한 글짓기 한 거 있는 데 한 번 읽어봐 줘. (원고지 대여섯 장을 넘긴다)
엄마 - (조금 읽어보신 후)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이다”라는 말은 우리나라 국민이니까 하는 말이지.
나 - 아니야. 한글이 최고로 좋은 언어라고 세계에서 모두 인정했다구.
엄마 - 그런게 어디 있어. 외국 사람들은 자기 나라말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 - 아니야 세계의 유명한 국어학자들도 다 한글이 훌륭하다고 했다니깐...
엄마 - 아무리 한글에 대한 글짓기라고 해서 한글에 대한 칭찬을 하는 건 좋은데... 무조건 한글은 세계 최고다라는 말만 써놓고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거 같구나. 이것 가지고는  한글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가 없거든.
나 - 그래도 원래 좋다는 걸 좋다고 말하는 걸 어떡해... (결국 작은 실랑이 끝에 엄마가 고쳐준 약간의 맞춤법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제출함)


사실 한글에 대한 글짓기라는 숙제가 주어졌다면 숙제를 내준 사람의 의도는 아마도 한글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과 애정표현을 기대했으리라. 나는 그것에 충실하게 미사여구를 동원해 한글만세를 외쳤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께서는 “한글이 세계 최고”라고 너무나 당연히 믿고 있는 나의 인식이 편견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해 주셨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나의 공리(公理)를 무턱대고 큰소리로 외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장면2 -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나 - 아빠, 오늘 학교 수학 선생님이 국산품 애용을 어찌나 강조하시던지...
아빠 - 물론 국산품 애용도 좋지만 그렇다고 남의 물건 안 쓰고 우리 것만을 사 쓸 수는 없잖니.
나 - 그래도 국산품 애용을 해야 무역수지도 좋아지고 나라경제로 발전하고 각종 좋은 결과가 있는 거 아닌가?
아빠 - 물론 그렇지. 하지만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겠다고 하면서... 남의 물건은 사지 않고, 어떻게 우리 물건만 사달라고 말할 수 있겠니. 그건 염치없는 행동이야. 무조건적인 국산품 애용은 장기적으로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나 - 안 그래도 무역적자라는 데 국산품 애용해서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아빠 - 분에 넘치는 사치로 인해 무역 적자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히 줄여야겠지. 하지만 국산품 애용만이 능사는 아니란다. 외국의 좋은 기술을 들여오려는 노력과 기업운영의 비용절감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그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지.


극치의 미학을 신봉하던 시절, 국산품 애용하자며 열변을 토하시던 수학 선생님에게 설득 당한 나는 외제는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이런 조악한 인식을 아빠께서는 차분하게 납득시켜 주셨다. 수출은 선이요, 수입은 악이라는 국산품 애용주의로 경도되기 직전인 나를 아빠께서는 자유 무역의 기본적인 원리를 꺼내서 수정해주셨다. 아빠와의 대화에서 내가 더 크게 감복했던 것은 이런 말씀을 하신 아빠께서 국산품 애용을 추구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지난 설 연휴에 엄마께서 친척들에게 돌릴 선물로 조그만 외제 주전자를 사자 아빠께서는 곧장 볼멘 소리를 내뱉으셨다. “국산도 좋은 거 많은데...”라면서 말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국산 수정펜은 거의 없던 시절인데 일제 수정펜이 쓰기 싫어서 여러 문구점을 돌아다니며 국산 수정펜을 찾아 헤맸던 내 노력이 반드시 못난 행동만은 아니었으리라^^)


비록 사소한 장면이었지만 이 두 가지가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어린 시절 푸욱 빠져있던 국수주의나 극단주의적 경향을 부모님의 영향으로 상당 부분 걷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줍잖게나마 자유주의자를 자처할 수 있다면 그것의 절반 정도는 아마 부모님의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께서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장면의 교훈과 더불어 상당한 수준의 불개입 원칙으로 나를 존중해주셨기 때문이다. 이제 딴에는 어른이라며 부모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고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부모님은 나란 녀석에게 큰 스승이시다. 앞으로 좀 더 살갑게 대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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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에 들었던 통상정책 중간고사 서술형 문제 중의 하나가 “한국의 농업개방문제에 대해 현황, 논쟁, 대안 등을 논하라”였다. 문서 정리를 하던 중 그 때 쓰려고 작성해둔 답안지를 발견했다. 요즘 새터 준비를 핑계로 업데이트도 부실한 터에 글 이게 웬 떡이라며 반기며 싣는다.^^


2003년 10월15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한 채 폐막되었다. 비록 이번 WTO 각료회의가 결렬되었지만 이번 회의에서 한국 농업의 대폭 개방을 불가피하게 만든 초안이 마련됐고, WTO 또한 협상 타결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3년 간 진행되는 DDA 협상의 한 과정에 불과한 칸쿤 회의가 끝났을 뿐 DDA 전체 협상이 무산될 가능성은 희박하며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하하고 저율관세 의무수입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농업개방의 원칙이 조만간 채택될 것이다. 앞으로 DDA 협상이 계속되어도 한국에게 불리하게 정해진 조항들이 뒤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국내 농업의 전면적인 개방은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단계적으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할 수 있게 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끝난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정부는 1994년 이후 지난해까지 농업 부문에 71조8000억원의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농업 현실이 변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농업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구조개선 사업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단기적인 부채탕감과 소득을 보전해주는 등 소비성부문 예산에 낭비해 버리고 만 것이다. 10여 년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액이 1995~2004년의 10년 간 총 1조6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바 있는데 기초적인 산수감각만 있으면 시장개방을 막고 대응하느라 든 비용보다 활짝 열었을 때의 비용이 훨씬 적게 들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누적된 농정실패가 엄청난 손실을 유발한 것이다.


현재 농민들이 쌀 농사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47%에 달한다고 한다. 이 주된 돈벌이마저 농산물 시장 전면 개방으로 흔들리게 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DDA 농업협상이 지난 회의에서 논의된 의장 초안을 토대로 타결될 경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농업부문의 총소득은 15조원에서 9조원으로 감소하고, 자연감소분을 제외하고도 농업취업자 25~5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런 당장에 농민들이 입을 피해와 더불어 식량안보론도 농산물 반대입장의 주요 논거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곡물자급도가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주곡인 쌀만 100% 자급하고도 남아 재고가 늘고 있을 뿐, 대부분의 다른 곡물의 자급도는 5%도 안 되는 심한 불균형 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더욱 낮아진다면 국제적 식량상황이 급변할 때 어떻게 생존권을 지킬 수 있겠느냐고 항변한다. 또한 세계 총곡물 교역량의 85% 가량을 취급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곡물메이저에게 우리의 밥상을 편안히 맡겨둘 수 없다는 주장도 무척 설득력 있다. 또한 100년 이상부터 산업화가 착착 진행되어 농업구조조정을 순차적으로 할 수 있어 그 충격을 완화했던 선진국들과는 달리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한 우리는 그런 완충 작용을 노릴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기 때문에 조정기간 내지 유예기간을 더 얻어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을 들어 개도국 지위를 포함한 유리한 조건을 얻으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본위의 생각일 뿐이다. 한국만큼 자유무역체제의 은혜를 입은 나라도 찾기 어렵다고들 한다. 썩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지난날의 헐벗고 굶주리던 것을 확실히 벗어 던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가입하며 제법 멋을 내고 있는 것도 수출해서 부를 축적한 덕분이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고 있고 앞으로도 경제성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수출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WTO와 같은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다자통상협상은 우리에게 남는 장사다. 합리적 경제주체간의 협상은 상호간에 주고받는 공생관계를 지향하는 것이지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기생관계로는 성립할 수 없다. 10년 전의 개도국 타령을 또 한 번 우려먹는다면 무슨 염치로 우리 상품을 세계에 팔 것인지가 걱정이다.


설혹 다자협상인 DDA가 무산된다고 해도 한국 농업은 개방에서 예외일 수 없다. 미, 중 등과 개별적으로 양자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WTO라는 울타리에서 집단적으로 개방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EU 등 우리보다 협상력이 강한 국가와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것이 더 힘든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식량안보론도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식량을 무기로 삼는 일은 너무나 비윤리적이어서 오히려 그 가능성을 줄인다고 생각된다. 식량 수출국인 북미와 호주, 유럽 등지의 안정되고 높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들에서 식량을 무기로 삼으리라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이 밖에도 세계의 농업시장은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은 ‘구매자 시장’이라는 논거를 들 수 있다. 또한 농업은 공업보다 기반을 복구하기가 훨씬 쉽고 간단해서 버려진 논밭은 종자만 잘 보관하고 있다면 한두 해 안에 그럭저럭 복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남의 선의(善意)에 제 목숨을 걸어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농산물 수입자유화는 분명 식량 수입국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식량 수출국의 식량의 정치적 이용가능성과 세계 식량생산의 불확실성이 만의 하나 존재한다면 그러한 비상사태를 대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을 대비한 지출을 아까워하기보다 식량대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예의 주시해야 한다. 아무리 개방이 되더라도 우리 농업을 적정 수준 개발하고 보존하는 것이 진정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협상은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상호주의에 입각하는 바, 우리의 농산물시장을 방어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이나 그럼으로써 우리가 포기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은 농업 시장을 어느 정도까지 개방하느냐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에 대비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 상품의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FTA를 확대하고 있는데 한국은 WTO회원국 가운데 FTA 하나 체결하지 못한 6개국 중 하나이다. 한-칠레 FTA법안 비준은 물론,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 수출상품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또 교역상대국의 보호장벽이 낮아지는 만큼 우리 농산물도 특화하여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커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령 최근 추진되고 있는 한-일 FTA의 경우 농산물 분야에서 4억 달러의 흑자가 예상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국내농업의 생산성 향상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와 노력을 더욱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농업 개방이 전체적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킬지라도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역진적인 소득재분배와 이로 인한 사회적 형평성의 문제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개방으로 인한 이익을 손해를 보는 저소득 농가에게 보상하고 재분배시키려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는 한 농업 보호에 대한 요구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며, 강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에게는 소득보전직불제, 재해보험제도, 상시적 경영회생 지원제도 등의 안전판을 확충해주고, 농업을 포기하거나 전업하려는 이들에게도 생계를 위한 충분한 보상책을 마련해서 농민들의 불만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셋째로, 농외 소득기반을 늘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조업, 서비스업과 연계한 시장 개척을 해서 농외소득을 실현해야 한다. 민속주 생산 농가들이 중국, 일본과 공동 수출을 추진하는 것이나 도시와 농촌을 연계해 관광 산업을 육성하거나 도시민의 실버타운을 개발하는 등 농촌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것이 그 예이다. 주5일 근무제와 같은 여가수요의 확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농촌다움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 전국 곳곳까지 깔려있는 도로망 등은 농촌에 사람과 자본을 끌어들여 이를 소득원화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최근 정부가 시도한 300평 이하 주말 농장용 농지에 대한 비농업인 소유 허용, 농촌주택에 대한 1가구 2주택 양도소득세 면세조치 등은 도시자본의 농촌 유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로, 농업이 가지는 비교역적 기능의 급격한 감소를 막고 유지발전 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즉 식량안보나 국토의 균형발전, 환경보존과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능을 위해서 장기적으로도 일정 수준의 국내농업생산이 필요하다. 경제적 효율성 증대만큼이나 비교역적 기능을 확보하는 것이 국익을 일환이라고 생각된다. 산업에도 포트폴리오 개념을 도입하여 논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되 유사시 즉각 쌀 생산이 가능하도록 일정 부분은 논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곡물자급도의 목표치를 설정해 이를 법제화시켜 농업의 급격한 붕괴를 막아야 한다. 실제로 우리와 농업 형편이 여러모로 유사한 일본의 경우 식량자급율의 목표치를 설정해 이를 법제화했다.


농업 개방에 찬성하지만 비교우위의 역동성과 계량모델상의 증명만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처사다. 앞으로의 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되 우리 농민들이 입는 손해를 국민 전체가 분담하는 데 인색하지 않겠다는 여론 형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대학교 1학년 2학기 교양 국어 과제로 제출했던 사기 독후감이다. 다소 긴 글이라 스크롤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1. 사기에 대한 단상들

 나는 [사기(史記)]를 한 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크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제왕과 제후의 기록인 본기와 세가보다는 신하나 민중의 이야기인 열전이 더욱 재미나고 의미가 있다. 게다가 사기 자체보다는 사기를 쓴 사마천이라는 인물이 더욱 눈길이 가게 되는 점도 그렇다. 어디 그뿐인가. 어떤 인물의 일생보다는 어느 한 구절에서 더 선명한 가르침이 나오기 일쑤이다. 이처럼 배꼽으로 읽는 책 [사기]에 대해 배꼽차원에서 논의해보도록 하자.


 수능을 앞두고 중국어과 후배들 격려차원에서 돈을 모아 먹을 것을 사들고 3학년 교실로 찾아가게 되었다. (나는 외고 중국어과 출신이고, 중국어과는 7,8반이다.) 거기서 한 마디씩 해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때 나는 한창 읽고 있던 사기의 구절들을 인용했다. 3학년 7반에서는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인다’를 꺼내며 대학생이 된 후에 만나게 될 여러 문제들 사이에 고민될 때 참고로 삼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고, 3학년 8반에서는 관포지교에서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를 꺼내며 대학생이 되어서도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감히 그런 구절들을 들먹거릴 만큼의 위치에 있지 않아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그 만큼 내가 읽고 있던 사기에 나오는 지혜의 조각들을 공유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읽은 서해문집에서 펴낸 세 권 짜리 사기는 사기의 열전을 주로 실었지만, 그렇다고 열전편만이 아닌 본기와 세가에서 특히 재미난 인물들인 항우, 유방, 여후, 공자, 진승 등을 싣고 있어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비록 완전한 열전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사기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사기 열전을 얼치기로 세 번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 어린이용으로 나온 사기를 책이 닳도록 폈다 접었다 했고, 중학교 때 산 서해문집에서 낸 것을 조금은 산만했지만 나름대로 재미나게 읽어내려 갔고, 이번이 세 번째이다. 이미 인물의 이름만 접하면 대략 어찌하겠구나를 알고 있어서 조금 식상하겠거니 했는데 대학생이 되어서 펴드는 사기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이래서 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맛이 다르다고 했던가.


2. 사기란 무엇인가?

 [사기]는 한나라 시대에 사마천이 지은 역사책으로, 중국인의 공통시조 황제(黃帝)로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당시 한무제에 이르는 근 3천년을 기록한 통사이다. [사기] 이전의 역사기록은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거나 간략한 연대기적 서술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마천은 수많은 문헌과 실제 답사를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투영한 인물중심의 새로운 역사기술 형태인 기전체(紀傳體)를 창조했다. 실로 [사기]하면 한 번쯤은 접했을 개념이 바로 기전체의 대표주자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나 고려사가 조선왕조실록의 편년체와는 다른 기전체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 정도의 내용이 수능을 준비했던 이들에게 한 번쯤은 거쳐갔으리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사기는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 12편, 제후를 중심으로 한 세가(世家) 30편, 역대 제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 8편, 연표인 표(表) 10편, 시대를 상징하는 뛰어난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열전(列傳) 70편, 총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 중심의 역사를 기술하려한 저자의 의도대로 열전에 가장 많은 비중이 할애되어 있다. 열전의 인물들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재상과 장군, 사상가, 유협과 자객, 충신과 간신배, 대지주와 상인 등 모든 등장인물들은 강한 개성을 내뿜고 있다.


 한 인간의 개성은 격렬한 역사의 변동기에서는 그저 미미한 존재로 치부된다. 그런데 사마천은 여러 역사적 인물들의 인생을 제시하면서 그 인간성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을 주시하며 역사를 쓰고 있다. 제왕이 아닌 황후에 불과한 여후를 본기에 올려놓고, 역사의 패자였던 항우도 당당히 제왕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한 공자나 진승 같은 인물들을 제후의 기록인 세가에 올려놓는 파격은 그가 얼마나 개인의 개성이 역사에 미치는 힘이 큰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이다. 열전에서도 개성 있는 특이한 삶의 방식을 포착하여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분석을 아끼지 않고 있다.


 열전은 백이. 숙제 열전에서 시작해 화식열전(貨殖列傳)으로 맺고 있다.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죽은 행위는 지극히 순수한 정신주의를 표현한다. 반면에 화식열전에서는 극단적인 물질주의를 논하고 있다. 이는 마치 채근담을 읽을 때의 당혹감을 재연시켰다. 채근담에서 보이는 논리적 모순과 앞뒤가 맞지 않음이 [사기]에서도 보이는 것이다. 단순화시켜 말하면 여기서는 이렇게 하라고 했다고 저기서는 저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식의 논지를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성공한 장사꾼은 현명한 대상인으로 추앙되고, 실패한 장사꾼은 한낱 장사치로 폄하되는 식의 논리, 즉 ‘성공하면 충신, 실패하면 역적’이라는 논리가 아닌가 의심쩍었다.


 그러나 열전의 첫 머리에 이념과 원칙에 따라 굶어죽은 백이, 숙제 열전을, 마지막에 이(利)를 좇는 상인의 열전 화식열전(貨殖列傳)을 둔 것은 위대한 성현에서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도덕적 당위와 물질적 본능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제시한다. 이로써 ‘살아 숨쉬는 인간’에 의해서 역사가 창조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융통성 있는 현실 윤리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편견 없이 인간을 직시하는 현실주의 정신이 [사기]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3. 백이, 숙제 열전에서 엿보는 사마천의 역사의식

 이제 사마천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열전의 처음인 백이, 숙제전을 살펴보자. 주의 역성혁명에 반대하며 절개를 지키다가 죽은 백이, 숙제의 고사에 대한 사마천의 언급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뜻이란 사사로움이 없으며 언제나 착한 사람 편이다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백이, 숙제 같은 인물은 왜 그처럼 굶어죽어야 했을까?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났던 안회는 끼니를 거를 정도로 가난하게 살다가 일찍 죽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지불하는 대가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이와 반대로 도척 같은 이는 무수한 살인과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천수를 누렸다. 이러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과연 하늘의 도리라는 것은 옳은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天道是耶, 非耶)”


 이는 마치 내가 도덕경에서 발견하고 몸서리치고 무릎을 내리쳤던 구절인 “하늘의 도는 남는 데서 덜어내어 모자라는 데에 보태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 모자라는 데서 덜어내어 남는 데에 바칩니다.”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사마천은 ‘천도(天道)와 인사(人事)는 무관한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가 자주 만나게 되는 행복과 도덕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세상은 정의보다는 불의, 진리보다는 허위, 진실보다는 위선, 원칙과 소신보다는 기회주의가 더 판을 치고 행세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역사가로서의 사마천은 여기서 고민하게 된 것이다. 역사를 서술하는 입장에서 선인이 망하고 악인이 흥한 엄연한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인간이 살아나가는 한,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이 모순은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 사마천도 이런 나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2000년이 지난 후세 사람도 똑같은 상황이 놓여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순에 차 있는 세상에서 역사가로서의 사명은 무엇이겠는가? 사마천은 일찍이 열전의 저술 목적을 “의를 돕고 결연히 나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세운 사람들을 위해 70여 편의 열전을 짓는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마천은 현실적 모순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비록 그 과정이 험난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정의와 진실이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가 말한 대로 높은 도덕과 많은 업적을 남기고도 그만한 보상을 현세에서 받지 못한 사람들의 전기를 써서 지난날을 비판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려 한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 악이 이기는 것 같아도 현실의 연속인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정의가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을 사람들이 저버리지 않게 하도록 그의 일생을 바쳤다. 그는 위에 이어서 말한다.


 “백이, 숙제는 분명 현인이었지만 공자의 붓을 통해서 그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고 안회는 학문에 충실했지만 공자의 논어에 나오게 됨으로써 그 품행이 더욱 돋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때를 만나지 못해 묻혀 버린 인물에 대한 강한 연민이 사마천이 대작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그는 역사상 안타까운 영혼들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숱한 영웅 호걸들의 기구한 운명을 조명하는 데 그가 필생을 바친 데에는 어쩌면 그의 비참한 운명 또한 투영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마천은 이해타산도 없이 친구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궁형을 받는 치욕을 무릅쓰고 살아남아야 했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애증과 역사에 대한 애증이 자기 자신에게서 이미 불타고 있던 것이었다.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의 이런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고통과 굴욕을 참아내며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는 까닭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숙원이 있어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질 경우 후세에 문장을 전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저술이 완성되어 명산(名山)에 보관되고 각지의 선비들에게 전해질 수 있게 된다면, 저의 치욕도 충분히 씻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설사 이 몸이 산산이 부서진다 해도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4. 인상깊은 열전의 인물들

 열전의 많은 인물 중에서 나에게 강하게 인상을 남긴 것은 범여와 한신, 굴원과 맹상군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씩 짝을 이루어 서로 대칭 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내 발견할 수 있었다. 나왔던 인물이 또 나오고 여기서 인용된 사람이 저기서 인용되는 경우가 많은 사기 열전의 특성상 이런 분류나 비교의 작업이 무척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狡土死 走狗烹)’라는 말을 범여와 한신 모두 하게 된다. 범여는 오나라 정복에 같이 공을 세운 대부 종에게 보내고, 한신은 유방한테 잡혔을 때 이 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범여는 이 말을 일찍 했고 한신은 너무 늦게 깨우쳤다.


 범여는 월나라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와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월나라를 떠난다. 구천은 범여와 이 나라를 나누어 가질 것이라며 감동적인 말을 했지만, 그럴수록 범여는 불안의 싹을 감지하고 미련 없이 월나라를 떠나게 된다. 범여는 물러날 때를 제대로 알아 실천에 옮긴 인물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잘 나갈 때 그칠 수 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조금만 더’라는 마음이 결국 끝까지 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 후 범여는 뛰어난 장사수단으로 천금의 재산을 이루게 되고 화식열전에서도 범여는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영광을 얻게 된다.


 한신 또한 유방의 천하통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했던 인물이다. 그가 만약 항우의 편에 섰더라면 감히 한이라 는 나라가 있기야 했겠는가? 한신의 책사 괴통은 한신이 초와 한의 사이의 제나라를 부여잡아 천하를 셋으로 나누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신은 자신을 알아준 유방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괴통은 ‘망설이고 있는 호랑이는 벌만도 못하다.’며 한신을 거듭 설명하지만 한신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공을 과신했던 것이다. 한신은 왕으로 자립할 마음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방에서 단지 신하로서만 복종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애매한 태도가 그의 비극을 불러오게 된다. 그는 범여처럼 사심 없이 자신의 지위를 버리지는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지위가 낮아짐을 부끄러워했다. 실의의 나날들을 보내다가 뒤늦게 반란을 계획했지만 결국 제거되고 만다.


 한신의 딜레마는 자신의 역할에 뚜렷한 주관과 철학을 갖지 못한 채 냉혹한 권력의 언저리를 서성거렸다는 데 있었다. 한신은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처신하다가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범여의 과감한 은퇴와 맹장 한신의 모호한 처신은 모두 타이밍의 문제였다. 그것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확고한 의식과 철학이 뒷받침 될 때 더욱 빛난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다며 3천의 식객을 모았던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주인공 맹상군은 어릴 적 나의 우상이었다. 솔직히 사교에 드는 비용들을 고통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맹상군 같은 풍요로운 인간관계에 둘러싸여 사는 재미를 부러워했다. 특히 나에게 감동을 준 것은 맹상군이 파직되자 수많은 식객들이 모조리 그의 곁을 떠났을 때의 이야기이다. 맹상군이 복직되자 유일하게 남아있던 풍환이 다시 식객들을 모으려고 했다. 이에 맹상군은 다시 찾아오는 이가 있다면 침을 뱉어주고 싶다며 서운해했지만 풍환은 담담히 ‘세상 인심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가 둔 비유가 압권이다.


 “시장에 가서 보십시오. 아침에는 서로 앞을 다투어 먼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해가 진 뒤에는 시장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아침에 시장을 좋아하다가 저녁에는 미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저녁 시장에는 원하는 물건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 사귀기를 즐겨, 많은 인재들이 모였던 맹상군과는 달리 굴원은 고고한 영혼의 소유자였지만 불운한 생애를 보냈다. 굴원은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간신들의 참소에 뜻을 펴지 못하고 결국 멱라수에 몸을 던졌다. 사마천도 굴원이 스스로 빠져 죽은 강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부사(漁父辭)에는 그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추방을 당했소이다.”


 혹자들은 이런 그의 처신방법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시대의 흐름은 나몰라라 하고 순결한 척하는 것 아니냐고 시비를 걸어봄직도 하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겠지만, 이런 굽히지 않는 의지를 가진 선비들로 해서 인류 역사는 힘을 얻는 것이 아닐까.


맹상군과 굴원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각기 달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게 더 낫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다만 나의 경우에는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이치에 비추어 맹상군을 좀 더 배워야겠다고 조심스레 말할 뿐이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굴원을 좀 더 배워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열전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서 울고 웃으며 우리는 저마다 제 입맛대로 건져 가는 것이 있게 된다. 붕어빵을 먹을 때 머리를 먼저 먹든지, 꼬리를 먼저 먹든지, 지느러미가 먼저가 되든 우리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기에 나오는 인물 중에 자기에게 맞는 인물을 좌표로 삼아 삶을 꾸려 가는 것도 사기가 우리에게 주는 쏠쏠한 재미일 것이다. 역사에서 배울 줄 모르는 것만큼의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5. 역사를 읽는다는 것

 몇 해전 도올 선생의 노자강의를 듣던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서양에서는 죽으면 천국과 지옥에 간다고 믿었지만, 동양에서는 죽으면 역사가 평가한다.”는 정도의 뜻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동양적 세계관이 형성된 것에 사마천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동양의 인물들은 현세에서 성공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행동이 역사상에서 명성을 남겨 불후하게 되기를 원하게 되었다. 중국 최초의 정사인 [사기]는 이렇게 해서 동양인의 정신 구조, 동양적인 인간상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이해와 비판의식은 그 나라 국민의 의식과 문화수준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를 따분하게 여기고 교육제도와 교육방식까지 이를 거들고 있다. ‘교육의 세계화’란 명목으로 국사시간을 줄이는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외국의 국사교육은 점차 강화되는 추세라고 한다. 6살부터 18살까지의 의무교육의 전과정에서 역사과목이 필수인 프랑스를 보며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역사, 특히 국사에서 민족의식과 민족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단 역사뿐만 아니라 월드컵 경기 응원, 국토 대장정 같은 것들도 민족의식을 고취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역사가 맡아야 할 진정한 역할이란 무엇인가? 역사는 단지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불어넣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위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갖추어야할 비판정신과 참여의식을 키워주는 데 있다. 역사야말로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나아가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창의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의지를 길러주기 때문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이들은 낙관적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그 숱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망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왔고, 때때로 후퇴하지만 대개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길게 보고 너그럽게 볼 수 있는 안목이야말로 역사를 읽으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보배이다.


6. 나만의 가치를 찾아서

 끝으로 문정희가 쓴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라는 시를 읊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원칙(?)에 맞추어 이 글에서 가장 재미난 부분이 이 시가 아닐까 염려스럽다. 이 시는 ‘투옥 당한 패장을 양심과 정의에 따라 변호하다가 남근을 잘리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받고도 방대한 역사책 [사기(史記)]를 써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낸 사나이를 위한 노래’라는 긴 부제를 달고 있다.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고
좀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년의 역사에다 당겨 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 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 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 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사마천은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그것을 위해 '남자'라는 기득권을 포기했다. 그에게는 역사책을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던지는 순결하고 끓어 넘치는 용기가 있었다. 젊은 날의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를 찾기 위해 고뇌했다고 한다. 이제 나에게 물을 차례다. 평생 남의 눈치를 살피며 기둥 크기나 재다가 갈 것인지, 아니면 기둥일랑 내던지고 순수한 열정을 연료 삼아 타오를 수 있는 멋진 사내가 될 것인지를. 이것 참 사기가 내게 많은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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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설연휴를 앞두고 들뜬 기분에 있던 익구는 친구 청원이와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당초 계획은 반지의 제왕 3편을 한 번 더 볼 생각이었으나 청원이의 만류로 다른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둘 다 실미도도 안 본 만큼 청원이가 실미도를 보자고 제안했으나 익구는 실미도의 슬픈 결말을 들어 알고 있는 터라 거부하고 말죽거리 잔혹사를 주장해서 가까스로 타협을 보았다. 그러나 말죽거리 잔혹사는 한바탕 웃고 즐기는 가운데 묘한 쓰라림을 남기게 된다. 무지막지한 해피엔딩 영화를 좋아하는 익구로서는 다소 불편했지만 무척 감명 깊었다는 평가다.


영화의 배경은 1978년 말죽거리에 위치한 정문 고등학교이다. 시대적 무게는 영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군복을 입고 설치는 교련 선생뿐만 아니라 죄다 군사주의적 폭악스러움과 저열한 차별의식으로 무장한 선생들, 쥐꼬리만한 권력으로 온갖 오만을 떠는 선도부원들을 보는 역겨움, 유신 시대의 그 숨막힘과 더러운 권력에의 비굴함, 인간성을 흔드는 교육 현실까지 어느 하나 마음을 콕콕 찌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드는 것은 그 속에서 웃음 짓게 만드는 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익구는 이른바 특목고라고 불리는 서울외고에서 보냈다. 영화에서 보이는 남자 고등학교의 거칠음과는 무관하게 보냈다. 전형적인 소심한 범생으로 학창시절을 깔끔히(!) 마무리한 기억밖에 없는 익구로서는 영화 속 이야기들의 혼돈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같은 과 친구들과는 가끔 논쟁을 벌여봤을 뿐 몸을 부대껴본 적은 결코 없으며, 여남공학이라 남성성이 무한팽창 되지도 않았고, 여성비하적 문화가 함부로 꽃피지 못하는 곳이었다. (물론 아주 없지는 않았다) 운동 같은 육체적 움직임에는 젬병이었던 나는 책상머리에서 굴린 것들로 유희하며, 운 좋게도 과분한 찬사도 적당히 얻어가며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영화 주인공들의 청춘은 넘치도록 뜨겁지만, 익구의 청춘은 아기자기하지만 차갑다. 주인공인 범생 김현수가 이소룡의 기운을 받아 열혈사나이로 승격(?)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익구는 한결같이 범생원리주의(?)의 길을 걸었고 사내다움에 대한 거부를 천명하는 호사를 부리기도 했다. 현수가 못된 선도부 패거리들을 쌍절곤으로 제압하고 피범벅이 된 채로 터벅터벅 내려오는 걸음의 무거움은 결국 “대한민국 학교 ×까라 그래!”라는 부르짖음으로 폭발한다. 현수가 느꼈던 것이 분노를 머금은 나른함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익구를 지배했던 것은 적당한 침묵과 타협으로 일구는 개운함이었다. (물론 그 개운함이 반드시 사전적인 의미로 쓰이지만은 않았지만)


영화 내내 끊이지 않던 폭력적 분위기는 익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인간 내부에 상당한 폭력적 기질이 있지 않느냐는 자조 섞인 투항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게 한다. 세상에 점점 다가가면 갈수록 폭력은 또렷해지고 야만은 선명해진다. 폭력이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익구 신조의 반례들만 쏟아지면서 폭력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삶의 양태로 다가온다. 영화의 배경인 유신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상흔은 아물지 않고 새끼 폭력들이 미시적으로 기생하고 있다. 여전히 미만한 이 전체주의적 비루함을 걷어내는 일은 너무나 버겁다. 현수의 욕지기와 비슷한 고함이 몇 번 반복되다가 잊혀지고 상처는 재생산될지도 모른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익살스럽게 처리함으로써 지난날의 그 암울한 기억들을 편하게 기억하자고 말한다. 과거는 미화되기 쉽지만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는 것과 더불어 지난날의 잔혹함을 잊지 않고 새겨두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망각을 거스르는 의지만이 잔혹함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다.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온 청원이는 재미는 있는데 뭔가 좀 내용이 없는 것 같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익구는 엿보고 싶지 않은 우울한 과거를 돌아보면서 아직 크게 나아가지 못한 오늘날의 모습을 반성하는 좋은 기회가 되는 맛깔스러운 영화라고 호평을 했다. 익구가 해피엔딩도 아닌데다 결말이 모호한 영화에 좋은 평을 내리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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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로 받아들이기

잡록 2004. 1. 20. 04:06 |
총학생회장의 한총련 의장 출마에 우려를 표합니다.

발신: 37대 경영대 단과대 운영위원회
수신: 37대 중앙운영위원회

  기실 학생운동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애매한 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37대 경영대 학생회와 단운위는 이른바 비운동권이라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존 학생운동세력에서 주창하는 좁은 의미의 ‘운동’이 오늘날 대학사회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유지훈 총학생회장의 한총련 의장 출마 결의와 당찬 포부에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이미 숱한 학내 구성원들이 지적했듯이 총학생회 선거 기간에 충분한 학우들과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다시금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총학 선거 이후에 결의를 하셨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운동 단체의 장을 맡아서 학내 문제가 소홀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학우들이 많은 만큼 충분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학우들은 진취적이지 못한 어리석은 이들이 아니라, 민족고대 총학생회를 책임지는 분으로써 기꺼이 품고 가야할 소중한 학우일 것입니다.

  우리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총련이 주장하는 기치들에 동감하지 않습니다. 시장의 논리나 신자유주의 같은 사회과학적 용어의 모호함은 논외로 치더라도, WTO 반대 같은 구호에 우리는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가령 농산물 시장 개방 같은 부분에서는 너무나 가슴 아프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다자통상체제의 큰 틀을 결국 거스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평범한 우리 경영학도들 또한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같은 학생이며,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우리나라의 진로를 모색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학생회가 어떤 정치 철학을 가진다면 그건 오로지 자유주의, 다원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거를 통해 어떤 정치적 견해를 가진 선본이 선출되어 그 지향점에 맞는 사업들을 진행하게 나가는 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 생각에 비추어 입장을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총련 의장 출마 과정의 문제점과 정파적 입장 차이에 비추어 유지훈 총학생회장의 한총련 의장 출마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자의 이유는 이미 많은 학내구성원들이 지적하셨지만, 후자의 이유는 지난 총학 선거 때에 나타난 경영대 학우들의 의사에 기반한 경영대 내부의 의견입니다. 지난 총학 선거에서 고대 학우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고, 사실상 저희가 한총련 의장 결의를 저지할만한 권한이 주어진 것도 아니라 이런 의견 밝히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우들의 의사를 수렴할 위치에 있는 총학생회장께 저희의 우려를 분명히 전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작년 한해 구호만 요란했던 한총련 개혁의 성과물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변화를 위한 노력이 없다면,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은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 입장 차이가 엄존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학생회 일꾼으로서 총학생회장의 노고에 격려를 보냅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이러한 세세한 우려를 철학의 빈곤과 배제의 논리를 넘어서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또한 경영대에 대한 고민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위의 글은 고려대학교 37대 중앙운영위원회에 37대 경영대 단과대 운영위원회 명의로 올린 한 장짜리 성명서의 전문이다. 총학생회장은 한총련 의장 출마에 대한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한기 위해 과반 학생회나 각 단과대학 집행부 회의 등에서 간담회를 가지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해왔다. (그러나 슬프게도 고대 내의 상당수 단과대가 집행부 회의를 열만큼 사람이 많지도, 과반 학생회 간담회를 가질 만큼 조직되어 있지도 않다) 여하간 자꾸 찾아오고 싶다는 사람 모른척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단운위를 해서 새터 등을 논의하는 와중에 우리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해서 제출하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주재하는 회의가 하도 너무 세세하고 지루하게 이어진다는 단운위원들의 볼멘 소리를 수렴해서 성명서의 초안을 들고 논의를 나눠봤다. 한 친구가 이 글을 이렇게 평했다. “경영대스러운 글이네요. 반대를 하되 크게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약간 돌려서 말하는 식으로...^^;” 여하간 별다른 이견 없이 초안에서 약간 윤색을 해서 중운위 단대별 보고 시간에 성명서를 발제했다.


성명서의 내용을 얼추 다 말한 나는 결국 소심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우리의 ‘우려’는 ‘격려’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으니 선의로 해석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여하간 내 이런 소심함 덕분이었는지 경영대의 입장을 완곡하게 밝히면서도 큰 마찰 없이 넘어갔던 것 같다. 총학생회장님도 전자의 지적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후자의 지적의 적합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기본적으로 100% 동의가 있는 학생회 사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여운을 남겼다. 나 또한 경영대 학우들에게는 당시 총학 선본의 지지가 낮았지만, 고대 전체의 의사의 총합으로 된 총학생회장인만큼 그 권위를 인정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미 한해 사업을 진행할 권한이 주어졌는데 굳이 학생운동 단체의 수장으로 나설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원칙(?)을 깨고 한 말씀 올렸던 것이다.^^;


총학생회장의 간단한 해명이 있으신 후 동아리연합회장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저는 자유주의자는 아닙니다만,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을 이야기하고 싶군요. 자신이 가진 생각 때문에 탄압 받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 땅의 현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정도가 되었다. 나 또한 국가보안법은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며, 불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자를 칭하는 사람으로서 사상의 자유시장이 세워지는 것을 누구보다 고대한다. 실상 사이비 자유주의자가 아닌 이상 국가보안법에 찬동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의 개폐에 관한 것은 국회 소관인 만큼 의회권력을 교체하지 않고서는 어찌 할 방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개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만큼 그 정당의 성공을 기원할 뿐이다.


얼마 전 내 잡글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확실한 감정 한가지가 “세상은 생각보다 더 더럽다”라고 말했다. 그 느낌과 더불어 요즘 점점 더 커지는 것은 “선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에 대한 탄식이다. 자칭 진보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는 특히나 더 그렇다. 저들의 선의를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 방법론 차이에 대한 거리감과 전략상의 패착에 대한 불만, 은밀히 감추고 있는 권력욕에 대한 비판이 뒤섞이면서 도통 저들의 선의를 순수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이건 아마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선의를 코딱지만큼도 받아들이지 않고, 행동 하나하나의 배후 음모를 캐내려는 것과 비슷한 심보일 게다.^^; 그걸 애써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학생운동이 해체되고 있다는 진단과 더불어 나오는 것이 바로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운동단체 내부의 자성과 혁신이 미비하다면 아마 바닥에서 지하로 파들어가는 일만이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생운동진영이 맞서 싸우던 기득권세력들보다 먼저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물론 이네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 기득권도 갈수록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학생회 일꾼 생활도 3년 차에 접어들었건만...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남을 불신하는 법이고, 남의 선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가 아닐까? 그것을 마치 세심한 분석과 치밀한 논리로 합리적 비판을 한다고 둘러대면서도 말이다. 선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는 비감(悲感)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또 남의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나의 선의는 인정해달라고 호소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물음도 던져본다. 난 착한 사람이 되지는 못해도 적어도 못된 녀석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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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과 효용

경제 2004. 1. 2. 01:09 |
친구의 누리집을 들렀다가 지난 학기 강의에서 배웠던 내용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다. 통상정책 강의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인데, 경영, 경제분야와 인문, 사회분야간 사고의 차이점에 대한 것이다. 바로 한계를 고려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차이를 말한다. 즉, 경영, 경제가 제약조건을 따지고 분석하는 반면, 인문, 사회분야는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현실을 바라보고 바꾸려는 노력을 한다는 기본적인 발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무리한 일반화의 혐의를 완전히 걷을 수는 없겠지만 일면 타당한 구분일 것 같다. 얼치기 경영학도로 살면서 귀가 못이 박히게 듣고 마음에 쑤셔 넣었던 것이 바로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 비용과 효용의 분석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기초적인 회계원리를 꺼내보면 재무제표 정보의 제공에 대한 제약요인으로 특정 정보로부터 기대되는 효익은 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비용을 초과해야한다는 ‘효익과 비용간의 균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물론 효익과 비용의 평가는 잣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고, 효익향유자와 비용부담자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문제 등이 비일비재하다보니 효익과 비용의 비교분석은 경영학의 주요 탐구 과제이다.


지식인들이 흔히 어떤 사회적 현안을 논하면서 심심치 않게 하는 말이 “비용이 얼마나 들던 간에...” 등의 표현이다. 내 주제에 경영학 물은 먹었다고 이런 말을 들으면 이제는 적잖이 불편하다. 비용이 얼마나 들던 간에 무조건 해야하는 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용을 들인 만큼 효용이 창출되지 않는 것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합리적 효용함수를 가진(비록 이래저래 제한되기는 하지만...) 인간을 기만하는 처사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의 가치들은 상당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 비용 지출도 어디까지나 장기적 효용을 꾀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타인에게 손해보는 장사를 지속하게 할 권리가 없다. 물론 그 장사가 상도덕에 지키고 있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었을 경우에 말이다.


자유, 평등, 정의, 평화, 물질적 복지, 사회적 안전, 쾌적한 환경... 이러한 가치들은 따로 떨어뜨려 놓아도, 이런저런 조합을 해놓고 보아도 좋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들이 실현되어 우리네 살림살이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그 비용조달에 대한 고민을 없이 비용을 들여 이룩할 효용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무책임한 행동이다. 이상적 가치들은 저마다 군침이 돌지만 그걸 다 한상차림할 수 없는 우리의 형편을 직시해야 한다. 아마 한상차림할 수 있는 나라는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원칙과 당위를 역설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이미 생존경쟁 체제에서 자기위치를 굳힌 사람들이다. 즉, 대학교수나 언론인들이 아름다운 원칙을 역설하는 것으로 인해 자신이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존경까지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 감동해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나의 고민은 지식인의 책임에 관한 것이다. “내 주장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건 이루어지지 않건 그건 중요치 않다.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원칙만을 역설할 뿐이다”는 게 많은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자세일텐데, 과연 이러한 자세에 문제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 강준만, 한국일보 2002년 9월 17일, [더러워져야 성공한다] 中


진중권은 강준만의 칼럼을 평하며 당위론자들에 대한 낡은 비난에 남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힌다는 새로이 죄목이 하나 더 첨가된 것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원칙과 당위"의 피해자들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정성’을 기치로 내걸고 등장했던 강준만이, 그 글쓰기의 끝에서 결국 ‘우리 모두 공정하게 더러워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을 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반은 더럽고, 반은 깨끗한 사회에서, 모두 함께 더러워지는 것이 공정성이라고 한다면, 과연 그 공정성이 도대체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될까?
- 진중권, 오마이뉴스 2002년 9월 18일, [더러워져야 한다?] 中


두 논객이 입장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논쟁의 핵심은 ‘실현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실현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현실주의자의 독차지가 아니라 오히려 이상주의자들이 더 신경을 써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실현가능성의 재는 척도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용의 측정과 조달의 문제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비용의 문제를 외면하는 이상주의자 내지 개혁, 진보 진영은 현실주의자들에게 현실세계의 헤게모니를 넘겨주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일부 제 잇속에 눈이 먼 수구 세력들은 기본적인 상도덕(혹은 정의)를 깡그리 무시함으로써 일부 극단적 이상주의자들이 목청을 높이게 만든다. 강준만의 표현대로 두 극단주의자들은 ‘적대적 공존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인물과 사상 25권 278쪽의 내용을 참조했다) 이러한 적대적 공존관계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게 만든다.


솔직히 난 아직도 비용 따위의 형이하학적이고 구질구질한 문제들을 내팽개치고 맛깔스런 효용만을 노래하는 레토릭의 근사한 매혹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마도 나는 얼치기 경영학도로만 머물 것 같다. 그러나 당위성에만 집착한다고 구박받고 돈도 못버는 학문이라며 외면 받는 인문, 사회분야를 과도하게 몰아붙일 만큼 우리 사회는 아름답고 살맛 나지 못하다. 세상 모든 학문은 결국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방법론이 옳다고 믿고 사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남의 방법론은 글러 먹었다며 핏발 세우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불가에서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고 하듯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같다. 살림살이 나아지기 위해 경영학에서 출발할 수도, 철학에서 시작할 수도, 물리학을 딛고 있을 수 있다. 그 차이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나도 다른 길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비용을 따지고 제약조건을 궁리하는 내 길의 소중함을 옹호해야겠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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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을 표현하는 어휘는 무척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나란 녀석을 표현하는 수식어구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아마도 “소심하다”일 것이다. 그다지 좋은 뜻빛깔(뉘앙스)을 가지고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나는 스스로도 부인할 생각이 없고 비교적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편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실용영어 시간에 자신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하나 들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주저함이 없이 “timid”를 들었고, 주위 반응은 웃음이 쏟아졌다) 소심하다라는 말에는 대담하지 못하고 겁이 많다는 뜻과, 조심성이 많다는 두 가지 의미가 병존하고 있다. 물론 이 단어가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전자의 뜻이 강하기 때문이며, 좋게 해석할 수 있는 후자마저도 오늘날 같은 빠른 흐름의 시대에는 부적절한 것으로 취급당하기 일쑤이다.


실컷 재미나게 이야기하고 돌아서서는 “이 이야기를 좀 더 할 걸, 이건 하지 말 걸...”이라며 한참을 지난 만남의 대화에서의 잘잘못을 따지면서 어찌나 호들갑을 떠는지 모른다. 잡글을 쓸 때도 ‘~이다’, ‘~해야한다’라고 멋지게 내뱉지 못하고 ‘~일지도 모른다’, ‘~이면 좋겠다’라고 구차하게 둘러대고 만다. 게다가 혹시라도 읽는 이가 오해라도 할까봐 괄호 안에 온갖 해명과 부연설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런 글쓰기는 내 글의 가독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면서 대중성 확보를 힘들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물론 빈틈없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자세는 좋지만 독자를 위한 글쓰기를 하지 못하면 잡글 쓰기는 한낱 자기 위안 삼는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


관리회계 강의에서 배운 것 중에 불확실성하의 의사결정 부분에서 ‘기대효용기준의 의사결정’이란 것이 있다. 의사결정은 기대이익의 크기나 수익률에 의존하지만 대개 그에 따르는 위험(리스크)를 고려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한 반응은 투자자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달리 말해 거래 위험에 따라 거래 규모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이 식상한 이론에서 나는 당연히 ‘위험회피형 투자자’에 속한다. 결국 아무리 이익의 규모가 크더라도 순이익이 발생할 확률이 적은 투자안은 거부하고, 수익률이 다소 낮아도 순이익을 낼 수 있는 안전한 투자안을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소심함이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라는 물음을 던져보면 갖가지 추측들이 쏟아진다. 일단은 나의 개인주의자 기질에서 연유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 개인의 역량은 늘 모자를 수밖에 없고,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 결국 연대를 통한 외연 확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하던 습관이 익숙해진 결과라는 설이 매우 그럴 듯 하다.


또한 선후인과의 오류일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이렇다할 우여곡절을 그리 겪어보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소심한 성격 덕분에 어떤 커다란 사건을 겪을만한 계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는 점도 있다. 아마도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인생의 쓴맛(?)이란 것을 겪어보지 못했다보니 소심함과 피드백 작용으로 인해 다시 강화되는 주기가 반복된다는 진단이 일면 타당하다. 실상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려웠던 시절이라고 해봤자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온 것 같이 너무나 자잘한 것들에 국한된다. 또한 수시모집 합격으로 인해 수능도 부담감 없이 치른 편인데다, 재수생활 같은 것도 없었으니 초중고 세월이 무난하게 잘 흘러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심쟁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겁이 많고, 좋게 말해 순박한 마음씨를 지닌 소심쟁이에서부터, 사소한 문제에도 따지기 좋아하는 옹졸한 소심쟁이까지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다. 나는 비교적 뒤쪽의 소심쟁이에 속하는 편이다. 게으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결벽증이 녹아 있는 나는 논쟁을 일으키고, 손익계산 따지기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는 회색분자 취급을 받기도 하고, 이해타산을 따지는 냉혈한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앞쪽의 소심쟁이 기질이 때때로 발휘되어 이러한 딴지걸기와 수지분석을 쉽사리 판단 내리지 않는다는 면도 있다. 오히려 소심쟁이들은 어떤 근거가 없이는 함부로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평화주의자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다고 생각된다. 또한 소심쟁이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사숙고의 미덕도 얼마든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예전에는 소심한 내 모습을 몽땅 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좋게 보이고 자신도 생기는 것 같다. 뭐 이것도 소심쟁이의 특기인 자기합리화 기제의 발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오며가며 대범함의 경계를 잃어버린 뻔뻔함과, 당당함의 정도를 넘어선 오만함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소심함도 덕목까지는 안되더라도, 그럭저럭 쓸만한 삶의 양식의 하나로서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다만 나의 소심함이 현실논리에 경도되지 않도록 늘 부지런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힘의 논리에 포획되지 않고 탄탄한 합리성 위에 바탕을 둔 소심함이라면 애써 마다할 필요가 없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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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고스톱 배우다

잡록 2003. 12. 28. 06:12 |
잡기에는 일체 소질이 없기로 유명한 익구가 마침내 화투 놀이의 일종인 고스톱(gostop)을 배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세 사람이 하는 놀이라는 것, 고와 스톱의 의미 같은 아주 기본적인 놀이 규칙조차 인지하고 있지 못한 익구는 갑자기 몰아닥친 고스톱 바람에 본인도 놀라 하는 분위기다. 또한 친구들도 한 때 사실의 진위여부를 가리느라 분주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익구가 처음 고스톱을 배우게 된 것은 지난 12월 26일 후배 현수와 선근이와의 조촐한 송년회를 하는 와중에 피씨방에서 그 유명한 세이클럽 고스톱을 배우게 된다. 후배의 친절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십 수 연패를 달리던 익구는 최초로 승리를 거두면서 급속도로 화투장의 마력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익구의 모습은 본 후배 현수는 괜한 것을 가르쳤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그 후 27일 친구 청원이네를 놀러갔을 때도 청원, 찬구, 준식으로부터 고스톱 규칙을 물어보며 ‘쌍피’, ‘비광’, ‘흔들기’, ‘고도리’, ‘총통’ 등의 용어와 의미를 익히는 열의를 보였다. 익구는 이제 ‘피박’과 ‘광박’을 피해가며 고스톱을 운영할 정도의 실력에는 다다랐으나 ‘독박(고박)’을 염려한 소심한 경기 운영으로 인해 조금 따고 왕창 잃다보니 앞으로 그다지 전망이 밝지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익구는 28일 새벽에 그간 배운 것을 실행해 보기 위해 기왕에 게임 머니를 잃을 바에 친구들에게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익구는 세이 고스톱을 함께할 친구를 모집했으나 점 100원짜리는 시시하다는 차가운 반응에 부딪쳐 결국 혼자 방을 만들어서 놀이를 하게 된다. 당초 8만원대에서 출발했던 놀이는 3시간 정도만에 잔고가 0원이 되면서 일단락 되었다.


잔고가 0원인 사람들을 위해 다시채우기(리필) 기능을 운영하고 있는 터라 5만원을 충전했지만 더 이상 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고 일단 잠정 중단된 상태이다. 은근히 이런 사소한 것에 지는 것을 싫어하는 익구로서는 고스톱을 느긋하게 즐기려는 자세가 많이 부족한 편이라고 벌써부터 지적되고 있다.


그간 화투 같은 카드놀이를 노름에 불과하다며 폄하해왔던 익구는 그간의 부정적 평가를 걷어내고 하나의 유희로서 받아들이려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잡기에는 소질이 없다는 대원칙이 깨질 것 같지 않은 이상 익구의 고스톱 열기는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익구 스스로가 이 분야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파장은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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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고향 티크리트에서 미군에게 체포되었다. 잔혹한 독재자 후세인이 체포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별다른 저항도 없이 초췌한 모습으로 생포된 후세인의 모습을 보며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확인할 수 있어서 반갑다. 그런 면에서 국내의 전두환이 비자금을 만지며 떵떵거리고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세계 최대의 전체주의적 시스템을 보유한 국가인 북한을 바라보는 것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부디 권력의 단맛에 취한 이들이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것을 후세인의 몰골을 보고 깨우치기 바란다.


간디는 “독재자는 일시적으로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지만 결국 몰락하는 법이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에 따르는 책임을 수행하지 못한 부족한 지도자는 제거되는 것이 순리다. 다만 이라크 민중의 손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미국의 야욕과 맞물려 진행된 점은 아쉬운 일이다. 이 과정에 있어서는 이라크 민중들의 우매함을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라크 과도정부는 파벌 대립을 얼른 종식하고 자기들 손으로 민주적인 정부를 세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실은 남 이야기 할 여력이 없다. 우리네 민주주의도 실상 별로 보잘 것 없기 때문이다^^;)


물론 후세인이 못된 독재자임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고 국제적 반전 여론을 무시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는 두고두고 지탄을 받을 것이다. 후세인 체포로 부시 일당들은 한껏 고무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그네들이 저지른 만행은 오래도록 기억되어 자신들의 차꼬가 될 것이다. 후세인의 구차한 모습을 보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부시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는 것도 영 마뜩지 않다. 미국의 네오콘들이 건수 잡았다고 너무 기뻐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쪼록 후세인의 체포로 이라크 내 테러가 잦아들고 치안이 안정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라크의 반미감정과 저항이 비단 일부 후세인 잔당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이라크 민심을 잃은 것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자신들에 반대하는 이라크 저항세력은 자생적으로 양산될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 조속한 민정 이양 절차를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 그것만이 테러의 위협에서 자신들을 구제하는 길이다. 이라크 침략 전쟁은 인류사의 부끄러움으로 기록되겠지만 전쟁과 테러 대신 평화와 협력이 자리잡는 날을 위한 진통으로 세계시민들은 간직해야 한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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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구는 그간 사용하던 ‘익구청년’ 별칭을 대체할 새로운 별칭으로 ‘새우범생’을 공표했다. 이로써 지루하게 계속되던 별칭대체 논쟁은 일단락 될 것으로 보인다. 초반에 경합을 벌였던 후보들로는 ‘궤변논객’, ‘궁극범생’, ‘시비쟁이’, ‘풋선비’ 등이 있었으나 중반 이후 ‘새우’字가 들어가는 쪽으로 일단 결정되면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익구는 별칭을 만들기 위해 옛 글들을 뒤적이던 중 최근에 썼던 [다양성, 당파성, 그리고 새우등](아래 참조)이라는 잡글에서 ‘새우등’이라는 표현에 호감을 느끼고, 그것을 변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 ‘새우등’을 그냥 쓰는 방안도 검토되었으나 그보다는 조금 변형시키자는 의견이 대세였고, 이런저런 조합 끝에 ‘약동새우’와 ‘새우범생’이 최종 후보가 된다.


세상에 미국의 네오콘같은 사명감에 불타는 무식쟁이들만 있다면야 옥석을 가리기 쉽겠지만, 대개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맞서니까 무식한 학생 입장에서는 새우등만 터지는 꼴이다. 그래도 부지런히 새우등이 터지다보면 가끔 콩고물도 떨어지고 그러겠지라는 희망을 안고 오늘도 싸움 구경에 눈이 둥그래지는 수밖에.^^ 백가쟁명 백화제방(百家爭鳴 百花齊放)의 시대에 사는 것은 확실히 정신 없고 골치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 곱절로 흥겹고 신나는 일이다. 다양성과 당파성의 긴장 속에 내 새우등은 늘 조마조마하다.

- 익구, [다양성, 당파성, 그리고 새우등] 中, 2003/11/22


한 때 약동새우가 힘찬 느낌을 준다며 분위기를 몰아갔으나 새우범생파도 완강히 저항했고, 결정에 난항을 겪게 된다. 논의가 진행되면서 약동새우의 ‘동’字는 [똥]으로 발음해야하니 어감이 좋지 않다, ‘낭만고양이’의 조어와 유사해서 표절의 혐의가 짙다, ‘약동’이란 단어의 대중성이 의심스럽다 등의 약동새우에게 불리한 논거들이 쏟아지고, 초기 후보 중에 가장 지지가 높았던 궁극범생파가 새우범생파와 연대를 선언함으로써 결국 진통 끝에 새우범생으로 최종 결정 나게 된다.


익구는 고등학교 졸업하기까지 ‘익구어린이’라는 호칭을 즐겨 쓴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현저하게 무딘 현실감각과 유치하고 조악한 생각의 우물을 자각하고, 어릴 적의 순수한 꿈과 순박한 됨됨이를 지켜나가자는 나름대로 계산된 호칭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익구가 대학생이 되어서도 익구어린이가 퍼지는 현상이 벌어지자 익구는 ‘익구청년’으로 업그레이드를 선언한다. 이 지속적인 별칭교체 노력 덕분에 이제는 슬슬 익구청년으로 불러주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제 자리 잡아가는 익구청년을 버리고 굳이 새 별칭을 마련해서 쓸데없이 비용 낭비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익구는 익구청년이라는 별칭은 익구어린이의 대항적 성격으로 급조한 것일 뿐 조만간 바뀌야겠다고 늘 마음먹고 있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한편 익구의 아호(雅號)인 ‘憂弱(우약)’을 더 적극적으로 쓰자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그보다는 좀 더 편안하고 재미난 별칭을 하나 만들어 쓰자는 의견이 우세했고, 숱한 고심 끝에 그 성과를 보게 되었다.


익구는 새로운 별칭 선포와 함께, 딸림 구호도 함께 선보였다.


늘 조마조마한 새우등, 고래사냥을 꿈꾸다
부지런히 새우등 터지면서 열심히 배우다

 

여기저기 고래싸움을 구경하느라 새우등 터져 가면서 열심히 배우면서도 고래사냥의 꿈을 품겠다는 새우범생의 거창한 뜻이 얼마나 실현될지 주목된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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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집 만지작거리기

잡록 2003. 12. 5. 07:10 |
양성평등을 평생 믿고 실천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는 나이지만 며칠 전 있었던 몇 마디 대화에서 내 신념을 뒤흔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어느 동아리 친구를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나는 뜬금없이 다음 동아리 대표는 누가 될 것인지 물었다. (아마도 이제 02학번이라 일선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으니 차기는 누가 이끄느냐는 정도의 질문이었던 것 같다)


친구왈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남자로 할거야.”
익구왈 “아니 왜?”
친구왈 “대표는 밤새도록 술을 마실 수 있어야 하거든. 여자는 그렇게 못하니까.”
익구왈 “푸하하 그런 건가?^^;”


당시의 광경이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그냥 웃고 넘겼던 것 같다. 전 같으면 친구의 발언이 부당하다며 목청을 높였을지도 모르는 나이지만 이상하게도 ‘뭐 그럴 수도 있겠군’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 남자만이 밤새도록 술을 마실 수 있게 되는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아니 애시당초 왜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문화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최소한 평소 자주 하는 말인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걸”이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었으련만 그러지 않았다.


또 얼마 전에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엠티를 논의하면서 준비하는 남자친구들이 여자친구들의 참여율이 저조한 것을 두고 여자들은 ‘끼리끼리 논다’ ‘자기 일만 알고 희생할 줄 모른다’ 하는 등의 푸념들이 쏟아졌다. 나는 평소처럼 적극적으로 방어하기보다는 암묵적 동조를 했다. 나 또한 저마다 바쁜 일 제쳐놓고 짬을 내는 엠티에 참여를 안해주는 여학우들이 무심하다며 투덜댔다. 이러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나는 내가 믿는 만큼의 굳건한 양성평등주의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남성적 속성만을 찬양하는 저속한 마초이즘에 부역할 생각도 없지만 말이다. 내 소심한 성격으로는 악성 마초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지 않는가^^;)


마초의 혐의를 애써 걷어내고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대학물을 제법 먹으며 내 허접한 논리들도 많이 갈고 닦았고, 내 서툰 인식도 많이 교정했다. 전열을 정비한 만큼 사기도 충분한데도 싸움판에 들어가기는 망설여진다. 별로 사교적이지 못한 내가 그나마 알고 지내는 고마운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점의 차이로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게다. 아는 사람과 싸우기는 자꾸만 고통스러워진다. 친한 사이인데도 그저 그런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고 있다며 불평하는 한 편에는, 나란 사람과 교류해주는 존재들에게 칼을 겨누고 싶지 않아 칼집만 만지작거리는 내가 있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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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학기에 듣는 정치학원론의 서평 과제인 [정치적 현실주의의 역사와 이론](화평사 刊)은 내내 골칫거리였다. 정치적 현실주의를 주제로 삼은 19개의 논문의 압박은 과제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탈고를 마치던 그 순간까지 마음 한 구석에서 부담감의 곰팡이를 마구 키워대고 있었다. 실은 그보다 불편했던 것은 예전 같으면 콧방귀도 안뀌었을 현실주의 논리들이 어느 정도 가슴에 와닿는 느낌이다. 국제정치학에서 현실주의는 여전히 주도적인 위치에 있고, 한국의 현실도 비슷하다고 한다.


인간은 악하고, 인간들이 모여 사는 국가 또한 악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서 국가의 유일성, 단일성, 합리성을 가정하는 현실주의는 국제 관계는 무정부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고 결국 힘의 논리에 지배되고 있다고 역설한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우드로 윌슨 등의 이상주의자들이 추구한 국제법, 국제기구를 통한 국가 이익의 조화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도래한 냉전시대에 그 적실성을 상실하고 쇠퇴하게 된다. 이상주의 경향을 비판하며 등장한 현실주의는 오늘날까지도 국제정치학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군림하고 있다.


현실주의에 맞서기 위해 자유주의가 다양한 치장(다원주의, 신자유주의...)을 하고 나오는 모습은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무척 재미나게 들려왔다. 지금까지 정치 어쩌고 하면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라는 도식만을 그려왔는데, 현실주의와 이상주의(혹은 자유주의)의 대립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몰론 이상=진보, 현실=보수라는 등식도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따져 볼만한 기준인 것 같다. (어쩌다가 자유주의의 우산을 빌려쓰게 되었지만, 거대한 산이 그렇듯이 자유주의 또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사회과학 용어라는 것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서도...^^;)


특히나 국제정치 분야에서는 현실주의 맞서는 자유주의라는 것이 진보적이거나 이상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물론 상호의존을 강조하고 다원주의를 주창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진보성이나 이상적 측면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자유주의자들은 자기들은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야말로 현실을 바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논리가 현실을 더 잘 반영하고 있게 만들기 위해 현실주의 논리를 과감히 차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현실주의가 그만큼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소리가 될 수도 있지만)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눈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크게 자유주의, 현실주의, 구조주의(Structuralism)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구조주의 이론은 전통적인 자유주의 이론인 근대화 이론(후진국의 저개발, 저발전은 사회, 정치적 개혁과 효율적인 경제전략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에 대한 반발에서 나타났다. 후진국의 발전은 한참이나 더뎠고 국가간 격차는 더욱 커지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적 처방전을 부인하고 새로운 이론을 모색하면서 구조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후진국들의 저발전 요인을 국내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체제의 구조적 모순인 지배와 착취 때문이라고 본다. 즉, 구조주의는 국가간의 불균형을 주된 연구과제로 삼는다. (박재영, [국제정치패러다임], 법문사, 2002 500~ 503쪽 참고)


적어도 분홍빛 이상의 색깔을 선보이는 구조주의는 강의 시간 관계상 생략이 되어 여러모로 아쉽다. 아무래도 교수님께서 아직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이라는 도식 정도를 이해하는 것이 초심자 수준에서 맞다는 판단 때문이셨던 것 같다. 실은 논지와 관계없는 구조주의 타령을 해본 것은 구조주의 이론의 하나인 세계체제이론을 주창한 대표적인 학자에 미국 사회학자 월러스틴이 있다는 것을 주워들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월러스틴은 “학문은 대한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며 그런 학문은 도덕적 선택에 이바지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정치적 실행을 통해 세계를 바꾸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학문과 정치의 변증법이라는 화두를 고등학교 시절 익구에게 던진 각별한 인연이 있다.^^;


여하간 횡설수설이 길었다. 자유주의와 현실주의의 기본적인 논리는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나오는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두 관점이라는 부분에서 배운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자유주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그 이유의 상당부분은 계몽주의적 낙관주의라는 레토릭에 묘한 향수를 품고 있는 나의 알 수 없는 미신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는 너무 차가운 현실주의 논리들을 접하면서 의분이 올라온 나는 서평을 결국 현실주의 비판에 대부분 할애하고 말았다. 현실주의의 거두인 모겐소 교수님의 제자인 이호재 교수님에게서 수학하신 지금의 내 정치학원론 교수님께 어줍잖은 비판이 통할 리가 없다고 몇 번이나 몸서리치면서도 말이다.^^;


이런 이론들을 접하면서 가끔은 이게 다 무슨 쓸데없는 말장난인가라는 생각을 배우는 입장에서 해보기 마련이다. 어떤 현상을 분석함에 있어 기존 이론을 가지고 현상을 바라보는 것을 일컬어 ‘이론에 이끌린 분석(theory-driven analysis)'이라고 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론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면서 어떤 새로운 규칙성을 찾아내려는 분석의 경향을 ‘자료에 이끌린 분석(data-driven analysis)’이라고 한다. (앞의 책 머리말 참조) 물론 새로운 이론의 수립은 자료에 이끌린 분석이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배우기 바쁜 학생인 나로서는 이론에 이끌린 분석을 내려보는 것도 벅차다. 그렇기 때문에 말장난 핑계 될 여지가 없다.^^


의도했던 대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되었다. 감정적 의견이나 일방적 자신의 주장 나열을 금지한 서평의 규칙을 지키느라 무척 무미건조해져서 내가 쓴 글 같지 않은 애물단지 서평 녀석을 긁어 붙이기 전에 속 시원히 할 말을 하고 싶었다. 결론은 두루뭉술하게 냈지만 실은 현실주의를 좀 더 비판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드는 의문은 이 거다. 경박한 자유주의와 천박한 현실주의 중에 어느 녀석이 더 해악이 클까? 소심한 나는 또 부지런히 최악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끝으로 큰 가르침을 주신 엄상윤 선생님께 가슴 깊이 감사를 표한다. - [憂弱]

(아래부터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서평으로 올린 글입니다)


[위협받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위상] -  2003년 12월 1일
  

  “강자는 권력을 행사하여 무엇이라도 할 수 있고 약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정치적 현실주의의 선구자인 투기디데스는 말했다. 이처럼 국가간 힘의 불균등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힘의 논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가정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현실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학계의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군림해오고 있다. 이 책은 현실주의의 역사와 이론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법을 선보이며 이해를 돕고 있다. 현실주의 이론의 형성과 발전을 정리해보고, 여러 나라들 속에서 나타난 현실주의의 모습을 고찰하며, 한국 정치의 주요 이슈에 현실주의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현실주의는 악한 인간들의 권력 투쟁과 국가 이익 추구라는 분석틀로 정치 현실과 국제정치를 설명한다. 이상주의자들이 당위적 목표를 설정해 정치 현실이 이에 따라 작동해야한다고 본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현실 정치 형태의 법칙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에 더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상주의가 도덕적 가치를 중요시하여 국제법과 국제기구를 통한 방법론을 제시한 것과 달리, 현실주의는 비도덕적(amoral) 가치관으로 무장할 것을 주장한 마키아벨리와 같이 현실을 가장 잘 파악하여 이를 잘 조정할 것을 강조하는 힘의 논리와 세력균형 등의 개념을 설파한다. 현실주의만큼 현실 그대로의 세계를 바라보고, 서술할 수 있는 이론이 없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의 우수성이 입증된다.


  현실주의 지지를 표명하는 이 책은 현실주의의 발전과정과 주요 논쟁들을 시계열적 방법으로 검토하고, 자유주의를 비롯한 비판을 소개하면서 현실주의의 실체를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각 국의 적용 사례를 살펴보는 데 있어 현실주의의 개념을 유리하게 적용하기 위해 다소 무리한 논지를 전개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띄었다. 가령 베트남 전쟁 종식을 위해 현실주의자들이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는 대목에서는 전쟁 반대라는 단순하지만 숭고한 인류의 가치를 가지고 반전을 주장했던 많은 수의 반전평화론자들의 노력은 평가하지 않고 있다. 비슷하게 브란트의 동방 정책은 세력균형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의 주요 특징이 잘 드러난 정책이라고 평가하면서 마찬가지로 현실주의에게만 일방적으로 찬사를 늘어 놓는다. 또한 현실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일본의 만주사변과 만주국 건국을 군부의 이상주의적 정책 노선이었다고 평가하는 부분에서는 현실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상주의를 억지로 끌어들이고 있다. 설령 잘못된 이상이 많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현실주의의 정당성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 눈에 띄었다. 탈냉전을 예측하지 못하고, 유럽통합 같은 국제 협력 증진과 초국적 단체들의 영향력 확대를 과소평가했다는 현실주의의 실패에는 관대하면서도 자유주의의 실패에는 매서운 칼날을 들이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쉬운 점은 현실주의에 경쟁할만한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대항마로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검토가 부족해서 객관적 비교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실주의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자유주의자들의 비판을 일부 싣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의 주장보다는 그들의 실패를 소개하는 것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현실주의가 이상주의에게 승리를 거두었다고는 하나, 이상주의의 이념적, 이론적 경향은 자유주의 등의 이름으로 현실주의의 대안으로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예로 세계무역기구(WTO)의 확산은 절제된 자유무역과 다자통상체제로 말미암은 경제적 다극화가 미국의 일방적 패권에 세계가 휘둘리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 주요 관심사로 부상한 경제 분야의 파급력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중국의 경우 국가주권이 박탈당한 역사적 경험을 가져서 국가주권 문제에 감정적으로 강경하게 반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다가도, 우리의 통일문제에서는 강한 민족적 정서가 개입되어 이상적인 목표에 기울고 있다며 햇볕정책을 실현 가능한 현실적 목표를 얻지 못하는 이상주의의 특징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하는 등의 사안 평가의 상이함이 눈에 띄였다. 이는 다양한 필진들로 구성된 이 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보인다.


  최근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감행하며 민주주의 실현 같은 이상을 내세웠고, 남북 전쟁 상황의 링컨이 자신의 현실주의를 노예 해방이라는 이상으로 포장한 것처럼 세상은 적당한 위선으로 덧씌운 현실주의가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상이 그렇듯이, 현실주의도 지나치면 '미치광이 현실주의'가 되어 파렴치한 전쟁광과 같은 얼굴로 등장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다.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 개인주의와 세계화의 물결이 이러한 천박한 국가주의를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겠지만, 국가 중심의 구조가 당분간은 큰 틀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되는만큼, 현실주의 패러다임의 분석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우리는 일부 자유주의자들의 실효성 없는 외침도 가려 들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다자주의를 무시하고 노골적인 일방주의를 주창하는 네오콘(neoconservatives)의 발호를 더욱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균형감각이 되어야 한다.


  위기의 20에서 “건전한 정치 이론이라는 것은 유토피아와 현실의 양 요소 위에 입각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외친 E. H. 카의 지적은 앞으로도 유효하다. 극단적 이상주의자들이 객관적 조건과 물리적 법칙을 외면하고, 극단적 현실주의자들이 정치를 통해 추구할 이상과 목적을 잊은 채 현상 유지에만 급급한 것은 모두 지양되어야 한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상 없는 정치는 맹목적이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정치는 공허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국제정치를 바라 봐야할 것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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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구는 11월 29일, 30일 이틀간 있었던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마지막 엠티에 후발대로 참석했다. 오전까지 총학생회 선거 개표를 하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잠깐 일을 처리한 후 후발대로 오후 8시 기차를 타고 가평역으로 향했다. 가평역에 도착해 용추골로 향한 익구는 이제 막 폭죽을 터뜨리려고 준비 중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폭죽은 2년 전에 사놓은 것이지만 원체 그 규모가 크다 보니 아주 넓은 공간이 필요했던 터라 그간 고이 보관만 해두고 있던 것이었다. 결국 넓은 장소를 찾아 폭죽을 터뜨렸고 그 황홀한 폭죽의 광경에 잠시 넋을 놓고 황홀감에 젖었다. 엄청난 굉음을 내던 폭죽이 끝나자 이런 물건을 서울외고 운동장에서 터뜨릴 계획을 했던 우리의 어이없음에 한바탕 웃어야 했다.


어두운 밤길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숙소로 돌아와 모두들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중국어과의 미래를 위한 회의라는 다서 거창한 논제 앞에 저마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익구는 평소 지론대로 희망하는 친구들을 회원가입시키는 모임을 창설할 것을 주장했고, 찬반의견 끝에 표결로 전원의무가입이 아닌 희망가입제가 결정되었다. 동문회 명칭을 쓸 것인가 별도의 친목모임이 될 것인가는 지엽적인 문제라고 보고 추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다음으로는 세이클럽에 둥지를 트고 있는 현재의 누리집을 존속할 것인가, 새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미 희망가입제가 결정된 이상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또한 어느 곳에 만들까에 대한 논의에서 익구는 싸이월드의 거품인기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으나 싸이족들의 열성적 지지에 힘입어 결국 싸이월드로 결정되게 되었다.


원체 친하게들 지낸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색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저마다의 소견을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였다고 평가된다.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는 시간과 비례하여 술과 고기에 대한 열망 또한 강렬해졌고 몇 가지 안건을 표결로 신속하게 처리하고 심야잔치가 벌어지게 된다.


이제 다들 이런 잔치에는 도사(?)가 되어서인지 흥겹게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어떤 친구는 술을 달리고, 어떤 친구는 별을 보며 찬바람을 쏘이고, 어떤 친구는 열심히 몰래 촬영(도촬)을 하고, 어떤 친구는 잠을 청했다. 익구는 산소주 패트병을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여러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으나 밤새서 개표한 후유증은 잠이 많은 익구에게는 치명타라 결국 새벽 3시 30분 경에 잠든 것으로 전해진다.


24시간짜리 엠티는 날이 밝으며 그렇게 끝이 났고, 모두들 다시 일상을 복귀했다. 논의한 대로 익구는 싸이월드에 새로운 보금자리인 我是誰(중국어로 ‘나는 누구인가?’정도의 뜻)를 개통했고, 그간 침체되었던 세이클럽 시대가 무색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다. 싸이월드 아시수의 부제인 ‘소중한 벗들의 이유 있는 만남으로 새롭게 알게 되는 나’의 정신이 얼마나 발현될지는 앞으로 중국어과 친구들의 애정과 참여에 달려있다.


친구 규상이는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을 “자주 보는 것은 아니나 낯설지 않고, 특별한 목적은 없으나, 너무나도 흥겹다”고 평했다. 익구는 이 의견에 동감을 표하며 실상 별로 새로울 것도 없으면서도 티격태격하면서 잘도 지내는 고등학교 친구들은 사교적이지 못한 익구에게는 무척이나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끝으로 힘들게 성사된 엠티를 준비하고 연락하느라 고생했을 친구들과 짬을 내어 참석해 30명의 친구들에게 다시금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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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다양성의 위대함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반대자를 접할 때도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주스럽거나 구역질나지는 않는다. 마음 한 구석의 응어리를 어찌할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하지는 않도록 노력한다.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그네들이 잘 찾아낼 수도 있고, 내가 어쩌다보니 잘못 생각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리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방식이 옳고 재미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지만, 마주보고 있는 저 친구의 세계관과 행동양식 또한 충분히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한편으로 나는 당파성의 막강함도 실감한다. 제 잇속을 차리려는 이기적 함수를 가진 인간이 대다수인 세상이라면 입맛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 파당을 짓고 자기 몫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인간이란 시리도록 현실적이고 사실판단에 약삭빠른 동물 같으면서도 지극히 추상적 가치에 목매기도 하고 저마다의 이상을 품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대의나 시대적 과제를 끌어오면서 자신의 무리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는 진보하고 사회는 윤택해졌다.


다양성과 당파성은 늘 오묘한 긴장관계를 그린다.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아가는 양팔저울과 같으면서도 그 균형점의 이데아는 끝내 찾지 못하고 마는 그 무엇이다. 나 또한 이 균형점의 이데아를 모색하면서 바지런히 여기저기 주워들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딛고 있는 곳의 내 당파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다양성을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남들보다 코딱지만큼 더 열심히 공부하거나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논리나 어떤 성과물로 상대방을 이기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다원주의는 내 당파성과 권력의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참 좋은 토양이다.


2.
내가 무늬만 개혁적인 사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요즘 들어 개혁 레토릭의 험난함을 절감하고 있다. 개혁세력은 수적으로 다수일지는 몰라도 고종석님의 표현을 빌리면 문화적 소수파이며, 내가 보기에 정치적 소수파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수파는 오히려 단결하고 있고, (한나라당과 잔류 민주당, 자민련의 손잡기나 악의적 언론의 짝짜꿍이나 수구세력의 총궐기나...) 소수파는 열심히 분열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늘 지울 수 없이 따라다닌다.


물론 개혁진보세력의 분열은 그네들의 치열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지금은 치열함과 고결함의 미덕보다는 전략전술과 광범위한 양보들을 통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 같이 소심하고 줏대 없는 사람들은 자꾸 지는 모습만 보이고 갈라서 버리면 상처입고 잠수를 타버릴 유인이 강해진다(물론 살다보면 지는 싸움을 해야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지는 싸움 만들고서 제 몸 상할 필요 없다는 것이 합리적 경제인의 선택이라면 될 수 있는 한 이기는 싸움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다시 붙잡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포괄적으로 본 ‘우리’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신념은 변함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도정에서 표출되는 갈등상은 승리의 환호를 자꾸 흐릿하게 한다.


이런 어지러움 속에서 대강 입장 정리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친노 집단, 혹은 노빠들의 소굴이라는 정치칼럼 사이트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와 같은 열성적 지지자들의 존재가 참 고맙다. 너무나 합당하고 근사한 비판으로 속이 따끔거리게 해주는 개혁세력들의 의견을 경청하지만 미친놈 소리 들어가며 호위하는 서프족을 미워할 수 없다. 물론 나와 당파성이 상당부분 맞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나 같은 날라리 지지자는 열성적 지지자들에게 진 빚이 미안할 뿐, 그들의 투자 수익률이 낮다고 질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3.
어떠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는 것은 그것이 사소한 일일지라도 참 어렵고 떨리는 일이다. 간혹 내가 서있던 곳이 부실한 논거로 적당히 때운 곳이라 무너지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무식한 내가 무엇을 얼마나 알기에 감히 발언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세다. 그러나 모르면 닥치고 있어야 한다는 청년기 비트겐슈타인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아마 거의 다 침묵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보다는 논쟁의 시행착오법(trial and error method)이 더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것 같다.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는 양쪽의 입장을 부지런히 경청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정 동네의 우물이 아닌 다양성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들 중에 취사선택해서 자신의 당파성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 같이 귀가 얇은 녀석은 금세 혼란에 빠지기 일쑤다. 가령 신자유주의 논쟁만 해도 WTO는 전세계 민중을 착취하는 미국식 세계화에 불과하다는 입장과 WTO가 실현할 자유무역과 다자통상체제로 말미암은 경제적 다극화가 미국화를 막고 우리가 살 길이라는 입장과의 간극은 너무나 벌어져 있다보니 양다리를 걸치기도 여간 힘들다.


세상에 미국의 네오콘같은 사명감에 불타는 무식쟁이들만 있다면야 옥석을 가리기 쉽겠지만, 대개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맞서니까 무식한 학생 입장에서는 새우등만 터지는 꼴이다. 그래도 부지런히 새우등이 터지다보면 가끔 콩고물도 떨어지고 그러겠지라는 희망을 안고 오늘도 싸움 구경에 눈이 둥그래지는 수밖에.^^ 백가쟁명 백화제방(百家爭鳴 百花齊放)의 시대에 사는 것은 확실히 정신 없고 골치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 곱절로 흥겹고 신나는 일이다. 다양성과 당파성의 긴장 속에 내 새우등은 늘 조마조마하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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