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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3.11.16 익구가 대학생이 되기까지 4
  2. 2003.11.16 37대 경영대 학생회장 당선 4
  3. 2003.11.14 의회주의자 익구? 1
  4. 2003.11.14 노동문제 단상 7
  5. 2003.11.06 제대로 된 보수정당? 1
  6. 2003.11.06 경영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다 1
  7. 2003.11.01 신림동에 진출해보다 1
  8. 2003.10.31 회계학 원리의 두 가지 선물
  9. 2003.10.25 즐거운 편벽됨을 위하여
  10. 2003.10.23 미국의 신경제 논쟁 횡설수설 1
  11. 2003.10.17 이라크결의안 유엔 안보리 통과가 실망스럽다
  12. 2003.10.16 욕망으로 가득 찬 글쓰기 예찬 1
  13. 2003.10.12 익구가 보는 사랑(연애담 아님) 6
  14. 2003.10.12 언론비평 세미나 후기 - 신문읽기의 혁명
  15. 2003.10.04 농산물 시장 개방을 고민하며 2
  16. 2003.10.03 경영학도로서의 익구 3
  17. 2003.10.03 송두율 교수에게 관용을 베풀자 3
  18. 2003.09.27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19. 2003.09.22 나는 개인주의자다
  20. 2003.09.19 안티 고연전 운동 바라보기 1
  21. 2003.09.17 파병 반대가 진짜 국익이다 2
  22. 2003.09.17 학벌주의 타파는 배려에서부터 시작해야
  23. 2003.09.14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읽고 1
  24. 2003.09.07 못다한 10년의 약속, 훌쩍 다가올 10년 뒤
  25. 2003.09.07 호주제 폐지에 투자하자.^^
  26. 2003.08.29 북한응원단의 슬픈 코미디를 기억하자 4
  27. 2003.08.26 숨막히던 성찰의 공간에서...
  28. 2003.08.26 팔할의 무임승차
  29. 2003.08.26 제주도 여행기 3부 (완결판)
  30. 2003.08.13 행복을 향한 릴레이 1
아직도 고등학교 졸업한 그 시원섭섭한 기분이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데 세월은 부지런히 달려서 저학번 저학년으로서의 시절마저 앗아가려고 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이제 제법 대학물을 먹어서 한층 의젓해져 보이고 지금까지 부대끼며 용케도 잘 버텨준 나에 대해 스스로 대견스러움을 표해 본다. 그러고 보면 한편으로는 참 대학이라는 곳을 참 어이없이 굴러들어 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수험생들의 대다수가 그렇듯이 나 또한 대학이나 학과를 선생님 조언에 따라 후닥닥 정해버린 학생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인지 이제 고대생으로서, 경영학도로서의 내가 쏟는 애정은 날이 갈수록 무르익어 가고 있다.


나는 수시모집 예비대학 전형으로 고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예비대학은 고대 주최 경시대회 입상자와 각 학교에서 내신성적 우수자를 추천 받아 모집한 학생들에게 고대를 홍보하고 교양강좌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를 마친 학생들에게 수시모집에서 특전을 부여하는 것인데 운 좋게도 내가 거기에 포함되게 된 것이다.


나는 한문 경시대회 장려상 입상으로 예비대학에 참가하게 된다. 경시대회 중에서 가장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취급되던 한문 경시대회에서, 그것도 가장 낮은 상위인 장려상을 발판 삼아 고대 경영학도가 된 것이다.^^; 경시대회 시상식에서 한문 경시대회는 맨 끝 순서였고, 당연히 장려상은 맨 나중에 호명되므로 나는 끝에서 몇 번째로 상을 타야했던 지루한 기다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도 감지덕지인 것은 민족 고대라고 해서 전통을 중시하는 학풍이 아직 남아 있다보니 한문 등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고 있는 고대 덕분에 이렇게 대학생으로 안온하게 지내고 있다. (아직도 고대는 다른 대학에 비해 한문관련 강좌가 많이 개설되어 있는 편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문 경시대회에 참가해서 가까스로 입상을 하게 된 과정도 참 웃기다. 고등학교 2학년 11월에 한자능력검정시험으로 3급 자격증을 딴 나는 고3 5월에 2급 자격증에 도전하게 된다. 고3 수험생의 일탈에 손가락질도 좀 받았지만, 그 때는 무식하게 한자 써대며 외우는 것 만한 낙이 없던 터라 짬을 내어 공부해서 다행히 2급 자격증을 따게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자능력검정시험을 치른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고대에서 주최한 경시대회 한문분야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한자’와 ‘한문’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었지만 대충 머릿속에 많이 싸돌아다니는 한자들을 조합해서 때려 맞힌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장려상 턱걸이를 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어쨌든 이로써 예비대학 참가자격을 얻게 된 나는 예비대학을 재미나게 마치고, 2학기 수시모집을 대비한 입시 전략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대학으로 고대를 꼽게 된다. 여기서 그간 은밀히 감춰왔던 비밀을 공개하겠다. 이로써 내가 어쩌다가 경영학도가 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비대학 참가자에게 학교에서 내려온 공문에는 지원가능한 학과가 배정되어 있었다. 내게는 경영대, 법과대, 문과대가 배정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워낙 법대, 법대 하는 분위기에 넘어가서 법학과를 지망해 볼까라는 마음이 조금 있었지만, 막상 기회가 주어지니 어느 정도 불리한 내신성적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 곧 단념해버렸다.


법대를 제외하니 경영대와 문과대가 남았다. 평소 사회학과, 국문학과 등의 문과대 관련 학과들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나는 처음에는 문과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내심 정치외교학과나 행정학과가 있는 정경대가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며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문과대를 택하려는 분위기가 마구 조성되고 있었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예비대학 전형이라는 좋은 조건까지 있는데 기왕이면 경영대에 지원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반응들이 쏟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까지는 전혀 안중에도 없던 경영학과에 대한 고민을 그제서야 시작했고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던 중에 경영학도이시던 당시 수학 과외형이 해주신 “경영학이 그리 어렵지 않고 재미난 점이 많은 학문이다” 비슷한 말 한마디에 넘어가 버렸다. 고심 끝에 빵을 위한 학문에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는 솔직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결국 예비대학은 1지망 경영대, 2지망 문과대, 3지망 법과대로 결정했고, 다행히도 1지망 경영대학으로 예비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8월 말부터는 본격적인 2학기 수시모집 시기가 도래했고, 나는 고대 경영학과를 비롯해서 연대 사회학과, 서강대 경영학부, 외대 정치행정계열 네 군데에 원서를 집어넣었다. 연대 사회학과는 어릴적 꿈이던 사회학자를 좇아서 지원해 본 것이고, 서강대 경영학부는 고대 경영대를 준비하면서 공부 범위를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특히 외대에서 어문계열도 아닌 정치행정계열을 넣은 것은 고대 예비대학 배정 대학에 정경대가 배정되지 않은 아쉬움의 발로였다. 고대 예비대학 전형은 경쟁률인 2 대 1로 고정되어 있었고, 나머지 대학들의 경쟁률은 연대가 13.86 대 1, 서강대 10.48 대 1, 외대 28.5 대 1로 확률상 고대 입성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게임이었다.


나는 1차에서 연대와 외대는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스레 서강대는 1차를 붙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고대의 경우는 예비대학 전형은 곧바로 2차 전형으로 직행하는 것이었고, 결국 4개 중에 2개의 대학이 1차를 붙고 2차 전형의 일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대가 일정이 빠른 터라 먼저 논술, 면접 시험이 있었고 그 때가 2001년 9월 14일이었다. 지금은 LG-POSCO 경영관까지 완공되어 여기저기 질투의 눈초리를 받고 있지만, 그 때 당시의 경영대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게다가 중앙광장 공사가 한창이어서 무척이나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학교 배치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2년여만에 경영관 주변 풍경들은 많이 바뀌어 버렸다.


논술 시험을 치르기 위해 경영관 어느 강의실에 앉은 나는 통일에 대한 내용을 벼락치기로 준비하며 논술 시험을 기다렸다. 영어 제시문 등장하는 통합 논제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왔지만 애써 담담하려고 노력했다. 주제는 ‘언어’였고, 다행히 습작을 한 번 해둔 적이 있어서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글을 느리게 쓰는 나는 논술 시험 같이 제한된 시간에 글을 쓰는 것에 영 소질이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터라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달래며 부지런히 써내려갔다. 제한 시간에서 2분 정도 넘기기는 했지만 분량을 다 채우고, 뺏기다시피 논술 답안지를 내고 1차전을 마무리했다.


논술 시험을 마친 후 지금은 공사로 사라진 경영관 앞 매점에서 빵 한 조각과 바나나 우유로 끼니를 때우고 무거운 마음으로 면접 시험 전까지 학교를 배회했다. 그러던 중에 이비에스 방송국 인터뷰에 응하게 되어 몇 초간이나마 방송에 나오는 최초의 경험까지 하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영관 본관 1층의 화장실은 무척이나 깔끔했다. 화장실을 들른 나는 다시 이 화장실을 들를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나만 이 유치한 짓거리를 한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화장실에서 발견한 ‘아무개 04학번 되어 다시 온다’라는 문구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하기사 대한민국 고3 수험생만큼이나 마음 여려지고 빌기 잘하는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오후 1시 학우강당에 모여 면접 순서를 기다렸다. 수시 모집 확대 원년에서 불었던 심층면접 열풍에 휩싸여 이런저런 잡식들을 꾸역꾸역 채워넣은 나는 한 보따리나 되는 자료더미들을 불안하게 넘겨보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나는 내가 속한 조 24명중에 12번째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별 것도 아니지만 평소 좋아하는 숫자인 12가 걸린 것에 쾌재를 부르면서도 이런 것을 짜맞추는 마음에 이내 처량해졌다. 4시가 넘어서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뒤적거리던 책과 서류뭉치를 주섬주섬 챙겨서 면접장소로 향했다. 크게 한숨을 쉬었던 기억은 분명한데 그 때의 광경을 재연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나 가공할 만한 영어 제시문 앞에 쩔쩔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실로 무거운 걸음을 옮겨야 했다. 이 문장을 해석하라는 질문에 몇 번 버벅거리다 어물쩍 넘어가 버렸다. 어쨌든 의사결정에 대한 두 상반된 견해의 영어 제시문에 대한 물음을 이것저것 답하면서 실패한 문장 해석의 상흔을 달래려고 노력했다. 영어 면접이 끝나고 이어진 기본소양 면접은 인터넷과 정치참여 등에 관한 문제였는데 당시 있었던 필리핀의 피플파워 등을 예시하며 익구 특유의 낙관적인 해법을 그럭저럭 늘어놓았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면접이었지만 놓친 영어 해석에 대한 아쉬움은 내내 나를 짓눌렀다. 그 문장에 포함된 단어 중에서 secure와 severe를 헷갈려서 해석한 것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면접은 두 분의 교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그 두 분은 지청, 장하성 교수님이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고대역에서 집으로 오면서 면접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면서 온갖 슬픈 척은 다하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 때 내게 위안이 되었던 것이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능력에 버거운 일을 맡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결코 자신의 능력 전부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구절이었다. 소심한 나로서는 앞으로 이런 가슴 뛰는 두려운 일 앞에 서야될 일이 많으니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어쨌든 합격자 발표날까지 무척이나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아마도 그 날이 개천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오차는 ±1일) 휴일이라 학교 자습도 5시에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자다가 대략 8시쯤 부스스하게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놓고 여기저기 들어가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대 누리집에 들어갔는데, 이게 웬일 합격자 발표가 떡하니 뜬 것이 아닌가... 당초 공고보다 하루이틀 정도 빨리 발표가 난 것이었다. 그런데 초긴장의 상태로 보내야 할 그 순간을 너무나 허망하게도 잠결에 합격 여부를 확인하고 말았다. 아 다행스레 합격 되었구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에게 한 마디... “합격자 발표 나왔는데 붙었네.” 엄마의 한 마디... “아 그래? 잘 됐구나...” 정말 너무 쿨하다 못해 무미건조하기까지 한 그 날의 풍경이었다.^^;


어쨌든 수시 모집의 수혜자가 되어 수능시험도 별로 떨지도 않고 평안하게 해치우고, 잠시 숨 돌리다보니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있었고,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내일모레면 나름대로 고학년이 되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고대라는 공간에서 얼치기 경영학도로 지내온 세월도 이제 제법 무게를 더해가려는 찰나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수험시절에 지원했던 학교 중에서 연대가 있었다. 어릴적 멋도 모르고 그려보던 사회학자의 꿈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점수 맞춰 대충 지원한 건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역사에서 가정을 들이미는 것은 언제나 촌스런 짓이지만 만약 덜컥 붙어버렸다면 어찌했을까. 연대 사회학도로서의 익구와 고대 경영학도로서의 익구 중에서 무엇을 선택했을지는 아직도 결론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본인은 사회학도가 되겠다는 제스추어를 보내면서도, 부모님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얼치기 경영학도의 빵을 선택했으리라는 것이 다수설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가끔씩은 지금 가진 큰 빵보다 못 먹어본 작은 빵이 더 그립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누구나 잘 빠지기 쉬운 인식 오류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소속된 고대 경영대는 ‘고대 속의 연대’라 불리우는 개인주의 문화를 자랑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여담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연대를 참 좋아한다. 사실인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연대하면 떠오른다는 개인주의 문화와 세련된 감수성이 내 코드와 맞다고 자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연대는 고대를, 고대는 연대를 닮아가고 있어서 두 학교가 비슷해지고 있다고 하니 이런 분석들도 다 옛말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 혹자들은 불평하고 괄시하지만 나는 이런 경영대의 학풍이 끔찍이도 좋다. 다만 조금 지나친 점이 있다면 다듬으면 될 일이다. 개인주의 물결이 부인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그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태로서 내가 부대끼는 경영대는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런 보금자리다.


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겠지만, 그렇지는 않아도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딛고 있는 곳을 좋아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있는 곳의 불만과 내 배움과 익힘의 조악함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그냥 너그럽게 씨익 웃어버리고 마는 것 같다. 가끔씩 녹차 한 잔 마시며 고3 수험시절의 그 뜨겁고 우습던 나를 추억하는 재미는 참 쏠쏠하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익구는 13, 14일에 이루어진 경영대 학생회장 선거에서 89.8%의 찬성률로 경영대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익구는 경영대의 선거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고, 학생회 활동 또한 활발하지 못하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영대 5개 반의 자치활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관계당사자들에게 권한을 위임해 반 학생회의 활동이 활발해지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영대 학생회가 작아지는 대신 각 반이 커지는 작은 학생회의 포부를 분명히 했다.


익구는 단선인 점을 감안해 특별한 선거운동을 펼치지 않았다. 보통 대자보 3개를 이어 붙인 선거 대자보를 세 개를 경영관 곳곳에 붙인 것이 전부였지만 그간 선거 운동 비용을 밝혔다. 본래 신문이나 리플렛 등의 유인물 제작을 계획했으나 20~ 30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어 검토 끝에 하지 않기로 해서 무척 조촐한 선거 운동이 되긴 했지만 익구는 최소의 비용을 추구하는 경영학도의 정신을 살렸다고 자평했다.


<추천서명판 제작비>
- 추천서명 파일비 ~ 300원 × 10 = 3000원 from 종생관 유니스토어
- 서명용지 복사비 ~ 35원 × 40 = 1050원 from 경영별관 복사기

<대자보 제작비>
- B4 출력비 ~ 3900원 from 空문화사
- 재료비(색지, 양면테이프 등) ~ 17000원 from 해결사
- 사진 칼라출력비 ~ 900원 × 4 = 3600원 from 중도관 출력부
- 재료비(칼, 자) ~ 3650원 from 중앙광장 유니스토어
- 재료비(스폰지테이프) ~ 2500원 × 4 = 10000원 from 중앙광장 유니스토어

총계 = 42,200원

다음은 익구와의 일문일답이다.


우선 경짱이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소감이 어떠한가?


- 가장 먼저 작년 이 맘 때가 오버랩 되었다. 작년 11월 총학생회 선거 잡일을 돕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일꾼을 하면서 이 짓을 정말 그만 두자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결국 올 한해 더 경영대 학생회 일꾼을 했다. 그런데 또 한 해 학생회 일꾼으로 살게 되고 말았다. 경영대 학생회 일이 그리 많아서 그다지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두렵고 떨린다. 난 참 부족한 사람이지만 내가 할 일이 있다면 기꺼이 반갑게 하겠다. 거대한 부담감이나 엄청난 사명의식으로 무장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편하고 쉬운 자세로 임해야 학우들에게 열려있고 널널한 학생회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총학생회 선거나 다른 단과대 선거를 전망하신다면?


- 다소간의 이견은 있겠지만 이번 총학생회 선거 입후보한 3개의 선본은 큰 틀에서 운동권 계열이라고 볼 수 있다. 비운동권 학생회를 이끌 사람으로서 수권 능력 있는 비운동권 후보가 올해 나오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운동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높은데 대안 세력은 맥을 못추고 있는 상황이며, 그네들의 자기개혁을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권/ 비운동권의 대립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학생회 자체에 대한 무관심의 증대이다. 아무튼 다른 단과대 선거도 이제 속속 진행되겠지만, 올해 같이 특정 계열의 독점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라 비교적 낙관적이다. 아무튼 학생회 일꾼을 청하는 모든 이들의 어려운 선택에 존경의 뜻을 표한다.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이 심각하다고 보셨는데 구체적인 견해를 말해달라.


- 단과대 학생회 설립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고, 학생회 선거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상황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학생회 같은 조직으로 단결하기보다는 제 입맛에 맞는 곳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영대의 경우 그런 분위기가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의 물결이 대세인 대학가에서 경영대의 학풍은 조금만 다듬으면 새로운 시대의 미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경영대 학우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나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는 또 한번 폭발한다.^^; 이제 학생회라는 존재는 제 안방을 동아리, 학회 같은 제반 자치 단체나 소속 없는 일반 학우들에게 내어주고 뒷방살이를 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고마운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인사말씀 전해달라.


- 정말 많은 분들이 고맙다. 추천서명에서 개표까지 고생해준 병채와 원혁, 세일이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아울러 선거 진행 때 투표 진행을 맡아준 각반 03학번 후배님들이 너무 많은데 일일이 고마움을 표하지는 못하지만 모두모두 감사하다. 또한 36대 경영대 학생회장으로서 온갖 고생을 하시면서 선거관리까지 깔끔이 마무리 해주신 정우 형께도 다시금 고맙다. 더불어 학생회실을 즐겨 들르시면서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주시던 많은 선배님들도 함께 고맙다. 아참 그리고 학생회장 언제 되냐고 늘 닦달했던 고등학교 친구인 청원이와 효석이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의회주의자 익구?

사회 2003. 11. 14. 01:31 |
요즘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자꾸만 ‘의회 민주주의’에 기우는 듯하다. 내가 속한 조촐한 학회 세미나에서 박정희 향수라는 이슈가 불거져 나왔는데 나는 의회권력의 교체를 통해 그 시절 잔당들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말끔한 역사청산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권력자들에게 자기 개혁을 맡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 그 보다는 시민단체 같은 곳에서의 노력을 중시하는 입장들이 있었다.


나는 누구도 한 표 이상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가장 합당하고 뒤탈 없는 방법이 의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거에서의 표심으로 결판날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비록 지역구도나 일부 편파적 언론 같은 제약요인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출된 권력에 일정기간 지배력을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함부로 폄하할 수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물론 국민들의 여론형성이나 생활정치 측면으로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다원주의 사회가 심화될수록 이익집단들의 난립도 필연적으로 뒤따를 텐데 과연 시민운동 같은 것들이 얼마나 그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저쪽에서 동의하지 않는다면, 내가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을 다른 쪽에서는 무심하다면... 우리는 결국 국민 개개인 의사의 총합, 결국은 숫자싸움이지만 그 원칙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이익집단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이익집단인 정당의 소굴인 국회에 의회주의의 앞날을 맡기는 것이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다(아마도 모두 맡길 것 같지는 않고 제 입맛을 찾은 국민들의 꾸준한 째려보기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승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식인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사상의 자유시장을 충분히 보장하고 상도덕을 준수하면서 공정히 경쟁하는 구도가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에구에구 널널할 줄 알았던 의회주의자 되기도 만만치 않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노동문제 단상

사회 2003. 11. 14. 01:20 |
(잇따른 노동자들의 분신자결과 노동계의 울분 섞인 목소리를 접하면서 어떻게 입장을 정리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발언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이라고 여기는 터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제 솔직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글은 제가 속한 조촐한 학회와 유시민 팬클럽 시민사랑 두 군데에 올린 글입니다. 인식의 박약함에 대한 질책을 환영합니다^^;)


최근 노동자들의 분신자결은 여러모로 가슴이 아프다. 노무현 대통령도 노동자들이 왜 죽음으로 내몰렸으며 죽음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에 대해 귀 기울이려는 제스추어를 충분히 취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다. 하지만 일부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무현이 노동자들을 죽였다”같은 타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국정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대통령이 지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노동자들을 “죽어라, 죽어라...”하고 있다는 인식에는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


솔직히 내가 어떤 위치잡기(포지셔닝)를 해야할지 혼란스럽다. 노동조합 같은 노동단체들도 결국 이익집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이 사회적 약자에다가 양적 다수라는 점에서 사용자들의 이익집단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은 대충 정리가 된다. 하지만 약자 프리미엄이 그네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 입장 정리하기가 참 곤란하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 노동계의 의사를 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돌아갔었다. 난 이 분야에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모르지만, 초기에는 그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존재했던 것 같다. 공무원 노조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했고, 화물연대 첫 파업에서도 어느 정도 요구를 들어주었으며, 조흥은행 노조 파업 때도 조흥은행 쪽의 입장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으로 기억한다. (조흥은행 사건의 경우 신한은행 노조가 이에 반발하는 등 노조간의 갈등도 있었는데 그 후로 관심을 안 가져서 잘 해결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음...)


하여간 노 대통령이 친노(親勞) 색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노동계가 그런 면은 제대로 옹호해주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 기억으로는 오히려 아쉬운 소리를 더 늘어놓았던 것 같다. 노무현 정부가 일부 언론과 재계에 반기업 정서를 들먹이며 협박하고, 굴욕적이라고 비난받을 때... 노동계는 노무현 편을 속시원하게 들어주기보다는 자기 요구를 100% 반영하지 않은 것에 대해 볼멘 소리를 더 낸 것으로 기억한다.


자기가 옳다고 믿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 사람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마음먹기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자신이 옳은 위치에 서기 위해 지적, 도덕적 노력을 기울인다면 꽤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옳다고 해서 자기와 조금 다르다고 함부로 매도한다면 애초에 대화는 불가능한 것이다. 요즘 보면 노동계와 정부가 아예 심리적 장벽을 쌓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물론 고통받고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달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노 대통령과 정부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노동계가 노무현 정부를 이용하지 못하고 상호간에 입지를 좁히는 자충수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해서 아쉽다. 그러나 그들의 전략개념의 부재를 질타하기보다는 사용자측의 불성실함과 불관용에 더 큰 화살을 던진다. 노사 갈등이 문제라고 하지만 힘센 이들의 억지 엄살에는 너그러우면서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짜증을 부리고 귀찮아하는 인색함을 보이지는 말아야겠다는 늘 다짐한다.


그러나 이런 총론적 합의만 있을 뿐, 노동 문제에 대한 각론적 판단은 아직은 뭐라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 내 솔직한 결론이다. 내가 귀가 얇아서인지 몰라도 이 쪽 입장을 검토하면 꽤 설득력 있고, 저 쪽 입장을 들어보면 그것도 호소력 짙은 경우가 많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절대선이라는 것은 없다고 했을 때, 열심히 듣고 부지런히 사유해서 조촐하게나마 나의 인식을 형성해야겠지만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나태하고 태만하다.


30여 년 전의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우리 사회는 분명 쉴새없이 발전해왔다. 그러나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그 발전, 진보의 열매가 별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도 확실하다. 세상을 욕하기는 쉽지만 티끌만큼 바꾸기는 참 어렵다. 모순투성이인 현실을 바꾸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도 노동자들의 권익이 향상되기를 바라지만 그 방법론은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게으르면서도 약삭빠른 내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팽팽히 잘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돌아본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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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보수정당?

사회 2003. 11. 6. 02:04 |
1.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입문 초기에 국민적지지 기반이 있는 진보정당이 만들어지면 진보정당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월간조선 1988년 12월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주대환이 쓴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를 참고했다)


본질적으로 저는 재야에서 운동할 때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민주화 운동으로 빚어지는 사회갈등은 반드시 거쳐가야 하며 또 극복돼야 하는 것이지 결코 회피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국민적 지지기반이 있는 진보정당이 출현하면 그 길을 택할 각오입니다. (중략)
지금의 정치구도는 독재와 민주세력의 공방전을 형성돼 있습니다. 우리는 독재의 긴 터널의 끝 부분에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보수야당에서, 이 독재의 질곡에서 벗어나가 위한 공동 노력을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정치가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서게 되면 진보정당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겁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말들을 보며, 어떤 이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색깔을 칠할 준비를 할 것이며, 어떤 이들은 말장난에 불과한 허구적 변명이라고 폄하할 것이다. 여하간 노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다면 나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의견을 내어놓을 것 같다. 나는 이 땅의 정치가 제정신을 찾으면 마음놓고 보수정당을 지지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설픈 개혁에 손짓하고, 극우의 난동에 불쾌감을 표시하며, 자유주의를 들먹이면서 사이비 보수들을 질책하는 것을 부득이 업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개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진보를 주창하는 입장에서는 개혁은 보수의 다른 표현이라고 구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수적 개혁이냐, 진보적 개혁이냐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기본적으로는 진보와 더 가까운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듯 싶다)


일말의 양심과 최소한의 역사의식, 그리고 고등학교 사회교과서 수준의 상식만 있다면 도저히 지금의 보수라는 이들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기 때문에 당분간 이 어정쩡한 위치잡기(포지셔닝)에 내 자신조차 흔들리며 지낼 것 같다. 이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해야하는 자유주의의 얼굴, 인민주권을 확립해야하는 민주주의의 얼굴은 내팽개치고 기득권이라는 가면으로 호객행위를 일삼는 이들을 보수주의자라고 여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만큼 그 가면의 두꺼움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내 입맛에 맞게 해석한 것일 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자칭 보수는 보편적 상식의 경계를 벗어나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지점에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2.
고등학교 시절 나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평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극단적 진보’와 ‘은근한 보수’가 그것이다. 자칭 중도적 성향이라는 친구가 붙여준 극단적 진보라는 딱지는 기실 이념 인플레이션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이해찬의 교육개혁을 지지하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정책들을 비교적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극단적 진보라고 불리는 명백한 오류가 생각보다 크고 공고하게 퍼져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뭐 이건 고등학생의 머리끼리 맞대면서 나올 수 있는 착오라고 너그러이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다^^;). 아마도 양비론 같은 두루뭉술한 연막을 피우는 것보다는 자기 입맛을 당당히 드러내는 것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비교적 분명하게 호불호를 내놓다보니 오해가 생긴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재미난 것은 대학 새내기시절 내가 노무현 지지를 외쳤을 때는 그보다 덜한 화살을 맞았다는 점이다. 천만다행으로 이념의 인플레이션이 진정세에 들어갔고 거품도 많이 빠진 셈이다^^;)


은근한 보수라는 칭호는 일면 나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따른 실망감 표출의 일부이다. 철없던 시절 좋은 말이라면 여기저기 잘도 따와서 조합을 그럭저럭 해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나를 잘못 해석하게 만든 내 책임이기도 하다. 내가 원인제공자면서도 그 때는 은근한 보수를 욕이라고 생각하고 기분 나빠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말은 그럴듯한데 소심한데다가 행동력이 없다보니 입만 나불거리는 보수쟁이로 낙인찍혔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내 생활태도가 지극히 모범생적 가치관에 충실했고, 진취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중함에 대한 탐구가 나를 답답하고 고지식한 보수주의자로 비춰지게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이에 대한 자각으로 고등학교 중반 이후에는 도덕적 결벽증 같은 것들을 많이 걷어내고 ‘타락 익구’ 같은 새로운 칭호들을 달갑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옛 친구들이 나를 보는 틀은 고루한 원칙주의자이다(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국어 교과서에 ‘고답적(高踏的)’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이건 너에게 딱 맞는 어휘라며 감격에 찬 눈망울로 목에 힘주며 말하던 친한 친구의 그 벅찬 표정이다^^;).


극단적 진보는 분명한 오독이지만, 은근한 보수는 꽤 들어맞는 구석이 있는 해석이다. 은근한 보수라는 레토릭이 ‘생각의 진보성과 몸의 보수성과의 괴리’라는 뜻빛깔(뉘앙스)을 풍기지만 않는다면 제법 긍정적인 의미 부여를 해볼 만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 내 범생 이미지에 대한 모독쯤으로 치부했던 그 표현이 이제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재탄생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보다는 더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깨달음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끈을 놓지 않고 왼쪽을 경청하는 겸손한 보수에 대한 목마름이다. 얼마 전 고안해 낸 ‘날라리 우파’라는 개념도 결국 은근한 진보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3.
앞에서 한국 정치가 바로잡히면 보수정당으로 갈 수도 있음을 내비쳤는데, 또 한편으로는 꽤 개혁적인 면모도 있다. 보수동네의 단골메뉴인 공동체를 위한 헌신, 희생이나 애국주의, 민족주의 꾸러미들이 개인주의자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영 마뜩지 않다. 또한 나는 군사주의를 거북해하는 것이 체화된 사람이며, 양성평등 문제에서는 조급증이 날 정도로 빨리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언뜻 보이는 개혁, 진보로 통칭될만한 행위들에 대한 바람이 젊은 시절 잠깐 품어보는 것이 아니라 전생애를 거쳐서 꾸준히 추진해 나갈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아마도 역량이 부족한 나는 내 입맛에 맞는 몇 개를 확실히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은연중에 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수동네에서 거닐든, 개혁동네에서 노닥거리든 중요한 것은 극우 헤게모니를 부수는 것이다.


실상 극우 헤게모니를 해체하는 것은 진보의 몫이라기보다는 보수의 몫이 되어야 옳다. 왜냐면 한통속이라고 여겨져서 같은 취급받으면 쪽팔리고 열 받으니까 먼저 더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칭 보수라는 이들은 극우적 질서를 안온하게 여기고, 극우동네의 제도적, 문화적 유산을 활용해서 한 몫 챙기려는 상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진보 세력이 개인의 자유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챙겨주고 있는 기막힌 풍경이다. 명색이 시장경제를 신봉한다는 이들이 이렇게 제 할 일도 못 찾다가는 시장의 냉혹한 법칙에 의해 퇴출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좀 가져보자. 아무리 물질적 풍요를 좋아하는 보수동네라고는 하지만 상도덕에 어긋나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극단주의 세력이나 할 짓이다.  


탈이념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가치체계의 분류로서 보수, 진보의 구분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이분법의 대부(?) 플라톤 선생이 보면 좀 섭섭할 정도로 딱 부러지지 않고 짬뽕에다가 혼란스럽게 전개될 것이다.^^; 이런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보수는 여전히 삶의 양태를 바라보는 틀이다. 그렇다보니 요즘은 별로 인기 없다는 이 두 낱말 사이를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었다. 신당은 민주당보다는 개혁적이겠지만, 개혁당보다는 구질구질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당에 애정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그나마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달려갈 만한 가능성이 가장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구차하지만 이렇게 세심한 차이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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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다
- ‘거위의 꿈’ 선본으로 작은 학생회 포부 밝혀

익구는 11월 4일 37대 경영대학 학생회장 후보에 등록했다. 본인과 선본장의 재학증명서, 출마소견서, 으뜸 구호, 269명의 추천서명을 제출해 오후 3시 30분경 후보 등록을 완료했다. 이번 선거는 단선으로 치러지며 13, 14일 양일 간 투표가 이루어진다. 선본명은 평소 익구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인 ‘거위의 꿈’으로 선정되었다. 기타 선본명 후보로는 상선약수, 연탄 한 장, 환한 뱃속, 날마다 좋은날, 열린 나래, 녹차 한잔, 열린 우리 학생회 등이 있었으나 고심 끝에 거위의 꿈으로 선택을 했다. 이는 거위가 높이 나는 꿈을 꾸는 것처럼 꿈을 꺾지 않겠다는 다짐을 표상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솔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날개 짓을 준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익구는 출마소견서에서 열려있고 쉽고 낮은 학생회를 제시하며,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정신으로 학생회를 꾸려나갈 것을 다짐했다.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이 특히 높은 경영대의 풍토에 맞게 할 일은 다 하면서 권한은 최대한 자치 단체로 이양하는 작은 학생회를 구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익구는 지난 달 완공한 LG-POSCO 경영관을 통해 웬만한 복지시설들이 거의 다 확보된 터라 마땅히 내 걸 공약이 눈에 띄지 않아 공약 작성이 다소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고 솔직히 밝혔다. 그러나 다른 과반들의 선거 공약들도 다들 원론적인 것을 확인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기보다는 기본적인 책무에 충실하면서 그 밖의 다른 사업들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약의 큰 줄기는 다음과 같다.


1. 사물함의 지속적인 교체와 수리를 하겠습니다.
2. 자치공간의 효율적 활용을 꾀하겠습니다.
3. 각 반에 학생회를 건설하겠습니다.
4. 다양한 자치활동을 육성, 지원하겠습니다.
5. 학생회 사업과 회의 등을 편안히 알리겠습니다.
6. 저비용 고효율 예산 활용을 추구하겠습니다.
7. 자유주의, 다원주의라는 철학만을 가지겠습니다.


익구는 단선인 점을 감안해서 선거운동도 최소화하면서, 기본적인 대자보 작업이나 유인물 제작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익구는 선거 자체의 문제보다는 앞으로 경영대 한해살이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 익구는 일년간 더 학생회 일꾼으로 살게 되더라도, 깔끔하게 마무리지은 다음에는 다시 본업인 공부쟁이(?)로 돌아올 것을 다짐했다. - [憂弱]


다음은 출마소견서 전문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지난 2년 간 학생회 일꾼을 해왔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왔지만, 이제 제 이름을 걸고 다시 학생회 일꾼을 청하는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합니다. 제 능력의 부족함에 대한 자각 이전에 모종의 두려움이 저를 짓누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다시 이 떨리는 자리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통솔력 있는 사람도 아니고, 번뜩이는 재주를 지닌 사람도 아닌 소심함과 어수룩함이 철철 넘쳐흐르는 저이지만 소심함에서 우러나오는 꼼꼼함과 성실함으로, 어수룩함에서 묻어 나오는 진솔함과 편안함으로 내 사랑하는 경영대학의 일꾼이 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어떤 새로운 일을 벌이느라 힘을 쏟기보다는 경영대 학생회가 기본적으로 해주어야 할 책무에 충실하면서 학우 여러분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공유감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 정치적 무관심을 올바른 개인주의 문화가 건설되는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비교적 낙관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반성하고 긴장하는 자세로 학생회가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기 위해 늘 한 번 더 고민해서 쥐꼬리만큼 보이는 권위나마 벗어 던지고 열려있고 쉽고 낮은 학생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학생회 운영 이념으로 도덕경 제 8장의 첫 구절인 '上善若水'를 제시하겠습니다. 상선약수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라는 뜻입니다. 만물은 물 없이는 못 살지만 물은 그들을 이롭게만 할 뿐 그 공로를 인정 받으려거나 그들 위에서 군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 밑에서 묵묵히 섬기는 일을 할 뿐입니다. 모두가 좋은 곳을 향해 오르려고 할 때 물은 유유자적 낮은 데로 임할 뿐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비우고, 조용하고 성실하게, 오직 섬기는 자세로 시의 적절하게 움직이는 물, 어느 누구와도 다투는 일 없이 자기를 끝까지 낮추는 물의 자세를 배우겠습니다.  


  지금 저는 당당한 풍채에서 오는 카리스마보다 어딘지 모자란 허전함으로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어쩌면 학생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학우 여러분들이 웃을 때 같이 웃고 슬퍼할 때 같이 우는 무력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무력함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과의 동의어가 아닙니다. 부단한 고민과 노력으로 그저 밑에서 학우 여러분들을 북돋워 줄 것을 다짐해봅니다.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은 아름답지도 않고 멋있지도 못하고, 희망이 넘쳐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다만 약간의 믿음이라도 드렸다면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고 가슴 뛰는 날개 짓을 게을리 하지 않는 37대 경영대 학생회를 만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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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에 진출해보다

잡록 2003. 11. 1. 22:57 |
신림동에 진출해보다
- 시민사랑 정모 참가, 고시생 친구 염탐

익구는 31일 금요일 관리회계 강의를 마친 뒤 서둘러 신림역으로 향했다. 모처럼 긴 외출길을 떠난 것은 두 가지 볼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유시민 팬모임인 ‘시민사랑’ 정모에 참가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시생 친구인 청원이 살림살이 관찰을 위한 것이었다.


신림역 근처 보물섬 호프집에서 열렸던 시민사랑 정보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홀홀단신으로 참가한 터라 엄청 낯설어하던 익구는 어디에 앉아야 하나 방황했다. 그러나 현재 대학 휴학 중이시고 신림동에서 공부 중이시라는 두 누님들께서 선뜻 자리를 권하고 말동무가 되어주어서 다행스레 그 날 자리의 낯설음을 털어 버릴 수 있었다.


곧이어 유시민 의원이 도착했고, 참석자들은 무척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약간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뒤 유 의원은 각 테이블로 와서 악수와 술을 권했다. 담담하게 맞이하려던 익구는 유 의원이 바로 옆자리에 와서 악수를 권하고 잠시나마 앉아 있다 가자 소심함이 폭발하면서 몸둘 바를 몰랐다. 친구 원혁이가 전해달라는 부탁과 익구 자신의 부탁을 혼합해서 앞으로 글쟁이로 돌아오시면 경제학 카페 같은 쉽고 편한 경제학이나 다른 분야의 활발한 저술활동을 주문했다. 유 의원은 물론 그러겠다며 화답했으며 안 그래도 내년쯤에는 헌법에 관한 책을 하나 낼 계획이라고 귀띔해주셨다.


익구가 유 의원을 알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WHY NOT?]이라는 책 덕분이었다. 익구는 그 책을 통해 자유주의라는 것이 탐구하고 추구해 볼만한 녀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뒤에 고종석 선생으로부터 개인주의를 당당히 말할 용기까지 추가하게 되어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라는 화두를 껴안고 심심하면 꺼내들게 되었다. 익구는 여전히 유시민 의원보다는 글쟁으로서의 유시민 선생을 더 좋아하고, 그가 본업(?)으로 돌아와 주길 은근히 고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 의원과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옆 테이블의 두 아저씨들(혹은 형님, 선배님)과도 합석하여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다. 또한 의외의 참석자였던 개그맨 남희석씨도 옆자리에 익구 옆자리에 들러 재담꾼으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흥겹게 해주셨다. (남희석씨도 시민사랑 회원으로 읽기쟁이로 지내셨다고 한다) 또한 시민사랑 운영자이신 아이디 월영님의 은근한 달변에 취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정을 넘기면서 연거푸 마신 맥주의 기운이 몰려오며 대화마당이 한층 무르익어 갈 때 익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약속을 위해 일어났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친구 청원이의 고시방으로 작았지만 무척이나 깔끔하고 아담한 공간이었다. 시험 과목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 나누며 익구의 평소 주특기인 법학 까대기를 하고 행정학의 경우에는 학문적 엄밀성이 떨어지는 말장난으로 폄하하면서 친구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어주려 노력했다.


고시원이 밀집한 곳이기는 하지만 서울대 근처이기도 한지라 꽤 크나큰 유흥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구경을 하면서 새벽길을 산책하다가 고깃집에서 가볍게 허기를 달랬다. 밤을 새고 전철 첫차로 노원으로 복귀하자는 청원이의 제안을 뿌리치고 고시방에서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으며 잠시 눈을 붙였다. 네시간 즈음 자고 일어난 익구는 청원이와 함께 노원으로 향했고, 오는 전철길 내내 청원이의 투덜거림과 구박을 방어하며 모든 일정을 마쳤다.


다음은 신림동 진출에 대한 일문일답이다.

글쟁이 유시민을 고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물론 글쟁이 유시민보다는 국회의원 유시민이 세상을 더 많이 바꾸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나같이 잡글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러한 글의 무력함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허나 그래도 글로써 소통하는 것이 더 즐겁고 가슴 뛰는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권위주의라면 딱 질색인 녀석이지만... 유 의원의 삶의 무게에서 우러나오는 권위, 진정성에서 피어나는 권위를 좋아한다. 그러나 역시 글발에서 물씬 풍기는 권위를 가장 동경한다. 현실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더 지내실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글로써 이룩하는 편안한 느낌의 권위를 선사해주는 그 날을 기대하고 있다.


고시생 친구의 살림살이를 염탐한 소감은 어떤가?

- 하도 취업대란 이야기를 많이 듣다보니 고시에도 자연스레 마음이 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학자로 평생 살만큼 넉넉한 집안도 아닌 바에야 먹고 살 궁리를 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고시는 여전히 매력적인 카드다. 다만 매일 뉴스를 접하고 잡글을 읽고 쓰지 않으면 몸이 달아버리는 나로서는 그런 폐쇄된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건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청원이는 고시생 생활을 개인주의 문화의 극치라고 평했다. 나름대로 개인주의자를 자처하는 나이지만, 무척이나 외로움을 많이 타고 소통하고 싶어하는 개인주의자인 것 같다. 하여간 코딱지만한 나라에서 펼쳐지는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살길을 좀 더 궁리해봐야겠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깊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얼른 신림동으로 들어오라는 청원이의 충고도 진지하게 검토 할 생각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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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학 원리의 두 가지 선물
- 초등학교 친구와의 해후, 중간고사 대박

익구는 최근 회계학 원리 강의로부터 두 가지 선물을 받았다며 무척 반가운 눈치다. 우선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박주원씨와 함께 회계학 원리 강의를 듣고 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학기의 절반이 지났을 때까지도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익구’라는 이름의 특이성으로 말미암아 의문을 가지고 있던 주원이가 먼저 확인을 의뢰했다. 혹시 성남에 살지 않았었냐는 질문에 익구는 옛 친구를 단숨에 기억해냈으나 이름 석자 중에 성씨를 기억해내지 못해 극적인 해후는 다음 시간으로 미뤘다.


졸업 앨범에서 정확한 이름을 온전히 확인한 익구는 다음 강의 시간인 29일에 옛 친구와의 공식적 해후를 선언하고 담소를 나눴다. 8년 만의 만남이라는 어색함도 잊고 옛날의 추억에 휩싸인 익구는 먼저 알아봐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력 나쁨에 대해 정중히 사과했다. 익구는 주원이를 처음 봤을 때 무척 낯이 익었으나 1학기 때 있던 모임들 같은데서 본적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지 설마 초등학교 친구였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알고 지내던 같은 반 후배인 이현수의 친구로서 주원이와 알게된 것을 두고 익구는 세상이 의외로 좁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며 무척 흐뭇한 반응을 보였다. 어디에 있던 열심히만 산다면 인연은 다양한 모습으로 재미나게 다가온다는 것을 일깨워준 반가운 일이라며 대대적인 환영성명을 발표한 익구는 주원이와 현수에게 밥이든 술이든 다음에 한 번 쏘기로 약속했다.


다음 선물은 중간고사의 대박으로 말미암은 엄청난 파급효과이다. 익구는 회계학 원리 중간고사 성적에서 82점을 득점해서 두 반 수강생 135명 중에 공동 4등을 하는 초유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밝혀졌다. 회계학 과목 시험 중에서 평균 점수를 넘는 최초의 시험이 될 것으로 전망은 되었지만, 항간의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둠으로써 엄청난 자신감 상승 효과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간 회계학 징크스로 말미암아 얼치기 경영학도로서 정체성 혼란을 토로하던 익구로서는 이로써 위기의식을 말끔히 걷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시험 성적을 두고 논평을 냈다. 익구는 이 여세를 몰아 관리회계도 깔끔하게 재수강 방어를 이뤄내겠다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익구의 호들갑은 그간 회계학에 대한 익구의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나타내는 방증인 것으로 평가된다.


익구는 이 결과가 만들어지도록 책 대여, 기출문제 제공, 문제풀이 협찬 등으로 도와준 고마운 친구들인 이수지, 김미정, 연지혜씨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썩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수강했던 회계학 원리 재수강은 익구에게 뜻하지 않은 두 가지 선물을 선사하면서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옛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익구가 회계학 악몽을 떨치고 일어나는데 이 두 선물이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고등학교 때 한 친구가 교과서였던가, 공책 표지에 떡 하니 떡 하니 이렇게 써놓은 것을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자유, 평등, 축구”... 축구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외국의 축구 선수와 동향까지 줄줄 꿰고 있었던 그 친구로서는 프랑스 대혁명 이념의 밀도만큼 축구를 사랑한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을 것이다. 내 자신은 비록 축구는 스포츠 민족주의의 대표주자에다가 남성주의, 집단주의의 원흉이 아니겠냐며 딴지 걸면서도 그 친구의 열정을 존중했다. 물론 마음 한구석의 불편함은 감출 수 없지만 말이다. 기억은 안나지만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자유, 평등이랑 축구 따위가 동급이 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지난 한일 월드컵 때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표가 우연찮게 생겼지만 별로 흥미가 없던 터라 대구로 내려가서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경악하는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다. 농담 삼아 미친놈 소리도 좀 듣고,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너는 남자도 아니라는 무시무시한 낙인도 찍힌다.^^; 살다보면 이렇게 완연한 소수파가 되어 여기저기 구박을 받는 경우가 누구나 몇 번씩은 있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대껴 사는 세상에 많은 사람만큼이나 많은 생각이 있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나는 그 누구도 자기와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무시하고 외면할 위치에 오르지 못한다는 인식론적 기초를 세우려고 노력한다. 가령 나는 조선일보가 너무나 싫고 거기서 기생하는 인간들을 혐오하지만, 조선일보가 구독자 1위를 자랑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신문지의 독자들을 존중한다. 비록 그 신문지의 독자들이 관성에 젖었음을 타박하고 그 신문지의 상도덕이 떨어진 사기행각을 규탄하지만 그 정도와 범위는 얼마만큼이 되어야 할지는 아직 명확히 잘 모르겠다.


세상에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것들을 철저히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도 나의 의무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해는 못해도 인정은 해준다”는 참 지키기 어렵다. 내가 싫은 것에 대해 더욱 구박하고 싶고 욕하고 싶어지는 나의 옹졸함이 부끄럽다. 언젠가 학원 국어 선생님이 던져준 “너가 어떤 조직을 위해 무슨 일을 하려거든 남의 것을 무시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는 충고는 나에게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어쩌면 한참기간 유통기한이 지속될 방부제가 가득 들은 충고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에게 한 움큼씩 존재하는 서로 다른 얼굴의 열정이라는 녀석이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좀 더 다양한 열정들이 서로 경쟁하고 연대하는 풍토에서 열정이 식지 않는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것을 “틀렸다”고 몰아세우기는 쉽지만 그저 “다른” 것으로 존중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수가 가는 길을 가지 않는다고 틀린 것이 아니라는 당위적 목표와는 별개로 다수가 실천하는 것이 진리라고 여겨지는 광경이 많이 목격된다. 그러나 이걸 게거품 물고 질책할 것도 없는 것이 원래 소수파가 불편한 점들이 많지만 또한 장점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요즘 들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날라리 소수파는 늘 다수파가 되기를 원한다. 민주주의 원리 하에서는 소수파는 그래도 조금은 더 불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이 고안한 민주주의는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제도다. 다수의 지혜를 모아 절제된 권력을 행사한다면 말이다. 합법적인 방식에 의해 다수표를 획득한 쪽이 정해진 일정 기간 동안 지배력을 행사하고, 소수표를 던졌던 이들도 지도자의 권위와 지시에 따르고 일정 정도의 책임을 공유하는 것은 거래비용도 줄이는 여러모로 효율적인 방식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숫자싸움이고 남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 편이 많아져서 내 의사가 좀 더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도 인정을 외쳐대고, 균형감각을 떠받들다 보니 요즘은 뭐 하나 내 입장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한쪽으로 밀어붙이는 나의 습성에 대한 비판을 너무 전폭적으로 수용한 탓인지 어떤 사안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내놓는 일이 좀 더 힘들어졌다. 어쭙잖은 경계인 흉내도 아니지만 자꾸만 중간잡기로만 향하는 내 모습이 우습다. 귀가 얇은 내 천성도 있지만 이 쪽 가서 들으며 무릎을 치다가도, 저 쪽 가서 들으면 또 맞장구가 쳐진다. 교묘한 저울질의 끝은 대개가 중간 어디쯤으로 수렴해 버린다. 오래 생각할수록 상반된 대안의 장단점이 보이면서 적당한 타협에 급급한 모습이 부쩍 눈에 띈다.


크든 작든, 역사의 한편은 늘 ‘논평자들’의 차지다. 화사한 진보적/자유주의적 교양인인 그들은 ‘오늘의 가장 곤란한 문제’ 앞에선 늘 ‘객관적’이다. 논평자들의 관심은 문제나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나 문제의 해결에 대한 논평이다. 논평자들의 목적은 실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논평자들의 논평은 언제나 같다. “뜻은 좋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다.” 그 말의 실제는 이렇다. “나는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핑계로 방법상의 문제를 찾았다.”
- 김규항, [논평자들] 中, 씨네21 2001/08/22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논평자들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요즘 은연중에 나의 목표가 된 것이 세상을 세련되게 욕하는 내공을 쌓기 아닌가...^^; 게다가 더 끔찍한 것은 확신에 찬 논평을 내놓는 것도 아니라 한참이나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레 논평을 슬쩍 던져서 힘만 빠지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지한 나로서는 이런 어정쩡한 포지셔닝을 취하는 것도 감지덕지인지 모른다. 대충 두 가지 원칙만 세운다면 말이다. 첫째, 나름대로 이상주의자적 기질이 다분하다고 자처하는 나이지만 지나친 현실주의에 매몰되어 다른 이들의 꿈을 현실론을 잣대로 폄훼하지는 않는지 늘 돌아볼 것이다. 둘째, 나의 논평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노력만큼이나 지식과 실천의 병행을 위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가 될수록 우리는 옳고/그름의 문제보다는 그저 다름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옳고 그름은 판정을 내리기 쉽지만, 다름의 문제 앞에서는 선택의 자유를 움켜쥐고는 하염없이 고독해진다. 나는 열심히 배우기 바쁜 일개 학생에 불과하기 때문에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의 균형은 결국 남의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편파적이고 자기본위의 주장일 뿐이다. 그러니 내 입맛을 찾기 위한 탐구를 조금은 어깨 펴고 해야겠다. 어차피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절대 깔끔한 객관성과 담백한 평형감각이라는 이데아(idea)를 확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사회적 균형이라는 것은 모두가 같은 균형된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사회적 균형이 생기는 게 아니에요. 어떤 놈은 왼쪽으로 끝까지 가고, 어떤 놈은 오른쪽으로 끝까지 가고, 또 어떤 놈은 중간에서 폼 잡고 앉아 가지고 야야야, 그러지 마... 그렇게 얘기하고 그래서 총합적으로 어떤 집단적 의사결정이 나타날 때 균형이 취해지는 거라고.
- 유시민, [딴지일보] 긴급출동 이너뷰 中, 2003.10.20



유시민의 말처럼 내 안의 균형을 열심히 잡아 어떤 생각을 내놓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다른 생각들과 서로 다투면서 전체적으로는 균형을 잡아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유시장의 원리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래야만 괜찮은 비주류가 대중성을 확보하는 유쾌한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가 고정된 것이 아닌 늘 서로 긴장하면서 교체되는 유동적인 사회는 다소간은 정신이 없지만 그만큼 더 재미날 것이다. 한 쪽은 계속 호의호식하고, 한 쪽은 계속 욕만 해대는 모습은 너무 불공평하지 않는가. 양팔저울은 좌우로 요동을 치다가도 언젠가는 제 위치를 찾아간다. 우리 개개인이 양팔저울이 될 필요는 없지만, 사회가 양팔저울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 놈이 그 놈인 것을...”이라며 토라져서 눈을 샐쭉 흘기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설령 거기서 거기이더라도 그 세부적인 차이점에 희망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사소한 다름으로 분열되는 것도 안되겠지만 세심한 관찰력은 균형감각의 기본이다. 나의 발언은 결국 지극히 편파적이지만 그 과정만은 진실하고 합리적이어야겠다. 객관과 평형의 이데아는 불가능하지만 과정상의 엄격함과 성실함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으리라. “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라고 너스레를 떠는 것은 사적 인간관계에서야 어느 정도 통용되는 것이지, 사회적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불편부당(不偏不黨)을 내거는 이들일수록 더 치졸하게 편들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치열하게 고민해서 나온 결론을 가지고 당당하게 편파적으로 살자. 나도 누구처럼 인기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한 구석에 있지만 설령 내 결정이 대중성과 거리가 멀더라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비주류의 구덩이에 있다며 내 코가 석자라며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 사고를 시작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는 말자. 이런 기본적인 다짐을 지키는 것만으로 이 세상살이가 조금 더 가슴 뛰게 만들 것이다. 게다가 귀가 얇은 나의 천성은 적당한 상쇄효과를 만들어 내어 ‘즐거운 편벽됨’을 만들어줄 것이다. - [憂弱]


이상적인 자유민주주의는 좌와 우의 균형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달리 말하면 자유와 평등의 균형 위에 서 있다. 평등이 쇠약해질 때, 자유는 흔히 더 힘세고 사나운 사람들이 약하고 순한 사람들을 짓밟으며 제 이익을 멋대로 취할 수 있는 권리로 변질된다.

자유가 비실거릴 때, 평등은 흔히 다수의 횡포와 중우 정치로 가는 길을 닦는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에 대한 열망과 평등에 대한 열망은 거의 비슷한 정도로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돼 있는 듯하다. 회색 지대에서 이 둘의 균형을 꾀하는 것이 좌우의 근본주의자들에게는 마땅치 않겠지만, 진, 선, 미는 바로 그 곳에 있다.
- 고종석, 오늘속으로(9월23일) 균형 中, 한국일보 2003년 09월 22일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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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수요일날 중간고사가 있는 통상정책과 정치학원론의 방대한 학습분량 앞에서 잠시 넋을 놓고 있을 때 후배님께서 이번 세계경제와 기업 과목의 시험문제인 ‘미국의 신경제 논쟁이 우리의 부동산 열기에 주는 시사점을 논하라’ 비슷한 물음을 들고 왔다. 세상에나 무늬만 경영학도로 악명이 높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다니...^^; 다행스레 나도 작년에 똑같은 교수님께 같은 강의를 들었던 터라 그 때의 기억들을 쥐어 짜내 몇 마디 던져주었다. 뒤늦게 옛날 공책을 찾아보니 그 때 썼던 필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걸 진작에 발견해서 후배님들께 전수했으면 좋았을 것을 안타깝게 되었다. (후배님들 시험 잘 치르셨기를...^^)


작년에 들었던 세계경제와 기업 강의의 중간고사 문제 중의 하나가 ‘90년대 후반이 논란이 된 신경제론에 대해 설명하라’였다. 당시에 다음과 같은 모범답안을 작성해 놓은 것을 달달 외워 토씨 몇 개만 빼놓고 그대로 옮겨 적었다.^^


미국의 신경제(New Economy)란 지식의 축적, 기술 변화의 가속화 등 노동, 자본이 아닌 새로운 생산요소에 의해 고성장, 저실업, 저물가를 동시에 유지한 것을 말한다. 전통적 필립스 곡선에 대한 이론이 90년대 미국 경제에서 깨어지게 된 것이다. 90년대 미국은 획기적인 과학기술의 발달이 막대한 수익을 가져옴으로써 혁신에 대한 투자를 더욱더 가속화시키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기존 금융시장에서 다루기 힘들었던 High risk, High return 산업을 위한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금융기술 역시 맞물려 발달하였고, 이는 전세계의 자본이 미국으로 몰려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제품을 생산함에 있어서 세계를 상대로 판매하기 시작하는 세계화의 흐름까지 맞물려 이것들이 다시 새로운 혁신과 고생산성을 낳게 된다. 즉, 기술혁신, 금융개혁, 세계화는 신경제의 3대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가 좋다는 것은 투자와 소비가 높다, 즉 수요가 많기 때문에 외국에서 물품을 수입해 오게 되고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져 경상수지가 악화된다. 미국의 신경제 또한 경상수지 악화라는 아킬레스건이 존재했고, 자산효과로 말미암은 거품이 2000년대 경제불황을 어느 정도 유발했다고 볼 수 있다.



‘필립스 곡선’은 실업률이 일정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임금이 오름을 보여주는 그래프로 임금상승률은 물가에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은 반비례의 관계에 있다는 설명이다. ‘High risk, High return 산업을 위한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금융기술’이란 한마디로 벤처캐피털을 의미한다. 벤처캐피털은 벤처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 장래성만을 믿고 담보 없이 투자하는 기업이나 그러한 기업의 자본을 말한다. 무담보이기 때문에 실패하면 한푼도 건지지 못하지만, 기업이 성공할 경우 투자 원금의 수십 배까지도 건질 수 있는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의 원리를 따르는 사업인 것이다.


또한 ‘경상수지’는 흔히 ‘무역수지’와 혼동해서 잘 쓰이는데, 무역수지는 상품의 수출입에 의한 외환이동의 차액을 나타내는 수지이며, 경상수지는 무역수지를 포함한 기타 모든 외환의 이동을 고려하여 그 차액을 나타내는 수지이다. 만일 수출입에서 흑자가 나더라도 무역외수지의 하나인 해외여행비 지출로 인한 적자가 그 차액보다 큰 적자를 보았다면 무역수지는 흑자가 되지만, 경상수지는 적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국제수지’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등으로 구성된다. 경상수지는 앞서 말했듯이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대외교역 즉 수출입 차액을 나타내는 수치이며 자본수지는 경상수지 외에 직접투자와 간접투자 등에 의한 대외투자금액의 차액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하여간 정리하면 ‘국제수지 > 경상수지 > 무역수지’의 관계가 된다. 에구에구...^^;


마지막으로 ‘자산효과(Wealth Effect)’란 서류상 이익으로 부유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효과를 말한다. 자산이란 미래의 경제적 효익을 가져다 주는 재화로서 주식, 부동산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자산효과란 갑자기 집 값, 주식 값이 오르면 소득은 변화가 없어도 상대적으로 소비, 지출을 많이 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가령 자기가 사는 집 값이 오르면 부동산 가격 상승 분이 현금으로 굴러 들어온 것도 아닌데 돈을 벌었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소비를 늘리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실질소득은 변화가 없는데 소비가 증가하는 거품현상인 것이다. (나처럼 경제원론의 악몽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으시거나 경제 분야에 지식이 잘 없으신 분들을 위해 용어들을 설명했다)


하여간 미국의 신경제를 한 쪽에서는 거품이라고 폄하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 경제가 주춤거리고 있지만 미국은 정보혁명의 파급효과를 경제전반의 생산성 향상 및 효율 증대로 연계시켜 성과를 거둬 성장잠재력 제고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여전히 풍부한 지적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경제 근본구조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 신경제 논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아마도 미국 경제의 향방이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잘되면 충신, 못되면 역적’이라는 세상이치를 경제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진단해서 내놓는 경제학에서는 참 잘 써먹기 때문이다.


신경제 예찬론자들은 장기간 호황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은 전통 경제학의 틀 속에 갇힌 고루한 분석일 뿐이라고 말한다. 성장과 침체를 반복하는 경기변동의 개념도 사라졌으며 생산성 향상에 바탕을 둔 고성장인만큼 물가상승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비틀거리면서 비판론자들은 신경제 역시 성장과 침체를 반복하는 전통 경제학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미국은 이전에도  신경제 현상과 비슷한 높은 생산성 증가율이 있었다는 선례들을 들어 아직까지 신경제가 일시적인 현상인지, 획기적으로 새로운 현상인지는 결론 내릴 수 없다고 외친다. 아무래도 미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하는 만큼 거품론에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강한 달러정책을 포기한지 오래인 미국은 어쩌면 신경제의 일정정도의 거품을 스스로 시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995년 역플라자 합의를 통해 구축된 강한 달러 가치는 미국으로 해외자본이 유입되게 해주었고 이로 말미암아 미국 주가상승과 금리하락을 낳았다. 이렇게 경기가 좋아지자 자산효과로 인한 소비증가와 투자증가로 이어졌고 이러한 수요 증가에 따라 수입이 늘어나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게 되었다. 이를 통한 세계의 동반 성장이 미국이 말하는 금융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이었는데 이것을 미국이 포기한 것이다. 여기서 역플라자 합의란 ‘플라자 합의’의 반대되는 성격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플라자합의란 80년대 엔화대비 달러 가치가 치솟자 선진국 재무장관들이 1985년 달러 약세를 용인하게 된 합의를 말한다.


플라자 합의로 인해 엔화가치는 절상되고 이것이 일본경제의 운명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일본은 급격한 엔화 강세로 수출이 침체되자, 이를 만회하고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초저금리의 극단적인 통화팽창정책과 공공투자 확대 등의 경기부양조치를 실시한다. 그러나 상당기간 금융 및 재정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함에 따라 부동산과 주식에 돈이 몰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가계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하여 주식과 부동산을 사들였고 거품을 우려한 일본 정부는 90년대 들어 금리를 인상하고 부동산 관련 대출을 규제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주식, 부동산의 값이 큰 폭으로 하락하게 된다.


거품의 후유증은 무서운 것이었다. 기업과 가계는 거품경제기에 늘어난 부채의 상환을 위해 소비 및 투자지출을 축소했다. 이와 같이 기업의 부채극소화 노력과 가계의 높은 저축수준 지속은 기업과 가계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나 경제 전체로는 구성의 오류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를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이라고도 하는데 부채를 줄여 건실한 대차대조표를 만들려는 노력이 투자 축소로 이어져 거시경제 전체의 불황을 가져오는 현상을 말한다. 결국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제로 금리까지 내려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키려고 했지만 소비와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일본의 장기적인 불황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고민은 자산가격이 거품 붕괴로 돌아가서 모두가 부채 걱정이 없어지지 않고서는 이 난국의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부동산 시장 과열로 사회가 혼란스럽다. 거품은 언젠가는 빠지게 되어있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우리도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을 우려는 얼마든지 있다. 일본정부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12년 간 부동산값이 하락으로 공중분해된 돈이 1천조엔, 우리 돈으로 1경원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일본경제 규모는 우리의 10배에 달하고 돈 가치도 10배가 높은 것을 감안해 1천조엔의 10분의 1인 1천조원의 재앙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일본의 전례 덕분인지는 몰라도 거품 붕괴가 미칠 악영향에 대한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어 정책당국의 대응도 과거 일본에 비해서는 상당히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거품 붕괴로 인한 금융기관 부실에 대비한 가계대출 억제나 금융기관의 대손충당금(대차대조표에 자산으로 기재되는 받을어음, 외상매출금, 대출금 등의 채권(債權)에 대한 공제의 형식으로 계상되는 회수불능 추산액) 적립 수준을 제고시켜온 정책 등이 앞으로도 더 개발되고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플라자 합의가 나와서 이야기가 딴 데로 새버렸는데 다시 돌아오자면...^^; 물론 미국은 달러화의 가치를 점진적으로 절하시키려고 할 것이다. 달러화의 폭락은 세계경제에 또 한 번의 공황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위안화, 일본 엔화 절상 압력과 더불어 우리 원화도 절상의 압박을 받고 있다. 자칫 하다가는 달러 거품을 우리가 떠맡게 될 수도 있음이다. 내수 부진이 여전한데 원화 절상으로 수출마저 활력을 잃는 것은 가뜩이나 경제가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재선을 앞둔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강한 달러정책으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어 울상이었던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의 제조업 분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일본, 중국 등에 대한 통화 절상압력을 당분간 계속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결국 달러 약세는 꽤 지속될 것이고 환율전쟁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완충 조치를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하여간 부시 대통령은 밉다 밉다하니깐 더 미운 짓만 골라서 하고 있다. ᅳ.ᅳ;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한답시고 침략전쟁이나 해대면서 군비를 확충하고 전후 복구를 위해 엄청난 정부 예산을 쏟아 붇고 있다. 이와 함께 고소득층을 위한 감세 정책도 경기회복에 도움이 못되었고 주식시장 부진에 따른 자본이득세(유가증권 및 부동산 차익과세)의 감소 등으로 재정적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다가 지난 강한 달러정책으로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액까지 합쳐져 난리도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일차적으로 미국의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이 실패한 결과인데 이를 너무 싼 아시아 통화 때문이라며 칭얼거리는 것이 영 밉살스럽다.


신경제 이야기를 하려다 한바탕 횡설수설했다. 아무래도 다 연관관계가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제를 외치며 우쭐거리던 미국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조금은 고소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고소(苦笑, 쓴웃음)를 짓게 하는 일은 미국경제의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내 나라의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대미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은 정치, 군사적인 측면만큼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린다는 한국 경제가 언젠가 미국의 헛기침에 하품으로 응수하는 날은 아련한 꿈이려나. 절제된 자유무역과 다자통상체제로 말미암은 경제적 다극화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야... 아무튼 아직은 경제, 경영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기가 영 어색하고 서툴다. 더 많이 배우고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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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결의안 유엔 안보리 통과가 실망스럽다
- 유엔의 권위는 추락하고 한국은 궁지에 몰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시간 16일 밤(현지시간 16일 아침) 이라크 통치와 관련된 수정 결의안을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국은 9월 3일 결의안을 제시한 이래 네 차례 수정을 하는 고생 끝에 억지 춘향 식으로 결의를 얻어냈다. 그간 유엔의 역할 강화 등을 요구하며 미국을 속썩이던 독일, 프랑스, 러시아는 물론 아랍권의 시리아까지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써 미국은 앞으로 이라크 점령을 위한 병력과 자금을 모으는 데 추진력을 얻게 되었으며 조지 부시 일당들은 외교적 승리라며 한껏 고무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라크 침공은 결코 정당하지 못한 것이었으며 이번 이라크결의안 통과가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유엔의 권위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 뿐 전쟁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며 인류평화에 이바지해야할 유엔의 무력함에 실망할 따름이다. 평화를 외치는 세계민중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미국의 야욕을 6주간 막아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번 결의안은 이라크 치안 유지를 위한 다국적군 구성을 촉구하고, 결국 미국의 다국적군 지휘권 등을 인정하고 있어 미국의 입김이 비교적 많이 녹아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어쨌든 이번 결의안을 바탕으로 미국은 다국적군 파병과 관련하여 한국에게 더 큰 협박을 가할 것으로 보이며, 한국으로서는 이제 국제사회의 결정이라는 짐까지 안고서 파병결정을 내려야 하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여기서 정확히 집고 넘어갈 것은 유엔 평화유지군(PKO)와 다국적군의 차이점이다.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사무총장이 사령관을 임명하고 목적도 평화유지활동에 국한되며 파병 비용도 유엔에서 부담하는 군대를 말한다. 즉 유엔이 이 군대를 전적으로 통솔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은 유엔으로부터 위임을 받았지만 미국이 지휘하고 통제한다. 평화유지군이 말 그대로 평화로운 지역에서 이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다국적군은 불안정한 치안 상황의 한복판에 내던져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유엔’만 끌어다 쓴 미국침략군의 일원이 된다는 것일 뿐이라고 얼마든지 폄하할 수 있다.


평화유지군과 다국적군간의 차이점에 대한 이해부족이 있기도 하지만 여론은 유엔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파병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결의안 통과가 안 되는 외적 변수를 기대했던 파병반대 세력으로서는 여간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파병반대가 양적 소수파가 된 이상 정부와 국회의 결정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이 뻔한 수순을 밟을지라도 말이다) 정부는 이라크 추가조사단을 이어서 보내고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는 등의 노력을 최대한 기울여야 한다. 설령 파병결정이 내려진다고 해도 최대한 전투병의 규모를 줄이고 인도적인 지원으로 돌리는 등의 세부 협상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국제 정치에서 이상주의도 무척 소중한 가치이지만 현실정치를 외면할 수 없고, 냉엄한 세상 질서와 힘의 논리를 외면할 수 없는 우리네 형편이다. 그러나 그것이 합리적인 수준을 한참이나 넘어선 미치광이 현실주의가 될 경우 진짜 국익은 내동댕이치고 맹목적 친미주의로 흐르거나 냉전 논리에 빠지는 것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비록 허울뿐이기는 해도 세계는 이라크 침략을 어느 정도 묵인해버렸고 우리의 입지도 그만큼 좁아졌지만 신중한 파병결정과 더불어 혹시 있을지 모르는 후유증을 최소화하는데도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삽질을 우리가 나서서 막을 만한 힘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함께 파자며 쥐어준 삽을 들고 적당히 농땡이를 부리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 국제 사회의 동의를 얻었다며 득의양양하며 삽을 건네줄 미국의 손을 뿌리치지 어려운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삽의 크기와 삽질의 횟수와 깊이를 조절하는 것까지 포기해서는 안된다. 갈피를 잡기 힘든 혼돈일수록 균형감각의 미덕이 소중하다. 파병찬성 세력들은 이번 결의안 통과를 삽을 덥석 잡는 것의 근거로 삼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전히 이라크 침공은 인류사의 부끄러움이며 파병요구도 부당하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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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한 누리집이 생기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늘어난 것 같다. 비단 내 누리집에 올리는 글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에 올리는 잡글들과 하찮은 꼬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잡글들에 파묻혀 살고 있다고나 할까. 내가 그 많은 시간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는 것이라고는 글 읽고 쓰는 것밖에 없으니 오죽하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문자로 된 것을 접하고 구사하는 데 그리 큰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글쓰기의 욕망이랄 것도 없이 내게는 그저 자연스럽고 가벼운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인터넷 세상이 된 요즘에는 글 읽고 쓰기는 내 일상생활의 일부로서 한 자리 단단히 꿰차고 있는 것 같다. 잡글이나마 써내려 가는 것의 매력에 푸욱 빠졌다고나 할까.


글을 혐오하거나 잘 안쓰는 이들의 핑계는 참 갖가지다. 열심히 쓴 글은 결국 보잘것없기 일쑤이고 그래서 시간낭비이기 때문에, 말장난은 읽는 것만도 고역인데 그것을 생산하는데 나까지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둥,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글 쓸 시간이 어디 있으며 글 쓰는 것보다는 말로 해치우는 것이 더 간편하다는 이유까지 그 사람의 빛깔만큼이나 다양한 글쓰기 거부가 이어진다.


잘 모르는 것에는 침묵하는 겸손한 이들과는 달리 조금은 어설프게 알고 있지만 발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숱한 네티즌들도 있다. 혹자들은 네티즌들의 담론은 엄청나게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거덜나는 장사라고 폄하하지만 꼬리글들이 쌓여가며 이루어지는 자정작용은 생각보다 힘이 세며 이른바 조회수의 법칙이라는 것도 무척이나 냉혹하다. 그간 지식인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였던 글쓰기가 지상으로 내려온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내가 글쓰기에 매혹된 것은 잡글을 쥐어짜내면서 나를 맴도는 두 가지 느낌 때문이다. 하나는 내가 참 무식하구나를 느끼며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가르침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인식의 흐릿함과 지식의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논증해보려는 시도를 하면서 나의 무지는 더욱 돋보였다(!). 덕분에 겉멋만 들었던 나를 한없이 겸허하게 만들어주었다.


또 다른 하나는 새록새록 피어나는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다. 영문법을 틀리면 부끄러워하면서도 국문법은 아예 맞고 틀림조차 신경 쓰지 않는 풍토이지만 내 나라 말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애틋함이 글을 쓸 때 생긴다. 아름다운 한국어 문장에 대한 욕망은 자꾸만 커져가고 있다. 제대로 된 한국어를 다루는 것은 소루하지만 그래도 모국어에 대한 경외심의 고백은 두터운 고마움에 비하면 한참이나 미치지 못한다.


글쓰기를 즐기는 이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생산성의 문제다. 하찮은 글을 쓰는데도 시간은 엄청나게 잡아먹는 괴물 같은 녀석을 가까이 하기가 거북한 것이다. 글로 밥 벌어먹고 사는 것도 아닌 소인(素人, 아마추어)으로서 글 쓰는 이들은 늘 이것이 괴롭다. 나의 글이 들인 노동과 자본에 비해 만족할만한 산출물이 되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조바심은 언제나 나를 짓누른다.


이런 강박관념에도 불구하고, 투자 수익률이 그다지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쓰기를 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다운 쥐꼬리만한 희망으로 도피해버리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꽤 멋스럽고 군침이 도는 글 한 편 지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 말쑥하고 산뜻하게 글을 지어서 읽는 이들에게 효용을 창출하게 만들고 싶다는 갈망이 효율성의 압박에서 나를 힘겹게 구제해주고 있다.


‘허영으로서의 작문’이 경제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촉촉한 교양을 사수하는데 얼마나 보탬이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나의 성실한 글쓰기는 아무리 해도 허술하고, 나의 진솔한 글 쓰기는 여전히 메마르다. 그러나 욕망하는 자가 발언하고, 발언하는 자가 권력을 얻는다는 것을 은밀히 믿고 있다. 이런 적당히 돌려 표현하는 권력의지는 나의 잡글 예찬의 주된 밑거름이기도 하다.


나에 대한 꼼꼼한 성찰이 자칫 음흉한 자기방어에 이용되지 않았는지 늘 반성할 것이다. 나의 미적지근한 끄적거림이 활동가적 열망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지 항상 조심해야겠다. 글쓰기는 이렇게 경계할 것 넘치는 귀찮은 작업이지만 언젠가 헌걸찬 글 한편 나와주겠지 하며 너스레를 떨어본다. 끝으로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스스로를 숱하게 구박하면서도 잡글 쓰기에 몸서리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에게 은근한 연대의식을 표한다.


날카롭지만 따스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나는 한참이나 부지런해져야겠다. - [憂弱]


덧붙이며 - 앞으로 해보고 싶은 글쓰기가 있다면 내 전공과 관련한 경영, 경제학에서 파생된 지식들을 엮어 잡글을 써보는 것이다. 나의 이런 바람은 성사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얼치기 경영학도로서 내가 딛고 있는 분야에 대해 쉽고 이로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열망만은 진정이다. “만일 내가 왕이 된다면, 자기도 그 뜻을 설명할 수 없는 말을 쓰는 작가는 글 쓰는 권리를 박탈하고, 백 번 볼기 치는 형벌에 처하라는 법률을 반포할 것이다”는 톨스토이의 말 때문에 괜스레 엉덩이가 무사한지 돌아볼지언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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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며가며 여자친구 있냐는 말을 참 많이 듣는 것 같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연애를 한 두 번쯤을 겪어봄 직한 시기이다보니 그런 질문이 자연스레 나오는 것 같다. 심지어는 눈이 너무 높은 게 아니냐는 핀잔까지 들을 정도로 같은 질문에 한결같이 냉랭한 답변밖에 못하고 있다. 늘 혼자서도 잘 논다는 말로 둘러대기는 하지만 아직 누군가를 좋아한다거나 할 마음이 없는 것이 솔직한 사실이다. 여자친구 없다며 늘 넋두리하고 안달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나같이 무딘 심성으로 느긋하게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시시콜콜한 연애상식에도 눈길 한 번 안 주다보니 무슨 냉혈한쯤으로 무시당해도 쌀만큼 그 방면에 대한 탐구가 전무했다는 반성을 해본다. 고등학교 3년 간 사랑을 주제로 고민한 것이라는 것이 고작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성립할 수 있는가?”하는 것 정도다. 정말 진도 느리다.^^; 나는 첫눈에 반하는 것이 그 사람의 외면을 바라보고 하는 일이라는 두려움 때문인지, 첫눈에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외면에 내면이 드러나는가?”하는 문제까지 걸려들었고, 고민 끝에 내가 잘하는 수법인 중간잡기를 해버렸다.^^; 결론으로 “내외개연성론(內外蓋然性論)”을 제시했는데 말 그대로 외면에 내면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개연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면과 내면은 별개의 것이다라고 철썩 같이 믿던 나로서는 많은 양보를 한 셈이다.^^


맹자께서도 “사람을 볼 때에는 눈동자보다 좋은 것이 없다. 왜냐하면 눈동자는 惡을 감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올바르면 눈동자가 밝고, 마음이 옳지 못하면 눈동자가 어둡다.”(存乎人者, 莫良於眸子. 眸子不能掩其惡. 胸中正, 則眸子瞭焉, 胸中不正, 則眸子眊焉)라고 말씀하셨다. 외면에도 그 사람의 내면이 일정정도 투영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영 마뜩지 않았던 것은 내면을 중시하고자 했던 나의 철없는 고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난 뒤로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의 마음을 보려고 무던 애를 쓰는 꽤 괜찮은 습관이 생겼다.^^


2.
스위스의 심리학자 융은 모든 인간은 그 정신 속에 자신과 반대되는 성적 요소, 즉 남성은 아니마(여성적 영혼)를, 그리고 여성은 남성적인 아니무스(남성적 영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융이 말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극단적이면서도 서로 조화하고자 한다. 육체는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있지만, 인간성의 본질은 원래 양성적이라는 것이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항상 무의식적으로 이성에게 투사되어 ‘매력’ 또는 ‘혐오감’을 야기하는 주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된다. 즉 남성의 경우 여성에게 아니마를 투사할 때 자기 아니마의 여성상과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 매력을 느끼고, 모순된 경우에는 혐오를 느낀다는 것이다. 어느 시인의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라는 시구는 그런 인간의 표현하기 힘든 무의식의 감정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다.


첫눈에 흠뻑 빠져버린다는 것, 괜시리 좋은 사람이 생기는 것, 그냥 믿고 싶은 사람이 덜컥 나타나는 것은 살다가 몇 번은 겪어보고 싶은 유쾌한 일이겠지만 융의 설명에 따르면 상대방을 보고 느끼는 황홀감이 사실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상이라는 것이다. 조금 김이 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낭만이 아주 떨어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별 이유도 없이 첫눈에 반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제 설사 운명적으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순순히 받아들일 정도의 마음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슬슬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안 될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도 있고 말이다.^^; 전에는 진실한 사랑은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추구하면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함께 이끌어 가는 사랑만큼이나 이끌리는 사랑, 어떤 힘에 질질 끌려가는 것도 무척 재미날 것 같다.


3.
초등학교 때 한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며 제법 진지하게 상담을 해왔다. (머리에 피가 넘치는 것들이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나는 사뭇 근엄한 표정으로 설교를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관심이 있다’ ‘호감이 있다’부터 시작을 하지. 그 다음에는 ‘좋아한다’는 단어가 사용되겠고 그 다음 단계가 ‘사랑한다’가 아니겠니?”라면서 ‘사랑단계론’을 주절되면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닐까... 사랑한다니. 그 단어를 함부로 쓰는 거 아니야?” (뜻빛깔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대충 이와 비슷한 말이었다) 보통 그런 상담이 들어올 때 “걱정마~ 잘 될거야! 힘내라 짜식~”이라며 격려를 해주는 게 대부분일텐데 찬물을 왕창 끼얹었다고나 할까. (예나 지금이나 남 기쁘게 하는 것은 참 서툴다)


어릴 적의 장광설 이래로 사랑 혹은 연애에 대해 조금은 조심스럽고 신중한 견해를 가졌던 것 같다. 때로는 부정적으로 바라보기까지 했다. 사랑의 본질은 슬픔, 아픔, 고달픔, 그리움, 두려움, 안타까움이라며 폄하하기 일쑤였다. (누가 보면 이별, 실연, 갖은 애증을 겪은 이의 말 같지만 연애경험 전무한 이의 제 멋대로의 상상이다) 이 생각을 바꾸게 해준 책이 바로 [독일인의 사랑]이었다. 이는 무지막지한 해피엔딩을 선호하는 내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침울한 결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째서 당신은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나요?”는 여자의 질문에 남자가 늘어놓는 근사한 답변이 나를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고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물씬 들게 하는 공적을 남긴다.^^ “어째서냐구요?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어째서 태어났는지 물어보십시오. 꽃에게 어째서 피어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태양에게 어째서 빛나는가를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비슷한 성격의 책으로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좁은문]을 들 수 있다. 두 책 모두 내가 싫어하는 종교색이 짙음에도 불구하고 따스하며 애절한 이야기가 나의 까다로운 성깔을 달랬던 것이다. 물론 좁은문은 기독교적 윤리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강요하는 자기희생 정신에 대한 반성이 많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 책 덕분에 신을 위한답시고 인간의 행복을 막고 고행의 길로 인도하는 것을 혐오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종교 없이 살도록 해준 직접적인 계기를 이 책이 제공해주기도 했다.^^ 알리사가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정말로 사랑을 희생할 만한 일이 있었을까?”라며 자신의 종교적 헌신에 의심을 풀지 않았다면 정말 입맛이 텁텁했을 소설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면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웠다. 알리사와 제롬이 끝내 알콩달콩 사랑에 빠지지 못한 아쉬움은 알리사의 일기장 한 구절에서 폭발해 버린다.^^; “주여,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기에는 너무도 좁은 길입니다”


4.
사랑과 가난은 감추지 못한다는 덴마크 속담이 있다고 한다. 연애질에 비교적 엄격했던 나이지만 아래 시를 선물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뒤늦게 고백해본다.^^; 이 대목에서는 칸트의 말씀을 핑계되며 물러선다. “진정으로 사랑을 하는 사나이는 그 애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제대로 사랑을 고백하지도 못한다(호의도 제대로 보이지 못한다)” 이 시를 꺼내드는 이유는 내가 생각보다 그렇게 심한 목석이 아니라는 반증을 들어보이고 싶어서이다.^^


[아름다운 사람] - 헤르만 헤세

장난감을 얻은 어린 아이가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서, 기어이 부셔버리고
다음날엔 벌써 그것을 준 사람조차 잊는 것처럼
당신은 내가 드린 내 마음을
귀여운 장난감처럼 조그만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내 마음이 얼마나 아파하고 애태우는지를 돌보지 않는다.


(같은 제목의 시를 번역한 것에 제각각이다보니
내 취향에 맞게 적당한 단어를 골라서 짜 맞췄다^^)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고뇌와 인고 속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고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 너무 흔해서 메마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의 효용은 한없이 크게 보이고 비용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반성해 봐야겠다. 하지만 그간 사랑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며 일상사에서 흔히 쓰이는 ‘사랑한다’는 말조차 규제했던 지난날의 억지가 거의 잦아든 지금 세상은 넓고 사랑할 것은 구석구석에 널려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지 않는 무심한 녀석일지도 모르겠지만 황량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인 차가운 신념만큼이나 뜨거운 사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몸과 마음이 받아들이고 있다.


귀가 솔깃한 연애에 대한 소회를 늘어놓고자 했는데 딴 이야기들만 주절거렸다. 연애 경험도 없는 나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여자 친구를 사귈 생각이 없냐는 숱한 질문이 많았다. 일단은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 받을 만한 존재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영 자신이 없다. 내 자신조차도 ‘연민으로서의 매력’을 가득하지만 ‘투자감 혹은 거래감으로서의 매력’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길게 생각하는 사람이 언제나 최선의 것을 선택한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라고 괴테가 말했다. 남들 다 해본다는 연애나 이상형에 대한 실천적 모색보다는 소모적인 사념에 빠져 지내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괴테는 이런 말도 했음을 알아주시길... “인간은 중요한 일을 결코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간 여남관계의 주된 관심사로서 양성 평등 문제에 천착했다면 이제는 내 청춘사업에도 그리 인색하지 않도록 해봐야겠다는 것을 밝힌다.^^


어느 순정만화에서 여주인공이 자신의 남자친구를 “정말 솔직하고 귀여운 사람”이라고 평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오홋 이런 숨겨둔 감수성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된다는 상상을 잠깐 해보니 가슴이 여간 뛰는 것이 아니다. 세르반테스는 사랑은 눈에 난 다래끼조차 진주알 같이 보이게 하는 안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안 그래도 시력이 나빠서 난리인데 그 안경까지 끼고 어떻게 모진 세상 살아갈까 걱정도 되지만... 그 안경을 언젠가 집어 들어야 할 날이 머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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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열렸던 경영대 사회과학학회 2차 세미나에서 ‘언론비평’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텍스트로 손석춘의 [신문읽기의 혁명]을 선정해서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눠볼 수 있었다. [신문읽기의 혁명]의 글쓴이 손석춘은 신문 취재, 편집은 물론 신문과 정치권력, 경제권력과의 관계 등을 여러 중앙 일간지의 기사를 시각적 자료로 제시하며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를 통해 신문 읽기에서 편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인 ‘편집을 알아야 기사가 보인다’가 이 책의 문제의식과 집필의도를 명확히 드러내주고 있다. 글쓴이는 신문 기사내용은 고정불변의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또한 신문이 제시하는 사고의 틀, 삶의 테두리 속에 갇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쓴이를 이를 위해 편집을 바로 보는 안목을 기를 것을 주창한다. 편집을 통해 비로소 신문이라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삶의 현실과 신문 지면 사이에 불가피하게 놓이게 된 여과장치가 바로 편집”이며 “가치 판단이 빠진 편집이란 애초부터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글쓴이는 신문 편집국의 개념과 분업 구조를 설명하고 취재기자에서부터 편집국장에 이르는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편집국과 편집부의 개념 차이, 취재기자와 편집기자의 분류 등을 이제야 깨우쳤다^^;) 이어 피라미드 구조로 된 신문기사의 편집과정에서 신문사의 주관적인 시각이 들어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중앙 일간지들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표제와 기사내용이 다른 사례들을 들어 신문에 녹아있는 주관적 판단을 증빙해 보이며 심한 경우에는 왜곡되거나 사실과 동떨어진 표제가 붙여져 독자들의 인식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글쓴이는 신문편집의 3원색으로 “기사, 표제, 사진”을 들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개념상 설명이 필요한 “표제”에 대한 중점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그는 표제는 기사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기에 중요하다고 말하며 “기사의 전체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사가 읽혀지는 해석의 틀을 제공”해준다고 그 의의를 밝히고 있다. 실제로 독자는 표제를 읽고 기사의 내용을 짐작하고, 읽을지 말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는 것 중에 하나가 표제의 왜곡과 선정성으로 독자에게 진실을 호도하려는 것에 있다.


‘실제로 있거나 실제로 있었던 일’인 사실(事實)을 보도하는 것이 신문의 이상이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되거나 관심을 끌 만한 일’인 사건(事件)을 보도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문사가 자기 입맛에 맞는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 즉 사실의 사건화를 이용한 그들의 숨은 의도를 가려내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의 사건화’라는 용어는 이 책에 대한 어느 네티즌의 서평에서 따온 것임을 밝힌다) 종이 신문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보통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서 존재한다. 이 창의 얼룩들을 지우기 위해서는 편집을 이해하고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어 가는 능동적인 독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 텍스트의 첫째마당을 개괄한 나의 발제문을 약간 수정해서 올렸다^^)


세미나는 시종일관 끊김 없이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오늘날 신문이 영향력에 대한 고찰이 나왔다. (우리는 논제를 ‘종이 신문’으로만 한정했다) 참가자 대다수가 그래도 일정정도의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음에 논의할 가치가 있는 문제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나는 인터넷 언론매체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최근에 왕성한 의제설정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종이 신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한 것은 각종 조사통계를 보아도 도통 책을 읽지 않는다는 국민들이 그나마 접하는 정보전달매체가 신문이라는 점과 신문에서 읽은 내용을 자기 생각으로 받아들여 부지런히 재생산하는 경우를 들었다. 다음으로 과연 신문의 ‘팩트조작’과 ‘관점차이’의 경계가 어디일까라는 화두가 이어졌지만 역시 녹록치 않았다.


나는 이야기 해보고 싶은 것으로 언론의 불편부당(不偏不黨)은 가능한가, 언론개혁의 목표와 실현방안은 무엇인가, 편집권은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는가를 제시했다. 그런데 별로 싸울 거리가 없어 보이던 불편부당이라는 논제가 활활 타올랐다. 웬만한 신문들의 사시(社是)에 불편부당이나 공정보도를 내걸고 있다보니 한 번 시비나 걸어보자는 거였는데 의외로 이야깃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물론 논의가 확대되면서 이런저런 논제가 섞이다보니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언론의 불편부당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것에서 어느 정도 합의를 보아야 언론개혁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불편부당 문제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언론개혁의 목표도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크게 보아 ‘정치적 지지까지 표명하는 분명한 입장 드러내기’와 ‘기계적 중립실현에 노력하는 것’이 그것이다. 전자는 불편부당보다는 차라리 가면을 벗고 자기의 색깔을 떳떳이 밝히고 경쟁하자는 것이다. 후자는 불편부당의 이상은 찬성, 반대의견을 골고루 실어주는 등의 노력을 통해 일정정도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자가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으로서의 신문사를 바탕으로 한다면, 후자는 공익적 목적과 사회의 공기(公器)로서의 신문사를 지지한다고 할 수 있다.


불편부당에 대한 설왕설래를 경청하다가 문득 든 의문은 과연 입장 드러내기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이다. 대국적으로 우리 신문의 색깔은 이렇고 어느 당을 지지한다 같은 수준에서 그치는 것인가, 아니면 사안별로 자신의 입장을 밝혀 공론의 장에서 논쟁하겠다는 것인지 등에 대한 혼란이었다. 나는 신문의 제 색깔 드러내기는 좀 더 확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보수 언론들의 자신들의 논조가 보수적이라고 칼럼 등에서 공공연히 밝히고 있고, 기사도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편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불편부당을 외쳐되며 근엄한 표정을 짓는 것이 가당찮다는 생각이다. 신문사 입장에서 정치적 지지까지 표명한다는 것은 엄청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정치권력과의 껄끄러운 관계나 독자들의 반발 등이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권력의 압력에 대한 위협은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지금도 열심히 트집잡고 욕하고 있지만 잘만 살고 있지 않는가^^;)


결국 지금도 암묵적으로 보이는 신문들의 당파성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 그네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부담은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한쪽으로는 자기 입맛대로 세상을 재단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불편부당을 외치는 어정쩡한 포지셔닝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신문사가 이런 어정쩡한 입장이다 보니 글을 쓰는 기고자들이나 기자지망생이나 일반 독자까지도 갈피를 못잡고 덩달아 헷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보통 언론개혁하면 공정보도와 일정정도의 기계적 중립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라고 정의 되지만, 나는 선명한 정치색을 밝히는 것도 충분히 언론개혁의 목표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불편부당에 대한 두 가지 태도가 언론개혁의 목표 설정까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미 충분히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마당에 그런 상징적인 조치가 무슨 실효성을 가질 수 있겠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또한 설령 정치적 지지를 드러낸들 그것이 사실 보도를 해야할 부분에서의 왜곡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지적 또한 타당하다. 언론은 객관적일수는 없더라도 공정해야 한다는 당위적 목표도 맞는 말이다. 이런 반론을 접수하다보면 나의 주장이 언뜻 쉬워 보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제 속셈은 적당히 감추고 공정한 척 하는 지금의 언론 풍토에서 차라리 자신이 편파적임을 드러내는 대신 반대자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보는 것에 대한 바람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건 우리 시민사회의 성숙과 더불어 그 실현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다. (딴지일보의 레토릭인 “우리는 편파적이다, 그러나 편파적이 되는 과정은 공정하다”가 자꾸 맴돈다^^)


불편부당의 문제는 언론자유와 공익의무간의 문제로 바꿔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신문사의 눈에 맞는 기사를 선택하고 사설과 칼럼란을 채우는 것은 그네들의 자유다. 그러나 여기서 독자들에게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공익의무와 배치되게 된다. 그러나 이것 중에 양자택일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신문사의 성격이 영리추구와 공익목적 중간 어딘가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언론 자유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라 공익의무를 지닌 제한된 자유라는 것도 확실하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언론 본연의 자세에 충실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언론 자유라는 명목의 갖은 특혜를 주는 ‘계약적 관계’일 따름이다. 언론의 자유는 다른 모든 부문에서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책무가 따른다.


불편부당을 가지고 너무 시간을 끄는 것 같아 편집권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다. 사실 ‘편집권=경영권’인가에 대해서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나왔다. 서구의 언론사들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사주가 영리적 목적으로 신문 지면을 마음껏 재편할 수 있는 우리의 구조에서는 부적절한 등식이라는 데 생각이 모였다. 미국의 경우 편집권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고 재산권이나 소유권과 연계하여 언론자유권이나 편집권을 발행인, 소유주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식 자유언론관을 우리나라에서 주장하는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미국 언론의 편집기능의 자율성이 무척 잘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영자는 일반적인 편집방침을 정할 뿐 개개의 편집업무는 편집진의 자율적 결정에 맡겨진다고 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관훈저널 2001년 가을호에 실린 부산대 신방과 임영호 교수의 ‘언론자유와 편집권’을 참고했다)


편집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첫째마당에서 시간을 너무 소비한 나머지 둘째마당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 진행했다. 광고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신문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나는 지난날에는 언론이 정치권력에 예속되어 많은 폐해를 나았다면 지금은 경제권력과의 불의의 동맹을 맺고 있는 것이 더 큰 일이라는 문제제기를 했다. 얼치기 경영학도이다 보니 아직 경제현상의 왜곡을 읽어 낼만한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진위 여부를 가릴만큼의 내공이 없기 때문에 일단은 계속 속아주고 있는 실정이지만 말이다.^^; 진중권의 다음과 같은 지적이 무척이나 설득력 있다.


언론의 왜곡보도는 주로 정치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치면의 왜곡보다 더 심각한 게 경제면의 왜곡보도다. 정치 보도의 왜곡은 대중의 관심을 끌지만, 경제 보도의 왜곡은 관심을 끌기도 어렵고 워낙 전문적인 문제라 웬만큼 식견이 있지 않으면 짚어내기도 힘들다.

- 진중권, [언론 ‘경제적 수구성’의 위험], 경향신문 2003년 6월 19일


경제권력에 휘둘리는 신문을 고민하다가 지난날 신문의 부끄러운 모습이 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직도 변변한 사죄의 말 한마디 없다는 친일 행적이나 독재 찬양의 기억들... 아마도 지난날의 과오를 깨끗이 털어 넣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 한 일부 언론에게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고 심지어는 저주를 퍼붓는 광경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기적 함수를 가진 인간은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서는 놀라운 기억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손해가 부도덕한 수단과 방법으로 자행된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나같이 별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마저도 지난날의 더러운 과거가 영 마뜩지 않다. 물론 서슬 퍼런 칼날이 두려워 엎드려서 부끄러운 짓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심 어린 사죄만이 재생산되는 분노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같이 소심한 사람은 진솔한 사죄가 있다면 다 덮어줄 용의가 얼마든지 있다.^^;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 세미나를 하고 있던 교양관의 불이 꺼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저런 말들이 쏟아졌지만 정리하는 의미에서 언론개혁에 대한 짤막한 발언들을 해보기로 했다. 소유지분 제한이나 신문공동판매, 대안매체 생성과 참여 등의 대안들이 나왔다. 현실적 막막함 때문에 원론적 수준의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언론의 문제가 조금씩이라도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한결 같았다. 나는 마지막 발언에서 의회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시민의식 개혁도 필요하겠지만 언론개혁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될 법과 제도의 개정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의회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실상 민주주의 사회의 사회문제는 상당수가 궁극적으로 의회권력과 연결되어 버린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나의 의회주의적 열망과는 달리 우리 국회 현실은 너무나 열악하고 절망스럽기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진리와 허위가 대결하게 하라. 자유롭고 공개된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한 편에 놓이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발할 수 있게 하라. 그러면 진리의 편이 반드시 승리하고 생존한다. 허위와 불건전은 ‘공개된 자유시장’에서 다투다가 마침내는 패배하리라. 권력은 이러한 선악의 싸움에 일절 개입하지 말라. 설혹 허위가 일시적으로 득세하는 일이 있더라도 선악과 진위가 자유롭게 싸워간다면 마침내 선과 진이 '자가교정 과정'을 거쳐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되리라.”

- 존 밀턴 1644년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


나는 존 밀턴과 같은 순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겠다. 내가 믿는 것이 선이고 참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승리에 대한 불신도 한 몫 했으리라. 허위의 낮이 뜨겁게 펼쳐지는 데 진리의 갓밝이(여명)를 기다린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하다 못해 해거름(석양)조차도 잘 안 보이는데 언제 밤을 지나 새벽녘을 맞이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물론 일부 언론들의 허위의 결정체로 몰아붙이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과 악의 대결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부시(Bush)스러운(?) 도식을 그려보는 것은 그만큼 우리 언론환경이 구질구질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의 창건자 아돌프 옥스는 1861년 8월 16일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뉴욕타임스의 목적은 어느 일방을 두려워 하거나 어느 한쪽에 특혜를 주지도 않고, 정당이나 분파 또 어떤 이익집단에도 구애받지 않으면서, 뉴스를 불편부당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공공의 관심사항들이 모두 논의되는 광장이 되기 위해 다양한 견해가 반영되는 지적인 토론을 이끌어내겠다는 다짐입니다.” Without fear or favor... 두려움도 없고 그렇다고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보도를 하겠다는 뉴욕타임스의 구호가 그들의 세계 최고의 신문의 위치에 서게 만들었다. 물론 모두를 납득시키는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를 하기란 힘들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 가리워진 길을 가려는 언론인과 언론사들이 대접받는 세상이 오리라 낙관한다.


[신문읽기의 혁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한다고 하니 한 선배께서 옛날(97년에 초판이 나왔음)에 나왔던 이 책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 문제라며 푸념하셨다.^^ 그러나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앞으로 바뀌어 가리라 생각한다. 가디언의 편집국장이자 사주였던 찰스 스콧은 “해석(혹은 주석註釋)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고 했다. 왜곡을 마시고 불공정을 안주 삼는 그대들에게 바란다. “그대들의 맘에 안 드는 해석을 존중한다. 그러나 제발 사실만은 건드리지 마시라. 그대들에게 사실 자체를 건드릴 자유는 없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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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한 채 폐막되었다. 지난 회의는 농산물 시장 개방 반대를 외치며 자결한 故 이경해씨의 안타까운 사연에다가 이제 더 이상 버틸 여지가 없는 농산물 시장 개방의 임박에 대한 위기감을 남겼다.


우리 농업 문제만 생각하면 밀려오는 답답함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이제 고민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점점 거세지는 개방 압력에 우리 농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DDA(도하개발어젠다) 농업협상이 제5차 WTO 각료회의에서 논의된 의장 초안을 토대로 타결될 경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농업부문의 총소득은 15조원에서 9조원으로 감소하고, 자연감소분을 제외하고도 농업취업자 25~5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농민의 이익과 국익을 대립시키면서 농산물 시장 개방이 비록 농가에는 치명타이겠지만 국가 전체로는 이익이라는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 모든 책임이 농민에게 있는 것처럼 집단 따돌림을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처사다. 지금까지의 농업 정책들은 죄다 국가 경쟁력 강화와 도시민들의 생활안전을 위한 것이었지 진정 농민의 처지에서 이루어진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경제발전에는 저임금을 받고 묵묵히 일해 준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고들 하는데, 그 바탕에는 농민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경제개발기에 농촌 젊은이를 도시로 끌어들여 공장노동자로 만든 다음 저임금을 이용한 수출주도 정책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 이른바 한국형 경제성장의 모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는 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을 썼고, 농민들은 가뜩이나 줄어드는 노동력을 가지고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해 기계를 사고 비료와 농약을 많이 뿌려 다수확 품종을 선택했다. 그 결과 수확량은 늘어났지만 과도한 생산비 증가로 인해 농민들의 빚은 자꾸 늘어만 갔다. (물론 부수적으로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도 크다)


이제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인해 그나마 돈도 안되는 농사마저 완전히 때려 쳐야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한 농민 지도자의 안타까운 죽음도 무역자유화의 대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리라. 故 이경해씨는 지난 1990년 11월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이 진행 중인 제네바에서 할복을 기도했다가 치료를 받고 귀국하면서 “냉혹한 현실에서 개방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다. 한쪽 목소리만 높여서는 결국 국가 전체가 손해라는 것을 알았다”는 독백을 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끝내 목숨을 걸고 저항한 것은 거스르기 힘든 시대적 대세 앞의 절박한 호소였다는 점에서 더욱 숙연해진다.


왜 그는 그러한 극단적인 길을 택했던 것인가. 그만큼 우리 농업의 현실이 참담하다는 방증이다. 현재 농민들이 쌀 농사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47%에 달한다고 한다. 이 주된 돈벌이마저 농산물 시장 전면 개방으로 흔들리게 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UR) 때 일본, 필리핀과 더불어 10년 간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게 되어 한숨을 돌렸지만 이제 그 시한은 어느덧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어떤 대책을 마련했나를 돌아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1994년 이후 지난해까지 농업 부문에는 71조8000억원의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농업 구조조정을 위해 쏟아 부은 돈이 이렇게 큰데도 아직도 농업 현실이 이 모양이냐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정부가 농업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구조개선 사업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단기적인 부채탕감책이나 소득 보전 등으로 소진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도 한다. 10여 년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액이 1995~2004년의 10년 간 총 1조6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바 있다. 아주 기초적인 산수감각만 있으면 시장개방을 막고 대응하느라 든 비용보다 활짝 열었을 때의 비용이 훨씬 적게 들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피해보상을 후하게 해주고도 수십조가 남는 대박 장사가 아닌가.^^;


놓친 대박(?)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어느 농림부 통상정책관의 솔직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수입국은 지는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전제하고, 0:5로 질 게임을 0:4로 지기 위해 노력한다며 어려운 처지를 호소했다. 지난 회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아도 확실히 이기기는 힘든 경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씁쓸한 기분이 든다. 될 수 있는 한 작은 점수 차이로 지려는 경기를 보는 마음은 무척이나 착잡하다. 하지만 좀 더 큰 틀에서 생각해보면 지는 경기를 한 것은 아니다.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이라는 경기장에서 우리는 꽤 쏠쏠한 재미를 얻어왔다.


우리나라만큼 자유무역체제의 은혜를 입은 나라도 찾기 어렵다고들 한다. 썩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지난날의 헐벗고 굶주리던 것을 확실히 벗어 던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가입하며 제법 멋을 내고 있는 것도 수출해서 부를 축적한 덕분이다. 앞으로도 경제성장에서 가장 큰 부분은 수출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WTO와 같은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다자통상협상은 우리에게 남는 장사다. 합리적 경제주체간의 협상은 상호간에 주고받는 공생관계를 지향하는 것이지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기생관계로는 성립할 수 없다. 10년 전의 개도국 타령을 또 한 번 우려먹는다면 무슨 염치로 우리 상품을 세계에 팔 것인지가 걱정이다.


100년 이상부터 산업화가 착착 진행되어 농업구조조정을 순차적으로 할 수 있어 그 충격을 완화했던 선진국들과는 달리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한 우리는 그런 완충 작용을 노릴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이를 이유로 조정기간 내지 유예기간을 더 얻어내려고 안간힘을 써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자기 본위의 생각일 뿐,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는 투정으로 비춰질 수 있다. 조금 억지 비유를 들자면 병아리에서 닭이 되는 시간이 엄청 짧았으니 달걀은 좀 뜸들이고 내어주겠다는 꼴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정과 투정이 모여 치열하게 싸우고 타협하고 그러는 것이 협상의 본질이 아닌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미국의 승리를 의심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처럼 농산물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 시기를 늦추는 것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한 쪽으로는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개방에 대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분주하게 대책을 모색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개운치 않은 것은 바로 식량이 무기로 쓰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곡물자급도가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주곡인 쌀만 100% 자급하고도 남아 재고가 늘고 있을 뿐, 대부분의 다른 곡물의 자급도는 5%도 안 되는 심한 불균형 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적으로 식량무기론은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왔다. 역설적이게도 식량을 무기로 삼는 일은 너무나 비윤리적이어서 오히려 그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식량 수출국인 북미와 호주, 유럽 등지의 안정되고 높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들에서 식량을 무기로 삼으리라는 상상을 할 수 없다는 소박한 믿음에서였다. 물론 남의 선의(善意)에 제 목숨을 걸어두는 것은 살얼음판을 걷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이 밖에도 세계의 농업시장은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은 ‘구매자 시장’이라는 논거를 들 수 있다. 또한 농업은 공업보다 기반을 복구하기가 훨씬 쉽고 간단해서 버려진 논밭은 한두 해 안에 그럭저럭 복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생각들은 복거일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을 밝힌다)


물론 그래도 영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다. 도서관에서 아무리 손쉽게 빌릴 수 있는 책이라도 내 방안의 책꽂이에 꽂힌 책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심리적 차이감 내지는 불안감이라면야 오죽 좋겠냐만은.^^; 또한 역사상 식량을 무기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은 카터 대통령 시절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빌미로 금수조치(禁輸措置, embargo)를 시행한다. 식량사정이 나빠서 미국으로부터 대규모로 식량구입을 하던 소련에게 타격을 입히겠다는 계획이었으나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이 시기 소련은 아르헨티나와 캐나다로부터 곡물수입이 크게 늘어나서 오히려 전체 곡물수입규모가 증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식량이 정치적인 이유로 무기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그 실효성을 거두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두 가지 광경을 동시에 보여준다.


비록 소련의 경우에는 성과가 미비했지만 미국은 인도, 칠레의 경우 식량원조의 중단이나 원조방식의 변경을 통해 미국이 수원국에 대해 의도하고자 했던 것을 달성했다. 인도에서는 미국의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도록 했고, 칠레에서는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켰다고 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경남대 사회학 교수인 김종덕의 논문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식량의 정치적 이용’을 참고했다. 이 논문은 그의 저서 [농업사회학] 2부 7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농산물 수입자유화는 분명 식량 수입국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식량 수출국의 식량의 정치적 이용가능성과 세계 식량생산의 불확실성이 만의 하나 존재한다면 그러한 비상사태를 대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 보험료를 내고서 평생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보험료가 아까운 것이 아니라 사고 안 난 것을 감사해야 하듯이 만약을 대비한 지출을 아까워하기보다 식량대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예의 주시해야 한다. 아무리 개방이 되더라도 우리 농업을 적정 수준 개발하고 보존하는 것이 진정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 논의 70%는 밭이나 다른 용도로 바꿀 수 없는 규제대상이다. 개방에 대비해 용도 변경이 금지된 땅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대책을 추진하더라도 무작정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즉각 쌀 생산이 가능하도록 논의 형태를 유지할 부분을 합리적으로 산정하려는 노력 같은 것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산업에도 포트폴리오 개념을 도입하여 위험도를 낮춰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농산물 시장 개방을 고민하면서 미국계 카길과 같은 곡물메이저들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곡물메이저란 곡물의 저장, 수송, 수출입 등을 취급하는 세계적인 상사로 취급량과 독점도가 높은 기업을 뜻한다고 한다. 곡물메이저들은 세계 농산물 작황을 수시로 파악해, 흉작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해당 곡물을 매점하고 가격을 올리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한국은 1980년대 냉해로 인한 벼농사 대흉작으로 미국 코넬 사로부터 t당 200달러이던 쌀을 550달러에 사들인 경험이 있다. 이들은 언제든지 수출금지, 가격담합 등으로 우리의 목을 옥죄어 올 수도 있다. 세계 곡물 시장에서 WTO 등 국제기구의 규범에 따라 유지되리라 철썩같이 믿는 것도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우리 농산물 시장을 놓고 군침을 뚝뚝 흘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곡물메이저들 앞에서 함부로 우리 식량의 자급문제를 자유무역주의에만 맡길 수 없음이 분명해진다. 비단 곡물메이저뿐만 아니라, 순수한 경제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여력을 비축해두어야 한다. 실제 세계의 식량 수급 상황은 자꾸 나빠지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중국․인도․인도네시아․러시아․동유럽 등 식량을 자급했던 인구 과밀 국가들이 식량 수입국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심상찮은 이상기후도 마냥 안심할 수 없다. 농산물 시장 개방을 무작정 반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행위이지만, 우리가 농업을 팽개칠 때에도 곡물메이저들이 지금처럼 싼값에 농산물을 공급한다고 믿는 것도 안이한 행동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경제무대에 우리의 이익 도모를 위해 WTO에 적극 동참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농업을 쉽사리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농민단체들의 정도를 넘어선 압력행사는 부당하다. 그러나 농산물 시장 개방이 농민들에게 크나큰 피해를 입힐 것이 자명한 만큼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균형적인 국토 개발이라는 대의에도 부합하는 것이며, 지난  날의 희생과 노고에 대한 부족한 보은이기도 하다.


현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 더 냉혹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그 차가운 현실에 따스함으로 맞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농민과 우리 농업에 대한 그간의 무심함을 반성하고 애정의 손길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의 크나큰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경제발전을 반성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농업의 구조적인 모순과 정부의 무능한 농정으로 말미암아 늘 힘들고 어려웠던 우리네 농민들이 이제 생존의 위협을 호소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 쌀로 지은 밥이 내 식탁에 오를지라도 우리 농민들이 입는 손해를 분담하는 데 인색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농민들이 너무 큰 목소리를 낸다며 곱지 않게 여겼던 나의 편협함을 반성한다. 여전히 농산물 시장 개방에 찬성하지만, 그 찬성하는 마음은 예전 같지 않음도 고백한다. 이전의 찬성이 농업이라는 독소를 제거해 나라전체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자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의 찬성은 여간 조심스럽고 걱정이 태산같아 대응책에 절치부심 하는 모습이다. 과거의 확신에 찬 신념이 한참이나 누그러졌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버틸만큼 버텼다는 생각이 든다면 과감히 새로운 승부수를 던져봄직도 하다. 위기는 ‘위대한 기회’의 준말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늘진 농민이 아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듣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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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도로서의 익구

익구 2003. 10. 3. 06:45 |
어느덧 대학인으로서 찌들만큼 찌들었다고 할만한 4학기 째에 접어들었는데도 경영학도로서의 익구라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친구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경영학이 잘 맞냐?”라고 의례적으로 묻는 질문에서부터 “경영학도로 그럭저럭 살만하냐?”고 조금 날카롭게 찌르는 질문에서 “경영학 별로 적성에 안 맞아 보이는데?”라며 결정적 비수를 날리는 물음까지 내 귀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고3 때 과연 어떤 학과를 지망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의 도가니에 빠졌다. 경영학도였던 과외형께서 경영학이 그리 어렵지만도 않고 재미난 학문이라고 말해 주셨고 그 말에 자신감을 얻고 고민의 도가니를 냉큼 탈출해버렸다. 만약 그 때 형이 “뭐 별로인 것 같아, 그저 그래”라는 요지의 말씀을 해주셨다면 아마도 고민의 도가니에 푸욱 적셔져 있다가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 모를 일이다. 이래서 역시 역사에다 가정을 하면 골치가 아파지나 보다.^^;


아무래도 사람을 많이 뽑는 경영학과다 보니 주위에 경영학도인 친구들이 제법 있지만 어쩌다가 전공 관련 이야기 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제 살 깎아먹기를 하기 일쑤다. “경영학은 아무래도 학문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잖아”, “4년 간 배우기보다 한 2년 정도만 배우면 되지 않을까?”라는 말들도 들었던 것 같다. 하여간 한때나마 경영학 깎아 내리기의 선봉에서 횃불을 들고 설치던 때가 있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그것이 한참이나 모자란 잘못이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이렇게 자괴감에 빠져있던 나를 구원해준 것은 놀랍게도 정몽준씨(!)였다. 대선 전날의 그의 패악질을 두고 장사치, 장사꾼이라는 비난을 한참이나 듣고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고나 할까. 결국 장사 잘 하는 학문을 배우는 나로서는 모종의 방어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경영학을 부당하게 비하하는 눈초리에도 이리저리 방어를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라고 보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런 것을 심리학 용어로 ‘합리화’ ‘반동형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음을 부인할 생각도 없다.


시장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뼈와 살을 깎아 가는 노력으로 혁신하는 기업만이 살아남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서비스 정신으로 살아가는 기업인들이 별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쉬웠다. 경제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경영에 대한 이해와 기업인에 대한 합리적 비판이 많이 부족한 현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저런 고민의 끝은 ‘상도덕 바로 세우기’로 귀착된다.


상도덕 바로 세우기는 실상 별 것 아닌 생각이다. 모든 종류의 시장에서 룰을 준수하며 공정히 경쟁하기, 자기의 행위에 대한 합리적 평가와 그에 따른 적절한 책임지기, 비용의 균등한 분담과 채무관계의 정확한 기록과 확실한 변제 등이 그 내용이다. 이것을 비단 경제의 영역에 국한시키지 말고 삶의 원리로 확대시켜보자는 것이다. 가령 잘못한 만큼만 욕먹고, 술자리에서 술값 떼먹지 않는 것이 상도덕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상도덕’에서 ‘商’字가 떨어져가야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레토릭(rhetoric) 차원에서 어여삐 넘어가 주고 말일이다.^^


여하간 왜 경영학도가 되었냐는 질문처럼 난감한 것도 없다. 이래저래 생각해본 결과 나를 경영학도로 이끈 두 가지는 ‘빵’에 마냥 초연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과 미지의 분야에 대한 정복욕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고3 때 사회학과도 지원했었는데, 경영학도로 제법 시달린 지금에서는 사회학도로서의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을 비교적 다행이라고 여기는 비겁한 망각을 꾀하고 있기는 하지만... 얼떨결에 경영학도가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솔직히 아주 좋아서 경영학도가 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굴러온 것이지만 기왕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며 이제 짝사랑(?)을 하는 중이다. 본디 늦게 부는 바람이 무서운 법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경영학 빼고는 다 잘한다는 농담까지 듣는 나이지만... (이건 잘 뒤집어보면 은근한 칭찬이라며 아전인수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일단 전공을 중간치는 한 다음에 외도(?)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 주위 경영학도 중에는 경영 이외의 일체의 다른 분야에 관심이 없는 외곬들이 꽤 많아서 이런저런 한 눈 팔기가 두렵기도 하지만... 어느 교수님께서 경영학만 파고들어서는 편협한 테크니션밖에 될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새기며 교양도 열심히 쌓고 전공에도 충실한 학업생활을 하려고 한다.


경영학 과목 중에서 숫자 들어가는 거 말고 말발로 승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그럼 그렇지...^^;) 그렇다보니 본의 아니게 회계학 과목들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비슷한 성격의 재무관리 분야도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 있음^^:) 회계원리C+, 중급회계C+을 맞고 말았다. 2학년 2학기에 듣는 관리회계마저 이 대열에 동참하면 회계학 트리플 재수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안을지도 모른다. 회계는 경영의 언어라고도 하는데, 이 심각한 언어장애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이번에도 불살라본다.


2학년 들어오면서 전공 수업은 어떻게 듣나 고민도 했지만 막상 2학년 1학기를 그럭저럭 지내보면서 얼치기 경영학도로 무사히 대학 졸업을 할 수 있다는 모종의 자신감이 들면서 고민 한 점 없는 즐거운 상태에 빠져들었다.^^ 여하간 이것저것 열심히 배우고, 나아가 배운 것 좋은 일에 써먹을 줄도 아는 경영학도가 되고 싶다는 마음만은 건실하다. 그런데 이런 나의 결심과는 관계없이 주위 사람들이 다들 암묵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앞으로 도저히 경영과 관계된 일을 할 것 같지 않다는 굳건한 의심의 눈초리다.^^;


고등학교 때 썼던 자기소개서에서 “사회의 공동선을 이루려는 의식을 가진 경영학도로서의 포부”라는 구절을 발견하고 포복절도해버렸다. 세상에나, 이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 내 머릿속은 비용최소화와 효용극대화가 가득 차 있는데 말이다.^^; 여전히 딴 짓을 더 즐기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나이지만, 자꾸만 무르익어 가는 전공에 대한 애정이 영 싫지만은 않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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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에게 관용을 베풀자
- 최대한의 관용을 베푸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 문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그는 국정원 조사를 거치며 “거물간첩으로의 추락”이라는 수모까지 겪고 있다. 물론 그가 진작에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질질 끌다가 이제야 봇물 터지듯이 쏟아내서 국민들의 혼란을 초래한 점은 아쉽다. 또한 일부 거짓말을 해왔다는 점에서도 비판할 여지가 많으며, 북한 노동당원이었으며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돈까지 받아썼다는 행적에도 따가운 눈총을 받을 만하다. 논란 중인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의 감투까지 썼다는 것까지 확인되면 이보다 더 난감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경계인”을 자처했지만 그 자신이 인정했듯이 한 쪽에 경도된 사고를 해왔다는 점에서도 영 찜찜하다. 그러나 그가 오랜 세월 고국을 떠나있으면서 한반도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제대로 가지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그가 설령 북한에 호의적이고 남한에 악감정을 갖고 있더라도 그런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불편하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대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사법당국은 송 교수의 사상과 신념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의 명백한 간첩행위가 입증될 경우에만 신중히 처벌을 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신중히’란 표현을 쓴 것은 그가 엄연히 독일국적을 보유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보수 정치인들과 언론, 격앙된 네티즌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오버질을 하는 것이다. 자기 의지로 귀국하여 국정원에 협조하여 조사를 받은 송 교수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위험한 인물이기에 감방에 쳐 넣자고 핏발을 세우고, 그에게 과도한 욕을 퍼붓는 것인가. 이미 송 교수의 저작이 국내에서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는데도 독일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독일국적의 학자가 대한민국 흙을 함부로 밟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이러니 하다. 그가 과오를 시인했으며, 남은 의혹들은 앞으로 조사가 이루어질 만큼 끼니 거른 강아지처럼 허겁지겁 이념적, 감정적 공박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유시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상대방의 잘못을 이유로 들어 자기의 똑같은 잘못을 정당화하는 냉전적 사고틀에 갇혀 살았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계속하되 최대한의 관용을 베푸는 것이 우리 사회의 넉넉함을 과시하는 길이다. 지난날 우리는 북한의 비정상적인 국가모습만큼이나 구질구질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아픈 기억들과 많은 이들의 헌신을 먹고 이제야 북한 앞에서 어깨를 활짝 펴고 자부심을 가질만한 나라를 일구어 냈다. 과거의 실수와 실정법에 따른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송 교수를 따스하게 맞이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싶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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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잡록 2003. 9. 27. 03:45 |
고등학교 동호회 게시판에 한 친구가 “우리모두 어른이 되어간다”는 짤막한 글을 남겼다. 이 말에 영 기분이 찜찜한 것은 요즘 들어 부쩍 늙어간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리라. 다른 한 친구는 대학물이라는 것이 신기하게도 사람을 폭삭 늙게 만든다고 말했다. 물론 세월은 쉴새없이 가다보니 절대 느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생각만큼 그렇게 빠르지도 않는 것 같다. 지난날만큼은 아니더라도 가슴이 뛰는 삶을 지킬 수 있다면, 함부로 늙은척하지 않는다면 적당히 늙어가며 서서히 어른이 되리라 믿는다. 곱게 그리고 멋있게 늙고 싶다. 세월만 간다고 앵앵거리지만 말고 알차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바지런함으로 맞설 수 있기를.^^


익구어린이에서 좀 어른스러워졌다는 것을 느꼈을 때... 즉 ‘익구청년’으로 등급상승 되었을 때는 아마도 ‘세상 욕하기는 쉬워도 티끌만큼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서 몸서리쳤던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 목표는 일단 세련되게 욕하는 것이라도 하자는 것이다만...^^;) 대충 살기도 힘든 세상이라는데, 욕심부려가며 꿈도 이뤄가며 생각한대로 살아가기란 너무 어렵다. 어느 정도 물들고 타협해서 살다가도 마지막에 양보 못할 부분에서는 “No”라고 외치며 돌아설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을지도 늘 두려운 물음이다. 오늘도 “스스로 반성해서 정직하다면 천만인이 가로막더라도 나는 갈 것이다(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는 맹자 구절을 주술처럼 외워본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확실한 감정 한가지가 “세상은 생각보다 더 더럽다”는 것이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난 어떤 위치에서 무슨 주장을 하며 살아갈지 아직도 헤매고 있다. 이 헤맴의 끝이 없다는 것은 내 앞에 놓인 무지막지한 자유의 숙명이다. 이 자유가 설령 나를 필연적으로 고독하게 만들어 준다고 해도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할 수 없는 것은 약간의 울타리로 인해 주어지는 속박에 걸릴 때의 기분 나쁨이 더욱 싫기 때문이다. 자유가 일견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것 같지만, 실상 가장 효율적인 길이라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가 생각 없는 똘마니가 아니라고 믿는다면, 내가 앓아가며 고민해서 선택하는 자유를 누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는 외로움을 뼛속까지 스며들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뼛속에 맴도는 한기를 달래기 위해 사람을 찾고, 술을 찾고들 하는 것이겠지...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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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주의자다

문화 2003. 9. 22. 02:19 |
나는 개인주의자다. 이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정도는 구분하는 세상이 된 터라 이 말을 좀 더 편안하게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집단주의 풍토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개인주의자를 외치는 것은 조금은 두려운 일이다. 그렇다보니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는 올바른 개인주의’라는 수식어 치렁치렁 달린 상품을 내어놓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당당히 ‘개인주의’라고만 말할 시기가 온 것만 같다. 내가 믿는 개인주의가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는 올바른 것’이라면 구태여 경제성 없이 수식어를 앞에 늘어놓는 궁상을 떨 필요가 없다는 자각이다.



태생적 개인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어렸을 때부터 개인주의자의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를 증명할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나는 남을 위한 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참 고약한 심보다^^;) 선행이란 것은 자기자신만을 위해 쓰이기도 바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나 좋은 일 하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善行이었던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던 중에 책도 좀 읽고, 학교 선생님들의 끊임없는 훈육을 접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된다. ‘타인을 위해서 착한 일을 한다’는 것이 성립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일부 선행 개방’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즉 나에게만 쓰던 선행을 남들에게도 좀 나누어주자는 정책이었다. 유치찬란한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이런 과정을 거친 것이 오히려 남에게 좋은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해준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개인 소국가론’이다. 이는 말 그대로 개개인은 하나의 작은 국가라는 인식론이다. 아마 사회과목을 배우면서 정부나 국회의 존재도 알게 되면서 이 조직들을 개인에게도 적용시켜보자는 속셈에서 나온 생각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 때는 스토아 학파의 ‘개인은 소우주’라는 말을 주워들어 만든 것이 아닌가도 의심했지만, 그건 한참 뒤의 일인 것 같다. 스토아 학파의 그 이론을 나중에 듣고, “이건 내 것인데...”라며 2000여 년 전에 선수 당한 것에 대해 배 아파했던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인식론을 기초로 해서 역사를 좋아했던 나는 혼자 생각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로 ‘조정 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쓰는 식으로 국가차원에서 쓸만한 용어들을 내 자신에게 끌어다 썼다. (나중에 ‘조정 회의’는 ‘국회 논의’로 변경된다^^;) 아직도 친구사이를 비롯한 인간관계를 ‘외교’라고 지칭하고, 나의 결심을 ‘정책’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 때의 습관이 남아서이다.



칼 포퍼는 개인주의를 집단주의의 반대라는 의미로만 한정시켜서 사용하겠다며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a)개인주의는 (a')집단주의와 반대되고,
(b)이기주의는 (b')이타주의와 반대된다.
- 칼 포퍼 저/ 이한구 역, [열린사회와 그 적들1], 144쪽



이에 따르면 윗줄과 아랫줄의 짝짓기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형태가 나오게 된다.


(a) × (b) = 이기적 개인주의
(a) × (b') = 이타적 개인주의
(a') × (b) = 이기적 집단주의
(a') × (b') = 이타적 집단주의



포퍼는 플라톤을 비판하면서 이타주의를 집단주의와 동일시하고,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일시함으로써 네 가지 형태로 짝지을 수 있는 것을 단 두 형태 밖에는 인식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결국 플라톤은 이기적 개인주의와 이타적 집단주의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찍으라고 윽박지르는 꼴이라는 것이다. 이는 도덕성의 기준이 국가의 이익이라고 주장하던, 전체주의적 정의론을 외친 플라톤의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포퍼는 플라톤이 범주 혼동의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오류는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을 같은 범주의 것으로 혼동하는 데서 생기는 오류다. 다시 말해, 포도와 당근을 같이 묶어 놓고, 참치와 닭고기를 같은 범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실 이렇게 황당하지는 않고 북어와 황태를 놓고 헷갈리게 하는 식으로 물타기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황태와 북어는 모두 명태를 말린 것이나 북어는 바람 속에 급속히 건조시킨 것이고, 황태는 찬 공기 속에서 오랫동안 말린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포퍼가 분류한 네 가지 형태 주에서 이타적 개인주의가 가장 좋다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일부 선행 개방’이라는 나의 경험이 ‘이기적 개인주의’에서 ‘이타적 개인주의’로 진화하는 쾌거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버린다^^;) 혹자는 이타적 집단주의가 더 멋들어지지 않느냐며 기웃거리겠지만, 일단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에서 그 빛이 바랜다. 남을 위하면서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우는 열성적인 종교집단이나 공산주의 실험 정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사실상 이런 경우는 정말 착한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정말 보기 힘든 일이다.




경제학 세계의 인간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이것은 증명하지 않고 참으로 인정하는 명제, 즉 공리(公理, axiom)다. 경제학 이론은 이 공리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경제학을 이해하려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 인간’을 인정하고, 그가 내리는 모든 자발적인 경제적 선택을 ‘합리적’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기독교도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경제학도는 이 공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신성한 경제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 유시민, [합리적 경제인이란?] 中




유시민의 칼럼에서 ‘경제학’을 ‘경영학’으로 바꿔서 이해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이나 이타적 개인주의를 가진 인간상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학은 완전히 합리적인 인간을 가정하고, 경영학은 제한적인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가진 인간을 가정한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하간 이타적 개인주의보다는 이기적 개인주의, 이기적 집단주의가 더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여기서 이기적 개인주의는 흔히 말하는 ‘이기주의’, 이기적 집단주의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 둘 중에서 오해가 심한 것은 역시 이기적 개인주의다. ‘이기주의 + 개인주의’가 되어 있다보니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도매금으로 구박받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적 개인주의에서 나쁜 것은 이기주의에 있는 것일 뿐, 개인주의까지 누명을 쓰는 것은 부당하다. 이걸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포퍼의 입장과는 달리 단순하게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해 볼 수도 있다. 철학자 김용석의 다음과 같은 깔끔한 정리가 무척 유용하다.



개인주의individualism는 말 그대로 개인individual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반면에 이기주의egoism는 나ego를 중시하는 입장이다. 전자의 경우 개인은 여럿이므로 모든 개인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 '나'라는 자기는 하나뿐이므로, 결국 자기'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개인주의에서는 말 뜻 그대로 개인이면 누구든 중요시한다.

'나'라는 개인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 너, 그, 그녀 등 모든 개인을 중요시한다. 즉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의 가치와 존엄 그리고 권리를 前提하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에 대한 이해 및 타인의 권리 인정과 타인을 수용하는 자세는 개인주의의 본질이다. 반면 이기주의에서는―어원적으로도 쉽게 알 수 있듯이―자기 자신만을 중시하므로 타인을 이해하거나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 즉 '나'의 존재는 '나'만을 위한 것이다.
- 김용석, [우리 안의 이기주의, 우리 밖의 개인주의] 中, emerge 2002년 3월




이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가르는 관건은 나만 생각할 것인가, 나를 포함한 모든 개인을 생각할 것인가에 있다는 것이다. 이기주의에는 자기 존중밖에 없다면, 개인주의에는 이와 더불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개인을 집단에 종속시키는 집단주의 윤리가 구조적으로 합리적 토론과정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우선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는 반면 집단 윤리를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 의해 방증된다.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남의 개인’도 ‘나의 개인’만큼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알지만, 개인을 사회집단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의식이나 관념, 또는 일상에 젖어 있는 집단 구성원들은 집단의 헤게모니에 기대거나 숨은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율적인 개인을 포기하고 패거리에 몸을 담는 것이다.
- 홍세화, [숨은 이기주의자들] 中, 2002년12월11일 한겨레21 제438호




그렇다. 집단에 피신하지 않고 내 삶은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자세, 나의 생각과 판단에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 남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개인주의자가 되는 길이다. 내 주변의 착하고 순박한 벗들을 사랑하고 나쁜 놈들보다는 착한 사람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이 점에서 개인주의는 의외로 낙천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상주의와도 만난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인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개인주의 없이 자유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가 추구하고 탐구하는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의 가장 친한 친구쯤 되니 이 또한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닌가.^^




개인주의자들은 김철수가 장애자라는 이유로, 박미란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로이 워싱턴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카르멘 차베스가 세번째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압둘라이 알리가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이영순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최경철이 게이라는 이유로 그녀들과 그들에게 시민적 정치적 권리가 제한되는 것에 결사 반대한다. 개인주의자들은 리처드 윌리엄즈가 백인 남자라는 이유로, 캐럴라인 샌더즈가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정미자가 이혼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권순철이 경상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들과 그녀들에게 시민적 정치적 권리가 덤으로 주어지는 것에 결사 반대한다. 개인주의는 시민사회의 버팀목이다. 그것은 집단주의 사회에서 목격되는 강요된 연대가 아닌,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정신 사이의 자발적 연대, 느슨하지만 깊숙한 연대, 참다운 연대로 트여있는 길이다.
- 고종석, [개인주의여 영원하라] 中, ‘지성과 패기’ 95.9.10., 산문집 ‘책읽기 책일기’, 문학동네, 1997.



고종석이 말한 그 아름다운 연대에 내가 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남이 뭐라 하든 나의 길을 고집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내 편이 아닌 이들에게도 따뜻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소수파가 되었을 때 느꼈던 불편함과 두려움을 다수파가 되어서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올챙이적 생각을 해낼 수 있는 양심적 기억력이 내게 존재한다면... 나는 앞으로도 꽤 그럴듯한 개인주의자로 남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과 자부심이 생긴다. 아 글쎄... 개인주의자는 낙관론자라니깐...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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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고연전은 다가왔다. 새내기를 중심으로 한 설렘이 느껴진다. 그러나 점차 높아지는 고연전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고연전과 고연제의 용어혼란을 막기 위해 부연 설명을 하자면... 고연전은 5개의 경기를 말하는 것이고, 고연제는 이 경기를 포함해서 고연전이 있는 주중에 벌어지는 문화제, 방송제 등의 모든 행사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고연제에서 고연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고연전으로만 논의의 범위를 축소시켜 살펴보겠다). 고연전을 비판하는 목소리, 고연대의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외침이 시간이 갈수록 점차 커지고 있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고연전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경기가 끝나고 이루어지는 술판과 기차놀이 등으로 말미암아 시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지나치다는 입장이 있다. 둘째로 학벌체제를 공고히 하고 양교생들의 엘리트 의식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이다. 셋째로 남성중심적이고, 비장애중심적인 집단적 대학문화를 반복 재생산한다는 외침이다.


우선 첫 번째 비판은 고연전을 좋아하는 대다수의 고대인들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고, 개선하려는 노력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두 번째 비판에서는 입장이 크게 갈리는 듯하다. 과연 고연전이 엘리트 의식을 고취하는데 일조 하는지의 여부가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설사 학벌의식, 우월의식을 고대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다른 이들이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면 이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교 친선행사에 불과한 것에 타교생이 콤플렉스를 느낄 것도 없고, 또한 우리도 타교생에게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것도 아닌데, 이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연 고연전을 학벌이 나쁜 여러 대학에 대한 노골적인 집단 우월감의 표시라고 해석해야하는지의 논의를 평행선을 달릴 소지가 많다. 한 쪽에서는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된다며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렇게 생각지도 않는데 괜히 오버하고 난리라며 열을 내는 광경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인지, 단순한 애교심일 뿐인지 어느 쪽의 입장을 선뜻 들어주기 힘들다. 안티 측에서는 고연전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내세우는 애교심이라는 것이 과연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한국사회의 권력을 학벌 좋은 학교가 나눠 가지는 상황에서 순수한 애교심이 성립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지 측에서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에 순수한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또한 그렇게 순수성을 따지는 이들의 순수성도 의심스럽다는 역공을 펼친다. 이토록 치열한 학벌주의 논쟁은 일면 소모적으로 보이지만, 성찰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학벌주의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를 비판하지 않고, 애꿎은 고연전을 물고늘어지느냐는 반발도 있지만, 본디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고 비판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믿는다면, 그 항변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분명 이는 서울대 공화국인 이 땅의 현실과는 별도로 진행되어야할 논쟁이다.


세 번째 비판인 고대문화에 대한 비판은 팽팽하게 입장이 갈리는 두 번째 비판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역시 찬반이 맞서지만, 찬성 입장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두 번째 논점과는 달리 해결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고대의 집단적 문화는 여느 대학들보다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새터에서부터 시작되는 ‘고대인 만들기’는 FM, 사발식, 응원 등으로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된다. ‘고대스러움’의 부정적 속성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음에도 고대 문화는 큰 틀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사발식에서 사용되는 ‘막걸리 찬가’에서 저속하고 여성비하적인 소절을 바꾸려는 노력이 한참이나 걸렸다는 것만 보아도 새로운 고대 문화를 창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알 수 있다). 군대의 관등성명과 별반 차이 없는 FM도 그렇지만, 지나친 응원도 문제다. 응원을 할 때 힘찬 움직임을 추구하며, 목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만 상대방에 기죽지 않고 멋진 응원이라고 여기는 것은 남성중심적이고 비장애중심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그러나 응원에 열광하는 것이 반드시 남성중심적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여자는 목소리 크게 내면 안되고, 큰 동작으로 뛰면 안되는 것인가?), 고연전이나 응원이 기본적으로 비장애중심적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중심적이고 비장애중심적이라는 혐의를 상당수 벗겨내더라도, 고연전을 위시한 고대 문화가 문제시되는 것은 무엇보다 그 집단주의 때문이다. 선배가 시키는데 FM을 안하는 새내기를 상상하기 힘들고, 이런저런 행사 때 응원을 안하고 뒤로 빠지기도 여간 쉽지 않다. FM, 응원 등을 하기 싫은 이에게도 무언의 압력으로 인해 마지못해서라도 고대 문화, 그 집단주의의 대열에 줄을 서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면은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른바 고대 문화로 지칭되던 것들이 상당수 그 힘을 잃어 가는 조짐이 보인다(일부 단과대에서 고대 문화를 잘 재생산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는 계속된 비판과 지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고대의 그 굳건해 보이던 집단주의 문화도 개인주의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일상적 자유확립’을 위해 개인의 취향에 따른 자유로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직은 요원하지만 그 과정은 비교적 낙관적이다.


안티 고연전 운동은 아무 생각 없이 즐기던 행사에 대해 곱씹는 계기가 되고, 부정적인 면을 고쳐나가는 데 소중한 도움이 되었다. 정리해보자면 고연전에 대한 세 가지 비판 중에서 첫 번째는 이미 이론의 여지없이 찬반 양측이 정도에 차이만 있을 뿐, 큰 틀에서 동감하고 있으며, 두 번째는 찬반이 가장 팽팽하게 맞서고 있으며, 세 번째는 찬반이 맞서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비판 찬성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다. 결국 고연전 논쟁의 핵심은 ‘학벌주의’라는 죄목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고대와 연대가 묘한 공생관계로 학벌주의를 재생산하고 있느냐를 입증하는 것이 고연전에 대한 관점을 정립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끝으로 안티 고연전을 둘러싼 활발한 논쟁이야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너무 과열되지 않기를 바란다. 안티 고연전 측의 고연전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와 자학, 고대에 대한 부당한 매도가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고연전을 지지하는 측의 불성실한 태도가 더 비판받아야 한다. 고연전을 공론의 장에서 구워삶는 것은 좋지만, 서로가 가진 학교에 대한 따뜻한 애정까지 의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 고연전도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경기 승리로 인한 잠깐의 기쁨보다는 학교 교육의 질과 학생 개개인의 자아실현 여부로 승부를 걸고 싶다. 그것이 비단 연대 뿐만이 아닌 다른 어떤 대학이든 말이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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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반대가 진짜 국익이다
- 파병 반대 최선의 전략은 국회의 농성전이다

미국이 전투병을 추가로 파병해줄 것을 요청해서 찬반 여론이 들끓고 있다. 지난 파병 논란 때 정부는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미관계의 복원 필요성이라는 국익을 위해 파병을 선택했고, 이 선택의 부당성을 토로하면서도,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반응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 때와는 현격히 다르다. 대량살상무기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알 수 없고, 이라크 현지의 사정도 무척 위험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추가 파병 요구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많은 이들이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불가피함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이 이 땅의 서글픈 현실이고, 이를 마냥 덮어두고 외면할 수도 없다. 미국의 으름장을 감당할 만큼 우리네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다보니 우리 정부는 이번에도 진퇴양난의 형국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미국의 협박을 정부가 거절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동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추가 파병을 막아야 한다. 정부가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국회가 파병동의안을 부결시킴으로써 파병도 막고, 체면치레도 하는 궁상맞은 전략이 최선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국회의원 잘못 뽑은 것이 이럴 때 후회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지금의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의사와 국익을 잘 반영해서 파병동의안에 임할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추가 파병 문제에 대한 1차적 결정은 정부가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가 운신의 폭이 좁을 때는 국회가 대신 움직여줘야 한다. 사실 국회가 이런 일 하라고 있는 것 아닌가. 전쟁에서 요격전에서 실패하면, 농성전으로 옮겨와야 한다. 정부가 들판에서 목책 쌓아가며 눈치껏 버티다가 결국은 성으로 퇴각해 들어오면, 국회가 불화살과 돌을 굴려가며 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이런 일도 못하면서 군량미 축내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처사라는 것은 과연 모르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슬프게도 이런 익구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지난 파병동의안 처리 때 반대표를 던진 의원이 소수였듯이, 이번에도 상황은 별반 나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파병 찬성하고 국회가 파병동의안 부결시키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이렇게 될 가능성이 많지 않아 보인다. 지금으로서 파병을 막는 것은 대통령이 거부하는 방도밖에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은 정부의 입장으로서는 최선이 될 파병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고, 결국 국회는 파병동의안을 조금 끌다가 가결시켜버리는 지난번의 재판이 될 개연성이 높다.


파병 찬성을 하는 입장도 충분히 존중한다. 대신 순서를 지켜야 한다. 우선 헌법 5조 1항의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라는 문구를 변경하는 개헌절차부터 밟는 것이 순리 아닌가. (혹자들은 5조 1항의 앞부분인 ‘국제평화의 유지’나 헌법 전문의 ‘항구적인 세계 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이라는 문구까지 변경하자고 주장할지 모르나 너무 자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있을지 모르는 파병 딜레마 때마다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느니 이번 기회에 개헌논쟁으로 한 번에 끝내는 것도 좋겠지만 이 또한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열혈 파병론자들은 이 파병이 침략적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외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파병불가피론자들은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으로 해명을 할 것이다. 현실적 불가피론을 인정한다. 다만 공론의 장에서 좀 더 솔직하게 말해달라. ‘침략 전쟁이 맞습니다. 맞고요. 그렇지만 미국의 공갈이 꽤 위협적이지 않습니까. 당장 급한 불부터 끕시다.’라고 터놓고 말하고 한바탕 논쟁을 벌여보자. 국익을 내세워 그 뒤로 숨기보다는 진심으로 이 땅의 현실을 놓고, 파병 반대든, 찬성이든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지만 익구가 파병 반대를 주장하는 까닭은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국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냉혹한 국제 정치에서 명분만을 부여잡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고, 정부의 난감한 입장이 역지사지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에 반대하는 마음도 편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는 일단은 자기 생각대로 주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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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회계원리 강의시간에 있었던 ᄌ교수의 충격적인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ᄌ교수가 고려대학교 체육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늘어놓는 중에 나온 ‘쓰레기’ 발언이 그 이유였다. ᄌ교수는 야구 특기생을 6명 뽑을 때 당시 후보로 있었던 선수가 박찬호, 임선동, 조성민이 있었는데 당시는 임선동을 데려오기 위해 혈안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당시만 해도 박찬호는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때 ᄌ교수는 “결국 박찬호는 한양대에 갔지. 그 때 한양대는 여기저기 쓰레기들을 모아 15명이나 뽑았었거든...”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그러면서 그랬던 박찬호가 지금은 가장 잘 나가고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대략 마무리되었다.


학생들은 한바탕 웃고 말았지만 교수의 ‘쓰레기 발언’은 영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강의의 지루함을 좀 덜어보려는 이야기였다는 선의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쓰레기’라는 단어를 쓴 것은 좀 과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본교의 체육특기생들이 우수했다는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타교에 진학한 이들을 일컬어 ‘쓰레기’라는 단어를 쓴 것은 농담으로 지나치기에는 은근히 깔려있는 학벌주의적 사고가 너무 선명해 보인다.


역지사지라고 했다. 고려대와 한양대에서 서울대와 고려대로 바꾸어놓고 생각해보자. 서울대의 어느 교수가 고려대 학생들에게 ‘쓰레기’라고 모욕적인 발언을 늘어놓을 때도 우스갯소리이겠거니 하며 넘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물론 지금의 학벌주의 구조에서 가만히 기생한다면 고려대라는 존재가 2, 3등의 자리를 공고히 지키며 각종 콩고물을 편안히 뜯어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학벌 피라미드에서는 서울대를 제외한 모든 대학은 결국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고려대학교의 교훈은 ‘자유, 정의, 진리’이다. 학벌주의는 고대의 3대 이념 어느 것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에 기댈 것이 아니라 마땅히 없애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자기 학교를 자랑스러워하고 좋게 보려는 마음이야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 인지상정이 지나쳐서는 안된다. 정말 학교를 사랑한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건실한 실력을 쌓아나가야지 남을 깔보면서 어부지리로 우월한 지위를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ᄌ교수의 쓰레기 발언을 너무 깐깐하게 본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를 계기로 배려할 줄 아는 고대인의 모습을 정립해야 한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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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와 아니무스로 살펴보는 개성화 과정
-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읽고


  [아니마와 아니무스](이부영著, 한길사刊)는 융의 아니마(anima)․아니무스(animus) 이론을 종합한 후, 그 이론을 저자가 수집한 한국인의 꿈, 정신과 임상사례, 현대시, 무속 및 민담, 그리고 [도덕경] 등의 전통 사상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서구의 이론을 가져와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무척 신선했다.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가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아니마와 아니무스 개념과 양성평등의 문제를 집어보는 것으로 논의의 범위를 한정시키도록 하겠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알 구스타프 융은 모든 인간은 그 정신 속에 자신과 반대되는 성적 요소, 즉 남성은 아니마(여성적 영혼)를, 그리고 여성은 남성적인 아니무스(남성적 영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융이 말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극단적이면서도 서로 조화하고자 한다. 육체는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있지만, 인간성의 본질은 원래 양성적이라는 것이다.


  먼저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페르조나’라는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 융은 인간 정신의 표면을 지배하는 양태를 `페르조나'라고 이름 붙였다. 그에 대비해 정신의 내면으로서 남성의 퍼스낼리티의 여성적 측면을 `아니마'라 하고, 여성 퍼스낼리티의 남성적 측면을 `아니무스'라고 명명했다. 정신의 겉면인 페르조나는 때와 장소에 마치 카멜레온의 보호색처럼 바뀌어서 시대, 문화와 상황에 따라 의식과 행동방식을 적절하게 변화시킨다. 그러나 그 이면엔 남성의 경우 아니마, 여성에선 아니무스의 태고유형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집단사회 속에서 집단에 의해 요구되는 태도인 페르조나와 반대로 나타난다. 남성은 가장으로, 강한 직장인으로, 논리적인 경향의 남성적 페르조나를 쓰고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감정적인 아니마가 자리잡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적 요구에 맞추어가는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과 여성의 페르조나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내적 인격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남성의 무의식에는 여성적 인격이,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적 인격이 내적 인격으로 자리하게 된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남성과 여성의 의식에서 억압된 것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 조건인 원형으로 이미 그렇게 되어있는 것을 핵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이부영, [아니마와 아니무스], 31쪽)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항상 무의식적으로 연인에게 투사되어 `매력' 또는 `혐오감'을 야기하는 주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된다. 즉 남성의 경우 여성에게 아니마를 투사할 때 자기 아니마의 여성상과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 매력을 느끼고, 모순된 경우에는 혐오를 느낀다는 것이다. 어느 시인의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라는 시구는 그런 인간의 표현하기 힘든 무의식의 감정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어떤 이성에게 한눈에 반했다면, 그건 자신의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며 아니마, 아니무스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상대방을 보고 느끼는 황홀함이 사실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상이라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첫눈에 반했다’라는 경우를 융은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이는 비단 남녀관계에서만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읽은 김근태의 에세이집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쓴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살다보면 괜히 좋은 사람이 있다.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인데, 내게 특별히 잘해주거나 각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신뢰감이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김근태 의원이 바로 그런 분이다.
(김근태 에세이집 [희망은 힘이 세다], 252쪽)



  저자는 아니마, 아니무스의 투사로 인한 사랑의 실패에 대해 높은 의미를 부여한다. 자기 마음의 투사상이 아닌 현실의 그 남자, 그 여자를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자기 욕심을 채우고 상대를 자기의 이상상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솔직히 이 대목이 가장 실용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의 자아와 무의식의 심혼과의 융합이야말로 평화의 경지이며 자기실현의 길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을 했다.


  요컨대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론은 인간이 남성과 여성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남성은 여성적 요소를, 여성은 남성적 요소를 살려서 의식에 통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의식의 중심인 자아는 전체정신의 중심에 거의 접근하게 된다.
(이부영, [아니마와 아니무스], 36쪽)



  지극히 남성우월주의적 관점에서 여성은 열등한 것으로 치부한 프로이트에 비해, 융은 비교적 합리적인 견해를 제시했지만 역시 그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아마 여성분이라면 융의 견해를 나처럼 이렇게 편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했을 것 같다. 결국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체는 어디까지나 남성이고 여성은 객체에서 머무르며 비교대상으로서의 가치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융이 과격한 여권신장을 주창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남성에게 여성적인 것, 여성에게 남성적인 것은 본래 뒷면에 있는 것인데 자기의 성과 다른 성의 것을 앞면에 내세워 살리게 되면 자기 고유의 성이 소홀해진다. 여기서 융은 강조한다. “남성은 남성으로, 여성은 여성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같은책, 58쪽)



  그래서 조금 아쉬운 감이 남는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개념을 정립하고 그것을 조화시키자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한다. 조금 더 나아가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나 할까. 세계적으로 남녀평등 지표가 매우 낮은 나라인 한국, 여전히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질서가 강한 나라인 한국의 현실에 대한 저자의 따끔한 일침을 기대했다면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는 무리한 요구였을까?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짧은 생각으로는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여자가 만들어지는 것은 맞지만 남자 또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이는 남성에게 더욱 어울리는 말처럼 느껴진다. 남성이야말로 사회적으로 제조되는 존재라고 생각된다.


  오죽하면 “전통적으로 남성성은 무엇인가를 욕구하는 것보다는 무엇인가를 회피하는 것으로 자주 정의”(E. 바뎅데, [XY 남성의 본질에 대하여], 183쪽)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가. 하긴 가만히 따져보면 남자가 된다는 것은 여성스러움을 피하고, 동성애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등의 주로 ‘안티’를 통해서 규정되기 일쑤이다. ‘남성다운’ ‘여성다운’ 같은 성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을 프로이트는 “학문 영역 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개념”이라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남자가 되라”고 가르치고 윽박지르지만 ‘사내대장부’ ‘진짜 남자’가 과연 딱 정리된 것이 있는지 물으면 혼란스럽기만 하다. 흔히들 남성성은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노력을 통해 얻어낸다는 믿는다. 그래서 남자가 되기 위해 목숨 걸고 쇼(!)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 한마디 내뱉어주는 쾌감을 위해. “니들이 남자다움을 알아!”

  
  우리가 보듯 남성성은 두드러지게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다른 남성들 앞에서 그리고 다른 남성들을 위해서 구축된, 그리고 여성성에 대항하여 여성적인 것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 구축된 개념이다.
(피에르 부르디외, [남성지배], 75쪽)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한 명의 남성의 탄생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한 명의 남자의 탄생에는 늘 여성에 대한, 그리고 다른 남성 및 스스로에 대한 억압과 폭력이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식으로 남성다움을 성취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세상의 절반이나 되는 여성들이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감수해야 하는 갖은 불공정함을 놓아 둔 채 어떤 진보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성적 차별은 ‘사나이’로부터 나온다.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사내다운 사나이가 존재’하기 위해선 언제나 ‘여자다운 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나이’라는 말은 온갖 범죄, 온갖 불평등, 온갖 권위주의, 온갖 파시즘의 면죄부이기도 했다.
(김규항, [B급좌파], 83쪽)



  전통적으로 성역할 사회화의 과정에서 여성은 여성성만을, 남성은 남성성만을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져 왔다. 고작 몇 십 년 전만 해도 삼종지도(三從之道)니,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니 하는 규범들이 엄존했던 이 땅에서도 최근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은 사실이다. 이 것을 보고 역사는 그래도 진보한다는 명제의 위대성을 실감할 수 있다. 내가 배웠던 고등학교 교과서의 일부를 먼지를 털면서 들춰보았다.


  어느 심리학자는 사람의 인성을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남성적 인성, 여성적 인성, 양성적 인성, 그리고 미분화된 인성이 그것이다. 남성적 인성과 여성적 인성은 각각 전형적인 남성다움, 여성다움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고, 양성적 인성은 여성다움의 장점과 남성다움의 장점을 골고루 갖춘 사람을 의미하며, 미분화된 인성은 남성다움이나 여성다움의 어느 것도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주위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양성적 성향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한국 교육 개발원, [고등학교 일반사회]1999년 판, 75쪽)



  1970년대 이후 '심리적 양성성'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성격이 모두 발달한 개인이 다양한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높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부정적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대면하고 통합된 ‘자기’를 이루는 길은 사실 자신 영혼의 평화뿐만 아니라, 여러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이라는 융의 분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절실한 과제이다.


  그러나 대개 그렇지만 해결책이 명확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항상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쉽다는 보장은 없다. 쉽게 의식 속으로 편입되지 않을 뿐더러,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원한다면 양성성으로 눈을 돌릴 유인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어쩌다 나온 친구의 한 마디가 뭇남성들의 이런 딜레마를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책에서 양성성 어쩌고 떠들어대도 그래도 역시 남자는 남자다워야지.”


  여성호르몬 또는 아니마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조화, 따뜻한 관심과 지원 등을 갖게 하지만, 남성 호르몬 또는 아니무스는 경쟁과 전쟁, 등급과 서열매기기 등을 만든다. 20세기는 분명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남을 억누르고 지배했던 남성의 세기였다. 남성의 시대가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는 이들은 배려와 조화의 여성성이 21세기를 이끌어갈 것으로 내다본다. 이러한 여성성은 여성만이 지닌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의 가슴에 들어있다. 다만 남성들은 그것을 억압해 왔을 뿐이다. 이제는 남성 안의 여성성을, 최후의 식민지를 풀어줄 때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를 딴지를 걸며 지나친 여성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참 한쪽 면만을 바라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


  ‘지나친 여성화’를 문제시하는 논리는 옹색하기 짝이 없다. 우선 나는 그냥 ‘여성화’와 ‘지나친 여성화’ 사이의 경계가 어디인지, 여성화가 지나친 나머지 실제 어떤 좋지 못한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이든 중용과 균형이 좋다고들 하니까 남녀가 반반씩 섞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치자. 그러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는 거의 모두 ‘지나친 남성화’가 나타나는데 거기에는 문제가 없는가.
(유시민, [WHY NOT?], 330, 331쪽)



  모든 것이 남성중심적인 세상에서 남성들에게 아니마는 사라진 지 오래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남기에 거추장스러운 것이니까. 온화하고, 정서적이고, 따뜻한 여성적인 영혼이 사라진 세상에 '냉정하고, 거칠고, 공격적인 남성적인 합리주의'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자본만능주의, 각종 전쟁, 환경파괴를 낳은 것은 아닌지 조용히 되물어봐야 한다.


  인격의 성숙을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라는 사회적 역할에 집착하기보다 내면의 인격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 이론의 핵심이다. 남자는 남자다움을 배우는 동시에 이에 맹목적으로 집착하지 말고 내면의 여성적 감성을 키워 나가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움을 배우더라도 내면의 로고스(Logos), 곧 판단하는 힘과 지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남성은 보다 깊은 공감능력과 안정된 정서를 지닌 존재로, 여성은 막무가내로 따지는 것이 아닌 지혜로운 여성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우리는 고정적이고 획일화된 아름다움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양성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좀 더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며, 무엇보다도 자유로울 수 있다. 더 이상 이 땅에 여자라는, 남자라는 이유로 고통받는 이들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원래 인간은 양성이 결합되어 있는 양성체였다가 신의 노여움으로 두 부분으로 나눠어져서 서로를 찾게 되었다는 신화가 문득 떠오른다.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여성과 남성 사이의 문제는 인간의 영원한 테마일 것이다. 무의식 속의 여성성과 남성성은 우리 모두에게 자신에 대한 끝없는 반성의 출발점이다. 다른 성에 투사된 내 무의식 속의 여성성이나 남성성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와 의식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융이 말했던 한 개인이 온전한 자기에 이르는 과정을 ‘개성화 과정’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6(^.^)9
Posted by 익구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김동률이다. 나는 그가 전람회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고, 전람회가 해체된 지 6개월 뒤에야 전람회와 김동률의 존재를 알게된 꽤나 뒤늦은 팬이었다. 중학교 2학년 9월에 라디오를 처음 들었을 때 케이비에스 에프엠 김동률의 인기가요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던 것이 인연이 되었는데, 이마저도 9월말쯤에 디제이를 그만두는 바람에 디제이로서의 그를 한달도 채 즐기지 못했다. 참 이래저래 뒷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적과의 프로젝트 앨범 ‘카니발’이 곧 발매되었고, 그의 솔로 앨범도 어느덧 3집까지 나왔다. (4집이 조금 늦는 듯해서 안달이 난다^^;)


예체능에는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관심이 없고, 잘하지도 못한다고 입에 달고 사는 나이지만... 김동률은 여느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 사람의 팬이 된다는 보편적인 감정을 나도 느껴볼 수 있게 해준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늘 김동률을 동률公이라고 나름대로 높여 부른다. 그런데 참으로 무심한 팬은 오늘에서야 그의 누리집(http://www.kimdongryul.com)을 방문했다. 그의 에세이 몇 편을 읽으며 무척 가슴이 푸근해진다. 전람회 2집에 있는 10년의 약속이라는 곡을 참 좋아하는데 그 곡에 대한 에세이가 있었다.


[10년의 약속]

모두들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전람회 2집의 '10년의 약속'이라는 곡은 동욱이와 나와의 얘기다. 며칠전 어떤 분이 요즘에 차에서 그 노래를 꽂아놓고 듣는다는 얘기를 듣고 문득 계산을 해보니 노래속의 10년뒤가 바로 2003년 올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막연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설레임으로 그려봐도 뿌옇기만 하던 그 '10년뒤'가 어느샌가 슬쩍 와버렸다.


오늘은 동욱군의 신혼집을 방문하였다.
결혼식 이후로 서로 바뻐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짬이 났다. 동욱이는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기에 어차피 잠시 머무는 집이라서 신혼집같은 아기자기함이나 거창한 집들이같은 이벤트는 없었지만 10년 전부터 함께 봐왔던 두사람이 자기들의 공간에서 함께 나를 접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정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고3때 처음 동욱이가 여자친구라며 소개시켜주던 일, 대학가요제 예선때 셋이 나란히 주머니 난로를 손에 넣고 들뜬 마음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건던일, 셋이서 동욱이 방에 꾸겨앉아서 같이 노래부르던 일, 함께 스키장에 놀러갔던 일등등... 정말 서로들의 얼굴과 말투에선 변한게 거의 없는 듯한데 우리를 둘려싼 환경만이 10년의 흐름을 증명해주듯 싹 바뀌어 있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왠지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약간은 흐뭇하기도 하고...


동욱!
넌 나의 너무 자랑스러운 친구인데, 넌 내가 그럴까?
아까 했던 은희의 말이 자꾸 머리속에 맴도네.
"동률아 그럼 '그다음 10년'이란 노래를 써봐!'


다음 10년에도 그 다음 10년에도
누구보다 자랑스런
너의 친구로....
멋지게...



전람회시절 멤버로 활동했던 서동욱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세월의 무게를 실감한다. 서동욱과 김동률의 우정을 실감할 기회는 없었지만... 언뜻언뜻 느껴지는 그들의 우정의 끈끈함과 뜨거움이 늘 부럽다. 10년의 약속은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후 두 친구가 10년후에 멋진 모습으로 만나자는 내용의 노래인데, 나도 이 노래를 따라서 고등학교 졸업 전후해서 10년의 약속 비슷한 것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 당시의 어수선함과 나의 게으름으로 그 좋은 시기를 놓쳐버린 것을 가끔 생각해도 영 아쉬운 일이다.^^; 뭐 지금이라도 10년의 약속 할 벗이 있다면 조금 뒷북이기는 하지만 기꺼이 받아들이리...^^


그의 또 다른 에세이가 나에게 좋은 경고의 메시지가 되어 울린다.


[2003년 비오는 신촌]

대학동창들을 만났다.
일주일 뒤에 결혼하는 친구의 총각파티.
신촌 한구석 어느 곱창집에서 소주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10년이란 세월이 참 우습다.
언제나 그렇지만 옛날얘기들 욹어먹기는 참 재미나다.
만날때마다 했던 얘기 또하구 했던 얘기 또하구.
과거 지향적 천성이긴 하지만 갑자기 감당할수 없을만큼의 무게로 그리움이 밀려온다.


휙 둘러보니 이녀석들은 얘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만 주위 다른 테이블 사람들이 확 어려보일뿐.


곱창살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문득 튀어나올뻔한 말.
'앞으로 10년뒤엔 우린 또 어떤 모습일까'


나도 모르게 그냥 꾹 삼겨버린다.
이렇게 또 훌쩍 와버릴까봐 무서워서.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적당히 무르익으면, 나도 이 이야기를 꼭 나눠보고 싶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우린 또 어떤 모습일까?”

뭐 아마 그 물음에 우물쭈물 얼버무릴 것이 확실한 내 자신을 돌아보며 그 물음을 감히 던지지 못하겠지만... 나도 무섭다. 세월이 훌쩍 지나가서 내 앞에 무시무시한 미소를 짓고 있을까봐.


아직은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도, 그 때 그 때 맞춰가며 살아가도 그럭저럭 넘어가겠지만, 이제는 과거도 돌아볼 줄 알고, 현재를 음미할 줄 알며,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인생, 그런 우정을 꾸려나갈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 때가 머지 않았다. 6(^.^)9


덧붙이며 - 동률공 3집을 오랜만에 들으며 감상에 푸욱 적셔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무심한 나의 고질병을 다시금 반성하며, 남의 것, 얻지 못한 것에 침흘리기보다 내 것, 이미 있는 것에 충실하고 아낄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
Posted by 익구
:
고3 수험시절 면접과 논술을 공부한답시고 토론 프로그램을 메모해가면서 보던 것과는 달리... 요즘 들어 토론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하나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소모적인 논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분명한 목적 의식(?)이 상실된 까닭이 크겠지만... 그런데 8월 31일 일요일 밤에 있었던 케이비에스 2TV의 ‘100인 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서는 호주제 폐지 논란에 대한 토론은 최근 본 토론 중에서 가장 뜨거웠다. 그만큼 이 문제가 우리 사회의 큰 화두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뭐 대개의 토론은 양측의 입장이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이지만... 호주제는 특히 더하다. 호주제 폐지론자들은 현행 호주제는 이 땅의 부계혈통주의와 남성중심적 사회를 존속시키며 여성을 억압하는 반인권적인 제도라고 열을 내고... 호주제 폐지반대론자들은 유구한 전통 타령을 하며 서구의 개인주의의 물결에 맞설 방파제라고 역설한다. (지금까지 본 호주제 유지론자의 입장 중에 압권은 호주제 폐지가 공산주의 여성 동등권 이념투쟁의 연장이라며, 공산화의 일환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별걸 다 빨간 색을 칠한다...^^;)


호주제 폐지는 호주의 개념을 없애는 것과 더불어 자녀의 성과 본을 어머니의 것으로도 따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가지고 시비 거는 이들이 많다.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을 비아냥거리고, 성씨 빼고 이름만 쓰는 사람들을 개만도 못한 놈들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성씨 없던 사람들이 성씨와 족보를 가지게 되면서 이왕이면 명문 세도가문의 것을 써서 명문 세도가문인 척 하려고 했다는 것은 거의 진실일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씨 왕조의 후손이니 김수로왕의 후손이니 하는 말을 나누며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한국적 정서라고 둘러대기에는 영 마뜩지 않다.


1989년 민법개정으로 호주의 권리와 의무가 대폭 축소되어 현행 호주제는 사실상 관념적인 제도로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허울뿐인 제도가 미풍양속이고 우리 전통문화의 대들보라고 주장할 이유가 있는지 두 번 생각해도 아리송하다. 특히 호주제 없으면 개랑 다를 바 없어진다고 핏발 세우는 소위 유림들은 뭐하는 이들인가. 진정한 보수는 바꿔야 할 것은 기꺼이 고치면서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 상식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변화를 모른다. 이들에게 역사를 더 공부하길 권한다. 조선이 누구 때문에 어쩌다가 망했는지를... 다행인 것은 이들이 더 이상 이 땅의 권력을 넘볼 수 없을 만큼 쇠락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뜻을 이어받을 후세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데 그네들은 위기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그건 다 자업자득, 인과응보이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마시라.^^


권해효 : 60년에 호적법이 생긴 이후에 문제없이 쓰였다는데 사실은 59년도부터 가정법을 개정하기 위해서 많은 여성단체가 50년 세월을 싸워왔습니다. 사실은요. 잘 아시잖아요., 70년대도 있었고, 90년도에 민법 개정도 있었구요. 80년대도 있었구요. 59년부터 있었다구요. 문제가 있다고 제기를 해왔단 말이에요. 무시하고 있었죠. 이제까지요. 사실 무시하고 있었죠.



배우 권해효의 부드러운 말이 무척 호소력 있게 들린다. 그렇다. 지금까지 무시해왔다. 남성의 울타리 안에서의 양성평등을 용인하던 이들이 그 울타리를 넘어서려는 이들에게 드디어 삿대질을 하며 울타리를 넘지 못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 결국 울타리를 없애는 것이 가장 빨리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울타리를 낮춘다거나 쪽문을 내는 정도에서 타협해봤자 남는 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논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고은광순 운영위원 고은광순과 배우 윤문식의 설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시 무지는 위험하다.^^;


고은광순 : 네. 호주제를 폐지했을 경우에 발생할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그거 검증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을 것을 왜 걱정합니까. 지금 현재 있기 때문에 피해가 생기고 고통스러운 건 충분히 검증되어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나온 책에도 보면 얼마나 가슴아픈 사연들이 많은지 몰라요. 줄줄이 많이 있어요. 이건 틀림없이 지금 현재 발생하고 검증된 사실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정도 아니고 개선도 아니고 폐지가 최선이라고 학자들도 다 발표를 했어요. 그래서 용역 줘서 이런 거 저런 거 다 살펴보니까 개인별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겠다.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개인별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겠다고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게 오랜 연구 끝에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있는 것을 없는 척하고 발생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검증되지 않았으니까 가지 말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가혹한 얘기입니다. 그리고 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요. 노예 해방이 되야 되는 건 당연한데 노예 해방되는 데든 돈이 많이 드니까 하지 말자라고 하는 말은 백인주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비인간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런 식의 말은 절반의 인구에 해당하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굉장히 폭력적인 발언입니다.


윤문식 :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오시면요. 지금 그걸 그 법을 관철시키시려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씀하지 마시고, 저같이 무식한 놈들을 설득시켜야 되는 겁니다. 지금 수많은 사례들 수집했을 때 물론 나보다 얼마나 피해가 있다는 걸 많이 연구하셨기 때문에 그런걸 주장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 호주제를 폐지했을 때 그보다 더 많은 피해가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 이거죠. 그래서 그런걸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얘기를 하는 거 에요. 그리고 지금까지 잘 진행해왔던걸 지금 사례들이 가슴아픈 사례들이 많은 겁니다. 그 사례에 많은 사람들이 물론 민주주의 국가는 다수결이고 물론 후세 인간도 존중해야 되겠지만, 그 몇몇의 소수 인원을 위해서 전통적인 문화의 근간을 흔들어놓는다는 것은 난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거에요.


고은광순 : 소수가 아니구요. 지금 이혼율이 세계 2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윤문식 : 그럼 호주제 폐지한다고 이혼 안합니까? 이혼할 여자는 이래도 저래도 해요.


고은광순 : 그 이혼한 사람들이 다시 재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현재 이런 문제를 성씨문제라든가 호주제 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이미 깨졌지만 사실은 실패한 결혼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고 우리는 오히려 그들의 결단을 박수를 쳐줘야 될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시 제2의 삶을 살 때 그 사람들에게 또 다시 굴레를 법이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또 다시 굴레를 주면 안 되는 거죠.



윤문식에게서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의 무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자기 아내의 고통은 외면하면서도 후세를 걱정하고, 대한민국의 전통을 사수하는데는 열과 성을 다하는 모순... 한총련 수배자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면서, 휴전선 너머의 북한의 인권을 걱정하는 오바질도 다 매한가지다. 유시민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으며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실현하는 이들’이 제발 좀 더 줄어들길 바란다.


<맹자>의 양 혜왕 편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하루는 왕이 궁궐에 있는데 하인이 소를 데리고 지나 가더란다. 봤더니 소가 눈이 슬프거든. 우는 거 같고. 그래서 "어디에 데려가느냐" 했더니 "제사지내러 잡으러 갑니다" 그러더란다. 그래 소를 다시 봤더니 우는 거 같거든. 불쌍하잖아. 그래서 소를 잡지 말라고 그랬다. 그랬더니 하인이 "그럼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뭘 잡을까요" 그러자 왕이 하는 말이 양을 잡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가 퍼져 나가니까 온 백성들이 비웃었다. 멍청한 왕이라고. 소는 불쌍하고 양은 안 불쌍하냐는 얘기다. 그런데 맹자가 그에 대해 뭐라고 했냐면,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은 어진 군주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에 조차도 연민의 정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면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백성에 대해서 연민의 정을 가질 리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게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을 하고, 자기 주변에서 직관적으로 정서적으로 다가오는 연민의 문제나 이런 것에 반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 뉴스툰 인터뷰 中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그리 어려운 논거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 그저 담담히 상식에 호소하자. 세상의 절반이 희생되어 이룩하는 그 어떤 것도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차분히 주장하자. 윤문식과 비슷한 무지가 지배하는 세상을 바꾸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짜증이 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설득해야 할 수밖에. 그래도 승기를 슬슬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위안 삼을 뿐이다. 끝으로 동국대 영화영상학부 유지나 교수의 다음과 같은 확신에 나도 동감한다.


유지나 : 개인의 행복 추구권으로써 가족이 가치 있을 때 있는 것이고, 어떤 개인 특히 한 성이 다른 성을 억압하는 가족이라면 항상 깨져나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변하고 좋은 전통을 만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인으로써 이 한반도에서 인간존중의 전통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확신하고 자료 있습니다. 왜 몇십년 전통만 전통이고, 백년 전 전통은 아닙니까? 인간 존중의 전통을 살려서 남녀성이 같이 양성평등하는 가족제도 만들기 위해서 호주제도 없애도 됩니다. 확신합니다. 여러분 잘 생각하시면 아실 거에요. 처음으로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은 옳은 일입니다. 저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남녀차별보다는 양성평등이 더 이득이 된다는 것이 뭇사람들의 가슴에 알알이 박히기까지는 엄청난 비용을 지출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양성평등에 대한 신념이 하나하나 늘어갈 때 투자한 것의 몇 곱절 되는 거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별로 리스크가 높은 투자도 아니니 더 많은 개미 투자자들이 몰려들기를 바란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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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응원단의 슬픈 코미디를 기억하자

대구 여름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들어간 환영 현수막을 걷어 가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 현수막 한쪽에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는 사진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응원단원들은 현수막을 떼어내면서 장군님의 사진을 어떻게 비에 젖게 할 수 있느냐, 장군님 사진을 가로수에 낮게 걸어놓을 수 있느냐며 항의했다고 한다. 또 일부는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번 해프닝은 무척이나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사담 후세인이 감동 먹고, 조지 부시가 침을 흘릴 폭압적 전체주의 사회의 극치를 보는 듯했다. 이런 이들과 통일을 논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껴지기까지 하다.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하고, 상대주의를 들먹이고 싶어도 보편적 상식의 한계를 훌쩍 넘어버린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할말을 잃게 한다. 인간의 내면적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섬뜩한 광경 앞에서 역설적으로 자유의 소중함과 개인의 존엄성이 부각되고 있다.


또한 불만인 것은 북한의 전략개념의 부재이다. 북한 응원단의 돌출행동은 결국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북한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 남한 국민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는 최근의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갖은 비판 속에서도 여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햇볕정책 추진세력들에게도 큰 부담을 지우게 하고 있다. 퍼주기라고 구박받으면서도 대북 경제지원을 지속하고, 욕 먹어가면서 자기네들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자꾸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북한의 태도는 기본적인 상도덕을 망각한 것이다.


북한 응원단의 이번 행동은 극우 단체들의 짜증나는 반북시위만큼이나 기분 나쁘다. 일부 단체의 반북시위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며 우리 정부에게 무리한 수준의 사과를 요구하고, 북한 선수단을 환영하고 응원하는 현수막인데도 트집을 잡고 격한 행동을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거의 찾기 힘든 독선적이고 자기본위의 행동이다. 남을 존중할 줄 모르면서 자기들은 대우해달라고 핵장난으로 협박하는 북한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북한은 자신들이 짝사랑을 계속 받을 만큼 그리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콧등이 시리도록 슬픈 코미디다. 북한응원단의 이 눈물겨운 충성극에 평양의 김정일 일당들이 흐뭇해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참담하기까지 하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간다는 것을 믿지만 그 과정이 아직은 요원하고, 그 사이에 희생되는 북한 인민, 남한 국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또한 북한을 저주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을 닮은 전체주의, 군사주의 사회를 꿈꾸는 극우세력의 궐기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씁쓸함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평화통일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에 우리의 숙명이다.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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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 4일 간의 일정으로 가평 꽃동네에 다녀왔다.
노체 리안드리 자애병원이라는 곳에서 일을 거들게 되었는데
2층에 거동을 못하시는 중환자 16분을 모셔둔 호스피스 병동에 배정 받았다.
(그 곳에서는 ‘환자’라는 말 대신 ‘가족’이라는 정겨운 말을 썼다)
앙상한 가족들의 이따금 들리는 마른기침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리는 곳이었다.
식사 수발, 설거지와 청소, 세탁물 나르기, 똥 기저귀 빨래, 세안하기, 체위 변경...
이것저것 하나하나 요령을 배워가며 서투른 손을 놀렸다.
대인 접촉을 해야하는 가족들 식사 수발과 세안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가족이 거의 없어서 말벗이 되어 드리지 못했지만
아마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가족 앞에서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낯가림하는 무심한 성격이 이럴 때 더욱 드러나 버리는 것이 부끄럽다.


우연찮게 Night라고 지칭되는 야근도 해보게 되었는데
아침 식사 전까지 체위변경을 7번 하는 것이었다.
체위변경을 하는 이유는 24시간 누워지내는 가족이 병상에 닿는 곳에
피부가 짓물러서 생기는 부스럼인 욕창(褥瘡)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낮에는 1시간에 한 번, 밤에는 2시간에 한 번
몸을 좌우나 가운데로 돌아 뉘여 드리는 것을 거르지 않는다.
힘들고 지칠 때는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라는...
중 3 도덕선생님의 말씀이 체위변경 끝나고 쉬는 중에 떠올랐다.
이 흔하디 흔한 말이 생각나버린 것은...
도덕선생님께서 이어서 하신 말씀이 더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들의 앙상함 앞에서 나는 내 안락함과 내가 속한 계급을 감사해야 했다.


조금 더우면 땀이 나고 발이 좀 아프면 통증이 찾아드는 것이 어김이 없는
몸은 참 정직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결국 몸을 비루하다가 욕하지만, 결국 몸이 ‘시작’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작은 입병만 생겨도 세상만사가 괴로운데
하물며 침상 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들의 고통 앞에서
몸의 비루함을 논하던 매서운 눈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야윈 가슴을 채우겠다며 잡념과 잡글에 파묻히는 호들갑을 떨 때
가족들은 당장에 야윈 몸을 걱정해야 했다. 이 간극이란...


‘형제님’이라고 살포시 불러주시던 어느 수녀님의 따스함이 여간 식지 않는다.
16인의 가족들의 건강과 일하시는 수녀님을 비롯한 형제, 자매님들 모두 평안하시길...
숨막히던 성찰의 공간에서 도망치듯 일상으로 복귀한 나는...
이 때의 기억들일랑 적당히 잊어버리고, 내 불평을 주절거리기 시작하겠지.
조금 덜 잊어버리고, 조금 덜 주절거린다면 그걸로 감지덕지하면서...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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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할의 무임승차

사회 2003. 8. 26. 03:44 |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에 올려진 8월 12일날 있은 지승호의 김규항 인터뷰를 재미나게 읽다가 어느 한 대목에서 한 방 강하게 먹었다. 얼마 전 있었던 한총련 미군부대 진입 시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대목이다. 나는 그 뉴스를 접하고 “몸 좀 사리고 있지”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들의 치열한 정신이 보기에 이 땅의 보수의 찌든 풍토가 좀 마음에 안 들더라도, 굽히고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가만히 있어 주는 걸로 합법화를 앞당기는 전략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인터뷰 몇 토막을 긁어보자면...


지 - 한총련의 미군부대 진입 시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다음날 거의 모든 언론들이 한총련을 비난하는 사설을 싣기도 했는데요.


김 = 그게 한총련에서 조직적으로 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찌됐든 저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한겨레를 얼핏 보니까 논설주간인가 하는 사람이 '옛날에 군사정권 시절 같으면 국민들이 그런 폭력적인 시위를 용인을 했지만...'이라고 썼던데 그거 다 개소리거든요. 그때 무슨 국민들이 용인했습니까. 그때도 세상을 몰라서 하는 짓이라고, 빨갱이 새끼들 다 잡아들여야 된다고 욕했습니다. 국민들은 늘 그랬습니다. 걸핏하면 그때 국민들이 떨리는 심정으로 대학생들의 시위를 지지했던 것처럼 말하는데,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다들 제 식구 챙기면서 알뜰하게 살았죠. 제 얘기 동의하시죠?


지 - 예. 동의합니다.(웃음)


김 = 역사라는 것은 항상 비난받고 오해받는 소수가 뚫고 나가서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무임승차하는 식으로 발전합니다. 차라리 '난 한총련 놈들이 꼴 보기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규항의 말에 따르면 나의 “몸 좀 사리고 있지”라는 생각은 나름대로 그들을 위한 생각이라고 여겼었는데 이건 결국 한총련 놈들이 싫다를 완곡하게 돌려서 말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비록 서푼어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나의 자유주의적 신념을 바탕으로 해서 한총련 합법화를 꾸준히 지지해왔다. 그게 아니라면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에 근거해서라도 지지할 것이다. 이는 자유주의를 들먹이는 거창한 것이 아닌,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 그렇지만 당연한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오로지 당위만 부여잡으려는 편협한 사고는 위험하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무심결에 내뱉은 “몸 좀 사리고 있지”는 내가 비굴한 현실주의자임을 증명한다고 스스로를 공격해본다. 나는 이상주의자를 자처하지만 나의 이상은 현실과 타협해서 제 모습을 거의 다 깎아먹기 일쑤다. 고심 끝에 ‘이상실현주의자’라는 억지 수식어구를 만들기까지 했다. 그릇된 것을 현실을 핑계 대며 그럭저럭 괜찮은 것으로 변신시키는 잔머리가 나의 이상실현주의의 요체인지도 모른다. 비난받고 오해받는 두려운 길을 가기보다는 알콩달콩 적당히 손잡아가며 살아가는 전략을 앞으로도 별 문제의식 없이 구사할 것이다.


그렇다. 김규항의 말대로 소수의 희생 끝에 역사는 진보해왔다고 볼 수 있다. 역사의 진보는 재화의 유형 중에서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 공공재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진다고 한다.


첫 번째 특성은 소비에서의 비경합성(non-rivalry)인데. 한 사람이 그것을 소비한다 해서 다른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두 번째 특성은 배제불가능성(non-excludability)으로서 대가를 치르지 않는 사람이라도 소비에서 배제할 수 없다는 성격이다.
- 이준구, 이창용, [경제학원론] 제2판 273쪽, (법문사, 2001)


경합성은 한 사람이 재화를 소비하면 다른 사람의 소비가 제한 받는 속성이다. 즉, 비경합성은 한 사람이 공공재 소비를 하는 데 드는 비용인 한계비용이 0이라는 말이다. 배제성은 다른 사람들이 재화를 소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즉, 배제불가능성이란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도 공공재를 사용하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보가 비경합적인 것은 가령 양성평등의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할 때, 100만 명이 그 문화의 혜택을 누리는 것에서 1000만 명이 그 문화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데 드는 비용이 0에 가깝다는 것이다. (물론 이상적인 경우 한계비용이 0이겠지만, 아마 현실 상에서는 0보다는 클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한 배제불가능한 이유는 가령 일단 민주화가 진전된 사회에서 어떤 이는 민주주의를 구현하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군사정권 시절의 폭압적 의사결정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나 자발적으로 그 때 그 시절이 좋았다고 외치는 이들은 논외로 하자^^;)


공공재 문제 앞에서 역사라는 거대한 ‘시장’은 곧잘 실패를 한다. 그러나 그 실패를 만회하는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럴수록 평가가 철저히 이루어져야하고, 보상과 문책이 정확하게 이루어져서 소수의 희생이 사후에나마 대접받고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한다. 혹자는 그럼 희생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성에 자신의 내맡긴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 햇빛이 비칠 때 투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짙은 안개가 깔리거나 거센 폭우가 들이칠 때 투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진보는 참다운 진보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누군가는 계속 희생하고, 누군가는 희생의 열매를 향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상과 문책, 기록과 평가에 대한 인식이 투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희생한 이들에게 희생에 대해 어느 정도 보상하고, 희생시킨 놈들에게는 어느 정도 그 악행에 대한 죄 값을 짐 지우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선악의 개념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분명한 악으로서의 조선일보 같은 존재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착한 이들과 나쁜 놈들을 가려내기 여간 힘들지 않은 세상이지만, 시장의 상도덕이 바로잡힌다면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김규항의 사관이 조금은 엘리트주의 냄새가 난다고 핀잔하기보다는, 소수의 희생을 넙죽 받아먹는 대다수 무임승차하는 이들에 대한 질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기록과 평가를 일상화하고, 보상과 문책을 공정하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팔할은 무임승차하는 나의 남은 이할의 양심이다. 6(^.^)9


덧붙이며...

한총련 합법화 논의가 처음 불거져 나왔을 때 한총련이 불법의 그늘에서 벗어난다면, 다양한 학생운동 흐름들과 진검승부를 펼치지 않을까 하는 제멋대로의 상상을 해봤다. 비운동권을 표방하는 나로서는 거대한 경쟁자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거 완전히 김칫국 몇 사발은 들이킨 꼴이다.^^;


그러나 이런 낭만적인 상상과는 달리 이미 운동권의 대세를 장악한 것으로 보이는 한총련이 합법화된다면 그야말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운동통일’을 꾀할 것 같다는 두려운 상상이다. 뭐 통일이라고 해봤자 그네들끼리 감투 주고받고, 그들만의 언어로 유희하며 학생사회의 대장질하는 쾌감을 공유하는 철저한 그들만의 잔치겠지만 말이다. 학생회, 동아리, 학회 등의 대학사회의 여러 조직들이 하나같이 맥을 못 추는 판에 그네들이 독점을 하면 얼마나 하고, 통일해서 잔치 벌여봤자 얼마나 벌이겠냐는 생각을 곧바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한총련 합법화 불길에 찬물을 끼얹는 일련의 사건 속에서도 변함 없이 한총련을 위시한 불법의 눈초리를 받는 운동 단체들의 합법화를 지지한다. 앞으로 합법화 된 그들과 대립각을 세울 일이 있다면 너무나 부족한 나로서는 불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무지한 자의 편에 서줄 만큼 여유롭지는 않기에... 나의 무식을 손가락질 할 뿐 그들의 유식을 탓할 수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식과 무식의 경계는 늘 아슬아슬하다는 것이다.^^
Posted by 익구
:
--- 여행이 끝난지 꼭 한 달만에 탈고하고 말았네요. 지루한 이야기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꾸벅~


제주도의 직사광선은 무척 따가워 살이 타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오죽하면 햇볕 때문에 피부가 고운 제주도 여자가 없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었겠는가. 하염없이 나를 태우는 태양을 피해 달려간 천지연(天地淵) 폭포에서 간신히 심신을 식힐 수 있었다. 흐릿한 날씨의 천제연 폭포와는 달리 화창한 날씨라 눈이 부셨다. 하늘과 땅이 만나서 이룬 연못이라는 뜻의 천지연 폭포는 천제연과는 달리 평평한 산책로를 즐길 수 있었다. 짙은 녹색 연못을 바라보니 그간의 시름이 반 토막 나버리는 듯했다. 영국의 시인 콜리지는 “자연에는 우울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했다. 환경오염이니 뭐니 해서 눈살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많은 요즘에야 우울함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겠지만, 아직 때묻지 않아서 우울하지 않다는 소극적 의미를 너머 기쁘고 안락하게 해주는 이런 곳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에 그나마 어렵사리 균형을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일 게다.



천지연 폭포의 서늘한 기운이 채 가실 새라 조금 서둘러 간 곳이 바로 정방 폭포이다. 정방 폭포는 천지연, 천제연과 더불어 제주도 3대 폭포 중에 하나로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로 그 명성이 높다. 제주도의 절경을 일컫는 영주십경 중에 유일하게 가본 곳이 바로 정방하폭(正房夏瀑)으로서 이는 정방폭포를 여름에 구경하는 것을 말한다. 정확히는 멀리서 구경하는 것을 말하지만 그랬다면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테니 근경(近景)이 오히려 더 좋았다고나 할까. 바다로 쉼 없이 출렁이는 물결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사방에서 물방울들이 날아왔다. 결국 근처 바위에 등지고 앉아 물방울들을 맞았다. 잠시 걸터앉았는데도 다리에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들 이곳이 마냥 좋았는지 떠날 생각을 안하고 물방울에 흠뻑 젖어드는 그 기분에 심취해 있었다. 심지어는 이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자는 농담까지 나왔다. (결국 무겁게 메고 다닌 텐트는 한 번도 안 쓰고 고스란히 반납했다^^;) 여로에 지친 퀭한 눈망울과 세파에 찌든 야윈 가슴을 꽉꽉 채워주는 정방 폭포의 효험은 엄청났다. 몇 번이고 그만 두려고 했던 제주도 완주에 대한 용기가 충천되어 남은 제주도의 절반은 아무 군소리 없이 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근원적이고 생명에 가까운 존재인가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여행기간 내내 워터홀릭을 자처해도 부끄럽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90% 어른의 70%가 물이며 체내에서 물이 5%만 빠져나가도 혼수상태가 된다고 한다. 참으로 고맙고 귀한 물에 좀 중독되기로서니 무에 그리 대수이겠는가.



물 하니까 갑자기 철학의 아버지라는 탈레스가 생각났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는 그의 유명한 명제보다 더욱 빛나는 것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물었던 그 물음 자체다. 생각해보기도 전에 일단 믿고 보라는 신화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절에 당당히 의심하며 물음을 던지는 저항의 상징으로서 탈레스는 철학을 열었다는 영예를 얻는다. 나를 옭아매는 이런저런 신화들에 나는 맞설 수 있을까. 신화에 맞서는 무기로서의 생각은 힘이 세지만 그 힘은 여간해서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에 내 고민이 있다. 또 ‘믿음’ 이전에 ‘생각’이 존재한다는 나의 개똥철학조차 결국 하나의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외치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었다고 주워 들었는데(방법적 회의라고 지칭되는) 나는 고작 “생각이 먼저인 것이 확실하겠지...”라며 말꼬리 흐리며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생각은 힘이 세다’라는 무시무시한 선전문구(?)를 남용하는 나로서는 이 부분에 대한 나의 견해가 좀 더 정교해졌으면 좋겠다.



또 물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역시나 노자의 上善若水(상선약수)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라고 외친 이유는 무엇일까? 노자는 뒤를 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사람들이 있기 싫어하는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일부를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기는 쉽다.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해치우는 그들만의 잔치에서 무슨 다툼이 일어나겠는가. (뭐 잔치가 점점 커지면 밥그릇싸움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전체를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참 어렵다. 이걸 윈윈(win-win) 전략쯤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다음 구절에서 무너진다.



남들이 싫어하는 곳에 기꺼이 머무른다는 것은 비교적 쉽게 다가온다. 그것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속성에서 유추할 수 있다. 노자는 또 이런 말도 했다.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 즉, 공을 쌓아도 그 공을 주장해서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상선약수에는 윈윈전략보다는 희생정신이 내포되어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상선약수를 즐겨 쓰는 나는 노자와 입장 차이를 보인다. 공을 쌓았다면 마땅히 보상을 주는 인센티브의 원칙은 상도덕의 근간이다. 이걸 확립하는 것이 희생정신을 독려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여를 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에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손해보니까 착한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지 손해도 안보고, 희생도 안 치르고 무슨 선인이냐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여기서 나의 꿈같은 소리가 펼쳐지고 만다.^^;



나는 궁극적으로 착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 진보하는 사회, 착한 사람들의 손해를 먹고 지탱되는 사회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제 몫 챙기기로도 꾸려지는 사회가 그것이다. 여기서 제 몫 챙기기란 남의 자유와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한에서 내 소신껏 살면서 내 이익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보통선(普通善)’이라고 지칭하는 이런 행위가 전통적 의미의 ‘선량함’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모두가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착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는 개인주의가 상도덕을 지켜가며 내 것을 쟁취하는 것이라면, 내가 믿는 자유주의가 남의 자유를 훼손해서 나의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면... 보통선이라는 나의 이데아(Idea)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이 유토피아의 실현은 나조차 믿기 어렵다. 어쩌면 이 개소리는 메마른 사회가 착한 사람들의 눈물로 적셔지는 것이 못내 불편한 ‘보통 사람’의 투정인지도 모른다.



정방폭포의 묘한 힘에 이끌려 잡념들의 보따리가 방정맞게 풀어졌지만 다시 페달을 돌려보기로 하자. 하이킹 본부에서 여자들이 예쁘다며 추천해준 표선면에서 묵어가기는 힘들다고 생각한 우리는 남원읍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고 남원읍 가기 전에 있는 신영영화박물관을 들렀다. (이 때 표선에 당도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던 친구가 있었다. 누구였더라...^^;) 영화 마니아들에게야 무척 흥미로울지 몰라도 피곤에 찌든 우리들로서는 비싼 표 값에 비해 볼 것이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의 의견이었다. 영화의 탄생과 발달상, 한국영화의 역사와 포스터, 각종 영화기자재가 약간은 눈요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쉴 곳이 필요해 2층에 있던 방송국 뉴스 스튜디오와 똑같이 제작한 곳에서 앵커 기분 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 갑자기 안내방송이 나왔다. 요지인즉슨, 그 자리에서 2000원으로 사진촬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내 멋쩍어져서 자리를 뜨면서 내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란 가슴 달래기 위해 도망치듯 나온 박물관 밖 바다를 바라보는 산책로는 제법 아담하고 푸근했다. 그런데도 박물관 입장료 6000원이 비싸다며 연신 투덜거리는 나를 보고, 올인 샌드위치 가격보다도 싼 박물관 표 값에 왜이리 궁상을 떨었던 것인지... (올인 샌드위치 관련은 2부 참조...^^)



남원읍에서 민박집 잡기가 여의치 않자 일단 허기진 배부터 달래러 들어간 곳은 어느 허름한 분식집이었다. 나는 순두부찌개를 시켜서 무척 맛나게 먹었는데, 투박한 시골음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세련되고 정갈한 도심지의 음식과 대조되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이 느낌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다음날 아침 겸 점심도 이 집에서 해결했다. 떳다 분식에서...^^) 분식집 할머니께 묵을 곳을 물었더니 근처의 모텔을 소개해주셨다. 모텔이 주는 그 미묘한 뜻빛깔의 부담감도 제쳐두고 찾아가 보니 5명이 묵는다니 꽤나 놀라는 눈치였다. 방의 절반을 차지한 거대한 2인용 침대를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침대 때문에 잠자리 마련이 조금 불편했지만 단잠을 자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넷째 날부터는 큰 오르막도 없었고 평평한 도로가 펼쳐져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영화박물관의 기억 때문이었는지 입장료 6000원이던 제주민속촌박물관을 생략하기로 하고, (안에 들어가서 한참 걸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환해산성에서 멈춰 쉬었다. 환해산성은 말 그대로 해안가를 따라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걸로 어떻게 외적을 막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어용이라기보다는 소원을 빌며 돌을 쌓는 기원용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참을 쉬고 있는데도 병승이가 도착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자전거 바퀴 바람이 빠지고 말은 것이다. 자전거 수리점까지는 까마득한데 자전거가 고장나는 바람에 크게 난감했다. 다행히 낚시하던 아저씨께 통사정해서 차를 얻어타기로 하고(병승이 말로는 단순한 낚시꾼이 아닌 밀렵꾼의 분위기가 짙었다고 한다), 우리는 병승이를 남겨두고 넷이서 자전거 수리점을 찾으러 향했다. 수리점은 금세 찾을 수 있었고 위치를 병승이에게 알린 뒤, 병승이를 만나기 전까지 시간을 때울 곳을 찾았다.



나는 그래도 가장 유명하다는 성산일출봉을 가자고 주장했지만, 드라마 올인의 세트장이 있다는 섭지코지로 가자는 친구들의 의견에 따랐다. 자연경관을 보러갈 때마다 “이런 건 지리책에 보면 다 있다고...”라며 문화유적 쪽을 보러가자고 주장했던 나로서는 역으로 당한 셈이었다. 성산 일출봉이야말로 지리책의 단골손님 아닌가.^^;(섭지코지에서 먼발치로 어렴풋이 보이는 광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한참을 구불구불 들어가고서야 도착한 섭지코지는 올인의 유명세가 가시지 않았던지 가장 관광객이 북적였다. 코지란 ‘곶’을 의미하는 제주도 사투리며, 섭지는 좁은 땅이라는 뜻이다. 섭지코지의 산을 오르며 노오란 유채꽃과 어울리는 목가적인 풍경이 물씬 풍기는 너른 초지가 마음을 편안케 했다. 섭지코지의 제일 높은 곳에 보이는 하얀 등대까지 가는 것을 가볍게 그만 두고,(여행기간 내내 오르막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한참을 바다를 바라봤다. 특히 용왕의 아들이 선녀에 반하여 선녀를 따라 하늘로 승천하려다 옥상황제의 노여움을 받고 바위가 됐다는 전설을 간직한 촛대 모양의 선돌 바위가 운치를 더했다. (이 바위가 외돌개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말을 듣고 외돌개 안 간 것을 잘 했다며 어찌나 기뻐했던지...^^;)



자전거를 수리한 병승이를 만나 서둘러 우도를 향했다. 성산항에서 배를 10분쯤 타니 우도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우도 8경 중에서 가망 유명한 서빈백사(西濱白沙)라고 불리는 산호사해수역장을 찾았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해수욕장이지만 쌀알 모양의 산호가루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의 정취는 일품이었다. 다공질의 현무암에 걸터앉아 파도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톡톡히 즐겼다. 다만 배가 끊기기 전에 우도를 나와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옥의 티라면 티였다. 30여분만에 우도를 빠져 나온 우리는 세화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자전거가 또 말썽을 부렸다. 알고 보니 스테이플러 심이 바퀴에 박혀 있던 것을 안 빼고 바퀴만 갈았던 것이다. 결국 병승이와 원혁이가 다시 성산으로 수리를 하기로 하고 병채, 세일, 나는 먼저 세화에서 민박을 잡아 두기로 했다. 세화 가는 길은 시원스레 뚫린 도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힘에 부쳤다. 결국 세일이와 병채를 한참 앞서 보내고 도로 한 가운데서 휴식을 취했다. 비도 조금 쏟아지면서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마냥 추욱 늘어져 시간을 보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무거운 다리를 놀렸다. 다행히 세화는 머지 않은 곳에 있었고 얼른 여장을 풀었다.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우리의 제주도 일주는 초콜릿이 되어버린 피부를 그 증거물로 남기려 하고 있었다. 감자를 사다가 썰어서 초콜릿을 녹여보려 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물론 이 날도 간식 잔치를 벌였음은 물론이다. 다음날 우리는 이제 출발지를 향해 달렸다. 다시 뜨거운 햇빛이 우리를 괴롭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멈출 수가 없었다. 무언가에 떠밀리는 힘이 느껴졌다. 지난 나흘 간 부지런히 밟아 온 페달의 관성이랄까. 비록 한결같이 느릿느릿한 속도로 꼴찌를 달렸지만 마음만은 쌩쌩 달렸다. 우리의 마지막을 축하하는 듯한 함덕 해수욕장의 옥빛 바다는 흥취를 돋구었다. 이대로 끝내기 못내 아쉬웠던지 국립 제주박물관 근처에서 와장창 넘어지고 말았다. 다음 날 목포로 향하는 배 안에서 원혁이의 의미심장한 말이 기억난다. “완전 만신창이가 되었구만...”^^; 조금 깊게 생채기가 났던지 다리에 힘 주는 게 따끔거리는 것이 마뜩잖았다. 결국 자전거에 내렸다가 올랐다가 하기를 수 차례 하면서 제주 시가지에 힘겹게 입성했다. 나 때문에 행군이 늦어진 것은 참으로 미안한 일이었다.^^;



자전거를 탔다 내렸다를 반복하다보니 또 저만치 뒤쳐져서 혼자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제주목 관아와 관덕정을 만나게 되었다. 경복궁을 대여섯 번 다녀 온 고궁 마니아로서 제주목 관아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나 때문에 많이 지체된 길이 죄스러워 그만 두고 힐끔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관덕정은 복잡한 제주시내에 외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관덕정은 활터라고 하는데 그 이름 예기(禮記)에 나오는 '사이관덕(射以觀德)'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활 쏘는 것으로 그 사람의 덕을 본다'라는 의미로, ‘시합이나 내기를 해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다'라는 뜻이다. 그 점에서 나는 점수를 별로 못할 것 같다. 내기나 시합, 뽑기 등에는 여간 소질이 없는 나는 아예 그것들을 피하기 때문이다. 관덕저의 편액(扁額)이 힘있는 필치로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명필로 이름을 날렸던 안평대군의 필치라고 한다. 그러나 관덕정에서 마냥 들뜨는 기분만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 까닭은 여기서 20세기 한국사 최대의 비극으로 손꼽히는 4.3 항쟁의 흔적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1947년 삼일절 날, 28주기 3.1 운동 기념식을 끝내고 해산하던 도민들을 향한 미군정의 총격으로 무고한 도민들이 살상되는 사건이 여기서 일어났다. 이 사건은 그 후 무차별 발포에 항의하는 전도적인 총파업으로 발전하고 이에 대한 미군정의 계속적인 탄압으로 급기야 다음해에 4.3 항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는 곳이다. 최소 10% 이상의 도민들이 살상  되었다고 추정되는데도 가해자가 없는 이 기막힌 사건은 제주도의 마지막 여정을 찜찜하게 했다. 얼마전 정부가 민간인 살상을 국가 차원에서 공식 인정했다고는 하나 무엇 하나 속 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는 것 같다. 하기사 현대사에 미스터리가 한 둘이 아니었지만은 앞으로 이 땅에 이런 일이 없으리라 확언할 수 있는 것도 그만큼 숱한 이들의 노고를 먹고 진보한 역사의 열매를 향유하는 뒷사람의 행복이다.



드디어 출발지의 제주 하이킹 본부에 도착했다. 이 때가 26일 오후 3시였고, 22일 오후 2시 반경에 출발해서 4박 5일간 달려온 쾌거였다. 아이슬란드 속담에 집에만 있는 아이는 어리석다고 했다. 이번 제주도 하이킹은 과연 나를 어리석음에서 구제해 주었을까? 아마도 나는 다시 게을러지고, 운동은 여전히 멀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여행의 추억은 값지게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도 거의 못타는 나를 데리고 다니느라 지루하게 기다렸을 친구들... 병승, 원혁, 세일, 병채... 모두들 미안했고 고마웠다. 친구들 덕분에 이런 제주도 완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친구들 아니었으면 내가 감히 이런 일을 꿈이나 꿔볼 수 있었겠는가...



제주시내의 민박집에서 느긋한 휴식을 즐긴 우리는 다음날 바다를 건너 일상으로 복귀했다. 다시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가도 제주도의 그 뜨거웠던 여름햇살과 온 몸을 적셨던 굵은 땀방울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인생만사 놓고 보면 하나하나 여행길이다. 그 여행길에서 함부로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내가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두렵다.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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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향한 릴레이

잡록 2003. 8. 13. 09:11 |
[행복을 향한 릴레이] - 서울외국어고등학교 교지 날애 기고문

  나는 잦은 우수(憂愁)의 유혹을 느낀다. 그럴 때면 내 불행을 지적인 방황으로 억지로 승화시켜 자기 합리화에 급급했다. 하지만 진정 지혜로운 이라면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고 자기 나름의 행복의 철학을 가지려 할 것이다. 행복의 물음은 절실한 실존의 물음이다. 젊은 날의 키에르케고르는 젊은 날 자신이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것을 찾지 못하여 한탄했다고 한다. 나는 조금만 탄식하고 행복이라는 가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인가?'
행복을 정의하는 데 어려운 점은 우리 모두가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너무 자명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정의조차 필요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각 개인은 타인과 다른(어느 정도 겹치겠지만) 고유의 행복을 향유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행복에 관해 보편적 정의를 내릴 수 없다고 믿었다. 이러한 논리는 다분히 유명론(唯名論)적이다. 유명론이란 행복이란 일반적인 이름의 단어가 존재하지만, 단순히 행복이 단 하나의 현실이나 인간 정신 안에서 일반적인 생각으로 정해 있다는 점은 부정한다. 이러한 논리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결함은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어떤 의미에서 각자의 행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러 행복이 있을지라도 그 안에는 공통된 어떤 것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는 단어로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이라면 행복의 이데아가 있다고 주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행복을 프랑스어로 '좋은 시간'이라는 뜻으로 'bonheur'이라고 한다. 행복은 좋은 것이고 인간은 좋은 것을 원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행복이란 수단적 선이 아닌 본래적 선이다. 본래적 가치란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행복해져야 한다는 물음을 던질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행복해져야 하는 이유를 '가족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위하여' 행복을 추구하는 이라면 그 '∼위하여' 행복을 유보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여긴다. 그런 이들이 이러한 것을 타인에게도 강요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행복의 추구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행복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다음 대화를 들어보자.

지금은, 아침 7시 한 서울외고 학생이 종종 걸음으로 버스를 타러 가고 있다.
"당신은 왜 이른 아침에 버스를 타러 가십니까?"
"학교에 공부하러 가기 위해서요."
"그럼 당신은 왜 공부를 하시나요?"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가기 위해서요."
"당신은 왜 대학을 가려합니까? 그 자체가 목적입니까?"
"아니요. 대학을 졸업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요."
"그럼 왜 일을 하려합니까? 일한다는 것이 목적입니까?"
"아니요. 일이 즐거워서 하기도 하겠지만 우선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돈을 벌려 하십니까? 돈을 수집하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요. 돈이 있으면 필요한 물건도 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으니까요."
"왜 필요한 물건도 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합니까?"
"그런 것이 안되면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이죠."
"이 모든 것이 고통을 피하기 위한 겁니까?"
"예. 그렇다면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다소간의 비약도 많지만 이 대화에서 우리는 행복은 분명 인생의 목적이고 이를 위한 모든 인간 활동은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적으로, 행복이란 유일의 목적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칸트는 행복을 '가능한 만족의 총체'라고 말했다. 즉 현실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거나 상상할 수 있거나 맛보기 원하는 모든 만족을 얻은 사실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 정의에 입각해서 잘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욕망을 채울 수 있는가? 인간은 거의 필연적으로 채울 수 있는 정도보다 항상 더 많은 욕망을 가진다. 오죽하면 미국의 경제학자 스테일리는 다음과 같은 행복의 방정식을 만들었겠는가.


  행복 = 소유 / 욕망


  그렇다면 인간은 정녕코 행복을 알 수 없고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인가? 욕망이 생기자마자 모든 고통과 갈등을 제거하고 항상 새로운 쾌락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이 모든 것이 헛된 환상에 지나지는 않는가? 극적인 행복이나 환희의 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무엇인가? 무미 건조한 나날들인가? 행복이 하루 걸러 다시 찾아오리라 생각하는가? 아무런 생각 없이 행복을 좇기에는 던져볼 물음들이 너무 많다. 답은 없고 에피쿠로스의 가르침만 귓가에 울린다. "까르페디엠 (Carpe diem)" '열매를 따듯이 하루하루를 사시오.'


  나는 인간은 각자의 행복만을 추구할 때 도덕적이라는 윤리학적 이기주의에 호감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로 바꿨으면 하지만...) 개인 각자는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아는 존재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각 개인의 행복 추구가 타인에게 간섭하지 않는 한, 윤리학적 이기주의는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건 너무나 이상적인 바람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불행은 자신의 잘못만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보았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개인들은 각자의 행복을 모두 잘 누리지 못한다. 또한 개인들의 행복 추구가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면 어찌할 것인가? 윤리학적 이기주의는 여기서 침묵을 지킨다.


  아는 바도 없지만 행복을 논하기 위해 광대한 칸트의 철학 중에서 그가 말한 인식이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자신의 인식이론을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유했다. 종래에는 대상에 따라 인식한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선천적 형식에 따라 대상이 들어와 인식된다는 것은 마치 천문학상에서 천동설이 지동설로 뒤집힌 것만큼이나 획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전의 인식론은 주어진 명백한 대상을 우리가 인식해 가는 것이었다면 칸트의 인식론은 그냥 주어진 대상을 우리가 여러 가지 범주를 이용하여 능동적으로 인식해 낸다는 차이가 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여기 오이 한 접시가 가득 있다고 하자. 나같이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잘 씻어서 아삭 깨물어 먹고 싶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피부미용에 관심이 많다면 오이마사지를 떠올릴 테고, 달팽이를 키워 본 사람은 오이를 썰어서 달팽이 먹이로 주고 싶을 것이다. 이처럼 똑같은 오이를 두고서 사람마다 다른 인식의 형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는 것임에도 말만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면 얼마 전에 불현듯 "개개인의 행복이 최대한 보장되고 개인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마 윤리학적 이기주의에 미련이 남았는지... 물음은 꼬리를 이었고 결국에는 인간은 행복하게 살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행복의 방법론들을 모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근 한달 간 행복주의니, 해피즘이니 하며 고민하던 나였는데 어느 날 한 스님의 신문사설을 읽고 경악(?)했다. "반드시 행복해야 돼."라는 생각 속에서 행복은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다는 그 글을 읽고 나의 지난 한 달간의 논의가 얼마나 허망했는가 돌아보니 허탈 그 자체였다. 나만의 행복은 무엇일까 하며 갖은 궁리를 하면서 행복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러던 중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서는 스스로 행복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냈다며 자화자찬(?) 해버렸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것은 진리지만 때로는 얻기 위해 잃은 건지, 잃기 위해 얻은 건지 알 수 없기도 하다. 그때마다 잃은 것에 가슴 아파하는 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잃은 것을, 모자란 것을 채워나가면 거기서 행복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얻은 것에 감사하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설령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얻은 것을 소중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굳이 행복을 찾고자, 누리고자 헤매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는지...


  사실 행복에 대해 말하자니 가장 먼저 라이프니츠가 생각난다. 라이프니츠는 신이 이 세상을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것으로 창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넘쳐나는 악은 무엇이란 말인가?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반론한다. 그러한 악이 있기에 세상은 선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만일 악이 없다면 선한 것은 결코 선한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을 위해 있는 것이며, 불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을 위해 있는 것이다. 비록 부분적인 악이 있다 할지라도 전체 속에서는 선한 것이며 무한한 신의 눈에는 결코 악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결국 악함이나 추함이나 불완전함 모두 우주의 질서를 위해 필요한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견해를 '철학적 낙천주의'라고 한다. 나는 '낙천주의자'라는 별명을 가진 라이프니츠는 못될 모양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행복에 목마른 이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이할까. 그런 그도 말년에 실각하여 분루를 삼키며 고독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던가. 화려한 지위에 있었던 라이프니츠도 정치적 몰락과 함께 그의 장례는 아무런 격식도 없이 초라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하지만 감히 이런 그에게 조소나 던질 수 있겠는가? 그의 오른쪽 다리의 혈액순환에 이상이 생긴 이유가 아마도 며칠이고 의자에서 떠나지 않을 때도 있을 만큼 공부를 계속한데 있지 않을까라고 전기 작가가 말한 그의 삶을 보며 나는 그의 사상을 감히 억지 논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비판하기는 쉬워도 주장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행복에 대한 많은 탐구를 하지는 못했지만 어설프게나마 나의 행복론을 정리해본다.


  행복이란 '행복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서 말한 것처럼 만족을 기반으로 하며, 누군가가 정하는 것이 아닌 내가 느끼는 것이다. 행복은 내면이 풍요로운 이에게 싹트기 쉽고, 사소한 것에서 찾을 수 있는 눈을 가진 이를 찾아간다. 행복이란 목적의 달성보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 노력하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혹자는 무척 실망할 것이다. 주절주절 늘어놓고 고작 이런 것 말하려 한 것이냐고. 시시콜콜한 책에서도 나올법한 이야기라고. 좀 더 멋있고 그럴싸한 말은 없냐고 물어도 할 말이 없다. 진리란 본래 지극히 단순하고 담박한 것. 속인들의 수많은 덧붙임은 부질없기만 하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단순하다기보다 빈약한 것이지만) 이런 뻔한 이야기를 참 빙빙 둘러서 말한 건가? 그래도 뭐... 어차피 행복이란 우리 삶을 영원한 화두일테니...


  "행복에는 날개가 있다. 붙들어 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고 실러는 말했다. 흥진비래(興盡悲來)인 것이다. 삶의 모든 일들은 무상(無常)하기만 하다. 그러나 무상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깨닫고,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행복할 수 있을 수 있지 않는가! 이 '무상의 역설'을 우리는 달게(?) 받아들이자.


  진리의 여신 아테네는 제우스의 머리 위에서 완전 무장한 채 튀어나왔다고 한다.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거짓과 싸우는 것이다. 진리는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투쟁해서 얻어내는 것이다. 나의 유치한 행복 이야기도 진리와의 싸움에 좋은 무기가 되었으면 한다. 교육 현실이 인문학적 사유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행복의 철학, 자신의 인생관은 결국 스스로의 몫이기에.


  달라이라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진정한 자비심은 물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 아직도 멀은 나이다.
          

[행복]  - 헤르만 헤세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한
행복할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 모두 네 것일지라도

잃어버린 것을 애석해 하고,
목표를 가지고 초조해 하는 한
평화가 어떤 것인지 너는 모른다.

모든 소망을 단념하고
목표와 욕망도 잊어버리고
행복을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사건의 물결은 네 마음에 닿지 않고
너의 영혼은 비로소 쉬게 된다.



  실로 그랬다. 행복이라는 주제로 생각하고 행복의 의미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행복의 결핍을 증명하고 있었다. 부질없이 '행복'이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 위해 또 샘물을 길러낸다.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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