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선수 당했다!

사회 2004. 11. 22. 02:18 |
앗 이럴수가... 선수를 당하고 말았다. 新우파운동(NEW RIGHT) 운동이라는 알 수 없는 흐름이 조직을 하나 만들었다고 한다. 인터넷 신문에서 대략적으로 확인한 것에 불과해서 이 조직의 내실은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조직명 만큼은 익구의 뒷통수를 후려치기 충분했다. 이름하여 “자유주의연대”... 이 명칭은 익구가 몇 년 전부터 맛깔스럽다고 평가하던 것이다(나중에 써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는...^^;). 그런데 이 명칭이 정체불명의 단체에서 사용하기 시작할 모양이다. 연대하는 자유주의자는 아름답다. 과연 이 단체가 이 아름다움을 구현해 줄지는 미지수다. 창립선언문(첨부자료 참조)을 보아도 무언가 알맹이 없이 장황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창립선언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네 어두운 근현대사를 좀 규명하겠다는 것이 왜 자학사관인지 이해하기 힘들며, 노무현 정부가 수구좌파라는 인식에도 동감하기 힘들다. 노무현 정부는 이미 자유주의연대가 내세우는 강령대로 FTA를 통한 개방형 통상국가를 추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청빈이 아닌 청부(淸富)를 권장하는 것은 좋은 뜻이나 탁부(濁富)에 대한 비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 또한 빈부격차의 해소가 아니라 빈곤의 해소를 추구하자고 하는데 작은 정부랍시고 복지 확충에는 부정적인 듯 보여 어떻게 해결하자는 것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게다가 북한 인권개선 및 민주화를 들먹이고 있는데 정작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권을 심각히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모순을 보여주기까지 한다(물론 아직 잘 정립되지 않은 단체이니 이건 어디까지나 애정 어린 의문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연대가 자기가 내뱉은 말들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단체로 잘 굴러가기를 바란다. 수구기득권 세력과의 분명한 차별성으로 건전한 보수의 위상을 확립할 수 있다면 선수 당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보수의 탈을 쓰고서 극우파들과 히죽거릴 때 누추한 말로를 면치 못할 것이다. 자유당, 자유총연맹, 자유민주연합 등 자유를 들먹거렸던 많은 단체들이 오히려 자유를 억압한 사례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부디 자유주의연대는 가진 자의 자유가 아니라 모든 이의 자유를 추구해서, 자유를 참칭했던 사이비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여하간 그래도 배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ᅮ.ᅮ - [憂弱]


<첨부자료>
[자유주의연대 창립선언문] - 업코리아 2004년 11월 20일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념적 정당성과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집권세력에 의해 의문시되면서 국가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 구체적 대안이 결여된 섣부른 자주외교는 한미동맹의 표류와 대북 안보불감증의 확산을 초래하였다. 경제는 뚜렷한 정책적 방향성의 결핍으로 활력을 잃고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옥죄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념, 세대, 지역간 갈등이 심화되고 脫대한민국의 흐름이 확산되면서 공동체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의 주범이 세계의 흐름을 도외시한 채 낡은 이념과 대중선동형 포퓰리즘의 포로가 되어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는 후진적인 정치라고 생각한다. 21세기는 세계화․정보화․자유화의 시대다. 대한민국은 이 물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선진국에 진입해야 한다. 한 세기 전 우리 선조들이 근대화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해 망국의 수난을 당했던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는 그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국민적 예지를 모아 선진국 건설에 일로매진해야 할 이 무한경쟁의 시대에 노무현 정권은 자학사관을 퍼뜨리며 지배세력 교체와 기존질서 해체를 위한 '과거와의 전쟁'에 자신의 명운을 걸고 있다. 한심한 것은 노무현 정권만이 아니다. 두 차례의 대선 패배로 좌파 포퓰리즘 세력에게 나라운영의 권리를 넘겨 준 한나라당은 21세기 미래 대안세력으로서의 환골탈태를 등한시한 채 기득권유지에 전전긍긍하는 기회주의적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수구좌파와 수구우파가 주도하는 정치는 종말을 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20세기 수구연합’의 낡은 이념을 대체하여 대한민국의 올바른 발전방향을 제시할 21세기 이념과 이에 기초한 혁신 청사진이 마련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그러한 역사적 소명에 부응하기 위해'자유주의연대'를 출범시킨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은 산업화세력의 권위주의도, 일부 민주화세력의 민중주의도 아니다. 세계화․정보화․자유화를 온전하게 실현할 한국적 현실에 맞는 21세기형 자유주의다. 우리가 추구할 한국사회의 자유주의 개혁방향은 다음과 같다.


1. 과거청산보다 미래건설에 초점을 맞춘 개혁을 추구한다.
2. 국가주도형 방식에서 시장주도형 방식(작은 정부-큰 시장)으로의 경제시스템 전환을 통해 2만 달러 시대를 개척한다.
3. 자유무역협정(FTA)의 능동적 추진을 통해 '열린 통상대국'을 건설한다.
4. 모든 특권을 철폐하고 만인에게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는 합리적 사회문화를 창출한다. 청부(淸富)를 권장하며 빈부격차의 해소가 아니라 빈곤의 해소를 추구한다.
5. 법치주의의 확고한 기초 위에서 다원주의에 기초한 관용의 정치문화를 실현하고 사회구성원의 정신적 성숙에 기초해 사회적 공동선을 찾아나가는 성찰적 민주주의를 개화시킨다.
6. 학생에게 학교선택권을, 학교에게 학생선발권을 부여하는 교육혁신을 추구한다.
7. 대북정책의 최우선과제로 북한 대량살상무기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통한 전쟁 가능성 제거 및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추구한다.
8. 한반도 전역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북한 인권개선 및 민주화를 추구한다.
9. 기존의 한미동맹을 21세기 상황에 걸맞게 발전시키며 주변국과의 우호관계를 강화한다.
10. 문화, 학술 등 연성권력(soft power)을 신장시키며 세계 민주화에 기여한다.


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놀라는 성과를 이루었다. 공산주의의 위협이라는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냈으며, 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였다. 민주화도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경제와 정치, 문화 모든 면에서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해야 하며 자유통일을 이루어야 한다.'자유주의연대'는 이러한 역사적 과제 수행에 복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몸담았던 '386'의 제한적, 폐쇄적 경험을 뛰어넘어 열린 마음으로 세계와 대화하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특히 80년대의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386문화를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진력할 것이다. 이를 통해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 새로운 주체세력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한없는 행복이자 무궁한 영광이다.
Posted by 익구
:
다음은 37대 경영대 학생회장으로서의 한해를 마무리 지은 익구의 퇴임인사 "37대 경짱 이제 물러갑니다^^" 전문이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경영대 학우 여러분!

37대 경영대 학생회장 경영학과 02학번 최익구입니다. 제가 학생회장으로서 학우 여러분들을 대하는 것이 이제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제게 맡겨진 책임의 무거움을 이제 덜어놓게 되었습니다.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득하고, 아직도 아쉬움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제 미천한 역량을 다해서 경영대의 살림을 챙겼습니다. 이제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것으로 실현되는 의회 민주주의 이어달리기 선수로서의 제 역할이 다했습니다.


그간 못난 학생회장의 잔소리 들으며 이런저런 잡무에 시달리신 학생회 일꾼과 각 반 일꾼을 비롯한 많은 후배님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어찌 보면 엄청 귀찮고 짜증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늘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각종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학생회 일꾼에서 물러납니다. 혹여 제 불찰로 걱정을 끼쳐 드리거나 제 게으름으로 불편하게 해드린 점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저는 대학 새내기 입학 전에 학생회 일꾼 생활을 시작했으니 학생회 일꾼 생활만 3년째입니다. 그동안 제가 가졌던 의문들과 불만들을 해결해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제 역량의 부족으로 많은 것을 실현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학생활의 재미와 보람을 학우 여러분을 위해 작은 보탬이 되는 것에서 찾았다는 점은 늘 감사히 간직할 것입니다. 늘 일하기 바쁘다는 핑계로 고마운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넉넉한 여유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살갑게 인사하며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경영대 학우 여러분!

떠나는 자리에서 특히 제가 책임지고 준비했던 2004 새터의 주인공이었던 04학번 여러분들이 특히 생각납니다. 대학 새내기로서 즐기는 이런저런 행사들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 같아 늘 죄송스런 마음뿐입니다. 04학번 여러분들의 입학을 축원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이제 선배가 될 준비를 하는 여러분들을 보며 반갑고 고맙습니다. 04학번 여러분들 모두가 늘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03학번 여러분 이런저런 악조건 속에서도 못난 사람 도와주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 경영대는 대학 새내기 위주로 모든 반활동이 진행되고, 바로 윗학번만 되도 일선에서 물러나 행사의 준비나 조직에는 참여를 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많은 학우들이 반활동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 아랑곳하지 않고 04학번 후배들을 챙기고 선배님들과의 가교 역할을 든든히 해준 여러분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제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제 곁에서 도와준 열려있고 쉽고 낮은 37대 경영대 학생회 일꾼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합니다. 모자란 저를 도와주느라 본의 아니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빼앗아 정말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빚은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제가 맡은 첫 행사였고 가장 걱정도 많이 했던 2004 새터의 주역이신 2004 새터준비위원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또한 04년도에 반일을 맡으셨거나 맡고 계신 여러 대표님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 인사드립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경영대 학우 여러분!

다소 감상적이 될 수밖에 없는 고별의 인사에서 지난 3년 간의 학생회 일꾼생활을 걸고 간곡한 청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지해주시기를 호소합니다. 저는 자유주의자입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만이 북한의 폭압정권을 궁극적으로 이기는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것은 옳은 일입니다. 저는 확신을 가지고 여러분들께서 국가보안법 폐지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암울했던 시기에 억지 혐의를 뒤집어 씌워 끌고 간 뒤 칠성판에 눕혀 고춧가루 물을 먹이고, 성기 끝에 전기줄을 연결해 온몸을 지져대고,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기를 강제했던 인권유린의 기억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때 많은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렸던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서 진정한 민주국가, 인권국가로서의 우리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들먹거리면서 인권을 유린하고 호의호식했던 자들이 국가정체성을 들먹이고, 색깔론적인 공세를 할 때에도 국가보안법 폐지가 옳은 일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해주시기 바랍니다. 군부독재에 기생하고 민주주의 열망을 탄압했던 자들이 다시는 역사의 주무대에 서지 못하도록 힘을 모아 주십시오. 지난 3년 동안 비운동권 학생회 일꾼을 자처했고,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불개입을 원칙으로 했던 37대 경영대 학생회이지만 마지막으로 이 말씀만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너그러이 양해 바랍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경영대 학우 여러분!

저는 35대 총학생회, 3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36대 경영대 학생회, 37대 경영대 학생회, 38대 경영대 선거관리위원회로 이어진 지난 3년 간의 학생회 일꾼 생활을 이제 접고 또 다른 인생의 보람거리를 찾는 중입니다. 우선 하고 싶은 것으로 연애(소개팅 환영!)와 역사기행, 독서 등이 떠오릅니다. 비록 저는 물러가지만 제가 맺은 소중한 인연들은 절대 잊지 않겠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기를 바랍니다. 혹시 온라인 상이나마 저와 교류하시려면 www.ikgu.com이나 www.cyworld.com/liberal 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 간의 일들을 마무리하는 내내 도덕경 2장의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란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 즉, “공을 쌓아도 그 공을 주장해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제 임기 중에 쥐꼬리만큼 이룬 것들이 있더라도 그것이 마치 저만의 공인 것처럼 자랑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떠나는 마당에 자꾸 제가 한 일을 들먹이며 뿌듯해 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해주신 분들에게 참 고마웠다며 충심 어린 감사 인사를 나누고, 정을 담은 술 한잔을 건네야겠습니다.


이제 저는 물러갑니다. 저란 녀석이야 금세 잊혀지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지만 제 작은 노력이 여러분들의 대학생활에 자그마한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대성공입니다. 선배님, 동기들, 후배님들이 알콩달콩 재미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괜히 침 흘리지 말고, 하나둘 저란 녀석을 잊어가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서서히 지워지는 저를 발견하며 고독 속에서 저를 되돌아볼 여유를 가져봐야겠습니다. 버려서 가벼워지고, 가벼워져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학우 여러분들을 만나겠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무능한 녀석이 경영대 한 해 살림을 맡았습니다. 늘 부족했지만 열려있고 쉽고 낮은 37대 경영대 학생회에 대한 학우 여러분들의 격려와 성원에 힘입어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가슴 깊이 고마웠습니다. 함께 해서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딛고 있는 자리에서 치열하시고, 자유로우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憂弱]


열려있고 쉽고 낮은 37대 경영대 학생회 물러갑니다.^^

딛고 있는 곳에서 치열하시고 자유로우시길!

Posted by 익구
:

선거시행세칙 55조 1항(전체 투표율이 50% 미만일 경우 재투표를 실시한다)을 삭제하자는 최익구 경영대 학생회장의 수정안에 대해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 최 회장은 “현실상 50% 이상 투표는 무리가 있다”며 “무리하게 선거 마지막 날 학생을 동원하기보다 50% 미만일 경우에도 개표를 가능하게 하자”라고 말했다. 이에 조영관 정외과 학생회장은 “50% 이상 투표라는 것은 형식적 요건이 아니라 최소한의 대중의 지지”라고 말했다. 위 수정안은 찬성 3명, 반대 37명, 기권 6명으로 부결됐다.
- 고대신문, 2004. 11/01 1491호 2면 기사 中


생각지도 않게 고대신문에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압도적 부결로 끝난 사안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기사를 실어주신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다소 전달이 제대로 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기자 분께서 수정안의 내용을 정확히 보시지 않아서 다소 오해를 하신 모양이다. 나는 현실상 50% 이상 투표가 무리가 있다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았다. 50% 투표율 규정이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회원의 선거권 행사를 강요하는 의미로 작용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50%가 안돼서 지루한 연장투표를 하는 것은 현상의 문제일 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원칙의 문제였다.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 개정 발의]
발신: 37대 경영대 학생회, 경영 A반 학생회
수신: 37대 중앙운영위원회, 전체학생대표자회의

<개정 대상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
제55조 (재투표)
제1항 전체투표율이 50% 이상이 안될 경우 재투표를 실시한다.
제2항 재투표는 일주일 안에 실시하며 선거운동은 하지 않는다.

<현행 선거시행세칙의 문제점>
유권자의 반 이상이 참가한 선거에서 뽑힌 당선자에게 대표성을 확보해주려는 취지는 충분히 동감한다. 그러나 과반수 투표율로 형식적 대표성을 갖추려고 하는 것은 투표소로의 동원, 좀 더 넓게는 정치적 동원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선거권, 피선거권은 총학생회 회원의 권리이지 강제된 의무는 아니다. 50% 투표율 규정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회원의 선거권 행사를 강요하는 의미로 작용할 수 있다. 즉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제약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미 제54조 재선거 조항에서 투표참여자의 의사가 오차 없이 반영되도록 한 것이 규정되어 있고, 개정 원안의 제38조 제1항에서 투표일을 2일에서 3일 이내로 변경한 만큼 제55조의 재투표 조항은 개정을 검토할만하다.

학생회 선거에서 기권하는 행위는 개인이 선택하는 영역이다. 학생회 선거에 무관심한 사람이 연장투표를 하는 선거관리위원들이 안쓰러워서나 집요한 투표 권유에 마지못해 투표를 할 때, 이는 회원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수렴하려는 선거제도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것이다. 학생회가 이렇게 꾸려졌으면 좋겠다는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투표한 유권자의 한 표가 계속되는 투표 권유로 말미암아 투표한 유권자의 한 표에 희석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투표율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는 존중되어야 한다. 50%라는 산술적 규정에 얽매이기보다는 유권자의 자유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선출투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율 걱정보다는 공정하고 성실한 선거관리에 힘을 쏟는 것만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수정안>
선거시행세칙 제55조를 삭제한다. 이상 끝.


회칙개정을 위해 열린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 제출한 수정안이다.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이 50%가 되지 않으면 개표를 할 수 없고, 연장투표를 통해 50%를 달성한 후에만 비로소 개표가 가능하게 된 근거인 선거시행세칙 55조(개정원안에서는 56조)를 삭제하자는 내용이다. 실제로 2003년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율이 50%에 미달해 2004년 3월에 재선거를 치르는 난리를 겪기도 했었다.


나는 2003년 11월에 있었던 37대 총학생회 선거를 관리하며 이미 회칙개정을 생각했다. 3일째 저녁까지 이어진 연장투표에 경영대 선거관리위원들 중에 상당수가 50% 규정에 회의를 나타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며 선관위원들을 다독였지만 결국 경영대 투표함은 다른 단과대보다 몇 시간 일찍 접고 철수해야했다. 더 이상 선관위원들의 항의를 묵과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 선거에서 경영대 투표소가 일찍 철수한 것보다 더 혼란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의대, 간호대 지역에서는 투표소가 설치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고, 공대 지역 투표소에서는 오차가 너무 커서 수백표가 무효처리 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분명 투표관리가 길어짐에 따라 벌어진 문제였을 것이다. 이런 일을 겪으며 투표율 50% 규정에 대한 나의 불만은 쌓여져갔다.


전체 투표율 50%를 깎아먹지 않기 위해서 경영대 다섯 개 반을 총동원해 투표 독려를 해서 41% 정도의 투표율 정도를 보였다. 어느 친구는 왜 기권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냐며 역성을 내기도 했고, 마지못해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기표대에 들어가기 전에 몇 번을 찍으면 될지를 선관위원에게 묻는 진풍경도 이어졌다. 선관위원 상당수는 다섯 개 반에서 차출되어 어쩔 수 없이 투표소를 지키고 있었지만 왜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어야하는 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회칙 개정 발의는 사실 내 개인의 의사와 더불어 당시 선관위원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도 했다. 내 개인의 의사라면 아마 실제 회칙 개정 발의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임시 전학대회가 있는 날 이런저런 일로 바빴고, 결정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 정규가 휴가를 나와 만나서 달콤한 시간을 보낼 참이었다. 하지만 내가 결국 안될 것이 뻔한 수정안을 제출한 것은 지난날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이것으로 당시 선관위원님들의 노고에 대해 보답이 되었다면 좋겠다.


당시 선관위원이었고 현재 A반 학생회장인 은애와 이야기를 해서 함께 발의한 이 수정안은 찬성 3, 반대 37, 기권 6으로 부결되었다. 은애양이 개인 사정으로 참석을 못했으므로 나 혼자 찬성을 던지고 반대가 45표 나오는 상황도 예상했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가결에 대한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너무 기정사실화 한 나머지 건성건성으로 발제를 하고 질의응답과 찬반발언을 한 것이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준비해봤을 것을 그랬다.^^;


사범대 학생회장님은 연장 투표를 통해 바쁘게 살다보니 투표 기간을 놓친 학우들이 보다 더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과연 그렇게 바쁘게 사는 학우들께서 사물함 신청 기간을 깜박 잊어버리거나, 쪽지시험이나 자잘한 과제물에 대비하지 않거나, 각종 밥 약속들을 수시로 까먹을 것 같지 않다. 또한 기득권 세력인 학교와의 대치 국면에서 억압에 맞서 싸우는 존재로서의 학생회에게 그만큼의 대중적 지지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일단 학교측과 학생회측이 사생결단의 적수 혹은 기득권과 약자의 대립 구도라는 데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이 구도를 인정하지 않으니 대중적 지지 어쩌고 하는 것도 다 설득력 없는 이야기다.


압도적 부결로 끝이 난 뒤 미술학부 부학생회장님께서는 내 문제제기에 깊은 동감을 표해주셨다. 간호대 학생회장님께서는 내 의견에 제법 공감을 가지는 대의원들이 많았다며 격려해줬다. 평소에 교류하는 대의원들과 물밑 접촉을 했다면 찬성표를 좀 더 얻어낼 수 있었겠지만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되는 회칙 개정안을 통과시키기에는 역부족인 관계로 일체의 로비(?)는 하지 않았다.^^;


내 학생회 일꾼 3년을 정리하는 마지막 정치적 로망(?)이었던 50% 규정과의 싸움은 내 자신의 귀차니즘으로 싱겁게 막을 내렸다. 50% 투표율 규정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회원의 선거권 행사를 강요하는 의미로 작용할 수 있으며, 투표율 50%와의 투쟁이 되어버린 현재의 총학 선거판에서 실제로 무언의 압박이 되고 있다.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들의 자유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는 것이 맞다면, 참여한 사람들 간의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통해 다수표를 획득한 사람이 일정 기간 권한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는 의회 민주주의의 원칙을 신뢰한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투표소로의 동원, 가치 희석화 등의 표현은 고종석 선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치적 무관심이나 투표의 기권 그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느 정도 개인적 선택의 영역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사람이 마지못해 투표를 할 때, 그 행위는 공동체의 의사를 수렴한다는 선거제도의 존립 근거를 해칠 수 있다. 예컨대 이 사회가 이런 식이었으면 좋겠다는 10의 욕망을 가진 개인의 한 표가, 사회가 저런 식이었으면 좋겠다는 1의 욕망의 한 표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생각을 지닌 개인의 한 표에 의해 상쇄되는 것은 매우 불공정하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사회의 운행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굳이 투표소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고종석, [자유의 무늬](2002), 개마고원 刊, 20쪽


선출 투표는 참여한 사람들의 의사의 총합이 반영되면 그만이다.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선출된 대표자에게 승복해야 하는 것이 의회 민주주의의 룰이다. 기권의 자유 혹은 선거 무관심의 권리는 이미 승복하겠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파시스트라면 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할 테니 논의에서 제외한다. 또한 기존 후보들이 자신의 의사를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대리인 비용 자체를 치르기 거부하는 사람이니 논의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다. 여하간 이런 판단 하에 “최소한의 대중의 지지” 등의 주장에 동감하지 않는다. 50% 투표율로 형식적 대표성을 갖추려는 것도 억지스럽다. 문제는 억지스런 동원이 참여의 확장으로 착각되지는 않나 하는 우려다.


투표율 50% 규정이 정치적 동원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처럼 임시 전학대회 자리 자체가 정치적 동원의 성격이 짙었다. 회칙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의사정족수 46명(전체 대의원 69명의 2/3 이상)을 채우기 위해 다음날 시험을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겨우 불러내고, 아픈 사람도 붙들어 놓아서 겨우 46명을 딱 채워 회의를 속개할 수 있었다. 물론 전학대회는 중요한 자리고, 회칙 개정도 책임감이 막중한 업무다. 그러나 이렇게 거의 인신구속 수준의 회의를 통해 해치운 회칙 개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50% 투표율을 쥐어짜 얻어진 형식적 대표성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14년만의 회칙 개정이었고 진일보한 내용도 많이 담겨져 있었지만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나 홀로 반대표를 던졌다(찬성 36/ 반대 1/기권 9).


하이에크는 케인즈 경제학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에 케인즈의 오류를 지적했고, 사회주의가 득세할 때 사회주의가 반드시 붕괴한다고 외쳤다. 오랜 기간 그는 갖은 비판을 겪었지만 1970년대 케인즈의 이론이 허점을 보이며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죽기 몇 년 전에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것도 지켜보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아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버지, 지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있어요.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구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하이에크는 『거 봐, 내가 뭐랬어!』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나는 내 제안이 시기상조였을지는 몰라도 머지 않아 내가 뭐랬어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누차 강조하지만 개인 선택의 영역을 강제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올해 총학생회 선거가 50% 규정에 숨이 차서 연장투표와 함께 투표 강권이 학내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광경은 끔찍하다. 정치적 동원이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것을 두 번 세 번 권할 때 그것이 동원이 된다. 의도했던 행위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해도, 그 행위로 유도하려는 시도가 적정 수준을 넘어가면 동원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선의가 충만해서 권유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그것이 동원이다. 가령 열혈 개신교도들이 성경 공부를 권하는 것은 그 지극한 선의에도 불구하고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지겨운 일이다. 그들은 내가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있는 것에 안타까워하겠지만 말이다.


학생회 조직이 앞으로 계속 쇠락한다면 학부 총학생회 선거의 위상이 대학원 총학생회 선거 수준으로 전락할지 모르겠다. 설마 그렇게 까지는 안된다고 해도 꽤 비슷해질 개연성이 있다. 50% 규정으로 그것을 막는 시늉을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이미 시대가 학생회 같은 조직으로 단결하기보다는 제 입맛에 맞는 곳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전현직 학생회 일꾼들이야 못내 섭섭하겠지만 이것은 개인적 감상과는 별개의 문제다. 물론 이런 아쉬움은 남는다. 마음놓고 개인주의 문화를 만끽해도 될 만큼 사정이 나아졌는가 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세상사의 모든 일들이 따져보면 전환기이고, 과도기이기 마련이지만 분명 오늘날의 학생사회는 크나큰 변혁에 직면하고 있다. 도가적 감수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변혁을 인위적으로 교정하려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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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면 가볍다

잡록 2004. 11. 3. 04:34 |
37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학생회장으로서의 생활도 이제 끝나간다. 38대 경영대 학생회장 선거가 끝나면 올리려고 했던 퇴임사를 완성해놓고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떠나는 마당에 무슨 말이 이렇게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고개를 몇 번 갸우뚱하고는 썼던 글들을 싹둑싹둑 잘라냈다. 버혀진 글 조각만큼 내 헛된 집착도 버릴 수 있기를 바랐다.


비단 학생회 일이 아니라 다소 손해본다는 느낌이 드는 일을 할 때면 늘상 도덕경 2장의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란 구절을 떠올린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 즉, 공을 쌓아도 그 공을 주장해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공을 쌓았다면 마땅히 보상을 주어야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상도덕의 근간이다. 이타주의적 희생정신을 가질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미 이래저래 충분한 보상을 받았는데도 마지막까지 단물을 빨아내려는 것은 추한 욕심에 불과하다.


내 임기가 시작되면서 거의 한해 내내 학사지원부와 씨름했던 사물함 교체와 자치공간 비품 확충은 썩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해결이 될 모양이다. 문제는 내 임기가 다 끝나고 11월 말이나 되어야 하나둘 실현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한해 동안 얼굴 붉혀가며 이야기해서 겨우 실현한 것들인데 다음 대로 넘어가야 하는 것이 못내 섭섭했다. 어떻게든 내 임기 만료 전에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적잖이 들었다. 그 때 나는 공성이불거를 떠올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앞으로 내 임기 중에 이룬 것들을 마치 나만의 공인 것처럼 자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여러 가지 실수와 부족했던 점에 대해서도 구구절절이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나란 녀석이 금세 잊혀지는 것에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말았으면 한다. 선배님, 동기들, 후배님들이 알콩달콩 재미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괜히 침 흘리지 말고, 하나둘 나란 녀석을 잊어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37대 고려대학교 중앙운영위원회가 해소되고, 38대 고려대학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꾸려질 때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내심 중앙선거관리위원이라는 직함으로 한달 간 더 연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 맡다가 신임 학생회장에게 물려주는 식으로 해서 중선관위원이라는 그럴싸한 이력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일개 잡일꾼이기는 했어도 3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심히 일했었고, 2년 간 총학생회 선거 개표를 해봤으니 이제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중선관위원이 되어 선거본부들 간의 논쟁을 가늠하고, 징계 여부를 만지작거리는 행위의 유혹은 그렇게 수그러들었다.


며칠 뒤면 35대 총학생회, 3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36대 경영대 학생회, 37대 경영대 학생회, 38대 경영대 선거관리위원회로 이어진 지난 3년 간의 학생회 일꾼 생활을 접게 된다. 가슴 사무치게 느낀 것이 있다면 버리면 가볍다는 깨달음이다. 이제 가벼워서 자유로워진 모습으로, 좀 더 비워낸 모습으로 지인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자질구레한 감상에도 불구하고 잊혀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학우들의 기대와 격려를 잠시잠깐 받은 것에 불과한데도 잊혀짐이 너무 아쉽다. 덧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리라. 서서히 지워지는 나를 발견하며 고독 속에서 내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를 가져야겠다.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것으로 실현되는 의회 민주주의 이어달리기 선수로서의 내 역할이 끝났음을 가슴 아프게 긍정할 것이다.


요즘 들어 이형기의 [낙화] 1연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주문에도 불구하고 가을밤을 제법 뒤척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번의 뒤척임이면 충분하다. 축 늘어지는 것은 꼴사나운 짓이다. 한층 더 밝고 맑은 모습으로 그간 모자란 사람의 빈곳을 채우느라 고생했던 분들에게 참 고마웠다며 충심 어린 감사 인사를 나누고, 정을 담은 술 한잔을 건넬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인생의 보람거리를 찾아 힘찬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대학 새내기 시절의 첫마음은 아직도 뜨겁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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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결정 요지를 보면 “서울이 수도라는 명문화된 헌법 규정은 없지만, 조선시대 한양을 도읍으로 결정한 이후 건국 이후에도 모든 국민이 수도라고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해온 것으로 관습헌법으로 볼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에 대한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관습헌법이라는 낯선 용어도 문제지만, 설령 그 존재를 인정할 경우에도 성문법 국가에서 그 효력을 성문헌법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가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지울 수 없다. 국회의 입법행위와 대통령의 정책 추진에 대해 관습 헌법으로 제동은 건 것을 삼권분립의 원칙을 넘어서는 오바질이다.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은 입법기관인 국회에 위임하고 있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소수의견을 낸 전효숙 재판관을 의견을 경청할만하다. 관습헌법이 억지 춘향이임을 간파한 전효숙 재판관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실 대한민국은 상식이 통하지 않아서 겪은 비용이 너무 크다.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의 변경은 헌법개정에 의해야 한다면, 이는 관습헌법이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입법권을 변경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관습헌법에 대하여 국회의 입법권 보다 우월적인 힘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제40조)고 규정하며, 헌법에 달리 규정이 없는 한 국회의 입법권은 포괄적 대상을 지닌다. 입법권의 주체는 다름아닌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의기관이며 헌법은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대의제를 기본형태로 채택하고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표기관이 입법작용을 통하여 그 이념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은 국회에서 여야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된 법률이다. 2002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대선 핵심 공약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또한 지난 4.15 총선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이러한 대의 민주주의상의 일련의 과정들을 거쳤음에도 관습헌법이라는 논리로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은 납득하기 힘든 처사다. 대통령과 정부, 국회와 일반 국민들도 가늠하기 힘든 관습헌법을 헤아릴 수 있는 헌법 재판관들의 문학가적 상상력과 역사가적 고증력에 무릎을 꿇고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나?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똑같이 취급한다면 관습헌법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독차지한 헌재가 국회의 입법권을 제약할 위험이 크다. 앞으로 열린우리당이 추진할 각종 개혁법안들이 수구기득권 세력에 의해 위헌 소송이 잇따라 제기될 경우 관습헌법을 판별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헌법재판관 9인이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게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헌재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헌법소원은 전원일치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7대 2라는 압도적 다수로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다. 이러한 헌재의 보수성은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수구기득권 세력이 큰 소리 칠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두 가지를 정리해볼 수 있다. 우선 헌재의 권위가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이 비록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간접적으로 민주적 절차를 거치기는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에 비해 민주적 정당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헌법 재판관이 자신의 분수를 망각하고 대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경우에 자신들 스스로가 헌법 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우스운 꼴이 될 것이다. 헌재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관습헌법 같이 억지 짜맞추기식 논리를 남발하다가는 국민들의 분노를 면치 못할 것이다(하지만 분노를 해도 심판을 할 뾰족한 방도는 없는 실정이다ᅳ.ᅳ). 앞으로 민주적 대표성을 확립하고,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헌재를 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참여정부는 이러한 정치적 시련에 굴복하지 말고 지방 분권화와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이 한나라당, 서울시 의회의 선동과 정파적 이해관계에 함몰되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어내는데 실패한 것은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 수구기득권 세력의 악의적인 선동과 저주 속에서도 국민들의 삶의 질이 고루 개선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하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의기소침해졌답시고 개혁입법 추진에 더 이상의 지체가 있어서도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이 위기를 “위대한 기회”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이번 사태에서 긍정적 측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헌재 코미디는 알 수 없는 소리들을 주절거려 우리를 쫄게 만들었던 법관들이 사실 쥐뿔도 아닐 수 있구나 하는 유쾌한 깨달음을 선사해준 것이다. 아~  법관들이 괜히 좋은 우리말 비비꼬아서 사용할 때부터 알아 챘어야했다. 이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는 것을... - [憂弱]

엄마야, 누나야 관습헌법이 보우하는 서울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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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선생의 국궁진췌

문화 2004. 10. 16. 01:03 |
凡事如是 難可逆見 臣鞠躬盡瘁 死而後已. 至於成敗利鈍 非臣之明所能逆覩也.
범사여시 난가역견 신국궁진췌 사이후이 지어성패이둔 비신지명소능역도야

모든 일이 이와 같이 미리 헤아려 살피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신은 다만 엎드려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애쓸 뿐입니다. 일을 이루고 못 이룸, 이롭고 해로움에 대해서는 미리 내다보는데 밝지 못합니다.



유명한 공명선생의 후출사표(後出師表)의 마지막 구절이다. 촉한이 위나라에 비해 영토, 인구, 군사력 모든 측면에서 열세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후출사표에서 “지금 백성들이 궁핍하고 군사들은 지쳐 있지만 할 일을 그만둘 수 없다”는 구절(今民窮兵疲 而事不可息)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던 북벌을 거듭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제갈공명의 안타까움이 묻어 나온다.


별 볼일 없는 나라였던 촉한을 위해 공명선생은 국궁진췌(鞠躬盡瘁)하겠다고 다짐한다. 국궁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굽힌다는 뜻이며, 진췌는 몸이 부서지도록 노력한다는 뜻이다. 결국 국궁진췌는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어리석은 황제 유선을 향한 그의 변함 없는 충절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준다.


인민과 동고동락했다는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죽었을 때 중국인들은 국궁진력이라는 글을 바쳤다고 한다. 인민들을 위해 전심전력했던 그의 국궁진췌한 삶을 애도한 것이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급회장 선거 정견 발표 때 나는 국궁진췌의 심정으로 반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자못 비장하게 읊조렸다.^^; 자유주의자에 개인주의자를 자처하는 내가 이렇게 국가주의 혹은 전체주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국궁진췌에 열광한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나는 불확실성에 기꺼이 투자했던 그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삼국지를 펴들 때마다 당대의 귀재 공명선생이 힘들고 어려운 길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에서 어지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실력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이상을 위해 한결같이 열정을 쏟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링컨이 “한 인간의 됨됨이를 정말 시험해보려거든 그에게 권력을 주어보라”고 말했듯이, 권력의 단맛에 취하지 않기란 참 힘든데도 그 유혹을 뿌리친 공명선생에게서 서늘함을 느꼈다. 한 사람에게 느낀 어지러움, 아름다움, 서늘함이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공명선생은 일의 성패와 유불리는 따지지 않고 묵묵히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부지런히 대보고 따져서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국궁진췌하기보다는 안전을 위해 분산투자(포트폴리오)에 더 열중할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신의 효용극대화를 위해 살다가도 가끔은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최적선택(optimal choice)을 포기할 줄도 알고, 손해보면서 남 좋은 일을 잠시라도 해보는 것을 유쾌한 경험으로 추억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공명선생을 끔찍이도 흠모하지만 내가 꿈꾸는 세상은 굳이 국궁진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 진보하는 사회, 착한 사람들의 손해를 먹고 지탱되는 사회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제 몫 챙기기로도 꾸려지는 사회가 그것이다. 여기서 제 몫 챙기기란 남의 자유와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한에서 내 소신껏 살면서 내 이익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상도덕을 지켜가며 내 것을 쟁취하는 것이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인 ‘보통선(普通善)’의 세상이다.


어릴적 보통선이라는 개념을 꺼내면서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 좋아했으나 경제학에서 말하는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과 매우 유사함을 발견했다. 결국 나의 뜬구름 잡는 소리는 참신하지도 못하고 그저 메마른 사회가 착한 사람들의 눈물로 적셔지는 것이 못내 불편한 ‘보통 사람’의 투정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전통적 의미의 적극적 선량함에 의존하기보다는 소극적 의미의 보통선이 큰 힘을 발휘하는 사회가 더욱 합리적이라는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내가 궁극적으로 국궁진췌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어쩔 수 없이 국궁진췌가 필요한 때가 있다. 사실 모든 시대는 보기에 따라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공명선생도 위나라가 떡 하니 버티고 있지 않았다면 시문이나 읊으며 한담을 즐기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핑계의 과도기에서 내게 국궁진췌의 과제가 주어진다면 반가운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질 것이다. 특히나 자유의 적들과는 국궁진췌해서 싸우는 것이 내 나름대로 공명선생을 따르는 일일 것이다. - [憂弱]


추신 - 고등학교 때 공명선생에게 바쳤던 헌사를 옮긴다.^^;

[공명선생을 좇다]
- 대륙의 구석에서 채 피지 못한 웅지여...

혹자는 선생의 공을 논하고
혹자는 선생의 과를 논할 제
나는 한 인간이 영원히 사는 것을 본다.

신선의 꿈은 접어두고
세진에 뒤덮이고
잡인과 어울리며
피를 토해내셨지만
선생의 터럭 좇지 못함을 탄식하니.

질퍽한 형극의 길을
기꺼이 필마단기(匹馬單騎)함은
썩어빠진 서생의 가련한 업이로다!
<2001/01/12>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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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근처의 창덕궁(昌德宮)으로 향했다. 창덕궁은 태종이 창건한 궁궐로 경복궁에 재난이 생기거나 전염병이 돌 때 왕의 대피처로 삼거나 왕이 무료함을 피해 잠시 건너 가 쉬는 이궁(離宮)이다. 태종이 창덕궁을 창건한 이래로 역대 임금들이 경복궁보다 창덕궁에 머물렀다. 특히 임진왜란으로 불탄 경복궁보다 창덕궁이 먼저 중건되자 광해왕 이후로 역대 임금들이 창덕궁에 머물면서 경복궁 중건에 힘을 기울이지 않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으로서 경복궁을 능가하는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던 곳이다. 창덕궁은 금원을 비롯하여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 있어 가장 볼만한 고궁이며,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976년까지는 자유관람제도를 실시하였으나 관람객들이 문화재와 원림을 훼손하는 경우 빈번하여 3년 간의 보수공사 끝에 1979년부터 상당 면적의 제한 구역을 설정하고 안내에 의한 시간제 관람을 실시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에 살면서도 창덕궁에 가보지 않은 경우가 의외로 많다. 처음에는 불평이 나오지만 창덕궁을 한 번 둘러보고 나면 왜 보호에 안간힘을 쓰는지가 수긍이 된다. 일반관람코스는 안내원을 따라 1시간 15분 정도 둘러보는 것이다 보니 안내원 따라가기 바빠서 궁궐 구석구석을 음미할 수도 없고, 사진 몇 장 찍기도 바쁘다. 하지만 그 덕에 한적하게 즐길 수 있다. 날씨가 안 좋은 탓도 있었지만 익구와 청원을 포함해 8명의 관람객이 한 조가 되어 창덕궁을 둘러보았으니 말이다.


입장 시간을 기다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들어서는 것부터 관람이 시작되었다. 지금의 돈화문은 1609년(광해왕 원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돈화란 중용에 나오는 표현으로 大德敦化(큰 덕은 백성들을 가르치어 감화시킴을 도탑게 한다)에서 따왔다. 돈화문을 지나면 금천교(錦川橋)가 나오는데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600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다리 남쪽에 해태상, 북쪽에 거북상을 배치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금천교 그림을 가지고 풍경화를 그렸던 기억이 나서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


금천교를 좀 더 음미하고 싶었으나 이미 안내원은 인정문을 지나고 있었다. 이어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에 도착했는데 창덕궁 내에 있는 건물 중 유일한 국보이다. 창경궁 명정전보다는 규모도 크고 단청도 선명하며, 내부에는 전등이 설치되어 있는 등 호화로움이 더욱 돋보였다. 월대에는 청동 드므를 발견할 수 있는데 드므란 ‘입이 넓은 큰 그릇’이란 뜻의 순우리말로서 여기다 물을 담아 두어 화마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고궁 건물들을 보면 이 드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국 자금성에도 이 드므 비슷한 방화수조가 있는데 우리처럼 작은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 키 만큼 거대한 것이라 상징적 의미를 넘어 실용적으로 화재를 진압하는 데도 쓰였을 것 같다.^^; 목재 건물은 불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런 장치를 둔 것이지만 우리네 궁궐은 허구한 날 불에 타고 다시 짓기를 반복해야 했다.


인정전을 나서 임금이 평소에 국사를 논의하던 편전(便殿)인 선정전(宣政殿)을 지나치게 되었다.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그저 옆으로 지나가기만 했는데도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현존하는 궁궐 전각 중에서 유일한 푸른색의 유리기와였다. 맑은 날에 청기와가 햇살에 비쳐 눈부시게 빛나는 광경을 상상하니 황홀하기 그지 없었다. 자금성의 황금빛 기와보다 윤기 나는 파란 기와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청기와는 회색조의 일반 기와보다 세 배 정도 비싸다고 하는데 조선 초기에는 몇몇 사찰에 청기와를 썼고, 궁궐 건물로는 경복궁의 근정전과 사정전만이 청기와를 이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근정전 만큼은 청기와를 덮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앞으로 복원하는 건물 중에서 청기와를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정전 오른쪽으로 내전의 중심이 되는 희정당(熙政堂)과 대조전(大造殿)이 있었다. 이 곳에는 그나마 내부를 공개해서 서양식 가구들도 볼 수 있었다. 왕의 침전이 딸린 편전인 희정당과 왕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두 건물 다 화재로 소실된 것을 경복궁의 전각을 헐어 새로 지은 것이다. 대대적으로 중건된 이후 법궁의 지위를 회복한 경복궁에 대한 훼손의 일환인 셈이다.


드디어 창덕궁 후원(後苑)으로 향했는데, 후원은 궁궐의 북쪽에 있다하여 북원(北苑), 왕족을 비롯한 제한된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다하여 금원(禁苑)이라 불리기도 했다. 흔히 비원(秘苑)이라고도 하는데 비원이라는 명칭이 창덕궁까지 통칭하는 것으로 잘못 쓰여지기도 한다. 이는 창덕궁을 폄하하는 말로써 창경궁을 창경원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므로 삼가야 한다. 비원은 원래 창덕궁 후원을 관리하는 기관의 이름 비원(秘院)에서 시작되었으나 1904년부터 秘院을 秘苑으로도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왜놈들이 갖다 붙인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얽혀 알쏭달쏭하다. 창덕궁 홈페이지를 보면 후원은 뒤뜰이라는 뜻으로 일반민가에도 적용되는 만큼 왕궁의 원유를 후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격에 맞지 않아 후원의 명칭에 대해 여러모로 검토 중이라고 한다. 조만간에 얼른 결판 내서 명칭에 대한 혼란을 줄여야 할 것이다.


후원에 들어서자마자 그친 듯 했던 비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우산을 펴들어야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부용정(芙蓉亭)과 부용지다. 부용지는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이 운치있게 있어 경복궁 향원지와 마찬가지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표상하고 있다. 부용지에 물을 공급하는 이무기 조각이 쉴새없이 물을 내뿜고 있었다. 부용지 옆에 있는 부용정도 겹겹이 이루어진 처마가 화려했다.  


부용지 옆으로 자리한 주합루(宙合樓)는 아래층은 왕립도서관인 규장각이 있고, 위층은 열람실로서 이곳에서 부용지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주합루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이 굳게 닫혀 있으니 아쉽게 돌아서야 했다. 정조의 친필인 宙合樓 편액도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곳에서 정약용,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이 적서의 구별 없이 탕평정책을 수행하며 활동했을 것을 생각하니 왠지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정조의 근위세력 양성소였던 규장각은 점차 확대되어 내규장각과 외규장각으로 분리되게 된다. 정조는 영구히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만들지만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게 약탈 당한 후 아직까지도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을 놓고 지리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천만다행으로 규장각 소장 도서는 일제시기 경성제국대학으로 이전되었으나, 일본으로 반출되지 않고 현재 서울대학교 부속기관인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부용지 동쪽의 영화당은 영화당(暎花堂)은 임금이 신하들과 꽃구경을 하고 시를 지으며 노닐덧 곳이었으나 정조 때부터 과거시험을 보는 장소로 바뀌어 임금이 친히 참석한 가운데 과거시험이 치러졌다고 한다. 과거 시험의 응시자들은 영화당의 앞마당인 춘당대에서 과거 시험을 보았는데 지금은 담으로 막혀 있고 화장실 등의 휴게시설만이 있을 뿐이다. 영화당에서 큰 글씨로 과거의 제목을 내걸면, 아래쪽 춘당대에 앉아 있는 응시자들이 머리를 쥐어짜내서 멋진 글을 지어내는 광경을 상상해보았다. 정리해보면 영화당에서 시험 보고, 합격자들은 부용정에서 축하해주고, 규장각에서 책 읽히고 공부시키는 원스탑(one-stop) 센터인 셈이다.^^;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걷다가 통돌을 갈아서 ∩자 모양으로 만든 불로문(不老門)을 지나며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불로문을 지난 왼쪽에는 기오헌(奇傲軒) 의두각(倚斗閣)이 나무들에 가려져서 어렴풋이 보였다. 기오헌과 의두각은 효명세자가 지은 건물로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로서 효명세자가 독서를 즐기며 나라 일을 생각하던 곳이다. 효명세자는 1827년 부왕인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펴고 안동 김씨의 세도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30년에 22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효명세자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의 아들 헌종이 즉위한 뒤 익종(翼宗)에 추존되었기 때문이다. 익구의 翼자인 만큼 웬지 모를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익종은 훗날 고종에 의해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어 문조라고도 불리며 신위가 종묘 정전에 모셔져 있다.


조금 더 거닐다 보면 연경당(演慶堂)이 보인다. 1828년에 효명세자가 사대부 집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은 민가형식의 집이다. 순조는 효명세자에게 국정을 맡기고 사대부 가옥을 본뜬 연경당에 가끔 들렀다고 한다. 방문할 때는 옷차림에서부터 모든 생활 양식을 사대부의 제도에 따랐다고 한다. 최고의 목수가 정성을 다해 지은 집으로, 당시 양반 가옥을 지을 때 모범이 되었다. 사랑채와 안채가 샛담을 쌓아 경계를 삼고 일각문 하나를 내어 통행할 수 있게 하였다. 사랑채에 손님이 오시면 이 일각문으로 하녀가 나와서 신발 개수를 세어서 음식 준비를 얼마나 할지를 가늠했다는 안내원의 설명으 재미나다. 남녀칠세부동석은 이제 확실히 옛말이 되었음이리라. 서고인 선향재(善香齋)와 선향재 뒤 편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농수정(濃水亭)도 저마다의 멋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연경당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가니 주합루 뒤 편에 있는 희우정(喜雨亭)과 서향각(書香閣)을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보를 하며 내려오는 길에 내의원(內醫院)이 보였다. 본래는 세자가 학자들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던 성정각이었으나 1910년대부터 왕과 왕족의 병을 치료하고 약을 조제하던 내의원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행선지로 어차고(御車庫)를 들렀다. 과거에는 빈청(賓廳)이라 하여 정승들이 편전에 들기 전에 대기하며 국사를 의논하던 장소였으나 1910년대 이후부터 어차고로 이용되었다. 현재는 순종과 황후가 사용하던 1918년 캐딜락, 1914년 다임러와 평교자, 초헌 등의 조선 시대의 교통수단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주정소인데, 임금이 궁밖에 행차할 때 부품을 분해하여 싣고 가다가 쉬실 때 사용하는 것으로 간이 휴게소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재미난 것은 이 것을 72조각으로 해체시켜 나누어 가지고 가다가 휴식시간에 다시 조립을 한다는 점이다. 진열창 너머로는 자세히 볼 수 없으니 잘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로써 창덕궁 관람을 마치고 금호문(金虎門)을 나섰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즐기려는 한국의 정원 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창덕궁은 그나마 많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이 파괴된 것이라고 하니 국권이 약할 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얼마나 침탈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경복궁의 경우는 고작 10분 1정도만 남아 있다고 하니 앞으로 지속적인 복원, 보수 공사가 시급하다.


2004년 5월 1일부터 기존의 창덕궁 일반관람코스에서 후원의 일부 구역인 관람정, 존덕정, 옥류천 지역을 추가로 개방하는 특별관람코스가 만들어졌다. 옥류천 지역은 1976년 출입이 금지된 이래 28년 만에 개방되는 곳인데 관람 횟수와 인원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 관람하기가 녹록지는 않다. 창덕궁 관람은 안내원 따라 가기 바쁘기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많은데 익구는 조만간에 특별관람코스로 관람해서 못보고 놓친 부분도 확인하고, 새로 개방된 비경도 감상할 계획이다.


창덕궁을 나서는 길에 때마침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이 돈화문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궁궐문을 개폐, 경비, 순찰하는 업무를 수행한 수문군이 교대하는 의식으로 전통 궁중문화의 재현행사로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어, 영어에 이어 일본어 안내를 해주는데 그만큼 일본 관광객이 많다는 뜻이다. 조선 궁궐들을 이토록 파괴한 것이 누구인데 우리 나라 궁궐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참 많았다. 복원, 보수 공사도 서두르면서 지금은 턱없이 낮게 책정된 우리의 문화 유산 관람료도 조금은 높여서 재정을 늘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본디 여행을 좋아하지 하지 않는 익구지만 역사 기행 형식은 앞으로도 종종 다니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창덕궁 특별관람코스와 더불어 덕수궁, 원구단, 아관(구러시아공사관) 코스와 남산공원 내 한옥마을, 와룡묘 코스 같은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서 짬을 내서 둘러볼 예정이다. 늘 바쁘게 사는 우리들이지만 그 정도 여유는 약간의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낼 수 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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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구는 10월 1일 청원이와 함께 종묘, 창경궁, 창덕궁을 다녀왔다. 역사학도인 청원과 고궁 마니아인 익구가 어렵사리 일정을 맞춰서 오랜만에 서울 시내 나들이를 떠났다. 돌아다니는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였지만 중학생 때 가본 이후 무척 오랜만에 둘러본 고궁 나들이는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좋은 휴식이 되었다는 평가다.


처음으로 간 종묘(宗廟)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사당으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종묘는 사당이기 때문에 정숙 표지판도 보이고, 무척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흐르는 곳이다. 본래 종묘에는 화려한 꽃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하는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종묘가 너무 침침하다며 꽃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지금도 몇 그루의 꽃나무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나무에 대해 문외한이나 나무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못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공민왕신당이다. 망묘루 동쪽에 별당으로 고려 31대왕인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 창건시에 건립된 곳이다. 정식 명칭은 ‘고려공민왕영정봉안지당(高麗恭愍王影幀 奉安支堂)’으로서 조선왕조의 신위를 모신 곳에 고려의 왕이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특별한 문헌기록은 없다고 하는데 왕조 교체기에 고려에 아직 애정이 남은 백성들을 달래기 위한 처사였을 것 같다고 제멋대로 추정해봤다. 신당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이 있다고 하는데 굳게 닫혀 있어서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다음으로 종묘 정전(正殿)으로 향했다. 여느 고궁과는 달리 단청을 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사를 위한 건물임을 알 수가 있다. 종묘 정전은 남문에서 보면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나 되는 묘정 월대(月臺, 대궐의 전각 앞에 놓인 섬돌)가 넓게 펼쳐 있다. 이 공간은 제관들이 제사를 드릴 때 대기하는 공간인데, 묘정 월대는 단(壇)의 일종으로 지면으로부터 단을 높여 다른 공간과 성격이 다르게 하늘로 이어지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월대 가운데에는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남북으로 나 있다. 검은 돌로 되어 있는 신로는 신만이 지나가는 길이라고 했지만 기분 내며 터벅터벅 걸으니 기분이 묘했다.


종묘 정전은 조선왕조가 계속 되어 모실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옆으로 증축하여 오늘날과 같이 늘어졌다는 점에서 마치 살아있는 건물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지금은 모든 재실이 꽉 차있는 상태라고 한다. 조선왕조가 계속되었다면 정전이 옆으로 더 길어졌을지도 모르고, 지금도 증축을 하고 있어야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우스웠다. 태조가 종묘를 건설할때는 재실이 5칸 있었으니 정종이 승하하자 재실이 모자라게 되었다. 결국 사당을 하나 더 짓기로 하고 정전 옆에 영녕전을 세우게 된다. 태조의 4대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위패가 영녕전 중앙에 자리한 4칸의 재실을 차지하고 생전 별로 큰 업적이 없거나 평가가 좋지 못한 왕들도 아예 영녕전에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세조가 영녕전으로 물러나야 할 시기가 오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 중종의 신주를 모시면 세조의 위패가 영녕전으로 가야하는데 명종은 자신의 직계조상인 세조의 위패를 정전에서 빼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결국 정전을 4칸 증축하고 11칸으로 만들었고, ‘不遷之位’라고 하여 업적이 훌륭한 왕인 경우 4대조까지 모신다는 계산에 넣지 않고 위패를 영원히 모시는 편법(?)을 쓰기로 한다(우리궁궐지킴이 누리집(http://www.palace.or.kr) 에서 이상해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의 [종묘를 다시 본다] 참조했음). 세조에 의해 쫓겨나 죽임을 당했던 단종의 경우 숙종 때 명예회복이 되어 영녕전에 간신히 모셔져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세조를 위한 억지가 영 마뜩지 않다. 또 이렇게 세조를 위해 애썼던 명종 자신은 영녕전에 모셔 있다는 것도 우습다.


그 후 두 차례의 증축을 거쳐 지금의 19칸으로 늘어났고, 정전을 증축하면서 자연히 영녕전도 늘어났다. 정전과 영녕전에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추존된 왕들도 많이 모셔져있는데 반해 연산군, 광해군은 정전, 영녕전 어디에도 모시지 않았다. 새롭게 평가받는 광해왕(개인적으로 광해왕으로 높여 부르고 있음)의 경우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조선 시대 궁궐의 상당수는 광해왕 시절에 중건된 것이 많다. 지금의 궁궐이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광해왕의 공이 큰데 아쉽게도 정전과 영녕전이 지금은 꽉차 있어서 모시고 싶어도 모실 길이 없다.^^;


정전 바로 옆에 있는 종묘 영녕전(永寧殿)도 정전과 거의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으나 규모 면에서 작다. 하지만 무지막지하게 길어서 사진기에 딱 잡히지도 않는 정전보다는 인간적이다. 종묘에는 사실 정전과 영녕전 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건축물이 없기 때문에 대강 생략하고 창경궁으로 향했다. 창경궁과 종묘는 서로 통해있어 입장료를 내면 둘 다 돌아볼 수 있다. 종묘와 창경궁을 잇는 육교를 건너는 마음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은 일제가 이 곳의 지맥을 끊어 동서로 길을 뚫었기 때문이다. 도로 조성을 빌미로 본디 연결되어 있던 창경궁과 종묘의 지맥을 훼손한 일제의 만행이 새삼 떠올랐다.


창경궁(昌慶宮)은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탔으나 1616년(광해왕 8년)에 주요 건물들을 재건하여 완공하였다. 이 보다 7년 앞서 창덕궁이 재건되어 법궁(法宮, 왕이 머무는 공식 궁궐들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는 궁궐)이 됨에 따라 창경궁도 창덕궁과 인접한 관계로 조선왕조 역사의 중요한 무대로 활용되는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조선 말기부터 왜놈(여기서부턴 ‘일제’라는 말보다는 ‘왜놈’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만행이 가득하다)들이 엄청난 훼손을 했다. 꽤 오랜 기간 창경원으로 격하되어 불리던 것을 1983년 동물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이관시키고면서 창경궁으로 회복되었고 벚꽃나무 등도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으로 교체되는 등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육교를 통해 들어간 창경궁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함인정(涵仁亭)이다. 함인정은 사면이 모두 트인 형태의 정자로 영조가 문무과에 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우선 정전인 명정전부터 둘러보자는 생각에 외전과 내전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에 있는 빈양문(賓陽門)을 지나 명정전(明政殿)으로 향했다.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이 중층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법궁보다 격이 낮은 이궁(離宮)이기 때문에 덕수궁 중화전처럼 단층으로 되어 있어 아담한 느낌을 준다. 광해왕 때 중건된 것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어 조선 시대 궁궐 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얼마전 다녀온 중국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과 비교했을 때 너무 초라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명정전을 지나 숭문당(崇文堂)을 거쳐 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을 향했다.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행각이다. ᄆ자형의 건물로 방에는 다기들이 놓여 있었다. 마루에 슬리퍼가 놓여져 있어 올라가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거닐어 보다가 문득 다기가 놓인 방석 위에 앉아 사진을 찍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결국 방으로 슬쩍 들어가 차를 마시는 자세로 사진 한 장을 간단히 찍고 나왔다.^^; 고궁 전각 중에 이렇게 들어가 볼 수도 있고, 방안에 이것저것 전시도 해놓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전 건물들인 통명전(通明殿), 환경전(歡慶殿), 경춘전(景春殿), 양화당(養和堂)은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라 대강 훑어보고 창경궁 관람을 마쳤다. 조금 올라가면 춘당지(春塘池)와 식물원이 있기는 하지만 권농장(勸農場) 자리에는 연못을 파서 크게 연못을 만든 춘당지나 아직 철거하지 못하고 흉물스럽게 있는 식물원에 정이 가지 않아서 생략하기로 했다. 창경궁은 건물들이 띄엄띄엄 있고 너른 공터들이 많은데 본디 전각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던 것을 왜놈들이 이래저래 박살내고 심지어 동물원으로 쓰기까지 한 것을 정리하고 나니 지금의 공터가 된 것이다.


기가 막힌 일화가 하나 있는데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합방 일자를 고르고 있던 시기에 창경궁에 서양식의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을 만들었고, 전각의 내부 수리를 통해 진열 공간을 꾸며 도굴한 우리 유물들을 전시하였다고 한다. 이토가 고종을 안내해 창경궁 박물관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고종이 푸르고 아름다운 그릇들을 보고 이게 어느 나라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토가 “이것은 귀국의 고려시대의 도자기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고종이 “우리나라에는 이런 것이 없다. 임금인 나도 모르는데 이게 어디서 나왔느냐”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토는 차마 왕릉도굴품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대강 얼버무려 넘겼다고 한다. 고려청자 전문 장물아비 이토 히로부미... 총 맞아 잘 죽었다(이 일화는 우리궁궐지킴이 누리집(http://www.palace.or.kr)에서 이구열 한국근대미술연구소장의 [일제하 문화유산 수난사] 참조했음).


창경궁을 나서기 위해 홍화문(弘化門)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옥천교(玉川橋)는 복원 공사가 한창이라 돌아서 창경궁을 나갔다. 중국 자금성이나 원명원 등도 보수 공사가 한창이던데 우리나라 고궁을 비롯한 문화유적들도 보수, 복원 공사를 끊임없이 해서 옛 모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경제 침체 속에 힘 없는 문화재청이 예산을 더 타서 쓸 여력이 있을지는 주장하는 나조차 믿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수하고 복원한 것이 훗날에는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명나라 시대부터 원형을 비교적 많이 유지해 온 자금성도 꾸준히 보수, 복원하고 있는데 이미 엄청나게 훼손된 우리나라의 궁궐은 더 많은 시일과 경비가 소요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궁궐 답사기 2부 창덕궁 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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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북한의 위협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김용갑 의원이 국회 5분 자유발언 시간에 노기가 폭발해서 그만 고꾸라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김용갑은 “제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정신을 차리고…”라고 외치다가 초특급 할리우드 액션으로 살포시 쓰러졌다. 기왕이면 발언 단상을 안고 과감하게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서 뇌진탕을 유발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짙게 남겼다.


국가보안법 폐지 결사반대의 1인 시위에 이어 그가 보여준 추한 작태들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진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김용갑이 피켓을 들고, 졸도를 해야 할 만큼 우리 사회는 조금이나마 나아진 셈이다. 여기서 병역면제 받은 두 아들을 이라크에 의용군으로 보내겠다는 비장한 자기 희생의 선언만 있었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우리나라의 자칭 애국지사들은 남의 자식들의 피땀을 쥐어짜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


비단 김용갑 뿐만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단 한 명의 소수 의견도 없이 전원일치로 국가보안법에 합헌 결정을 내렸고, 대법원은 한술 더 떠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오바질을 했다. 파시스트들이 국가보안법을 정권 유지의 도구로 삼아 무고한 시민들의 인권을 유린할 때 곁에서 짝짜꿍하던 사법부는 지금까지 일언반구의 반성도 없이 오만하고 뻔뻔하게 입을 놀리고 있다.


또 자칭 사회원로라고 불러주기를 바라는 늙은이 1400여명은 군부 독재에 기생하던 그 옛날의 영광을 추억하며 지금이 위기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당신네들이 활개치던 시절만큼 위기가 또 어디 있었다고...ㅡ.ㅡ;). 어디 그 뿐인가,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나 조계종 법장 총무원장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한다며 자기네들의 신앙에 스스로 침을 뱉고 앉아 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몇 줄 안 되는 법조문 앞에서 아직도 마음 속에서 냉전을 벌이고 있는 분들이 넋을 잃고 헛소리들을 하고 있다(그래. 조선일보 사설에서 말하는 “어른 없는 가정에서 보고 배우지 못하고 자란 막된 인간의 불량기까지 느껴질 정도”인 녀석 중에 하나가 바로 나다^^). 정말 국가보안법은 멀쩡한 사람을 싸이코로 만들고,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고, 건강한 사람을 병원신세 지게 하는 악법인 것이다.


김용갑이 몇 번 더 까무러치더라도, 보수적 법관들이 몇 번 더 얼굴에 철판을 깔더라도, 자칭 원로들이 몇 번 더 성명을 발표하고 앓는 소리해도, 김수환이 몇 번 더 하느님을 모욕하며 양심의 눈을 감더라도, 박근혜가 몇 번 더 게거품을 물면서 새끼 박정희들과 손을 맞잡더라도... 우리는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원칙을 지켜야한다. 극우파들이 총궐기하여 결사항전의 자세로 나오는 만큼 우리 또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 앞에서 한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줄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 먹듯이 김용갑 쇼 보고 국가보안법 폐지하면 된다.


김용갑이 구역질나는 쇼를 벌이느라 병원에 들락날락 거리면서 나갔을 국민의 혈세가 아깝다. 그에게는 한가위 선물로 떡 대신 질 좋은 참나무로 만든 관 하나 장만해 주는 것을 어떨까?^^; 김용갑은 대통령과 여당이 정신 차려야 한다며 사자후를 토했지만, 제발 정신 차릴 사람이 누구인가? 진정 눈물 흘리며 참회할 사람이 누구인가? 정녕 신이 벌할 사람이 누구인가? 풍성한 한가위 연휴에 병역면제 받은 두 아드님과 함께 1인 시위 피켓 제작만 하지말고, 이 질문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해 볼 것을 권한다. - [憂弱]

국가보안법 폐지에 투자하세요. 당신의 영혼이 풍족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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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하고 싶다면

잡록 2004. 9. 22. 03:52 |
시름시름 앓던 컴퓨터가 그에 하드디스크가 통째로 날아갈 위험에 처했다. 그간 틈틈이 작업했던 수많은 글조각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질 위기라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컴퓨터가 간간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부리나케 백업들을 해서 주요한 문서들을 천만다행으로 보전할 수 있었다.


A4 수 백장 분량의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글과 수 십장 분량의 내가 적어 둔 숱한 글조각들을 가까스로 살리면서 “실존(實存)”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실존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원 국어시간이었다. 당시에 어떤 지문에서 실존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주셨다.


“지금 뒤를 돌아보지 말고 생각해봐. 이 교실 뒤의 창문에 붙여진 글씨가 무슨 색깔이고, 크기는 얼마나 되지? 늘 자주 보는 것이지만 무심코 지나가 버린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실존한다고 볼 수 없지.”


대강 이런 식이었다. 실존이라는 말은 매우 다양하게 쓰이므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본질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편할 것 같다. 창문에 붙여진 글씨의 색깔과 크기는 본질을 형성한다면, 그 창문에 글씨가 붙여져 있는지, 검은 색깔인지, 크기는 어떤지 하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 실존인 셈이다.


문득 컴퓨터가 말썽을 일으켜서 그간의 자료들이 다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했던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 수많은 텍스트 중에서 내게 실존하고 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말이다. 점점 많은 양의 정보만을 수집하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지나친 경계(hyper-vigilance)’에 빠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게 실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세세한 부분까지는 기억할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불현듯 떠오르는 상념들은 일단 붙잡아 두고 볼 일이지, 실존할 가능성을 따져가며 선별하는 것은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 할 짓은 아니다. 내게 실존하는 부분은 쥐꼬리만할지 몰라도 그 실존의 영역을 추출해내기 위해서는 바닷물과 같은 너른 모집단이 있어야 한다. 우물에서 건진 쥐꼬리보다는 바닷물에서 건진 쥐꼬리가 더 통통하고 빛깔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아직은 좀 더 텍스트의 바다를 항해해도 무방할 듯 하다.


실존의 고독은 사람 사이에서 더 두렵게 다가온다. 스쳐 가는 많은 인연 중에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란 녀석이 실존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남을 시험하고 싶은 유혹일랑 뿌리치고 그저 딛고 있는 자리에서 진정함과 성실함으로 대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실존은 대개 양(量)이라기보다는 질(質)의 문제이기 때문에 너무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실존하고 싶다는 욕심을 채우고 싶다면 절차탁마하며 내 자신을 가꾸는 느긋함을 가져야한다.


살아가면서 내 안에 실존하고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내게 익숙한 것에 식상함이라는 멍에를 씌우기보다는 감사의 월계관을 선사해야 한다. 익숙함의 축복, 실존한다는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인생을 함부로 대충 살지 못한다. 좀 더 꼭꼭 씹어서 충분히 소화된 것만을 나누려는 치열한 영혼들이니까 말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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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정정해서 들어간 행정학개론 강의에서 당장 이틀 뒤까지 [유토피아]에 대한 과제물을 제출해야 하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이상하게 과제가 너무 하기 싫어서 계속 잠만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책도 대충 읽고, 그간 썼던 글조각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대강 만들어서 냈다. 했던 이야기 또 하는 것이 자꾸 반복되어 내 자신이 태만해지지 않기를 경계하지만 가끔은 이런 호사를 부리는 재미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1. [유토피아] 내용 고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는 산업자본주의가 싹트던 초기 자본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쓰였다. 이 책은 저자가 이상향 ‘유토피아’를 방문한 라파엘에게서 들은 유토피아의 제도와 풍속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현재의 유럽 사회는 흉년이 든 해의 연말에 부잣집 곡간을 낱낱이 뒤지면,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생명을 잃는 사람을 먹이고도 남을 만한 곡식을 찾아낼 수 있으면서도 참혹한 결과가 피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이 책 전반에 흐른다. 귀족 혹은 자본가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유토피아를 통한 대안 모색을 시도한다.

  유토피아에서는 여자들, 성직자/수도자들, 귀족/지주들과 그들의 가복들, 거지들 등을 모두 노동에 종사시킨다. 모든 인간이 노동을 함으로써 하루에 여섯 시간만 일을 해도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게 만들며, 나머지 시간은 교육을 더 받는 데 여가를 사용하는 등 기호에 따라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 필요한 물건은 무엇이든 간에 그는 값을 치르지 않고 가져올 수 있는데, 모든 것이 공공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공동 창고가 가득 차 있는 한, 결핍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공정한 분배를 받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나 거지가 있을 수 없으며,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이 모두 부자인 셈이다.

  유토피아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가 사유재산제의 폐지인데, 사유재산이야말로 만악의 근원이라는 사고가 바탕에 있다. 즉, 화폐가 없는 경제, 모든 것을 공유하고, 꼭 필요한 것만을 집중적으로 생산함으로써 불필요한 노동을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통해 모든 시민의 경제적인 평등과 계급없는 사회가 이룩되고, 인간다운 활동을 위한 자유 시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해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든다. 다소 단순하고 허황된 감이 있지만 유토피아는 평등주의적 이상에 기대어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2. 유토피아의 한계
 
  지적 쾌락을 추구하는 풍족한 유토피아 사회의 주된 특징은 획일성이다. 시민들은 모두 똑같은 모양,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사는데, 2년에 옷 한 벌 씩 받는다. 또한 결혼과 가정의 문제도 국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는데, 부부가 이혼을 원하는 경우에도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엄격한 통제사회의 단면은 공동 식사에 대한 묘사에서 엿볼 수 있는데 각 가정에서의 식사는 사실상 금지되어 있고, 모든 사람들은 마을회관 같은 공공 장소에서 공동 식사를 하게 되어 있다. 매일 마을회관에서 도덕적인 설교를 듣고, 노인들의 평가를 받아가며 식사를 해야한다. 한편, 여행을 할 때 일일이 허가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이동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또한 사회를 문란하게 하는 사상과 사람들은 도시에서 영원히 추방되었고 비합법적인 집회도 엄격히 금지된다. 이 대목에서 ‘유토피아 전체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라파엘은 유토피아인들은 야심, 정치적 분쟁 등 모든 불상사의 근원을 제거해 버렸다고 찬사를 늘어놓지만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화폐를 없애고, 도덕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완전히 제거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실현수단인 엄격한 통제 메커니즘이 24시간 돌아가야지 겨우 실행되는 초라한 몰골에 지나지 않는다. 내면의 성숙을 위한답시고 외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은 제약하는 것은 또 다른 극단주의적 폭력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 역사나 마르크시즘 역사는 사랑의 이름으로 이룩한 증오의 역사다. 그들이 내건 사랑이 그리 크지만 않았더라도, 그들이 역사 속에서 실천한 증오의 크기가 그렇게 엄청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나 마르크시즘을 포함한 모든 유토피아니즘이 그려온 유토피아는 먼 미래나 과거, 또는 외딴 섬에 설정돼 있다. 그들이 그리는 유토피아가 지금 이곳과는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는 사랑, 우애는 무책임하게 클 수 있었고, 그 반동으로 그들이 실천한 증오도 덩달아 그리 클 수 있었다.

   - 고종석, [자유의 무늬](2002), 개마고원 刊, 233~234쪽

  유토피아 사회 또한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일이 수행된다. 그 사랑이 크기 때문에 더욱 엄격하게 감시하고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절대선의 경지에서의 이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유토피아 시민들을 안심하게 만들고, 반대에 대한 철저한 탄압이 유토피아 사회를 지탱하는 힘인 것이다. 유토피아는 개인의 행복을 최대화시켜줄 것처럼 보이지만, 그 행복은 집단의 위계질서 앞에 순응하고, 전체주의적 생활양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사적 영역을 말소시키고 거대한 집단 속에서만 안온함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유토피아는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보여주는 디스토피아(distopia)와 종이 한 장의 차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토피아의 열정이 지나치면 개인의 공간을 소멸 당하고, 순응 속에서만 자유를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결과 순수에 대한 강박과 조급증 때문에 자신의 네모 반듯한 기준에 들어 맞게 하기 위해 여분을 덜어내고, 부족함을 억지로 채우는 무리수를 두는 경우를 역사상 많이 보아 왔다. 십자군 전쟁도 이교도의 손아귀에서 성지를 수복하자는 거룩한 사명을 띠고 시작되었고, 마오쩌둥의 문화혁명도 혁명사상 고취를 통해 인민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약속했으며,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 또한 이라크에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라고 강변하고 있다.


3. 점진적 사회공학의 추구
  
  유토피아 논의와 관련하여 칼 포퍼의 점진적 사회공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칼 포퍼는 유토피아니즘과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점진적 사회공학을 주창한다. 이것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는 추상적인 선의 실현을 위해 힘쓰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악은 직접적인 수단에 의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유토피아 건설로 악을 간접적으로 제거할 생각말고, 오늘의 희생을 쥐어 짜내기보다 지금의 고통을 덜어내는 데 힘쓰라는 것이다. 이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실현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하려 하기보다는, 존재하는 것이 명백한 악, 피할 수 있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데 애쓰라는 것이며, 지금 여기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해야한다는 뜻이다. 즉 누구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칸트식의 목적의 왕국인 셈이다. 기쁨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더는 세상은 개개인을 조정하여 세상을 바르게 만들 수 있다는 ‘치명적 자만’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추상적인 이상에 대한 합의는 참 어렵다. 특히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절대선과 절대악이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고, 선악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일쑤다. 미국의 네오콘같은 사명감에 불타는 무식쟁이들만 있다면야 옥석을 가리기 쉽겠지만, 대개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맞서게 마련이다. 가령 신자유주의 논쟁만 해도 WTO는 전세계 민중을 착취하는 미국식 세계화에 불과하다는 입장과 WTO가 실현할 자유무역과 다자통상체제로 말미암은 경제적 다극화가 미국화로의 경도를 막고 우리가 살 길이라는 입장과의 간극은 너무나 벌어져 있다. 신자유주의는 악의 화신도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만병통치약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이처럼 대립하는 사회 개혁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숙고된 균형감각이 절실하다.

  이처럼 이 무지막지한 차이의 세계를 하나의 구호로 묶는 혁명의 단순명료함은 쉽사리 공감하기 힘들다. 또한 설혹 어찌어찌 해서 꾸려진 유토피아가 개개인의 효용을 극대화시켜 줄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유토피아라는 미명하에 엄청난 비용이 지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악에 대한 인식이 같다면 이를 오늘의 시점에서 제거하려고 애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는 너무 매끄럽지 못하고 두루뭉술한 수단이라고 비판할지 모르겠지만, 매끈함을 핑계로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날카로운 칼날을 자신 있게 휘두르기 보다는 무딘 칼날도 조심해서 쓰는 것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점진적 사회공학의 요체이다. 백가쟁명 백화제방(百家爭鳴 百花齊放)의 시대에 사는 것은 확실히 정신없고 골치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소리와 하나의 꽃으로 통일할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4. 진정한 유토피아란?

  유토피아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열망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한 노력과 욕망이 인류를 진보시킨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아나톨 프랑스가 “다른 시대의 유토피아인들이 없었다면 인간은 아직도 동굴 속의 비참하고 발가벗은 상태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유토피아 사상은 여전히 살맛나는 세상을 향한 의지의 표상이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강력한 현실 타파의 욕구와 이상에 대한 철저한 수호라는 특징 때문에 전체주의와 손을 잡기 십상이다. 유토피아로 치장한 전체주의는 더 이상 등장해서는 안되는 비극의 씨앗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동질성으로 무장하기보다는 다양성으로 흩어지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문화적 소수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진짜 유토피아로 가는 길목일 것이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차이를 낳고, 이 차이에는 여러 종류의 불평등이 포함된다. 진정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라면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을 막고, 불평등이 계속 고착화되는 것에도 고개를 가로 저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상호 존중이라는 가치를 미래의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희생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위기의 20년]에서 “건전한 정치이론이라는 것은 유토피아와 현실의 양 요소 위에 입각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외친 E.H 카의 지적은 앞으로도 유효하다. 개인의 자유와 숙고된 균형감각 위에 점진적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해 나갈 때 유토피아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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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이 그들의 나라에서 왕이 되지 않는 한, 또 반대로 왕 또는 지배자로 불리는 이들이 실제로 지혜를 사랑하지 않는 한, 즉 정치 권력과 철학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한, 국가에 있어서 인류에 있어서 나쁜 것들이 종식될 날이 없을 것이다”


그 유명한 플라톤의 철인군주론이다. 플라톤이 실제로 정치적 야심을 품고 왕이 되고자 직접 거사를 도모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제자들은 자못 답답한 마음에 물어왔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스승께서는 그토록 권좌에 집착하십니까?”라고 말이다. 플라톤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보다 못한 놈들이 나를 다스리는 것을 참을 수 없으니까.” 대철학자의 자부심과 안타까움이 묻어 나오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흔들기를 하고 있을 때 유시민 선생이 칼럼니스트 활동을 접고 절필을 선언한 일이 있다. 경기장에 반칙이 횡행하는데도 심판이 그것을 묵과하거나 오히려 반칙한 쪽은 편드는 일이 반복되는 데 해설자 노릇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떳떳하게 경기하는 선수가 발길에 채이고 밟히고 모욕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는 많은 이들을 공감시켰다. 그는 결국 반칙하는 선수를 규탄하는 관중을 조직하는 데서 나아가 선수로서 경기장을 누비고 있다.


플라톤이나 유시민은 대리인비용(agency cost)을 치르는 것이 버거워 본인이 주체가 되기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M.jensen & W.Meckling은 1976년의 논문에서 법인세나 개인소득세 등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에도 대리인비용의 존재로 인하여 기업의 최적자본구조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재무학 관점에서 보면 자기자본의 대리인비용과 부채의 대리인비용의 합인 총대리인비용이 가장 작아지는 부채비율이 존재하며 이 지점에서 자본비용을 극소화하고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최적자본구조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이기적이라는 경영/경제학적 가정에 기반을 둔다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익이 극대화가 되도록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는 항상 일치될 수 없다. 주주와 경영자, 주주와 채권자 등의 관계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대리인문제(agency problem)라고 한다. 주주와 채권자간에 발생하는 대리인문제의 경우는 채권자는 대리인문제를 감안해서 높은 이자율을 매길 수 있으므로 결국은 기업과 주주가 손실을 부담하게 된다. 결국 대리인문제는 불특정 다수인들로 구성되어 비교적 약자의 입장에 있는 주주들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M.jensen & W.Meckling은 대리인문제와 관련하여 발생되는 모든 비용인 대리인비용을 다음 세 가지로 분류했다(정확히 말하면 ‘자기자본의 대리인비용’이다). 감시비용(monitoring cost)은 대리인의 행위를 직접 감시, 감독하는 데 드는 비용뿐만 아니라 일의 성과에 대한 평가비용, 합리적 보상체계와 유인체계의 도입비용, 기회주의적 행위의 제재비용 등을 말한다. 보상유인정책(incentive system), 예산통제시스템의 설정 등이 그것이다.


확증비용(bonding cost)은 대리인이 스스로 기회주의적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물적, 인적 보증을 하는 비용을 말한다. 즉, 대리인이 주인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있음을 확증하기 위해야 대리인이 부담하는 비용을 말한다. 주인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제약하고, 위반시의 벌칙을 약속하는 행위, 회계감사를 받아 영업보고서를 공시하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잔여손실(residual cost)은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의 지출에도 불구하고, 대리인의 의사결정이 주인의 최적의사결정과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주인의 부의 감소를 말한다. 감독과 보증노력을 하고 나서도 남는 비효율과 낭비로서 대리관계로 인한 생산의 감소 혹은 주인의 효용 감소라고 볼 수 있다.


보통의 합리적 인간이라면 대리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을 지출하려고 노력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은 말 그대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대리인의 기회주의적 행위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인과 대리인, 즉 주주와 경영자가 똑같이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경영자가 주주 부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완전자본시장의 이데아는 희망사항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결국 일정 정도의 잔여손실은 불가피한데 이에 대한 개개인의 판단도 다를 것이다.


잔여손실에 대한 내성(耐性)의 정도를 ‘잔여손실내성도’라고 명명해본다면, 플라톤의 거사나 유시민의 절필은 자신의 잔여손실내성도를 넘어섰기 때문에 더 이상 대리인비용을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했으면 비용도 조금만 지출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재미나게 보낼 수 있는 것을 원체 죽을 쑤고 있으니 참다 못해 내 손으로 하는 것이 손실을 줄이는 방책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모든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이 일정 기간 동안 위임해준 것이다. 주인인 국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정치권력, 경제권력, 문화권력은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을 현격히 높이다가 궁극적으로는 잔여손실을 증대시킨다. 사람마다 잔여손실내성도는 다르겠지만 대리인들의 삽질이 계속되면 될수록 대리인들을 퇴출시키고 자신이 직접 나서는,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다른 대리인을 내세우려는 유인이 커진다. 자신의 잔여손실내성도를 넘어섰을 때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상도덕을 바로 세워 짭짤한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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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익구는 규상이와 [화씨 911]을 관람했다. 조조영화로 볼 계획을 잡고 있었으나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 때문에 밤잠을 설쳐 늦잠을 자는 바람에 계속 미뤄지던 것을 마음을 굳게 잡고 성사시켜 영화관으로 향했다. ‘자유와 진리가 불타는 온도’라는 뜻의 가진 영화제목답게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등을 소재로 부시 일당들을 신랄하게 비꼰다. 익구는 통쾌하면서도 서글픈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영화는 지난 2000년 미 대선에서 고어의 이상한 패배에서 출발한다. 모든 악의 근원이 부시 당선이라는 끔찍한 상황에서 연유된 것이라는 가정이다. 별 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여질 정도로 그간 부시 일당들에게 많이 시달린 것 같다.^^; 당시 고어의 깨끗한 승복에 감동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이것이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라며 찬사를 받았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미 의회의 하원의원 일부가 부정선거 문제를 제기했지만 상원 의원 1명 이상의 서명을 받지 못한 나머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나중에 안 것인데 현재 미국 의회에서 흑인 상원 의원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몇몇 하원의원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상원의원을 비롯한 대다수의 의원들의 비웃음에 파묻히는 광경에서 지난 탄핵 폭거가 오버랩되었다. 다수의 지배에만 매몰된 의회 민주주의의 역겨움을 목도하는 불편함이라고나 할까.


부정선거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아버지 부시가 임명한 재판관 덕에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 부시를 향해 달걀세례가 날라오자 행진을 포기해야 했던 부시는 이 때부터 맛이 가기 시작했다. 9.11 테러 발생 전 42%의 시간을 여가활동으로 보냈다는 부시를 보면서도 놀 거 다 놀면서 정무를 돌보는 미국식 스타일을 찬양했던 호사가들은 좀 부끄러워했으면 좋겠다. 9.11이 터진 것을 보고 받는 순간의 부시의 멍한 표정은 이 인간의 또라이 기질을 여과 없이 드러내주고 있다.


이어서 참사 이후 미국에 있던 빈 라덴 일가가 백악관의 도움으로 미국을 유유히 빠져나간 데 대한 의문이 이어진다. 여러 가지 증거가 제시되며 빈 라덴 일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 부시 일당과의 밀착관계가 폭로된다. 민중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을 것이 뻔한 사우디 왕족들이나 그에 기생하고 있을 빈 라덴 일가, 이런 집안 분위기 떨치고 일어나서 한다는 게 고작 이슬람 근본주의 광신도인 오사마 빈 라덴, 허구한 날 사업 말아먹고 여기저기 손 벌리는 부시 조합이라니 정말 끼리끼리도 이렇게 최악일 수가 없다. 여기다가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으로 미소짓는 군수업체와 석유회사까지 끼어 드니 정말 이것이야말로 악의 축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테러에 대한 공포심을 빌미로 제정한 애국법도 코미디다. 가뜩이나 박정희 망령을 등에 업은 박근혜의 헛소리에 정신이 없는 마당에 부시에게서 지난 날 반공에 대한 열정(?)을 강요함으로써 국민을 총화단결시킨 박정희를 찾는 것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공동의 적에 대한 적개심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서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모습은 이것이 우리가 닮고자 했던 미국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였다. 훼손된 자유에 무감각한 미국인이라면 굳이 경애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2003년 3월 부시 일당은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다. 많은 매체들을 통해 익히 접해왔던 것들을 다시 마주했지만 새로운 따가움으로 다가왔다. 한 이라크 여성이 “알라신이시여, 저들을 응징해 주소서, 저들을 용서하지 마소서”를 외치는 모습에서 익구도 같은 절규를 했다. 부시가 열렬히 믿는 다는 그 신은 과연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를 상상해보았다. 알라신의 침묵은 차치하고 부시가 믿는 신이 침묵한 것은 참기 힘든 일 아닌가.^^;


장면이 바뀌어 자기 자식을 비롯해 많은 친척들이 입대한 미국의 어느 여성은 조국에 봉사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라크에 가기 싫다는 아들을 달래 보내고 조국에 대한 사랑에 한껏 부푼 이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과 부시는 또라이이며, 명분 없는 전쟁에 동원된 자신을 한탄하는 아들의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단지 아들이 보고 싶다는 말만을 되뇌인다. 모두가 패배자일 뿐인 전쟁의 속성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끝으로 상하원 의원 중에 자식을 이라크에 보낸 사람이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도 씁쓸하게 다가왔다. 미국의 가난한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한국 등지의 젊은이들의 피까지 요구하는 부시 일당들의 간악함과 이와 한통속인 미국 지배계급들의 마수에 우리가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가.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는 “전쟁을 재미있어 하는 것은 무경험자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쟁에 미친 자들을 위한 묘약은 역시 그네들을 전쟁터에 집어넣는 수밖에 없나보다.^^;


화씨 911은 현직 대통령을 드러내놓고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롭다. 한국에서 아직 이런 영화는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군침이 도는 지도 모른다. 실미도를 보고 색깔이 의심스럽다며 빨간 칠을 해보려는 자들이 있는 판에 말이다. 사실 미국의 진짜 무서움은 마이클 무어 같은 이들의 존재라는 혹자의 평이 제법 근사하게 들린다. 아무 거리낌없이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마이클 무어의 모습을 보며 정파적 이해에 죽고 사는 우리네 정치판의 초라한 몰골도 부끄럽다. 하지만 여전히 부시의 지지율이 40%는 가뿐히 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말실수 한 번 해도 지지율이 뚝뚝 떨어진다는데, 전쟁 일으키고 인권 유린해도 지지율이 안정적이니 부시는 좋겠다.^^;


영화를 함께 본 규상이는 연신 투덜거리며 분노를 삭이고 있었고, 익구 또한 프레첼 과자가 왜 부시 기도를 좀 더 꽉 막지 못했을까 아쉬워했다. 부시 일당은 지난 4년 간 우리에게 테러 그 자체였다. 익구는 부시의 낙선을 꿈에서도 빌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이클 무어의 의도대로 케리가 당선되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시의 재선은 만성 식욕부진의 신호탄이 될 수 있겠다는 커다란 공포다. - [憂弱]


미국은 프라이버시를 포함한 시민적 자유의 일부를 헌납하고서야 안전을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안전은 타인(특히 외국인)에 대한 불신을 통해 확보되고 있다. 여기서기자는 자유와 안전이라는 두 가치사이의 고전적 갈등을 목격한다. 극도로 위생처리된 사회는 분명히 안전한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살균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숨이 가쁠 것이다. 자유의 공기에는 늘 병균이 묻어 있는 법이다. 미국인들 다수는 이런 위생처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시민적 자유의 모국에서 그런 풍경을 보는 것은 우울했다. 자유의 헌납과 타인의 불신에 대범해질 수 있다면, 세상에 북한 사회만큼 안전한 곳이 있겠는가?

- 고종석, [살균된 사회, 위생처리된 자유], 한국일보 2001.12/26

Posted by 익구
:
MBC 뉴스데스크의 최일구 앵커가 재치있는 멘트로 연일 화제다. 특히 지난 19일 엄기영 앵커의 휴가로 일주일간 평일 뉴스데스크를 진행하게 되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익구와 이름이 비슷해 호감을 가지고 최일구 앵커의 뉴스 진행을 보게 되었던 익구도 최 앵커의 뉴스 진행을 흡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앵커가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는 것이 뉴스의 객관성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최 앵커는 보통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수준의 발언을 할 뿐이다.


앵커의 한마디가 시청자들의 사고를 장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치한 발상이며, 시청자들은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뉴스를 음미하고 있다. 앵커는 중간자 입장에서 기자의 취재내용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에서 벗어나 적절한 비평을 내릴 수 있다. 이는 반드시 권장할만한 것이 아니라도 해도 배격할만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다소 말했다고 파격적이라느니 하는 호들갑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엄숙주의에 물들어 있는 가를 알 수 있다.


객관성과 공정성의 잣대는 소중하지만 그것이 지상의 과제는 아니다. 이 잣대들은 우리가 비판적 사고를 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일 뿐이다. 설사 앵커가 사견을 조금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자신이 뉴스를 수용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판단기준이 허술함을 실토하는 것일 따름이다. 건강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뉴스를 비판적으로 해석해서 걸러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 기자의 취재내용이나 영상이미지에서 기자 혹은 편집국의 의도가 상당부분 반영되었을 것인데 이건 놔두고 앵커의 말 한마디에 불편해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젊은 세대들이 게임 중계방송 아나운서의 재치 있는 멘트에는 열광하듯이 뉴스 앵커나 경제인, 정치인, 고위 관료들의 재미난 멘트에 흥미를 가진다면 사회가 더욱 혼란스러워질지 자문해보자. 사회 지도층들이 권위주의에 둘러싸여 근엄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기보다는 좀 더 친숙한 말글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대중들이 가벼워서 문제라기보다는 당신들이 너무 무거워서 골치 아프다. 최일구 앵커를 지지한다. - [憂弱]

<최일구 앵커의 어록 몇 개>

“제가 왜 나왔나 궁금하시죠? 엄기영 앵커가 휴가를 가서 제가 이번주에 김주하 앵커하고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 엄기영 앵커 휴가로 평일 뉴스데스크 진행을 맡게되면서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 권영길 당선 축하 멘트

“정치인들에게 이 노래 암기시켜야겠습니다”
- 차떼기 등에 대한 정치 풍자 노래가 유행이라며

“299명 당선자 여러분들, 제발 싸우지 마세요. 머슴들이 싸움하면 그 집안 농사 누가 짓습니까”
- 4월 총선 이후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정쟁을 일삼자

“그래도 저는 냉면 먹겠습니다”
- 냉면집 육수에서 식중독 균이 검출되었다는 보도 직후
(쓰레기 만두 파동처럼 냉면 소비 감소로 다수의 양심적 냉면집에 피해가 갈까 우려한 멘트)
Posted by 익구
:
史記에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이야기 중의 하나는 맹상군 이야기다. 내 초등학교 일기장에도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맹상군의 정신을 본받아야겠다는 구절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언젠가 맹상군이 파면되자 삼천명에 달했다는 그의 식객들이 모조리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맹상군이 복직되자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식객 풍환은 다시 그 식객들을 모으려고 했다.


맹상군은 만일 뻔뻔스럽게 찾아오는 자가 있다면 그 낯짝에 침을 뱉어주고 싶다며 버럭 화를 냈지만 풍환은 차분하게 말했다. 세상 이치에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That's the way the ball bounces!(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이다) 결국 세상 인심은 원래 그 모양 그 꼴이라는 것이다. 부귀한 몸이 되면 따르는 자가 많으며 가난하고 천한 몸이 되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 뿐이라며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든다.


“시장에 가셔서 보십시오. 아침에는 서로 앞을 다투어 먼저 문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해가 진 뒤에는 시장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아침에 시장을 좋아하다가 저녁에는 미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저녁 시장에 원하는 물건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식객들이 귀공의 파면을 보고 떠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아무쪼록 그 전과 다름없이 대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어떤 일을 맡아서 하다 보면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무진 애를 쓴다는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사실 지나가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별 것도 아닌 것이 세상사의 허망함이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아프고 화나고 힘들고, 그 순간을 함께 나눠줄 사람이 정말 절실하게 마련이다. 그 순간은 그저 지나보내고서 나중에 좋게 좋게 넘어가려는 이들을 보면 아무리 세상 이치가 그렇다고 해도 얄밉고 섭섭한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나는 그런 기분이 들 때면 도덕경 2장의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나 9장의 功遂身退 天之道(공수신퇴 천지도)란 구절을 떠올린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 “공이 이루어졌으면 몸은 물러나는 것, 하늘의 길이다”라는 구절을 자주 읊조리는 것은 그만큼 내가 일구어놓는 것에, 나와 인연이 닿은 것에 애착 혹은 집착이 강하다는 것의 방증이다. 내가 어쩌다가 좋은 일 하나 해서 남들이 그 덕분에 알콩달콩 재미나게 지내는 모습을 본다면 괜히 침 흘리지 말기를, 하나둘 나란 녀석을 모른 체 해도 잊혀지는 것에 너무 몸서리치지 말기를 다짐해왔고 비교적 잘 준수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학생회 잡일을 하면서 반일꾼들이 일은 일대로 하면서 욕은 욕대로 먹는다며 하소연할 때는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여러분들보다 훨씬 더 구박을 많이 받는 나도 이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지내고 있으니 조금 여유롭게 생각하자고 독려를 하지만 별로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사실 귀찮은 일, 궂은 일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일을 추진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늘 딜레마인 셈이다.


개인주의자인 나로서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어떤 일이나 조직이 유지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그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경영학도로서 건진 몇 안 되는 지식 중에 수익자부담원칙과 참여자보상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정과 의리, 집단주의 등의 어찌 보면 비합리적이라 할만한 요소들에 많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빡셀 때는 두 손놓고 있다가도 일이 다 끝나면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밥숟가락 들고 찾아오는 것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누군가의 고생으로 이룩하고, 힘겹게 쥐어 짜내야 돌아가는 조직이라면 머지않아 곧 망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망하는 속도를 조금 늦추려 하고, 합리적으로 추정 가능한 수준에서 망하도록 하려고 노력하는 이들도 많다. 풍환처럼 “원래 이 바닥이 그래”라며 속 편히 말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그네들의 노고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그런 좋은 사람들의 선의가 악의에 짓밟히지 않는 세상이 되도록 나도 돕고 싶다. 팍팍한 세상을 조금이나 촉촉이 하는데 나도 일조하고 싶다.


나는 경영학도이고 손해보는 장사는 정말 싫어하지만 살면서 가끔 손해보면서 남 좋은 일을 잠시라도 해보는 것을 유쾌한 경험으로 추억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졌으면 좋겠다. 꼭 見善如渴이라는 말처럼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 본 듯이 주저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라도 말이다. 또한 나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기보다는 내가 그네들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지 못한 것을 먼저 반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주위에 사람이 많아서 부대끼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내 인복에 고마워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아름다움을 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뤄놓은 것에 마냥 흐뭇해하기보다는 남이 이룰 것을 북돋워주면서 말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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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구는 여름학기 경영전략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함께 듣기로 한 친구가 집에서 수강료 지급 거절이 되는 바람에 엉겁결에 혼자 듣게 되었으나 다행히 아는 선배님들이 꽤 있어서 외롭지 않은 계절학기가 될 수 있었다. 너무 짧아서 그야말로 꿈결같이 지나가 버린 듯한 여름학기였지만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우고 고민할 수 있었다. 단순히 교과서적 지식을 배웠다기 보다는 삶의 지혜들을 배울 수 있었다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강의를 통해서 [Built to Last], [Good to Great], [성공기업의 딜레마] 세 권의 책을 읽었는데 모두 좋은 화두를 제시해주었다. 앞의 두 권의 책은 서로 연관관계가 많은데 일독을 권할만하다. 두 책에서 특히 익구 마음에 울린 개념들 몇 개를 소개하고 약간의 코멘트를 달아봤다.


[Built to Last](‘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으로 번역)

<시간을 알려 주지 말고 시계를 만들어 주어라>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졌거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이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라면, 한 개인의 일생이나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을 훨씬 뛰어넘어 오랫동안 번창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은 ‘시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전 기업들은 한 가지 뛰어난 아이디어로 일시적인 시장을 노리거나 한창 성장기에 있는 제품의 흐름에 편승하기보다는 마치 영원히 시간을 가르쳐줄 수 있는 시계를 만드는 것처럼 조직을 건설하는 데 주력한다.
비전 기업들의 성공 비결이 단지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이거나 강력한 권위를 갖고 명쾌하게 의사 결정을 내리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 내에 정착되어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과 그 역동성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경영자는 기업의 특정 제품에만 몰입하거나 개인적인 차원의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에 집착하지 말고, 비전 기업 자체의 개성을 건설한다는 조직적 안목과 시각을 가져야 한다.

-> 참 괜찮은 비유다. 조바심이 나서 시간을 알려주고 얼른 시간에 맞게 일을 하라고 보채기 십상이지만 진득하니 기다리며 시계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계는 시스템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체계적이면서 유연한 시스템은 일개인의 능력의 출중함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아니면’에서 벗어나 ‘그리고’를 맞아들여라>
A 아니면 B라는 흑백논리를 버려야 한다. 가령 가치를 추구하는 이상주의 ‘아니면’ 이익을 추구하는 실리주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취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균형은 단순한 균형이 아니다. 비전 기업들은 이상과 이익의 중간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이상과 높은 이익을 동시에 추구했다.

->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외쳤던 키에르케고르식 양자택일의 논리에 함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도올 선생 말씀대로 깊으면 깊어질수록 인간은 넓어지게 마련이고, 넓으면 넓어질수록 인간은 깊어지게 마련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참으로 깊은 것이 아니며, 그것은 참으로 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면적일 수 있고, 다면적이어야 한다.

<실용적 이상주의>
비전 기업 발전 단계의 중요한 요소인 핵심 기업 이념의 존재라는 공통점 속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비전 기업에서 주요 목표나 동인으로 ‘이익의 극대화’나 ‘주주의 부의 극대화’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비전 기업들은 각 기업에 따른 목표들을 추구하고 있었으며 돈은 그 목표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많은 비전 기업들은 기업 자체를 경제적 활동보다 의미있게 생각했으며,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대부분의 비전 기업 역사를 살펴보면 단순한 경제적 의미를 뛰어넘는 핵심 이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비전 기업이 비교 기업에 대해 상당히 강한 핵심 이념을 지녀 왔다는 사실이다.

-> 이 책에서 이익의 극대화를 너무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공한 기업들의 입에 발린 소리를 너무 띄워주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기업은 주주 부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이다. 많은 좋은 핵심 이념들이 있겠지만 이윤 추구는 기업에서 빠지기 힘든 핵심 이념이다. 이걸 부인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윤 추구는 당연히 기업의 핵심 이념이고 이에 부연하여 다른 핵심 이념을 함께 추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메르크가 “의약품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익 자체는 부수적임을 기억하는 한 이익은 저절로 따라다닌다. 이러한 점을 잘 명심할수록 이익은 더욱 커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네들이 성공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주절거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쫄딱 망했는데도 이익이 부수적이라고 외친다면 아마 비웃음만 샀을 것이다. 이것이 경영학에서 자주 발견되는 결과 위주의 사고라는 것인가.^^;
여하간 비전 기업은 메르크처럼 고귀한 경영 이념과 실용적인 자기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여 왔고 이를 실용적 이상주의라고 명명한다. 나는 이상주의자를 자처하지만 나의 이상은 현실과 타협해서 제 모습을 거의 다 깎아먹기 일쑤다. 고심 끝에 ‘이상실현주의자’라는 억지 수식어구를 만들기까지 했다. 실용적 이상주의는 작은 이상이라도 실현하기 위해 현실감각을 기르는 데 노력하는 나의 이상실현주의의 다른 이름 같았다.

<핵심을 보존하고 발전을 자극하라>
비전 기업은 핵심 이념에 철저하면서도 동시에 발전을 추구한다. 비전 기업의 핵심 이념은 핵심 이념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부분에 대해 변화와 발전을 촉진하고자 하는 진보를 향한 끝없는 열정과 함께 작동한다. 핵심 이념과 발전을 향한 열정은 마치 중국 이원론 철학의 음양같이 비전 기업 내에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를 가능하게 하고 보완하며 강화하는 것이다.
핵심 이념은 발전 자체를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비전 기업이 진화하고 실험하고 변화하는 데 기반이 되는 지속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핵심을 명확히 함으로써 기업은 좀더 쉽게 핵심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해 변화와 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 한편, 발전을 향한 열정은 핵심 이념을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계속적인 변화와 전진이 없다면 핵심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라도 결국 변화하는 세계에 뒤처질 것이며, 활력을 잃고 사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핵심 이념이나 발전을 향한 열정의 뿌리는 보통 특정 개인들에서 비롯되지만, 비전 기업은 그것들을 조직의 모든 계층에 엮어 제도화한다.

-> AND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하나의 표어이다. 너무 지당하신 말씀이라 남은 건 실천의 문제다. 지켜야할 것을 지키면서 바꿔야할 것을 바꾸는 것은 참 어려운 과제다.


[Good to Great](‘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로 번역)

<단계5의 리더>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들은 중대한 전환기에 예외 없이 단계 5의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다. ‘5단계’란 경영자가 갖추고 있는 능력의 다섯 단계 계층구조를 말하는데, 그중 5단계가 맨 위다.
단계1 - 능력이 뛰어난 개인으로 재능과 지식, 기술, 좋은 작업습관으로 생산적인 기여를 한다.
단계2 - 합심하는 팀원으로 집단의 목표 달성을 위해 개인의 능력들을 바치며 구성된 집단에서 다른 사람들과 효율적으로 일한다.
단계3 - 역량 있는 관리자로 이미 결정된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람과 자원을 조직한다.
단계4 - 유능한 리더로 저항할 수 없는 분명한 비전에 대한 책임의식을 촉구하고 그것을 정력적으로 추구하게 하며, 보다 높은 성취기준을 자극한다.
단계5 - 개인적 겸양과 직업적 의지를 역설적으로 융합하여 지속적인 큰 성과를 일구어 낸다.
단계5의 리더는 이중성의 연구다. 겸손하면서도 의지가 굳고, 변변찮아 보이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이중성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극도의 겸양과 직업적인 강렬한 의지를 융합한 개인들이다. 단계5의 리더들은 자신의 자아 욕구를 자기 자신한테서 떼어 내 큰 회사를 세우는 보다 큰 목표를 돌린다. 그들은 분명히 야망이 있지만, 그 야망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회사에 우선적으로 바친다.  

-> 나는 기껏해야 단계 3, 4나마 구축해보려고 헤매였던 것 같다. 단계5의 리더는 자신의 야망을 회사에 바친다고 하는데 과연 나의 개인주의 미감에 얼마나 맞아 들어갈 것인지 애매하다. 단계5의 리더들은 성공할 때에는 행운 같은 자기 자신 외의 요인들에 성공을 돌리며, 실패할 때에는 자책하면서 다른 사람들이나 외부 요인들, 불운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야 어떻게 해볼 자신이 있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지 않을까.^^;

<스톡데일 패러독스>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이끄는 핵심 심리는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이다. 이는 결국에는 성공할 수 있고 성공할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 스톡데일 패러독스 비참한 역경 속에서도 웃어 보일 수 있는 넉넉한 영혼이 되라는 것이다. 정직하게 절망하고 냉철하게 희망할 줄 사람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설령 운이 아주 좋아서 내가 이겨봤자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고슴도치 컨셉>
고슴도치 컨셉은 다음 세 가지 원이 겹치는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단순 명쾌한 개념이다.
① 당신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일
② 당신의 경제 엔진을 움직이는 것(수익성을 창출하는 일)
③ 당신이 깊은 열정을 가진 일.
완전히 성숙한 고슴도치 컨셉을 가지려면 세 개의 원이 모두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가 빠진다면 위대한 회사로 도약하지 못한다.

-> 이것은 비단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이 세원의 교집합을 구해서 추구한다면 유의미한 성취를 일구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장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는데 고슴도치 컨셉을 적용해서 조금 지향점을 잡아봐야겠다.


이 밖에도 선생님께서는 주옥같은 개념들을 선사해주셨다. 익구가 가장 찔린 것은 못난 경영자가 인센티브와 패널티만 이용하려한다는 대목이다. 익구가 경영대 다섯 개 반을 통솔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것이 인센티브와 패널티였기 때문이다. 익구는 가장 손쉽게 효과를 볼 수 있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기댔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한 재미나게 들은 것이 GE의 잭 웰치가 20년 재임기간 중에 퇴임 9년 전부터 후임자를 고민했다는 사실이다. 익구의 학생회장 임기는 11월 중순쯤에 끝날 텐데 가을학기 개강을 하자마자 차기 이월준비와 다음 학생회장을 후보자들을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부터 이런 고민한다고 어느 선배님께서는 익구를 ‘최웰치’라고 불러주시기도 했다.^^;


다음으로 축적을 하기 위해 희생을 해야 한다, 경쟁의 장점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경쟁을 회피하게 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만든다, 납득되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서 터득해야 한다, 핵심역량이 핵심경직성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좋은 경영자는 위기를 잘 구축해야 한다 등등이 있었다. 위기와 조직변화의 효율성 대목에서는 위기는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며, 최고경영자의 위기를 조직구성원의 위기로 하향시키지 못하면 변화에 실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적절한 위기를 넘어서 완전 공갈협박 수준의 윽박으로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 것은 삼가야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많은 좋은 가르침들이 익구에게 알알이 다가왔다.


학생회 일꾼 3년차로 살다보니 어떤 조직이나 시스템을 많이 겪어본 익구로서는 경영전략 강의에서 많은 유용한 개념들을 습득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학문이 그렇지만 경영학도는 경영 이외의 다방면의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이번 강의를 통해 깨달았다. 익구는 다른 분야에 관심이 없는 외곬이 되어서는 편협한 테크니션밖에 되지 못한다며, 교양도 열심히 쌓고 전공에도 충실하도록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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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 끝에 싸이 미니홈피를 별장으로 쓰기로 했다. 익구닷컴은 용량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디카를 장만했답시고 사진을 무한대로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무언가 사진창고의 역할을 할 곳으로 싸이 미니홈피를 일단 쓰기로 했다. 외부 링크로 연결하는 방법들도 있지만 싸이족 친구들과의 교류도 할 겸 그간 폐가로 나뒀던 싸이 미니홈피의 먼지를 털어 낸 것이다.


미니홈피를 열고서 익구닷컴과의 자기잠식효과를 우려했다. 자기잠식 효과는 기존 브랜드와 확장 브랜드 사이에 대체성이 클수록 커지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대체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미니홈피 사진첩을 폐쇄했지만 최근에는 사진창고 기능을 위해 그마저도 열었다. 익구닷컴이 본디 문자 텍스트를 기반 한만큼 사진첩 열었다고 자기잠식 효과가 크다고 생각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분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굳이 염려할 필요가 없다.


여하간 이만하면 나는 싸이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정이 가지 않기 때문에 그 칭호는 부적절하다. 설령 넓게 봐서 싸이족에 들어간다면 나는 동포(?)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쓴소리를 하고 싶다. 미니홈피가 아무리 긴 글을 쓰기 부적절한 구조라고 해서 게시판을 이용한 글쓰기에 아예 신경을 끄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싸이질을 하면서 긴 글이 점점 더 낯설어지고 짧은 글에 익숙해지는 경향이 심화되지 않았는지 돌아보자. 물론 말글의 길이가 짧아진다고 생각이 짧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긴 호흡의 교류가 사라지는 것은 함께 아쉬워해야 할 일이다. 사진 이미지도 소중하지만 문자로 기록한 것도 훌륭한 자신의 역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싸이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자. 싸이가 대세라느니 하면서 권유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개인 홈페이지를 꾸리거나 이런저런 블로그 생활하는 사람들과도 교류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상당수 싸이족들이 미니홈피 방명록 남기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다른 홈페이지에 무언가 글을 남기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데 이는 스스로를 속박하는 일일뿐이다. 싸이성(城) 안에서 아무리 재미가 쏠쏠하더라도 성밖에도 무수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누추해도 자기 집은 편안하고 아늑한 법이다. 내 집구석이 사랑스러운 만큼 남의 집구석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모든 이들이 싸이로 몰려가서 싸이성(城)만 북적거린다면 과연 그 때도 싸이족들이 즐거이 살 수 있을까? 자치통감에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은 까닭에 그렇게 크게 되었고, 강과 바다는 시냇물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깊은 것이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라는 말이 있다. 싸이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얼른 일촌들 순회하며 방명록 달아야하는 강박증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관용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친구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흠뻑 빠질 수 있을지언정, 사람과의 관계맺음에 정신을 쏟아 부을 수 있을지언정 싸이질 자체에 중독되는 것은 늘 경계해야 한다. 싸이가 사교비용을 낮추는 데 일조 했고, 그 덕분에 시장에서 우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싸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듯이 몇 마디 방명록으로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백만명(!)의 지인들과 벗하고 있을 것이다. 공짜가 없는 세상에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은 자신도 진정을 다해야 하는 엄청난 비용을 요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부지런히 스스로를 절차탁마(切磋琢磨)해야 한다. 함께 해요~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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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의 틈새시장

사회 2004. 6. 29. 04:18 |
유물론(唯物論)은 물질을 제1차적, 근본적인 실재로 생각하고, 마음이나 정신을 부차적, 파생적으로 보는 철학설을 말한다. 가령 mannerist 선배님의 들어주신 예를 보면 20세기 후반 여권의 신장은 여권 운동의 결실이 아니라 양차 세계대전 이후 모자른 남성 인력을 메우기 위해 여성 인력이 많이 투입되었고, 그 결과 돈을 만지게 된 여성이 그 물질적 기반을 통해 권리 향상을 이룰 수 있었다는 식이다. 물질이 주(主)고 의지나 의식은 물질의 소산으로서 종(從)이기 때문에 유물론은 팍팍하다고 느껴질 소지가 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총 경제활동 인구 중 군대에 간 비율은 대체로 약 20퍼센트였다. 덧붙여 말하자면, 수년 동안 지속된 그러한 대중동원 수준은 현대적이고 생산성 높은 산업화된 경제와-또는 그러한 경제 대신에-주로 비전투원 인구 부문에게 맡겨진 경제가 없었더라면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전통적인 농업경제-적어도 온대지역에서의-는 모든 일손이 필요할 때 (이를테면 수확기)가 1년에 여러 번 있으므로 특정한 계절을 제외하고는 보통 그렇게 큰 비율의 노동력을 동원할 수 없다. 산업사회에서조차 그렇게 큰 인력동원은 노동력에 막대한 부담을 주며, 바로 그러한 사정이 현대의 대량전이, 조직된 노동자층의 힘을 강화한 동시에 가정 밖에서의 여성고용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던 -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일시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구적으로-이유이다.

-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1장 총력전의 시대 중 부분, 69 ~70쪽


경험론자들보다는 합리론자인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츠에 호감을 느끼고, 촘촘한 감각보다는 번뜩이는 직관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편이 잦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나로서는 유물론을 그다지 흡족하게 여기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종교란 인간의 행복 추구 욕구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신’이란 결국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인간이 창조해 낸 것이라는 포이어바흐의 입장을 지지한다. 하지만 숱한 종교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신 혹은 정령의 존재는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겠다 싶으니 이마저 완전한 유물론은 아닌 셈이다^^;)


특히 사적 유물론 같은 것에는 넌더리가 난다. 마르크스는 자유란 필연성의 인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좀 더 근사한 표현으로 “자유의 왕국은 오직 필연의 왕국에 기초하여 건설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떠한 법칙성의 기술적 이용을 인간의 자유로 볼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법칙에 따르는 자유라는 결정론적 사고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신뢰로 먹고사는 자유주의자가 필연성 어쩌고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길 리가 없지 않는가.^^;


요즘 지인들과 추가 파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았다. 대개는 소극적 반대와 소극적 찬성 사이에서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이것이 국민들의 평균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아서 파병에 찬성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하기는 꺼림칙하다는 것이 대개의 생각들이었다. 이 꺼림칙함을 다소 크게 본 사람은 소극적 찬성 쪽에, 작게 본 사람은 소극적 반대의 입장을 보였다고나 할까. mannerist 선배님은 그 둘은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하셨다. 게다가 아가리 닫고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선배님께서는 근조 리본 떼고 거리로 나올 것을 종용하는 입장인 셈이다). 나는 일면 동의하면서도 괜스레 너무 유물론적 해석이 아니냐고 너스레를 늘어놓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수강신청 잘했냐는 둥, 여행계획이 뭐냐는 둥, 주말 드라마가 어떻고, 토익 점수가 어떻고, 엊그제 했던 소개팅이 어쩌고, 내일 먹으러 갈 음식이 저쩌고 하는 숱한 소재가 있다. 그 중에서 추가 파병 꺼내드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자칫했다가는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를 무거운 공기로 갈아치우는 위험도 있다. 그러나 한바탕 다투든, 합의점을 찾든, 미국과 부시를 진탕 욕하건 간에 적당히 결론을 맺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 자체는 무척 소중하다. 나는 일단 여기서부터 시작을 해야한다고 본다. 일단 대화의 소재를 바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는 그 성과물의 생산성 여부를 떠나서 선행되어야 할 과업이다.


물론 실천이 중요하고, 움직여야 무언가 바뀌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전의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할 것이다. 서로의 차이점만 발견하고 영양가 없는 공방을 주고받더라도 일단 그 논의의 마당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오히려 친할 사이일수록 이런 마당을 불편하게 여기고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껄끄러운 이야길랑 접어두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비판적 언어를 통한 갈등과 혼란의 공유는 아둔한 짓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나는 논의의 마당을 후닥닥 지나치고서 합의의 도장을 냉큼 찍고, 얼른 실천의 광장에 뛰쳐나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일단 논의의 마당에 마주 서게 하는 것부터가 나를 허덕이게 만들고,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 만든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살가운 분위기가 가득한 물 잔에 한 방울의 쪽빛 잉크를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도 참 어렵고 힘들다. 그런데 그 물 잔을 온통 푸른빛으로 물들이고, 거기다가 끓어오르게까지 하는 것은 아직 언감생심이다. 나는 다만 유물론이 간과하는 빙산 아래 거대한 논의의 마당에 좀 더 애정과 역량을 쏟을 참이다. 이 누추한 틈새시장에서 장사가 얼마나 될라나 모르겠지만 말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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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나를 따라다니는 지상과제가 있었다. 대중성 확보가 바로 그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언젠가 ‘넓은 익구 정책(Broad Ikgu Doctrine)’을 펼치게 된 이래로 익구의 대외 정책의 근본 기조는 변함이 없었다. (독트린은 ‘국제 관계에서 자기 나라의 정책이나 행동의 기반이 될 원칙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라는 뜻이다. 개인을 소국가로 치환시켜서 생각하는 익구로서는 즐겨 쓰는 용어다) 어린왕자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냐는 물음에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구절이 나온다. 실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다는 것은 어렵고도 소중한 일이다.


성격심리학적으로 내향적인 나는 내면세계에 울타리를 치고 있어 넓은 교제가 힘들고 가까운 몇몇 사람들과 흉금을 터놓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MBTI 16가지 성격유형 중에서 가장 독립적 성향이 강하다는 INTJ형인 나는 주위 사람에게 무심하게 대하거나 현실과 벽을 쌓고 냉정하고 거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적 탐구를 좋아해서 몽상과도 같은 깊은 사색을 즐기며, 논쟁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는 고집불통이 되기 십상이라고 한다. 또한 농담도 별로 하지 않고 남의 농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거니와 자신을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도 상당히 높은 수준을 설정해서 까다로운 리더나 부모의 전형이 된다고도 한다(마지막은 동의할 수가 없다. 내가 얼마나 널널한데... 푸하하).


사람 성격은 선천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쉽게 고치기 힘들다고 한다. 숱한 노력을 기울여 내 성격의 단점을 고치려는 노력은 소중하지만 분명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만은 절대 못하겠다, 이건 정말 내 타입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들어 하지 못하는 일들이 제법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성격유형이 가리킨 대로라면 나란 놈은 정말 대인관계 꽝인 아웃사이더 인생에다가 홀로 유유자적 고고함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딱 맞는 녀석이 되어버린다. 세상에 내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있냔 말이다. 내가 얼마나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이런 답답한 마음에 도올 선생이 조금 풀어주셨다. 도올 선생은 검증 없이 우리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엉터리 위험한 말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고 말한다.

“야! 넓은 사람은 깊지 못해. 깊은 사람은 넓지 못하고-. 야! 말 잘하는 사람은 글을 못써. 글 잘쓰는 사람은 말 잘 못하고-. 야! 철학 잘하는 사람은 예술은 못해. 예술에 뛰어난 사람은 철학은 못하고-.”



도올 선생은 이것이 서구문명이 특히 기독교 문명이 현대적 인간에게 선사한 가장 큰 죄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 넓은 사람이 깊은 수 없을 수가 있으며, 어떻게 깊은 사람이 넓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깊으면 깊어질수록 인간은 넓어지게 마련이고, 넓으면 넓어질수록 인간은 깊어지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참으로 깊은 것이 아니며, 그것은 참으로 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면적일 수 있고, 다면적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용옥, [철학강의], 통나무, 1998, 255~256쪽 참조)


나는 무릎을 쳤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고르는 OR의 사고에서, 이것도 저것도하는 AND의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넓은 익구 정책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원하던 대중성 확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관계맺음의 절대량을 증대시키는 것과 현실감각을 기르는 것이다. 이 둘의 상호작용을 통해 많은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청난 사교비용을 쏟아 붓게 된다. 실제로 돈, 시간, 노력 등 가용자원을 많이 투하했다.


하지만 특히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큰 효용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스포츠를 보거나 하는 것을 죄다 시큰둥해하고, 각종 게임도 젬병에다가, 여자 연예인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고, 이런저런 잡기에 무지한 데다, 꼴에 양성평등주의자라고 이래저래 까다롭기까지 한 나를 도대체 무슨 재미로 옆에 두고 싶겠냐는 것이다.^^; 아무리 시장조사를 해서 세분시장을 파악하고 표적시장을 정해서 포지셔닝을 하려고 해도,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시장조차 확보하기가 여의치 않다. 여기서 나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광대한 시장인데, 내 상품성은 틈새시장조차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내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좋은 벗, 선/후배가 될만한 자질이 있는지 아직 자신이 없다. 그러나 정말 진솔하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수 있도록 실력과 인격을 겸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는 궁극적으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면서도 교류의 즐거움, 소통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후배, 선배, 동생, 형이 되기를 바란다. 진지한 유쾌함을 선사하는 것이 나의 포지셔닝이다. 대중성 확보는 이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배보다 배꼽이 커버린 형국이 되어버렸지만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인간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난 앞으로도 무뚝뚝하고 고리타분해서 인간관계에 서투를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성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한다면 대중성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며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지인들께 진지한 유쾌함을 비롯한 이런저런 가치들을 창출해서 나눠 가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有麝自然香 何必當風立(사향노루는 자연스레 향기가 나는 것이니 어찌 바람을 맞아 서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억지로 대중성을 쥐어 짜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내가 뿜어내는 향기가 은은하다면 자연스레 나란 녀석과 관계 맺을 유인이 생길 것이다. 나의 개인주의는 고립의 미학이 아니라 다른 개인과의 연대를 통해 아름다움을 일구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대중성 확보를 위한 아름다운 타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 익구에게 투자해주시라~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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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즐, 테러리즘 KIN

사회 2004. 6. 26. 02:12 |
▶謹弔◀ 故 김선일님의 명복을 빕니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추가 파병을 결정한 이상 민간인을 상대로 한 테러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끝내 김선일씨는 참혹한 주검으로 돌아와 우리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야만스런 테러집단과 외교당국의 늑장 대처가 빚어낸 참극이다. 참으로 슬프고 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살상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반평화적 폭거이다. 이런 잔혹한 테러리즘에 관대해서는 안 된다.


테러리스트들의 만행에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저들에 대한 성냄이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분노로 확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무모한 테러리즘에 대해서는 단호하지만 이라크 민중을 비롯한 이슬람 세계에 대해서는 차분한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더러운 침공을 자행한 미국의 전쟁광들에게 손가락질을 할지언정 오늘도 고된 하루를 살아가는 이라크 민중에게는 모든 손가락 활짝 펼쳐서 악수를 청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추가 파병 철회를 비롯한 이라크 철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비장하게 추가 파병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하며 테러 근절을 외치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만약 노무현이 대통령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분명 파병반대의 목소리를 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추가 파병의 의지를 재천명해야 하는 이 누추한 모습에 서글플 따름이다.


노 대통령은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 못할 경제 문제, 북핵 문제 등을 염두에 두고 국익의 개념을 빌려 파병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명분 없고 더러운 전쟁에 발을 담근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잘 알 것이다. 그의 궁색한 변명을 접할 때 지지자로서 당혹스럽다. 변명할 가치가 없는 사안을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방어하는 모습은 정말 추잡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그 추잡함을 뒤집어쓰고 싶다.


물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고뇌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네들이 정서적으로는 파병에 반대하면서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집권여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려는 노력도 모르는 바 아니다. 기실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인한 후폭풍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경제 침체와 안보 불안 같은 상황을 감내할 만한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도 그네들의 책무다.


차라리 파병철회를 했을 때의 우리가 치를 비용 혹은 손해가 대처하기 곤란할 정도로 부담스럽다고 말하라.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이라는 말하는 자신도 믿지 않는 같잖은 논거를 대기보다는 그것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국민을 진심으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앵무새 같이 했던 이야기나 반복하는 것은 노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다. 아무리 부시 일당의 보이지 않은 협박이 강했다고 하더라도 자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우리 국민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는 진심 어린 설득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 영혼까지 갖다 바친 일부 기득권 세력들을 제외하고서 국민 중에 누가 가뿐 마음으로 파병을 찬성하겠는가. 우리의 이 고통의 열매를 가진 자들이 따먹는 광경을 왜 생각 못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병 문제에 자유롭지 못한 약소국의 설움에 다시금 몸서리를 친다. 익구는 전쟁에 반대하므로 대한민국의 파병에도 반대한다. 대통령과 우리당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이미 감정적, 논리적 파산 선고를 받은 이라크 사태에 개입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본다.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국회 차원의 논의를 통해 좀 더 신중하게 추가 파병을 검토했으면 한다.


아 정말 비통하다.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를 믿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런 비루한 인생은 딱 한 번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신이 있다면 저 전쟁에 미친놈들에게 한줄기 벼락을 내려주시라. 익구가 신을 믿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이 더러운 광경을 목도하면서도 침묵하는 자에게 어찌 내 영혼을 굽힐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신이라면 부시나 실컷 믿으라고 해라! 끝으로 미국의 개 노릇을 해야하는 대한민국의 초라한 몰골에 다함께 슬퍼하되 서로 너무 헐뜯지 말았으면 한다. 잠시라도 서로를 위무하며 이 아픔을 함께 나눴으면 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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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행정수도 이전 대상기관에 입법부와 사법부가 포함되자 일각에서 사실상의 천도라고 반발하며 국민 투표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국회에서 진행된 합의 과정과 의결 행위를 무력화시키는 의도다. (물론 누더기 친일규명진상특별법 통과 같은 경우는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처사 같은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신행정수도 이전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공약이었고, 국회에서 국가균형발전 3대 특별법으로 통과되었다. 여소야대의 16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재적 194명 중 찬성 167명, 반대 13명, 기권 14명)로 통과돼 국민적 합의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입법부와 사법부 이전은 특별법 6조 4항에 규정된 대로 '수립된 이전계획의 내용 중 정부에 속하지 아니하는 헌법기관의 이전계획에 대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국회와 사법부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뜬금없이 이전기관의 범위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그간의 행정수도 이전 합의 과정에 참여한 자들이 일부러 사실을 호도하거나, 아니면 진짜 무식해서 법안 검토도 안 해본 것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대선 직후 노무현 당선자가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으면 동의가 안되는 상황이 오면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자 한나라당은 행정수도 이전 사안이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국회가 거부하면 불가능한 일이 되는 것이지 국민투표를 통하는 것은 국회를 경시하는 일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결국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법안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노 대통령이 제2의 방법으로 국민투표를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어디까지나 국회에서의 의결을 얻어내려고 했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 작년 12월 신행정수도특별법 통과이다.


<"노무현 당선자가 충청지역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국회가 반대하면 국민투표를 해서라도 하겠다고 하였다. 잘못 알고 있다. 헌법 72조에 따라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것이다. 일반 사항은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국회에서 법 제정이 되지 않거나 국회에서 거부하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국회를 얼마나 경시하는가 하는 면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2003년 2월6일 주요당직자회의, 이상배 정책위의장)

"대다수 국민들은 수도이전을 가장 실현성 없는 헛공약으로 꼽고 있는데 노무현 당선자는 다시 충청권에 가서 헌법상 국민투표 대상도 아닌 사안을 국민투표를 해서라도 추진할테니 야당이 반대하면 좀 설득해 달라고 벌써 내년 총선을 겨냥한 허풍선전을 또 한 바 있다." (2003년 2월13일 주요당직자 회의, 김영일 사무총장) >


지난 16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정책에 대해서 대통령이 다시 국민투표를 한다는 것은 국회의 의사를 거역하거나 번복하게 하는 것으로 삼권 분립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옳다. 한나라당은 이제 와서 충청도 표심을 의식한 졸속처리였다는 사실을 인정해봤자 국민적 합의를 운운한 자신들의 반대논리가 부실한 것을 드러낼 뿐이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당론을 결정하고 국회에서 당당하게 논의에 임하라. 왜 자기네들이 할 일을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결단해야 한다며 남에게 떠넘기는가. 혹시 17대 총선에서 의회권력을 빼앗겨서 국회에서의 합의에 자신이 없는 것인가?


한나라당은 국회에서의 승산은 별로 없고 국민투표에 불을 지펴 자신들의 든든한 텃밭인 영남과 혹시나 하며 불안해하는 수도권 유권자들을 엮어보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어차피 별로 표도 없는 충청권의 민심을 버리고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수도권으로 확장해보려는 술수다. 표가 얼마 안 되는 호남권을 고립시킴으로써 영남 패권주의에 기생했던 지역주의 정당의 노림수에 현혹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의회 민주주의적 결단이라고 치켜세우던 자들이 대의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짓밟고 다시금 논쟁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은 이제 자신들이 정치적 소수파가 된 것에 대한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노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도 분명 표심을 잡기 위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권화와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분명한 논거를 가지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과밀화 현상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방 발전이 자꾸 더뎌지고 있고, 국토의 불균형 발전은 계속 심화되고 있고 지역감정 같은 국민적 갈등만을 유발하고 있다. 수도권에 경제, 정치, 교육, 행정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개별 경제주체가 지방으로 내려갈 유인은 거의 없다.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줄이고 지방의 경제발전의 열쇠는 민간보다는 정부의 몫이고, 그 실천방안으로 행정기관의 이전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신라의 신문왕은 금성이 수도로서는 국토의 동남쪽에 너무 치우쳐 있어 이를 만회하고 위해 달구벌로의 천도를 추진했지만 경주 진골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문왕은 그 대안으로 수도의 역할을 나눌 수 있는 5소경 제도를 창안했고, 수도의 편재성을 극복하려고 했다. 노무현 정부도 5소경 제도의 지혜를 다시금 살려 행정수도 이전을 국민통합에 이바지하도록 신중하지만 꾸준하게 추진해야 것이다. 참여정부는 국민들에게 국토 균형발전의 의지를 재천명하고 홍보해서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정파적 이해관계의 제물이 되는 것을 조기에 방지해야 한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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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를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실 이해찬 1세대인 익구로서는 그 격랑의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우선 논의에 앞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해찬 총리 지명자가 교육부장관 재직시절 추진했던 각종 교육 개혁정책들은 김영삼 정부 시절 입안된 정책을 구체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7차 교육과정의 고시는 김영삼 정부 말인 97년 말에 이루어졌으며 이해찬 장관이 추진했던 새학교 문화창조의 방안들은 사실 문민 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에서 도안해 낸 정책들이다.


물론 이해찬 장관이 다양한 전형 방법으로 대학 신입생을 뽑는 2002 입시 개혁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조는 이전 정권의 기본구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무리 심심하면 바뀌는 교육 제도라지만 국가차원의 교육 정책이 이해찬 개인의 농간(?)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싶다. 정리하자면 이해찬 장관은 이미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을 시행한 것이지, 새롭게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2002 입시 개혁안이 98년에 대서특필되다보니 그렇게 오해하기 쉬울 수도 있겠다는 노파심에 말씀드린다.


여담이지만 어느 교육부 간부가 이해찬 당시 장관에게 2002 입시 개혁안을 ‘무시험 전형’이 아니라 ‘다양한 전형’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이해찬 장관이 좀 더 관심이 끌릴 만한 무시험 전형이라는 용어를 선택하고 말았다. 이 용어는 결국 많은 오해를 낳았다. 한가지만 잘해도 대학 갈 수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입시전형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또한 시험을 보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 것도 크나큰 실책이다. (사실 이 부분은 교육부에서 홍보를 제대로 못한 것과 더불어 언론의 침소봉대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혹자들은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교육 행정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98년 입시 개혁안이 나온 내용이 2001년도(2002 대입)에 현실화된 것일 뿐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은 수긍하기 힘들다. 내신과 각종 특기가 중시되는 수시 제도나 총점제 폐지 같은 내용들은 다 98년도에 나온 이야기다. 대체 그 때는 가만히 있다가 막상 닥치니 난리법석인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입시 개혁안에 부응하지 못하고 기존의 입시 전형을 고수해온 대학 당국에게도 비판의 화살을 돌려야 공정할 것이다.


입시 개혁안과 더불어 추진 된 모의고사/야간자율학습/보충학습 폐지 같은 정책들도 일선 학교들에게 혼란을 조장했다. 이런 정책들로 말미암아 고교생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기초 학력이 떨어졌다는 세간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이른바 이해찬 세대의 탄생이다. 가만히 물어보자. 정녕 이해찬 세대 스스로가 단군 이래 최저학력이라는 손가락질에 동의하는 것인지를... 이해찬이라는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얼마 전 익구는 서울외고를 방문해서 어느 선생님 말씀을 들었는데 요즘에는 0교시도 없고, 야자도 강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 고등학교 후배님들의 학력은 바닥을 긁다못해 지하로 들어가야 정상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후배님들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지만 나름대로의 공부를 할 것이다. 후배님들도 배울 것은 다 배울 것이고, 우리도 지난날 배울 것은 얼추 다 배웠다. 이것은 ‘정책이 어찌 되었건 공부할 놈들은 다한다’의 논리가 아니라 ‘정책 덕분에 다양한 공부의 싹이 틀 토양이 마련되었다’로 해석할 수 있다. 부디 이해찬이라는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무식해졌다고 하지말고, 우리 신세가 처량하다고 생각지 말자. 살다보면 외적 귀인(external attribution)을 하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죄 이상의 벌을 내리는 것은 또 하나의 죄가 될 수도 있다.


이해찬 장관의 교육 개혁은 탄탄한 제도적 보완을 받지 못해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분명 이전보다 개선된 제도를 만들려고 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교육 개혁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해찬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를 둘러싼 논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해찬 장관의 교육 개혁은 고등 교육을 가만히 두고 초, 중등 교육을 아무리 지지고 볶아봤자 한계가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이 점에서 전략적 패착을 거듭했고 지적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제도 몇 개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의식 속의 학벌주의를 비롯한 한국 교육의 병폐들을 몰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정책의 취지는 옳았으나 학벌 피라미드의 근본 구조가 온전한 가운데 변죽만 울리고 끝나버린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선과 우리의 내면 의식이 상호작용하면서 조금씩 바뀌어 나가고 있다.


이해찬 총리 지명자가 적절한지의 여부는 교육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저질렀던 잘잘못과 더불어 총체적으로 총리로서의 자질을 논하는 인사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며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 괜히 이해찬 세대 논쟁이 불거져 나와 그 시대를 살아왔던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신세를 누추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일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어떤 공부든 자신이 좋아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열심히 하면 그만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대학사회는 하고 싶은 공부보다는 해야만 하는 공부를 더 많이 해야하는 서글픈 모습이다. 그러나 그 핑계는 고등학교 때도 지겹게 했다. 아마 훗날 취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게 된다면 그 때는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한다고 할 것이다. 이 끝없는 핑계와 유보의 고리를 끊고 우리 지금 이 순간을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물론 그 순간 순간을 소중한 지인들(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나눌 수 있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우리를 보고 공부도 못한 것들이라는 부당한 매도에 당당히 방어하는 이해찬 세대들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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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를 관람하다

잡록 2004. 6. 12. 02:35 |
6월 5일 익구는 청원, 찬구와 함께 [토로이]를 관람했다. 영화 취향이 까다로운 청원이는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투덜거렸으나 익구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영화는 원작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상당히 다르게 각색했다. 제작진이 각색이 아니라 영감을 얻은 정도라고 말했듯이 원작과는 사뭇 다른 내용들이 난무한다. 우선 신들의 장난질이 싹 사라지고 오로지 인간 이야기만으로 진행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헬레네가 결국 다시 전남편 메넬라오스에게 돌아가고,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아킬레우스 아들의 첩이 된다는 이야기는 쏙 빠지게 된다. 또한 헥토르의 시신을 프리아모스 왕이 엄청난 몸값을 치르고 찾아올 수 있었다는 내용도 아킬레우스가 왕의 용기에 감명을 받아 공짜로 내어주는 것으로 미화되어 표현된다. (사실 이 대목에서 몸값을 치르기 위해 수레에서 갖은 재화들을 내리는 장면을 상상하면 얼마나 멋대가리가 없고 비루하겠는가.^^; 여하간 피터 오툴의 매혹적인 연기에 찬사를 보낸다)


이처럼 원작과는 다른 내용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그리 밉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가 비교적 그리스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면 [트로이]는 트로이 진영에 대한 연민을 감추지 않는다. 아킬레우스가 양아치로 그려지고, 헥토르는 다정다감하고 착실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스군의 수장 아가멤논이 권력아귀에 달라붙은 탐욕스런 인물이라면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부정이 그득한 기품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트로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죽지 않는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이 모두 죽는 것으로 처리되는 것도 트로이에 대한 배려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의 일격에 당하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꼈다^^;)


이렇게 트로이에 많은 애정을 할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로이는 목마를 들여보내는 삽질을 함으로써 잿더미가 되어 버린다. 익구는 이 대목에서 혀를 내둘렀다. 신화에 따르면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지 말 것을 주장하며 목마를 향해 창을 던지기 까지 한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두 마리 뱀이 라오콘과 두 아들을 물어 죽어버린다(그 유명한 라오콘 조각상의 일화다). 결국 트로이 사람들은 신들이 노한 것이라며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 와 화를 자초한다. 신화적 요소를 제거한 이 영화인만큼 이 황당한 장면이 삽일 될 리 없지만 목마를 좋다고 끌고 들어오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석연치 않다. 익구는 스스로가 라오콘이 되어 스크린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결국 일리오스(Ilios, 트로이의 별칭)가 불타 오르는 순간에 익구는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 카르타고의 불타는 시가지의 모습을 함께 연상했다.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일리아드에 나오는 헥토르의 “언젠가는 트로이도, 프리아모스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전사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라는 구절을 읊조렸다고 한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2권 中). 한니발의 회한과 카르타고의 비운을 늘 안타까워했던 익구도 불타는 트로이에서 카르타고를 연상하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이 없었다. 모든 몰락하는 것들은 다 비슷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승자의 몫이고, 부, 명예, 권력을 차지한다면 안쓰러운 동정심은 패자에게 던져지는 개평(?)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아가멤논의 “사내들의 세계에는 평화란 없지, 제국은 전쟁으로 건설되지”라는 명제에 충실하게 마초적 감수성을 향해 돌진한다. 남자들의 권력과 명예를 향한 아귀다툼이 그럭저럭 미화되고 있는 셈이다. 아킬레우스는 “남자는 야망이 커. 난 더 크지”라며 자신의 남근적 세계관에 충실할 것임을 천명한다. 이런 와중에 자연히 여성들은 수동적인 대상으로 전락한다. 헥토르도 출정하면서 “신을 섬기고 내 여자를 지키며 조국 트로이를 사랑하라!”는 원칙을 제시하지 않는가. 이러한 남성우월주의 아니 남성올인(!)주의는 지난날 인류의 누추한 미감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런 마초적 감수성은 여전히 대다수 남성들의 가슴속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마초적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들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마초적 매력을 갖춘 이들은 여전히 상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익구가 양성평등주의를 옹호하고 여성의 권익향상을 들먹거리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마케팅에서 소비자의 서로 다른 욕구에 따라 시장을 분류하는 것을 시장세분화라고 하고, 세분시장(market segment)은 주어진 마케팅 자극에 대해서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소비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시장을 말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여전히 마초 시장은 거대하고, 당연히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상품이 쏟아지는 것을 배아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려한 전투 장면을 감상하며 장관(壯觀)이라며 마냥 손뼉을 칠 수 없는 것은 영화관 밖을 나서면 나 또한 다른 전쟁판에 떠밀리기 때문이다. 남자라는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전쟁터로 내몰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다만 문명화된 위선의 사탕옷이 입혀져 처음에는 단맛에 취해 그 씁쓸함을 모른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익구가 왕과 영웅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쓰러져갔던 트로이와 그리스의 이름 없는 병사들 같은 인생과  얼마나 다를지 장담할 수 없다. 익구의 젊은 피 또한 권력자들의 손아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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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5월 27일 연세대 특강 내용 중에 진보와 보수를 언급한 내용은 여러모로 혼란스럽다. 노 대통령은 보수를 “힘이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는 약육강식이 우주섭리에 가깝다고 말하는 쪽”이라고 말하며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의별 보수를 갖다 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으로 정의했다. 반면 진보는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져 있으니 더불어 살자”는 것으로 정의했다.


대강의 얼개는 맞다고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진보는 선이고, 보수는 악이라는 뜻빛깔(뉘앙스)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의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인식은 곤혹스럽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지나치면 독단과 독선에 빠지게 된다. 노 대통령의 강연 내용에게 그런 혐의를 짙게 드리우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노 대통령이 말하는 보수는 사익만을 추구하고, 상도덕을 어기는 보수를 지칭하는 것이겠지만 정치적 수사로 용인하기에는 너무 비약이 심했다.


레이건의 ‘악의 제국’이나 부시의 ‘악의 축’ 따위의 레토릭이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말살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고의 산물이듯이, 노 대통령의 보수세력에 대한 비판도 상당히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못돼 먹은 수구세력, 냉전적 보수에 손가락질하는 것을 넘어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세력들까지 도매금으로 취급하려 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발언이다. 기실 박근혜 대표의 말대로 “보수는 끊임없이 고치며 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그런 세련된 보수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언제 끊임없이 고쳤다고...ㅡ.ㅡ;)


또한 노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현실과 괴리가 있다. 노회찬씨의 지적처럼 “자유주의적 개혁적 보수주의”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지향을 보다 적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시민 의원이 누차 강조하듯 열린우리당이 온건보수, 한나라당이 강경보수, 민노당이 진보라는 위치잡기(포지셔닝)를 하고 있다는 것이 보다 타당한 설명이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좌파를 빨갱이 취급하던 한국의 기형적 정치 질서에 얽매인 사고를 벗어 던져야 한다. 이제 그런 우편향 된 정치지형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만큼 억지로 자신을 진보라고 자처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주의자로서, 개혁적 보수로서의 면모를 다잡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노 대통령이 굳이 진보적 정치를 펼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나 천민자본주의와 극단적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경계 같은 자유주의 미감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을 실현할 짐은 지고 있다. 꽤 그럴듯한 보수가 되는 것으로도 노 대통령의 소임은 다할 것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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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권 단상

사회 2004. 5. 22. 17:37 |
하나의 유령이 대학을 떠돌고 있다 - 공부권이라는 유령이.

대학 생활의 목표를 좋은 학점 취득과 대기업 취업, 고시 등 각종 시험 합격에 두고 학과 공부와 시험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공부권’이 무섭게 세를 넓혀가고 있다. 공부권이라는 단어를 처음 고안해 낸 서울대의 이규진씨는 “과거엔 학생들이 반독재 투쟁 등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전공분야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가장 큰 시대적 요구라고 생각한다(한국일보 2003. 11/02 기사 참조)”고 말했다.


공부권들의 등장이 가뜩이나 사회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이 개인주의에 더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잖이 있지만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그네들의 욕구를 막지는 못할 듯 싶다. 설령 그 공부의 목적이 오로지 개인의 출세와 영달에만 국한되는 것이라고 해도, 또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한 생계형 포지셔닝이라고 해도, 치열하게 자신을 가꾸려는 노력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은 일단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뒹굴 뒹굴 놀 궁리만 하는 나는 정말 반성해야 한다^^;)


공부권의 선의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멀리 뛰기 위해 잠시 움츠리는 냉철한 현실감각을 갖추는 것이며 내일의 당당한 주체로 서기 위해 오늘의 땀방울을 아끼지 않는 자세이다. 순간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순간의 행복을 유보한 만큼 얼마나 더 큰 행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활 타오를 기회는 나중에 널렸다며 불씨 정도만 간직하고 사는 성실한 공부쟁이들을 나는 존중한다. 그리고 나 또한 공부권으로서의 기질이 다분함을 느낀다.


학교 우등생이 사회 열등생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학교 모범생이 사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실력위주의 사회가 도래한지 오래다. 고지식하고 순발력도 떨어지는 나 같은 범생 스타일이 앞으로 좀 더 사회의 주도적 위치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본다. 지금 당장에 시급 4000원의 알바보다는 미래에 시급 40만원의 역량을 쌓는 것이 한 개인에게 있어서나 사회 전체에 있어서나 후생을 증대시키는 유쾌한 노력이 될 것 같다. 물론 높아질수록 낮은 곳을 응시할 줄 아는 올챙이적 기억을 간직하겠다는 기본적 합의가 전제된다면 말이다.


어느덧 대학 3학년이라는 압박에 허덕이는 나를 보면서 많은 질문을 던져본다. 당최 앞으로 뭘 해서 밥 벌어먹고 살지 막막한데, 무엇에 내 꿈을 투자해야 할지도 아직은 묘연하다. 고민할 시간이 자꾸 침식되어 가고 있다는 절박감이 엄습한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오늘 하루를 열심히 배우고 익히면서 살아내는 것이다. 분명 언젠가 이거구나 하는 것이 내게 살포시 다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서 말이다.


공부권들은 개인주의 혁명에서 자신들을 묶고 있는 무식의 족쇄 외에는 잃을 게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진리가 있다.

만국의 공부권들이여, 흩어져라!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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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구는 5월 3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석탑 대동제를 즐겁게 보냈다. 한 일이라고는 각 단위의 주점을 관리하는 일밖에 없었지만 무사히 잘 마쳐서 다행스럽다는 평가다.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던 익구에게 있었던 일을 정리해봤다.


<5월 3일>
오전부터 비가 내려 주점 준비가 무척 고생스러웠다. 비가 저녁 늦게나마 그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7교시 강의를 마치고 선생님과 선배님 이렇게 셋이서 삼성통닭에서 만남을 가졌다. 주점이 잘 돌아가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즐거운 담소를 나눴다. 학생회장이라도 주점에서 돈을 내고 먹어야 한다는 익구의 말에 주점을 세 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는 익구 신세를 가여이 여겨주셨다. 특히 기억이 남는 것은 선생님과 선배님께서 요즘 대학생들은 참 불쌍하다며 혀를 차시는 것이었다. 예전의 낭만이 가득한 대학생활과는 판이하게 돌아가고 있는 요즘의 대학 풍속도가 화제에 올려지자 익구는 자꾸 불쌍하다 그러니까 더 처량해지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통닭에 골뱅이, 번데기까지 포식한 익구는 다시 경영관으로 향했으나 광란의 현장을 목도하고는 현기증을 느꼈다. 또한 익구에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강의실에서 책상과 의자를 무단으로 꺼내온 것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적당히 무마를 하고 마저 즐거운 주점을 이어 나갔다. 자정을 전후로 익구는 주점 정리를 독촉하러 다녔고 모두들 귀찮은 잔소리에 마지못해 치우는 시늉을 했다. 특히 A반 주점을 정리하던 중에 상으로 썼던 종이상자들을 불태우게 된다. 익구는 처음에는 위험하다며 만류했지만 막상 불이 활활 타오르자 덩달아 신나서 기념 사진에도 동참하고 말았다.^^; 여하간 학생회실에 술병 환자를 잘 안치한 것을 확인하고 날이 밝아오기 전에 얼른 집으로 향했다. 새로 이사간 집까지 택시비는 6000원이 채 안 돼서 노원구 살 때 보다 2000원 가까이 싸게 나왔다. 익구는 흡족해하며 앞으로 차 끊기면 택시를 애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5월 4일>
전날 책상과 의자를 무단으로 꺼내 쓰고 인공폭포에 쓰레기를 투기한 일로 학사지원부에서 언짢은 소리들을 했지만 한숨 쉬어가며 적당히 둘러대서 주점을 이어나가게 된다. (축제가 다 끝나고서야 주점 교통정리 하느라 고생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주점 하는 내내 티격태격해야 했다^^;) 학생들보다 잔디밭, 폭포, 기자재를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고 버럭 따질 까도 생각했지만 그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어서 세 개 반 주점이 열렸다. E반 주점에 들러 01 선배님들과 잠시 자리를 가진 뒤, C반 주점에 잠시 들러 작년 경영대 학생회 일을 함께 나눈 치용이 형이 휴가를 나오셔서 뵈러 갔다. 하지만 98 선배님들께서 달리는 분위기를 연출하자 모종의 불안감을 감지한 익구는 다른 주점 확인 좀 하고 온다는 핑계를 대고 결국 다시 들르지 못했다. 다시 E반 주점으로 돌아온 익구는 A반 친구 칠성이를 비롯한 A반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작년 주점을 회상하며 푸짐한 서비스를 기대했으나 어려운 경제상황이 반영된 탓인지 조금 팍팍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익구는 주점에서 돈을 남기면 얼마나 남긴다고 그저 다같이 술 한잔 나누는 재미로 하는 것이지, 너무 인심을 박하게 쓰는 것이 아니냐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결국 말은 이렇게 해놓고 얻어먹을 것은 다 얻어먹었다.^^; 익구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 전철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칠성이를 배웅하고 B반 주점 정리를 감시했다. 거의 치워졌구나 싶을 때 C반 주점 정리 상태를 점검하러 갔으나 이게 웬일, 사람은 간데 없고 주점 자리는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부랴부랴 연락을 돌려 아침에 와서 치우겠다는 확답을 받고도 모자라 신신당부를 해놨다. (이 덕분이었는지 나중에 학사지원부에서 C반 정리가 가장 훌륭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익구는 B반 뒤풀이 장소에 따라가서 해장국을 맛나게 먹은 뒤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5월 7일>
지야의 합성 입실렌티를 관람하기 위해 녹지 운동장으로 향하다. 노천극장과는 달리 탁 트인 공간 탓에 시선이 분산되는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응원하고 놀기에는 더 넓고 좋은 것 같았다. 하지만 모래바람 때문에 목감기에 시달린 친구들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익구는 다섯 개 반들이 적당한 위치에 잘 자리잡았음을 확인한 뒤 가벼운 마음으로 입실렌티를 관람했다. 초대연사인 한비야씨의 “강자를 편들어 자연사하시겠습니까, 약자를 편들어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시겠습니까?”라는 사자후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익구는 한비야씨 같은 치열하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 무척 매력적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 초대가수인 전인권씨의 무대는 무척 흥겨운 한마당이었다. 중후한 멋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한 익구는 하지만 이런 무게감은 익구와는 맞지 않는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어진 응원 한마당에서 익구는 02 친구들인 병만, 욱진과 함께 온몸을 달구는 응원을 즐겼다. 입실렌티가 성료되고 D반 뒤풀이를 함께 했다. 본래는 새로 장만한 디카로 사진도 좀 찍고, 이야기꽃을 피워보려고 했으나 다들 격한 응원 탓인지 조용히 안주만을 축내는 분위기라 익구도 맥주를 들이키며 지친 몸을 달랬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골뱅이 무침이 압권이었다. 뒤풀이가 얼추 끝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려고 생각했던 익구는 B반 일행을 만나 B반 뒤풀이에도 합류하게 된다. 02 친구인 미경이와 안면을 트게 되는 등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아침 해장국까지 해치우고 집으로 향한다.


<5월 9일>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본디 소풍을 기획했건만 비가 오는 바람에 무산되고 건대 근처 술집에서 만남을 가졌다. 큰 규모의 소풍이 취소되어서 당초 기획했던 것보다는 판이 작아졌지만 스무 명도 넘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사발식 시주 이후 범 막걸리 계열의 술을 일체 입에 대지 않게 된 익구는 그날따라 잔뜩 시킨 동동주를 거의 마시지 못하고 낙지볶음 안주를 맛나게 먹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익구 잘 먹는다” “저거 또 안주킬러 짓 시작이다” “익구야 또 먹어?”라는 전형적인 구박이 시작되었다. 사실 익구는 술만 마시면 이상하게 허기가 더 심해지는 증상이 발동해서 안주에 자꾸 손이 가게 된다.^^; 이번에 대학 새내기로서 보내고 있는 수현이가 게임을 제안했고, 모두들 게임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이미 게임이랑은 영 멀어진 02 고학번인 익구로서는 옆 쪽 테이블에서 山소주를 마시며 지나간 세월을 한탄했다. (익구는 예나 지금이나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게임의 블랙홀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5월 14일>
익구는 오전에 탄핵 기각이라는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하고 지난 두 달간의 묵힌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꼈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도 가지 않았던 연대 아카라카를 02 노구를 이끌고 머나먼 원정길을 떠나게 된다. 입구통제하는 사람들과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한참 벌이고서야 겨우 입장을 할 수 있게 된다. (큰 폭력 사태는 없었지만 다소간의 주먹질이 오갔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축제 분위기를 퇴색시키는 우울한 풍경이다) 인기 가수들이 많이 나온다는 평이 자자한 아카라카이지만 본래 가수 공연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는 익구는 초등학교 친구인 애란이와 저녁을 먹었다. 1년만에 만난 애란이와 대학생활의 애환을 즐거이 나눴으나 연세 방송국에서 일하는 애란이는 방송제 준비로 독촉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익구는 내가 주로 독촉을 하는 입장이 되어봐서 잘 안다며 얼른 들어가 보라고 말했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아카라카는 마지막 초대 가수로 신승훈이 나왔고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이어진 응원 한마당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익구는 상념에 잠겼다. 저 거대한 파란 물결을 보며 때로는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선의의 경쟁자로서 연세인들의 존재를 실감하게 되었다. 익구는 아카라카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만 와당탕 넘어지는 바람에 디카도 긁히고, 휴대전화 액정도 깨지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는 촌극을 연출했다. 익구는 역시 신촌동네의 불길한 기운이 사단을 내고 말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A반 뒤풀이에서 맥주를 마신 익구는 역시 신촌이라 그런지 맥주맛이 일품이라며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서 D반 뒤풀이를 참석해서 연세인들과 함께 하는 응원을 즐겼다. (주로 눈으로... 몸이 말이 아니라서... 쿨럭) 좀 전까지는 연대의 복잡다단한 응원이 신기하기도 했으나 이내 연세인들도 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응원은 네댓 개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끝으로 B반 뒤풀이에 갔다가 첫차를 타고 돌아왔다. 술 취한 04 창헌이를 중계역까지 데려다 주지 않고 내린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창헌이는 그날 신대방역까지 갔다가 와야했다고 한다.^^;


<5월 15일>
아카라카까지 달리면서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만 거의 2년 만에 수옥 누나와의 만남을 가졌다. 35대 총학생회 일을 함께 했던 수옥 누나께서는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으로 그 출중한 실력을 뽐내고 있으시다. 역시 총학 일로 알게 된 선임이와 함께 강남역으로 향하는 길 내내 너무 멀다고 투덜거렸다. 사실 아카라카의 여독이 덜 풀린 탓도 있었으리라. 강남역에서 수옥 누나와 함께 나오신 진관 형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저녁으로 난생 처음 접하는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마지막에 담가 먹는 칼국수가 별미였다. 보드카페에서 젠가, CLUE, 할리갈리를 재미나게 했다. 불꽃튀는 젠가 대결에서 와르르 무너진 것이 누구의 탓인가 미스터리이지만... 아마도 익구가 팥빙수 국물 흘려서 휴지로 훔치려고 하는 찰나에 무너졌으니 익구탓도 지대하다는 것을 이 자리를 들어 밝힌다.^^; CLUE는 아무리 해도 맞추지 못하는 익구머리의 한계를 절감했으며, 할리갈리는 산수감각과 순발력이 함께 부족한 익구의 부실한 몸뚱아리를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익구는 수옥 누나와의 회동을 통해 어떤 모임이나 약속이든 내가 먼저 다가가서 챙기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성사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축제를 핑계로 들뜬 기분에 젖어서 한 때를 보낸 익구는 어느덧 다가온 이번 학기의 마지막을 차분히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번 학기를 축제의 흥겨움을 유지하며, 즐겁게 마무리하겠다는 자세다. 축제 끝의 무료한 일상이라기 보다 이제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승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축제 기간 익구와 함께 해준 모든 이들께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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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를 보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내 누리집(홈페이지)을 다녀간 상당수의 손님들도 내게 그런 평을 내리기 일쑤다. 이러한 평이 얼마나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내가 가진 한 표의 권리를 소중히 행사하고 의사결정과정을 바라보며 혹시 삽질을 하지는 않는지 감시하는 것이 굳이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치색이 짙은 것이라면 기꺼이 그런 평가를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정치적 언동이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책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마 나의 죄목은 적당히 모두다 욕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만 너무 욕한 것에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지난 몇 년간 한나라당을 구박한 무수한 말글들을 보면 내 고약한 심보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다.^^; 또한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이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나란 인간에 대한 막연한 편견의 벽을 쌓게 하는데 일조하지 않았냐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한다고 외치면서 나란 녀석의 표지 중에 우리당 지지자라는 강력한 낙인을 찍기도 했다. (한 친구는 내 홈페이지에 잠깐 들어섰던 열리우리당 로고를 본 후에 익구닷컴에 발길이 끊어졌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나이지만 내가 믿고 지지하는 바를 밝히는 것에서 오는 불이익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기실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애초부터 불이익을 감수해야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표현의 자유에도 비용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도한 비용 지출을 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나는 어느 정당의 지지자이거나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내는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편파적일 권리를 가진다. 다만 그 편파성이란 타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렇게 이름지어지는 것일 뿐, 그 편파성에 이르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상식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옳고 내 가치가 보다 적실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즉 타인의 눈에는 내가 편파적일지 모르지만, 내 자신이 보기에는 나는 나름대로의 타당한 논거로 세상을 해석하고 있다고 믿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나만큼이나 타인의 입장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이며, 생각의 자유를 주창하는 자유주의이며, 다양성을 긍정하는 다원주의이다. 내 방식이 옳고 재미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자유지만, 마주보고 있는 저 친구의 세계관과 행동양식 또한 충분히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 다만 자신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나머지 객관적 사실도 왜곡하고, 명백한 오류를 시인하지 않는 오만을 부려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몇 가지를 경계하면 우리는 “인간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관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인간 내부에 있는 개성적인 것을 모조리 마멸시켜 하나같이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고려해서 부과된 범위 안에서 그 개성적인 것을 육성하고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익구라는 녀석의 당파성 혹은 정치적 견해란 무엇이길래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다느니, 정치색이 짙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어야하는 것일까? 대개는 노무현 지지자, 노사모, 우리당 지지자로서의 딱지만을 붙일 뿐이다. 익구를 아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란 인간의 다른 가치를 보여주지 못한 나의 나태함의 탓이 크겠지만 그런 딱지 하나로 나를 평가하는 분들께도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익구가 그런 대외적 지지를 표명하기까지 어떤 논거를 제시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과는 관련 없이 일상생활 속에서 익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는 크게 전달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스스로의 필요성에 의해서라도 다음과 같이 익구 생각의 고갱이를 정리해보겠다.


첫째, 익구는 자유주의자로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상도덕을 준수하는 것을 신조로 한다. 여기서 상도덕이란 모든 종류의 시장에서 룰을 준수하며 공정히 경쟁하기, 자기의 행위에 대한 합리적 평가와 그에 따른 적절한 책임지기, 비용의 균등한 분담과 채무관계의 정확한 기록과 확실한 변제 등을 삶의 원리로 하는 것이다. 물론 유능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합당한 보상받는 것은 중요하다. 능력과 노력의 차이를 보상의 차이로 대응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영속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역사적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시장의 승리자에게 응분의 보상이 주어지는 정당한 불평등이 때로는 우리의 미감을 거스르더라도 게임의 룰을 지켰다면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고종석 선생의 지적대로 덤의 보상에는 절제가 수반되어야 하고 그것이 평등감각과 정의감각에 합치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으로 제한된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집단의 선택보다 우위에 두는 것으로서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이상 국가나 집단이 그 개인의 결정에 감놔라 배놔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자유경쟁이 이뤄지는 시장경제와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자유선거에 의해 권력자를 선출하는 의회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다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믿고 지지한다. 익구가 바라는 자유주의의 이상은 사실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자유권들이 제대로 실현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헌법적 가치만 제대로 발현된다면 딱히 욕심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상과 양심을 구속하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자유주의를 기본적으로 추구한다고 했을 때 경제적 자유주의는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광풍이 자본의 횡포를 조장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고, 정부가 적절한 개입으로 이를 방어하고 부당한 차별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경제활동의 자유도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며 정부의 쓸데없는 규제는 철폐되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 오늘날 험난한 세계화의 파고에 대응하는 생존수단이 될 것이다. 광신적 시장론자들은 질색이지만 WTO, FTA 같은 자유무역질서를 부인하는 것도 어리석은 처사다. 다만 개방의 물결 속에서 우리의 이익을 지켜낼 수 있도록 부지런히 방벽을 쌓아야 한다.


둘째, 익구는 개인주의자로서 집단에 피신하지 않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자세, 나의 생각과 판단에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 남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나는 타인과의 차이를 존중하지만 그것이 차별이 되는 것을 반대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개성의 향연을 누리면서도 그런 개성들 사이에 현저하게 다른 가치가 부여되지 않도록 하는 세상이다.


또한 내 자신이 이기적 효용함수를 가졌으며, 이타주의적 희생 모델을 따르지 않을 것을 천명한다. 미국의 철학가, 소설가인 에인 랜드의 말처럼 “난 결코 다른 사람을 위해 살거나 다른 사람더러 나를 위해 살아달라고 부탁하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단의 이익에 복무하라는 전체주의적 억압에 콧방귀를 뀔 것이다. 또 집단의 이름으로 내 개인이나 다른 개인의 이익이 심하게 훼손될 때 언짢은 소리하는 것을 크게 망설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울러 소수파가 되었을 때의 불편함과 두려움을 다수파가 되어서도 잃지 않는 양심적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 모든 면에서 다수파일수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소수파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개인주의가 내세우는 똘레랑스는 일종의 보험이다. 물론 남과 다른 것에 마음을 열어야하는 보험료는 그리 싼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보험료의 부담쯤이야 마음 편히 소수파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보험금의 혜택에 비추어볼 때 확실히 남는 장사로 보인다.^^: 이처럼 개인주의는 고립주의가 아니며, 궁극적 소수로서의 다른 개인과의 연대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양성평등의 실현을 위해 힘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불평등한 처우를 받는 것은 자유주의 미감을 거스를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사실 내가 양성평등을 입에 달고 있는 것은 여성의 권익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내 멋대로 살고픈 참을 수 없는 자유주의적 열망 때문이다. 결국 남을 도우려는 것이 아닌, 내가 편하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의 발로이다.^^


부당한 불평등의 대표주자인 여남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의 권리신장과 기회균등을 위해 남성으로서의 쥐꼬리만한 기득권도 내어줄 용의가 충만하다. 나는 양성평등한 사회가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이로움을 가져다주며 사회전체적인 후생도 증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라는 거짓된 이데아가 지배하는 세상의 숨막힘이 정말 싫다. 이러한 폭압적 구조 하에서 나는 남는 장사를 벌이지 못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남자다운 ‘척’ 하는 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하고 싶은데, 투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의 불편함이 양성평등을 외치는 이유다. 페미니스트라는 수사학이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오해받기 십상인 세태이지만, 혹시라도 내게 그런 혐의가 씌워진다면 기꺼이 자수하겠다.^^;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보다는 양성평등이라는 표현을 더 즐겨 쓰고 있지만 말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양성평등은 남자인 나를 위해서이니까 말이다)


넷째, 익구는 점진적 사회공학을 방법론으로 삼는다. 칼 포퍼의 점진적 사회공학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는 추상적인 선의 실현을 위해 힘쓰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악은 직접적인 수단에 의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유토피아 건설로 악을 간접적으로 제거할 생각말고, 오늘의 희생을 쥐어 짜내기보다 지금의 고통을 덜어내는 데 힘쓰라는 것이다. 이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실현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하려 하기보다는, 존재하는 것이 명백한 악, 피할 수 있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데 애쓰라는 것이며, 지금 여기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해야한다는 뜻이다. 즉 누구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칸트식의 목적의 왕국인 셈이다.


추상적인 이상에 대한 합의는 참 어렵다. 특히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나로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쪽으로 끌어온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서로간에 차이점을 확인하고 시사점을 발견해서 자기교정의 계기로 삼는 것으로 그치기 일쑤이다. 내가 혁명의 열정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이 무지막지한 차이의 세계를 하나의 구호로 묶는 것에 자신이 없다는 소심함의 발로이다. 또한 설혹 어찌어찌 해서 꾸려진 유토피아가 개개인의 효용을 극대화시켜 줄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그래서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악에 대한 인식이 같다면 이를 오늘의 시점에서 제거하려고 애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는 너무 매끄럽지 못하고 두루뭉술한 수단이라고 비판할지 모르겠지만, 매끈함을 핑계로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내 성격이 특별히 모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기계적 중립성에 나를 묶어두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나와 교류하는 모든 이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교적 분명히 좋은 건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하려고 노력했다. 내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생채기 받는 것도 기꺼이 감수했다. 그럼에도 나를 아프게 하는 비판이 있다면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는데, 너의 생각이 모든 사람의 생각인양 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다. 한 번은 나도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침묵은 동의에 불과하니 당신의 생각을 드러내놓고 말하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침묵은 유효한 보신책이며 최상의 방책이다.


나는 내 의견이 여러 가지 정황을 분석해볼 때 비교적 타당하다고 주장을 하겠지만, 내가 전적으로 옳다고 오기를 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다만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자 노력하는 것이지만, 이를 틀린 의견이라며 구박하는 이들을 적당히 방어할 것이다. 파시스트가 아니라면 나와 생각이 다른 것에 대해 조금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사안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이걸 못 참는 자들이 사상의 자유시장에 득시글댄다면 시장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 우리의 부싯돌은 부딪힐수록 빛이 난다는 볼테르의 말을 상기하자. 생각끼리 부딪히지 않는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암흑에 불과하다.^^;


“네 말마따나, 지금 네 정도의 성향도 극렬 좌파라 오해받는, 명문대 경영학도들의 무관심과 기계론적 사고방식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너의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너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게 아니길, 이 정도도 오해받는데 더 반대편으로 기울면 어떻게 하지 소심해하는 게 아니길 바란다.”


날라리 우파 정도의 위치잡기(포지셔닝)를 한 내게 한 선배께서 위와 같은 충고를 해주셨다. 하기야 내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옹호 정도를 역설해도 불온하거나 극단적이라고 보는 눈초리들이 차고 넘쳤다. 나는 오른쪽으로 많이도 아니고 욕먹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어왔고 내 자신이 온갖 눈치를 동원하는 소심한 녀석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특이한 녀석으로 취급되고 백안시되는 것은 늘 두려운 일이다. 바쁜 세상에 내 의견을 꼼꼼히 들어줄 필요도 없고, 내 논리를 면밀히 검토해서 반박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느긋함을 보여줬으면 한다.


익구는 앞으로도 사회 의사결정과정으로서의 정치의 다양한 모습들에 관심을 가지는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이다. 앞으로도 바지런히 눈치를 보고 살겠지만, 때로는 내 사상과 양심에 비추어 ‘편들기’를 마다하지 않겠다. 내가 늘 감수하겠다고 하지만 오해받는 두려움이 달콤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늘 무척 쓴맛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려야 했지만 앞으로도 그 씁쓸함이 내 곁을 떠나지는 않을 것 같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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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긴 쳇구멍

잡록 2004. 5. 13. 02:33 |
사람은 보는 것을 믿는 것일까, 믿는 것을 보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생각보다 꽤 철학적인 주제다. 아마 두 가지 측면이 골고루 있을 것이고, 또한 이 둘의 가치우위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할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좀 더 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제 나름의 체로 한 번 걸러 입맛에 맞는 데로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선택적 사고의 함정은 언제나 우리를 유혹한다. 어느 정도의 선택적 사고는 개개인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객관적 사실마저 외면하는 순간 선택적 사고는 그 빛깔을 바래고 만다. 진중권 선생은 [당파와 파벌로 찢긴 대한민국은 미쳤다]는 글에서 이러한 맛간 선택적 사고를 강하게 비판한다. 우리 사회가 논리적 성격이 아닌 정치적 성격의 일관성이 팽배해있다는 것이다. 당파와 파별로 찢어진 사회에서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이 합리적 소통이라면서 당파의 차이를 떠난 합의의 장이 설자리를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기실 모든 사안마다 모두 의견이 일치해야만 내편이라고 보는 것은 최대주의(maximalism)의 폭거일 따름이다. 최대주의는 자유주의의 미감을 심하게 거스른다. 모든 사안에서 몇 치의 어긋남조차 허용하지 않아야만 안심하는 것은 파시스트의 미감일 뿐이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너가 그럴 줄 몰랐다”라면서 호들갑을 떠는 모양새에서 파시즘의 잔재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반대자들에게 쓴소리를 내뱉는 것은 쉬운 일이고 때로는 재미나고 희열이 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군에게 화살을 날리려고 하면 활시위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나의 당파성이 자유주의 미감을 구현하는 것에 있다면 집단주의의 횡행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조직의 생리에 저항하고 미시 파시즘의 발호를 경계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피아의 구분이나, 내편 네편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아마 그러기 위해서는 때때로 꾀죄죄한 소수파의 서러움을 느낄 각오가 되어야 한다.


나는 내가 딛고 있는 곳이 절대선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악을 제거하는 데 일조하고 작은 선이나마 실현해낼 수 있는 힘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겠다는 마음과 우군이 잘못한 것이 명백하다면 함께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겠다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해석을 존중하면서도 저들이 사실을 건드리려고 하면 기꺼이 비판의 칼을 들이대야 하듯이 나 또한 해석의 자유에 취해서 사실을 조작하는 오만을 부리지는 않나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저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사실 자체를 건드릴 자유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해석이냐는 무척 어려운 과제이다. 두부 자르듯이 사실과 해석의 경계가 갈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억지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사실과 해석의 교집합처럼 느껴져 분간하기 힘든 부분은 과감히 해석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 보다 더 적절할 듯 하다. 사실의 영역은 신성하지만 쓸데없이 확장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해석의 여지를 늘이는 것도 자유주의자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이 ‘당위’라는 사탕옷을 입기 시작하면 근심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니까.^^;


내 잣대로 만든 체의 구멍크기를 조금 크게 하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돌멩이 같은 잡물들도 더러 섞이겠지만 미쳐 보지 못한 몇 톨의 진리를 더 건질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얻으니 결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촘촘한 쳇구멍으로 나를 안락하게 만들기보다는 조금 성겨 보이는 쳇구멍이 나를 조금 불편하게 해도 결국은 나를 더 살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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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구는 최근 언론매체의 미군의 이라크인 포로 학대 장면 보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익구는 이라크 포로들의 옷을 벗긴채 추악한 학대를 하며 웃고 있는 미군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비루함에 다시 한 번 서글퍼했다. 익구는 미군의 야만스런 인권침해를 강하게 비난하고, 이토록 처참한 지경에 떨어진 이라크 사태에 우리나라가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개탄스럽다는 논평을 냈다.


익구는 애당초 부당한 추가 파병이었지만 이로서 저 더러운 전쟁에 발을 담근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가 명백해졌다고 주장했다. 평소 이라크 파병에 비교적 찬성하던 입장의 친구들조차 이번 포로 학대에 분노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앞으로 파병 논쟁에 더욱 불꽃이 튈 것으로 예상된다.


익구는 정부가 추가 파병 철회를 선언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보고, 이러한 파병 딜레마의 짜증나는 현실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지난 추가 파병 논란 때 정부가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국회가 파병동의안을 부결시킴으로써 파병도 막고, 체면치레도 하는 궁상맞은 전략을 제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파병 철회 문제에 있어서도 국회에서 이를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열린우리당이 파병 불가피론을 외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노무현 정부를 위해서는 파병 철회 목소리를 높일 것을 주문했다.


미군과 영국군의 포로 학대를 격렬하게 비난한 익구지만 이러한 극단적 사건 하나로 모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사태는 분명 규탄 받아 마땅하지만 이를 이유로 미국에 대한 분별 없는 적개심에 넘칠 필요는 없고, 파병찬성론자들을 향해 욕지기를 하며 흥분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익구는 파병찬성론자들의 선의와 논리를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들의 근거는 이제 설득력을 많이 상실했고, 적어도 인간적, 감정적으로는 파산했으며 이제 논리적 파산이 임박했다고 평가했다.


익구는 미군과 영국군은 제네바 협약을 지켜 포로들을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후세인의 인권유린을 빌미로 침공을 했던 미국이 이제는 후세인의 전철을 밟고 있다며 비꼬았다. 이번 참담한 포로 학대 장면은 파병반대론자가 건수를 잡았다고 기뻐하기보다는 인간 내부의 잔혹성과 만나는 불편함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만행에 대한 분노보다는 슬픔이 압도하는 익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기보다는 평화를 향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씁쓸한 와중에도 낙관적 자세를 다짐했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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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몇몇 문구들이 나의 가슴을 때렸다. 그 문구들에 대한 나의 짤막한 소회들을 정리해봤다.

1.
딴지일보에 캐나다의 스벤드 로빈스 연방하원의원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보호에 힘써온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을 찾아가 아라파트를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유죄입니다. 편을 든 것이 유죄이지요. 하지만 반드시 편을 들어야 한다면 압제자 (Oppressor)의 편이 아닌 약자 (Oppressed)의 편을 들겠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자로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유죄씩은 아니더라도 무척 부담스러운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늘 부지런히 눈치보고, 하고 싶은 말도 적당히 둘러대는 사람들의 차지다. 타인의 입장에서 보는 나는 편파적이고 오류투성이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 남의 생각 중에 맞는 부분에 끄덕이는 여유로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의 견해에 함부로 유죄 선고를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설령 나의 당연한 권리로서 어떤 사안에 대해 편을 들게 되었을 때 그에 따르는 오해를 어느 정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부당한 비난에는 방어를 해야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만큼의 비용을 치르는데 인색하지 않은 내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나의 편들기가 압제자보다는 약자에 기울어지는 것은 물론, 조직된 소수의 이익보다 조직되지 않은 다수의 이익 옹호에 인색하지 않는 내가 되어야겠다.

2.
“밤 그림자처럼 스쳐 날아가는 그것, 누구도 알 수 없고, 어떤 사냥꾼도 쏘아 떨어뜨릴 수 없는 것…생각은 가둘 수 없다(Die Gedanken sind frei).” 독일 민요의 한 구절을 빌려 1999년 새해 소망을 빌어본다.


- 이 땅에 ‘사상의 자유'’를, New+(주간 동아일보)의 ‘유시민의 세상만사’ - 1999. 01. 14

고3 시절 우연히 집어 든 유시민의 [WHY NOT?]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내가 유시민 선생을 익구의 지적 스승 내지는 영혼의 스승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 책 때문이다. 개인주의가 자랑스러운 것임을 확신하게 해준 고종석 선생이 있다면, 유시민 선생은 자유주의가 내 입맛에 맞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분이다. 여하간 2002년 7월경에 있었던 유시민 강연회에 참석한 후 내가 [WHY NOT?]책에 받은 유시민 선생의 싸인 문구가 Die Gedanken sind frei 였다. 그간 늘 이 문구의 뜻이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알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생각은 가둘 수 없지만 이래저래 많은 제약요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생각이 자유롭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닌다. 문제는 실천적 노력이나 행동이 자꾸 가두어지면 그에 따라서 생각의 영역도 자꾸 축소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들어가 앉는 생각의 감옥에서는 얼른 탈옥하는 것이 상책이다.

3.
전공필수 과목인 경영정보시스템이라는 강의는 그리 관심도가 높지 않아서 그랬는지 늘 지루하고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교재 중에 나의 눈을 확 끌었던 대목이 있다.

의사결정시 인간의 감정과 심리상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불안감은 의사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한다. 즉, 지나치게 의사결정 시기를 연기하려고 하는 ‘방어적 회피(defensive avoidance)', 불안한 의사결정 상황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충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과민한 반응(over-reaction)',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의사결정은 하지 않고 점점 더 많은 양의 정보만을 수집하려고 하는 ‘지나친 경계(hyper-vigilance)' 등과 같은 현상은 의사결정을 객관적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만든다.


- 한재민, 경영정보시스템, 학현사(1998), 380쪽

하나하나 무릎을 쳤지만 특히 지나친 경계 대목에서 몸둘 바를 몰랐다. 자료의 홍수 속으로 도피하는 것, 결국 방어적 회피와도 연계된 이야기겠지만 차일피일 미루면서 판단을 못내리는 경우가 있다면 지나친 경계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방어적 회피를 하고 있지는 않나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다행히 소심쟁이인 나는 과민한 반응을 내릴 유인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 물론 어차피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존재이고 합리성에의 결벽증 적인 집착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할 뿐이지만, 최대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려는 모든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아름답다. 우리는 그 정도의 넘침을 타박할 수 있을지언정 합리성에의 애착은 누구에게나 권장할 일이다. 특히 정, 의리, 연고주의 같은 비합리적이라 지칭할 수 있는 요인들이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더욱더 유의미하다.

4.
일단 많이 배우면 세상의 다양함을 받아들이게 된다. 많이 말하면 오히려 말을 조심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글을 쓰면 세상에 대해 너그러워진다. - 전여옥


이런 꽤 맛깔스런 말을 전여옥이 했다는 것이 떨떠름해서 인용을 몇 번이고 망설였다. 전여옥이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최대한 선의로 받아들일 요량이다. (이 문장은 유시민 의원과의 토론회 후기의 일부로서 전여옥은 이 모든 과정을 역행한 인물로 유 의원을 지목한다. 그러면서 서글프다고 읊조린다^^;)

과거에는 많이 배우면 어떠한 사안에 대한 판단력이 좀더 분명하고 신속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배우는 것이 본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꾸만 배우면 배울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고 더욱 느려지고 있다는 회의가 들었다. 그것이 여러 견해의 타당성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좋게 해석하고 싶다. 이는 세상의 다양함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상통할 것이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말을 많이 하면 쓸데없는 말이 많아지게 마련이라는 알 수 없는(?) 믿음에 사로잡혔던 나는 자연스레 말조심을 하는 축에 속한다. 하지만 말 대신 글로써 매섭게 몰아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글조심이 더 시급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새로운 근거 없는 미신이 나를 지배하려고 하고 있다. 말을 많이 하면 헛소리도 많이 하겠지만 좋은 말, 쓸모 있는 말도 비례해서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많은 사람들과 많은 말을 나누며 배우고 느끼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기 때문에 나의 우상(?)도 교체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저런 잡글을 끄적이면서 내가 조금 더 여유로워졌음을 느낀다. 내 정파적 이해를 대변하고, 내 잣대로 남을 비판하는 경우가 태반인 나의 잡글쓰기는 오히려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 모자람이 이렇게 크게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남을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도 문자로 된 텍스트에 대한 부담감이 나를 좀 더 성찰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문자로 된 텍스트는 머릿속의 관념 몇 조각이나 대화 중의 말 몇 마디와는 달리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전여옥이 말한 너그러움의 이면에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세상과의 적절한 타협이라는 의미도 강하게 내포되어 있지는 않을까?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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