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뉴스데스크의 최일구 앵커가 재치있는 멘트로 연일 화제다. 특히 지난 19일 엄기영 앵커의 휴가로 일주일간 평일 뉴스데스크를 진행하게 되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익구와 이름이 비슷해 호감을 가지고 최일구 앵커의 뉴스 진행을 보게 되었던 익구도 최 앵커의 뉴스 진행을 흡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앵커가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는 것이 뉴스의 객관성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최 앵커는 보통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수준의 발언을 할 뿐이다.


앵커의 한마디가 시청자들의 사고를 장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치한 발상이며, 시청자들은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뉴스를 음미하고 있다. 앵커는 중간자 입장에서 기자의 취재내용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에서 벗어나 적절한 비평을 내릴 수 있다. 이는 반드시 권장할만한 것이 아니라도 해도 배격할만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다소 말했다고 파격적이라느니 하는 호들갑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엄숙주의에 물들어 있는 가를 알 수 있다.


객관성과 공정성의 잣대는 소중하지만 그것이 지상의 과제는 아니다. 이 잣대들은 우리가 비판적 사고를 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일 뿐이다. 설사 앵커가 사견을 조금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자신이 뉴스를 수용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판단기준이 허술함을 실토하는 것일 따름이다. 건강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뉴스를 비판적으로 해석해서 걸러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 기자의 취재내용이나 영상이미지에서 기자 혹은 편집국의 의도가 상당부분 반영되었을 것인데 이건 놔두고 앵커의 말 한마디에 불편해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젊은 세대들이 게임 중계방송 아나운서의 재치 있는 멘트에는 열광하듯이 뉴스 앵커나 경제인, 정치인, 고위 관료들의 재미난 멘트에 흥미를 가진다면 사회가 더욱 혼란스러워질지 자문해보자. 사회 지도층들이 권위주의에 둘러싸여 근엄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기보다는 좀 더 친숙한 말글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대중들이 가벼워서 문제라기보다는 당신들이 너무 무거워서 골치 아프다. 최일구 앵커를 지지한다. - [憂弱]

<최일구 앵커의 어록 몇 개>

“제가 왜 나왔나 궁금하시죠? 엄기영 앵커가 휴가를 가서 제가 이번주에 김주하 앵커하고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 엄기영 앵커 휴가로 평일 뉴스데스크 진행을 맡게되면서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 권영길 당선 축하 멘트

“정치인들에게 이 노래 암기시켜야겠습니다”
- 차떼기 등에 대한 정치 풍자 노래가 유행이라며

“299명 당선자 여러분들, 제발 싸우지 마세요. 머슴들이 싸움하면 그 집안 농사 누가 짓습니까”
- 4월 총선 이후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정쟁을 일삼자

“그래도 저는 냉면 먹겠습니다”
- 냉면집 육수에서 식중독 균이 검출되었다는 보도 직후
(쓰레기 만두 파동처럼 냉면 소비 감소로 다수의 양심적 냉면집에 피해가 갈까 우려한 멘트)
Posted by 익구
:

익구는 여름학기 경영전략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함께 듣기로 한 친구가 집에서 수강료 지급 거절이 되는 바람에 엉겁결에 혼자 듣게 되었으나 다행히 아는 선배님들이 꽤 있어서 외롭지 않은 계절학기가 될 수 있었다. 너무 짧아서 그야말로 꿈결같이 지나가 버린 듯한 여름학기였지만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우고 고민할 수 있었다. 단순히 교과서적 지식을 배웠다기 보다는 삶의 지혜들을 배울 수 있었다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강의를 통해서 [Built to Last], [Good to Great], [성공기업의 딜레마] 세 권의 책을 읽었는데 모두 좋은 화두를 제시해주었다. 앞의 두 권의 책은 서로 연관관계가 많은데 일독을 권할만하다. 두 책에서 특히 익구 마음에 울린 개념들 몇 개를 소개하고 약간의 코멘트를 달아봤다.


[Built to Last](‘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으로 번역)

<시간을 알려 주지 말고 시계를 만들어 주어라>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졌거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이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라면, 한 개인의 일생이나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을 훨씬 뛰어넘어 오랫동안 번창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은 ‘시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전 기업들은 한 가지 뛰어난 아이디어로 일시적인 시장을 노리거나 한창 성장기에 있는 제품의 흐름에 편승하기보다는 마치 영원히 시간을 가르쳐줄 수 있는 시계를 만드는 것처럼 조직을 건설하는 데 주력한다.
비전 기업들의 성공 비결이 단지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이거나 강력한 권위를 갖고 명쾌하게 의사 결정을 내리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 내에 정착되어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과 그 역동성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경영자는 기업의 특정 제품에만 몰입하거나 개인적인 차원의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에 집착하지 말고, 비전 기업 자체의 개성을 건설한다는 조직적 안목과 시각을 가져야 한다.

-> 참 괜찮은 비유다. 조바심이 나서 시간을 알려주고 얼른 시간에 맞게 일을 하라고 보채기 십상이지만 진득하니 기다리며 시계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계는 시스템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체계적이면서 유연한 시스템은 일개인의 능력의 출중함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아니면’에서 벗어나 ‘그리고’를 맞아들여라>
A 아니면 B라는 흑백논리를 버려야 한다. 가령 가치를 추구하는 이상주의 ‘아니면’ 이익을 추구하는 실리주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취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균형은 단순한 균형이 아니다. 비전 기업들은 이상과 이익의 중간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이상과 높은 이익을 동시에 추구했다.

->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외쳤던 키에르케고르식 양자택일의 논리에 함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도올 선생 말씀대로 깊으면 깊어질수록 인간은 넓어지게 마련이고, 넓으면 넓어질수록 인간은 깊어지게 마련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참으로 깊은 것이 아니며, 그것은 참으로 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면적일 수 있고, 다면적이어야 한다.

<실용적 이상주의>
비전 기업 발전 단계의 중요한 요소인 핵심 기업 이념의 존재라는 공통점 속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비전 기업에서 주요 목표나 동인으로 ‘이익의 극대화’나 ‘주주의 부의 극대화’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비전 기업들은 각 기업에 따른 목표들을 추구하고 있었으며 돈은 그 목표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많은 비전 기업들은 기업 자체를 경제적 활동보다 의미있게 생각했으며,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대부분의 비전 기업 역사를 살펴보면 단순한 경제적 의미를 뛰어넘는 핵심 이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비전 기업이 비교 기업에 대해 상당히 강한 핵심 이념을 지녀 왔다는 사실이다.

-> 이 책에서 이익의 극대화를 너무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공한 기업들의 입에 발린 소리를 너무 띄워주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기업은 주주 부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이다. 많은 좋은 핵심 이념들이 있겠지만 이윤 추구는 기업에서 빠지기 힘든 핵심 이념이다. 이걸 부인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윤 추구는 당연히 기업의 핵심 이념이고 이에 부연하여 다른 핵심 이념을 함께 추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메르크가 “의약품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익 자체는 부수적임을 기억하는 한 이익은 저절로 따라다닌다. 이러한 점을 잘 명심할수록 이익은 더욱 커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네들이 성공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주절거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쫄딱 망했는데도 이익이 부수적이라고 외친다면 아마 비웃음만 샀을 것이다. 이것이 경영학에서 자주 발견되는 결과 위주의 사고라는 것인가.^^;
여하간 비전 기업은 메르크처럼 고귀한 경영 이념과 실용적인 자기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여 왔고 이를 실용적 이상주의라고 명명한다. 나는 이상주의자를 자처하지만 나의 이상은 현실과 타협해서 제 모습을 거의 다 깎아먹기 일쑤다. 고심 끝에 ‘이상실현주의자’라는 억지 수식어구를 만들기까지 했다. 실용적 이상주의는 작은 이상이라도 실현하기 위해 현실감각을 기르는 데 노력하는 나의 이상실현주의의 다른 이름 같았다.

<핵심을 보존하고 발전을 자극하라>
비전 기업은 핵심 이념에 철저하면서도 동시에 발전을 추구한다. 비전 기업의 핵심 이념은 핵심 이념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부분에 대해 변화와 발전을 촉진하고자 하는 진보를 향한 끝없는 열정과 함께 작동한다. 핵심 이념과 발전을 향한 열정은 마치 중국 이원론 철학의 음양같이 비전 기업 내에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를 가능하게 하고 보완하며 강화하는 것이다.
핵심 이념은 발전 자체를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비전 기업이 진화하고 실험하고 변화하는 데 기반이 되는 지속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핵심을 명확히 함으로써 기업은 좀더 쉽게 핵심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해 변화와 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 한편, 발전을 향한 열정은 핵심 이념을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계속적인 변화와 전진이 없다면 핵심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라도 결국 변화하는 세계에 뒤처질 것이며, 활력을 잃고 사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핵심 이념이나 발전을 향한 열정의 뿌리는 보통 특정 개인들에서 비롯되지만, 비전 기업은 그것들을 조직의 모든 계층에 엮어 제도화한다.

-> AND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하나의 표어이다. 너무 지당하신 말씀이라 남은 건 실천의 문제다. 지켜야할 것을 지키면서 바꿔야할 것을 바꾸는 것은 참 어려운 과제다.


[Good to Great](‘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로 번역)

<단계5의 리더>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들은 중대한 전환기에 예외 없이 단계 5의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다. ‘5단계’란 경영자가 갖추고 있는 능력의 다섯 단계 계층구조를 말하는데, 그중 5단계가 맨 위다.
단계1 - 능력이 뛰어난 개인으로 재능과 지식, 기술, 좋은 작업습관으로 생산적인 기여를 한다.
단계2 - 합심하는 팀원으로 집단의 목표 달성을 위해 개인의 능력들을 바치며 구성된 집단에서 다른 사람들과 효율적으로 일한다.
단계3 - 역량 있는 관리자로 이미 결정된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람과 자원을 조직한다.
단계4 - 유능한 리더로 저항할 수 없는 분명한 비전에 대한 책임의식을 촉구하고 그것을 정력적으로 추구하게 하며, 보다 높은 성취기준을 자극한다.
단계5 - 개인적 겸양과 직업적 의지를 역설적으로 융합하여 지속적인 큰 성과를 일구어 낸다.
단계5의 리더는 이중성의 연구다. 겸손하면서도 의지가 굳고, 변변찮아 보이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이중성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극도의 겸양과 직업적인 강렬한 의지를 융합한 개인들이다. 단계5의 리더들은 자신의 자아 욕구를 자기 자신한테서 떼어 내 큰 회사를 세우는 보다 큰 목표를 돌린다. 그들은 분명히 야망이 있지만, 그 야망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회사에 우선적으로 바친다.  

-> 나는 기껏해야 단계 3, 4나마 구축해보려고 헤매였던 것 같다. 단계5의 리더는 자신의 야망을 회사에 바친다고 하는데 과연 나의 개인주의 미감에 얼마나 맞아 들어갈 것인지 애매하다. 단계5의 리더들은 성공할 때에는 행운 같은 자기 자신 외의 요인들에 성공을 돌리며, 실패할 때에는 자책하면서 다른 사람들이나 외부 요인들, 불운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야 어떻게 해볼 자신이 있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지 않을까.^^;

<스톡데일 패러독스>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이끄는 핵심 심리는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이다. 이는 결국에는 성공할 수 있고 성공할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 스톡데일 패러독스 비참한 역경 속에서도 웃어 보일 수 있는 넉넉한 영혼이 되라는 것이다. 정직하게 절망하고 냉철하게 희망할 줄 사람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설령 운이 아주 좋아서 내가 이겨봤자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고슴도치 컨셉>
고슴도치 컨셉은 다음 세 가지 원이 겹치는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단순 명쾌한 개념이다.
① 당신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일
② 당신의 경제 엔진을 움직이는 것(수익성을 창출하는 일)
③ 당신이 깊은 열정을 가진 일.
완전히 성숙한 고슴도치 컨셉을 가지려면 세 개의 원이 모두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가 빠진다면 위대한 회사로 도약하지 못한다.

-> 이것은 비단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이 세원의 교집합을 구해서 추구한다면 유의미한 성취를 일구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장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는데 고슴도치 컨셉을 적용해서 조금 지향점을 잡아봐야겠다.


이 밖에도 선생님께서는 주옥같은 개념들을 선사해주셨다. 익구가 가장 찔린 것은 못난 경영자가 인센티브와 패널티만 이용하려한다는 대목이다. 익구가 경영대 다섯 개 반을 통솔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것이 인센티브와 패널티였기 때문이다. 익구는 가장 손쉽게 효과를 볼 수 있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기댔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한 재미나게 들은 것이 GE의 잭 웰치가 20년 재임기간 중에 퇴임 9년 전부터 후임자를 고민했다는 사실이다. 익구의 학생회장 임기는 11월 중순쯤에 끝날 텐데 가을학기 개강을 하자마자 차기 이월준비와 다음 학생회장을 후보자들을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부터 이런 고민한다고 어느 선배님께서는 익구를 ‘최웰치’라고 불러주시기도 했다.^^;


다음으로 축적을 하기 위해 희생을 해야 한다, 경쟁의 장점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경쟁을 회피하게 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만든다, 납득되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서 터득해야 한다, 핵심역량이 핵심경직성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좋은 경영자는 위기를 잘 구축해야 한다 등등이 있었다. 위기와 조직변화의 효율성 대목에서는 위기는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며, 최고경영자의 위기를 조직구성원의 위기로 하향시키지 못하면 변화에 실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적절한 위기를 넘어서 완전 공갈협박 수준의 윽박으로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 것은 삼가야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많은 좋은 가르침들이 익구에게 알알이 다가왔다.


학생회 일꾼 3년차로 살다보니 어떤 조직이나 시스템을 많이 겪어본 익구로서는 경영전략 강의에서 많은 유용한 개념들을 습득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학문이 그렇지만 경영학도는 경영 이외의 다방면의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이번 강의를 통해 깨달았다. 익구는 다른 분야에 관심이 없는 외곬이 되어서는 편협한 테크니션밖에 되지 못한다며, 교양도 열심히 쌓고 전공에도 충실하도록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고심 끝에 싸이 미니홈피를 별장으로 쓰기로 했다. 익구닷컴은 용량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디카를 장만했답시고 사진을 무한대로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무언가 사진창고의 역할을 할 곳으로 싸이 미니홈피를 일단 쓰기로 했다. 외부 링크로 연결하는 방법들도 있지만 싸이족 친구들과의 교류도 할 겸 그간 폐가로 나뒀던 싸이 미니홈피의 먼지를 털어 낸 것이다.


미니홈피를 열고서 익구닷컴과의 자기잠식효과를 우려했다. 자기잠식 효과는 기존 브랜드와 확장 브랜드 사이에 대체성이 클수록 커지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대체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미니홈피 사진첩을 폐쇄했지만 최근에는 사진창고 기능을 위해 그마저도 열었다. 익구닷컴이 본디 문자 텍스트를 기반 한만큼 사진첩 열었다고 자기잠식 효과가 크다고 생각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분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굳이 염려할 필요가 없다.


여하간 이만하면 나는 싸이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정이 가지 않기 때문에 그 칭호는 부적절하다. 설령 넓게 봐서 싸이족에 들어간다면 나는 동포(?)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쓴소리를 하고 싶다. 미니홈피가 아무리 긴 글을 쓰기 부적절한 구조라고 해서 게시판을 이용한 글쓰기에 아예 신경을 끄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싸이질을 하면서 긴 글이 점점 더 낯설어지고 짧은 글에 익숙해지는 경향이 심화되지 않았는지 돌아보자. 물론 말글의 길이가 짧아진다고 생각이 짧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긴 호흡의 교류가 사라지는 것은 함께 아쉬워해야 할 일이다. 사진 이미지도 소중하지만 문자로 기록한 것도 훌륭한 자신의 역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싸이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자. 싸이가 대세라느니 하면서 권유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개인 홈페이지를 꾸리거나 이런저런 블로그 생활하는 사람들과도 교류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상당수 싸이족들이 미니홈피 방명록 남기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다른 홈페이지에 무언가 글을 남기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데 이는 스스로를 속박하는 일일뿐이다. 싸이성(城) 안에서 아무리 재미가 쏠쏠하더라도 성밖에도 무수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누추해도 자기 집은 편안하고 아늑한 법이다. 내 집구석이 사랑스러운 만큼 남의 집구석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모든 이들이 싸이로 몰려가서 싸이성(城)만 북적거린다면 과연 그 때도 싸이족들이 즐거이 살 수 있을까? 자치통감에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은 까닭에 그렇게 크게 되었고, 강과 바다는 시냇물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깊은 것이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라는 말이 있다. 싸이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얼른 일촌들 순회하며 방명록 달아야하는 강박증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관용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친구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흠뻑 빠질 수 있을지언정, 사람과의 관계맺음에 정신을 쏟아 부을 수 있을지언정 싸이질 자체에 중독되는 것은 늘 경계해야 한다. 싸이가 사교비용을 낮추는 데 일조 했고, 그 덕분에 시장에서 우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싸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듯이 몇 마디 방명록으로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백만명(!)의 지인들과 벗하고 있을 것이다. 공짜가 없는 세상에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은 자신도 진정을 다해야 하는 엄청난 비용을 요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부지런히 스스로를 절차탁마(切磋琢磨)해야 한다. 함께 해요~ - [憂弱]
Posted by 익구
:
언제부터인가 나를 따라다니는 지상과제가 있었다. 대중성 확보가 바로 그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언젠가 ‘넓은 익구 정책(Broad Ikgu Doctrine)’을 펼치게 된 이래로 익구의 대외 정책의 근본 기조는 변함이 없었다. (독트린은 ‘국제 관계에서 자기 나라의 정책이나 행동의 기반이 될 원칙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라는 뜻이다. 개인을 소국가로 치환시켜서 생각하는 익구로서는 즐겨 쓰는 용어다) 어린왕자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냐는 물음에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구절이 나온다. 실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다는 것은 어렵고도 소중한 일이다.


성격심리학적으로 내향적인 나는 내면세계에 울타리를 치고 있어 넓은 교제가 힘들고 가까운 몇몇 사람들과 흉금을 터놓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MBTI 16가지 성격유형 중에서 가장 독립적 성향이 강하다는 INTJ형인 나는 주위 사람에게 무심하게 대하거나 현실과 벽을 쌓고 냉정하고 거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적 탐구를 좋아해서 몽상과도 같은 깊은 사색을 즐기며, 논쟁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는 고집불통이 되기 십상이라고 한다. 또한 농담도 별로 하지 않고 남의 농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거니와 자신을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도 상당히 높은 수준을 설정해서 까다로운 리더나 부모의 전형이 된다고도 한다(마지막은 동의할 수가 없다. 내가 얼마나 널널한데... 푸하하).


사람 성격은 선천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쉽게 고치기 힘들다고 한다. 숱한 노력을 기울여 내 성격의 단점을 고치려는 노력은 소중하지만 분명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만은 절대 못하겠다, 이건 정말 내 타입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들어 하지 못하는 일들이 제법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성격유형이 가리킨 대로라면 나란 놈은 정말 대인관계 꽝인 아웃사이더 인생에다가 홀로 유유자적 고고함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딱 맞는 녀석이 되어버린다. 세상에 내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있냔 말이다. 내가 얼마나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이런 답답한 마음에 도올 선생이 조금 풀어주셨다. 도올 선생은 검증 없이 우리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엉터리 위험한 말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고 말한다.

“야! 넓은 사람은 깊지 못해. 깊은 사람은 넓지 못하고-. 야! 말 잘하는 사람은 글을 못써. 글 잘쓰는 사람은 말 잘 못하고-. 야! 철학 잘하는 사람은 예술은 못해. 예술에 뛰어난 사람은 철학은 못하고-.”



도올 선생은 이것이 서구문명이 특히 기독교 문명이 현대적 인간에게 선사한 가장 큰 죄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 넓은 사람이 깊은 수 없을 수가 있으며, 어떻게 깊은 사람이 넓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깊으면 깊어질수록 인간은 넓어지게 마련이고, 넓으면 넓어질수록 인간은 깊어지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참으로 깊은 것이 아니며, 그것은 참으로 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면적일 수 있고, 다면적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용옥, [철학강의], 통나무, 1998, 255~256쪽 참조)


나는 무릎을 쳤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고르는 OR의 사고에서, 이것도 저것도하는 AND의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넓은 익구 정책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원하던 대중성 확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관계맺음의 절대량을 증대시키는 것과 현실감각을 기르는 것이다. 이 둘의 상호작용을 통해 많은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청난 사교비용을 쏟아 붓게 된다. 실제로 돈, 시간, 노력 등 가용자원을 많이 투하했다.


하지만 특히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큰 효용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스포츠를 보거나 하는 것을 죄다 시큰둥해하고, 각종 게임도 젬병에다가, 여자 연예인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고, 이런저런 잡기에 무지한 데다, 꼴에 양성평등주의자라고 이래저래 까다롭기까지 한 나를 도대체 무슨 재미로 옆에 두고 싶겠냐는 것이다.^^; 아무리 시장조사를 해서 세분시장을 파악하고 표적시장을 정해서 포지셔닝을 하려고 해도,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시장조차 확보하기가 여의치 않다. 여기서 나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광대한 시장인데, 내 상품성은 틈새시장조차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내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좋은 벗, 선/후배가 될만한 자질이 있는지 아직 자신이 없다. 그러나 정말 진솔하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수 있도록 실력과 인격을 겸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는 궁극적으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면서도 교류의 즐거움, 소통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후배, 선배, 동생, 형이 되기를 바란다. 진지한 유쾌함을 선사하는 것이 나의 포지셔닝이다. 대중성 확보는 이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배보다 배꼽이 커버린 형국이 되어버렸지만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인간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난 앞으로도 무뚝뚝하고 고리타분해서 인간관계에 서투를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성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한다면 대중성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며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지인들께 진지한 유쾌함을 비롯한 이런저런 가치들을 창출해서 나눠 가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有麝自然香 何必當風立(사향노루는 자연스레 향기가 나는 것이니 어찌 바람을 맞아 서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억지로 대중성을 쥐어 짜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내가 뿜어내는 향기가 은은하다면 자연스레 나란 녀석과 관계 맺을 유인이 생길 것이다. 나의 개인주의는 고립의 미학이 아니라 다른 개인과의 연대를 통해 아름다움을 일구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대중성 확보를 위한 아름다운 타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 익구에게 투자해주시라~ - [憂弱]
Posted by 익구
:

트로이를 관람하다

잡록 2004. 6. 12. 02:35 |
6월 5일 익구는 청원, 찬구와 함께 [토로이]를 관람했다. 영화 취향이 까다로운 청원이는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투덜거렸으나 익구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영화는 원작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상당히 다르게 각색했다. 제작진이 각색이 아니라 영감을 얻은 정도라고 말했듯이 원작과는 사뭇 다른 내용들이 난무한다. 우선 신들의 장난질이 싹 사라지고 오로지 인간 이야기만으로 진행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헬레네가 결국 다시 전남편 메넬라오스에게 돌아가고,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아킬레우스 아들의 첩이 된다는 이야기는 쏙 빠지게 된다. 또한 헥토르의 시신을 프리아모스 왕이 엄청난 몸값을 치르고 찾아올 수 있었다는 내용도 아킬레우스가 왕의 용기에 감명을 받아 공짜로 내어주는 것으로 미화되어 표현된다. (사실 이 대목에서 몸값을 치르기 위해 수레에서 갖은 재화들을 내리는 장면을 상상하면 얼마나 멋대가리가 없고 비루하겠는가.^^; 여하간 피터 오툴의 매혹적인 연기에 찬사를 보낸다)


이처럼 원작과는 다른 내용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그리 밉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가 비교적 그리스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면 [트로이]는 트로이 진영에 대한 연민을 감추지 않는다. 아킬레우스가 양아치로 그려지고, 헥토르는 다정다감하고 착실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스군의 수장 아가멤논이 권력아귀에 달라붙은 탐욕스런 인물이라면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부정이 그득한 기품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트로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죽지 않는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이 모두 죽는 것으로 처리되는 것도 트로이에 대한 배려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의 일격에 당하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꼈다^^;)


이렇게 트로이에 많은 애정을 할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로이는 목마를 들여보내는 삽질을 함으로써 잿더미가 되어 버린다. 익구는 이 대목에서 혀를 내둘렀다. 신화에 따르면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지 말 것을 주장하며 목마를 향해 창을 던지기 까지 한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두 마리 뱀이 라오콘과 두 아들을 물어 죽어버린다(그 유명한 라오콘 조각상의 일화다). 결국 트로이 사람들은 신들이 노한 것이라며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 와 화를 자초한다. 신화적 요소를 제거한 이 영화인만큼 이 황당한 장면이 삽일 될 리 없지만 목마를 좋다고 끌고 들어오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석연치 않다. 익구는 스스로가 라오콘이 되어 스크린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결국 일리오스(Ilios, 트로이의 별칭)가 불타 오르는 순간에 익구는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 카르타고의 불타는 시가지의 모습을 함께 연상했다.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일리아드에 나오는 헥토르의 “언젠가는 트로이도, 프리아모스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전사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라는 구절을 읊조렸다고 한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2권 中). 한니발의 회한과 카르타고의 비운을 늘 안타까워했던 익구도 불타는 트로이에서 카르타고를 연상하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이 없었다. 모든 몰락하는 것들은 다 비슷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승자의 몫이고, 부, 명예, 권력을 차지한다면 안쓰러운 동정심은 패자에게 던져지는 개평(?)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아가멤논의 “사내들의 세계에는 평화란 없지, 제국은 전쟁으로 건설되지”라는 명제에 충실하게 마초적 감수성을 향해 돌진한다. 남자들의 권력과 명예를 향한 아귀다툼이 그럭저럭 미화되고 있는 셈이다. 아킬레우스는 “남자는 야망이 커. 난 더 크지”라며 자신의 남근적 세계관에 충실할 것임을 천명한다. 이런 와중에 자연히 여성들은 수동적인 대상으로 전락한다. 헥토르도 출정하면서 “신을 섬기고 내 여자를 지키며 조국 트로이를 사랑하라!”는 원칙을 제시하지 않는가. 이러한 남성우월주의 아니 남성올인(!)주의는 지난날 인류의 누추한 미감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런 마초적 감수성은 여전히 대다수 남성들의 가슴속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마초적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들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마초적 매력을 갖춘 이들은 여전히 상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익구가 양성평등주의를 옹호하고 여성의 권익향상을 들먹거리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마케팅에서 소비자의 서로 다른 욕구에 따라 시장을 분류하는 것을 시장세분화라고 하고, 세분시장(market segment)은 주어진 마케팅 자극에 대해서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소비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시장을 말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여전히 마초 시장은 거대하고, 당연히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상품이 쏟아지는 것을 배아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려한 전투 장면을 감상하며 장관(壯觀)이라며 마냥 손뼉을 칠 수 없는 것은 영화관 밖을 나서면 나 또한 다른 전쟁판에 떠밀리기 때문이다. 남자라는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전쟁터로 내몰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다만 문명화된 위선의 사탕옷이 입혀져 처음에는 단맛에 취해 그 씁쓸함을 모른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익구가 왕과 영웅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쓰러져갔던 트로이와 그리스의 이름 없는 병사들 같은 인생과  얼마나 다를지 장담할 수 없다. 익구의 젊은 피 또한 권력자들의 손아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 [憂弱]
Posted by 익구
:

익구는 5월 3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석탑 대동제를 즐겁게 보냈다. 한 일이라고는 각 단위의 주점을 관리하는 일밖에 없었지만 무사히 잘 마쳐서 다행스럽다는 평가다.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던 익구에게 있었던 일을 정리해봤다.


<5월 3일>
오전부터 비가 내려 주점 준비가 무척 고생스러웠다. 비가 저녁 늦게나마 그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7교시 강의를 마치고 선생님과 선배님 이렇게 셋이서 삼성통닭에서 만남을 가졌다. 주점이 잘 돌아가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즐거운 담소를 나눴다. 학생회장이라도 주점에서 돈을 내고 먹어야 한다는 익구의 말에 주점을 세 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는 익구 신세를 가여이 여겨주셨다. 특히 기억이 남는 것은 선생님과 선배님께서 요즘 대학생들은 참 불쌍하다며 혀를 차시는 것이었다. 예전의 낭만이 가득한 대학생활과는 판이하게 돌아가고 있는 요즘의 대학 풍속도가 화제에 올려지자 익구는 자꾸 불쌍하다 그러니까 더 처량해지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통닭에 골뱅이, 번데기까지 포식한 익구는 다시 경영관으로 향했으나 광란의 현장을 목도하고는 현기증을 느꼈다. 또한 익구에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강의실에서 책상과 의자를 무단으로 꺼내온 것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적당히 무마를 하고 마저 즐거운 주점을 이어 나갔다. 자정을 전후로 익구는 주점 정리를 독촉하러 다녔고 모두들 귀찮은 잔소리에 마지못해 치우는 시늉을 했다. 특히 A반 주점을 정리하던 중에 상으로 썼던 종이상자들을 불태우게 된다. 익구는 처음에는 위험하다며 만류했지만 막상 불이 활활 타오르자 덩달아 신나서 기념 사진에도 동참하고 말았다.^^; 여하간 학생회실에 술병 환자를 잘 안치한 것을 확인하고 날이 밝아오기 전에 얼른 집으로 향했다. 새로 이사간 집까지 택시비는 6000원이 채 안 돼서 노원구 살 때 보다 2000원 가까이 싸게 나왔다. 익구는 흡족해하며 앞으로 차 끊기면 택시를 애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5월 4일>
전날 책상과 의자를 무단으로 꺼내 쓰고 인공폭포에 쓰레기를 투기한 일로 학사지원부에서 언짢은 소리들을 했지만 한숨 쉬어가며 적당히 둘러대서 주점을 이어나가게 된다. (축제가 다 끝나고서야 주점 교통정리 하느라 고생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주점 하는 내내 티격태격해야 했다^^;) 학생들보다 잔디밭, 폭포, 기자재를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고 버럭 따질 까도 생각했지만 그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어서 세 개 반 주점이 열렸다. E반 주점에 들러 01 선배님들과 잠시 자리를 가진 뒤, C반 주점에 잠시 들러 작년 경영대 학생회 일을 함께 나눈 치용이 형이 휴가를 나오셔서 뵈러 갔다. 하지만 98 선배님들께서 달리는 분위기를 연출하자 모종의 불안감을 감지한 익구는 다른 주점 확인 좀 하고 온다는 핑계를 대고 결국 다시 들르지 못했다. 다시 E반 주점으로 돌아온 익구는 A반 친구 칠성이를 비롯한 A반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작년 주점을 회상하며 푸짐한 서비스를 기대했으나 어려운 경제상황이 반영된 탓인지 조금 팍팍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익구는 주점에서 돈을 남기면 얼마나 남긴다고 그저 다같이 술 한잔 나누는 재미로 하는 것이지, 너무 인심을 박하게 쓰는 것이 아니냐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결국 말은 이렇게 해놓고 얻어먹을 것은 다 얻어먹었다.^^; 익구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 전철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칠성이를 배웅하고 B반 주점 정리를 감시했다. 거의 치워졌구나 싶을 때 C반 주점 정리 상태를 점검하러 갔으나 이게 웬일, 사람은 간데 없고 주점 자리는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부랴부랴 연락을 돌려 아침에 와서 치우겠다는 확답을 받고도 모자라 신신당부를 해놨다. (이 덕분이었는지 나중에 학사지원부에서 C반 정리가 가장 훌륭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익구는 B반 뒤풀이 장소에 따라가서 해장국을 맛나게 먹은 뒤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5월 7일>
지야의 합성 입실렌티를 관람하기 위해 녹지 운동장으로 향하다. 노천극장과는 달리 탁 트인 공간 탓에 시선이 분산되는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응원하고 놀기에는 더 넓고 좋은 것 같았다. 하지만 모래바람 때문에 목감기에 시달린 친구들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익구는 다섯 개 반들이 적당한 위치에 잘 자리잡았음을 확인한 뒤 가벼운 마음으로 입실렌티를 관람했다. 초대연사인 한비야씨의 “강자를 편들어 자연사하시겠습니까, 약자를 편들어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시겠습니까?”라는 사자후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익구는 한비야씨 같은 치열하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 무척 매력적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 초대가수인 전인권씨의 무대는 무척 흥겨운 한마당이었다. 중후한 멋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한 익구는 하지만 이런 무게감은 익구와는 맞지 않는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어진 응원 한마당에서 익구는 02 친구들인 병만, 욱진과 함께 온몸을 달구는 응원을 즐겼다. 입실렌티가 성료되고 D반 뒤풀이를 함께 했다. 본래는 새로 장만한 디카로 사진도 좀 찍고, 이야기꽃을 피워보려고 했으나 다들 격한 응원 탓인지 조용히 안주만을 축내는 분위기라 익구도 맥주를 들이키며 지친 몸을 달랬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골뱅이 무침이 압권이었다. 뒤풀이가 얼추 끝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려고 생각했던 익구는 B반 일행을 만나 B반 뒤풀이에도 합류하게 된다. 02 친구인 미경이와 안면을 트게 되는 등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아침 해장국까지 해치우고 집으로 향한다.


<5월 9일>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본디 소풍을 기획했건만 비가 오는 바람에 무산되고 건대 근처 술집에서 만남을 가졌다. 큰 규모의 소풍이 취소되어서 당초 기획했던 것보다는 판이 작아졌지만 스무 명도 넘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사발식 시주 이후 범 막걸리 계열의 술을 일체 입에 대지 않게 된 익구는 그날따라 잔뜩 시킨 동동주를 거의 마시지 못하고 낙지볶음 안주를 맛나게 먹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익구 잘 먹는다” “저거 또 안주킬러 짓 시작이다” “익구야 또 먹어?”라는 전형적인 구박이 시작되었다. 사실 익구는 술만 마시면 이상하게 허기가 더 심해지는 증상이 발동해서 안주에 자꾸 손이 가게 된다.^^; 이번에 대학 새내기로서 보내고 있는 수현이가 게임을 제안했고, 모두들 게임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이미 게임이랑은 영 멀어진 02 고학번인 익구로서는 옆 쪽 테이블에서 山소주를 마시며 지나간 세월을 한탄했다. (익구는 예나 지금이나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게임의 블랙홀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5월 14일>
익구는 오전에 탄핵 기각이라는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하고 지난 두 달간의 묵힌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꼈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도 가지 않았던 연대 아카라카를 02 노구를 이끌고 머나먼 원정길을 떠나게 된다. 입구통제하는 사람들과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한참 벌이고서야 겨우 입장을 할 수 있게 된다. (큰 폭력 사태는 없었지만 다소간의 주먹질이 오갔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축제 분위기를 퇴색시키는 우울한 풍경이다) 인기 가수들이 많이 나온다는 평이 자자한 아카라카이지만 본래 가수 공연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는 익구는 초등학교 친구인 애란이와 저녁을 먹었다. 1년만에 만난 애란이와 대학생활의 애환을 즐거이 나눴으나 연세 방송국에서 일하는 애란이는 방송제 준비로 독촉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익구는 내가 주로 독촉을 하는 입장이 되어봐서 잘 안다며 얼른 들어가 보라고 말했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아카라카는 마지막 초대 가수로 신승훈이 나왔고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이어진 응원 한마당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익구는 상념에 잠겼다. 저 거대한 파란 물결을 보며 때로는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선의의 경쟁자로서 연세인들의 존재를 실감하게 되었다. 익구는 아카라카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만 와당탕 넘어지는 바람에 디카도 긁히고, 휴대전화 액정도 깨지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는 촌극을 연출했다. 익구는 역시 신촌동네의 불길한 기운이 사단을 내고 말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A반 뒤풀이에서 맥주를 마신 익구는 역시 신촌이라 그런지 맥주맛이 일품이라며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서 D반 뒤풀이를 참석해서 연세인들과 함께 하는 응원을 즐겼다. (주로 눈으로... 몸이 말이 아니라서... 쿨럭) 좀 전까지는 연대의 복잡다단한 응원이 신기하기도 했으나 이내 연세인들도 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응원은 네댓 개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끝으로 B반 뒤풀이에 갔다가 첫차를 타고 돌아왔다. 술 취한 04 창헌이를 중계역까지 데려다 주지 않고 내린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창헌이는 그날 신대방역까지 갔다가 와야했다고 한다.^^;


<5월 15일>
아카라카까지 달리면서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만 거의 2년 만에 수옥 누나와의 만남을 가졌다. 35대 총학생회 일을 함께 했던 수옥 누나께서는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으로 그 출중한 실력을 뽐내고 있으시다. 역시 총학 일로 알게 된 선임이와 함께 강남역으로 향하는 길 내내 너무 멀다고 투덜거렸다. 사실 아카라카의 여독이 덜 풀린 탓도 있었으리라. 강남역에서 수옥 누나와 함께 나오신 진관 형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저녁으로 난생 처음 접하는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마지막에 담가 먹는 칼국수가 별미였다. 보드카페에서 젠가, CLUE, 할리갈리를 재미나게 했다. 불꽃튀는 젠가 대결에서 와르르 무너진 것이 누구의 탓인가 미스터리이지만... 아마도 익구가 팥빙수 국물 흘려서 휴지로 훔치려고 하는 찰나에 무너졌으니 익구탓도 지대하다는 것을 이 자리를 들어 밝힌다.^^; CLUE는 아무리 해도 맞추지 못하는 익구머리의 한계를 절감했으며, 할리갈리는 산수감각과 순발력이 함께 부족한 익구의 부실한 몸뚱아리를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익구는 수옥 누나와의 회동을 통해 어떤 모임이나 약속이든 내가 먼저 다가가서 챙기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성사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축제를 핑계로 들뜬 기분에 젖어서 한 때를 보낸 익구는 어느덧 다가온 이번 학기의 마지막을 차분히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번 학기를 축제의 흥겨움을 유지하며, 즐겁게 마무리하겠다는 자세다. 축제 끝의 무료한 일상이라기 보다 이제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승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축제 기간 익구와 함께 해준 모든 이들께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성긴 쳇구멍

잡록 2004. 5. 13. 02:33 |
사람은 보는 것을 믿는 것일까, 믿는 것을 보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생각보다 꽤 철학적인 주제다. 아마 두 가지 측면이 골고루 있을 것이고, 또한 이 둘의 가치우위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할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좀 더 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제 나름의 체로 한 번 걸러 입맛에 맞는 데로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선택적 사고의 함정은 언제나 우리를 유혹한다. 어느 정도의 선택적 사고는 개개인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객관적 사실마저 외면하는 순간 선택적 사고는 그 빛깔을 바래고 만다. 진중권 선생은 [당파와 파벌로 찢긴 대한민국은 미쳤다]는 글에서 이러한 맛간 선택적 사고를 강하게 비판한다. 우리 사회가 논리적 성격이 아닌 정치적 성격의 일관성이 팽배해있다는 것이다. 당파와 파별로 찢어진 사회에서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이 합리적 소통이라면서 당파의 차이를 떠난 합의의 장이 설자리를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기실 모든 사안마다 모두 의견이 일치해야만 내편이라고 보는 것은 최대주의(maximalism)의 폭거일 따름이다. 최대주의는 자유주의의 미감을 심하게 거스른다. 모든 사안에서 몇 치의 어긋남조차 허용하지 않아야만 안심하는 것은 파시스트의 미감일 뿐이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너가 그럴 줄 몰랐다”라면서 호들갑을 떠는 모양새에서 파시즘의 잔재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반대자들에게 쓴소리를 내뱉는 것은 쉬운 일이고 때로는 재미나고 희열이 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군에게 화살을 날리려고 하면 활시위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나의 당파성이 자유주의 미감을 구현하는 것에 있다면 집단주의의 횡행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조직의 생리에 저항하고 미시 파시즘의 발호를 경계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피아의 구분이나, 내편 네편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아마 그러기 위해서는 때때로 꾀죄죄한 소수파의 서러움을 느낄 각오가 되어야 한다.


나는 내가 딛고 있는 곳이 절대선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악을 제거하는 데 일조하고 작은 선이나마 실현해낼 수 있는 힘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겠다는 마음과 우군이 잘못한 것이 명백하다면 함께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겠다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해석을 존중하면서도 저들이 사실을 건드리려고 하면 기꺼이 비판의 칼을 들이대야 하듯이 나 또한 해석의 자유에 취해서 사실을 조작하는 오만을 부리지는 않나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저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사실 자체를 건드릴 자유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해석이냐는 무척 어려운 과제이다. 두부 자르듯이 사실과 해석의 경계가 갈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억지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사실과 해석의 교집합처럼 느껴져 분간하기 힘든 부분은 과감히 해석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 보다 더 적절할 듯 하다. 사실의 영역은 신성하지만 쓸데없이 확장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해석의 여지를 늘이는 것도 자유주의자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이 ‘당위’라는 사탕옷을 입기 시작하면 근심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니까.^^;


내 잣대로 만든 체의 구멍크기를 조금 크게 하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돌멩이 같은 잡물들도 더러 섞이겠지만 미쳐 보지 못한 몇 톨의 진리를 더 건질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얻으니 결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촘촘한 쳇구멍으로 나를 안락하게 만들기보다는 조금 성겨 보이는 쳇구멍이 나를 조금 불편하게 해도 결국은 나를 더 살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요즘 몇몇 문구들이 나의 가슴을 때렸다. 그 문구들에 대한 나의 짤막한 소회들을 정리해봤다.

1.
딴지일보에 캐나다의 스벤드 로빈스 연방하원의원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보호에 힘써온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을 찾아가 아라파트를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유죄입니다. 편을 든 것이 유죄이지요. 하지만 반드시 편을 들어야 한다면 압제자 (Oppressor)의 편이 아닌 약자 (Oppressed)의 편을 들겠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자로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유죄씩은 아니더라도 무척 부담스러운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늘 부지런히 눈치보고, 하고 싶은 말도 적당히 둘러대는 사람들의 차지다. 타인의 입장에서 보는 나는 편파적이고 오류투성이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 남의 생각 중에 맞는 부분에 끄덕이는 여유로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의 견해에 함부로 유죄 선고를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설령 나의 당연한 권리로서 어떤 사안에 대해 편을 들게 되었을 때 그에 따르는 오해를 어느 정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부당한 비난에는 방어를 해야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만큼의 비용을 치르는데 인색하지 않은 내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나의 편들기가 압제자보다는 약자에 기울어지는 것은 물론, 조직된 소수의 이익보다 조직되지 않은 다수의 이익 옹호에 인색하지 않는 내가 되어야겠다.

2.
“밤 그림자처럼 스쳐 날아가는 그것, 누구도 알 수 없고, 어떤 사냥꾼도 쏘아 떨어뜨릴 수 없는 것…생각은 가둘 수 없다(Die Gedanken sind frei).” 독일 민요의 한 구절을 빌려 1999년 새해 소망을 빌어본다.


- 이 땅에 ‘사상의 자유'’를, New+(주간 동아일보)의 ‘유시민의 세상만사’ - 1999. 01. 14

고3 시절 우연히 집어 든 유시민의 [WHY NOT?]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내가 유시민 선생을 익구의 지적 스승 내지는 영혼의 스승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 책 때문이다. 개인주의가 자랑스러운 것임을 확신하게 해준 고종석 선생이 있다면, 유시민 선생은 자유주의가 내 입맛에 맞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분이다. 여하간 2002년 7월경에 있었던 유시민 강연회에 참석한 후 내가 [WHY NOT?]책에 받은 유시민 선생의 싸인 문구가 Die Gedanken sind frei 였다. 그간 늘 이 문구의 뜻이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알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생각은 가둘 수 없지만 이래저래 많은 제약요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생각이 자유롭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닌다. 문제는 실천적 노력이나 행동이 자꾸 가두어지면 그에 따라서 생각의 영역도 자꾸 축소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들어가 앉는 생각의 감옥에서는 얼른 탈옥하는 것이 상책이다.

3.
전공필수 과목인 경영정보시스템이라는 강의는 그리 관심도가 높지 않아서 그랬는지 늘 지루하고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교재 중에 나의 눈을 확 끌었던 대목이 있다.

의사결정시 인간의 감정과 심리상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불안감은 의사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한다. 즉, 지나치게 의사결정 시기를 연기하려고 하는 ‘방어적 회피(defensive avoidance)', 불안한 의사결정 상황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충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과민한 반응(over-reaction)',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의사결정은 하지 않고 점점 더 많은 양의 정보만을 수집하려고 하는 ‘지나친 경계(hyper-vigilance)' 등과 같은 현상은 의사결정을 객관적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만든다.


- 한재민, 경영정보시스템, 학현사(1998), 380쪽

하나하나 무릎을 쳤지만 특히 지나친 경계 대목에서 몸둘 바를 몰랐다. 자료의 홍수 속으로 도피하는 것, 결국 방어적 회피와도 연계된 이야기겠지만 차일피일 미루면서 판단을 못내리는 경우가 있다면 지나친 경계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방어적 회피를 하고 있지는 않나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다행히 소심쟁이인 나는 과민한 반응을 내릴 유인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 물론 어차피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존재이고 합리성에의 결벽증 적인 집착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할 뿐이지만, 최대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려는 모든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아름답다. 우리는 그 정도의 넘침을 타박할 수 있을지언정 합리성에의 애착은 누구에게나 권장할 일이다. 특히 정, 의리, 연고주의 같은 비합리적이라 지칭할 수 있는 요인들이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더욱더 유의미하다.

4.
일단 많이 배우면 세상의 다양함을 받아들이게 된다. 많이 말하면 오히려 말을 조심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글을 쓰면 세상에 대해 너그러워진다. - 전여옥


이런 꽤 맛깔스런 말을 전여옥이 했다는 것이 떨떠름해서 인용을 몇 번이고 망설였다. 전여옥이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최대한 선의로 받아들일 요량이다. (이 문장은 유시민 의원과의 토론회 후기의 일부로서 전여옥은 이 모든 과정을 역행한 인물로 유 의원을 지목한다. 그러면서 서글프다고 읊조린다^^;)

과거에는 많이 배우면 어떠한 사안에 대한 판단력이 좀더 분명하고 신속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배우는 것이 본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꾸만 배우면 배울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고 더욱 느려지고 있다는 회의가 들었다. 그것이 여러 견해의 타당성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좋게 해석하고 싶다. 이는 세상의 다양함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상통할 것이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말을 많이 하면 쓸데없는 말이 많아지게 마련이라는 알 수 없는(?) 믿음에 사로잡혔던 나는 자연스레 말조심을 하는 축에 속한다. 하지만 말 대신 글로써 매섭게 몰아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글조심이 더 시급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새로운 근거 없는 미신이 나를 지배하려고 하고 있다. 말을 많이 하면 헛소리도 많이 하겠지만 좋은 말, 쓸모 있는 말도 비례해서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많은 사람들과 많은 말을 나누며 배우고 느끼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기 때문에 나의 우상(?)도 교체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저런 잡글을 끄적이면서 내가 조금 더 여유로워졌음을 느낀다. 내 정파적 이해를 대변하고, 내 잣대로 남을 비판하는 경우가 태반인 나의 잡글쓰기는 오히려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 모자람이 이렇게 크게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남을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도 문자로 된 텍스트에 대한 부담감이 나를 좀 더 성찰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문자로 된 텍스트는 머릿속의 관념 몇 조각이나 대화 중의 말 몇 마디와는 달리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전여옥이 말한 너그러움의 이면에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세상과의 적절한 타협이라는 의미도 강하게 내포되어 있지는 않을까? - [憂弱]

Posted by 익구
:

개성의 미학

잡록 2004. 4. 4. 06:15 |
‘평범의 미학’이라는 것이 있다. 둥글둥글 원만하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제법 근사한 레토릭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나에게 ‘개성’이라는 단어가 찾아왔다. 대외적으로 고지식한 모범생이라는 평이 자자한 터에 내 삶의 정체성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를 하기 시작했고, 개성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구세주였다.


나는 ‘개성의 미학’을 선포하고 삶의 지표로 삼기로 했다. 도덕이나 원칙 같은 것에 얽매인 나에게 개성에의 천착은 시원한 샘물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의 개성이 모범생스러운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내 발견하게 된다. 중학교 2학년 때 일기를 보면 이러한 고민이 나타나 있다.


나는 어딘가에 구속되거나 제약받는 것을 무척 싫어해. 하지만 이런 자유롭고 싶은 나이지만 나는 여태껏 원칙적이고 형식적인 삶을 고수해왔어. 그래서 몇몇 친구들은 내가 형식적이고 억압적인 것을 싫어한다고 하면 의아해 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지. 정말 나는 어떤 것이 나의 참모습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 1997년 11월 10일



늘 똑같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의 초라함이 참을 수 없어서, 개성이라는 것을 추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집단적 관성을 한번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곳의 자양분을 부지런히 흡수하는 모범생에 불과했다. 개성이라는 단어는 ‘용기’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맺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 가는 주요한 감정 중에 하나가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는 것이다. 내가 사실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쥐뿔도 아닌데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것이 문득 서글퍼질 때가 오고 마는 것이다.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누구나 몸서리를 치게 마련이다.


이런 허무를 감추기 위해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개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갈고 닦은 것들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가령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다른 지식들보다 더 맛깔스럽고 빼어나 보인다. 남들은 상식수준의 말을 반복하는 것 같아 지겹다고 폄하하고, 자신이 좀 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인식의 오류가 조금 있는 것은 너그러이 넘겨줄 수 있다. 자신의 것이 소중한 것은 개인주의 사고의 기초이니까 말이다. 남의 것도 소중히 여겨주고, 배려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다만 일부 지식인 혹은 그에 준하는 윤똑똑이들은 자신의 지식은 훌륭하다고 여기면서 대중들의 일반상식은 경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세상은 합리적 상식으로 굴러가고 있고, 지식이란 것은 좀 더 잘 굴러가기 위한 윤활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 점을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나 또한 이러한 덫에서 내내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내가 좀 더 개성이 넘치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그러한 개성이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란다. 또한 나의 생각이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를 위해 창조적 상상력을 연마하는 데 나의 정성을 쏟을 것이다. 남들과 똑같다고 조바심 내지 않고, 남들과 다르다고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만이 개성의 향연을 펼칠 수 있으리라. 개성이란 무작정 똑같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기꺼이 함께 연대할 수 있다는 정신이며, 차이를 존중하되 차별에는 단호히 반대한다는 의지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익구 중랑구민 되다

잡록 2004. 3. 30. 02:57 |

익구네는 3월 26일 중랑구 묵2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전날에 민족고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 참석해서 밤샘 회의를 하다가 아침 9시 30분 경에 탈출해서 부랴부랴 노원구 상계동 집으로 달려왔다. 아침 8시부터 짐싸기가 시작되어서 꽤 상당부분 진척이 되어 있었다. 포장이사를 불러서 한 관계로 사실 익구가 거들만한 일은 없어서 밤샘회의의 여파로 인해 쏟아지는 졸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새집으로 이삿짐을 어지러이 나를 때 익구는 빈 공간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새우잠을 청하는 촌극을 벌였다.


그저께도 컴퓨터 앞에서 노느라 잠을 2시간밖에 못 잔 터라 이틀 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이 폭발하면서 그 난리통속에서 꿋꿋이 잠을 자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익구는 절대 잠을 줄이면서 어떤 일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는 평가다. 익구 생활에 있어서 ‘수면총량 불변의 법칙’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증명된 셈이다. 한참이나 단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날은 저물어 있었고, 이사는 일단락 나 있었다.


새집은 일단 넓은 거실이 인상적이고, 창가에 중랑천변이 훤히 보인다는 특징이 있었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의 기운이 있는 익구로서는 처음에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는 듯 했으나 어차피 살 집이라는 생각이 발동해서였는지 금세 상쾌한 기운을 찾을 수 있었다. 익구방에는 책꽂이와 책상, 침대와 함께 옛집 거실에 있던 피아노가 들어섰다. 본디 피아노를 방에 들이지 말기를 강력히 제안했으나 거실에 둘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부득이 익구방에 피아노가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예체능에는 천부적인 무소질(!)을 보여주는 익구가 어린 시절 힘겹게 배웠던 피아노 연주의 악몽이 떠올랐지만 할 수 없이 방구석을 차지하는 것을 수락했다.


익구방 정리는 책꽂이에 책을 이리저리 정리해서 꽂은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책배치를 하면서 읽지도 않을 것을 괜히 산 책들에 부끄러워지고, 허영의 독서를 반성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들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익구를 있게 했다는 자부심은 분명했다. 아직 못다 읽은 많은 책들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최대한 손길이 닿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새삼 해봤다. 그러나 컴퓨터에게 상당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익구가 책읽는 시간을 얼마나 확보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익구는 주말을 이용해 주변 지하철 동선을 파악하고, 근처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먹골역 주변을 꽤 뒤져보았으나 아직 변변한 서점을 찾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상점들이 거의 다 구비되어 있었다. 특히 익구는 애견 야니를 위해 가까운 거리에 동물병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안도하는 반응을 보였다. 9년 만에 펼쳐진 이 낯선 풍경들 앞에서 익구는 지나간 것들, 익숙한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새로 맞이하게 될 인연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부풀어 올랐지만 말이다. 익구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진지한 사색과 깨끗한 실천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내가 무지 애지중지하는 나의 온라인 보금자리 익구닷컴의 업데이트가 다시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래저래 바쁜 일이 있다보면 업데이트 신경 못쓰기는 다반사다. 경제에도 호황기와 불황기가 반복되게 마련이듯이 사람이 하는 글쓰기라고 크게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업데이트라는 것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올릴 때 일정 길이 이상의 정돈된 글을 써야한다는 스스로의 제약이 너무 컸던 것은 아닐까. 학기가 시작되고 학과 공부와 학생회 업무 등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차분히 앉아있을 시간이 부족했고, 그래서 번번한 잡글을 내어놓기 어려워졌다.


조금은 정갈하게 내 생각을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너무나 익숙해진 잡글에 대한 결벽증이 어쩌면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문자로 된 텍스트에 대한 사랑이 무척 큰 나로서는 알게 모르게 고집을 부렸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일상에서의 경험이나 교훈에 대한 꼼꼼한 분석 없이 그저 사실을 담담하게 진술해 내는 것을 나태하다고 생각하고, 내면을 여과 없이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의 정제되지 않는 조악한 분위기라고 폄하하면서 너무 배격하려고 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요즘 싸이월드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고, 미니홈피 간의 교류도 무척 활발하다. 나는 싸이월드가 산문정신의 쇠퇴를 가져온다고 호되게 비판해왔다(아무리 봐도 싸이월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긴 글을 쓰기에는 부적절한 구조이다). 하지만 이 정신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태에 일촌등록으로 오가면서 꼬리라도 달아주고 짧은 방명록 남겨주는 정도의 노력으로 비교적 싼값에 사교비용을 치르는 편리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부쩍 든다. 물론 앞으로도 싸이족들에게 투항할 일은 없겠지만, 다만 그네들을 내 잣대로 함부로 폄훼하려고 하지는 않았나 부끄럽다. 어쩌면 내 가슴속에는 “저 몇 마디 말조각들을 돌리며 희희덕거리고 있는 모양새란...” 정도로 깔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물론 내가 본받고 싶은 정말 풍성하고 맛깔스런 미니홈피들도 정말 많이 있다).


잡글을 읽고 쓰면서 내가 느낀 것은 나란 녀석이 소통의 욕구가 무척 강하다는 것이다. 나의 잡글 쓰기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면서도 그 누군가와의 끊임없는 교감을 향한 것이다. 그래서 나의 글이 혹시 나만 알아먹는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노파심에 중언부언 부연설명도 많은지 모르겠다(이것이 많은 친구들이 스크롤의 압박을 호소하는 주원인이 된다^^;). 불현듯 느껴지는 글의 무력함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 무력감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과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 글로써 소통하는 것을 즐기고 글로써 이룩하는 편안함을 사랑하는 잡글예찬론자로 앞으로도 살 것 같다.


자꾸 드는 생각이지만 적극적 의미의 착함이 아닌, 소극적 의미의 착함(혹은 비교적 최소주의의 입장에서 정의한 착함)을 지키기도 무척 힘들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세상만사 일장일단(一長一短) 속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만 하는 고독,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도 늘 버겁게 다가온다. 이런 무거운 짐들을 잡글로써 감시하고 독려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노력이 나의 독백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좋은 이들과의 교류에서 더욱 여물었으면 한다. 설령 이런저런 생채기가 날지라도 대화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자. 미칠 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익구는 6일 02년도 새터 때 같은 조를 해서 인연을 맺었던 성연, 상훈, 두수와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다. 현재 이 세 친구 모두 군인이어서 대화의 90% 이상이 군대 관련 소재들로 채워졌다. 그 분야에 무심한 익구로서는 하나같이 낯설고 정신 없는 이야기였지만, 친구들이 재미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상훈이와 두수는 카투사인 관계로 이런저런 관련 용어들을 알아듣는데 무척 애를 먹어야 했다.^^;


현재 상병인 성연이는 1년 남은 군생활이 얼른 지나가서 전역했으면 좋겠다고 내내 푸념했고, 상훈이, 두수도 맞장구를 치며 얼른 학교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구는 학교생활이 5학기에 접어드니까 많은 의욕을 상실해가고 있어서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반박했다. 그러다가 복학했을 때의 학기 수를 따져보며 네 사람이 모두 함께 강의를 듣는 것은 네 사람 모두가 4학년이 되었을 때나 가능하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깃집에서 저녁을 맛나게 먹은 네 사람은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발렌타인12년산 작은 병을 시켰다. 음주인생 최초로 친구들 모임에서 양주가 등장하게 되자 익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양주가 그 값에 비해 맛이나 양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익구로서는 65,000원짜리 발렌타인12년산이 과연 3,000원짜리 山소주의 효용에 비교해서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머리를 굴려보기도 했다. 또한 유명한 맥주 브랜드인 하이네켄도 마셔보았는데, 미각이 둔한 익구로서는 일반 맥주와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특히 병맥주임에도 흑맥주의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 생맥주의 느낌이라 실망감은 더욱 컸다.


1년 만에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 무척 즐거웠고, 대학 와서 처음 알게 된 친구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특히 이야기 소재가 죄다 군대 이야기들뿐이었는데, 익구는 편한 마음으로 들었다. 사실 군사주의에 대한 반감이나 성차별적 군대문화에 대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던 익구였지만 이런 생각들이 크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후임병을 갈궈야 피차 편하게 된다느니, 여자 경험 없는 순진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지금 군인으로 고생하고 있을 숱한 친구들에 대한 모종의 예의였다.


군대에서의 시간을 허송세월로 생각하는 세 친구들의 일치된 견해를 보면서, 익구는 우리네 군대가 너무 과다한 비용을 지출해가며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그저 몸 건강히 나오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군대라는 공간이 얼마나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졌다. 익구는 획일적 문화를 재생산하는 군대문화에 대해 단호히 맞설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감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군대 휴가 나오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 친구들에게 내가 비판 내지는 어떤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 힘든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세 친구들과 헤어진 익구는 얼른 노원역으로 향했다. 중고등학교 6년 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지만 단짝으로 지내는 친구 동욱이의 입대 환송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1차 감자탕집에서 나오는 것에서 합류한 고등학교 친구들 일행은 2차로 파전집을 잡았다. 익구는 아까 먹다 남은 발렌타인12년산을 동욱이에게 맛보라고 건넸고, 대신 제주도의 한라산 소주를 얻었다. 술은 동동주를 시켰는데, 익구는 막걸리 생각이 나서 한 잔 정도 마시고는 도저히 더 먹을 수 없었다(이는 사발식에 대한 안 좋은 추억에 기인한 것으로 2004 새터 후기를 참조하면 알 수 있다). 결국 동동주를 포기하고 동욱이에게 받은 한라산 소주 남은 것을 마시니 상대적으로 어찌나 달고 맛날 수가 없었다.^^;


여하간 전날 개강잔치가 있어 A반 사발식 시주와 E반 개강잔치 3차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을 소화한 익구는 이틀간 여러 종류의 술을 접하면서 풍성한 개강 맞이 행사를 가졌다. 익구는 이틀 간 마셨던 술의 종류만큼 다양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과 이틀 간 마셨던 술의 양만큼 많은 학습량으로 이번 학기를 지내겠다는 다짐을 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새 안경을 맞추다

잡록 2004. 2. 28. 01:32 |
지난 21일 토요일에 13개월간 쓰던 은색테의 안경에서 회색의 반무테 안경으로 맞췄다. 세 번이나 압축해야 하는 특수한 경우이다 보니 역시나 안경은 수요일에서나 받을 수 있었다. 반무테를 하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는데 반무테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엄청난 두께의 렌즈 압박이 생각보다는 심한 것 같다. 테가 있을 경우 렌즈의 두께가 상쇄되는 반면 반무테의 경우는 그것이 안되기 때문이다. 눈이 나쁜 나는 한 번 해보고 싶었던 무테는 안경점의 만류로 영원히 해보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이 천냥이면 눈이 팔백냥”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눈은 인체 장기 중에 신경이 가장 많이 연결된 곳이라고 한다. 12개의 뇌신경 중 제일 굵은 다발이 시신경이며, 1백만~ 1백 20만개의 신경이 모양과 색깔을 구분하게 해준다고 한다. (1998년 11월 15일, 중앙일보 [사람이 천냥이면 눈이 팔백냥] 기사 참조) 게다가 인간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90%가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귀가 5~9%이고, 나머지가 촉각, 미각, 후각 등이다.


그런 면에서 지독하게 눈이 나쁜 편이 나로서는 무척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 밑천의 80% 중 상당수가 날라간 셈이니 말이다.^^; 현재 내 시력은 나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통상 쓰는 단위인 디옵터로 -6 디옵터 이상을 고도근시라고 하는데 일단 -8을 넘어서고 있으니 고도근시에다가 짝짝이눈(부등시)에다가 난시까지 있어서 안과에서도 안경을 썼을 때의 시력인 교정시력도 1.0을 맞출 수가 없다고 할 정도니 시력 관련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디옵터는 굴절력의 단위로 보이는 거리<수정체를 조절하지 않은 상태에서 망막에 상을 정확히 맺히게 할 수 있는 물체의 거리>의 역수를 말한다. 가령 -1디옵터는 1M(미터)까지 잘 보이며(1/1M), -10디옵터는 10cm(1/10M)거리까지 잘 보이게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첫 시력 검사 때 0.2라는 판정을 받은 후 지속적으로 나빠진 눈은 이제 성장기가 멈춤에 따라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예전에 학교에서 시력검사를 할 때 안경 썼을 때의 시력이라도 높여볼 심산으로 시력 검사판을 외워봤지만, 언제부터인가는 난시의 여파로 막대기 끝이 잘 보이지 않아서 외운 보람이 없게 되어 버렸다. 요즘은 웬만한 시력검사가 기계로 이루어지다 보니 딱히 외우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이 나쁜 눈 덕분에 신검에서도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사유가 ‘안과질환’이라고 나오던데, 안경만 제대로 쓰고 있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데도 공익근무를 시키는 것을 보면, 대체 현역 군인들의 생활 중에 안경을 벗어 던지고 활동해야 하는 것이 있기는 있단 말인가? 뭐 주위에 눈 나쁜 사람이야 흔히 찾을 수 있으니 이런 호들갑 떨 것도 없지만 그래도 눈이 나쁜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지난 은테 안경은 어쩌다가 백화점 안경점에서 맞춘 데다가 일제를 쓰게 된 관계로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렀다. 안경테도 20만원, 안경알은 20만원이 훨씬 넘어 거의 50만원에 육박하는 금액(48만원 정도로 기억)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안경테가 5만원, 안경알은 19만원으로 해서 24만원에 맞췄다. 보통 사람 기준에서는 엄청나게 비싼 안경 값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맞추는 내내, 안경테를 괜히 싸구려 맞추는 것은 아닐까, 안경알이 이렇게 쌀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싸게 맞춘 것이다.^^;


이전 안경에 비해 거의 반값에 맞춘 새 안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재미난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얼마짜리 안경이냐에 신경 쓰기 보다 내 내면을 가꾸는 데 더 치중해서 좀 더 다정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 [憂弱]


덧붙이며 - 흔히들 내가 눈이 이렇게 나쁜 것은 책을 많이 봐서라고 덕담 삼아 해준다. 하지만 나는 유전적인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눈이 나쁘게 시작했고, 책을 많이 봐서라기보다는 책 읽는 자세가 많이 불량해서라는 것이 더 적절하다. 요즘도 책을 절대 책상 같은데서 못 읽고 침대에 기대어 읽는 게 대부분이니 말이다. 게다가 컴퓨터는 또 얼마나 해대는가...^^;
Posted by 익구
:
익구는 26일, 27일 이틀 간 열린 경영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새내기 수강신청 지도 업무를 무사히 종결지었다. 새내기 수강신청의 경우 시간대가 겹치거나 수강정원이 부족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속출해서 애를 먹었으나 학사지원부와의 조율 끝에 한바탕 난리를 치렀지만 무사히 마쳤다. 2004년도부터 대대적인 교과과정 개편이 추진되고 있는데 학교측이나 학생들이나 모두 혼란스러워 앞으로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익구도 지속적인 수강신청 연구를 통해 도사가 된 터라 전산실에서 이뤄진 새내기 수강신청을 이 사람 저 사람 도와주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26일 경영대 오티 오전 일정에서 학생회장 10분간 인사 시간이 있었는데 익구는 날림으로 작성한 원고를 변형해서 간단한 인사를 드렸다. 다음은 원고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37대 경영대 학생회장 경영학과 02학번 최익구입니다. 새터 이후에 처음 뵙는 건데 새터는 재미나게 잘 다녀오셨나요? 새터를 총괄한 저로서는 부족한 점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앞으로 펼쳐질 대학 새내기의 다양한 행사들에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새내기 여러분, 고려대학교 그것도 우리 경영대학에 오신 것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의 어려운 선택이 결코 후회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이는 겉멋만 든 오만이 아니라 호상인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진솔한 자부심입니다. 이제 이 자부심을 새내기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까 합니다.

저는 대학 새내기 여러분들께 네 가지 정도를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자유를 만끽하시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 대학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유롭게 쓸 권리가 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대학은 어쩌면 고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따릅니다. 우리는 그 책임 앞에서 고독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쏟아지는 자유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에 따르는 고독을 마다하지 않는 그래서 철저히 자기 몫의 일에 자기탓을 할 수 있는 멋진 대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남 핑계대기 쉽고, 변명으로 떠넘기기 쉬운 세상이지만 자신이 치열하게 고민해서 한 일을 자기 책임으로 짊어지는 모습이 가장 대학인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자신만의 가치로운 일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22세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온 천하가 다 무너지더라도 내가 이것만은 꽉 붙들고 놓을 수 없다. 내가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나의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양한 생각들이 만나고 숱한 갈림길이 있는 대학생활에서 자신의 꿈을 투자하고 싶은 것이 어떤 것인지 궁리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키에르케고르처럼 죽네 사네 할만한 큰 가치를 붙잡지는 못해도 자신이 이거다 싶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자신에게 가장 큰 효용을 주는 것 하나를 건져 가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콩달콩 열심히 추구한다면 누구나 자기 인생의 당당한 주체로서 또한 주류로서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비판적 사고를 기르시기 바랍니다. 비단 경영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들을 접하면서 또한 다양한 사회 이슈들을 접하면서 남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맙시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 한 번 더 비판적으로 생각해서 취사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이런저런 다양한 정보의 원천들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성실함과 더불어 자기 스스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평가하는 새내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주자는 “큰 의심을 가지면 진보도 크고, 의심이 작으면 진보도 작다.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으면 진보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욕하기는 쉽지만 티끌만큼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티끌만큼이라도 바꾸려는 노력과 더불어 우선은 세련되게 섬세하게 욕하는 법부터 배워야겠습니다. 비판적 사고는 창조적 지성인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남과 연대할 줄 아는 개인주의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앞서 말한 책임이나 자신만의 가치, 비판적 사고는 모두 개인주의자로 수렴됩니다.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타인과 단절된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 타인과의 이런저런 연대 속에서 피어납니다. 저는 큰 꿈과 높은 실력을 가진 여러분들의 연대가 우리 곁의 소수자들, 약자들, 비주류들을 향하기 바랍니다. 높이 솟아오른 정신일수록 가장 낮은 곳을 응시하는 법입니다. 우리 모두 높아질수록 낮은 곳을 볼 줄 아는 개인주의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시시콜콜한 당부의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저 같은 경우 새내기 시절 이런 말 들으면 감동 먹고 그런가 보다라고 했었는데, 요즘 후배님들은 원체 영특하셔서 이미 다 이런 것쯤이야 다 알고 있으시다보니 뻔한 말을 해서 괜시리 죄송스럽습니다.^^; 그래도 많은 덕담들 너무 지루하게 여기지 마시고 그러려니 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분명 대학생활은 기대만큼 녹록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경영학도입니다. 경영학도의 기본적인 자세 중의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경영학도는 손해보는 장사를 정말 싫어합니다. 새내기 여러분 모두 경영학도답게 대학 4년을 남는 장사하시기 바랍니다. 훌륭한 교수님, 그리고 곁에 있는 동기들,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한다면 먼훗날 자신이 일궈낸 엄청난 수익에 흐뭇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금 안암의 새끼 호랑이가 되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지금까지 37대 경영대 학생회장 최익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익구
:
익구는 친구들 사이에 별명들을 서로 불러주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본명을 불러주기를 즐긴다. 그러나 그런 익구마저 본명 대신 다른 명칭을 쓰는 이가 있으니 바로 친구 섭승현이다. 승현이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을 하게 되어 알게 된 친구로서 익구는 ‘섭’이라고 부른다. 이유인즉슨 승현이라는 이름이 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특이한 성씨인 ‘섭’으로 호칭을 정했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섭은 현재 중국 인민대 법학과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방학이고 해서 한달간 한국을 들렀던 섭이 곧 중국으로 떠나게 되어 익구는 23일 월요일에 약속을 잡았다. 익구와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인 청원이도 가까스로 섭외가 되어 셋이서 중계동 은행사거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주로 놀러가는 노원역 일대와는 달리 중계동 일대는 학원가들이 많은 편이라 비교적 거리도 한산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결국 그 일대를 주욱 둘러보고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이 때가 거의 자정이 다될 무렵이었다.


익구의 강력한 주장으로 흑맥주 2000cc를 시킨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섭이 중국 유학생이다보니 이야기 화제가 중국 관련한 것이 많이 나왔다. 섭은 법학도인 관계로 중국의 사법제도를 조금 이야기 하다가 중국의 사법부는 독립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에 공산당 말고 다른 정당들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중국 당국은 “공산당 영도하의 다당제”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익구는 공산당 일당독재가 이어지는 한 중국의 발전은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민주주의나 인권에 대한 열망은 자연히 높아질 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존경받는 선진국으로서의 지위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의 우월성을 인정해야한다고 말했다. 섭은 13억 인구의 그 엄청난 규모의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데 일당독재 시스템이 필요악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청원이는 미국의 패권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면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중국 등이 도전하는 다극체제로의 진입은 요원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익구는 아무리 사람수 많은 나라라고 해도 중국 인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엘리트층이 두터워지면 결국 저 잘났다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어 있고 일당독재 시스템의 적실성을 상실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섭은 상당수 식자층에서 그런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거나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답했다. 청원이는 미국이라는 유일 패권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EU같은 한중일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 연합체를 창설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밝혔다. 익구는 아시아 연합은 회의적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중국보다는 차라리 EU가 미국을 견제할 세력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는 기대를 보였다.


이에 섭과 청원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차이만 봐도 유럽통합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그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익구는 현재까지만 해도 놀라운 성과이며 더욱 가시적 성과가 기대된다고 반박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돌다가 중국이 그나마 도전하고 있을 뿐, 현재 세계는 서구 중심의 질서 안이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감했다. 터키가 EU에 가입하려고 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에 씁쓸함에 느끼면서 한때 세계의 주도권을 지었던 동양의 몰락은 너무 안주한 결과라며 혀를 찼다. 익구는 덧붙여 서양의 지속적 자기 혁신 노력도 한 몫 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세 사람은 모두 서울외고 중국어과 출신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친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익구와 청원이는 중국을 꼭 가보고 싶다며 중국 여행에 강한 집념을 보이기로 했다. 섭은 자신이 먹고 살 터전이 될 중국이 앞으로도 경제발전을 하기를 기원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익구는 앞의 이유들을 들어 중국의 성장이 발목을 잡힐 것이라며 폄하했다. 청원이는 두 사람의 설전을 듣고 있다가 역사학도답게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 문제를 제기했다.


섭은 최근 들어 노골적으로 고구려사를 자기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듯하다고 말했으며, 이미 시험 등을 통해 그런 내용을 주입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익구는 이에 분개하며 우리의 역사에 대한 무지가 결국 고구려사를 유린당하게 하고 있는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정작 청원이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서 그나마 우리 역사로 볼 수 있는 것일 뿐, 사실 고구려가 온전히 우리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익구는 졸지에 민족주의자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그건 어불성설이며 그렇게 따지면 어느 나라가 지난 나라를 이어 받아 그 역사를 독차지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 밖에도 중국과 연관된 소재를 조금 더 나눠보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중국이 더 이상 꾀죄죄한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에 합의를 했다.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는 무서운 경쟁상대로서 시샘이 난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았다. 익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늘어나는 돈만큼 그에 비례해서 중국의 고민도 늘어날 것이라고 마지막 태클을 걸었다.^^; 그런 와중에 지금 중국 걱정 할 때가 아니며 이웃한 북한만 생각하면 속이 막힌다는 것에도 놀랄 정도로 합의를 이뤘다. 중국만큼의 유연성도 보이고 있지 못한 꽉 막힌 조선로동당 꼴통들에 대한 구박도 이어졌다.


북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 와중에 청원이는 뜬금없이 부시가 제발 이번 미 대선에서 떨어지기를 바란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세 사람은 엄청난 공감대를 형성했다. 세 사람은 우리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도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앞선 이야기들의 사소한 차이들은 다 덮어지고 한바탕 큰 동감의 마당이 펼쳐졌다.^^


중국 이야기를 마저 나누다가 한 때 이슈가 되었던 파룬궁 사태가 궁금해서 섭에게 물었다. 그러나 섭은 파룬궁 사태가 무언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국에 종교가 있긴 있지만 사실상 종교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상황을 전했다. 익구는 마르크스의 말대로 종교는 아편이라는 인식이 있는가보다고 받아 넘겼다. 갑자기 화제가 종교쪽으로 넘어 오면서 평소 익구의 소신대로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우악스러움을 지적하며 게거품을 물었다.


청원이는 신이 없는 종교인 불교 신자인 만큼 과연 종교를 가진 사람도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익구는 유신론자이지만 무교임을 천명했고, 섭은 카톨릭이지만 그리 열심히 나가는 신자는 아니라고 했다. 셋은 종교인들 중에 상당수는 종교를 통한 인맥 구축 같은 세속적 꿍꿍이를 가진 사람일 것이라는 비판을 했다. 또한 종교가 일단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건드리기 쉽지 않고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데 모두 동감했다. 익구는 다만 헌법상 보장된 종교의 자유는 믿을 자유와 더불어 안 믿을 자유도 보장하는 것임을 종교 가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니 술, 안주가 모두 떨어졌다. 결국 자리를 떠서 2차 장소를 물색하던 중 분식집에 자리를 잡았다. 된장찌개 곁들인 비빔밥, 김밥, 쫄면 등을 시켜 배불리 먹으면서 이야기 마당을 이어 갔다. 그러던 중에 앞으로 우리 무엇을 해서 밥 벌어먹고 살까라는 고민을 해봤다. 세 사람은 법학도인 섭이 사법부에, 행정고시 준비생인 청원이는 행정부에 진출하기로 하고, 남은 내가 입법 관련으로 진출해서 삼권분점을 해보자고 농담 삼아 말했다. 분식집 서약이라고 명명해놓고서는 서로 기가 막혀서 한참을 낄낄거렸다. 여하간 세 사람은 야참을 맛나게 먹으며 흡족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세 사람은 헤어졌다. 오랜만의 긴 대화에 만족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아쉬운 눈치였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섭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익구는 앞으로도 이런 푸근한 이야기 마당을 친구들과 나눴으면 한다는 포부를 밝히며 이번 회동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2004년 2월 16일 ~ 18일 2004 새내기 새로배움터(이하 ‘새터’)가 막을 내렸다. 새터 이야기를 작년 12월 초부터 시작했으니 두달 간은 새터에 시달렸지만... 너무도 짧고 허망하게도 2박 3일은 지나가 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행사인 새터는 본디 어설프고 모자르게 마련이지만... 내가 책임지고 준비한 이번 경영대 새터는 여러모로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많다.


내가 좀 더 신경 쓰고 챙겼다면 좀 더 알찬 새터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내 게으름 때문에 못다 이룬 일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는 새터인 만큼 새터를 기억하는 것도 갖가지 빛깔들이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새터의 부족함, 잘못된 모습들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다 허접한 학생회장인 나의 탓으로 돌려졌으면 좋겠다. 그간 못난 사람이 시키는 일 묵묵히 잘 도와준 03학번 후배님들, 새터에 열심히 참석해준 04학번 새내기들은 그저 좋은 기억만 간직하기를 바란다. 모든 잘못들은 내가 걸레가 되어 쓱싹쓱싹 훔쳐내고 싶다.


새터는 기본적으로 가장 위험부담이 높은 행사다. 학생회 사업 중에서 가장 먼저 맞부딪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학생회 일꾼이 아니고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잘 모르고 돈은 어떻게 써야하고, 뭐를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여기저기 물어서 채워나가야 하다보니 이래저래 삽질을 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런 새터의 위험성과 비례해서 일년 행사 중에서 가장 참여율이 높다는 특징도 있다. 물론 9월에 있는 고연전도 엄청난 참여율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경기에 열광하고, 응원에 미치는 고연전이라고 해도 낯설음과 설렘이 교차하면서 제 돈 내고 2박 3일간 어디론가 떠나서 새로운 사람과 뒹구는 새터의 위상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새터 안가면 왕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들도 새터의 무시 못할 위상 때문이리라. 단지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새터는 대학 한해살이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다.


이렇게 거창하게 풀어놓지만 사실 조금 호들갑을 떠는 감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귀차니즘들을 뚫고 짬을 내어 회의를 하고 발로 뛰는 과정들 하나하나가... 지나가면 손해보는 장사 같아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기억이 되어 버린다. 경영학도로서 새터 준비에 발 담그는 것이 손해보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근 발을 차마 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반 일꾼들이 자꾸 손해 보는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할 때 속 편히 맞장구를 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작년 12월 기말고사가 다 끝난 금요일 오후에 새터준비위원회 구성을 위한 회의를 했다. 중앙 사무국 회의를 들어가서 새터 실무를 총괄해줄 새터준비위원장을 선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래도 잡일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다들 눈치채고 선뜻 자원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다행스럽게도 D반 부반대표였던 03학번 이재희군이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맡아주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경영대 사무국장 겸 새터준비위원장 겸 D반 부반대표라는 초호화 감투가 등장하게 된다.^^; 사실 이번 새터에서 재희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빼앗았는데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새터준비위원장을 뽑고 사무국 회의가 시작되면서 새터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작년에 갔던 강원도 평창이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 괜찮아서 다시 갈까 생각도 했지만... 기획사는 강원도 속초 일대를 들고 나왔고 결국 강원도 속초 사조리조트라는 곳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장소 결정이 끝나고 이제 세부적인 내역들을 산정하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인 예상인원 산출에서 술 베팅 같은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다행스레 2003 새터도 깊숙이 관여했던 터라 일단 작년 기준으로 가감을 하기로 해서 비교적 수월했던 것 같다.


예상인원은 400명이라고 잡았는데 실제 새터에 참석한 인원은 480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새터를 마치고 학교로 오는 11대의 버스가 11번 버스가 몇 석 남은 것을 빼고는 거의 꽉 차서 갔으니 말이다. 준비한 입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대박이 터져서 뿌듯하기도 하지만... 물품들도 부족하고 숙소 환경도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과연 이만한 인원들이 다음 새터에서 모이겠느냐는 자만심도 조금 생기기도 했지만 말이다.


술 같은 경우도 400명 예상하고 작년과 비교해서 산정했다. 2003 새터 때 소주 25상자, 막걸리 30상자(750ml 들이), 맥주 42상자였던 것이 2004 새터 때는 소주 40상자, 막걸리 40상자(750ml 들이), 맥주 3상자(패트병 6개 들이)로 큰 폭의 변화가 있었다. 일단 작년 새터 때 맥주가 남고 소주가 모자랐다는 평가와 막걸리가 부족했다는 평가를 수렴했다. 그러나 날로 늘어가는 술 못 마시는 이들을 위해 일정량의 맥주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소수여서 맥주가 상품용으로 최소한도로 책정된 것은 아쉽다. 내가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술을 잘 못마셔서 곤혹을 치러야 했던 새내기들이 분명 적잖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새터가 끝나고 돌아보니 소주나 막걸리가 모자랐다는 말을 들리지 않을 것을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상인원보다 수십명이 오바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레 넘어간 것을 보면 확실히 술을 적게 마시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내기들이 내게 가장 많이 물어보고 걱정한 것도 술을 강제적으로 마시게 하나요, 술을 못 마시는데 어쩌죠... 이런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둘러댔지만 모든 방에서 술을 강권하는 장면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술 마실 자유가 있다면 술 안 마실 자유도 있다. 모든 주당들은 그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새터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각 반 일꾼들에게 연락해서 회의 일정을 맞추는 일이였다. 다들 바쁘게 사는 친구들인데 비는 시간 맞춰서 회의 한 번 열기가 녹록지 않았다. 하물며 방학중인데 학교까지 와서 잡스런 회의 잠깐 하러 들르라고 하기가 참 미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회의는 단 한 번만 열고 모두 오프라인에서 회의를 연 것은 내가 아직 얼굴 맞대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한테 무언가 강제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이지만 회의 오라고 통보하고, 늦는다고 닦달하는 것은 참 고역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회의에 참석해준 03학번 새터준비위원님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대강의 윤곽이 잡히고 2월 3,4일로 경영대 LT를 다녀왔다. 가서 주로 한 일은 새터 답사와 새터 실무 논의였다. 공간들을 열심히 나눴지만 막상 답사를 가서 보니 반별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쉬운 대로 함께 가는 단과대와 공간을 나누고 경영대 각 반별 공간을 나눴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안전대책에 대해 논의를 나눴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실제로 크게 지킨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각 방의 안전은 각 방이 책임진다는 대원칙은 확실히 지켜져서 2박 3일간 안전 걱정 없이 보낸 것 같다. 철저한 출입통제 등을 기획했지만 내 도가적 습성이 폭발해서 흐지부지되었고, 매시간 인원보고도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경영대 LT를 마치고 본격적인 새내기 연락에 들어갔다. 확보한 새내기 연락처를 각 반별로 분배해서 새터에 대해 알렸다. 이번 새터에서 엄청난 인원이 몰린 것은 높은 재학생의 참여와 더불어 새내기들의 열성적인 참여가 합쳐진 결과다. 이 두 개가 한꺼번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나는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 행운은 어디까지나 모든 이들의 노고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각 반 03학번들이 개별 연락을 하는 사이 나 또한 04학번 커뮤니티나 전자우편, 쪽지를 통해 새터에 대한 홍보와 문의사항을 받았다. 인터넷 중독자인 나로서는 이런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새내기 연락들을 돌리고 온라인 공지를 띄우는 동시에 본격적인 새터비 수납이 시작되었다. 작년에도 새내기 새터비를 걷었던 터라 익숙하게 통장정리와 입금확인을 했다. 사실 새터 결산이 끝나는 그 날까지 나를 괴롭힌 것은 적자의 압박이었다. 회계학적 보수주의에 따라 최대한 비관적으로 계산한 새터 재정 운영은 나를 내내 괴롭혔다. 아마 모든 새터준비위원들도 걱정이 태산 같았을 것이다. 다행히 예상을 웃도는 참가인원으로 인해 새터비를 많이 걷혔고, 각 반에 작년 새터와는 달리 풍성한 뒤풀이비까지 남기는 쾌거를 이뤘다. 40만원이라는 손망실비를 지불하고서도 끄떡없었던 이번 새터는 정말 재정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새터 당일날 아침 잠을 설치다 새벽에 눈을 떴다. 학교에 가서 먼저 점검할 일들을 확인하고 짐을 꾸린 뒤 학교를 향했다. 사실 나는 메모하는 습관이 없고, 그저 이면지를 사용해서 여기저기 끄적이는 수준이라 급히 할 일도 종종 빼먹기도 했다. “기억력이 좋은 머리보다도 무딘 연필이 더 낫다”는 독일 격언이나 총명불여둔필(聰明不如鈍筆)이라는 한자성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기록하는 습관은 어느 정도 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행히 수집욕이 있어서 잡글을 잘 모아두는 것은 잘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다. 여하간 내가 까맣게 있고 있던 것들은 03학번 후배님들이 상기시켜 주고 해가며 빠짐없이 꾸렸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빗발치고 나도 여기저기 연락하며 정신이 없는 와중에 이런저런 일들을 해치우고 새터 중앙판 행사 장소인 노천극장으로 향했다. 새터비 현장납부를 하면서 새내기들의 학번과 반을 알려주고, 술과 기념품 같은 물품들을 분배해서 나르는 등의 일들이 이어졌다. 새터 중앙판 행사를 마치고 차에 타는데 놀랍게도 새터 참가 인원이 예상을 넘었음을 그제서야 확인했다. 결국 고민 끝에 여분의 차를 한 대 더 신청했다. 버스 한 대당 44만원이서 꽤 부담이 컸지만 그래도 사람이 넘쳐서 한 대를 더 부른 것이라 기분이 좋았다. 여행자보험을 한명도 빠짐없이 쓰게 하기 위해 각 차를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강원도 속초까지는 먼 여정이라 초조해졌다. 결국 당초 계획한 진부령 길 대신 꾸불꾸불해서 불편하지만 시간이 단축되는 미시령 길을 타기로 했다.


미시령의 가파른 고개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착해서 짐들을 풀어 놓고 보니 어느덧 8시가 다 되어 있었다. 결국 경영대 중앙판 행사는 11시가 되어서야 시작하게 되었다. 5곡을 위해 겨울방학 내내 준비한 경영대 밴드 너와나의 흥겨운 공연과 고려대학교 응원단 기수부 YT의 열정적인 응원 한마당을 이어갔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KUBS와 KUTV 영상물 상영을 기술적인 결함으로 상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름대로 신경 써서 빔 프로젝터도 대여하고 VTR로 챙겨왔건만 실패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슬프게도 최악의 기계치로 유명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여하간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중앙판 행사를 석연치 않게 마무리 짓고 각 방별 친목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경영대 본부실에서는 머리를 쥐어뜯는 결산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새터 재정 적자의 공포는 없었지만 재학생 참여도에 따라 새터 뒤풀이비가 크게 차이나서 당황했다. 그러나 결국 당초 합의한대로 각반에서 중앙 할당량을 제외한 모든 금액은 각 반별 뒤풀이비로 쓰기로 결정했다. 높은 참가율만큼이나 넉넉한 새터 재정이 꾸려져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많이 늦어진 일정과 계속된 새터 결산 회의의 피곤함으로 안전대책에 대한 논의를 깊게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방별로 안전수칙이 잘 지켜져서 2박 3일간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새터를 치를 수 있었다. 본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깨어 있으려고 했건만, 각 방 안전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잠이 몰려와서 술 창고 마련된 방에서 술도 지키고, 한 손에는 숙소비 지급을 위한 돈 가방을 꼭 끼고 새우잠을 잠시 청했다. 나는 꼭 무슨 일을 할 때 밥을 굶고서 하는 습관이 있는데 새터 첫째 날 내가 한 식사라고는 저녁 때 먹은 서늘하게 식은 점심 때 도시락이 전부였다. 제발 밥은 챙겨먹고 일을 해야겠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말이다.^^


여하간 아침이 밝았고, 여기저기 골아 떨어진 풍경들 속에서 최대한 아침밥을 먹으라고 깨워본 뒤 반별 대동놀이, 촌극 준비, 발표 같은 행사들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본부실을 지키며 별 탈 없이 진행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고종석 선생의 [코드 훔치기]라는 책을 펴들었는데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해 논하면서 ‘차이의 권리’는 교묘하게도 ‘권리의 차이’로 전복된다는 구절을 접하고는 무릎을 치며 몇 번을 되뇌었다. 역시 밖에 나와서 읽는 책의 맛은 참으로 삼삼하다. 잠시 내가 속한 반인 E반 촌극을 보러 갔는데 2년 전에 선배님들께 촌극을 공연하던 기억이 나서 피식 웃어보였다. 나는 그 때 미팅 자리의 웨이터를 했는데 연기력은 정말 꽝이었다.^^; 그래도 제가 잘났다고 믿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라 나 때의 촌극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뭔가.^^;


여하간 오후 행사도 일단락되고 대망의 사발식이 이어졌다. 새터를 준비하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결국 올해 새터에서도 경영대 5개 반 모두가 사발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사발식을 안 하는 단위들이 늘어나고 있고, 사발식이 불필요하게 새내기들의 공포를 자아내는 경향도 없잖아 있다. 사발식은 고대문화의 패막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지목되어 뭇매를 맞고 있고, 이런 따가운 비판 덕분에 사발식의 양과 강도(?)과 많이 줄어 들었고, 강제하는 분위기도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밉지만 선뜻 내팽개치기 힘든 고대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좋게 생각하고 싶다.


일단 사발식의 의미는 종전까지의 획일화된 입시 위주의 교육을 벗어 던지고, 자유롭고 창조적인 지성인으로서 다시 태어나자 정도의 의미로서 막걸리를 마시고 토한다는 제법 비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실 이 의미가 맞는 것인지의 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정도 선에서 매듭지어야지 사발식을 신성시하는 오바질도 삼가야 할 것이다. 사발식에 대해 그리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이지만, 막상 시주한답시고 새내기들 앞에 서니 갑자기 사발식이 나름의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역설하기 시작했다. 사발식을 앞두고 긴장된 새내기들 앞에서 사발식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줄어드는 사발식의 양만큼 사발식의 위상도 축소되겠지만 한바탕 즐거운 마당으로써 기억될 수 있었으면 한다.


사실 학생회장이 사발식 시주를 하는 것이 그간의 관례였지만 할지 말지 무척 고민했다. 고대문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면 그것을 유지하고 계승하는 역할도 있지만, 그에 비례해서 이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을 듣고 수용해야할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입장 정리를 선뜻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의사만으로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각 반 사발식 시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사고를 쳤다는 것이다.^^;


전날 술 한잔도 안 마시고 이래저래 노곤한 몸으로 막걸리를 들이 부으니 몸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결국 마지막 반인 E반을 남겨두고 기절쇼(?)를 펼치는 초유의 사태를 벌여서 E반에서는 시주를 못하고 말았다. 네 번째 반인 B반에서 어떻게 나온 것 같기는 한데 나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황 수집을 해보니 쇼파에 기대 있다가 옆으로 스르르 쓰러졌다고 한다. 내가 새내기였던 02 새터 때 사발식 순서가 E반 새터 새내기 65명 중에 꼴지로 하는 바람에 5시간 가까이 기다린 끔찍한 기억이 있는데... 역시 나와 막걸리와는 대략 궁합이 좋지 않은 듯 하다.^^; 여하간 졸지에 사발식 시주 다 못하고 쓰러진 학생회장이 되고 말았다.^^;  


일찍 쓰러져서 잠든 관계로 아침에 무척 개운했다. 전날의 민망한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던 나로서는 모두에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다들 괜찮냐는 반응들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사발식 시주하던 내가 왜 본부실 이부자리에 누워있었는지 생각하니 전날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여기저기 증언들을 수집하고 내가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발식 시주를 끝까지 돌지 못한 것은 못내 미안한 일이었지만... 뭐 가끔은 학생회장이 먼저 쓰러질 수도 있지 라며 넉살좋게 받아 남겼다.^^


여하간 2박 3일은 이렇게 숨 돌릴 틈도 없이 빨리 지나가 버렸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내내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욕심은 많았지만 내 개인의 역량부족과 철학의 부족이 새터를 제대로 꾸미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문득 고등학교 1학년 때 다니던 학원 국어 선생님의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대학시절 연극부원이었다는 선생님은 정말 연습연습 끝에 상연한 연극이 끝나고 아무 이유 없이 그저 펑펑 울었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잘 끝났으면 된 것을 가지고 울었다는 선생의 잉여적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때 선생님은 지나가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별 게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세상사의 허망함을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허망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후회할 여지를 줄여야 한다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더라면 오해도 안하고 좋았을 것을...


해질 무렵 고대로 돌아온 우리 모두는 반별 뒤풀이 장소로 흩어졌다. 이로써 나의 역할은 모두 끝났다. 나란 존재야 금세 잊혀지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지만 모두들 이번 새터에서 좋은 만남들 가졌다면 그것으로 대성공이다. 끝으로 도덕경 2장의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란 구절이 떠오른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하기사 이번 새터에서 나의 역할이란 극히 미미해서 공을 주장할 것도 없지만...^^; 이제 새내기들이 각 반으로 흩어져 동기들과 선배들과 알콩달콩 재미나게 보내는 모습을 보며 괜히 침 흘리지 말고, 하나둘 나란 녀석을 모른 체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다짐이다.


잊지 못할 2004 새터 함께 해준 모든 이들께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앓던 이를 뽑은 시원함보다 더 강한 서운함이 나를 짓누르지만... 지금은 회한보다는 새로운 만남을 주선했다는 벅찬 뿌듯함을 이야기할 때다. 끝으로 고생하신 모든 경영대 학우 여러분 사랑합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28일 익구는 영어학원을 가는 길에 함께 수강하는 친구 청원이와 영어학원 결석을 극적으로 합의했다. 결국 동대문역에서 내릴 것을 5호선 광화문역으로 행선지를 바꾸어 교보문고로 향했다. 익구는 교보문고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탁한 기운에서 과도한 난방비 지출을 가슴 깊이 구박했다. 함께 서점을 둘러보던 청원과 익구는 결국 서로의 관심사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고 알아서 책들을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익구는 교보문고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철학 분야를 훑어본다. 읽지도 못할 난해한 책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철학소년으로서의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듯했다. 특히 경외하는 스승인 칸트 관련 서적들은 늘 똑같이 꽂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맘이 설렌다는 특이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으로는 근처에 있는 경제분야 책들 중에 쉽고 재미난 것이 없을까 뒤적여 보지만 역시 선뜻 손이 가는 책이 없음을 느꼈다. 유명하다 싶은 입문 서적들은 일단 충동구매로 확보해둔 터라 딱히 더 추가할 책이 없어 보이는 반응이다. 다음으로는 정치학 서가에서 사회학 서가까지 이어지는 사회과학 분야를 주욱 돌아보았다. 역시 딱히 눈에 띄는 것이 없어서 몇 권 꺼내 보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기겁하며 다시 집어넣고 말았다.


익구는 맨날 서점만 같이 가면 나올 줄 모른다며 타박하는 청원이의 등쌀을 감안해 이번에는 1시간만에 이 한바퀴를 돌아보는 속도를 냈다. 익구 집 책꽂이 꽂혀있는 수많은 충동구매 도서들이 아직도 간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데로 서점만 가면 알 수 없는 유혹에 이끌려 한권씩은 사들고 오는 익구를 보며 청원이는 병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결국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정치경제학과 경제주의]라는 얄팍하고 곱상한 경제 개론서를 구매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경제주의’라는 단어에 혹해서 충동구매했다는 평가다.


교보문고 회동을 즐거이 마치고 익구는 새터 회의 관계로 학교로 향했다. 새벽 5시까지 술 마시고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숙취 현상이 그리 크지 않은 것에 내심 만족했지만, 회의 내내 했던 말 또 하면서 이것저것 중구난방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증세를 보여 회의 참가자들을 대략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여하간 회의도 단란하게 잘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유니스토어에 들려 평소 점찍어 두었던 [시장의 도덕]이라는 책을 구매했다. 이 책 역시 제목과 서문을 읽고 충동구매했다는 지적이 자자하다. 그러나 익구는 인터넷 서점에서도 절판된 것이라 대학서점에서 재고 남았을 때 확보해둔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라며 반박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책을 마지막으로 그간 보유하고 있던 문화상품권을 모두 소진했던 것이다. 6, 7장 정도 보유하고 있던 문화상품권이 한달 만에 동이 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혹자는 익구에게 문화상품권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물고기를 맡기는 격이라며 이미 예견된 결과라고 논평했다. 또한 삼월에 개강하고 대학 교재를 사기 위해 남겨 두겠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에 대한 반발도 예상된다. 그칠 줄 모르는 도서구매벽을 치유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다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익구는 이런 문제의식에 통감하면서도 새로 사온 책들을 책꽂이에 꾸역꾸역 쑤셔 넣으며 흐뭇해하는 모습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나는 내 가족들에 대해 무척 무심한 편이다. 친구들과는 곧잘 펼치는 대화마당도 가족들과는 좀처럼 펴 보일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몇 문장의 짤막한 대화들이나 지극히 사무적인 대화들을 나누기 일쑤이다. 동생과는 그래도 재미난 이야기 마당을 열어보기도 하지만 부모님과는 도통 그러지 않는다. “가족주의는 야만이다”라는 명제의 자세한 내막은 들여다보지 않고 그 날카로움에 매혹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제 멋대로 둘러대 본다.


그래도 소심한 모범생으로 학창시절 그럭저럭 마친 지난날 덕분인지 부모님과 나 사이는 은근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때때로 개인주의적 신경질이 발동해서 다툴 때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부모님은 내게 큰 간섭 없이 내 하고자 하는 데로 놔두셨고, 나 또한 웬만한 일들은 부모님과의 상의 없이 내 마음대로 결정한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부모님으로부터 대단히 독립된 지위에 있는 듯 하지만 알바 하나 하지 않는 나는 재정적으로 부모님께 의존해 있다^^;)


여하간 엄마, 아빠와 교류가 부족한 점은 반성하고 있지만 억지로 소통의 절대량이나 밀도를 높이려고 노력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난 내게 주어진 문제를 풀어내고 고민을 키워내면서 알콩달콩 재미난 삶을 꾸려나가는 것으로 자식된 도리를 다할 생각이다. 자식을 향한 불필요한 근심걱정을 덜어주는 것은 소극적 의미에서의 효도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못난 아들이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그 중에서 두 가지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지극히 사소한 것이지만 내 인식의 기초에 보이지 않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장면1 -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날

나 - 한글에 대한 글짓기 한 거 있는 데 한 번 읽어봐 줘. (원고지 대여섯 장을 넘긴다)
엄마 - (조금 읽어보신 후)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이다”라는 말은 우리나라 국민이니까 하는 말이지.
나 - 아니야. 한글이 최고로 좋은 언어라고 세계에서 모두 인정했다구.
엄마 - 그런게 어디 있어. 외국 사람들은 자기 나라말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 - 아니야 세계의 유명한 국어학자들도 다 한글이 훌륭하다고 했다니깐...
엄마 - 아무리 한글에 대한 글짓기라고 해서 한글에 대한 칭찬을 하는 건 좋은데... 무조건 한글은 세계 최고다라는 말만 써놓고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거 같구나. 이것 가지고는  한글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가 없거든.
나 - 그래도 원래 좋다는 걸 좋다고 말하는 걸 어떡해... (결국 작은 실랑이 끝에 엄마가 고쳐준 약간의 맞춤법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제출함)


사실 한글에 대한 글짓기라는 숙제가 주어졌다면 숙제를 내준 사람의 의도는 아마도 한글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과 애정표현을 기대했으리라. 나는 그것에 충실하게 미사여구를 동원해 한글만세를 외쳤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께서는 “한글이 세계 최고”라고 너무나 당연히 믿고 있는 나의 인식이 편견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해 주셨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나의 공리(公理)를 무턱대고 큰소리로 외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장면2 -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나 - 아빠, 오늘 학교 수학 선생님이 국산품 애용을 어찌나 강조하시던지...
아빠 - 물론 국산품 애용도 좋지만 그렇다고 남의 물건 안 쓰고 우리 것만을 사 쓸 수는 없잖니.
나 - 그래도 국산품 애용을 해야 무역수지도 좋아지고 나라경제로 발전하고 각종 좋은 결과가 있는 거 아닌가?
아빠 - 물론 그렇지. 하지만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겠다고 하면서... 남의 물건은 사지 않고, 어떻게 우리 물건만 사달라고 말할 수 있겠니. 그건 염치없는 행동이야. 무조건적인 국산품 애용은 장기적으로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나 - 안 그래도 무역적자라는 데 국산품 애용해서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아빠 - 분에 넘치는 사치로 인해 무역 적자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히 줄여야겠지. 하지만 국산품 애용만이 능사는 아니란다. 외국의 좋은 기술을 들여오려는 노력과 기업운영의 비용절감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그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지.


극치의 미학을 신봉하던 시절, 국산품 애용하자며 열변을 토하시던 수학 선생님에게 설득 당한 나는 외제는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이런 조악한 인식을 아빠께서는 차분하게 납득시켜 주셨다. 수출은 선이요, 수입은 악이라는 국산품 애용주의로 경도되기 직전인 나를 아빠께서는 자유 무역의 기본적인 원리를 꺼내서 수정해주셨다. 아빠와의 대화에서 내가 더 크게 감복했던 것은 이런 말씀을 하신 아빠께서 국산품 애용을 추구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지난 설 연휴에 엄마께서 친척들에게 돌릴 선물로 조그만 외제 주전자를 사자 아빠께서는 곧장 볼멘 소리를 내뱉으셨다. “국산도 좋은 거 많은데...”라면서 말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국산 수정펜은 거의 없던 시절인데 일제 수정펜이 쓰기 싫어서 여러 문구점을 돌아다니며 국산 수정펜을 찾아 헤맸던 내 노력이 반드시 못난 행동만은 아니었으리라^^)


비록 사소한 장면이었지만 이 두 가지가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어린 시절 푸욱 빠져있던 국수주의나 극단주의적 경향을 부모님의 영향으로 상당 부분 걷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줍잖게나마 자유주의자를 자처할 수 있다면 그것의 절반 정도는 아마 부모님의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께서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장면의 교훈과 더불어 상당한 수준의 불개입 원칙으로 나를 존중해주셨기 때문이다. 이제 딴에는 어른이라며 부모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고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부모님은 나란 녀석에게 큰 스승이시다. 앞으로 좀 더 살갑게 대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20일 설연휴를 앞두고 들뜬 기분에 있던 익구는 친구 청원이와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당초 계획은 반지의 제왕 3편을 한 번 더 볼 생각이었으나 청원이의 만류로 다른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둘 다 실미도도 안 본 만큼 청원이가 실미도를 보자고 제안했으나 익구는 실미도의 슬픈 결말을 들어 알고 있는 터라 거부하고 말죽거리 잔혹사를 주장해서 가까스로 타협을 보았다. 그러나 말죽거리 잔혹사는 한바탕 웃고 즐기는 가운데 묘한 쓰라림을 남기게 된다. 무지막지한 해피엔딩 영화를 좋아하는 익구로서는 다소 불편했지만 무척 감명 깊었다는 평가다.


영화의 배경은 1978년 말죽거리에 위치한 정문 고등학교이다. 시대적 무게는 영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군복을 입고 설치는 교련 선생뿐만 아니라 죄다 군사주의적 폭악스러움과 저열한 차별의식으로 무장한 선생들, 쥐꼬리만한 권력으로 온갖 오만을 떠는 선도부원들을 보는 역겨움, 유신 시대의 그 숨막힘과 더러운 권력에의 비굴함, 인간성을 흔드는 교육 현실까지 어느 하나 마음을 콕콕 찌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드는 것은 그 속에서 웃음 짓게 만드는 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익구는 이른바 특목고라고 불리는 서울외고에서 보냈다. 영화에서 보이는 남자 고등학교의 거칠음과는 무관하게 보냈다. 전형적인 소심한 범생으로 학창시절을 깔끔히(!) 마무리한 기억밖에 없는 익구로서는 영화 속 이야기들의 혼돈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같은 과 친구들과는 가끔 논쟁을 벌여봤을 뿐 몸을 부대껴본 적은 결코 없으며, 여남공학이라 남성성이 무한팽창 되지도 않았고, 여성비하적 문화가 함부로 꽃피지 못하는 곳이었다. (물론 아주 없지는 않았다) 운동 같은 육체적 움직임에는 젬병이었던 나는 책상머리에서 굴린 것들로 유희하며, 운 좋게도 과분한 찬사도 적당히 얻어가며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영화 주인공들의 청춘은 넘치도록 뜨겁지만, 익구의 청춘은 아기자기하지만 차갑다. 주인공인 범생 김현수가 이소룡의 기운을 받아 열혈사나이로 승격(?)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익구는 한결같이 범생원리주의(?)의 길을 걸었고 사내다움에 대한 거부를 천명하는 호사를 부리기도 했다. 현수가 못된 선도부 패거리들을 쌍절곤으로 제압하고 피범벅이 된 채로 터벅터벅 내려오는 걸음의 무거움은 결국 “대한민국 학교 ×까라 그래!”라는 부르짖음으로 폭발한다. 현수가 느꼈던 것이 분노를 머금은 나른함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익구를 지배했던 것은 적당한 침묵과 타협으로 일구는 개운함이었다. (물론 그 개운함이 반드시 사전적인 의미로 쓰이지만은 않았지만)


영화 내내 끊이지 않던 폭력적 분위기는 익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인간 내부에 상당한 폭력적 기질이 있지 않느냐는 자조 섞인 투항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게 한다. 세상에 점점 다가가면 갈수록 폭력은 또렷해지고 야만은 선명해진다. 폭력이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익구 신조의 반례들만 쏟아지면서 폭력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삶의 양태로 다가온다. 영화의 배경인 유신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상흔은 아물지 않고 새끼 폭력들이 미시적으로 기생하고 있다. 여전히 미만한 이 전체주의적 비루함을 걷어내는 일은 너무나 버겁다. 현수의 욕지기와 비슷한 고함이 몇 번 반복되다가 잊혀지고 상처는 재생산될지도 모른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익살스럽게 처리함으로써 지난날의 그 암울한 기억들을 편하게 기억하자고 말한다. 과거는 미화되기 쉽지만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는 것과 더불어 지난날의 잔혹함을 잊지 않고 새겨두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망각을 거스르는 의지만이 잔혹함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다.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온 청원이는 재미는 있는데 뭔가 좀 내용이 없는 것 같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익구는 엿보고 싶지 않은 우울한 과거를 돌아보면서 아직 크게 나아가지 못한 오늘날의 모습을 반성하는 좋은 기회가 되는 맛깔스러운 영화라고 호평을 했다. 익구가 해피엔딩도 아닌데다 결말이 모호한 영화에 좋은 평을 내리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선의로 받아들이기

잡록 2004. 1. 20. 04:06 |
총학생회장의 한총련 의장 출마에 우려를 표합니다.

발신: 37대 경영대 단과대 운영위원회
수신: 37대 중앙운영위원회

  기실 학생운동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애매한 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37대 경영대 학생회와 단운위는 이른바 비운동권이라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존 학생운동세력에서 주창하는 좁은 의미의 ‘운동’이 오늘날 대학사회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유지훈 총학생회장의 한총련 의장 출마 결의와 당찬 포부에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이미 숱한 학내 구성원들이 지적했듯이 총학생회 선거 기간에 충분한 학우들과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다시금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총학 선거 이후에 결의를 하셨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운동 단체의 장을 맡아서 학내 문제가 소홀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학우들이 많은 만큼 충분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학우들은 진취적이지 못한 어리석은 이들이 아니라, 민족고대 총학생회를 책임지는 분으로써 기꺼이 품고 가야할 소중한 학우일 것입니다.

  우리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총련이 주장하는 기치들에 동감하지 않습니다. 시장의 논리나 신자유주의 같은 사회과학적 용어의 모호함은 논외로 치더라도, WTO 반대 같은 구호에 우리는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가령 농산물 시장 개방 같은 부분에서는 너무나 가슴 아프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다자통상체제의 큰 틀을 결국 거스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평범한 우리 경영학도들 또한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같은 학생이며,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우리나라의 진로를 모색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학생회가 어떤 정치 철학을 가진다면 그건 오로지 자유주의, 다원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거를 통해 어떤 정치적 견해를 가진 선본이 선출되어 그 지향점에 맞는 사업들을 진행하게 나가는 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 생각에 비추어 입장을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총련 의장 출마 과정의 문제점과 정파적 입장 차이에 비추어 유지훈 총학생회장의 한총련 의장 출마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자의 이유는 이미 많은 학내구성원들이 지적하셨지만, 후자의 이유는 지난 총학 선거 때에 나타난 경영대 학우들의 의사에 기반한 경영대 내부의 의견입니다. 지난 총학 선거에서 고대 학우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고, 사실상 저희가 한총련 의장 결의를 저지할만한 권한이 주어진 것도 아니라 이런 의견 밝히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우들의 의사를 수렴할 위치에 있는 총학생회장께 저희의 우려를 분명히 전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작년 한해 구호만 요란했던 한총련 개혁의 성과물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변화를 위한 노력이 없다면,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은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 입장 차이가 엄존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학생회 일꾼으로서 총학생회장의 노고에 격려를 보냅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이러한 세세한 우려를 철학의 빈곤과 배제의 논리를 넘어서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또한 경영대에 대한 고민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위의 글은 고려대학교 37대 중앙운영위원회에 37대 경영대 단과대 운영위원회 명의로 올린 한 장짜리 성명서의 전문이다. 총학생회장은 한총련 의장 출마에 대한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한기 위해 과반 학생회나 각 단과대학 집행부 회의 등에서 간담회를 가지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해왔다. (그러나 슬프게도 고대 내의 상당수 단과대가 집행부 회의를 열만큼 사람이 많지도, 과반 학생회 간담회를 가질 만큼 조직되어 있지도 않다) 여하간 자꾸 찾아오고 싶다는 사람 모른척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단운위를 해서 새터 등을 논의하는 와중에 우리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해서 제출하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주재하는 회의가 하도 너무 세세하고 지루하게 이어진다는 단운위원들의 볼멘 소리를 수렴해서 성명서의 초안을 들고 논의를 나눠봤다. 한 친구가 이 글을 이렇게 평했다. “경영대스러운 글이네요. 반대를 하되 크게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약간 돌려서 말하는 식으로...^^;” 여하간 별다른 이견 없이 초안에서 약간 윤색을 해서 중운위 단대별 보고 시간에 성명서를 발제했다.


성명서의 내용을 얼추 다 말한 나는 결국 소심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우리의 ‘우려’는 ‘격려’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으니 선의로 해석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여하간 내 이런 소심함 덕분이었는지 경영대의 입장을 완곡하게 밝히면서도 큰 마찰 없이 넘어갔던 것 같다. 총학생회장님도 전자의 지적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후자의 지적의 적합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기본적으로 100% 동의가 있는 학생회 사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여운을 남겼다. 나 또한 경영대 학우들에게는 당시 총학 선본의 지지가 낮았지만, 고대 전체의 의사의 총합으로 된 총학생회장인만큼 그 권위를 인정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미 한해 사업을 진행할 권한이 주어졌는데 굳이 학생운동 단체의 수장으로 나설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원칙(?)을 깨고 한 말씀 올렸던 것이다.^^;


총학생회장의 간단한 해명이 있으신 후 동아리연합회장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저는 자유주의자는 아닙니다만,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을 이야기하고 싶군요. 자신이 가진 생각 때문에 탄압 받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 땅의 현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정도가 되었다. 나 또한 국가보안법은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며, 불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자를 칭하는 사람으로서 사상의 자유시장이 세워지는 것을 누구보다 고대한다. 실상 사이비 자유주의자가 아닌 이상 국가보안법에 찬동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의 개폐에 관한 것은 국회 소관인 만큼 의회권력을 교체하지 않고서는 어찌 할 방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개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만큼 그 정당의 성공을 기원할 뿐이다.


얼마 전 내 잡글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확실한 감정 한가지가 “세상은 생각보다 더 더럽다”라고 말했다. 그 느낌과 더불어 요즘 점점 더 커지는 것은 “선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에 대한 탄식이다. 자칭 진보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는 특히나 더 그렇다. 저들의 선의를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 방법론 차이에 대한 거리감과 전략상의 패착에 대한 불만, 은밀히 감추고 있는 권력욕에 대한 비판이 뒤섞이면서 도통 저들의 선의를 순수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이건 아마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선의를 코딱지만큼도 받아들이지 않고, 행동 하나하나의 배후 음모를 캐내려는 것과 비슷한 심보일 게다.^^; 그걸 애써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학생운동이 해체되고 있다는 진단과 더불어 나오는 것이 바로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운동단체 내부의 자성과 혁신이 미비하다면 아마 바닥에서 지하로 파들어가는 일만이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생운동진영이 맞서 싸우던 기득권세력들보다 먼저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물론 이네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 기득권도 갈수록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학생회 일꾼 생활도 3년 차에 접어들었건만...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남을 불신하는 법이고, 남의 선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가 아닐까? 그것을 마치 세심한 분석과 치밀한 논리로 합리적 비판을 한다고 둘러대면서도 말이다. 선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는 비감(悲感)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또 남의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나의 선의는 인정해달라고 호소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물음도 던져본다. 난 착한 사람이 되지는 못해도 적어도 못된 녀석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한 개인을 표현하는 어휘는 무척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나란 녀석을 표현하는 수식어구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아마도 “소심하다”일 것이다. 그다지 좋은 뜻빛깔(뉘앙스)을 가지고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나는 스스로도 부인할 생각이 없고 비교적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편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실용영어 시간에 자신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하나 들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주저함이 없이 “timid”를 들었고, 주위 반응은 웃음이 쏟아졌다) 소심하다라는 말에는 대담하지 못하고 겁이 많다는 뜻과, 조심성이 많다는 두 가지 의미가 병존하고 있다. 물론 이 단어가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전자의 뜻이 강하기 때문이며, 좋게 해석할 수 있는 후자마저도 오늘날 같은 빠른 흐름의 시대에는 부적절한 것으로 취급당하기 일쑤이다.


실컷 재미나게 이야기하고 돌아서서는 “이 이야기를 좀 더 할 걸, 이건 하지 말 걸...”이라며 한참을 지난 만남의 대화에서의 잘잘못을 따지면서 어찌나 호들갑을 떠는지 모른다. 잡글을 쓸 때도 ‘~이다’, ‘~해야한다’라고 멋지게 내뱉지 못하고 ‘~일지도 모른다’, ‘~이면 좋겠다’라고 구차하게 둘러대고 만다. 게다가 혹시라도 읽는 이가 오해라도 할까봐 괄호 안에 온갖 해명과 부연설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런 글쓰기는 내 글의 가독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면서 대중성 확보를 힘들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물론 빈틈없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자세는 좋지만 독자를 위한 글쓰기를 하지 못하면 잡글 쓰기는 한낱 자기 위안 삼는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


관리회계 강의에서 배운 것 중에 불확실성하의 의사결정 부분에서 ‘기대효용기준의 의사결정’이란 것이 있다. 의사결정은 기대이익의 크기나 수익률에 의존하지만 대개 그에 따르는 위험(리스크)를 고려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한 반응은 투자자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달리 말해 거래 위험에 따라 거래 규모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이 식상한 이론에서 나는 당연히 ‘위험회피형 투자자’에 속한다. 결국 아무리 이익의 규모가 크더라도 순이익이 발생할 확률이 적은 투자안은 거부하고, 수익률이 다소 낮아도 순이익을 낼 수 있는 안전한 투자안을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소심함이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라는 물음을 던져보면 갖가지 추측들이 쏟아진다. 일단은 나의 개인주의자 기질에서 연유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 개인의 역량은 늘 모자를 수밖에 없고,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 결국 연대를 통한 외연 확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하던 습관이 익숙해진 결과라는 설이 매우 그럴 듯 하다.


또한 선후인과의 오류일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이렇다할 우여곡절을 그리 겪어보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소심한 성격 덕분에 어떤 커다란 사건을 겪을만한 계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는 점도 있다. 아마도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인생의 쓴맛(?)이란 것을 겪어보지 못했다보니 소심함과 피드백 작용으로 인해 다시 강화되는 주기가 반복된다는 진단이 일면 타당하다. 실상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려웠던 시절이라고 해봤자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온 것 같이 너무나 자잘한 것들에 국한된다. 또한 수시모집 합격으로 인해 수능도 부담감 없이 치른 편인데다, 재수생활 같은 것도 없었으니 초중고 세월이 무난하게 잘 흘러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심쟁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겁이 많고, 좋게 말해 순박한 마음씨를 지닌 소심쟁이에서부터, 사소한 문제에도 따지기 좋아하는 옹졸한 소심쟁이까지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다. 나는 비교적 뒤쪽의 소심쟁이에 속하는 편이다. 게으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결벽증이 녹아 있는 나는 논쟁을 일으키고, 손익계산 따지기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는 회색분자 취급을 받기도 하고, 이해타산을 따지는 냉혈한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앞쪽의 소심쟁이 기질이 때때로 발휘되어 이러한 딴지걸기와 수지분석을 쉽사리 판단 내리지 않는다는 면도 있다. 오히려 소심쟁이들은 어떤 근거가 없이는 함부로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평화주의자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다고 생각된다. 또한 소심쟁이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사숙고의 미덕도 얼마든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예전에는 소심한 내 모습을 몽땅 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좋게 보이고 자신도 생기는 것 같다. 뭐 이것도 소심쟁이의 특기인 자기합리화 기제의 발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오며가며 대범함의 경계를 잃어버린 뻔뻔함과, 당당함의 정도를 넘어선 오만함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소심함도 덕목까지는 안되더라도, 그럭저럭 쓸만한 삶의 양식의 하나로서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다만 나의 소심함이 현실논리에 경도되지 않도록 늘 부지런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힘의 논리에 포획되지 않고 탄탄한 합리성 위에 바탕을 둔 소심함이라면 애써 마다할 필요가 없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드디어 고스톱 배우다

잡록 2003. 12. 28. 06:12 |
잡기에는 일체 소질이 없기로 유명한 익구가 마침내 화투 놀이의 일종인 고스톱(gostop)을 배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세 사람이 하는 놀이라는 것, 고와 스톱의 의미 같은 아주 기본적인 놀이 규칙조차 인지하고 있지 못한 익구는 갑자기 몰아닥친 고스톱 바람에 본인도 놀라 하는 분위기다. 또한 친구들도 한 때 사실의 진위여부를 가리느라 분주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익구가 처음 고스톱을 배우게 된 것은 지난 12월 26일 후배 현수와 선근이와의 조촐한 송년회를 하는 와중에 피씨방에서 그 유명한 세이클럽 고스톱을 배우게 된다. 후배의 친절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십 수 연패를 달리던 익구는 최초로 승리를 거두면서 급속도로 화투장의 마력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익구의 모습은 본 후배 현수는 괜한 것을 가르쳤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그 후 27일 친구 청원이네를 놀러갔을 때도 청원, 찬구, 준식으로부터 고스톱 규칙을 물어보며 ‘쌍피’, ‘비광’, ‘흔들기’, ‘고도리’, ‘총통’ 등의 용어와 의미를 익히는 열의를 보였다. 익구는 이제 ‘피박’과 ‘광박’을 피해가며 고스톱을 운영할 정도의 실력에는 다다랐으나 ‘독박(고박)’을 염려한 소심한 경기 운영으로 인해 조금 따고 왕창 잃다보니 앞으로 그다지 전망이 밝지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익구는 28일 새벽에 그간 배운 것을 실행해 보기 위해 기왕에 게임 머니를 잃을 바에 친구들에게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익구는 세이 고스톱을 함께할 친구를 모집했으나 점 100원짜리는 시시하다는 차가운 반응에 부딪쳐 결국 혼자 방을 만들어서 놀이를 하게 된다. 당초 8만원대에서 출발했던 놀이는 3시간 정도만에 잔고가 0원이 되면서 일단락 되었다.


잔고가 0원인 사람들을 위해 다시채우기(리필) 기능을 운영하고 있는 터라 5만원을 충전했지만 더 이상 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고 일단 잠정 중단된 상태이다. 은근히 이런 사소한 것에 지는 것을 싫어하는 익구로서는 고스톱을 느긋하게 즐기려는 자세가 많이 부족한 편이라고 벌써부터 지적되고 있다.


그간 화투 같은 카드놀이를 노름에 불과하다며 폄하해왔던 익구는 그간의 부정적 평가를 걷어내고 하나의 유희로서 받아들이려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잡기에는 소질이 없다는 대원칙이 깨질 것 같지 않은 이상 익구의 고스톱 열기는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익구 스스로가 이 분야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파장은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칼집 만지작거리기

잡록 2003. 12. 5. 07:10 |
양성평등을 평생 믿고 실천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는 나이지만 며칠 전 있었던 몇 마디 대화에서 내 신념을 뒤흔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어느 동아리 친구를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나는 뜬금없이 다음 동아리 대표는 누가 될 것인지 물었다. (아마도 이제 02학번이라 일선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으니 차기는 누가 이끄느냐는 정도의 질문이었던 것 같다)


친구왈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남자로 할거야.”
익구왈 “아니 왜?”
친구왈 “대표는 밤새도록 술을 마실 수 있어야 하거든. 여자는 그렇게 못하니까.”
익구왈 “푸하하 그런 건가?^^;”


당시의 광경이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그냥 웃고 넘겼던 것 같다. 전 같으면 친구의 발언이 부당하다며 목청을 높였을지도 모르는 나이지만 이상하게도 ‘뭐 그럴 수도 있겠군’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 남자만이 밤새도록 술을 마실 수 있게 되는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아니 애시당초 왜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문화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최소한 평소 자주 하는 말인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걸”이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었으련만 그러지 않았다.


또 얼마 전에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엠티를 논의하면서 준비하는 남자친구들이 여자친구들의 참여율이 저조한 것을 두고 여자들은 ‘끼리끼리 논다’ ‘자기 일만 알고 희생할 줄 모른다’ 하는 등의 푸념들이 쏟아졌다. 나는 평소처럼 적극적으로 방어하기보다는 암묵적 동조를 했다. 나 또한 저마다 바쁜 일 제쳐놓고 짬을 내는 엠티에 참여를 안해주는 여학우들이 무심하다며 투덜댔다. 이러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나는 내가 믿는 만큼의 굳건한 양성평등주의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남성적 속성만을 찬양하는 저속한 마초이즘에 부역할 생각도 없지만 말이다. 내 소심한 성격으로는 악성 마초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지 않는가^^;)


마초의 혐의를 애써 걷어내고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대학물을 제법 먹으며 내 허접한 논리들도 많이 갈고 닦았고, 내 서툰 인식도 많이 교정했다. 전열을 정비한 만큼 사기도 충분한데도 싸움판에 들어가기는 망설여진다. 별로 사교적이지 못한 내가 그나마 알고 지내는 고마운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점의 차이로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게다. 아는 사람과 싸우기는 자꾸만 고통스러워진다. 친한 사이인데도 그저 그런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고 있다며 불평하는 한 편에는, 나란 사람과 교류해주는 존재들에게 칼을 겨누고 싶지 않아 칼집만 만지작거리는 내가 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익구는 11월 29일, 30일 이틀간 있었던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마지막 엠티에 후발대로 참석했다. 오전까지 총학생회 선거 개표를 하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잠깐 일을 처리한 후 후발대로 오후 8시 기차를 타고 가평역으로 향했다. 가평역에 도착해 용추골로 향한 익구는 이제 막 폭죽을 터뜨리려고 준비 중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폭죽은 2년 전에 사놓은 것이지만 원체 그 규모가 크다 보니 아주 넓은 공간이 필요했던 터라 그간 고이 보관만 해두고 있던 것이었다. 결국 넓은 장소를 찾아 폭죽을 터뜨렸고 그 황홀한 폭죽의 광경에 잠시 넋을 놓고 황홀감에 젖었다. 엄청난 굉음을 내던 폭죽이 끝나자 이런 물건을 서울외고 운동장에서 터뜨릴 계획을 했던 우리의 어이없음에 한바탕 웃어야 했다.


어두운 밤길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숙소로 돌아와 모두들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중국어과의 미래를 위한 회의라는 다서 거창한 논제 앞에 저마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익구는 평소 지론대로 희망하는 친구들을 회원가입시키는 모임을 창설할 것을 주장했고, 찬반의견 끝에 표결로 전원의무가입이 아닌 희망가입제가 결정되었다. 동문회 명칭을 쓸 것인가 별도의 친목모임이 될 것인가는 지엽적인 문제라고 보고 추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다음으로는 세이클럽에 둥지를 트고 있는 현재의 누리집을 존속할 것인가, 새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미 희망가입제가 결정된 이상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또한 어느 곳에 만들까에 대한 논의에서 익구는 싸이월드의 거품인기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으나 싸이족들의 열성적 지지에 힘입어 결국 싸이월드로 결정되게 되었다.


원체 친하게들 지낸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색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저마다의 소견을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였다고 평가된다.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는 시간과 비례하여 술과 고기에 대한 열망 또한 강렬해졌고 몇 가지 안건을 표결로 신속하게 처리하고 심야잔치가 벌어지게 된다.


이제 다들 이런 잔치에는 도사(?)가 되어서인지 흥겹게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어떤 친구는 술을 달리고, 어떤 친구는 별을 보며 찬바람을 쏘이고, 어떤 친구는 열심히 몰래 촬영(도촬)을 하고, 어떤 친구는 잠을 청했다. 익구는 산소주 패트병을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여러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으나 밤새서 개표한 후유증은 잠이 많은 익구에게는 치명타라 결국 새벽 3시 30분 경에 잠든 것으로 전해진다.


24시간짜리 엠티는 날이 밝으며 그렇게 끝이 났고, 모두들 다시 일상을 복귀했다. 논의한 대로 익구는 싸이월드에 새로운 보금자리인 我是誰(중국어로 ‘나는 누구인가?’정도의 뜻)를 개통했고, 그간 침체되었던 세이클럽 시대가 무색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다. 싸이월드 아시수의 부제인 ‘소중한 벗들의 이유 있는 만남으로 새롭게 알게 되는 나’의 정신이 얼마나 발현될지는 앞으로 중국어과 친구들의 애정과 참여에 달려있다.


친구 규상이는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을 “자주 보는 것은 아니나 낯설지 않고, 특별한 목적은 없으나, 너무나도 흥겹다”고 평했다. 익구는 이 의견에 동감을 표하며 실상 별로 새로울 것도 없으면서도 티격태격하면서 잘도 지내는 고등학교 친구들은 사교적이지 못한 익구에게는 무척이나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끝으로 힘들게 성사된 엠티를 준비하고 연락하느라 고생했을 친구들과 짬을 내어 참석해 30명의 친구들에게 다시금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익구는 13, 14일에 이루어진 경영대 학생회장 선거에서 89.8%의 찬성률로 경영대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익구는 경영대의 선거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고, 학생회 활동 또한 활발하지 못하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영대 5개 반의 자치활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관계당사자들에게 권한을 위임해 반 학생회의 활동이 활발해지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영대 학생회가 작아지는 대신 각 반이 커지는 작은 학생회의 포부를 분명히 했다.


익구는 단선인 점을 감안해 특별한 선거운동을 펼치지 않았다. 보통 대자보 3개를 이어 붙인 선거 대자보를 세 개를 경영관 곳곳에 붙인 것이 전부였지만 그간 선거 운동 비용을 밝혔다. 본래 신문이나 리플렛 등의 유인물 제작을 계획했으나 20~ 30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어 검토 끝에 하지 않기로 해서 무척 조촐한 선거 운동이 되긴 했지만 익구는 최소의 비용을 추구하는 경영학도의 정신을 살렸다고 자평했다.


<추천서명판 제작비>
- 추천서명 파일비 ~ 300원 × 10 = 3000원 from 종생관 유니스토어
- 서명용지 복사비 ~ 35원 × 40 = 1050원 from 경영별관 복사기

<대자보 제작비>
- B4 출력비 ~ 3900원 from 空문화사
- 재료비(색지, 양면테이프 등) ~ 17000원 from 해결사
- 사진 칼라출력비 ~ 900원 × 4 = 3600원 from 중도관 출력부
- 재료비(칼, 자) ~ 3650원 from 중앙광장 유니스토어
- 재료비(스폰지테이프) ~ 2500원 × 4 = 10000원 from 중앙광장 유니스토어

총계 = 42,200원

다음은 익구와의 일문일답이다.


우선 경짱이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소감이 어떠한가?


- 가장 먼저 작년 이 맘 때가 오버랩 되었다. 작년 11월 총학생회 선거 잡일을 돕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일꾼을 하면서 이 짓을 정말 그만 두자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결국 올 한해 더 경영대 학생회 일꾼을 했다. 그런데 또 한 해 학생회 일꾼으로 살게 되고 말았다. 경영대 학생회 일이 그리 많아서 그다지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두렵고 떨린다. 난 참 부족한 사람이지만 내가 할 일이 있다면 기꺼이 반갑게 하겠다. 거대한 부담감이나 엄청난 사명의식으로 무장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편하고 쉬운 자세로 임해야 학우들에게 열려있고 널널한 학생회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총학생회 선거나 다른 단과대 선거를 전망하신다면?


- 다소간의 이견은 있겠지만 이번 총학생회 선거 입후보한 3개의 선본은 큰 틀에서 운동권 계열이라고 볼 수 있다. 비운동권 학생회를 이끌 사람으로서 수권 능력 있는 비운동권 후보가 올해 나오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운동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높은데 대안 세력은 맥을 못추고 있는 상황이며, 그네들의 자기개혁을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권/ 비운동권의 대립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학생회 자체에 대한 무관심의 증대이다. 아무튼 다른 단과대 선거도 이제 속속 진행되겠지만, 올해 같이 특정 계열의 독점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라 비교적 낙관적이다. 아무튼 학생회 일꾼을 청하는 모든 이들의 어려운 선택에 존경의 뜻을 표한다.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이 심각하다고 보셨는데 구체적인 견해를 말해달라.


- 단과대 학생회 설립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고, 학생회 선거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상황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학생회 같은 조직으로 단결하기보다는 제 입맛에 맞는 곳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영대의 경우 그런 분위기가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의 물결이 대세인 대학가에서 경영대의 학풍은 조금만 다듬으면 새로운 시대의 미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경영대 학우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나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는 또 한번 폭발한다.^^; 이제 학생회라는 존재는 제 안방을 동아리, 학회 같은 제반 자치 단체나 소속 없는 일반 학우들에게 내어주고 뒷방살이를 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고마운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인사말씀 전해달라.


- 정말 많은 분들이 고맙다. 추천서명에서 개표까지 고생해준 병채와 원혁, 세일이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아울러 선거 진행 때 투표 진행을 맡아준 각반 03학번 후배님들이 너무 많은데 일일이 고마움을 표하지는 못하지만 모두모두 감사하다. 또한 36대 경영대 학생회장으로서 온갖 고생을 하시면서 선거관리까지 깔끔이 마무리 해주신 정우 형께도 다시금 고맙다. 더불어 학생회실을 즐겨 들르시면서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주시던 많은 선배님들도 함께 고맙다. 아참 그리고 학생회장 언제 되냐고 늘 닦달했던 고등학교 친구인 청원이와 효석이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경영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다
- ‘거위의 꿈’ 선본으로 작은 학생회 포부 밝혀

익구는 11월 4일 37대 경영대학 학생회장 후보에 등록했다. 본인과 선본장의 재학증명서, 출마소견서, 으뜸 구호, 269명의 추천서명을 제출해 오후 3시 30분경 후보 등록을 완료했다. 이번 선거는 단선으로 치러지며 13, 14일 양일 간 투표가 이루어진다. 선본명은 평소 익구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인 ‘거위의 꿈’으로 선정되었다. 기타 선본명 후보로는 상선약수, 연탄 한 장, 환한 뱃속, 날마다 좋은날, 열린 나래, 녹차 한잔, 열린 우리 학생회 등이 있었으나 고심 끝에 거위의 꿈으로 선택을 했다. 이는 거위가 높이 나는 꿈을 꾸는 것처럼 꿈을 꺾지 않겠다는 다짐을 표상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솔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날개 짓을 준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익구는 출마소견서에서 열려있고 쉽고 낮은 학생회를 제시하며,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정신으로 학생회를 꾸려나갈 것을 다짐했다.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이 특히 높은 경영대의 풍토에 맞게 할 일은 다 하면서 권한은 최대한 자치 단체로 이양하는 작은 학생회를 구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익구는 지난 달 완공한 LG-POSCO 경영관을 통해 웬만한 복지시설들이 거의 다 확보된 터라 마땅히 내 걸 공약이 눈에 띄지 않아 공약 작성이 다소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고 솔직히 밝혔다. 그러나 다른 과반들의 선거 공약들도 다들 원론적인 것을 확인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기보다는 기본적인 책무에 충실하면서 그 밖의 다른 사업들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약의 큰 줄기는 다음과 같다.


1. 사물함의 지속적인 교체와 수리를 하겠습니다.
2. 자치공간의 효율적 활용을 꾀하겠습니다.
3. 각 반에 학생회를 건설하겠습니다.
4. 다양한 자치활동을 육성, 지원하겠습니다.
5. 학생회 사업과 회의 등을 편안히 알리겠습니다.
6. 저비용 고효율 예산 활용을 추구하겠습니다.
7. 자유주의, 다원주의라는 철학만을 가지겠습니다.


익구는 단선인 점을 감안해서 선거운동도 최소화하면서, 기본적인 대자보 작업이나 유인물 제작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익구는 선거 자체의 문제보다는 앞으로 경영대 한해살이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 익구는 일년간 더 학생회 일꾼으로 살게 되더라도, 깔끔하게 마무리지은 다음에는 다시 본업인 공부쟁이(?)로 돌아올 것을 다짐했다. - [憂弱]


다음은 출마소견서 전문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지난 2년 간 학생회 일꾼을 해왔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왔지만, 이제 제 이름을 걸고 다시 학생회 일꾼을 청하는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합니다. 제 능력의 부족함에 대한 자각 이전에 모종의 두려움이 저를 짓누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다시 이 떨리는 자리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통솔력 있는 사람도 아니고, 번뜩이는 재주를 지닌 사람도 아닌 소심함과 어수룩함이 철철 넘쳐흐르는 저이지만 소심함에서 우러나오는 꼼꼼함과 성실함으로, 어수룩함에서 묻어 나오는 진솔함과 편안함으로 내 사랑하는 경영대학의 일꾼이 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어떤 새로운 일을 벌이느라 힘을 쏟기보다는 경영대 학생회가 기본적으로 해주어야 할 책무에 충실하면서 학우 여러분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공유감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 정치적 무관심을 올바른 개인주의 문화가 건설되는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비교적 낙관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반성하고 긴장하는 자세로 학생회가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기 위해 늘 한 번 더 고민해서 쥐꼬리만큼 보이는 권위나마 벗어 던지고 열려있고 쉽고 낮은 학생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학생회 운영 이념으로 도덕경 제 8장의 첫 구절인 '上善若水'를 제시하겠습니다. 상선약수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라는 뜻입니다. 만물은 물 없이는 못 살지만 물은 그들을 이롭게만 할 뿐 그 공로를 인정 받으려거나 그들 위에서 군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 밑에서 묵묵히 섬기는 일을 할 뿐입니다. 모두가 좋은 곳을 향해 오르려고 할 때 물은 유유자적 낮은 데로 임할 뿐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비우고, 조용하고 성실하게, 오직 섬기는 자세로 시의 적절하게 움직이는 물, 어느 누구와도 다투는 일 없이 자기를 끝까지 낮추는 물의 자세를 배우겠습니다.  


  지금 저는 당당한 풍채에서 오는 카리스마보다 어딘지 모자란 허전함으로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어쩌면 학생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학우 여러분들이 웃을 때 같이 웃고 슬퍼할 때 같이 우는 무력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무력함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과의 동의어가 아닙니다. 부단한 고민과 노력으로 그저 밑에서 학우 여러분들을 북돋워 줄 것을 다짐해봅니다.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은 아름답지도 않고 멋있지도 못하고, 희망이 넘쳐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다만 약간의 믿음이라도 드렸다면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고 가슴 뛰는 날개 짓을 게을리 하지 않는 37대 경영대 학생회를 만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익구
:

신림동에 진출해보다

잡록 2003. 11. 1. 22:57 |
신림동에 진출해보다
- 시민사랑 정모 참가, 고시생 친구 염탐

익구는 31일 금요일 관리회계 강의를 마친 뒤 서둘러 신림역으로 향했다. 모처럼 긴 외출길을 떠난 것은 두 가지 볼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유시민 팬모임인 ‘시민사랑’ 정모에 참가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시생 친구인 청원이 살림살이 관찰을 위한 것이었다.


신림역 근처 보물섬 호프집에서 열렸던 시민사랑 정보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홀홀단신으로 참가한 터라 엄청 낯설어하던 익구는 어디에 앉아야 하나 방황했다. 그러나 현재 대학 휴학 중이시고 신림동에서 공부 중이시라는 두 누님들께서 선뜻 자리를 권하고 말동무가 되어주어서 다행스레 그 날 자리의 낯설음을 털어 버릴 수 있었다.


곧이어 유시민 의원이 도착했고, 참석자들은 무척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약간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뒤 유 의원은 각 테이블로 와서 악수와 술을 권했다. 담담하게 맞이하려던 익구는 유 의원이 바로 옆자리에 와서 악수를 권하고 잠시나마 앉아 있다 가자 소심함이 폭발하면서 몸둘 바를 몰랐다. 친구 원혁이가 전해달라는 부탁과 익구 자신의 부탁을 혼합해서 앞으로 글쟁이로 돌아오시면 경제학 카페 같은 쉽고 편한 경제학이나 다른 분야의 활발한 저술활동을 주문했다. 유 의원은 물론 그러겠다며 화답했으며 안 그래도 내년쯤에는 헌법에 관한 책을 하나 낼 계획이라고 귀띔해주셨다.


익구가 유 의원을 알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WHY NOT?]이라는 책 덕분이었다. 익구는 그 책을 통해 자유주의라는 것이 탐구하고 추구해 볼만한 녀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뒤에 고종석 선생으로부터 개인주의를 당당히 말할 용기까지 추가하게 되어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라는 화두를 껴안고 심심하면 꺼내들게 되었다. 익구는 여전히 유시민 의원보다는 글쟁으로서의 유시민 선생을 더 좋아하고, 그가 본업(?)으로 돌아와 주길 은근히 고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 의원과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옆 테이블의 두 아저씨들(혹은 형님, 선배님)과도 합석하여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다. 또한 의외의 참석자였던 개그맨 남희석씨도 옆자리에 익구 옆자리에 들러 재담꾼으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흥겹게 해주셨다. (남희석씨도 시민사랑 회원으로 읽기쟁이로 지내셨다고 한다) 또한 시민사랑 운영자이신 아이디 월영님의 은근한 달변에 취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정을 넘기면서 연거푸 마신 맥주의 기운이 몰려오며 대화마당이 한층 무르익어 갈 때 익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약속을 위해 일어났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친구 청원이의 고시방으로 작았지만 무척이나 깔끔하고 아담한 공간이었다. 시험 과목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 나누며 익구의 평소 주특기인 법학 까대기를 하고 행정학의 경우에는 학문적 엄밀성이 떨어지는 말장난으로 폄하하면서 친구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어주려 노력했다.


고시원이 밀집한 곳이기는 하지만 서울대 근처이기도 한지라 꽤 크나큰 유흥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구경을 하면서 새벽길을 산책하다가 고깃집에서 가볍게 허기를 달랬다. 밤을 새고 전철 첫차로 노원으로 복귀하자는 청원이의 제안을 뿌리치고 고시방에서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으며 잠시 눈을 붙였다. 네시간 즈음 자고 일어난 익구는 청원이와 함께 노원으로 향했고, 오는 전철길 내내 청원이의 투덜거림과 구박을 방어하며 모든 일정을 마쳤다.


다음은 신림동 진출에 대한 일문일답이다.

글쟁이 유시민을 고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물론 글쟁이 유시민보다는 국회의원 유시민이 세상을 더 많이 바꾸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나같이 잡글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러한 글의 무력함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허나 그래도 글로써 소통하는 것이 더 즐겁고 가슴 뛰는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권위주의라면 딱 질색인 녀석이지만... 유 의원의 삶의 무게에서 우러나오는 권위, 진정성에서 피어나는 권위를 좋아한다. 그러나 역시 글발에서 물씬 풍기는 권위를 가장 동경한다. 현실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더 지내실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글로써 이룩하는 편안한 느낌의 권위를 선사해주는 그 날을 기대하고 있다.


고시생 친구의 살림살이를 염탐한 소감은 어떤가?

- 하도 취업대란 이야기를 많이 듣다보니 고시에도 자연스레 마음이 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학자로 평생 살만큼 넉넉한 집안도 아닌 바에야 먹고 살 궁리를 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고시는 여전히 매력적인 카드다. 다만 매일 뉴스를 접하고 잡글을 읽고 쓰지 않으면 몸이 달아버리는 나로서는 그런 폐쇄된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건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청원이는 고시생 생활을 개인주의 문화의 극치라고 평했다. 나름대로 개인주의자를 자처하는 나이지만, 무척이나 외로움을 많이 타고 소통하고 싶어하는 개인주의자인 것 같다. 하여간 코딱지만한 나라에서 펼쳐지는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살길을 좀 더 궁리해봐야겠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깊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얼른 신림동으로 들어오라는 청원이의 충고도 진지하게 검토 할 생각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회계학 원리의 두 가지 선물
- 초등학교 친구와의 해후, 중간고사 대박

익구는 최근 회계학 원리 강의로부터 두 가지 선물을 받았다며 무척 반가운 눈치다. 우선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박주원씨와 함께 회계학 원리 강의를 듣고 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학기의 절반이 지났을 때까지도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익구’라는 이름의 특이성으로 말미암아 의문을 가지고 있던 주원이가 먼저 확인을 의뢰했다. 혹시 성남에 살지 않았었냐는 질문에 익구는 옛 친구를 단숨에 기억해냈으나 이름 석자 중에 성씨를 기억해내지 못해 극적인 해후는 다음 시간으로 미뤘다.


졸업 앨범에서 정확한 이름을 온전히 확인한 익구는 다음 강의 시간인 29일에 옛 친구와의 공식적 해후를 선언하고 담소를 나눴다. 8년 만의 만남이라는 어색함도 잊고 옛날의 추억에 휩싸인 익구는 먼저 알아봐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력 나쁨에 대해 정중히 사과했다. 익구는 주원이를 처음 봤을 때 무척 낯이 익었으나 1학기 때 있던 모임들 같은데서 본적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지 설마 초등학교 친구였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알고 지내던 같은 반 후배인 이현수의 친구로서 주원이와 알게된 것을 두고 익구는 세상이 의외로 좁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며 무척 흐뭇한 반응을 보였다. 어디에 있던 열심히만 산다면 인연은 다양한 모습으로 재미나게 다가온다는 것을 일깨워준 반가운 일이라며 대대적인 환영성명을 발표한 익구는 주원이와 현수에게 밥이든 술이든 다음에 한 번 쏘기로 약속했다.


다음 선물은 중간고사의 대박으로 말미암은 엄청난 파급효과이다. 익구는 회계학 원리 중간고사 성적에서 82점을 득점해서 두 반 수강생 135명 중에 공동 4등을 하는 초유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밝혀졌다. 회계학 과목 시험 중에서 평균 점수를 넘는 최초의 시험이 될 것으로 전망은 되었지만, 항간의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둠으로써 엄청난 자신감 상승 효과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간 회계학 징크스로 말미암아 얼치기 경영학도로서 정체성 혼란을 토로하던 익구로서는 이로써 위기의식을 말끔히 걷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시험 성적을 두고 논평을 냈다. 익구는 이 여세를 몰아 관리회계도 깔끔하게 재수강 방어를 이뤄내겠다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익구의 호들갑은 그간 회계학에 대한 익구의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나타내는 방증인 것으로 평가된다.


익구는 이 결과가 만들어지도록 책 대여, 기출문제 제공, 문제풀이 협찬 등으로 도와준 고마운 친구들인 이수지, 김미정, 연지혜씨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썩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수강했던 회계학 원리 재수강은 익구에게 뜻하지 않은 두 가지 선물을 선사하면서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옛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익구가 회계학 악몽을 떨치고 일어나는데 이 두 선물이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잡록 2003. 9. 27. 03:45 |
고등학교 동호회 게시판에 한 친구가 “우리모두 어른이 되어간다”는 짤막한 글을 남겼다. 이 말에 영 기분이 찜찜한 것은 요즘 들어 부쩍 늙어간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리라. 다른 한 친구는 대학물이라는 것이 신기하게도 사람을 폭삭 늙게 만든다고 말했다. 물론 세월은 쉴새없이 가다보니 절대 느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생각만큼 그렇게 빠르지도 않는 것 같다. 지난날만큼은 아니더라도 가슴이 뛰는 삶을 지킬 수 있다면, 함부로 늙은척하지 않는다면 적당히 늙어가며 서서히 어른이 되리라 믿는다. 곱게 그리고 멋있게 늙고 싶다. 세월만 간다고 앵앵거리지만 말고 알차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바지런함으로 맞설 수 있기를.^^


익구어린이에서 좀 어른스러워졌다는 것을 느꼈을 때... 즉 ‘익구청년’으로 등급상승 되었을 때는 아마도 ‘세상 욕하기는 쉬워도 티끌만큼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서 몸서리쳤던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 목표는 일단 세련되게 욕하는 것이라도 하자는 것이다만...^^;) 대충 살기도 힘든 세상이라는데, 욕심부려가며 꿈도 이뤄가며 생각한대로 살아가기란 너무 어렵다. 어느 정도 물들고 타협해서 살다가도 마지막에 양보 못할 부분에서는 “No”라고 외치며 돌아설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을지도 늘 두려운 물음이다. 오늘도 “스스로 반성해서 정직하다면 천만인이 가로막더라도 나는 갈 것이다(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는 맹자 구절을 주술처럼 외워본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확실한 감정 한가지가 “세상은 생각보다 더 더럽다”는 것이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난 어떤 위치에서 무슨 주장을 하며 살아갈지 아직도 헤매고 있다. 이 헤맴의 끝이 없다는 것은 내 앞에 놓인 무지막지한 자유의 숙명이다. 이 자유가 설령 나를 필연적으로 고독하게 만들어 준다고 해도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할 수 없는 것은 약간의 울타리로 인해 주어지는 속박에 걸릴 때의 기분 나쁨이 더욱 싫기 때문이다. 자유가 일견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것 같지만, 실상 가장 효율적인 길이라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가 생각 없는 똘마니가 아니라고 믿는다면, 내가 앓아가며 고민해서 선택하는 자유를 누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는 외로움을 뼛속까지 스며들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뼛속에 맴도는 한기를 달래기 위해 사람을 찾고, 술을 찾고들 하는 것이겠지... 6(^.^)9
Posted by 익구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김동률이다. 나는 그가 전람회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고, 전람회가 해체된 지 6개월 뒤에야 전람회와 김동률의 존재를 알게된 꽤나 뒤늦은 팬이었다. 중학교 2학년 9월에 라디오를 처음 들었을 때 케이비에스 에프엠 김동률의 인기가요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던 것이 인연이 되었는데, 이마저도 9월말쯤에 디제이를 그만두는 바람에 디제이로서의 그를 한달도 채 즐기지 못했다. 참 이래저래 뒷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적과의 프로젝트 앨범 ‘카니발’이 곧 발매되었고, 그의 솔로 앨범도 어느덧 3집까지 나왔다. (4집이 조금 늦는 듯해서 안달이 난다^^;)


예체능에는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관심이 없고, 잘하지도 못한다고 입에 달고 사는 나이지만... 김동률은 여느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 사람의 팬이 된다는 보편적인 감정을 나도 느껴볼 수 있게 해준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늘 김동률을 동률公이라고 나름대로 높여 부른다. 그런데 참으로 무심한 팬은 오늘에서야 그의 누리집(http://www.kimdongryul.com)을 방문했다. 그의 에세이 몇 편을 읽으며 무척 가슴이 푸근해진다. 전람회 2집에 있는 10년의 약속이라는 곡을 참 좋아하는데 그 곡에 대한 에세이가 있었다.


[10년의 약속]

모두들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전람회 2집의 '10년의 약속'이라는 곡은 동욱이와 나와의 얘기다. 며칠전 어떤 분이 요즘에 차에서 그 노래를 꽂아놓고 듣는다는 얘기를 듣고 문득 계산을 해보니 노래속의 10년뒤가 바로 2003년 올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막연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설레임으로 그려봐도 뿌옇기만 하던 그 '10년뒤'가 어느샌가 슬쩍 와버렸다.


오늘은 동욱군의 신혼집을 방문하였다.
결혼식 이후로 서로 바뻐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짬이 났다. 동욱이는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기에 어차피 잠시 머무는 집이라서 신혼집같은 아기자기함이나 거창한 집들이같은 이벤트는 없었지만 10년 전부터 함께 봐왔던 두사람이 자기들의 공간에서 함께 나를 접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정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고3때 처음 동욱이가 여자친구라며 소개시켜주던 일, 대학가요제 예선때 셋이 나란히 주머니 난로를 손에 넣고 들뜬 마음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건던일, 셋이서 동욱이 방에 꾸겨앉아서 같이 노래부르던 일, 함께 스키장에 놀러갔던 일등등... 정말 서로들의 얼굴과 말투에선 변한게 거의 없는 듯한데 우리를 둘려싼 환경만이 10년의 흐름을 증명해주듯 싹 바뀌어 있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왠지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약간은 흐뭇하기도 하고...


동욱!
넌 나의 너무 자랑스러운 친구인데, 넌 내가 그럴까?
아까 했던 은희의 말이 자꾸 머리속에 맴도네.
"동률아 그럼 '그다음 10년'이란 노래를 써봐!'


다음 10년에도 그 다음 10년에도
누구보다 자랑스런
너의 친구로....
멋지게...



전람회시절 멤버로 활동했던 서동욱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세월의 무게를 실감한다. 서동욱과 김동률의 우정을 실감할 기회는 없었지만... 언뜻언뜻 느껴지는 그들의 우정의 끈끈함과 뜨거움이 늘 부럽다. 10년의 약속은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후 두 친구가 10년후에 멋진 모습으로 만나자는 내용의 노래인데, 나도 이 노래를 따라서 고등학교 졸업 전후해서 10년의 약속 비슷한 것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 당시의 어수선함과 나의 게으름으로 그 좋은 시기를 놓쳐버린 것을 가끔 생각해도 영 아쉬운 일이다.^^; 뭐 지금이라도 10년의 약속 할 벗이 있다면 조금 뒷북이기는 하지만 기꺼이 받아들이리...^^


그의 또 다른 에세이가 나에게 좋은 경고의 메시지가 되어 울린다.


[2003년 비오는 신촌]

대학동창들을 만났다.
일주일 뒤에 결혼하는 친구의 총각파티.
신촌 한구석 어느 곱창집에서 소주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10년이란 세월이 참 우습다.
언제나 그렇지만 옛날얘기들 욹어먹기는 참 재미나다.
만날때마다 했던 얘기 또하구 했던 얘기 또하구.
과거 지향적 천성이긴 하지만 갑자기 감당할수 없을만큼의 무게로 그리움이 밀려온다.


휙 둘러보니 이녀석들은 얘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만 주위 다른 테이블 사람들이 확 어려보일뿐.


곱창살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문득 튀어나올뻔한 말.
'앞으로 10년뒤엔 우린 또 어떤 모습일까'


나도 모르게 그냥 꾹 삼겨버린다.
이렇게 또 훌쩍 와버릴까봐 무서워서.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적당히 무르익으면, 나도 이 이야기를 꼭 나눠보고 싶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우린 또 어떤 모습일까?”

뭐 아마 그 물음에 우물쭈물 얼버무릴 것이 확실한 내 자신을 돌아보며 그 물음을 감히 던지지 못하겠지만... 나도 무섭다. 세월이 훌쩍 지나가서 내 앞에 무시무시한 미소를 짓고 있을까봐.


아직은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도, 그 때 그 때 맞춰가며 살아가도 그럭저럭 넘어가겠지만, 이제는 과거도 돌아볼 줄 알고, 현재를 음미할 줄 알며,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인생, 그런 우정을 꾸려나갈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 때가 머지 않았다. 6(^.^)9


덧붙이며 - 동률공 3집을 오랜만에 들으며 감상에 푸욱 적셔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무심한 나의 고질병을 다시금 반성하며, 남의 것, 얻지 못한 것에 침흘리기보다 내 것, 이미 있는 것에 충실하고 아낄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
Posted by 익구
: